우리말을 하는 한, 그 우리말에 한자어가 들어 있는 한 말의 뜻을 정확하게 알고 새기려면 한자의 어원부터 따져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자는 사물의 모양을 본떠 그린 상형(象形)을 비롯해 지사(指事) 회의(會意) 형성(形聲) 전주(轉注) 가차(假借) 등 여섯 가지 방법으로 만들어진 문자입니다. 이른바 육서(六書)입니다.
부모를 잘 섬기는 효도를 말할 때
사주나 점을 믿지는 않지만, 매번 '무난’, ‘평탄’ 같은 단어가 튀어 나온다. 전반적으로 필자 삶을 돌아 볼 때 과연 맞는 말인 것 같다.
인생 전반의 삶
인생의 여러 중대사가 결정되는 1970년대가 필자 20대 나이였다. 그 시기 대학교에 입학하고 군대에 갔다 오고 취직해서 결혼했으니 말이다. 아들딸까지 낳았으니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운이 좋았는지
사례 A와 B는 1992년 10월 19일 혼인신고를 마치고 법률상 부부로 살아왔다. 그러나 경제적인 문제 등으로 불화를 겪었다. 아내 B는 남편 A로부터 “우리는 부부가 아니다.”라는 말을 듣고 2004년 2월경 가출하여 별거를 하기 시작했다. A는 그 후 B를 설득하려는 별다른 노력 없이 B를 비난하면서 지내왔다. 결국 B는 2008년 4월 29일 A
미국은 평상시에는 17시간, 썸머 타임에는 18시간 한국보다 시차가 늦었다. 한국에는 큰딸만 남아 있어 필자는 자연히 큰 아이에게만 신경을 썼다. 작은 아이에게는 시간을 따져가며 수시로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국제 전화뿐이었다. 어느 날부터 착하기만 하던 작은 아이에게 이상 징후가 보이기 시작했다.
미국은 9월에 학기가 시작된다. 작은 아이는 중학교 1학
1998년 8월 남편은 왕복 비행기 표 1장과 이민 가방에 달랑 옷가지 몇 벌을 담아 김포국제공항으로 향했다. 6개월에 걸쳐 필자가 설득시키고 단행한 1차 이민이었다. 온 나라에 경제 위기와 그 도미노 현상으로 가정이 휘청거려 별다른 대책이 없어 무조건 단행한 모험이었다.
온 살림에 빨간 딱지가 붙고 집은 경매로 날아갔다. 게다가 여기저기 쏟아지는 빨간
1999년. 필리핀에서 가장 덥다는 3월의 어느 바닷가 마을, 그곳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이끌고 온 자원봉사자들로 북적였다. 많은 미국인이 참여했고, 한국과 일본에서 온 학생 단체도 있었다. 그 많은 외국인 사이에서 땀 흘리는 한 중년 한국인 남성을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그가 한국에서 특별히 휴가를 내고 참여한 대형 금융회사의 대
10년 전쯤 동문회 송년회에서 대선배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경제학 교수님으로 장관급 고위직까지 지내고, 70대 중반에 본인 말로 ‘백수’ 생활을 하는 분이었지요.
“65세에 대학에서 정년 퇴임하고, 석좌교수 예우를 받으며 70세까지 일하다 몇 년 전 은퇴를 했다. 평생 교단에서 ‘노동은 고통(PAIN)’ 이라는 마르크스 경제학을 사실이라 믿
30여 년 전 어느 해 7월 하순이었다. 오랜만에 동창 모임을 강에서 갖기로 했다. 서울 근교에도 놀기 좋은 강이 수두룩하지만 한 친구가 “한탄강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부득부득 우겨 할 수 없이 그리로 정했다. 서울 동대문 부근에서 아침 9시에 출발하는 여행사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먹거리는 10여 명이 각자 ‘주특기 요리’로 한 가지씩 준비키로
서대문구 충정로에 위치한 ‘(사)한국마이크로크레디트 신나는 조합’(정명기 이사장)이 주최한 ‘시니어 취·창업연계교육’에 참가하였다. 시니어가 땀을 흘리면서 길을 찾는 교육현장을 살폈다.
서류심사, 면접을 거쳐 소수정예 교육생을 선발하였다. 민성삼(54) 수강생은 “2년 전 명예퇴직하고 한창 나이이기에 취·창업이 쉬울 줄 알았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교육
일산종합사회복지관에서 ‘근로·자녀장려금 제도의 이해와 변동사항’에 대해 시니어 강의를 했다. 다음은 주요 내용
근로·자녀장려금은 국세청의 주관하에 근로소득 및 사업소득이 있는 저소득 장·노년가구의 근로의욕을 높이고 자녀의 출산과 양육을 실질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제도이다. 물론 재산이 많고 소득이 높은 사람에게는 해당이 안 되는 제도이다. 아직도 잘 모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