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상사와 아랫사람 사이 진흙탕싸움이 한창이다. ‘나 살고 너 죽기’이다. 상사에게 토사구팽 당하였다는 하소연부터 아랫사람에게 배신당했다는 분노까지 다양하다. 상사가 다 부려먹은 아랫사람을 자르는 것을 토사구팽이라면 아랫사람이 상사와 등을 돌리는 것은 배신이다. 언뜻 달라 보이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발생한 부산물이다. 추적자와 도망자가 뒤엉켰다.
동물이 어미를 기억하는 방법은 냄새일 것 같다. 잊을 수 없는 냄새. 가장 원초적인 냄새. 엄마의 냄새는 향기와 그리움, 그리고 평화로 일치되곤 한다. 가장 안전하고 따스하며 부드러운 느낌. 친구를 그렇게 기억해낸다면 과장으로 들릴까.
어렸을 때는 예쁜 친구가 좋았다. 좋은 냄새가 나고 예쁜 옷을 입은 아이가 좋은 친구라 생각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마음 한쪽에 늘 담아두고 있는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아래윗집에 살아 눈만 뜨면 만났다. 잘 싸우기도 했지만 금세 풀어져 또 어울려 놀곤 했다.
초등학교는 10여 리를 걸어서 가야 했다. 비 오는 날이면 개울물이 불어나 금방이라도 우리 몸을 집어삼킬 듯했다. 그런 개울을 몇 개나 건너야 학교에 도착했다. 겨울은 우리를 더 혹독하게 단련시켰다. 눈보라치는
어린 시절 같은 동네에 살던 개똥이란 별명을 가진 친구가 있었다. 조금 모자란 듯 보였지만 언제나 천진한 표정이었다. 일찌감치 도회지로 나온 필자는 이 친구를 까마득히 잊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고향을 떠올렸고 살며시 피어나는 그리움에 몸살까지 왔다. 고향을 찾았다. 그리고 우연히 개똥이도 만났다. 그동안 고향을 지키며 살다 결혼도 했고 슬하에 딸아이도
필자에게는 지금도 잊지 못하는 옛 친구가 한 명 있다. 이 친구를 생각하면 늘 그립고 마음이 아프다. 학창 시절에 매일 붙어 다니던 다섯 명의 친구 중 하나다. 얼굴도 예쁘고, 키도 크고, 얼굴에 미소가 가득한 성격 좋은 친구였다.
그 시절 이 친구를 따라다니던, 한동네에 살던 남학생이 있었다. 선비 같은 생김새에 공부도 잘하고 얌전한 문학소년이었다. 둘
참 곱다. 다시 보아도 예쁘다. 눈을 크게 뜨고 요목조목 들여다보아도 신비스럽기도 하다. 겨울이 오는 문턱에서 가을을 노래하던, 여리고 작은 풀잎에 차가움이 서릿발 되어 살포시 내려 앉았다. 마치 영롱한 보석으로 치장한 여인네를 상상하게 한다. 자연의 변화 속에 신비스럽게 만들어지는 아름다운 형상에 사진작가인 필자는 늘 매료된다. 그 시간은 마냥 행복하다.
며칠 전 미국에서 십 년쯤 살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살기로 한 친구를 만났다. 그리고 그녀가 앞으로 지낼 집을 함께 둘러보는데 동행해 주었다. 몇 군데의 집을 살펴보고 나와서 함께 걷는데 주변에 시장과 골목이 있고 갖가지 풍물스러운 것들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친구가 말한다.
“오옷...역시 한국이 좋아, 저렇게 오밀조밀하고 익사이팅한 것들이
폴 포츠 데뷔 10주년 기념 콘서트 공연을 보기 위해 다른 스케줄을 다 포기했다. 하필 그날 스케줄이 5개가 겹쳤다. 오랜만에 미국 바이어였던 친구가 온다 하여 선약을 잡았었다. 또 다른 친구들이 모처럼 용문으로 이사 간 친구 집에 가자며 전날부터 1박2일 코스로 날짜를 잡았다. 동네 수필가 모임에서는 북 페스티벌을 한다며 꼭 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동호회
시골에서 중학교를 함께 다닌 동기동창 상조회 모임을 두 달에 한 번씩 갖는다. 이날은 치매를 앓는 친구를 만나려고 친구 집 가까운 곳으로 장소를 정했다. 20명 친구 중 13명이 모였다.
필자의 친구 중 첫 치매 환자인 셈이다. 언제나 쾌활했고 친구들 간 신의도 남다르게 좋았던 그 친구는 운동도 잘했고 무엇보다도 사교댄스를 아주 잘 추는 실력파 춤꾼으로
필자는 명동을 좋아한다. 서울의 심장부라는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는 젊은 날의 추억이 빼곡히 담겨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대학을 다닐 때도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명동에 나와 노는 시간이 더 많았다.
한때는 겉멋이 들어 사보이호텔 골목의 ‘화이어 버드’나 예쁜 이름의 칵테일 집을 찾아다니며 커피보다 두세 배는 더 비싼 슬로우 진이나 스쿠르 드라이버, 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