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밥투정하는 나를 아버지가 야단치며 한 첫마디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다. 점심 먹을 때 “또 꽁보리밥이네”라고 무심결에 한 말에 어머니가 “쌀이 아직 안 와 보리가 더 들어갔다”고 했다. 아버지는 숟가락을 빼앗으며 밥상 뒤로 나가 앉으라고 소리 질렀다. 가족들은 아무런 말도, 밥그릇 부딪는 소리도 못 냈다. 아버지는 저녁 밥상에도 앉지 못하게 했다. 가족들 식사하는 걸 뒷자리에 앉아 구경만 하게 했다. 분위기는 한없이 무거웠다. 음식 씹는 소리가 배고픈 나한테만 크게 들렸다.
저녁상을 치운 뒤 아버지가 불러 “밥은 왜 물리지 않느냐?”고 물었다.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아버지는 “밥은 ‘중립적’인 맛이라서다”라고 해답을 내놨다. 쌀밥은 담백하고 자극적이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반찬과 함께 먹기에 최적화돼 있다. 밥은 주연이 아니라 조연이다. 그날그날 다른 반찬과 어울려 매일 다른 조합을 만들어낸다. 또 “우리는 밥 중심의 식문화에 익숙해져 있고, 어릴 때부터 매일 밥을 먹으며 자라왔기 때문에 ‘익숙함’에서 오는 편안함이 있어서다”라고 두 번째 이유를 댔다. 반면 빵은 서양식 음식이고, 간식이나 간편식 느낌이라 오래 먹으면 금방 질릴 수 있다는 설명도 했다. 아버지는 “입맛은 학습된 감각이다. 자라온 문화권의 주식은 ‘물리기 힘든 기본값’이 되는 경향이 있다”고 결론 냈다.
“밥은 부드럽고 씹을수록 단맛이 나면서도 무겁지 않은 포만감을 준다. 빵은 특히 버터나 설탕, 밀가루와 버무려져 부드러워 식감이 좋지만, 밀도도 높고 소화가 느리다. 연달아 먹으면 무겁고 느끼하다고 느끼기 쉽다”는 이유도 달았다. 밥은 반찬과 함께 먹는 것을 전제로 구성된 식사라 ‘조합’이 바뀌는 다양성이 있다. 반면 빵은 보통 단품 또는 몇 가지 정해진 조합(잼, 버터, 햄, 치즈 등)으로 먹기 때문에 조합의 폭이 좁고 금방 질릴 수 있다는 설명도 했다. 이렇게 아버지 말씀이 모두 온전하게 기억나는 이유는 훗날에도 여러 번 강조하셨기 때문이다.
이번에 찾아보니 그날 아버지가 가장 강조한 개념이 ‘감각적 피로(Sensory-specific Satiety)’다. 감각적 피로란 같은 맛이나 향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 뇌가 싫증을 느끼는 현상이다. 빵은 대부분 고소하고 달거나 짭짤한 맛이 비슷하고 강해 감각 피로가 빨리 온다. 밥은 그 자체로는 강한 맛이 없고, 반찬에 따라 자극이 달라지니 감각적 피로도 덜하다. 아버지는 “밥은 담백하고 반찬과 함께 먹는 구조라 다양성과 조화가 생기고, 빵은 단독으로 자극적인 맛이 강해 쉽게 물린다”라며 마무리했다.
그렇게 시작된 말씀이 끝날 때쯤 아버지는 느닷없이 내가 밥투정한 이유를 따졌다. “밥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체력을 유지해주는 자양분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이라도, 밥이 질리지 않는 것처럼 언제나 새롭게 느끼고 즐겁게 유지하는 데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며 내 생활이 그러지 못한 반증이 밥투정으로 나타난 거라고 진단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평범한 순간 속에서 즐거움이나 감탄할 만한 요소를 찾아내고 음미하는 연습을 통해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 아버지는 매일 반복되는 활동에 약간의 변화를 주거나,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만으로도 일상이 새롭게 느껴질 수 있다고 했다. 특히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를 향한 걱정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감사하는 연습은 삶의 질을 높인다. 현재 순간에 집중하라”고도 주문했다.
탄력 없는 지루한 내 일상을 아버지가 다시 질타하며 인용한 고사성어가 ‘유지경성(有志竟成)’이다. ‘뜻이 있어 마침내 이루다’는 말이다. ‘뜻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성공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중국 후한 시대 광무제(유수(劉秀))와 그의 장수 경엄(耿弇)의 고사에서 유래했다. 원래 선비였던 경엄은 무관들의 무용을 보고 장차 대장군이 되어 공을 세우겠다는 뜻을 품었다. 이후 광무제가 병사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 수하가 되어 여러 전투에서 승리했다. 특히 강한 상대인 장보(張步)와 전투를 치르다 적의 화살을 다리에 맞아 피를 흘리면서도 승리를 이끌었다. 부하는 후퇴해 재정비 후 재공격할 것을 권했으나, 그는 “승리하여 술과 안주를 갖추어 주상을 영접해야 하는데, 어찌 적을 섬멸하지 못하고 주상께 골칫거리를 남길 수 있겠는가?”라며 다시 군을 이끌고 공격했다.
결국 경엄은 적군 장보를 무찔렀고, 유수는 그가 부상을 입었어도 분전하여 승리한 것을 기뻐하며 칭찬했다. 유수는 경업에게 “장군이 전에 남양에서 천하를 얻을 큰 계책을 건의했을 때는 가망 없다고 여겼으나, 뜻이 있는 자는 마침내 성공한다(有志者事竟成也)”고 말했다. 이 성어는 여기서 유래했다. 아버지는 두세 번 더 경엄의 고사를 들어 “밥이 물리지 않듯 현재에 집중하는 일만이 너의 일상을 빛나게 하는 비결이다”라고 했다. 손주들이 간혹 밥투정을 할 때 몇 번이나 들려주고 싶은 성어이고, 물려주고 싶은 인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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