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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길을 걷고 또 걷다 보니… 한없이 편안한 예천
- 바람이 달라졌다. 한껏 뜨거웠던 날들이 제법 수그러드는 기미가 보인다. 이제 짧아진 가을을 어서 빨리 반겨 맞는다. 마을길을 산책하다 만나는 높지도 낮지도 않은 돌담 사이의 꽃무리가 걸음을 늦추게 한다. 작은 행복이 폴폴, 금당실마을 산책 경북 예천 읍내에서 자동차로 15분쯤 달리면 나타나는 금당실마을. 녹슨 양철 지붕과 헐고 뜯긴 벽에 자물쇠 굳게 잠긴 ‘용문정미소’ 앞을 지난다. 금당실마을은 옛 모습을 지닌 채 현대의 모습도 공존한다. ‘오셨니겨, 반갑니다, 또 오시소’,담벼락 아래 피어난 꽃과 함께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담은 글귀가 외지인을 반긴다. 금당실마을 우물가에 걸터앉았다. 담장 아래 채송화·백일홍이 피어 있고, 이미 꽃이 떨어진 보라색 비비추와 금낭화 꽃나무는 여전히 푸르다. 벌과 나비가 윙윙거리고 새소리도 들려온다. 장독이 즐비한 마당 건너편 넓은 밭에는 수확을 앞둔 채소가 여물고 있다. 더없이 평화롭다. 소백산 자락에 자리 잡은 금당실마을은 예부터 병화와 질병, 기근이 없다는 삼재불입지지(三災不入之地) 마을로 전한다. ‘정감록’에서는 천재지변이나 전란 등에도 안심하고 살 수 있다는 십승지의 한 곳으로 꼽았다. 조선 태조 이성계도 이 마을에 도읍을 정하려고 했다 하니 예사롭지 않은 땅기운을 가진 길지였던 게다. 물에 떠 있는 연꽃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금당실이란 이름도 예쁘다. 금당실 구석구석에 흔히 보이는 고인돌은 선사시대부터 선조들이 깃들어 살던 곳이었음을 증명하는 유물이다. 마을 밖으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수령 100년 훌쩍 넘은 소나무가 구불구불하게 자라 숲을 이루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바람이 많이 불어와 방풍 목적이던 송림은 마을 사람들에게 그늘을 주고 쉼터가 되어준다. 요즘은 걷기와 뛰기가 유행처럼 번지는 세상이다. 글쎄다. 산책은 그럴만하지 않은 듯하다. 금당실마을을 돌아보는 건 산책이란 말이 딱 알맞다. 들쑥날쑥한 돌담길이 총 7km 정도 되고, 골목길이 사방팔방으로 미로처럼 연결되었다. 한적한 골목을 천천히 산책하다 보면 담벼락에 기대어 멍하니 있고 싶다. 담 너머 마당 안에 비어 있는 평상에 살그머니 앉아볼 마음이 생긴다. 저절로 발걸음이 느려진다. 텃밭에선 할머니가 채소를 따고 개구리 소리 들리는 논둑길에선 마을 어르신을 만난다. 발길 닿는 대로 유유자적 온 마을을 걷다 보면 누군가가 나를 다독여준 듯한 뭉클함이 생겨난다. 마음을 푸근하게 힐링하고 치유받은 듯한 기분이 충만하다. 잡생각이 훌훌 날아갔다. 가을날 이만한 산책이 어디 흔한가. 그 옛날 세상이 어지러울 때마다 많은 세력가들이 찾아, 한때 반서울이라 불릴 정도로 번성했던 마을이다. 이제는 자연 친화적인 건강함 속에 낡아가는 전통가옥과 담쟁이덩굴이 뒤덮인 돌담이 아름답다. 100여 동의 크고 작은 초가와 기와집, 이름을 남긴 선비의 고택과 유적들이 과거의 역사를 이어가는 중이다. 금당실마을에서는 고택 민박도 가능하다. 자연이 정원, 초간정사(草澗精舍)와 용문사 금당실마을에서 자동차로 약 5분 거리에 초간정 원림이 있다. 사전적으로 원림이란 집터에 딸린 뜰이란 의미인데, 이곳은 정자만 있는 게 아니라 숲이 함께 어우러졌다. 아찔한 암반 위에 돌을 쌓아 만든 축대에 세워진 초간정을 보며 기막혔다. 마당에서 방으로 들면 절벽 위의 누마루다. 선계인가 싶었다. 도대체 이런 정자를 여기에 세울 생각을 어찌 했을까. 드라마 ‘미스터선샤인’의 애신아씨와 함안댁의 별당 장면이 여기라더니, 촬영지 선택 또한 기막히다. 기록에 따르면 초간정은 조선 선조 최초의 백과사전 ‘대동운부군옥’을 지은 초간 권문해(1534~1591)가 심신 수양을 하던 정자다. 어지러운 정사를 뒤로하고 고향 예천으로 내려와 초간정사를 짓고 학문에 몰두했다고 한다. 소나무숲 아래 벼랑과 함께 소(沼)를 이룬 계곡 위로 오롯하게 정자를 앉혔다. 정자에서 풍경을 내다보면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신선이 이런 건가 싶다. 눈앞에 자연을 끌어다놓은 정원이다. 물소리, 바람 소리, 새소리와 알 수 없는 자연의 기운이 온몸을 휘감는다. 자연이 초간정사를 품었는지, 초간정사가 자연을 거느린 건지 한없이 놀랍기만 하다. 바쁘게 흘러가는 세상을 살면서 잠시 여기 머물렀다는 게 순간 꿈인 듯싶다. 부근의 사찰 용문사는 초간정사와 함께 자연을 벗하는 여행지로 들러볼 만하다. 고려 때의 고찰로, 다양한 목조각과 탱화를 볼 기회다. 전국에 하나뿐인 윤장대는 회전식 서가 안에 불경을 넣고 돌리면 불경을 읽은 공덕을 쌓는다는 서가다. 윤장대가 있는 대장전은 현재 보수 중이다. 예천의 삼강문화단지 전시관에 가면 윤장대를 설치해 놓아 소원을 빌면서 돌려볼 수 있다. 용문사는 특히 봄철이면 절집 가는 길이 온통 벚꽃 터널을 이루어 눈부시다. 육지 속의 섬마을, 회룡포 회룡포(回龍浦)는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에 둘러싸인 예천의 한 마을이다. 강이 돌아 나가는 지형이 용이 틀임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이곳을 볼 수 있는 비룡산 전망대는 장안사 절집 뒤편으로 올라가야 한다. 비룡산은 해발 240m 정도지만 경사가 만만치 않다. 등산 코스가 다양해서 하루 코스도 있을 정도니까 선택하면 된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숲길을 10여 분쯤 숨차게 걷다 보면 전망대와 회룡정이 보인다. 눈앞에 육지 속의 섬 같은 마을이 펼쳐진다. 마을을 돌아 흐르는 물길이 마을을 감싸면서 유유히 흐른다. 다리를 건널 때 뿅뿅 소리가 난다는 철제 다리가 마을을 이어준다. 다리를 건너면 회룡포마을 안길에 이른다. 회룡정원이 조성되어 있고, TV 예능 ‘1박 2일’ 촬영지라는 안내문이 보인다. 이곳에서 보는 일출은 신비롭다. 특히 물안개 낀 날은 더욱 멋진 몽환적 풍경을 볼 수 있는 회룡마을이다. 삼강문화단지와 삼강주막 비룡산 숲길에서 비룡교로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는 4km 정도다. 산을 벗어나면 비룡교가 시원하게 눈앞에 펼쳐진다. 다리 중간의 전망대에 오르니 바람에 땀이 마른다. 다리 아래로 강물이 흐르고 넓은 갈대밭이 풍성하게 반짝인다. 몇 걸음만 더 걸으면 삼강문화단지와 삼강주막이 이어진다. 삼강(三江)은 낙동강, 내성천, 금천의 세 강이 마을 앞에서 만나기 때문에 삼강이다. 삼강문화단지는 낙동강 연안의 강 문화와 생태 자원을 예천 지역의 문화와 연계해서 조성한 관광지구다. 전시, 체험, 교육, 영상관, 어린이 놀이터 등이 한곳에서 모두 가능하다. 낙동강의 자연과 예천의 역사, 문화, 사람의 다큐멘터리 존(Zone)을 모두 돌아 보니 조금 한가해서 아쉽다. 이렇게 잘 만든 문화공간은 적극적으로 이용해줘야 하는데 말이다. 삼강나루캠핑장, 보부상문화체험촌, 생태공원 시설 또한 훌륭하다. 주변 경관이 크게 한몫한다. 바로 옆의 삼강주막에 다다르니, 숲길을 지나 강둑을 걸어온 후의 휴식이 달콤하다. 이 시대 마지막 주막이라 하는 삼강주막은 2006년 주모 유옥련 할머니께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영업했다고 전한다. 조선 말기의 전통 주막으로 우리네 삶의 한 면을 지켜내는 역사·문화적 가치가 커서 유지·보존 중이다. 낙동강 나루터를 건너온 선비나 보부상들이 거쳐가던 길목에서 막걸리 한잔 마시는 풍경이 그려진다. 주막에 걸터앉아 노란 양은 주전자에 가득 담긴 막걸리 한 사발 마시며 배추전과 도토리묵으로 예천의 산과 들을 걸어온 심신을 달래본다. 더할 나위 없다.
- 2024-10-18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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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예천 용문면 금당실 소나무 숲
- 금당실 소나무 숲은 인공림이다. 저 옛날, 마을 사람들이 일부러 꾸민 숲이다. 파란도 재앙도 많은 세사(世事). 거센 홍수가 때로 마을을 휩쓸었을 게다. 차가운 북풍이 봉창을 후려치는 세한(歲寒)을 견디기 힘들었을 게다. 해서, 소나무를 즐비하게 심었다. 그 소나무들 쑥쑥 자라 백 살 혹은 이백 살의 나이를 자셨으니 고명한 노구들이다. 늙어 오히려 굳센 솔들이 떼 지어 동거하니 그지없이 푸르러 둥두렷한 숲이다. 물살아, 바람아, 썩 물렀거라! 숲은 그렇게 소리 없는 소리를 내며 마을을 외호해왔다. 비보(裨補)의 목적도 있었겠지. 비보란 지기(地氣)가 센 곳은 눌러주고, 허한 곳은 채워주는 풍수지리의 방책. 숲을 조성하거나 돌탑을 쌓거나 선돌을 세워 기세의 조화를 꾀했다. 조화로운 지세가 사람의 삶을 북돋울 거라 믿어서였다. 그러한들 수시로 찾아드는 삶의 애환으로부터 놓여날 수 있을까마는, 비보를 통해 자연의 가호와 힘을 얻고자 하는 인간의 궁리엔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심정마저 실려 갸륵하다. 인디언들은 자연을 어버이라 부르며 진심을 다해 섬겼다지. 금당실 솔숲도 마을 사람들에겐 모성의 품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사람들이 숲에 안겨 피한 게 단지 물난리뿐이었겠는가. 억누르기 힘든 슬픔과 그리움과 아픔마저 솔숲에서 헹구었겠지. 죄지은 것 없이 억울하게 소박맞은 아낙은 이 숲에서 소나무를 부둥켜안고 사무치게 울었을 것이다. 뼈가 빠지도록 고생해 지은 한 해 농사를 망친 가난한 가장은, 술 취해 불콰해진 얼굴로 꺼이꺼이 울어 간신히 울분을 털어냈을 것이다. 어떤 이는 어린 자식의 손을 잡고 솔숲을 거닐며 저 헌걸찬 소나무처럼 잘 자라달라고 당부했을 것이며, 어떤 이는 밤의 솔숲으로 들이치는 별빛을 바라보며 일기장에 쓸 감흥을 건져 올렸을 것이다. 숲은 이렇게 깊은 위안을 준다. 삶을 일깨워 세상의 홍진을 견딜 용기를 준다. 숲 바깥엔 찬바람이 아우성을 친다. 잔뜩 웅크릴 수밖에 없는 한겨울이다. 그러나 숲 안으로 걸어 들어가자 온기가 훅 끼쳐온다. 석주처럼 우람한 지체를 허공으로 벋은 소나무들이 뿜는 훈기와 향에 추위를 잊는다. 말갈기처럼 성성한 침엽의 빛과, 일체를 보듬은 신성한 침묵에 그저 동화된다. 모든 풍경이 유정한 표정으로 다가온다. 아무 일 없는 채로 즐거워진다.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난 시간이니 솔숲의 마술이 완연하다. 금당실 마을 안통으로 접어들자 사방팔방, 미로처럼 펼쳐지는 돌담길이 객을 맞이해준다. 솔숲을 에두른 이 마을은 알아보는 눈들이 많은 동리. 일찍이 ‘정감록’은 이곳을 유난한 길지로 쳤다. 십승지(十勝地)의 하나로 꼽았던 거다. 조선의 걸출한 예언가 남사고는 한강을 닮은 장강이 없는 걸 빼고는 한양과 맞먹을 지세라 논했다. 태조 이성계가 이곳 터전에 도읍을 정하려 했다는 풍설도 전해진다. 돌담장을 두른 고가와 고택, 서원과 사당의 수효와 격조로 금당실의 유서 깊음을 단박에 알아챌 수 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세상에 이름을 떨친 사대부들도 많다. 인걸(人傑)은 지령(地靈)이라지? 하지만 터가 상서로워 사람도 덩달아 출세한다는 믿음은 실사구시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신비주의의 소산이 아닐까? 터가, 땅이, 자연의 영혼이 사람을 차별할 리 있겠는가. 우리는 다만 자연의 일부분일 뿐이다. 나무는 우리의 형제이고, 참새도 고라니도 모두 우리와 같은 부족이다. 발길은 다시 솔숲으로 끌린다. 숲의 외부엔 센 바람에 뒤엉겨 허공으로 나부끼는 눈 알갱이들. 냉랭한 저 눈보라. 그러나 내부는 다사로워 설렌다. 온기에 찬 숲의 서정에 겨워서. 숲의 정령이 스멀거리는 것만 같은 환(幻)으로. 탐방 Tip 볼 것도 머물 곳도 많다. 금당실 솔숲은 마을 숲의 전형이며, 금당실 마을은 돌담길과 고건축의 전시장이다. 주로 복원된 구조물들이지만, 오래된 마을의 유서와 미학과 역사를 느낄 수 있다. 인근에 초간정, 초간종택, 병암정 등 명소가 많다.
- 2019-01-07 08: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