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생활은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누릴 권리가 있다지만, 노인은 예외다. 성생활은 둘째치고 연애도 하기 쉽지 않다. 우리 사회는 노인을 ‘무욕의 존재’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나랑 연애하고 갈래요? 잘해드릴게”
영화 ‘죽여주는 여자’에서 박카스 아줌마 역할을 맡은 배우 윤여정의 대사다. 고령자 성매매의 대표적인 예가 ‘박카스 아줌마’다. 고령 남성이 많이 모여 있는 공원 등에서 박카스나 커피를 주며 성매매를 제안하는 고령 여성들을 일컫는 말이다. 영화 ‘죽여주는 여자’를 비롯해 KNN 다큐멘터리 ‘노인의 그늘’, 연극 ‘낙원상가’ 등이 이런 현상을 조명하기도 했다. 어째서 노인들은 숨어서 욕구를 해결해야만 하는 걸까.
심리학과 상담학을 전공한 권신란 나다움질문연구소 소장은 용인 성폭력상담소에서 성 상담에 관한 공부를 하던 중 노인의 성생활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갖게 됐다. 이에 ‘노인의 성’이라는 책을 내면서 노인에게도 욕구는 당연하며, 올바른 성 문화 교육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냈다. 그를 만나 노인의 성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봤다.
‘남사스럽다’라지만 욕구는 있다
노인은 성에 대한 욕구가 정말 없을까? 2021년 대한임상노인의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이범석 국립재활원장이 발표한 ‘노인의 건강한 성생활’에 따르면 노인들은 왕성한 성생활을 하고 있었다. 60~64세는 84.6%, 65~69세는 69.4%, 75~79세는 58.4%, 80~84세는 36.8%가 성생활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노인에게 성생활에 관해 물으면 열에 아홉은 “아유 뭘 남사스럽게 그런 걸…”이라 말한다. 사회는 노인을 무욕의 대상으로 보고 노인들 스스로도 성에 대해 말하길 부끄러워하지만, 여전히 그들에게도 욕구는 있다.
문제는 그들이 성에 대해 이야기할 곳이 없다는 것이다. 권신란 소장은 ‘아내가 나를 거부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는 남편들의 하소연을 종종 듣는다. 권 소장은 노인 세대의 성에 관련된 문제가 대부분 성에 대한 올바르지 못한 생각이나 잘못된 지식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사회적 편견과 폐쇄성이 성매매로 이어지고, 성 질환에 노출되는 등 여러 문제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노인 성범죄가 늘어난다는 지적이 이어지면서 과거에는 성폭력 교육이 주로 이뤄졌어요. 그런데 어르신들이 그런 주제를 오히려 불편해하시더라고요. 그게 나중에는 성인지 감수성 교육으로 이어졌는데요. 불과 몇 년 전 강의에 나갔을 때 ‘성인지가 어느 잡지입니까?’라는 질문을 받기도 했어요. 그런데 노인에게 정말 필요한 건 이런 게 아니에요. 아직도 피임 도구가 있는지 모르거나 자위 도구를 사용하면 큰일 나는 줄 아는 분들이 대부분이거든요.”
노인의 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잘못된 성 지식은 노인을 억압하는 기폭제가 된다. 자신은 이제 성적 능력이 없다고 생각해버리거나, 욕구를 자연스럽게 표현하지 못하거나, 성에 관한 생각을 하는 것 자체를 불결하게 여기거나, 강제 금욕으로 스스로를 제약하기도 한다. 노인의 성생활이 더욱 음지로 파고드는 이유다.
슬기로운 노후 성생활
권신란 소장은 성생활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우리 사회는 성을 너무 단편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성에는 ‘섹스’만 있는 것이 아니에요. 삶, 시대, 문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죠. 예를 들어 요즘 청소년들은 AI와도 섹스가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노인들은 이런 개념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과거 우리는 성을 ‘생산’의 개념으로만 봤어요. 노인들은 그런 개념에 익숙한 세대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성 역할조차 바뀌잖아요? 그러니 노인을 대상으로 한 성 ‘문화’ 교육이 필요한 거예요.”
노년기에 성생활을 잘 이어가려면 무엇보다 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삽입을 가정하면 노년기의 성관계는 남성의 발기가 전제되어야 한다. 나이 들수록 발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더 많은 애무와 자극이 필요하다. 여성은 갱년기를 겪으면서 질 건조증, 성교 시 통증, 성 욕구 감소 등으로 성생활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남녀 모두 노년기에 성행위를 하는 데 불편한 지점이 생긴다는 것. 권 소장은 그럴수록 남성의 경우 남성 클리닉에 가는 걸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하고, 여성도 불편한 점을 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성을 더 넓은 관점으로 봐야 한다는 조언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성에는 ‘삽입’만 있는 게 아니다. 주고받는 대화, 뽀뽀 등의 스킨십도 성생활에 해당한다. 결국 성생활이란 ‘온기’를 나누는 행위라는 걸 알아야 한다는 의미다. 남녀 모두 신체 접촉만으로도 성적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권신란 소장은 노인을 위한 성교육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요즘에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교육이 무척 잘 되어 있다. 학교로 찾아가는 성 문화 버스도 있고, 청소년성문화센터도 있다. 자궁 체험, 피임용품, 성인용품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고, 도구들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배운다. 성병 교육도 필수다. 하지만 노인들은 이런 성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
“어르신들은 윤활제가 있는지도 모르세요. 알아도 사용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아요. 그러니 자위 도구는 어떻겠어요. 어떤 자위 도구가 있는지도 모를뿐더러, 사용하면 몸 어딘가에 문제가 생길 거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성인용품점을 가본 노인 비율이 얼마나 될까요? 혼자 가기 부끄러워 부부가 함께 방문했다가, 외국어투성이인 기구들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몰라 결국 콘돔만 사왔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대학교 성 문화 축제에서 나와 상대의 성기를 직접 만들어보고 콘돔을 사용해보는 행사를 했는데요. 편의점만 가도 콘돔을 살 수 있을 정도로 대중화된 피임 도구임에도 사용법을 모르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그러니 어르신들은 어떻겠어요? 피임 도구나 성인용품뿐만이 아니에요. 월경을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월경대 사용법을 알려주듯 노인 완경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지만, 그런 교육은 이뤄지지 않고 있거든요. 성과 관련된 교육 기회를 다양하게 마련해주면 어떨까 싶어요. 아마 어르신들은 ‘아이고 민망해라’ 하시겠지만, 막상 해보면 즐겁게 체험하고 ‘좋았다’는 피드백을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청소년처럼 복지관, 노인병원, 경로당, 요양원 등 노인이 많은 곳에 찾아가는 성 문화 상담소나 성 문화 버스가 생긴다면 성에 대한 노인들의 이해도도 높아질 것이다. 또한 성병 교육도 필요하다. 보건복지부 ‘노인 성생활 실태조사’(2012)에 따르면 노인의 성병 감염 빈도는 36.9%로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성병에 걸리더라도 대부분 이를 숨기거나 병원에 가지 않는다. 권 소장은 “감기에 걸리면 병원에 가듯, 성병에 걸리면 적극적으로 치료하고 파트너에게 반드시 알려야 한다”고 당부했다.
권신란 소장은 더 많은 노인이 성에 관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길 바란다고 했다. 같은 세대의 노인이 멘토와 멘티 관계가 되어 고민을 들어줄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수원에 있는 한 복지관에서는 노인분이 성 상담을 해주고 계시더라고요. 복지관 노인분들이 동아리를 만들어서 돌아가며 상담을 해주신대요. 무척 인상적이었죠. 노인의 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 많아져야 안전하고 건강한 노후 성생활도 가능해지지 않을까요?”
사회와의 관계를 놓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권 소장은 노인의 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몇 가지 제안을 했다. 먼저 노인 대상 성매매는 매년 증가하는 독거노인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만큼, 이성을 만날 기회를 꾸준히 만들어야 한다는 조언이다. 최근에는 노인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는 실버 카페, 콜라텍, 효도 미팅, 하루 커플 여행, 커플 취미 교실 등 다양한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또한 여가 생활을 즐겨야 한다. 여가 활동은 노년기의 생활 만족도와 삶의 질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 그런 맥락에서 자원봉사나 일을 하는 것도 좋다. 자원봉사는 은퇴 후 삶에서 적극적인 사회참여 계기가 된다. 통계청의 ‘이혼통계자료’에 따르면 노년기 이혼 사유 1위는 경제력 상실이었다. 따라서 일자리를 통해 건강과 노후 경제를 함께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친구를 사귀는 것도 필요하다. 무료함과 외로움을 달래는 데 효과적이며, 성적 욕구를 해결하는 데 들어갈 에너지를 대화로 풀면서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부부라면 성에 대한 대화를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를 배려하고 격려하는 대화가 부부 사이 성관계에도 도움이 된다. 사별이나 이혼 등으로 배우자가 없는 사람이라면 황혼 재혼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노인들은 여전히 성에 관심이 많고 성생활을 하고 싶어 하지만,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으면 사실 시야에 들어오지 않아요. 복지관 등에서는 노인 성 문화를 바꿔가고자 하는 시도가 꾸준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드러나지 않은 문제를 해결하는 건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입니다. 노인의 성을 위해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는 선진국처럼, 우리 사회도 노인의 성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사단법인 대한노인회가 산하 시니어 정보화사업단과 함께 8일 경기 용인 지역 9곳에서 대한노인회 권고 표준모델이 담긴 스마트 경로당의 문을 열었다. 대한노인회의 주도 아래, 6만8000개 경로당을 하나의 표준모델로 통합·공유하는 ESG 플랫폼 구축사업인 ‘시니어 정보화사업’의 일환이다.
해당 사업은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경로당 간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고, 노인들을 플랫폼 중심으로 연결해 보다 나은 환경에서 노후를 보내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사업단은 2021년부터 정부와 일부 지자체 중심으로 구축된 스마트 경로당들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여왔다. 사업단은 실사용자인 경로당 회원들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실시해 시범 시설을 마련했다.
이날 문을 연 스마트 경로당은 △경기 용인시 수지구 3곳(수지 복지센터, 성복역 롯데캐슬 골드타운아파트, 신봉마을 LG자이1차아파트) △기흥구 3곳(기흥 노인복지관, 신동백 롯데캐슬에코1단지, 탑실마을 대주피오레아파트1단지) △처인구 3곳(e편한세상 용인한숲시티5단지, 사암리 경로당, 포곡읍 두계로)로 총 9곳이다.
경로당에는 전국의 경로당들을 하나로 묶을 전국 네트워크 기반의 키오스크가 설치됐다. 전국 경로당뿐 아니라 서울 용산구 대한노인회 중앙회 1층에도 운영된다. 키오스크에는 양방향 소통이 가능한 화상시스템이 탑재돼 있다. 어르신을 위한 뉴스, 맞춤형 건강정보, 정부와 지자체의 복지정책 등도 실시간 공급한다. 3D 뎁스 카메라를 활용한 동작인식 기술로 어르신들의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곧바로 인지 능력 개선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블록체인과 인공지능(AI) 얼굴인식 기술도 탑재됐다.
사단법인 대한노인회 강희성 부총장은 “코로나를 겪으며 노인 세대가 타인과 교류할 기회가 더욱 줄어든 만큼 해당 사업을 통해 경로당이 어르신들의 사회적 연결 핵심 거점 공간으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의 스마트 경로당 사업이 기관별 각개전투식 추진이 이루어지면서 공공예산 중복지출, 콘텐츠 격차, 불량서비스 납품, 연계 불가 등의 문제점들이 있음을 확인했다”며 “기존 문제들을 보완해 점차 사업을 안정화 하겠다”고 전했다.
최운 스마트경로당 정책위원장은 “대한노인회가 직접·운영 관리하는 시니어 정보화 사업이 순차적으로 자리 잡게 되면 어르신들이 커머스, 콘텐츠, 커뮤니케이션 등 폭넓은 분야의 서비스를 누릴 수 있게 확대될 것”이라며 “노인들의 디지털 접근성을 높여 노후 삶의 질이 향상되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한편, 사업단은 올해 27개 지자체를 시작으로 대한노인회가 권고한 표준안 중심의 스마트 경로당 권고모델을 전국 7만여 경로당으로 점차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표준안이 담긴 모바일 플랫폼도 상반기 중 구축, 300만 회원들에게 배포한다.
“1000만 노인시대,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2024년 새해가 다가오고 있다. 퇴직이나 은퇴를 앞둔 시니어에게 2024년은 인생 2막을 여는 시점으로 더욱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그런 이들을 위한 책 ‘시니어 트렌드 2024’가 출판됐다. 인생 2막의 삶을 새롭게 디자인하고(Re Design), 우선순위를 재조정(Re Priority)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자 한다.
‘시니어 트렌드 2024’의 저자인 최학희는 시니어라이프와 비즈니스를 20년 넘게 연구해온 해당 분야 전문가이다. 시니어라이프비즈니스 대표이자 실버산업전문가포럼 사무총장이기도 하다. 그는 객관적인 트렌드 지표와 함께 37명의 전문가 기고를 통해 초고령사회 위기를 함께 헤쳐나갈 방향을 제시한다.
저자인 최학희는 “사망자가 출생자보다 많고, 상속 분쟁이 이혼소송보다 많아진 세상에서는 트렌드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현학적 표현으로 점철된 명백한 사실(Facts)의 나열보다는 더 나은 시니어 삶을 향한 ‘방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시니어 트렌드 2024’에서는 소음 거리가 되는 트렌드가 아니라, 대안을 찾아보고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하는 ‘방향’을 제시하는 데 초점을 두고자 한다“고 말했다.
책은 ‘글로벌 트렌드, 비즈니스 트렌드, 라이프 스타일’의 세 축을 중심으로 한다. 먼저 ‘글로벌 트렌드’ 관점을 통해 국내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고령화 동향을 알아본다. 예를 들어 노인장기요양보험이나 커뮤니티 케어 등의 제도가 갑작스럽게 등장한 것으로 보이나, 고령 선진국인 일본이나 유럽 등을 벤치마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021년 기준으로 약 35,000달러에 달하는 등 삶의 질이 높아지자, 북유럽 등의 고령 정책에 눈과 귀를 돌리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 됐다.
두번째 ‘비즈니스 트렌드’는 시니어의 삶을 정확히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이다. 매해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서 고령친화산업 제조·서비스업 실태조사 및 분석 보고서를 실시한다. 이에 따르면 전체 시장 규모는 2021년 기준으로 약 72조 원에 달한다. 크게 제조업과 서비스업으로 구분하며, 제조업은 ‘용품, 의약품, 의료기기, 식품, 화장품’을, 서비스업은 ‘요양, 여가, 주거, 급식, 금융’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법과 제도에서 고령친화산업으로 정의한 기준에서 시니어 비즈니스의 현주소를 파악해본다.
세번째 ‘라이프 스타일’ 관점은 시니어의 삶을 제대로 조망해볼 수 있는 접근법이다. 사람의 삶의 조건을 3가지 축으로만 정의한다면, ‘현금 흐름(돈), 건강, 시간’을 들 수 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현금 흐름의 구조는 변한다. 일반적으로 다수의 수입원이 되는 근로소득의 규모는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되며, 노인의 국민연금, 기초연금 등 공공기관에서 개인에게 지급하는 소득인 공적이전소득은 약 26%에 달한다. OECD 평균 공적이전소득 약 57%에는 훨씬 밑도는 수준이지만, 노인의 삶에 있어 근로소득의 비중을 일부 대체하는 소득원이다.
건강에 있어서도 기대수명은 평균 83세인 반면, 건강수명은 73세다. 건강수명은 기대여명에서 질병과 사고 등으로 인해 일찍 죽거나 건강하고 생산적인 삶이 손상된 기간을 빼고 계산한 건강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기간이다. 무엇보다 시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시니어의 삶은 더욱 근원적인 문제에 부딪힌다. 상대적으로 일이 줄어들고, 남은 시간을 여가로 대체하는 것이다. 또한, 이전에 비해 줄어든 이동 동선과 사회관계망에서 고립되지 않도록 하는 과제가 주어진다.
줄어든 현금 흐름과 건강 자산을 가지고, 시간 자산을 증대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움츠러들기 쉽고 외로운 시간으로 채워지기 쉽다. 보다 세밀하게는 ‘개인적 인연, 사회적 인연, 배움, 나눔, 영성, 유산, 평생학습, 디지털 라이프, 정서적 건강, 소통과 공감 등’이 시간 자산을 구축할 영역이다.
저자인 최학희는 “이 책이 퇴직이나 은퇴 후 삶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이웃과 ‘어울리며’ 나아가 ‘자기다움’을 만드는데 단서가 되길 진심으로 소망한다”고 말했다. 국제제론테크놀로지학회 부회장인 박영란 강남대학교 실버산업학과 교수는 추천사를 통해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이 제공하는 융복합적인 콘텐츠가 초고령사회를 맞이하는 개인의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생활은 물론 시니어 비즈니스의 성공을 추구하는 기업의 길잡이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일본에서는 최근 고령자의 고립을 막고,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는 서비스가 주목받고 있다. 단순한 간호 혹은 케어 서비스가 아니다.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마치 손주와 같은 역할을 하는 대학생들이 일상을 돕는 서비스다.
일본의 고령자들은 손주와 소통하며 디지털을 배운다. 소통을 위한 방법으로 직접 만나는 이들이 가장 많기는 하지만 디지털 플랫폼을 이용하는 이들이 꽤 늘었다. 하루메쿠 생활방식 시니어 연구소(ハルメク 生きかた上手研究所)의 '시니어 여성과 손주의 관계에 관한 의식과 실태조사'에 따르면 디지털을 활용한 소통이 늘고 있다.
'직접 만난다'는 응답이 99.2%로 가장 많았지만 '전화'가 77.1%, 'LINE'과 '메일'이 57.5%, 'zoom 등의 온라인 통화'가 52.3%로 이어졌다.(복수응답) 이전 조사와 비교하면 'LINE'과 '메일'은 10.5% 늘었고, '온라인 통화'도 20.5% 증가했다.
손주와 소통하면서 손주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준다는 시니어는 56.4%, 손주에게 배우는 시니어는 42.6%였다. 손주에게 배우는 내용으로는 최근 학교 교육과 지식(34.7%), 게임(30.5%), 애니메이션과 만화(30.5%), 스마트폰이나 PC 사용법(20.9%) 순이었다. 손주로부터 디지털 관련 정보를 배우는 것이다.
그렇다면 손주가 없는 고령자는 어떨까? 손주의 역할을 하는 대학생이 방문해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플랫폼이 있다. 2020년 창업한 이래 큰 관심을 받고 있는 ‘못토메이토’(もっとメイト)다.
손주 세대의 ‘친구 서비스’
베스트 파트너(best partner)라는 의미의 ‘못토메이토’는 2020년 ‘짝궁 서비스’를 선보였다. 손주 뻘 되는 대학생들이 독거 고령자의 ‘친구’가 되어주는 서비스다. 못토메이토를 운영하는 미하루(MIHARU)의 아카기마도카(赤木円香) 대표는 고령자의 고독감을 해소해주고, 자존감을 높여주기 위해 서비스를 개발했다고 한다. 기존에 있는 가사 대행 혹은 간호 서비스가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을 해소하고 싶었단다.
못토메이토의 친구들은 고령자를 방문해 이야기 파트너, 스마트폰 강의, 외출 동행, 필요 서류 작성, 집안 정리, 쇼핑 지원, 온라인 예약 대행 등을 돕는다. 서비스 기본요금은 시간당 5500엔(약 5만 원)이다. 시간을 연장하면 추가 비용을 낸다. 비용이 적지 않지만, 재 신청률은 90%에 이른다.
못토메이토 활동을 할 수 있으려면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한다. 면접 통과율은 17%에 불과하다고. 면접에 통과하고도 미하루가 개발한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해야 한다. 행동지침 이해, 호스피탈리티 연수, 업무 연수를 마친 뒤 3회의 동행 연수를 마쳐야 현장에 투입될 수 있다. 친구라고 불리는 대학생들은 견습생부터 아이언, 브론즈, 실버, 골드, 플래티넘, 다이아몬드로 직위를 부여받고, 수준에 따라 기본요금의 30~40%를 받아간다.
친구는 고객 진료기록 카드를 가지고 방문하는데, 카드에는 대화 소재 140여 개 문항이 적혀있고, 방문마다 3~4개의 문항 답변을 채워야 한다. 미하루는 이 정보를 데이터화해서 고객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고령자의 고민과 가치관을 누적해 서비스에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미하루의 ‘못토메이토’는 닛케이에서 발간하는 잡지에서 ‘미래의 시장을 만드는 100대 기업’(2023)으로 선정됐다. 또한 여러 투자자로부터 6000만 엔의 투자를 받았다.
간호를 받을 필요까지는 없지만, 생활에 도움이 필요한 고령자들은 ‘간호 인력’이 집으로 와 돌봄을 받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마도카 대표가 미하루를 창업한 이유이기도 하다. 사회나 가족의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도 고립되지 않고 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일. 못토메이토의 사명이다.
마도카 대표는 일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65세 이상의 고령자 3600만 명 중 절반은 노화에 의해 신체 능력 저하를 느끼는 프레일(frail) 단계에 있지만, 핵가족화로 인해 곤란한 일이 있을 때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없는 이들이 많다”면서 “간호가 필요한 게 아니라 자립하고 있기에 건강, 경제력, 거처, 자존심 네 가지를 유지하면서 고령자의 건강 수명을 늘릴 수 있는 친구 같은 존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프레일 단계의 고령자 지원이 부족한 만큼 못토메이토가 그런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미국 손주와 노인의 우정 '파파'
손주뻘인 대학생과 고령자를 매칭해 고령자를 돌보는 플랫폼이 일본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 플로리다에서는 '파파'(PaPa)라는 플랫폼이 2017년부터 운영되고 있다. 파파에서 노인과 매칭 된 대학생은 노인과 병원에 동행하거나, 가사를 돕거나, 디지털 기술을 가르쳐준다.
파파를 만든 대표 앤드류파커는 '고령자의 주변에 있고, 동료가 되어주는 존재'로서 대학생들이 역할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런 서비스를 출시한 이유는 고령자의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일본 매체들이 못토메이토를 조명한 것은 미국처럼 일본에도 이런 서비스가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앤드류 파커 대표는 고령화가 많이 진전된 일본에서 기회를 봤다고 했다.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로부터 투자를 받고 있는 만큼, 일본의 정부나 지자체 기관과 협력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사별, 이혼, 독립 등으로 혼자 사는 노인이 증가하면서 생기는 돌봄 공백에 따라 요양시설 수요가 급격히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령이나 노인성 질병 탓에 일상생활이 힘든 사람을 대상으로 서비스 혹은 돈을 지급하는 ‘장기요양급여’ 제도가 마련돼 있다. 장기요양급여는 재가·시설·특별현금 급여 세 가지로 구분된다. 재가급여는 방문요양, 방문목욕, 방문간호, 주·야간보호와 단기보호, 복지용구 제공 서비스를, 시설급여는 노인요양시설 또는 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에 장기간 입소한 수급자에게 신체활동 지원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특별현금급여는 수급자가 도서・벽지 등 장기요양기관이 부족한 지역에 거주하면 현금으로 요양급여를 지급한다.
현행 장기요양급여는 재가급여 우선 제공을 원칙으로 한다. 장기요양 1∼2등급은 재가급여 또는 시설급여를 이용할 수 있지만, 3∼5등급은 재가급여를 제공받는다. 가족 돌봄이 어렵거나 주거환경이 열악한 경우, 치매 등에 따른 문제행동으로 재가급여를 이용할 수 없을 때에만 예외적으로 시설급여 이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보험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독거・무배우 노인의 요양시설 수요와 과제’에 따르면, 노인요양시설 이용자가 2008년 장기요양보험 제도 도입 이후 점진적으로 증가해 2022년 약 24만 명에 이르렀으며 그 중 재가급여를 원칙으로 하는 3~4등급이 약 69%를 차지했다. 재가급여를 이용할 수 없는 예외적인 경우가 늘어난 셈이다.
더불어 보건복지부의 장기요양실태조사(2019)에서는 장기요양 인정자가 1인가구 또는 무배우자일수록 불가피하게 요양시설을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시사했다. 하지만 보험연구원의 분석 결과 2022년 기준 노인요양시설의 정원은 약 22만 명(4372개 소)으로, 대체재인 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 정원(1만 5707명)과 요양병원 병상 수(최대 26만 7725개)를 더하더라도 최대 수용인원이 50만 명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송윤아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원은 “85세 이상 1인 가구는 약 26만 명에서 45만 명으로 7년 사이 1.7배 이상 증가하고, 건강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는 85세 이상 고령자는 2023년 약 102만 명에서 오는 2030년 158만 명이 될 것”이라며 “독거 또는 무배우 노인의 경우 돌봄 공백 발생으로 요양시설 이용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고령 1인가구 증가세와 함께 노인요양시설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어 “재가우선 제공 원칙을 유지하되 불가피한 요양시설 이용 수요 증가에 대비해 노인의 지역사회 계속 거주에 방점을 둔 요양시설 확충과 시설서비스 내실화 및 다양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충분한 재가서비스에도 불구하고 시설 이용이 불가피한 노인층이 존재하기 때문에 시설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서비스 수준을 제고해야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정부는 제3차 장기요양기본계획(2023~2027)을 발표하고 △돌봄 필요도가 높은 1・2등급 수급자의 재가급여 월 한도액(2023년 188만 5000원)을 시설입소자 수준(245만 2500원)으로 단계적 인상 △통합재가서비스 확대 △재가서비스 다양화 및 내실화 △재택의료서비스 및 방문간호 확대 △주거환경 개선 지원 등의 내용을 포함했다. 시설급여와 관련해서는 공급부족 지역을 중심으로 공립 노인요양시설을 확대하고, 요양시설 진입 제도를 개선하도록 제시했다.
부모를 실버타운에 모신다고 하면 불효자처럼 여기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5성급 호텔 수준의 서비스와 시설을 갖춘 고급 실버타운이 등장하고, 입주 대기를 해야 할 만큼 인기가 치솟으면서 인식이 달라졌다. 오히려 최근에는 ‘실버타운에 살려면 돈이 많이 든다’는 편견도 생겨났다. 고령화 흐름 속 실버타운의 수요 증가는 쉬이 예측할 수 있다. 문제는 공급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 실버타운을 둘러싼 업계 전망과 더불어 나아갈 방향을 짚어봤다.
도움말 강대빈 전국노인주거복지시설협회 부회장
실버타운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그 개념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 흔히 실버타운 또는 시니어타운으로 부르는 곳(이하 ‘실버타운’으로 일괄)들은 주로 노인복지법에 따른 노인주거복지시설(양로시설·공동생활가정·노인복지주택)을 의미한다. 아직까지는 국내에 실버타운에 대한 명확한 법적 정의나 체계가 미비한 실정이다. 때문에 소비자들도 요양원, 요양병원 등과 헷갈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일반적으로는 보증금 및 관리비, 생활비 등을 ‘100% 개인이 부담’하는 ‘유료 양로시설과 노인복지주택’을 실버타운으로 이해하면 된다. 여기에 ‘독립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는 만 60세 이상의 건강한 노인’이라야 입소 가능하다는 것도 유사 시설과의 차별점이다. 과거 부모를 실버타운에 보내는 자식을 불효자로 여긴 배경은 ‘몸이 아픈 부모를 봉양하지 않는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간호가 필요한 노인은 실버타운 입소가 어렵기 때문에 이는 오해였다. 이러한 오해가 점차 해소되고, 점점 고급화된 시설이 생겨나면서 실버타운을 바라보는 업계 시선도 달라졌다.
강대빈 전국노인주거복지시설협회 부회장은 “과거엔 주로 사회복지법인이나 건설 대기업이 실버타운을 짓고 운영했다면, 요즘은 보험사나 금융사, 호텔, 식품회사 등 다양한 기업이 참여한다. 예전에는 실버타운으로 수익을 낸다고 하면 ‘노인들 대상으로 장사한다’며 시선이 곱지 않았다. 이제는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면서 ‘노인복지’ 측면에서 바라보기보다는 ‘사업성’에 주목하는 경향”이라며 “과거엔 실버타운에 간다고 하면 부끄럽게 여기기도 했는데, 요즘은 상당히 완화됐다. 이제는 노후 주거생활의 선택지 중 하나로 간주되는 흐름”이라고 말했다.
불효자 오해 거두니 ‘비싸다’는 편견 생겨
강대빈 부회장은 “요즘은 실버타운은 비싼 곳이라는 편견이 더 많다”고 덧붙였다. 시장조사 전문기업 마크로밀엠브레인이 진행한 ‘실버타운 및 요양원 관련 인식 조사’(2017)에 따르면 ‘부모가 아플 때 모시고 싶은 곳으로 요양원과 요양병원을 고려하는 진짜 이유’를 묻자 대다수가 ‘국내 실버타운은 왠지 부유층만을 위한 주거시설이라는 느낌이 있다’(82.4%)고 답했다. 이는 그동안 실버타운의 이미지 변화를 꾀한 업계의 노력과 더불어 호텔형 실버타운이 이슈로 떠오른 결과로 유추할 수 있다. 유명인사의 초호화 실버타운 생활이 공개되거나, 거액의 보증금과 생활비를 부각하는 콘텐츠 등의 영향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는 일부 최고급 실버타운에 해당하는 이야기라는 게 강 부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상위 몇 곳 정도 제외하면 대체로 합리적인 가격대로 실버타운 생활이 가능하다. 가령 실버타운에서 생활비가 월 200만 원 정도 든다고 하면 부담스러워하는 분들이 많다. 그런데 입주 전 지출 비용과 비교해보면 비슷하거나 그보다 적게 드는 경우를 많이 봤다”며 “다만 현재는 실버타운 수가 많지 않아 대체로 비슷한 형태의 서비스가 제공되는데, 점차 공급이 많아지면 옵션이 다양하고 특화된 서비스를 갖춘 곳이 생겨날 전망이다. 그럼 자신의 생활이나 경제 상황에 알맞은 곳을 선택할 여지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국민연금연구원(2019)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장년은 부부 기준 매달 적정 노후 생활비로 평균 268만 원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실제 지난해 기준 부부의 실버타운 월 생활비(의무식 포함 기준)는 상위 4곳을 제외하면 대부분 200만 원대로 책정됐다.(도서 ‘실버타운 올가이드’ 참고) 즉 애써 생활비가 높은 곳을 택하지 않는다면, 꼭 비싼 돈을 들여야만 실버타운에서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입주자들의 후기를 보면 비슷한 생활비로 가사 노동에서 벗어나고, 편의시설과 다채로운 문화생활을 즐긴다는 점에서 이득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수요 대비 공급, 0.05% 수준에 불과해
실버타운에 대한 긍정적 인식과 입주자의 만족도가 올라가며 이에 대한 수요도 자연스레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를 감안하면 그 열풍은 더 거세질 전망이다. 다만 물리적으로 수요에 걸맞게 공급이 따라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강대빈 부회장은 “업계에서는 실버타운에 대한 수요가 노인 인구의 2~3%가량 된다고 추정한다. 현재 대한민국 노인 인구는 1000만 명이 넘는다. 이들의 2%만 추려도 20만 명이다. 그런데 현재 운영 중인 실버타운에 공급 예정인 곳들을 합산하더라도 총 1만 세대 정도다. 일본만 해도 현재 실버타운이 1만 5000곳 넘게 운영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즉 한국 실버타운은 수요 대비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앞서 언급한 노인주거복지시설의 개념에 따라 합산해본다면 국내에 운영 중인 실버타운은 30곳 남짓이다. 강 부회장이 말한 수치로 견주어보면 수요량을 따라가기 위해선 현재보다 20배의 공급량이 필요한 시점이다. 때문에 강 부회장은 이에 대한 정책적 논의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는 노인복지정책의 일환으로 실버타운을 공급하고 있다. 소위 ‘알뜰 실버타운’으로 불리는 ‘고령자복지주택’(공공실버주택)이다. 2021년 말 기준 2260가구의 공급을 완료했고, 2025년까지 1만 가구를 목표로 추진 중이다. 다만 저소득 고령자를 위한 복지의 목적이기 때문에 입주 자격이 정해져 있다. 만 65세 이상이면서, 무주택자이고(배우자와 신청자 모두 주택도 없고 분양권도 없어야 함), 전년도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의 50%, 70%(국가유공자) 이하인 자라야 가능하다. 때문에 업계 전문가들은 ‘중산층’에 대해 우려하는 상황이다.
강 부회장은 “고소득층은 경제적 능력이 되니 크게 걱정할 문제는 아니다. 저소득층은 나름의 복지정책이 마련돼 있다. 문제는 중산층이다. 경제적으로 크게 여유롭지 않고 아무런 혜택도 없는 상황에서, 턱없이 부족한 실버타운 몇 곳에 몰리게 되는 것”이라며 “시설과 서비스가 양적으로 질적으로 다 좋으려면 비용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국내 실버타운의 경우 대체로 생활 전반에 필요한 모든 걸 제공해주는 식으로 운영하는데, 해외 사례를 보면 필요한 일부 서비스만 제공하는 형태도 생겨나는 추세다. 중산층의 경제적 여건에 따라 맞춤형으로 취사 선택 가능한 서비스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연구해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평생 보금자리 위한 실버타운의 미래
여러 기관에서 실시한 노후 거주와 관련한 조사를 살펴보면 ‘어디에 살 것인가’를 묻는 항목의 1순위는 대체로 ‘현재 사는 집’이 차지한다. 한 예로 보건복지부 ‘2020 노인실태조사’에서 응답자의 84%는 건강이 유지된다면 현재 집에서 계속 거주하기를 원했다. 이는 가급적 살던 집(또는 지역)에서 나이 들고 싶어 하는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 이하 AIP)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만약 노후에 실버타운 거주를 택했다면, 이들에게 AIP는 살던 실버타운에서 여생을 보내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실버타운에서 AIP를 이루기란 쉽지 않다. 현재 국내 실버타운에서 요양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법적·제도적 한계가 있어서다. 때문에 실버타운에서 생활하다가 건강이 악화되면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으로 삶의 터전을 옮길 수밖에 없다.
강 부회장은 “현재 국내 실버타운 운영체제를 보면 AIP를 실현할 수 있는 곳은 몇 군데 되지 않는다. 어르신들이 실버타운에 오실 때는 곧 이사를 가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죽을 때까지 여기 살겠다’는 마음으로 들어온다. 그러다 건강이 악화돼 퇴소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낙담하고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기본적인 생활과 더불어 너싱홈(Nursing Home)등을 갖춘 복합시설 개념의 실버타운이 앞으로 많이 생겨나길 기대해본다”고 말했다.
고독(孤獨)과 고립(孤立). 한 글자 차이지만 뉘앙스는 다르다. ‘고독을 씹는다’고 표현하는 것처럼, 누군가는 간헐적 단절 상태를 자처하기도 한다. 그러나 고립은 대체로 장기간 뜻하지 않게 사회와 차단된 처지다. 그런 점에서 ‘고독 위험’은 어색하지만, ‘고립 위험’은 말이 되는 듯하다. 때문에 우리가 흔히 쓰는 ‘고독사’라는 단어도 실상은 ‘고립사’에 가깝다. 그렇다면 어떻게 고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고립은 사회적 고립과 감정적(정서적) 고립으로 나뉜다. 사회적 고립은 사회연결망 결여로 대인관계나 사회활동 참여가 단절된 상태를 말한다. 감정적 고립은 사회연결망이 구축됐고 일원으로 속했음에도 감정적으로 동떨어진, 주관적 고립 상태다. 최근에는 가족·이웃 간 유대 약화, 1인 가구 증가, 코로나 등으로 인해 사회적·감정적 고립을 경험하는 이가 늘고 있다. 특히 중장년은 은퇴와 동시에 사회연결망이 사라지고, 자녀의 독립, 배우자와의 사별 등으로 인해 뜻하지 않은 사회적 고립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러한 고립 상황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면 정신적·신체적 건강을 해칠뿐더러 자칫 고독사 위험에 놓이게 된다.
고독과 고립, 뭐가 다를까?
누구나 살면서 고독과 외로움은 느낄 수 있다. 이러한 감정이 찾아왔을 때 잘 다루고 이겨내면 괜찮지만, 아닐 경우 고립의 늪에 빠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독과 고립은 어떻게 구분할까? 임선진 국립정신건강센터 노인정신과 과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도움을 청할 대상이 있느냐 없느냐로 가늠한다”며 “중장년기에 퇴직, 사별 등으로 일시적인 우울, 소외, 고독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이 생겼을 때 터놓고 이야기하거나 의지할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면 ‘고립’ 상태로 본다”고 설명했다.
통계청 통계개발원이 발표한 ‘한국의 안전보고서 2022’에 따르면 ‘사회적 고립도’는 위기 상황에 도움받을 곳이 없는 사람의 비율로 정의한다. 해당 보고서에서는 아플 때 집안일을 부탁할 사람이 있느냐, 힘들 때 이야기할 상대가 있느냐 등을 물었을 때 ‘없다’고 응답한 수치를 환산했다. 그 결과 사회적 고립도는 2019년 27.7%에서 2021년 34.1%로 6.4%p 증가했다. 연령별로 보면 나이가 많아질수록 사회적 고립도가 높아졌다.
보고서의 원자료가 된 2021년 통계청 ‘사회조사’를 보면 연령 대비 교류하는 사람 수는 반비례했다. 특히 ‘가족 또는 친척 이외 교류하는 사람이 없다’고 응답한 비율은 20~30대 13~19%, 40~60대 20~27%, 70대에는 38%까지 늘어나다가 80대에는 51%로 절반을 웃돈다. 같은 조사에서 ‘사회적 관계망’을 묻는 항목을 살펴보면(낙심하거나 우울할 때 이야기할 상대가 있는가) 이 또한 나이가 들수록 도움을 청할 사람 수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양상을 보였다.
또 한국행정연구원이 실시한 ‘사회통합실태조사’(2022)에서는 평일 하루 접촉하는 사람 수와 접촉 방식에 대해 파악했는데, 해당 조사에서도 고령자일수록 ‘하루에 접촉하는 사람이 없다’고 응답한 비율이 높아졌다. 수치로는 40대(1.6%) 대비 65세 이상(4.7%)이 3배가량 높게 나타났다. 특히 65세 이상의 과반수가 가족 또는 친척 대상에서도 하루 접촉하는 사람 수가 1~2명 정도라 답했는데, 그중 대면 접촉은 3분의 1 미만이었다. 대체로 전화 통화로 접촉하는 상황이었고, SNS나 문자를 이용하기도 했으나 극소수였다.
가족과 함께 살면서도 고립?
사회적 고립을 말할 때 1인 가구 문제가 빠지지 않는다. 해마다 이뤄지는 통계청 인구총조사를 보면 2015년 이래 1인 노인 가구 비율은 지속 증가하고 있다. 최근 조사인 2021년 조사에서 65세 이상 1인 가구는 36.4%였다. 여성가족부 가족실태조사에서도 1인 가구의 어려움울 묻는 항목에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고립되어 있어 외롭다’는 응답 비율은 연령대와 비례했다. 물리적으로 혼자 지내기 때문에 외로움·고립감이 더 크다는 건 자연히 수긍이 된다. 그렇다면 함께 사는 가족(또는 동거인)이 있으면 고립을 피할 수 있을까? 임선진 과장은 “가족이 곁에 있다면 사회적 고립은 아니다. 그러나 가족 구성원이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낀다면 감정적 고립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나이가 들어 일을 그만두고 자녀가 출가하면 가장 가까운 가족이자 주변인은 배우자가 된다. 그럼에도 배우자와 걱정거리를 편하게 이야기하는 중장년은 일부인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가족실태조사에서도 배우자와의 사별 가능성이 적은 40~60대 중장년의 경우 배우자와 고민을 나누는 비율은 10% 미만이었다. 하루 중 대화 시간 또한 1시간 미만인 부부가 과반수였다. 임 과장은 “감정적 고립을 호소하는 분들에겐 가능하면 가족 교육을 진행한다. 가족 구성원들에게 고립 대상자가 얼마나 감정적으로 힘든지, 왜 그런지, 가족이 어떤 역할을 해야 고립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지 등을 설명해드린다”며 “자녀 세대와의 감정적 거리도 멀다. 특히 요즘 세대가 쓰는 약어나 은어 등을 이해하지 못해 대화가 단절되는 경향이 적지 않다. 초반에는 소외감으로 시작했다가, 점점 심해지고 마음의 벽이 생기면서 고립을 초래한다”고 덧붙였다.
마음의 문 열고, 관심사 확장하기
고립 상황에서 도움을 받을 대상이 꼭 가족이나 친구일 필요는 없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회복지사나 기관 상담사 등도 해당된다. 가령 종교가 있다면 교회나 절 등에 다니며 사람들과 소통하고 도움을 얻는 것도 방법이다. 그렇지 않다면 기관이나 제도의 지원을 받는 것도 괜찮다. 최근에는 사회적 고립을 예방하는 지자체 프로그램도 활성화된 편이다. 이러한 지원책에 대해 잘 모르거나 서비스가 빈약한 지역에 산다면 고립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가족이 함께하고 지역사회 서비스도 마련됐는데, 스스로 고립에서 벗어나려는 의지가 없다면 예후가 좋지 않다. 감정적 고립이 심한 상태로 볼 수 있는데, 이 경우 다른 질환이나 증상을 동반할(또는 동반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임 과장은 “젊은 시절부터 사회에서 긍정적인 경험을 많이 못 해본 중장년이라면 주변인이나 사회관계망 서비스 등에 경계하는 양상을 보인다. 또는 성격적으로 의심이 많거나, 알코올 중독증이나 우울증, 조현병을 앓는 경우도 타인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부지만 새터민이나 다문화가정 외국인 등도 지역사회나 이웃에 대한 신뢰를 갖기 어려워 고립되기도 한다”며 “내원하시는 분들에겐 필요하면 약물치료나 상담치료를 진행하기도 하고, 지역 사회복지사 등 전문 인력과 의논해 지속적으로 마음의 문을 열게끔 시도한다”고 말했다.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타인도 나를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야 고립 탈출의 첫발을 뗄 수 있다는 게 임 과장의 설명이다. 그는 “중장년이 고립되는 사례를 보면 이러하다. 퇴직 후 의기소침해져 친구들을 멀리한다거나, 경제적으로 빈곤해져 약속이 부담스럽거나, 자녀가 취업·결혼 등을 못 했다는 이유로 주변과의 만남을 피하거나, 부부동반 모임이었는데 사별 후 소외를 느껴 나가지 않는 등 다양하다. 그런데 가만 보면 그 원인이 자신에서 비롯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때문에 나이 들수록 본인의 정체성에 집중해서 살아야 한다”며 “뭐든 자신을 중심으로 관심을 확대해나가면 좋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걸 잘할 수 있을지. 내가 갖고 있는 질환은 무엇이고,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지. 만약 스스로 고립에 처했다고 느낀다면 이 상황을 벗어나게 도와줄 사람은 누구인지, 기관은 어디인지 등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길 바란다. 그렇게 사회와 연결되고 활동 반경을 넓혀나가는 노력을 통해 고립을 막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정부가 ‘노인 의료·돌봄 통합지원 시범사업’을 지난 7월부터 추진하고 있다. 2025년 초고령사회 도래에 대비하고 노인의 지역사회 계속 거주를 위해 지역 내 다양한 의료·돌봄 서비스를 연계해 통합 지원하는 사업을 말한다.
노인 의료·돌봄 통합지원 시범사업은 문제인 정부 때부터 추진해온 ‘커뮤니티 케어 정책’의 일환이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커뮤니티 케어 정책을 발표하고, 2019년 6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지역사회 통합돌봄’ 선도사업을 시행했다. 윤석열 정부는 ‘노인 의료·돌봄 통합지원’으로 명칭을 바꿔 선도사업 시행에 나섰다.
커뮤니티 케어 정책이란?
커뮤니티 케어가 무엇인지부터 알아보자. 커뮤니티 케어란 돌봄이 필요한 주민이 살던 곳에서 개개인의 욕구에 맞는 서비스를 누리고 지역사회와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주거, 보건의료, 요양, 돌봄, 독립생활 등을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지역주도형 사회서비스정책을 말한다. 이에 커뮤니티 케어는 ‘지역사회 통합 돌봄’이라고도 한다.
커뮤니티 케어는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 가치를 기반으로 한다. 에이징 인 플레이스는 익숙한 거주지에서 여생을 보내는 것을 의미한다. 2017년 노인실태조사 결과, 어르신 57.6%가 거동이 불편해도 살던 곳에서 여생을 마치고 싶다고 답했다. 그러나 실상은 병원·시설에서 지내야 하는 상황이 많고, 불충분한 재가 서비스로 인해 가족에게 돌봄은 큰 부담으로 자리 잡은 상황이었다.
이에 정부는 초고령사회를 앞둔 시점에서 광범위한 돌봄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커뮤니티 케어 정책을 추진하게 됐다. 이미 일본·영국·스웨덴 등 복지 선진국은 지역사회 중심의 서비스 제공을 시행 중이었고, 한국도 이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다.
정부는 2018년 11월 지역사회 통합돌봄 기본계획을 발표했고, 2019년 6월부터 2년간 16개 시군구에서 지역 자율형 통합돌봄 모형을 만들기 위해 선도사업을 추진했다. 또한 로드맵의 계획에 따르면 2025년까지 대대적인 제공 기반 확충을 하고, 2026년부터는 통합돌봄을 보편적으로 모든 국민이 누릴 수 있게 할 전망이다.
4대 중점 과제는 주거, 건강·의료, 요양·돌봄, 서비스 통합 제공이다. 이 가운데 주거 지원에는 어르신 맞춤형 케어안심주택, 집 수리 사업, 커뮤니티케어형 도시 재생 뉴딜 등이 포함된다. 건강 의료 부분에는 집중형 방문 건강 서비스, 방문 의료, 어르신 만성질환 전담 예방관리, 병원 ‘지역 연계실’ 운영 등이 있다.
노인·의료 돌봄 통합지원으로 변경
커뮤니티 케어 시행 5년, 전문가들은 거주 공간은 확충했지만, 의료 서비스 제공은 부족했다고 지적한다. 특히 전문 요양보호사, 간병인 등이 가정에 방문하는 ‘재택 돌봄’이 잘 시행되지 않았다고 꼽힌다. 재택 돌봄은 가족 돌봄 부담 경감, 요양 병원 및 시설 부족 문제 해소 등의 이점이 있다.
이에 따라 윤석열 정부는 의료 서비스 강화에 중점을 둬 계획을 개편했다. 앞서 말한대로 ‘지역사회 통합돌봄’을 ‘노인·의료 돌봄 통합지원 시범사업’으로 명칭을 바꿨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3월 시범사업 12개 지역을 선정했다. 광주광역시 서구·북구, 대전광역시 대덕구·유성구, 경기도 부천시·안산시, 충청북도 진천군, 충청남도 천안시, 전라북도 전주시, 전라남도 여수시, 경상북도 의성군, 경상남도 김해시다.
선정된 12개 지역은 오는 7월부터 2025년까지 3년간 75세 이상 노인들이 지역사회에서 건강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의료·돌봄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체계를 구축한다. 또 읍면동 통합지원창구를 통해 대상자를 접수·발굴하고 시군구 지역사례회의를 운영해 지역사회 계속 거주에 필요한 주거지원 서비스, 방문의료·건강관리 서비스, 이동·식사 지원 등 다양한 사회서비스를 지원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지난 8월에는 ‘제3차 장기요양기본계획(2023~2027)’이 발표됐다. 집에서도 돌봄과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장기요양서비스를 강화한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은 고령이나 노인성 질병 등으로 일상을 혼자 수행하기 힘든 노인들의 신체활동 등의 지원을 위해 2008년 7월부터 시행됐다. 지난해 말 기준 수급자는 102만 명이었으나 2027년에는 145만 명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기본 계획에 따르면, 2027년까지 돌봄 필요도가 높은 1·2등급 중증 수급자의 재가급여 월 한도액을 시설 입소자 수준으로 단계적으로 인상한다. 올해 기준 1등급 수급자의 월 한도액은 재가급여 188만 5000원, 시설급여 245만 2500원이었는데, 단계적으로 두 급여를 동일하게 맞춘다는 계획이다.
또한 야간·주말, 일시적 돌봄 등이 필요할 때에 방문 요양 서비스를 제공하는 수시방문 서비스를 도입하고, 통합재가서비스를 확대한다. 통합재가서비스는 수급자의 서비스 선택권을 확대하기 위해 한 기관이 재가급여를 포괄적으로 제공하는 것으로, 현행 방문요양 중심의 단일 급여 제공 기관을 다양한 재가급여를 복합 제공하는 기관으로 재편한다.
이혼, 사별, 자녀의 독립 등 여러 이유로 혼자 살게 되면 밥을 ‘잘’ 챙겨 먹기가 어렵다. 영양소를 고려해 균형 잡힌 식단을 꾸리기도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배달음식이나 가공식품 위주로 끼니를 때우곤 한다. 이처럼 식사에 어려움을 겪는 중장년을 위해 국가에서는 영양 및 생활 지원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제공하는 모양새다.
서울시에서 발표한 ‘1인 가구 실태조사 및 제도개선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40~64세 1인 가구 절반가량이 직접 음식을 조리(58.1%)하지만, 가정간편식을 이용(17.4%)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배달음식(7.3%), 빵이나 샌드위치(5.5%), 편의점 음식(2.7%) 등으로 식사를 해결하기도 했다. 밥을 거르는 이유는 주로 식욕이 없거나 귀찮아서(35.9%)이지만, 혼자 먹기 싫어서(12.5%), 장을 보는 것이 번거로워서(12.3%) 등의 이유도 있었다. 지자체나 유관기관은 중장년 1인 가구의 건강한 식사를 돕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요리·식사하며 소통하는 ‘소셜 다이닝’
서울시 은평구 1인가구지원센터는 중장년 1인 가구를 대상으로 건강 요리교실 및 소통 프로그램 ‘은빛싱글소다’를 운영하고 있다. 은빛싱글소다는 올해 5월부터 11월까지 총 7회기로 진행하며, 요리 강좌 4회와 특별 강좌 1회로 구성돼 있다. 메뉴는 마을 기업과 연계해 은평구만의 특성을 살린 계절 보양식, 명절 음식 등으로 마련한다.
참여자들은 시작 전 메뉴와 요리법을 전달받고, 강사의 시범을 보며 만드는 순서를 익힌다. 그 후 2인 1조로 준비된 재료를 굽고 볶아 요리를 완성한다. 중간중간 대사증후군, 만성 질환에 도움 되는 식재료와 식습관 등 건강 정보를 나눈다. 서로 만든 음식을 공유하고 맛을 평가해보는 시간도 가진다. 단순한 요리 활동에 그치지 않고, 음식을 매개로 사회적 연결망을 형성하게 된다.
은빛싱글소다에 참여한 40대 홍호기 씨는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나에게 맞는 음식을 때맞춰 섭취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습관들이기가 어려웠다”며 “전문가들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아주 간단한 집밥 레시피를 알려줘도 소용없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은빛싱글소다에서는 강사님이 칼질하는 법부터 차근차근 가르쳐주셔서 잘 배우고 있다”며 “기회가 된다면 매달 참여하고 싶을 정도로 재밌다”고 말했다. 60대 서판순 씨는 “집에서는 식사를 대충 때우게 되고, 매번 만들어 먹자니 숙제 같은 느낌이 들었다”며 “연어덮밥이나 비빔쌀국수처럼 우리 세대에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요리를 배울 수 있어 기분이 좋고, 다음 시간이 벌써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김지운 은평구청 1인가구지원팀장은 “그간 청년 혹은 노인 중심으로 지원이 이뤄지고 있어 40~60대를 위한 복지 서비스는 부족한 실정이었기에 은빛싱글소다의 첫 대상자를 중장년 1인 가구로 설정했다”며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개선 방향을 검토해 대상을 점차 확대해나갈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영양 상태 체크해 식습관 개선
경상북도 포항시 가람재가노인통합지원센터는 수입이 적어 식비로 지출할 수 있는 비용이 제한적인 저소득층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영양 불량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주 1회 생활지원사가 지역 연계 식당에서 도시락을 받은 뒤 대상자의 집을 직접 방문해 전달하고, ‘장수노트 영양편’을 활용해 1 대 1 맞춤 영양 교육을 진행한다. 매일 영양 실천 내용을 작성하도록 유도해 어르신이 스스로 영양 상태를 확인하고, 건강한 식단을 실천해 균형 잡힌 식습관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지난해 1월부터 8월까지 서비스를 받은 대상자들은 “평소에는 지원받은 카레나 라면으로 한 끼를 때우곤 했지만, 선생님이 매주 꼬박꼬박 식사를 어떻게 했는지 물어보니 챙겨 먹게 됐다”, “뭘 먹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지 알려줘서 장을 볼 때 어떤 식재료 위주로 구매해야 하는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서영아 가람재가노인통합지원센터장은 “식품 지원과 영양 교육으로 매주 어르신의 식생활 변화를 기록했고, 서비스 이후 일상에서 얼마나 해당 내용을 적용하고 있는지 확인하면서 만성 질환 예방과 영양 불량 문제의 개선을 도왔다”며 “더욱 체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해 독거노인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가 빠르게 고령화 되어가는 가운데, 노인의 평안한 삶을 영위하는 방법 중 하나로 ‘고령친화도시’ 조성이 꼽히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 세계적인 고령화와 도시화 추세에 더욱 효과적으로 대응해나가기 위해 ‘고령친화도시 국제네트워크’(GNAFCC) 프로젝트를 2007년부터 추진하고 있다.
WHO에서는 고령친화도시에 대해서 “나이가 드는 것이 불편하지 않은 도시, 연령에 상관없이 누구나 살기 좋은 도시, 평생을 살고 싶은 도시에서 활력 있고 건강한 고령기를 위하여 고령자들이 능동적으로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도시”로 정의하고 있다.
국내 지자체 47개, 고령친화도시 네트워크 가입
고령친화도시 국제네트워크 회원 인증은 WHO가 정해놓은 8대 영역에 적합해야 받을 수 있다. 8대 영역은 △외부환경과 시설 △교통수단 편의성 △주거환경 안정성 △여가 및 사회활동 △사회참여 및 일자리 △사회적 존중 및 통합 △의사소통 및 정보 △건강 및 지역사회 돌봄이다.
2023년 5월 기준 전 세계 51개국, 1455개 도시가 가입돼 있다. 대표적인 고령친화도시로 미국 뉴욕, 일본 아키타 시가 꼽힌다. 우리나라는 47개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가 가입된 상태다. 국내에서는 고령친화도시 국제네트워크에 첫 번째로 가입한 서울시가 롤모델로 통한다.
서울시는 고령 인구가 급증함에 따라 일찌감치 고령친화도시 조성에 관심을 뒀다. 2010년 노인 실태·욕구 조사를 실시했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전략과제를 개발하고, 노인복지 조례를 제정했다. 또한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전문가를 비롯한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한 끝에 2013년 고령친화도시 국제네트워크에 가입했다. 서울시의 고령친화도시 핵심 내용은 고령자의 자기결정권이 존중되며, 사회적으로 배제되지 않는 도시라고 할 수 있다.
2016년에 가입한 부산광역시는 공동체 활성화를 지원하는 도시 환경 조성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부산시는 프랑스 파리처럼 ‘15분 도시’ 개념을 도입했다. 집에서부터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15분 이내에 출퇴근과 의료 상업 등 일상생활이 모두 가능한 도시를 말한다. 15분 도시와 연계해 노인을 위한 모임 공간 하하(HAHA)센터 건립을 추진 중이다. 2017년 도 단위 최초로 가입한 제주도는 사람 중심, 상생·통합, 네트워크, 행복 등 4가지를 핵심가치로 하고 있다.
“국가 지원 필요” 의견도
표현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지자체의 고령친화도시 비전 대부분은 ‘건강하고 활기찬 100세 도시’이다. 또한 지자체에서는 노인복지 기본조례를 제정하고 고령친화도시 1기, 2기 계획을 실행한 뒤 고령친화도시 네트워크에 가입하는 절차를 따르고 있다. WHO의 8대 영역이 기준이다 보니 추구하는 비전과 가치, 과정 등이 비슷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각 도시마다 10~20%의 차별성도 존재한다.
현재 고령친화도시 조성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전라북도를 예로 들 수 있다. 전라북도는 식품산업 중심지로서 고령친화식품 육성에 주력한다. 고령친화 은퇴자 체류 도시 모색 계획도 세웠다. 자연환경 자원이 우수하고 다양한 문화체험이 가능해 은퇴자 체류 도시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고령친화도시 조성 사업은 지자체별로 진행해왔다. 그러나 국가가 지원할 수 있는 근거가 법률상 마련돼 있지 않아서 예산 등 지원이 어렵다는 지적도 불거졌다. 이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최연숙 국민의힘 위원은 국가가 고령친화도시를 지정하고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노인복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지난 6월 대표 발의했다.
최연숙 의원은 “세계 주요 도시들이 고령층의 활력 있는 노후생활을 위해 각종 시책을 펼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고령친화도시 관련 조례를 제정한 지자체가 63개에 불과하다”며 “고령화 시대에 국가가 노인 정책을 지방자치단체에만 맡겨두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하며 국가 차원의 지원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