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생 이하만 가입 부탁드립니다.”
취미 모임 플랫폼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가입 나이 제한 안내 문구다. ‘소모임’, ‘문토’, ‘프립’ 등 대표 플랫폼 설치 비중은 실제 2030세대가 절대다수다. 그럼 중장년은 어디에서 취향을 공유할 수 있을까…? 고민을 덜어 줄 플랫폼이 여기 있다.
1. 오뉴
5060세대와 액티브 시니어를 위한 취미 문화 커뮤니티. 무료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원데이, 정규, 무료 체험 등 다양한 형태의 프로그램이 오프라인에서 열린다. 온라인으로는 다양한 여가 정보를 추천받을 수도 있다.
2. 위드플
5670세대 전용 여행 플랫폼. 소비시장의 한 축으로 떠오른 액티브 시니어를 위한 맞춤형 여행상품을 만날 수 있다. 국내는 물론 해외, 로컬 체험까지 인생 2막에 새로운 활력과 가치를 전한다.
3. 큐리어스
중장년 커뮤니티 기반 지식공유·교육 플랫폼. 자기계발과 취미생활을 즐기며 돈까지 버는 ‘성장 놀이터’다. 온·오프라인 교제는 모임 서비스 ‘어울림’에서 이뤄진다. 중장년 크리에이터는 자신의 취미나 관심사를 바탕으로 모임을 개설하고 참가자를 모집할 수 있다.
4. 에이풀
5060세대를 위한 라이프스타일 조사 플랫폼. 퇴직 후 인생 이모작을 준비하는 이들이 자신이 속한 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을 한눈에 파악하고 일과 취미, 건강 등 솔루션을 찾아가도록 지원한다. 미션을 수행하고 포인트를 얻어 쇼핑을 즐길 수도 있다.
5. 시놀
5070세대의 액티브라이프를 위한 소셜 커뮤니티. 이성 친구도 찾고, 취미 활동을 함께할 모임에 가입할 수도 있는 시니어 데이팅 플랫폼이다. 건전한 만남이 지속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악성유저 및 피싱, 허위정보 등에 대처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는 노인 인식을 개선하고 세대 갈등을 해소할 여러분들의 사연을 기다립니다.
에디터 조형애 도움말 이연지 디자인 이은숙
그의 산중 살림이 어언 30여 년째. 이력이 길어 쌓인 내공도 겹겹일 터다. 따라서 번듯한 집과 농장을 갖추었을 성싶지만 웬걸, 거처의 모습에 애써 다듬거나 꾸민 흔적이 거의 없다. 원래 화전민이 살았다는 집부터 옛 모습 그대로다. 1000평 규모의 농장 역시 야생 초원에 가깝다. 그렇다면 천하태평 게으름뱅이들이 사는 집? 또는 못 말릴 자연주의자의 거처? 후자가 정답이다. 즉 안희상(76, 다락골 구름밭 농장)과 아내 정선희(71)는 외진 산골에서 자연과 동행한다. 자연에 순응하고 동화하는 데에서 건강한 삶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고수해왔다. 농사도 유기농보다 한층 진보적인 자연농법을 구사한다. 자연의 생태 그대로를 존중하는 천연농법으로 자급자족을 도모하고, 나아가 삶과 생각의 대부분을 자연으로 채워 만족스러운 나날을 누린다.
서울에서 살았던 안희상은 대형 건설사 직원이었다. 그는 수시로 해외 근무를 했는데 45세 때의 어느 날 청천벽력과도 같은 폐암 선고를 받았다. 그게 산골로 이주한 계기였다. 폐 하나를 잘라내는 대수술을 받고 산이라는 요양소에 입소했다. 무너진 건강을 산에서 회복하기 위해 귀농을 했던 것. 그리고 대단한 성과를 거두었다. 마침내 암을 물리쳐 안정적인 건강상태에 이르렀다는 진단을 받았고, 지난 30여 년간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았다는 게 아닌가. 만약 산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이에 대한 안희상의 답은 이렇다.
“도시 생활을 지속했다면 일찍 세상과 이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도시의 복잡한 일상과 식습관에서 벗어나는 게 살 길이라고 봤는데, 그게 입증된 셈이다. 자연이 주는 산나물 중심의 음식을 먹고, 번잡한 문화생활을 배제하자 좋은 결과가 나타났다. 단조로운 생활을 반복하면서 뇌가 편해졌는데, 이 역시 치유 효과를 가져왔다. 아내가 정성껏 만들어준 제철 식단의 힘도 컸다.”
집이 인상적이다. 작고 낡아 불편해 보이지만 고색창연해 정겹다. 옛날 집을 원형 그대로 두고 사는 이유가 있겠지?
“100여 년 전에 화전민이 지은 토담집이다. 요즘처럼 흙이 오염되기 이전 시대에 지어진 황토집인데, 헐어내고 새로 짓기엔 아까웠다. 8평짜리 본채에 툇마루를 보탰을 뿐 본래의 구조를 유지한 채 살고 있다. 난방은 아궁이에 군불을 때 해결한다.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있지만 우리는 원래 있는 조건 그대로를 수용하며 살기로 했다. 이 집에서 살았던 화전민들의 원시적인 생활 방식을 따르자, 도시에서 익숙해진 습관과 사고를 싹 바꾸자, 그러면 병이 낫겠지, 그런 생각을 했던 거다.”
반듯한 냉장고가 없는 대신 작은 김치냉장고 하나만 가지고 산다지?
“최대치의 간소한 생활을 한다. 적은 소유로 적은 소비를 하기 위해서다. 쓰레기 배출에 따른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서도 적은 소비는 당연한 거라 봤다. 우리는 계곡물을 호스로 끌어들여 생활용수로 쓴다. 세탁기 없이 사시사철 손빨래를 하며, 원초적인 형태의 생태 화장실을 집 밖에 설치해 배설물을 퇴비로 바꾼다. 농사용 장비는 기계톱이 유일하다. 호미와 괭이로 모든 농사일을 감당해온 셈인데, 그러한 육체노동이 암을 낫게 한 요인의 하나로 작용했다.”
건전한 노동은 떳떳해서 아름답다. 그런데 부인을 너무 혹사시키는 건 아닌지?(웃음)
“아내에게 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품고 산다. 다행히 그의 기질은 강인하고 투철하다. 때로 파이터로 변한다.(웃음) 한편 아내 역시 불편하고 간소한 산중 살림의 긍정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이라 매사 쾌활하게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산에 살면서 산을 오염시키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에 대해서도 부부가 공감대를 갖고 실천해왔다.”
야생 조수는 산골의 원주민
2월 말의 산중을 채운 공기는 차갑지만 봄기운이 이미 흥건하다. 여기저기 수선화 새잎들이 소복이 올라와 솔바람에 설레어 살랑거린다. 머잖아 온갖 봄꽃들이 다투어 우르르 피어나면 숫제 야생 화원으로 바뀔 거란다. 다종다양한 약초, 야생화, 꽃나무 등속이 어울려 꽃 정원을 연출하는 것인데, 이 가상한 꽃밭이 바로 안희상 부부의 농토이자 일터다. 고구마, 마늘, 고추 등 일반 농작물은 물론, 갖가지 산나물이 산재한 채 마음껏 활개 치는 식의 자유로운 성장을 해 결실을 맺는다. 농약을 치거나 비닐 멀칭을 해주는 식의 요령은 전혀 동원되지 않는다. 그래 자연농법이다.
안희상은 자연의 생리와 기법을 존중하는 한편 인위와 간섭을 배제하는 농사를 짓는 것이야말로 농부가 해야 할 진정한 업무라고 보는 것 같다. 그런 농부라야 비로소 이상적인 먹거리로 밥상을 차릴 수 있으며, 나아가 식물들이 성황리에 펼치는 순수한 생명 이벤트를 즐겁게 관람하는 특권을 누릴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하지만 인간사가 동화나 아라비안나이트처럼 즐겁기만 하랴. 농장이 자리 잡기까지 고생도 적지 않았으리라.
“구체적 계획 없이 산에 들어온 탓에 처음엔 막막하고 힘들었다. 그러나 무질서한 주거 환경에서 하나하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 사실은 즐거웠다. 남들이 할 수 없는 삶의 방식을 나는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면서는 더 큰 재미를 느꼈다. 건강 문제를 잊을 정도로.”
초보 농부로서 겪은 애로점은?
“돌이 많은 밭이라 돌을 캐내는 작업부터 만만치 않았다. 초기부터 시도한 유기농법 역시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잘 자라는 건 산나물들이었다. 결국 농장의 절반을 산약초로 채웠고, 유기농법을 자연농법으로 전환했다. 이렇게 해서 야생에 가까운 농원이 형성됐다. 문제는 실로 낮은 소출 수준이었다. 따라서 잠시 실망도 했지만 적은 생산일망정 자연이 베푸는 선물임을 자각하고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됐다.”
소출이 적다면 소득도 적을 텐데 생활비는 어떻게 조달하나?
“산에 들어올 때 가져온 자금에 여유가 있어 한동안 문제가 없었지만 세월이 흐르며 궁색해지더라. 해법은 소비를 줄이는 데 있었다. 도시에 사는 아들의 도움도 받았다. 이건 사실 30여 년의 산중 생활 중 유일하게 낭패스러운 대목이다. 자급자족을 추구했지만 뜻대로 풀려나가지 않았으니까.”
근래의 기후 변동으로 농부들의 애환이 많다. 이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보나?
“기후위기에 따른 자연재해를 불러들이는 건 건 결국 인간이다.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한 생활습관의 변화가 대안일 테고. 농사 역시 자연의 순환을 거스르지 않는 자연농법으로 가는 게 옳다. 독성을 품은 화학농약에 의존하는 농사는 결국 몸에 좋지 않은 먹거리를 양산할 뿐이며, 동시에 토질을 망쳐 자연 생태를 깨트린다. 관행농법을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환경을 생각하는 귀농인이라면 마땅히 자연농업을 지향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야생 조수에 의한 농사 피해를 호소하는 농부들도 흔하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나?
“우리는 초기에 부엌도 없이 살았는데, 어느 날 보니 천장에 걸어둔 냄비에 뱀이 들어앉아 있더라.(웃음) 이걸 어쩌나. 죽여? 그럴 순 없는 일이었다. 알고 보면 원래 이 산골에 자리 잡고 산 건 사람보다 짐승들이 먼저였다. 야생 조수들이 이 땅의 주인이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새를 내쫓고, 개구리를 잡아먹고, 멧돼지를 죽인다. 원주민을 이렇게 대접해도 되나? 야생 조수들이 자연 속에서 하는 선한 몫까지 고려하면 해결 방안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상생이 답이라는 얘기다.”
상생의 가치는 귀하지만 자신하고도 불화하며 사는 게 사람이다. 상생을 염두에 두고 내려온 귀농인조차 마을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해 고심하는 경우도 흔하다.
“이웃과의 갈등. 이 문제는 사실 우리에게도 만만치 않은 사안이다. 불합리한 정도가 지나쳐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행태와 맞닥뜨리곤 했다. 완고하고 이기적인 사람에겐 사실 대책이 없다. 그런데 이건 있다. 도시 사람들의 큰 이기심에 비할 때 시골 사람들의 작고 단순한 욕심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 그럼에도 갈등하는 나 자신이 부끄럽다.”
부족하고, 재주 없고, 부끄럽지만
소소한 난항은 어쩌면 순항으로 데려가는 징검돌이다. 안희상은 초기의 개척시대를 통과한 탄력으로 산중의 삶을 매우 긍정적인 방향으로 운항, 일찌감치 안도할 만한 궤도에 올라섰다. 불편하고 낯설고 거친 생존 조건조차 ‘자연스럽게, 흥미롭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하는 걸 보면 원래 야생의 기질을 타고났을 수도 있겠다. 아무려나 그는 굳이 이를 악물고 살 필요를 느끼지 못한 채 스펀지에 스며드는 물처럼 자연의 감화력에 흡수되었고, 자연농법 삼매경을 경험했으며, 건강을 회복했고, 결핍과 불만이 없는 영일(寧日)을 누린다.
“불편한 환경이 오히려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는 걸 느끼며 살았다. 어떤 논문에 이런 게 있더라. 윤택한 밭과 거친 밭에 시금치 씨앗을 나누어 심었는데, 나중에 수확해 분석한 결과 거친 환경에서 자란 시금치의 약성이 더 뛰어났다는 거다. 사람의 경우도 비슷한 게 아닐까? 산속에서 검소하고 단순하게 사는 게 힘들 것 같지만 안분지족(安分知足)할 경우엔 삶의 질이 높아진다.”
자연의 모든 걸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실제의 삶은 반자연적이거나 부자연스럽다. 어쩌면 우리는 엉뚱한 방향으로 질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산속에 살면서 나는 자연에 대해 외경과 감사를 느끼는 사람으로 변했다. 그러면서 더 온전한 삶을 지속할 수 있었다.”
어떨 때 외경의 감정이 일어나나?
“가령 밭에 뿌린 씨앗에서 싹이 틀 때, 작은 싹이 자라 열매를 맺을 때 경이롭다. 뇌우가 쏟아지는 밤, 마루에 앉은 나의 옷깃에 날아와 앉아 비를 피하는 개똥벌레를 바라볼 때도 환희를 느낀다. 이럴 때면 성찰의 눈으로 자신을 돌아보기도 한다.”
꽉 막힌 산골에서 원초적인 스타일의 삶을 구현하는 일. 적게 먹고 담백하게 사는 일. 그걸 30년째 즐겁게 지속하다니.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다. 삶의 관성을 넘어선 안희상의 ‘도발’이 놀라워서.
안희상이 주는 귀농 Tip
•자연은 예술을 뛰어넘는다. 자연을 향유하고자 하는 자세를 가지고 귀농하는 게 현명하다. 도시에서 몸에 밴 놀이 문화를 싹 버리고 시골 생활에 입문하는 게 좋다는 얘기다. 자연에 관한 감수성이 철저하게 결여된 사람이라면 귀농을 아예 하지 않는 게 옳다.
•도시 문화를 그대로 가지고 귀농귀촌을 하면 원주민들의 문화와 충돌하게 마련이다.
•재능이나 자금력보다 자연에 의지하자. 자연 생태에 관한 안목과 사랑이 생기면 도시에서보다 수준 높은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다.
•강도 높은 노동이 요구되는 게 농사다. 따라서 50세 이전에 귀농하는 게 좋다. 무릎 관절에 문제가 있는 경우는 귀농을 삼가라.
•집을 크게 짓지 말자. 철수할 상황이 발생했음에도 매도가 어려워 진퇴양난에 빠지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는 걸 유념하자.
•몸에 좋은 먹거리를 거둘 수 있는 자연농법을 하라. 그러면 오지 산골에 살더라도 병원 신세를 지지 않고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자연농법을 위해서는 생태 화장실이 필수품이다. 배설물로 거름을 만들어야 하니까.
[창간 9주년 기념 특집 기획] 우리 시대, 어른을 찾아서 ‘세대 간 존경-존중에 대한 인식조사’(2024)
불확실한 미래에 앞날을 의논하고 갈피를 잡아줄 어른은 점점 사라지는 듯하다. 우왕좌왕하던 청년기를 지나 어느덧 한 사회의 어른 위치에 놓인 5060세대. 나는 어떤 어른인지, 왜 어른이 돼야 하는지,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있을지… 고민이 뒤따르는 시기다. 이에 본지는 월간지 창간 9주년을 맞아 마크로밀 엠브레인에 의뢰, ‘세대 간 존경-존중에 대한 인식조사’(△전국 2030·5060세대 500명 △2024년 2월 29일~3월 4일 △표본 오차 ±4.4% △신뢰수준 95%)를 실시했다. 해당 결과와 2014년 진행된 동명의 조사 데이터를 비교·분석해 현대 사회 어른의 시대상과 세대 간 존경에 대한 인식을 조명해본다.
본지는 2014년 지면 창간 준비를 위해 동명의 설문조사(세대 간 존경-존중에 대한 인식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2014년 조사 참여자의 과반수(68.2%)가 ‘세대 갈등이 심각하다’고 응답했는데, 10년 후 조사에서도 대다수(79.8%)가 같은 의견을 냈다. 수치로는 11.6%p 상승했는데, 이러한 변화는 갈등 양상이 과거보다 더 고조됐음을 시사한다.
세대 갈등 요인에 대해서는 2014년 절반에 가까운(46.7%) 응답자가 ‘소통이나 세대 이해의 부족’을 꼽았는데, 최근 조사에서는 그 수치가 10%p가량 줄었다. 그럼에도 해당 항목은 여전히 2030세대가 말하는 갈등 요인 1위다.
반면 5060세대의 결과에서는 1위가 바뀌었다. 오늘날 기성세대의 42%는 ‘가치관이나 취향의 차이’가 세대 갈등을 일으킨다고 봤다. 10년 전(24.4%)과 비교해 수치 차이가 가장 큰 항목이기도 하다. 2030세대의 결과에서 이전과 비교해 두드러지는 부분은 ‘부나 기득권의 편중’을 택한 비율이다. 2014년에는 6%에 머물렀는데, 2024년 13.2%에 이르며 10년 전 수치의 2배를 웃돌았다. 역으로 5060세대는 7.4%에서 5.2%로 비율이 소폭 감소했다.
박민선 사회복지학 박사(연령통합고령사회연구소)는 이러한 결과에 대해 “과거부터 X세대 등 새로운 세대는 계속 생겨나고, 이들과 기성세대 간 갈등은 늘 존재했다. 그러나 최근 10년 동안 많은 부분이 온라인·디지털화되면서, 젊은 세대의 가치관이나 취향, 문화 등이 매우 다양해졌다”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세상에서, 기성세대는 과거와 너무나 다른 신세대의 등장에 이들의 문화를 따라가기 어려운 형편이다. 반면 문화의 중심에 있는 젊은 세대는 이러한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기에 기성세대가 자신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소통이 안 된다고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이라 말했다.
이어 “요즘 젊은 세대 문화의 한 갈래 중 ‘소비’에 대한 이슈도 적지 않다. 과거보다 부동산, 재테크 등에 대한 정보를 취하기 쉽고, SNS 등을 통해 다양한 소비문화를 접하기 때문”이라며 “소비문화를 향유하려면 상대적으로 시간적·경제적 여유가 필요한데, 이는 기성세대 쪽에 편중됐다. 오늘날 청년들이 볼 때 과거 5060세대가 젊은 시절엔 부의 축적이나 일자리에 대한 기회가 더 많았던, 소위 기득권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2030세대는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데, 그럼 심정이 조사 결과에 드러났다고 본다”고 해석했다.
소맥이 진리로 통하는 한국 주류 시장에 ‘혁명’을 일으키기 위해 뛰어든 이대로 댄싱사이더 컴퍼니 대표를 만났다. 그는 양조장에서 사이더라는 술을 만들지만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문화’를 전파하고자 창업의 길에 뛰어들었다.
이대로 대표는 유년기를 미국에서 보냈다. 그의 친구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보스턴에서 창업을 했다. 크래프트(수제) 사이더 브랜드 ‘다운이스트 사이더’다. 사이더는 사과즙을 발효시켜 만든 술이다. 사과의 달콤함, 탄산의 상쾌함, 높지 않은 알코올로 가볍게 즐길 수 있다. 미국에서는 2010년 이후 전역에서 크래프트 사이더 붐이 일었고, 사이더 시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돼 지금은 많은 이들이 즐기는 주류가 됐다. 친구들의 회사가 빠르게 성장하는 걸 보며 이 대표는 사이더 시장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사이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왜 한국에서는 아무도 만들지 않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국내에는 ‘사이더’라는 주류 카테고리조차 없었죠. 사과와인을 만드는 분들은 있었지만, 사과 맛이 진하면서 청량감도 좋은 대중적인 사이더를 만드는 곳은 없었어요.”
미국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금융권에서 일하면서도 이 대표는 사이더 시장에 계속 관심을 가졌다. 열정만 가지고 창업을 한 게 아니라 5년이라는 시간을 공들여 고민하고 시장을 조사했다. 2013년 즈음만 하더라도 다양한 주류 규제와 주세법 때문에 국내에서는 크래프트 주류 시장이 성장하기 어려웠다. 2016년 이후 수제 맥주에 대한 규제가 개선되면서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이 늘기 시작했다. 사이더가 우리나라에서도 통할 거라고 생각한 이 대표는 공동창업자 구성모 이사와 함께 2018년 충주에서 댄싱사이더를 창업했다.
사과 혁명을 꿈꾸다
이대로 대표는 소맥 위주의 우리나라 주류 시장에 애플사이더로 일으킬 ‘사과 혁명’을 꿈꿨다.
댄싱사이더 컴퍼니 직원들은 직함 대신 서로를 ‘선수’라고 부른다. 소비자는 ‘댄서’다. 이 대표는 선수가 만든 사이더의 매력에 댄서가 자신의 방식대로 춤추며 즐긴다는 의미를 ‘댄싱사이더’라는 회사 이름에 담았다. 그의 말처럼 사이더를 즐기는 데 정답은 없다. ‘Drink Different’라는 댄싱사이더의 슬로건처럼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자유롭게 춤추며 즐기면 된다.
“춤이라는 장르는 정답이 없잖아요.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고요. 경직된 회식 자리에서 소맥만 마시는 우리 술 문화를 외국의 파티 문화처럼 편하게 바꿔보고 싶었어요. 강압적으로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마시고 싶은 술을 내가 원하는 만큼 마시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죠.”
댄싱사이더의 양조장은 충북 충주에 있다. 충주는 사과가 맛있기로 유명하지만 물이 좋기로도 잘 알려져 있다. ‘원물의 퀄리티가 좋아야 한다’는 생각에 충주에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사과 품종의 70%는 ‘부사’다. 해외에서는 디저트로 사용하는 사과로 그만큼 당도가 좋아 설탕이나 인공 재료를 넣지 않고도 사과 본연의 단맛을 구현할 수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우리나라 주세법상 사이더는 ‘과실주’에 속한다. 이 대표는 원하는 맛을 내기 위해 사과를 아끼지 않았다. 제일 처음 선보인 ‘스윗마마’와 ‘댄싱파파’는 330ml 한 병에 사과가 2개나 들어간다. 최근 새로 개발한 사과 증류주 ‘댄싱22’는 375ml인데 여기에는 7개의 사과가 들어간다.
우리나라에서 나는 농산물을 제품에 녹여내면서도 어떻게 하면 사이더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을까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했고, 그런 제품을 만들었다. 그는 댄싱사이더 제품이 해외의 사이더와는 다른 ‘한국적인’ 사이더라고 말한다.
“해외 사례를 많이 공부했고 탐방했어요. 우리나라에서 나는 사과와 농산물을 원물로 사용하는 우리만의 강점은 무엇일지 고민했죠. 해외의 맛을 그대로 낸다면 과연 한국의 맛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한국 음식과 잘 어울리면서 국산 농산물 특징을 살리는 맛에 더 집중하고자 했습니다.”
댄싱사이더의 8개 제품은 뉴욕, 미시간, 영국, 일본, 한국 등 5개 국제 사이더 품평회의 총 22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맛과 품질을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한국적인 사이더의 맛을 구현하고자 했기에 더 값진 결과다.
‘사업이 아니라 운동을 시작하라’
‘창업의 시대, 브루독 이야기’라는 책의 서두에 나오는 말이다. 사업을 시작하는 주된 목적이 돈이 아니라 회사를 대표하는 가치를 지녀야 한다는 의미다. 이대로 대표는 “회사의 바이블 같은 책”이라고 표현했다. 그래서 댄싱컴퍼니에 합류하는 모든 직원에게 이 책을 선물한다.
“재미있는 비즈니스 책이지만, 성공할 수 있는 기본적인 철학이 다 나와 있어요. 크래프트 주류 회사로서 이 책에서 말하는 기본과 반대로 간다면 성공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죠. 직원들에게 책을 선물한 이유는 우리 회사의 철학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니 참고해달라는 의미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이에 반하는 행동을 한다면 그 점을 지적해달라는 마음이에요.”
브루독은 2010년 스코틀랜드에서 탄생한 수제 맥주 회사다. 2명이 설립한 회사지만, 크래프트 맥주계의 이단아로 불리며 580명의 직원을 이끄는 회사로 성장했다. 전 세계에 바를 열어 큰 성공을 거두기도 한 브루독의 사명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맥주 산업에 혁명을 일으키고 맥주 문화를 재정의하는 것’이다. 이대로 대표는 이런 브루독의 철학이 말하는 ‘본질’과 ‘가치’에 공감한다. ‘한국적인 맛과 멋에 집중한 유일무이한 애플사이더 브랜드로서 대한민국 애플사이더 혁명을 일으키는 데 앞장선다’는 가치를 세우고 국내 사이더 시장을 개척해나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까지 한국에 없던 것이면서도 한국적인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회사이기에 살아남기 위해 이익을 내야 하지만, 이익이 회사의 목적, 즉 존재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의 미션은 대한민국에서 사이더 고객을 계속 유치하는 것입니다. 저희는 주류를 생산하는 제조회사이기에 제품의 품질을 최고로 만드는 것이 중요해요. 저희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댄싱사이더의 브랜드 영향력을 키워나가는 게 목표입니다.”
이대로 대표는 댄싱사이더의 양조팀이 발효 전문가라고 자부한다. 창업 후 3년은 하고 싶은 일이 많아 앞만 보고 달리면서 재미있게 일했다. 창업 5년 차인 지금은 잠시 숨을 고르는 중이다. 외형적으로 꾸준히 성장해왔지만 이제는 내실을 다져야 할 때라고 판단한다. 코로나19 이후 어려워진 경제 상황은 댄싱사이더도 피해가지 못했다. 자생하는 힘을 키우고 싶어 투자를 받기보다 스스로 시장을 헤쳐온 그다. 매년 성장하다 창업 후 첫 고비를 겪고 있다. 이 대표는 “돌아보니 그동안 운과 타이밍이 좋았다”고 겸손하게 표현했지만, 댄싱사이더는 소주나 맥주처럼 대중적인 주류를 만드는 회사가 아님에도 5년 동안 꾸준히 성장해왔다.
“그동안 외형적으로 성장해왔다면 앞으로는 밀도를 높여야 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댄싱사이더를 시작할 때 가진 목표, 꿈, 비전이 있는데, 당시에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던 결정이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현재에 영향을 미치더라고요. 직원이 늘어나고 회사도 커지면서 무게감을 더욱 느끼고 있어요. 최근에는 처음으로 외부 투자도 받았습니다. 다음 단계로 올라서려면 질적인 성장 없이는 힘든 것 같아요.”
이 대표는 댄싱사이더의 가치를 실행하기 위해 명확하고 구체적인 방향성을 만들어가고 있다. 잘 다져둔 땅에 집짓기를 잘하려면 기초를 잘 올려야 하는데, 지금이 그 시기라고 생각한다. 국내 사이더 시장의 개척자로서 때로는 누군가 함께 경쟁하며 시장을 넓혀갔으면 싶을 때도 있지만, 그는 더 먼 미래를 보고 있다. 이 대표에게 금융권에서 일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을 때는 없냐고 묻자 “젊을 때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는 말이 와닿는 시기”라는 답을 내놨다.
“지금 편하면 나중에 힘들고, 지금 힘들면 나중에 편하더라고요. 언제 힘들고 언제 편할 거냐의 문제 같아요. 국내외 성공 사례들을 보면 최소 10년은 걸리는 것 같아요. 지금 잘하고 있는 회사들은 그 이상의 시간이 걸렸죠. 처음부터 장기전이라 생각하고 뛰어들었어요. 단지 가만히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린다고 성공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지금은 미래 도약을 위해 실력을 키우지 않으면 버티기 힘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지역 문화유산 순례기’는 한국문화원연합회의 후원으로 제작됩니다. 다양한 지역 문화유산을 만날 수 있는 지역N문화는 한국문화원연합회와 지역문화원이 함께 발굴한 다양한 지역 이야기를 서비스하는 지역문화포털입니다. 기사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지역N문화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열차에서 내려 북적이는 부산역 역사를 빠져나온다. 역 광장을 가득 채운 건 가을 햇살이다. 그것은 체로 거른 듯 맑아 상큼하다. 발길에 절로 탄력이 붙는다. 부산역 맞은편 초량동 골목엔 ‘이바구길’이 있다. 부산 동구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옛날 동네다. 과거로 가는 시간여행을 통해 동네의 근현대 문화와 풍속을 더듬을 수 있는 곳이다.
이바구길 초입엔 ‘구 백제병원’이 있다. 국가등록문화재로 ‘근대건조물’이라는 팻말을 달고 있는 서양식 건물이다. 그런데 외관이 범상치 않아 도드라진다. 일제강점기인 1927년에 지은 건물이지만 어떻게 된 영문인지 멀쩡한 외모를 유지한 게 아닌가. 100년 풍상에 시달린 건축이라면 보통 낡은 기미를 풍기게 마련이다. 시들고 삭은 기색으로 시간의 횡포를 웅변하거나 고색창연한 운치를 돋우기 십상이다. 그러나 애초 워낙에 잘 지은 덕분일까, 이 4층짜리 적벽돌집 외형은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당대의 첨단 건축 기법을 통해 등장한 건물인 걸 직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내부는? 아쉽게도 원형을 많이 잃었다. 1972년에 발생한 화재로 많은 것이 잿더미로 스러졌다. 외부와 달리 목재를 주재료로 사용한 탓에 피해가 컸다. 이후의 보수 작업은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건물주는 원형을 복원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벽면과 바닥의 형태는 물론 천장을 도배한 그을음까지 그대로 놔두었다. 기본이 원체 튼실해 뼈대까지 손볼 필요는 없었다. 이를테면 벽체 거죽이 얼마나 단단한지 콘크리트못 하나 박아 넣을 수 없었다니 말 다했다. 현재 이 빈티지한 건물 1층엔 카페가 있다. 묵은 세월이 새겨 넣은 신비감까지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다. 재생 공간만이 가질 수 있는 투박함과 묵직함에 예술적 디테일, 나아가 건물 역사의 스케일까지 가세해 민감한 이들의 오감을 자극한다. 2층엔 창비출판사가 차린 복합문화공간 ‘창비 부산’이 있다.
저 옛날의 백제병원은 외과의사 최용해가 지은 대형 사립병원이었다. 그런데 건물의 용도 변화 여정이 다채로워 흥미롭다. 개업 5년이 지난 1932년, 최용해는 기묘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일본으로 야반도주를 했다. 그러면서 건물은 동양척식회사로 넘어갔다. 이후 ‘봉래각’이라는 이름의 청요릿집이 들어섰다. 중일전쟁이 터지면서는 일본군 장교 숙소로 쓰였다. 해방 직후엔 부산 치안사령부 건물로, 1950년엔 중국 임시대사관으로,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엔 개인에게 불하되면서 예식장으로 바뀌었다. 이후의 양상은 생략하더라도 어지러울 지경으로 변동이 잦았던 걸 알 만하다. 말하자면 ‘구 백제병원’은 부산의 사회사와 풍속사가 압축파일처럼 내장된 건물이다. 따라서 보존할 가치가 있다. 모든 게 변한다는 걸, 흘러가고 지나간다는 걸, 세상에서 나그네 아닌 게 없다는 걸 일깨우는 공간이기도 하다. 상승도 추락도, 기쁨도 슬픔도 그저 지나가는 것일 뿐이련만, 고정불변의 것으로 바라보는 착시와 오해를 교정하라 묵시하는 곳일 수도 있다.
아슬아슬한 ‘168계단’이 품은 사연
이바구길을 따라 이제 언덕으로 올라간다. 언덕을 움켜쥐고 빼곡히 들어앉은 집들이 보인다. 간혹 새집도 섞여 있지만, 주로 자그맣고 오래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간신히 숨을 쉬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이곳은 삶의 변방이었다. 한국전쟁 피란민들의 천신만고한 생활이 펼쳐졌던 곳이다. 의지가지없던 피란민들은 이곳에 판잣집을 짓고 살았다. 피란민뿐이랴. 부두 노동자, 자갈치시장 일꾼, 공장 근로자, 영세상인 등 중심부에서 소외된 서민들이 초량동에서 비지땀을 쏟으며 간절한 삶을 꾸렸다. 이바구길은 이렇게 유적처럼 남은 과거사의 명암과 요철을 이바구하는 길이다. 동네에 고인 문화적 요소를 두레박으로 길어 올려 가시적으로 재구성한 문화재생 테마길이다.
볼거리는 충분히 많다. 발목 잡힌 듯 딱 멈추게 되는 건 ‘168계단’ 앞에서다. 좁고 길고 가파르기 짝이 없다. 허공에 펼친 사다리처럼 아슬아슬한 계단이다. 산동네 사람들은 이 험악한 계단을 오르내리는 수고를 면제받지 못한 채 생활을 도모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저 아래 있었던 우물물을 퍼 나른 루트였으며, 노동의 피로를 한잔 술로 달래고 휘청휘청 집으로 돌아가는 가장들의 발길에 닳고 닳은 계단길이었다. 희망을 품고 고역을 감수했던 주민들의 일상이 계단에 비쳐 먹먹하다.
‘168계단’ 옆에는 ‘김민부 전망대’가 있다. 부산에서 출생해 31세 아까운 나이에 요절한 시인 김민부를 기리는 공간이다. 그의 시는 빼어났으나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 거의 잊힌 시인이 됐다. 가곡 ‘기다리는 마음’의 작사자로 알려진 게 고작이다. 일찍이 김민부 시의 천재성을 증언한 논자들이 다수였지만 정작 그는 궁핍에 시달렸다. 시는 현실의 중력을 벗어나 높이 날았으나 종단엔 실존의 비애로 무너졌다. ‘김민부 전망대’에 오르거든 그의 이름을 가슴으로 한번 호명해볼 일이다. 참으로 반가운 건 부산에서 ‘김민부 문학제’가 연례행사로 펼쳐지고 있다는 점이다. 속세란 더러 경박하지만 야박한 것만도 아니다. ‘168계단’을 거쳐 언덕 중턱에 이르면 ‘유치환의 우체통’을 만날 수 있다. 부산 동구에서 살다 타계한 유치환 시인을 추모하며 만들었다. 마음에 둔 이에게 쓴 편지를 우체통에 넣으면 1년 뒤에 배달된다. 과거나 미래의 자신에게 쓰는 편지여도 좋겠다.
발길은 이제 ‘문화공감 수정’에 닿는다. 일제가 조선 침탈의 교두보로 삼았던 부산엔 일본식 가옥이 여럿 있다. ‘문화공감 수정’은 개중 번듯하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지은 일본식 전통 목조주택이다. 창호 문양 같은 세부 장식의 다양성, 걸음을 옮길 때마다 급변하는 실내 공간 구성이 특징적이다. 한옥과 달리 복도 공간을 정교하면서 활달하게 구사한 대목 역시 일식의 전형이다. 이모저모 본때 있게 지은 집이다. 관리 상태도 최상이다. 전국에 적산가옥(敵産家屋, 자기 나라나 점령지 안에 있는 적국 소유의 집)이 남아 있지만 이곳처럼 잘 보존된 집이 드물다고 한다.
1943년에 지어진 이 집은 해방 뒤 한국 사람에게 불하된 뒤 ‘정란각’이라는 고급 요정으로 쓰였다. 2007년에 이르러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적산가옥을 쳐다보기조차 싫어했다. 부끄러운 역사의 잔재로 인식해 철거나 개조를 능사로 삼았다. 그러나 적산가옥을 모조리 없애버린다면? 그럼 일본 정부가 반색하지 않을까? 침략의 증거물이 사라지니까.
가해자와 피해자의 역사가 겹으로 엉겨 있는 ‘문화공감 수정’은 캄캄했던 전 시대를 돌아보게 한다. 이곳 내부는 기능성과 미학으로 빼어나다. 온통 유리창을 낸 전면으로 들이치는 정원 풍경도 수려하다. 한때 이곳은 카페 공간으로 소비되었다. ‘인스타 핫플’로 유명했다. 그러면서 역사적 상징성이 흐려졌는데, 2021년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역사 전시공간으로 전환했다. 옳은 결정이다.
정정숙 부산동구문화원 원장대행
“부산 동구는 부산 문화의 본산지다”
‘부산 동구를 알면 부산 전체가 보인다’는 말이 있다. 지역사와 문화 측면에서 동구에 유형・무형의 많은 자산이 깃들어 있다는 뜻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동구엔 인적・물적 유입은 물론 문화 교류의 통로인 부산역과 부산항이 있다. 정정숙 문화원장대행은 이와 같은 정황을 근거로 ‘동구가 부산의 뿌리 역할을 했다’고 본다.
“동구는 1876년 부산항이 개항한 이래 명실상부한 부산의 관문으로 기능했다. 부산역 역시 문화자산을 축적하는 문물의 유입 경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러한 교통의 발달과 더불어 동구의 문화가 성장했으며, 여기에서 나온 에너지는 부산 전역의 문화에 영향을 미치며 확산됐다. 동구의 문화는 한마디로 부산 문화의 본산이자 압축판이라 할 수 있다. 부산이라는 지명 자체가 동구에 있는 증산에서 유래했다는 점도 참고할 만하다.”
동구의 문화 파워를 대표하는 공간을 꼽는다면?
“동구의 히스토리를 고스란히 담은 문화재생 테마 골목길인 ‘이바구길’이다. 이 길은 부산시가 2011년부터 추진한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을 통해 탄생했는데, 매우 재미있고 매력적인 곳이다. 꼬불꼬불 연달아 이어지는 골목길을 오르내리며 만날 수 있는 풍경과 명소마다 많은 이야기가 서려 있다. 길을 걸으며 과거를 만나고, 그러다 문득 현재를 돌아볼 수 있는 곳이다. 이바구길 인근에 있는 차이나타운과 연계해 답사하면 한층 즐겁다.”
31세에 요절한 천재 시인 김민부를 기리는 ‘김민부 문학제’가 부산에서 운영되고 있어 반가웠다. 문학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다시피 한 이름이라서.
“김민부 시인은 우리 동구의 수정동에서 태어났다. 그의 시혼을 기리기 위해 이바구길에 ‘김민부 전망대’를 조성했지만 미흡하다는 생각을 금할 길이 없다. 공간 확장이나 시인을 재조명하는 문학 행사 활성화 대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고 본다.”
부산동구문화원이 추진하는 역점 사업을 소개해달라.
“우리는 25개의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구민들의 호응도가 매우 높다. 특히 ‘노래교실’이 인기다. 무려 500여 명의 주민이 참여해 노래를 즐긴다. 옛 추억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디지털 파일로 변환해주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이 역시 반응이 좋다.”
예술 프로젝트 ‘꿈의 오케스트라 부산’을 운영하는 목적과 성과도 궁금하다.
“‘꿈의 오케스트라’는 문체부가 주관하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관하는 국가 사업으로 전국 여러 곳에서 펼쳐진다. 부산에서는 유일하게 동구문화원에서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베네수엘라에서 시작된 불우 청소년을 위한 음악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의 한국형 모델이다. 음악의 힘으로 사회에 희망을 부여하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 현재 단원은 오디션을 통해 뽑은 초2부터 고2까지 60명, 음악감독 1명, 강사 9명으로 구성돼 있다. 성과는 매우 크다. 정기 연주회와 작은 연주회를 활발하게 펼치고 있으니까. 무엇보다 아이들이 음악을 즐기며 밝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셈이라 다행스럽다. 이 아이들 중에서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나올 수도 있을 테고.”
재무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보유한 자산? 투자수익률? 앞으로 벌어들일 수입? 최문희 FLP컨설팅 대표는 ‘삶의 가치’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돈 관리 방법을 물었더니 ‘어떻게 살 것인가’를 강조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처음 최문희 대표가 금융권에 발을 들인 건 보험이었다. 당시에는 법인보험대리점(GA)이 없었는데, 여러 회사의 보험을 판매할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었다. 재무 설계에서 사람의 심리가 중요하다는 걸 이때부터 어렴풋이 느꼈다.
“생애 전반을 다루는 재무 설계를 하게 된 건, 보험업을 시작한 게 인연이었던 것 같아요. 태어나서부터 사망하는 순간까지 모두 다루잖아요. 지금도 그렇지만 사람들이 죽음에 대한 부분을 굉장히 터부시합니다. 종신보험이 처음 나왔을 때 이야기인데요. 종신보험은 평생 보장을 해야 하고 원금도 거의 보장이 안 되는데, 죽은 다음에 보험금이 나온다고 하니 사람들이 기존에 생각하던 보험과는 아주 다른 개념이었어요. 고객에게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려다 보니, 인생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죠.”
최 대표는 금융권 변화의 흐름을 타면서 자산관리 시장이 만들어지는 길을 자연스럽게 따라갔다. IMF가 터지면서 갑작스럽게 직장을 잃은 사람들은 인생에서 생각지도 못한 손실과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 기업들이 도산했고, 기업 고객만을 생각했던 은행들도 파산했다. 금융 시장에 ‘자산관리’라는 개념이 싹트기 시작한 순간이다. 그러면서 금융 관련 자격증이 우후죽순 도입됐다. 당시 윤병철 초대 하나은행장이 미국에서 CFP(국제공인 재무설계사)라는 자격증을 들여왔다. 앞으로 종합 자산관리가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최문희 대표는 2002년에 실시된 1회 CFP 시험에 합격하고, 2003년 IFPK라는 회사에서 재무 설계를 위한 발을 내디뎠다.
IMF 이후 일부 기업들이 직원의 자산관리와 재테크를 도와주기 시작했다. 최 대표는 KT 리더십센터와 삼양사 직원 대상 자산관리 교육·상담을 하면서 앞으로 재무 설계가 더 중요해지겠다는 확신을 얻었다. 비슷한 시기에 증권사나 은행 직원이 아니어도 고객에게 투자상품을 권유할 수 있는 법이 통과돼 재무 설계에서 다룰 수 있는 범위도 확장됐다. 최 대표는 CFP 시험 교재를 집필하고 재무 설계에 관한 콘텐츠를 만들며 꾸준히 이론을 다졌다.
“재무 설계 경험이 쌓일수록 삶을 더 깊이 이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심리상담을 전공하게 됐어요. 돈을 대하는 태도나 그런 태도가 만들어진 심리적 배경에 관심을 갖게 된 거죠. 일종의 재무 심리 치료인데요. 돈에 대한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습관과 태도가 돈에 대한 의사결정으로 이어지는데, 재무 설계에서 이 부분이 중요하겠다 싶었습니다.”
자산관리 트렌트, 적립에서 인출로
최문희 대표는 심리상담 석사와 박사 과정을 마치고 2011년 FLP컨설팅을 설립해 온전하게 독립했다. 재무 설계에서 사람의 마음이 중요할 거라는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100세 시대에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평생직장이 아니라 평생직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자연스럽게 자산을 적립하는 것에서 생애주기에 맞춰 인출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자산의 개념에 금전이나 부동산 같은 물적 자산뿐 아니라 삶의 가치나 일자리 같은 인적 자산도 포함하게 됐어요. 특히 노후나 은퇴 설계에서 중요하죠. 과거에는 노후 보장을 위해 3층 연금을 쌓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국민연금(1층), 퇴직연금(2층), 개인연금(3층)이죠. 이제는 5층이 됐어요. 4층에는 주택연금, 5층에는 일이 자리하죠. 수명이 늘어나면서 인적 재산을 통해 현금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해진 거예요.”
인출이 중요하다는 자산관리 트렌드에 맞춰 인식이 크게 달라진 대표적인 자산이 주택이다. 그동안 ‘집’은 살면서 꼭 한 채는 마련해야 하고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이 당연한 자산이었다. 하지만 평균 수명이 길어지고 자녀와 독립된 생활을 하게 되면서 주택은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유동화해야 하는 자산이 됐다.
“상담할 때 집이 너무 중요하다고 하는 고객에게는 왜 그렇게 중요한지 물어봅니다. 들어보면 각자의 이유가 달라요. 나의 성취감을 보여주는 게 집일 수도 있고요. 편안함을 주는 공간인 사람도 있습니다. 나 고유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스스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질문해야 합니다. 나만의 공간이나 가족과 보내는 공간이 중요한 사람은 꼭 도심에 집이 있을 필요가 없겠죠. 사람들과의 교류가 중요한 사람은 교통이 편리한 곳에 집이 있어야 할 테고요. 눈에 보이지 않는 신념과 가치에 따라 노후 생활의 질이 달라지는 것이죠. 나에게 자산이 왜 중요한가, 돈이란 어떤 의미인가 생각해봐야 합니다.”
재무 설계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 방향성을 정하는 것이다. 이전에는 자녀, 부모님, 직장이 기준이 되었다면 은퇴 후에는 ‘나’를 중심으로 생각해야 한다.
노후 준비, ‘목표’를 ‘숫자’로
삶의 가치를 고민했다면 다음으로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최문희 대표는 재무 설계에서 목표를 세우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 목표를 시간과 금액이라는 숫자로 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은퇴 시점을 60세로 가정했다면, 나의 자산을 살핍니다. 현재 내가 가진 자산으로 몇 세까지 얼마의 현금흐름을 만들 수 있는지 계산해보는 거예요. 은퇴 후 내가 살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자산이 부족하다면 계획을 세워야겠죠. 삶의 방향성을 정하고 자산을 점검하다 보면 내 현실을 자각하게 되죠. 이 순간이 무척 중요합니다. 현실을 알면 퇴직금이 얼만지, 국민연금을 몇 세부터 얼마를 받는지, 월급을 좀 더 올릴 방법은 없는지 등을 고민하게 되거든요. 은퇴 시점을 늦추는 방법을 고민하거나, 가진 자산을 유동화하는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내가 가진 자원과 삶의 목표 사이에 생기는 차이를 어떻게 줄일 것인지 전략을 세우는 게 곧 재무 설계의 시작이다. 자산을 어떻게 움직일지, 어떻게 관리할지, 지출을 어떻게 줄일지 자연스럽게 계획을 세우게 된다. 최문희 대표는 이 과정에서 기존의 제도를 200% 활용할 것을 조언했다.
“지금까지는 국민연금이 세금이라고 생각해서 다들 기본형으로만 활용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추가납입제도, 임의가입제도 등을 풀옵션으로 활용하면 어떨까요? 임의가입제도를 활용해서 보험료 산정 기준인 기준소득월액 상한액(2022년 기준 553만 원)에 맞춰 보험료를 내는 분들이 늘었어요. 연기연금제도를 활용할 수도 있겠죠. 퇴직금도 DC형인지 DB형인지 보고, DC형이라면 추가 납입으로 운영할 수 있어요. 퇴직금을 운용할 때도 절세 혜택들을 잘 이용해야 합니다. 개인연금의 경우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 제도를 활용할 수 있어요. 비과세 상품들을 잘 살펴야 하죠. 제도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노후에 받는 금액이 달라집니다.”
이렇게 노후 준비를 위한 자산관리 전략을 세웠다면 1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지출을 줄일지, 목표를 낮출지, 투자를 더 할지 등을 조정하는 것. 자산관리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이든 빚을 내서 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하나의 자산에 전 재산을 두어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 노후 중심 자산관리는 ‘인출이 쉬운 자산’ 비중이 가장 높아야 한다. 연금이 중요한 이유다. 최문희 대표는 마지막으로 “시간은 돈이다. 돈도 시간이다”라고 강조했다.
“인생에서 조급함과 나태함을 가장 경계하라고 합니다. 시간의 힘을 믿어야 한다는 의미예요. 기대수명이 얼마나 될지, 언제 돈을 쓸지, 투자수익률을 올리는 복리이자가 얼마인지 등의 개념도 모두 시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시간도 양적 시간, 질적 시간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보지 말고,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 삶의 가치를 분명히 세우면 시간의 질이 높아질 겁니다.”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의 로컬브랜드 상권 육성 프로젝트가 이태원에서 시작을 알렸다. 소상공인들을 1조 원의 기업가치가 있는 유니콘 기업형으로 육성하고, 지역의 상권이 글로컬(글로벌+로컬)로 거듭나도록 만들 계획이다.
지난 1일 로컬브랜드 창출사업이자 이태원 상권 회복 프로젝트로 진행된 팝업스토어 ‘헤리티지 맨션’이 문을 열었다.
로컬브랜드 창출사업은 로컬크리에이터와 소상공인의 협업으로 지역의 인적·물적 자산을 연결하고, 상권관리 모델 도입과 자체 역량 강화를 통해 골목상권을 브랜드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지난 5월 서울 이태원(어반플레이), 인천 개항로(개항마을), 공주(제민천), 군산 영화타운((주)지방)을 ‘로컬브랜드 상권 창출팀’으로 선정한 바 있다.
이영 중기부 장관은 2일 이태원에서 간담회를 열어 로컬브랜드 창출사업의 시작을 알리고, ‘헤리티지 맨션’을 둘러보며 이태원 소상공인을 응원했다.
이영 장관은 “퇴근하고 대중교통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가는 그 길이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면 어떨까? 동네가 바뀌면 온 동네 사람들이 행복해질 것이라 생각했다”고 로컬브랜드 창출사업의 배경을 설명하면서 “생활 속 창업에 개인과 공동체의 행복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에서 가장 먼저 방문하는 이태원의 독특한 문화, 역사, 가치들을 모아 상권을 개발하고자 했다”면서 이태원 상권 회복을 응원했다.
이태원에서 지역 소상공인들과 협업해 헤리티지 맨션을 기획한 어반플레이 홍주석 대표는 “우리나라 로컬크리에이터의 시작은 이태원”이라면서 “이태원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상권 활성화를 목적으로, 다양한 문화 프로젝트를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는 이날 열린 간담회에서 상인 700여 명의 감사의 뜻을 담아 제작한 감사패를 이영 장관에게 깜짝 전달하기도 했다. 유태혁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 회장은 “(지난해 참사 이후) 정말 고민이 많았는데 (중기부 지원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희망을 보게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
중기부는 소상공인을 기업가로 키우는 지원 사업들을 연계할 계획이다. 지역의 상인들을 ‘라이콘’(라이프스타일 유니콘)으로 성장시키고, 지역이 새로운 브랜드를 창출하는 글로컬 상권으로 재도약하도록 돕는다는 취지다.
이번 로컬브랜드 창출사업에 선정된 지역 중 이태원 헤리티지 맨션을 시작으로 공주 제민천 창업실험실, 마계인천 유니버스, 군산 술익는 마을 순으로 팝업스토어, 축제, 네트워킹 데이가 연속 개최된다.
이태원의 낮과 밤 담은 “헤리티지 맨션”
헤리티지 맨션은 도시 콘텐츠 전문 기업 어반플레이가 이태원의 로컬크리에이터, 소상공인과 협업해 만든 팝업스토어다. 독특한 지역성을 가진 이태원의 문화와, 시대를 선도하는 문화를 제안해온 이태원 구성원들의 유산을 담은 공간이다.
이날 헤리티지 맨션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방문했다. 오후 4시가 되자 DJ의 디제잉이 이어지며 마치 클럽에 온 듯한 느낌도 주었다. 헤리티지 맨션 자체가 곧 이태원이었다.
최은지 어반플레이 PD는 “9월 한 달 동안 앵커스토어인 헤리티지 맨션 팝업스토어를 중심으로 8군데의 지역 상인들의 공간에서 동시다발적 프로그램이 열린다”고 설명했다.
헤리티지 맨션에 방문하면 누구나 웰컴키트를 받을 수 있다. 이 안에는 이태원의 헤리티지(유산)를 보여주는 헤리티지 프로젝트에 관한 설명과 함께 이태원 일대를 돌아다니며 모을 수 있는 키링이 들어있다. 봉투 안의 키링을 가지고 쿠폰에 적혀있는 공간을 방문해 1만 원 이상의 소비를 하면 각 카테고리별 색깔의 열쇠 모양 키링을 받을 수 있다.
맨션 1층에는 웰컴레코즈(WELCOME RECORDS), 웝트(WARPED)의 제품들을 볼 수 있다. 한 편에는 이들을 지원하는 위스키 브랜드 짐빔의 하이볼을 맛볼 수 있는 부스가 있고, 옆에서는 매주 금, 토, 일 오후 4시부터 저녁 10시까지 DJ들의 릴레이 공연이 이어진다.
2층에는 암스테르담에서 믹스미디어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전윤일 작가가 이태원에서 7일 동안 실제로 살면서 담은 기록들을 전시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이태원의 색깔을 담은 F&B 부스가 운영된다.
3층에서는 비슬라(VISLA) 매거진의 ‘이태원의 낮과 밤’을 주제로 한 전시를 볼 수 있다. 전시에 담겨있지 않은 이태원 사진들은 포스터로 구매할 수 있다. 한편에는 관광특구도시인 이태원의 특징을 담은 굿즈가 판매된다. 보이롱페이스 작가와 협업해 그래피티를 넣은 티셔츠와 이태원 도시 명칭과 함께 헤리티지 맨션의 위도와 경도가 그려진 수건 등이 있다.
또한 매주 금요일에는 댄스 등의 공연이 열리며 매주 일요일에는 플리마켓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헤리티지 프로젝트는 오는 9월 24일까지 진행된다.
‘이태원’ 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는 단연 DJ 문화일 것이다. 웰컴레코즈는 DJ들을 서포트하기 위해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번 헤리티지 프로젝트에서도 DJ를 지원하기 위해 헤리티지 맨션과 컬래버레이션 한 LP를 선보이며, 볼레로(BOLERO)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웝트는 서브컬쳐나 발굴되지 않은 문화를 옷으로 표현한다. 홍콩, 뉴욕 등 전세계 아티스트들의 러브콜을 받는 팀이다. 헤리티지 맨션에서 선보인 옷들은 해외 아티스트들과 작업한 것들로 국내에는 없는 수입 제품들이다.
전윤일 작가는 7일간의 이태원에서의 생활을 기록했다. 실제 이곳에서 소비한 영수증, 필름, 가게의 소품으로 만든 오브제 등을 선보인다. 또한 이태원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이태원의 헤리티지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이태원이 어떤 의미인지를 묻고 담은 다큐멘터리도 상영한다. 이태원 곳곳에 그래피티 작업을 한 작가의 그래피티도 감상할 수 있으며 매주 달라지는 F&B도 즐길 수 있다.
종이 잡지로 시작해 글로벌 에이전시로 활동하고 있는 비슬라 매거진은 서브컬쳐를 주류로 끌어오는 힘이 있다. 이태원 출신의 사진작가들을 섭외해 ‘이태원의 낮과 밤’을 담았다. 낮에는 조용하고 비어있는 듯한 이태원이 밤이 되면 화려하고 다양한 문화가 섞이는 이중적인 모습이 이태원의 매력이라는 점을 사진으로 표현했다.
‘그린테일’은 친환경 유통이라는 뜻이다. ‘그린’(Green)과 ‘리테일’(Retail)의 합성어로, 상품을 생산하거나 판매하는 과정에 친환경 요소를 도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환경오염이 심각해지면서 친환경 제품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소비자의 환경 인식에 따라 ‘그린테일’을 하는 기업들은 친환경 포장재를 사용하는 추세다.
코로나19로 배달 문화가 활발해지면서 일회용품을 둘러싼 여러 문제가 제기됐다. 늘어나는 일회용 플라스틱이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후 배달업계에서는 ‘일회용품 줄이기’ 캠페인에 나섰다. 배달의민족, 요기요 같은 배달 앱들은 일회용품 식기를 받지 않는 선택란을 만들거나 친환경 용기를 쓰는 등 방안을 마련했다.
지구를 위한 친환경 포장재
배달업계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업이 친환경 포장재를 쓰며 환경보호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친환경 포장재는 탄소 배출 절감, 플라스틱 사용량 감소 등의 효과를 가져다준다. 한솔제지는 종이류 분리배출 가능한 ‘프로테고’ 종이 포장재를 만들었다. 롯데제과 ‘제로 후르츠 젤리’ 포장지와 ‘크리넥스 마스크’의 포장재에 프로테고가 적용됐다. 프로테고는 플라스틱과 금속 재료의 사용을 줄여 탄소 배출량을 45% 감소시킨다.
마켓컬리는 2019년부터 모든 배송 포장재를 종이로 변경했다. 2021년에는 종이상자를 대신한 ‘퍼플박스’를 개발했다. 마켓컬리는 ‘올페이퍼 챌린지’로 연간 비닐 사용량 약 831톤, 스티로폼 사용량 약 4000톤의 감소 효과를 봤다.
친환경 포장재의 소재는 다양하다. 버려지는 폐자원과 천연 소재를 혼합해 친환경 포장재를 생산하는 ‘나누’는 월 9만에서 15만 개의 제품을 납품하고 있다. 제주개발공사와 협약을 맺고 무상으로 수거한 감귤껍질을 감귤초콜릿 포장재에 사용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친환경 소재로 만들면 값이 비싸진다는 인식과 반대로 나누는 원가절감 효과를 보고 있다. 버려지는 천연 소재인 낙엽, 귤껍질, 농업 부산물 등을 무상 수거하여 만들기 때문이다. 이윤노 나누 대표는 “다음 목표는 사람들이 많이 소비하는 즉석밥 용기나 물병에 친환경 포장재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속 가능한 환경을 위한 발걸음
개인의 환경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면 기업은 소비자에게 맞춰서 간다. 환경오염 문제는 모두가 해결해야 하는 과제다. 몇몇 기업은 환경 측면의 경영을 내세우는 데 급급해서 ‘그린워싱’을 한다. 녹색경영을 표방하는 듯 홍보하고, 마치 환경인증을 받은 것처럼 마크를 제작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환경오염에 경각심을 느낀 소비자들은 ‘그린워싱’에 속지 않으려고 한다. 지속 가능한 맞춤형 포장재를 제공하는 칼렛바이오의 황시내 이사는 “포장재를 컨설팅받기 위해 온 고객들이 포장재의 소재가 친환경인지 꼼꼼히 물어본다. 환경에 100% 이로운 포장재는 없을지라도, 지속 가능한 환경 인식에 동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친환경 반려동물 식기부터 배달 용기, 카페 용품 등 자주 사용하는 포장재를 친환경으로 바꾸려는 고객이 늘고 있다”라고 말했다.
환경과 가치를 얻는 소비자들
친환경 제품이나 포장재는 일반 포장재보다 비교적 단가가 비싸서 소상공인이라면 가격에 부담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가치소비’를 핵심으로 여기는 소비자들도 있다. 자신의 주관이나 사회적 욕구에 부합하면 비싸더라도 구매하는 것이다. ‘프라이탁’은 가치소비를 핵심 키워드로 인지해 버려진 자동차의 안전벨트나 화물차 방수포 등으로 하나밖에 없는 디자인의 가방을 생산한다. 개성을 추구하는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를 끌면서 프라이탁은 환경과 소비자의 니즈를 잡아냈다.
권영삼 칼렛바이오 대표는 “가치소비 개념이 중요한 시대다. 지속 가능한 사회에 동참하겠다는 물결이 생길 때 기업은 어쩔 수 없이 변한다고 본다. 소상공인도 마찬가지로 단가가 비싸더라도 친환경 소재로 바꾸는 추세”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환경에 민감한 소비자들이 더 많아질 것”이라면서 “올바른 그린테일을 실천해야 소비자의 마음이 움직인다”라고 말했다.
건강을 잃고서야 절절한 심정으로 세상과 자신을 돌아보는 게 사람이다. 위중한 병을 얻었을 때 인생의 유한함을, 시간의 소중함을 비로소 뼈저리게 절감하며 새롭게 눈을 뜬다. 함지애(58, ‘지애의 봄향기’ 대표)는 40대 때 폐암 1기 선고를 받고 투병을 했다. 용케 조기에 발견된 암인 데다 수술이 잘돼 예후가 좋았다. 천운으로 병마를 다스렸으니 정상적인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을 듯싶었다. 하지만 얼마 뒤 폐암보다 무섭다는 폐섬유증(폐가 굳어지면서 심각한 호흡 장애를 불러일으키는 질환)이 다시 기습했단다. 어이하나? 어떻게 일어서야 하나? 폐섬유증 수술을 마친 함지애는 고심 끝에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인 김제로 내려갔다. 그건 요양을 위한 낙향이었지만 귀농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남은 인생을 덤으로 여기고, 이제 시골에서 제대로 한번 잘 살아보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다는 점에선 당찬 투신이자 기꺼운 모험이었다.
서울에 살 때 그는 의류유통업을 했다. 중년에 이르기까지 긴 세월을 동대문 상가, 남대문 상가에서 뛰었다. 뛰더라도 그냥 뛴 게 아니라 경주마처럼 열렬한 질주를 했나? 그의 가게엔 자주 고객들이 줄을 섰다지. 아마도 그의 천성일 패기와 근성이 성과를 불러들였던 것 같다. 마침내 자수성가로 우뚝하게 일어선 이라는 소리를 듣기에 이르렀다. 몸에 중병이 찾아와 위세를 부리는 일이 없었다면 서울을 뜰 일이 없었으리라. 시골살이? 그건 그의 사전에 아예 없었다. 생각만으로도 시골 생활은 무섭고 싫었다고 한다. 그러나 병을 통과하면서 생각이 변했다. 삶의 방향이 확 바뀌었다. 이렇게 뜻밖에 찾아온 변곡점은 차라리 하나의 기쁜 선물이었다. 낙향 이후의 삶이 한결 새롭고 만족스럽다는 게 아닌가. 시골에 내려와 비로소 인생의 향긋한 열매를 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 이왕 삶을 바꿀 거라면 다 내려놓고 가자!”
낙향 때 그의 머리에서 나부낀 기치가 그랬다. 인생을 레이스하는 데 쓸모가 큰 방편으로 여겼던 욕심과 경쟁심을 모두 내려놓기로 했다. 물질이든 행복이든 가급적 손아귀에 한가득 움켜쥐고자 했던 지난날의 타성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그는 생존의 정글에서 지친 노루가 쉴 만한 물가를 찾아가듯이 마음을 비우고 낙향했다. 사람이 마을을 비우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싶지만, 그는 절박한 심정으로 무가치한 것들을 종량제 봉투에 담아 내다 버렸다. 그게 병에서 벗어나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유력한 길이라고 봤다. 함지애가 김제로 내려간 건 2012년. 초기 한동안은 요양에 전념했다.
“텃밭 농사로 거둔 깨끗한 채소류를 먹거나, 산야에서 약초를 얻어 섭취했다. 도시에 비할 수 없이 맑은 공기도 몸에 좋았다. 무엇보다 반가운 건 시골 생활이 주는 평온함이었다. 마음이 그토록 편안해지다니, 예상과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맛보며 안도했다. 건강도 좋아졌다. 빠른 속도로. 웃음을 달고 살다시피 했으며, 이웃들과 좋은 사이로 지냈다. 아, 시골에 오기를 잘했어. 좀 더 빨리 내려올걸! 자주 그런 생각을 했다.”
유능한 강소농 모델로 떠올라
잃었던 건강을 어느 정도 되찾으면서 함지애는 슬슬 농사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별일이 일어나지 않는 고즈넉한 생활은 적성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일을 해야 성장한다는 게, ‘일에 대한 불타오르는 열정이 있어야 즐거울 수 있다’는 게 그가 인생에서 배운 일종의 공리다. 농사에 뛰어드는 방식은 다분히 조직적이었다. 여러 농업 교육기관을 통해 공부부터 충실히 하는 한편, 대담하게도 5000여 평의 전답까지 마련해 바닥을 다졌다.
“농토에 벼, 찹쌀, 보리, 콩 등을 재배했다. 농사 방법은 친환경 농업을 추구하기로 했다. 안전하고 깨끗한 농산물로 고추장, 된장, 청국장, 간장을 만들자는 게 기본 방향이었다.”
혼자서 5000평이나 되는 너른 전답에 농사를?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주로 위탁영농 방식으로 농사를 했다. 이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더라. 봄철의 논밭 갈이부터 가을철 수확까지 전 과정을 대행해주니까. 그런데 귀농에서 가장 중요한 건 교육이다. 사전에 부지런히 교육을 받아야 한다. 난 나름대로 열심히 농업을 공부했다. 건강에 자신감을 갖기 시작하면서 농사에 뛰어들었지만, 사실 초기 5~6년은 수련기였다. 거의 공부 기간이었다. 이때 다수의 농업 관련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어디서 어떤 교육을 받았나?
“전주에 있는 한국농수산대학 가공학과에 적을 두고 배웠다. 버섯과 화훼 공부도 병행했다. 김제에 있는 농업기술센터를 통해서도 배운 게 많았다. 전통장류, 조청, 꽃차 등에 관한 이론과 실재를 교육받았으니까. 이렇게 공부하며 농어촌체험지도사, 전통장류제조사, 꽃차 소믈리에, 천연발효식초 제조관리사 등 자격증 여러 개를 취득했다.”
농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판로 부문이다. 판로와 관련해서도 사전에 공부해둔 게 있었나?
“판로 문제야말로 농업 경제의 핵심이라는 걸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따라서 정보화 공부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덕분에 농사 시작과 동시에 SNS 마케팅을 위해 블로그를 운영할 수 있었다.”
본격적인 농사의 출발은 식초 사업으로 열었다지?
“2018년에 식초 생산의 기반을 조성할 수 있었다. 작업장과 체험장을 지어 생산과 체험 교육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가공 분야 가운데 식초를 선택한 이유는?
“아까 말했지만 난 농업 관련 공부에 많은 시간을 썼다. 딴엔 제법 공부를 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어느 수준인지, 뭐 좀 실력을 갖고 있는지, 스스로 테스트할 필요가 있었다. 테스트 수단으로 식초 사업을 택한 건 식초가 사람 몸에 가장 좋은 식품이라고 생각해서였다. 나의 건강을 위해서도, 남의 건강을 위해서도 식초만큼 좋은 게 없다고 봤으니까.”
촘촘한 사전 준비에 힘입어 식초 사업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갔다. 특유의 현미식초를 만들어 특허 등록을 냈으며, 연잎식초라는 희귀한 제품을 만들어 역시 특허를 받았다. 스스로 설정한 테스트를 좋은 성적으로 통과한 셈이다. 이후 그는 식초의 이웃사촌인 술 만들기에 뛰어들었다. 전통주에 관한 공부를 미리 해둔 상황에서였다. 따라서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일단 필이 꽂히면 냅다 덤벼들어 몰두하는 평소의 습성과 기량을 풀가동해 전통주 개발과 생산에 주력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성과가 주어졌다. 각종 경연대회에 출품한 그의 술이 큰 상을 연달아 받으며 일약 알아보는 눈이 꽤 많은 실력자로 부상했다는 게 아닌가. 그는 2019년 충남도 농업기술원이 후원한 ‘우리 발효술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2021년엔 ‘대한민국 명주대상’ 경연에서 청주 부문 대상을, 2022년엔 광주MBC가 주관한 ‘우리 술 어워즈’에서 ‘왕중왕’상을 거머쥐었다. 전통주 초심자가 거둔 만만치 않은 성취였으니 이변이라 말 못 할 것도 없겠다. 이제 그는 술과 더불어 유능한 강소농의 모델로 떠올랐다.
투병 이후의 삶은 덤으로 주어진 것
“난 술에 미친 여자다.(웃음) 좋은 전통주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양조엔 디테일한 기술력이 필수다. 누룩에서 발생하는 미생물 효모로 단맛과 신맛 등 풍미를 지닌 술을 빚어내기 위해선 반복적 실험이 선행돼야 한다. 술맛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일도 쉽지 않다. 미치지 않고선 도달할 수 없는 게 양조다.”
어떤 술들을 만들고 있나? 가장 자부하는 술을 꼽는다면?
“현재 6종류의 술을 생산한다. 대표 상품은 ‘초야’(初夜)라는 청주다. 신혼 첫날의 로맨틱한 분위기를 술에 담았다는 의미로 지은 이름이다. 탁주인 ‘순애보’ 역시 심혈을 기울여 만든 술이다.”
시중에 수많은 민속주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당신의 술은 어떤 차별성을 가지고 있나?
“남들은 흔히 말한다. 여러 가지 꽃을 양조 재료로 삼은 꽃술은 함지애의 것이 뛰어나다고. 민속주를 만드는 이라면 누구나 ‘이게 바로 한국의 술이야!’라고 자신할 만한 술을 만들고자 노력할 텐데, 나 역시 그렇다. 그런데 술의 풍미 수준을 가르는 건 기술력보다 정성스러운 마음과 손길에 달렸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를테면 어머니가 어린 자식에게 먹일 음식을 만들 때처럼 사랑과 정성을 다하는 마음. 그게 좋은 양조의 비결이라 믿는다.”
양조란 창의적 감각이 요구되는 난해한 장르다. 자력으로 단기간에 일정한 성취를 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궁금하다. 누군가에게 도제식 수업을 받은 적은 없었나?
“운 좋게도 좋은 스승들을 만났다. 명품 전통주 ‘호산춘’의 명인 이연호 선생님에게서 많은 걸 배웠다. 한국전통주연구소 소장인 박록담 선생님을 통해서도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다. 이 스승들 덕분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사실 시골에 내려온 이후 나는 이렇다 할 실패나 착오를 겪지 않았다. 이건 순전히 좋은 인간관계가 가져다준 선물이었다. 좋은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좋은 걸 배웠고, 배운 걸 토대로 일의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일뿐만이 아니다. 삶의 질 자체가 아등바등 살았던 서울에서보다 훨씬 좋아졌다.”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로 일과 생활, 양면에서 선순환을 해왔다는 얘기다. 남의 가르침과 의견을 경청해 피드백으로 삼기. 이웃과 도타운 우정을 나누는 일에도 사업 이상의 정성을 쏟아 감흥을 누리기. 이쯤이면 결함 없는 생활이다. 인생의 중세시대라 할 만한 투병기는 어느덧 종료됐다. 여러 측면에서 서울에 살 때와 완연하게 변했다. 이제 그가 지닌 지배적인 감정은 만족감, 그 하나란다.
다만 서울에서와 마찬가지로 유지되고 있는 양상이 있으니, 여전히 바쁘게 산다는 게 그렇다. 함지애가 만드는 건 식초와 전통주만이 아니다. 들에선 곡물을 생산하며 장류 사업도 여전히 지속하고 있다. 대파에서 피어나는 보랏빛 꽃을 부재료로 가미한 이색 꽃두부도 생산한다. 마을 부녀회장을 맡기도 했던 그다. 김제 시내에 오픈 스튜디오를 두고 대표를 맡고 있는 ‘징게맹갱 우리술 협동조합’의 기지로 활용하고 있기도. 독거노인과 결손가정을 돌보는 자선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시내의 침체된 구역 일부를 놀이문화 공간으로 재생하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일의 가짓수가 이토록 넘치다니. 그는 남몰래 비명을 지르는 건 아닐까? 일에 치여 부질없이 소비되는 뭔가가 있는 건 아닐까?
“투병 이후의 삶은 덤으로 주어진 거라고 생각하자 모든 게 감사하게 다가왔다. 희로애락은 여전하고 때로 눈물도 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걸 비로소 하고 있다는 실감으로 행복하다. 돈을 벌려고 바동거렸던 과거에서 벗어난 것만도 어딘가? 밝고 에너지 넘치는 본성을 회복한 건 또 어떻고? 욕심을 내려놓고, 짧고 굵게 살다 가면 된다는 생각이다.”
돈보다 소중한 가치를 가진 게 많다는 걸 알면서도 흔히들 까먹고 산다. ‘욕심에 휘둘리는 삶은 이제 싫어!’ 함지애의 드라마를 난 그런 외침으로 새겨두기로 했다.
함지애가 주는 귀농 Tip
•땅과 집을 마련하기 이전에 귀농 교육부터 충분히 하라. 지자체마다 운영하는 ‘1년 살아보기 프로그램’ 같은 걸 통해 농촌 생활을 미리 경험하는 것도 좋다. 그 과정에서 나의 숨겨진 역량을 발굴할 수 있으며, 과연 귀농을 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귀농 초기 3년 정도는 성공을 위한 수련기로 삼아 나를 알아가는 시간 내지는 농사의 방향을 모색하는 기간으로 활용하자. 농업의 경제 효과는 현명한 운영을 했을 경우에도 대체로 귀농 5년 이후에나 발생한다고 보면 된다.
•도시에서 쌓은 경륜이나 특기를 살려 재활용하라. 이를테면 꽃에 조예가 있다면 꽃차 사업에 도전하는 식으로.
•여성의 단독 귀농을 두려워하지 마라. 다만 남다른 용기와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귀농 초기엔 소득 발생이 전혀 없을 가능성이 많다. 예비비 확보가 필수다.
지난 3년의 코로나19 팬데믹과 1인 가구 증가는 식문화의 변화를 가져왔다. 음식 배달 문화가 활성화됐으며, 밀키트를 포함한 가정간편식(Home Meal Replacement, HMR) 시장이 확대됐다. 더 나아가 식품 구독경제까지 영향력을 확산하고 있다. 중장년에 초점을 맞춰 2023년 식품 외식산업 트렌드를 알아봤다.
요즘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워킹맘’ 김진희(52) 씨. 중학생 딸아이의 생일상을 차려줘야 하는데 요리할 시간이 도통 나지 않았다. 결국 김 씨는 딸의 생일 당일 새벽 배송이 가능한 플랫폼을 통해 미역국 레토르트, 잡채와 소불고기 밀키트를 구매했다. 그날 저녁 김 씨는 미역국, 잡채, 소불고기를 조리하고, 배달 앱에서 딸이 좋아하는 음식점의 족발을 주문해 상을 차렸다. 어쨌거나 엄마가 차려준 생일상을 맛있게 먹는 딸의 모습을 보고 김 씨는 안심하면서도 미안함을 느꼈다. 자신의 생일 때 엄마가 차려주던 손맛 가득한 미역국이 그리워지면서….
중장년 소비자는 집밥을 선호한다는 선입견이 있지만, 알고 보면 중장년은 외식산업을 주름잡는 큰손으로 통한다.
지난 5월 KB국민카드가 회원 2000만 명의 온·오프라인 주요 업종별 이용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50세 이상은 온라인 쇼핑몰 및 배달 앱에서 높아진 소비 영향력을 보였다. 이들의 지난해 온라인 쇼핑몰 매출액 증가율은 38%였고, 배달 앱 매출액 증가율은 37%였다. 반면 20~49세의 온라인 쇼핑몰 매출액 증가율은 13%, 배달 앱 매출액 증가율은 7%에 그쳤다.
더불어 50·60 주부들의 밀키트, 즉석섭취식품 등 간편식 소비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멤버스와 신한카드가 데이터 분석 교류 결과 발간한 ‘가정간편식 소비 트렌드 리포트’를 보면, 2022년 상반기 오프라인 마트와 슈퍼에서 50대와 60대 이상의 간편식 구매 비중은 각각 26.3%와 14.3%로 집계됐다. 이는 3년 전인 2019년 상반기보다 각각 5.0%p 4.3%p 증가한 수치다.
성별로 보면 여성(70.4%)의 구매 비중이 남성(29.6%)보다 높았다. 남성의 구매 비중 역시 매해 꾸준히 확대되는 추세다. 구매량 1위는 2022년 상반기 기준으로 집밥의 대표 메뉴인 즉석 국쪾찌개가 차지했다. 이어 냉동 만두, 냉동 튀김, 즉석 카레쪾짜장, 냉장면, 즉석 밥, 즉석 죽, 냉장 밀키트, 냉장 간편 떡볶이 등의 순으로 구매가 많았다.
간편식으로 건강도 챙기자
식품업계에 따르면, 올해 국내 간편식 시장 규모는 5조 원에 달한다. 코로나19가 잦아든 후에도 간편식은 여전히 인기지만, 올해 들어 이전과는 조금 다른 성격을 띤다. 가정식과 외식의 대체재가 아닌 새로운 식품 소비 형태로 성장했다. 즉 ‘한 끼를 때우는’ 간편식 개념에서 ‘식사’ 개념으로 변모한 것이다. 여기에 건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더해지며 케어푸드(Care-Food)도 간편식 형태로 덩치를 키우고 있다.
케어푸드란 건강상의 이유로 맞춤형 식품이 필요한 사람을 위한 차세대 먹거리를 말한다. 단순히 생각하면 씹고 삼키기 편한 식품이 떠오른다. 그러나 점점 케어푸드의 개념이 넓어지고 있다. 당뇨, 신장 질환 등 환자식도 나오고, 건강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 중년부터 젊은 20·30까지 다양한 세대를 아우른다.
CJ프레시웨이, 풀무원, 현대그린푸드, 아워홈 등 주요 식품업체는 케어푸드에 대해 대용식이 아닌 맛있고 건강하게 즐길 수 있는 음식으로 초점을 맞췄다. 현대그린푸드의 케어푸드 전문 브랜드 ‘그리팅’의 케어 식단은 식사 목적에 맞춰 영양이 설계된 반찬과 샐러드를 정기적으로 배송해주는 서비스다. 3대 영양소 탄수화물·단백질·지방을 고려하며, 암·당뇨 등 질환별 전문 환자식도 제공한다. 지난해 매출이 46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0% 증가했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풀무원식품의 ‘디자인 밀’은 생애주기별 영양 기준과 생활 주기별 건강 정보를 기반으로 식사를 설계한다. 특히 중장년층에게는 칼로리를 조절한 ‘300 샐러드 및 라이스 meal’과 ‘500kcal 맞춤 식단’을, 소화력이 떨어지는 고령층에게는 ‘궁중섭산적’과 ‘7Days 영양진밥’ 등을 제공한다. 올 1분기를 기준으로 보면, 노령층을 위한 케어푸드(25%)보다 일반 성인을 위한 영양균형식(30%)의 매출이 더 높았다. 케어푸드 소비자가 전 연령대로 확대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함께 고급 레스토랑 음식을 만들어 즐기는 ‘홈스토랑’이 인기를 끌며 외식 브랜드, 호텔, 가전업계까지 간편식 시장에 진입했다. 또한 전 세계적인 ESG, 기후 위기, 가축 전염병 등 공급망 위협에 대한 대응으로 국내 식품업계에서는 식물성 식품 전문 브랜드를 론칭하거나 간편식을 출시하고 있다.
중장년에게도 이와 같은 식문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유통학회 회장을 맡은 바 있는 서용구 숙명여자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개인적으로 55세부터 75세까지, 골드 제너레이션에 주목하고 있다. 과거에는 60세 전후로 은퇴했지만, 이제는 80대까지도 일하는 시대다. 이에 따라 현재의 중장년층은 소득이 높아졌고 취향이 고급스러워졌으며, 프리미엄 식품 서비스를 원한다”고 말했다.
배달 앱 이용 감소와 구독경제 활성화
간편식과 반대로 소비자의 배달 앱 이용률은 떨어지는 추세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배달의민족, 요기요, 쿠팡이츠 등 배달 앱 3사의 지난 3월 월간 활성이용자 수(MAU)는 2898만 명으로 전년 동기(3532만 명) 대비 18% 줄었다. 지난 1월 이용자 수(3021만 명)에 비해서도 123만 명이나 감소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로 외출이 자유로워진 가운데, 물가 상승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면서 배달비에 대한 부담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가운데 요기요는 최근 업계 최초로 월 9900원 배달 구독 서비스를 선보였다. 앱 내 ‘요기패스X’ 배지가 붙은 가게에서 최소 주문 금액 1만 7000원 이상 주문하면 배달비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구독 서비스다. 배달의민족과 쿠팡이츠도 요기요에 자극을 받아 구독 서비스를 시행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우리의 일상에 구독경제가 깊숙이 자리 잡았는데, 배달 앱까지 이 시장에 뛰어든 것은 눈여겨볼 일이다. 구독경제는 소비자가 정기적으로 일정 비용을 지급하고 원하는 상품 혹은 서비스를 소비하는 방식을 말한다. KT경제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구독경제 시장 규모는 2016년 25조 9000억 원에서 2020년 40조 1000억 원으로 4년 동안 무려 55%나 성장했다. 2025년에는 최대 100조 원 규모가 될 전망이다.
국내 소비자 10명 중 5~6명은 식품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2020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식품 구독경제 이용실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시행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57.2%가 해당 서비스를 이용 중이며, 66.2%가 ‘편리함’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비용 절약’(28.4%), ‘선택에 대한 고민이 필요 없어서’(21.9%)라는 답변도 뒤를 이었다.
식품 구독 서비스 하면 풀무원의 녹즙, 서울우유의 우유, 한국야쿠르트의 야쿠르트 배달 등을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반찬, 샐러드부터 빵, 과자, 아이스크림까지 다양한 구독 서비스가 가능하다. 아워홈은 개인별 건강 맞춤 정기 구독 서비스 ‘캘리스랩’(Kalis lab)을 통해 개인별 맞춤 식단과 함께 다양한 건강 콘텐츠 서비스를 제공한다. 롯데·현대·신세계백화점 등에서는 반찬 구독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서용구 교수는 “이제 모든 시장은 구독 서비스로 갈 것”이라면서 “구독경제에서 중요한 포인트 두 가지는 구독자 수를 얼마나 많이 늘리느냐, 어떻게 재구독을 하게 만드느냐에 달렸다. 그래서 기업 입장에서는 마케팅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MZ세대가 환경·동물보호 등의 ‘가치소비’를 한다고 알려졌는데, 중장년 또한 가치소비를 하고 있다. 소비의 큰손인 중장년의 마음을 사로잡아 구독까지 이어지게 하려면 우리만의 차별화된 가치를 적극적으로 어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