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부터 전 세계 테니스 팬들의 관심은 ‘2024 브리즈번 인터네셔널’에 쏠렸다. 클레이 코트의 강자이자 그랜드슬램 22회 우승에 빛나는 ‘흙신’ 라파엘 나달 선수가 1년 만에 부상에서 복귀해 치르는 첫 대회였기 때문이다.
나달은 지난 호주오픈(Australian Open) 기간에 ‘좌측 장요근(엉덩허리근, iliopsoas muscle) 2급 파열’ 부상을 입고 수술까지 받은 바 있다. 30대 후반인 그의 나이를 고려했을 때 은퇴 수순을 밟을 것이라고 많은 이들이 생각했지만 나달은 불굴의 의지와 노력으로 어려운 수술과 재활을 이겨냈다. 그리고 이번 브리즈번 대회에서 단식 8강까지 진출하며 성공적인 복귀가 점쳐지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나달은 8강전 도중 수술 부위의 통증을 호소하며 메디컬 타임아웃을 불렀고, 결국 패배와 더불어 다가오는 호주오픈에도 불참 선언을 했다.
올해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시사한 그였기에 이번 부상은 더욱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그렇다면 나달의 선수 생활에 큰 위기를 가져다준 장요근은 어떤 부위이며, 손상될 경우 신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자생한방병원 이준석 원장의 도움말로 알아보자.
장요근은 장골근과 대요근을 함께 칭하는 용어로, 척추·골반을 하체와 이어주는 근육이다. 다리를 올리거나 허리를 구부리는 등 허리와 골반의 움직임을 담당하며 신체의 균형을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장요근의 이완이 허리 통증을 약 3배 감소시켰다는 해외의 연구 결과가 있을 정도로 장요근은 척추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장요근은 골반과 허리를 안정적으로 지지해 주는 역할도 수행하는데, 장요근이 과하게 긴장하고 수축하면 척추가 굽어지는 등 척추의 변형을 일으켜 허리 통증을 야기한다. 그리고 이러한 증상은 허리디스크, 척추측만증(척추옆굽음증)과 같은 척추 질환을 악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따라서 테니스처럼 격하게 상·하체를 회전시키거나 순간적으로 운동 방향을 변경하는 피벗(pivot) 등의 동작을 무리하게 이어갈 경우 장요근에 부담이 쌓이기 쉽다. 실제 스페인 프로 축구팀 FC바르세로나의 유망주 라민 야말(Lamine Yamal)도 지난해 좌측 장요근 부상을 입었고, 국내 프로 야구팀 SSG의 4번 타자였던 길레르모 에레디아(Guillermo Heredia)도 이로 인해 3주 넘게 경기를 뛰지 못했다.
스포츠선수 외에도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은 직장인들도 장요근이 과하게 긴장돼 허리 통증을 느끼는 경우가 빈번하다. 특히 30~50대 직장인의 경우 장시간 바르지 못한 자세와 장요근의 긴장으로 각종 척추 질환의 발생 위험이 높다. 실제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통계에 따르면 2022년 허리디스크 환자 총 209만 8183명 중 30~50대 환자는 99만 6803명으로 약 5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 장요근의 수축으로 인해 허리 통증이 발생할 경우 한방에서는 장요근의 이완과 척추 기능 회복을 위해 추나요법, 침·약침 치료, 한약 처방 등의 한방통합치료를 진행한다. 추나요법은 한의사가 직접 신체의 균형을 올바르게 교정하는 수기치료로서 척추와 고관절 및 주변 근육이 받는 부담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다. 또한 침 치료는 혈액 순환을 촉진하고 근육을 부드럽게 이완해주는 데 도움을 주며, 한약재 성분을 주사 형태로 정제한 약침은 신속한 통증 감소와 손상 조직 회복에 탁월하다.
치료 외에도 평소 스트레칭을 통해 장요근을 수시로 이완해 주는 것도 좋은 습관이다. 대표적인 운동법으로 ‘장요근 이완 스트레칭’을 추천한다.
먼저 무릎을 꿇고 허리를 편 채 한쪽 다리를 앞으로 내딛는다. 이후 내디딘 쪽 무릎을 앞으로 밀어 장요근을 이완시켜 준다. 이때 상체는 최대한 일직선으로 유지해야 한다. 15초간 자세를 유지하며, 다리마다 3회씩 총 3세트 진행한다.
이준석 자생한방병원 원장은 “상·하체를 무리하게 움직이는 운동선수도, 앉아 있는 시간이 긴 직장인도 모두 장요근의 과한 긴장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허리디스크 등의 질환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며 “엉덩이나 허리 주변에 통증이 느껴진다면 장요근 건강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툭하면 ‘새해가 됐으니 뭔가 해야지!’라고 다짐한다. 훗날 변화한 모습을 떠올리며 행복회로를 돌려보기도 한다. 당장 시작할 것처럼 의지를 불태우다 금방 시들해지고, 운 좋게 실행하더라도 3일을 넘기기 쉽지 않다. 바빠서, 피곤해서, 날이 좋지 않아서 등의 이유를 꼽으며 미루기 일쑤다. 계획을 세우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천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준비에 실패하는 것은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라는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처럼, 계획을 세우고 노력하다 보면 목표에 도달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걸 부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각자의 ‘단골 계획’을 올해는 꼭 이뤄보자 읊조리고 있다면, 아래 방법들을 참고해보자.
1. 프랭클린의 기록 습관
미국 헌법의 뼈대를 만들며 ‘미국 건국의 아버지’이자 발명가, 사업가, 정치인으로 알려진 벤저민 프랭클린. 평소 근면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절제, 침묵, 질서, 결단, 절약, 진실 등 13가지 덕목의 계율을 정해 작은 수첩에 적으며 실천하려 노력했다. 64년간 매일 저녁 그날 하루의 행동을 생각하고, 각 계율과 관련해 잘못한 것이 있으면 해당란에 검은 점을 찍었다고 한다. 그의 수첩에 착안해 다이어리 브랜드도 탄생했다. 프랭클린 플래너는 단순히 할 일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 자신만의 사명・가치를 발견해 꿈 목록을 만들고, 구체적인 목표를 정해 월간・주간・하루 단위의 계획을 세운 뒤 이를 평가하라고 권한다.
2. 시간 관리는 효율적으로, 타임블록
‘일하기 위해 책상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택배를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잠시 중단하고 물품을 챙겨 우체국으로 향한다. 돌아오는 길, 새로 생긴 서점을 발견하곤 한창 책을 구경하다 퍼뜩 텅 빈 냉장고가 떠올랐다. 저녁거리를 사온 뒤 책상 앞에 다시 앉았는데 집중력이 흐려져 청소를 시작한다.’
수시로 주의를 빼앗기는 산만한 환경에서는 깊은 생각이 필요한 큰 규모의 작업이 건성으로 처리하는 얕고 질 낮은 작업으로 변질되기 마련이다. 타임블록을 통해 일에 생산성을 높이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효율적으로 배치해보는 건 어떨까. 타임블록은 하루에 해야 할 목록을 정리하고, 그 일들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을 각각 할당해 하루를 소화하는 방식이다.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와 MIT 출신 컴퓨터 과학자 칼 뉴포트 등 여러 전문가가 꼽은 시간 관리법이다. 일과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9시 반에서 10시까지는 거래처 미팅에 필요한 자료를 모으겠다’, ‘11시부터 12시까지는 점심을 먹고 책 20페이지를 읽겠다’ 등 하루의 시간블록을 설정해두는 것이다. 책 ‘시간을 선택하는 기술, 블록식스’의 정지하 저자는 분초에 집착하기보다는 하루의 흐름을 한 번에 읽으며 보이지 않는 시간을 정리하고, 간결하게 배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바쁘게 모든 일을 해치우기 위해 해당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인 행복을 제대로 얻기 위해 배우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3. 세계적인 야구선수 만든 만다라트
10년 7억 달러(약 9079억 원)라는 계약을 맺고 LA 다저스에 입단한 일본의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 만다라트 계획표는 그가 지금의 ‘투타 만능’ 궤도에 오르는 데 도움을 준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정사각형을 가로·세로 9개씩 총 81개 칸으로 나누고, 한가운데에 가장 본질적인 목표를 적은 뒤 중앙을 둘러싼 8개의 빈칸에 해당 주제와 연관된 세부 목표를 적는다. 나머지 64개 칸에는 꿈을 이루기 위한 실행 지침을 채워 넣는다. 오타니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이 방식을 접했다. 당시 그의 목표는 일본 프로야구 8개 구단에 1순위 지명을 받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몸 만들기, 제구, 구위, 멘털, 스피드 160㎞/h, 인간성, 운, 변화구 이 8가지를 목표 달성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 정했고 하체 강화, 축 흔들리지 않기, 일희일비하지 않기 등 그에 맞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훈련했다.
인공지능(AI)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개인비서에게 도움을 청해보자. 전화·문자부터 길 찾기, 통화 녹음, 게임, 음악, 동영상까지 나만의 AI 개인비서 에이닷이 일상을 편리하고 즐겁게 만들어줄 것이다.
에이닷
에이닷은 나만의 개성을 반영한 캐릭터와 소통하며 나에게 유용한 서비스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AI 개인비서 서비스다.
설치 및 로그인하기
① 원스토어, 플레이스토어에서 에이닷을 검색한 후 설치한다.
② 설치 완료 후 열기 버튼을 눌러 실행한다.
③ 하단의 홈으로 가기 버튼을 선택한다.
④ 휴대폰 번호로 계속하기 버튼을 선택한다. 카카오, 네이버 등 계정 연동도 가능하다.
⑤ 이름, 주민등록번호 앞 7자리, 보안 문자, 통신사(선택), 휴대폰 번호를 입력하고 다음 버튼을 선택한다.
⑥ 문자로 발송된 인증번호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로그인된다.
메인화면 활용하기
로그인하면 하단의 [피드] 버튼이 선택된다. 화면 이동은 [통화요약], [에이닷] 아이콘, [프렌즈], [앱]을 선택하여 할 수 있다.
[피드]에는 날씨, 게임, 운세, 뉴스 등 각종 정보가 표시된다. [통화요약]에는 1일 총 통화 내역과 문자로 요약된 통화 내용이 담겨 있다. 통화 내용은 검색할 수도 있다. [에이닷] 아이콘을 선택하면 보다 손쉽게 에이닷 사용이 가능하다. [메시지 입력] 또는 [마이크] 아이콘을 선택하면 된다. 명령어 간편 버튼을 활용할 수도 있다. [프렌즈]에서는 세 개의 캐릭터와 대화 가능하다. 대화하고 싶은 캐릭터를 선택하면 채팅방이 열린다. [앱]에서는 에이닷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기능을 만나볼 수 있다.
통화요약 하는 법
① 메인화면 하단의 [통화요약] 버튼을 선택하면 화면이 출력된다.
② [A.통화요약 시작하기] 버튼을 선택한다.
③ 권한 설정을 위해 [설정하기] 버튼을 선택한다.
④ 에이닷 우측 버튼을 눌러 권한을 활성화한다.
⑤ 상단의 1일 총 통화 내역과 하단의 문자로 요약된 통화 내용을 확인한다.
⑥ 문자로 저장된 통화 내용은 검색 가능하다. 상세 내용 확인을 위해 검색된 결과를 선택하면 내용을 말풍선 형태로 볼 수 있다.
앱 활용하기
앱에는 일상을 돕는 다양한 기능이 있다. 주요 기능은 루틴, 캘린터, 알람, sleep, T멤버십, TMAP, 포토 등이다. 큐피드로 궁금한 정보를 묻고 답할 수도 있다. 영어 학습은 튜터로 가능하다. 챗T를 선택하면 생성형 AI에 질문할 수도 있다.
앱에서 각종 콘텐츠도 만나볼 수 있다. 주요 콘텐츠는 TV, 뮤직, 프로야구, 프로농구, 게임, 타로, 심리테스트, 링(통화연결), 전화 프로필 등이다.
사진 편집하는 법
① [포토]를 선택하면 AI가 직접 사진 편집을 수행한다.
② [사진 편집] 버튼을 선택한다.
③ AI 페이스, AI 만화 필터, AI 지우개, AI 수평, AI 자르기 기능을 선택하여 사진을 편집한다.
음악 듣는 법
① [뮤직]을 선택하면 음악 플랫폼 FLO(플로) 서비스에 접속한다.
② FLO 서비스와 연동을 위해 회원가입한다. T-ID 계정을 통해 서비스를 연결할 수도 있다.
③ AI가 추천한 음악 또는 최신 음악, 지금 추천 음악을 듣는다. 무료로 30곡을 들을 수 있다. FLO에 가입된 계정을 통해 더 많은 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다.
기업·전문가 매칭 플랫폼 탤런트뱅크가 가입 기업 대상 뉴스레터 ‘적시타’를 선보인다.
적시타는 탤런트뱅크 가입 기업 중 수신 동의한 1700개 기업에 매월 발송하는 뉴스레터 서비스다.
국내외 최신 비즈니스 트렌드와 이슈를 읽기 쉽게 정리해 전달하고, 관련 추천 전문가와 바로 매칭될 수 있는 추천 상품 링크를 제공한다.
최근호에서는 ‘신사업 발굴 분야’를 주제로 수출에 영향을 받아 하반기 유망 산업으로 떠오른 K팝, 식품, 의료기기 등 분야의 소식을 전했다. 전문가 프로필로는 보스턴컨설팅그룹, 아서디리틀, 롤랜드버거 등 세계적인 컨설팅사를 거친 전문가들을 추천했다. 이와 함께 해외 주재원 전문가, 해외 거주 활동 전문가, 외국인 전문가를 한데 모아 글로벌 매칭을 지원하는 신규 특화페이지 ‘해외 비즈니스관‘도 소개했다.
더불어 뉴스레터를 통해 기업이 참고할 수 있는 전문가 매칭 성공 사례와 고객 후기도 볼 수 있다.
탤런트뱅크 관계자는 “야구에서 적시타를 치면 승리를 이끌 수 있듯이 적시에 필요한 비즈니스 정보와 전문가 안내를 제공해 사업이 크게 성공하기를 바란다는 뜻을 담았다”며 뉴스레터 ‘적시타’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도 적시타처럼 찾아가는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개발해 기업 고객 및 전문가와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더욱 넓히겠다”고 덧붙였다.
대접받고 싶습니까? 친절하십시오.
존중받고 싶습니까? 친절하십시오.
인정받고 싶습니까? 친절하십시오.
성공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반드시 친절해야지요.
건강하고 싶습니까?
당연히 친절해야지요.
행복하고 싶습니까? 친절하고
친절하고 또 친절해야지요.
연기가 옆으로 기어가는 굴뚝
우리나라에서 존경과 사랑을 받는 부자로 첫손에 꼽히는 이는 아마 경주 최부잣집일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일화와 뒷이야기가 무성하지만 그 가운데 필자를 놀라게 한 것은 바로 ‘수평 굴뚝’ 이야기입니다. 보통 굴뚝은 지붕 꼭대기에 만들어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먼발치에서도 밥 짓는 연기가 하늘로 솟는 게 보이기 마련입니다. 반면 최부잣집은 마루 아래 섬돌 밑에 가로로 굴뚝을 냈는데, 아궁이에 불 때서 밥하는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바닥으로 기어가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끼니를 잇지 못하는 배곯는 이웃들에게 설움이 되고 상처가 될까 봐 배려하는 마음에서였다고 합니다.
끊임없이 복 짓는 경주 최부잣집
만물이 가득 찬다는 소만(小滿). 보통 양력 5월 21일쯤으로 추운 겨울 견딘 보리 이삭이 누렇게 익어가는 시기지만, 정작 일반 서민들은 먹을 양식이 떨어져 ‘한 많은 보릿고개’니 ‘춘궁기’(春窮期)니 하며 목숨 부지하기 힘들었던 때였습니다. 딱 그런 때 누군가 새벽에 최부잣집 문 앞을 말끔히 쓸고 돌아가면 안주인이 아침에 일어나 “뉘 집 빗질 자국인가?” 하고 물어보고 먹을 양식을 보냈다고 합니다. 가난한 살림이지만 양식 구하러 다니기 곤란했을 가장의 체면도 세워주고 자존심도 구기지 않도록 세심히 배려했던 최부잣집 전통에 마음이 훈훈해집니다. 덕을 베풀더라도 상대를 함부로 하지 않는 친절하고 다정한 마음이 대를 이어 부를 축적하고 유지할 수 있었던 비책이 아니었을까요. 경주 최부잣집이 자리 잡은 터가 명당(明堂)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음택(陰宅)인 묘지가 아닌 양택(陽宅)인 집이 명당일 경우 복이 당대에 그친다고 하는데, 최부잣집은 스스로 복을 짓고 또 지어오면서 그 기운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짐작됩니다.
남이 버린 행운 줍는 오타니 쇼헤이
3월 22일 열린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결승전에서 3번 지명타자로 맹활약한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가 9회 초 다시 마무리 투수로 나와 야구 종주국 미국을 물리치고 우승컵과 대회 MVP까지 차지했습니다. 대회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던 오타니는 훤칠한 키와 출중한 외모뿐 아니라 평소 몸에 밴 특별한 태도와 행동으로 더욱 관심을 끌었습니다. 1994년생인 그는 운동장에서 ‘쓰레기 줍는 야구선수’로 불립니다. 경기 중에 출루하거나 투구(投球) 사이에 담배꽁초나 휴지가 눈에 띄면 바로 주워 유니폼 주머니에 태연히 집어넣습니다.
“다른 사람이 무심코 버린 운(運)을 줍는 겁니다.”
오타니가 강조한 운은 그가 고등학교 진학하면서 직접 만든 ‘만다라트(Mandal-Art : 목표를 달성하는 발상 기법) 계획표’에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습니다. 특히 최종 목표인 ‘8구단 드래프트 1순위’를 달성하기 위한 9가지 세부 목표 중 하나인 ‘운’을 이루기 위해 인사하기, 쓰레기 줍기, 청소, 심판에게 공손한 태도, 물건을 소중히 쓰자 등을 적어놓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이룬 성공의 밑바탕엔 작은 친절이 쌓이고 쌓여 대운으로 작용한 비밀이 숨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종교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종교는 무엇입니까? 불교도 기독교도 유대교도 회교도 아닙니다. 가장 위대한 종교는 바로 친절입니다. 이웃에 대한 따뜻한 배려가 친절입니다. 친절은 자비의 구체적인 모습입니다. 작은 친절과 따뜻한 몇 마디 말이 지구를 행복하게 한다는 걸 잊지 마십시오.”
필자는 문득 법정스님이 그립습니다. ‘무소유’(無所有)라는 어려운 가르침보다 훨씬 쉬운 ‘친절’(親切) 한마디에 사랑과 자비, 인(仁)과 존중을 담았으니까요. “사람끼리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모든 존재에 대해서 보다 따뜻하게 대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 법정스님. 스님은 친절과 따뜻한 보살핌이 진정한 대한민국을 이루며 믿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2004년 하안거(夏安居) 해제 법문과 집필한 책(‘아름다운 마무리’)을 통해서 누누이 가르쳐주었습니다.
친절의 반대말은?
친절은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모든 비난을 해결한다. 얽힌 것을 풀어헤치고, 곤란한 일을 수월하게 하고, 암담한 것을 즐거움으로 바꾼다. - 레프 톨스토이
도대체 친절은 뭘까요? 대하는 태도가 매우 정겹고 고분고분한 것을 친절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렇다면 친절의 반대말은 무엇일까요? 보통 ‘불친절’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필자는 ‘갑(甲)질’이 친절의 반대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해나 권력 관계에서 우위에 있는 사람이 상대방에게 오만하고 무례하게 행동하고 육체적·정신적 폭력을 행하거나 괴롭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을 갑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구를 만나든 친절하게 대하고 존중하라는 법정스님의 가르침과는 딴판입니다. 운행 중인 항공기를 억지 회항시킨 희대의 ‘땅콩 유턴’ 사건부터, 고용주가 저지르는 끔찍한 폭행과 욕설, 최저임금에 한참 못 미치는 임금으로 ‘열정 페이’를 강요하는 무수한 사례까지, 열거하기 고통스러울 만큼 갑질을 일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동안(童顏)의 비결, 친절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의대 연구팀이 코로나19 기간에 105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긍정 공명’(Positive Resonance)이 높을수록 신체적으로 건강하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긍정 공명’은 타인을 보살피고 배려하고 관심을 갖는 친절한 마음과 태도를 말합니다. 친절을 실천한 사람들은 스트레스받을 때 분비되는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평균적인 사람들보다 23% 낮다고 합니다. 나아가 친절함은 염색체가 분열할 때마다 닳아 없어지는 ‘텔로미어’(Telomere)의 감소 속도를 느리게 하면서 노화를 늦춰 어려 보이는 효과까지 있다니, 돈 안 드는 동안(童顏) 수술이 바로 친절입니다.
뇌 속에 새기는 ‘건행선’
우리가 진심으로 감사를 표현하고 친절을 꾸준히 실천할 때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 도파민이 뇌 속에서 분비된다고 합니다. 기분을 좋게 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함은 물론, 심장 박동 수를 느리게 하고 관상동맥 질환 위험도 줄여줍니다. 전에 느꼈던 기분 좋은 경험을 다시 느끼려고 우리는 친절한 행동을 계속하게 된다는군요.
친절과 관대함은 삶의 만족도를 높이고, 인간관계를 다정하게 묶어주고, 건강한 몸과 마음을 만드는 데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고 수많은 연구에서 밝혀지고 있습니다. 더욱이 친절하고 관대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오래 산다고 합니다. 이뿐 아니라 친절은 전염성이 강해 다른 사람의 친절한 행위를 목격할 경우 또 다른 사람에게 친절할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고 합니다. 일종의 ‘친절 피드백’이자 ‘친절 부메랑’ 효과입니다. 건강과 행복을 주는 급행열차, ‘건행선’이라 부를 만합니다. 길을 새로 놓았으니 누구든 그 길을 이용할 수 있답니다. 그것도 공짜로 말입니다.
아직도 친절이 어려운 당신에게
타인에게 공감과 관심이 잘 생기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친절을 베푸는 사람한테도 ‘왜 굳이’ 하며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이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친절을 꺼리는 사람이라면, ‘Awe Walk’라고 불리는 ‘의식적인 산책’을 권해드립니다. 광활하고 웅장한 대자연뿐 아니라 동네 천변(川邊)을 산책하면서 해 질 녘 붉게 물든 노을을 보면 자신이 무언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고, 이는 친절함으로 우리를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고 합니다(버클리대학교 폴 피프의 2015년 연구). 또 ‘자비 명상’(Compassion Meditation)도 좋습니다. 위스콘신-매디슨 대학의 헬렌 웡(Helen Weng)은 2013년 연구에서 사랑하는 사람, 자기 자신, 낯선 사람, 심지어 적에게조차 호흡을 신경 쓰며 선한 감정을 흘려보낸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타인이 겪는 고통을 이해하고 감정을 조절하는 뇌 영역이 활발해졌다고 합니다.
친절 근육, 친절력(親切力) 키우기
러닝머신 20분, 스트레칭 40분씩, 주 3~4일 필자가 아파트 단지 안 커뮤니티센터를 이용하면서 목욕 후 반드시 하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로커룸 머리카락 치우기입니다. 제 머리카락이 굵고 까만 데다 숱도 많은 편이라 머리 말리고 나면 바닥이 장난 아니었습니다. 그때부터 로커룸 청소를 시작해 오늘 아침에도 대걸레로 머리카락을 치웠습니다. 경주 최부잣집만큼은 어림없어도 날마다 할 수 있는 필자만의 행복한 일상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걸레질하는 사람이 하나둘 늘기 시작했습니다. 치우지 않는 사람을 비난하고 흉보는 대신 치우는 사람을 칭찬하고 덕담으로 하루를 열 수 있으니, 그야말로 너나없이 좋은 일입니다. 척추기립근만 키울 게 아니라 친절 근육도 키워봅시다.
또 짬 날 때면 ‘자비 명상’으로 주변 모든 생명에게 행복과 안녕을 빌어주는 마음을 가집시다. 필자는 무생물한테도 자주 말을 건넵니다. 네 식구 벗어놓은 더러워진 빨래를 20년 넘도록 거품 내고 헹구고 짜주느라 고생한 통돌이 세탁기한테 머리도 쓰다듬고, 엉덩이도 톡톡 치며 고맙다 말합니다. 밀린 겨울 이불 빨래까지 하루에 세 번쯤 돌린 날엔 미안하다 사죄도 합니다. 그 덕분인지 고장 한 번 안 나고 식구처럼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하루 1친절 운동’ 같이 하실 거죠?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윤영미(60). 그녀의 제주도 집 이름은 ‘무모한 집’이다. 직접 작명했다는 윤영미는 “제 인생을 돌이켜보니 저는 굉장히 무모한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무모하다’는 꼭 부정적인 말은 아니다. 누군가의 무모한 도전과 열정이 그를 성공으로 이끌기도 한다.
윤영미 역시 무모한 성격 덕에 아나운서가 됐고, 더 나아가 ‘여성 최초’라는 이름 아래 여러 기록을 남길 수 있었다. 윤영미의 무모하지만 아름다운 도전은 60대에 접어든 현재도 진행 중이다.
윤영미에게 아나운서는 오랜 꿈이었다. 초등학생 때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우연히 방송반 아나운서를 맡은 그녀는 진행의 매력에 푹 빠졌고, 아나운서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아예 아나운서 명찰을 달고 다니던 그때부터 사람들은 그녀를 ‘윤영미 아나운서’라고 불렀다.
윤영미는 반드시 아나운서가 되어야만 했다. 목표를 정한 그녀의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없었다. 방법이 없다면 찾아서 만들면 되는 것이다. 윤영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청량리역 역장을 찾아가 “왜 여자는 방송을 안 하냐”고 물으며 방송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에 한 달여 동안 안내 방송을 한 그녀는 ‘최초의 지하철 방송 여자 아나운서’라는 타이틀을 얻게 됐다.
그뿐만이 아니다. 윤영미는 대학 졸업 후 춘천MBC 사장에게 직접 편지를 썼다. 당시 춘천MBC에는 공채 제도가 없었는데, 아나운서 시험을 볼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다. 이런 패기 덕에 윤영미는 1985년 춘천MBC 아나운서가 되면서 꿈을 이뤘다. 이어 그녀는 1991년 SBS 개국 당시 경력직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SBS 입사 후에도 ‘최초의 여성 프로야구 캐스터’, ‘최초의 아나테이너’(아나운서+엔터테이너)라는 수식어를 갖게 됐다.
“제가 워낙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는데 방법을 알지 못했어요.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되잖아요. 저는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는 걸 직접 해보고, 뭐라도 시도해보려는 편이에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경이기도 했고요. 저희 어머니도 늘 ‘안 되면 끝까지 해봐라. 분명히 길이 보인다. 걸림돌을 디딤돌로 만들어라’는 얘기를 많이 해주셨는데, 그런 말들이 많은 힘이 된 것 같아요.”
이런 아나운서 처음이라고?
춘천을 벗어나 SBS라는 큰물로 옮겨가니 고충이 따랐다. 윤영미는 “SBS에 들어가서 한 3년 동안은 TV 방송을 못 했다. 제 자리가 없었던 거다”라면서 “당시 아나운서 중에 순위를 매기자면 저는 거의 꼴찌였다”라고 말했다. 쟁쟁한 아나운서들 사이에서 위기의식을 크게 느낀 윤영미. 그녀의 성격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윤영미가 찾은 돌파구는 ‘야구’였다. 당시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여자 캐스터가 없던 시절이었다. 윤영미는 자신이 길을 개척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야구를 좋아해서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사실 야구의 ‘야’자도 몰랐기에 그녀는 공부에 매진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당시에는 야구에 미쳐 살았던 것 같아요. 매일 근무 끝나면 야구장에 가서 야구를 봤어요. 당시에는 신문밖에 없으니까 스포츠신문을 탐독하고, 야구 중계를 켜놓고 따라 하면서 중계 연습을 했죠. 1년 동안 고시 공부하듯 공부했더니 야구가 조금씩 보이더라고요.”
당시 아나운서 국장이었던 이계진은 윤영미의 노력을 가상하게 여겨 캐스터 오디션 기회를 줬다. 윤영미는 당당히 합격하며 마침내 ‘여성 최초 야구 캐스터’가 됐다. 그렇게 그녀는 1994년부터 2000년까지 야구 캐스터로 활약하며 이름도 널리 알렸다. 지금도 그녀는 1994년 4월 7일 광주 첫 중계부터 한국시리즈 중계 등 영광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이후 2000년대 윤영미는 또 한 번 주목받았다. 추석 특집 프로그램에 출연한 그녀는 신신애의 ‘세상은 요지경’ 무대를 선보였다. 아나운서라는 고정관념을 깬 혼신의 무대는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이후 윤영미는 예능 프로그램의 단골손님이 됐다. 신신애와 이박사 성대모사는 물론 시원한 입담으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최초의 아나테이너 탄생이었다.
“당시 ‘엽기 아나운서’라고 주목받았는데, 요즘 같았으면 짤이 엄청 돌아다녔을 거예요.(웃음) 그런데 사실 아나운서실에서는 품위가 떨어진다면서 별로 안 좋아했어요. 저는 뉴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도, 인지도가 높은 아나운서도 아니었어요. 그래서 이미지 실추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고, 이왕 할 거면 어설프게 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즐겼을 뿐이에요. 시청자분들도 처음에는 제 모습을 낯설게 느끼다가 아나운서도 저렇게 할 수 있구나라고 받아들이신 것 같아요. 그러면서 그때 아나테이너라는 말이 처음 나온 거죠.”
윤영미는 50대 진입을 앞두고 또 한 번의 도전을 했다. 2010년 12월 SBS를 퇴사하고 프리랜서를 선언한 것. 그 이유에 대해 그녀는 “방송국에서는 50세가 되면 방송 진행보다 교육 등 다른 것을 하기를 원한다. 활동에 제약이 생긴다는 것이다. 저는 필드에 계속 있기를 원했다”고 설명했다. 여전히 아나운서로 빛나는 윤영미. 그녀가 생각하는 아나운서로서 자신의 강점은 무엇일까.
“저는 특별히 비주얼적으로 뛰어난 것도, 대단한 특기를 가진 것도 아니에요. 제가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건 성실성밖에 없는 것 같아요. 누구나 다 성실하겠지만 저는 굉장히 프로의식이 강해서 평생 지각, 결석을 해본 적이 없어요. 천재지변이 있을 때는 아침 방송에 늦을까봐 전날 출근해 책상에서 잔 적도 있고요. 항상 미리 가서 준비하니까 같이 일하는 사람들한테 믿음을 준 것 같아요.”
제주도, 그리고 가족
윤영미는 프리랜서가 된 후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종편 채널은 물론 홈쇼핑 채널에도 출연하고, 강연도 하고, 책도 쓴다. 연기에 대한 열정은 늘 가슴에 품고 있다. 현재 그녀는 제주도를 오가면서 살고 있다. 책을 쓰기 위해 제주도를 찾았다가 제주도의 매력에 이끌려 정착하게 됐다.
제주도 살이를 한 지 벌써 3년째. 윤영미는 올해 종달리로 이사했다. 그 집이 바로 ‘무모한 집’이다. 그녀는 유튜브 채널 ‘윤영미의 무모한 집’도 운영한다. 이사를 하고 수리·인테리어 과정을 거쳐 집이 재탄생하는 전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제주도의 전통 양식을 살리면서 모던함을 가미한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다. 돌 부엌과 돌 인덕션, 찻장 등 윤영미의 감각이 녹아들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저는 방송이 있기 때문에 서울을 왔다 갔다 해요. 그래도 한 달에 반은 제주도에서 사는 것 같아요. 남편은 제주도에 계속 있고요. 제주도 집에 있다 보면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많이 행복해요. 평생 생각만 하고 못 해봤던 일을 짧게나마 실현한 것 같아서 또 다른 꿈을 이룬 듯한 느낌이 들고 뿌듯해요.”
그런데 무모한 집은 정확히 말하면 윤영미가 산 집이 아니다. 6년 반 동안 장기 렌털한 집이다. 그러다 보니 자기 집도 아닌데 대대적인 수리를 하는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윤영미 역시 생각보다 많은 돈을 썼지만 후회는 없다. 그녀는 “저는 남들과 다르다. 내가 행복한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에 살던 제주도 집은 ‘체리집’이었어요. 벚꽃(체리 블러섬)이 굉장히 아름다운 집이었거든요. 이번 집은 감나무가 있어 ‘감나무집’이라고 하려 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왜 남의 집에 그렇게 억대의 돈을 투자하느냐, 무모한 짓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저도 돈이 그렇게 많이 들 줄 몰랐는데, 무모한 짓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제 인생 자체를 돌이켜보니 저는 굉장히 무모한 사람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무모한 집’이라고 이름 지었죠.”
윤영미는 자신의 무모한 삶에 관해 얘기하면서 ‘결혼’을 언급했다. 결혼 또한 무모했다는 생각이다. 그녀는 서른다섯 살에 출판사 직원이었던 황능준 씨와 결혼했다. 화려한 아나운서였던 윤영미의 선택은 다소 의외였다. 결혼 전 소개팅, 선을 많이 봤는데, 황능준 씨만큼 자신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 없었단다.
즉 사랑 하나만 보고 결혼한 것인데, 결혼 생활은 예상보다 힘들었다. 윤영미는 가장의 무게까지 짊어져야 했다. 황능준 씨가 결혼 후 3년 만에 목회자의 길을 걸으며 전업주부가 됐기 때문. 졸지에 가장이 된 그녀는 악착같이 일하며 돈을 벌어야 했다.
윤영미는 지난해 한 방송을 통해 그동안 쌓였던 가장의 스트레스를 털어놓았다. 늘 밝고 당당한 그녀의 고백은 충격적이었다. 더욱이 윤영미는 남편과 ‘졸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밝혔다.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냐고 묻자 그녀는 “지금 남편과 거의 떨어져서 살고 있기 때문에 졸혼이나 마찬가지다. 30년 정도 같이 살았으면 많이 산 거다”라고 말했다.
“남편의 장점은 밝고 긍정적이고 사람을 편안하게 해준다는 점이에요. 결혼할 당시 ‘돈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사람만 좋으면 됐지’라고 생각했는데, 살아보니 그건 아니더라고요. 내가 너무 순진했던 것 같아요. 가장으로서 많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아이들을 보면 결혼하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어요.”
윤영미가 오랜 시간을 버티면서 산 이유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아들 때문이었다. 현재 20대인 두 아들은 미국에서 유학 중이다. 특히 첫째 아들은 미국 아이비리그에 편입한 바 있다.
“첫째는 경영을 전공해서 월스트리트 쪽으로 진출하고 싶어 하고, 둘째는 건축가가 되고 싶어 해요. 나중에 정말 우리 집을 지어줄지도 모르죠.(웃음) 저는 아이들이 무엇이 됐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애들을 속박하며 공부하라고 하지 않았어요. 엄마가 그렇게 하니까 오히려 애들이 알아서 공부를 열심히 한 것 같아요.”
윤영미는 어느덧 60대 시니어가 됐다. 동안 소리도, 젊게 산다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 정작 자신은 잘 모르겠단다. 그냥 자신의 방식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았을 뿐이라고. 윤영미는 나이를 먹을수록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해야겠다고 느낀다. 그래서 자신이 좋아하는 방송과 여행을 죽을 때까지 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 과정에서 무모한 도전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뛰어들 그녀다.
“앞으로 2년 동안은 우리 애들 학비를 대는 것이 목표예요. 그리고 제주도 집을 6년 반 계약했으니 잘 살아야죠. 또 욕심이 있다면 강원도나 전라남도에 새집을 얻어 제주도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살고 싶어요. 인생의 목표는 오늘을 재밌게 살고, 하고 싶은 대로 살자예요. 독자 여러분도 마음에 어떤 갈망이 있다면 앞뒤 보지 말고 무조건 행하면서 즐기며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딸아, 되는 대로 살아. 걱정한다고 잘 되는 것도 아니더라. 그만하면 됐니라.” 아침 안부 전화 끝에 여든 중반을 넘긴 아버지, 툭 한마디 던지십니다. 갑자기 참았던 눈물이 울컥 터져 휴대전화 바탕화면이 부옇게 번집니다. 우리는 가끔, 어쩌면 자주 마음이 바닥을 치고 속절없이 주눅 들 때가 있습니다. 보잘것없이 초라해진 자신에게 되는 대로 살아도 된다고,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대견하다고 말해준다면 어떨까요? 살아보니 별것 없다고 끌탕하지 말라고 말해주는 누군가 곁에 계십니까? 이런 물음으로 마음 미장공 일곱 번째 이야기 열어봅니다.
왜 ‘추앙’ ‘추앙’ 하는 걸까요?
5월 29일 방송이 끝난 뒤에도 화제와 열풍 속에 있는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jtbc). 4년 남짓 공들여 이 드라마를 준비했다는 박해영 작가가 이제 ‘사랑’만으로는 부족하다며 내세운 것이 ‘추앙’입니다. 텔레비전 뉴스 자막은 물론이고 프로야구 경기장 응원 구호에도 ‘추앙’이 등장하고, 광고 문구에서도 ‘추앙’이 빠지면 섭섭할 만큼 대세 중의 대세가 되었습니다. 추앙(推仰), 높이 받들어 우러러보는 것을 뜻합니다. ‘새가 앞으로 날 수 있도록 손으로 밀어준다’는 추(推)와 자기 앞에 있는 사람에게 무릎 꿇고 경배하는 모습을 표현한 앙(仰)자가 합쳐진 것입니다.
다른 삶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날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소주 네 병씩 마시는 남자 구 씨(손석구 분). 공장일도 밭일도 없는 날은 아침부터 마신 술로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고 넘어지고 맙니다. 얼굴이 깨진 채 피를 흘리는 그 모습이 오늘따라 눈에 띈 순간. 나도 딱 그런 상황임이 분명합니다. 남자친구에게 버림받고 빚까지 떠안아 신용불량자가 되기 일보 직전인 데다 카드회사 계약직으로 일하며 폭언과 모욕을 일삼는 팀장에게 영혼마저 빼앗길 지경인 여자 염미정(김지원 분).
“날 추앙해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절벽 밑바닥으로 추락한, 텅 비어버린 자신을 ‘추앙’으로 채워달라고, 자기 밑바닥까지 보여준 남자에게 명령합니다. 그것은 아마 상대가 아닌 자신에게 내리는 명령이고 선언이며 다짐에 진배없습니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 묻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힘들어하는지도 알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눈길이 갔으니까요. 원래 나와 당신은 하나니까요. 당신이 아프면 나도 아프니까요. 인간(人間)이란 말처럼 우리는 사이에서 존재를 발견하니까요.
예전과 달라진 나를 경험하는 방법
“확실해? 봄이 오면 너도 나도 다른 사람 되어 있는 거?”
“확실해.”
“추앙은 어떻게 하는 건데?”
“응원하는 거. 넌 뭐든 할 수 있다. 뭐든 된다. 응원하는 거.”
인생 종점에 도착한 것마냥 지리멸렬한 두 남녀가 그렇게 서로 ‘추앙’하기로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마법이 시작됩니다. 자책과 자학이 일상이던 자신이 어느 순간 사랑스러워집니다. 그러다가 상대방도 예뻐 보입니다.
“자꾸 답을 기다리게 되는 마음은 어쩔 수 없지만, 두고 봐라 나도 이제 톡 안 한다 이런 보복은 안 해요. 당신의 애정도를 재지 않아도 돼서 너무 좋아요. 그냥 추앙만 하면 되니까. 당신 톡이 들어오면 통장에 돈 꽂힌 것처럼 기분이 좋아요.”
아무리 지랄 맞은 성미도, 문자 메시지를 읽고 씹든 안 읽고 씹든 그냥 웃으며 받아들입니다. 그 사람이 내뱉는 말에 휘둘리거나 끌려다니지 않고 행간을 읽을 줄 알게 됩니다. 말 자체, 글자 그대로 해석하지 않고 괄호 안에 숨어 있는 속뜻을 보물찾기처럼 찾아내는 능력이 생깁니다. 그렇게 드라마 속 구 씨와 미정은 달라집니다. 화려한 겉모습이나 남 부러워하는 직업, 유창한 말솜씨 같은 포장지 따위가 필요 없습니다. 오직 있는 그대로 나와 남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순간 참사랑, 추앙이 싹트니까요.
‘추앙’ 그리고 나마스테
아인슈타인은 어느 날 TV 뉴스를 통해 인도 거리에서 두 손 모아 인사하는 맨발의 간디를 봅니다. 카스트 계급에도 속하지 못한 채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으로 멸시받던 사람들에게도 합장하며 절을 하던 간디. 그가 뭐라고 인사하는지 궁금해진 아인슈타인은 편지를 보내고, 간디는 이렇게 답장을 합니다.
“나는 온 우주가 거하는 당신 내면의 장소에 절합니다. 빛과 사랑, 진리와 평화, 그리고 지혜가 깃든 당신 내면의 장소에 경의를 표합니다. 이것이 ‘나마스테’의 뜻입니다.”
내 안의 신이 당신 안의 신께 문안드립니다. 인도와 네팔에서 흔히 주고받는 인사말로, 만났을 때나 작별할 때도 사용합니다. 다신교인 힌두교 문화권에서는 수많은 신이 각자의 몸에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에 상대방을 신처럼 여긴다고 합니다. 자신이 믿는 신은 물론 상대가 숭배하는 신에게도 경의를 표하는 마음이 이 인사에 깔려 있습니다. 유일무이한 우주적 가치를 지닌 당신에게 온 마음으로 경배를 드린다는 뜻의 ‘나마스테’. 상대의 존재 가치에 가장 높은 존경을 나타내는 말로 지금 이 순간 당신을 존중하고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간디의 답장을 받은 당대 최고의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뒤통수를 세게 맞은 충격에 휩싸입니다. 우주의 신비를 풀기 위해 평생을 바친 아인슈타인이 그토록 찾아 헤맨 답이 바로 우리 마음속에 있다고 했으니 말입니다.
반갑습니다! 고맙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나마스테’와 같은 뜻을 지닌 말이 있습니다. “반갑습니다!”와 “고맙습니다!”가 그렇습니다. ‘반’이나 ‘고마’는 우리 고대 선조들이 신(神)을 뜻하는 인칭대명사로 썼다고 합니다. ‘당신은 반(신)과 같습니다’, ‘당신은 신과 같은 사람입니다’라는 의미를 지닌 최상의 인사였다고 전해집니다. ‘반’은 ‘환하다’, ‘하늘의’라는 뜻으로 넓어져 지금까지도 우리 일상생활에서 쓰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성품이 바를 때 우리는 ‘반듯하다’고 하고, 신의 뜻이나 약속처럼 꼭 이루어지는 것을 ‘반드시’라고 말합니다. ‘반짝반짝’, ‘반딧불’처럼 밝고 온전한 신의 속성을 표현한 말에도 ‘반’이 들어갑니다.
이렇게 깊고 아름다운 뜻이 우리말에 들어 있는 줄 저 역시 잘 몰랐습니다. 내 마음 밭에 미움과 증오의 씨앗을 뿌릴 게 아니라 나와 상대를 존경하고 귀하게 여기는 말씨를 심으면 좋겠습니다. 말이 지닌 참뜻을 새기면서 승강기에서 마주친 새로 이사 온 이웃께 먼저 인사를 건네볼까요. 반갑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마음 미장공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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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앙’하는 마음을 꼭 닮은 노래
내 마음속 성역에 누가 있습니까? 섣불리 충고나 조언하지 않고 원치 않는 평가나 판단도 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있는 그대로 나를 지켜봐 줄 사람이 있습니까? 또 나는 그 사람 인생에 개입해서 간섭하지 않고 있습니까? 원망 한 톨 없이, 미움 한 줄기 없이 그저 아낌없이 사랑만 줄 수 있다면, 나도 당신도 그 누구라도 해방될 것입니다. 그로 인해 나도 살고 그 사람도 살아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떡시루처럼 켜켜이 쌓이고 쌓인 증오를 딱 멈추고, 눈 뜨자마자 달려드는 내 생애 침입자들을 쓰러뜨리지 않고 웃으며 환대할 때 진정한 사랑, 추앙이 완성되지 않을까요. 1981년 당시 라트비아 가요 콘테스트 우승곡 ‘마라가 준 인생’()에 1997년 심수봉이 직접 가사를 붙여 새롭게 부른 ‘백만 송이 장미’. ‘추앙’도 ‘나마스테’도 ‘반갑습니다’도 절묘하게 담겨 있습니다.
먼 옛날 어느 별에서
내가 세상에 나올 때
사랑을 주고 오라는
작은 음성 하나 들었지
사랑을 할 때만 피는 꽃 백만 송이 피워 오라는
진실한 사랑할 때만 피어나는
사랑의 장미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백만 송이 백만 송이 백만 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중략)
이젠 모두가 떠날지라도 그러나
사랑은 계속될 거야
저 별에서 나를 찾아온 그토록
기다린 인연인데
그대와 나 함께라면 더욱더 많은
꽃을 피우고
하나가 된 우리는 영원한 저 별로 돌아가리라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백만 송이 백만 송이 백만 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예로부터 서민 음식으로 불린 술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어주기도 하고 즐거움을 주기도 했다. 특히 요즘 주류 업계에서는 ‘뉴트로’ 열풍을 타고 향수를 자극하는 상품을 계속해서 내놓고 있다. 추억을 떠올리다 보면 술을 더욱 즐겁고 재밌게 마실 수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최근 출시된 상품 중 중장년층이 특히 반가워할 ‘추억 몰이’ 술을 소개해 본다.
먼저 과거 인기를 끌었던 ‘추억의 맥주’ 크라운맥주가 30년 만에 돌아왔다. CU는 지난 25일부터 크라운맥주를 판매하고 있다.
크라운맥주는 대한민국 최초 맥주회사인 조선맥주(지금의 하이트진로)가 1952년 선보인 상품으로 40년 이상 인기리에 판매됐다.
맥주의 패키지는 과거와 비슷한 색깔인 황금빛으로 디자인됐다. 여기에 왕관(크라운) 이미지를 삽입해 크라운맥주라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게 했다.
크라운맥주는 고품질의 아로마 홉을 활용한 프리미엄 에일 맥주다. 특수 공법을 활용해 에일 특유의 쓴맛은 줄이고 묵직함과 시트러스 향을 강조해 누구나 가볍게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추억의 중장년층과 함께 젊은 세대의 마음도 사로잡았다.
그런가 하면, 1964년에 출시돼 현재까지 무려 19억 개나 팔린 대한민국 대표 빵 ‘크림빵’이 맥주로 재탄생했다.
‘크림삐어’는 홈플러스가 창립 25주년을 맞아 만든 기획 상품이다. SPC삼립과 수제 맥주 전문기업 플래티넘크래프트맥주가 협업해 맥주를 만들었다. 맛부터 외관까지 추억의 원조 크림빵을 모티브로 했다.
크림삐어는 크림에일 스타일로 맥주 고유의 재료만을 활용했다. 깔끔한 바디감과 풍부한 거품으로 어떠한 음식과도 잘 어울려 편하게 마실 수 있는 데일리 맥주다.
크림삐어는 플래티넘크래프트맥주에서 만들어 애주가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크림빵 특유의 상큼한 맛을 재현해 빵과 비교해서 먹는 재미가 있다고 한다.
또한, 추억을 떠올리는 주류들도 출시됐다. 먼저 포천이동막걸리로 알려진 이동주조1957은 MBC 드라마 ‘전원일기’와의 컬래버레이션 막걸리를 지난 4월 출시했다. ‘전원일기’는 22년이라는 최장수 방영 기록의 드라마로 최불암, 김혜자, 김수미 등이 출연했다.
이름하여 ‘전원일기 이동막걸리’는 건강한 일상을 지향하는 중장년층 이상의 소비자 성향을 반영해 알코올 도수 9%, 500mL 소용량으로 즐길 수 있다. 여기에 전원일기의 푸근한 인심을 단호박 맛을 가미해 표현했다. 시골길에서 자전거를 타는 라벨 디자인도 정감을 더한다.
GS25는 지난 4월 한국프로야구 출범 40주년을 기념해 MBC 청룡 맥주와 MBC 청룡 팝콘을 선보였다. MBC 청룡은 LG트윈스의 전신이다. 실제로 야구팬들이 프로야구를 관람하면서 맥주를 마시는 추세라고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맥주보다는 팝콘이 맛있다는 평가가 많다.
추억의 만화 ‘아기공룡 둘리’의 등장인물 고길동을 모티브로 한 '고길동에일'도 최근 출시됐다. 고길동은 서울 쌍문동에 거주하는 한 집안의 가장이자 평범한 직장인이다.
한때 ‘고길동을 이해하면 나이가 든 것’이라는 말이 화제가 된 바 있다. 어렸을 때는 고길동이 둘리와 친구들을 내쫓으려고 하고 혼내는 나쁜 아저씨 같아 보였는데, 나이가 들고 보니 그를 이해하고 된다는 것. 심지어 불쌍해 보이기까지 한다는 사람도 많았다.
이에 고길동에일은 과거에는 만화를 보던 어린이였지만 이제는 직장인이 되어서 힘들어하는 세대들을 위로하기 위해 출시된 맥주라고 할 수 있다. 맥주는 자몽, 망고, 파인애플 등 트로피컬 향을 담아 상큼하고 스트레스가 풀리는 맛이라고 한다.
국내에 프로스포츠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여러 가지 전설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지만, 그런 영웅담 중에서도 최고의 전설을 꼽자면 아마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와 관련된 것이 아닐까. 두껍게 날리는 흙먼지 사이로 흑색과 적색의 유니폼을 입은 그들이 나타나면 상대 팀 선수들은 기가 죽고, 상대 팀 팬들의 목소리는 잦아들었다. 상대의 전의마저 상실케 했던 해태 타이거즈 군단의 맨 앞에는 1번 타자 이순철(60)이 있었다.
“당시엔 사실 잘 몰랐어요. 해태 타이거즈에게 상대 팀들이 그렇게 기가 죽었는지를요. 그 공포의 유니폼은 우리에게는 그냥 촌스럽고 덥기만 한 존재였는데.(웃음) 현역 때는 모르다가 나중에 알게 됐죠. 술자리 같은 사석에서 다른 팀 출신 동료들이 이야기하더라고요. 그 유니폼이 그렇게 무서웠다고 말이죠.”
사실 해태 타이거즈의 우승 공식은 아주 단순했다. 타자들이 상대 팀보다 앞서 점수를 내면, 투수들이 막아 승리를 지킨다. 1번 타자 이순철이 시작하면 마무리투수 선동열이 지키는 공식이다.
홈런이 귀했던 시대에 1번 타자가 10개 이상 홈런을 치고 50개 이상 도루를 밥 먹듯 하니, 상대 팀 입장에선 맞설 수도, 내보낼 수도 없는 골치 아픈 타자, 그가 이순철이었다.
“상대는 경기를 시작하면 무조건 선취점을 내려고 했죠. 선동열이 못 나오도록 해야 하니까. 그렇게 무리하다 보면 게임은 꼬이게 되죠.”
함께 흘렸던 목포의 눈물
1980년대 호남 사람들에게 해태 타이거즈는 억눌린 울분을 다소나마 해소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 광주 민주화 항쟁을 거치는 과정에서 이들이 겪었던 상처는 해태 타이거즈 선수들이 승수를 쌓아갈 때마다 조금씩 아물어갔다. 그래서 팬들은 관중석에 앉아 ‘목포의 눈물’을 목이 터져라 불렀다. 그런 감정은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고 이순철 위원은 이야기한다.
“지금과 달리 당시엔 선수들도 대부분 호남 출신이었죠. 팀 내에서 민주화 운동에 대한 말은 아끼는 편이었지만, 그 응어리나 한이 없을 수 없죠.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경기 일정부터 달랐어요. 해태 타이거즈는 한동안 5월 18일이 다가오면 전후 일주일 정도는 원정경기만 잡혔어요. 기념일에 광주 구장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요. 하지만 원정을 가도 전라도 분들은 어디에나 있었고, 계속 뜨거운 응원을 보내주셨죠.”
1980년대에만 해태 타이거즈는 5번의 시리즈 우승을 이뤘다. 전체 우승컵의 절반을 가져온 셈이다. 대체 어떤 부분이 해태 타이거즈를 그렇게 강하게 만든 것일까? 이순철 위원은 그 비결로 3가지를 꼽았다. 강한 위계질서와 헝그리 정신 그리고 선수 개개인의 능력이다.
“워낙 좋은 선수들이 많았고, 이 선수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위계질서가 있었죠. 선배들이 짓누르니까 후배들은 압박도 많이 받았지만, 지금은 추억담처럼 이야기할 수 있어요. 아마 프로야구 구단 중에서 OB(구단 출신 은퇴선수) 모임이 가장 활성화된 곳이 해태 타이거즈일 거예요. 그만큼 서로 사이가 좋아요. 또 구단 사정이 그리 좋지 않아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노릴 수밖에 없었어요. 보너스로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려면 말이죠.(웃음)”
사실 강한 위계질서는 후에 그가 해태 타이거즈를 떠나는 계기가 되었다. 타이거즈의 상징과도 같았던 김응용 감독에 대한 항명 사건이다. 공교롭게도 그는 이후 비슷한 사건을 겪는다. 43세 젊은 감독으로 LG 트윈스에 부임하자마자 팀의 고참 선수였던 이상훈과 갈등을 빚었고, 에이스인 그를 당시 SK 와이번스로 트레이드를 보내게 된 사건이다. 한 번은 선수 입장에서, 한 번은 감독 입장에서 항명 사건과 맞닥뜨린 셈이다. 이 위원은 “철이 없었다”고 정리했다.
“철없던 짓이죠. 김응용 감독과의 갈등은 제가 철이 없었어요. 또 이상훈 선수와의 갈등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선배로서 더 아우를 수 있었는데 그러질 못했죠. 이상훈 선수하고는 나중에 한잔하면서 갈등을 풀었어요. 직접 소통했어야 하는데, 가운데 누군가를 거쳐 말이 전해지다 보니 생긴 오해였더라고요. 김 감독님하고도 마찬가지예요. 얼마 전 감독님 팔순 잔치도 제가 주도해서 준비했을 만큼 지금은 모두와 잘 지내고 있어요.”
숙명의 라이벌과 한 팀으로
사실 이순철 위원이 처음 시작한 운동은 야구가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 축구부에 들어가 선수 생활을 시작했지만, 축구부가 해체되면서 다른 인생이 펼쳐졌다.
“축구부 다음으로 육상부에 들어갔죠. 그러다 핸드볼을 잠깐 하고 나서 야구로 전향하게 됐어요. 그 과정에서 부모님의 응원은 받지 못했어요. 당시만 해도 운동선수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은 시절은 아니었으니까요. 공부하기를 원하셨지만, 먹고살기 바쁘니까 적극적으로 막진 않으셨죠. 저도 공부보다는 운동이 좋았으니까 계속 열심히 했고요. 운동부에서도 쉽진 않았어요. 당시 운동부는 지금 기준으론 범죄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체벌이 심했으니까요. 운동을 말리는 부모님에게 체벌 흔적을 들키지 않으려고 감추기도 하고, 상처 때문에 엎드려 자야 하는 날도 많았어요. 자식이 학교에서 맞고 다닌다면 누가 운동을 시키려 하겠어요.”
어려움 속에서도 그의 진가는 빛났다. 광주상고의 에이스로 발전해 광주일고 선동열과 맞서는 라이벌 관계를 유지했다. 이런 관계는 대학 때까지 이어져 연세대학교 81학번으로 같은 학번의 고려대학교 선동열과 계속 맞서야 했다.
대학 졸업 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했을 때 세간의 관심은 1985년 신인왕을 어느 팀이 배출하느냐가 아니었다. 해태 타이거즈의 누가 가져가느냐였다. 결국 신인왕은 0.304의 타율과 12홈런, 31도루를 기록한 이순철의 것이었다. 이 기록은 지난 시즌 기아 타이거즈에 입단한 이의리 선수가 신인상을 받을 때까지 36년간 이어졌다.
10시간의 비행이 만든 프러포즈
1989년 어느 날, 이미 팀의 주전으로 자리 잡은 이순철은 스위스행 비행기에 올랐다. 12시간이 넘는 비행이었지만 생경했던 기내식도 먹는 둥 마는 둥이었고,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만 꽉 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허락할까?’
야구와 인연이 없을 것 같은 스위스로 향했던 이유는 단 한 가지. 연인 이미경 씨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위원은 부인 이미경 씨를 연세대학교 학창 시절 처음 만났다. 그가 대학 시절 이미경 씨를 보고 첫눈에 반해 결혼까지 골인한 것은 야구계에서 유명한 이야기다.
“아내 키가 170cm가 넘어요. 제가 좀 작은 편이라 키 큰 여자를 동경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미인인 아내를 보는 순간 한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만나서 계속 구애를 했죠. 그리고 연애를 10년이나 했어요. 아내가 승마 선수로 스위스에 유학을 가 있을 때 프러포즈를 했어요. 그전까지는 전화카드를 잔뜩 쌓아놓고 공중전화로 장거리 연애를 했죠. 그러다 저도 혼기가 돼서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겠더라고요. 스위스행 비행기에 올라서 어떤 말을 할지, 과연 승낙을 해줄지 이런저런 생각에 긴장이 돼서 기내식도 제대로 소화가 안 될 정도였어요. 걱정과 달리 순순히 허락을 해줘서 기뻤죠. 그리고 다음 해 바로 결혼했어요. 저 때문에 승마를 그만두게 되었다고 아직도 가끔 불평을 해요.”
‘모두까기’의 야구 사랑
야구 골수팬들에게 이순철이란 이름 석 자는 다양한 모습으로 기억된다. 엄청난 기록의 선수였지만 말년의 기복 있던 모습이나 감독으로서는 좋지 않았던 성적, 방송이라도 입바른 소리는 뱉고 말아야 하는 성격 탓에 ‘모두까기’란 별명까지 얻은 해설위원으로서의 모습. 그러나 불만을 가진 팬들도 인정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야구에 대한 그의 사랑이다.
삼성 라이온즈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나서, 그는 단 1년도 야구계를 떠나본 적이 없다. 프로팀 코치나 감독 혹은 대표팀의 코치를 맡기도 했고, 해설위원으로도 활동한다. 이런 모습을 팬들이 인정해주는 것이다.
“제 인생에는 야구밖에 없어요. 인생의 다른 기술이 없어요. 다른 것을 할 용기도 없고, 할 줄 아는 것이 없으니까 야구에 몰두하는 것뿐이죠. 어릴 때부터 야구에 매달려 살았고, 야구를 하는 것이 가장 즐거워요. 편하고요. 그래서 인생의 과정이 자연스럽게 야구 중심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요.”
실제로 그는 인터뷰를 위해 사진을 촬영하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어색해하다가 소품으로 준비한 배트를 손에 쥐자 표정이 달라졌다. 타격 자세를 취하고는 “이제야 좀 편해진다”며 웃었다.
이제 그에게는 선수 혹은 감독이라는 호칭보다 해설위원이라는 직함이 더 편안하게 들릴 정도가 됐다. 2007년 MBC를 시작으로 활동을 해오다 지금은 SBS 스포츠에서 해설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사실 선수 출신 해설위원은 대표적인 ‘파리목숨’으로 불리는 자리다. 방송사에서는 매년 스타 출신의 선수가 은퇴하면 세간의 화제를 모으기 위해 해설위원으로 스카우트하지만, 시청자들 반응이 좋지 않거나 약간의 구설이 발생하면 바로 계약을 해지한다. 실제로 우리가 알 만한 레전드들이 2~3년을 채우지 못하고 방송을 떠난 사례가 부지기수다. 그 가운데 방송국을 옮겨가며 장수하고 있는 이순철 해설위원은 이제 모두가 인정하는 ‘스타 해설가’인 셈이다.
“어릴 때부터 종이신문을 읽는 습관을 들였어요. 특히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는 신문 사설을 많이 읽었죠. 당시 신문들마다 한자 사용이 많았던 탓에 웬만한 한자는 읽을 수 있게 되었을 정도니까요. 프로선수가 되고 나서도 이 습관은 바꾸지 않았어요. 팀 매니저들에게 중앙 일간지는 꼭 로커 룸에 넣어달라고 부탁했을 정도니까요. 덕분에 해설위원이 되고 나서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지식도 많이 쌓고요.”
그가 해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MBC의 제안이 있기 훨씬 전부터였다고 한다. 지금은 고인이 된 야구 해설의 전설 하일성 선배에게 사석에서 해설에 대한 이야기를 묻기도 했다고. 그래서 첫 제안을 받았을 때 고민 없이 “하겠다”고 답할 수 있었다. 물론 해설은 평생 운동만 한 선수 출신에게는 쉬운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이 위원에게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많은 공부가 필요하죠. 제가 처음 해설을 시작할 때는 일본 용어가 많이 사용됐어요. 시합, 계투, 데드볼 같은 용어들이요. 일본도 미국에서 야구를 받아들이면서 본인들 쓰기 편하게 바꾼 것이 많아요. 야구는 미국에서 시작된 스포츠니까 외래어를 쓰려면 미국식 용어를 쓰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고, 관련 자료들을 보면서 하나씩 고쳐나갔죠. 많이 변화시킨 것에 대한 자부심도 있어요.”
이 위원의 중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단짝 정우영 캐스터를 빼놓을 수 없다. MBC 스포츠플러스에서 함께 중계하다 SBS 스포츠에서 재회한 특별한 케이스. 이 위원은 “정우영이라는 좋은 캐스터 덕분에 해설위원이 빛나는 것 같다”며, “까칠한 성격도 이해하며 잘 받아주고, 야구에 대해서도 해박해 좋은 방송을 만드는 데 많은 도움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순철의 것이 아닌 이성곤의 야구
그가 야구에 대한 사랑을 쉽게 놓을 수 없게 하는 또 하나의 존재가 있다. 바로 아들 이성곤 선수다. 이제는 프로 9년 차의 베테랑 선수가 된 이성곤은 지난해 삼성 라이온즈에서 한화 이글스로 트레이드됐고, 현재는 주전 자리를 꿰차면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 위원과 이성곤 선수는 야구계에서 많은 에피소드를 낳았다. 이성곤이 1군 첫 홈런을 기록했을 때는 ‘비번’의 여유를 즐기다 방송국으로 호출당해 하이라이트 프로그램 생방송에 출연해야 했다. 당시 선수 이성곤에게 늘 엄격한 해설을 날리던 이 위원의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 야구팬들 사이에서 오래 회자됐다.
그는 아들 이성곤 선수가 “야구 실력에 비해 방송 출연이 잦다”며 투덜거리지만 동반 출연도 꽤 즐기는 모습이다. 최근에는 이순철 해설위원의 개인 유튜브 채널 ‘순Fe’(순페이)에 이성곤이 깜짝 출연하기도 했다.
“우리는 야구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는 부자 사이는 아니에요. 본인이 물어보면 그때 대답해주는 정도죠. 어느 날 아들이 ‘아버지가 야구에 관해 깊숙하게 관여했으면 그것은 이순철의 야구지 나의 야구가 아니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어요. 그만큼 야구를 사랑하고 진지하게 대하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됐으니까요. 그래서 바라보다 정 답답할 때만 문자 정도 주고받아요. 아직 대전에 마련한 집도 못 가봤는데, 올 시즌 대전에 내려가게 되면 어떻게 사는지 들러보려고요.(웃음)”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통칭하여 MZ세대라 부른다. 밀레니얼 세대의 인구수만 1073만 명이고, Z세대는 830만 명이다. 이 둘을 합치면 약 190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36.7%다. 경제활동인구(2772만 명, 2021년 2월 통계청 경제활동인구 조사 기준)에서 MZ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45% 정도로 파악된다. 앞으로 이 비중은 지속적으로 높아질 수밖에 없다. 소비에서 차지하는 이들의 비중과 영향력도 계속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미 대기업에선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합친 비중, 즉 20·30대 직원의 비중이 60% 정도인 곳이 많고, IT 기업에선 20·30대가 80% 정도인 곳도 꽤 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MZ세대를 제대로 이해해야 하는 가장 명확한 이유다.
시간은 MZ세대의 편이다
전 세계 기준으로, 여러 세대 중 소득이 가장 많은 세대는 누구일까? 바로 밀레니얼 세대다. X세대를 추월했다. 한동안 밀레니얼 다음이 X세대겠지만, 10년 후 Z세대가 밀레니얼을 추월한다.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의 글로벌 리서치 보고서 ‘OK Zoomer : Gen Z Primer’에 따르면, 2030년이면 Z세대의 소득이 33조 달러로 전 세계 소득의 25%를 차지한다. 이는 2020년 대비 5배 오른 것이고, 2031년이면 밀레니얼 세대의 소득을 Z세대가 추월할 것으로 봤다. 아주 먼 미래의 얘기가 아니다. 그리고 2031년까지 갈 것도 없이, 굳이 밀레니얼 세대를 추월할 것도 없이, 수년 내 Z세대의 소득과 직장에서의 위상이 지금보다 비교도 안 될 만큼 올라간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Z세대가 밀레니얼 세대를 추월하기 전에 X세대를 먼저 추월한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즉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가 전 세계 소득의 주도권이자 구매력의 주도권도 쥔다. 당장 베이비붐 세대와 X세대는 자산에선 MZ세대를 능가한다. 하지만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가 밀레니얼 세대이고, X세대의 자녀가 Z세대라는 점을 기억하자. 즉 베이비붐 세대와 X세대의 자산 중 상당수가 자녀 세대로 이동할 수 있다. 소득에서도 자산에서도 MZ세대의 입지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2030년이면 Z세대가 18~33세, 밀레니얼 세대가 34~48세다. 경제활동인구의 대다수가 그들이다.
술을 덜 마시는 MZ세대, 그 결과는?
밀레니얼 세대의 술 소비량이 이전 세대보다 적다. 반면 운동과 건강관리, 자기계발에 더 적극적이다. X세대가 20대 때 열심히 술 먹으러 다녔다면, 밀레니얼 세대는 그때 운동하러 다닌 셈이다. 덕분에 피트니스 시장이 계속 커진다. 그런데 Z세대는 밀레니얼 세대보다도 술을 덜 마신다. Z세대 18~24세 중 절반 정도가 술을 전혀 마시지 않고,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마신다는 사람도 5명 중 1명에 불과하다. 술 자주 마시는 기성세대와 확실히 비교된다. Z세대 술 소비량 감소는 결국 술 관련 시장의 타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10~19세 남자 중 음주 경험이 있는 비율이 2009년 28.5%에서 2019년 17.2%로 줄었다. 10~19세 여자의 경우는 2009년 25.9%에서 2019년 19.9%로 줄었다. 미국만 그런 게 아니다. 영국도, 한국도 10대의 음주 경험률은 지속적으로 감소세다. 이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술을 멀리할 가능성이 있다. 술뿐이 아니다. 담배, 육류 모두 소비가 감소하고 있고, 앞으로 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Z세대는 투자를 결정할 때 ESG를 반영하겠다는 응답이 5명 중 4명이나 되었다. 그들이 환경, 윤리, 젠더 이슈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소유에 대한 관점도 바뀌어서, Z세대는 자동차 소유가 아니라 공유 모빌리티 서비스를 이용해도 좋다는 답이 60%였고, 나이가 되어도 운전면허를 따지 않는 Z세대가 많다. Z세대의 31%는 로봇이 운전하는, 즉 자율주행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에 호의적이었다. 야구, 축구, 농구 등 전통적으로 인기 많은 스포츠에 대한 Z세대의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다. 이들은 e스포츠에 더 관심이 있다. 향후 스포츠 산업에서 e스포츠가 더 성장할 수밖에 없다.
빅테크들이 가장 공들이는 소비자는?
전 세계 산업의 주도권은 IT가 쥐고 있다. 빅테크 기업의 영향력은 점점 커진다. 이런 빅테크들이 가장 공들이는 소비자는 10·20대다. 스마트폰이 나왔을 때(애플 아이폰 2007년) 10·20대가 밀레니얼 세대다. 스마트폰을 먼저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그들이 새로운 문화, 미디어, 소비, 비즈니스의 권력으로 부상했다. 지금의 10·20대가 Z세대다. 메타버스 시장의 주 소비층은 10·20대다. 결국 메타버스에서 가장 많이 놀고, 그 환경과 문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이들이 메타버스가 만들 기회를 가장 많이 가져갈 것이다. 스마트폰이 밀레니얼 세대의 힘을 키워준 일등 공신이라면, 메타버스가 만드는 힘은 Z세대를 키워줄 것이다. 우리가 애들이라고 부르는 그들이 새로운 기회를 먼저 잡았다. 10·20대 중 앱을 만들거나,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되거나, 과거에는 없던 일로 기성세대가 상상도 못 할 돈을 버는 경우는 더 이상 낯설지도 않을 만큼 많아졌다.
밀레니얼 세대도 디지털에 강하지만, Z세대는 더하다. 어릴 때부터 디지털 환경에 노출되어 자란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다. 로봇에 대한 거부감 없이 친숙하게 다가가는 것도 기성세대는 물론이고 밀레니얼 세대보다 훨씬 유리하다. 직접 코딩해서 움직이는 조립식 블록으로 코딩을 접하기도 했고, 가상현실·증강현실도 놀면서 접했다. 로봇을 친구로,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첫 세대가 Z세대가 될 것이고, 실제 현실과 이질감 없이 메타버스에 몰입하는 첫 세대도 Z세대가 될 것이다. 빅테크들이 전개하는 수많은 사업은 현재진행형이다. 앞으로 더 진화할 것이고, 그 속에서 기회와 위기가 계속 쏟아져 나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