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로의 마음에 낮은 담장 하나 정도는 치자
- 서클 20년 대선배가 결혼 새내기 후배들 앞에서 일갈했다. “난 남편이 일단 현관을 나서면 내 남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살아. 집에 오면 그때부터 다시 내 남자야.” 그리고 이것이 평온한 정신세계를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했다. 알콩달콩한 연애시절이 가고 신혼시절의 달콤함마저 사라지고 나면 아이 낳고 키우고 며느리 노릇 하느라 거의 전쟁 수준의 강도로 바쁘게 살게 된다. 아내로 엄마로 식모로 찬모로 학부형으로 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성격도 거칠어지고 급해진다. 옷도 간편하고 수수한 복장이 편해진다. 당연히 남편이 보는 아내의 모습은 수세미처럼 헝클어진 머리에 한참 유행이 지난 낡은 옷을 입은 촌스런 여인네이기 쉽다. 게다가 향긋함과는 거리가 먼 마늘, 된장 냄새에 맨날 찌들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는 사이 남자들은 밖에서 매너 좋고 옷차림이 섹시한 여성들에게 끌리게 되고 아내는 어느 날부터 부엌데기가 돼버린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가면 모두들 자신도 모르게 변해버린 모습에 놀라게 된다. 중년 여자들은 주름살이 늘었다며 사진 찍기를 거부하고 사라져가는 여성성에 우울해지기도 한다.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앞으로 달려가기만 했던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이때 느끼는 심리적 공허감, 신체적 위축은 상대적 박탈감으로 이어진다. 서로에게 성적인 매력을 잃어버린 지 오래된 부부는 남아 있는 마지막 본능을 깨워서라도 젊음을 되찾고 싶어 한다. 남자들은 젊은 여자와 외도하는 방법으로 젊음을 확인하곤 한다. 물론 가정을 깰 의사는 전혀 없고 잠시 오락실처럼 들렀다 오려 하지만 그 결과는 예측하지 못한 참담한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세계 섹스리스 부부 비율은 20% 수준인데, 우리나라는 일본 45%에 이어 35.1%로 2위라고 한다. 남자들은 성매매 같은 정크섹스(junk sex)를 외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성을 쾌락의 도구로 여기는 사람은 배우자와의 성관계에서 갖게 되는 유대감, 안정감, 친밀감에 무게를 두지 않는다. 남성은 아내를 성적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을 불편해한다. 나이 든 여성의 성이 터부시되고 젊은 여성과의 연애와 성을 꿈꾸는 한 중년의 외도는 멈출 것 같지 않다. 외도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성적 기능 상실이 자신의 탓이 아니라 매력적인 여성을 못 만나 그렇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본부인은 서방의 검은 머리만 뽑고, 첩은 서방의 흰머리만 뽑아준다.” 본부인은 서방이 바람피울까봐 늙어보이도록 검은 머리를 뽑고 첩은 늙은 남자와 사는 게 창피해서 흰머리만 뽑는다는 속담이다. 중년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부부가 함께 문제를 인식해야 한다. 규칙적인 성생활을 하는 부부는 그렇지 못한 부부보다 훨씬 건강하고 젊게 산다고 한다. 성을 터부시하는 부부의 관계 개선이 필요한 이유다. “부부는 낮에 싸우고 밤에 푼다.” “두더지 마누라는 두더지가 제일이다.” “마누라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을 보고도 절한다.” 위의 속담들처럼 가능한 한 남편을, 아내를 좋게 바라봐야 한다. 누구나 가끔은 유혹을 당하기도 하고 실수도 한다. 습관적 범죄형이 아니라면 가벼운 외도는 실수로 봐줘야 한다. 서로의 마음에 낮은 담장 하나 정도는 치고 상대의 프라이버시를 인정해주는 것이 지혜가 아닐까 생각한다. 선배가 말했다. 남편의 외도를 눈치 챘다면 다른 데 가서 화 풀고 절대로 아는 체하지 말라고. 반드시 돌아온다고. 돌아오면 아내에게 잘할 기회를 주는 것이 더 현명한 태도라고.
- 2017-03-08 14:25
-
- 오래된 인연
- 필자는 좋은 모임을 여럿 갖고 있는데 고등학교나 대학교친구 모임, 그리고 우리 아이 초등학교 때부터 만나고 있는 학부모 모임 등이다. 그중에서 남편 때문에 갖게 된 좋은 모임이 있다. 남편의 대학친구들 모임으로 멤버는 다섯 명이지만 각자의 부인과 아이들까지 합하면 매우 큰 인원수가 된다. 필자가 결혼할 당시 남편과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결혼을 한 분들이었다. 그때는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집으로 초대하여 음식을 만들어 대접을 하였는데 필자가 갓 결혼했을 때 필자는 요리 솜씨가 형편없었다. 그런데 세 명의 부인들은 정말 훌륭한 요리사들이었다. 달마다 돌아가면서 친구댁을 방문해 남편들은 포카를 치고 아내들은 수다를 떨면서 초대한 집 부인이 만들어 주는 음식을 먹는 건 매우 즐거운 일이었다. 필자 차례가 왔을 때 서툰 솜씨로 차렸지만 다들 칭찬해주고 맛있다고 격려를 아끼지 않는 좋은 분들이었으며 아이들이 어릴 땐 단체로 대가족이 되어 여행도 많이 가고 낚시도 하러 가는 등 친목을 돈독히 하는 사이였다. 세 명의 다른 부인들보다 좀 나이가 어렸던 필자를 모두 예뻐해 주는 배려를 받았는데 마지막 한 분이 뒤늦게 결혼을 해서 필자 인기는 시들고 새로운 막내가 탄생하였다. 서로 격의 없이 친한 사이였으므로 먼저 결혼한 세 분의 부인들을 노계라며 놀렸고 필자는 영계라고 불렸다. 그런데 막내로 새로 합류한 부인은 나이도 엄청나게 차이 나는 그야말로 영계소리를 들을 만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그만 영계자리를 빼앗기고 중닭이 되었다. 노계, 중닭, 영계, 그렇게 말하면서 얼마나 웃어댔는지 지금 생각해도 무척 재미있고 그리워지는 시간이다. 그중 한 커플인 진오 아빠 엄마는 유난히 사이가 좋았다. 결혼도 제일 먼저 해서 나머지 4명의 총각 친구들이 모두 그 신혼집에 가서 살다시피 해도 싫은 내색 하나 없이 다 받아주었다는 마음이 넓은 부인이다. 지금은 멤버들 모두 자식들이 다 장성해서 결혼을 하고 부부만 남았는데 제일 나중에 결혼한 분의 아이가 아직 고등학생이라 뒷바라지가 다 끝나진 않았다. 아이들이 다들 결혼해서 부부들만 남으면 한곳에 모여 집을 짓고 살자는 계획도 세웠고 멀리 여행도 하며 살자고 약속을 했었는데 몇 년 전에 가장 사이좋은 부부인 진오 아빠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부부가 너무 사이가 좋으면 하늘이 질투해서 한 사람을 먼저 데리고 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는데 그래서였을까, 정말 우리가 놀릴 정도로 서로 사랑했던 진오 아빠가 먼저 우리 곁을 떠났다. 남편을 보낸 진오 엄마의 심정이 어땠을지 지금도 눈물이 난다. 그 후부터는 매달 모이지 못했고 3개월에 한 번씩 만나고 있다. 그래도 진오 엄마는 항상 모임에 참석을 한다. 이제는 시간도 많이 흘러 웃는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어 다행인데 사진 찍는 공부를 하고 사진동아리에 들어 출사로 여행도 다닌다며 작년에는 직접 찍은 사진으로 탁상용 달력을 만들어 멋진 선물을 해주었다. 20대에 처음 만난 부부모임이 이제는 모두 60이 넘은 시니어들이 되었으니 이 모임을 생각하면 우정의 인연이 얼마나 깊고 따듯한지 가슴이 먹먹해지고 뿌듯하다. 인생을 살면서 좋은 인간관계를 갖는다는 건 너무나 중요하고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러자면 이기적으로 자기만 생각하기보다는 상대방을 배려해주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새해를 맞아 부부동반 모임이 있었다. 물론 진오 엄마도 참석했고 올 한해도 열심히 건강 지키며 살자는 다짐을 하면서 반가운 모임을 가졌다. 오랜 시간 알아온 우리 석우회 멤버들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한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기도해 본다.
- 2017-02-10 09:33
-
- [무엇으로 살까? PART5] 다른 듯 같은 부부 “아직 끌어안고 자요”
- 인간과 인간이 만나 기품 있는 가정을 꾸리는 것은 어떤 예술보다 아름답고 귀한 일이다. 부부가 나누는 대화나 작은 감정표현에서도 우리는 기품을 느낀다. 괴테도 “결혼생활은 모든 문화의 시작이며 정상(頂上)이다. 그것은 난폭한 자를 온화하게 하고, 교양이 높은 사람에게 있어서 그 온정을 증명하는 최상의 기회다”라고 말했다. 이혼은 절대로 용납 못해 졸혼으로 사는 사람도 있고, 이혼했지만 다시 만나 사는 부부도 있다. 부부란 참 신기한 관계인 것이다. 여기 부부의 삶을 기품 있게 잘 이어온, 나이가 들어도 아직 끌어안고 잔다는 이강추(82) 성정수(77) 부부가 있다. 이강추씨는 극구 고사해서 아내 성정수씨만 만났다. 사진 변용도 동년기자 50년이 다 되도록 금실 좋은 부부로 잘 살 수 있었던 비결은? 처음부터 좋은 금실은 아니었고요. 초기에는 힘겨루기도 했지요. 그랬더니 나만 힘든 거예요. 남편은 끄떡도 않는데…. “문제가 뭐지?” 하며 공부를 했고 대화 방법을 알아갔어요. 차츰 서로의 강점과 취약점을 알게 되었죠. 그것도 구체적으로요. 그 점을 늘 염두에 두고 갈등이 있어도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되도록 애썼지요. 주로 내가 먼저요. 그러면 남편도 어느새 스르르 풀렸고. 두 분 성격은 어떻게 다른가요? 남편은 흔히 말하는 모범생으로, 세상의 소금 같은 형이죠. 성실 근면하고 규범과 원칙을 중시해요. 그만큼 책임감은 높지만 새콤달콤 시원한 맛은 없어요. 무덤덤한 편입니다. 반면 나는 열정적이고 상황 적응력과 변화에 대응하는 능력이 뛰어나요. 인간관계를 소중하게 여기며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을 보면 그냥 못 지나가요. 사람들과 나누어야 할 일들이 많아 늘 분주하죠. 같이 있는 시간이 많을 텐데 싸우지 않나요? 서로의 시간을 존중합니다. 각각 자기 할 일, 즉 컴퓨터, 독서, 글쓰기에 몰두하면서 두세 시간씩 보내기도 합니다. 마주하는 시간에는 교회활동이나 사회문제 등 각자가 보고 들은 것을 서로에게 얘기해주며 소감과 의견을 나눠요. 얘깃거리가 많아 싸울 시간이 별로 없어요. 자식농사 잘된 것, 누구의 공입니까? 우리 부부의 공동 합작입니다. 서로의 좋은 점을 닮았으면 했고, 서로가 완충지대 역할을 했어요.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모습은 남편의 영향이지만, 진로에 어려움이 있을 때 아들이 원하는 길을 과감하게 허용, 해결이 되도록 도운 것은 나의 자녀교육 방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봐요. 아들 둘이 남편에게서는 볼 수 없는 재주를 가지고 있어요. 남편은 날 닮았다 하면서 늘 부러워하는 편이죠. 큰아들은 글로, 둘째는 음악으로 표현하는 재주가 있답니다. 50년씩이나 끌어안고 살 수 있는 진짜 힘은 무엇일까요? 남편이 소록도 병원 근무 기회가 주어졌을 때, 천주교 신자로서 교회활동뿐 아니라 남편의 직장 일에도 관심을 갖고 비서로 수렴청정(?)까지 했어요. 문제가 생기면 늘 같이 의논하고 해답을 찾았죠.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만나면 대화를 하다 보니 얘깃거리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어요. 가정일은 손실과 실패가 있어도 탓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편이에요. 우리는 ME부부(Marriage Encounter, 부부일치운동) 회원으로서 ‘결정은 부부가 함께’를 실천해왔어요. 매일 밤 부부의 기도를 합니다.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못 살 때나 잘 살 때나, 성할 때나 아플 때나,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며 신의를 지키게 하라.” 성당에서 혼인할 때 한 서약 내용을 읊조리죠. 천주교의 신앙생활이 부부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그래도 남편이 미울 때가 있죠? 순간적으로 목소리를 높일 때죠. 대개 가치지향적 문제에 견해가 엇갈릴 때예요. 그러나 그런 상황은 잠깐이고, 서로 팽팽히 맞서다가 우리와 직접 관계가 있는 문제가 아니므로 감정이 오래가지는 않아요. 남편이 미울 때는 어떻게 해결하나요? 나도 약점, 잘못한 것 있는데 ‘저 사람만 탓할 수 있나’ 양심에 호소하고, 마음을 내려놓으면 미운 감정이 눈 녹듯 녹습니다(웃음). 배우자에 대한 측은지심은 언제 생기나요? 장례미사에서 떠나는 이를 보거나 내가 건강이 좋지 않을 때죠. 먼저 세상을 뜰 것 같은 생각이 들 때 혼자 남아 있을 남편이 걱정되고, 그 외로움이 헤아려져 측은한 마음이 들어요. 이혼을 생각한 적 있나요? 신혼 때였어요. 남편은 평소에도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지만 자신이 불리하다고 생각하면 아예 입을 닫아버려요. 내 말이 공격적이면 더 심해져요. 불통이 되는 거죠. 결혼 초에는 이렇게 말이 안 통해서 평생 어떻게 사나? 순간 이혼이란 말이 떠올랐어요. 고심 끝에 인간관계 공부를 시작했어요. 부부관계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조화를 이루어가는 것이더군요. 상담 공부를 하면서 직장, 교도소 등 인성교육 집단지도를 하러 다니게 되었어요. 부부관계의 유지는 사랑뿐 아니라 신뢰와 존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나의 부족한 점을 잘 견뎌주고 헤아려주는 남편을 보면 겸손해지더군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남편에게 고마운 점은? 성당에 가는 발걸음이 한결같아요. 매일 새벽미사에 다니고 성당에 일이 생기면 언제라도 달려갑니다. 남편은 노(No)~ 하는 법이 없어요. 우리 부부는 서로 의논이 잘되는 편이에요. “그렇지, 옳지” 하면서 추임새로 긍정적인 응대를 해주고 내 요청을 웬만하면 다 들어줍니다. 시장에 장보러 같이 가고 병원, 약국도 같이 가요. 영화도 자주 보고요. 영화는 내가 좋아하는 취미생활인데 내가 좋아한다고 함께 봐주다가 이제는 남편이 더 좋아하는 취미가 되었어요. 남편은 나이가 팔순이 넘도록 매일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출근합니다. 또 어떤 일이 있어도 국이 있는 아침밥을 먹어야 하는 남편의 밥상 차리기가 쉽지는 않아요, 남편은 특히 보건복지부 국장 시절에 발생한 사건 때문에 고통을 겪을 때 큰 힘이 되어주었다며 고마워했어요. 그렇게 고마워하니 저도 고마운 마음입니다.
- 2017-01-19 11:16
-
- [무엇으로 살까? PART4] 결혼 2막, 농민운동가 김준기의 삶의 기준 "험난한 여정 속 아내는 인생의 큰 선물"
- 사별한 김준기(79)씨는 15세 차이 나는 아내와 1995년 재혼했다. 현재 결혼생활 22년, 그러나 이들 부부는 아직 신혼이나 다름없다. 김준기씨는 평생을 농사꾼으로 살아왔다. 힘들고 고단한 농촌계몽운동, 야학, 4-H연구회 등 사회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아내와의 일상에 대해 묻자 그의 얼굴에는 어느새 미소가 가득해진다. 재혼한 부부에게 ‘가족’이라는 단어만큼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말이 또 있을까. 1월의 찬바람 속에서도 지나온 인생을 이야기하는 김준기씨의 얼굴에선 온기가 떠나지 않았다. “처음엔 많이 망설였어요. 겁도 나고. 남의 시선도 두렵고. 그런데 살아보니 내 신발같이 내 발에 잘 맞는 느낌이에요. 살수록 새록새록 감사하기도 하고요. 이 사람 못 만났으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 몰라요. 사실 혼자가 되면 기댈 데가 없어요.” 전 부인과 사별한 뒤 3년도 안 돼 재혼한다고 하니 그의 재혼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 달갑지 않았다. 나이 차이도 많을 뿐더러 다 큰 자식들(2남 2녀)의 얼굴 보기도 민망했다. 그러나 김준기씨는 재혼을 합리적으로 생각했다. “첫 번째 아내가 세상과 이별한 후 혼자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를 돌봐야 하는데 사실 그럴 처지가 못 됐어요. 자식들을 위해 일을 해야 했으니까요. 어머니를 모실 사람이 필요한데 미안해서 지금의 아내한테 선뜻 결혼하자는 말을 못 하겠습디다. 제가 그렇게 어쩌지 못하고 있던 어느 날 아내가 결혼해서 어머니 모시겠다고 먼저 말을 꺼냈어요.” 자식들도 늦게 만난 사랑인 만큼 더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한길을 걸어가는 이들 부부를 응원해줬다. “그렇게 착한 사람이 내게 오는데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부부의 금실은 자랑할 만하다. 20년이 지나도록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니 말 다했다. 싸우기보다는 서로 이해하고 가끔 서로 놀랄 만큼 같은 생각을 하는 ‘짝’이다. 둘 사이에 끊이지 않는 것은 대화다. 이들 부부가 황혼에 인연을 맺고 행복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을 묻자 김씨는 ‘결핍의 생활화’라고 강조했다. 그는 “황혼재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에게 베풂을 기대하기보다는 그저 말없이 기다려주는 것”이라며 “수십 년을 각자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만큼 존중과 배려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체면 때문에 재혼을 망설이는 이들을 주위에서 많이 본다”며 “인생이 얼마나 남았겠는가. 좋은 사람 있으면 결단을 내리라”고 귀띔했다. 서로에게 너무 큰 기대 하지 말아야 재혼 후 재산 문제로 자녀와 갈등을 겪거나, 서로에 대한 높은 기대치로 인한 갈등으로 상담을 받는 재혼 부부들이 많다고 들었다. 실제로 초혼에서 받지 못한 애정과 돌봄을 재혼 남편에게 바라고, 전통적인 아내의 의무만을 강조하면서 많은 갈등이 생긴다고 한다. 그는 “서로에게 너무 큰 기대를 하기보다는 여생을 함께 보낼 좋은 말벗이나 몸이 아플 때 곁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동반자라고 생각해야 결혼생활에 성공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결혼생활이 마냥 좋기만 하지는 않다는 전제하에 우려되는 점은 없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나이 들어가니 걱정이 생겼습니다.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 아내 혼자 남는데 그럴 때 자식들이 등지고 왕래도 안 하게 되는 상황이 될 것 같아서요. 우리 자식들이야 그러지 않겠지만 다른 재혼 가정들을 보면 많이들 그런다고 합니다. 실제로 장례식장에 가보면 미망인이 혼자 떨어져 있고 자식들은 쳐다보지도 않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는 그는 대안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잠시 울컥했다. “어렵게 늦게 만났으니 하루를 살아도 지금처럼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죠. 아내의 잔소리는 사랑의 불꽃이 되어 다 태워진 뒤 연기를 모락모락 피우며 향기로운 명언으로 쏙 박힙디다.” 질곡의 인생길을 아내는 묵묵히 따라왔다 “삼천만 잠들었을 때 우리는 깨어/ 배달의 농사형제 울부짖는 날/ 손가락 깨물며 맹세하면서/ 진리를 외치는 형제들 있다…” ‘농민가’의 한 구절이다. 이 노래를 전국적으로 보급한 이가 바로 김준기씨. 그는 “농민가는 원래 서울대 농대 다니던 시절에 ‘농사단’의 단가로 만들었어요. 가사는 나와 동기인 김성훈 전 농림부장관과 후배 이용화(언론인) 등 농사단 멤버들의 의견을 모아 만든 공동 창작이고, 곡은 구전되던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저는 10대에는 너무 가난했고, 20대에는 농촌계몽활동을 했고, 30대에는 농민운동을, 40대에는 지역운동을, 50대에는 통일운동을, 60대에는 정치운동을 한 셈입니다. 이제 70대에는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해보려고 해요. ‘一農공동체사회연구소’를 만들어 지역공동체운동과 지방 주민자치교육 그리고 협동조합 네트워크 등 11개 학교 4-H 조직들을 챙겨보고 있습니다.” 사람농사꾼으로서 사람농사를 짓는 것이 평생 업이었던 그는 서울대 농대 재학 당시 전국대학 4-H연구회연합회 초대 회장을 지냈다. 이후 가톨릭 농민회를 주도하면서 상계동 농장을 운영, 1975년부터 신구대학 교수로 학생들에게 농업을 가르치며 성남YMCA, 시민대학을 만들었다. 그러나 1986년 그는 해직을 강요받고 강사로 활동하게 된다. 1989년에는 임수경과 서경원의 평양방문 사건이 공교롭게도 그와 연관이 됐는데, 그가 속해 있던 ‘민자통(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에서 정부의 통일정책을 비난한 성명서가 문제가 되는 바람에 결국 안기부로 끌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2년간 옥살이를 했다. 그때가 1991년. 이후 사면·복권이 되고 나중에는 명예회복이 됐지만 평생을 농민과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걸어온 그의 여정은 험난했다. 그러나 그의 곁에서 묵묵히 내조를 해온 헌신적인 아내가있었기에 그 세월을 견딜 수 있었다. “잘하려고 하는 게 아닌, 진짜 잘하는 아내가 제 인생의 가장 큰 선물”이라고 말하는 사람농사꾼 김씨에게 자식농사는 어땠냐고 물었다. “사연 없는 집이 어디 있겠어요. 마음처럼 안 되는 자식들과 갈등하는 것은 다른 집들과 똑같아요.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 모든 것도 ‘행복’이라는 선물이더라고요. 아내는 마음이 고운 사람입니다. 제 뜻을 잘 따라준 아내에게 항상 고맙죠. 잘 자라준 아이들에게도 고마움이 앞섭니다. 각자가 사회 일원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어 감사할 따름입니다.”
- 2017-01-16 18:53
-
- [김성회가 만난 CEO 스토리] 박시호 행복경영연구소 이사장 "은퇴, 충격이 아닌 감격으로 맞이해라"
- 은퇴 이후 인생 2막을 삶의 황금기로 만들 것인가, 황혼기로 만들 것인가. 황혼기와 황금기를 가르는 것은 무엇인가. ‘충분히 쓸 만큼 모아놓고 쟁여놓은’ 돈일까? 그보다 중요하고도 필요한 것은 인생을 재설계할 수 있는 은퇴 멘탈 갑, 즉 새로운 은퇴 마인드다. 과거 경력, 직장, 직책의 아우라를 들어내고, 자기의 진짜 정체성을 떳떳하게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 진정으로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외칠 수 있다. 100세 시대를 앞둔 요즘, 은퇴 이후의 시기는 막다른 골목이 아니라 인생의 3분의 1을 살아내야 하는 인생의 터닝포인트다. 그래서 우리는 은퇴를 충격이 아닌 감격으로 맞고 싶다. 끌끌 혀를 차며 밸이 배배 꼬인 채 훈수나 푼수를 떠는 뒷방 노인이 아닌 적극 참여하는 현장의 선수로 사는 롤모델 인생 선배를 만나고 싶다. 퇴직 5년 차가 아니라 진짜 좋아하는 일을 선택한 ‘취업 5년 차’라는 박시호(63) 행복경영연구소 이사장을 만났다. 인디언 핑크색 니트 상의에 옅은 브라운색 패딩 점퍼, 흰 바지 그리고 빨간색 운동화에 무스로 바짝 세운 밤톨머리 헤어스타일을 하고 나타난 그는 과거 CEO의 물이 쏙 빠진 사람처럼 보였다. 그에게선 인터뷰 약속 장소인 ‘신촌’의 청춘물결에서 한 치도 뒤처지지 않는 것을 넘어 자유인의 바람마저 느껴졌다. 2003년부터 행복과 관련한 앤솔러지를 사진에 담아 매일 아침 이메일로 배달하던 일은 이제 취미와 봉사에서 ‘주업’으로 승격됐다. 그 외 강연과 원고 쓰기, 사진 찍기 등등 요즘엔 여행기획가로서 행복을 오프(0ff)에서 실현하는 일에까지 관심사를 확장하고 있다. 그의 하루 24시간은 풍요롭다. 은퇴 괴담은 현실적으로 ‘밥’ 이야기로 시작하곤 합니다.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퇴직 가장의 현실을 표현한 단어 중에 ‘삼식이(집에서 삼시세끼를 먹는 가장)’란 호칭이 있는데요. 많은 퇴직 가장들이 “이러려고 지금까지 뼛골 빠지게 일했나”라며 피눈물을 흘린다고 합니다. “감정계좌를 깡통계좌로 만들어놓고 만기일 됐다고 복리로 쳐서 가장 높게 대우해달라고 하면 되겠습니까? 집밥만 우기지 말고 칼국수집이든 냉면집이든 같이 맛집 순례라도 해보세요. 찜질방 같이 가서 놀자고 해보세요. 절로 삼식님이 될 겁니다(웃음). 가장이 건강해야 집안을 끌고 간다고 하는데 마찬가지로 부인이 건강하고 행복해야 집안이 유지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남편 혼자 행복하고 즐거우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퇴직 이후 집에서 대우받는 것은 남편 하기 나름이지요.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게 부부입니다.” 그는 “체력관리한다며 주중, 주말 가리지 않고 매일 등산 가던 친구가 있었다”며 부인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병석에 누운 후 그 친구가 “부인이 건강할 때 산에 같이 갈걸, 왜 나 혼자 갔을까” 하며 땅을 치고 후회하더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행복은 거창하고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작은 데, 평범한 일상에, 함께 나누는 데 있다”고 말하는 그는 여러 일정 중에서 부인과 맛집 순례 후 하는 공원산책이 그날의 하이라이트라고 덧붙였다. 신혼 때처럼 전기가 찌르르 통하지는 않지만 40년 이상 살아온 인생 동지와 함께하는 ‘침묵의 공유’야말로 가장 든든한 의지가 된다는 이야기였다. 현직에 계실 때보다 더 활기차고 멋져 보이십니다. 부부 금실에서 비롯된 에너지 말고 비결이 있습니까. “현직에 있을 때보다 몸무게를 10kg 정도 뺐어요. 회식이나 약속을 줄이고 운동을 하니 절로 빠지더군요. 제가 BMW족입니다. 버스(Bus)-지하철(Metro)-워킹(Walking),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많이 걷습니다. AMP 동기 부부동반 모임에 갔는데 집사람이 아무 정보 없이도 동기들 중 현직, 퇴직파를 족집게처럼 맞히더군요. 은퇴하면 현직 때의 아우라가 사라져 갈기털 빠진 사자처럼 되기 쉽습니다. 퇴직할수록 용모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합니다. 퇴직하니 공식적 일 없다고 후줄근하게 입고 다니거나 등산복을 평상복으로 입고 다니면 안 됩니다. 오히려 더 산뜻하게,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어야 해요. 뚝배기보다 장맛이 아니라 겉볼안이 더 맞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볼 때 이미지 판단이 6초 만에 끝난다고 하지 않습니까. 예전엔 아우라가 우러났다면 이제는 만들어야 한다고나 할까요. 퇴직할수록 의관이 생명이란 게 제 지론입니다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탓하지 말고, 먼저 남이 알아주도록 갖춰 입을 필요가 있습니다.” 은퇴 준비에도 선행학습이 필요할까요? “일관된 인생 계획을 세워서 현직 시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의미 있는 은퇴의 삶을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선 공부를 해야 합니다.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합니다.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즐기기 위해서라도. 은퇴 이후의 공부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쫓기는 공부가 아닙니다. 자신이 즐길 수 있는 것, 좋아하는 것 뭐든 좋습니다. 사람들은 그동안 자신이 뛰어오던 트랙을 벗어나는 걸 두려워합니다. 그 두려움을 없애야 합니다. 등산도 높은 산을 오르려면 동네 산부터 오르며 준비하지 않습니까. 직장생활을 하면서 은퇴 후 뭘 하면 좋을까 늘 염두에 두고 그 일을 조금씩 준비해둬야 합니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준을 향해 공부하십시오. ‘지금 이 나이에…’ 또는 ‘시간이 없다’ 말하지만 그것은 모두 새로운 것을 배우기 싫어해서 하는 핑계일 뿐입니다. 취미든 기술이든 뭐든 배움은 운명까지도 바꿉니다. 공부를 하고 도전하다 보면 전문가 반열에 오르고, 그것이 새로운 세상의 지평을 열게 해줍니다.” 실제로 미국의 한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은퇴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다고 대답한 은퇴자가 41%나 되고, 대부분 단조롭고 지겨운 일상과 목적 상실 및 지적 자극의 결여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은퇴에서 재정 설계 못지않게 필요한 것이 시간 설계, 즉 은퇴 후 동기 설계임을 보여주는 통계다. 행복이란 것이 요즘에야 흔한 담론입니다만. 행복편지를 시작한 2003년에는 요즘처럼 유행하는 화두가 아니었을 듯한데요. “저도 욕심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정치도 해보고 싶었고, 돈도 많이 벌어보고 싶었지요. 그런데 특별조사부장을 하며 정치인, 재벌 총수들의 영고성쇠한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자기가 지은 고충 건물에서 피고인으로 수사를 받아야 하는 기업 총수를 보며 권력, 금력의 무상함을 보았습니다. 또 부도가 나 자살을 한 금융인,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표변하는 인심의 허망함을 한꺼번에 압축해봤어요. 권력도 금력도 아닌 세상에서 진정으로 변치 않고 행복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봤지요.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행복이라는 생각에 미쳤습니다. 저의 어렸을 때부터의 꿈인 그림그리기를 시작했지요. 그러다 점차 재능의 한계를 느껴 사진으로 바꾸게 된 것이고요.” 그는 사진을 공부하면서 행복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쳇바퀴 같은 삶을 바쁘게 살던 그가 ‘저녁이 있는 삶, 주말이 있는 삶’을 애써 찾으며 여유를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번 주엔 이 꽃을 이런저런 각도에서 찍어봐야지” 하는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단다. 또 사진을 찍으면서부터는 ‘집에 꿀단지를 묻어놓은 것처럼’ 퇴근을 기다렸고, 주말 새벽마다 강남고속터미널에 가서 꽃을 사는 행복한 마음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하단다. 지인들에게 꽃 사진 선물을 하고, 그들이 감사인사를 전해오고, 급기야 행복편지까지 쓰게 된 계기가 되었다. 지인 700명 정도를 엄선해 보내는 행복편지는 감동적인 내용으로 ‘작지만 강한’ 행복 공유의 플랫폼이 됐다. 직장 후배들에겐 멘토로 여전히 환영받는 ‘퇴직 상사’라는 말씀 들었습니다. 그 비결이 있습니까? 어떤 분은 퇴직하니 알던 사람들 중 절반은 모른 척하며 떨어져 나간다고 ‘동선하로(冬扇夏爐, 여름 난로와 겨울 부채라는 뜻으로 철에 맞지 않는 물건을 이르는 말)’의 신세를 한탄하기도 하시던데요. “하하. 저는 연락 안 해도, 거절당해도 고까워하지 않습니다. 또 조금도 불편하게 하지 않고요. 그러니 오히려 환영받네요. 잘해주면 고맙지만, 못 해주는 것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 고까운 마음이 전혀 안 생깁니다. 상대도 부담스러워하지 않으니 오히려 더 찾더라고요. 부하직원들이 초대하면 병권을 맡깁니다. 예컨대 동석할 사람을 상대에게 정하라고 선택권을 주는 겁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정해 만나자고 하면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또 그 밥에 그 나물인 예전 사람들만 만나면 재미없는데 후배들이 새로운 사람 소개해주니 저도 좋지요. 폐쇄성을 나부터 없애야 합니다. 자기를 열고 세상에 맞추면 세상살이 편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자기를 낮추고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또 상대가 누구든 불편하지 않도록 마음을 더 내어 배려해주는 것이 존중받는 비결입니다.” 박 이사장께서는 퇴직 후 제일 먼저 할 일로 명함 만들기부터 권하신다면서요. “은퇴한 사람들이 모임에 나가면 제일 먼저 당황하는 게 명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명함이 없으면 몸을 꼬며 온갖 군말을 갖다 붙여요. ‘제가 회사를 그만둔 지 얼마 안 돼서요’ 등등. 스스로도 초라하고 서로 당황하기 쉬워요. 명함을 만들려고 구차한 자리 부탁하기도 하거든요. 당당한 명함은 당당한 자기정체성과 통합니다. 이제 과거의 후광은 벗어던지고 자기정체성을 드러내는 명함을 만드는 게 필요합니다. 하다못해 ○○를 연구하는 사람 ○○○라는 명함이면 어떻습니까. 말로 구구하게 설명하기보다는 자기정체성을 잘 드러내줄 수 있는 한 줄짜리 문장을 만들어보는 것입니다, 스스로 초라해질 필요 없습니다. 명함 주고받는 게 부담스럽고 부끄러워지면 대외활동은 끝나는 겁니다. 그만큼 중요해요. 아날로그 구세대에겐 직책과 직장이 필수이지만 젊은 디지털 세대는 그보다는 업, 좋아하는 일, 하고 있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사진이면 사진, 서예이면 서예, ‘이것에 대해선 나한테 물어봐. 내가 설명해줄 수 있어’라고 말할 수 있는 전문 분야가 있다면 더 좋고요.” 박시호 이사장의 명함엔 사진가, 행복경영연구소 이사장이라는 직함과 함께 연락처(전화번호와 이메일)가 간결하게 들어가 있다. 퇴직 후 부딪히게 되는 어려운 점 중엔 경조비 부담도 빠지지 않더군요. 국민연금 100만원 이상을 받는 사람들의 가계부에서 경조비 비중이 16%나 됩니다. 의료비보다 높은 비중입니다. “퇴직 상태에서 대소사가 한꺼번에 밀려들면 아무래도 부담감이 커질 수밖에 없는데요. 은퇴한 사람들의 고민이 ‘경조사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이지요. 체면과 얽히고설킨 과거의 인연 때문이지요. 저는 기분, 체면보다 기준을 분명히 합니다. 과거의 주고받은 인연보다 1년간의 교류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아이들 결혼 때의 방명록도 그 자리에서 없애버렸습니다. 1년 동안 만나지 않은 사람은 교류가 없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은 연락이 와도 경조사에 가지 않습니다. 정말 필요한 사람만 부르고, 성의만큼 성의를 표하자. 허례허식은 없애자는 게 제 주의랍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돈을 벌었지만 이제는 다르지 않습니까? 동창회 단체 공지에 올랐다고, 안 하면 욕먹는다고 찜찜해하면서 자주 보지도 않는 사람의 경조사까지 챙겨야 하는 것은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주위에서 욕을 먹기도 해요. 그러나 욕을 먹더라도 자신의 기준을 지켜나가는 맷집과 용기도 은퇴 멘탈 갑의 마인드 중 하나입니다.” 박시호 이사장은 은퇴지능개발의 핵심 키워드로 배움을 꼽았다. 기술이든 지식이든 뭐든 배우고, 남의 눈 때문에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거나 그 반대의 경우가 없도록 하는 것. 그는 “좋은 사람과 맛있는 것을 나눠 먹을 때 행복을 느낀다”며 이 모든 것을 합친 것이 여행이라고 했다. 앞으로 여행 프로그램도 꾸준히 운영할 계획이라고. 지난 경험보다 앞으로의 계획을 말할 때 그는 더 설레면서 반짝였다. 은퇴 이후 새로운 삶의 설계와 도전도 마찬가지다. 용기 있는 사람만이 구태의연함에서 벗어나 신세계에 도전할 수 있다. 마음속에서 불을 뿜는 두려움의 용을 처단하고…. 박시호 이사장이 말한 ‘배움’은 구태의연함을 처단하고, 마음속에서 불을 뿜는 용을 무찌르는 날카로운 무기가 될 것이다.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 소장 연세대학교 졸업. 경영학 박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겸임교수. 리더십 스토리텔러. 세계일보에서 CEO 인터뷰 전문기자로 활약했다. 세계경영연구원(IGM)과 삼성경제연구소 등에서 강의했다. 저서로는 , , 등이 있다.
- 2017-01-06 14:47
-
- [무엇으로 살까? PART1] 별거 부부 VS 별난 부부
- 따로 산 지 11년 됐다. 남편은 경기도 파주에, 아내는 서울 이태원에 산다. 딱히 언제 만나자고 약속하지 않지만 만남의 장소는 남편이 사는 파주 집이다. 그곳에 아내가 오면 남편은 그냥 왔나보다 한다. 서재에서 책을 읽고 커피를 내려 함께 마신다. 언제 떨어져 살았냐는 듯 이 부부의 행동은 무척이나 다정다감하고 여유롭다. 도대체 별거는 왜 하십니까? 별거 11년 차 이안수(60)·강민지(57) 부부의 이유 있는 별난 별거 이야기를 들어봤다. 전생에 나라를 구해 얻은 축복이 우리의 별거생활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부가 떨어져 산다’고 말하면 색안경부터 끼고 본다. 부부 금실을 지적하거나 부부 위기 심지어 가정문제로까지 생각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 중년 부부의 별거생활은 지극히 일상적인 선택에서 시작됐다. 아내 강민지씨의 얘기를 들어봤다. 원래는 서울에서 같이 살았죠. 11년 전에 파주 헤이리 마을로 집을 지어 오면서부터 따로 살게 됐어요. 아이들이 다 따라올 수가 없었어요. 이사 당시 둘째 딸이 고2라 하숙을 시켰더니 힘들어했어요, 그래서 집을 얻었습니다. 막내아들이 파주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또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로 왔죠. 중대 연극과 다니던 큰딸 캠퍼스가 안성에서 서울로 이동하면서 또 서울에 근거지가 필요했어요. 따로 살려고 했던 의도는 전혀 없었어요. 제 직장도 서울이라서 자연스럽게 파주에서 떨어져 나간 거예요. 파주에 있는 집은 모티프원이라는 게스트하우스로 운영되고 있다. 다 같이 살기 위해 세 자녀의 방도 따로 마련했었다. 그나마 막내아들이 파주에서 3년 생활한 것 말고 두 딸은 파주 집에서 제대로 살아본 적이 없다. 현재 큰딸은 서울에서 아내 강민지씨와 생활하고 둘째 딸은 프랑스에, 아들은 군생활 중이다. 남편 이안수씨는 이곳에 산다. 모티프원을 다녀간 사람들의 흔적을 정리하고 집안을 돌본다. 이 외에도 하는 일이 너무도 많다.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혹은 상담이 필요한 사람의 진솔한 대화상대가 되어주기도 한다. 별거 부부, 이들이 사는법 파주 사는 남편 이안수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해요” 나는 정말 혼자 있을 동안에 할 일이 너무 많아요. 자아성찰도 해야지, 상담이 필요한 사람들과 대화도 해야 합니다. 하루에 상담이 몇 건인지 몰라요. 수없이 많아요. 별의별 전화가 다 와요. 갑자기 그렇게들 연락을 해요. 찾아오거나 전화를 하거나 심지어 외국에서도 전화가 와요. 제가 모르는 사람에게서도 연락이 오죠. 제 책을 읽었거나, 블로그에 쓴 글을 봤거나, 누구한데 소개를 받았거나, 어떤 식으로든 나를 아는 불특정 다수가 연락을 해옵니다. 자식과 소통의 문제, 부부간 문제 등 그 내용도 다양해요. 솔직히 아내가 집에 와도 둘이 얼굴 괴고 앉아서 볼 시간이 없어요. 아내한테는 한 시간도 안 내줘요. 할 일이 너무 많아요. 글도 써야 하고 말입니다. 서울 사는 아내 강민지 “오기 싫으면 안 와요” 쉬는 날이면 우선은 파주에 오려고 마음먹었었죠. 그런데 그냥 지금은 오기 싫으면 안 와요(웃음). 피곤해요. 가끔 너무 안 가서 미안하기도 해요. 남편은 쉬는 날이 언제인지도 잘 모르면서 매일 물어봐요. 몇 시에 오냐고, 오늘 저녁 몇 시에 퇴근하냐고요. 사실 지금 다니는 직장이 퇴근이 칼 같아요. 퇴근시간 이후에는 영화를 본다거나 운동을 한다거나 해요. 추위에 상관없이 달리기를 하는데 다니는 병원 안에 체육관 시설이 있거든요. 지금 서울에서 큰딸이랑 둘이 사는데 딸아이와도 시간을 보내야죠. 수다도 좀 떨어야 아이가 요즘 어떻게 사는지 알 수 있잖아요. 딸아이랑 맥주 먹는 시간을 갖기도 해요. ‘그립다’기보다는 ‘예의’를 지키면서 사는 거죠 쉰다섯까지는 그리워했던 거 같아요. 지금은 그립다는 생각보다는 보필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리워서가 아니고(웃음). 퇴직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때가 되면 잘 해드려야죠. 와서 예쁘게 삼시세끼를 차려드리고 싶기는 한데 요즘은 잘 안 해드려요. 사실 남편은 먹는 것에 크게 신경을 안 써요. “따뜻한 밥 먹어야 해.” 이러지 않아서 내가 느슨해지는 것 같아요. 진짜 삼시세끼를 갖다 바쳐야 하는 남자도 있잖아요. 음식 투정 하면 여자 요리가 많이 늘 수밖에 없어요. 정말 여자한테 잘해주는 남자예요. 진짜 편해요. 신혼 때도 회사 사람들이 집에 와서 저녁 먹고 그러잖아요. 저 힘들다고 밖에서 다 해결하고 왔어요. 사실 김치도 안 담가요(웃음). 담그는 방법은 알지만 큰언니가 해주거든요. 반찬도요. 제주 사는 동생은 귤도 보내줘요. 아내의 진짜 속마음 “파주 집, 남편 보고 싶어 와요!” 내가 여기 오는 진짜 이유는 서방님이 보고 싶어서 오는 거예요. 동네 보고 싶어서 오는 게 아니라고요. 내가 바라보고 얘기해달라고 하니까 남편이 안 좋아해요(웃음). 커피를 타줘도 쳐다보지를 않아요. 계속 컴퓨터만 보고 있어요. 여자들 마음을 모른다니까! 여자 심리를 저렇게 모를까? 평생 모를 거 같아요. 우리 동네 손잡고 함께 산책하는 것이 소원이에요. 산책 한 번도 안 해봤어요. 예전에 해모(키우던 반려견 이름)가 있을 때는 나를 해모 대하듯이 해달라고 했어요. 해모보다 내가 서열이 밑이었다니까요. 해모는 낑낑거리면 바로 나가서 산책도 시켜주더라고요. 남편 생각, 떨어져 있는 시간에 그리움을 키운다 중년의 삶에 있어서 적절한 별거는 축복입니다. 부부가 적절하게 떨어져 있는 시간은 그리움을 키우는 시간이라고 봐요. 물론 아이들한테 사랑을 듬뿍 줘야 하는 시간, 공동으로 협업해야 하는 시간은 같이 있어야죠. 한 공간을 점유하는 것만으로도 서로 위로가 되는 거예요. 뭐 얼굴 마주치고 그렇게 가는 것은 중년부부 스타일은 아니라는 거죠. 노상 손잡고 그러는 거는 젊을 때나 하는 거죠. 60,70에 손잡고 산책하는 부부라면 아마 거동이 불편하기 때문이 아닐까요(웃음)? 별거 가장 이안수가 말하는 별난 부부 유지법 부부간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황금률 아내에게 “당신이 담근 김치만 먹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더운밥만 해다오”라고도 절대 말 안한다. 황금률, 즉 자기가 예우받고 싶은 대로 예우하라는 것. 불변의 진리다. 부부간에도 자기 삶을 스스로 이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 대부분 자기가 한 것 이상을 요구하는 것이 문제다. 아내가 영화를 보든, 윈드서핑을 하든, 등산을 하든, 락 클라이밍을 하든 그건 각자 삶의 영역이다. 나도 여행을 하고 독립적으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것을 좋아한다. 사실 아내가 언제 오는지 모른다. 심지어 안 와도 된다. 오는 날인데도 혹시 안 왔다면 그냥 안 오는 날이었다고 여기면 된다. 예우받고 싶다면 서로 존중해야 한다. 부부, 각자 잘하는 역할에 집중하자 아내는 아이들한테 현명한 방향을 제시해준다. 내가 결정을 잘 못 내리는 우유부단한 상황에 있으면 칼같이 끊어주는 용기 또한 있다. 큰 책임이 따르는 문제에서 아내는 많은 결정을 대신했다.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그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지겠다, 남한테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당사자로서 같이 풀어가겠다는 뜻이다. 아내의 장점이다. 한마디로, 김치를 못 담는 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자기가 잘하는 역할을 하면 된다. 나는 가정의 대소사를 챙긴다. 집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한다. 아내는 시장을 보거나 관공서, 은행 일을 본다. 아내는 쓰레기 분리수거를 해본 적이 없다. 창의적인 성장을 도모하자 부부가 지루해지고 싫증이 나는 것은 창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30년, 50년 동안 사는데 매일이 같으면 어떨까? 한 사람과 하룻밤 긴 얘기 해보면 다 드러난다. 내일은 새로운 게 뭐가 있으랴 생각하기 쉬운데 관계가 오래 지속되려면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부부도 마찬가지다. 욕정에 끌리는 것은 단시간이다. 그 단계가 지나면 의무로 살아야 하는데 의무감만으로는 관계를 지탱할 수 없다. 내버려두면 딴짓하게 된다. 요사이 너무 바빠 독서를 많이 못하지만 아내는 나한테 누군가가 보낸 책, 사놓은 책을 먼저 읽고 인상 깊었던 부분을 사진으로 찍어서 메시지로 보내거나 느낌을 정리해서 준다. 아내에게 잘하고 있다는 얘기를 해본 적은 없지만 아내가 어떠한 그릇으로 커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언젠가 아내가 긴 머리를 확 깎고 나타났다. 상의 한 번 안 했다.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30년 동안 쪽 찐 머리로 살았던 아내다. 그 정도면 됐다 싶었다. 함께 빚은 배우자는 바로 ‘나’ 노년의 부부가 서로를 탓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젊었을 때부터 서로 함께 살아가면서 만들어가고 빚은 얼굴이 노년의 자기 얼굴이다. 부부는 결과나 목표에 집중하기보다는 함께한 과정, 즉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아야 한다. 따로 또 같이 사는 것은 우리의 축복이다. 같이 붙어사는 사람은 좀 떨어져 살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 2017-01-02 16:59
-
- [김정렬의 재미있는 부동산 이야기] 신조어로 알아보는 부동산 풍속도
- 아파텔, 호피스텔, 벅세권, 맥세권, 스세권, 알파룸, 베이, 팬트리, 갭투자, 깡통주택 등의 신조어가 등장한 시기는 각각 다르지만 현재 부동산 시장에서 쓰이는 말들이다. 부동산 관련 용어는 주로 건축법 등에서 자주 쓰이지만 새로 등장하는 표현 중 일부는 건축업계 등의 주거용 부동산 마케팅 전략에서 만들어져 통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신조어는 현 세태를 반영하는데, 들여다보면 나름대로의 시사점도 있는 부동산 풍속도다. 오피스텔(Officetel), 아파텔(Apartel), 호피스텔(Hofficetel) 등의 신조어에는 호텔(Hotel)이란 의미가 포함되어 있으며, 이는 고급화를 지향하는 최근의 부동산 트렌드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패스트푸드 배달 서비스가 가능한 지역을 뜻하는 부동산 용어도 이제는 낯설지 않다. 지하철 역 주변 지역을 의미하는 역세권 개념을 모방해, 맥도날드와 스타벅스 배달 가능 지역을 맥세권, 스세권 등으로 만들어 부르고 있다. 이러한 신조어는 역세권에 위치한 집을 선호하듯 특히 1인가구의 젊은 세대가 프랜차이즈 등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주변 환경을 중시해서 생겨난 말이다. 이는 도시 외곽의 주택보다 도심 주택을 선호하는 현상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알파룸(α room), 베이(Bay), 팬트리(Pantry) 등 주택 실내공간과 수납공간 디자인을 지칭하는 신조어와 함께 갭투자와 깡통주택이라는 용어도 등장했다. 깡통주택의 피해자는 세입자들이다. 요즘은 부동산 투자 개념 변화 등에 따라 주택 구입과 전세 또는 월세에 대한 생각들이 예전과 많이 다르다. 집값 상승이 확실하지 않으면 목돈을 투입해 주택을 소유하는 것이 부담이라고 생각한다. 건물 감가상각과 함께 수리 유지비용만큼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파텔(Apartel) 건축업자들이 만든 신조어로 주거용 오피스텔을 말한다. 아파트의 편리함에 오피스텔의 장점이 결합된 형태로 아파트와 오피스텔의 합성어다. 발코니가 없고 욕실에 욕조 설치를 할 수 없다. 그 외는 아파트와 비슷하다. 주로 상업지역에 지어지기 때문에 고밀도로 짓는 양상을 보인다. 체크포인트 : 아파트와의 전용면적 비율 비교 오피스텔(Officetel) 오피스(Office)와 호텔(Hotel)의 합성어다. 오피스텔은 업무용 오피스텔과 주거용 오피스텔로 구분된다. 건축법에서는 오피스텔을 업무시설로 분류하고 있다. 다만 주민등록 전입신고가 되어 있으면 취사시설 등 거주시설 구비 및 실제 사용하는 용도 등을 종합해 주거용 오피스텔 여부를 판단한다. 주거용 오피스텔일 경우 이외에 다른 주택을 소유하고 있으면 다주택자로 인정되어 처분할 때 양도소득세가 중과될 수 있다. 체크포인트 : 세금과 관리비, 주차문제, 시설수리 부담, 임대수요와 회전율 호피스텔(Hofficetel) 오피스텔(Officetel)과 호텔(Hotel)의 합성어로 숙박시설을 의미한다. 체크포인트 : 지분형 숙박시설, 숙박시설 운영과 관리 부담, 고객 수요 벅세권 버거와 역세권의 합성어다. 처음에는 맥세권이라 하여 맥도날드 같은 외식업체들이 배달 서비스가 가능한 지역을 뜻했는데, 맥도날드 이외 다른 패스트푸드점들도 배달 서비스를 하고 있어 보다 포괄적 개념인 벅세권이란 용어로 바뀌었다. 스세권은 스타벅스와 역세권의 합성어다. 체크포인트 : 역세권, 주변 유흥시설, 정서문제 알파룸(α room)고객이 원하는 대로 만드는 공간을 의미하며, 아파트 평면을 설계할 때 남은 자투리 공간을 활용한다. 입주자 선택에 따라 오픈형 서재로 만들거나 벽을 올려 방이나 수납공간으로 바꿀 수 있다. 보통 드레스룸, 서재 등으로 활용한다. 체크포인트 : 자투리 실내 공간 활용과 편리성 베이(Bay) 아파트의 전면부 거실 쪽 공간을 말한다. 베이는 전면 발코니를 기준으로 기둥과 기둥 사이의 공간이다. 전면부에는 대개 거실과 안방이 각각 한 개씩 위치하는데 이를 ‘2베이 구조’라고 한다. 3베이란 거실과 방 2개가 발코니를 통해 외부로 배치되는 구조이고, 4베이는 방 3개와 거실이 전면에 노출되는 구조다. 전면부 공간수가 많으면 집 전체가 밝아지는 장점이 있다. 체크포인트 : 실내공간 규모와 배치 팬트리(Pantry) 팬트리는 다양한 물건을 수납하는, 창고처럼 사용되는 공간을 말한다. 붙박이장을 대신해 대형 팬트리를 설치하는 경우도 있다. 원래는 식료품을 보관하는 작은 방을 의미한다. 주방 옆에 설치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요즘에는 복도나 작은 방에도 설치한다. 체크포인트 : 고객수요 반영 정도, 실내공간 활용 갭투자 아파트 매매 가격과 전세 가격의 차이(Gap)가 최저치로 줄어든 상황에서 전세가율이 높은 지역 급매물을 매입한 후 기존 전세 가격보다 높게 임대해 투자 자금 회수는 물론 시세 차익을 추구하는 방식을 말한다. 체크포인트 : 주택가치 판단, 시장분석, 담보대출 깡통주택 집주인이 집을 매매해도 대출금이나 세입자 전세금을 다 갚지 못하는 주택을 말한다. 주택담보대출금과 전세보증금을 합친 금액이 주택 매매 가격의 80%가 넘을 경우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체크포인트 : 전세가격 비율, 등기부등본, 시장분석 부동산 시장, 앞으로 어떻게 될까? 지금과 같이 경기침체가 지속되면 수요자들은 도심 역세권의 소규모 실속형 임대를 더욱 선호할 수밖에 없다. 부동산 시장의 지역 차별화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또한 주택 공급과 세금, 금융정책 등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세 가격 상승과 주거문제는 여전히 큰 숙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 신혼부부, 소외계층 임대주택 제도도 도심 주택 공급의 한계로 인해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부동산 시장은 복합 시장이다. 경제를 말하고 문화를 보여주는 시장이다. 부동산 트렌드와 신조어를 살펴보면 사회 분위기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건설사와 부동산 개발 업계는 이런 수요와 분위기를 감안해 마케팅을 한다. 중요한 것은 일시적 미봉책이 아닌 장기적 안목으로서의 부동산 정책과 주거용 부동산 개발과 공급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양질의 도심 부동산 공급의 지속성, 환경과 에너지를 고려한 개발 환경 조성이 숙제가 되었다. 주택정책은 어렵더라도 늘 기본원칙이 중시되면서 공감과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다음 문제들을 풀어보세요 오피스텔 임대 수익률을 계산할 때 실수하는 것은 무엇일까? 해설과 답 임대수익률=연간 임대료(월 임대료×12개월)-대출이자/분양가격-보증금-대출금 재임대 상황 발생 시 소요시간을 생각해야 하고, 이러한 임대 공백으로 인한 월 임대료 감소는 연간 총임대료 중에서 통상 한 달 치로 추정한다. 시설 수리비용, 월세 수납관리에 따른 부담, 관련 중개수수료, 세금, 임차인이 지급하는 관리비도 적정성 등을 판단해야 한다. 오피스텔 적정 임대수익률은 보통 정기예금 금리보다 3% 내외를 더한 것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건물, 토지 등 자산가치도 물론 중요하다. 토지의 크기, 지분비율, 모양 등과 연관된다. 오피스텔 투자에 있어, 입지와 시설에 강점이 있는 좋은 오피스텔은 주변 공급물량이 많아도 매력적이며, 반대로 겉으로 나타나는 임대수익률만 높은 오피스텔은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좋은 오피스텔은 주변 공급물량이 많아도 매력적이며, 반대로 겉으로 나타나는 임대수익률만 높은 오피스텔은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김정렬(金淨烈) 한국일반행정사협회 전임교수 국내 최초로 부동산 전문가들로 네트워크를 구성, RE멤버스를 설립하고 부동산써브 대표를 역임했다.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자산신탁, 기업체, 금융기관 등에 부동산 자문을 꾸준히 하고 있다. 저서로는 , , 등이 있다.
- 2016-12-30 10:59
-
- [생활의 변화는 새로 구입하는 인테리어가 아니어도 된다]
- 아파트이건, 오피스텔이건 집이 깔끔하고 살만하다 싶으면 비싸다. 가격도 문제이지만 필자는 동네 형님들이나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이 더 안 내킨다. 뭔가 집안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변화를 가져보자. 두 아이들이 우리부부의 품을 떠난 주말 너무 허전하고 아이들이 보고 싶고 안쓰럽고 걱정도 되면서 그래 확 이사도 가고 싶고, 변화도 갖고 싶고 그냥 살아야할 현실 속에서 고민한다. 필자는 아들 방으로 홈카페물건 넣어두었던 것을 아들 책장을 갖고나와 혼자작은발매트아래에 깔고 살살 끌고 나와서 tv옆으로 두고 홈카페의 물건을 옮겨본다. 신혼시절 작은 방에서도 이렇게 옮겨봐야지 하면 남편이 출근한 뒤에 혼자 이렇게도 저렇게도 바꾸곤 했다. 왜 이렇게 힘들게 하냐고 걱정해주던 남편이 역시 뭔가 집안가구나그릇을 움직이는 소리에 방에서 나와 걱정해준다. 별로 큰 움직임이 아닌 줄 알고 있다가 거의 이사가는집수준으로 해놓으니 어쩌려고 이러냐고 밥도 안 먹고 일하는 필자를 위해 중구집전화번호 쓱 가져가서 간짜장을 주문해준다. 이번 추석 때도 아이들 두부부가 이야기만 하고 과일 먹고 커피마시고 엄마만 애를쓰니 설거지를 좀 하면 안 되냐고 내편을 들어준 남편은 확실한 내편이다. 오래살기를 바란다. 감사히 간짜장먹고 다시 집안에서 가구의 대이동이 이뤄진다. 가구 속의 홈카페의 생두나 커피 잔으로 쓰는 도기류나 유리잔세트는 물론 책장이라 책도 모두 꺼내서 다시 내려놨다가 또 옮기고 내일은 일요일이라 저질렀는데 생각보다 너무 무거운 찜질기가 복병이었다. 친정엄마께서 살아계실 때 교통사고 당한 딸을 위해 사주신 제품이기도 하지만 따뜻하고 시원하고 아주 좋은 고가의 찜질기라 거실 쪽으로 움지이니 어머, 삭신이 쑤실 테지만 힘좀 썼다. 두손,두팔,심지어 두 다리를 지렛대삼아 밀기도 한다. 미쳤나보다. 왜 시작했나. 할 정도이다. 막내아들 결혼 후 외국으로 일하러 나간 후 첫 주말이다. 오늘 밤 잠은 다 잔 것같아 내몸을 힘들게 하고 뭔가 허탈하고 무기력해지는 나를 못살게 하고 싶은데 새로운 분위기를 위해 가구를 새로 구입할까 아니면 슬라이드 장으로 짜야하나 상담하러 갈까 하다가 집에 있는 아들이 두고 간 책장을 이용해본다. 홈카페장이 있던 자리엔 김치냉장고를 가져온다. 물론 이것도 머리로 그림을 그려본 내용이다. 계속 하다 보니 오후3시쯤 시작한 일이 밤 11시가 다 되어 마치게 되었다. 그런 김에 청소도 하고 버릴 것도 버리고, 집안 분위기도 바꾸고 일석삼조이다. 대단하다. 필자는 온몸이 힘들지만 아주 대 만족이다.
- 2016-09-26 10:00
-
- [잠을 부탁해 PART11] 우리들의 숙면 비결 공개
- [동년기자들이 전해주는 비결 ①]발가락 박수까지 총동원 박미령 동년기자 bravopress@etoday.co.kr “쟤는 잠들면 업어 가도 몰라. 여자애가 그래서 쓰겠니? 쯧쯧.” 어려서 외할머니에게서 귀가 닳도록 듣던 질책이다. 그 뜻도 모르는 채 잠드는 것이 부도덕한 일로 여겨져 ‘너무 깊이 잠들면 안 되는 거구나. 어떻게 하면 잠귀가 밝을 수 있을까’ 같은 얼토당토않은 고민에 휩싸인 적이 있다. 그런데 이제 늙으니 꿀잠을 자던 시절은 훅 가고 오히려 잠이 안 와 고통 받을 때가 많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업혀 가도 좋으니 푹 좀 자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코를 기관차 지나가는 소리처럼 화끈하게 고는 남편과 사는 친구가 있다. 언젠가 그가 친정에 가서 자던 날 친정 식구는 모두 날밤을 새웠다. 물론 모두 각자의 방에서 잤지만 기관차 소리는 밤새 쉴 새 없이 달려 각 방을 파고들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베개만 대면 잠을 자서 남편 바로 옆에서 30년 동안 자도 그가 코 고는 줄은 전혀 몰랐다고 한다. 그야말로 천생연분이다. 평생 누가 업어 가도 모르게 자는 그 친구가 부럽다. 불면의 밤엔 시계 소리도 고통 어쩌다 ‘불면의 군단’에게 공격이라도 받은 날엔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하며 양을 수없이 세도 효과가 없다. 그리고 시계 소리는 갈수록 더 크게 들린다. ‘묵음 시계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요즘은 좋아하는 커피도 오후에는 겁이 나서 못 마신다. 물론 오후에 커피를 삼가도 잠 안 오는 날은 여전히 있다. 궁리 끝에 어디선가 주워들은 불면증을 없애는 몇 가지 방법을 시도해 보았다. 우선 자기 전에 따뜻한 우유를 한 컵씩 마셔 보았다. 약간 효과가 있는 듯했으나 그 방법은 필자에게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었다. 빼도 시원치 않은 살이 푹푹 찌는 것이었다. 바로 중단하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았다. 다음은 머리맡에 양파 반쪽을 놓고 잠을 청하는 방법이다. 이것도 효과가 있는 듯했지만 또 다른 부작용이 있었다. 온몸에서 양파 냄새가 진동했다. 향수는 뿌리지 못할망정 이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찾아보니 술을 약간 마시는 방법도 있다. ‘아하! 그럼 이왕이면 몸에 좋다는 적포도주를 마셔 봐야겠다. 이건 일거양득이네! 바로 이거였어’ 했다. 이것은 효과가 꽤 있었다. 그러나 잠드는 술의 양이 처음에는 3분의 1잔이었으나 점차 2분의 1잔, 1잔 이런 식으로 점점 늘어가니 원하지 않은 술고래가 되기 십상이었다. 술고래는 한 집에 남편 한 명으로 족하지 않은가. 양쪽 발가락 부딪치면 특효 다음 시도한 것은 우연히 요즘 유행하는 1인 방송 ‘팟방’에서 들은 어느 명상전문가 여박사의 불면증 해소법이었다. “양쪽 엄지발가락 부딪치기를 1000번 하면 잠이 와요.” 필자는 ‘아니 1000번을 어떻게 해. 앓느니 죽겠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똑딱이는 시계 소리 들으며 새벽 3시까지 있다 보니 슬그머니 두 발가락을 맞대고 부딪치기 시작했다. 1000번이 되기 전 언제 잤는지 모르게 스르르 잠들고 말았다. 그래서 요즘은 이 방법을 쓴다. 또 한 가지가 있다. 이것도 지나가다 방송에서 들은 것 같은데 검지와 중지 사이 손바닥 부분을 양손 모두 지압하는 방법이다. 이 두 가지가 필자가 잠이 안 올 때 100% 효험을 보는 방법이다. [동년기자들이 전해주는 비결 ②]미루었던 일 하는 날 최갑숙 동년기자 bravopress@etoday.co.kr 필자에게 불면의 밤은 드물다. 태생적으로 잠꾸러기이다. 초저녁 일찍 잠들면 이른 아침에 기상한다. 잠버릇으로는 올림픽 금메달감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초등학교 시절 우연히 마셔 본 첫 커피로 밤잠을 자지 못한 적은 있다. 그 밤이 보름밤이라 마당 가득히 내려앉아 있는 월광이 마치 북극권 백야같이 비치는 신비한 세상을 만들었는데 커피와의 상승효과로 불면의 밤을 보낸 적이 있다. 잠 때문에 부부싸움 불면 대처법을 두고 필자 부부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거리가 있어 다툼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남편이 피로가 쌓이거나 감기몸살을 앓아 개고생할 때면 필자는 수면이 치유의 첩경이란 판단으로 편안한 잠자리 제공한다. 그러나 남편은 언제나 아플 때는 잘 먹어야 병을 쉽게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평소보다는 입맛을 잃어 식욕이 감퇴한 상태에서 먹지 못하면 병을 빨리 털고 일어날 수 없다는 강박증으로 필자를 들볶으며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달라고 요구한다. 필자는 이왕 입맛도 없으니 잠이나 푹 자자는 주장이다. 자고 일어나서 병기가 꺾인 후엔 입맛이 살아날 것이고 그때 잘 먹으면 된다는 것이다. 먹는 것은 평소에 잘 먹어 면역력을 강화해 놓아야지 병이 든 후에는 장기 투병하여야 하는 병이 아닌 바에야 임시로 먹는 것이 면역력을 더 강하게 할 수 없다는 얘기다. 우선 병을 이기기 위하여 에너지를 만들어야 하는데 에너지 생산의 원천은 수면이 아니겠는가. 아프면 필자는 무조건 수면부터 취한다. 수면은 쌓인 피로도 해소해 주면서 힘을 주어 병을 쉽게 털어 버리게 한다. 아이들이 어려서 아플 때도 필자는 업어 재우는 데 치중했다. 반면 남편은 아이에게 먹이려고 하지 않고 업어서 재우려고만 한다고 성화가 대단하였다. 늘 필자 판단과 방법이 훨씬 효과가 있는데도 어떻게 된 일인지 남편은 자기의 주장을 끝까지 고집한다. 장롱 정리는 잠의 보약 아무리 잠꾸러기이고 불면은 문제 되지 않는 사람이라도 가끔 불편스럽고 고통스러운 불면의 밤은 있다. 갑자기 심한 일을 하였다거나 잠자는 시간을 놓쳤거나 무거운 고민거리가 머리를 짓누르면 잠은 멀리멀리 달아나 버린다. 필자가 정서적으로 컨트롤할 수 없는 사건이 발생해도 마찬가지다. 이럴 경우 잠드는 시간이 길게 늘어지면서 머리가 띵하고, 몸은 나른해지며, 삶의 무게도 천근만근이 되어 버린다. 이런 날 필자는 그 시간이 오밤중이든 새벽이든 가리지 않고 미루어 두었던 하기 싫은 일을 시작한다. 일단 벌떡 일어나 커피부터 진하게 블랙으로 한 잔 마신다. 그리곤 미뤄 두었던 장롱 정리를 한다. 때로는 주위를 소란하게 하는 소음을 만드는 일을 할 때도 있다. 가령 덜커덕덜커덕 시끄럽게 가구를 옮기고, 책장 정리를 하며, 물소리 시끄럽게 내면서 손빨래를 한다. 일부러 필자 자신이 몸과 소리에서 피로감이 들도록 몸을 움직인다. 필자가 사는 집은 차곡차곡 아래, 위, 옆이 이어져 소리의 이동이 쉬운 집단 주거단지가 아니라 소음을 불평할 사람이 없다. 잠을 자기 위해 책을 읽거나 조용히 사색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잠이 오지 않으면 첫 증상이 머리가 맑지 못하고 정신 집중이 되지 않으니 그런 일들은 할 수가 없다. 팔다리를 움직여 하는 일이 몸을 피로하게 만들어 달아난 잠을 불러온다. [동년기자들이 전해주는 비결 ③]막걸리 한 사발이면 업어 가도 몰라 백외섭 동년기자 bravopress@etoday.co.kr 이른 새벽 마을 체육공원에서 운동하는 시니어가 많다. 이들에게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잠을 잘 자지 못해 운동하는 것”이라고 한다. 잠 잘 자는 필자에겐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렇다고 항상 잠을 잘 잤던 것은 아니다. 잠을 그르친 날도 있었다. 그때마다 이런저런 시도도 해봤지만 허사였다. 그런데 막걸리 한 사발이 만병통치약임을 알게 됐다. 그것은 필자에겐 지리상 대발견에 버금가는 역사적 발견이었다. 전전반측 불면 극복작전 불면증은 대입 준비에 바빴던 고교 시절에 시작되었다. 문제 하나를 해결하기 위하여 생각을 깊게 할수록 잠은 저 멀리 도망갔다. 그렇게 뒤척이다 새벽녘에야 잠이 들면 그날은 공부나 컨디션이 엉망이 되고 말았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서도 불면증은 개선의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필자는 남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체질에 맞는 잠 잘 자는 방법을 찾기 시작하였다. 마인드컨트롤, 따뜻한 물로 목욕하기, 책 읽기, 땀 흘려 운동하기 등 좋다는 방법을 총동원하였으나 신통한 결과를 얻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막걸리 한 잔에 잠이 잘 든다는 것을 터득하였다. 막걸리 한 사발이 확실한 수면제! 강원 원주시의 모 부대에서 3년 복무하였는데 황당하게도 막걸리 한 잔 마실 수 없는 금주 부대였다. 못하게 하면 더 하고 싶은 법. 사회에서 막 배우기 시작한 막걸리 생각이 간절했다. 그래서 지휘관 눈을 피해 그 맛난 술을 마실 방법을 찾고 찾았다. 그런데 한 방법이 있었다. 농가 가게와의 내통이었다. 부대 철조망 가까운 곳에 조그만 농가 가게가 있었는데 돌멩이를 슬레이트 지붕에 던지면 가게주인이 얼굴을 내밀어 소주를 건네는 것이었다. 물론 소리를 내면 걸리기 때문에 주문은 수신호로 이뤄졌다. 큰 원을 그리면 큰 병, 두 팔을 높이 들면 중간 병, 한쪽 팔만 들면 작은 병을 의미했다. 필자와 동기 서너 명도 이 방법에 따라 소주 한 병을 획득했다. 갖은 노력끝에 얻은 소주는 입에 착착 감겼다. 하지만 별 안주도 없이 마시니 몇 잔 들이켜지도 못하고 눈이 감겼다. 이런 필자를 고참이 아니라 항우장사도 깨울 재주가 없었다. 아내와 40년 넘게 사는 동안 투정을 딱 한 번 들었었다. 술 마시고 집에 안 들어온 것이 화근이었다. 신혼 시절 가까운 친구 모임을 이 집 저 집 돌아가면서 했다. 그러던 중 한 친구가 큼직한 식당을 열었다. 당연히 일당들의 모임 장소가 되었고, 방 하나는 철야 놀이터로 사용됐다. 우리는 그 방에서 잔을 연신 비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 눈이 스르르 감겼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는 당시 있었던 ‘통행금지’가 막 해제될 때였다. 부랴부랴 집에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상황 끝이었다. 연년생 아이들을 도닥거리면서 뜬눈으로 기다리던 아내가 “전화라도 해주면 걱정이라도 않지”라고 엄중히 경고했다. “전화할 정신이 있었으면 집에 오지”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것으로 상황을 종료했지만 잘못한 것은 필자가 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후엔 술은 매우 조심스럽게 마신다. 하지만 불면증이 깊어져 도무지 안 되겠다 싶으면 막걸리 한 사발 정도 마신다. 이렇게 하면 눈이 감기고 잠이 들어 아침까지 세상 모르게 잔다.
- 2016-09-20 14:59
-
- [로즈 엄마의 미국 이민이야기] (20) 코넬리의 하소연
- 사람들이 사는 곳은 다 비슷했다. 미국인들에게도 희로애락이 함께 공존했다. 겉으로 봐서는 냉정하며 대화가 차단될 것만 같은 코가 높은 사람들에게도 눈물이 있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감정이 있게 마련이다. 단지 서로가 소통이 되지 않을 뿐, 어느 정도 사이가 통하면 깊숙한 대화가 오고 가기 시작한다. 더구나 미국인들은 조금만 친해지면 하루의 일과를 말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강아지의 생활사까지도 털어놓는다. 어느 날인가, 젊은 백인 한 사람이 새 손님으로 가게를 찾아왔다. 키가 훌쩍 크고 코가 높다란 전형적인 미국인, 라스트 네임(성)이 코넬리라는 사람이었다. 훠스트네임(자기이름)은 데이비드라는 이름으로 필자의 남편(데이비드)과 이름이 같았다. 첫 만남 이후부터 그는 어찌나 상냥하고 친절한지 필자 부부를 만날 때마다 얼굴에 하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코넬리는 자기의 직업이 돌 수입업자라고 진지하게 소개를 했다. 그전에는 음악을 아주 즐기는 뮤지션이었다며 음악에 대한 이야기도 다양하게 늘어놓았다. 한 6개월 이상을 단골로 열심히 필자의 세탁소를 드나들었다. 어느 날, 그가 불쑥 한 여인을 데리고 왔다. 얼굴이 까맣고 키는 자그마하고 예쁘장한 그녀가 자기 와이프라며 극진한 소개를 했다. 두 사람은 나이 차이가 열 살 이상은 되어 보였다. 와이프라는 까무잡잡한 여자는 누가 봐도 귀엽고, 이목구비가 아주 아름답게 생겨 남자들이 한눈에 반할 정도로 예쁘게 생겼다. 미국인들은 때로는 자그마하고 예쁜 동양인도 무척 좋아하는 것 같았다. 필자는 두 사람의 이야기에 넋을 놓고 쳐다보고 있다가 어떻게 만났느냐고 문득 물어보았다. 그녀는 브라질 여성이었다. 나이가 훨씬 많은 남편인, 코넬리가 돌 사업으로 브라질을 갔다가, 그곳에서 만나서 그녀를 미국까지 데리고 왔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무척 사이가 좋은 신혼부부가 깨가 좌르르 쏟아지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은 필자 부부 앞에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사랑 행위가 절절 넘쳐흘렀다. 일 년쯤이 지나, 하루는 코넬리가 얼굴에 슬픔이 가득한 채로 힘없이 가게로 들어섰다. 필자 남편이 서둘러 그를 맞이했고 무슨 일이 있느냐고 안부를 물었다. 그는 서슴없이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와이프가 이혼을 원하는데 어쩌면 좋으냐는 것이다. 더구나 오랜만에 겨우 임신을 했는데 막무가내라며, 뜻이 안 맞아 부부싸움을 왕창했다고 하는 것이다. 필자 부부는 무어라 답을 해줄 수가 없었다. 그저 참고 기다리라는 말밖에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새파랗고 맑은 그의 눈에 진심 어린 눈물이 고여 왔다. 필자의 남편이 두 손을 잡고 안심을 시키며 함께 걱정을 해주었다. 그 후로 일주일이 지나 그가 심각한 얼굴로 또 찾아왔다. 결국 와이프가 집을 나갔다고 울먹거리며 깊은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필자 부부는 직접 브라질로 가보라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저 넋두리를 들어주는 것도 큰 위안이 되는 모양이었다. 단지 받아주고 몇 마디 해 준 것 밖에는 없었다. 그 후로 한 달쯤이나 지나 코넬리는 그녀를 브라질에서 직접 데리고 돌아왔다. 어느새 피부가 더 새까매진 두 사람의 사이가 좋아져있었다. 코넬리의 얼굴에서도 다시 환한 모습이 보여왔다. 배가 남산만 한 그녀는 배를 까뒤집어 보이며 자랑을 서슴지 않았다. 아기가 들어있는 바가지 모양의 둥그런 배 위에 사인을 하라고도 했다. 그들의 묘한 문화였다. 참으로 알 수 없는 미국 남녀의 관계였지만 그들이 다시 만나게 된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었다. 그들도 필자 부부를 다시 만나게 되어 매우 기쁘다며 반가움에 서로 허그를 하며 함박 웃음꽃을 피웠다. 코넬리는 아기를 낳기 전에 필자 부부를 자기 집으로 초대하겠노라고 했다. 쾌히 승낙을 하며 필자 부부는 선물로 코리안 바비큐를 준비하겠다고 했다. 미국 사람들은 코리안 바비큐를 무척 좋아라 했기 때문이었다. 그날의 만남을 기약하며 손을 흔들며 서로 헤어졌다. 얼굴이 까맣고 자그마한 그녀는 배가 불쑥 나왔지만 엉덩이를 씰룩대고 콧노래를 부르며 걸어나갔다. 촐랑대는 어리고 까만 남미 임산부의 모습이었지만 두 부부의 사랑이 참으로 아름답고 흐뭇했다. 결국 코넬리 눈물의 하소연이 결실을 맺은 것이었다. 사람이 때로는 하소연을 국경 넘어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도 약이 되는 것만 같았다.
- 2016-08-30 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