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이행, 그것이 사는 길

기사입력 2018-02-05 14:17 기사수정 2018-02-05 14:17

▲기나긴 약속 (백외섭 동년기자)
▲기나긴 약속 (백외섭 동년기자)
전직 상사와 아랫사람 사이 진흙탕싸움이 한창이다. ‘나 살고 너 죽기’이다. 상사에게 토사구팽 당하였다는 하소연부터 아랫사람에게 배신당했다는 분노까지 다양하다. 상사가 다 부려먹은 아랫사람을 자르는 것을 토사구팽이라면 아랫사람이 상사와 등을 돌리는 것은 배신이다. 언뜻 달라 보이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발생한 부산물이다. 추적자와 도망자가 뒤엉켰다. 누가 포식자인지 먹이가 될지 알 수 없다. 관중은 허망한 약속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교훈을 곱씹는다.

토사구팽은 중국 춘추전국시대부터 유래한다. 오월동주로 잘 알려진 월왕 구천은 싸움에 패하여 오왕 부차에게 잡혀갔다. 오로지 복수하기 위하여 와신상담하였다. 부차는 구천을 마지막으로 시험하였다. “사는 길은 부차의 대변을 핥는 것뿐”이라는 충복의 진언을 따른 구천은 호구에서 겨우 빠져나왔다. 목숨을 구한 것이 감개무량하여 ‘너만을 사랑해!’ 하였다. 하지만 구천은 치명적인 굴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심복이 몹시 부담스러웠다. 상전에게 대변까지 먹인 그는 대역죄인으로 몰려 토사구팽 제1호가 되고 말았다.

유방에게 좁쌀 한 움큼으로 호기를 부렸던 한신도 결국 토끼사냥 끝낸 멍멍이 신세가 되었다. 장량은 유방의 사랑을 믿을 수 없어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토사구팽당하여 숨죽이고 살았던 사람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신문고를 두드리면서 ‘자수서’를 내민다. 상전이 볼 때는 상상할 수 없는 ‘배신’이다. 자신이 벌였던 ‘토사구팽’은 기억도 없고 생각하기도 싫다. 오로지 배신에 대한 분노만이 남았을 뿐이다. 이 대목이 한계다. 배신을 탓하기엔 이미 늦었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이와 같은 이야기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대기업에서 재직하다가 거래처 중견기업에 스카웃되었던 친구가 있다. 몇 년 전 “몸무게가 너무 많이 빠지고 잠을 잘 수도 없다.”는 하소연 전화가 왔었다. 막걸리 잔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는 이 회사와의 인연부터 시작하였다. 거래처 소기업 사장은 종종 만날 때마다 회사운영 전반에 대하여 ‘경영지도’를 해주었다. 몇 년 연상이면서 붙임성있게 행동하는 모습이 좋게 보였다. 경영에 어려움을 느낄 만큼 회사가 커지자 친구에게 ‘가족처럼 고락을 같이 하자’고 영입을 제안하였다.

이 대목에서 친구는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켰다. 짙은 회한이 느껴졌다. “대기업에서 반복된 업무보다 새롭게 배우려고 전직하였다.” 하였다. 회사를 몇 배 키우기에 정성을 다하였다. 헌데 손바닥 뒤집듯 하는 사장을 조심하라는 주위의 충고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매출처에는 발이 손이 되도록 비굴하고, 매입처나 종업원에 대한 갑질은 분노를 느끼게 하였다. 회사의 기반이 잡혀가자 친구에게 실현할 수 없는 조건을 제시하였다. 친구가 제풀에 떨어져 나가도록 회사에서 토사구팽 작전을 시작하였다.

사장은 호주머니에 돈이 들어오자 격에도 맞지 않는 사교판을 기웃거렸다. 수준미달 회원이 들어오면 쾌재를 부리는 세상이다. 친구는 불안을 느꼈다. 나를 만나자는 사유였다. “이 정도면 배신할 사람은 넘쳐난다. 아름답게 은퇴를 하라. 산행하면서 건강을 다지는 것이 행복의 시작이다.”고 권고하였다. 친구가 은퇴한지도 상당한 세월이 흘렀다.

약속을 꼭 지켜라. 그래야만 같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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