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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치지 못한 편지] 쓸쓸한 만추의 어느 날 떠나버린 친구에게
-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전할 수 없는 상황이 돼서 마음만 동동 구르는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문을 두드려주셔요. 조환익 한국전력공사 사장의 부치지 못한 편지가 지난해 연말 편집부로 들어오게 됐습니다. 열어보니 가슴이 먹먹합니다.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조환익 한국전력공사 사장 인간의 끝이 없는 탐욕의 수렁으로 인해 빚어지는 이승의 혼탁함 속에서도, 평생 맑게 살다 얼마 전 저 세상으로 떠난 대학 과동기인 제 친구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그 친구는 어느 지방대학 교수이면서 북한학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던 국제정치학 교수였는데, 그간 정부로부터 여러 차례 오퍼를 받았지만 끝까지 강단과 연구실을 지켜온 천생 학자였습니다. 친구는 그의 어머니께서 노산으로 낳은 막내아들로 몸이 약했는데 평생 담배를 염소같이 많이 피더니 결국 60대 중반에 폐암을 얻었고, 힘들게 치료를 해 몇 년 지나 완치가 되었나 했더니 다른 장기로 전이가 되어서 병원에서 몇 달 있다가 한 열흘 전에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저와 몇 명 안 되는 과동기들은 천안의 공원묘지에 가서 그 친구를 전별했고 공원 입구에서 산 자들은 맛대가리 없는 육개장을 한 그릇씩 훌훌 먹고 그를 남겨둔 채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카톡을 통해 그 친구로부터 다음과 같은 편지가 온 것입니다. 사랑하는 친우들에게 먼저 갑니다. 아직 책을 더 써야 하고 그 밖에도 못다 한 일들이 남은 것 같아 아쉬움도 있지만 게으른 천성에 지금까지 살아온 것으로 자족해야 하겠습니다. 새는 죽음을 앞두고 우는 소리가 더욱 아름답고, 사람은 죽음을 맞이함에 그 마음씨가 선해진다고 합니다. 저 또한 보다 조용하고 겸허해지고 싶습니다. 귀거래혜(歸去來兮·도연명)에서 도연명은 국화꽃 피고 술 익는 고향의 전원으로 돌아갔다지요. 저는 아지랑이 피는 봄날, 장다리꽃 위로 노랑나비, 흰나비 날아드는 어릴 때 뛰어놀던 서울 근교의 밭길을 걷습니다. 그 옆으로 이어지는 숲길도 보입니다. 그 너머로 모든 미련이나 원망, 죄의식도 훌훌 털어버리고 가을처럼 높고 푸른 하늘을 지나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한 곳으로 표표히 떠납니다. 인생이 한 조각 뜬구름이라 했거니와, 제게는 또한 한 가닥 미풍과 같습니다. - ○○○ 드림 날짜는 없었습니다. 사후 발송 같습니다. 아마 떠나기 며칠 전 혼수상태 이전에 혼신의 힘을 다해 썼든지 또는 혼미한 상태에서 구술한 것을 가족이 적어놓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간 후에 발송해달라고 가족에게 부탁한 것 같습니다. 저는 발송 경위를 알아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 친구가 하늘에서 보낸 것이라 생각할 따름입니다. 그 편지를 보고 울컥 먹먹해지며, 그 친구가 떠나면서 봤을 것 같은 장면이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습니다. 영화 의 주인공 막시무스 장군(러셀 크로우 배역)이 로마의 사악한 왕에게 비겁한 공격을 받고 죽어가면서 그가 보는 장면입니다. 어떤 좁은 문을 지나 고향의 들판과 아름다운 꽃, 그리고 가족들을 파노라마처럼 보는 것이지요. 아마 동양이나 서양이나 하늘로 떠나는 사람은 고향, 특히 어릴 적 놀던 그곳을 찾아가 보는 것 같습니다. 마음으로 다음과 같은 답장을 했습니다. 자네 말마따나 게으르고 느려터진 친구가 갈 때는 왜 그렇게 성미 급하게 떠났나? 지난 5월 어느 날인가 나도 암수술 후 6개월 정기검진 때 대기실에서 기다릴 때 자네가 마침 이런 문자를 보낸 것 기억하나? “조 사장! 수술 후 회복 잘되고 있으리라 믿소. 나는 지난달에 신우암이 또 생겨 좌측 신장 절제를 했는데 3년 전 수술한 폐암과는 다른 종류인데 모두 담배가 유력한 원인이라네. 항암치료를 다시 시작하면서 한 번쯤 평생 담배 핀 것을 후회해볼까 생각하네. 우리 중고차 잘 유지 보수하며 삽시다.” 이런 내용을 보냈어. 내게 말이야…. 그 후 9월까지 몇 번 문자를 주고받았는데 9월 이후 그렇게 급격히 악화될 줄 몰랐네. 그 성미에 아픈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았겠지만 결국 나는 자네 병문안도 못 가지 않았나? 어차피 우리들도 하나둘 자네 뒤를 따라갈 것이니 자리 잘 잡아놓게. 그때 가서 너무 고참 행세 하지 말고. 그는 천재였습니다. 제가 1969년에 서울대 문리대(지금은 사회대, 인문대, 이과대를 합친 단과대)를 차석으로 입학했는데 이 친구가 하필이면 같은 과에서 전체 단과대 수석 합격을 해서 나는 결국 수석도 못했고 등록금 면제 대상도 안 되게 만든 악연(?)이 있습니다. 그 당시 민주화 세대였던 우리는 극렬한 학생운동 대열에 들어가거나 일찌감치 고시공부를 해서 정부로 들어가는 두 부류가 있었습니다. 민간기업에 취직할 기회도 적었지만 말썽꾸러기 데모꾼 정치학도를 받아줄 회사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제3의 길, 즉 드물게 학문을 하는 먼 길이 있었는데 그 천재는 그 먼 길을 택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운이 없어서 박사학위도 매우 늦었습니다. 그는 그래도 늘 유쾌했고 잡학박사였고 잡담(농아리)의 대가로 이상파와 현실파가 다 좋아하는 뼈 없는(?) 인간이었습니다. 그 친구의 집은 늘 우리의 아지트였지요. 밥도 제일 많이 얻어먹었는데 어머니는 늦둥이 아들 친구라고 정성을 다해 밥상을 차려주었지요. 많은 추억거리가 있지만 그는 어떤 허세나 재주도 부리지 않고 올곧게 학자로만 일생을 살았고, 도대체 건강을 위한 운동이라고는 전혀 안 했고 담배만 열심히 피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던 인간입니다. 언젠가 그가 속한 학회의 회장으로서 국제학술대회를 한국에서 주최하는데 한전에서 조금만 협찬을 해달랬는데, 명분이 약하다고 못 해준 것이 지금 저는 마음에 많이 걸립니다. 요즘 많은 사람이 비슷하겠지만, 저는 매우 우울합니다. 어차피 티끌 같고 미풍 같은 짧은 인생인데, 왜 그렇게 절제 없는 욕망의 화차를 맹목적으로 몰다 온 나라의 전복을 걱정할 정도로 소용돌이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사회의 가장 중요한 바탕이 되어야 할 신뢰가 더욱 아쉬운 이때에, 쓸쓸한 만추의 어느 날 오후에, 주변머리 없이 제 가치를 지키다 맑고 아름답게 간 친구 이야기를 두서없이 적어봤습니다. 부디 모두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아직도 담배 피시는 분들, 이 글 읽고 한 번쯤 금연 시도해보시지요.
- 2017-01-31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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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한 환자 좋은 의사 되기] 간암과 사투를 벌인 바닷가 사내와 암 잡는 방사선종양학 전문의의 라뽀
- 거친 바다 마을 출신의 사내라 해도 이 우주선 같은 치료기는 영 적응이 되지 않았다. 차라리 폭풍우 속 배 위가 더 속 편하지 않았을까. 돌아가는 기계 위에 누워 있으려니 좀이 쑤시고 욕지거리가 나올 것 같았다. 낮은 목소리의 소음은 조용했지만 시끄러웠다. 임재성(林在聲·56)씨는 그래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 기계가 큰 병을 낫게 해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암(癌)이라는 큰 병을 말이다.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사진 오병돈 프리랜서(Studio Pic) obdlife@gmail.com 보통 암이라고 하면 자신의 건강을 과신하던 어떤 사람이 느닷없는 선고에 당황하게 되는 병이라고 생각하고, 실제로도 그런 사례가 많다. 그런데 국립암센터에서 만난 임재성씨는 그에 반해 억울한 구석이 많은 경우다.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주유소 사업을 하던 그는 교직에 있는 아내와 함께 평범한 가정을 평탄하게 꾸려나가고 있었다. 사업은 남부럽지 않을 정도로 유지됐고, 그의 활달한 성격에 주변엔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자녀도 1남 1녀다. 마치 동사무소 입구에 꽂혀 있는 홍보물 표지 사진 속 가족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해도 믿을 정도였다. 이 반짝이는 가족의 삶에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1989년부터다. 별 신경을 쓰지 않았던 건강검진에서 B형 간염에 감염됐다는 결과가 나왔다. 매년 빠짐없이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원래 건강에 자신이 있었어요. 실제로 간염 환자가 겪는다는 식욕부진이나 피로감 같은 것은 하나도 느끼지 못했어요. B형 간염도 어머니를 통해 받은 것이니 크게 동요할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정기적인 검사만 제때 받으면 되겠지 하고 평소처럼 생활했어요. 주변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면서요. 그때만 하더라도 주(主)님이 아닌 주(酒)님을 모실 때였죠(웃음).” 그 시절부터 그는 정기적인 건강검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B형 간염은 까딱하면 간암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경고를 들어왔기 때문에 건강검진만큼은 반드시 지키는 생활을 이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작은 균열은 조금씩 더 벌어지기 시작했다. 2014년 말, 광주에서의 건강검진 결과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간암일 수 있다는 의사의 말. 하지만 그를 더 화나게 한 것은 정기검사 때마다 만났던 의사의 태도였다. “간 상태가 나쁘지 않아서 아직 B형 간염 약을 먹을 단계는 아니라고 했거든요. 그랬던 그 의사에게서 느닷없이 암 진단을받았으니 당황스러울 수밖에요. 그 상황에서 요즘 의술이 좋아져 초기 간암은 치료된다고 이야기하는데 위로가 위로처럼 받아들여지지 않더라고요. 그럴 수밖에 없잖아요?” 당연히 암 선고는 그에겐 충격이었다. 여느 암 환자처럼 그 역시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고, 부정과 분노 등 다양한 과정을 거쳤다. 죽기 전에 손주는 볼 수 있을까, 죽음을 준비해야 하나, 고통은 어느 정도나 될까, 더 괴로워지기 전에 차라리 생을 끝내는 것이 나을까. 말도 안 되는 걱정과 의문들이 그를 괴롭혔다. 심지어 검게 변해 죽어 있는 물고기들이 바닷가로 잔뜩 밀려오는 악몽을 꿀 정도였다. 그렇게 암 선고에 당황해하고 있을 때 처가 쪽 친척으로부터 일산으로 올라오라는 제안을 받았다. 일산에 국립암센터가 있으니 진단이든 치료든 그곳이 가장 정확하고 믿을 수 있는 곳 아니겠냐는 조언이었다. ‘약사님’ 친척의 조언이었기 때문에 의심할 필요도 없었고, 믿어보기로 했다. 그 길로 바로 서울로 향했다. 그러고는 국립암센터의 방사선종양학 전문의 김태현(金泰現·46) 교수를 만났다. 비장의 카드 ‘양성자치료기’ 김태현 교수는 “임재성씨는 간암 환자 중 우리 주위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형태의 환자예요”라고 설명했다 . “B형 간염은 한국 사람들에게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독 한국과 중국 사람들에게서 많이 볼 수 있어요. 이에 반해 일본과 서양인들은 C형 간염 보균자가 많죠. 최근에는 간염 예방 백신의 보급이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그 수가 줄고 있지만, 그래도 B형 간염 보균자는 우리 주위에 적지 않습니다. 이 간염이 우리 몸에 들어오면 염증이 일어났다 나았다를 반복하는데, 이러다 암으로 발전되는 경우가 많아요.” 임씨의 경우 간암 초기였기 때문에 경동맥 화학색전술로 치료를 했는데, 원하는 만큼 예후가 나오지 않아 간암고주파열치료술까지 시도했다. 경동맥 화학색전술은 간 전체에 여러 암세포를 치료할 수 있도록 약을 뿌리는 방식이고, 간암고주파열치료술은 특정 암세포에 고주파를 쬐어 높은 마찰열을 발생시켜 괴사시키는 치료법이다. “문제는 임재성씨의 증세가 다발성(多發性)이라는 것이었죠. 암세포가 또 발생했는데 이번에는 그 위치가 애매했어요. 접근이 무척 어려운 부위라 수술도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양성자치료였어요.” 400억원 넘는 꿈의 치료기 양성자치료기는 CT나 방사선치료기와 같은 ‘의료기기’로 생각하기 쉽지만 ‘의료시설’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국립암센터의 양성자치료기도 장비가 먼저 자리 잡은 뒤에 그 위로 건물이 지어졌다. 지어진 건물 안으로 장비를 넣는 것이 불가능한 규모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의 양성자치료 장비는 가속기 반경이 4km 정도였다. 우주의 기원을 좇는 입자가속기와 유사한 가속기를 통해 수소 원자의 핵을 빛의 속도로 가속시키면 튕겨져 나오는 방사선을 받아 암세포에 쏘이는 방식이다. 의사들에게 이 장비가 꿈의 장비로 불리는 이유는 일반적인 방사선치료 장비와 달리 주변 조직에 미치는 영향이 최소화되기 때문이다. 일반 방사선 장비는 방사선을 투과할 때 암세포 앞뒤의 정상 조직이나 장기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방사선 조사각을 이리저리 돌려 쪼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반면에 양성자치료기는 정확히 암세포에만 조준사격이 가능하다. 주변에 미치는 영향도 훨씬 미미하다. 암세포를 죽인 뒤 몸을 통과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소멸한다. 치료하는 의사 입장에서도 부담이 적은 셈이다. 일반적인 방사선치료가 식욕부진이나 설사, 두통 등의 부작용을 동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립암센터의 양성자치료기는 2007년부터 본격 치료를 시작했고, 지금은 삼성서울병원에 한 대가 더 도입돼 국내에 2대가 운용 중이다. 국립암센터의 양성자치료기 도입 예산은 약 480억원이었고, 삼성서울병원이 밝힌 양성자치료기 도입 예산은 1000억원 선이다. 일반인이 상상하기 힘든 규모의 치료 시설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60대가 안 되는 귀한 장비다. 치료비는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면서, 예전의 10분의 1 수준이 됐다. 암종, 치료기간, 치료횟수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00만~800만원 수준이다. 김 교수는 “최대한 건강한 간 조직을 유지시키는 데 가장 주의를 기울였어요. 임씨와 같이 만성 간변병증이 있는 경우는 낮은 백혈구·혈소판 수치 때문에 출혈이 잘 멈추지 않아 수술을 하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하니까요. 그래도 치료가 잘되어 이제는 더 이상 암세포가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됐어요. 다행이죠.” 암 환자 더욱 위험하게 하는 건 ‘얇은 귀’ 임씨가 양성자치료기를 통해 본격적인 치료를 받은 것은 2016년 2월부터다. 이 과정에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의사들은 가능성과 확률을 이야기하지만, 기본적으로 B형 간염 보균자는 간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하시는 편이 도움이 될 거예요. 우리나라에 이렇게 B형 간염 보균자가 많은데, 그에 비해 경각심은 너무 부족한 것 아닌가 싶어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이와 함께 또 경각심을 가져야 할 곳이 있어요. 바로 언론이에요. 요즘 종편에서 의학 관련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믿어선 안 될 이야기들이 많은 것 같아요. 암 환자는 기본적으로 귀가 얇아질 수밖에 없어요. 마음이 다급하니까요. 이 마음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일부 엉터리 프로그램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그는 주변의 다른 암 환자들과 등산을 하거나 모임을 갖는 등 활동을 해왔는데, 불필요하게 효과도 없는 건강식품에 돈을 쏟아 붓는 사람을 적지 않게 목격했다. 효과가 좋다고 암 환자들을 유혹하는 각종 식품들에 대해 김 교수도 비슷한 의견을 말한다. “흔히 암에 좋다는 음식 중 상당수는 몸에서 분해되는 과정에서 되레 간에 부담을 주는 경우가 많아요. 간암은 간을 보호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인데 간을 쉬지 못하게 만들어요. 그러니 예후가 좋을 리 없죠. 환자가 어느 날 갑자기 간 수치가 나빠져서 오는 경우가 있는데, 결국 원인은 음식인 경우가 많아요.” “그래도 난 운이 좋은 사람” 임재성씨는 그래도 스스로를 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간암이라는 장벽을 만났지만 남들보다 훨씬 수월하게 위기를 넘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비교적 일찍 암을 발견한 것이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덕분에 초기에 치료를 받았잖아요. 또 간암에 효과적이라는 양성자치료기를 알게 되어 혜택을 받았는데, 치료를 받기 직전에 건강보험 적용이 돼서 혜택을 많이 받았어요. 치료 과정에서 임상시험 대상자로 뽑혀 치료비 부담도 줄였고요.” 양성자치료는 아직 모든 암에 적용되지는 않지만 일부 암종을 대상으로 2015년 9월부터 국민건강보험 급여화가 됐다. “워낙에 가무에 능했는데, 이제는 술과 이별을 해서 대신할 만한 것이 필요했죠. 그래서 드럼연주를 시작했어요. 절로 흥이 나면서 즐거운 마음이 되더라고요. 보통 큰 병에 걸리면 주변 사람들에게 왜 신경 안 써주냐, 왜 이건 안 해주냐며 화를 내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자신의 병은 자신이 챙겨야 해요. 스스로 아무것도 안 하면서 몸이 좋아지길 바라면 그게 이뤄지겠어요? 또 이런저런 주변의 유혹에 빠지지 말고 의료진의 진료에 따르는 것이 제일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 2017-01-02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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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돌보기 이렇게 했다]③ “너 자신에게 잘 대해줘라”
-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55년생 양띠, 생일은 2월 24일, 필자와 동갑내기다. 필자의 생일은 55년 1월 7일, 우리 식으로 따지면 필자가 한 달 빠른 형이다. 그는 혁신적인 기술로 개인용 컴퓨터를 개발하고 아이폰을 통해 스마트폰 시대를 이끌었다. 그는 세계를 변화시키며 부와 명성을 얻었고 세계는 그의 프레젠테이션에 열광했다. 그렇게 잘나가던 그가 지난 2011년 10월 2일,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병명은 췌장암. 참 짧은 인생을 살다 떠났다. 필자가 동갑내기인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에 누구보다도 더 공감했기 때문이다. 몇 주 전 필자에게 엄청난 시련이 찾아왔다. 지금까지 건강에 대해 자신해왔던 필자는 2년마다 정기적으로 종합검사를 받았고, 매일 아침 6층 계단을 여섯 번씩 오르내리며 새벽 운동을 했다. 또 주 2~3회는 헬스클럽에 가서 스트레칭도 하고 러닝머신 운동도 꾸준히 했다. 운동을 열심히 하고 의학적인 문제는 종합검진으로 점검하고 있으니 건강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며 휴일도 없이 부지런히 살아왔다. 그런데 몇 주 전 이런 나의 믿음은 완전히 깨져버렸다. 그날 친구들과 설악산에서 모임을 갖고 속초항을 찾아 오랜만에 푸짐한 회식을 했고, 이튿날 아침에 이상하게 속이 더부룩해서 소화제를 한 병 사 먹었다. 그 후 영랑호를 걷고 해변에서 놀다 진부령 넘어 유명한 황태 정식 집으로 갔는데 갑자기 속이 메스꺼우면서 음식이 받지를 않았다. 결국 점심을 거르고 서울로 출발했고 그 무렵 배가 아프면서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8시쯤 집에 도착했을 때는 본격적인 통증이 느껴졌다. 보다 못한 아내가 병원에 가서 간단한 치료라도 받고 잠이나 편하게 자자고 권유해서 11시쯤 응급실로 들어섰다. 엑스레이를 찍어도 별 이상이 없어 약만 처방받고 새벽 2시쯤 집으로 왔는데 통증이 가라않기는커녕 배가 오그라들듯 아파서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 밤을 꼬박 새우고 급기야는 아침 일찍 다시 응급실로 실려 갔다. 그제야 의사들은 CT 촬영을 하고 초음파 검사와 MRI 촬영까지 하면서 통증의 원인을 찾으려고 분주했다. 결국 담낭에서 여러 개의 담석을 발견했고 이미 염증이 생겨 간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판정이 내려졌다. 이틀 후 수술 날짜를 잡고 항생제가 투여되기 시작했다. 의사 말로는 조금만 늦었어도 패혈증으로 진전이 되어 생명이 위독할 수도 있었다고 했다. 아찔했다. 간 아래쪽에서 소화액을 저장하는 곳이 담낭인데 그곳에 담석이 생겼고 문제를 일으켜 염증이 심해진 것이었다. 수술을 끝내고 며칠 후 퇴원을 해서 알아보니 담낭 바로 아래 위치한 장기가 췌장이었다. 수술대 위에서 필자 귀에 들려왔던 기계음 소리를 스티브 잡스도 들었을 것이다. 췌장에서 발생한 암은 생존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고 한다. 인간은 암이 생기는 이유를 찾을 수 없다. 물리적으로도 어찌할 수 없다. 다행히 필자는 담낭에 염증이 생긴 것이고 수술 후 다시 회복해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세상을 떠나야 했던 스티브 잡스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가 병상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오늘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어둠 속 나는 생명 연장 장치의 녹색 빛과 윙윙거리는 기계음을 보고 들으며 신의 숨결이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제야 나는 깨달았다. 내 인생을 통해 얻은 부를 나는 가져갈 수 없다.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사랑이 넘쳐나는 기억들뿐이다. 가족 간의 사랑을 소중히 하라 배우자를 사랑하라. 친구를 사랑하라. 너 자신에게 잘 대해줘라.”
- 2016-12-02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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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 치료에 인생과 재산을 탕진 마라
- ‘암과 싸우지 마라’의 저자 ‘곤도.마코토’는 암 방사선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일본인 의사입니다. 이 책은 암 치료의 밝은 미래를 제시하지 않고 ‘진짜 암’은 결코 낫지 않을 것이라며 암 치료의 희망을 버리라고 말합니다. 암과 싸운다는 상식이 가혹한 치료와 고통을 초래하고 여명을 단축하므로 암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는 의사로서 고백하는 말입니다. 암 치료가 어려운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암 환자의 투병생활이나 가족이 겪게 되는 고초는 직접 겪어보지 않아도 주위에서 많이 보고 듣습니다. 암 치료에 희망을 가지고 온몸을 난도질당하고 맹독성 항암제 때문에 수명이 단축될 위험을 안고 있는 암 치료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파헤쳐 암에 대한 ‘무지’와 ‘오해’를 불식시켜 ‘인생’과 ‘가산’의 탕진을 막고 암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게 하기위해 이 책을 썼다고 저자는 말 합니다. 조선시대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왕들도 평균 수명이 50을 넘지 못했습니다. 왕자의 난으로 권력을 잡은 3대 태종은 폐렴으로 56세에 승하하고 4대 세종은 당뇨병으로 54세에 승하했습니다. 27대 순종까지 60세를 넘긴 왕은 태조 74세, 2대 정종 63세, 15대 광해군 67세 21대 영조 83세, 26대 고종 67세로 총 다섯 분에 불과합니다. 왕위를 찬탈당한 광해군이 67세 까지 오래 산 것은 그의 낙천적인 성격도 한몫을 했습니다. 광해군은 수발드는 사람이 ‘영감’이라고 불러도 묵묵히 참고 받아 넘겼다고 합니다. 임금의 사망 원인이 역사에 기록되어있는데 ‘암’은 아니고 다른 병으로 사망했습니다. 확실히 암은 오래 사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만은 분명 합니다. 임금은 당대 최고의 의사를 옆에 두고 호의호식하고 지냈는데도 수명이 이럴진대 일반 백성들이야 열악한 환경과 굶주림, 심한 노동으로 평균수명이 고작 40세미만이고 60을 넘기는 경우가 드물었기 때문에 만60세가 되면 환갑잔치를 할 정도입니다. 이제 수명100세 시대에 도달한다고 하니 조선시대에 비하면 수명이 2배로 늘어난 것은 분명합니다. 지금은 평균수명이 남녀 간에 차이는 있지만 대략 80세라고 합니다. 평균수명이라는 말 속에는 절반은 80세 이전에 죽지만 절반은 80세를 넘긴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건강하게 움직이며 살아가는 건강수명은 평균수명 보다 짧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80세인데도 아주 건강한 분들도 많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평균수명(81세)까지 살 경우 암 발생률이 36.4%로 남자는 5명중 2명 여자는 3명중 1명이 암에 걸린다고 합니다. WHO산하 국제암연구소의 발표 자료에 의하면 암 사망의 30%는 흡연, 30%는 식이요인,18%는 만성감염에 기인한다고 합니다. 그밖에 직업, 유전적 요인, 음주, 생식요인 및 호르몬, 방사선 환경요인도 상당히 영향을 미친다고 하니 암의 정글에 살고 있는 느낌입니다. 내가 아는 선배의 부인은 췌장암인데 3개월 시한부 인생에서 수술과 민간요법을 병행하여 6개월을 살았습니다. 치료기간 6개월 동안은 집안 식구 모두 지옥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성과 없는 암 치료의 고통 속에서 3개월 더 산 것이 과연 잘한 일이였는지 선배는 지금에 와서야 아리송해 합니다. 주위에 암 환자들을 봐도 너무 늦게 발견했다는 말과 함께 무의미한 치료를 받느라 고통 속에 얼마 더 살다가 저 세상을 가는 분들을 많이 봅니다. 지금은 의료 보험이 발달되어 경제적 지원을 받지만 예전에는 큰 부자도 암 치료에 전 재산을 날리고 자식들에게 빚까지 안겨준 후 결국 죽어나가는 모습도 봤습니다. 암에 걸렸는데 치료가 어렵다고 미리 겁먹고 포기하는 것도 어리석지만 고령의 환자를 치료할 수 없음을 잘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기대로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계속하는 것도 잘하는 치료인가 하는 의문이 남습니다. 암의 종류나 환자의 나이에 따라 치료방법이나 성과도 다 다르다고 합니다. ‘암과 싸우지 마라’ 책을 읽으며 암 치료의 현 주소를 알게 되었습니다. 링거 병 주렁주렁 매달고 수술과 항암제 주사에 의식을 놓아버리고 몇 달 더 살아있을 것이냐 진통제를 맞지만 말짱한 의식으로 사람답게 살다가 몇 달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날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우리는 서 있습니다.
- 2016-10-18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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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과 사람 PART2] '우리에게 책은 무엇인가?' 책의 집, 여백서원(如白書院) 주인 전영애 서울대 교수
- 여백서원(如白書院)의 주인장 전영애(全英愛·65) 서울대 교수에게 “정말 나이가 안 들어 보이신다”라고 말하자 “철이 안 들어서”라는 대답이 웃음과 함께 돌아온다. 어쩌면 이 각박하게만 보이는 세상에, 서원이라는 고풍스러운 세상을 만든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철이 안 든 일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태도는 철이 안 든 게 아니라 자신이 올바른 길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에 실천할 수 있는 일일 수도 있다. 서원에서 확인한 책과 책의 가치에 관한 문답들. 글 김영순 기자 kys0701@ 사진 이신화 여행작가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 걸은리의 여백서원(如白書院)은 말 그대로 책의 집이다. 전영애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가 아버지의 호 여백(如白)을 빌려 와 ‘맑은 사람들’을 위해 만든 이 공간에는 전원의 한적함과 생명력이 함께 어우러지고 있었다. 인터뷰는 늦은 매미 소리가 힘차게 울려 퍼지고 있는 가운데 소장한 책이 몇 권이냐는 질문부터 이뤄졌다. “우와, 책이 얼마나 되나요?” “몰라요. 그런 거 알아 뭐해요.(웃음)” 서원을 통해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다 전 교수는 올해 모교인 서울대에서 20년 동안의 교수 생활을 마치고 은퇴했다. 2009년에 국내 최초로 괴테 시 전집을 번역하고 독일 바이마르 괴테학회로부터 괴테 금메달을 받는 등 독일문학 분야에서 학문적인 업적을 탄탄히 쌓은 그녀에게 아쉬운게 있는지 궁금했다. “늘 그렇죠. 절대적인 낙원이 어디 있겠어요. 이곳도 사람들 보고 숨 좀 쉬라고 만들었지만, 언제나 위협이 있죠. 예를 들면 여기에 조경을 잘 해놓으니까 주변에서는 농사도 못 짓는 땅인데 비싸게 내놓고. 갑자기 수영장 딸린 별장을 짓는다는 등 뭐 그런 얘기들도 있고. 도리 없죠.” 못다 한 걸 물으니 개인이 아니라 서원을 먼저 생각한다. 서원의 완성을 떠올린다. 전 교수에게 여백서원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좋은 사람들이 많이 오세요. 좋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더 바랄 게 없어요. 조경하시는 분도 오고, 을 읽으시고 암 치료 받는 분도 오시고. 그분들 중에 놀라운 분들이 많아요. 세상에 이상한 사람들이 난리 쳐도 귀한 분들이 숨어 있는 거예요. 그러니 처음 만난 사람들이 여기서 밤새도록 얘기하고 그래요.” 전 교수는 만난 사람들에 대해 연신 예쁘고 아름답다는 표현을 거듭했다. 마치 세상을 다시금 발견하게 된 사람처럼. 그녀는 자신이 운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어머니와 할머니가 참 좋은 분이어서 순전히 조상 덕에 잘 사는 게 아니냐며 웃음 짓기도 했다. 귀하게 여긴 책에서 느낀 힘 전 교수는 오래된 보자기에 싸 놓은 책들을 조심스레 꺼내 보였다. 먼저 어머니(김한섭)의 책. 1990년에 작고한 어머니는 학교 근처에도 가보지 않았다. 평생 고생만 한 그 어머니가 필사한 책이 있다. 배움에 대한 욕망이 컸던 어머니는 책이 귀했던 시절, 한지에 책을 베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보고 외웠다. 소설본, 조선시대 가사를 적은 두루마리들이 전 교수의 손에 남았다. 그리고 아버지(전우순)의 책. 서울대 정치학과 출신으로 사업을 했던 아버지는 60대 후반에 등산을 시작해 90세까지 매년 에베레스트를 올랐다. 그의 조부는 소수·도산서원장을 지낸 유학자인데, 250년 전 괴테의 글은 줄줄 읽는 딸이 증조부의 글을 못 읽는 게 안타까워 조부의 문집을 한글로 번역해 1000장의 종이에 붓으로 썼다. ‘91세 우순이 피로 번역하고 쓰다’라고 서명한 번역 작업을 2011년 6시간 반에 걸친 담도암 수술을 받은 뒤 마무리하고 6개월 만에 별세했다. 여백서원에는 괴테의 초간본(1819), 희귀본(1853)을 비롯한 200여 권의 독일문학 관련 서적이 있다. 바이마르 괴테학회 재정 감사였던 홀레씨는 별세하기 직전 다시 전 교수를 식사에 초대했고, 며칠 후 “당신이 갖고 있는 게 가장 좋겠다”면서 항공편으로 자신의 장서를 부쳐 왔다. 홀레씨가 임종을 앞두고 정리를 해서 보낸 것이다. 다들 훌륭한 사회인들인 당신 자녀들도 있는데 홀레씨는 가장 귀중한 책들을 전 교수한테 보냈던 것이다. “그 책들을 누구에게 보내야 가장 귀하게 읽히고 잘 보관될 것인가를 많이 생각하신 것 같았어요. 11일 동안 그 집에 쌓인 수많은 편지를 보고 여러 일화를 들으면서 그의 생애가 얼마나 아름다워 보였던지요.” 여백서원에는 이 책들과 함께 전 교수가 시의 스승으로 모시는 동독 출신 시인 라이너 쿤체의 책, 학문의 스승으로 모시는 헨드릭 비루스 교수의 책, 자신이 쓰고 번역한 책, 교양수업 ‘독일 명작의 이해’를 수강한 제자들이 종강 때 각자 한 권씩 만든 책, 서원에 다녀간 사람들의 책까지 소중하게 간직돼 있다. 전 교수는 여백서원의 존재 이유로 이처럼 좋은 책의 보관과 함께 좋은 사람들의 보존을 든다. 책과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 한국에 대해 알고 싶은 외국 시인 누구에게나 여백서원은 열려 있다. 책이 있는 집, 서원에서 삶의 여백을 찾도록 해주고 싶다고. 힘들면 책을 읽어요 전 교수는 몸이 힘들면 책을 읽고 책을 읽다 머리가 아프면 몸을 움직인다. 그녀는 글을 알면 세계가 열린다고 말한다. 그래서 시험을 보려고 배우거나 출세하려고 배우는 건 너무 불쌍하다고도 했다. “차 한 잔을 마셔도 사람이 가까워지는데 누군가가 온 힘을 기울여 쓴 책을 읽는다는 건 상당히 많이 받는 거예요. 그러면서 남들을 이해하게 되고 그러는 거지. 그래서 나이 먹어서 책을 읽는 것은, 아무 거나 읽어도 좋은 거예요.” 그녀와 괴테의 인연은 남다르다. 어떻게 괴테를 접하게 됐는지 물어봤다. “중학교 때 어디선가 시를 하나 봤어요. 그때는 괴테도 모르고 시 제목도 몰랐어요. 그런데 괴테가 쓴 이라는 만년의 시집이 굉장히 중요하고 정말 어렵거든요. 그 책 한 권을 다 읽으니 끝에 괴테가 그 시집에 넣지 않고 버린 것을 편집자가 넣은 시가 몇 편이 붙어 있었어요. 그런데 거기에 제가 중학교 때 봤던 시가 들어 있는 거예요. 하도 놀라서 중학교 때 읽은 그 시가 어떻게 아직까지 잊히지 않고 기억 속에 남아 있었을까, 그 이유가 뭘까 고민하며 그 시를 분석하는 게 제가 독일의 출판사에서 낸 괴테 연구의 첫 페이지입니다.” 40여 년 만에 다시 만난 괴테의 시 중학교 때 본 시를 다시 보게 되기까지 어언 40여 년이 흘렀다. 그 세월 동안 남아 있는 괴테 시의 힘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괴테 본인이 많은 힘을 거기에 쏟은 거예요. 그게 읽는 사람에게 다가온 거죠. 놀라운 체험이었어요. 괴테는 자기가 경험하지 않은 건 하나도 안 썼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평생 연시를 썼어요. 그렇다면 평생 연애 경험이 있다는 건데, 그게 뭘 저지른 게 아니고 아름다운 글을 남김으로써 그 단계를 넘어선 거예요.” 전 교수는 자연스럽게 예술의 인간적인 한계를 넘어선 숭고한 단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런 괴테가 전 교수에게 어떤 롤모델로 작용한 부분이 있을지 궁금했다. “괴테에게서 탐나는 점이라면 자만이 아닌 자긍심이었어요. 예를 들어 저는 계단을 꼭 뛰어다녀요. 그런 제 모습을 보면 어떤 사람은 스포티하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바쁘다고 해요. 그런데 제가 계단을 뛰어다니는 건 계단을 걷는 게 힘들어서예요. 물론 괴테가 계단을 뛰어다니고 그러진 않았어요. 그런데 그 사람의 생활 태도가 그랬어요. 힘든 게 있을 때 그렇게 극복하더군요. 그게 자긍심이죠. 눌리지 않고 자기 방식으로 극복하는 것. 세상을 대하는 훨씬 더 적극적인 태도죠.” 우리 의젓하게 살자 그녀가 인터뷰 내내 강조한 말이 있다. 나만 힘든 게 아니라 모두가 다 힘드니까, 힘든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말이었다. “자기 분야에서 잘하시는 분에게는 무슨 일을 하든 간에 박수를 치고 싶어요. 힘 안 드는 일이 어디 있어요. 하지만 의젓하게 살아야 해요. 옆도 좀 돌아보고. 애들이에요? 울기만 하면 돼요?” 최근에 흔히 쓰이는 헬조선이라는 말에 대해서, 그녀는 매섭게 비판했다. “우리나라를 헬조선이라 치고, 우리를 누가 여기에 넣은 건가요? 우리가 만든 건데. 금수저, 흙수저… 뭐 어쩌라고요. 형편이 어려운 건 다 알지만 누구나 어려워요. 그런데 승복이라는 게 없고 ‘넌 운이 좋아서 그런 거고 난 재수 없어서 이러고 있어서 너 미워’, 이거 아니에요? 나보다 힘들지만 열심히 사는 사람을 돌아보면 나도 힘을 얻고 그러는 건데 애들처럼 찡찡거려서 되겠어요? 부딪혀서 아프면 자기가 부딪힌 거지 그게 기둥이 때렸어요, 땅바닥이 때렸어요? 자꾸 남 탓하고 여건 탓하는 건 아닌 거 같아요. 그런데 이상하게 정서가 그렇게 가는 것 같아서…. 남 탓하는 건 어마어마하게 잘 하고 자기를 돌아보는 건 못 하는 것 같아서 걱정돼요. 우리 좀 의젓하게 살자고요.” 책이 즐거우면 계속 하고 싶어진다 서원 본관을 둘러보니 그녀의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이 만든 책들이 보였다. 한 학기 교양 수업을 듣고 만든 책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책들이었다. 그녀의 수업은 교재가 없고 시험이 없는 대신, 각자 학기말에 교재를 만들어 내게 한다. 그녀가 갖고 있는 공부 철학이다. “공부는 자기가 스스로 해야죠.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는 것 정도로 제가 잘 가르칠 자신이 없어요. 내 자식들에게도 마찬가지였고. 요즘 부모님들은 어떻게 그렇게 자신이 넘치는지 모르겠어요.” 가끔씩 독자들이 물어보는 말, 손주가 책을 안 읽는데 어떻게 읽게 하느냐는 고민에 대해 전 교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말했다. “세상에! 아이가 책을 읽지 않으려 하면 읽지 말아야죠. 왜 읽어라 마라 해요. 아이는 책 읽는 시간이 즐거우면 나중에도 즐겁게 책을 읽게 돼요. 전 아무리 바빠도 잘 때가 되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줬어요. 아이들도 그 시간이 너무 즐겁기 때문에 책에 익숙해졌어요. 아이들에게 피아노 배우라고 들들 볶으면 아이들은 피아노를 배우는 게 아니라 들들 볶는 걸 배우게 돼서 대대로 들볶게 돼요. 그러나 엄마가 즐겁게 피아노를 치면 애들도 피아노를 치죠. 그걸 왜 억지로 시켜요? 책을 같이 재미있게 읽으세요. 즐거우면 즐거운 시간의 기억을 되풀이하고 싶어지죠. 그런데 즐거운 시간이 안 만들어지니 책과 멀어지는 거죠.” 고서의 향기를 품고 즐거움과 보람은 전 교수가 지향하는 공부법이었다. 그것은 그녀의 자녀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행해졌다. “사람들이 운동이 중요하다는 거 다 알잖아요? 그런데 돈을 내고도 안 하기도 하고. 하지만 운동보다 훨씬 더 중요한 건 노동이에요. 노동을 하면 보람이 있으니까. 그래서 아이들에게 일을 시키는 게 제 주장입니다. 일을 안 시키면 약해져요. 제 아이들이 걷기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시킨 일은 현관에서 냉장고까지 우유를 배달하는 거였어요. 자기가 우유 배달을 안 하면 온 식구가 우유를 못 먹게 되죠. 얼마나 보람 있어요?” 전 교수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을 ‘말도 아닌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녀는 대신 ‘올바른 목적이 있는 길은 그 어느 구간에서도 바르다’는 말을 믿고 있었다. 그러한 마음이 그녀의 삶의 태도를 결정하고 지금 여백서원의 주인으로서 살아가는 삶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나이가 들어가는 마지막 질문에 대한 대답도 그녀다웠다. “나이 들면 얼마나 좋은데요. 저는 젊었을 때도 나이 들기를 소망했어요. 언제나 지금이 좋은 때여서, 두려움 등의 온갖 생각이 하나도 없어요.” 고서(古書)의 기품이 나는 전 교수 같은 분들이 세상에 온전히 남아 있으면 그게 바로 세상이 나아지는 길이 아닐는지. 여주에서 올라오는 차 안에서 내내 ‘말이 서야 나라가 선다’던 함석헌 선생의 문구가 맴돌았다. >>전영애 서울대 명예교수 서울대를 졸업하고, 1996년부터 모교인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지내다 올해 은퇴했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고등연구원 수석연구원, 뮌헨 대학과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대학의 초빙교원을 겸임했다. 2011년 바이마르에서 ‘괴테금메달’을 수상했다. , , (공저), , , , , , 등 60여 권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 2016-09-30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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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식이 만난 귀촌(귀티나는 촌사람)] 충북 보은군 산골짝에 사는 이종원씨
- 테레사 수녀의 통신에 따르면 ‘인생이란,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룻밤’이다. 덧없고 허무한 게 삶이라는 얘기다. 과연 그렇지 않던가? 부평초처럼 떠돌다 허둥지둥 저승에 입문하기 십상인 게 삶이다. 그저 따개비처럼 견고하게 들러붙은 타성의 노예로 간신히 살다가 파장을 보기 쉽다. 어이하나? 저마다 나름의 대책과 궁리가 있을 터인데, 백발의 사진가 이종원씨(72)는 산골로 들어가는 일을 방책으로 삼았다. 내내 도시에서 살았던 그는, 인생의 다양한 골목골목을 편력했다. 공무원으로, 사진가로, 교수로, 언론인으로 뛰며 존재를 돋우길 거듭했다. 때로는 돌부리에 걸려 엎어지거나 뒤집어졌으나, 특유의 깡과 오기를 발동한 나머지 얻은 것도, 이룬 것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이, 마음은 늘 산골의 자연으로 향했다. 나 마침내 산중에 살리라! 그런 작심을 무시로 다지며 근 20년쯤을 고민하고, 모색하고, 탐색했다. 내가 발붙일 곳이 어디냐, 하며 여기저기 국토의 많은 곳을 훑었다는 게 아닌가. 그러다가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에, 마침내 귀촌을 결행했다. 더 미룰 수 없는 결정적인 상황 때문에. 그가 애지중지하는 아내 이현숙씨(70)가 중병에 걸렸던 것. 두 종류의 암에다가 당뇨병까지 겹쳤으니 위중한 형편이었다. 공기 좋고 물 좋은 산골에서 요양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딱히 모아 둔 자금이라는 것도 없었지만 일을 서둘렀다. 그렇게 해서 옴팡지고 외지고 수려한, 충북 보은 땅 팔메실의 산골짝에 둥지를 틀게 되었다. “제가 말이죠, 사진 장르 중에서도 생태사진, 특히 곤충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라는 1시간짜리 영화를 만들어 각광을 받기도 했지요. 그러면서, 생태사진을 실컷 찍으며 살아갈 수 있을 만한 산골을 갈망하고 찾았어요. 그러던 차에 아내가 중한 병에 걸린 겁니다. 뜸 들일 수가 없었어요. 용케 제가 원하던 산골을 찾아냈고, 곧바로 귀촌을 감행했어요. 모든 것을 다 내려놔야겠다는 생각으로, 갖고 있던 방대한 서적과 자료들까지 다 불 질러버리고, 새롭게 다시 태어나야겠다는 심정으로 산골에 들어왔어요. 아내에게 참회하기 위해서였죠.” “그토록 참회할 게 많았어요?(웃음)” “많았죠. 제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지만 무모하게 확 저지른 일들도 많았고, 사기를 당해 곤경에 빠진 일도 있었고, 우쭐대기도 했고, 마누라로서는 참 힘들었을 겁니다. 이제부턴 아내의 병 치료를 위해 순수한 남편 노릇을 해야겠다, 올인해야겠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산골살이를 시작했어요.” “맘먹은 대로 됐나요?” “노력한 만큼의 좋은 결과가 왔어요. 귀촌 이후 제가 살림살이를 도맡다시피 했어요. 가령 밥 짓고 국 끓이는 일을 전담했죠. 세상의 거의 모든 아내들은 남편을 위해 사오십 년을 뒷바라지하는데, 그 노고에 보답해야 하지 않겠어요? 적어도 10년쯤은 남편이 가사와 살림을 맡아 빚을 갚는 게 도리라 봅니다. 여하튼, 산골에 살면서 아내의 건강을 회복시킬 수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언젠가 작가 이외수에게서 들은 얘기가 있다. ‘우리 부부는 부부애가 아니라 전우애로 살았다!’ 아내란 사랑스러워 꽃향기를 뿜기 마련이다. 하지만 서방들은 흔히 교만과 방심을 일삼아 숱한 실수를 반복한다. 급기야 맹숭맹숭한 관계로 추락하거나 왕따를 자초한다. 어쩌면 세계평화보다 구현하기 어려운 게 부부간의 화평이다. 그러나 이종원씨는 귀촌을 통해 부부애를 고양했으니 이게 경사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를 잘 아는 지인들은, 귀촌 이후의 이종원을 두고 이런 논평들을 한단다. 당신, 새사람이 됐구먼. 집 앞 계곡에 수력 발전기까지 설치해 월든 호숫가 숲 속에 살았던 H.D소로는, 강인한 스파르타인의 정신이 아니고서는 산골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투의 얘기를 했다. 사실 귀촌이란 낙원으로의 입장 같은 것과는 다르다.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선 응분의 고군분투가 따라야 한다. 이종원 역시 진땀과 비지땀, 팥죽땀을 쏟아야 했다. 솔바람과 꽃향기 그윽한 산중에서 오붓하게 누릴 수 있을 법한 한가한 풍류나 낭만은 오랫동안 그의 것이 아니었다. 그는 냇물이 돌돌돌 흐르는 산자락 둔덕에 터를 잡은 직후 지프차 안에서 잠을 자며 산골살이를 시작했다. 그 얼마 뒤엔 140만원을 주고 중고 컨테이너를 구입해 거처로 삼았다. “땅은 샀으나 집이 없어서 집을 지어야 했어요. 아내와 함께 컨테이너에서 살며 어떻게 집을 지을 것인가, 궁리하고 설계하고, 나무를 심고 텃밭을 일구고, 그런 뒤에서야 집짓기에 착수할 수 있었어요. 힘든 시절이었죠. 이게 왜 이렇게 됐는가 하면,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어요. 제가 말이죠, 평생 돈 욕심 없이 살았는데요, 그럼에도 일을 늘 저질렀고, 결국은 성사시키고 그랬어요.” “뚝심으로?” “부단히 노력하는 근성으로.” “이곳의 터전은 호방한 맛이 있고, 무엇보다 선생의 집이 보기에 좋아요. 주변의 자연과 소박하게, 겸손하게 조화를 이룬 구색이라서.” “제가 손수 지은 집입니다. 어떻게 하면 가장 좋은 집을 지을 수 있을지, 자나 깨나 연구를 많이 했어요.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자문을 했으나 시원한 답이 나오질 않더라고. 돈을 덜 들이고 좋은 집을 짓는다는 게 사실상 이율배반이라는 걸 알게 되었죠. 그러나 밀어붙였어요. 내 손으로 집짓기의 모든 걸 감당하자는 작정을 하고서 말이죠.” “건축에 문외한이었던 사람이 단독으로 127㎡(38평)짜리 집 한 채를 손수 지은 거예요?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죠?” “소소하게 남들의 일손을 빌린 대목들이 있긴 하지만 거의 저 혼자 지은 집입니다. 미리 뒷산에 올라 나무를 베어다가 말려 기둥을 쓸 목재를 준비하는 일부터 시작했어요. 아울러, 건축 시공 현장을 찾아다니며 부지런히 견학했고, 관련 책자들도 철저하게 독파했죠. 집의 설계 과정에선 아내의 의견을 100% 수용했습니다. 제가 원래 과학적인 성향과 재간이 좀 있는데요, 공부하고 연구한 건축 지식들을 토대로 상·하수도 배관, 정화조 설치, 전기 작업 등등 중추가 되는 공정들을 전부 혼자 해냈어요. 그러다보니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귀촌 4년 만에 착공을 했고, 이후 7년 세월을 이 집에서 만족스럽게 살아왔지만, 외벽 단장이라거나 아직도 미완성된 부분이 남아 있어요.” “집을 지으며 염두에 둔 지향이 있었겠죠?” “에너지 자립형 주택을 짓자는 게 목표였어요. 그게 상당히 성공적으로 구현되었어요. 단열을 철저히 하거나 태양열을 이용해 전력 소비를 줄이자는 것, 차가운 냇물을 끌어들여 냉방을 하자는 것, 그런 것들이죠. 집 앞 계곡에 수력 발전기를 설치하기도 했어요. 아직은 완성되지 않아 가동을 못 하고 있지만, 조만간 가동시킬 작정입니다.” “수력 발전기까지? 놀랍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그렇게 많은 일들을 손수 해치운다는 게 너무 버겁진 않으세요? 그저 적당히 대충 작은 집을 지어 몸 고생을 더는 게 낫지 않나?(웃음)”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 탕진이 많았던 게 사실입니다. 집 짓다가 사람이 죽기도 한다던데, 그게 실감이 나더라고.(웃음) 그러나 뭐든 끝장을 보고서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서 어쩔 수가 없더라고요.” 육체노동으로 스트레스를 풀어 장기간의 노역을 통해 근사한 집을 지은 그는 농사도 꽤 많이 짓는다. 몇 해 전에 구입한 6만6000㎡(2만 평)의 임야에 약초를 재배하기도 한다. 예사로운 힘이 아니다. 집념, 또는 깡. 이종원씨의 내부엔 그런 성분이 가득한 것으로 보인다. 살아온 날들의 굴곡을 정직하게 돌아보고, 살아갈 날들의 꿈과 상상을 실현하기 위해 산골에서 새로운 기반을 닦아가는 사람의 온몸에 박혀 있는, 짱짱한 패기. 그걸 열정이라 할 수 있을 터이니 고희를 넘긴 이종원은 여전한 열혈 청년이다. 나로 말하자면, 이왕지사 인생의 늘그막에 조용하고 평온한 산림에 몸을 들였다면, 누추한 산방에서나마 가급적 한가하게 노닥거리며, 이를테면 휘영청 달 밝은 밤이면 먼 곳의 벗을 불러들여 한잔 착실하게 걸치는 식의 도락을 누리며 느긋하게 사는 게 흐뭇할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종원씨에 따르면, 유유자적이란 가당치 않은 물건이다. “시골생활에서 유유자적이라는 게 가능할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물론 집이나 터를 작게 잡아 살아갈 경우엔 여유를 부릴 수도 있겠고, 사실은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저의 경우처럼 일을 많이 벌인 귀촌자들은 온몸으로 투신해서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게 마련이에요. 그런 상황을 자청해서 뛰어든 사람에게 그게 고역이랄 것도 없고 말이죠. 저는 육체노동을 아주 좋아합니다. 일상의 스트레스를 노동으로 풀고 있어요.” “산골생활의 즐거움이 노동에 있는 거예요?” “제가 말이죠, 일을 안 하면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습니다.(웃음) 그렇다고 일만 아는 일벌레로 오해는 마시라. 저 역시 자연이 주는 기쁨과 행복에 충분한 즐거움을 누리며 사니까. 원했던 일을 실현해 나가고 있다는 성취감! 그게 무엇보다 큰 즐거움이고 말이죠.” “선생께서는 산골에 살며 실컷 생태사진을 찍고 싶다 했어요. 그 점에서도 많은 성취가 있었나요?” “사진가가 사진 작업을 하는 건 날마다 밥을 먹는 일처럼 일상이지 않겠어요? 저에겐 반드시 이루어야 할 일 몇 가지가 있습니다. 귀촌 귀농에 관한 책, 사진이론에 관한 책, 한국의 자연 풍경을 집대성한 도감, 이 세 가지 책을 준비하고 있어요. 이곳에 사진박물관을 만들어 문화적 공간으로 가꿀 계획도 포기할 수 없고 말이죠. 자연 속에서 발견되는 미적 가치를 승화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겁니다.” 박물관까지라니. 웅장한 포부렷다. ‘늙음’은 때로 ‘낡음’일 수 있다. 그러나 안일하고 범속한 매너리즘을 거부한 채, 산골에서 기운 찬 숫말처럼 양양하게 뛰는 이종원씨는 낡음을 허하지 않는다. 아직은 미완인 게 많지만. >> 박원식 중앙대 문예창작과에서 배운 작가. 오랫동안 자연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대상을 좋아할수록 아득해지는 미스터리가 늘 그를 궁리하게 만든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안목을 얻는 일의 요원함을 실감한다. 그가 즐기는 것은 산촌의 적막, 암자의 풍경소리, 낯선 여행지의 선술집, 우연한 만남 등이다. 등의 저서가 있다.
- 2016-09-05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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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山野草 이야기] 장수 마을은 어디에 있을까?
- 에 “고지대 사람은 장수하고 저지대 사람은 수명이 짧다”는 말이 나온다. 실제로 세계의 장수 마을은 파키스탄의 훈자 마을, 러시아의 카프카스 지역, 일본 알프스의 나가노 현(長野縣) 같은 고산지대나 일본 오키나와(沖繩), 전북 순창군, 제주도 등 해안가에 있다. 파키스탄의 훈자 마을은 해발 6000m가 넘는 험준한 히말라야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산소량은 16.5%, 습도 50%로 건강에 좋은 조건이다. 러시아의 카프카스 지역은 해발 4000~5000m의 카프카스 산맥으로 이어진 그루지야,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러시아 지역을 말한다. 일본의 나가노현은 일본 지역 중 남자가 가장 장수하는 지방이고, 2000~3000m 고산으로 둘러싸여 ‘일본의 지붕’이라 불린다. 일본의 오키나와 지역은 일본 지역 중 여자가 가장 장수하는 지방이고, 따뜻한 해안가이다. 우리나라는 2003년 서울대 조사에서 해발 200~600m의 산간 지대와 해안가에 장수 마을이 몰려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나라의 장수하시는 분들을 조사해 보면 남성 장수자는 강원도 산간 마을에 많고, 여성 장수자는 전남 해안가에 많다. 이탈리아의 사르데냐 섬 역시 장수 마을인데, 평균 해발 700m의 산악 지형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사르데냐의 산악지역인 누오로에서는 100만 명당 244명이 100세 이상이다. 그리고 남성 장수자가 여성 장수자보다 많다. 높은 산골에 가서 하룻밤을 자면 남자들은 새벽 발기가 더 잘 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남성들에게는 산이 맞고, 여성들에게는 바닷가가 더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한의학적으로는 음양의 이치가 바로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조깅을 하면 가슴을 움직여 거친 숨을 내쉬는 데 반해, 등산을 하면 아랫배를 움직이며 거친 숨을 내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즉 산을 오르다 보면 산소가 엷어지면서 숨이 가빠지는데, 우리 몸은 이를 보상하기 위해 흉식호흡에서 복식호흡으로 바꾼다. 아랫배가 후끈해지는 복식호흡은 단전호흡이나 단전에 뜸을 뜬 효과를 내서, 머리는 시원하게 하고 아랫배는 뜨겁게 한다. 기본적으로 상열하한(上熱下寒)증을 치료한다. 티베트 수도인 라사로 여행 간 적이 있다. 처음 며칠은 고산 반응으로 머리가 아프고 잠도 제대로 오지 않았다. 차만 타면 멀미와 구토... 그런데 움직이지 않던 아랫배가 며칠 지나면서 저절로 들쑥날쑥 복식호흡을 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고산 반응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이때 위장의 연동운동 또한 활발해지며 소화도 호전되었다. ‘신선 仙’자가 ‘산[山]’에 ‘사람[人]’이 붙어 있는 모양을 한 것은 등산과 고산지대 생활이 복식호흡을 도와서 도 닦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네팔의 셰르파족과 구르카 용병이 고산에서도 뛰어다닐 수 있는 것은 고산에 적응해서 복식호흡이 잘 되어 폐활량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사람이 살기 힘든 척박한 땅에서 고차원 티베트 불교가 융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고산이란 일교차와 바람이 심한 곳이다.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사람은 북극곰처럼 피부가 야물고 단단해야 한다. 천지운기에서는 “중국의 서북지방은 지대가 높고 건조한데, 그 곳 사람들은 추워서 병이 들어도 대부분 땀이 없다”고 했다. 고산 지역 사람들은 주로 붓고 뭉치는 병이 생기며, 땀을 내거나 설사시켜서 치료한다. 고산 지역 사람들은 피부가 단단해져서 몸의 근본 구성 요소인 정액[精], 기운[氣], 정신[神], 피[血]가 잘 갈무리되어 장수할 수 있는 것이다. 고산에는 항암 효과가 뛰어난 약초가 많다. 중국 육상선수단 ‘마군단’과 덩샤오핑(鄧小平 1904~1997)이 늘 복용해서 유명해진 동충하초, 티베트의 4대 약재라고 하는 홍경천, 설련화, 남미 고산의 아가리쿠스 등이 있다. 곡기생이라고 하는 우리나라의 겨우살이도 높은 산의 참나무 윗부분에 기생한다. 이들은 산소가 부족한 곳에서 자랐기 때문에 산소를 잘 빨아들이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세포의 산소 결핍증인 암을 치료하는 효과를 나타낸다. 사람 또한 고산에서는 산소를 더 잘 빨아들이도록 변화하기 때문에, 암에 대한 저항력이 커지고 면역력이 높아진다. 등산을 하면 산소 흡취력을 높여줘서 도시 생활에만 익숙해져 약해진 면역력과 저항력을 키워 준다. 해안가도 장수 마을이 많다. 일본 오키나와, 우리나라 전북 순창군과 제주도가 그렇다. 해안가에 자라는 식물들을 보면 짜고 강한 해풍을 맞고 산다. 짠맛은 생명체 속의 물을 빼앗아서 말라죽게 하고, 강한 바람도 생명체 속의 물을 증발시켜 말라죽게 한다. 해안가 식물들은 이런 생태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을 개발했다. 바람을 이기고 물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동백나무처럼 잎 표면이 코팅 처리(큐티클 층)되어 있거나, 수분을 많이 머금기 위해 다육식물로 변하거나, 퉁퉁마디처럼 물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염분을 머금고 있다. 사람도 비슷하게 해풍에 대응한다. 해안가 식물이 물을 빼앗기지 않도록 진화하듯, 해안가 마을 사람들은 정액[精], 기운[氣], 정신[神], 피[血]를 잘 갈무리하도록 진화한다. 그래서 피부가 더 억세지는 것이다. 해조류(미역, 김, 파래, 톳, 다시마)가 물을 정화하는 힘은 인체 내에서는 피를 정화하는 힘으로 나타난다. 해조류는 혈액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항산화 물질이 많아 LDL 콜레스테롤은 낮추고, HDL 콜레스테롤은 높이며, 고혈압을 내리고, 미네랄을 공급해 준다. 그리고 식이섬유가 많아 대변을 잘 보게 해서 독소를 배출한다. 그래서 해조류는 심혈관계 질환의 예방과 치료에 좋다. 일본 오키나와와 전남 바닷가, 제주도가 장수 마을로 유명한 것도 해조류의 영향이 크다. 고산과 해안가가 모든 사람에게 좋을 수는 없다. 그렇게 척박한 곳 사람들이 장수한다는 것은 척박한 환경 때문에 약한 사람은 살아남지 못했고, 강한 사람들만 살아남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심장이 약한 사람은 고산에서 적응하기 전에 병이 심해질 수 있고, 피부가 약한 사람은 해안가에 적응하기 전에 해풍과 자외선에 큰 병이 생길 수도 있다. 고산과 해안가가 장수에 좋다는 것은 어느 정도 면역력, 적응력이 있는 사람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예방 주사가 좋지만, 너무 약한 사람에게는 무리이듯이 말이다. 따라서 해발 고도를 완만히 높여 가거나, 해풍이 적당한 곳에서 적응하는 것이 좋다. >> 최철한(崔哲漢) 본디올대치한의원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본초학교실 박사. 생태약초학교 ‘풀과나무’ 교장. 본디올한의원네트워크 약무이사. 저서:
- 2016-08-26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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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니어 리포트①] 늙지 않는 여성들의 습관
- 이태문 일본 통신원 gounsege@gmail.com ◇ 몸에게 묻는 것이 건강관리의 기본 마에다 비바리(前田美波里·영화배우, 1948년 가나가와 현 출생) 더위를 모르고 여름을 무척 좋아하는 마에다 비바리는 이전 주목받았던 화장품 광고 이래 5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젊고 탄력 있는 몸매와 촉촉한 피부를 유지하고 있다. “언제 어떤 역할이 올지 모르기 때문에 어떤 동작도 소화할 수 있도록 늘 몸을 다듬어 놓는데, 피아노의 조율과 마찬가지이다. 여배우로서 건강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여진다는 걸 항상 의식해 몸 만들기에 신경을 써 왔다. 무대에서는 모든 각도에서 사람들이 보기 때문에 어디서 보더라도 좋게끔 해 두고 싶다. 나아가 반듯한 몸에는 제대로 된 정신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면서 몸을 만들고 있는데, 특별한 것은 하고 있지 않다. 해야 할 것만 하고 있을 뿐이다.” 특별한 것을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매일 습관처럼 하는 노력은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 이상 정성을 기울인다고 하겠다. “아침에 눈 뜨면 먼저 전신 ‘임파(淋巴) 체조’를 10분, 그 뒤로 온천물을 데워 한 잔 마시는 게 일과이다. 그러고 나서 천천히 신문을 읽고, 아침을 먹는다. 주로 채소 샐러드에 빵과 삶은 달걀 한 개. 그리고 머그컵에 커피를 붓고 코코넛 오일을 우유를 넣어 카페오레로 마신다. 달달한 과자를 군것질로 곁들여. 몸을 깨우는 데는 아침 식사가 중요하다.” 비 바리는 작년 가을 비 오는 날 비탈길에서 미끄러져 어깨를 골절했다. 그때 뼈가 붙자마자 재개한 ‘에고스큐(egoscue) 체조’가 빠른 회복에 크게 도움이 됐다. “시작한 지 4년 반쯤 되는데, 아침 식사 후 30~40분 에고스큐 체조를 반드시 한다. 근육을 자극하고 단련해 똑바로 움직이고, 몸의 비틀림을 바로잡는 운동이다. 몇 년 전부터는 되도록 차를 이용하지 않고 걷는 생활을 하고 있으며, 1주일에 한 번 수중에어로빅도 하는데 물의 저항이 몸에 좋다. 내부근육도 단련되고, 달랑거리는 팔의 살도 금방 없어지고…” 울퉁불퉁 근육질의 여성스럽지 않은 몸은 아름답지 않기 때문에 기계를 이용한 트레이닝은 하지 않는다. 어떤 운동이 몸의 어느 부분에 효과가 있고, 어떤 결과를 가져다 주는지 이미 파악하고 있다. “오랫동안 여러 가지 운동을 하면서 연구해 왔는데, 이게 나의 재산이다. 허리가 아프다는 연기자나 스태프가 있으면 내가 가르쳐 주고, 나 자신도 한 달에 한번 에고스큐 선생님과 상의해 새로운 메뉴를 지도 받는다.” 운동 이외에 아름다움과 건강 유지에 도움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건강보조 식품과 효소, 온천물 등을 함께 일하는 동료 배우와 친구들이 추천한 게 많은데, 괜찮다고 생각 들면 먹어 보고 자신에게 맞으면 받아들여왔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라는 것은 없다. 수십 년 계속 먹어온 건강보조 식품도 무대 공연으로 피곤할 때는 좀 많이 먹는다든지 그날그날의 몸 상태에 맞게 양을 조절한다. 그렇다고 건강보조 식품에 의지하는 삶은 싫다. 자신의 건강은 자신이 지키는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손발이 찬 체질이라 몸이 차가워지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는데, 에어컨은 되도록 쓰지 않고 여름에도 샤워만 하는 게 아니라 탕에 들어가 여유 있게 기분전환을 한다.” 욕탕에는 수소 거품이 발생하는 걸 넣어서 수소를 흡입하고, 수소수 물로 머리를 감고, 목욕탕에서 나와서는 바디오일을 바르고 침실은 향수를 뿌리기도 한다. 바닐라, 망고 등을 좋아하는데, 맘이 차분히 가라앉고 잠도 잘 온다. “자기 몸에 물어보고, 좋다고 생각하는 걸 계속 해 가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본다.” ◇ 어떤 명의도, 명약도 수면 부족에는 진다 유카와 레이코 (湯川れい子·음악평론가·작사가, 1936년 도쿄 출생) 지난 1월 80번째 생일을 맞이한 유카와 레이코는 지금도 아티스트 취재로 국내외를 돌고 있으며, 집필활동 외에도 합창단의 멤버로서 노래하는 등 “지금이 내 인생 중 가장 바쁠지도 모르겠다”며 팔순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바른 자세와 환한 웃음을 잃지 않는다. 음악가를 양성하는 ‘스쿨 오브 뮤직 전문학교’의 명예 교장이기도 한 그녀는 삿포로, 센다이, 도쿄, 나고야, 오사카, 후쿠오카에 있는 학교를 돌며 졸업식과 입학식에 6번 참석해 인사를 했다. “연설은 내가 1년간 일을 제대로 했는지 안 했는지를 실험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살아 있는 음악정보를 말하는 거야말로 젊은 학생들의 마음에 스며들지, 과거의 추억담을 얘기하면 전혀 울림이 없다. 그래서 내년에도 학생들 마음에 와 닿는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올 한 해도 더욱 열심히 해야지 하고 생각한다.” 올해 아티스트 취재로 호주와 영국에도 갔다 왔으며, 개인적으로는 한 달에 한 번 4인조 코러스 그룹 ‘스완시스터즈’의 연습에 본인이 단장을 맡고 있는 가스펠 그룹 ‘도쿄여자합창단’의 단원으로서 동일본 대지진 부흥 자선콘서트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음악평론가와 작사가 이외에도 라디오 DJ를 하거나 젊은 사람들을 응원하고 노래하면서 환경과 평화와 관련된 문화활동도 소화하는 등 한마디로 사방팔방 종횡무진 대활약중이다. “샐러드도 상추만으로는 질리고, 여러 가지 채소가 들어 있으면 맛있듯이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여러 가지 일을 하면 다채롭고 풍부한 삶이 더 즐겁다고 생각한다. 또 늘 앉아서 하는 일의 피로가 노래함으로써 풀리고 위안을 받는다. 자신의 몸과 마음의 목소리를 듣는다면 누구든지 할 수 있다.” 21살 때 급성복막염 수술을 받을 때 수혈로 인해 C형 간염에 감염. 병명을 알게 된 것은 1989년 53세 때이다. 하지만, 감염이 판명되었지만 치료약이 개발되지 않아서 의사는 C형 감염 환자의 87%가 간경화에서 간암이 된다며 아무도 도와줄 수 없으니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라고 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으니 의사는 술 마시지 말고, 과로하지 말고 적당한 운동을 할 것을 권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충분히 잠을 자라며 어떤 명의도 명약도 수면 부족을 이기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수면이 부족하면 면역력도 저항력도 떨어진다. 그 뒤로 하루에 적어도 8시간은 잠을 자도록 하고 있다. 사실 60대 중반에 건강진단을 받고서 췌장암과 간암이 발견됐었다. 의사는 더 크면 위험하니 수술하자고 했지만 안 했다. 불안은 있었지만, 나이 들수록 어딘가 나쁜 곳이 나오게 되는 법인데, 나는 병과 싸우는 게 아니라 면역력을 높여 병과 공존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뒤로 더욱 수면과 식사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결국 규칙적이고 바른 생활이 몸을 지켜준다고 믿게 됐다.” 공연 취재와 지방 강연회 등으로 바쁘더라도 전날 1박 하는 식으로 7~8시간의 수면을 확보하고 있다는 유카와는 “잠이 안 오거나 도중에 깰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눈을 감고 어쨌든 자는 상태를 유지한다. 안 자더라도 누운 상태만으로도 수면 중의 3분의 1 정도 체력이 회복이 된다고 하니까. 생각하기 시작하면 뇌가 쉬지 못하니까 잠이 안 올 때는 침대 위에서 호흡법을 한다. 단전 아래 3㎝ 정도 떨어진 곳을 의식해 코로 숨을 쉬고 천천히 길게 입으로 내뱉으면 잡념이 없어지고 뇌가 빈 상태로 되는데 그대로 자연스럽게 잠이 든다”며 “해외로 나갈 때도 마찬가지다” 고 밝혔다. “식사를 하면 위장이 움직이고 몸이 활동 모드에 들어가기 때문에 비행기 안에서는 거의 안 먹는다. 탑승하기 전에 와인 한 잔 마신 후 호흡법을 하면서 마냥 수면을 취한다. 그러면 긴 장거리 비행에도 피로가 안 쌓이고, 시차도 없다.” 60세쯤부터 부교감 신경을 자극해 면역력을 높이는 호흡법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있는데, 잠이 오지 않을 때뿐만 아니라 전철 안 혹은 책상 앞, 자기 전에도 꼭 한다. “수면과 호흡법 덕분에 암이 없어지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크지 않고 있다. 호흡법은 언제 어디서든지 누구나 할 수 있다. 요즘에는 등골과 관절 등을 움직여 뼈에 적당한 부하를 거는 ‘뼈 호흡 체조’를 한 달에 한 번꼴로 도장에 다니며 지도를 받고 있다. 뼈를 강화해 주고 비틀림을 고쳐주고 대사를 촉진해 준다.” 연예계가 남성 중심의 경쟁 사회라 싫은 일도 많고 낙담하는 경우도 있는데, 고민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오늘 일은 오늘로, 싫은 것들을 내일로 가져가지 않는 게 중요하다. 침대 위에서 호흡에 집중해 푹 자고 나면, 다음 날 기분 좋게 눈 뜨면 그럼 오늘도 파이팅! 하는 힘도 생기고, 문제 해결의 실마리도 떠오른다. “끙끙거리고 우울할 때는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다. 낙담하는 감정은 좌뇌로 거기에 음악의 템포를 부여하면 자동적으로 우뇌가 우선이 되면서 좌뇌의 고민을 잊을 수 있다. 걷는 것도 스트레스 해소가 되니까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리듬에 맞춰 걸으면 그 효과는 몇 배 커질 것이다.” 몸과 마음의 젊음은 음식이 정한다 ◇ 우에키 모모코 (植木もも子·관리영양사·국제중국의사·국제중국의약요리관리사, 1953년생) 젊고 똑똑하고 즐겁고 건강하게, 이것이 삶의 주제라고 말하는 우에키 모모코는 서양의 영양학과 동양의 한방학 모두를 섭렵한 전문가로. “늙지 않기 위해서는 식생활을 고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자신이 스트레스에 약한 체질을 알고 평소의 식사습관을 고치고 건강을 되찾았다고 한다. “사람은 저마다 타고난 체질이 있어서, 생활습관에 개인 차이가 생긴다. 나이 들수록 그 차이는 커지기 때문에 자신의 몸과 마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동양의 한방의학에서는 인간의 몸은 기(氣), 혈(血), 수(水) 세 가지 요소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데, 나이 먹으면 그 균형이 깨지기 쉽고, 몸의 이상이 생기는 원인이 된다. 이 상태로 두면 몸의 노화가 빨라지기 때문에 방심은 금물이다. 기는 영양과 피, 수분을 몸 구석구석에 옮겨준다. 생명 활동을 행하는 에너지, 기가 부족하면 체력이 떨어져 제대로 보충하는 게 중요하다.” 건강의 근본이 되는 기를 보완하는 식재료는 닭고기, 고등어, 양배추, 산마, 꿀 등. 체력은 물론 기력이 저하됐을 때 추천할 만하다. “적당한 운동도 필요하다. 몸을 움직임으로써 피의 흐름이 좋아지고, 또한 운동으로 땀을 흘리면 체내에 쌓인 여분의 수분과 노폐물이 배출될 수 있다. 덥다고 냉방기를 틀어놓은 실내에서만 지내면 물의 순환이 나빠지며 발이 붓고 관절통 등의 증상도 나타난다. 여름에도 샤워만이 아니라 따뜻한 물에 몸을 담가 적절히 땀을 흘리고, 음료수와 음식도 따뜻한 걸 권하고 싶다. 기, 혈 수가 잘 돌도록 하는 생활을 계속해 나가면 몸도 마음도 활기차고, 더위도 먹지 않는다.”
- 2016-07-29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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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경궁의 추억
- 창경궁에서 숲 해설과 왕실 역사 강의가 있다 하여 갔다. 그런데 창경궁을 창덕궁으로 잘못 알고 갔다. 종로3가에서 내려 돈화문 쪽으로 10분 정도 걸었다. 입장료 3000원을 내고 창덕궁에 들어갔으나 창경궁은 창덕궁 안쪽으로 가서 다시 표를 끊고 가야 한다 하여 대략 둘러보고 바로 나왔다. 시간이 늦어 빨리 가야 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 담장을 끼고 원남동 정문인 홍화문으로 갔다. 담장이 꽤 길었다. 빠른 걸음으로도 20분 정도 걸렸다. 원남동로터리가 보였다. 전철역이 멀어 교통이 불편한 곳이다. 이곳에서의 추억은 보신탕에 얽힌 얘기이다. 필자가 군 입대를 1년 미루는 바람에 친구들 군대 송별회를 필자가 다 해주었다. 그러나 막상 필자가 군 입대를 할 때에는 모두 군에 있어 송별회도 제대로 못 받고 입대했다. 그래서 필자가 제대할 때 친구들이 대대적으로 신세를 갚는다며 부른 곳이 원남동로터리 보신탕집이다. 그 당시 원남동로터리에 보신탕집이 몇 군데 있었다. 인근 동성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가 잘 안다며 데려간 곳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때 보신탕이 처음이었다. 전골로 나왔는데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 깻잎만 건져 먹었던 기억이 난다. 이때의 경험 덕분에 나중에 중소기업 공장장으로 스카우트되어 일할 때 도움이 되었다. 기존 임원들이 젊은 공장장 기를 죽이자며 경기 성남시의 보신탕집에 데려 간 것이다. 두 번째 보신탕을 대하는 자리이므로 보신탕이 낯설지 않았다. 너무 맛있게 잘 먹으니 젊은 사람이 보신탕을 잘 먹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공장장이었으므로 여름 피크시즌이 지나면 생산부 전원이 인근 개울가에서 보신탕을 끓여 먹으며 노는 야유회에도 가야 했는데 거기서도 같은 칭찬 들었다. 창경궁의 추억은 필자가 군에서 제대한 바로 다음 해인 1976년에 이어졌다. 보신탕 덕분에 창경원을 생각해 낸 것이다. 복학하고 나니 1,2학년 여자 후배들과는 세대 차가 나서 같이 못 놀고 3,4학년 여학생들은 이미 임자가 있었다. 그런데 군 입대 전 가깝던 동아리 여자 후배가 근처 유치원에 배치받아 일을 하고 있었다. 몇 번 만나니 정도 들었는데 같이 창경원 밤 벚꽃놀이를 가게 된 것이다. 인파는 북적이고 흙먼지가 날려 분위기는 부산스러웠다. 그 여자 후배는 사실 집안에서 어릴 때 정해준 약혼자가 있으며 결혼하게 되면 시골로 내려가서 살 예정이라고 했다. 시골 내려가기 싫어 마음이 움직이던 중 필자가 나타난 것이다. 그 당시만 해도 일반전화를 사용할 때라서 전화할 때마다 원장이 받았다. 나랑 데이트하는 것을 눈치 챈 원장이 불러 제자리로 돌아가라며 조용히 타일렀다고 한다. 그래서 밤벚꽃놀이 하는 날 이별장을 받은 셈이다. 세 번째 추억은 어렸을 적, 창경원에는 동물원이 있었다. 주사가 심한 아버지를 치료하기 위해 어디서 호랑이 똥이 술 끊는 데 효과가 있다 하여 어머니가 여기서 어렵게 호랑이 똥을 구해 오셨다. 연탄불에 대야를 얹고 호랑이 똥을 태워 가루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가루를 걸러 그 당시 귀하던 양주병에 소주와 함께 타서 진열장에 놓아두었다. 조니 워커 병에 든 빨간 술이 보기에도 좋았다. 그걸 드신 아버지는 여전히 주사가 심했고 같이 드신 작은아버지는 그 후로 이상하게 술이 안 받는다며 효과를 보였다. 그러니까 40년 만에 창경궁을 다시 가보게 된 것이다. 원남동로터리를 지나니 맞은편에 서울대 치과대학 건물과 암병동이 보였다. 창경궁 입장료는 1000원으로 창덕궁에 비해 쌌다. 화창한 봄날에 예쁘게 한복을 차려 입은 젊은 처녀들이 많이 보여 예뻤다. 알고 보니 근처에 1만5000 원 내외로 한복을 대여해주는 곳이 있다는 것이다. 들어서자마자 그 옛날 그렇게 많던 벚꽃나무를 찾아 봤으나 안 보였다. 어찌 된 일이냐고 물으니 벚꽃나무들은 서울대공원과 여의도 등지로 옮겨 심어졌다는 것이었다. 창경원은 원래 창경궁이었으나 일제가 왕실 권위의 훼손 목적으로 다수의 건물들을 허물고 동물원, 식물원을 짓고 벚꽃나무들을 대량으로 심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1909년부터 서울 시민들의 관광명소가 되었으나 역사 되찾기 운동의 일환으로 대대적인 변화가 있었다. 1986년 식물원은 그대로 두었으나 동물원을 서울대공원을 옮기고 다시 창경궁으로 원 이름을 찾게 되었다. 창경궁은 음식물 반입이 안 된다. 숲속의 그늘이 조용한 데이트를 즐기기에 좋아 보인다. 나와서 북쪽으로 20분쯤 걸어가면 혜화역과 대학로가 나온다. 저녁식사 겸 맥주 한 잔 하기 좋은 코스이다.
- 2016-06-24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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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되는 이야기] 골든 에이지를 위한 영양제 요법(3)
- 영양제에 관해서 대중이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오해가 바로 영양제는 몸에 좋은 것이기 때문에 약과 달리 잘 챙겨 먹을수록 좋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특히 평소에는 영양제에 대해서 관심이 전혀 없던 사람들도 병을 앓거나 앓고 나면 건강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영양제를 챙겨 먹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과연 모든 영양제가 언제든지 많이 먹어도 좋은 것일까? 질환의 종류에 관계없이 몸에 좋은 영양제라면 다 챙겨 먹는 것이 어떻든 도움이 되는 것일까?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 영양제도 각기 역할이 있는 만큼 전략적으로 먹어야 한다. 앓고 있는 질환에 따라 도움이 되는 영양제도 있고, 거꾸로 질환을 악화시키는 영양제도 있는 것이다. 이번 호에서는 많이 알려진 질환들을 대상으로 도움이 되는 영양제와 오히려 해가 되는 영양제를 살펴보기로 한다. 암 일반적으로 암환자들에게는 정통적인 치료법 못지않게 각종 영양제와 몸에 좋다는 건강식품의 유혹이 많다. 암세포는 분열 속도가 폭발적이기 때문에 환자의 영양상태가 좋든 나쁘든 간에 똑같은 영양소를 뺏어가므로 암에 걸렸을 때는 체력의 유지와 원활한 치료를 위해서 고영양 식사가 필요하다. 하지만 모든 영양제가 다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엽산 엽산을 복용하면 암으로 발전하기 쉬운 선종성 용종의 발생을 줄여 대장암, 직장암이 적게 발생한다고 밝혀져 있다. 먹는 피임약을 복용하는 여성이 엽산을 고함량 복용하면 자궁경부이형증이 덜 생긴다고 알려져 있다. 또 음주로 인한 여성의 유방암 발생률을 낮춘다고 알려졌다. 음식 중의 엽산은 단백질이나 당과 결합되어 있어서 몸에 흡수되기 어렵기 때문에 영양제로 보충할 것을 권장한다. 칼슘 대장암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직장암에 대한 예방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칼슘을 충분히 섭취하면 대장의 용종이나 선종성 용종을 감소시키거나 재발을 억제하고 또한 이 대장암에 걸릴 가능성을 50%까지 감소시킨다는 보고가 있다. 비타민D 폐경 이후 여성들이 칼슘과 비타민D를 같이 복용했을 때 암 발생률이 60% 감소했다. 칼슘만 복용했을 때보다 효과가 더 우수했으므로 비타민D가 암 발생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본다. 카로틴 베타카로틴이 풍부한 음식을 먹으면 유방암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베타, 알파 카로틴은 폐경 이후 여성의 난소암을 예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 흡연자가 베타카로틴을 많이 섭취하면 오히려 폐암 발병률이 높아지므로 주의해야 한다. 비타민E 비타민E는 활성산소가 세포를 공격하는 것을 억제하고 소화기관 내에서 니트로사민 같은 발암물질이 생기지 않게 한다. 또한 면역기능을 활성화시켜 암 예방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타민E를 보충하면 자궁경부암을 예방할 수 있으며 대장암이나 폐암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보고되었다. 또 비타민E 200IU를 10년 이상 복용하면 방광암으로 인한 사망률이 감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셀레늄 항산화 미네랄인 셀레늄은 암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직장암, 식도암, 위암에 대해서는 아직 증거가 부족하고, 폐암, 전립선암, 피부암 등에 대한 효과는 부정적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항산화 효과는 높지만, 아직 임상적으로 각종 암에 대해서 얼마나 유효하게 억제효과가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은 편이다. 당뇨병 당뇨병의 치료에 관해서도 알려진 민간요법이 수백 가지가 넘는다. 각종 약초에서부터 닭의 쓸개까지, 정말 많은 식품들이 추천된다. 하지만, 당뇨병 자체가 과도한 영양으로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에 무분별하게 영양제를 복용하는 것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식이섬유 여러 연구에서 차전자피, 구아검, 펙틴과 같은 식이섬유가 혈당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밝혀져 있다. 특히 식사 후에 당분이 흡수되는 것을 늦추어 혈당이 상승하는 것을 막는 효과가 있다. 혈액 중의 총 콜레스테롤과 LDL(저밀도 지방 단백질)을 낮추는 효과가 있어 당뇨 환자에게 발생하기 쉬운 고지혈증도 개선한다. 차전자피의 경우 식후 혈당이 14~20%, 총 콜레스테롤은 9%, LDL은 13%나 감소시켜 준다. 식후 혈액 중의 인슐린 농도도 낮춰 줘 대사증후군이나 성인병의 주된 원인인 인슐린 저항성도 감소시켜 준다. 이외에도 체중 감량에 도움이 되고 변비나 과민성대장증상등을 개선하는 효과도 있어 여러 용도로 추천된다. 크롬 인슐린의 감도를 높여 혈당을 낮추며 고지혈증을 개선하는 효과도 있다. 일반적인 당뇨병뿐 아니라 당뇨병 전 단계인 고혈당증, 임신당뇨, 스테로이드 복용으로 인한 당뇨에도 효과가 있다. 당뇨약을 복용하는 사람의 체중 증가나 체지방 축적을 감소시키는 작용도 한다. 대체의학에서도 크롬이 부족하면 당뇨병의 발생 위험이 높다는 것을 많이 얘기하고 있다. 하루 200ug부터 1000ug까지 권장하는데, 600ug을 넘으면 부작용이 나타난다. 마그네슘 당뇨병이 있는 사람은 대체로 혈액 중의 마그네슘 농도가 낮다. 따라서 마그네슘의 결핍과 당뇨병이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마그네슘을 섭취하면 공복 시의 인슐린 저항성을 낮추는 작용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하루 100mg을 더 섭취하면 당뇨병 발생 가능성이 15% 감소한다는 연구도 있다. 단 이 결과는 음식으로 섭취한 마그네슘에 대한 결과여서, 영양제로 섭취한 마그네슘도 같은 효과를 나타내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다. 마그네슘은 근육 경련(눈 떨림), 변비, 속쓰림, 신장결석, 골다공증, 두통 등 다방면에 쓰이는 성분이다. 밀크시슬 서양 엉겅퀴 풀이라고도 하는 밀크시슬의 추출물은 원래 간장 영양제나 치료약으로 많이 쓰이는 성분이다. 공복시 혈당, 당화혈색소, 총 콜레스테롤, LDL, 중성지방 등을 모두 낮추는 데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밀크시술 추출물은 생약 추출물이기 때문에 원료의 처리 과정부터 완제품 제조까지 완벽해야만 안전성과 효과를 보장할 수 있어, 불확실한 건강기능식품보다 개별인정형 건강기능식품으로 개발된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낫다. 글루코사민, 홍삼제품 관절 기능을 좋게 하는 글루코사민은 핵심 원료 자체가 당 성분이다. 당뇨병 환자의 경우에 글루코사민을 과량 복용할 경우 글루코사민 성분이 당을 상승시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홍삼제품도 주의하여야 한다. 홍삼 자체는 혈당을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지만 홍삼제품은 단맛이 나도록 과당과 각종 첨가물을 넣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하루 몇 팩씩 복용하다 보면 혈당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레시틴, 기타 식물 추출물의 발효제품들 레시틴은 당뇨나 신장질환을 가진 사람들에게 가려움이나 두드러기를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고, 식물 추출물 발효제품은 통증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꼭 도움이 되는 것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 최혁재(崔爀在) 약사 경희의료원 약제본부 예제팀장 경희대 약학대학 객원교수, 한국병원약사회 법제이사, 서울시 약사회 병원약사이사, 대한약물역학위해관리학회 총무이사.
- 2016-06-12 2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