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거리의 미관과 국민 보건 따위를 위해 길을 따라 줄지어 심은 나무.
4.압력으로 좁은 구멍을 통해 물을 위로 세차게 내뿜거나 뿌리도록 만든 설비. 흔히 공원이나 광장 한가운데 설치한다.
6.음식물이 뱃속에서 발효되는 과정에서 생겨 항문으로 나오는 구린내 나는 무색 기체.
10.과거나 미래로 시간 여행을 가능하게 한다는 공상 기계.
11.소나 돼지의 소장을 가리키는 말.
12.우리나라 대중가요의 하나. 정형화된 리듬에 일본 엔카에서 들어온 음계를 사용해 구성지고 애상적인 느낌을 준다.
14.조선 고종의 비. 성은 민(閔). 대원군의 집정을 물리치고 고종의 친정(親政)을 실현했으며 을미사변 때 피살됐다.
16.아는 것 없이 머리가 텅 빈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
17.기분 전환을 위해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일.
19.단단하고 독특한 향이 있으며, 시원한 맛이 있어 열매의 즙액은 뜨거운 물에 덴 데에 효과가 있다. 반찬거리로 쓰며, 김치를 담그기도 한다.
1.음식에 대해 특별한 기호를 가진 사람. 또는 좋은 음식을 찾아 먹는 것을 즐기는 사람.
3.재물이 계속 나오는 보물단지. 그 안에 온갖 물건을 담아두면 끝없이 새끼를 쳐 그 내용물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설화상의 단지를 이른다.
5.귓불에 다는 장식품.
7.물건을 넣어 들거나 메고 다닐 수 있게 만든 용구. 가죽이나 천, 비닐 따위로 만든다.
8.교제를 위해 만나는 일. 또는 그렇게 하기로 한 약속.
9.양복을 입을 때 와이셔츠 깃 밑으로 둘러 매듭을 지어 앞으로 늘어뜨리거나 나비 모양으로 매듭을 만드는 천.
11.고불고불하게 말려 있는 머리털.
13.중세 영국의 전설상 영웅. 포악한 관리나 욕심 많은 귀족, 타락한 성직자들의 재산을 빼앗고 응징해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자로, 당시의 문학 소재로 인기를 끌었다.
15.갑자기 성장하면서 생기는 통증. 양쪽 무릎이나 발목, 허벅지나 정강이, 팔 따위에 생긴다. 4~10세 사이에 많이 나타나고 1~2년 지나면 대부분 통증이 사라진다.
18.방송국에서 일정한 시간 안에 음악·드라마·뉴스·강연 따위의 음성을 전파로 방송해 수신 장치를 갖추고 있는 청취자들에게 듣게 하는 일. 또는 그런 방송 내용.
*퍼즐을 완성하고 사진을 찍어 이미지 파일(jpg, jpeg, png)를 첨부하거나, 답안을 작성해 매 월 15일까지 담당자 이메일(hjmoon@etoday.co.kr)로 보내주세요. 전송 시 응모자의 성함, 주소, 우편번호, 연락처를 꼭 기재해야 합니다. 사진이 흐리거나 글씨가 불분명할 경우 선정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3개월 이내 중복 당첨은 어려울 수 있는 점 참고 부탁 드립니다.
사람은 누구나 노인이 된다. 그러나 ‘웬만한 50대보다 건강한 70대’, ‘중증 질환을 가진 40대’ 등 개인의 신체 능력과 노화 수준은 다양하다. 보조기구의 사용 여부, 지금 거주하는 주택의 상황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생활 방식도 다르다. ‘단계별 맞춤 주거 설계’가 필요한 이유다. 비용, 시간, 노력을 과하게 들이지 않고 원상 복귀가 어려운 구조 변경은 최소화해 집을 정비한다면 노인뿐 아니라 노인이 될 모두에게 ‘평생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권오정 건국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는 주거복지 정책 및 제도, 노인 주거계획, 장애인 주거계획, 주거 서비스 개발 및 평가 등의 분야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주거 전문가다. 그가 생각하는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집’이란 무엇일까?
Q. 나이가 들수록 ‘내 집’을 몸 상태에 맞게 개조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A. 익숙한 내 집에서 안정감을 느끼며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죠. 실버타운에 입주해 고급 서비스를 누릴 수도 있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은 데다 그 유형이 다양하지 않습니다. 공공실버주택은 소득 수준이 일정 기준 이하인 사람을 우대하기 때문에 쉽게 입주할 수 없어요. 중간에서 중간 이상 정도의 소득 수준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주거 형태는 아직 보편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집을 과하게 뜯어고치자는 말이 아닙니다. 현관에 접이식 의자를 설치해 편하게 신발을 갈아 신도록 하고, 복도와 거실, 방으로 이어지는 길의 턱을 모두 없애는 식입니다.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가구를 배치해 수납을 돕고, 화장실에 손잡이를 부착하는 방법도 있어요.
Q. 유니버설디자인*의 개념이네요.
A. 그런 셈이죠.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국가기관, 지자체, 기업에서 하는 개조는 일괄적으로 진행됩니다. 단순히 여닫기 쉬운 문손잡이 부착, 적절한 높이의 부엌 작업대 설치 등 소극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어요. 대상도 장애인, 독거노인 등 사회적 약자로 범위가 한정적이고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되, 해당자의 신체적 능력과 현재 집 상태 등을 고려한 단계별 설비가 필요해요. 더불어 그 사람의 어떤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개조인지, 목적을 확실히 인지하고 작업을 계획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니버설디자인: 성별, 나이, 국적, 문화적 배경,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누구나 손쉽게 쓸 수 있는 제품 및 사용 환경을 만드는 디자인
Q. 단계별 설비가 왜 필요한가요?
A. 사람마다 노화 수준에 따라 수행할 수 있는 일의 범위와 자립 정도, 생활 방식이 달라요. 때문에 다양한 유형에 맞게 개조 원칙을 세분화해야 합니다. 개인이 자신의 상태를 살피고 집을 바꾸는 것도 좋지만, 국가적인 지원이 필요해요. 정부가 시민에게 좋은 거주 환경을 제공하는 데 일조하고자 유형을 여섯 단계로 나누고, 개조 및 계획 기준을 제시했습니다.(27쪽 표 참고)
Q. 그러나 아직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노화 대응을 위한 주택 정비’를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A. 안타까운 현실이에요. 국가, 개인, 관련 기업조차도 해당 내용에 대해 무관심한 편입니다. 정부는 노인 임대주택 공급 등 실적이 명확한 분야에 더 집중해 투자하고, 기업에서도 주택 개조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니 다양한 디자인 상품을 개발하지 않아요. 수요가 없어 수익사업으로 발전시키기 어렵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반면 가까운 일본에는 고령자를 위한 실내 디자인 제품이 아주 많습니다. 안전 손잡이 하나도 소재와 마감재, 색을 다양하게 조합했어요. 촌스럽거나 ‘보호시설에서 쓸 만한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세련됐죠.
Q. 일본 정부는 개호보험(장기요양보험)을 통해 주택 개조를 돕고 있다고 하던데요.
A. 일본은 20만 엔(약 200만 원) 정도 지원하는 제도를 만들었어요. 주거 환경 개선 급여로요. 그 덕에 주택 개조 시장이 엄청나게 커졌어요. 소득분위별로 지원 대상을 정하는 우리나라와 차이가 있죠. 주택 개조 지원을 통해 안전하게 자립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늘면 결국 사회적인 부양 부담이나 의료비 절감 효과도 있을 겁니다.
Q. 개인이 나서서 본인의 집을 가꿔보려 해도 쉽지 않겠습니다.
A. 실제로는 나이가 들어 신체 능력이 떨어진 사람조차 집을 고쳐 써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문턱에 걸려 넘어져도 ‘아, 내가 조심하지 못했구나. 앞으로 잘 보고 걸어야지’라며 자책해요. 자연스러운 노화로 시야가 좁아지거나 보폭이 좁아져서 그런 것뿐인데 말이죠. 몸이 노화할수록 단열·누수·균열과 같은 건축물의 성능을 올리는 건 기본이고, 거주자의 공간 활용도를 높여야 합니다. 고쳐야겠다고 마음먹고 인터넷으로 검색해본다 한들 노화 대응을 위한 전문 주택 개조 업체를 발견하기 힘들어요. 진단이나 컨설팅을 해주는 곳은 물론이거니와 전문 시공사도 없죠. 인테리어나 시공 전문가에게 “현관 앞 통로에 안전 손잡이 설치해주세요”라고 요청하면, “그걸 왜 설치하세요?”라는 질문이 돌아와요. 얼마 전 제가 겪은 일입니다. 하지만 안전 손잡이가 있으면 고령자나 장애인뿐 아니라 건강한 사람들도 편리하거든요. 아이들도 마찬가지고요.
Q. 인식 개선이 굉장히 중요하겠네요.
A. 맞습니다. 나라에서 홍보활동을 해주면 물론 좋겠지만,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연예인의 집에서 생활을 보조해주는 가구나 기계를 노출했을 때 파급 효과도 무시할 수 없어요. 누가 봐도 아름답고 화려한 외모를 가진 사람이 지팡이를 짚고 걸어 다닌다면 처음에는 이질감이 들겠지만 나중에는 완판 행진을 이어갈지도 몰라요. 다양한 매체에서 그런 부분을 많이 다뤄줬으면 좋겠습니다. 다 같이 노력해야 우리 모두의 노후가 행복해지지 않을까요.
김병준(64) 씨는 2019년 60세에 KT&G에서 정년퇴직했다. 본래 전매청(재무부에 속해 담배·인삼 등의 전매를 담당하던 기관) 공무원으로 입사한 그는 거의 40년 동안 회사에 몸담으며 열심히 일했다. 시설관리, 생산관리, 영업 업무 등을 맡아서 했다.
김병준 씨는 은퇴 후 기술을 갖고 싶었다. “이론은 많이 아는 편인데 실무적인 지식은 부족하다고 느꼈다”는 그는 한국폴리텍대학 익산캠퍼스를 다니면서 학업에 열중, 국가기술자격증을 연이어 취득했다.
2020년 상반기, 김병준 씨는 특수용접과 에너지설비 교육 4개월 과정을 들었다. 고등학생 때 배관기능사를 취득한 터라 연계해서 자격증을 취득하면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교육을 들은 후 에너지관리기능사 자격증을 바로 취득했다. 취득이 어렵지 않은 온수온돌기능사 자격증도 동시에 땄다.
이어 2020년 하반기에는 전기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2021년에는 용접 기술을 익히기 위해 산업설비 1년 교육과정을 들었다. 용접기능사 자격증과 함께 공조냉동기계기능사, 승강기기능사도 취득했다.
다수의 자격증을 취득한 김병준 씨는 2022년 1월 1일 취업에 성공했다. 현재 그는 한 초등학교에서 시설관리 업무를 맡고 있다. 그는 “공석이면 취업이 쉽지만 아닐 경우 어렵다”면서 “나중에 들으니 내가 자격증이 많아서 뽑았다고 하더라”고 설명했다.
“에너지관리기능사가 하는 일을 단순하게 보일러를 설치하고 열 관리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워요. 그런데 열을 경제적이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일은 전문성을 필요로 합니다. 안전사고에 대해서도 컨트롤해야 하죠. 저는 학교에서 일하다 보니 안전사고 예방에 특히 신경 쓰고 있습니다.”
김병준 씨는 여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던 비결로 “필기와 실기시험이 서로 겹치는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공부하지 않으면 시험에 떨어지기 쉽다고 충고했다. 에너지관리 분야 필기시험은 그중에서도 어려운 편에 속하며, 계산 문제를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다는 전언이다. 김병준 씨는 공부에 어려움을 겪을 시니어들을 위해 자신의 공부법을 전했다.
“저만의 공부법이 있어요. 자격증 시험 대비용 책을 사면 소설책 읽듯이 쭉 한 번 읽어봅니다. 그다음에 문제를 풀어보면서 내용을 확인해요. 그러면 머릿속에 내용이 각인되어 잊어버리지 않고, 시험 점수도 잘 나오더라고요.”
김병준 씨는 “기능사 자격증을 따면 산업기사, 그다음에 기사, 기능장 자격증을 따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면서 “기능사 자격증은 상위 자격증을 딸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는 점이 매력이다”고 말했다. 김병준 씨의 올해 목표는 에너지관리기능장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이다. 관련 경력을 인정받아 기능장 자격 조건을 갖췄다. 그는 동년배들에게 국가기술자격증 취득을 추천했다.
“은퇴 전에 여유를 갖고 제2의 인생을 준비하면 좋을 것 같아요. 국가기술자격증을 갖고 있으면 분명히 도움이 되는 부분이 많거든요. 자격증 공부를 하다 보니 재미를 느껴서 더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좋은 국가기술자격증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에너지관리기능사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저처럼 시설관리나 설비 분야로 취업할 수도 있고, 경력을 쌓아 기계설비유지관리자 선임이 되면 수입도 안정적이기 때문이죠. 저와 동년배인 중장년층에 특히 유망한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에너지관리기능사는 우리 일상에 빠질 수 없는 보일러를 설치하고 관리, 정비하는 일을 수행한다. 다른 말로 ‘보일러공’이라고도 한다. 단순한 업무를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에너지관리기능사가 하는 일은 다양하다. 더욱이 에너지관리기능사 자격증은 공조냉동기계기능사와 함께 산업설비 분야에서 양대 산맥으로 인정받는 국가기술자격증이다.
아파트, 호텔, 사무용 빌딩, 공장에 이르기까지 난방을 유지하는 보일러는 필수적인 존재다. 쾌적한 업무 및 주거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에너지관리기능사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에너지관리기능사는 과거에는 ‘보일러취급기능사’와 ‘보일러시공기능사’로 불렸다. 2012년 ‘보일러기능사’로 통합했고, 2014년 에너지관리기능사로 자격 명칭을 변경했다.
에너지관리기능사는 건축물 및 산업용 보일러와 부대설비의 운영을 위해 기기의 설치, 배관, 용접 등의 작업을 수행한다. 보일러 연료와 열을 효율적이고 경제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관리, 운전, 정비 등의 업무도 한다. 이외에도 보일러 시공도면 해독·작성, 보일러 및 부속설비의 고장을 파악하고 정비하는 직무를 담당한다.
쉬운 자격증이라는 말은 옛말
에너지관리기능사의 업무를 단순하게 보고 자격증 취득 과정 또한 쉬울 것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격증 취득이 쉽다는 것은 옛말이다. 시험 과정이 복잡한 편이며 결코 쉽지 않다. 시험 자격 제한은 없지만, 실업계 고등학교 및 전문대학의 기계공학 또는 화학공학 등 관련 학과를 전공하면 자격증 취득시험 준비에 유리하다.
에너지관리기능사 시험은 필기와 실기로 나뉜다. 1년에 4번 시험이 시행되며, 응시율이 높다. 2021년만 봐도 응시자는 8854명이었다. 필기시험 합격률은 47.7%, 실기시험 합격률은 64.9%를 기록했다.
필기시험은 총 4과목을 본다. 보일러 설비 및 구조, 보일러 시공 및 취급, 안전관리 및 배관일반, 에너지 이용 합리화 관계 법규가 해당된다. 필기시험 문제는 암기 비중이 높고 계산 문제가 복잡하다. 공부하지 않으면 시험에 합격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평균적으로 한 달 이상 공부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실기시험은 기존에는 복합형(필답+작업)이었는데 현재는 작업형으로 변경됐다. 시험은 3시간 동안 진행되며, 적산과 종합응용 배관 작업을 평가한다. 배관 작업은 독학으로 연습하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에 전문 기관의 교육을 받는 것을 추천한다.
에너지관리기능사와 함께 다른 관련 자격증도 취득하면 취업에 더욱 유리하다. 가장 비슷한 자격증으로는 가스기능사가 언급된다. 두 자격증을 비교하면 필기시험은 에너지관리기능사가 쉬운 편이나 실기시험은 훨씬 복잡하다. 또한 병행해서 취득하면 좋은 자격증으로 공조냉동기계기능사, 온돌온수기능사를 추천한다.
2020년 기준 에너지관리기능사 합격자는 20대가 615명으로 가장 많았다. 50대 합격자는 541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 이는 에너지관리 및 시설관리 분야로 취업을 희망하는 젊은 세대가 많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중장년층의 취업 전망이 더욱 어려워졌다.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전문가들은 앞서 언급한 관련 자격증을 병행해 취득할 것을 추천한다.
중장년 취업은 어떻게?
에너지관리기능사 자격을 취득한 사람은 보일러 시공업체, 보일러 검사 및 품질관리업체, 보일러 설비조립 및 보수업체, 보일러 취급업체, 에너지관리 진단기관, 아파트·빌딩 및 시설물 관리업체 등에 취업할 수 있다. 기사 이상 경력을 쌓으면 보일러 분야, 공조냉동설비 분야 등에서 창업이 가능하다.
그중에서도 시설 설비 쪽으로 취업이 가장 많이 이뤄진다. 기계설비시행령에 의거해 기업에서는 기계설비 점검 업무를 수행하는 인력을 필수로 채용해야 한다. 에너지관리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은 해당 기준에 속한다.
에너지관리기능사는 에너지관리 분야의 첫 단계다. 상위 단계로 에너지관리산업기사, 에너지관리기사, 에너지관리기능장이 있다. 기능사 자격을 취득한 후 동일 직무 분야에서 1년 이상 실무에 종사한 자는 산업기사 시험의 응시자격을 갖는다. 산업기사 자격 취득 후 1년 이상 종사한 경우 기사 시험의 응시 자격이 주어진다.
높은 보수를 희망할 경우 에너지관리기사 이상 자격을 취득해야 한다. 연봉도 4000만~5000만 원까지 달성할 수 있다. 기능장 자격증을 취득하면 연봉이 더욱 높아진다. 그만큼 경력과 실력을 보유했다는 사실이 입증되기 때문에 채용을 희망하는 회사가 많아진다.
중장년층에게 에너지관리기능사를 추천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경력을 쌓은 후 기계설비유지관리자 선임 자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선임 자격을 받기 위해서는 산업기사 자격증과 3년 이상의 경력, 또는 기사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지구온난화 시대에 공조냉동 분야가 주목받는다는 이야기를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공조란 공기조화(Air Conditioning)의 줄임말이다. 공조냉동 업무를 쉽게 설명하면 건물의 냉난방을 관리하며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다. 공조냉동 분야 취업의 첫 단계 자격증이자 누구나 취득할 수 있는 공조냉동기계기능사를 소개한다.
공조는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고, 박테리아·먼지·유해 가스를 제거해 실내에 있는 사람과 물체에게 가장 쾌적한 환경을 조절하거나 조성하는 것을 말한다.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공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공조냉동기계기능사는 현장에서 공조냉동기계를 설치·운전하며, 냉매를 교환·보충하는 업무를 맡는다. 압축기, 응축기, 증발기, 펌프, 모터, 밸브 등과 같은 부속 설비를 관리, 보수, 점검하는 업무 또한 수행한다.
공조냉동기계기능사는 지구온난화와 맞물리며 주목받는 직업이 됐다. 기후가 급격하게 변화하고 미세먼지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서 쾌적한 환경에 대한 갈증이 높아졌다. 이에 따라 공기조화와 냉동기계설비가 증가하고 있으며, 유지·보수를 하는 엔지니어의 수요가 늘어났다. 앞으로 없어서는 안 될 직업으로 예상되는 공조냉동기계기능사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누구나 자격증 취득 가능
공조냉동기계기능사는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국가기술자격증을 발행한다. 공조냉동기계기능사 자격 제도는 냉동과 공기조화에 관한 공학적인 이론을 바탕으로 공조냉동기계와 관련된 생산, 공정, 시설, 기구의 안전관리 등의 직무를 담당할 기능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제정됐다.
공조냉동기계기능사는 공조냉동기계 분야 첫 단계로, 응시 자격에 제한이 없다. 다만 전문계 고등학교에서 기계과·냉동공조과 등 관련 과를 전공했거나, 직업전문학교나 전문기술학원 등을 통해 과정을 이수하면 자격증 취득에 좀 더 유리하다.
기능사 위의 단계인 산업기사, 기사, 기술사는 응시 자격이 있다. 전문대학 이상 관련 학과를 졸업했거나 실무 경력이 있어야 한다. 다른 말로 설명하면 공조냉동기계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고 경력이 없다면 무조건 기능사 자격증부터 취득해야 한다.
공조냉동기계기능사 자격증은 필기시험, 실기시험에 모두 합격해야 주어진다. 둘 다 1년에 4번 시행되며, 100점 만점에 60점 이상 받아야 한다. 자격증 시험 응시자는 인기를 입증하듯 매년 늘어나고 있다. 필기시험은 2021년 기준 7913명이 응시했으며, 4047명이 합격했다. 합격률은 51.1%다. 실기시험은 57.7%의 합격률을 기록했다. 그 이전 연도 통계도 비슷했으며, 평균 합격률은 50% 정도라고 보면 된다.
필기시험 과목은 공조냉동, 자동제어 및 안전관리다. 냉동기계, 공기조화, 보일러설비 설치, 유지·보수공사 안전관리, 자재관리, 냉동설비 설치, 공조배관 설치 등에서 문제가 출제된다. 객관식 4지 선택형 60문항이 출제되고 시험 시간은 1시간이다. 기출문제를 위주로 열심히 공부하면 어렵지 않게 합격할 수 있다.
실기시험은 2022년까지 작업형(동관 작업+동영상)으로 시행됐으나, 2023년부터는 작업형의 동영상 시험이 폐지되고 필답형이 도입되어 복합형(동관 작업+필답형)으로 시행된다. 동관 작업은 주어진 재료를 활용해 도면과 같이 작품을 제작하는 능력을 평가한다. 시험 시간은 약 2시간이다. 경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실기시험이 어렵기 때문에 전문 교육기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실기시험을 치를 때 유의할 점은 동관 작업 시험을 위해 준비물을 지참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제시한 준비물은 유성 사인펜, 직각자, 계산기, 몽키스패너 등 종류도 다양하고 총 18종에 이른다. 그러나 준비물을 지참하지 않았다 해도 감점이 되진 않는다. 작업에 꼭 필요한 물건들도 아니다. 전문가들은 공구 위주로 준비물을 지참할 것을 조언했다.
중장년 취업에 왜 좋을까
공조냉동기계기능사는 정년이 없는 기술직으로 중장년을 위한 취업 교육이 확대되는 추세다. 대표적인 예로 한국폴리텍대학 대전캠퍼스에서는 공조냉동 직종 신중년특화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전액 국비지원 교육과정이다.
신중년특화과정에서는 △공조냉동설비 △배관설비 △용접설비 △CAD △설비 자동제어 등을 교육한다. 교육생들이 공조냉동기계기능사, 에너지관리기능사 등의 자격증을 취득해 현장 실무를 이끌어갈 기술인으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백승문 한국폴리텍대학 녹색산업설비학과장은 공조냉동 분야가 유망 직종인 이유에 대해 “요즘은 모든 건물에 냉난방 시설이 잘돼 있고, 큰 건물에는 기계실이 따로 있을 정도다. 이로 인해 공조냉동 분야의 수요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더욱이 최근에는 기계설비법이 바뀌어서 의무적으로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을 채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중에서도 중장년에게 추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백승문 학과장은 “보통 나이가 들면 취업이 어려운데 공조냉동 분야는 50대 중반에 은퇴한 후에도 취업이 가능하다. 60대까지도 괜찮다”고 말했다. 백 학과장은 “산업설비 계열은 워낙 수요가 많고 70대까지도 일할 수 있어서 제2의 직업으로 좋다”고 덧붙였다.
공조냉동기계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면 다양한 방향으로 취업할 수 있다. 에너지와 가스 자격증을 함께 따면 취업이 더욱 쉬워진다. 공조냉동기계기능사 자격증 취득 후 주로 공조냉동설비 관련 업체, 냉난방 및 냉동장치 제조업체, 냉동고압가스업체, 식품냉동업체 등으로 취업한다. 건설업체, 감리전문업체, 엔지니어링업체, 정밀기계제조업체, 제약회사 등으로 진출하기도 한다. 에너지절약 전문기업의 기술인력, 고압가스안전관리법에 의한 냉동기 제조시설의 안전관리책임자, 건설기술관리법에 의한 감리전문회사의 감리원 등으로도 고용될 수 있다.
전문가는 공조냉동기계기능사의 평균 연봉은 3000만 원 정도라고 짚었다. 경력을 쌓아 기사 이상 되고 능력을 인정받으면 4000만 원대 이상도 벌 수 있다고 한다. 나아가 기계설비유지관리 선임이 되거나 창업하면 더욱 많은 수익이 보장된다.
정진광(64) 씨는 50대 중반부터 7년째 아파트 기전기사로 일하고 있다. 그는 이전에 의료장비 무역회사에서 기술사업부 엔지니어로 오래 일했다. 전기·기계 등 다방면으로 능숙해야 하는 직업이었기 때문에 경력을 인정받아 기전기사로 어렵지 않게 취업했다.
전기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그 역시 선임인 전기안전관리자를 목표로 하면서 전기산업기사나 전기기사 자격증을 취득해야 했다. 이에 앞서 전기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한 것.
정 씨는 “경력이 없는 사람은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해야 하지만, 사실 기능사 자격증만 있으면 잘 알아주지 않는다”고 현실을 짚었다.
정진광 씨는 격일제로 근무하면서 자격증 필기시험 공부를 했다. 야간에 혼자 동영상을 보면서 약 5개월간 독학했다고. 그는 “전부 다 암기 과목인데 자꾸 까먹어서 열심히 공부하는 수밖에 없었다. 수학 문제는 정말 어렵다”고 토로했다. 실기시험은 평소에 하던 일이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정진광 씨는 아파트 기전기사로 취업하기란 쉽지 않다고 밝혔다. 경쟁률이 점점 치열해지는 상황이라고. 30대의 젊은 나이에 일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고, KT전화국에 다니다가 정년퇴직한 사람도 일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아파트 기전기사는 해야 할 일이 많다. 수전 설비, 배수 설비 등은 물론 정전이 났을 때 발전기 수리, CCTV 및 인터폰 민원도 해결해야 한다.
“한마디로 아파트 기사는 맥가이버가 되어야 해요. 거기다 관리소 안에 있을 때는 입주민 민원 전화를 받고 처리하는 일도 하죠. 야간에 특히 민원이 많이 들어오는데, 층간 소음, 담배 냄새 등 사소한 민원이 많아요. 경비나 아파트 소장보다는 직접적이지 않으니 덜하겠지만 저희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마음의 수양이 덜 된 사람은 버티기 힘들어요. 주민들과 싸우지 않고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럼에도 정진광 씨는 아파트 기전기사는 중장년이 하기에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추천했다. 노동력이 강하게 요구되는 직업이 아니면서 안정적인 월급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얘기했다.
“저는 현재 반장으로 월 300만 원 가까이 받고 있어요. 주 40시간 일하고, 격일제로 일해서 결국 한 달에 보름 근무하는 건데 300만 원 버는 것이면 적은 돈이 아니죠. 퇴직금, 연차도 다 있고, 공휴일에 쉬는 것도 장점이에요.”
그렇다면 전기와 관련된 전공자가 아니거나 경력이 없다면 기사 일을 하기 어려울까. 이에 대해 그는 “문과를 나와도 손재주가 있고 습득력이 빠른 사람들이 있다. 현장에서 부딪혀보고 자신한테 맞는지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70대 진입을 앞둔 정진광 씨는 현재 고민이 많다. 선임이 되면 70대까지 일할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전문 분야를 전기 쪽으로 살릴지 기계 쪽으로 살릴지 고심하고 있다. 정 씨는 최근 기계설비유지관리자 선임 수첩을 받았다. 900세대 아파트에서 근무 중인 정진광 씨는 내년부터 선임 자격을 갖는다.
“이 아파트에서 5년 동안은 선임으로 과장급 대우를 받는 거예요. 5년이 지나면 저도 70대인데 그 사이 전기기사나 기계설비유지관리자 자격증을 따야 할 것 같은데 아직 고민 중입니다. 이 일을 하다가 주택관리사 자격증을 따서 아파트 소장으로 가는 사람들도 있어요. 전기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면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합니다.”
100세 시대에 정년 이후 일할 수 있는 기술 전문직이 점점 우대받고 있다. 특히 미래 전망이 밝은 기술 전문직 중 하나가 바로 전기 분야라고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전기기능사는 자격 제한이 없어 중장년이 은퇴 후 재취업으로 도전하기 좋은 직업이다. 실제로 2021년 국가기술자격통계연보에 따르면 전기기능사 자격증은 50대 이상 남성이 많이 취득한 국가기술자격증 4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전기기능사는 전기에 필요한 장비 및 공구를 사용해 회전기·정지기·제어장치 또는 빌딩·공장·주택 및 전력시설물의 전선케이블, 전기기계 및 기구를 설치, 보수, 검사, 시험 및 관리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전기기능사는 전기 분야 기술사, 전기기능장, 전기기사, 전기산업기사가 되기 위한 첫 단계이다. 비전공자거나 경력이 없어도 누구나 자격증 시험 응시가 가능하다. 그러나 전기기사나 전기산업기사는 시설 분야의 경력이 없거나 관련 학과를 나오지 않았다면 바로 자격증을 취득할 수 없다.
전기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시설·전기 관련 분야에서 1년 이상 근무해야 전기산업기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전기기사는 전기산업기사 자격증 취득 후 시설·전기 분야에서 1년 이상 근무해야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제2의 직업으로 전기 관련 일을 하고 싶은 중장년들은 먼저 전기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 더불어 아파트 및 빌딩에서는 중장년 전기기능사 채용을 선호하는 분위기로 전망이 밝다.
전기기능사 중장년에 좋은 이유
전기기능사는 실질적으로 현장에서 인정받는 자격증은 아니다. 전기 관련 업계에 처음 발을 디디는 사람이 따는 자격증이라고 할 수 있다. 자격증이 없어도 건축 현장 등 일할 수 있는 곳이 있긴 하지만 전기공사 업체들도 정직원을 뽑을 때는 최소 전기기능사 이상을 요구한다.
즉 전기기능사 자격증은 전기 관련 경력은 없지만 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격증이다. 더불어 전기산업기사나 전기기사 응시 자격을 갖추는 기본이 되기 때문에 자격증을 취득하면 정년이 더욱 보장된다.
전기기능사 자격을 갖게 되면 아파트나 빌딩의 전기 안전관리원이나 전기공사 시공업체, 전기기기 생산업체 등 다양한 곳으로 진출이 가능하다. 특히 중장년층은 아파트 시설관리 분야 중 하나인 기전직(기계+전기)으로 많이 진출하는 추세다.
기전직은 보통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격일제로 근무한다. 한 달에 15일 정도 일하는 셈으로, 처음 시작할 때 평균적으로 월 250만 원을 벌 수 있다. 경비 관련 업무와 비교해 노동 강도가 높지 않고 보수가 훨씬 좋은 편이다. 더욱이 주민들의 갑질 문제에서도 보다 자유롭기 때문에 스트레스받을 일이 적다.
특히 전기안전관리자로 선임되면 70대까지 일할 수 있다. 전기 설비 용량이 1000kW 이상인 건물이나 산업 현장에는 ‘반드시’ 전기안전관리자를 두어야 한다. 이를 선임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법적으로 전기기능사는 선임이 될 수 없고, 상위 등급인 전기산업기사부터 가능하다. 그러므로 전기기능사 자격증 취득 후 일을 하면서 공부를 병행해 전기산업기사 자격증을 취득하도록 하자. 또한 주택관리사, 소방시설관리사 자격증도 취득하면 몸값이 더욱 뛰고, 일할 수 있는 선택의 폭 또한 넓어진다.
전기기능사 자격증 취득법
전기기능사 자격증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시행하는 국가공인자격증이다. 시험은 필기와 실기시험으로 나눠져 있다. 필기시험에 합격한 자에 한해 실기시험 응시가 가능하다. 필기와 실기시험 모두 100점 만점에 60점을 넘겨야 하고, 각각 1년에 네 번 시험을 볼 수 있다.
필기시험은 전기이론, 전기기기, 전기설비 세 과목이다. 필기시험 합격률은 평균 30%대로 경력이 없거나 문과 전공자라면 시험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까다로운 수학 계산 문제가 1/3 정도 있기 때문에 어려움을 토로하는 수험생이 많다.
실기시험은 약 5시간 동안 전기설비 작업을 평가한다. 필기시험은 독학으로도 가능하지만, 실기시험은 경험이 없는 사람은 전문학원에서 수업을 듣는 것을 추천한다.
요즘은 자격증 취득에 도전하는 여성, 중장년층이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여성들은 배경지식이 없는 경우가 많지만 한번 배우면 잘 따라 하고 합격률이 높다고 한다. 중장년층은 노안 때문에 작업을 해야 하는 부분이 잘 안 보이거나 손이 느리다는 단점이 있다. 이에 올바른 학습과 철저한 준비가 더욱 요구된다.
중장년 위한 배움터 활짝
가장 쉽고 보편적으로 자격증을 취득하는 방법은 자격 취득 학원이나 온라인 강의 등 교육기관을 찾는 것이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내일배움카드를 활용하면 저렴하게 자격증 취득이 가능하다.
특히 중장년에게는 고용노동부 산하의 국책 특수대학인 한국폴리텍대학을 추천한다. 남인천캠퍼스에는 신중년특화과정 스마트전기과가 있다. 만 40세 이상의 재취업을 원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며 교육비, 식비, 기숙사비까지 전액 국비로 운영된다. 1년에 두 번, 각각 25명의 신입생을 모집한다.
전공 이론 수업은 물론 실무 양성 교육도 진행한다. 전공 실무인 기초전기에서부터 전기설비, 시퀀스제어 실무 교육을 받으며, 전기기능사 실기시험 준비와 수배전설비 실무 교육도 받을 수 있다.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무료 직업훈련 교육을 실시하는 서울남부기술교육원에도 전기학과가 있다. 전기 관련 자격증뿐만 아니라 승강기기능사, 공사산업기사 자격증도 취득할 수 있다. 실제로 전기학과는 2년 연속 서울남부기술교육원 우수 취업학과로 선정되면서 높은 취업률을 자랑했다.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은 전기 방화재 분야 전문가 임장호 아이캡코리아 대표 등 3명을 올해 1~3월 ‘이달의 기능한국인’으로 선정했다. 지난 29일 세종청사에서 시상식을 열고 이들에게 고용노동부장관 증서를 수여했다.
‘이달의 기능한국인’은 기술인의 자긍심을 높이고 숙련기술인이 인정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고용노동부와 산업인력공단이 2006년 8월부터 매월 한 명 씩 선정(2022년 3월 기준 181명 선정)하고 있으며 직업계 학교 등을 졸업하고 산업 현장에서 10년 이상 경력이 있는 사람 가운데 사회적으로 성공한 숙련기술인이 대상이다.
1월 ‘이달의 기능한국인’ 아이캡코리아 임장호 대표
임장호 대표는 전기 절연재와 방화 자재 국산화에 성공한 방화재 분야 전문가이다.
임 대표는 방화재 설치 공사현장에서의 방화재 시공 경험을 바탕으로 2000년 회사를 창업하고 각종 공사현장의 방화재 시공을 시작했다.
전기공사 현장에서 꼭 필요한 자재이자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이 전기 절연재인데 그 중 온도에 따라 색이 변해 과부화 등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일본산 절연튜브를 발견하고 국내로 들여와 현장에 공급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전기설비에 국제규격(IEC publication)을 적용하게 되면서 일본규격 제품이 현장에 맞지 않게 되어 절연튜브의 국산화에 도전했고 일본제품의 단점을 보완해 온도 변화는 물론 커넥터 연결 상태까지 알 수 있는 아이캡(EYECAP)을 개발했다.
임 대표가 2017년 기존 PVC에서 실리콘으로 소재를 바꾸면서 세계 유일 친환경 절연튜브로 업그레이드한 새로운 아이캡은 온도 변화의 이력 확인 기능을 더해 화재 예방의 효과도 높였으며 2021년에 한국산업표준으로 지정 받았다.
임 대표는 또한 국내 최초 실리콘 내화충전재를 개발해 글로벌 화재 인증으로 통용되는 미국의 ‘불연.난연성 보장 인증(FM-APPROVED)’을 획득했다.
임 대표는 “현장 일용직에서 지금까지 책임감으로 걸어온 시간이라 뒤를 돌아보기보다는 앞으로 나아가기가 바빴다”며 “지나온 내 시간들이 기술자로 살아왔다는 인정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더불어 “기능한국인으로서 선정돼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 이제 그 무게감으로 우리 기술을 세계로 알리는 일에 더욱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2월 ‘이달의 기능한국인’ 청파이엠티 김진선 대표
김진선 대표는 전자계측기 개발 기술을 바탕으로 공업교육 장비를 개발해 교육 현장에 공급하고 있는 전자 계측기술 전문가다.
공업고등학교 전기과를 졸업한 후 계측기 기술 기반의 교육 장비를 제조, 공급하는 ㈜이디엔지니어링에 근무하면서 전자 계측 기술을 배웠다.
기술에 대한 배움이 필요했던 김 대표는 기술 개발은 물론, A/S와 영업 등 회사의 전 부서에서 근무하며 기술이 적용되는 전 분야를 배웠고, 회사를 다니며 동서울 대학교에 입학해 일과 공부를 병행했다.
1995년 ㈜청파이엠티를 창업한 김 대표는 연구소와 대학이 주문하는 교육 관련 연구 장비를 개발했으며 주문자 맞춤형 생산으로 모든 주문이 기술 개발로 이어졌고, 그가 개발한 연구 장비에 대한 교육 현장의 만족도도 높았다.
전자안전 계측기인 디지털 다기능 계측기를 개발해 한국전기안전공사의 업무용으로 채택되면서 기술력을 인정받았으며 나노 방사 시스템 개발 등으로 대학과 연구소에 기술력 있는 기업으로 이름이 알려지면서 본격적으로 기술 교육 장비 개발을 시작했다.
김 대표는 세계 최초로 태양광.풍력.연료전지 하이브리드 실습 교육 장비를 개발했고, 다양한 공학 교육 콘텐츠를 탑재한 공학 교육 플랫폼(ARes)을 개발해 교육부총리상을 받았다.
또한 각 분야 전문 교수진과 협업하여 개론서, 교수용 지도서, 학습자용 교재를 개발해 교육 장비와 함께 제공함으로써 교육 현장에서 새로운 기술에 대한 발 빠른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지원하고 있다.
김 대표는“학교 현장이 빠른 기술 변화에 대응함으로써 학생들이 사회에 나와 더 나은 기술을 개발하는 주인공이 되어주기를 바란다”면서 “기능한국인으로, 다음 세대를 위한 환경친화적인 디지털 기술 개발에 더욱 매진하겠다”라고 말했다.
3월 ‘이달의 기능한국인’ 파인디앤씨 김종찬 대표
김종찬 대표는 부산기계공업고등학교에서 기계 조립과 금형을 전공하고 자동차 부품 회사에서 금형 기술을 익힌 금형 분야 전문가이다.
여러 회사에서 금형 기술 전문가로 일하면서 금형 기술력과 전 공정에 대한 분석력을 키운 김 대표는 2018년 옥외피난계단 시스템을 개발해 2020년 지석영상, 2021년 대한민국안전기술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또한 유기발광다이오드(QD OLED) 부분에 독자적인 금형 기술을 개발해 디스플레이 업체에서 생산하는 TV모듈의 새로운 도약을 돕고 있다.
김 대표는 고급 기술인 금형은 배우기가 어려워 전문 기술인 양성이 중요한 분야라고 강조했다. 이론과 경험을 모두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보다 체계적인 기술 지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기능한국인 선정이 제가 걸어온 길에 대한 인정이자 금형 분야에 더 많은 후배들을 길러내라는 의미”라 생각한다며“기업 현장에서 기술인들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계속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안경덕 장관은 “기능한국인들은 오랫동안 쌓아온 기술력으로 우리나라의 미래를 책임지고 있는 분들이며, 능력중심사회를 이끄는 선도자”라면서 “자신들이 가진 기술과 노하우를 후배들과 우리 사회에 나누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앞으로도 우수한 숙련기술자를 발굴하고 지원하기 위해 정책적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귀농 생활을 근사한 쪽으로 끌어가기 쉽지 않다. 물이야 고수라서 거침없이 순행하지만, 그래 물을 스승으로 삼아보지만, 정작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치르기 십상인 게 귀농이다. 생각보다 더 만만치 않고, 예상보다 더 까다롭다. 기대처럼 낭만적이지도 않으며, 계획대로 수익이 발생하지도 않는다. 한마디로 폭풍 속의 질주다. 광주광역시에서 알아주는 이가 많은 ‘여장부’로 살았던 박선주(50, ‘들꽃다물농장’ 대표)의 귀농 경력은 올해로 6년 차. 그는 비바람 속을 ‘미친 듯이’ 내달렸다. 그가 믿은 건 자신의 야무진 근성 하나였으며, 그걸 아낌없이 꺼내 썼던 것 같다. 덕분에 나가떨어지기는커녕 여하튼 앞으로 나아가는 성과를 거두었다.
산을 무척 좋아하는 버릇이 있는 사람은 마침내 도시를 떠나 산에서 살기를 꿈꾼다. 박선주가 그랬다. 산 아니고 다른 데서 살까 보냐! 동갑내기 남편 고광민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그렇게 산촌 귀농을 염두에 두고 살던 중에 절호의 찬스를 포착했다. 부부의 건강에 상당히 심각한 이상이 생겼던 거다. 옳다구나! 이제 지리산으로 가자!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귀농에 시동을 걸었고, 지체 없이 일을 서둘러 드디어 전북 남원시 운봉읍의 산자락에 살게 됐다.
“지리산 근처에 경치 좋은 터를 잡고 살며 부부의 건강을 되살리고 싶었다. 지리산을 수시로 오르내리고, 산나물들을 가꿔 먹고, 정직한 노동으로 땀 흘리고, 그러면 까짓것 뭐 건강을 회복할 수 있겠지. 그런 생각이었다. 하지만 막상 귀농을 하고 보니 뭐 하나 쉬운 게 없더라. 펑펑 눈물을 쏟은 날이 많았다. 어라, 이게 왜 이런 거야? 이러자고 내가 귀농했나? 광주로 돌아가야 하는 거 아냐? 귀농을 후회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지리산은 자주 올랐고?
“그토록 좋아하는 지리산이지만 일에 치어 거의 올라가지 못했다. 2019년 내 생일날 천왕봉을 한 번 올랐을 뿐이니까.(웃음)”
박선주는 야트막한 야산 하나를 통째로 사들여 농장으로 가꾸었다. 2만 6000평에 달하는 너른 규모다. 허리 휘어질 신역이 실로 자심할 걸 짐작할 만하다.
건강은 좋아졌나? 때로 위중한 사람도 살리는 게 산인데.
“좋아지는 것 같더니만 더 나빠지더라고.(웃음) 남편은 허리디스크에 시달렸고, 나는 뇌경색으로 쓰러지기도 했다. 이게 다 스트레스 탓인 것 같다. 농사일 자체는 어렵지 않다. 몸이 아프더라도 작물이 성장하는 걸 바라볼 때면 행복하니까. 문제는 역시 스트레스의 강도다. 도시에서보다 과중한 스트레스와 상처를 받으며 살았다.”
욕심을 줄이면 스트레스 관리가 좀 쉬워진다고 한다. 과중한 스트레스의 원인이 무엇일까? 과욕? 외부의 횡포?
“스트레스 유발인자가 한둘이 아니다. 난 욕심 많은 여자는 아니다. 기질적으로 어지간한 상처엔 끄떡도 하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데 주민과 갈등하면서 오는 상처엔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더라. 예를 하나 들어볼까? 귀농 초기에 지방신문 기자의 고발로 곤욕을 치렀다. 우리가 백두대간을 훼손했다는 죄목이었다. 이 가당찮은 사건은 무혐의로 결론이 났지만 상처가 컸다. 무섭기도 했다. 외지인을 배척하는 지역 일각의 풍토를 여실히 깨달은 것이다.”
지역에 귀농인이 등장하면 주민들은 무대에 오른 배우를 바라보듯 주시하기 마련이다. 이 무대에서 호감을 사기 위해서는 일단 자세를 낮추는 게 현명하다고들 한다.
“원주민들과 어울리기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하지 않았으나 돌아오는 대가는 정당하지 않았다. 나는 귀농 초기부터 친목과 공동 이익을 도모할 수 있는 갖가지 단체에서 열심히 뛰었다. 리더로도 활동했다. 지역민들과 우호적인 관계 맺기에 성공한 사례라는 얘기도 자주 들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탱크처럼 과감하게 밀고 나가다
박선주 부부는 광주에서 그들의 전공인 기계설비업을 지속해 기반을 잡았다. 남편에 이어 그 역시 ‘기계가공 기능장’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여성 3호’ 기능장을 받았다. 아마도 뭐 하나에 꽂히면 들입다 파고들어 끝을 보는 성격의 소유자일 게다. 두둑한 배짱을 장기처럼 달고 사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자산을 정리해 만든 13억 원쯤의 자금을 임야 구입과 토목공사에 썼다. 그리고 ‘탱크처럼 매사 과감하게’ 밀고 나갔단다. 그 저돌적인 행진으로 ‘성공한 강소농’이라는 평을 듣기에 이르렀던 것.
그러나 원주민과의 관계에선 한숨이 폭폭 터져 나오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광주로 달아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힐 지경으로 겪은 애환이 많았다. 세태란 원래 어딜 가나 사특한 것. 저기는 안 그런데 여기만 그럴 리야 있겠나? 저기는 낙원이고 여기는 지옥일 리 있겠나? 그저 내가 처신하기 나름이거니, 그리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박선주가 귀농으로 경험한 세태는 얄궂다.
“귀농하는 사람들은 제2의 삶을 위해 도시에서 찌들었던 마음을 미리 내려놓고 온다. 대부분 순수한 마음으로 농촌의 정과 인심에 녹아들고 싶다는 의도를 가지고 귀농한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지역 현실은 차가웠다. 거의 모든 게 토박이들 중심으로 돌아가더라.”
토박이 그룹이 먹이사슬의 상위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해 은연중에 발동하는 텃세. 이건 보수적인 농촌 지역에 흔히 고착된 폐습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그들은 지역사회를 위한답시고 단체에 슬쩍 발을 담근 채 영악하게 혜택만 찾아 누린다. 이기적이며 순수하지 않다. 귀농인에겐 좋은 정보나 마땅한 권한조차 공정하게 배분되지 않는다.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남원 사람이 될 수 없겠구나! 결론이 그렇게 나더라고.”
대안은 무엇일까?
“물론 토박이들이 다 그런 건 아니다. 좋은 이들도 많으니까. 그들의 우정에 힘을 얻으니까. 그러나 별수 없다. 발을 빼는 수밖에. 이젠 마음의 문을 닫았다. 이런 얘기를 길게 하는 건 귀농하려는 이들이 참고하길 바라서다. 성급하게 귀농지를 정했다간 낭패를 볼 수 있는 거다. 지역의 인심과 풍토부터 미리 파악하는 게 그 무엇보다 앞서 중요하다.”
부부가 부업에 나서기도
겨울바람이 맵차다. 바람에 눕는 마른 풀들. 잠들어 고즈넉한 나무들. 외진 산기슭의 외딴 거처에 감도는 적막감. 농장의 겨울 풍경은 잠잠해 고독해 보인다. 그러나 수려한 산간이다. 산 아래에서 정상까지 나선형으로 낸 길에선 과도한 인위가 느껴지지만 생산의 기지로 변환한 노고는 더 큰 실감으로 다가온다. 이 산에 사는 텃새들은 알까? 박선주 부부가 야산 개간에 과연 몇 톤 분량의 비지땀을 쏟았는지.
산에 심은 주 작목은 호두나무다. 어린 것들을 심었으니 여러 해가 더 흘러야 수확을 볼 수 있다. 박선주는 당장 생산이 가능한 작목들도 재배했다. 옥수수, 감자, 고구마 따위를. 생산량은 많지 않았지만 용케도 잘 팔려 농사에 재미를 붙이게 하는 촉매가 됐다. 현재까지 각별히 공을 들이는 건 비타민 C 함량이 높은 것으로 유명한 블랙커런트. 즙, 잼, 곤약젤리 등으로 가공해 유통한다. 이 농장의 모든 작물은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된다. 해섭(HACCP,식품위생안전시스템) 인증도 받았다. 경험을 살리고 식견을 돋워 일궈낸 성과다. 농업 공부도 그 기반이 됐다.
“귀농 이후 건축법이나 산지관리법 등을 배워 숙지했다. 전국 곳곳의 수많은 농업 교육기관을 찾아다니며 이론과 기술도 습득했다.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건, 무상 교육의 경우 대형 기관이나 단체에서 한결 실속 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수익 상황은 어떤가?
“2018년 총매출은 2400만 원이었다. 2019년엔 6800만 원, 2020년엔 9800만 원이었고, 2021년엔 1억 원을 넘어섰다. 순수익은 매출의 60% 정도다. 연도별 증가율로 보면 고속 성장이다. 그러나 손익분기점 도달에는 한참 미달한 상태다. 워낙 많은 자금을 초기에 쏟아부었기 때문이지. 게다가 지속적인 재투자가 필연이라 버겁다. 그나마 좀 안도하는 건, 처음엔 지니고 온 자금을 털어 투자했지만 지금은 소액이나마 돈을 벌어 투입한다는 점이다.”
귀농인들이 흔히 하는 얘기가 있다. 농사로 먹고살기 쉽지 않다는 거다.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먹고살기 어려운 정도가 아니다. 물정 모르고 덤볐다가는 파탄 나기 딱 좋은 게 농사다. 문제는 판로다. 우리는 공격적인 SNS 마케팅을 구사해 그나마 수입을 거둔다. 그러나 농사일에 정신없이 바빠 SNS에 충실을 기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래저래 상황이 열악해 때로 눈물 나는 것이지.(웃음)”
어떤 방법으로 현실을 타개하지? 무슨 수가 있기는 있나? 귀농의 명암이야 이미 또렷이 인식했을 텐데.
“멀리 보고 긴 호흡을 하며 달려간다. 미래적 비전은 사회적 농업이나 치유 농업에 두고 있다. 당장 급박한 자금 조달을 위해서는 농외소득을 벌어들인다. 우리 부부가 농사만 짓는 건 아니라는 얘기지.”
농사 외에 어떤 일을 하지?
“내가 알바를 뛰곤 했다. 광주시에 가서 전공인 기계설비 분야의 수업을 해주고 보수를 받는 식으로. 남편은 더 많은 일을 한다. 오늘도 그는 인근 양계장에서 병아리 입출 일을 도와주고 일당을 받아왔다. 이런 식의 부업으로 부부가 매월 벌어들이는 수입이 200만 원 정도다. 농업소득에만 의존하는 귀농은 낡은 방식이다.”
귀농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다각도로 모색하며 멀리 넓게 보라! 박선주가 털어놓는 언설의 행간에 비친 메시지가 그렇다. 이런 그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다시 귀농을 한다면? 답은 이렇다.
“돈 들이지 않고 귀농 생활을 시작하겠다. 300평 정도의 농토를 임대해 농막에 살며 농사 경험부터 쌓을 것이다. 농외소득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것도 필수고. 자금을 왕창 쏟아붓는 귀농은 미련한 귀농이다.”
박선주 씨가 주는 귀농 Tip
•승률 높은 농업을 원하면 지역 특산물을 작목으로 선택하자. 판로 확보가 용이하고, 지자체의 지원을 받을 수 있어 유리하다.
•대규모 농업도 잘만 하면 승산이 있다. 지역 특산물을 규모화할 경우엔 승률이 더 높아진다.
•농촌에 대한 낭만적인 환상은 깨끗이 버려라.
•농업정책자금을 함부로 받지 말자. 자립 의지가 수반되지 않은 지원금 운용은 빚만 늘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농사만 믿지 말고 농외소득 획득 방법도 적극적으로 모색하자. 찾으면 일은 얼마든지 있다.
정직한 길을 걸어온 사람은 진실하고 솔직하다. 소박하고 따뜻하다. 무엇보다 겸손하다. 우선 내 진로를 모색하고, 그 도상에서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사회로 시선을 확장하며 꾸준히 쉼 없이 걸음을 뗀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성실하고, 사람답고, 정의롭다고 말한다. 고영회는 그런 사람이다. 그는 보통 사람들은 하나도 갖기 어려운 전문 자격증을 셋이나 갖고 있다. 변리사이자 이공계의 꽃이라 불리는 2개 기술 분야의 전문가다. 시쳇말로 꽃길만 걸어온 것일까. 함께 그가 걸어온 길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서울대 합격한 알밤, 몸 팔러 중동으로
“보리밭에서 김을 매고 있다가 서울대 합격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 고향이 진주 동편의 진양군 금산면 시골인데 서울에 사시던 6촌 형님이 전화 연락을 주셨고, 그 전화를 받은 동네 사람이 헐레벌떡 달려와 알려주신 거죠. 학교 다니는 틈틈이 농사를 돕고 지게를 지고 땔감을 구하러 다녀야 했던 곤궁한 시절이었죠. 중학교 1학년 때 폐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밀린 병원비, 그 후 형제들 학비, 생활고로 인한 이런저런 빚에 눌려 집안 형편이 상당히 어려웠지요. 아버지의 폐암은 젊은 시절 7, 8년간 일본에서 광부 생활을 하셨던 게 원인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빈곤의 대물림을 끊어보려고 돈 벌러 갔던 것이 오히려 병환을 불러왔으니 가난은 더 험상궂은 얼굴로 우리 가족을 덮쳤던 거지요.”
어릴 적 그의 별명은 알밤. 머리가 크고 영특해서 그렇게 불렸다. “알밤, 이리 와봐라. 네가 공부를 열심히 하면 아버지가 어떻게 해서든 대학까지 보내주마.”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추억이 받아든 합격 통지서에 여울졌다.
1977년, 서울대 자연계열로 들어간 후 건축학과를 택했다. 학비와 생활비 마련이라는 생존의 꼬리표가 늘 붙어 다녔던 고달픈 대학 시절이었다. 과외 아르바이트로 버텨나갔지만 간혹 끼니를 거를 때도 있었다. 건축과를 나오면 100% 취업이 되던 때라 국내 경기 호재와 함께 중동 건설 붐을 타보자 결심했다. 1982년, 미륭건설(현 동부건설)을 통해 공사 현장 기사로 파견됐다.
“그 당시 중동에 가는 걸 ‘몸 팔러 간다’고 했어요. 국내에서 30만 원 월급쟁이가 거기 가면 80만 원 이상 받을 수 있었어요. 2.5배나 많았던 거죠.”
그는 4남 2녀 중 넷째 아들이지만 선친이 집안 살리려고 일본 광산에 돈 벌러 갔듯 그도 사우디아라비아로 향했다. 아버지 돌아가신 후 빚에 눌려 고 씨 가족이 야반도주할 거라는 소문까지 동네에 돌던 때였다. 바람이 불었다 하면 모래가 비처럼 내리고 모래밭에 달걀을 묻으면 익어서 나오던, 말 그대로 열사의 땅이었다. 그렇게 3년 3개월을 모래 섞인 밥을 먹으며 돈을 벌어 집안의 빚을 얼추 갚고 나니 20대가 저물고 있었다. 중동의 모래 열기처럼 식을 줄 몰랐던 건축 경기가 1980년대 중후반부터 가라앉기 시작했다.
“경기 좋을 때는 고용했다가 일이 없으면 그냥 잘라버리거나 가차 없이 책상을 빼버리는 현실을 보면서 제 미래도 암울하게 느껴졌습니다. 말로는 기술 강국을 지향한다 하면서도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대우와 처우는 실망스러웠지요.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고 그저 소모품 다루듯 했으니까요.”
기술사란 별을 두 개나 땄으나
그에게 도전은 일상이다. 길이 아니다 싶은데도 뭉개고 있을 이유가 없다. 미래를 다지기 위해 엔지니어로 전문성을 갖추기로 마음을 다잡고 퇴근 후 독서실로 직행해 자정까지 공부했다. 말 그대로 주경야독의 노력으로 1991년 기술계의 최고봉이라 할 기술사 자격증을 땄다. 건축시공 기술사와 건축기계설비 기술사, 기술 분야 최고의 타이틀을 두 개나 갖게 되었다. 합격률은 5% 미만, 이공계에서 기술사는 그만큼 영예로운 이름이다. 그렇게 엔지니어로서 자긍심을 갖는가 싶었으나 제도적 구멍과 허점은 여전했고 깊숙이 들어갈수록 실망스러웠다.
이렇게 하늘의 별을 두 개나 땄지만 제대로 빛이 나지 않은 대신 그의 근성이 빛을 발했다. 모순과 불합리에 정면으로 맞서는 그의 근성 말이다. 단합된 목소리와 응집된 힘을 내기 위해 2002년 대한기술사회를 발족, 초대 회장이 되어 기술사 제도 개선 운동을 펼쳤다. 문제가 있는데도 덮어두면 구성원들이 고통을 받고, 그 신음에 무심하면 사회 전체가 병들기 마련이니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기술사에 대한 처우가 제대로 되어 있었다면 변리사가 되지 않았을 거예요. 기술사의 제 위치 찾기를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다시금 회의가 일면서 이대로 고여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방향 전환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수험생 가장, 37세 늦깎이 변리사로
엔지니어로 소위 잔뼈가 굵어가던 때, 인생을 전환하기엔 늦었다면 늦은 나이라 할 수 있는 30대 중반에 그는 변리사 시험에 도전한다. ‘그간 무수한 시험을 치렀고 따지고 보면 인생 자체가 도전과 통과의 시험 치르기가 아닌가. 최선을 다해보고 안 되면 그때 포기하면 된다. 세상을 살면서 할걸, 하지 말걸 하는 후회는 남기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6개의 눈동자’가 있었다. 여우 같은 아내와 토끼 같은 두 딸을 둔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진로 변경에 대해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려서부터 익숙하게 겪어왔지만 고생 중에 돈 고생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수험생 가장’이 된 후 새삼 절감했다. 기술사 준비할 때와는 또 다른 압박감 탓인지 연거푸 두 번을 낙방했다. 첫 시험에서 1.1점 차로 떨어졌기 때문에 두 번째 시험에서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지만 막상 성적을 받아보니 결과는 더 나빴다. 또 한 번 고배를 마시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지막이란 각오로 세 번째 도전에서는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공부에만 매달리느라 집에 생활비를 가져다주지 못했다.
“설상가상, 하루는 독서실에서 돌아와 보니 네 살 딸애가 피를 쏟고 있는 거예요. 병원에서 진단 내린 ‘특발성 혈소판 감소증’이란 병명조차 무서웠지요. 원인 모를 피를 쏟고, 쏟았다 하면 좀체 멈추질 않는 거예요. 한방 치료를 통해 체질을 완전히 바꾸고 나서야 근 5년간 지속된 병세가 잡혔지요. 아내는 당시 둘째 아이를 가졌던 터라 만삭인 상태에서 큰애를 데리고 병원을 다녔는데 출산을 앞두고는 어쩔 수 없이 시골 어머니께 도움을 청했지요. 그런데 얼마 안 지나 이번엔 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지셨어요. 아내는 둘째를 이집 저집에 맡긴 채 입원 중인 큰아이와 어머니를 간병해야 했고, 저는 퇴근과 동시에 작은애를 찾아 데리고 병원으로 달려갔지요. 심청이 젖동냥하듯 작은애가 고생했지요.”
돌이켜보면 그때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위기였다. 재정적·가정적 위기를 딛고 고진감래하여 1995년 변리사가 된 기쁨은 그래서 더욱 컸다. 그해 응시자는 5000여 명, 이 가운데 30명이 합격했으니 약 150대1의 경쟁을 뚫은 것이다. 그는 1958년생 동갑 응시생과 함께 최고령 합격자로 37세에 늦깎이 변리사가 되었다.
변호사의 변리사 자동 자격 금지 법제화 이루다
변리사 자격 취득 후 성창특허법률사무소를 내고 한숨 돌리나 했더니 기술사 세계에서 보아온 불합리한 관행이 변리사 세계에도 고질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발견했다. 변호사에게 변리사 자격을 자동으로 부여하는 제도가 그중 하나.
이 관행을 뜯어고쳐 법에 명시된 변리사 고유 권한을 되찾고자 그는 37대 대한변리사회 회장(2014~2016년)에 취임했다. 관성적으로 주어지던 변호사의 변리사 자격 자동 취득 금지를 법제화하기 위해 4000여 변리사회 회원의 수장이 되어 임기 2년 동안 총력전을 펼쳤다. 2015년 12월 31일, 회장 임기 만료 2개월을 앞두고 마침내 변리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변호사가 변리사 업무를 병행하기 위해서는 6개월의 실무교육을 받도록 한 것이다. 이후 매년 300~400명이 받던 자동 자격이 30~40명 선으로 줄었으니 법 효율은 90%에 달한 셈이다.
변호사에게 자동으로 주어지던 변리사 자격이 고 회장에 의해 75년 만에 사실상 폐지된 것이다. 변리사회 출범 이래 전례 없던 법 개정이자 고 회장의 승리였다. 그 일이 실제로 성사될 것이라 믿은 사람은 없었다. 4만 회원이 등록된 변호사회는 덩치만 해도 변리사회보다 10배나 크고 국회 상임위, 법사위 등의 80~90%를 변호사가 장악하고 있는 현실에서 자기 집단에 불이익이 되는 법안을 통과시켜줄 성싶냐는 게 상식이었고 또한 지배적 견해였기에.
“저라고 그걸 몰랐겠습니까. 하지만 직접 뛰어들어보니 본질과 이치가 들어옵디다. 입으로만 떠들지 말고 몸으로 뛰어보면 답이 나옵니다. 골리앗을 이기는 다윗이 종종 나오는 게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는 여세를 몰아 연임에 도전했다. 변리사회 회장의 연임 금지 규정이 폐지된 점 또한 도전을 부추겼다. 한 번 더 회장이 되면 변호사의 변리사 자동 자격 금지 제도 법제화에 이어 이번에는 법에 규정된 특허침해소송 대리권을 변호사로부터 오롯이 되찾아올 기회였다.
그런데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불거졌다. 변리사회 회원 중 변리사 자격을 가진 변호사 50여 명이 조직적으로 투표를 한 것이다. (변리사회는 변리사 시험에 합격한 회원, 변호사로서 변리사 업무를 병행하는 회원, 특허청 출신 회원, 이렇게 한 지붕 세 가족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자동 자격 제도 폐지로 불이익을 당하자 대한변호사협회에서 고 회장의 재선을 저지하고 나선 것.
‘눈엣가시이자 미운털 고영회’를 떨어뜨리기 위해 상대 후보를 적극 지지, 상대 후보와의 표 차는 투표한 변호사 수만큼 벌어져 465대415로 고 회장이 낙선했다. 이른바 역선택을 당한 것이다. 이후 시험 출신 젊은 변리사들의 선거 복기로 부정선거 정황이 드러나면서 신임 회장의 탄핵안이 통과되었다. 37대 고영회 회장에 이은 38대 회장이 두 달 만에 해임되어 변리사회 초유의 불명예를 안게 됐다. 사필귀정이었다.
물오른 인생 3막, 다시 쓰는 통합이력서
변리사 업계에 전대미문의 업적을 남기며 20여 년 혼신으로 일했던 변리사에서 최근 그는 기술사 업무로 다시금 방향을 전환했다.
“인생은 돌고 도는 거라더니 싫어서 나갔던 집을 30년 만에 돌아왔다고 할지, 환갑 즈음부터 처음 배운 도둑질인 기술사 업무에 나중 배운 변리사 업무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변리사로서는 경쟁력이 점점 떨어지는 점도 작용했고요.”
현장 경력, 전문 기술사 경력, 법률 문제에 정통한 변리사 경력 등 제각기 핀 꽃이 연륜으로 버무려져 건설 분쟁 해결 전문가로 독보적 지위에 올랐다. 40년 경륜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이력서로 인생 3막을 연 것이다. 속된 말로 변리사로서는 한물갔지만 기술사로서는 한창 물이 오르고 있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곧장 그 길을 가는 사람도 있지만, 돌아간다 싶었던 길을 지금 와서 만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30년 전 일이 다시 본업이 된 저처럼 말이지요. 현실이 고통스럽다 해도 그 고통이 미래의 기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고통 자체도 지나고 보면 경험이란 측면에서 삶을 풍요롭게 하지요. 당장은 죽을 맛 같아도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태어났으니 고생도 해볼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고, 긍정적 마음이 긍정적 결과를 낳는다는 보편적 진리를 믿고 한세상 살아내야지요.”
이런 인생관을 가진 그에게는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조차도 ‘참 좋은 시절’이 보장된 셈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