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적인 병원 터는 어디일까. 아랍 의학의 아버지 라제스는 도시 곳곳에 신선한 고깃덩이를 걸어두고 장소를 물색했다. 가장 부패가 덜 된 고기가 걸린 곳에 병원을 세웠던 것. 한의사 김두섭 원장(62, 세종한방힐링센터)은 조용한 자연 속에 병원을 꾸리는 게 옳다고 봤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라는 생각으로. 해서, 자못 후미진 산속으로 귀촌했다. 굳이 외진 산골까지 찾아들 환자가 몇이나 될까마는, 그는 즐겁다. 자신의 지향과 실천에 만족하기에.
준비기간은 길었다. 귀촌을 내심에 담고 이미 십수 년 전에 터를 장만해뒀다. 젊으나 늙으나 사람의 대망(大望)은 주로 서울로 쏠린다. 하지만 일찌감치 산골살이를 숙원으로 삼은 김두섭 원장에겐 오직 귀촌이 소망스런 답이었던 거다. 공들여 낫을 갈고 나서야 땔나무를 벨 수 있다. 오랫동안 공들여 귀촌 준비를 해왔기에 본격적인 시동은 한결 가뿐했다. 드디어 산골에 들어가 시작한 건 4년여 전 군의관으로 근무했던 군생활을 마치고서였다.
육사 37기 출신으로 군에 들어가 대령으로 예편하기까지 흐른 세월은 37년. 군에서 인생의 절반쯤을 살았구나. 애당초 군에도 의업(醫業)에도 청운의 꿈을 묻은 바가 없었다지. 우연이 그의 길잡이였던 모양이다. 소싯적에 부풀린 청운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부자로 살고 싶다는 것, 그 하나였더란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성장기의 시골생활에 넌더리가 났기에.
“가난이라는 게 너무도 싫었어요.
9남매를 건사하느라 부모님은 모진 수고를 하셨지만 다들 늘 배를 곯았어요. 아, 나는 이다음에 농고를 나와 새마을지도자가 돼 돈을 벌 거야! 꿈이랬자 겨우 그쯤이었죠. 머리가 굵어지면서는, 그러니까 고3 땐 그 가당찮은 꿈을 버리고 해양대학을 가기로 맘먹었어요. 외항선을 1년만 타면 1억을 번다는 얘기를 듣고서였죠.”
“해양대학에서 육사로 목표를 바꾸었군요.”
“해양대학 입시 준비 중에 연습 삼아, 실력 테스트 삼아 육사 시험을 봤는데 묘하게도 덜커덕 붙었어요. 뜻을 두지 않았음에도 우연히 엉겁결에 육사 생도가 돼버린 겁니다. 그러나 곧 방향을 잃었어요. 육사 나와서 뭐하나? 농사 기술을 배울 곳도 아니고, 돈을 맘껏 벌 일도 못되고, 내가 지금 뭐하는 짓인가?
1학년 말에 그런 심각한 회의에 빠졌어요. 그러던 차 과외활동으로 참여한 동양철학반에서 침술을 만나게 됐습니다.”
“그게 한의사로 변신한 우연한 계기?”
“바늘 하나로 환자를 다루는 침술에 강렬한 흥미를 느꼈어요. 침을 잘만 배우면 돈을 모을 수도 있을 것 같았고, 그래서 열심히 침술을 익혔어요. 그러자 점차 한의학 전반으로 관심이 확장됩디다. 한의사가 되고 싶다는 포부가 생기더라고요. 결국 장교 임관 뒤 우여곡절을 거쳐 경희대학교 한의대에 들어가게 됐어요. 육본에서 운영하는 위탁교육생 자격으로 5년간 공부하고 졸업했죠.”
육사 생도와 운명처럼 만난 한의학
한의사 자격증을 받은 김 원장은 이후 줄곧 한방 군의관으로 복무했다. 전역 시의 직책은 국군수도병원 건강증진센터장. 건강증진! 그게 김 원장의 평생 소임이자 방향이다. 즐겁게 살지 않고서 건강할 수 없다. 건강하지 않고서 즐거울 수 없다. 생의 모든 명암은 어쩌면 몸 건강 문제에서 파생하거나 귀결된다. 불가의 통신에 따르면, 이 세계의 근본은 고(苦). 죽음 앞에 서 있는 게 생이지 않던가. 불친절한 죽음이 우리를 방문하는 날까지 가급적 건강을 지속하고자 용을 쓸 수밖에 없는 게 모든 살아 있는 존재의 숙명이다. 늘그막에도 삶은 때로 슬프도록 아름답다. 눈부신 노을빛처럼. 하나 몸은 부질없이 낡고 닳고 시들어간다.
머잖아 조락할 수밖에 없는 건강에 관한 쓸쓸한 사념은 낯선 게 아니다. 그러나 김두섭 원장의 생각은 영 다르다. 어허! 그게 아니오! 늙어서도 청년의 몸으로 살 수 있는 이치가 여기에 있는 것을! 그는 그리 탕탕 외치고 싶은 것 같다. 들어볼까. 경청해 모실 만한 대책이 흘러나올 수도 있으니.
“제가 내심 장담하는 게 뭐냐면, 난 얼마든지 장수할 자신이 있다, 칠팔십 살이 되더라도 청년처럼 건강한 몸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 겁니다. 지난 수십 년간 수많은 환자를 진료하고 치료하고 관찰했는데요, 늘 궁금했던 건, 일단 병 치료를 잘 마쳤더라도 일상생활로 복귀하면 다시금 병증이 도지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었어요. 이게 왜 이러지? 무엇이 원인이지? 궁리 끝에 내린 결론은 나쁜 생활습관이 근본 병인이라는 거였어요. 타성에서 벗어나 좋은 습관을 길들이는 게 무병장수의 첩경이라는 얘기.”
“매사 습관의 노예로 살다 스스로 궁지에 몰리는 게 사람이죠. 그걸 알면서도 쉬 고치지 못하는 게 인생이라는 희비극일 테고.”
“무엇보다 식습관부터 바꿔야 해요. 저의 식생활을 들어보실래요? 부디 따라 해보시길. 아침엔 잡곡밥을 지어 말린 뒤 프라이팬에 볶은 튀밥 형태의 밥 한 공기를 아주 천천히 먹습니다. 아주 천천히! 이게 핵심이에요. 천천히 먹기 위해 오래 씹어야만 목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좀 딱딱한 밥을 일부러 만드는 겁니다. 천천히 오래 씹을 경우 밥알에 침이 충분히 섞여 위장으로 내려갑니다. 입안의 침! 이거 놀라운 보약이에요. 침에 함유된 효소(酵素)와 프티알린(ptyalin). 이게 음식물이 위로 내려가기도 전에 입안에서부터 벌써 소화 작용을 해내는 겁니다.”
“침이 입안에서 소화 작업을 왕성히 하도록 음식물에 침을 충분히 섞어줘라? 그게 결국 위장기능을 극대화한다?”
“위장은 내장기관이라는 공장 시스템에서 중추 역할을 합니다. 위라는 장비가 부드럽게 가동할 경우, 위장이 튼튼할 경우, 오장육부가 평화로워져 온갖 병을 예방하거나 물리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겁니다.”
“점심도 저녁도 딱딱한 밥을 먹는 거예요?”
“지나친 음식 금욕은 오히려 스트레스를 가져오는 법. 점심은 몸이 원하는 대로, 먹고 싶은 대로, 최대한 잘 먹습니다. 밥상 가득 다양한 찬을 차려 식구들과 둘러앉아 천천히 즐겨요. 저녁엔 금식을 합니다. 밤엔 콩팥과 간이 하루치 독소를 거르기 위한 맹활약을 하거든요. 이럴 때 음식을 집어넣어 훼방을 하면 안 되는 겁니다. 정 출출하면 과일즙 한 잔을 마시면 되고.”
좋은 습관이 무병장수의 첩경
인생은 육십부터라지? 이젠 백세 시대라지? 성난 수말처럼 부지런히 뛰어 세상의 정글을 괴롭게 통과한 뒤의 노후란 실로 진정한 낙원의 삶을 누릴 찬스일 수 있다. 그러자면 건강해야 한다. 그래서 누구나 무병장수를 선망한다. 어떤 신들은 인간이라는 별난 종족이 오래 사는 걸 싫어할 수도 있다. 인간의 세력이 커지면 지상의 소음과 잡음도 그만큼 커지니까. 인간들 때문에 도대체 시끄러워 편히 낮잠을 잘 수가 없다니까! 그렇게 툴툴거리는 신도 있을 게 아닌가. 그렇다면 거북이보다 목숨이 짧고 플라스틱 바가지보다도 빨리 썩는 게 인간 몸뚱이임을 명석하게 알아 저승사자가 호명하는 대로 겸손히 응하는 게 순리일 성싶다. 하지만 욕망의 공식이라는 게 그렇게 간단하던가. 내남없이 한사코 병 없이 오래 살기를 숙원사업으로 여기지 않는가. 그 숙원사업을 성취하고 싶걸랑 아침밥만이라도 침을 담뿍 섞어 드소서! 김 원장의 훈수가 그렇다.
엄동설한에도 맨발로 돌아다니는 건각이 있다. 굳이 양말을 꿰신지 않아도 발이 이미 따뜻해서다. 이 사람은 벌목장에서 얻어온, 절집 대웅전 기둥만 한 통나무를 둘러메고 사뿐사뿐 행진한다. 절구통처럼 굵다랗게 토막 낸 통나무를 퍽퍽 도끼로 패 순식간에 장작을 만든다. 힘 좋기로 인근에 소문났다지? 이 중뿔난 장정이 바로 김두섭 원장이다. 난 아직 청년이오! 늘 그리 외치는 모양이다.
건강상태가 유난하니 귀촌의 나날이 영일(寧日)이다. 자연 속에 살고자 자원한 산골살이에 별다른 시름이 없다. 이게 거저 주어진 게 아니란다. 지난날 오랫동안 시난고난 지병에 시달렸단다. 의사라도 병을 달고 살 수 있는 일이지만, 여하튼 스타일 심히 구겼겠다. 그러나 그는 병을 털어냈다. 지병에서 해방되고서야 안심과 자족이 있는 일상을 누릴 수 있었다는 것이고.
“일찌감치 위장에 이상이 왔어요. 소위 시절부터 근 30년, 그 긴 세월을 위장병에 부대끼며 지냈어요. 그 덕분에 술이라는 걸 거의 마시질 못하고 군생활을 했어요. 위장이 비정상적으로 축 처져서 오는 소화 장애, 즉 심한 위하수증이었어요. 만성피로에 늘 시달렸죠. 원인은 과식에 있었는데 침, 뜸, 부황, 보약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도 소용이 없더라고요.”
“30년 된 병증을 결국 무엇으로, 어떻게 다스렸죠?”
“침이나 보약 같은 치료 수단은 결국 보조제에 불과하다는 걸 뒤늦게 알았어요. 즉, 나쁜 생활습관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건강을 회복하기 어렵다는 걸 깨달은 거죠. 간소하고 절제 있는 생활, 지나친 이기심에 사로잡히지 않는 정신, 자연을 마음에 담는 태도, 그런 게 좋은 건강과 좋은 삶을 가져온다는 겁니다. 식습관의 개선은 물론, 규칙적인 운동도 그 무엇에 앞서 중요해요. 귀촌 초기에 철저하게 식습관을 변화시키고 좀 격한 스트레칭을 하자 몸이 대번에 달라집디다. 현재 저의 몸 상태나 체력은 20대 시절보다 한결 낫습니다.”
고통이 엄습해도 얻어 채울 게 있다
이미 속세에 물든 범인으로선 모범적인 생활을 고수하며 살기가 쉽지 않다. 자기 억압적인 절제는 자칫 인생을 따분하게 만들 수도 있겠고. 조선의 거목 추사 선생은 사람이 마땅히 즐겨야 할 세 가지 일을 꼽았다. 첫째는 독서, 둘째는 음주, 셋째는 호색. 독서를 첫째로 친 걸 보면, 야야 놀더라도 공부는 하고 놀아라, 뭐 그런 뉴스가 아닐까 싶지만, 일테면 하늘과 땅의 결합을 지상의 인간들이 재연하는 신성한 의식이 성(性)이지 않겠는가. 김 원장의 생각을 들어볼까.
“노년에 이르러서도 주색을 참답게 사용하는 게 현명하겠죠. 그게 무질서에서 벗어난 것이라면 사랑의 범주에 들 테니까. 그러기 위해서도 건강하게 살자는 겁니다. 비아그라 없이도 행복하게 살자는 겁니다. 몸 건강이라는 기초공사를 충실하게 하자는 거, 가급적 자연 가까이로 귀촌해 온유한 품성을 기르자는 거, 저 숲속에서 상생하는 생명들처럼 나 혼자만이 아니라 남들과 함께 잘 사는 노후를 즐기자는 거, 이런 것들을 생각의 중심에 놓고 삽니다.”
생활습관을 바꾸라! 산속에서 맨발로 돌아다니는 남자의 입에 붙은 소리가 그렇다. 귀촌으로 모호한 낭만을 구가할 게 아니라, 몸을 남김없이 쓰는 노동으로 심신의 건강부터 복구하라는 얘기에도 뼈가 들어 있다. 편리 대신 불편을 추구해 기른 야성으로 자연을 닮으라는 권장 역시 대안이겠지.
“이런 생각 곧잘 합니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부족하기에 태어났겠지. 완벽했다면 이미 전생에 해탈했겠지. 그런 생각으로 불편과 고통마저 긍정하며 살고 있어요. 불편과 고통이 엄습했을 때, 내가 깨졌을 때, 그때 오히려 얻어 채울 걸 발견하게 되니까. 생활을 바꿀 수 있는 기회이니까.”
김두섭 원장이 주는 귀농준비 Tip
•검소한 생활을 작정하고 귀촌하자. 그게 자연에 가까워지는 길이다.
•가급적 모든 일들을 손수 처리하자. 인건비를 들여가며 남의 손 빌릴 것 없이 몸 단련 삼아 직접 노동을 하자. 젊게 사는 방법이다.
•감상적인 생각을 앞세운 귀촌은 실패의 첩경이다.
•처음부터 큰돈 들여 집 살 필요 없다. 일단은 세를 얻어 살며 차근차근 적응하는 게 옳다.
박원식 소설가
중앙대 문예창작과에서 배운 작가. 오랫동안 자연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대상을 좋아할수록 아득해지는 미스터리가 늘 그를 궁리하게 만든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안목을 얻는 일의 요원함을 실감한다. 그가 즐기는 것은 산촌의 적막, 암자의 풍경소리, 낯선 여행지의 선술집, 우연한 만남 등이다. ‘천년 산행’, ‘암자에서 듣다’, ‘산골로 간 예술가’ 등의 저서가 있다.
애초부터 걷기와 가까울 수밖에 없었다. ‘고비’라는 말과 맞닿아 있던 삶. 다양한 운동 방법이 세상에 넘쳐나지만 걷는 게 그에게는 최적, 최상, 최고의 선택이었을 게다. 극복을 위한 아주 원초적 접근 방법. 한 발짝 한 발짝 내디뎌 무조건 길을 나선다. 걷는다. 여행한다. 궁극의 선택 안에서 자유를 찾고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내가 목소리만 좋았으면 배우가 됐을 거예요!(웃음)”
사진을 찍는 동안 오십 넘은 중년의 얼굴이 어린 소년처럼 한껏 생기가 넘친다. 모델로서 이런 포토제닉 또한 오랜만이다. 기본적으로 재밌고 대화하는 상대를 편하게 해준다. 자신에 대한 사랑까지 충만하다. 삶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걷기에 여행 이야기가 더해지니 함께하는 시간이 즐겁다. 최근 ‘마흔 넘어 걷기 여행’이라는 책을 낸 걷기 여행 전문가(?)이자 강동경희대학교병원 한방신경정신과 김종우(金鍾佑·53) 교수를 만났다.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세계의 걷기 성지까지 두루두루 섭렵했다.
“제 나름대로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걷기 여행에 관한 책을 쓰게 됐습니다. 제 삶의 철학 중 하나죠. 여행을 가더라도 좀 걷자! 대학생인 딸도 그렇고 저보다 어린 직장인, 병원 내 레지던트들이 들려주는 여행 이야기도 그렇고. 좀처럼 재미가 없어요. 안타까워요. 어디를 가도 장소를 점처럼 찍어서 가요. 마치 사진작가처럼, 먹는 것을 찾아 떠난 셰프처럼 그렇게요.”
선을 연결해 영토를 확장하듯 면을 만들고 입체적인 그림을 그려가는 게 걷기 여행이다. 돈도 적게 들고 좋은 것도 많이 볼 수 있다. 여행자 자신의 관심사를 명확히 알게 해주기 때문에 걷기 여행이 매력적이라고..
“걷기는 인간의 본능적 행동이자 의도하는 바를 이루게 하는 행위이죠. 여행은 반복된 일상에서 벗어나서 진짜 나를 찾아가는 작업이라고 정의하고 싶어요. 걷기와 여행이 결합하면 떠나는 순간부터 마칠 때까지 여정 속에 푹 빠져서 자기 자신을 찾고 새로운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걷기에 의사의 해석이 더해지다
걷기 여행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 걷기가 뭔지 들어보기로 했다. 걷기에는 운동이라는 요소와 철학이라는 요소가 맞물려 있다고 김종우 교수는 말한다. 걷기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 육체적인 성취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걸으면서 여행하고, 세상을 보고, 사람을 만나고, 문화를 가까이서 느낄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포함할 수 있는 단순하지만 놀라운 행위가 걷기다.
“한 일간지에서 걷기 두 시간 해봤자 운동 효과 제로라는 제목의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요즘 쓰고 있는 문화일보 고정 칼럼에 ‘걷기는 굉장히 중요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숭고한 철학이 담긴 활동’이라는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걷기를 그냥 운동이라고만 생각하면 그건 걷기가 아니죠.”
스트레스와 화병 전문가인 김종우 교수는 오랜 기간 한 월간지에서 주최하는 건강캠프 등에서 상담과 주치의를 맡아왔다. 한의학을 하다 보니 스트레스 치료의 가장 좋은 조건이 자연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사람들 대부분 활동량이 많이 떨어집니다. 가장 큰 해결책이 어떻게 하면 활동량을 늘리느냐 하는 점이죠. 그런 사람들에게 있어 자연만 한 좋은 환경은 없죠. 물론 자연에서 어떤 방법을 쓸 것인가도 중요하겠지만 조용히 걷고 사색하는 것만으로도 심적 치유를 느낄 수 있습니다.”
걷기 여행이 주는 매력을 말하다
치유 프로그램이나 트레킹 스태프로 참여할 때마다 하나의 주제를 선정해 참여자들과 토론을 하고 강의도 한다. 선정된 주제에 관련한 책들을 먼저 많이 읽어두고 그 느낌을 걸으면서 계속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했다.
“스태프로 참여할 때는 걷기와 관련해 훨씬 더 많은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게 됩니다. 걷기 여행의 콘셉트을 제대로 가지고 가고 싶어서요.”
문득 걷기 여행을 예찬하는 김종우 교수가 이렇게 스스로 준비해 참가자들과 철학적 의미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부담 되지 않는지 물었다. 예전부터 자신도 비슷한 방식으로 여행을 해왔기 때문에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나이 오십이 넘으면 내가 얻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얻은 것을 전해야죠. 선생의 즐거움은 가르침을 주는 것이잖아요. 가르침의 즐거움이 없으면 선생을 할 필요가 없죠.(웃음)”
김종우 교수는 일반인과 함께 참여하는 걷기 프로그램을 즐긴다. 아침 6시부터 밤 12시까지 걷고 명상하는 일을 반복하지만 행복한 시간이라고 했다.
“저는 정말 굉장한 스태프예요.(웃음) 아침 6시부터 명상이나 새벽 산책을 해요. 이때는 주로 육칠십대 분들이 참여합니다. 그리고 두 시간 걷죠. 아침식사를 하고 한나절을 걷고 점심을 먹고 또 걸어요. 저녁식사 후에는 허리나 무릎에 침을 놔줘요. 물집도 다 따주고요. 그러고 나서 오후 8시, 9시쯤 되면 밤 산책을 나가요. 그때는 사오십대가 많이 가세요. 대신 이 사람들은 다음 날 새벽에 절대 안 나와요. 저는 다시 아침 6시부터 밤 12시까지 걷죠. 풀타임으로요.(웃음)”
그렇다면 하루 중 가장 걷기 좋은 시간은 언제일까? 김종우 교수는 이른 아침 통이 트기 시작할 때를 꼽았다. 도시건 자연이건 가장 근본적인 원초적 에너지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바로 새벽이라는 것이다.
“가장 큰 접점은 해 뜰 때거든요. 여명이 딱 깃들 때 도시와 자연은 정말 달라요. 자연은 특히 이탈리아의 돌로미티 같은 곳에 가면 지구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요. 새벽에는 그 도시의 풋풋함이 느껴집니다. 자연의 기운을 그대로 내 몸에 받아들이는 것이 명상인데 새벽에는 장애 요소들이 없잖아요. 새벽 산책은 도시건 자연이건 각성, 깨달음을 느낄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이에요. 만약 도시여행이라면 해가 뜨고 나서 호텔로 돌아가기 전에 카페에 들러 에스프레소와 크루아상 하나 딱 먹으면 최고죠. 그리고 새벽에 걸으면 두 배는 더 여행할 수 있고요.”
모두가 말린 히말라야에 오르다
걷기 프로그램 주치의로 활동하다 급기야 히말라야 트레킹에까지 참여하게 됐다. 히말라야는 김종우 교수가 가서는 안 될 장소였다.
“저는 세 살, 일곱 살 때 심장병으로 수술을 받았습니다. 중·고등학교 때는 뛰지를 못하니까 체육시간에 맨날 낙오됐어요. 30대 중반에 부정맥 증상이 나타나서 반복적으로 응급실에 갔었고 중환자실에도 들어갔다 왔고요. 그런 저에게 히말라야가 다가왔습니다. 무조건 간 거죠.”
이런 제안이 없으면 언제 또 히말라야에 가보나 생각했다. 심장병 주치의가 말렸지만, 비아그라를 처방받아 네팔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무 생각 없이 말이다.
“도보 코스도 굉장히 좋았고 마지막에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모든 것이 너무 좋았어요. 1000m에서 2000m, 3000m 갈 때 힘들어지는데 산은 올라갈수록 에너지가 생겨요. 반복적인 리듬으로 계속 가다 보면 걷는 게 쉬워지거든요. 트레킹을 아주 재밌고 멋지게 다녀왔죠.”
웃으면서 얘기했지만 사지 보행을 하면서 힘들게 올라갔다는 고백(?)을 받아냈다. 그 후로 스페인 순례자의 길인 산티아고를 비롯해 이탈리아 아말피 해안도로와 터키의 리키안 웨이 등 세계 유수의 트레킹 코스를 다녀왔다. 그렇게 걸어 다니면서 꼭 지키는 법칙이 있는데 밤 12시에는 반드시 잔다는 것.
“일과를 마치고 나면 마을 사람들이 다니는 선술집에 가요. 맥주 한 병 혹은 와인 두 잔이 딱 적당하죠. 그리고 함께 걸었던 사람들과 여행 이야기를 해요. 사람들이 똑같은 길을 온종일 걸었다고 칩시다. 그럼 다 똑같은 거만 볼까요? 얘기를 하다 보면 훨씬 더 다양한 느낌이 와요. 그러고는 밤 12시에 취침에 들어가는 거죠.”
가족과 함께 나서는 길
꼭 프로그램을 통해 걷기 여행을 하는 것은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걷기 여행 조기교육을 받은 대학생인 아이들과 아내가 함께 할 때도 있다. 작년에는 호주의 그레이트 오션 워크를, 올해는 일본 순례자의 길인 오헨로에 다녀왔다.
“그레이트 오션 워크는 100km인데 3일 동안 60km를 걸었습니다. 어렸을 때도 아이들이 배낭 메고 10km, 20km 걸었거든요. 일본 시코쿠에 1400km의 오헨로 길이 있어요. 88개의 절을 지나는 순례길이죠. 한 번 갔을 때 다 걸으려면 45일은 걸립니다. 저는 직업도 있고 일을 하는 사람이니까 딱 10년 계획을 세웠어요. 1년에 일주일 정도 120km만 걷자. 아내하고 아이들 다 데리고 갔어요. 그런데 기특하게도 우리 애들은 걷자고 하면 걸어요.”
물론 가족들과 가면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계속 걷기보다는 도시 여행도 한다. 오헨로 길 여행 때는 이틀은 걷고 이틀 노는 방식으로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다음 달에도 오헨로 길을 가는데 아내와 6일 내내 걷기로 했다.
“아내가 날 좋아하니까요.(웃음) 나 혼자 즐기는 게 억울해서 가는 거겠죠. 그런데 아내가 대단한 것이 10년 동안 그 길을 걸을 계획이라니까 일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떠날 때마다 제안하겠지만 아마도 아내랑 함께 걷게 될 거 같아요.”
생사를 넘나드는 삶 속에서 얻은 깨달음
“언제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네 번의 전신마취를 했다. 그때 깨달았다. 수술대에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굴곡진 길 또한 쉼 없이 걸었다. 명상하고 마음을 다잡고 하는 건 벌써 오래전에 끝냈다는 김종우 교수.
“삶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봤자 달라지지 않아요. 문득 떠오르는 생각 속에서 ‘내가 이렇게 살아왔구나!’ 하고 한두 번 씩 깨달으면 됩니다. 내면의 뭘 찾겠다고 해봤자 다 내 삶이거든요.(웃음)”
올 초에도 몇 번이나 힘든 일들을 겪었다. 1월에 맹장염이 복막염으로 번졌다. 수술 도중에 담석이 발견됐지만 곧바로 제거하지 못하고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심장이 약해 전신마취가 쉽지 않았던 것. 결국 일본 오헨로 길 여행을 다녀온 후에 담석 제거를 했다.
“간단한 수술이기는 한데 일본 트레킹 가서 아이들한테 그랬어요. 아빠는 언제 갈지 모른다고요. 너희들 대학교까지 보내고 잘 키워놨으니까 언제든 혼자 살 수 있겠다고 말했죠. 물론 술 먹으면서 잘 풀어서 대화했습니다. 우리가 걷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자연과 교감을 하는 것이죠. 건강한 삶을 추구하지만, 또 언제든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니까요. 자연의 이치 같은.”
가보고 싶은 길이 있냐고 물었다. 어디를 가도 좋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학회 때문에 미국 미니애폴리스에 갔을 때도 3시간씩 걸었어요. 어디가 중요한 것이 아니죠. 걸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습니다. 적당한 장소에 에스프레소와 크루와상이 있으면 정말 끝내주겠죠.”
‘생식의 아버지’로 불리는 김수경(金秀經·75) 박사는 식품기술사, 이학박사로서 1988년에 처음으로 케일을 동결건조, 생식제품을 만들었다. 이후 생식 전문기업 ‘다움생식’을 만들어 30여 년째 운영하고 있다. 그는 최근 를 집필하고 있으며 중국 쪽과의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팔순을 향해 가고 있는 나이이지만 여전히 건강을 지키며 의욕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가 말하는 진정한 건강의 의미를 들어본다.
김수경 박사가 생식 전문기업인 ‘다움생식’을 만들면서 세운 모토가 있다. 바로 ‘모든 인간은 원래 건강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자연의 섭리를 거부하고 모든 것을 인간 위주로 바꾸어갈 때부터 인간의 수명이 짧아지고 질병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새로운 것을 찾을 때가 아니라 원래의 먹거리, 원형에 가까운 먹거리를 찾아야 할 때입니다.”
병이 있는 곳에서 어떻게 병을 고치나
김 박사는 최근 중국 쪽과 긴밀하게 얘기들이 오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중국에 가서 공산당 간부와 얘기했어요. 산업혁명 이후에 산업이 발전되며 걸어온 길이 미국이 가장 먼저다, 그런데 산업화하면서부터 공해 문제가 발생했다. 중국도 산업사회가 되면 미국이 걸어온 그 길을 걸어갈 것이라고 말해줬죠. 그런데 미국과 중국의 패러다임은 다릅니다. 미국은 예전부터 유목사회였기 때문입니다.”
김 박사는 미국과 중국은 근본적으로 다른 문화이기에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리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부분에서 김 박사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중국 전체 13억 인구 중 당뇨 인구가 1억7000만 명입니다. 그리고 고소득 인구가 5억 명인데 그 5억 명도 다 환자라고 봐야 해요. 그런데 중국 사람들이 결과적으론 삶을 고쳐야 건강해지는데, 건강을 잃은 사람들이 의학적으로만 해결하려고 하니 문제가 되는 거예요.”
건강을 고치려면 삶을 고쳐야 한다. 이것이 김 박사가 지향하는 건강법의 핵심이다.
“병원은 병이 있는 곳이지 건강이 있는 곳이 아닙니다. 병이 있는 곳에 가서 병을 어찌 고칩니까?”
건강은 자신의 삶의 결과
“건강이라는 것이 산에 있는 것도 아니고 들에 있는 것도 아니고 병원에 있는 것도 아냐. 나한테 있는 거예요. 내 안에 있는 걸 발견해야 합니다. 왜 내가 건강이 나빠졌는가, 스스로 화두를 던져야 해요.”
김 박사는 선천적인 핸디캡을 가지고 있다거나 불의의 사고를 겪었다든가 하는 것 외에는 전부 다 어떤 형태가 됐든 병은 자신의 삶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건강에 대해 말할 때 내가 어떻게 살았느냐로 화두를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인생은 자기가 사는 거지, 남이 사는 게 아닙니다. 잘못 살아놓고 남보고 고쳐달라는 얘기는 애초에 말이 안 되는 겁니다.”
부부도 서로를 잘 모른다. 죽을 때까지 모르고 산다. 김 박사는 낮은 밤을 알 수 없고 밤은 낮을 알 수 없으며 낮은 영원히 낮이고 밤은 영원히 밤이라고 했다. 부부는 그런 낮과 밤과 같다. 부부도 서로를 모르는데 의사가 피 몇 방울 뽑아서 분석해보고 CT나 MRI로 조사한다 해도 그것은 그 사람의 일생이 아닐 수밖에 없다. 그저 그 순간 그 사람의 상태일 뿐. 그 정도의 정보로 한 사람의 건강을 논하는 거 자체가 난센스라는 게 김 박사의 주장이다.
내 몸을 자유롭게 할 수 있으면 그게 바로 건강
김 박사가 바라보는 건강에 대한 시선이나 각도는 일반적인 의료의 정의와는 달랐다. 그것은 그의 개인적인 경험과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아주 안 좋았어요. 초등학교 다닐 때 말라리아를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앓았거든요. 당시에는 모기를 쫓는 유일한 방법이 모닥불을 피우는 거였죠. 그런데 그때는 사람들의 삶 자체가 짐승 수준이었어요. 먹는 거, 입는 것이 그랬고, 몸을 씻는 것도 추석 때 한 번, 설 때 한 번 하는 수준이었으니. 아무튼 고등학교 3학년 때는 6개월간 허리를 못 폈어요. 20대에는 편도선염으로 두세 달에 한 번씩 열이 39도로 치솟았고 서른두 살 때는 척추디스크에 걸렸어요, 서른일곱 살 때는 폐결핵, 마흔두 살 때는 통풍이 왔죠. 집사람이 약사이고 주치의가 있었지만 해소가 안 되더군요. 그래서 어떻게 사람이 안 아프고 살 수 있을까가 제게는 가장 중요한 화두였어요.”
병으로 계속됐던 인생이었다. 고통을 통해 치유의 힘을 알았고 스스로의 몸을 낫게 한 것은 자연 치유의 힘이었다고 단정짓는다.
“제 인생이 마흔다섯 살을 기점으로 완전히 달라졌어요. 사업에 실패했고, 온갖 병을 달고 살다 씨눈, 엽록소, 효소를 연구하고 그 식이요법을 직접 실천하면서 심신의 병에서 완전히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확신에 차서 씨눈, 엽록소. 효소를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고 1988년 서해식품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생식사업으로 성장하게 됐습니다.”
‘모든 음식물은 자연 형태 그대로 먹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생식사업이어서 그런지 그가 생각하는 건강에 대한 정의는 매우 간단명료했다.
“내 몸을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할 수 있으면 건강한 겁니다. 나이 들어서의 건강은 자력으로 화장실을 갈 수 있는가에 달려 있죠. 그럴 수 있다면 건강한 겁니다.”
나이 들어서 자력으로 화장실만 가도 건강한 것이다? 너무 늙게 보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아닙니다. 나이가 들면 중풍이 오죠. 그러면 화장실 못 갑니다. 류머티스 관절염에 걸려도 화장실에 자력으로 못 가요. 지팡이 짚고 가면, 그것도 엄밀하게 보면 자력이 아니죠.”
하, 독특하고 확고한 신념이 있으신 분이다. 민망하지만 이를 어째. 어디 더 들어볼까.
매 맞는 남자들의 진짜 비밀
그는 특히 남자들의 건강은 여자들과 잠을 잘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여자와 잘 수 없다면 명만 붙어 있는 것이지 생명의 의미가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1975년에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에게 총 맞아 죽을 때 인천에서 약국을 하고 있었어요. 저는 집사람을 돕는 셔터맨이었죠. 그때 일흔세 살이었던 한 영감님이 ‘이보게 젊은이, 여기 100만원이 있네. 이 돈을 매일 자네에게 줄 테니 날 좀 젊게 해주게’라고 말했어요. 1975년에 100만원이에요. 엄청난 돈이죠.”
노인은 6·25전쟁 때 월남해서 돈을 벌었고 부동산 임대 수입만 월 1억원이 되는 자산가였다. 매일 100만원씩이면 한 달이면 3000만원 정도. 노인은 재차 그렇게 줄 테니 날 좀 젊게 해달라고 사정했다. 노인이 젊게 해달라는 것은 정확하게 말하면 성 기능이었다. 근처 다방 여자에게 빠져 있었던 노인은 절실했다.
“노인의 그런 행동이 내가 70이 되니까 이해가 돼요. 여자들한테 매 맞는 할아버지들 있죠? 그 능력이 안 되면 매를 맞게 돼 있어요. 남자가 힘이 모자라서 그런 게 아니에요. 그런 점에서 비아그라는 의료혁명입니다. 그건 그냥 의약품이 아니에요.”
중요한 것은 건강에 대한 개념 정립이다
물론 김 박사도 나이듦이 자유롭지는 않았다.
“이 나이 되니 술도 기운으로 먹어요. 친구들과 고스톱을 쳐도 옛날에는 밤을 샜는데 지금은 아파서 택도 없고요. 여자? 양귀비가 만나자고 하면 겁부터 나죠.”
그는 노화를 막을 수는 없다고 단정했다. 다만 지연시킬 수는 있다고 말했다.
“과거에 화장품은 피부를 보호하고 예쁘게 만드는 개념이었죠. 지금은 안티에이징입니다. 주름살을 없애고 지방을 빼는 등 화장품이 의료의 보조 기능을 하고 있죠. 물도 옛날에는 그냥 마시는 것이었지만 이제 물을 말할 때 건강 도모에 치료까지 얘기하고 있어요. 먹거리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사람들이 정말 건강식이란 것을 몰라요. TV에서 선전하는 건 건강식이 아니거든요.”
그는 건강식을 먹을 때 가장 중요한 건 건강식이 아니라 건강이란 개념부터 정립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두 가지 때문에 삽니다. 우선 내 자신이 살기 위해서 살죠. 내가 살기 위해서 숨 쉬고 물 마시고 밥을 먹어야 합니다. 또 하나는 결혼해서 자신을 닮은 다른 나를 만들어서 종족보존을 성공시키는 거죠. 내가 사는 것과 또 다른 나를 살리는 삶이 온전하게 정립될 때가 건강한 삶인 겁니다.”
즐겁고 행복하려면 내려놔야
그는 산업혁명 이전까지는 사람이 사는 것과 야생동물이 사는 것이 다를 게 없었다고 주장했다.
“산업혁명 이전의 삶은 사람이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 그대로의 것을 이용하고 먹고사는 것이었습니다. 야생동물과 별 차이 없잖아요?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부터는 대량생산이 가능해졌어요. 그로 인해 수만 년, 수십만 년 이어온 인류 역사가 200년 만에 바뀌게 됩니다. 우리가 그 태풍 속에 있기 때문에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에요. 산업혁명과 통신혁명이 100세 시대를 만들긴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공장에서 찍어내는 제품이 아니라는 게 문제예요.”
케일을 동결건조한 이유도 단순하다. “다른 채소보다 각종 미네랄 등이 많고 ‘야생의 힘’을 온전하게 지니고 있기 때문”이란다. 어느 날 아내 엄성희 약사에게 간에 이상이 생긴 환자가 찾아왔다. 동결건조한 케일 분말을 권했더니 환자의 얼굴색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얼마 후 환자는 병원에서 간 완치 통보를 받았다. 그 환자를 통해 약이나 수술이 아닌 자연의 치유력으로 건강과 면역력을 되찾을 수 있다는 믿음을 얻었다. 지금까지 그가 생식 등 건강보조식품을 만들고 있는 이유다.
삶을 건강하게 만들어 병이 저절로 도망가게 만들자는 그의 건강론은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인생과 직결된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즐겁고 행복한 삶은 어떤 전제가 있어야 가능할까?
“내려놔야 해요. 내가 김정일과 이건희 회장과 동갑이거든요. 그런데 그들보다 행복해요. 이룬 일이 그들보다 많다는 게 아니라 현 시점에서의 얘기입니다. 한 사람은 엄청난 재산이 있지만 자신의 의지로 돈을 쓸 수 없는 상황이고 한 사람은 죽었잖아요.”
대체의학과 한방을 공부한 그는 ‘자연음식 전문가’ 아내와 경남 사천의 바닷가에 황토집을 짓고 산다. 효소가 살아 있는 생식 밥상으로 건강을 챙기며 치유의 식재료들을 찾고, 개발하고, 널리 알리고 있다.
“‘치료(cure)’는 의료적 행위입니다. 의사는 그래서 치료를 하죠. 우리 할머니들이 아픈 손자의 배를 쓰다듬었던 것은 치유(care)로 치료와는 다른 것이죠. 내가 나 자신을 돌보는 행위도 ‘치유’라고 하죠. 운동을 해서 건강한 몸을 만드는 것은 ‘치유’의 행위입니다. 운동도 우리 몸의 면역력을 높여주기에 치유의 영역인 것이죠. 좋은 음식도 면역력을 높여주기에 역시 치유죠. 그래서 면역에 좋은 음식을 알리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삽니다.”
△ 김수경(金秀經)
고려대 농학과 졸업, 고려대 식품가공학 석사, 고려대 생명공학원 이학박사, 다움생식 대표.
누구에게나 성은 자연스러운 화두여야 한다. 이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발전하고 개방됐다 해도, 시니어의 성은 여전히 어두운 음지에 가려져 있다. 그리고 음지의 닫힌 세계에서 오가는 오해와 선입견들에 쌓여 외로움만 커져가고 있다. 자연스러운 것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상황, 무엇이 이토록 자유로워야 할 인간의 성을 오래도록 왜곡하고 있는 걸까? 독자들의 질문이 담긴 질문지를 들고 배정원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를 만나 시니어의 성에 관한 궁금한 점들을 하나씩 풀어봤다. 글 김영순 기자 kys0701@
시니어 성 상담을 하면서 느끼는 싱글들의 연애 현실은 어떤가?
60세 정도 되는 싱글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고 67세를 넘으면 파트너를 구하기가 어렵다. 남자들은 70세가 돼도 경제력이 있고 건강관리가 잘돼 있으면 20~30세 연하 애인도 소화가 된다. 문제는 싱글 여자다. 싱글 남자들은 기회가 많은 반면 여자 싱글들은 연하의 남자를 만나기가 참 어렵다. 우리나라는 자본주의의 끝에 있는 거 같다. 돈이 곧 성공이고 인품이기 때문에 경제적 능력이 있으면 나이가 들어도 문제없다.
싱글 여자는 왜 파트너를 구하는 게 어려운가?
싱글 여자는 40대 초반부터 문제가 생길 것이다. 그 나이 때부터 좋은 사람을 만나기가 참 어렵다. 좋은 조건의 웬만한 상대는 다 결혼했고, 여자들은 일하고 공부하다 보니 그런 상대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싱글을 만나면 답답하다. 예전에 50대 여자 사업가를 만난 적이 있는데 태어나서 한 번도 섹스를 해본 적이 없다고 고백하더라. 일하고 공부하느라 몰랐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50세가 넘었고, 지금 남자를 만나자니 이 남자가 자신을 좋아하는 건지 자신의 돈을 좋아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능력 있는 알파걸이 40대 초반부터 갖는 고민이기도 하다. 남자가 접근해도 ‘나의 무엇을 좋아하는 거지?’ 하고 의심한다.
그 사업가에게는 어떻게 충고를 했는가?
겁내지 말고 연애하시라고 했다. 모든 일이 그런 거 같다. 겁내면 아무것도 못 한다. 세상에는 선의를 가진 사람들도 많다. 그리고 실패도 해봐야 한다. 실패해보지 않으면 안목이 자라지 않는다. 그래서 남자들이 많이 모이는 곳으로 가보라고 충고했다.
모임에 나갔는데 사교는 괜찮지만, 그러다 섹스하고 싶어지면 어쩌나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건 말이 안 된다. 어떻게 만나서 와인만 마시나. 마시다 보면 호감이 생기고 만지고 싶어지는 게 자연스런 인간의 감정이다. 그걸 겁내면 아무것도 못 한다. 그리고 그건 즐거운 자극이다. 한 번 마음을 열어보는 것이다. 사랑은 몸이 같이 가는 것이다. 정신만 움직이면 밸런스가 안 맞는다. 특별한 관계가 되고 싶으면 용기를 내야 한다.
싱글의 연애관계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상대가 유부남이나 유부녀라면 주의해야 한다. 아주 위험해질 수 있다. 마음이 가는 것을 어쩔 수 없고 사고관이 정말 진보적이라서 그런 관계가 아무렇지 않다면 그렇게 해도 되겠지만, 반드시 상처받는다. 남들이 볼 때야 로맨스가 아닌 불륜이지. 법적인 임자가 있는 사람에게는 그 문제를 정확히 하고 시작하는 게 좋다. 특히 유부남은 절대로 이혼을 안 한다. 잃는 게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감당할 수 없으면 멀리하는 게 좋다. 그런데 유부남, 유부녀들에 의해 너무나 많은 유혹이 이뤄진다. 그러면 손해는 싱글만 본다. 싱글이 그런 손해를 볼 이유가 없다. 멋있는 싱글도 많은데 뭐하러 임자 있는 사람을 만나나?
성관계 때 몸이 젊었을 때처럼 열정적으로 반응하질 않는다. 그래도 만족을 얻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마음을 바꿔야 한다. 나이가 들면 예전처럼 몸도 감각도 분명 둔해진다. 그러니 옛날 기준을 갖고 있으면 박탈감만 가질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면 나이에 맞는 기준을 가져야 한다. 자신들이 더 잘 알지 않을까.
새로운 체위로 하고 싶은 욕구도 없고 이렇게 살다가 노화가 빨리 올까 걱정이라는 질문이 있다. 나이 들어도 섹스는 계속 하는 게 안 하는 것보다 좋은 점이 많다. 연구에 따르면 섹스를 하는 커플이 안 하는 커플에 비해 10.8년 젊어 보인다고 한다. 그리고 기분도 좋아지고 면역력도 높아지고 심장마비 발생률도 낮아진다.
우리나라에서 노년의 섹스 비중은?
시중에 섹스 보조제가 굉장히 많다. 영국, 미국에는 몇 가지 안 되는데, 우리나라는 비아그라 복제약만 마흔 개가 넘는다. 우리나라에 섹스 보조제가 그렇게 많은 이유는 섹스에 관심이 많아서거나, 아니면 섹스를 잘 못해서 관심이 많은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섹스가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섹스 만족도는 세계적으로 꼴찌다. 기대는 너무 많은데 오히려 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섹스에 관심이 많고 좋아하는구나 싶었는데, 이제는 못 하다 보니 관심이 많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성교육의 문제도 있고 기회의 문제도 있다.
건강한 성생활을 위한 음식으로 추천할 수 있는 것은?
나이가 들면 탄수화물을 줄여야 한다, 그리고 남자들은 토마토가 전립선에 좋기 때문에 꾸준히 먹어야 한다. 김치찌개를 토마토로 만들면 굉장히 맛있다. 토마토 수프 같기도 하면서 김치찌개 맛도 살아 있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콩이 좋다. 에스트로겐을 보충해주기 때문이다. 서리태나 메주콩을 많이 먹길 권한다.
나이 들어서 어떻게 해야 섹스가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까?
주변에서 “나이 들어서 하는 건 주책이야”라는 말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이 들어서 사랑하고 섹스를 한다는 게 왜 아름답지 않은가?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좋은 것이다. 나이 들었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흔히 ‘나이든 사람이 주책’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두 부류일 것이다. 아직 인간의 성을 모르는 사람들, 또 사랑할 대상이 없어서 시기심 때문에 그렇게 말해버리는 사람들일 것이다. 나이 먹어서도 섹스를 잘하면 섹스를 주책이라고 표현할까? 자기 나이를 아름답게 받아들이면 나이 들어도 아름답다. 같은 시니어라 해도 눈이 반짝이는 사람이 있고 흐리멍덩한 사람이 있다. 어떻게 살지는 본인이 결정하는 것이다.
성에 관한 대표적인 오해가 있다면?
여자보다 남자가 성욕이 세다는 것도 오해, 관계를 남자가 리드해야 한다는 것도 오해다. 남자는 온몸이 성감대다. 그러니 같이 대화하면서 해야 한다. 그리고 남의 얘기를 듣지 말라. 60세가 넘으면 커플은 제2의 신혼을 맞이할 수 있다. 자식들 다 독립시키고 둘만 남는 때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싱글이면 더할 나위 없지 않은가? 또한 로맨스와 품격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나이이기도 하다. 그러니 남의 시선 때문에 자신의 삶의 질을 떨어뜨릴 이유가 없다. 즐기기에도 모자란 인생이다. 나이가 들수록 카르페디엠(지금 살고 있는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뜻의 라틴어)이 중요해진다. 행복은 완성품으로 배달되지 않는다. 순간순간 행복해질 수 있는 걸 선택해야 한다.
중년 여성이 겪는 갱년기 증상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이제는 대체로 공론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갱년기 극복 과정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제약회사 등 여러 단체들은 관련 캠페인을 펼치기도 한다. 이런 변화를 보면서 한 번쯤 묻게 된다. 그렇다면 남성은? 남성도 갱년기를 겪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다들 쉬쉬할 뿐 해법을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남성 갱년기는 무엇이고 어떻게 극복하는지 대한남성과학회 허정식 홍보이사(제주대학교병원 비뇨기과)를 통해 알아봤다.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도움말 대한남성과학회 허정식 홍보이사
남성 갱년기 하면 떠오르는 것은 정력이다. 남성에게 있어 정력은 성기능 이상의 의미가 있는, 자존심과 같은 것이다. 정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남에게 밝혀서는 안 되는 비밀 중의 비밀 취급을 받는다. 술자리에서 성생활에 대한 허풍 섞인 농담을 주고받는 것도 이러한 인식 때문이고, 안타깝게도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되는 것도 비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의학적으로 남성 갱년기는 어떻게 분석하고 있을까? 허정식 이사는 아직 원인이 완벽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남성 갱년기는 학계에서도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논란이 남아 있는 상태죠. 지금까지는 테스토스테론이라는 남성호르몬의 감소와 연관 있다는 정도만 밝혀진 상태입니다. 용어 역시 변화가 있어 그동안은 ‘후기발현 남성갱년기증후군’이라는 명칭이 널리 쓰였지만, 최근에는 ‘남성호르몬결핍증후군’으로 부르는 추세입니다. 그만큼 불확실한 것이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허정식 이사에 따르면 여성 갱년기의 경우 여성호르몬의 변화로 인해 생리가 중단되는 경우를 말하지만, 남성의 경우는 노화과정이 급격한 생식능력의 변화를 보이지 않고, 점진적인 감소세를 나타낸다고 한다.
남자의 고개 천천히 숙여져
대한남성과학회에서 2010년 전국의 40대 이상 남성 2000여 명을 대상으로 남성호르몬 검사를 한 결과 28.4%가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정상 이하로 나타났다고 허 이사는 설명했다.
“이렇게 40대 이상 남성은 4명 중 1명꼴로 갱년기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적절하게 대처하는 사람은 드물죠. 남성 갱년기의 대표적인 증상은 생식능력의 감소입니다. 그 이외에 안면홍조, 기억력과 집중력 감퇴, 피로감과 수면 장애, 내장지방 증가 등이 있습니다. 여기에 근육량과 근력 감소, 체모와 골밀도 감소 등의 증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남성 갱년기라는 것이 이 테스토스테론이라는 호르몬이 부족해서 일어나는 것이라면, 이 테스토스테론을 보충하면 되는 것일까? 실제로 그렇다고 한다.
허 교수는 남성호르몬의 부족으로 갱년기 증상이 나타나는 환자들에게는 남성호르몬을 생리적 상태와 가장 근접하게 보충해 주는 것이 매우 유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남성호르몬은 약효 작용 시간이 충분하고, 안전하면서 사용이 편리한 제품을 사용하는데, 최근에는 겔 타입의 테스토스테론 연고가 많이 쓰인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식이요법이나 유산소운동을 통한 근력운동도 효과가 있다고 했다.
남성 갱년기 증상 중 성기능과 관련해선 비아그라와 시알리스 등으로 대표되는 발기부전 치료제가 일반적이지만, 간혹 남성호르몬 부족 환자 중에서는 이러한 약제가 듣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단독 요법이 실패한 경우에는 남성호르몬과 발기부전 치료제를 함께 투여해 치료한다고 허 교수는 말했다.
부족한 남성호르몬 보충가능
남성 갱년기 중 심각한 부분 중 하나는 단순한 성기능 저하로 생각해서 내버려뒀을 때 다양한 증상들이 함께 따라올 수 있다는 점이다.
“50~60대 베이비붐 세대는 무엇보다도 정년퇴직이나 은퇴에 따른 경제적인 문제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이런 스트레스와 만성피로, 우울증 등이 남성 갱년기와 겹치게 되면, 자신감이나 자존감이 떨어져 가족관계나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끼치게 되죠. 여기에 성욕 저하와 발기부전, 지적 활동이나 인지 기능의 저하 등에 시달립니다. 이런 증상이 나타난다면 남성호르몬 검사를 통해 수치가 정상범위인지 꼭 확인해야 합니다. 물론 흡연과 음주는 줄여야 하고요.”
특히 허 이사는 남성 갱년기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받아들이기보다는 치료가 가능한 질환으로 바라봐 달라고 당부했다.
“인간은 누구나 젊음을 유지하고, 청춘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면서도, 중년이 되며 겪게 되는 몸의 변화에 순응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인의 나이에는 그것이 정상일 것이라고 간주해 버리는 것이죠. 단지 남성호르몬이 부족해져서 여러 증상이 발생하는 것인데, 쉽게 오판해 치료시기를 놓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남성 갱년기는 치료 가능한 질환
일부에서는 자가진단표 등을 사용해 몸 상태를 점검하는데 변별력이 높지 않고, 오히려 치료시기만 늦추기도 해서 최근에는 권하지 않는 추세라고 한다.
아무래도 정력과 관련해선 보신음식이 빠질 수 없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없다고 말한다. 그는 실험적으로 해마를 먹는 사례가 있었지만, 이 역시도 증명된 바 없고, 영양을 골고루 섭취하고 운동을 쉬지 않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혼자 끙끙 앓지 말고, 주변의 도움을 얻는 것이 좋다고 했다.
“남성 갱년기 증상을 너무 무시하거나, 과민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금물입니다. 이러한 증상은 치료가 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질환은 치료의 대상일 뿐이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남성호르몬을 이용한 치료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반드시 비뇨기과 전문의와 상담해야 합니다. 그리고 혼자 고민하기보다는 아내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가왕 조용필의 히트곡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라는 가요는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5895m)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갖게 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킬리만자로를 오르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러한 공로로 조용필씨는 탄자니아 및 케냐 정부의 초청을 받아 감사장을 받기도 하였단다. 글ㆍ사진 변종경 언론인
지구 온난화로 킬리만자로 정상 부근의 만년설이 녹아 금세기 이후에는 만년설을 볼 수 없다고 하자 많은 사람들이 등정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6000m에 달하는 세계 고봉 가운데 특별한 장비 없이 전문 산악인이 아닌 일반 산악인이 오를 수 있는 산이기도 해서 트레커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2014년 10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4130m)를 다녀온 뒤 더 높은 곳에 도전해보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6000m의 고봉임에도 장비 없이 오를 수 있는 킬리만자로를 버킷 리스트로 정해 등정하기로 마음먹고 9월 22일부터 13일간의 킬리만자로 트레킹을 하게 됐다.
아프리카 최고봉 등정 준비
아프리카를 여행하기 위해서는 황열병 예방주사를 반드시 맞아야 한다. 예방주사는 국립의료원이나 각 공항 검역소에서 맞을 수 있는데 잠복기 3일, 접종 부작용 3~5일 후 발현 여부를 점검한다. 10년간 효력 등을 감안할 때 출발 2~4주 전 미리 접종하는 것이 좋다. 말라리아 예방약도 처방이 필요한데 킬리만자로 등정 일정만 소화할 경우 주로 고산 지대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약 복용을 강력하게 권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해발 3000m 이상에서 나타나는 고산병에 대비해 이뇨제인 다이막스와 비아그라는 꼭 준비하는 것이 좋다.
작년에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트레킹할 때는 물을 많이 마시고 천천히 걸어서 고산병 관련 약이 필요 없었으나, 이번에는 3700m에 위치한 호롬보 산장에서부터 고산병 약을 복용해야 했다. 다만 낮에는 계속 걷기 때문에 비아그라는 복용하지 않는 것이 낫다.
그리고 킬리만자로는 적도 지역에 위치한 고봉이기 때문에 저지대는 열대성, 고지대는 아한대성으로 등산복 등을 봄, 여름, 겨울 등 사계절에 맞도록 준비해야 한다. 트레킹 과정에서 산장이 2700m 이상 고지대에 위치해 샤워 등이 어려운 데다 숙소도 다인실로 열악해 물티슈는 요긴하게 쓰이는 필수품이다. 또한 적도 지역은 햇볕이 강렬해 자외선 차단을 위한 선블록 크림, 진한 색깔 선글라스가 필요하다. 입술 건조 때 바를 립크림, 트레킹 때 먼지에 대비한 마스크도 준비하면 좋다.
정상을 향한 긴 여정(旅程)
킬리만자로 등정을 위해 인천공항에서 카타르의 도하까지 9시간, 그리고 몇 시간의 환승 대기 시간을 거쳐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국제공항까지 6시간을 비행했다.
이후 탄자니아 제2의 도시 모시에서 일박한 뒤 이튿날 일행은 2시간의 버스를 타고 킬리만자로 입산 수속을 위해 마랑구 게이트(1972m)에 도착하였다. 킬리만자로 등정은 마랑구 루트, 마우아 루트, 움부웨 루트, 므웨카 루트, 쉬라 루트 등이 있는데, 독일 지리학자 한스 마이어(Hans Mayer)가 1889년 10월 9일 유럽인 최초로 현지인 가이드 라우오(Lauwo)와 함께 정상에 오른 마랑구 루트가 비교적 오르기 쉬워 많은 사람들이 애용한다. 입산 수속을 마치고 마랑구 게이트에서 등정 첫날 숙영지인 만다라 산장(2720m)까지는 완만한 경사의 열대 우림 지역 숲길 8.2㎞를 약 4시간에 걸쳐 걷는 것으로 비교적 수월했다. 등정 둘째 날은 킬리만자로에서 두 번째로 높은 마웬지봉(5249m)을 옆으로 바라보며 만다라 산장에서 호롬보 산장(3700m)까지 11.7㎞를 산행했다. 그런데 경사는 완만하지만 낮은 관목 사이의 약 50㎝ 깊이의 참호 같은 화산재 흙길을 햇볕 속에서 흙먼지를 마시며 8시간을 걷는 것이 고역이었다.
호롬보 산장은 꽤 큰 편이었는데, 역시 숙소는 다인실을 사용하였고 3700m 고지대라 약간의 고산병 증세로 다이막스와 비아그라를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등정 셋째 날은 고산 적응과 체력 비축을 위해 인근 지브라록(4200m)까지 왕복 4시간을 산행한 후 일찍 휴식을 취했다. 등정 넷째 날은 호롬보 산장에서 킬리만자로 등정 베이스캠프인 키보 산장(4700m)까지 10.1㎞를 트레킹했다. 이 지역은 황무지 사막지대로서 역시 완만한 경사를 오르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물(Last Water Point)이 있는 곳을 지나 8시간여 산행 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키보 산장에 도착해 정상 도전을 준비했다.
고전 끝에 우후르 피크 정상 등정
키보 산장에 오후 4시경 도착해 일찍 저녁을 먹고 6시경부터 수면을 취했다. 10시 반쯤 일어나 죽으로 식사를 간단히 한 뒤 11시 반부터 등정 다섯째 날 마지막 급경사를 오르는 정상 도전이 시작됐다. 겨울 등산복으로 무장하고 헤드랜턴을 밝히며 4700m 이상 고지의 거의 직벽에 가까운 화산재 모래 자갈길을 오르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현지 가이드들은 연신 구호와 노래를 부르며 힘들어 하는 우리들을 응원했다. 미끄러지는 길과 싸우고 산소 부족으로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바로 머리 위로 멀리 보이는 앞 팀의 랜턴 빛줄기를 따라가며 5시간쯤 오르니 멀리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 그러자 킬리만자로 정상 분화구 언저리인 길만스 포인트(5685m)에 다다랐다. 킬리만자로 정상은 원뿔 모양 분화구를 가진 사화산으로 분화구 폭이 2.4㎞에 이르는데 정상인 우후르 피크(5895m)까지는 분화구 둘레의 바윗길과 완만한 산길을 오르는 것으로 왼쪽 북쪽 사면으로는 수십 미터 높이의 만년설을, 오른쪽으로는 수백 미터 깊이의 분화구를 보며 스텔라 포인트(5765m) 등을 지나 천천히 2시간여를 등정했다. 아침 7시경 킬리만자로 정상인 우후르 피크에 올랐다. 우후르 피크는 비교적 평평하고 눈도 없었다.
생애 최고점인 5895m를 밟았다는 감격과 함께 정상에서 아침 햇빛을 받으며 주변 만년설과 거대한 분화구의 장엄함을 잠시 감상했다. 하지만 호롬보 산장까지 하산하는 일정 때문에 발길을 재촉해야 했다. 스와힐리어로 ‘킬리만자로’는 ‘반짝이는 산’을 의미하고 ‘우후르’는 ‘자유’를 뜻하는데, 1961년 탄자니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킬리만자로 정상을 ‘우후르’로 명명하였다 한다. 우후르 피크는 100년 전만 해도 20m 두께의 만년설이 10㎢에 걸쳐 있었다고 하는데 지구 온난화로 최근까지 85%가 녹고 북쪽 사면을 중심으로 남아 있는 만년설도 금세기 내에 녹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나중에는 흰 눈 덮인 킬리만자로 정상이 사진 속 전설로만 남아 있을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하산하는 길은 정상을 밟은 데다 고소 적응이 돼 기분도 좋고 발걸음도 빨랐다. 그런데 하산하면서 낮에 보니 길만스 포인트에서 키보 산장에 이르는 직벽은 경사도 가파른 데다 화산재 모래와 자갈로 이루어져 스키장 슬로프를 타고 내려오듯이 미끄러져 내려와 아마도 낮에 등정했다면 엄두를 못 낼 것 같았다. 키보 산장에서 점심을 먹고 호롬보 산장까지 내려와 일박한 뒤 모시 리조트로 돌아와 수영으로 피로를 풀었다. 오랜만에 먹는 저녁 뷔페는 꿀맛이었다.
다음 날 케냐로 이동해 드넓은 암보셀리 국립공원 사파리를 구경하면서 멀리서 북쪽 사면의 눈 덮인 킬리만자로를 바라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긍정의 삶, ‘하쿠나 마타타’
킬리만자로 등정을 위해 아프리카에 도착해서 듣는 첫 인사는 ‘점보(Hi, welcome)’다. 안나푸르나 현지 주민 인사 ‘나마스테’와 비슷한 어감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등정하면서 ‘뽈레뽈레(Slowly)’와 ‘하쿠나 마타타(Don't worry, it will be good)’를 자주 듣게 된다. 고산에서는 산소가 희박해 빨리 걸을 수 없다. 일행이 조금이라도 빨라지면 현지 가이드들은 ‘뽈레뽈레’를 외치고, 힘들어 하면 ‘하쿠나 마타타’를 소리 높인다. 지금 힘들겠지만 잘될 것이니 걱정 말라는 의미다. 어찌 보면 이들은 참으로 긍정적이고 낙천적이다.
물론 어려운 여건이 이들의 삶의 자세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우리 시각에서 보면 그들이 불쌍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들의 시각에서는 자연에 순응하며 긍정적 삶을 사는 것이 행복의 원천일 것이다.
영국의 사회비평가 존 러스킨(John Ruskin)은 “모든 일에 만족을 발견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며 기뻐할수록 행복해진다고 강조했다. 긍정적인 마음이 결국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고 성실한 태도로 사는 사람은 이를 저절로 느낀다는 것이다. 미국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네만 교수도 ‘기분 좋은 시간이 길면 길수록 행복하다’며 행복은 기분 좋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고 하였다.
버킷 리스트인 킬리만자로 등정의 기쁨과 추억을 오래 간직하고 기분 좋은 시간을 연장하고 싶은 마음을 희구한다. 킬리만자로 등정을 계기로 ‘하쿠나 마타타’의 긍정적 삶의 자세를 가지고 느긋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갈 것을 기약해본다.
>>변종경(65) 일요시사 전 회장은…
서울대학교를 졸업(1973)한 뒤 잠시 공직을 거쳐 미국 유학, UCLA 대학원에서 석사 취득(1985) 후 1987년 삼성물산(주) 조사부장, 경영기획부장, 1994년 삼성그룹 비서실 기획 담당 임원(이사,상무,전무), 2004년 삼성 사회공헌위원회 부사장 등 기획 분야에 주로 종사해 '기획통'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 삼부그룹 계열 ㈜신라밀레니엄 대표이사에 취임해 경영 혁신을 통해 2011년 지식경제부, 중앙일보 주관 '한국을 빛낸 창조 경영인' 대상(혁신 경영 부문)을 수상하였고 2012년 일요시사 회장으로서 언론사 경영에 참여하는 등 경영자로서 경륜을 쌓기도 하였으며 2013년 자유인이 된 뒤 등산, 사진 등 다양한 취미 활동으로 그동안 못 다한 여가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완연한 가을이다. 사실, 이젠 곧 겨울이라고 봐야 할 테지만. 더운 여름이 지나고 시원한 바람과 높고 푸른 하늘을 보면서 보통은 ‘아, 천고마비의 계절이구나. 가을이 되었으니 책 좀 읽어 볼까’ 하는데, 비뇨기과에선 가을을 맞는 기분이 좀 더 다르다. 환절기에 감기에 걸려 복용한 항히스타민제 부작용으로 갑자기 소변을 못 봐 응급실로 오시는 전립선 비대 어르신들도 늘어날 테고, 날이 추워지니 소변을 더 자주 봐서 곤란하다는 환자들도 많아질 테다.
각설하고, 인생을 사계절로 놓고 보았을 때, 50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가을로 접어들어 서서히 겨울을 향해 가는 시기 아닐까. 인생의 가을이라는 것이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인간 남성’이라는 생물학적 특징 면에서는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반대의 예로 여성이 이 시기에 들어서면 갱년기에 접어들어 점차 떨어지는 여성 호르몬의 영향으로 신체 여기저기 갖은 변화가 생긴다. 피부의 탄력도 떨어지고, 우울하고, 기억력도 감퇴되고, 잠도 잘 못 자기도 한다. 더욱이 갑자기 확 덥고 얼굴이 빨개지는 안면 홍조, 열감뿐만 아니라 식은땀을 줄줄 흘리기까지 한다. 여자 입장에선 이런 변화들이 당황스러울 뿐 아니라 귀찮기까지 하다. 그러니 이 시기의 사모님들은 여러 면에서 살기가 버겁다. 그럼 남자는 어떠한가?
남자 역시 갱년기가 있다. 여성의 갱년기는 난소에서 여성호르몬의 생성이 줄어들면서 생기지만, 남성은 고환에서 남성호르몬의 생성이 감소하면서 생긴다. 남성의 몸에서 남성호르몬의 분비는 생각보다 빨리 줄어들기 시작하는데, 사춘기에 최고조에 달했다가 30대부터는 감퇴가 시작되어 40대 후반~50대에 갱년기 증상이 뚜렷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물론 모든 남성이 이 시기에 갱년기 증상을 겪는 것은 아니다. 평상시의 생활습관, 기초적인 신체 상태, 유전적 소인, 스트레스에 대한 정신적, 육체적 대응 상태 등등 여러 가지 복잡한 요인들이 남성 갱년기를 빨리 오게 하기도 하고, 더 나이가 들어서까지도 아무 변화 없이 지내게 하기도 한다. 그럼 남자는 여자들처럼 달마다 생리를 하는 것도 없는데, 남성 호르몬이 감퇴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물론 병원에서 호르몬 수치를 검사해서 정상 범위보다 낮아져 있다면 당연히 진단할 수 있겠지만, 평상시의 증상으로도 충분히 대략적인 진단은 할 수 있다.
남성갱년기인지 아닌지를 스스로 판단해 볼 수 있는 간단한 설문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와 같은 10개의 문항 중 세 개 이상 해당된다면 남성갱년기를 의심해야 하는데, 특징적으로 다른 문항과는 상관없이 ‘성적 흥미가 감소했다’ 또는 ‘발기의 강도가 떨어졌다’ 이 두 가지 문항 중 하나라도 해당되면 남성갱년기라고 본다. 남성의 성적인 능력이 바로 남성호르몬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열 개의 증상 외에도 기억력이 떨어지거나, 불면증이 생기고, 특별한 이유 없이 감정의 기복이 생기는 것, 또는 우울한 심리 상태 등도 남성 갱년기에 흔히 볼 수 있는 증상이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여자는 나이가 들면 점점 남성스러워지고 남자는 나이가 들면 점점 여성스러워져서 소심하고 잘 삐치는 남편이 괄괄하고 목소리 큰 부인을 모시고 산다는 얘기들이 나오나 보다.
그럼, 과연 남성갱년기는 치료를 해야 하는 걸까?
대답부터 말하자면 당연히 치료해야 한다. 남성 호르몬이 부족해지면서 생기는 신체적인 변화가 단순히 발기부전, 성욕 감퇴 같은 비뇨기과적인 문제뿐 아니라 뇌기능, 인지기능, 운동능력 등에도 영향을 미치고 부족한 남성 호르몬은 남성의 골다공증 발생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성호르몬 보충 치료는 전립선암, 전립선 비대증의 위험도는 더 높아질 수 있고, 혈전 생성 같은 혈관계 질환의 위험도 높아질 수 있으므로 사전에 면밀한 혈액 검사, 전립선 검사 등을 통해 위험도를 확인한 후 안전한 범위 안에서 진행하며 정기적으로 검사를 해야 한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남성 발기부전 환자들은 발기능력의 회복에만 관심을 가질 뿐 남성호르몬이 낮아진 것에는 무관심한데, 사실 남성호르몬이 정상보다 떨어져 있는 경우 비아그라 같은 먹는 발기유발제는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에 이상적으로는 남성호르몬 보충치료도 하면서 발기부전치료제를 같이 복용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요즘에는 먹는 약, 바르는 약, 붙이는 약, 주사 등 다양한 남성호르몬 제제가 나와 있어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남성 갱년기를 좀 더 적극적으로 알고 치료에 노력을 기울인다면 인생의 계절에서 더욱 멋진 가을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 윤하나 이대목동병원 비뇨기과 교수
대한성학회 상임이사, 대한여성 성의학 연구회 학술이사, 대한요실금배뇨장애학회 교육이사를 맡고 있으며 저서로는 , 와 공동저서 등이 있다.
어떤 병에 대해서 민간 속설이 많기도 하다. 비뇨기과에서 대표적인 예는 소변발(소변 줄기의 세기)과 정력에 관한 속설인데, ‘뭐, 나는 젊었을 땐 저기 5미터 앞에 있는 자갈돌도 맞혀서 튕겨냈지…. 그러니 밤일은 말할 것도 없지 뭐야. 허허.’ ‘술이 좀 취하면 친구들이랑 전봇대 맞히기 놀이를 했는데, 내가 쏴댔더니 거기 금이 가더라고.’ 등등. 소변 줄기가 센 것이 마치 정력이 좋은 것인 양 은근히 자랑하는 말들을 많이 한다.
그렇다면 이런 말들이 의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것일까? 일단, 답부터 말하자면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뭐 그런 답이 있느냐고 물어보신다면…. 남성은 남성으로서 반드시 있어야 할 성호르몬인 남성 호르몬 때문에 일생에 걸쳐 다양한 건강상의 변화를 겪는다. 특히 이 남성 호르몬은 성적인 기능도 조절하고, 전립선이라고 하는 정액의 성분 일부를 만들어 내 정액에 포함된 면역 성분, 항염 성분의 중요한 소스가 될 뿐 아니라, 성적 흥분 상태에서 사정이 되기 전에 나오는 소량의 분비물의 형성에도 관련 있는 중요한 기관이다. 사실 남성호르몬-전립선-고환은 남성으로 살아가는 데 대단히 중요한 요소들이다. 그런데 이중 남성호르몬은 안타깝게도 평생 쭉 적당한 수치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대다수의 남성들이 온몸으로 경험했듯) 사춘기에 최고조에 달했다가 30대 이후부터는 서서히 감소하게 된다.
신기한 것이 같은 나이의 모든 남성들이 같은 수치의 남성 호르몬을 유지하고 있지는 않다. 사실 요즘 유행하는 키 크고 야리야리하며 예쁘장하게 생긴 유형의 남성들은 정상치이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낮은 남성 호르몬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 반대로 삼국지의 장비 같은 유형의 덩치가 크고, 키는 크지 않지만 우락부락하게 생긴 남성들은 남성호르몬 수치가 상대적으로 높을 가능성이 높다. 남성호르몬이 높으면 여러모로 좋을 것 같지만, 40대 넘어서 생기는 제일 번거로운 문제인 전립선 비대증의 발생은 남성호르몬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전립선 비대에 걸릴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이다.
이 전립선 비대에 걸리면 소변 줄기도 약해지고 시원하게 볼 수 없다. 여기에 또 하나 생기는 문제가 성생활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립선의 위치가 소변을 담고 있는 방광과 소변이 나가는 통로인 요도 사이에, 마치 우리 목구멍에서 아래로 식도와 기도로 연결되는 곳에 편도선이 생기는 것처럼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전립선 비대가 생기면 통로가 일부 좁아져 소변을 보거나 참는 데에도 문제가 생기지만, 사정을 할 때 정액이 분출되는 상황도 많은 저항을 받아 전처럼 시원하게 사정이 잘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 엎친 데 덮친다고 소변도 잘 나오지 않고, 사정할 때도 시원하지 않은 증상에다 아이러니하게도 40대부터는 급격한 남성호르몬의 감소로 성욕도 떨어지고 발기도 잘 안 되는 다양한 성적 문제가 나타나니 여러모로 신경 쓰이는 상황이 돼 버린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 등 여러 나라에서 전립선비대증 환자들의 성생활을 조사해본 연구에서는 소변을 보는 문제도 괴롭지만, 성생활도 만족스럽지 못하고, 더불어 파트너 역시 만족하지 못한다는 결과가 보고됐는데, 이런 것들을 종합해 보면 ‘소변 줄기 = 정력’ 이라고 직접적으로 정의하기는 힘들지만, ‘소변의 문제가 생김 = 성생활에도 영향을 줌’의 관계는 성립한다고 할 수 있겠다.
잘 알려진 발기부전 치료제인 PDE5 억제제(상품명으로는 비아그라, 시알리스, 88정, 해피그라, 엠빅스 등등 다양한 이름으로 국내에서 처방되고 있다)가 전립선부 요도의 긴장을 풀어주고, 저용량 매일 요법이 발기부전의 예방, 치료에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들이 속속 보고되고 있다. 이에 따라 요즘의 치료 경향은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 + 저용량의 발기부전 치료제’를 매일 복용하는 식으로 일거양득의 효과를 노리는 경우가 차츰 많아지고 있다.
남성호르몬 보충 치료는 어떨까? 전립선 비대 치료를 위해서는 남성 호르몬을 억제해야 하고, 발기부전이나 조루 같은 성기능 문제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남성호르몬을 올려줘야 한다. 따라서 전립선비대와 발기부전 예방 혹은 치료를 위해서 남성호르몬을 억제하거나 보충하는 것은 둘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에 따라 결정된다.
그럼 도대체 ‘나는 전립선 문제로 치료받아야 할 상황인지, 지금 내 남성호르몬은 정상적인 수치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면 아래의 사항이 자신에게 해당되는지 찾아보자. 한 개 이상에 해당되면 비뇨기과 상담을 한번 받아볼 것을 권한다.
특히,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복부비만(허리둘레 90cm 이상), 의학적 비만 (체질량지수 25kg/m2 이상) 중 세 개 이상에 해당된다면 대사증후군으로 진단하는데, 대사중후군이 있을 경우 전립선이나 발기부전과 같은 성기능 문제는 더 잘 생기고 향후 악화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관리를 잘 해야 하므로 전문의의 상담을 반드시 받아 볼 것을 권하고 싶다.
>>> 윤하나 이대목동병원 비뇨기과 교수
대한성학회 상임이사, 대한여성 성의학 연구회 학술이사, 대한요실금배뇨장애학회 교육이사를 맡고 있으며 저서로는 , 와 공동저서 등이 있다.
전 세계 1억 이상의 남성이 발기부전인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의 한 역학조사 결과에서도 30세 이상 남성 50% 이상이 발기부전을 호소했고 연령에 따라 증가하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특히 5070세대는 서지 않는 사람이 서는 사람보다 현격히 많아진다. 다만, 이것은 통계조사일 뿐이다. 고개 숙인 당신, 주눅들지 말지어다. 당신이 포기한 그것은 당신의 노력에 의해 개선될 수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 1호 성의학 전문의부부 강동우·백혜경 원장과 함께 그 실마리를 풀어보자.
글 박근빈 기자 ray@etoday.co.kr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 일러스트 사유진 yjsa2018@etoday.co.kr
중년의 성기능 장애, 어떤 것들이 있나?
강동우 원장: 갱년기라 하면 일반적으로 여성들의 폐경 이후에 나타나는 일련의 증상이 떠오르게 되지만, 남성도 40~50세 이후부터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분비가 서서히 감소한다. 70대는 30대의 절반으로 줄어든다. 특히 두툼한 뱃살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대표적인 질환으로 전립선 문제와 함께 발기부전이 찾아온다.
백혜경 원장: 40대 후반에 접어들게 되면 대부분의 여성은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의 분비량이 줄어들게 되면서 폐경과 함께 갱년기장애를 겪게 된다. 대표적으로 우울증을 떠올리게 되는데, 우울증으로 인한 성욕저하, 분비장애가 발생한다. 나이가 들면서 성교통이 심해지기도 한다.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발기부전 도대체 왜 오는가?
강 원장: 원인은 다양하다. 동맥경화, 당뇨, 고혈압 등 심혈관계 질환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우도 있고 스트레스나 우울증으로 찾아오는 심인성 원인도 있다. 비만 역시 큰 요인이 된다.
백 원장: 특히 신중년들에게는 남성 갱년기, 즉 호르몬 문제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테스토스테론 분비가 줄어들면서 만족스러운 성생활을 위한 충분한 발기가 안되는 상태가 된다.
치료는 어떤 방법으로 진행되나?
강 원장: 앞서 말했듯 발기부전 원인은 다양하다. 그래서 성의학은 정신과, 비뇨기과, 산부인과, 내분비내과, 신경과에 대한 전문적 식견을 아울러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엉켜 있는 실타래를 풀어가듯 개인별로 맞는 치료가 진행돼야 한다. 대사질환이 문제가 될 수도 있고, 호르몬이 문제일 수도 있고, 심리적인 문제일 수도 있기 때문에 원인을 찾아 적합한 치료를 하는 것이 관건이다.
백 원장: 예를 들어 60대 환자가 발기부전으로 찾아왔다고 생각해보자. 같은 나이대라도 원인은 다르다. 금방 해결될 수 있는 환자, 장기적 치료를 필요로 하는 환자 등 천차만별이다. 무조건 정력제만 찾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인지시키고 치료에 들어가게 된다.
‘비아그라’를 필두로 수많은 약이 나왔다. 환자 상태에 맞는 개별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은 약에 의지하게 된다. 결국 약으로 해결되는 거 아닌가?
강 원장: 발기부전치료제라는 명칭으로 처방되고 있지만 나는 ‘게으름뱅이’라고 표현한다. 예전에는 ‘성욕이 안 좋은 것인가?’, ‘몸에 문제가 있는 건가?’ 라는 식의 고민을 했지만, 이제는 의사나 환자나 약만 먹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어찌됐든 인공적으로 발기에 효과가 있으니, 노력을 안 한다. 그렇게 계속 진행되면 발기부전뿐만이 아니라 더 큰 질환으로 넘어갈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약만 먹으면 된다는 생각, 이제는 바꾸어야 할 때다.
백 원장: 많이 알려져 있듯 발기부전치료제로 상징되는 ‘비아그라’는 원래 폐동맥 고혈압을 치료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약물이었는데, 발기가 일어난다는 부작용으로 탄생했다. 이 맥락에서 다시 생각해보면, 발기부전은 심혈관 질환이 발생하게 된다는 전조증상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인공적인 발기만을 위해 약을 복용하는 것이 올바를까? 조기 신호를 잘 잡고, 몸의 균형을 맞춰 한 단계씩 개선하는 것이 진정한 치료다. 약을 계속 복용하다 보면 약 없이는 발기를 못하는 심리적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탈모약에 대해서도 물어보자. 탈모약을 먹으면 발기가 안 된다는데?
강 원장: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이지만, 실제로 연관성이 있다. 탈모약의 임상연구에서도 소수의 환자군에서 성기능의 문제가 생겼다고 보고된다. 탈모약 중에서 호르몬 계열의 약은 남성 호르몬을 차단하는 ‘피나스테라이드’라는 성분이 있다. 이 때문에 성기능 저하라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백 원장: 탈모약은 원래 전립선 치료제로 사용되다가 부작용으로 생긴 발모 현상을 이용해 만든 것이다. 그만큼 남성호르몬과 연계된 부분이 많은 것이다. 탈모약을 쓴 후 성기능이 떨어졌다면 당연히 탈모약 사용을 중단하는 것이 옳다. 성기능이 억제된 원인은 내버려두고 인공적 발기 유발제를 이중으로 처방하는 것을 우선해서는 안 된다. 지금 처방되고 있는 탈모약은 대체로 안전하지만, 발기부전 등 부작용이 발생할 경우 주의해야 한다.
그렇다면 천연 비아그라는?
강 원장: 잘 알려진 굴을 먹어라. 굴에 포함된 아연은 테스토스테론 분비와 정자 생성을 촉진하는 영양소이다. 발기를 일으키는 산화질소의 원료인 아르기닌도 많이 들어 있다. 양배추, 브로콜리, 마늘, 배추 등도 꼽을 수 있다. 이 식품에 포함된 셀레늄 역시 테스토스테론 생성을 촉진하고 노화를 예방하고 전립선 건강에 도움을 준다. 토마토, 크랜베리도 추천한다.
백 원장: 부연하자면, 비타민 D 역시 중요한 포인트이다. 비타민 D는 고환에서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생산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계란노른자, 우유, 등푸른 생선, 간에 많이 포함되어 있다. 비타민 D와 함께 충분한 햇볕을 받는다면 더욱 좋다.
생활 속에서 왕성한 신중년이 되기 위한 방법은?
강 원장: 모든 것이 그렇듯, 쉽게 해결하는 수가 있는 게 아니다. 정력제나 정력보강 음식이 아닌 생활습관에서 찾아야 한다. 적절한 유산소 운동, 숙면, 비만, 스트레스 관리,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성행위 그 자체이다. 맹목적으로 행위에 집중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심신이 안정되고 건강해야 성 기능이 살아난다는 것을 명심해라.
백 원장: 용불용설(用不用說)이 맞다. 적당히 꾸준히 사용하지 않으면 성 기능이 퇴화한다고 본다. 성행위는 하되 사정하지 않고 정액을 아껴야 한다는 뜻의 접이불루(接而不漏)는 잘못된 통념이다. 실제로 신중년이 주로 겪게 되는 전립선의 문제가 있을 때는 치료 목적으로도 정액 배출을 권장하고 있다.
중년남성의 궁금증 TOP3
1. 사이즈로 고민하는 남자들이여, 주눅들지 마라. 발기 후 5cm만 넘으면 문제될 부분은 없다. 부러워하는 흑인들의 경우, 발기 후 경직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흑인들 역시 사이즈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2. 21분을 기억하라. 실질적인 삽입시간은 5~7분정도다. 21분의 전희를 즐겨라. 행복한 성생활의 밑바탕이 된다.
3. 성 행위 후 온몸의 기운이 빠져 두려운가. 고민하지 말라. 성행위 중 근육 운동이 심폐 기능에 도움을 주듯 성행위 후 동반되는 이완은 심신의 안정을 유도하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청바지’를 즐겨라
얼마 전 친구들 모임에 갔더니 건배사로 '청바지(청춘은 바로 지금부터)'를 외친다. 연배가 비슷한 또래다 보니 자영업 하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일선에서 물러나 있는 상태다. 그러다 보니 그동안 일에 매달려 잃어버린 청춘에 대한 보상 욕구 심리로 ‘청바지’를 부르짖는 것 같다. 사실 그동안은 모두들 일에 매몰돼 요즈음처럼 자유 시간을 만끽하며 지내오지 못한 것 같다.
내 경우도 1975년 직장 생활을 시작해 잠시 공직, 삼성그룹 간부 임원, (주)신라밀레니엄 CEO, 일요시사 회장 등으로 일에 파묻혀 지내다 2013년부터 자유인이 되어 최근에는 매주 2회 문화 강좌 수강, 1~2회 등산 등으로 바쁘게 지내고 있다. 2013년 8월에는 백두산 서파-북파 트레킹을 계획했는데 폭우로 인한 산사태로 서파, 북파 등정 및 지하삼림 트레킹으로 만족하고 아쉬운 마음에 대신 2014년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4130m)를 트레킹하기로 하고 건기에 트레킹이 가능하기 때문에 10월 24일~11월 3일 사이에 친구 3명 등 일행 13명이 H여행사를 통해 카트만두-포카라-푼힐 전망대-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하게 되었다.
◇체력, 고산병, 식사 걱정할 필요 없어
안나푸르나 트레킹 계획을 세운 뒤로 히말라야에서 매일 6~9시간씩 총 80km를 팔일 동안 트레킹해야 하고 4000m 이상 고지를 오르는 데 따른 체력과 고산병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체력은 나름대로 일년 넘게 매주 1~2회 4시간 내외 등산을 했기 때문에 별다른 걱정을 안 했으나 4000m 이상 고산 경험은 처음이라 고민이 돼 출발 전 병원에서 다이막스(이뇨제)와 비아그라를 처방받았다.
고산은 산소가 상대적으로 희박해 뇌에 적정한 산소 공급을 위해 혈류량을 늘려주는 비아그라와 이뇨제 이외 별다른 처방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 트레킹 과정에서 현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어떤 때는 답답할 정도로 천천히 걷고 끼니마다 제공되는 보리차를 물통에 채워 수시로 마신 결과 처방해 갔던 약은 쓸모없는 것이 되었다. 천천히 걷고 물 많이 마시는 것이 고산병의 약인 셈이다.
또한 20여kg의 짐, 식사 등도 걱정되었으나 여행사의 편의 제공으로 걱정 없이 트레킹만 하면 되었다. 식사는 매 끼니 한식이 제공돼 잘 먹고 영양 섭취에 충분했다. 우리 일행 13명을 위해 트레커 개인 짐과 식자재 등에 포터 15명이 동원되고 식사 준비에 조리팀 5명, 전문 안내인을 비롯한 가이드 3명 등 그야말로 ‘황제 트레킹’(그러나 경비는 300만원 미만)이었다. 일행 중 50대 중반 여성이 있었는데 등산 경험도 적어 항상 맨 꼴찌에 처졌으나 마지막 가이드가 따라붙어 전속 가이드 역할을 해 트레킹을 무사히 마쳤다. 아마도 각자 등산 장구를 메고 침식을 하며 안나푸르나를 트레킹하라면 전문 산악인 이외 아무도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봉(高峯) 무리, 일출 황금설경(黃金雪景)은 장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은 푼힐 전망대를 경유할 경우 닷새 동안 올라가고 사흘 동안 내려오는 긴 여정이다. 카트만두에서 국내선으로 포카라(40여분 탑승)를 거쳐 버스, 지프로 두 시간 이동 후 맛보기 트레킹을 한 뒤 힐레에 도착하면서 롯지 생활과 트레킹이 시작된다.
둘쨋날 일곱 시간 트레킹 끝에 고라파니에 다다른다. 푼힐 전망대 (3210m)를 들르기 위해서다. 이튿날 새벽 네시반 기상해 한 시간에 걸쳐 등산 후 푼힐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히말라야 준봉에 비치는 일출 광경은 장관이었다. 동쪽에서 뜨는 해가 서쪽에 위치한 다울라기리(8172m), 투크체(6920m), 안나푸르나(8091m) 등 고봉들의 꼭대기 만년설을 비출 때 시시각각 눈이 반사돼 황금색으로 변해가는 모습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광경이다. 이곳은 모든 사람들이 고봉들의 일출 황금설경 장관을 보러 온다. 하산할 때 보니 입장료를 받던 관리인들이 없어졌다. 새벽 등정객 외에는 전망대에 오르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이란다.
아침 식사 후 트레킹을 시작해 때로는 3000개의 계단을 오르내리고 숲속 길도 지나고 만년설이 녹은 장엄한 물소리의 계곡, 수백 미터 높이의 폭포 등을 지나 츄일레 롯지, 시누와 롯지, 데우랄리 롯지 등에서 머문 후 마침내 트레킹 닷새째 저녁 때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3700m)를 지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4130m) 입구에 이르렀다. 불과 몇km 앞에 펼쳐지는 고봉들이 우리를 반기듯 그동안 끼었던 안개가 걷히고 속살을 드러낼 때 일행은 탄성을 질렀다.
전기 사정으로 일찍 잠자리에 든 후 이튿날 새벽 다섯시에 기상해 몇 백 미터 올라가 일출이 비추는 고봉을 보는 것은 또 다른 장관이었다. 푼힐 전망대는 일출시 멀리서 히말라야 황금 고봉을 감상하는 데 비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는 바로 지척에서 안나푸르나(8091m), 안나푸르나 사우스 피크(7219m), 강가푸르나(7454m), 안나푸르나III(7555m), 네팔 성산(聖山,등정 불허)인 마차푸차레(6997m) 등의 고봉들이 황금빛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가까이서 고개를 들고 지켜보는 게 또 다른 매력이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는 분지로 돼 있어 가장 가까이 한 곳에서 여러 고봉을 감상할 수 있는 히말라야 가운데 유일한 곳이라서 많은 트레커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하산하는 길은 발길이 한결 가볍다. 하산이라 해도 사흘 내내 오르락 내리락 해야 돼 몸은 고되지만 마음은 가뿐하다.
등정할 때 하산하는 트레커들의 발걸음이 가벼워 부러워 보였는데 지금 등정하는 사람들의 우리를 바라보는 심정이 비슷해 보였다. 밤부 롯지, 지누단다 롯지 등에서 머문 뒤 사흘 하산 트레킹을 마치게 되었다. 지누단다에서 노천 온천과 저녁 식사 때의 염소 수육 맛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포카라에서 국내선을 타고 카트만두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창으로 옆을 보니 히말라야의 만년설에 뒤덮여 줄지어선 고봉들이 정겹게 느껴졌다.
◇궁(窮)하면 통(通)한다
카트만두 도착 첫날과 귀국 전날 밤은 카트만두 최고급 오성 호텔로 과거 궁전이었던 소알티 크라운 플라자 호텔에서 머물렀다. 그러나 둘쨋 날부터는 고산지대여서 숙소가 롯지로 열악해 2~4인실에 투숙하고 공동 변소와 샤워장을 사용해야 했다. 공동 샤워장은 일 달러 지불하면 더운 물을 이용할 수 있으나 고산에서는 머리를 감거나 샤워를 해 자칫 열을 빼앗기면 감기나 고산병에 걸리기 쉽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사전 준비했던 물티슈를 활용해 얼굴, 손발 등 온몸을 씻고 심지어 친구에게 물티슈로 등도 닦아달라고 해 매일 '물티슈 사워'를 했다.
그리고 첫날은 면도를 했으나 둘쨋 날부터는 도저히 면도하기 힘들어 수염을 기르기로 하였다. 일주일 기르니 제법 멋있게 자라 주변에서 ‘만화가 이모(某) 씨 같다’면서 계속 기르라고 권유하기도 하였다. 또한 옷도 등산복, 평상복, 속옷 등을 갈아입을 요량으로 많이 준비했으나 초반 하루 이틀 이외 별로 갈아입지 않게 되었다. 귀찮기도 했지만 땀을 흘려도 냄새가 거의 나지 않았고 멋내기도 필요 없었다. 준비해간 체육복은 만사형통이었다.
롯지에 도착해 간편복인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잠잘 때도 보온을 위해 체육복을 입고 침낭에 드는 것이 매일 연속이었다. 그야말로 ‘노숙자’같은 생활이었다.
한 번은 등산 스틱 한 개가 고장나 ‘장애 스틱’이 되어 다소 불편했는데 친구가 맥가이버칼로 등산로 주변에 널려 있는 대나무로 지팡이를 만들어줘 트레킹이 끝날 때까지 ‘대나무 스틱’을 요긴하게 사용하였다.
◇안분지족(安分知足)이 행복의 근원
네팔은 1인당 국민소득이 750달러로 가난한 나라이다. 카트만두 이외 거주 국민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해 트레킹하다 보면 수십 계단의 다랑이 논(주로 벼, 조 농사)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밖에 일부 국민이 트레킹 가이드, 포터, 셰르파(전문 산악인 가이드) 등 관광 관련업에 종사하고 있다. 일반 트레킹 포터들이 일주일 동안 짐을 져나르고 몇 십 달러를 받는다는 얘기를 듣고 눈물이 핑돌았다. 이마저도 고루 나누기 위해 마을별로 할당하고 순번을 정해 고용한다고 한다.
2014년 10월18일 에베레스트 남동루트 쿰부 얼음폭포(5800m) 눈사태로 사망 14명, 실종 3명 사고 당시 셰르파 사망 보상금이 1인당 415달러에 불과해 셰르파 300여명이 파업을 벌인 일도 있다고 한다. 그렇더라도 네팔인들은 대체로 낙천적이다. 40여 kg의 무거운 짐을 이마에 메고 3000 계단을 오르내리느라 힘들겠지만 ‘나마스테(Welcome)’인사하면 웃으면서 ‘나마스테’한다. 저녁 식사 때 포터, 가이드, 조리팀 등 일행은 별도로 식사를 하는데 식사 전, 식사 중, 식사 후 그들 나름의 노래를 부르며 즐긴다.
트레킹하면서 마을을 지날 때 어른, 어린 아이들을 보면 항상 밝게 웃는 낯이고 얼굴이 평화롭다. 카트만두만 해도 거리가 무질서하게 복잡하고 매연이 심해 몇 분만 걸어가도 목구멍이 따가울 정도인데 그래도 네팔인들은 잘도 참고 견디며 산다.
그동안 보도 등에 따르면 가난한 부탄, 네팔 같은 나라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상대적으로 높다고 한다.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큰 욕심 없이 주변 사람들과 비슷한 처지에서 하루 하루 만족스럽게 사는 것이 비결 아닐까?
노자(老子)는 소우주(小宇宙)와 대우주(大宇宙)를 설파하였다. 대우주는 우주의 생성, 존재, 법칙 등 진리로 인간이 인식하든 안 하든 존재하는 것이고 소우주는 인간 각자 거울 속에 비친 인식으로 소우주는 각자의 지식, 경험, 환경에 따라 다르게 인식한다.
네팔인들은 주변 환경이 열악하고 생활 수준 및 문명 정도가 낮은 데다 전기 및 통신 제약으로 받아들이는 정보에 한계가 있을 뿐더러 개별 수준 차이도 별로 없어 그 정도 생활에서 안분지족(安分知足)하는 것 아닌가 생각해본다. 잠시나마 번뇌에서 벗어나 어떻든 그네들의 참삶의 지혜를 맛보면서 오늘 나에게 주어진 환경과 현실에 감사하며 욕심을 줄이고 남과 더불어 매일 매일 충실하고 즐겁게 살아갈 것을 기약해본다.
오늘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날인가? 19세기 미국의 유명한 시인이자 철학자인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이 말한 ‘당신이 쓸모없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누군가가 간절히 원하던 내일이다(Today that you wasted always is tomorrow that the one who died yesterday wanted to have so desperately.)’라는 경구가 새삼 귓전을 때린다.
△ 변종경(65) 일요시사 전 회장은 서울대학교를 졸업(1973)한 뒤 잠시 공직을 거쳐 미국 유학, UCLA 대학원에서 석사 취득(1985) 후 1987년 삼성물산(주) 조사부장, 경영기획부장, 1994년 삼성그룹 비서실 기획 담당 임원(이사,상무,전무), 2004년 삼성 사회공헌위원회 부사장 등 기획 분야에 주로 종사해 '기획통'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 삼부그룹 계열 ㈜신라밀레니엄 대표이사에 취임해 경영 혁신을 통해 2011년 지식경제부, 중앙일보 주관 '한국을 빛낸 창조 경영인' 대상(혁신 경영 부문)을 수상하였고 2012년 일요시사 회장으로서 언론사 경영에 참여하는 등 경영자로서 경륜을 쌓기도 하였으며 2013년 자유인이 된 뒤 등산, 사진 등 다양한 취미 활동으로 그동안 못 다한 여가생활을 영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