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길 구간 중에 지하철 4호선 한성대역 인근 혜화문과 창의문(자하문) 사이를 를 백악구간이라고 한다. 이 구간이 도성길 7개 구간 중에 가장 힘든 코스다. 북악산 능선을 타고 넘는 성곽 길을 따라 걸으면서 서울을 내려다보는 전망이 일품이다. 그런데 북악을 넘어 창의문방향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가파른데다가 다리도 풀린 상황이라 매우 위험하다. 내려오면 긴
오전 11시쯤, 아파트에서 내려다보는 주차장. 아직 서 있는 차 주인에게 왠지 모를 친근감이 간다
회사 다닐 때 사용하던 돋보기안경. 백수건달이 된 지금 책상 위엔 하나 더 여유로 뒹굴고 있다. 직장 나가며 갖춰 신어야 했던 구두. 긴 세월 좁은 공간 속에서 일그러진 새끼발톱. 이제는 반달 모양 만들어 주고 싶다.
잠들기와 일어나기가 내 자유. 끼니 때
새 학기를 맞아 환갑 띠 동갑 쌍둥이 손주와 외손자의 입학식이 열렸다. 60년 전 초등학교 입학식이 오늘과 비교되었다. 아이들의 손을 꼭 잡고 ‘친구 잘 사귀면서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랐다.
오전에 쌍둥이 손녀와 손자의 초등학교 입학식이 열렸다. 바로 집과 가까운 학교이지만 눈을 두리번거리면서 잔뜩 호기심에 차있다. 예나 지금이나 새로움에 대한 관심은 같
중학교때, 작문시간엔 일주일에 꼭 책 한 권씩 읽고 원고지에 독후감을 써서 내는 숙제가 있었다. 숙제를 내면, 선생님이 빨간 펜으로 밑줄을 그어 가면서 평을 써 주었는데, 선생님이 평이 무척이나 궁금해서 숙제를 돌려 받는 날이 기다려지곤 했다. 문학을 사랑하는 작문선생님을 만나게 된 덕분에, 문학작품을 많이 읽게 되었는데, 그때 감명 깊게 읽은 작품 중의
김원휘 목사는 독립유공자다. 필자가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그리워 더욱 존경스러운 아버지다.
아버지 김 목사는 갑신정변의 해 1884년 7월 20일 경북 의성군에서 태어났다. 의성군은 안동군과 함께 우리나라 유교의 본고장이고 한학 수준이 높았다. 그래서 어려서는 서당에서 한학공부를 했다. 그러나 밀려오는 신학문의 흐름을 빨리 받아들여 대구에서 기독교 학교에서
오늘날 글로벌 스탠더드는 많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절대적인 스탠더드(표준)라고 무조건 믿지 말아야 한다. 즉 병원에 가면 의사가 처방을 환자에 따라 달리 처방을 하는 것처럼 정확하게 그 나라의 경제상황을 알고 그에 맞는 처방을 내려 경제를 살려야지 세계적인 IMF의 표준이라는 것이 우리나라 경제 현실에 꼭 어울리는 것이 아닐 수도 있음을 항시 생각하라는
동생을 업고 머리에 보따리를 이고 외가에 가는 어머니를 필자는 작은 보따리를 들고 따르고 있다. 그때 필자는 7세 정도 였을까 아직 국민학교를 안 가는 나이였다. 외가에 가면 남의 집 문간방에 외할머니가 혼자 사시고 계셨는데 외할머니는 단아고 조용했다.
외가가 단칸방에서 살아야 할 정도로 어려웠던 이유는 필자의 외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였기 때문이다. 외할
오늘은 골프 유머 몇 가지로 시작해 본다.
- 100 깰 때 필요한 3無 무욕(無慾), 무력(無力), 무념(無念)
- 90 깰 때 무서워하지 말아야 할 3가지 벙커, 미들아이언, 마누라
- 80 깰 때 있어야 할 4가지 돈, 시간, 건강, 친구
- 70 깰 때 버려야 할 3가지 직장, 가정, 돈
- 골프 폼도 좋고 스코어도 좋으면 금상첨화
- 폼은 좋은
‘독립운동가’하면 총칼로 맞서 싸우거나 옥고를 치른 인물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김란사는 유관순 열사의 스승으로 3.1운동을 태동시킨 주역이었다. 고종의 통역관이자 독립의 숨은 공로자였으나 그의 후손조차 활약을 뒤늦게 알 만큼 잊혀왔다.
성차별이 극심했던 조선 말기에 여성해방을 논하고 실천한 여인 김란사는 누구일까?
1872년(고종9년) 평양 출생으로
글 신광철 시인, 작가
나를 지배하려 하지 말고 나에게 자유를 주어라. 내 안에는 많은 길과 많은 말과 많은 단어들이 있다. 자유롭게 뛰어놀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목표에 익숙해져 있다. 목표가 없는 삶은 산 게 산 것이 아니라고 한다. 방향을 잃어버린 것을 방황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인생의 방향은 무엇이어야 할까. 무엇이 되기 위해서, 많은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