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 생긴 일] 꿈은 깨지고 40년 우정은 남다

기사입력 2016-12-09 08:42 기사수정 2016-12-09 08:42

대학 2학년 때인 12월 24일 오후 5시 무렵, 소공동 미도파 백화점 옆에 있는 맥스웰인가 그 비슷한 이름의 커피숍에서 남녀 학생 10명 정도가 자리를 함께했다. 같은 과 남자친구 대여섯 명이 오래전부터 각자의 재주와 인맥을 총동원해 다른 대학 여학생들과의 미팅을 주선해 크리스마스이브를 함께 지내기로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필자도 주변 인맥을 총동원해 알아봤으나 단순한 미팅이 아니라 밤새 함께 지내는 조건이다 보니 아무리 점잖게 행동하겠다고 다짐을 해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먼 친척 여동생의 협조 하에 필요한 비용은 남학생이 전부 부담하고 분위기가 별로 좋지 않으면 중도에 돌아가도록 보장하겠다는 조건에 어렵사리 겨우 미팅을 성사시켰다. 결과적으로 필자가 주선한 모양이 되어 어쩔 수 없이 함께 지낼 음식점도 앞장서서 예약하게 됐다. 신경 쓸 일이 많아 은근히 필자가 주선한 것이 후회되었지만 어찌어찌하여 어려운 일은 다 해결하고 함께 만나 예약 장소로 옮겨가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우리 일행 중 한 명이 약속시간이 한 시간 이상이 지났는데도 오지 않는 것이었다. 30분 이상이 더 지체되자 여학생들이 술렁이더니 자기들끼리 실랑이를 벌였다. 일부가 그만 가겠다고 나가버리자 나머지도 그냥 따라서 나가는 상황이 벌어졌다.

우리끼리 허탈하게 앉아서 아직 오지 않는 친구 욕도 하면서 이러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2시간 이상이 지난 7시가 넘어서야 마침내 그 친구가 씩 웃으며 “어~ 일이 있어 좀 늦었어, 미안해들! 그런데 여자들은 어디 있어?” 하고 대수롭지 않게 눙치면서 자리에 앉는 것이었다.

필자는 너무 화가 나서 왜 늦었는지 자초지종도 묻지 않고 대뜸 그 친구에게 “야! 이 새끼야! 너는 전화할 줄도 모르냐? 개 상놈의 새끼!”라고 거친 욕을 퍼부어주었다. 필자가 욕을 하자 그 친구도 화를 내며 “야! 네가 뭔데 나에게 쌍욕을 해?” 하며 대들었다.

이렇게 시작된 실랑이는 결국 그날 밤 눈 내리는 소공동 길 위에서 주먹다짐으로까지 이어졌다. 다행히 다른 친구들이 결사적으로 말려 싸움의 결말을 보지 못하고 일주일 후에 석관동 들판에서 다시 만나 결투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약속한 날 오후, 석관동 시내버스 종점에서 함께 만나 널찍한 장소를 찾아가 심판도 없이 둘이서 맞짱을 떴다. 한 10여 분쯤 싸웠을까. 쉬는 시간이 없어서 그랬는지 둘 다 완전히 녹초가 되어 그만 싸우기로 합의하고 헤어졌다.

그 후 겨울방학이 끝나고 개학 때 만나 서로 악수만 했고 한참 동안은 서먹하게 지냈다. 그러다가 차츰 가까워졌고 함께 시험 준비도 하고, 수업이 없는 자투리 시간에는 탁구와 당구도 치고, 음악 감상도 함께하는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사회에 나온 후에도 서로의 조경사를 챙겨주며 가끔 연락해 만난다. 그렇게 서로를 아끼고 위하는 우리들의 우정은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다. 크리스마스이브의 악연이 오히려 수십 년 지기 절친한 친구의 인연이 된 것이다.

그때 비록 성사는 안됐지만, 그런 미팅을 내 남은 생애에 언제 또다시 주선해볼 수 있을까? 지나간 추억은 대부분 아름다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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