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경숙
가난에서 조금 벗어나자 해외여행에 눈 뜨기 시작했다. 남자들은 출장으로 해외에 나갈 기회가 있었지만, 여자는 쉽지 않았다.
대학 동창들은 모일 때마다 조금씩 정기적으로 저금하기 시작했다. 물론 돈을 모으는 것도 시간이 걸렸지만, 남편들에게 미리 허락을 받기 위한 작업(?)도 필요했다.
그 시절 비행기가 익숙하지 않던 때라 일화가 많았다.
어느 목
오늘 깨를 볶았다. 깨 볶는 것처럼 즐거운 일이 있었다는 말이 아니라 진짜 참깨를 볶았다.
막내동생의 시댁이 농사를 짓는데 항상 추수한 여러 가지 곡식을 보내주신다고 한다.
참 부러운 일이다. 열심히 농사를 지으시고 수확의 기쁨을 서울에 있는 자식들과 함께하시는 게 행복하다고 하신단다.
많이 보내오셨으니 나누어주겠다고 해서 여러 가지 농산물을 얻어왔다.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효도를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서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 간 인식 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효도를 하여야 하고, 받아야 하는 입장에 선 시니어들은 고민이 깊어간다. 즐거워야 할 가정의 달에 설ㆍ추석 명절 스트레스처럼 ‘가정의 달 스트레스’를 어깨에 짊어진 안타까운 현실이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오면 반갑고, 가면 시원하다고 한다. 효도를
부모만큼 자식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 살면서 모든 것을 물려주신 아버지와 어머니는 분명 내편이다. 인생의 스승이자 가장 큰 지지자로 언제나 믿을 수 있는 부모는 영원한 내편이다. 이 말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진실이다. ‘나이든 부모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라는 책은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풀어야할 본질적인 숙제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일본의 심리학자 ‘
그와는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 그러니까 초등학교 5학년 때 친한 사이가 되었다. 학교로부터 집이 더 멀었던 필자는 등굣길에 그 친구 집에 들러서 같이 가고 하굣길에도 친구 집에 먼저 들렀다가 귀가하곤 했다. 둘 중 하나가 청소당번에 걸리는 날에는 서로 기다려줬다. 중학교도 같은 학교로 가게 되어
3년 내내 또 그렇게 붙어 다녔다.
고등학교는 서로
사람이 가잘 절절한 아픔을 느낄 때는 바로 사랑하던 사람을 잃은 순간이 아닐까? 옛날 중국에서는 엄격한 유교적 전통이 살아있어 남녀 간의 사랑을 드러내는 것을 천시했다. 그러나 아내가 죽었을 경우만큼은 그 절절한 심정을 마음껏 표현할 수가 있었는데, 이를 도망시(悼亡詩)라 불렀다. 이 도망시의 원조인 시가 바로 서진(西晉)시대 반악(潘岳)의 3수다. 반악
짙푸른 동해 바다. 저 멀고 깊은 곳으로 눈길이 따라가면 하늘이 시작된다. 바람과 파도소리도 경계가 흐려져 귓가에는 하나의 소리로 들릴 뿐이다. 구름 아래 뻗은 손가락 사이로 눈부신 햇살이, 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주황색 빛이 몸을 감싸 내린다. 그곳에 서 있는 기분? 이게 바로 축복 아닐까.
산과 바다, 하늘이 이어진 예술가의 놀이터
멀리 바다에서 시야
손성동 한국연금연구소 대표
인출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좋건 싫건 무수히 많은 선택을 한다. 그중에는 인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선택이 있는가 하면, 어떤 선택은 인생의 양념에 그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직업을 선택할 것인지, 어떤 배우자를 선택할 것인지 등은 인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선택들이다. 반면 오늘 점심을 누구와 먹
이런 사랑이 또 있을까 싶다. 편한 것이 좋고, 느린 것은 싫고. 오랜 것은 쉬이 버려버리는 요즘 세상, 옛 추억을 곱게 간직하고 진정한 사랑으로 그리워하는 문인들의 안식처가 있다. 서울시 종로구 평창동 영인문학관이 바로 그곳. 문학관을 가득 메운 모든 공기와 기운은 이 세상 모든 문인에게 보내는 연정이다. 컴퓨터 모니터 앞, 최첨단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도시에서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제대로 되겠어?” 하는 의심부터 한다. 그것도 콘크리트로 둘러싸여 흙 한 번 밟기 힘든 서울 한복판에서 농사 얘기를 꺼내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실제로 해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밥상에서 곁들일 채소 몇 가지 정도 심는 그런 텃밭이 아니다. 제대로 수익도 올리고 양봉까지 한다. 행촌마을 사람들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