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청 국립수목원이 우리나라 전국 주요 산림에 자생하는 식물의 올해 봄꽃 개화(만개) 예측 지도를 발표했다. 예측지도에 표기된 지역은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주요 산림 17개 지역과 권역별 국‧공립수목원 10곳이다.
이번 예측은 산림청 주관으로 전국 국·공립수목원 10개 기관이 공동으로 참여해 2009년부터 2021년까지 매년 기록된 현장 관측자료(개화>50%)를 기반으로 조사했다. 분석에는 우리나라 산림 전역에 분포하고 있는 생강나무와 진달래, 벚나무류를 기준으로 통계 모델 기계학습(랜덤 포레스트·random forest) 방식을 적용했다.
조사에 따르면 올해 산림 봄꽃의 절정은 대체로 3월 중순 시작될 예정이며, 특히 남부에서 중부지역으로 점차 확대됐던 과거와 달리 제주도와 전라남도를 제외한 전국에서 비슷한 시기에 절정을 맞이할 것으로 예측됐다.
수도권을 기준으로 보면 벚나무류가 남부권 오산시의 물향기수목원이 4월 12일, 포천시의 국립수목원이 전국에서 가장 늦은 같은 달 18일께 만개한다. 제주도의 한라수목원과 전라남도의 완도수목원이 4월 3일로 가장 빨랐다. 다만 기준일은 ±5일의 오차가 있을 수 있다.
최영태 국립수목원장은 “산림청 국립수목원의 봄꽃 개화 예측지도는 기존의 방식과는 다르게 매해 산림 현장에서 직접 관측되고 있는 자료를 활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측 자료를 확보해 예측의 정도를 점점 높이겠다”고 말했다.
“당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
프랑스의 정치가이자 법률가 브리야 사바랭이 1825년 발간한 ‘미각의 생리학’(원제, 한국어판 제목 ‘미식 예찬’)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다. ‘미식과 식도락’의 경전이라 할 이 책은 인류 역사에서 음식을 학문적으로 살펴본 미식 담론의 첫 번째 책으로 꼽히고 있다.
전 세계에서 위드 코로나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담론들이 쏟아지고 있다. 우리가 매일 섭취하는 음식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게다가 질병 저항력을 높여주는 신체 면역력이 집중 조명되면서 면역력 향상을 통해 자연 치유력을 높이는 음식과 조리법 등을 너도나도 소개하고 있다.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찬찬히 듣다 보면 건강하게 면역력을 높이고 자연 치유력을 기를 수 있는 식단이란 결국 공통적인 몇 가지로 압축된다. 건강한 식재료 사용, 가공 과정 최소화, 인공 조미료나 방부제, 풍미를 위한 착색제나 인공 향신료 사용 절제 등이다.
이런 담론을 거쳐 새롭게 부상하는 것이 유기농 재료로 구성된 친환경 생채식이다. 환자들이 먹는 특수한 식이요법이라고 생각했던 채식이 유기농과 친환경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관심을 받고 있다. 또한 코로나19로 인한 면역력 체질 강화를 위해 유기농 식재료를 구매하고 채식을 하려는 가정이 늘고 있다.
백화점 식품매장의 구색 맞추기에 불과했던 친환경, 유기농 코너가 그 면적을 넓혀가고 있는 것은 물론, 1인 가구용 유기농 맞춤 밀키트 배송까지 오프라인과 온라인에 걸쳐 친환경과 유기농을 향한 마케팅이 뜨겁다.
채식이 유행이라지만 그다지 맛도 없고 만들기 번거롭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면 이곳을 방문해보기를 권한다. 생채식 전문 식당 ‘날일달월’이다. 각종 신선한 채소들의 향연이 펼쳐지는 이곳은 몸속 독소를 배출하고 면역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친환경 유기농 식재료를 기본으로 한 생채식으로 구성한다. 여기에 맛까지 훌륭해 소리 소문 없이 진화 중이다.
유기농 친환경 채소들의 집합소
생채식 식당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재료인 채소일 것이다. 어느 친환경 유기농 농장에서 구매하는 것일까? 궁금해서 물어봤다. 어찌 보면 영업 비밀이랄 수도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 다 같이 건강하게 맛있게 먹고 행복하게 살겠다는데 영업 비밀이 무슨 소용인가 말이다. 날일달월의 초록초록 반짝이는 채소들의 원산지를 차례차례 들여다본다.
•쌈채소 전북 남원 사회적협동조합에서 배송
•파프리카 전북 무주와 남원 지지팜에서 배송
•잎줄기 채소 충남 홍성 젊은협업농장에서 배송
•표고버섯 경남 거창 빛솔농장에서 배송
•밤 충북 충주에 위치한 보늬숲농장에서 배송
•당근 & 깻잎 제주도 평대리 부석희 님이 농사지은 당근과 깻잎
•양배추 & 버섯 충북 괴산 박달마을에 위치한 꿈꾸는느티나무농장에서 배송
•양파 & 마늘 경남 창녕 낙붕이네농장에서 배송
•자색양파 & 청오이 전북 부안 총각네농장에서 기른 토종 청오이와 자색양파
•김치 생채소는 아니지만 배추를 발효시킨 김치 역시 채식의 주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음식이다. 날일달월에서는 경남 진주의 법성사 스님이 직접 농사짓고 담근 김치를 배송받고 있다. 종종 경주 김호 장군 종가집 종부의 김치도 테이블에 올라온다. 이밖에도 여희숙 대표가 회장으로 있는 전국의 도서관 친구들이 인근 로컬 농장에서 추천하는 건강한 채소를 필요할 때마다 배송받고 있다. 이외 채소류는 생활협동조합 ‘한살림’과 ‘자연드림’에서 신선한 것으로 구입한다.
몸속 독소 빼주고 면역력 높여주는 해조류 맛 일품
재료가 신선하면 그 자체가 훌륭한 음식이 되는 대표적인 식재료, 해조류. 그래서 해조류는 재료를 걷고 손질하는 정성이 더욱 중요하다. 날일달월에서 사용하는 해조류는 김, 미역, 다시마, 톳, 꼬시래기 등으로 다양하다.
•김 전남 장흥 김양진 님이 생산하는 무산 김
•미역 자연식 식재료 청미래의 자연산 미역
•다시마 전남 장흥 이승호 님이 청정 해역에서 채취한 다시마
•톳 & 꼬시래기 전남 장흥에 위치한 에벤수산의 제품
생채식에서 빠질 수 없는 식물성 단백질 보고, 두부와 콩물
생채식 메뉴에서 빠질 수 없는 두부는 생식에 알맞은 식물성 단백질 보고다. 전북 전주에 위치한 함씨네에서 직접 만든 토종 콩물과 두부, 순두부를 날일달월에서 선보인다. 또한 각종 소스 만드는 데 요긴하게 쓰이는 발효효소들도 전국 각지에서 배송된 제품을 엄선해 사용한다.
•발효효소 변산공동체에서 만든 생강청과 자하생강가루, 경남 하동에서 만든 매실효소, 경남 함양의 오미자청과 양파효소, 버섯균사체 발효 특허품인 현미와 17곡물 발효효소 등이 소스에 사용된다.
디저트를 책임지는 견과류
•생견과 충북상회 광희네 작품이다. 해바라기씨와 호박씨, 아몬드를 72시간 정제해 만들었다.
•잣 경기도 가평은 한국의 유명한 잣 생산 가공지다. 날일달월의 디저트에 들어가는 잣은 경기도 가평 살구재에서 생산된 으뜸 잣을 사용하고 있다.
•대추 충북 보은 국악대추농원에는 유기농 대추가 주렁주렁 열린다. 열린 대추를 날일달월에서 맛볼 수 있다.
전국 제철 과일
•포도 경기도 가평 아름농장
•사과 충북 괴산 가을농원 선녀와 나뭇꾼의 껍질째 먹는 사과
•깐 밤 충북 충주 보늬숲 밤농장
•유기농 감귤 제주도 응모루농장 / 제주도 김건호농장 / 제주도 서귀포 김상현농장
•바나나 자연드림
•단감 & 블루베리 경남 의령군 고상근농장
재료 고유의 맛, 샐러드는 이렇게 만들어요
1 샐러드는 잎채소, 줄기채소, 뿌리채소가 10가지 이상 골고루 들어가게 한다. 요즘 만드는 샐러드에는 강원도에서 제주도까지 전국에서 공수해온 치커리, 적근대, 적치커리, 케일, 깻잎, 양배추, 트레비소, 겨자채, 뉴그린, 고구마, 당근, 양파 등이 들어간다.
2 먼저 양배추와 적양배추를 채썰어 깨끗이 씻어 물기를 빼놓는다. 양배추 물기 빼는 데 가장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제일 먼저 준비해야 한다.
3 양배추 다음에는 잎채소들을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어놓는다.
4 물기가 마르는 동안 고구마와 당근을 잘게 채썰어둔다.
5 양배추와 고구마, 당근이 준비되면 씻어놓은 잎채소에 남은 물기를 깨끗한 행주로 닦는다. 맛있는 샐러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물기 제거가 가장 중요하므로 잎채소 한장 한장 깨끗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준 후 잘게 채썰어놓는다.
6 큰 볼에 잘게 채썰어놓은 채소를 모두 넣어 골고루 섞어준다. 7 양파는 따로 채썰어두었다가 샐러드 먹기 바로 전에 섞는 것이 좋다.
샐러드소스
1 무는 무쌈처럼 얇게 썰어놓고 일부는 깍둑썰기한다.
2 유기농 황설탕, 자연드림 현미식초와 물을 1:1:1 비율로 섞고 빛소금은 1큰스푼 넣는다.
3 2~3주 숙성시킨 후, 무쌈은 건져내 해조류나 채소를 싸 먹는 쌈으로 준비하고, 숙성시킨 액체는 잘 섞어 샐러드소스로 사용한다.
오행현미죽과 오행현미밥 만들기
1 영산농원의 신선한 오행현미를 발아시키고 깨끗이 씻어 그늘에서 일주일 이상 잘 말린다.
2 천천히 충분히 말린 오행현미를 방앗간에서 살짝 빻아 가루로 만든다.
3 찬물에 가루를 풀어 잘 저어가며 빠른 시간에 살짝 끓여 빛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4 정제한 견과류와 참깨를 얹어 오행현미죽을 완성한다.
✽오행현미밥은 오행현미와 찰현미를 섞어 밥을 짓는다.
맛있는 채식의 조건, 채소 맛을 깊게 해주는 레시피
▶쌈된장 만들기
1 오래 숙성시킨 약된장에 양파효소, 매실청, 생강청을 넣는다. 2 현미와 17가지 곡물 발효효소를 적당한 비율로 섞어 상온에서 하루 동안 발효시킨다. 3 충분히 발효된 된장에 수수조청과 원당으로 맛을 낸다. 4 상에 내기 전 마지막에 참기름과 통깨를 넣어 섞는다.
▶초고추장 만들기
1 오래 숙성한 전통 고추장에 고춧가루와 매실효소, 양파효소, 오미자청, 생강청을 넣는다. 2 현미와 17가지 곡물 발효효소를 적당한 비율로 섞어 상온에서 이틀 동안 숙성시킨다. 3 충분히 숙성된 초고추장에 수수조청과 원당, 현미식초와 빛소금으로 간을 맞춘 뒤, 통깨를 넣어 섞는다.
▶양념간장 만들기
1 숙성된 죽염 약간장에 양조간장을 반반 넣고 고춧가루를 넣은 후, 매실효소와 양파효소, 생강청을 더한다. 2 현미와 17가지 곡물 발효효소를 적당한 비율로 섞어 상온에서 하루 동안 숙성시킨다. 3 충분히 숙성된 간장에 수수조청과 원당, 빛소금으로 맛을 낸다. 4 여기에 다진 파, 생들기름, 통깨를 넣어 양념간장을 완성한다.
2019년 인기리에 종영한 JTBC 드라마 ‘SKY 캐슬’은 대한민국 상위 0.1% 부모의 교육열과 입시지옥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화제를 모았다. 드라마 속 입시 코디네이터로 등장하는 김주영은 한서진의 딸 예서의 공부방을 살펴보더니, 벽에 걸린 다른 그림들은 모조리 떼어내고 한 그림만 걸어두라고 지시한다. 그 작품은 바로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1872~1944)의 ‘적색, 회색, 청색, 황색, 흑색이 있는 마름모꼴 콤퍼지션’이다. 김주영은 몬드리안의 그림이 집중력을 높이고 뇌 운동을 활발하게 해준다고 설명한다. 개인적으로는 공부로 혹사당하는 아이들의 뇌를 잠시라도 쉬게 해주려면 잔잔한 풍경화가 더 낫지 않을까 싶지만, 드라마 작가는 몬드리안 작품 특유의 안정된 구조와 규칙적인 리듬감이 뇌에 편안한 자극을 준다고 여긴 듯하다.
필자가 미술 교육과 관련해서 학부모들과 상담할 경우가 있는데 “저는 그림에 대해 아는 게 없어요” 하며 자신 없어 하는 이들도 몬드리안의 작품을 내밀면 미소를 지으며 단번에 알아보곤 한다. 그만큼 몬드리안의 그림은 유명하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런 의문들도 생긴다. 검은 선을 가로세로로 긋고 빨강, 노랑, 파랑으로 칠해놓았을 뿐인데, 어째서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작가로 인정받게 된 것일까? 이 정도 그림이라면 나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완성된 몬드리안의 그림을 보고 따라 그리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 시작은 다르다. 새로운 사조를 처음 만들어내는 아방가르드예술가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혹독한 훈련과 내공을 필요로 한다. 이는 무(無)에서 창조해내는 유(有)의 의미와는 다르다. 기존의 예술 양식을 답습하고 연구하며 치열한 고뇌 끝에서 만들어낸 독창적인 창작물이기 때문이다.
몬드리안 역시 처음부터 추상화를 그린 작가가 아니다. 20대에는 다른 화가의 그림을 연구하고 모작하면서 나무, 교회 등 자연을 모티브로 한 풍경화를 많이 그렸다. 그러던 중 자연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때부터 서서히 형체의 틀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그가 30대 후반에 그린 ‘돔뷔르흐의 교회 탑’을 살펴보면 구상화에서 벗어나 형체를 단순화한 뒤 대상의 본질만을 나타내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40대에 접어든 몬드리안의 작품 ‘생강 항아리가 있는 정물화 Ⅱ’에서는 더 담대해진 선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시기만 해도 무엇을 그렸는지 대충 알 수 있는 반구상화 형식을 보여준다. 50대에 들어서면서 그는 본격적으로 ‘콤퍼지션’ 시리즈를 제작한다. 대각선과 곡선을 배제하고 수평과 수직의 교차를 토대로 엄격한 기하학적 구도를 드러내며 삼원색(빨강·노랑·파랑)과 무채색(검정색·흰색·회색)만 사용한 점이 돋보인다. 몬드리안 고유의 화풍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중년 이후 자기 성찰과 고민을 통해 정체성을 확립해나간다. 누군가의 그림을 좇으며 따라 그리던 젊은 시절을 지나, 자신의 본질을 깨닫고 고유한 예술세계를 펼쳐낸 중년의 몬드리안. 그는 오로지 선과 면, 색의 관계를 통해 순수에 도달할 수 있다고 여겼고, 수직과 수평의 선이 작품에 역동적인 에너지를 불어넣으며 균형과 평온함을 가져온다고 주장했다. 군더더기를 덜어낸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사물을 본질을 드러낼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건 무엇일까? 어떠한 사고방식이 만들어낸 외형에 사로잡혀 있는 건 아닐까? 몬드리안의 다음과 같은 한마디는 이러한 물음에 더 파고들게 한다.
“아름다운 감정은 대상의 외형에 의해 방해받는다. 그래서 대상은 추상화돼야 한다.”
남한강이 단양 읍내를 말발굽 모양으로 에워싸고 흐른다. 그 물줄기에 단양 제1경인 도담삼봉이 자리했다. 최근 도담삼봉과 멀지 않은 강변에 만천하스카이워크와 단양강 잔도가 조성되어 인기를 끌고 있다. 잔잔한 남한강 물길 따라 걸으며 터줏대감 명소와 신생 명소를 두루 둘러봤다.
벼랑 위 까치발 단양강 잔도
남한강변 만학천봉 절벽 아래에 잔도(棧道)가 놓였다. 잔도란 벼랑에 선반처럼 매단 길을 말한다. 남한강 수면 위 약 20m 높이에 철기둥을 촘촘히 박고, 폭 2m 정도 되는 나무데크를 깔아 산책로를 만든 것이다. 잔도 맞은편에 위치한 단양역에서 바라보면 절벽 아래에 가늘고 긴 띠가 둘려 있는 듯하다.
단양강 잔도는 상진철교 아래에서 시작해 절벽 구간이 끝나는 만천하스카이워크 입구까지 이어진다. 길이가 1.2km 남짓 된다. 왕복으로 걸어도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 수직으로 깎아지른 벼랑은 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잔도가 벼랑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까치발을 들고 선 것 같다.
잔도길은 편안하다. 경사가 없는 데다 낙석 위험 구간에는 지붕을 덮어 안전에 신경 썼다. 감미롭게 흐르는 클래식 음악에 콧노래로 응답하며 느긋한 산책을 즐긴다. 잔도 바닥에 설치된 구멍 난 철판을 지날 때는 심장이 쫄깃해진다. 척박한 벼랑에서도 꿋꿋하게 자라는 붉나무, 고욤나무, 물푸레나무, 부처손, 생강나무 등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한낮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면 야간 산책을 즐겨도 좋다. 일몰 이후부터 밤 11시까지 잔도에 야간 조명이 켜진다.
100m 높이 하늘길 만천하스카이워크
잔도가 끝나는 지점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만천하스카이워크 주차장과 매표소가 나온다. 매표소 앞에서 무료 셔틀버스를 타고 만천하스카이워크 입구까지 올라간다. 3대의 버스가 수시로 오가므로 대기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5분 정도 달리면 만천하스카이워크 아래에 도착한다.
만천하스카이워크는 해발 80~90m의 만학천봉 위에 세워졌다. 공룡알을 비스듬히 세워놓은 듯한 모양인데, 높이가 25m나 된다. 예상보다 규모가 커서 입이 떡 벌어진다. 회전 경사로를 빙글빙글 돌면서 스카이워크와 만학천봉 전망대가 있는 곳까지 걷는다. 경사로가 완만해 힘들지 않다.
꼭대기 전망대층에 오르면 단양 읍내와 상진철교, 소백산 비로봉, 양방산, 말발굽 모양을 한 남한강 물줄기가 발아래 펼쳐진다. 전망대 둘레에는 3개의 스카이워크가 공중을 향해 뻗어 있다. 길이는 각각 다르며 폭 2m의 고강도 삼중유리로 제작됐다. 관광객들은 높이가 100여 m에 달하는 스카이워크 앞에서 “네가 먼저 가라”며 서로 등을 떠민다. 나도 호기롭게 스카이워크 위에 서보지만, 아래를 내려다보지 못하고 오금이 저려온다. 지금 서 있는 곳이 하늘 아래인지, 강물 위인지 아득하기만 하다.
스카이워크에서 내려올 때는 다시 셔틀버스를 타거나 짚와이어(zipwire)를 이용한다. 짚와이어를 타면 몸이 로켓처럼 발사되는 것 같다. “덜컹” 소리와 함께 몸이 “쓩” 공중을 가로지른다. “악” 소리 한 번 길게 지르면 스카이워크 매표소 2층에 도착한다.
단양 제1경 도담삼봉
단양팔경 중 제1경(명승 제44호)인 도담삼봉은 남한강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다. 도담리에 있는 세 봉우리라 하여 도담삼봉이라 불린다. 고요한 수면에 세 봉우리가 데칼코마니처럼 비친 모습이 한 폭의 수묵화 같다. 아침 안개가 피어오를 때면 몽환적이기까지 하다.
도담삼봉 중에 덩치가 가장 큰 바위가 장군봉이다. 장군봉 허리춤에는 삼도정이 걸터앉았다. 조선시대 개국 공신인 정도전이 이따금 삼도정에 올라 풍월을 읊었다고 한다.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 지을 만큼 도담삼봉을 아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설화에 따르면, 도담삼봉은 원래 강원도 정선군에 있었다고 한다. 홍수 때 단양으로 떠내려와 지금의 자리에 멈췄다는 것이다. 그 뒤로 단양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매년 정선에 절경 값을 냈다. 소년 정도전이 이 사정을 듣고 강원도 관리에게 “우리가 삼봉을 떠내려오라고 한 것도 아니고, 삼봉이 오히려 물길을 막아 피해를 보고 있으니, 필요하면 도로 가져가라”고 한 뒤부터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벼랑에 뚫린 무지개 돌문
도담삼봉 주차장 끝 절벽에는 단양 제2경(명승 제45호) 석문이 있다. 제법 가파른 철계단을 오르고, 조붓한 숲길을 걸어야 볼 수 있다. 계단 아래에서 석문까지의 거리가 200m 정도인 게 다행이다.
석문은 남한강변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구름다리 혹은 무지개 모양의 돌문이다. 오래전 석회동굴이 무너진 뒤에 동굴 천장의 일부가 남아 지금의 모습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석문의 왼쪽 아래에 작은 동굴이 하나 있다. 옛날 하늘에 살던 마고할미가 물 길러 왔다가 이곳의 경치에 반해 평생 농사지으며 살았던 곳이라는 전설이 남아 있다.
석문 너머로 보이는 옥빛 남한강과 도담리 풍경에 눈길이 머문다. 석문이 천연 액자가 되어준 덕에 강마을이 돋보인다. 석문 전망대에 앉아 석문 밖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강바람을 맞는다. 마고할미가 부는 입김이라 상상해본다. 잃어버린 비녀를 찾으려고 맨손으로 땅을 팠는데 그게 99마지기 논이 되었다는 마고할미의 위력이라면 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국내 최대 민물고기 전시관
2013년 단양 읍내 중심에 들어선 다누리아쿠아리움은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민물고기 생태관이다. 입구에 단양을 대표하는 물고기 쏘가리의 대형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관람 후 생각이 바뀌었다. 다누리아쿠아리움은 아이들만 좋아하는 곳이 아니라는 걸 말이다. 가장 최근에 생긴 전시관인 만큼 평창 동강민물고기생태관, 울진 민물고기생태관, 양평 민물고기생태관보다 시설이 좋다. 세계의 바다 생물을 총집합해놓은 듯한 아쿠아플라넷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민물고기 생태관으로선 국내 최고 수준이다. 수족관 속 조형물을 도담삼봉, 석문 등 단양팔경 명소를 본떠 만든 것이 인상적이다.
전시실에 마련된 130여 개의 수족관에는 국내외 민물고기와 세계 각지에서 모은 희귀 어종이 살고 있다. 남한강의 귀족 황쏘가리, 행운을 불러온다는 중국의 최고 보호종 홍룡, 아마존 거대어 피라루크 등이 볼 만하다. 민물고기 외 양서류, 파충류, 수서곤충류, 포유류 등도 만날 수 있다.
◇주변 명소 & 맛집◇
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 1980년대 남한강변 수양개에서 후기 구석기시대에서 초기 철기시대에 걸친 유적지(사적 제398호)가 발굴됐다. 수양개유적지 뒤편 언덕에 전시관을 짓고, 출토된 유물을 전시했다. 후기 구석기시대 유물인 돌날몸돌과 슴베찌르개 등은 중국, 시베리아, 일본의 석기들과 비교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전시관 옆에는 야간 조명 포토존인 수양개빛터널이 있다. 단양군 적성면 수양개유적로 395, 09:00~22:00(월요일 휴관), 어른 2000원.
구경시장 다누리아쿠아리움과 단양시외버스터미널 인근의 구경시장이 뜨고 있다. ‘구경’은 단양팔경에 하나를 더해 9경이라는 의미다. 관광객이 몰리는 곳은 먹거리 골목. 그중에서도 단양 특산품인 마늘과 통닭을 함께 굽는 마늘통닭 골목이 가장 붐빈다. 통닭, 닭강정 박스를 들고 다니는 관광객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마늘순댓국, 마늘만두, 흑마늘빵, 마늘메밀전병, 마늘석불고기 등도 인기 먹거리다. 오일장은 매월 1일과 6일에 열린다. 단양군 단양읍 도전5길 31.
마늘정식과 쏘가리매운탕 단양 마늘은 작고 단단하며 맛과 향이 독특하다. 장다리식당에서 마늘 정식을 주문하면 마늘비빔육회, 마늘수육, 마늘통튀김, 마늘만두 등 단양 마늘 음식들이 한 상 가득 차려진다. 민물고기 매운탕을 좋아한다면 남한강쏘가리특화거리에 들러보길 권한다. 어부명가를 비롯해 소문난 맛집들이 모여 있다. 장다리식당, 단양군 단양읍 삼봉로 370, 10:00~21:00(첫째·셋째 월요일 휴무). 어부명가, 단양군 단양읍 수변로 87, 10:00~21:00.
북한산은 서울과 경기도에 접해 있으면서 자연경관이 뛰어나 1983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서울시 도봉구, 강북구, 성북구, 종로구, 은평구 등 5개 구와 경기도 고양시, 양주시, 의정부시 등 3개 시, 모두 8개 시, 구가 걸쳐있다. 지난 20일 국민대학교 앞에서 출발하여 북한산 전망대까지 올라가며 생태계를 살펴봤다.
북한산 전망대를 올라가는 중간 지점에는 절이 많이 포진하고 있다. 요즘은 코로나19로 인하여 신도들의 발길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북한산 숲 체험장이 있는 곳에서 전망대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가 걸렸다. 올라가는 길에 야생화가 자라고 있고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도 여러 곳 있다. 북한산 기온이 시내와 비교하여 다소 낮아서 야생화가 개화하는 시기도 시내보다 5일에서 10일 정도 늦다.
북한산에서 자연의 생태계가 살아 숨 쉬는, 곳을 여러 곳에서 감지할 수 있었다. 더욱 맑게 잘 관리되길 바랄 뿐이다.
가장 먼저 북한산 개울에서 개구리 알과 도롱뇽 알을 볼 수 있었다. 북한산 개울의 물이 깨끗하다는 것을 확인해 주는 것이다. 개구리와 도롱뇽은 맑고 깨끗한 물에서 알을 낳는다. 북한산 전망대를 올라가는 중간 지점에 있는 5개 정도의 개울 중에 3개의 개울에서 개구리 알과 도롱뇽 알을 낳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개구리 알에서 50 ~ 75일 정도 지나서 개구리가 되고 도롱뇽 알은 40 ~ 50일 정도 지나서 도롱뇽이 된다.
올라가는 곳곳에 야생화가 자라고 있었다. 시내보다 북한산 기온이 다소 낮아서 새싹이 나고 꽃이 피는 시기가 늦지만, 곳곳에 신기한 모습으로 자라는 야생화를 볼 수 있었다. 산수유, 생강나무, 산벚나무, 진달래, 산철쭉과 바위취, 방가지똥, 뽀리뱅이, 방가지똥, 긴병풀꽃, 지칭개 등이 꽃을 피우려고 꽃봉오리를 맺고 있다.
다양한 새들도 둥지에서 나와 활기를 찾는 모습이었다. 시내에서는 좀처럼 새들을 볼 수 없지만, 북한산에서는 새들을 볼 수가 있었다. 추운 겨울을 지내기 위하여 나무 위에 지은 둥지와 까치집 들을 여러 곳에서 확인했다. 동고비, 직박구리, 상모솔새 등을 보았다. 새들이 활동하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사진을 찍었다.
성북구청 녹지과에서 북한산 주변 소나무에 재선충약을 투입하는 모습도 봤다. 재선충은 소나무 등의 침엽수에 기생하여 나무를 갉아먹는 선충이다. 큰 소나무의 밑동에 구멍을 내고 약을 투입했다. 봄에 한번 나무에 약을 투입하면 1년 동안 약효가 있어서 내년 봄까지 예방이 된다.
북한산에서 자라는 꽃은 평지보다는 다소 늦게 피지만 더 아름답다. 4월 초순에서 4월 중순이 되면 북한산에서는 개나리, 목련, 산수유, 생강나무, 진달래, 산철쭉과 애기똥풀, 민들레, 복수초, 긴병풀꽃 등의 꽃을 볼 수 있다. 북한산이 자연 생태계가 살아 숨 쉬는, 곳으로 길이 보전되길 기원한다.
계절이 여름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김천의 인현왕후 길. 고요한 숲길을 걸으면서 역사의 무게까지 느껴지니 사색을 위한 산책로로 제 격이다.
김천은 직지사가 유명하다. 그에 비해 인현왕후 길은 아직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조선왕조 19대 숙종의 정비(正妃)인 인현왕후의 애달픈 사연이 있는 길이다. 폐비가 된 인현왕후가 3년 동안 기거했던 청암사를 품은 수도산 자락에 김천시가 인현왕후 길을 만들었다. 그 옛날 인현왕후가 거닐었던 곳으로 추정해 조성한 길이다.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 마을에서 트래킹이 시작된다. 수도산 자락의 수도암과 청암사를 잇는 9㎞짜리 구간의 산길이다. 천천히 걸으면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수도리 마을을 지나 비탈길을 걸어 올라가는 길에 피어있는 여름꽃들이 싱그럽다. 널찍한 바위에서 잠들었던 고양이가 사람들 발자국 소리에 놀라 화들짝 깨어났다.
마을길을 지나 산비탈을 따라 조금 걸어올라 가면 수도암이 나온다. 그 옆으로 인현왕후 길의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장희빈의 계략으로 서인으로 강등된 인현왕후는 외가가 있는 상주 인근의 김천 청암사로 자신의 거처를 정한다. 지친 심신을 이 길을 걸으며 다스렸을 거란 상상을 하며 숲길을 걸어본다. 첩첩산중이 이어지다가 온 산하가 다 보이는 탁 트인 길도 나온다. 바람결에 생강나무의 싱그러운 내음이 코끝을 스친다. 떨어진 꽃잎이 수놓은 길을 걷다 보면 ‘포토 존’도 있다. 여름이 시작되는 인현왕후 길은 연둣빛에서 이제는 완연한 녹색의 숲길로 변했다.
조용히 생각하며 걷기에 적당하다. 가파르지 않은 산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요즈음 걷기 열풍에 맞추어 급조된 길과는 다른 자연스럽고 품격 있는 숲길이다.
넓지 않은 오솔길에 나뭇잎이 푹신하게 깔려 있다. 숲을 헤치며 걸어 내려와 길 옆 바위 계곡에 시원하게 손을 담그며 더위를 식힌다. 그렇게 산굽이를 돌아 나오면 도로가 나온다. 산길이 완만하고 순해서 누구라도 편안히 걸을 수 있다.
기분 좋게 하산하면 시원한 폭포수가 장관인 무흘계곡(武屹九曲)의 하류가 시원하게 맞아준다. 잠깐 들러 땀을 식히기에 안성맞춤이다. 계곡 입구의 전시관을 거쳐 무흘구곡 중에서 제9곡인 용추폭포에 다가가면 출렁다리 건너 17m 높이에서 떨어지는 장쾌한 용추 폭포수가 협곡과도 같은 절벽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모습이 보인다.
◆청암사[靑巖寺]
청암사는 인현왕후 길이 있는 수도산 초입의 고찰이다. 직지사의 말사다. 장희빈에게 밀려나 폐서인이 된 인현왕후가 복위될 때까지 머물렀던 곳이다. 비구니 스님들이 수학하고 있는 청정 도량.
일주문을 지나 입구부터 키 큰 수목들이 하늘을 찌른다. 몸이 자연 속에 쏙 들어가 포근히 감싸지는 느낌이다. 작은 폭포가 흘러내리는 사찰의 좁은 계곡엔 푸른 이끼가 덮여있다. 초여름의 뜨거운 햇살이 쏟아지는 적막한 경내에는 새소리와 계곡의 물소리만 들린다. 찾는 이 그리 많지 않은 고요한 경내에 몇몇 여행자들만 눈에 띈다.
대웅전 앞뜰엔 붉은 꽃잎이 뚝뚝 떨어져 있다. 매발톱이 가득 피어있는 옆길을 따라 나가면 인현왕후의 복위를 빌기 위해 세웠다는 보광전이 있다.
그 옆으로 뚝 떨어진 곳에 사대부 한옥 양식의 목조건물이 나타난다. 폐서인이 된 인현왕후가 복위를 기다리며 한 많은 세월을 은거하던 곳이 바로 이 극락전(極樂殿)이다. 왕후를 배려해서 반가 양식으로 지었다고 한다. 보통의 사찰 건축과는 달리 대문이 달려있고 현재는 외인 출입금지다.
그 시절 상궁들이 폐비를 물심양면으로 돕느라 사람들 눈을 피해 드나들며 시주를 했는데 이때 시주록 명단에 이름 올린 상궁이 26명이라고 한다.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난의 삶을 살았던 인현왕후를 그려볼 수 있는 곳이다.
지금은 극락전을 둘러싼 채마밭에 스님들의 식량인 상추와 자잘한 채소들이 자라고 있다. 그리고 잡초와 파꽃도 피어났고 무궁화와 수국, 작약과 엉겅퀴와 함께 벌과 나비들이 날고 있다.
청암사는 많이 훼손되었거나 새로 건축하느라 손길이 많이 간 느낌도 별로 없다. 그저 오랜 역사와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알 수 있는 나무목재와 문양들이 정감 있다. 그래서 은은한 정취와 고즈넉한 고찰의 신비로움을 더한다.
김천시 부항면 유촌리에 가면 김천부항댐이 있다. 이 지역의 홍수피해를 예방하고 물공급과 청정에너지 공급을 위한 댐이다. 댐 주변을 중심으로 여행자들이 재미와 스릴을 만끽할 수 있는 시설들이 있다.
94m 높이의 레인보우 타워가 압권이다.
타워 옆으로 오솔길을 지나면 256m 길이의 출렁다리가 있다.
맛집! 김천이라 하면 지례 흑돼지가 유명하다. 옛날에 임금님께 진상하던 토종 흑돼지로, 부항댐에서 조금 나가면 흑돼지 맛집들이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한 김천 인현왕후 길과 부항댐 주변
Ktx서울역→김천 : 1시간 30분 소요
김천역 → 인현왕후 길(40km) : 김천역에서 도보로 10분 ~ 15분 정도 걸어서 김천 버스터미널 이동
인현왕후 길 → 지례 흑돼지(22km) 승용차 이용 시 : 30분 정도 소요. 대중교통 이용 시 : 1시간 정도 소요
지례 흑돼지 → 부항댐 짚와이어, 출렁다리(4.8km) : 버스가 하루에 1~2번 정도 있음. 승용차 이용 시 - 10분 정도 소요. 대중교통 이용 시(885-1번 버스) : 20~25분 정도 소요
향수(鄕愁)가 귀촌을 촉발했더란다. 영주시 이산면 산기슭에 사는 심원복(57) 씨의 얘기다. 어릴 때 경험한 시골 풍정이 일쑤 아릿한 그리움을 불러오더라는 거다. 일테면, 소 잔등에 쏟아지는 석양녘의 붉은 햇살처럼 목가적인 풍경들이. 배고프면 아무 집에나 들어가도 밥을 나눠주었던 도타운 인정이. 타향을 사는 자에게 향수란 근원을 향한 갈증 같은 것. 그렇다고 사무친 그리움은 아니라 굳이 억지로 누르며 살아온 것도 아니었다. 삶이란 어차피 부평초처럼 객지를 떠도는 일이지 않던가.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향수가 깊어졌던 모양.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들이 더 많아질 즈음, 심 씨는 서울생활을 후다닥 접었다.
“새가 제 둥지에 깃들여 살듯이!” 심원복 씨는 귀촌생활을 그리 비유한다. 도시에선 좀체 느끼기 어려웠던 안심과 평온을 비로소 누린다는 뜻일 테지. 물론 도시에서라고 불안이나 불만을 옆구리에 달고 살았던 건 아니었단다. 숨막힐 것 같은 일상의 수레바퀴 속에서 적당히 착실하고 조신하게, 적당히 눈치보고 적당히 머리 굴리고 적당히 처세하며 살아가는 게 우리네 소시민들의 절박하고도 쩨쩨한 현실. 그 역시 그렇게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왔던 것 같다. 발칙한 일탈 따위는 그의 종목이 아니었으며, 과한 출세욕이나 물욕에 허덕이며 살지도 않았을 게다. 심 씨의 유순해 보이는 인상에 이미 쓰여 있다. 별다른 폭풍과 이변과 무용담이 없었을 얌전한 인생 드라마의 표징이라는 게.
심 씨가 아늑하게 옴팡진 여기 산기슭에 집을 짓고 귀촌한 건 10년 전. 땅은 이미 그전에 사두었다. 소백산으로 등산을 갔다가 무심코 들른 산촌에서 만난 싼 매물이었다. 길도 없는 농지 1200평을 우발적으로 사들였던 것. 오우, 나중 여기에 허름한 흙집이라도 하나 짓고 살면 되겠는걸! 그런 생각으로 말이다. 땅을 미리 잡아놓은 덕에 귀촌 행보는 빨랐다. 애초 생각했던 간소한 흙집 대신 번듯한 목조주택을 지었다. 바지런히 직장생활을 했기에, 좀 모아둔 게 있었기에, 귀촌해서 생활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여력은 됐다. 그렇게 사뿐한 산골살이를 시작했다.
“시골에 가서 무슨 획기적인 생활의 변화를 딱히 의도하거나 꿈꾸진 않았습니다. 번잡한 도시에서 벗어나서 마음 편하게 살면 그만이지 싶었거든요.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인생사 희로애락이야 뭐가 다르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그냥 순순히 적응하며 살면 될 거라 봤지요. 흔히들 귀촌 초기의 갖가지 고생담을 토로하는 것 같은데 저희 부부에겐 그런 게 거의 없었어요.”
“낯설고 물설은 산골에 잠시 놀러온 것도 아니고, 아예 새 살림을 시작하는 상황이었는데 전혀 곡절이 없었던 거예요?”
“아마도 아내는 초기에 이모저모 고생이 좀 있었을 겁니다. 제가 직장을 정리하기까지 아내 먼저 이곳에 내려와 잠시 혼자 살았으니까. 보시다시피 저희 집이 마을과 떨어진 골짜기에 있는 외딴집이에요. 일단은 밤이 엄청 무서웠다 하더라고요. 근데, 외딴집의 장점도 많아요. 오붓하고 조용하고, 게다가 어느 정도 이웃들의 관심권 밖에 있으니까.”
“귀촌 정착은 의자를 만드는 일이나 뒷산 꼭대기에 오르는 일과 달리 만만치 않은 공력을 쏟아야만 할 겁니다. 그래서들 미리미리 준비를 철저히 하고 내려가라 하죠.”
“제가 보기보다는 꽤나 태평한 사람입니다. 매사 준비나 계획 같은 걸 하고 살질 않았어요. 직장에서 업무를 볼 땐 불도저처럼 밀어붙이기도 하고, 여차하면 호통도 내질렀지만 타고난 천성은 느긋하고 무계획적이에요. 귀촌 준비, 그런 거 전혀 없이 내려왔어요.”
“계획 대신 그때그때 상황에 적응하는 게 상책이라는? 흐르는 물처럼?”
“사전 귀촌 계획이 오히려 일을 어렵게 만들 수 있습니다. 제아무리 치밀한 계획을 세웠더라도 시골의 현실적 형편과 어긋나는 수가 많으니까. 제게 있었던 계획이라면 나를 내세우지 않겠다, ‘틀’ 안에 나를 가두지 않겠다 정도였죠. 이건 소극적인 태도로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신속하고 효율적인 정착을 가능케 했습니다. 목에 힘을 빼고, 긴장할 것 없이, 예컨대 소풍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내려오는 게 더 지혜로울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잊을 수 없는 귀촌 첫날의 별빛
소풍처럼! 지독한 게 삶이라 하지만 지독하게 애만 쓰다가 허무맹랑한 파장을 보기 쉬운 게 또한 인생이다. 그러하니 억지로 애쓰지 말자, 귀촌에 너무 큰 기대를 걸지 말자, 김밥 싸 들고 소풍 가듯이 가볍게 운신하자, 심 씨의 내심엔 그런 게 있었던 모양이다. 그 외에 구체적인 구상이나 기어이 이루고 싶은 그 무슨 목표를 정하지 않은 채 산골살이를 시작했던 것 같다. 마치, 내가 과연 어떻게 살아가나 어디 두고보자, 하는 투로.
“산골 자연 경관이 너무도 마음에 들었어요. 그 한 가지만으로도 귀촌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봅니다. 은퇴한 분들에게 어서들 내려오십쇼,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자신 있게 권장하는 이유 역시 거기에 있어요. 제가 낭만적인 사람이 전혀 아니지만 나무와 달, 별을 즐기게 되었는데요, 그 순수한 자연 풍경들이 마음을 하염없이 평온하게 만들기 때문이에요. 뭐니 뭐니 해도 마음 편히 사는 게 행복이지 않겠어요? 귀촌 첫날 밤, 침실 창밖 허공으로 쏟아지던 별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달도 별도 날마다 바라보다 보면 심드렁해지지 않던가요? 낭만주의자들의 음풍농월조차도 반복되면 싱거워지는 거라서.”
“초반엔 권태를 느낄 겨를이 없었어요. 딱히 할 일을 만들진 않았지만 텃밭 농사하랴, 산나물 뜯으러 다니랴, 산책하랴, 하루해가 어떻게 넘어가는지 모를 지경으로 아내와 함께 즐겼어요. 그런데 말이죠, 한두 해가 지나자 슬슬 심심해지더라고요. 친구들의 방문도 서서히 줄어들다 끊어지고, 시간이 무료해지고. 그래서 농사를 본격적으로 짓기 시작했죠.”
“어떤 작물들을?”
“1000평 농토에 고추, 생강, 도라지, 호박 등 이 마을에서 흔히들 하는 작물을 재배했어요. 인건비를 아끼려고 모든 일을 아내와 둘이서 해냈지요. 양봉도 해봤고, 된장을 만들어 팔기도 했고요. 한 해 2000만 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지만, 어느 해엔 기상 악화로 망치기도 했어요. 농사란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심 씨의 집 풍경을 볼까? 포옹처럼 터를 에워싼 야산 중턱에 들어앉은 남향집이니 밝고 따사롭다. 집도 마당도 널찍하다. 꼬끼오! 닭장에선 수탉이 관악기처럼 목을 길게 빼고 청을 돋워 산중 적막을 비틀어댄다. 집 모서리엔 한때 꿀을 얻었던 폐 벌통 스무 개쯤이 쌓여 있다. 뒤뜰 장독대엔 후덕하게 생긴 항아리들이 즐비하다. 나무나 화초 가꾸기엔 별 취미가 없는지 이렇다 하게 공들여 운치 있게 꾸민 기색이 없다.
너른 발코니나 마당에 의자라거나 앉을 만한 자리 하나 마련해두지 않은 걸 보면 주로 서서 움직이는 분주한 일상을 보내는 모양이다. 집 둘레 곳곳에 널브러진 폐물들에서도 이 집에 사는 부부가 미화작업에 신경 쓸 겨를 없이 근로에 시간을 아껴 쓴다는 걸 짐작할 만하다.
마당 한편에 설치한 비닐하우스에선 심 씨의 아내가 쇠스랑으로 텃밭을 고르고 있다. 어디 딴 데 눈 한 번 돌리는 법 없이 열심히, 혹은 고독하게.
이분은 한때 병을 얻어 고생을 했다. 그게 귀촌을 서두른 요인이기도 했다지. 산골의 어디에 사람의 몸을 고치는 미약이 숨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귀촌을 통해 다 죽어가던 사람이 살아나기도 하는 걸 나는 간혹 봤다. 심 씨의 아내 역시 귀촌 이후 건강을 완연하게 회복했다는 게 아닌가.
“저희 부부는 외식을 안 합니다. 농약 친 식재료들로 만들어진 음식을 싫어해서죠. 직접 온갖 채소들을 깨끗하게 가꿔 찬을 만들어 먹기, 이 역시 산골에 사는 행복 중 하나입니다. 그게 건강비결이라고 봐요. 요양을 위해서라면 가급적 깊은 산골로 들어가는 게 좋을 겁니다. 농약을 엄청 뿌려대는 과수 단지나 유해 가스를 배출하는 축사 지구를 피해야 한다는 거죠. 그런 곳은 도시보다 공기의 질이 더 나쁠 수도 있으니까.”
“도시에서와 달리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는, 어쩌면 불운한 여건에 처한 부부 사이에 흐르는 공기의 질도 중요하겠죠? 귀촌한 부부들이 대화단절이라거나, 도시에서보다 갈등을 더 겪는 경우도 드물지 않더군요. 부인은 산골생활에 만족하시나요?”
“만족할 리가요. 여자에게 시골은 아무래도 불편이 많으니까요. 체념하고 사는 것 같아요. 부부싸움도 하지만 그때마다 화해를 하죠. 친구처럼 그냥 무덤덤하게 삽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고 좋아지는 것도 아니더라고. 뭐 그래도 밥은 얻어먹고 삽니다.(웃음) 다툼이 있더라도 그게 다 내 탓이거니, 그리 여기고요.”
“‘내 탓’이라는 건 뭐죠?”
“흠, 제 약점이랄까, 제가 느려터진 면이 있어요. 게으름과는 좀 다른 건데요, 옆에서 볼 땐 당치 않은 여유나 허세를 부린다고 느낄 수도 있겠죠. 그러나 어릴 때부터의 천성이라 어쩔 수 없더라고요. 좀 더 느린 숨결로 여유롭게 살자! 귀촌 때 그런 다짐도 했고요.”
“마을 이장을 맡으셨죠? 주민들의 신임을 얻지 않고선 그거 어려운 거 아녜요?”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했어요. 저를 내세우지 않고 배운다는 자세로 어울렸어요. 술자리도 함께하고 오락 화투도 같이 치며 섞여들었어요. 시골에선 사생활이라는 게 어렵습니다. 뭐든 묻거든요. 답을 안 해주면 오해를 살 수 있고요. 그런 풍토를 긍정하고 잘 적응해 주민들의 사랑을 받아야 정착할 수 있어요.”
마을에서 가장 바쁜 사람
사람의 마음은 새장에 달린 문과 같아서 활짝 열어젖힐 때 비상할 수 있다. 시골에 살며 아는 척, 잘난 척, 멋있는 척을 하다 보면 새장에 갇힌 신세를 자초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자세를 낮춘 갸륵한 선의마저 곧이곧대로 믿어주질 않는 경우가 많은 게 세상이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 아파하는 게 인간이라는 종이다. 시골인들 혼선이 없으랴.
“험한 꼴을 당한 적은 없으셨고?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울고 싶은 상황이라든가.”
“텃세라는 건 주로 집성촌에서 벌어집니다. 60여 명의 각성바지들이 살아가는 이 마을 주민들은 다들 점잖아요. 귀촌하고서 집들이를 했는데 온 마을 사람들이 오셨더라고요. 이 마을에 이주한 최초의 외지인이라며 반겨줬어요. 그 분위기를 죽 유지한 셈이죠.”
이장 일을 보면서부터 심 씨의 양상이 급변했다. 마을에서 가장 바쁘고, 가장 유명하고, 가장 당당한 사람이 되었다. 굵직굵직한 마을 사업들을 펼쳐 성과를 거둬서다. 자칫 먹은 것 없이도 바가지로 욕먹을 수 있는 게 마을 사업 선도자다. 그는 공생 공영을 열심히 추구한 나머지 흠집 난 게 없는 것 같다. 남을 위하는 일이 곧 나를 위하는 길임을 아는 이의 활보라 할 수 있겠다.
“귀촌하려는 분들에게 꼭 귀띔하고 싶어요. 재능과 역량을 마을에 쏟는다면 반드시 좋은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는 걸. 요즘 정부나 지자체가 시행하는 마을지원사업의 규모나 종목이 점점 늘어나고 있음에 착안하시길 바랍니다. 마을의 공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으며 개인의 이익도 도모할 수 있으니까.”
심 씨는 고개를 뒤로 꺾으며 큰 소리로 자주 웃어젖혔다. 우스울 게 없는 대목에서도 마구 웃으니 난 그게 우스워 덩달아 웃길 거듭했다. 적극적인 사교의 기술일 테지. 몸에 밴 겸양의 꽃으로 터져나온 홍소(哄笑)일 수도.
심원복 씨가 주는 귀촌·귀농 준비 Tip
•최소한의 생활비(월 100만 원 정도)를 조달할 수 없는 재정 형편이라면 귀촌하지 않는 게 좋다. 비참해질 수 있으니까.
•농사로 돈을 모으기는 정말 어렵다. 노동 강도도 세다. 섣불리 농토에 투자하지 말자. 일단 맨몸으로 들어와 빈집과 묵은 전답을 빌려 수련기를 갖는 게 좋다.
•시골생활을 하다 보면 무료해진다. 변화가 없는 일상에 지칠 수 있다. 그럴 때 자연과의 교감이 필요하다. 산야에 관심을 가지다 보면 감성도 길러진다. 열렬한 취미 한두 가지를 가지고 내려온다면 한결 바람직하고.
박원식 소설가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와 동대학원 졸업. 광주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오랫동안 자연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대상을 좋아할수록 아득해지는 미스터리가 늘 그를 궁리하게 만든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안목을 얻는 일의 요원함을 실감한다. 그가 즐기는 것은 산촌의 적막, 암자의 풍경소리, 낯선 여행지의 선술집, 우연한 만남 등이다. ‘천년 산행’, ‘암자에서 듣다’, ‘산골로 간 예술가’ 등의 저서가 있다.
해마다 날짜를 꼽으며 천마산(경기도 남양주시) 너도바람꽃이 피는 시기를 가늠해본다. 얼추 비슷한 날짜를 맞추어 수년째 같은 곳을 헤매다가 봄 첫 꽃을 만났다는 것에 황홀해하곤 했다. 올해는 운이 좋은지 눈 속에서 피어난 너도바람꽃을 볼 수 있었다. 물론 꽃이 피고 난 뒤에 눈이 온 것이지만 사람들은 눈을 이기고 핀 너도바람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다.
눈 속의 너도바람꽃을 보고 난 후 한동안 천마산을 찾지 않았다. 벌써 한 달이 지났다. 봄꽃은 흔히 와글와글 피어나니 4월 중순의 천마산은 어떠할까 궁금하기도 하였다. 수진사 입구에서 숲으로 걸어들어가니 아직 새잎이 돋지 않은 나무들 사이 분홍빛 설렘을 담은 진달래가 점점이 박혀있다. 멀리 산 중턱에서 진분홍색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는 개살구나무를 바라보는 것으로 봄꽃놀이를 시작한다. 생강나무는 만개하고 귀룽나무 새잎은 이미 풍성해졌다.
느려터진 발걸음으로 하늘정원이라고 불리는 노루귀 꽃밭에 12시 30분께 닿았다. 아침 8시 30분에 산행을 시작하였으니 꽤나 천천히도 걸은 모양이다. 이리 많은 노루귀들을 본 적이 있었나 싶다. 무리 지어 군집을 이룬다기 보다는 산발적으로 흩어져 사면 하나를 채우고 그 옆의 골까지 피어나는 형상이다. 충분히 빛을 받아야 꽃잎을 여는 꿩의바람꽃도 꽃잎을 활짝 열었다.
한참을 꽃들과 놀다 돌핀샘까지 올라 계곡을 타고 내려가기로 한다. 운 좋게 꽃이 핀 처녀치마 두 송이를 보고 황금색 천마괭이눈도 만났다. 오늘 나는 만주바람꽃을 보고 싶었다.
만주바람꽃은 단풍이 살짝 든 듯한 잎과 꽃이 묘한 매력을 느끼게 한다. 계곡에 만주바람꽃이 잘 피어있다. 약간 시기를 지난 감은 있지만 충분히 사랑스럽다. 바람에 한들거리는 꽃이 봄바람 마냥 사람을 싱숭생숭하게 한다. 현호색이 밭처럼 피었다. 시선을 넓게 펼쳐서 보니 몇 개의 라인을 타고 흐르듯이 피어있다. 큰 나무 그림자 때문에 선을 그리듯이 핀 것은 아닐까 얕은 생각을 해본다. 오늘 천마산의 주연은 노루귀였고 현호색이 봄의 환희를 노래하며 엔딩 크레딧을 올린다.
농촌에서는 봄이 오면 한 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풍년제를 지낸다. 어린 시절에는 친구들과 함께 풍악대를 쫓아다니며 온 동네를 구경했다. 그 친구들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다. 함께 부르던 가고파 노래도 생각나고 불러보고 싶다. 손끝에 물들인 봉숭아 꽃물이 첫눈 내릴 때까지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고 믿었던, 꽃 같은 미소를 지었던 예쁜이도 따라 다녔다. 붉은 댕기를 휘날리는 귀여운 모습을 보며, 함께 봉선화 노래를 부르며 놀았던 기억들이 아스라하다.
2월 4일은 입춘이었다. 봄이 곧 아지랑이를 타고 우리 곁에 오려 하고 있다. 봄이 오면 다양한 꽃들이 산과 들에 가득 피어날 것이다. 우수도 지났다. 얼었던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와 경칩이 지나면 봄의 햇살 아래 피어나는 꽃들이 아름다운 자태와 향기를 마음껏 자랑할 것이다. 그러면 친구들은 봄꽃놀이를 하자며 연락을 할 것이다.
이른 봄에는 매화나무, 산수유나무가 먼저 꽃망울을 터트린다. 봄의 대표 전령사인 풍년화도 필 것이다. 봄을 맞이하는 꽃이라 하여 영춘화(迎春花)라고도 불리며 잎이 나기 전, 2~3월에 꽃들을 먼저 피워낸다. 찬바람과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이른 봄에 피는 이 꽃을 보고 사람들은 풍년을 점쳤고, 꽃들이 탐스럽게 잘 피면 풍년이 든다는 믿음을 가졌다. 금루매(金鏤梅)라는 중국 이름도 갖고 있는 풍년화는 원산지인 일본에서 더 유명하다. 열매는 10월에 익으며, 종자가 익으면 탄력을 받아 툭 튀어나오는 특징이 있다. 노란색과 붉은색 꽃을 피우는데 붉은 풍년화의 꽃말은 ‘사랑’, ‘정성’이다. 그런데 ‘악령’, ‘저주’라는 또 다른 꽃말도 있다니 의아하다.
봄에 피는 꽃 중 풍년을 점치는 또 다른 꽃으로 생강나무 꽃이 있다. 옛날 사람들은 생강나무 꽃이 많이 피면 풍년이 들고, 띄엄띄엄 피면 흉년이 든다고 생각했다. 이 나무 열매에서 짠 기름은 머릿기름으로도 썼는데 동백기름보다 더 향기가 좋다 한다. 생강나무의 가지와 잎을 살살 문지르면 생강 냄새가 상큼하게 풍겨온다. 3월에 잎보다 먼저 노란 꽃이 핀다.
친구는 산수유나무 꽃이 생강나무 꽃과 비슷한 노란색인데 어떻게 구분하냐고 물었다. 나도 처음에는 몰랐으나 숲생태 교육을 받은 후 알게 됐다. 생강나무 꽃에서는 생강 냄새가 난다. 산수유나무는 줄기나 나무껍질이 울퉁불퉁하고 생강나무 껍질은 매끈하다.
올봄에는 친구와 술 한잔하면서 실컷 꽃놀이를 하고 싶다. 훈풍에 날려 오는 풍년화의 향기와 생강나무 꽃 냄새를 맡으며 풍년도 기원하고 싶다.
퇴직 후 숲 생태 해설가로 활동하며 ‘생강’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됐다. 생강(生薑-ginger)의 어원은 정력, 기력이며 신이 내린 정력제라고 할 만큼 효과가 있다. 공자가 생강을 좋아했다고 잘 알려졌으며, 다산 정약용 역시 생강차를 즐겨 마셨다고 전해진다.
생강은 새앙과의 풀이다. 채소 중 뿌리채소며, 약용과 식용으로 쓰이는 다년생풀에 속한다. 지하경이 굵어져서 다육한 괴상(塊狀)이 되며, 특유한 향과 매운맛이 있어 사람들이 애용한다. 이러한 특징으로 음식의 맛을 내는 조미료로 많이 쓰이는데, 생강차는 감기 예방에도 좋다.
생강나무는 봄에 노란 꽃을 피우며 가지와 잎에서 생강 냄새가 난다. 산후 풍에 좋다고 하는 이 나무는 밭에서 나는 뿌리채소인 생강과는 모양이 다르다. 그러나 생강향이 난다는 이유로 '생강나무'라는 이름을 얻게 됐으니 참 신기하기도 하다.
생강나무 가지와 잎을 따서 문질러 보면 상큼한 생강 냄새가 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른 봄에 잎보다 먼저 노란 꽃을 피우는데 산수유나무와 꽃 색깔이 비슷해 혼동하기 쉽다.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을 읽으면서 생강나무와 동백꽃과 황매목(黃梅木)이 같은 나무인 것을 알았다. 지난해 3월 김유정 생가를 관광차 찾았을 때, 그 노란 꽃향기가 짙게 풍겼던 기억이 있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여기서 알싸하고도 향긋한 냄새는 바로 생강나무를 말한다. 소설 속 이 꽃이 생강나무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느 산골 마을 소년과 소녀의 순박한 사랑을 토속적으로 쓴 ‘동백꽃’ 속, 알싸한 그 노란 생강 냄새가 콧속으로 스며오는 듯하다. 아마 소설의 배경인 산골 농촌에도 생강은 밭에서 자랐을 것이고, 생강나무 역시 뒷동산에 피어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 어린 시절로 마냥 줄달음치면서 건강에 좋다는 생강차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우리 집 텃밭의 생강의 모습과 추억이 아련하다. 죽마고우들과 뛰어놀던 뒷동산에 노란 생강나무가 아스라이 떠오른다. 생강의 향긋한 내음이 넘실거리며 풍겨오는 듯 아롱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