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입문이 열리자, 익숙한 데이케어센터의 고요한 풍경 대신 전혀 다른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파친코 구슬이 또르르 굴러가고, 마작 패가 부딪히는 경쾌한 소리가 공간을 메운다. 시니어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게임에 몰두하고 있다. 요양보호사와 한 판을 겨루는 그들의 얼굴에는 활기가 넘친다.

이곳은 일본의 주식회사 ‘시니어라이프’가 운영하는 이색 데이케어센터 ‘라스베가스(ラスベガス)’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카지노형 데이케어’라는 개념을 도입해, 돌봄 공간을 놀이와 즐거움의 무대로 탈바꿈한 곳이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의 깨달음
이 모델을 만든 모리 가오루(森薫) 사장을 만나기 위해 요코하마 쓰즈키점(横浜都築店)을 찾았다.
모리 사장은 본래 일반적인 데이케어센터(한국의 주간보호센터)에서 현장 관리자로 일했다. 그러나 마음 한켠에는 늘 답답함이 있었다.
이용자 대부분이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가족의 권유로 ‘어쩔 수 없이’ 센터를 찾는 것이 현실이다. 풍선 배구, 색칠놀이, 인형 만들기, 산수 문제 풀이 등 획일적인 프로그램 속에서 특히 남성 어르신들은 지루한 표정으로 시간을 흘려보냈다.
‘억지로가 아니라 시니어 스스로 가고 싶어 하는 장소를 만들 수는 없을까.’ 그의 고민은 오래 머물렀고, 그 답은 뜻밖에도 미국에서 찾았다.
2012년 미국 라스베이거스를 시찰하던 그는 지팡이를 짚거나 휠체어를 타고도 카지노를 마음껏 즐기는 시니어들의 모습을 목격했다.
“이거다!” 그 순간 그는 돌봄의 본질을 ‘의료’가 아닌 ‘즐거움’에서 찾아야 한다는 확신을 얻었다. 이 아이디어가 훗날 카지노형 데이케어센터 ‘라스베가스’의 출발점이 됐다.

남성 시니어가 돌아왔다
모리 사장이 가장 중시한 것은 이용자의 의견을 듣는 일이었다.
“병원 같은 분위기가 싫다”는 목소리에 그는 인테리어를 전면 교체하고, 간호용 침대 대신 리클라이닝 소파를 들였다.
“직원이 트레이닝복을 입으면 돌봄받는 기분이 든다”는 의견에 남성 직원에게는 딜러풍 조끼 정장을, 여성 직원에게는 싱가포르항공 승무원을 연상시키는 세련된 유니폼을 착용하게 했다.
치매 예방용으로 흔히 시행하던 ‘계산 드릴’도 과감히 없앴다. “이런 걸 시켜서 나를 바보 취급하나?”라는 분노와 “계산이 안 돼서 속상하다”는 좌절. 그는 두 감정을 모두 지워내고 싶었다.
그렇게 쌓인 작은 변화들이 결국 돌봄 풍경을 완전히 바꾸었다. 일반적인 데이케어센터의 이용자 비율은 여성 80%, 남성 20% 수준이다. 그러나 라스베가스는 남성이 70~80%를 차지한다. 전국 21개 지점에서 매월 약 1300명의 시니어가 이용하고 있으며, 요양 서비스를 꺼리던 남성들조차 “이곳은 다르다”고 말한다.

이 극적인 변화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자존감을 회복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마작과 포커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다. 규칙을 이해하고, 상대의 표정을 읽고, 베팅을 판단하는 과정 속에 인생의 리듬이 깃든다. ‘내가 나로 돌아오는 느낌’, 그 감각이 남성들의 발걸음을 이끈다.
둘째,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즐거움이 따른다. 억지로 참여해야 하는 프로그램이 아닌 스스로 선택한 활동이 중심이다. 재미가 우선이지만, 설계는 철저히 재활이다. 자발성이 동력이 되자 남성들은 더 이상 이용을 주저하지 않았다.
셋째, ‘나 같은 사람’이 있는 곳이라는 점이다. 동년배 남성들이 모이는 공간은 자연스럽게 소속감을 만든다. “오늘 점수 어땠어요?”라는 대화 속에서 웃음이 번지고, 은퇴 후 끊어졌던 관계가 다시 이어진다.

“도박이냐?”는 오해에 대해
카지노풍 연출 탓에 초창기에는 ‘노인에게 도박을 가르친다’는 비난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현금은 오가지 않는다. 시설 내에서만 통용되는 ‘베가스 화폐’는 의욕을 자극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지금은 여러 언론 보도를 통해 대부분의 오해가 사라졌다. 모리 사장은 이렇게 말한다.
“중요한 건 규칙을 지키며 즐기는 겁니다.”
그는 웃으며 한 가지 일화를 들려준다. 시니어들이 이 게임을 얼마나 진심으로 즐기는지, 그 열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이야기다.
“매년 8월 열리는 전국 마작 대회에 참가하려고 수술 일정을 미루신 분도 있었어요. 그만큼 인생의 목표가 생긴 거죠.”
초기에는 ‘세금을 놀이에 쓴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러나 모리 사장과 직원들은 ‘결과로 증명하자’는 각오로 맞섰다. 그 결과 2년 후 요양 등급이 유지·개선된 비율이 82%에 달했다. 등급 5에서 3으로, 2에서 자립으로 낮아진 사례도 많았다. 참고로 한국의 요양 등급과 달리 일본의 경우 5등급이 가장 중증이다.
“의욕이 사라지면 식욕도, 다리 힘도 함께 떨어집니다. 반대로 즐거움을 찾으면 회복 속도가 놀랍도록 빨라집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며 돌봄의 본질을 다시 정의한다.
“우리는 병을 고칠 수는 없지만, 삶의 보람을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잘 놀아야 잘 돌본다’
일본의 데이케어센터는 대부분 욕탕을 갖추고 있다. 라스베가스에서는 1인당 입욕 시간을 30분으로 늘려 여유를 줬다. 남성은 남성 직원이, 여성은 여성 직원이 돕는다. 세심한 배려의 원칙이다.
“부득이한 경우 남성 시니어에게 여성 직원은 괜찮지만, 여성 시니어에게 남성 직원은 안 됩니다.”
인력난이 심화되고 있지만 라스베가스에서는 외국인 기능실습생을 채용하지 않는다. 그 이유를 묻자 모리 사장의 단호한 답이 돌아왔다.
“시니어는 역사와 문화를 중시합니다. 우리는 서비스의 품질을 지키고 싶습니다.”
직원 교육에서도 ‘전문성’보다 ‘함께 즐기는 법’을 강조한다. ‘돌봄’이 아니라 ‘동행’이다. 모리 사장은 이를 ‘잘 놀아야 잘 돌본다’는 철학이라 부른다.
“우리는 어르신을 돌보는 게 아니라 함께 논다고 생각합니다. 주인공은 언제나 어르신입니다.”

세계로 확산되는 ‘즐거운 돌봄’
시니어라이프는 현재 전국 60~70개 거점에서 데이케어센터, 방문간호, 유료 노인홈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직원 수는 약 600명, 그 중심에는 언제나 ‘라스베가스’가 있다.
모리 사장은 입사 23년 만에 사장으로 승진했다. 올해 48세. 그의 리더십은 전통적인 돌봄의 성비를 뒤집고, ‘돌봄=재활’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린 성과로 높이 평가받는다.
지금도 중국, 한국, 독일, 영국, 뉴질랜드 등 세계 각국에서 시찰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의 라스베가스가 보여준 건 돌봄의 새로운 방향성이다.
한국에서도 초고령사회 진입과 함께 돌봄의 패러다임을 다시 써야 할 때다. 보호 중심의 제도에서 벗어나즐거움과 존엄이 공존하는 한국형 데이케어 모델이 등장한다면, 돌봄은 복지가 아닌 삶의 현장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모리 사장은 미소 지으며 말한다.
“다른 나라에도 이런 시설이 생기면 좋겠어요. 각자의 역사와 문화에 맞게, 즐겁고 신나는 데이케어센터가 늘어나길 바랍니다.”
라스베가스의 본질은 ‘도박’이 아니라 ‘인간 회복’이다. 돌봄을 의무에서 기쁨으로, 기쁨에서 존엄으로 확장한 한 남자의 철학. 그가 만든 무대 위에서 시니어들은 오늘도 인생의 두 번째 막을 힘차게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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