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민혜 동년기자(한국농어촌공사 창녕지사)
자연친화적이고, 느린 삶에 대한 도시민의 소망은 최근 TV 프로그램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설마 귀촌생활을 낭만적으로만 생각하는 건 아니시겠지요? 보통 귀촌에 대한 의견을 부부에게 물으면, 여자 분이 반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친구도 없고, 놀러갈 곳도 없는 산속 오지에서 어찌 살란 말이오?” 하
충주 땅 변두리 후미진 동네에 사는 너를 찾아간 것은 들판에 황금빛 물결이 일기 시작하는 어느 해 가을이었지. 논에는 벼농사, 밭에는 주로 사과 농사를 짓는 마을. 사과 과수원에는 누런 잎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나뭇가지마다 매달린 사과들은 태양의 후예들인 양 붉은 빛깔로 여물어가고 있었어. 모처럼 찾아온 나를 위해 너는 한 과수원으로 데려가 사과 한 상
현재 한국 농업·농촌에 대해, 이동필(李桐弼·63)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간단하게 ‘전환기’라고 명명했다. 자신의 고향이자 농업 현장인 경상북도 의성군에서 농부로 일하면서 느낀 솔직한 속내였다. 그러나 그는 전환기 속에서 맡은 바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책임을 지고자 한다. 장관 자리에서 물러난 후 스스로 돌아보는 ‘마음공부’ 뜨락에 씨앗을
귀촌 관련 인터뷰 글을 연재하며 다수의 귀촌·귀농인들을 만나봤다. 어떤 이들은 만족을 표했다. 어떤 이들은 고난을 주로 토로했다. 만족을 표한 이들 역시 정착에 이르기까지의 시련 술회하기를 생략하는 법 없었으니, 귀촌·귀농이란 대체로 일련의 애환과 동행하는 장정임을 알 만했다. 과연 시골생활의 활보는 어떻게 해야 가능할까? 조용하고 강인한 고라니처럼 시골살
지구 끝이라니 생각만 해도 멀고 먼 땅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는 말도 있듯이 막상 가보면 그리 멀기만 한 곳도 아니다. 남극 바로위 남아메리카의 칠레와 아르헨티나에 걸친 일부지역을 칭하는 파타고니아라는 명칭은 등산복 브랜드로 더 많이 알려져 있지만, 마젤란과 그의 원정대가 거인족이라고 묘사했던 원주민들
15년 전 둘째 동생의 추천으로 부여에 있는 작은 과수원을 동생과 함께 소유해 오고 있다. 농사일을 하지 못하는 나를 대신해 동생이 주로 힘든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함께 내려가 쉬고 오는 것이 아니라 고생만 하고 오는 농장인 셈이다. 그래도 우리는 가을에 밤과 감을 수확하고 좋은 대추는 추석 차례상에 올리는 재미로 농장을 가꾸어 왔다.
그러던
한 해에만 외국 관광에 나서는 사람들이 13억 명이라고 한다. 비행기 등 여행 수단이 발달하고 소득도 늘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인들이 해외여행에 나서면서 어딜 가나 중국인들이 보인다.
필자가 처음 유럽에 갔을 때가 80년대 초반이었다. 그때만 해도 유럽에서 동양인들을 보기 어려웠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인들을 비롯하여 중국인들까지 가세하면서 어딜 가나
장승(長丞)은 오래전부터 마을의 입구나 경계에 세워져 수호신으로 모시던 민간신앙 조형물이었다. 그러다 불교가 전래되면서 불교와는 무관하던 장승이 사찰의 경계표시나 지킴이로 변모하여 사찰장승이라는 특이한 형태로 자리 잡게 된다.
이러한 사찰장승은 절 입구에 세워 이곳부터 절집이라는 성역 표시와 함께 절을 지키는 수호신이나 호법신 역할을 했다. 경북 상주
도시에 살다 농촌으로 삶터를 옮기는 것을 귀농 또는 귀촌이라고 한다. 농촌을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농사를 지으러 가는 것은 ‘귀농’이고, 고향을 찾아가는 것은 ‘귀촌’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 시골을 찾는 사람들은 농사를 짓기 위해 가는 것보다 여유를 즐기기 위해 이동하는 경우가 더 많다. 또한 자신이 살던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터전을
천국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수많은 종교인은 그렇다고 말한다. 혼수상태에서 죽음의 직전까지 경험한 사람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일부 종교인들은 천국이 바로 현실 세계 속에 존재한다고 믿는다. 전 국민이 일심 단결하여 월드컵 4강의 신화를 이룰 때,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 아침마다 새마을 노래를 틀어 놓고 한마음 한뜻으로 생활할 때, 아이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