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 파올로 살바도르 개인전 : 새벽의 백일몽
일정 1월 29일까지 장소 일우스페이스
국제 미술계에서 부상하고 있는 젊은 작가, 파올로 살바도르(Paolo Salvador, 31)의 개인전 ‘새벽의 백일몽’(Ensueos en el amanecer)은 국내에서 열린 첫 개인전이다.
파올로 살바도르는 페루 출신 작가다. 그는 잉카 제국의 모태였던 케추아(Quechua) 부족의 후예로, 역사적 자부심이 강한 가정에서 성장했다. 강력한 모국주의 정서는 그의 예술에 영감을 주는 원천이 됐다.
살바도르의 작품에는 인간인지 동물인지 모호한 생명체가 자주 등장한다. 고대 페루의 종교에서 사람과 동물은 동등한 존재이며, 페루 신화에도 사람과 신성한 동물이 상생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살바도르의 작품에서도 사람과 동물은 주종 관계가 아니라, 머나먼 미지의 여행을 떠나는 동반자로 표현된다. 살바도르는 급격히 변모하는 글로벌 환경 속에서도 페루의 토착성,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페루의 고대 신화와 설화에서 이미지를 끌어오되, 개인의 경험과 현대 사회의 관점으로 재해석한 화풍을 창안했다. 서구 르네상스와 표현주의 같은 미술사를 수용하면서도 페루 전통문화와 결합하는 조형 언어를 천착했다. 고립, 고독, 몽상을 주제로 삼으면서 느슨한 붓 터치와 청과 적의 자극적인 색채를 통해 우화적인 서사를 만들어냈다.
◇ 알렉스 카츠 개인전 : Flowers 꽃
일정 2월 5일까지 장소 타데우스 로팍 서울
미국 출신 작가 알렉스 카츠(94)는 ‘세계 10대 화가’이자 ‘현대 초상회화 거장’으로 통한다. 이번 전시는 카츠의 작품 중에서도 꽃을 주제로 한 회화들을 특별히 조명한다. 이 꽃 시리즈는 이전에 소개된 적 없었던 작품들이다. 팬데믹이 시작되고 그린 것이기 때문.
카츠는 “나는 (이 시리즈를 통해) 팬데믹에 지친 세상을 어느 정도 격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한 이번 전시는 자연을 배경으로 한 초상화까지 아우르며, 한 장르의 작품만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아시아에서의 첫 번째 전시로 의의를 더한다.
●Book
◇ 인생을 바꾸는 100세 달력(이제경·일상이상)
100세 시대다. 이는 80세까지 일해야 하는 시대라는 뜻이기도 하다. 과거와 같이 20년 공부해 직장에서 30년 일하고 은퇴하는 ‘3단계 인생’(교육-일-은퇴)으로는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어렵다. 이에 이제경 100세경영연구원 원장은 책을 통해 ‘골드 인생 2.0’을 제시한다.
‘골드 인생 2.0’은 건강한 체력과 정신으로 노후에도 스스로 경제활동이나 취미를 즐기면서, 자신과 가족의 행복뿐만 아니라 지역과 글로벌 사회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개인의 사회책임을 실천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먼저, 이제경 원장은 80세까지 일하기 위해서는 ‘4차 산업혁명 등으로 평생직장이 사라지므로 세 번은 은퇴하고 다시 도전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는 비전문가에서 전문가로 변신하는 첫 번째 은퇴하기, 전문가에서 사업가로 대변혁하는 두 번째 은퇴하기, 사업가에서 사회봉사자의 길을 걷는 세 번째 은퇴하기를 추천한다.
비전문가에서 전문가로 변신해 근로소득 외에 업무 관련 기타소득도 얻고, 전문가에서 사업가로 대변혁해 사업소득 외에 금융과 부동산 등 자산소득도 얻고, 사업가에서 사회봉사자로 거듭나 사회가치 소득과 자산소득까지 얻으면 나뿐만 아니라 증손자까지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저자는 자신과 여러 부자들이 실천하고 있는 금융·부동산·미술품 투자 노하우, 합법적으로 세금 줄이는 방법 등도 소개했다. 또한 자신의 기대여명을 측정하고 ‘건강수명 늘리기’, ‘정신건강 챙기기’ 등 100세까지 건강하게 사는 법, 가정과 사회에서 행복한 인간관계 만드는 방법도 담았다.
◇덴마크에서 날아온 엽서(표재명·드림디자인)
키에르케고르 철학의 국내 최고 권위자인 고(故) 표재명 교수. 그는 1978년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 연구교수로 1년간 현지에 머물면서 아름다운 이미지의 엽서를 한국의 가족들에게 보냈다. 가족들이 그 엽서들을 모아 펴낸 책으로, 아버지의 마음이 담겼다.
◇라디오 탐심(김형호·틈새책방)
강원도에서 방송기자로 일하는 저자는 30대 초반부터 라디오를 수집하고 연구했다. 책에는 라디오와 관련된 에피소드 27가지가 담겼다. 라디오가 탄생과 성장, 전성기와 쇠퇴기를 거치는 동안 인간, 사회와 어떻게 상호 작용을 하고 어떤 유산을 남겼는지 얘기한다.
◇이까짓, 탈모 : 노 프라블럼 (대멀(김준석)·봄름)
천만 탈모 시대. 탈모는 이제 청년과 중년의 연결고리가 됐다. 15년 차 대머리 영화배우이자, 탈모인 대나무숲 채널 ‘대멀’의 주인장인 저자. 그는 탈모 고충부터 웃픈 가발 경험담 등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담아내 탈모인들에게 정보와 희망을 전달한다.
●Stage
◇엑스칼리버
일정 1월 29일 ~ 3월 13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연출 권은아
출연 김준수, 김성규, 이지훈, 에녹, 강태을, 신영숙, 장은아, 민영기, 손준호, 김소향, 케이 등
국내 대형 창작 뮤지컬 ‘엑스칼리버’가 서울에서 단 6주간 앙코르 공연을 펼친다. 아더 역 김준수, 랜슬럿 역 이지훈, 에녹, 강태을, 모르가나 역 신영숙, 장은아, 멀린 역 민영기, 손준호, 기네비어 역 최서연, 울프스탄 역 이상준, 엑터 역 이종문, 홍경수가 다시 한번 무대를 빛낸다. 여기에 아더 역 김성규와 기네비어 역 김소향, 러블리즈 출신 케이가 새롭게 합류해 기대를 더한다. ‘엑스칼리버’는 고대 영국을 지켜낸 신화 속 영웅 아더왕의 전설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평범한 소년 ‘아더’가 성인이 되고 왕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과 싸우는 이야기를 그렸다. 영웅이 아닌 평범한 인간인 아더가 고난과 역경을 헤쳐가는 과정은 관객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준다. ‘엑스칼리버’는 뮤지컬 ‘모차르트!’, ‘엘리자벳’, ‘웃는 남자’, ‘마타하리’ 등 수많은 흥행작을 탄생시킨 EMK의 제작 노하우가 집약된 세 번째 오리지널 뮤지컬로 2019년 월드프리미어로 초연됐다.
◇라스트 세션
일정 1월 7일 ~ 3월 6일
장소 대학로 티오엠
연출 오경택
출연 신구, 오영수, 이상윤, 전박찬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배우 오영수의 차기작으로 화제를 모은 연극이다. 오영수는 신구와 함께 프로이트 역에 더블 캐스팅됐다. 이상윤과 전박찬은 루이스 역을 맡아 연기한다.
정신분석의 대가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나니아 연대기’ 작가이자 영문학자인 C. S. 루이스가 직접 만나 논쟁을 벌인다는 상상에 기반한 2인극이다. 극은 영국이 독일과의 전면전을 선포하며 제2차 세계대전에 돌입한 1939년 9월 3일을 배경으로 한다. 프로이트와 루이스는 신에 대한 물음에서 나아가 삶의 의미와 죽음, 인간의 욕망과 고통에 대해 한 치의 양보 없이 치열하면서도 재치 있는 논변을 쏟아낸다.
◇그때도 오늘
일정 1월 8일~2월 20일
장소 서경대학교 공연예술센터 스콘2관
연출 민준호
출연 이희준, 김설진, 이시언, 차용학, 오의식, 박은석 등
연극 ‘그때도 오늘’은 네 가지 장소와 네 가지 시간을 가지고 총 여덟 명의 배역이 등장하는 에피소드 형식의 공연이다. 1920년대 광복 전의 모습, 1940년대 제주도, 1980년대 부산, 2020년대 최전방 등 총 네 가지 배경이 나온다. ‘그때’를 지금 ‘현재’로 여기며, 각자의 눈에 비친 미래를 확신하는 인물들의 향연이라고 할 수 있다.
오의식, 박은석, 김설진은 2020년대의 은규, 1980년대의 주호, 1940년대의 사섭, 1920년대의 윤재 역의 남자1 배역을 맡는다. 이희준, 이시언, 차용학은 2020년대의 문석, 1980년대의 해동, 1940년대의 윤삼, 1920년대의 용진 역의 남자2 배역을 연기한다.
시니어에게 MZ는 가깝지만 먼 세대다. 어디에서나 마주하지만, 이해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은퇴를 준비하는 시니어와 달리 그들은 사회로의 진입 혹은 사회 내에서의 성장에 몰두한다. 소비를 통해서 지향하는 가치를 드러내며, 때로는 SNS를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이른바 ‘가치 소비’를 지향하는 MZ세대는 시장 내에서 핵심 소비층으로 자리 잡았다. MZ를 이해하기 위해 그들의 다양한 소비문화를 살펴본다.
MZ세대는 시장에서 주목하는 핵심 소비층으로 거듭나고 있다. 서울시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MZ세대는 2020년 기준 서울 인구의 35.5%로 연령대 중 가장 큰 세대 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이와 달리 베이비부머 세대는 13.4%에 불과했다. MZ세대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67.2%로 베이비부머 세대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추월했다. 베이비부머의 은퇴와 더불어 MZ세대가 경제활동인구로 진입하면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MZ세대는 명품을 통한 플렉스(Flex) 소비문화를 즐긴다. 실제로 샤넬을 사기 위해서 꼭두새벽부터 줄을 서는 오픈런도 마다하지 않았다. 플렉스는 미국의 힙합 문화에서 유래한 것으로, 부와 성공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사람인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20·30대의 52.1%가 플렉스 소비문화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50% 이상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이유로 ‘자기만족’을 꼽았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교수는 “스타벅스 사은품을 얻기 위해 커피 몇 잔을 더 마시는 것도 그들에게는 플렉스다”라며 “MZ의 플렉스는 과시보다 심리적 만족과 보상에 가깝다”라고 설명했다.
MZ세대에게 소비란 가치를 증명하는 일종의 표현 수단이다. 이들은 이른바 ‘가치 소비’를 지향하며, 신념(Meaning)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Coming Out) 소비를 줄여 미닝아웃(Meaning out)이라 부르기도 한다. 단순히 비싸고 품질이 좋다는 이유로 소비를 결정하지 않는다. 제품의 무해성, 회사 경영인의 도덕성, 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 다양한 가치를 꼼꼼히 살펴보고 결정한다. 성장관리 앱 그로우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MZ세대의 10명 중 8명은 자신을 가치 소비자로 평가했다.
MZ세대는 소비의 지속가능성에 주목한다. 지속가능한 소비란 현재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미래 세대가 사용할 자원을 낭비하거나 희생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들은 다음 세대를 위해 환경과 자원을 소중히 다루고, 이러한 것이 지속가능할 수 있도록 현명한 소비를 실천 중이다. 친환경 재료 유무, 재활용 가능성 등 환경적 가치를 위한 소비를 지향하고 있다. 이영애 인천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MZ는 제로웨이스트나 비건, 리사이클링 등과 같은 지속가능한 소비를 한다. 소비의 목적을 소유보다는 실용성과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맞춘다”라고 말했다.
지속가능한 소비를 실천하는 제비족
실제로 지속가능한 소비를 실천하는 ‘제비족’이 생겨났다. 중년에게 제비족은 부정적인 의미가 강하지만, MZ세대에게는 다른 개념이다. 과거의 제비족은 몹쓸 짓을 하던 나쁜 부류의 사람으로 취급받았지만, 최근의 제비족은 지구의 환경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을 말한다. 제로웨이스트(Zero Waste)와 비건(Vegan)을 실천하는 이들을 일컫는 신조어다.
제로웨이스트는 쓰레기를 0(제로)에 가깝게 만드는 활동이다. 쓰레기 배출량을 줄여 환경을 보호한다. 예컨대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자제하고,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이용하며, 장 볼 때 일회용 봉투 대신 장바구니를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제로웨이스트숍 ‘비그린’에서 일하는 MZ세대 박민지(가명) 씨는 “기후위기 등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실감하고 2년 전부터 제로웨이스트의 삶을 지향하고 있다”라고 말하며 “다음 세대를 위한 선택이라고 생각하며, 개인의 변화로 전 지구적인 변화를 만들 수는 없겠지만 이런 소비를 통해 작은 목소리마저 내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 같다”라고 밝혔다.
지난해 ‘용기내 챌린지’가 인기를 끌었다. 이 챌린지는 음식 포장으로 발생하는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서 용기(勇氣)를 내서 용기(容器)를 내자는 취지를 담은 캠페인이었다. 배우 류준열과 그린피스 서울사무소에서 처음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어 확산됐다. 챌린지는 각종 SNS에 비닐이나 플라스틱이 아니라 천 주머니나 다회용기 등에 음식과 식재료를 담아온 각양각색의 사례를 게시한 뒤, ‘#용기내 챌린지’ 또는 ‘#용기내 캠페인’ 등의 해시태그를 붙였다.
아울러 비건의 인기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비건은 동물성 식재료나 동물실험을 거친 성분을 사용한 제품을 소비하지 않는 엄격한 채식주의자를 뜻했다. 하지만 비건은 최근 3년 사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이노션 인사이트 그룹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이전까지 연평균 약 300건에 불과했던 비건의 버즈량은 2019년부터 32배 이상 급증했다.
MZ에게 비건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중 하나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MZ세대의 약 27%는 비채식 위주로 먹되 필요에 따라 채식을 섭취하는 간헐적 채식을 하고 있었다. 조사에 따르면 이들이 채식을 지향하는 이유는 건강과 체중 관리,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실제로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SNS에 꾸준히 자신의 비건 제품 사용 후기 혹은 식단에 대한 평가를 남기는 이들이 늘어났다.
실제로 11월 기준 인스타그램의 비건 해시태그만 해도 약 70만 건에 달했다. 이기원 서울대학교 식품·동물생명공학부 교수는 “비건은 소수의 채식 생활에서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환경보호의 필요성을 느낀 개인들의 사회적 책임 의식에서 비롯된 현상으로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소비는 경제적 투표권
MZ세대는 환경적 기준과 더불어 윤리적 기준을 토대로 소비를 결정한다. 올바름에 대한 기준이 높은 세대이기에, 불편함에 목소리를 내고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행동한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그들은 선한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온라인에서 공론화하고, 뜻을 같이하는 이들을 모아서 주도적으로 선한 변화를 끌어낸다. 이렇게 선한 변화를 취하는 능력을 선취력이라 부른다. 그들에게 선함은 중요한 가치다.
MZ세대의 ‘선취력’은 소비문화에 고스란히 영향을 미쳤다. 이른바 돈으로 혼내주는 문화, 돈쭐 문화가 탄생했다. 돈쭐은 반어적 의미로, 착한 소비를 지향하는 행위다. 개인·소상공인·기업이 사회적으로 선한 행동을 했을 때 선행자가 매출로 보상받을 수 있도록 하는 소비다.
반대의 경우엔 불매로 대응한다. 2019년 당시 일본의 수출규제에 반발해 대규모 불매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일본의 한 의류 브랜드 매출은 70% 가까이 하락했으며, 편의점 수입 맥주 1위를 달리던 일본 맥주 브랜드는 급격하게 떨어졌다. 당시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 등과 같은 해시태그를 통해 불매운동이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이영애 교수는 “MZ세대에게 소비는 경제적 투표권과 같다. 투표를 통해 권리를 행사하듯이 선행을 실천한 회사나 자영업자에게는 착한 소비를 통해 매출로 보상을 해주고, 윤리적 기준에 어긋난 회사나 상품은 불매를 통해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드러낸다”라고 말했다.
MZ세대, 가치 기부로 판을 짜다
현재 MZ세대는 기부를 주도하는 세대로 거듭나고 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발표한 ‘2021 기부 트렌드’에 따르면 코로나19 특별모금에 참여한 기부자 중 MZ세대 비율은 38.2%에 달한다. 2014년 세월호 특별모금(25.6%), 2019년 강원도 산불(32.1%)과 비교했을 때 기부에 대한 관심도가 증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부에 관심이 많은 MZ세대는 기부의 방식도 남다르다. 통상적인 모금 이외에 기부런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기부에 참여하고 있었다. 기부런은 비대면 기부 마라톤을 말한다. ‘기부’와 ‘런’(run)이 합쳐진 형태로 후원금 형식의 참가비를 내고 일정 거리를 달린 후 SNS에 인증 게시물을 올리는 방식이다. 최근 미용의료 정보 플랫폼 바비톡이 기획한 ‘퍼플라이 마라톤 기부런’ 참가 티켓이 판매 오픈과 동시에 3분 만에 완판됐다. 이 캠페인은 암 환우들의 가발 구입비를 지원하기 위해 기획된 것으로, 참가비는 강동경희대학교병원에 기부될 것으로 알려졌다.
직접 기부의 판을 짜는 경우도 발생했다. 지난해 SNS상에서 자발적으로 기부를 독려한 ‘#1339 국민성금 캠페인’이 대표적인 예다. 대구 청년단체에서 시작한 캠페인이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이 캠페인은 질병관리청의 감염병 콜센터 번호 1339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1339원, 1만3390원, 13만3900원 등 1339를 연상할 수 있는 금액을 기부하도록 독려했다. 1명이 지인 3명과 공유하면 3일간 9명이 기부에 참여할 수 있다는 의미도 담았다. 두 달간 약 5만8000명이 참가했으며 약 1억6000만 원을 모금했다.
최근에는 NFT를 활용한 기부도 등장했다. NFT는 대체 불가능한 토큰으로 불리며,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기 때문에 복제나 위조가 불가능한 디지털 자산이다. 디지털 자산의 소유주를 증명하는 일종의 정품 인증서다. 최근 NFT가 기부 수단이 됐다. NFT 스타트업 ‘도어랩스’는 2020 도쿄패럴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의 모습을 NFT 카드로 만들어 판매하고 수익금은 전부 대한장애인체육회에 기부했다.
다양한 기부 방식이 등장했지만 MZ세대 기부의 본질은 그들의 가치관을 보여주는 기부다. 임명호 교수는 “MZ세대의 특성은 공존을 위한 공정에 관심이 많고, 자기 주도적인 태도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적극적인 태도로 사회 내에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노력한다. 가치 소비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가치관을 기부로 표현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중장년 남성 소수의 고민으로 여겨지던 탈모가 최근에는 남녀노소 불문 현대인의 걱정으로 자리 잡았다. 대한탈모치료학회에 따르면 국내 탈모 인구가 1000만 명에 육박한다. 우리나라 국민의 20% 정도가 탈모를 겪는 셈이다.
흔히 가을을 ‘탈모의 계절’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실제 두피가 가장 고통받는 계절은 한여름이다. 강한 자외선과 고온다습한 날씨에 두피와 모발이 혹사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강한 자외선은 두피에 염증을 일으키고 모낭을 손상시켜 탈모를 일으킨다. 또 무더운 날씨에 늘어난 땀과 피지가 대기 중 노폐물과 엉겨 두피에 쌓이면서 모낭을 막아 모발의 건강상태를 악화시킨다. 게다가 장마철의 습한 날씨는 각종 세균의 활발한 증식을 일으켜 두피질환을 유발하기도 한다.
따라서 여름에 두피 건강관리에 힘써야 가을에 자주 발생하는 탈모를 예방할 수 있다.
특히 남성 시니어에게는 여름철이 더욱 유의해야 하는 시기다. 남성은 호르몬 영향으로 피지 분비율이 여성보다 2배 더 높아 여름에 두피 관리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
여름철 탈모 관리법은?
① 자외선 차단하기
자외선이 강한 날 오랜 시간 햇볕을 쬐고 있으면 두피가 손상될 뿐 아니라 모발이 약해지고 탄력을 잃는다. 수분을 잃어 건조해지기도 한다. 따라서 햇볕이 강한 날에는 모자를 쓰거나 양산을 이용해 자외선을 차단해야 한다. 다만 통풍이 되지 않는 딱 붙는 모자는 두피 염증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피해야 한다. 모자를 쓰더라도 느슨하게 착용하거나 양산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② 저녁에 머리 감기
머리는 아침보다 저녁에 감는 것이 좋다. 낮 동안 두피와 머리카락에 쌓인 유해물을 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머리를 감을 때는 물의 온도를 너무 뜨겁지 않게 해야 한다. 뜨거운 물은 두피와 모발을 건조하게 만들어서다. 거품을 낼 때는 두피에 바로 올려 비비지 말고 손에서 충분히 거품을 낸 후 비비는 게 좋다.
③ 장마철 비 맞지 않기
두피와 모발에는 종일 생성된 피지와 각질, 땀, 그리고 헤어스타일링 제품과 같은 잔여물이 가득하다. 여기에 비를 맞으면 대기 중의 각종 오염물질이 모낭 입구를 막아 잔여물 배출을 어렵게 한다. 또 비를 맞아 두피가 습해지면 오염물질과 함께 각종 세균이 번식하기 쉽다. 우산을 챙기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비에 젖었을 때는 곧바로 샴푸로 씻어낸다.
④ 수영 뒤에 바로 머리 감기
수영장에서 수영을 마친 뒤에는 바로 머리를 감는다. 수영장 물에는 소독을 위해 ‘클로로린’이라는 화학성분이 포함돼 있다. 클로로린은 모발의 천연성분을 빼앗아가므로 수영 뒤에는 최대한 빨리 샴푸로 헹궈내야 한다. 화학성분으로 인한 모발 손상을 막고 싶다면 수영장 물에 들어가기 전 미리 샤워실에서 모발을 적시는 것도 방법이다.
⑤ 무더운 날에는 통 가발 사용하지 않기
탈모 부위를 가리기 위해 가발을 쓰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무더위로 땀과 피지가 다량 분비되는 여름에 두피 전체를 둘러싸는 통 가발은 두피 통풍을 저해한다. 두피에 통풍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두피의 각질과 피지, 땀 등이 가발 안에 고여 두피 내 습도가 상승한다. 습도 상승은 모낭충과 비듬균 같은 세균이 번식하기 좋은 환경이므로 두피염을 유발해 모낭이 손상될 수 있다.
여름에는 되도록 가발을 착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래도 가발을 써야할 때는 주기적으로 가발을 벗어 두피의 습도가 올라가지 않도록 두피를 건조시키는 활동이 필요하다. 또 꽉 조이는 통가발은 두피 혈액순환까지 막으므로 전문가와 상담해 여유 있는 크기의 가발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100세 시대, 시니어도 탈모 관리에 힘써야
탈모를 어쩔 수 없는 노화 현상이라고 여기고 그대로 방치하는 시니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모발은 단순 미용을 넘어 개인의 인상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는 개인의 자신감과도 연결돼 심리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친다.
평균 기대수명이 늘면서 시니어는 앞으로도 활발한 사회활동을 이어갈 가능성이 커진다. 따라서 단정하고 호감 가는 인상은 시니어에게도 놓쳐서는 안 될 포인트다. 모발이 인상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요소인 만큼, 자신감과 대외 이미지를 위해 탈모에 대해 관심 갖고 관리하고 치료하는 게 필요하다.
탈모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탈모는 남성형 탈모(안드로겐성 탈모)다. 남성형 탈모는 이 증상이 천천히 진행되기 때문에 초기 단계에서는 심각한 수준이 아니라고 판단해 탈모 삼푸나 영양제와 같은 비의학적인 방법으로 대처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비의학적인 방법은 탈모 진행을 늦추는데 보조적인 도움을 줄 수 있지만 탈모를 막거나 이전 상태로 되돌리는 근본적인 치료법이 될 수 없다.
탈모는 초기에 발견하고 적절한 방법으로 꾸준히 치료하면 진행 속도를 늦추거나 증상을 개선할 수 있다. 그러나 진행성 질환인 만큼 증상이 심화될수록 관리도 어려워진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체크리스트에 있는 증상이 확인되면 가능한 빠르게 전문의를 찾아 치료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
① 두피 앞부분과 정수리 부분 모발이 가늘고 짧아진다.
② 모발이 가늘고 부드러워지는 반면 가슴 털과 수염이 굵어진다.
③ 하루에 빠지는 모발 개수가 100개 이상이다.
④ 머리 밑이 가렵고 비듬이 생기는 증상이 지속된다.
⑤ 친가나 외가에 탈모 증상을 가진 가족이 있다.
⑥ 이마선이 뒤로 밀리고 정수리 부위 두피가 들여다보인다.
심한 탈모에는 ‘모발이식’이 좋은 대안
이미 탈모가 많이 진행된 시니어라면 모발이식을 고려해보는 것도 좋다. 모발이식은 탈모 문제를 가장 빠르게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다.
중년층은 젊은 층에 비해 두피나 모발이 약해진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후두부에서 모발을 채취하는 모발이식 시 두피와 모발의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한 맞춤형 모발이식으로, 한 모낭이라도 손실 없이 이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과도하게 많은 모발을 이식하면 오히려 부자연스러워 보일 수 있으니, 전체적인 얼굴형과 탈모 진행 상황, 모발 굵기 등을 고려해 최적의 디자인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여름에 모발이식을 하면 회복하는 과정에서 절개 부위가 땀으로 인해 염증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상식이다. 계절을 고려해 적절한 시기를 놓치기보다는 자신의 상태에 맞는 모발이식 디자인과 수술법을 통해 맞춤형 모발이식을 서둘러 진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모발이식 시 절개나 부작용, 회복기간에 대한 우려가 크다면 비절개 모발이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비절개 모발이식은 후두부에서 필요한 모낭만을 채취해 빠르게 이식하는 분할기법이다. 채취 부위가 눈에 띄지 않을 뿐 아니라 절개 과정이 없어 흉터나 통증이 거의 없이 빠른 회복을 기대할 수 있다.
이규호모아름의원 이규호 대표원장은 “탈모는 계속해서 진행되는 것이므로 악화될 수 있어 계절에 관계없이 빠르게 검사를 받고 치료해야 한다”며 “이미 중증도 이상이라면 모발이식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탈모는 더 이상 중장년층 남성의 전유물이 아닌 성인 남녀의 대표적인 고민이다. 따라서 탈모를 부끄럽게 여겨 방치하지 말고, 증상이 나타났을 때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한다. 이를 통해 자신감을 되찾고 건강하게 사회활동을 이어가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 Exhibition
◇기후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
일정 8월 8일까지 장소 서울시립미술관
환경보호가 전 세계의 과제로 당면한 가운데,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는 전시가 열렸다. 모든 생태계의 집인 지구, 인간이 거주하는 건축물, 새와 곤충의 서식지 등 세 개의 집을 중심으로 전시를 구성해 그 안에서 벌어진 참혹한 환경오염을 이야기한다. 이상 기후로 집단 고사한 침엽수, 아사한 동물, 남·북극의 해빙 등 죽어가는 지구의 모습을 실제 고사목과 박제 동물, 영상 등으로 선보이며, 아파트를 짓고 부수는 과정에서 생산 및 폐기되는 사물을 작품으로 재해석한다. 전시실뿐 아니라 마당, 로비, 건물 외벽 등 여러 곳을 전시 장소로 활용해 미술관 전체를 인간을 둘러싼 환경처럼 보이도록 했으며, 특히 옥상에는 서식지를 잃은 새와 곤충의 보금자리를 설치해 전시 일정과 무관하게 올가을까지 남겨둔다. 기후위기에 대한 전시지만 그 자체가 탄소 배출 행위라는 모순을 고려해, 전시 준비 과정에서도 폐기물과 에너지 사용을 최대한 줄이고 재사용과 재활용을 생활화했다. 배우 박진희가 국문 오디오 가이드 녹음에 참여해 진심 어린 목소리로 인류가 직면한 현실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나무 인형의 비밀 - 체코 마리오네트
일정 8월 29일까지 장소 서울역사박물관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지구 반대편 국가 체코의 전통문화를 생생하게 즐길 수 있는 전시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렸다. 체코의 흐루딤인형극박물관과 협력해 마련된 이번 전시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체코 인형극을 중심으로 156점의 인형과 무대 배경, 실황 영상 등을 다채롭게 선보인다. 18세기 유랑극단에서 출발한 체코 인형극은 라디오나 TV가 없던 시절 도시 간 소식을 전달하며 민족의식을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전시는 이 같은 기원을 시작으로 인형극 부흥기를 맞은 20세기 초중반, 다양한 인형극장이 탄생한 20세기 후반까지 인형극의 발전을 연대기적 구성으로 살펴본다. 또한 단순히 역사를 돌아보는 데 그치지 않고, 오감을 만족시키는 체험존을 마련해 전시장을 찾은 어린이들의 흥미를 유발한다. 체코에서 직접 공수해온 마리오네트 인형과 손가락 인형, 음향 장비 등을 통해 인형극을 재현해볼 수 있으며, 유랑극단이 타고 다니던 마차에 들어가 가까이 감상할 수 있다. 가족 단위로 방문하기 좋아 여름방학이 시작된 손주와 함께 방문하면 더 즐거운 추억을 남길 수 있다.
● Book
◇영혼을 품다, 히말라야 (박경이 저·도트북)
남들이 가지 않은 길에 용감하게 오르는 이들이 있다. 바로 고산 등반가다. 이들은 동상에 걸려 손가락을 자르고, 때로는 목숨을 위협받으면서도 정상을 향해 나아간다. 그 모습을 보면 죽음을 무릅쓰면서까지 산을 오르는 이유가 궁금해질 때도 있다. ‘왜 산을 오르는가?’ 어쩌면 산을 사랑하는 모든 산악인에게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 여성 산악가 박경이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자신의 삶으로 대신한다.
에세이 ‘영혼을 품다, 히말라야’는 고산 등반가의 삶과 철학을 저자가 ‘죽음의 지대’ 히말라야 고산에 직접 오르며 만난 이들의 이야기로 현장감 넘치게 풀어낸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극한의 자연환경에서 자기 존재의 참된 의미를 사유하고, 자신을 포함해 편견과 차별이란 또 다른 산을 넘어야 했던 세계 여러 여성 산악인의 고충을 담담히 반추한다.
책은 단순히 감상을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산 등반을 떠나려는 이들에게 필요한 내용을 흥미롭게 알려준다. 셰르파와 루트 개척, 베이스캠프 생활 등 기본 상식부터 트레킹 준비물, 고산병 극복 방법 등 실전에 필요한 정보까지 한데 담아 등반 의욕을 고취한다.
그녀의 이야기는 “죽으러 산에 가지는 않지만 죽을 걸 알면서도 산을 오른다”는 많은 고산 등반가의 마음을 대변한다. 관중도 심판도 없지만 반칙하지 않고 정직하게 산을 오르는 이들의 삶을 간접 체험하다 보면 서문에서 던졌던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이 풀린다. 등산의 진정한 묘미는 정상이란 결과보다 자신을 믿으며 한 발씩 나아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인생이란 산을 탈 때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말이다
◇시가 인생을 가르쳐 준다 (나태주 엮·앤드)
‘풀꽃시인’ 나태주가 한국 시의 진수를 엿볼 수 있는 역작을 갈무리해 엮었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국민 시 ‘엄마야 누나야’부터 조지훈의 희귀 시 ‘병에게’까지 총 125편이 담겼다.
◇킵 샤프 (산제이 굽타 저·니들북)
나이가 들어도 인지 기능을 총명하게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을 소개한다. 뇌에 관한 오해와 진실, 구체적인 12주 프로그램을 통해 막연하게 느껴지는 뇌 건강 영역을 실용적으로 접근한다.
◇바람이 내 등을 떠미네 (한기봉 저·디오네)
평생 세상을 뾰족하게 바라보았던 언론인 출신 저자가 평범한 중년으로 돌아와 세상살이의 단상을 덤덤하게 풀어놓는다. 짧지만 강렬한 60여 개의 글이 또래 독자에게 위로를 전한다.
● Stage
◇마리 앙투아네트
일정 7월 13일~10월 3일 장소 샤롯데씨어터 연출 로버트 요한슨
출연 김소현, 김소향, 김연지, 정유지, 민우혁, 이석훈, 이창섭, 도영 등
18세기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뮤지컬로 다시 돌아온다. 올 7월 막을 올리는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는 한때 고귀한 신분이었지만, 각종 오명 속에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던 그녀의 삶을 통해 진실과 정의의 의미를 조명한다. 사회의 부조리를 타파하고자 혁명을 선도했던 인물 마그리드 아르노를 중심으로 극이 전개되는 오리지널 버전과 달리, 한국 버전에서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야기에 비중을 실어 두 여인의 삶을 더욱 극적으로 대비시킨다. 특히 당대 부의 상징이었던 파리 베르사유 궁전과 빈민가 마레지구를 무대 위에 재현해 계급 간 갈등 구조를 명확히 그려낸다.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로코코 시대의 화려한 귀부인 드레스와 다채로운 가발도 재미를 높이는 포인트. 목걸이 사건, 바렌 도주 사건, 단두대 처형 등 대중에게 친숙한 사건을 위주로 재해석해 공감대를 더한다.
◇렁스
일정 9월 5일까지 장소 아트원씨어터 2관 연출 박소영
출연 이동하, 성두섭, 오의식, 이진희, 류현경, 정인지 등
매 순간 선한 의도로 행동하기 위해 고민하는 한 연인이 사랑, 환경, 출산 등의 주제로 치열하게 토론하며 ‘좋은 사람’의 정의를 찾아나가는 이야기다. 환경을 위해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여자와 아이를 낳아 좋은 부모가 돼야 한다는 남자의 정답 없는 갈등이 진정한 ‘선’(善)의 의미를 묻는다. 특별한 장치 없이 두 배우의 대화로만 이어지는 전개가 몰입도를 높인다.
◇비틀쥬스
일정 8월 7일까지 장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연출 알렉스 팀버스
출연 유준상, 정성화, 홍나현, 장민제, 김지우, 유리아 등
팀 버튼 감독의 영화를 뮤지컬화한 작품으로, 2019년 현지 초연 이후 세계 최초로 선보이는 라이선스 공연이다. 황당한 사고로 유령이 된 부부가 자신의 신혼집에 이사 온 한 가족을 쫓아내기 위해 장난꾸러기 유령 ‘비틀쥬스’와 합세해 벌어지는 이야기다. 공중부양을 하는 캐릭터와 시시각각 변하는 무대 등 마술 같은 연출이 놀이공원에 온 듯한 짜릿함을 선사한다.
본 기사에 소개된 공연을 관람하신 독자분의 생생한 후기를 기다립니다. 채택된 분께는 소정의 상품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 잡지를 보내드립니다.
최근 인문학이 대세다. ◯◯인문학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따라서 유행이다. 그런데 성만 한 인문학이 또 있을까? 사람이 태어나 살아가고, 사랑을 나누고, 종족을 남기고, 늙고 죽어가는 이야기는 다 성에 있다. 성을 한자로는 ‘性’이라 표기하는데 어찌 이렇게 적확한 표현을 찾았는지 놀랍기까지 하다. 성은 그 사람의 본성을 뜻한다. ‘배정원의 성 인문학’은 역사, 예술, 사회 등 사람이 만들어가는 문화 속에서 성을 재미있게 풀어볼 것이다.
춘화는 아주 오래전부터 세계 어느 나라에나 있어 왔지만, 특히 한·중·일 동아시아의 춘화는 나라마다 독특한 특징이 있다.
우리 한국의 춘화는 일본이나 중국만큼 발달하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러우면서도 그림 자체에 이야기가 들어 있어 마치 문인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다만 일본이나 중국처럼 목판화로 춘화를 인쇄하지 않았기에 자료가 그렇게 많진 않다. 일본의 춘화는 모네, 드가, 르누아르, 고흐 등 서양의 인상파 화가들에게 강한 영향을 주어 신비로운 동양에 대한 동경심을 품게 했다. 또 화려한 색채, 배경, 의복의 섬세한 표현과 함께 성기 페티시즘이라 불릴 만큼 성기를 거대하게 그리고 노골적이고 구체적으로 그려냈으며, 그림에 괴기스럽거나 우스꽝스럽거나 엉뚱한 상상력이 담겨 있어 보는 맛이 유난하다.
중국의 춘화 역시 우리나라나 일본과는 다른 특징이 있다. 중국 춘화에 대한 기록은 한나라 시대부터 찾아볼 수 있으니 그 역사가 유구하며, 경제적으로 안정기를 누렸던 명나라 시대의 작품이 유난히 많다. 원래 춘화(春畵)는 춘궁비화(春宮秘畵), 즉 동궁이 사는 춘궁의 비밀스런 이야기를 의미할 정도로 왕가의 성 교육용에서 출발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태자는 해가 뜨는 쪽인 동궁에 기거했으며, 동궁을 식물의 생장이 시작되는 봄을 뜻하는 춘(春)자를 넣어 춘궁이라 불렀다.
중국의 춘화는 왕가와 귀족, 호족, 부호 등 경제적·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의 전유물로 발전해왔으며, 자연스레 그들의 생활 속 성을 반영하고 있다.
중국인들이 생각하는 성은 유교와 도교의 생활 철학 속에서 정립되었다. 특히 도교의 철학이 강력한 영향을 미쳐 성적 접촉을 통해 신체의 에너지를 운용함으로써 남자의 건강과 장수를 도모할 수 있다고 보았는데, 여기에서 방중술과 양생술이 나왔다. 흔히 이야기하는 접이불루(接以不淚, 여러 여성과 관계하되 사정을 참음으로써 여자의 음기로 남자의 양기를 보한다는 것)와 환정보뇌(還精補腦, 사정을 참음으로써 그 정기가 척추를 통해 뇌로 흘러 들어가서 뇌를 강화한다고 믿는 것)가 대표적인 방중술과 양생술이다.
또한 중국 춘화에서는 남녀가 자연 속에서 거리낌 없이 관계를 갖고, 누군가가 곁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관계를 맺기도 하며, 심지어 하녀들이 두 사람의 몸을 밀거나 들어서 성관계를 돕기까지 하는데, 이것은 모두 그림 속 주인공이 부호이거나 권력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누가 지켜보거나 말거나 남녀의 표정은 느긋하기만 하다.
각설하고, 이번에 가져온 그림은 ‘마상 섹스’다. 이 그림은 보는 이로 하여금 슬며시 웃음을 빼물게 한다.
남녀가 말 위에서 한창 섹스를 하고 있으며, 하얀 말은 갈기를 휘날리며 신나게 달리는 중이다. 두 남녀의 머리 스타일과 복색을 보니 청나라 때 그려진 그림이다. 여자는 귀부인인 듯 연미(가발과 굵은 철사, 융단이나 비단 같은 천을 이용해 제비꼬리같이 만든)를 이용해 화려한 머리 장식을 하고 있고, 채찍을 사용하느라 팔을 한껏 들어 올린 탓에 넓은 통의 소매 사이로 보이는 양 손목엔 팔찌를 하고 있으며, 귀에도 역시 커다란 보석이 달린 귀걸이를 하고 있다. 아마도 그 당시 유행하던 진주나 비취로 만든 귀걸이겠다. 옆트임이 있는 청대의 저고리만 입은 채 하체는 벌거벗은(아마도 달려오는 중에 벗어 던졌을까?) 여자는 가죽으로 만든 부츠 같은 신발을 신고 있어 무척 호방하게 보인다. 그녀가 타고 앉은 남자는 아무 옷도 입고 있지 않은데, 변발을 한 것으로 보아 청나라 남자다.
달리는 말 위에 누워서도 균형을 잘 잡고 있는 남자는 배가 불뚝 나오고 가슴이 좀 처졌으나 평소에 승마와 사냥 등에 익숙한 자로, 사회적·경제적 지위가 높은 사람임에 분명하다.
이 그림이 눈길을 끄는 것은 말 위에서의 섹스라는 흔하지 않은 배경 때문이다. 춘화의 배경은 부호나 왕족의 거대한 저택 실내나 넓은 정원 등 정적인 공간이 많은데, 달리는 말 위에서 그것도 여성 상위의 섹스라니!
더욱 재미있는 것은 두 사람의 표정이다. 남녀의 자세로 보아 그들은 이미 삽입 중인데, 말이 달리며 오르내리는 것을 이용해 여자는 오르가슴에 이른 것 같기도 하다.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여자는 더한 극치감을 쫓아, 심지어 달리는 말에 채찍을 마구 휘두르고 있지 않은가! 그에 반해 남자의 표정은 극치감이라기보단 얼핏 두려움마저 서려 있는 듯 보인다. 이 여자가 황홀감에 취하다 못해 말이 아니라 자신에게 채찍을 내려칠까 두려운 걸까? 아니면 고정된 침상에서의 여성 상위조차 자칫 각도 조절에 삐끗하면 남자의 생명과도 같은 음경이 골절되기도 하는데, 마구 흔들리는 달리는 말 위에서의 삽입이라니 쾌감보다 걱정이 앞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남자 위에 올라앉은 여자는 신이 났는데, 설상가상 남자는 떨어질까 봐 말의 몸뚱이를 손으로 부여잡느라 여간 노심초사가 아니겠다.
황홀함으로 발그레 달아오른 그녀를 태운 말은 높이 솟아오른 거대한 바위 사이로 질주 중이다. 바위 주변의 나무들도 싱싱하게 하늘로 가지를 향하고 있는 것을 보니 남자의 발기는 아무 문제 없이 청청하게 진행 중이지만, 남자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아니 생각이란 걸 하면 발기가 사라질지도 모르니, 그냥 그녀가 충분히 만족해서 말을 세울 때까지 ‘말아, 달려라’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어쩌면 좋은가? 성에 관해서는 ‘여자가 남자보다 낫습니다. 이는 물이 불을 이기는 이치와 같지요’라고 했던 소녀(素女)의 말처럼 달리는 말을 타고 여성 상위를 즐기는 그녀는 멈출 기색이 보이지 않는구나!
당뇨는 흔한 성인 질환으로 2030년경에는 세계적으로 5억5000만 명의 환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초고령화가 가속화되면 당뇨 유병률도 더욱 증가할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당뇨 합병증인 당뇨병성 말초신경병도 함께 가파른 속도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연구에 따라 다양한 유병률을 보이지만 최근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다기관 연구에서 33.5%의 유병률을 보고했다.
당뇨병성 말초신경병 위험인자로는 연령, 당뇨병 유병기간, 혈당, 고혈압, 흡연, 이상지질혈증, 비만, 인슐린 분비기능 저하, 심혈관계 질환 등이 알려져 있다. 대체로 점진적인 진행 양상을 보여 임상에서 간과하기 쉬우나 증상 악화로 인해 환자 삶의 질을 저하시킨다.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은 족부 궤양과 절단과 같은 심각한 합병증까지 초래할 수 있어 정확히 진단하고 초기부터 적절히 치료하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실제 임상에서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에 대한 관심이 심혈관 질환, 신장병, 망막병 등과 같은 다른 당뇨병성 합병증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당뇨병성 말초신경병 진단은 병력 청취, 임상적 양상, 신경학적 검사를 통한 신경계 결손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당뇨병성 신경병 환자의 30~40%는 신경병 증상을 호소한다고 보고되고 있다.
가장 흔한 증상은 사지 통증이며 밤에 악화되는 특징을 보인다. 그중 통증성 말초신경병은 국내 연구에 의하면 전체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의 43.1%에서 보고되었다. 전체적으로는 제1형 당뇨병 환자보다 제2형 당뇨병에서 유병률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5.8%vs.17.9%). 전형적인 감각 이상은 사지 말단부로 갈수록 심해지는데, 상지보다 하지 말단부 침범이 더 흔하며 운동신경보다는 감각신경 이상을 주로 호소한다.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은 이상감각, 이질통, 통각과민, 저린감, 통증과 같은 양성 증상과 통각감퇴, 온도, 진동, 압력에 대한 감각저하, 반사저하, 무감각 같은 음성 증상으로 나눌 수 있다. 따라서 환자가 전형적인 증상을 호소하면 임상 증상만으로도 진단을 할 수 있으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환자마다 증상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고, 신경병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전체 신경병 환자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므로 임상 증상에만 의존하면 진단을 놓칠 수 있다.
전문의와의 상담 꼭 필요
객관적인 검사는 모노필라멘트검사다. 발에 10g 정도의 압력을 줘 신경감각이 정상인지 알아볼 수 있다. 정량적 감각신경 검사법은 온도, 진동, 전기적 자극 등의 강도를 점차 올려가면서 환자가 어느 시점부터 감지하는지를 확인해 이상 여부를 진단하는 검사다. 신경전도검사는 진단에 가장 유용한 검사법으로, 말초신경에 전기적 자극을 가하여 발생한 복합전위를 통해 신경기능의 이상 여부를 판단한다. 유발전위 검사는 팔이나 다리의 말초신경에 반복적으로 약한 전기 자극을 주면서 대뇌에 나타나는 미세한 전기적 파를 컴퓨터로 분석한다. 중요한 점은 증상이 없어도 말초신경 손상이 진행될 수 있기 때문에 제1형 당뇨병 환자는 진단 후 5년부터, 제2형 당뇨병 환자는 진단과 동시에 말초신경병 선별검사를 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또 비슷한 증상을 유발하는 다른 질환도 많으므로 감별진단을 위해 전문의와의 상담과 정확한 검사가 필요하다.
당뇨병성 말초신경병 치료의 주요 목적은 통증 및 증상을 완화해 환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신경 퇴축을 막아 재생을 돕고, 사지 손상과 같은 심각한 합병증을 막는 것이다.
치료는 크게 신경병 원인에 대한 병인론적 치료와 환자의 통증을 치료하는 대증치료로 나뉜다. 병인론적 치료에는 혈당 조절 및 위험 요소를 관리하는 치료와 신경병의 발병 및 병리기전에 대한 치료가 있다.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을 치료할 때는 근본 원인인 혈당 조절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미 여러 연구들에서 고혈당과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의 중증도는 밀접한 관계가 있어 적극적인 혈당 조절이 치료에 중요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혈당 조절 외에도 흡연, 심혈관 질환의 과거력,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등과 같은 심혈관 위험인자도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에 중요하게 관여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어 이와 같은 위험 요소의 관리도 중요하다.
대사증후군, 당뇨 전 단계 및 제2형 당뇨병 환자의 생활습관 개선은 당뇨병성 신경병 발생을 예방한다. 약물 치료제인 알파리포산은 산화스트레스에 의한 신경내막 혈관 손상을 저하시키는 약제다. 여러 임상 연구에서 매일 600mg의 알파리포산을 3주간 정맥 투여했을 때 특별한 부작용 없이 위약군에 비해 신경병의 주요 증상들을 호전시켰다.
마지막으로, 신경병 통증 치료에 임상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건 대증치료다. 신경병 통증은 수면장애, 우울증, 불안 등 삶의 질 저하를 초래하므로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공통적으로 1차 치료제로 제시하는 약제는 듀록세틴과 프레가발린이다. 이외 삼환계 항우울제, 항경련제,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등의 경구약제가 사용될 수 있다. 초기 용량에서 서서히 늘려가며 증상 호전이 없으면 기전이 서로 다른 약물로 변경, 병합요법 또는 아편유사제를 추가할 수 있다. 조기에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이 합병증을 예방하는 길이다. 또 증상 개선을 통해 삶의 질도 개선할 수 있다.
바쿠의 구도시를 걷다 보면 누군가 옆으로 다가와 근교 일일투어를 권한다. 사실 택시나 대중교통을 이용해 자유여행으로 바쿠의 근교 투어를 하는 건 시간 면에서 비효율적이다. 가격을 좀 깎아달라고 하니 여행사 사무실을 안내해줘 그곳으로 갔다. 결국 1인당 20AZN(한화 약 1만4000원)을 할인받아, 다음 날 4만9000원짜리 일일 투어를 했다.
아침 9시, 구시가지 성문 앞에서 가이드와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온 외국인 6명을 만나 일일투어를 시작했다. 준비된 미니버스를 타고 아름다운 카스피해를 바라보며 남쪽으로 한 시간 정도 달려갔다. 고부스탄(Gobustan)에 도착한 뒤에는 대기해 있던 여러 대의 낡은 승용차로 갈아탔다. 왜 차를 바꿔 타야 하는지 이해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곳에서 목적지인 머드 볼케이노(진흙 화산)까지 울퉁불퉁한 비포장 길을 10여 km 더 가야 했기 때문이다. 운전기사는 그 길을 ‘사파리 투어’라 표현했다. 그러나 마케팅 목적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일 뿐 동물 구경은 할 수 없었다. 억지스러웠지만 귀여운 느낌이 들었다. 차창 밖 풍경은 영화에서 봤던 모습과 비슷했다. 미국의 텍사스나 어느 사막 지역처럼 풀 한 포기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척박한 땅이었다.
전 세계 700여 개의 진흙 화산 대부분이 아제르바이잔에 있다고 한다. 그중 일부가 이곳에 있었다. 용암 대신 진흙이 흘러내리는 화산 가까이 다가갔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화산 분화구에서 진흙이 끊임없이 부글거리며 기포가 부풀어 올랐다가 터졌다. 피부에 좋은 효과가 있는지 남자 몇 명이 머드팩을 즐기고 있었다.
진흙 화산에 오기 전 미니버스에서 내렸던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선사시대로 여행을 갈 수 있는 관광지가 있다. 200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고부스탄 암각화 문화경관구역’이다. 공원 입구에는 박물관이 있었고, 암각화 구역은 입구에서 1km를 더 가야 했다. 탐방로를 따라 걸으면 넓은 사암지대에 흩어져 있는, 약 5000년에서 2만 년 전에 원시인들이 돌에 그린 그림을 불 수 있다. 지나온 시간의 무게가 주는 중량감 때문에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 모습, 사냥하는 모습, 바다에서 고기 잡는 모습, 춤추는 모습 등이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풀, 돌, 바위만으로 구성된 암각화 공원을 본격적으로 탐방하기 전 앞서 가던 가이드가 넓고 평평한 바위를 만나자 갑자기 타악기처럼 두드리기 시작했다. 돌에서 맑은 소리가 났다. 이 지역의 타악기 ‘가발 대시’(Gaval Dash)를 만들 때 사용하는 석재라고 했다.
조로아스터교 사원의 꺼지지 않는 불
불을 접하기 쉬워서 그랬는지 바쿠의 동쪽 외곽에 조로아스터교 성지인 ‘아테시카 사원’(Ateshgah Temple)이 남아 있다. 사원 안에는 470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꺼지지 않고 타고 있는 불이 있다. 불을 숭배해서 배화교로 알려진 고대 페르시아 종교 조로아스터교. 현재는 신도 통계가 없을 정도로 사라져가는 종교다. 하지만 최근 이슬람 극단주의에 환멸을 느낀 쿠르드족들이 개종하면서 그쪽 지역에서 새롭게 관심을 받고 있다고 한다. 또 얼마 전 한국에서 신드롬을 일으켰던 록 밴드그룹 ‘퀸’의 ‘프레디 머큐리’가 조로아스터교의 후손인 파르시(Parsi) 출신이기도 하다. 수도원이었던 사원 내부는 박물관으로 개조됐다. 방마다 조로아스터교에 대한 설명과 모형, 사진들이 전시돼 있었다. 교세는 미약하지만 조로아스터교를 경험할 수 있는 건 바쿠가 가진 또 하나의 매력이었다.
이외에도 바쿠 외곽에는 불과 관련한 ‘야나르 다그’(Yanar Dag)라는 이름의 불타는 언덕도 있다. 지하에 어마어마한 양의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어 가스가 나오는 분출구에서는 계속 불이 타고 있었다. 그러나 자원 개발로 지하 압력이 내려가 과거에 비해 불꽃이 많이 약해졌다고 한다.
아제르바이잔 여행을 해야 하는 이유
현재와 과거의 절묘한 조화, 손님과 이방인에게 친절한 문화, 동서양의 경계선 위에서 유럽을 향해 있는 도시, 맛있는 음식과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사람들. 바쿠 여행을 하면서 받았던 인상이다. 아직 구 소련 치하의 흔적도 남아 있고, 에어컨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등 여행 인프라가 부족한 면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제르바이잔 관광청이 글로벌 캠페인으로 선정한 ‘기대, 그 이상의 아제르바이잔’(Take Another Look)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그들 사회에 내재돼 있는 역동성과 경계를 넘나드는 수용의 문화를 잘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트빌리시행 야간 특급열차
한여름의 뜨거운 햇볕이 주황빛으로 바뀌면서 나란히 뻗어 있는 녹슨 철길 위로 떨어졌다. 검은색 섞인 파란 하늘이 배경이 될 무렵 그림자도 사라져가는 플랫폼 앞으로 둥근 쇳덩이가 슬며시 발을 들이밀었다. 흰 수증기를 내뿜으며 거친 숨을 내쉴 것만 같은 짙은 암녹색 기차였다. 톨스토이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서 ‘브론스키’와 ‘안나 카레니나’를 운명처럼 만나게 했던 그 기차다. 조지아의 고리 시(市)에 전시돼 있는 스탈린 전용 열차도 같은 색이다. 소설 내용처럼―창 너머로 플랫폼에 서서 기차를 전송하고 있는 사람들이 마치 뒤쪽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물끄러미 내다보고 있었다. (…) 규칙적으로 덜커덕덜커덕 흔들리면서 플랫폼을 지나고 (…) 열차는 점점 신나고 매끄럽게 경쾌한 소리를 내며 레일 위를 미끄러져 갔다―그렇게 바쿠와 이별했다.
오래된 열차이지만 2인 1칸인 1등석은 불편한 점이 전혀 없었다. 새것으로 바꾼 하얀 침대 시트가 마음에 들었다. 바쿠를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유전 시추공에서 나오는 가스 때문에 큰 불꽃이 타오르는 공장들이 창밖으로 스쳐지나갔다. 때맞춰 창틀에 올려놓은 스마트폰에서 쇼스타코비치의 재즈 모음곡 2번 ‘왈츠 Ⅱ’가 흘러나왔다. 출발 전 역에서 산 와인으로 영혼을 적셨다. 그렇게 떠나는 아쉬움과 새로운 풍경을 만나러 가는 길의 떨림을 가라앉히며 수없이 꿈꿔왔던 침대열차에서의 밤을 보냈다. 기차는 쉬지 않고 트빌리시를 향해 달려갔다.
저녁 9시에 출발한 기차는 꼬박 12시간을 달려 다음 날 아침 9시경 트빌리시에 도착했다. 도착하기 전 새벽 5시쯤 조지아 입국 절차가 한 차례 있었다. 카메라가 연결된 노트북을 들고 조지아 군인들이 열차로 올라왔다. 입국신고서 작성, 여권 제출, 사진촬영, 그리고 이어진 간단한 가방 검사로 국경 통과 절차가 끝났다. 조지아는 한국 여권 소지자의 경우 무비자로 360일 체류할 수 있는 나라다.
미국 조지아가 아니고 ‘조지아’
“조지아? 미국 조지아?” 이번 여행 목적지는 ‘조지아’라고 하니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한결같았다. 몇몇 사람은 구 소련이 지배하던 시절의 ‘그루지야’는 알고 있었다. 1991년에 독립하면서 국명을 ‘조지아’로 바꿨다고 설명하면 미국과 가까워지고 싶어서 이름이 그러냐는 반응들을 보였다. 정말 그랬는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는 ‘농부’를 뜻하는 그리스어 ‘게오르기오스’에서 빌려왔다는 설과 트빌리시의 핫플레이스 ‘자유광장’에 황금동상으로 우뚝 서 있는 조지아 수호성인 ‘성 조지’에서 따왔다는 이야기가 가장 많다.
조지아에는 스위스처럼 아름다운 자연이 있고, 프랑스처럼 풍요로운 와인, 이탈리아처럼 맛있는 음식, 그리고 스페인처럼 정열적인 춤과 음악이 있다.
트빌리시는 재즈다
종착역이 가까워지면서 기차 속도가 느려졌다. 트빌리시는 BC 4세기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해 AD 5세기 말에 조지아의 수도가 된 오래된 도시다. 창문 밖으로 트빌리시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폐쇄된 기지창에 아무렇게나 방치돼 있는 녹슨 객차와 화차들, 네모반듯한 현대식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신도시, 트빌리시의 랜드마크인 나리칼라 요새와 ‘조지아 어머니 상’이 있는 구도시가 줄지어 얼굴을 드러냈다. 마치 한 곡의 재즈를 듣는 것 같았다. 이곳 사람들은 ‘재즈적’이라는 단어를 자주 쓴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연결될 때 주로 사용한다. 그만큼 조지아 사람들은 뭐든 잘 받아들인다. 혼합에 익숙하다. 트빌리시라는 도시도 그랬다. 색소폰의 끈적한 느낌과 와인의 나른한 분위기가 뒤섞여 있는 듯 보였지만 퇴폐적 숨결이 느껴지지는 않는 골목의 모습이 그랬고, 클래식함과 모던함이 서로 뒤엉켜 하나가 된 도시의 풍경이 그랬다.
올드 트빌리시가 보여주는 것들
트빌리시는 도시를 관통하는 ‘므츠바리’(Mtkvari) 강(쿠라 강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을 중심으로 남쪽의 ‘올드 트빌리시’(구도심)와 북쪽으로 나누어진다. 잘 알려진 관광지 대부분이 구도심에 몰려 있어 걸어 다닐 만하다. ‘아블라바리’(Avlabari) 전철역에서 내려 강 언덕에 있는 ‘메테키 교회’(Metekhi Church)로 먼저 갔다. 13세기에 세워진 이 교회는 서른일곱 번이나 다시 지어진 사연으로 수많은 전쟁에 시달렸던 조지아의 얼굴이 됐다. 구 소련 시절에는 감옥과 극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최근에서야 교회 역할을 하고 있다. 교회 옆에는 수도를 트빌리시로 옮긴 ‘바흐탕 고르가살리’(Vakhtang Gorgasali) 왕의 기마상이 도시를 바라보고 있다.
기마상이 있는 곳에서 북쪽을 보면 물살이 빠르게 흐르는 강 오른쪽으로 ‘리케 공원’(Rike Park)이 있다. 시민과 여행자들에게 은은한 꽃향기로 피로를 풀어주는 곳이다. 강변에는 1200개의 LED 전구가 빛을 내는 ‘평화의 다리’가 있어 므츠바리 강의 밤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2GEL(한화 약 810원)을 내면 ‘메테키 다리’를 건너 므타츠민다 산 정상에 있는 나리칼라 요새까지 케이블카로 올라갈 수 있다.
도시 전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이 요새는 4세기에 페니키아인들에 의해 세워졌다. 요새 바로 옆 능선에는 왼손엔 와인 잔, 오른손엔 칼을 들고 있는 ‘조지아 어머니 상’이 있다. ‘친구에게는 와인 잔을 건네지만 적에게는 칼을 든다’는 의미로 건국 1500년을 기념해 만든, 높이 20m의 대형 석상이다.
트빌리시를 사랑한 작가들
러시아의 문호들은 조지아를 사랑했다. 막심 고리키는 이곳에서 일하며 처녀작 ‘마카르 추드라’를 썼다. 이때 사용한 필명이 ‘고리키’다. 그는 “코카서스 산맥의 장엄함과 낭만적 기질을 지닌 이곳 사람들 덕분에 방황에서 벗어나 작가가 됐다”고 회고했다. 톨스토이도 이곳에서 주둔군으로 4년을 복무한 후 조지아를 배경으로 몇 편의 소설을 썼다. 푸시킨의 시 제목을 그대로 가져다 쓴 ‘코카서스의 죄수’가 대표적이다. 누구보다도 조지아의 와인과 음식을 사랑한 푸시킨은 대표적인 친조지아 인사였다. 그래서인지 구도심 자유광장 옆에는 ‘푸시킨 공원’이 있다.
구도심 중앙에 위치한 ‘자유광장’은 주변의 아름다운 건축물과 교통의 요충지로 트빌리시의 시작이자 끝이 되는 장소다. 마치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카탈루냐 광장 같은 곳이다. 레닌 동상이 있던 광장 중앙에는 조지아 수호성인 ‘성 조지’의 황금동상이 있다. ‘자유광장’에서부터 ‘루스타벨리 메트로 역’까지 이어지는 거리를 걸었다. 러시아 간섭에 저항하는 조지아인들의 데모가 토요일마다 열리는 국회 앞 광장, 조지아 국립박물관, 루스타벨리 극장, 트빌리시 오페라·발레 극장, 트빌리시 현대미술관들이 이 거리에 있다. 중간중간 보이는 작은 카페와 거리의 화가들 작품이 여행자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트빌리시의 숨결을 애써 들으려 하지 않아도 트빌리시의 과거와 현재의 눈부신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숨 쉬는 소리가 들린다. 행복했다. 아무리 걸어도 질리지 않는 하염없이 걷고 싶은 길이다
므츠바리 강을 건너는 ‘사브뤼켄’(Saarbruecken) 다리 옆 ‘데대나’(Dedaena) 공원에서는 트빌리시 최대 규모의 벼룩시장이 열린다. 구 소련의 군용 제품에서부터 은식기, 오래된 카세트테이프 등 온갖 물건들이 거래된다.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랜 세월이 빚어낸 추억의 물건들이 과거를 되돌아보게 한다. 지치지 않고 무언가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조지아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찰나에 그들의 얼굴을 스쳐지나가는 희망과 그리움, 설렘도 봤다.
젊은 시절 찰랑찰랑 빛나던 머리카락이 점점 얇아지고 빠지다 급기야 둥근 우주선처럼 두피가 드러나 보이는 순간, 나이 듦의 헛헛함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극적인 상황이 아니라도 누구나 좀 더 볼륨 있고 세련된 머리모양을 하고 싶기 마련. 생각은 있는데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는 우리 세대를 위해 잠시나마 체험을 해보았다. 가발 한번 써보시렵니까?
“가발 체험해보시겠습니까?”
신윤주 동년기자는 나이가 들면서 정수리 부분의 머리카락이 점점 없어지는 것도 같고 힘없이 내려앉아 보이는 느낌이 싫다고 했다. 비교적 머리숱이 많아 고민이 없겠다고 생각하겠지만 빈모도 신경 쓰이고 잘못 자른 앞머리도 마음에 안 들던 상황이었다. 대부분의 가발업체가 그렇듯 하이모레이디도 사전예약제로 운영된다. 대표 전화번호를 통해 가까운 지점을 소개받고 예약시간을 조율 한 뒤, 안내받은 곳에 가서 전문 상담사에게 머리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면 된다. 어울렸던 머리 스타일이나, 원하는 스타일 등을 말하면 된다. 이 시간을 통해 상담사는 탈모 정도와 탈모 부위를 진단하고 고객은 부분 가발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전체 가발을 선택할 것인지 결정한다. 염색이나 파마로 인해 피부가 민감해졌거나 두피 트러블과 탈모가 있는 사람, 혹은 항암 환자도 이용한다. 이외에 미용으로 쓰는 사람도 있다. 이 경우 부분 가발을 사용한다. 이용자가 착용하는 횟수에 따라서 탈착식이 있고 고정식이 있다. 이미 나와 있는 기성 가발과 맞춤형 가발에 대한 설명도 이때 들을 수 있다.
기성 가발과 맞춤 가발의 장·단점
가발을 쓰겠다는 마음으로 매장에 들어오는 방문자는 당장이라도 착용하고 싶어 한다. 이렇게 기성 제품은 바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단점은 이미 제작된 가발에 이용자가 맞춰야 한다는 점이다. 가발 길이에 맞춰 머리를 자르고 더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게 스타일링을 해야 한다. 맞춤 가발은 이용자가 원하는 대로 100% 맞출 수 있으나 문제는 5주의 제작기간이다. 하이모의 경우 3D 스캐너 시스템을 이용해 이용자의 머리 모양을 스캔하고 빈모나 탈모 부위 등의 정보도 감안해서 정교한 맞춤 제작을 하고 있다.
어떤 가발이 잘 어울릴까?
신윤주 동년기자는 상담을 통해 정수리 부분 가발과 함께 전체 가발은 살짝 긴 단발을 요청했다. 가발을 썼을 때는 무조건 쓴 듯 안 쓴 듯 자신의 머리 같아야 한다. 티내면서 가발을 쓰고 싶은 여성들이 있을까 싶다.
신윤주 동년기자는 한 6개월 전에 새치 염색을 했다. 사진으로는 잘 보이지 않으나 정수리 부분에 흰머리가 확연히 드러나고 또한 힘없이 머리가 눌려 있는 상황. 3가지 모양의 가발을 착용해봤다. 첫 번째는 정수리 부분을 정교하게 감싸서 고정한 부분 가발이다. 두 번째도 부분 가발인데 머리 전체를 가릴 만큼 꽤 넓은 형으로 숱이 많아 보이고 얼굴도 가름해 보인다. 마지막은 상담 때 착용해보고 싶다고 말했던 긴 단발머리. 요즘 가발은 인모(人毛)만을 고집하기보다는 인조모를 섞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기술이 발달하다 보니 인모와 인조모의 구분이 어렵다. 하이모는 형상기억모발인 넥사트모를 사용한다. 이는 내열성이 강하고 모양이 그대로 유지되어 스타일을 관리하기가 편하다. 세탁해도 진짜 사람의 머리카락처럼 웨이브가 풀리지 않는다.
형태에 따라 부착 원리에 따라
구분하는 가발의 종류
부분 가발 고민이 되는 부위에만 부착하는 방식으로 작은 것도 있고, 머리를 많이 가려주는 형태도 있다. 가리는 부분이 크건 작건 겉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이 나오게 쓰는 가발은 다 부분 가발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전체 가발 자신의 머리카락이 밖으로 보이지 않게 쓰는 가발. 원형 탈모, 항암 환자가 사용한다. 혹은 염색 알레르기가 있거나 두피가 약해서 파마를 못한다거나, 약해진 모발 건강을 위해 전체 가발을 쓰기도 한다.
탈착식 가발가발 안에 고정할 수 있는 핀이 있어 썼다 벗었다 할 수 있다.
고정식 가발 인체에 무해한 접착제를 이용해 머리카락을 밀어서 부착하는 가발이다. 개인차에 따라 10일 길게는 20일에 한 번 관리한다.
가발을 머리 감듯 샴푸할 수 있다?
가발은 매일 세탁할 필요 없다. 머리에 기름이 생기기 마련이니 상황에 따라서 실크를 다루듯 조물조물 손빨래하면 된다. 가발 전용 샴푸와 건조망이 따로 있다. 두피에 직접 접착한 고정식 가발의 경우는 매일 머리를 감듯 해도 된다. 드라이로 잘만 말려주면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없다. 보통 10일에서 길게는 20일까지도 부착이 가능하다. 두피에 가발을 붙인 사람들은 그냥 자신의 머리카락처럼 관리하면 된다.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며칠에 한 번’ 이런 기준은 없다.
가발을 쓰면 머리카락이 빠진다?
이에 관해 의학적으로 밝혀진 바가 없다. 가발을 쓴 풍성했던 모습에 비해 초라해 보이기 때문에 오는 심리적 스트레스로 보는 견해가 있다. 통풍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속설도 있는데 최근 나오는 가발은 통기성 연구로 해결책을 찾아 사계절 써도 답답하지 않다고 한다. 가격은 부분 가발 40만 원 선에서 맞춤 가발 200만 원 선까지 다양하다. 기성 가발의 경우 130만 원에서 180만 원 선이다. 가격만으로 보면 비싸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기술력은 물론 사람의 손을 거치는 고난도의 작업임을 감안하면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은 아니다. 잘만 관리하면 오랫동안 세련된 스타일을 유지할 수 있는 패션 아이템이다.
“젊어졌고, 자신감이 생겼고, 더 편안했습니다”
[가발 착용 소감] 신윤주 동년기자
2019년 11월 8일 아침, 가발 전문점 하이모레이디 종로 지점을 방문했다. 젊어서도 나는 머리카락이 좀 가늘고 힘이 없는 편이었다. 숱이 어느 정도 있어서 다행히 봐줄 만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20대에서 60대가 훌쩍 되니 가는 머리카락은 더 가늘어지고 힘도 더 없어졌다. TV에서 탤런트 박정수가 가발을 착용한 모습을 보면서 궁금하던 차에 가발 착용 체험 기회가 와 내심 반가웠다. 가게 문을 들어서니 은은하고 밝은 조명 사이로 수백 개의 가발이 저마다의 모습을 선보이며 나를 쳐다보는 듯했다. 다 예뻤다. 풍성하고 윤기 있는 가발들. 원피스를 예쁘게 차려입은 매니저와 상담하면서 가발 종류와 쓰임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이후 3D 스캐너로 두상을 측정했다. 잠시 뒤 거울이 있는 1인 전용 방에서 내게 맞는 가발을 착용해봤다. 두 개의 부분 가발도 다 마음에 들고 자연스러웠다. 마지막에 써본 전체 가발은 품위 있고 우아한 느낌의 젊은 모습으로 깜짝 변신했다. 가발을 쓰면 염색을 안 해도 되니 머릿결도 좋아질 것 같다. 나이가 10년 아래로 훅 내려가는 기분이 들어 가발을 벗고 싶지 않았다. 자신감도 올라가고 더욱더 당당하게 외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머리에 맞는 보톡스 같다고나 할까?
이들은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잘하고, 똑 부러지는 여고 시절을 보냈다. 누군가의 자랑, 반듯함을 넘어서는 행동은 용납하지 않았을 명문여고 출신. 그때는 몰랐을 것이다. 육십이 넘어 거추장스런 무게를 벗어던지게 될 줄 말이다. 이화여고 출신 여성 시니어 록밴드 루비밴드. 그녀들의 드라마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토요일 오후, 잠실의 한 합주실. 밴드 활동을 즐기는 젊은이들 사이에 만 64세 이화여고 동창 5인조 그룹사운드 루비밴드가 매주 자리를 잡고 합주한다. 리더이자 드럼인 박혜홍을 주축으로 문윤실(일렉 기타), 박순희(베이스 기타), 류은순(건반), 이오옥(보컬)이 루비밴드의 멤버다.
루비밴드. 붉은 빛이 강렬한 보석 루비를 뜻할 뿐만 아니라 ‘생기 있고(Refresh) 흔하지 않은(Uncommon) 아름다움(Beautiful)과 젊음(Young)을 간직한 밴드’라고 자신들을 당차게 설명한다. 시니어의 안정감 위에 신선함과 도전정신을 덧발라 세상이 없던 색깔로 거듭나고자 노력한다고 했다. 현재 이들이 완벽하게 연주하는 곡은 ‘Bad Case of Loving You’, ‘누구 없소’, ‘바운스’, ‘Keep on Running’ 등 총 8곡이고 현재 2곡 등을 더 연습하고 있다. 박자가 서로 맞지 않으면 연주를 멈추고 상의도 한다. 루비밴드의 대표 커버곡인 ‘Bad Case of Loving You’는 좀 더 완벽한 연주를 위해 반복해서 연습했다.
특히 이날은 류은순 씨가 합류하는 날이었다. 현재 부산 부경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인 류은순 씨는 한 달에 한 번 상경해 멤버들과 합을 맞춘다.
“루비밴드 최초 공연을 같이했고 최근에 다시 합류했어요. 마침 제가 ‘보헤미안 랩소디’라는 영화를 보고 살짝 록 음악에 대한 판타지에 빠져 있었는데 루비밴드의 건반 자리가 비었다고 들어오라더군요. 훗날 밴드 활동으로 봉사도 해보자고 친구들이 말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매달 올라오지만 정년 후에는 밴드 활동을 더 열심히 할 수 있겠죠.(웃음)”
금강산 놀순이에서 탄생한 루비밴드
이 여성 밴드의 탄생은 5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화여고 개교 40주년을 앞두고 뭔가 의미있고 재미있는 것을 하자며 1974년도 졸업생 몇몇이 머리를 맞댔다고 베이시스트 박순희 씨가 말을 꺼냈다.
“동창 중에 ‘금강산 놀순이 팀’이라고 있어요. 내금강에 같이 갔다 온 친구들이 뭔가 일을 꾸며보자고 입을 모았어요.”
밴드를 해보자는 아이디어는 중학교 교사 출신이자 학생들과 다수의 합주 경험이 있었던 박혜홍 씨의 머리에서 나왔다.
“그때 친구들을 쓱 둘러봤습니다. 마침 클래식 기타 동호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윤실이가 있었어요. 피아노를 친다는 은순이도 생각났고요. 지금은 베이시스트이지만 노래 잘하는 순희도 밴드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렇게 밴드를 구성해서 이화여고 개교 40주년 모임에서 공연했어요. 두 곡을 불렀는데 가발 쓰고 옷도 요란하게 입고 난리를 쳤어요. 기대 이상으로 호응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나니 뜸해지더라고요.(웃음)”
난생처음 느껴보는 환호와 박수의 무대였지만 밴드 활동은 잦아들었다. 그 무렵 각자의 자녀들이 결혼하고, 손자손녀가 태어나다 보니 육아의 일부분을 챙기는 멤버들도 생겨났다.
시니어 밴드로 무대에 오르다
그냥 잊힐 뻔한 루비밴드의 이름이 다시금 수면 위로 오르게 된 계기가 있었다고 박혜홍 씨가 말했다.
“작년에 시니어 밴드를 찾는 한 기업의 모집 공고를 보게 됐습니다. 일상에 젖어 살고 있었는데 뭔가 불끈하며 가슴을 때렸어요. 멤버들을 찾아서 의견을 모으고 이제 정말 제대로 해보자고 말했습니다. 기타 잘 치는 윤실이랑은 지속적으로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딱 눈에 들어왔어요.”
10년 넘게 치던 클래식 기타를 과감하게 내려놓고 일렉 기타로 전향했다는 문윤실 씨는 루비밴드를 묵묵하게 이끌어온 대표 멤버다.
“저는 클래식 기타 팀에서 오랜 시간 활동했어요. 일렉 기타를 제대로 연주하고 싶어서 학원에 다녔습니다. 물론 다들 각자의 기량을 높이기 위해 실용음악학원에는 다니더군요. 클래식 기타 연주로 봉사 많이 다녔어요. 클래식은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는 것이 매력이죠. 그런데 밴드 음악은 사람들에게 흥과 즐거움을 주더라고요. 박수도 치고 기분 좋게 웃는 얼굴들을 보면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물 만난 보컬과 천재 베이시스트의 등장
때마침 루비밴드의 보컬이 될 인재(?) 이오옥 씨가 불쑥 나타났다. 이화여고 출신 중에는 보기 드문(?) 캐릭터라고 할까? 화장을 곱게 하고 알록달록 자기만의 색깔을 드러내는 밴드에 적합한 인물이다.
“개교 42주년 송년회 때 행운권 당첨이 되어서 무대에 나갔어요. 노래를 부르라기에 목청껏 불렀습니다. 그런데 혜홍이가 제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전화를 했어요. ‘밴드를 재결성할 건데 너 보컬 할래?’ 해서 당연히 ‘OK!’라고 했어요.”
그리고 첫 공연 때 보컬을 담당했던 박순희에게 베이스 기타를 권유했다. 노력파에 박자감각이 뛰어났기에 베이시스트로서 멤버들의 몰표를 받았다.
“제가 원래 대한약사회 합창단 출신입니다. 그런데 연락이 왔어요. 베이스는 ‘둥둥둥둥’치기만 하면 된다고 했어요. 사실 베이스 기타는 여자가 치기가 힘들어요. 연락 받자마자 베이스를 배우려고 기타 학원에 등록했어요. 작년 4월이었어요. 학원 선생님이 이런 천재가 어디 숨어 있었냐고 했습니다.”
팀을 결성하고 멤버들은 피나는 노력을 했다. 연습 3개월 후 시니어를 위한 공연 무대에 올라 6곡을 완벽하게 연주했고 앙코르곡도 소화해냈다. 여고 동창들 앞에 섰던 무대를 발판으로 알을 깨고 세상에 나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고. 이후 방송과 언론 매체에 시니어 여성 록밴드로 소개되면서 각종 축제에 초청돼 연주 여행을 가기도 했다. 작년 말에는 보컬 이오옥 씨의 아들 결혼식에서 축하 공연을 했다고. 곱게 한복을 입고 혼주석에 앉아 있던 이오옥이 나와서 밴드와 함께 춤을 추자 결혼식장이 콘서트장으로 변했다는 후문이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으니 자신들보다 더 나이 많은 분들을 찾아다니며 봉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젊은 사람들처럼 빠르게 많은 음악을 섭렵할 수는 없지만 자신들의 실력에 맞춰 록의 세계에 빠져들고 있다. 나날이 성장하고 있는 루비밴드는 언젠가 한국 시니어 여성 밴드의 힘을 알리며 세계를 누비고 싶다고 했다. 눈부신 활약을 기대해본다.
주말 저녁, 나른하게 소파에 기대어 드라마를 보다가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 저 배우가 엄청 즐기고 있구나! 한참 나이 어린 배역에게 ‘아버지’나 ‘오빠’를 연발했다. 심심하면 욕설에 머리채를 끄잡는데 그렇게 통쾌할 수가 없었다.
“명희야, 원혁이 번호 땄어!”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106부작의 마지막 대사도 그녀 몫이었다. 지금까지 드라마 속에서 무던하게 녹아 있던 그녀. 이번만은 달랐다. 지난 3월 종영한 KBS2 주말드라마 ‘하나뿐인 내편’에서 귀여운(?) 치매 환자 박금병 역으로 사랑받은 배우 정재순(鄭在順·72)을 두고 하는 소리다.
계단을 걸어 내려오는 그녀를 마주보는 순간 멈칫했다.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블랑쉬가 나른하면서도 우아하게 무대로 걸어오는 모습이 연상됐기 때문이다. 팔랑팔랑 손을 흔들면서 명희 뒤만 졸졸 쫓아다니던 박병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사진 촬영을 하는 내내 정숙하고 단아한 모습을 잃지 않는 배우 정재순. 캐릭터 변신이라고 생각할 만큼 남다른 연기를 보여줬던 ‘하나뿐인 내편’이 그녀 인생에 있어 대단한 도전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맨 처음 배역과 관련해 얘기를 들었을 때 극중에서 치매가 그렇게 큰 소재는 아니었어요. 그냥 약간 병세가 있다 하는 정도였죠. 그동안 치매 앓는 역은 안 해봤는데 어떡하지? 그래도 이 나이 먹어서 한 번쯤 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모르겠다! 해보자! 그랬던 거죠.”
새 드라마를 시작하면 늘 하던 대로 마음먹었을 뿐인데 시청자의 반응은 예상외였다. 치매 증상이 심해져 극중 손주며느리 도란(유이 역)을 친구 ‘명희’로, 그의 아버지(최수종 역)를 ‘강기사 오빠’로 부르면 부를수록, 며느리(차화연 역)와 둘째 손주며느리(윤진이 역)에게 욕을 하면 할수록, 시청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제가 극중에서 욕할 때 사람들이 참 찰지다고 그러대요? 제가 나쁜 년, 첩년 하고 말할 때요. 저도 상상 못했고 작가님도 이렇게까지 생각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이야기 전개를 하다 보니 여건이 잘 맞아떨어진 거죠. 그런데 자꾸 촬영 분량이 많아지더라고요.(웃음)”
말 그대로 배우 정재순의 재발견이었다. 올해로 데뷔 51년 차. 지적이고 차가운 이미지로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는 거목과도 같은 중견배우였다. 긴 세월 각인되어온 이미지를 깨고 새로운 캐릭터를 완성해냈으니 박금병이 더욱 사랑받았던 것은 아닐까. 정재순은 딴생각 안 하고 배역을 즐겼다고 했다.
“재미있었어요. 왜냐하면 치매 환자라는 배역 설정 때문에 오만 가지를 다 해봤거든요. 그동안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연기도 해보고요. 배우로서도 찾기 힘든 캐릭터였어요. 카타르시스도 느꼈고요. 특히 머리끄덩이를 있는 대로 낚아채잖아요.(웃음) 처음에는 굉장히 힘들었는데 하다 보니까 요령이 생기더군요. 치매 증세가 나올 때 특히 나쁜 사람들에게 바른 소리도 마음껏 하고 말이죠.”
극중 박금병의 인기는 인터넷을 치면 확인된다. 정재순의 이름을 검색창에 치면 드라마에서 착장한 귀걸이며 사용한 안경테, 옷 등의 브랜드를 알 수 있을 정도.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젊은 시절을 주로 기억하는 치매이다 보니 빨간 립스틱에 화려한 색감의 옷도 입고, 짧은 점퍼에 토끼 머리띠는 물론 시니어에게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미니크로스백도 수차례 바꿔 멨다. 70을 훌쩍 넘긴 나이에 후배 연기자들에게 애교 부리는 모습은 귀엽기까지 했다.
“도무지 모르겠어요. ‘하나뿐인 내편’에 출연하면서 귀엽다, 예쁘다는 말을 평생 들어도 차고 넘칠 만큼 들었어요. 귀엽대요. 제가요. 저는 원래 재미없는 사람인데요.(웃음) 배우는 정말 좋은 직업이에요. 순간순간 다른 인생을 살기 때문에 내 삶에도 도움이 되고요.”
그렇다고 그녀가 박금병 같은 강한 캐릭터 연기를 처음 해본 것은 아니다. KBS1 드라마 ‘하늘만큼 땅만큼’에서는 뽀글뽀글 파마머리를 한 새엄마 역할을 했고, SBS 드라마 ‘그래 그런거야’에서는 배우 송승환과 연상연하 부부로 연기한 적 있다. 스스로 놀랄 정도로 지금까지 맡았던 역할 중 박금병이 인기나 화제성에서 단연 으뜸이다. 그녀는 최근 드라마와 캐릭터의 인기에 힘입어 KBS2 예능 프로그램인 ‘해피투게더’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예능 프로그램에는 살면서 처음 나가봤어요. 우리 집안에 예능 PD가 있는데 출연 제의가 와도 안 나간다고 했거든요. 매니저 등쌀에 못 이겨 결국 나갔네요. 유재석 씨가 능력자더라고요. 나같이 재미없는 사람 앉혀놓고 잘 이끌더군요. 그날 ‘해피투게더’가 자체 최고 시청률을 찍었다 하더라고요.”
데뷔 51년 차, 나를 돌아보다
스타 탄생 비화에 종종 등장하는 스토리. 정재순도 친구 따라 탤런트 시험에 응시했다가 얼떨결에 연기자의 길로 들어섰다. 1968년 TBC
8기 공채 탤런트로 합격했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 미술대학교 지원도 못하게 했는데 탤런트를 하겠다니, 부모님은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런데 의외의 지원군이 정재순 옆에 있었다. “저는 그때 대학 재수를 하면서 군대 간 남자친구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반대가 심해서 집에서 쫓겨나기도 했는데 당시 남자친구였던 제 남편의 부모님이 제가 탤런트 된 걸 너무 좋아하셨어요. 밀어줬다기보다는 ‘괜찮다’ 이 정도요? 그때 시어머니께서 하셨던 말씀이 기억나요. ‘시댁에서 바람날 여자는 안방에 앉혀놔도 막을 수 없다.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힘과 용기를 내 방송사에 갔는데 세상에 아유…. 막상 닥쳐보니 제가 아무것도 모르고 끼도 없더라고요.”
간단히 말해 얼굴이 예뻐서 합격한 케이스였다.
“괜찮은 여자 탤런트가 들어왔다고 방송사에 소문은 났는데 연기를 시켜도 뭘 할 줄도 모르고 꿔다놓은 보릿자루였거든요. 야외 촬영은 너무 싫었어요. 스튜디오 촬영은 얼마든지 했고요. 사람들이 와서 지켜보고 있으면 불편하고 힘들었는데, 세월이 흐르다 보니까 박금병이 같은 역할도 하고. 약간 뻔뻔해졌다고나 할까?”
어찌어찌 하다 보니 세월이 그렇게 갔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그리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연기자는 생각도 안 해본 직업이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뭘 잘 모르고 시작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하는 것 같아요. 그냥 군대 간 남자친구를 기다리면서 방송사를 다니던 시절도 있었어요.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어느새 세월이 이렇게 흐른 거죠. 51년 동안 인정받을 만한 작품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 때는 너무 아쉬워요. 이번에 ‘하나뿐인 내편’은 기억에 남겠죠.”
기다림이 만들어 준 또 다른 이름 화가
남들이 기억하는 작품이 많은 것보다 오랜 시간 기복 없이 꾸준한 모습으로 시청자들을 만나온 것 자체가 더 대단한 결과가 아닐까?
“그렇죠. 감사한 일이죠. 그런데 연기자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제가 선택하는 게 아니고 선택받는 직업이잖아요. 매년 꾸준하게 몇 작품씩 들어와야 하는데 들쭉날쭉했어요. 그래서 그 기다림의 시간을 채우기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죠.”
중고등학교 시절 그림대회에 나가 상도 많이 받아왔지만 부모님 반대로 포기해야만 했다. 결혼하고 나서도 그림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물감을 사 모으기도 했다.
“집에서 혼자 수채화를 그리다가 본격적으로 공부해볼 생각을 했어요. 처음에는 어린 시절의 은사를 찾아가서 배웠는데 체계적으로 공부해보라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책도 찾아보고 공부도 하면서 미술공모전이 있으면 열심히 작품을 냈습니다. 미술계 유명한 공모전에는 거의 다 출품했던 것 같아요. 1991년에 첫 개인전을 할 때까지 응모했죠.”
그녀의 첫 개인전은 당대 히트작이었던 MBC 주말연속극 ‘배반의 장미’의 촬영 장소로도 쓰였다.
“극중에서 제 배역은 속 썩이는 남편을 둔 재벌가 며느리였어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 캐릭터였는데 ‘배반의 장미’를 집필하신 김수현 선생님이 제가 전부터 그림을 그린다는 걸 알고 계셨어요. 극이 끝날 때쯤, 전시회가 있다는 걸 아시고 전시회 신(scene)을 만들어주셨어요. 그 드라마에 나왔던 전시회 장면은 제 개인전 모습이었어요. 정말 감사했죠. 어느 연기자가 그런 배려를 받을 수 있겠어요.”
화가란 말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어느새 그녀는 미술계에서도 인정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기자로서의 삶과 화가로서의 삶은 그 성격이 판이했다.
“저는 연기와 그림을 병행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림은 혼자서 작업해도 되지만 드라마는 40~50명이 같이 어우러져서 일하잖아요. 1996년도에 네 번째 전시회를 할 때 ‘나는 누구인가, 나는 뭐하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어요. 그때 한꺼번에 세 작품을 소화하는 중에 전시 스케줄까지 잡혔었거든요. 그 뒤 5년간은 드라마에만 집중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리고 다시 개인전을 연건 12년 만이었죠.”
요즘은 그림 활동을 안 하다시피 하니 화가 정재순이라는 말이 참으로 어색하다. 그래도 마음이 힘들던 시절에 자신을 위로해줬던 것은 그림이었다고 말했다.
“우리 시니어도 시간이 많다고 무료하게 지낼 게 아니라 취미 활동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훨씬 좋을 것 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자기를 위해서도 주변 사람을 위해서도 좋더라고요. 드라마를 하면서 힘든 게 얼마나 많았겠어요. 그래도 그 힘든 세월 동안 그림이 있었으니까 많이 위로를 받은 거죠. 그리고 또 드라마 열심히 해서 좋은 모습도 보여드리고 있잖아요. 저는 행복한 사람이에요.”
그림은 항상 마음 깊은 곳에 있지만 혼자 하는 작업이다 보니 자꾸 소홀해지는 것을 느낀다. 긴장감도 떨어지고 말이다.
“옛날같이 체력이 안 따라줘요. 예전에는 드라마와 그림을 같이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쉽지 않아요. 저는 비구상화를 그려요. 마음이 캔버스에 드러나는 작업이기 때문에 어떤 것을 담아낼지 고민이 없으면 절대 그림을 그릴 수 없어요. 뭘 그릴까 계속해서 고민을 해도 작품이 나올까 말까예요. 누구도 함께할 수 없죠. 하지만 그림을 그리기 위해 고민하고 스트레스받는 건 굉장히 행복하고 자유스러운 거예요.”
박금병이 때문에 김장도 못했다
한참을 드라마와 그림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여자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로 슬쩍 흘러갔다.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하고 일을 하면서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고. 나긋하게 깔리던 목소리의 톤이 높아졌다.
“작년 말에 박금병이 역 하느라고 처음으로 김장을 못했어요. 살면서 거른 적이 없거든요. 매년 수산시장에서 젓갈이며 생선이며 사서 온 정성을 다해 담갔는데, 사이다처럼 톡 쏘는 맛이 별미인데 참 아쉽네. 이번에 대사도 많고 스케줄도 빡빡했거든요. 그런데 김장을 안 하니까 여기저기서 주셔서 김치가 되게 많아요. 그래도 박금병이도 잘되고 드라마도 잘돼서 좋습니다.”
인터뷰 초반에는 몰랐는데 살림이며 가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녀에게서 발랄한 목소리의 박금병이 느껴졌다. 이제 드라마도 끝났으니 다시 정재순으로 돌아올 시간. 가발을 벗고 단장을 했는데 영 어색하다며 머리를 매만진다.
“생각해보니 정식으로 할머니 역할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엄마였다가 자연스럽게 할머니가 되는 역은 많았는데. 거기다가 치매 환자 연기까지 했잖아요.”
매일이 새로운 연기자
제대로 연기했다는 만족감을 준 배역을 묻자 주저 없이 “이거. 박금병!”이라고 대답하는 정재순.
“저는 연기자를 그냥 직업이라고 생각했어요. 연기자로서 다른 삶을 연기할 때 충실하게 살려내려고 노력했어요. 직업 정신으로요.(웃음) 부족함도 많고 잘 모르니까 새 작품에 들어갈 때마다 항상 새로웠던 거죠. 연기자로서의 욕심을 좀 부려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워요. 우선 성격 강한 박금병이랑 헤어졌으니 조금 쉬어야 할 것 같아요. 주어진 역할은 뭐든지 최선을 다하자는 게 제 원칙이니까 또 열심히 해야겠죠.”
앞으로 배우로서 바람이 있다면 카리스마 넘치는 회장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100세 시대잖아요. 시니어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요. 치매 연기 같은 거 말고. 힘과 용기와 아름다움과 즐거운 취미활동 같은 것들을 전달해줄 수 있는 그런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화가로서 시간이 허락되면 내년쯤 전시회를 가져볼까 해요. 전시회 열면 초대할게요.”
인터뷰를 마치고 정재순이 곧바로 향한 곳은 ‘하나뿐인 내편’의 종방연 현장이었다. 플래시 세례 속을 ‘강기사 오빠’인 최수종 팔짱을 끼고 걷는 정재순을 인터넷 뉴스로 접했다. 데뷔 51년 만에 인생 배역의 기쁨을 제대로 누리고 있는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도 영원할 수 있었던 그녀만의 힘, 주어진 일에 대한 감사와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