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깊은 잠을 원한다. 잠을 못 이루는 불면증은 건강과도 연결되며 성격의 변화도 줄 수가 있다. 그 대처 방법으로 고심 끝에 침대를 바꾸었다. 결과는 현명한 판단이었다.
서로 달리 살아온 젊은 남녀가 만나 부부가 되고, 한방 한 침대에서 영원토록 나란히 자는 일을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신혼의 시절에는 그렇다 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잠자는
일본 엄마들은 정말로 사람을 만나면 항상 웃는 얼굴에 상냥한 마음을 보여주는 얼굴이다. 거기에 잔잔한 미소까지 머금고 있는 표정들이다. 어떤 말이 흘러나올까 몹시 궁금해지는 얼굴이라고나 할까? 물론 가식적일 수도 있겠지만 상대방에게 본인들이 우호적임을 나타내려는 의도라고 보인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나의 일본 얘기들은 내가 살았던 1982년부터 ‘88년
고금석 연극연출가
허망한 소싯적 꿈~
나의 원래 꿈은 외교관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독문학과로 대학 진학을 했던 것이고 1학년 때부터 경제원론이니 법학통론, 정치외교사 등을 두루 청강하였다. 5개 국어를 마스터할 계획도 세우고 첫 방학부터 중국어, 프랑스어 학원을 찾았다. 당시 독일문화원에는 독일 문학이나 시사 문제에 대해 토론하는 대학생 모임이 있
유장휴 (디지털습관경영연구소 소장/전략명함 코디네이터)
팩스가 필요한 상황이 없어지고 있지만 아직도 필요하다
스마트폰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방법은 불편함을 해결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중 하나가 팩시밀리(팩스) 보내기다. 직장을 다닐 때는 팩스가 근처에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불편함 없이 사용할 수 있었지만 직장을 나오면 그 흔했던 팩스를 접하기
휴식을 주는 밤은 아름답다. 밤에 행복한 잠에 푹 빠지는 것은 어떤 보약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요즘 같은 열대야에, 깊은 잠을 취하는 방법을 생각해본다.
불면증은 대체로 자신의 생활습관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잠의 습관은 먹는 음식, 취미생활, 운동 그리고 성격에 따라, 아침 형 인간과 올빼미 형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자신의 일과 습관에
수십 년 건축설계를 하면서 언제나 잠에 늘 허기졌다. 학창 시절에는 끝없이 이어지는 설계과제 때문에 수시로 밤을 새웠다. 건축 작품전을 준비할 때는 몇 달씩 집에 들어가지 않고 써클 룸에서 먹고 자면서 전시 준비를 했다. 건축설계사무실 도제 생활을 할 때도 야근과 철야를 반복했다. 건축설계 사무실을 개업하고 나서는 밤을 새는 날이 더 많았다. 지금처럼 컴퓨
외국으로 선교를 떠나는 젊은 신부님dl 평소 존경하는 노 신부님과 이별하면서 말씀을 청했다. “제가 살아가면서 항상 마음에 두어야 할 말씀을 해 주십시오.” “흠, 제 때 먹고, 싸고, 자는 것이다. 그것이 널 지켜줄 것이다.”
이 세 가지는 살아가면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이지만 리듬이 깨지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주기도 한다. 먹으면 자연스럽게
대학 동창들이 오랜만에 외국으로 여행이라도 가자는 의견이 나왔던 어느 겨울에 일본으로 4박 5일로 계획을 짜서 가게 되었다. 홋카이도 여행이었는데 첫눈이 내렸다. 온천을 즐길 수 있는 숙박 시설에 도착해서 모든 것을 즐기고 난 뒤, 두 명씩 조를 짜려는데 나 보다 한 살 위인 K가 큰 소리로 ‘난 너무 코를 골아서 미승이 하고만 자야해’ 라고 못을 박는 바
연일 30도가 넘는 무더위가 계속되고 아열대 우림기후를 방불케 하는 요즈음 장마철의 환경에서 밤에 하루의 피곤을 잊고 쾌적하게 잠들수 있다면 그건 선물이다.
밤과 낮은 연속된 시간이고 우리의 몸은 매시간 유기적이기 때문에 밤을 낮과 구분지어 생각할수만은 없을 것 같다. 뿐만아니라 필자는 정신과 육체도 구분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정신과 마음상태가 홀가분하
회식하고 오는 길 잠실에서 8호선 전철을 탔다. 일반석 빈자리는 있었지만 경로석은 만원이라 습관대로 문가 기둥에 몸을 기대고 스마트 폰을 보고 있었다. 석촌, 송파 지나 가락시장역에서 승객이 내리고 탔다. 대개 전철은 승객이 내리고 타면 어느 정도의 시간을 두고 문이 닫히고 다시 출발한다
그런데 통상적인 시간이 지났지만 문이 안 닫히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