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빚고 손끝에서 완성되는 발효의 미학, 그 안에는 세대를 잇는 건강한 맛의 유산이 있다. 2024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장 담그기’를 현대화해 누구나 집에서 쉽게 몸에 좋고 맛좋은 장을 담글 수 있다면 어떨까? “30분이면 장 담그기 끝!”을 외치는 태초먹거리교실을 찾았다.

11월 1일 대전 유성구의 한 강의실에 30여 명의 사람이 모였다. 이들은 ‘태초먹거리’ 이계호 교수(충남대 화학과)의 장 담그기 체험 교실에 참여하기 위해 전국 각지, 심지어 독일에서까지 찾아왔다. 이 교수는 한국분석기술연구소를 설립해 식품을 과학적으로 분석해온 이력이 있다. 그래서일까, 현장의 분위기는 여느 요리 교실과 사뭇 달랐다. 콩을 삶는 구수한 냄새나 메주를 찧는 분주함 대신, 참가자들은 플라스틱 통을 식초로 소독하고 염도계로 소금물 농도를 맞추는 등 사뭇 과학적인 풍경을 연출했다.
✽이계호 교수의 ‘콩으로 빚는 무병장수’ 인터뷰 기사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 10월호와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토종 균이 답이다
이계호 교수는 “오늘 여러분은 단순한 장(醬) 담그기가 아니라 인간의 면역력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장(腸) 건강에 참여하시는 것”이라며 강의를 시작했다. 그는 한국인의 식탁을 지켜온 전통 장은 발효과정의 어려움과 불안정성 때문에 현대 가정에서 점차 멀어졌다고 지적했다.
첫째는 ‘부패’의 문제다. 전통 방식은 볏짚 등에 서식하는 자연균을 이용하는데, 이 과정에서 유익균뿐 아니라 유해균도 함께 자란다. 특히 기후 온난화로 온도와 습도가 높아지면서 유해한 곰팡이가 피기 쉬워졌고, 이 중에는 간암을 유발하는 1급 발암물질인 ‘아플라톡신’도 포함될 수 있다.
고양시에서 유진민속박물관을 운영하는 송지연 관장은 “이전에도 박물관에서 장 담그기 체험을 진행했지만, 곰팡이 피는 문제 때문에 중단했다”며 “유튜브에서 교수님 강의를 보고 곰팡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문적으로 배우러 왔다”고 참가 이유를 밝혔다.
둘째는 ‘시판 장’의 한계다. 현재 시판하는 상업용 장의 80~90%는 일본의 ‘황국균’으로 발효시킨다. 이는 단맛과 감칠맛은 좋지만, 60°C 이상의 열을 가하면 유익균이 모두 사멸하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게다가 시중에는 원가절감을 위해 콩기름을 짜낸 탈지 대두에 염산을 부어 이틀 만에 만드는 ‘산분해 간장(혼합간장)’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발암물질 생성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문제는 과정의 ‘번거로움’이다.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콩을 선별하고 삶아 메주를 만드는 과정까지 30~40일이 걸린다. 이렇게 만든 메주를 씻어 장독에 넣고 소금물을 부은 후 50~60일간 장독을 수시로 관리하며 숙성시킨다. 된장과 간장을 가르는 시점까지 곰팡이를 막기 위해 숯이나 고추 등을 활용하며, 환기와 햇빛을 쬐어주는 등 여간 손이 많이 가는 것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곰팡이가 피거나 구더기가 생길까 두려워했던 것이 전통 방식의 장 담그기다.
이계호 교수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5년간 50억 원의 국가 연구 과제를 수행했다. 목표는 단 하나, 전통 장의 과학화로 대한민국 젊은 세대의 대장암 발병률 1위라는 불명예에서 벗어나기였다. 연구팀은 전국 수천 개의 된장에서 한국 고유의 토종 균(고초균)을 분리해냈고, 이를 특허 등록했다.
고초균의 핵심은 상업용 황국균이 60°C에서 사멸하는 것과 달리 끓여도 죽지 않고 냉동해도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한국 전통 발효 음식의 위대함은 유익균뿐 아니라 콩 단백질이 발효되며 소화흡수율이 95% 이상으로 높아진다는 데 있다”며 “소화가 되어야 면역력이 올라간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저염식을 찬양하는 고정관념에도 물음표를 던졌다. “몸에 좋다고 무조건 저염식을 고집하면 오히려 면역력이 떨어질 수 있다. 아침마다 좋은 간장을 따뜻한 물에 타서 마시면 발효과정에서 생긴 아미노산과 비타민 B군까지 섭취해 피로 해소에 좋다”고 조언했다.

어른, 아이 누구나! 쉽고 편하게
‘태초메주’ 장 담그기 과정은 30분이 채 걸리지 않을 정도로 간단하다. PP(폴리프로필렌) 용기를 식초 물로 헹궈 살균한다. 순도 99.9%의 정제염을 사용해 17% 농도의 소금물을 만든다. 이미 발효·건조된 콩알 모양의 개량 메주를 소금물에 붓는다. ‘누름판’으로 메주가 공기(산소)에 노출되지 않도록 100% 눌러 잠기게 한다. 이는 곰팡이가 필수적으로 필요로 하는 산소를 차단해 ‘부패’를 막고 유익균만 자라는 ‘혐기성 발효’ 환경을 만드는 핵심이다. 이후 실내에 2~4개월간 보관하면 된다.
이날 남편 서인석 씨와 함께 참여한 김현순 씨는 “전에는 장 담그는 데 힘이 많이 들었던 터라, 힘쓸 일을 부탁하려고 남편과 동행했다”며 “전통 방식에 비하면 이건 뭐, 난이도 제로”라며 웃었다.
참가자들의 면면도 다양했다. 이들은 단순한 레시피 습득을 넘어 건강한 발효 음식을 확산시키려는 열의로 가득 차 있었다. 독일에서 이 수업을 듣기 위해 잠시 귀국한 이은미(55) 씨는 “평소 먹거리에 까다로운 편인데, 시판 장과 달리 직접 담근 된장은 정말 맛있고 깔끔했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에서 김치 담그는 수업이 인기가 많다”며, “외국인을 대상으로 수업하기에도 만드는 과정이 간결하고 좋아 보여 배우러 왔다”고 밝혔다.
중장년층에게 한식을 가르쳐온 이력의 김희연(65) 씨 역시 “나이 든 사람들은 간장·된장·고추장의 중요함을 잘 안다”며 “곰팡이 걱정 없이 쉬운 장 담그기로 많은 이와 장 담그는 문화를 잇고 싶다”는 포부를 비쳤다.
이렇게 만든 장은 2~4개월 뒤 간단한 장 가르기 과정을 거친다. 체에 밭쳐 콩(된장)과 국물(간장)을 분리한 뒤 된장은 바로 소분해 냉장 보관하고, 간장은 한 번 살짝 끓여 식힌 뒤 침전물을 거르고 냉장 보관하면 된다.
이 교수는 참가자들에게 오늘의 체험은 단순한 ‘먹거리’ 만들기를 넘어선다고 거듭 강조했다.
“오늘 여러분은 다음 세대에 건강한 사회를 물려주자는 운동에 참석하신 겁니다. 또 작년 12월에 ‘장 담그기’가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됐으니 국제적인 행사에도 참여하신 거고요.”
간편한 과정으로 일상에서 누구나 쉽게 시도할 수 있는 새로운 장 담그기. 우리 장의 과학과 먹거리 철학을 함께 익히는 귀한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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