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비가 뿌렸다. 그저 창밖으로 비를 바라보며 가라앉은 마음으로 있기에는 내 안에서 스멀스멀 삐져나오는 것이 있다. 그래, 흩뿌리는 가랑비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 이럴 땐 뛰쳐나가 보는 것도 방법이다.
갯골생태공원의 소금창고
소금기 까슬하고 끈적하게 깊은 골이 파인 갯골이었다. 지금은 빗물이 가득 고여 흘러가고 있다. 시흥 갯골생태공원에는 옛 염전의 풍광을 그대로 보여주는 둑길을 따라 푸르거나 붉은빛으로 자라고 있는 염생식물들이 비를 맞고 있었다.
생태공원 곳곳에서 자라고 있는 칠면초, 나문재, 퉁퉁마디… 바닷물을 먹고 자라는 염생식물과 각종 어류와 양서류가 서식하고 있어서 국가습지보호구역이기도 하다. 붉거나 푸른 풀들이 얼핏 화려하기까지 하다. 바닥에서 자라는 아무 잎이나 뜯어서 맛을 보면 짭조름하다. 소금이 귀하던 그 옛날 가난한 이들은 염생식물로 소금을 대체하기도 했다 하니, 우리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소금과 염전의 위력을 되짚어보게 된다.
이곳 갯골생태공원에 전시된 붉은색의 ‘가시렁차’는 일제강점기에 소금을 실어 나르던 협궤열차였다. 가솔린을 연료로 가릉가릉 하는 소리를 내며 달렸다고 해서 얻은 이름이다. 염전 구석구석에 깔린 궤도는 가까운 수인선 기차역까지 소금을 운반하기 위한 특수 목적의 철도였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되던 소금은 일본의 수탈이고 약탈이었다.
서해 간석지가 발달해서 농경지나 염전으로 이용했던 곳. 이 일대의 갯벌이나 토질, 그리고 해수의 염도와 일조량 등의 중요한 조건이 잘 맞았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해방 이후에도 이 소금밭으로 생계를 이어갔다고 한다. 한때 소금값이 만만찮던 시절에는 40개 정도였던 소금창고가 보물창고였다 한다. 현재 갯골생태공원에 남아 있는 2동의 소금창고 원형은 중요한 역사적 자료가 되고 있다.
이야기가 있는 늠내길
시흥 갯골생태공원은 시흥 늠내길 4개 코스 중 2코스 갯골길에 해당된다.
‘늠내’는 고구려 시대의 ‘뻗어나가는 땅’이라는 의미로 시흥의 옛 지명이다. 안으로 들어서니 사방으로 탁 트여서 정말 그 말이 어울리는 느낌이다. 비까지 내려주어 풍경도 마음도 촉촉하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안개가 끼면 안개 속의 풍경대로, 날씨의 변수에 따른 정직한 풍경이 눈앞에 있다. 내 안의 뻣뻣함도 스르르 풀어진다. 갯골을 끼고 펼쳐진 풍광에 흠뻑 스며들어가는 순간이다. 비 내리는 갯골의 뿌연 모습은 서서히 빠져들기 딱 좋은 풍경이다.
처음엔 우산을 쓰지 않아도 될 안개비였다. 하지만 갯골생태공원에 들어설 때는 우산을 써야 했다. 우산을 들고 천천히 걷기에 적당한 분위기다. 안개처럼 내리던 비가 제법 뿌려서 카메라가 젖을까봐 급기야 가슴팍에 숨기듯 끌어안았다.
전망대에 올랐다. 흔들림이 감지된다. 구조적으로 풍하중에 대한 흔들림이 허용치 내로 시공되었다는 안내문을 읽었다. 바람에 흔들거리는 느낌이 지금 눈앞의 풍경과 어울린다. 22m의 6층 목조 전망대 꼭대기에서 내려다보이는 갯골의 전경이 안개처럼 뿌옇게 한 겹 가려져서 신비롭다. 아스라함이 수증기처럼 피어오르는 풍경이다.
생태공원을 둘러싼 너른 평야, 수로 밑으로 물이 가득 고여 흐르는 갯골, 비를 받아들이고 있는 생태공원의 해수 풀장, 빗속을 걷는 사람들… 흔들 전망대 공중에 높이 붕 떠서 빗속의 풍경에 마음껏 압도되었다.
시흥 늠내길은 4코스가 있다. 이 중에서 이날 2코스를 걸어보려고 마음먹었던 터다. 안개비로 시작한 비가 갈수록 제법 내려서 핑곗김에 갯골생태공원 산책으로 마쳤다. 빗속에서 갯골생태공원을 걸으며 상쾌함과 신선함을 흠뻑 맛보니 다소 가라앉았던 기분이 어느새 날아갔다.
연꽃테마파크 관곡지(官谷池)
드넓은 연밭에 홍련과 백련이 고고하게 자태를 뽐내는 시절. 여름이 시작되고 장마까지 겹치는 즈음 연밭에 들어서면 늘 후끈하던 기억이 있다. 폭염의 강렬한 태양 아래서도 연(蓮)은 우아한 멋을 지닌 채 물 위에서 기품을 보여준다.
연꽃 개화 시기가 되면 얼른 떠올려지는 곳, 관곡지(官谷池), 갯골생태공원에서 멀지 않다. 수도권에서도 찾아가기 쉬워서 일출 무렵의 새벽이나 비가 내리면 비를 받아들이는 연꽃을 보러 나서는 이들이 많은 곳이다. 또한 한밤중에 고고한 자태로 대관식을 하고 한여름 밤의 꿈처럼 장렬하게 사라지는 빅토리아 연(蓮)의 마지막을 지켜보기 위해 몰려들기도 한다.
여전히 비가 오다 말다 한다. 역시 비를 맞는 연못의 풍경이 제맛이다. 개망초꽃이 새하얗게 피어난 둑길을 지나면 양옆으로 연밭이 펼쳐진다. 진흙을 딛고 맑은 얼굴로 여기저기 피어나 존재감을 보여준다. 수면 위로 삐죽이 모습을 내민 봉오리와 화사하게 만개한 연꽃들이 연밭을 채우고 있다. 몇 군데 물이 고인 웅덩이에는 갖가지 수생식물들과 수련이 청초하다.
가끔씩 저어새가 넓은 날개를 펼치고 푸드덕 날아올라서 깜짝 놀라기도 한다. 우리나라 서해안에서만 번식하는 멸종위기종인 저어새가 이곳 연밭에서 먹이활동을 하는 걸 간간이 볼 수 있다. (천연기념물 제205호 멸종위기 1급 보호조류다.)
관곡지는 시흥시 향토유적 제8호로 지정된 조선 세조 때의 연못이다.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농학자 강희맹이 명나라에서 가져온 연꽃씨를 이곳에 심은 것이 시초였다. 관곡지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잇고자 시흥시에서는 연꽃테마파크를 조성했고, 그 덕에 해마다 잘 자라고 잘 피워내는 연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연밭 한편에 강희맹 선생의 묘역이 있으며, 연지 사적비와 은휴정이라는 정자와 문중 가옥이 있다. 후손들이 관리하는 개인 사유지니 함부로 행동하지 않도록 명심할 것. 잔디마당에는 설치 조형물 등의 볼거리가 있는데 요즘 출입이 가능한지는 확인해볼 일이다.
숲속 소래산길 소전미술관
연꽃을 둘러보다 비가 많이 내리거나 햇볕이 뜨거울 때는 주변에 미술관이 있음을 떠올릴 것. 관곡지에서 자동차로 15분 정도 거리에 도자 테마 박물관인 ‘소전미술관’이 소래산 자락에 호젓하게 자리 잡고 있다. 숲속에 둘러싸인 미술관 앞의 넓은 정원이 비에 젖어 푸릇푸릇하다.
1층과 2층에 고려청자와 분청사기, 조선시대 백자가 전시되어 있어서 차분하게 감상할 수 있다. 선이 아름다운 도자기의 단아함과 다양한 용도의 작품들을 둘러보는 특별한 시간이다.
2층에서는 특히 창문을 통해 바라보이는 야외 정원의 푸르름이 가슴을 촉촉하게 한다. 야외 정원의 조각품들과 미술관 풍경의 운치는 가랑비 덕분에 더할 나위 없이 신선하다.
매주 토요일이면 오전 11시~오후 5시에 아트 마켓이 열린다고 한다. 주변에 요즘 핫한 카페가 있으니 연꽃테마파크와 미술관을 함께 볼 겸 겸사겸사 들러볼 만하다.
동기들과 춘천여행을 했다. 코로나19가 신경 쓰였지만 모든 활동을 멈출 수는 없다. 50+ 세대 열두 명이 4대의 차에 나눠 타고 춘천으로 향했다. 목적지까지 차로 이동하니 조심하면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가을처럼 푸르렀다. 춘천에 들어서기 바쁘게 그 유명한 닭갈비를 먹었다. 춘천에서 제일 맛있는 집이라는데 입맛이 다르니 각자 판단할 일이다.
우리가 간 곳은 2001년도 범죄 없는 마을로 선정된 곳이다. 마치 증명이라도 하듯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관광지도 아닌 이곳을 찾은 이유는 동기 중 한 사람의 지인이 폐교를 임대해 사용하고 있는데 장소가 넓어 모임하기 좋다는 점이 컸다.
서울이 고향인 나는 이렇게 작은 학교도 있구나? 할 만큼 교실이 몇 칸 안 되는 건물이었다. 신기했다. 주인의 인심을 말하듯 활짝 열린 문으로 들어서자 지금은 보기 힘든 옛 물건과 미술 작품들이 걸려 있었다. 주로 서양화였다. 인수한 지 얼마 안 되어 구상한 인테리어를 조금씩 해나가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미완성이라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 더 좋았다. 잔디가 있고 풀과 꽃이 함께 자라는, 예전엔 운동장이었을 너른 공간이 좋았고 차에서 내렸을 때 여기저기 피어 있던 계란꽃으로 불리는 개망초도 많아 좋았다. 낮은 폐교 앞뒤로 보이는 넓은 하늘도 좋았다. 폐교를 사방이 둘러싼 형태라 마치 따스한 엄마의 자궁처럼 느껴졌다. 뜻 모를 그리움도 스멀스멀 피어났다.
불과 몇 시간 전 괜히 나섰나 했던 마음이 떠올라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사실 하루 전만 해도 예정에 없던 일정이었다. 자리가 남아 얹혀간 것이나 다름없다. 때마침 아이와 콩닥대고 마음도 복잡한 상태였다. 집에 있으면 더 나빠질 게 틀림없었다. 피하고 싶었다. 아이도 나도 휴식이 필요하다고, 스스로 잘한 선택이라고 토닥이며 나선 길이었다. 결과적으로 아주 잘한 일이었다. 한때는 마을 아이들의 작은 숨소리가 들렸을 교실을 둘러보는 동안 마음이 안정되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짐을 풀고 한동안 주변을 둘러봤다. 저녁에는 바비큐 파티를 했다. 영업을 하는 곳이 아니어서 오는 길에 장을 봤던 터라 음식이 푸짐했다. 고기는 양껏 먹어도 줄어들지 않았다. 나중에는 집주인이 기르는 두 마리의 풍산개도 거들어야 했다. 직접 담근 된장을 풀어 끓인 된장국은 두부와 호박과 파만 듬뿍 넣었을 뿐인데 세상 어느 요리보다 꿀맛이었다.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밥을 먹어선지 행복이 온몸에 스며들었다.
장구를 챙겨온 동기들이 있어 돌아가며 장구의 기본을 익혔다. 잠시 몰두했는데도 등줄기로 땀이 흘렀다. 장구를 치면 절로 체중이 줄 것 같다. 한번 해볼까? 자꾸 마음이 동했다. 역시 여행은 마음의 여유를 준다. 춘천에 있다는 사실이 집에서의 북적임을 잠시 잊게 해줬다.
해가 지기 시작했다. 별이 보인다는 말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우르르 운동장으로 나갔다. 커다랗게 빛나는 샛별 하나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우리 집 베란다에서 밝게 보이던 샛별 하나가 “너였구나? 나야 나” 하며 아는 체하는 것 같았다. 불빛에서 좀 더 벗어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더 많은 별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밤하늘 가득 보석이 박혔다. 누군가 한 줌 집어 뿌린 것 같았다. 서울에서는 볼 수 없었던 북두칠성이 고개를 들 때마다 보였다. 그저 별을 본 것뿐인데 가슴 밑바닥에서 울컥하며 찌릿함이 올라왔다. “별은 늘 그 자리에 있다”는 어느 영화 대사가 떠올랐다.
센스 있는 동기가 준비한 폭죽으로 운동장은 금세 파티장으로 변했다. 폭죽을 하나씩 손에 든 어른들이 까만 운동장을 콩콩 뛰어다녔다. 수십 년의 세월을 거슬러 다시 아이가 된 것 같았다. 저마다의 행복이 몸을 뚫고 까만 세상에 퍼져나갔다.
불쑥 떠난 여행인데 오래 계획한 여행보다 좋았다. 마음에 말을 걸 듯 ‘둥둥’거리던 장구소리도 잊히지 않았다. 춘천에서 돌아오는 내내 장구를 배우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울에 도착했을 때 마침내 장구를 시작할 것을 알았다. 다시 춘천을 찾을 것도.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전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 마음만 동동 구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이번 호에는 이강선 교수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편지를 써주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허리를 굽혀 요가 매트를 마는데 군데군데 흰점이 보였다. 낡았네. 하긴 오래됐지. 들여다보니 그게 아니었다. 손톱만 한 혹은 그보다 더 큰 흰 조각들. 집에 돌아와 양말을 벗었다. 하얀 것이 떨어졌다. 실밥이 아닌데 집어 올렸다. 낮 열두 시의 햇살이 조각을 통과하지 못하고 비켜갔다. 비늘 같은데? 세로로 줄금이 간 불투명 비늘에 연한 노란색이 감돌았다. 시선이 발바닥으로 갔다. 노란 각질이 발바닥 전체를 덮고 있었고 군데군데 갈라져 있었다. 특히 뒤꿈치에는 하얗게 일어나 있었다.
기억이 났다. 그때, 엄마의 허리를 누르고 있을 때, 손이 아프도록 힘주어 누르고 있을 때가 용인 아파트였다. 엄마는 바닥에 엎드려 있었고 그 바람에 평생 감추고 있던 발바닥이 무방비 상태로 드러났다. 발바닥은 살빛이 아니었다. 노랗고 거뭇거뭇했다. 발바닥은 2mm 됨직한 각질로 뒤덮여 가뭄에 말라붙은 저수지 바닥처럼 쩍쩍 갈라져 있었다. 발뒤꿈치는 마치 가시들이 톱니처럼 솟구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쓸어내리는 내 손을 찔렀다. 무좀, 몇 번 연고를 발라주면 될 것을… 1분도 걸리지 않는데….
엄마는 마지막 시간을 침대에 누워 계시다가 가셨다. 손과 발이 묶인 2년 2개월간, 매주 엄마를 보러 갔다. 횟수는 점점 늘어 이틀에 한 번, 이윽고 매일이 되었다. 팔을 내두르고 침대 난간을 두드리던 엄마는 마사지하는 동안은 얌전했다. 머리를 톡톡 두드려주면 시원한지 눈을 감으셨고 귀를 문지르면 얼굴을 찡그렸다. 콧줄 빼는 걸 막느라 끼워둔 장갑을 풀어 손을 마사지하고 손가락을 구부리면 “아파” 하고 소리를 쳤다. 대화는 그게 전부였다. 언어중추 마비와 연하기능 마비로 엄마의 입은 말하고 먹는 두 가지 기능을 모두 잃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움직일 수 없고, 대소변 처리도 못하고, 의사소통도 안 되고, 때로 자식도 알아보지 못하는데 그게 인간답냐고. 자식이 문안에 소홀했던 건 바빠서이기도 하지만 표현할 수 없는 엄마가 낯설어서였을 것이다. 엄마는 엄마다워야 한다. 사랑을 줘야 하고 염려를 표현해야 한다. 엄마이니까, 엄마는 그저 줘야 하는 존재이니까.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면 인간다움을 잃는 것일까.
그러나 엄마는 인지능력이 분명히 있었다. 행복을 느끼는 전두엽도 활발히 작동했다. 아니라면 꽃을 보고 그리 기뻐하셨을까. 보여만 드리겠다고 허락을 받고 들여온 쑥부쟁이 꽃다발을 엄마는 빼앗듯 가져가셨다. 노란 감국과 흰 개망초, 오이꽃으로 만든 소박한 야생화 다발을 껴안고 도무지 내놓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제비꽃, 백일홍, 코스모스, 나팔꽃도 좋아하셨다.
그러나 엄마가 가장 좋아한 꽃은 닭의장풀이었다. 아버지를 기억나게 하는 풀꽃이었다. 당뇨를 앓았던 아버지가 달여 드시던 꽃이었으므로.
그날도 엄마와 소풍을 갔다. 의사 허락을 받아 침대째 모시고 나가곤 했는데, 그날은 3층 정원이 아닌, 직원들이 구름다리라 부르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잠깐 엄마를 맡긴 다음, 비탈을 내려가 달맞이꽃과 닭의장풀을 꺾어왔다. 엄마는 더 크고 환한 달맞이꽃은 버려두고 닭의장풀을 받아 소중하게 가슴에 안았다. 병실을 떠날 때 보니 조그맣게 오그라든 풀꽃이 손안에 들어 있었다. 마치 기도하듯 가슴에 모은 손안에.
누가 엄마에게 인지 능력이 사라졌다고, 기억이 사라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돌봐주는 간호사에게, 간병인에게 “예뻐”라고 인사하는 이 노인이, 풀꽃을 보고 일곱 해 전 죽은 남편을 기억하며 딸이 준 꽃다발을 꼭 껴안고 있는 그 여인이, 인간답지 않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발바닥은 요양병원에 계시면서 매끈해졌다. 스타킹을 신으면 매번 올이 나갈 정도로 성이 나 있었는데 아기 발바닥처럼 말랑말랑해지고 부드러워졌다. 항생제와 영양제를 투여받으며 평생 함께했던 무좀에서 해방된 것이다.
발바닥의 흰 각질들은 자식들 뒷바라지하느라 자신을 돌볼 겨를이 없었던 엄마의 고달픔이었을 것이다. 주어진 무게를 감당하느라 힘겨웠던, 자신의 이름도 쓰기 어려워했던 엄마의 아픔이 쌓인 더께였을 것이다.
바닥에 떨어진 각질을 주워 모았다. 낮은 간편화밖에 신지 못했던 엄마는 자주색 실로 수놓은 노란 꽃신을 신고 가셨다.
이강선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
성균관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 번역가로 활동하다가 마흔 중반에 모교로 돌아가 번역학 석사학위,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의미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하며 산다. 현재 글을 쓰며 문학 치유에 깊은 관심을 갖고 공부 중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성신여자대학교, 중앙대학교, 추계예술대학교 등에서 영문학과 번역을 가르쳤다.
여름이 찾아온 서울 길동 생태공원엔 벌써 푸르름이 가득하다. 시민들이 숲 체험을 하면서 생태 환경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공원이다.
입구의 반딧불이 관찰장을 지나면서 바로 숲길이 시작된다. 걷다 보면 습지와 저수지와 산이 고루 조성되어 있어 이 곳이 정말 도심의 공원인가 하고 놀라게 된다. 간간이 다람쥐가 지나가며 멧돼지가 출몰한다는 주의 푯말도 보인다.
관리시설로 광장 지구, 저수 지구, 초지 지구, 산림지구 등의 관찰로가 공원 곳곳으로 연결되어 있다. 참나리, 패랭이, 개망초가 피어있는 숲길을 걷다 보면 눈앞에 거미줄이 가로막기도 하고 벌들이 윙윙거린다. 호랑나비와 잠자리, 물새까지 날아다니고 작은 호수에는 왜가리가 큰 날갯짓을 하면서 높이 난다. 조류 관찰대에서는 아이들이 숨 죽이며 구경하고 이 곳 저 곳에서 사람들이 셔터를 누른다. 관찰로는 숲과 함께 있어서 마치 밀림 속을 걷는 느낌을 준다.
시민들의 건강한 공원으로 이용되고 있는 이 생태 숲을 오래 보전하기 위해 하루 최대 입장인원은 400명 이내로 제한되어 있다. 그리고 인터넷 예약을 해야 한다. 일부는 현장에서 신청해 입장할 수도 있다. 야생동물 보호를 위해서 음식물 반입은 당연히 삼가야 한다.
▶서울특별시 강동구 천호대로 1291(길동생태공원)
▶이용료:무료
▶운영시간:10:00 ~ 17:30 (동절기 17:00)
▶공원의 생물서식처 보호 및 생물종 모니터링, 관리보수를 위하여 매주 월요일은 휴장.
추운 겨울이 다가올수록 밖에서 노닐기보다는 따뜻한 집 안에서 즐길 만한 것을 찾게 된다. 뜨개질로 목도리나 장갑을 만들거나, 책을 읽으며 여가를 보내기도 한다. 최근에는 프랑스 자수, 보태니컬 자수, 꽃 자수 등 다양한 형태의 자수가 주부들의 취미로 사랑받고 있다. 아기자기한 야생화 자수와 더불어 풀꽃 시인 나태주의 아름다운 시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야생화 자수, 시가 되다’를 책방에서 만나봤다.
참고 도서 ‘야생화 자수, 시가 되다’ 글·자수 김주영, 시 나태주 자료 제공 웅진리빙하우스
한 땀: 야생화 자수, 시와 만나다
책의 첫 장인 ‘한 땀’에서는 ‘개망초’, ‘수수꽃다리’ 등 나태주 시인의 대표 시 30여 편과 김주영 작가의 야생화 자수 작품을 나란히 보여준다. 수록된 시 중
9편은 시인이 책을 위해 새롭게 창작한 작품이다. 꽃처럼 아름다운 시어는 알록달록한 색실로 한 땀 한 땀 수놓은 야생화와 한 폭의 그림처럼 조화를 이룬다. 중간마다 작품의 모티브가 된 실제 꽃 사진도 엿볼 수 있다. 촘촘한 실의 짜임과 섬유의 질감을 살린 이미지가 자수의 매력을 더욱 잘 드러낸다.
두 땀: 야생화 자수, 일상이 되다
한복이나 보자기 외에도 다양한 소품에 야생화 자수를 응용해볼 수 있다. 책의 두 번째 장에서는 일상에서 적용해볼 만한 자수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손주를 위한 배냇저고리를 짓거나 셔츠를 리폼할 때 올망졸망한 자수를 놓아 포인트를 줄 수도 있고, 리넨으로 집 안에서 쓸 룸슈즈나 앞치마 등을 만들며 좋아하는 패턴을 넣어도 좋다. 평범한 소품에 야생화 자수를 더한 꽃송이 티매트나 매화다포, 장미파우치 등은 선물용으로 안성맞춤이다.
세 땀: 처음, 자수를 시작하다
야생화 자수는 손재주가 좋거나 세심한 성향인 이들에게 적합하리라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작품의 크기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고 수정 작업도 가능해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즐길 만한 취미다. 마지막 장에서는 자수에 도전하는 초심자들을 위한 준비 과정을 정리했다. 재료와 원단을 고르는 방법부터 자수가 완성되기까지 전 과정을 다룬다. 마무리 단계에서는 직접 마음에 드는 야생화 도안을 그리고 수를 놓는 노하우를 전수한다.
책에서 발견하는 또 다른 즐거움
# plus 1
나태주 시인의 시와 함께 나온 자수 작품들의 도안과 그에 대한 설명이 부록으로 담겼다. 먼저 색감을 알 수 있도록 컬러 일러스트로 크게 작품을 보여준다. 그 아래 실선만 따로 그려 러닝 스티치, 롱앤드쇼트 스티치, 체인 스티치 등 스티치 기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달았다. 완성 작품과 비교해볼 수 있도록 실제 자수 이미지를 작게 첨부하는 등 세심한 배려도 돋보인다.
# plus 2
자연에서 만난 야생화를 보고 자수의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겠지만, 책에서 보여주듯 시 한 편이 영감을 주기도 한다. 풀꽃시인 나태주의 신작 ‘나태주 육필시화집’에는 그가 직접 쓰고 그린 시와 그림이 어우러져 있다. 자연을 소재로 한 그의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손끝에서 자수가 피어날 준비를 하는 듯 하다. 꼭 자수 아이템을 찾지 않더라도 찬찬히 시집을 읽으며 잠시 쉬어가는 것도 좋겠다.
plus 3
책에 꼼꼼하게 설명이 잘 나왔지만 손기술이 필요한 일이다 보니 간혹 이해가 덜 되는 부분이 생긴다. 그럴 땐 동영상의 힘을 빌려보자. 구독자 4만2000여 명의 선택을 받은 유튜브 채널 ‘뭐든지 바느질 프랑스 자수’에는 200여 개가 넘는 다양한 자수 관련 동영상이 있다. 자수의 기초 매뉴얼부터 다양한 소품 활용법까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가봐야지 마음만 먹다가 하루는 인터넷을 열고 무조건 예약을 했다. 길동생태공원은 사전예약을 해야만 입장할 수 있다. 하루 입장할 수 있는 총 정원이 400명 이내다. 자연 생태계 보호를 위한 공원 규칙이다.
같은 서울이지만 길동생태공원은 내가 사는 곳에서 아주 멀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로 갈아타고 거의 두 시간 만에 도착하는 곳이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주변의 푸근함에 기분이 마구 좋아진다. 나지막하고 아늑한 울타리 너머엔 숲이 보인다. 탐방객 안내소에서 예약 확인을 마치고 들어서니 행복감이 차오른다.
끝을 알 수 없는 긴 나무 바닥이 초록으로 우거진 숲을 가르며 펼쳐진다. 나무의 부드러운 삐걱거림이 좋다. 흙을 밟으면서 보는 오솔길의 찔레꽃과 개망초가 예쁘다. 청량한 새소리를 이렇게 생생하게 듣다니 혼자서 흐뭇하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다니 정말 반갑다.
걷다 보면 거미줄이 내 안경 앞에 걸려서 걷어내기도 하고 뭔지 모를 것이 나무에서 떨어져 옷에 붙기도 한다. 자연 속에 있다는 것이 기쁨이다. 한 걸음 한 걸음 아끼듯 걷는다. 가끔 멧돼지가 출몰하니 주의하라는 안내문도 있다. 밀림의 한 귀퉁이처럼 작은 숲길을 지나 원시림의 어딘가에 있는 듯하다. 숲의 고요가 짜릿한 위안을 준다.
웅덩이와 습지를 지나면서 인위적 손길이 덜 타게 하느라 애쓴 흔적을 곳곳에서 느낀다. 습지 지구에서 자라는 곤충이나 식물들이 편안히 지낼 수 있는 곳, 우리의 농촌 마을에서 볼 수 있는 텃밭 채소와 움집 등의 풍경이 어색하지 않게 자리 잡고 있다. 이 땅의 환경조건에 맞는 꽃이나 토양생물들이 조화롭게 살 수 있도록 자연 상태로 그대로 둔 것을 볼 수도 있다. 언제까지나 내버려 둔 듯 수더분하게 보존되었으면 좋겠다.
각종 새와 저수지의 물고기와 생태계의 고리를 위한 연결도 배려했다. 또한, 동식물들을 보호하면서 시민들이 관찰할 수 있도록 했다. 생물들의 서식처를 제공하고 우리에게도 그 중요성을 알게 하는 조화로움을 가꾸는 숲이다. 잘 보존된 자연이 수수하면서도 마음을 풍부하게 해준다. 신선한 공기 속에서 숲의 신비로움을 마음껏 누려본다. 시민들에게 건강한 생태공간을 제공하고 환경의 중요성을 알게 하는 곳이다.
나 혼자만 알고 싶은 곳, 심신의 위로가 필요하고 내게 고요한 시간이 절실할 때 조용히 찾아볼 수 있는 곳이다. 그 숲을 걷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길동생태공원은 싱그럽게 짙어가는 녹음으로 여름을 맞고 있었다.
철 지난 바닷가를 혼자 걷는다
달빛은 모래 위에 가득 고이고
불어오는 바람은 싱그러운데
어깨 위에 쌓이는 당신의 손길~~
― 송창식의 ‘철 지난 바닷가’ 중
당신이 정녕 ‘브라보 마이 라이프 세대’(이후 ‘브라보 세대’)가 맞는다면 찬바람 휑하니 부는 늦가을 저도 모르게 ‘소리 없는 사랑의 노래’를 주절주절할 겁니다. 송창식, 1960년대 말 통기타 하나 들고 불쑥 나타나 1970~1980년대 대중가요계의 한 봉우리를 차지했던 가수.
개인적인 선호의 차이는 다소 있겠지만 당신이 50대에서 70~80대 사이 ‘브라보 세대’에 속한다면 누구든 그의 노래 한두 곡쯤은 부지불식간에 웅얼거리곤 할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많이 입가에 맴도는 그의 노래 하나가 바로 ‘철 지난 바닷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40여 년이 지난 현재의 감각에 비춰 봐도 세련됐으면서도 서정적이며, 더없이 예쁜 노랫말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스러지고 이지러진 가을의 바닷가를 함축적으로 담아낸 첫 세 음절 ‘철 지난’은 이 노랫말의 백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원색 비키니 차림의 젊은 아가씨들과 터질 듯 검게 그을린 근육질의 사내들이 뒤엉킨 한여름의 뜨거운 바닷가가 아닌, 가버린 청춘과 사랑의 쓸쓸함과 애잔함, 애수만이 남아 있을 법한 철 지난, 늦가을의 바닷가에는 그러나 상상 외의 극적인 반전이 숨어 있습니다.
가을이 되면 사람들은 으레 “산에 가봤는데 도통 꽃이 없던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가만 살펴보면 텅 빈 숲 마른 나무 사이로 의외로 여러 꽃이 남아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개망초, 개쑥부쟁이, 서덜취, 이고들빼기, 마타리, 미역취, 달맞이꽃 등등. 그런데 이들은 새로 핀 게 아니라 봄여름부터 피고 지고 했건만 너무 흔하거나 평범해서 주목받지 못했을 뿐입니다. 못생긴 소나무가 뒷동산을 지킨다 하듯, 장삼이사 꽃들이 가장 늦게까지 산과 들을 빛낸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철 지난 바닷가에는 가을에 비로소 피는 꽃이 있습니다. 대개 10월부터 피지만, 곳에 따라선 11월은 물론 12월 초에도 새로 꽃대를 밀어 올려 싱싱한 꽃송이를 펼쳐 보이기도 합니다. ‘철 지난 바닷가의 수호신’이란 찬사가 절대 과하지 않은 둥근바위솔이 주인공입니다.
저 멀리 수평선부터 달려온 파도가 갯바위에 부딪혀 스러지는 바닷가 절벽 위. 그 위 기나긴 오솔길을 거닐며 지나간 옛사랑을 그리워하며 흐느끼지만 말고, 척박한 바위 겉에 뿌리를 내리고 기운찬 생명력을 보여주는 둥근바위솔을 찾아볼 일입니다. ‘한 송이의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던 18세기 영국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말처럼, 스산했던 마음에 작은 위안이 찾아들 것입니다. 큰 것은 30cm까지 솟아오른, 촛대에 꽂힌 초 모양의 길쭉하고 뾰족한 꽃차례에 자잘한 꽃송이를 다닥다닥 단 채, 짙푸른 바다와 을씨년스런 하늘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둥근바위솔.
옷깃을 파고드는 찬 바닷바람도 아랑곳하지 않고 곧추선 둥근바위솔에선 그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을 듯한 굳건함과 의연함, 당당함이 엿보입니다.
Where is it?
둥근바위솔은 오래된 기와지붕 위에서도 자란다 하여 와송(瓦松) 또는 순수한 우리말인 지붕지기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도 불리는 바위솔을 필두로 정선바위솔·연화바위솔·포천바위솔·가지바위솔·울릉연화바위솔·난쟁이바위솔·좀바위솔 등 국내에 자생하는 10여 종의 바위솔 속(屬) 식물의 하나다. 북으로 강원도 고성에서 삼척을 거쳐 부산, 거제 등 남해 도서까지 동·남쪽 바닷가에 폭넓게 자생한다. 잎이 가늘고 뾰족한 바위솔에 비해 넓고 둥글어서 둥근바위솔이란 이름을 얻었다. 주로 바닷가 바위 겉이나 모래 더미 사이에서 자란다.
서울시민청 태평홀에서 힘찬 박수가 터져나왔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창단 3개월 만에 무대에 오른 ‘그랑기타5중주단’의 감미로운 선율을 즐기고 있었다. 전문가의 뛰어난 솜씨에 견줄 수는 없지만 아낌없는 박수와 앵콜을 외치는 소리는 여느 무대 부럽지 않았다. 화사하고 낭랑한 목소리의 시낭송이 이어지고 회원 중 하나가 임상아의 뮤지컬을 경쾌하게 부르자 분위기는 달아올랐다. 마지막엔 검은 정장에 빨간 드레스를 입은 한 쌍이 등장해 능숙한 댄스 솜씨로 장내를 뜨겁게 달구었다. 각자 동아리 활동을 통해 기르고 닦은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해 모인 사람들의 발수갈채를 받았다. 100석의 좌석을 꽉 채우고도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참석한 이날 행사는 완벽한 축제의 장이었다
이 자리는 한국시니어블로거협회 창립 2주년 행사로 마련됐다. 시니어들이 블로그를 통해 재미있고 보람된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날 이들이 보여준 끼와 재능은 ‘즐겁지 않으면 인생이 아니다“라는 말이 저절로 떠오르게 했다.
하지만 하이라이트는 따로 있었다. 2015년 봄부터 매주 3시간 걷기를 시작하여 1년 6개월 동안 시니어들이 걸은 길을 정리하여 만든 ‘서울걷기여행 3시간의 유혹 60코스’ 동영상을 발표 상영하는 시간이 마련돼 있었다.
처음엔 서울둘레길 걷기부터 시작했다. 서울시로부터 ‘서울둘레길 완주인증서’를 받아들고 만세를 불렀다고 한다. 그러는 사이 우리가 살고 있는 멋지고 아름다운 서울길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서울둘레길 22개 코스, 한양도성길 4개 코스를 포함하여 도심 옛길 11개 코스, 대공원길 7개 코스, 한강 물길 6개 코스, 지하철 코스 10개 코스까지 총 60개 코스를 개척했다. 3시간 씩만 잡아도 180시간이 소요되는 엄청난 일이었는데 1년 6개월 동안 36.6도의 혹서기에도 영하 16도의 혹한에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개망초꽃에 취한 한강물길이 너무나 아름다워 가족과 함께 4번이나 걸은 회원도 있었다. 지하철1호선 역사문화코스는 종로3가에서 서울역까지 종묘, 탑골공원, 보신각,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성공회대성당, 서울시 신구청사, 덕수궁, 약현성당 등 역사문화 현장을 둘러볼 게 무척 많았다. 지하철로만 다니던 지하철 코스를 걸은 덕분에 남의 동네 공원, 골목 뒷길도 돌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 걷기에 부담없는 평지나 둘레길을 3시간씩 걸으니 회원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1년 6개월 동안 연인원 1,000명이 걸었다. 코스마다 다 중요하고 아름다워서 빼 버릴 곳이 하나도 없었다.
한국시니어블로거협회 김봉중 회장(66세)은 나태주 시인의 싯구를 인용하며 “자세히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시인의 말대로 서울의 곳곳을 내 발로 다니며 내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이제 서울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며 서울길 걷기 예찬을 이어갔다. 이 기록은 한국시니어블로거협회 카페(http://cafe.naver.com/sbckorea)에 각 코스별로 사진, 글, 동영상이 수록되어 있다. 다른 시니어단체는 물론 서울길에 대해 더 자세히 알기 원하는 시민들에게 도움이 되길 기대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 오는 외국인 여행자들에게 서울의 아름다움과 역사 문화를 소개하기 위해 영문 홈페이지(http://blog.naver.com/soon80808)도 따로 만들었다. 60개 코스 중 35개 코스의 번역을 완료했고 나머지도 곧 완성될 예정이다. 김 회장은 “서울여행 3시간길 60코스가 관광한국, 관광서울에도 충실한 길잡이가 되길 기대한다”고 소망을 드러냈다.
내리쬐는 태양이 뜨겁다. 입추의 절기가 지났는데 폭염은 식을 줄 모른다. 자기도 모르게 짜증스러워진다. 군중을 향한 집단테러를 비롯하여 상상을 초월한 일련의 사건들이 혼돈에 빠뜨리게 한다. 간혹 조물주는 느슨해지는 인간에게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고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지 모른다. 현세는 각박한 삶의 연속이라 말하는 사람도 많다. 얼핏 보기에 그런가 싶지만, 눈을 지긋이 감으며 다시 바라본 세상은 아름답다. 폭염 아래에서 여름의 낭만을 즐기는 사람도 많아서다. 자연과 사람이 아름답다. 백사장 모래톱에 두 발을 나란히 담그고 바라보는 자정이 넘나드는 밤하늘의 별은 신비하기조차 하다. 서산에 걸린 상현달은 그림이다. 볶고 지지며 사는 세상이라 하여도 요모조모 살펴보면 정겹다. 살맛이 나는 구석이 있기 마련이다. 현자(賢者)들은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 설파했다. 마음먹기에 달렸고 보기 나름이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다.
나는 그 아름다운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를 좋아한다. 일상의 분주한 생활에서 카메라를 들면 세상이 네모 상자 안에 아름답게 자리한다. 눈에 보이는 생명체가 모두 정겹고 기쁨으로 다가온다. 세상의 번잡함을 잊는다. 요즘 철에는 숲 속 부엽토를 비집고 슬며시 고개를 내미는 버섯이 눈길을 끈다. 먹을 수 있는 버섯과 먹을 수 없는 독버섯이 제철을 맞는다. 대부분의 버섯이 독을 지녔지만, 나는 그 색감과 자태에 매료된다. 좋은 피사체다. 망태버섯이 그 대표격이다. 노란 색깔과 벌집 모양의 패턴 구조가 신비스럽다. 지고 피는 시간도 짧아 행운의 수간과 만나야 담을 수 있다. 산속에서 만나는 버섯의 아름다움에 아침마다 빠져든다. 저녁노을에 붉게 반짝이는 모래사장의 눈부신 빛깔이 있다. 해변가를 거니는 아가씨의 농익은 각선미가 시선을 사로잡지만, 땀방울이 맺힌 농부의 구릿빛도 얼굴도 좋다. 초봄의 여린 연둣빛에서 초록으로 짙게 바뀌는 산야의 녹음방초가 그렇다. 가슴에 뜨거운 열정을 불러일으켜 주었던 흐드러지게 핀 철쭉이 그랬고 한두 송이 피어나는 오뉴월의 여왕 장미도 그랬다.
그러나 나는 일반인이 눈여겨 보지 않는 들녘에 피어난 이름 모를 작은 들꽃에 더 정감을 갖는다. 살지 못할 것만 같은 바위 틈새에서 생명력을 보여주는 한 떨기 갓난아기 손톱만 한 꽃송이에도 매료된다. 바람에 작게 흔들리는 쇠뜨기 군락도 장관으로 보이고 메마른 돌부리 많은 언덕에 안쓰럽게 피어난 하얀, 분홍, 샛노란 씀바귀도 주변에 자라는 가느다란 줄기와 어울려 한 폭의 수채화가 된다. 카메라 화면에 들어 앉는 이러한 모습은 환상이다. 고색창연한 돌담 곁에 작지만, 고고하게 꽃대를 올리는 개망초는 여지없는 동양화다. 봄철엔 산과 들의 습한 구석에 떼지어 노랗게 핀 애기똥풀도 있었다. 이름 자체가 귀엽고 이른 아침 해가 나무 사이로 비추면 군락으로 핀 그 모습은 더욱 환상이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보면 참으로 아름다운 구석이 있음을 발견한다. 개미를 위하여 꿀샘을 줄기에 뿜어내어 놓는 애기똥풀의 나눔 정신도 배워 볼만한 교훈이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그들의 노랫소리가 들리고 가슴을 활짝 열면 여유롭게 흔들리며 바람 부는 대로 살아가는 자연의 섭리가 다가온다. 산새들과 풀벌레의 노래도 배경음악이 되어 어울린다. 참 아름다운 모습에 빠져들고 정겨운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보잘것없는 그들에게도 놀랄만한 아름다움이 있다. 나는 초대받은 귀한 손님이 되어 어우러져 자연으로 돌아간다. 이런 모습을 발견한 나는 큰 기쁨을 얻는다. 감동이다. 작은 관심으로 얻는 기쁨이다. 그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는다.
사진은 카메라로 쓰는 이야기라 하는 이유다. 유명한 사진 촬영지 여행보다 주변의 돌담길이나 들판, 산언저리, 강가나 실개천 가를 거닐기를 좋아하는 이유다. 그리고 사람이 사는 동네의 사람 냄새가 나는 이웃들의 일상에서 행복을 찾기를 좋아한다. 공원 나무 그늘의 벤치에 줄지어 앉아 세상살이를 이웃처럼 얘기하는 동네 할머니들의 모습도 즐겨본다. 문 닫힌 가게 앞에서 졸고 있는 고양이 모습도 즐겨 찍는 사진 소재다. 수양 버드나무가 휘늘어진 둑길을 드물게 지나가는 허리 굽은 할머니를 기다리면서 한나절을 보내기도 한다. 한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서다. 사진은 기다림이라고 했지 않은가? 세상의 모든 잡다한 일들을 렌즈에 담아 고운 모습으로 승화하려 한다. 곱게 보면 모두가 아름다워지는 생활의 진리다.
카메라로 담아내는 행복한 세상의 이야기다. 글도 글이지만 한 장의 사진으로 그 아름다운 세상을 보여주기를 좋아한다. 사진으로 써 내려가는 무언의 글이다. 이웃이나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이 가까운 사람들과 공유하기도 즐겨 한다. 세상의 모든 사람과 함께 나누기를 좋아한다. 렌즈로 본 아름답고 행복한 세상을 말이다. 아름답게 보니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