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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날 아침 터진 ‘겨울꽃’, 동백
- 독기 탓에 추위에도 옷을 벗게 되나 (衣緣地瘴冬還減) 근심이 많으니 한밤 술은 되레 느네 (酒爲愁多夜更加) 그나마 나그네 시름 덜어주는 한 가지 (一事纔能消客慮) 동백이 설도 되기 전에 활짝 피었네 (山茶已吐臘前花) 1801년 겨울, ‘조선 최고의 지식인’ 다산 정약용이 중년에 막 접어든 39세 나이에 ‘하늘에 날리는 눈처럼 북풍에 떠밀려(北風吹我如飛雪)’ 강진으로 유배되었습니다. 27세에 문과에 급제한 뒤 홍문관수찬, 좌부승지, 형조참의 등을 지내며 정조의 총애를 받았지만, 정조 급사 후 천주교도로 몰려 저 멀리 남녘땅까지 쫓겨난 것이지요. 죄인 신세가 된 다산을 그 누구도 반기지 않았으나, 다행히 강진에서 한 노파가 안쓰럽게 여겨 집을 내주고 밥을 해주었다고 합니다. 다산은 당시 ‘강진에 내려와 밥집에 기거하던 시절(南抵康津賣飯家)’의 심경을 ‘객중서회(客中書懷)’란 글로 남겼는데, 한겨울 붉게 핀 동백꽃이 곤궁했던 유배생활에서 마음의 큰 위안이 되었나봅니다. 지금도 겨울이면 매서운 강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드는 경기도 남한강가에서 나고 자란 다산에게는 그야말로 설 명절도 지나지 않은 동지섣달에 붉게 핀 동백꽃이 생소하면서도 각별한 볼거리였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로부터 39년 뒤인 1840년 겨울, 제주도로 유배된 ‘조선 최고의 서예가’ 추사 김정희가 정월 그믐께부터 3월 사이 제주도 마을마다 동네마다 핀 수선화를 ‘천하의 큰 구경거리’라고 격찬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됩니다. ‘들꽃 한 송이에서 천국을 본다’고 했던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 말처럼 ‘조선 최고의 지성’ 다산과 추사 선생에게는 ‘겨울꽃’ 동백과 수선화가 바로 피안의 창이 아니었을까요? 이렇듯 동백은 겨울철에 꽃이 피는 것으로 유명한데, 시인 박홍점은 ‘동백꽃’이란 시에서 “봄부터 맺었던 동백이/ 하필 설날 아침에 터졌다/… 따순 동백꽃 두 송이/ 아직 천방지축인 아이들과 둘러앉아/ 왁자지껄 세배를 한다”며 다산과 마찬가지로 동백이 설을 전후한 시기에 꽃망울을 활짝 연다고 꼬집어 이야기합니다. 동백(冬柏)이란 한자 이름은 한겨울에도 잣나무나 측백(側柏)나무처럼 잎이 푸르다고 해서 생겨났는데,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는 “눈 속에서도 꽃을 피우니 잣나무보다 낫다(亦能開雪裏 細思勝於栢)”면서 “동백이란 이름이 옳지 않다(冬栢名非是)”고 일찍이 주장한 바 있습니다. 다산이 말한 산다(山茶)가 곧 동백인데, ‘본초강목’에는 산다와 산다화(山茶花)로 기록돼 있습니다. 학명의 종명에 일본을 뜻하는 ‘자포니카(japonica)’가 쓰일 만큼 일본 전역이 주요 원산지인 것은 맞지만, 우리나라와 중국, 타이완에서도 폭넓게 자생하는, 동아시아의 대표 식물이라는 게 식물학자들의 설명입니다. 동백나무는 대표적인 조매화(鳥媒花)입니다. 벌·나비가 거의 없는 늦가을부터 이른 봄 사이 꽃이 피기에, 곤충보다는 새에 의지해 꽃가루받이를 하는 것이지요. 특히 새는 사람의 눈처럼 붉은색을 붉게 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동백꽃은 이런 새들의 눈에 잘 띄기 위해 붉게 더 붉게 타오른다고 합니다. 동박새는 동백나무의 농밀한 꿀을 빨면서 꽃가루받이를 돕는 새인데, 그 이름도 동백나무에서 따왔습니다. Where is it? 제주도를 비롯해 오동도와 거문도 등 남해 섬과, 동으로는 울릉도, 서로는 대청도와 백령도 등 섬 지역에서 특히 많이 자란다. 내륙에서는 고창 선운사, 강진 백련사, 서천의 마량 동백나무숲, 부산의 동백섬 등이 동백나무 군락지로 유명하다. 이름난 군락지는 아니어도 충청 이남의 웬만한 산사(山寺) 주변에 동백나무가 무리 지어 자라는 걸 볼 수 있는데, 예로부터 방화림(防火林)으로 활용되어온 결과로 추정된다. 제주의 올레길은 한겨울 동백꽃을 완상하는 최고의 길 중 하나다. 제주의 숲과 골짜기, 마을과 골목을 찬찬히 걷다 보면 키가 10m 넘는 자생 동백나무는 물론, 수십에서 수백 그루가 숲을 이룬 군락지, 나지막한 현무암 담장 위에 올라앉은 동백나무 등 다양한 형태의 나무와 붉은 꽃송이를 만날 수 있다. 강진의 다산초당 옆 작은 연못가에서도 고목은 아니어도, 수십 년 된 동백나무에 핀 꽃 몇 송이를 만날 수 있다.
- 2019-02-01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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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옥죽동 모래사막과 농여해변을 찾아가다 ‘대청도’
- 소청도를 출발한 ‘코리아킹’은 불과 10여분 남짓 달려 대청도 선진포항의 선착장에 닿았다. 멀리서 봐도 아담하고 각양각색 지붕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선착장에는 미리 연락을 받고 여행사에서 버스 한 대를 대기시켜놓고 있었다. 아직은 저녁 먹을 시간이 어중간하여 일단 해안을 돌면서 일몰구경하기로 했다. 대청도 선진포항은 고려에 이어 조선시대부터 중국 상선의 이동이 많았던 지역이다. 중국 선원들은 항해하다가 쉬어갈 곳을 찾던 중 이곳이 정박하기에 적합하다고 하여 여장을 풀곤 했다. 또한 선진포항은 일제 강점기 포경회사의 기지가 있던 곳이기도 하다. 1918년 일본인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던 고래잡이는 1944년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농여해변 대청도는 주민들의 90%이상이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섬 일주 해안도로를 따라 아름다운 해변과 절경들이 이어져 있는 곳이 대청이다. 버스를 타고 얼마를 지나 해안선에 도착했다. 썰물이 시작되었는지 바다가운데 모래언덕이 드러나 있었다. 썰물에 드러난 모래언덕을 ‘풀등’이라고 했다. 드러난 풀등을 구경하면서 농여해변을 걸었다. d이곳은 일몰이 아름다운 해변이다. 고운모래가 사각사각 밟히는 느낌이 좋았다. 한참을 걷다보니 기이한 모양의 바위 하나가 우뚝 솟아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가운데 구멍이 뚫어진 형상을 하였는데, 고목바위라고 했다. 바위에 새겨진 결은 보통 가로무늬 결인데, 이 바위에는 유독 세로로 결이 나 있었다. 지구의 나이를 46억년 정도로 친다면 고목바위의 나이가 20억년정도 되었다고 한다. 수십억 년 전에 바닷 속에 퇴적물들이 쌓였다가 지진이나 융기현상에 의해 생성되었다. 그러니까 예전에는 고목바위가 서 있는 곳도 깊은 바다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 물결무늬는 바닷물이 하루에 두 번씩 밀물과 썰물현상으로 생긴 ‘연흔’이다. 바위에 있는 ‘연흔’을 ‘화석연흔’이라고 하고 바닥에 있는 가로연흔을 현재 생존하는 ‘현생연흔’이라고 하여 지질학적 가치가 큰 해변으로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고목바위 앞에서 인증 샷을 남기고 걸음을 재촉했다. 농여해변을 지나 미아동 해변까지 걷다 보니 어느덧 어둠이 장막처럼 내려오기 시작했다. 일몰이 가장 예쁘다는 ‘농여해변’이었지만 해무로 인해 일몰을 볼 수는 없었다. 바닷가 모래사장을 걸으면서 절경이 이어진 해변을 구경하다보니 배도 고프고 피로가 몰려왔다. 우리가 저녁을 먹기 위해 도착한 음식점에서는 이미 근사한 상차림이 준비되어 있었다. 특‘히 싱싱한 홍어회와 소라, 그리고 갑오징어 요리가 한상 가득 채워졌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독점하던 고래잡이는 1930년대 이후 쇠퇴하고, 지금은 홍어, 우럭, 광어, 농어 등이 대청앞바다에서 많이 잡힌다. 그중에서도 홍어가 많이 잡히는데, 홍어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흑산도와 목포를 떠올리지만 사실은 홍어의 70%가량이 대청도에서 잡힌다고 했다. 여기서 잡힌 홍어는 흑산도와 목포 쪽으로 내려가 가공되어 팔린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삭힌 홍어가 아닌 싱싱한 홍어를 회로 썰어냈다. 사실 삭힌 홍어에 길들여진 입맛이었기에 처음에는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먹다보니 입안에 착착 감기는 맛이 별미였다. 특히 마지막에 신 김치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끓여낸 홍어애탕은 시원하면서도 감칠맛이 있어 한층 입맛을 돋우었다. 반주를 곁들인 저녁을 잘 먹고 숙소로 향했다. 오랜만에 만난 선, 후배 동문 간에 정겨운 얘기가 끝없이 이어졌다. 특히 2년 후에 닥칠 개교 100주년 행사에 대한 토론이 진지하게 논의 되었다. 요즘 북핵폐기와 관련하여 남북 간의 화해무드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핫이슈인 서해5도는 백령도를 포함하여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대연평도, 소연평도) 그리고 강화도 위쪽으로 우도라는 섬을 일컫는다. 서해5도는 1953년도 정전협정 당시 육상의 DMZ는 합의 설정이 되었지만 해상은 그렇지를 못했다. 6.25전쟁당시 치열한 전투 끝에 확보한 서해5도의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UN사령부에서 일방적으로 그은 선이 NLL이다. 한반도의 화약고처럼 언제든지 무력충돌이 일어날 수 있는 지역이 바로 이지역인 셈이다. 근래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같은 사건이 바로 이지역에서 일어났다. 경이로운 모래사막 다음 날, 아침을 먹고 다시 투어에 나섰다. 버스를 타고 옥죽동 해안사구로 향했다. 한국의 ‘사하라 사막’이라고도 일컬어지는 옥죽동 해안사구는 오랜세월 모래가 바람에 날려 이동하면서 거대한 모래산을 이루었다. 옥죽동 해안사구는 계절에 따라 형태가 변화하는 활동성 해안 사구이다. 푹푹 빠지면서 모래산을 오르다 보면 실물크기의 낙타가 나타난다. 우리나라에 사막은 없지만 고비사막이나 사하라 사막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흥미로운 경관을 목격할 수가 있었다. 버스를 타고 다시 이동하여 모래울 해변에 도착했다. 모래울 해변의 풍경은 병풍처럼 둘러싸인 적송군락과 더불어 더욱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대청도에는 삼서 트레킹이 있다. ‘삼각산’으로부터 ‘서풍받이’로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라 앞 글자를 따서 ‘삼서’ 트레킹이라고 부른다. 대청도에서 제일 높은 삼각산은 높이 343m로 인천광역시에 가장 높은 계양산(354m) 다음으로 높은 산이다. 삼각산-기름항아리-마당바위-서풍받이-정자각으로 이어지는 코스의 총 길이는 약 7km 정도이며 소요시간은 대략 2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우리는 시간 관계상 삼각산 트레킹은 생략하고 서풍받이 트레킹만 하기로 결정했다. 서풍받이 트레킹이 시작되는 광난두정자각에서 단체로 인증 샷을 남기고 트레킹을 시작했다. 풍경을 보며 걷다 보니 어느새 숨은 차오르고 다리는 뻐근해지기 시작했다. 대청도는 작은 섬치고는 지형이 꽤나 울퉁불퉁하고 높은 편이다. 하늘전망대까지의 여정은 평소에 운동을 안 한 사람이라면 조금 힘들 수도 있다. 힘들게 헉헉거리며 하늘전망대에 도착하니 시원한 바람이 몸의 열기를 식혀 준다. 전망대 앞바다에는 대갑죽도가 있다. 모양은 사람이 입을 벌린 옆모습과 흡사하다. 하늘을 향해 어민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모습인 대갑죽도는 주민의 90%가 어민인 이곳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섬이라고 한다. 얼마나 걸었을까, 짧은 트레킹 코스의 반환점이자 대청도 최고의 경관을 자랑한다는 조각바위언덕 전망대에 도착했다. 전망대를 기준으로 오른쪽엔 서풍받이, 왼쪽엔 조각바위 언덕의 정상, 뒤로는 넓은 갈대밭과 둑바위 해안으로 이어지는 아담한 길이 있다. 잠시 땀을 닦고 숨을 골랐다. 어제 저녁에 못 다먹은 홍어회와 소주로 정상주를 한 잔씩 돌렸다. 시원한 해풍에 정상주 한 잔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더구나 최고의 경관을 바라보면서 먹는 싱싱한 홍어회는 우리 모두를 황홀감에 물들게 했다. 시간을 보니 ‘코리아킹’이 일행을 태우러 올 시간이 불과 1시간여밖에 남지를 않았다. 부지런히 하산을 했다. 선진포항 전망 좋은 음식점에서 성게 칼국수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나니 몸은 노곤하고 늘어졌지만 시간에 쫓겨 부지런히 항구로 내려왔다. 어느덧, 1박2일의 트레킹이 끝나가고 있었다. 비록 짧은 시간으로 소청도와 대청도의 모든 것을 보고 느낄 수는 없었지만 시간에 비해 많은 것을 보고 간다. 이 멋진 풍경들이 당분간은 잔상으로 남을 것이다.
- 2018-11-15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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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답고 푸른 섬 ‘소청도’
- 2018년 어느 가을 날, 아침 일찍 인천의 연안부두 대합실로 향했다. 초등학교 동문 선·후배 12명이 소청도와 대청도 투어를 할 목적으로 의기투합했기 때문이다. 여건이 된다면 바다낚시도 할 예정이었다. 연안부두를 출발하여 소청도에 들렀다가 대청도를 경유해서 백령도를 목표를 출발하는 쾌속선 ‘코리아킹’을 탔다. 과거에는 인천서 백령도까지 240여km. 시속 12노트(22km) 정도로 달리던 옛날 연락선은 10시간가량 소요됐는데 지금은 쾌속선으로 4시간이면 다다를 수 있다. 그것도 소청도, 대청도를 들러 기항하는 시간까지 합친 것이니, 실제 항해 시간은 3시간 반 남짓으로 보면 될 듯하다. 가을 냄새 물씬 풍기는 높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연안부두를 출항한 ‘코리아킹’은 유유히 인천대교 밑을 빠져나가자 거침없이 망망대해를 달렸다. 쾌청한 날씨이기는 하나 해무(海霧)가 살짝 물든 바다를 가르며 달리니 흡사 거대한 모터보트를 타고 달리는 기분이다. 우리 일행은 멋진 여행을 기대하면서 출렁이는 가을바다로 가르고 있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드디어 멀리 섬이 눈에 들어왔다. 잠시 후 소청도가 온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소청도’는 인천에서 210km 거리로 옹진군 대청면에 속해 있는 섬이다. 지도에서 보면 북방한계선(NLL)을 기준으로 가장 북쪽에 백령도, 그 아래 대청도, 그리고 소청도가 있다. 바위섬인 소청도는 ‘소암도’라고도 하였으나 이후에 수목이 무성한 섬이라 해서 ‘소청도’로 불린다. 완만한 섬의 형태가 남북으로 길게 널려 있고, 200여명이 채 안 되는 주민들이 두 개 마을(예동, 노화동)에 살고 있다. 옹진군에 속하는 소청도는 한때 '푸른 섬'이라 하여 청도(靑島)로도 불린 바 있다. 서해 5도를 밝히는 등대 소청도 등대 섬의 서쪽 끝 해안절벽 83m 고지에는 새하얀 소청도 등대 하나가 외로이 서있다. 소청도 등대는 대한민국 서해안의 최북단에 위치해 육지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등대로 기록돼 있다. 마을을 지나 등대로 가는 길은 언덕배기 외길이다. 소청등대는 1908년 설치되었다. 점등 당시의 등명기가 지금도 광채를 발하며 백 년 동안 쉬지 않고 돌고 있다. 소청도 등대는 1908년 1월에 점등(點燈)하였으나 등탑이 노후하여 2006년에 새로운 등탑을 건립했다. 콘크리트 구조의 등탑 높이는 18m로서 42㎞ 떨어진 해상에서도 불빛을 볼 수 있다.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3교대 근무를 한다는 등대지기의 친절한 설명으로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등탑에 올라 바라본 바다는 너무나 푸르고 고요했다. 해안선 따라 울긋불긋 가을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햇살은 따사로웠으나 해풍이 시원하게 불어주니 마음속에 쌓여있던 찌꺼기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듯했다. 소청도에는 비록 높은 산은 아니지만 제법 가파른 산비탈에 미로처럼 자동차길이 나있었다. 4륜구동 2대에 나누어 탄 일행은 마치 곡예 하듯 달리는 차에 의지한 채, 작은 등성이 하나를 넘었다. 소청도 분 바위 소청도에는 유난히 하얀 바위가 많았다. 과거 섬 주민들은 값을 쳐주겠다는 육지 사람들의 말에 하얀 바위를 깨 자루에 담아 팔았다. 쏠쏠한 수입원이었다. 지난 2016년 지질학자들이 이곳을 다녀가고 나서야 소청도의 '귀한 존재감'이 드러났다. 분을 바른 듯 하얗다고 해서 분바위로 불렀던 바위는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대리석이었다. 석회암이 오랜 시간 열과 압력을 받아 대리석으로 변한 것이었다. 소청도 남동쪽 끝자락에는 이런 대리석이 일렬로 길게 늘어서 있다. 조상들은 달빛에 빛나는 대리석을 '월(月)띠'라고 불렀다. 등대가 없던 시절에는 이걸 보고 뱃길을 찾았다고도 한다. 분바위(월띠)는 석회암이 변하여 대리암으로 된 것으로서 하얗게 보이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희귀한 원생대 지질유산이므로 천연기념물 제508호로 지정되었다. 분바위가 우뚝 서있는 해안가에는 무성한 다시마와 홍합이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다. 바다냄새가 물씬 코에 스민다. 분바위와 더불어 바닷물에 잠긴 갯바위의 고고한 모습이 눈을 사로잡는다. 오랜만에 걸어보는 바다풍경은 어릴 적 섬에서 나고 자랐던 우리들에게는 잃어버린 향수를 일깨워주었다. 바닷물에 빠지지 않고 갯바위에 겨우 의지한 채, 바닷물에 간들거리는 다시마를 채취하니 금세 한 무더기가 되었다. 신이 난 일행은 홍합을 채취해서 즉석에서 홍합탕을 끓였다. 싱싱하고 탱글탱글한 홍합의 구수한 맛에 모두가 환성을 지른다. 어디 그 뿐이랴! 말간 바닷물에 성게가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귀하디귀한 성게가 이렇듯 지천으로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으니 이 얼마나 청정해역이던가! 성게를 건져올려 맛을 보니 그 짭조름한 맛 뒤에 달콤한 향이 뒷맛으로 입안 가득히 풍긴다. 즐거운 시간을 뒤로 한 채, 소청도 선착장으로 이동했다. 멀리서 신나게 물살을 가르며 나타난 ‘코리아 킹’을 타고 일행은 다음 여정지인 대청도로 향했다.
- 2018-11-02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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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백, 겨울을 품고 봄에 깨어나다
- 겨울에도 꽃이 달린다고 해서 이름 붙은 동백(冬柏). 늦겨울부터 봉오리가 맺기 시작해 3~4월이면 꽃망울이 터져 절정을 이룬다. 대개 울릉도나 대청도, 오동도 등 섬에서 자생하지만 육지에서도 선홍빛 동백꽃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다. 충남 서천군의 동백나무숲이다. 천연기념물 제169호로 지정된 마량리 동백나무숲에는 80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자라고 있다. 동백나무로 유명한 부산 동백섬이나 여수 오동도 등보다 늦게 개화해 4월에도 만개한 꽃을 볼 수 있다. 이곳 전설에 의하면 500여 년 전 마량의 수군첨사(水軍僉使)가 꿈에 바닷가에 있는 꽃 뭉치를 키우면 마을에 항상 웃음이 가득하고 번영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고 바닷가에 나가보니 그곳에 동백이 있어 증식시킨 것이라 전해진다. 그 뒤로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음력 정월이면 이곳에 모여 고기가 많이 잡히고 바다에서 무사하길 염원하며 제사를 지내왔다고 한다. 동백나무숲은 그렇게 마량리 마을의 수호신이자 방풍림(防風林) 역할을 하고 있다. 동백나무가 심어진 언덕을 따라 올라가면 동백정(冬柏亭)이 나온다. 빽빽한 동백나무숲뿐만 아니라 드넓은 서면 앞바다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장소다. 일출과 일몰이 아름다운 곳으로도 알려져 있어, 매 연말이면 마량포 해넘이·해돋이축제가 열린다. 동백나무숲 인근 춘장대해수욕장에서도 매년 봄 동백꽃주꾸미축제를 개최한다. 다양한 주꾸미 요리 시식 행사부터, 주꾸미 낚시, 동백 주꾸미 포토존, 동백나무숲 보물찾기 이벤트 등을 즐길 수 있다. △ 마량리 동백나무숲 충남 서천군 서면 마량리 산 14번지 동절기 09:00~18:00, 하절기 09:00~17:00
- 2017-03-27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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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철의 야생화] 연분홍 치마 흩날리며 핑크빛 사랑 나누는, 개정향풀
- ‘나이가 들수록 봄이 좋아진다’고 입버릇처럼 되뇌던 옛 어른들을 기억하게 하려는 듯 ‘모든 게 파릇파릇 새롭게 시작되는 봄이 좋다. 아지랑이 아스라하게 피어오르는 봄이 좋다’고 말하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 세대들을 갈수록 많이 만나게 됩니다. 생동하는 봄의 기운이 나이 든 세대에겐 삶의 기력을 되찾아 주는 효과가 있는 게 확실한가 봅니다. 그렇다고 연분홍 치마 흩날리며 가는 봄날을 한사코 붙잡아 둘 도리는 없고 그저 가는 세월을, 덧없이 가버린 봄날을 아쉬워하는 6월입니다. 그렇듯 가버린 봄날이 더없이 그리워지는 때 연분홍 봄날의 환희를 다시금 안겨주는 야생화가 있습니다. 바로 ‘개정향풀’입니다. ‘청춘의 연분홍 사랑이여 다시 한 번’이라고 외치고 싶은 이들에게 서·남해 바닷가를 찾아가 보라 권합니다. 가서 온 벌판을 핑크빛으로 물들이는 개정향풀을 만나 눈 깜박할 새 사라져버린 봄날의 생동감을 다시 한 번 느껴 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개정향풀은 크게는 어른 키만큼 자라며 나팔 모양의 손톱만 한 연분홍 꽃이 고깔 형태로 다닥다닥 피는데, 많은 개체가 무리 지어 자생합니다. 10여 년 전 개정향풀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일제 강점기인 1910년대 일본인 학자가 표본을 남긴 이후 잊혔다가 민간 환경단체 회원들에 의해 90여 년 만에 다시 발견됐다고 언론에 대서특필된 것이지요. 그 후 서·남해안 여러 곳에도 자생하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사라진 게 아니라 저 홀로 피고 지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는 게 정답이겠지요. 그렇듯 큰 키에 비해 꽃은 자잘하기에, 잘 살피지 않으면 개정향풀 꽃의 진가를 알아채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이름 앞에 붙은 ‘개’는 큰 키와 꽃 모양이 전남 완도와 인천 광역시 대청도 등 서해 섬의 산지에 자생하는, 같은 협죽도과의 정향풀[사진]을 닮은 풀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아예 ‘갯정향풀’로 불린다고 하는 걸 보면 얕잡아 부르는 개(犬)가 아니라, ‘갯가’ 식물이라는 뜻의 ‘개’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꽃 색은 정향풀은 하늘색, 개정향풀은 연분홍색입니다. 작약이나 투구꽃처럼 오각형 뿔 모양의 씨방이 농익으면 터져 씨가 여기저기로 날려 번식합니다. Where is it? 도감에 따르면 중부 이북에 자생한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서·남해안 섬에서 만났다는 사람들이 더 많다. 오래전 식물학자들이 표본을 채집했다는 충북 단양 경기도 여주, 평택 등 내륙에선 현재 자생지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경기도 화성의 작은 섬 선감도와 안산 시화공단 인근 둔치에서 제법 풍성한 군락을 만날 수 있다. 최근에는 전남 신안 압해도와 강원 삼척, 경북 영덕 등 전국에서 자생지가 속속 발견되고 있다. 경기도 화성의 경우 선감어촌체험마을 초입 수만 평의 논 사이에 작은 수로가 지나고, 그 수로변 100여m 구간에 어른 가슴까지 차오르는 개정향풀 군락지가 있다.
- 2016-06-15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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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자문단 칼럼]자생 동백나무의 누명- 안영희 교수
- 2014년 새해가 밝았다. 금년 1월은 예년에 비해 큰 추위 없이 포근한 날씨가 지속되고 있다. 이즈음부터 남쪽 지방에서는 때 이른 붉은 동백이 한두 송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하얀 눈이 쌓인 나뭇가지 사이로 붉게 핀 동백과 푸른 잎사귀는 삭막한 겨울을 아름답게 빛내준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수많은 문인들이 한겨울의 세찬 눈보라를 견디고 피어나는 동백을 예찬했다. 동백은 흔히 자생 동백나무의 꽃을 일컫는 말이다. 제대로 표현을 하자면 ‘동백나무 꽃’으로 표기하는 것이 올바를 것이다. 멀리서 보는 동백나무 꽃은 짙은 녹색 잎에 가려져 그 화려함이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가까이에서 보면 붉은색 꽃잎과 희고 노란 꽃술이 완벽하게 조화된 궁극의 아름다움을 지닌 꽃이다. 동백나무는 꽃만 아름다운 식물이 아니다. 동백나무 종자로부터 얻는 불휘발성의 동백기름은 잘 굳지도 않고 강한 향기가 없어 예전부터 생활에 널리 이용됐다. 질 좋은 식용유는 물론이고 약용유, 화장유, 등잔기름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됐다. 특히 변변한 여성용 화장품이 많지 않았던 옛날에는 최고급 머릿기름이나 목욕 후에 바르는 향장유로 사랑받았다.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동백기름에는 건강에 유익한 팔미트산, 스테아른산, 올레산, 리놀렌산 등의 지방산이 올리브유 이상으로 포함돼 있다고 밝혀졌다. 차나무와 동일한 차나무과에 속하는 동백나무의 어린 잎은 녹차 대용으로 마셔도 좋다고 한다. 동백나무차는 맛도 좋고 열탕으로 우려낸 차 추출물에는 다양한 종류의 항산화 물질과 항암 활성물질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백나무 목재는 담황색을 띠고 조직이 치밀하여 강도가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므로 예전에는 사람 손을 많이 타는 다식판, 장기 알, 주판 알, 악기, 얼레빗 등을 비롯해 절에서 사용하는 목어, 견고한 농기구나 목공구를 제작하는 데 사용됐다. 또 동백나무로 구운 숯은 단단하고 그을음이 전혀 없으며 화력이 오래 가기 때문에 옛날에는 화로에 사용하거나 찻물을 달이는 데 이용됐다. 말린 동백나무 꽃봉오리는 ‘산다화’라 하여 한방에서는 귀중한 생약으로 이용하고 있다. 일 년 내내 번쩍이는 녹색 잎이 무성한 동백나무는 불에 잘 타지 않기 때문에 남부지방에서는 방화수로 많이 식재했다. 지금도 오래된 사찰 주변에는 인위적으로 식재한 것으로 보이는 동백나무 숲이 잘 보존돼 있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전북 고창 선운사, 전남 강진 백련사, 해남 대흥사 등의 절 주변에 울창한 동백나무 숲이 유명하다. 그러나 이렇게 꽃도 아름답고 쓸모가 많아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 오던 동백나무가 어느 순간에 ‘일본을 상징하는 식물’ 혹은 ‘왜색(倭色)을 띠는 식물’이라는 그릇된 인식으로 점차 우리와 멀어지게 됐다. 심지어는 1964년에 가수 이미자가 발표해 무려 35주 동안 가요 순위 1위를 차지하고 당시에 10만장의 음반이 판매됐던 한산도 작사, 백영호 작곡의 ‘동백아가씨’라는 대중가요는 왜색풍이라는 이류로 한동안 방송이 금지되기도 했다. 우리 국민들 대부분은 동백나무의 자생지가 일본으로 알고 있다. 식물지리학적으로 일본에는 광범위하게 넓은 지역에 동백나무가 분포하고 있다. 또 일본인들이 동백나무를 좋아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분포 면적은 일본에 비해 적을지 모르지만 우리나라 곳곳에는 아름다운 동백나무가 흔하게 자생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동백나무는 위도상 가장 북쪽에 분포해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많은 학술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와 같이 동백나무 분포 북한계선에 자생하는 한국의 동백나무는 성질이 강건해 혹독한 환경 하에서도 잘 적응하고 다양한 변이를 나타내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선입관 때문인지 아직까지 깊이 있는 연구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우리나라의 동백나무는 주로 따뜻한 남부지방의 해안가에 많이 자생한다. 그러나 동쪽으로는 울산의 목도에서부터 남해안 일대 및 서쪽의 인천시 대청도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는 것이 자생 동백나무이다. 해안가뿐만 아니라 기후가 온화한 남부지방의 상록수림에도 널리 자라는 수종이 동백나무이기도 하다. 일본이라는 국가에 대한 거부감으로 인해 귀중한 우리의 자생 식물자원에 대한 관심을 소홀히 해서는 절대 안된다. 각국에서 21세기의 식물유전자원은 나라의 국력을 상징하는 국부로 인정되고 있다. 우리의 자생 동백나무는 세계적으로 그 아름다움을 알리고 우수한 형질을 개발하여 경제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가치가 충분하다. 이제부터라도 우리의 자생 동백나무에 대한 오해를 씻고 보전과 개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 2014-02-11 1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