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말의 본질을 다시 묻다

입력 2026-01-13 06:00

[먼슬리 이슈] 언어의 힘과 노년의 대화가 갖는 가치

▲생성형 AI 제작 이미지
▲생성형 AI 제작 이미지

생성형 AI가 감정과 억양까지 모방하며 대화 파트너 역할을 수행하는 시대에 인간 언어의 고유성과 소통 방식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특히 언어활동이 인지 건강과 삶의 질에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노년층에게 이 변화는 가볍지 않다.

권상희·정우일 성균관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공통적으로 “AI가 대화를 보완하는 도구로 자리 잡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지만, 인간 언어가 가진 관계적 깊이와 정서적 울림은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말한다. AI 기반 대화 환경이 확장되는 오늘, 우리는 다시 ‘말의 힘’을 살펴야 한다.


기계의 언어와 인간의 말, 작동 방식 차이

AI는 방대한 데이터와 통계적 패턴을 기반으로 언어를 생성한다. 문장 구조는 정교하고 정보 제공도 빠르지만, 이러한 언어는 어디까지나 확률 계산에 따라 조합된 표현이라는 한계를 가진다.

정우일 교수는 “같은 말이라도 누가, 어떤 상황에서 하느냐에 따라 파급력과 해석이 달라진다”고 설명한다. 인간의 말에는 시간의 축적, 관계의 역사, 정서적 뉘앙스, 그 순간의 예측할 수 없는 반응이 겹겹이 담기기 때문이다.

권상희 교수는 야구 심판(ABS) 사례를 통해 이 차이를 설명했다. 인공지능은 정해진 기준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반면, 사람은 선수의 구종과 스타일, 상황 전체를 함께 고려해 판단한다는 것이다. 즉 AI가 언어를 ‘정답 산출 과정’으로 처리한다면, 인간의 말은 ‘맥락을 해석하고 의미를 만들어내는 과정’에 가깝다.

또한 AI의 언어는 기본적으로 ‘가장 가능성 높은 단어 배열’을 선택하는 방식이다. 이미 존재했던 패턴을 조합하는 데는 강하지만, 규칙을 깨거나 은유·유머·반어처럼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능력은 인간에 미치지 못한다. 인간 언어의 창조성은 살아온 경험과 감정이 축적된 결과로, 기계가 모방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언어가 작동하는 방식에서도 차이가 드러난다. 인간의 말은 발화 장소, 관계의 거리감, 시선·몸짓, 말의 속도 같은 비언어적 요소가 함께 의미를 만든다. 그러나 AI는 텍스트나 음성신호만을 기반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상황 전체를 읽어내는 능력에서 본질적인 한계를 갖는다.

이러한 차이는 노년층에게 더욱 중요하다. 노년의 대화는 단순한 정보교환을 넘어 감정 확인, 관계 회복, 기억의 재구성 등 정서적·사회적 기능이 크게 작동한다. 따라서 계산된 말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과 함께 살아온 시간을 고려하는 ‘살아 있는 말’이 필요하다. 결국 AI의 언어가 효율과 정확성에 기반한 도구라면, 인간의 언어는 관계를 잇고 의미를 확장하는 삶의 방식이다.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지더라도 이 차이는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인간만의 언어는 왜 ‘대체 불가능’한가

감정, 맥락, 기억의 층위

▲생성형 AI 제작 이미지
▲생성형 AI 제작 이미지

AI가 억양•속도•표정 같은 비언어적 신호를 일정 수준 모방할 수 있게 됐지만, 인간 언어의 핵심은 단순한 형식에 있지 않다. 권 교수는 관계를 형성하는 언어, 감정을 나누는 언어, 기억을 저장하고 다시 꺼내는 언어는 AI가 대체하기 힘들다고 봤다.

“대화는 단순한 질문–응답 구조를 넘어 두 사람 사이의 정서적 연결을 만들어냅니다. 신뢰, 배려, 오랜 기억이 언어에 스며들며 관계를 심화시키죠. 또 같은 말이라도 목소리의 떨림, 한 박자 쉬는 침묵, 표정 변화는 사람만이 표현할 수 있는 미세한 감정의 결입니다. 이런 신호는 배경 상황과 개인의 경험을 기반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기계적 재현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뿐 아니라 말을 통해 종종 과거를 회상하고, 잊힌 기억을 되살리며, 서로의 시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의 기능은 인간만이 가능한 고유 언어활동으로, 치매 예방과 인지 건강에도 중요한 영향을 준다고 할 수 있죠.”

정 교수 역시 이 점을 확장해 “AI는 상호작용은 가능하지만 관계의 ‘역사’를 실제로 공유하지는 않는다”면서 “같은 경험을 공유해본 당사자만이 구현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에, AI가 지적 자극은 줄 수 있을지라도 인간 대화가 주는 정서적·관계적 깊이는 대체하기 어렵다”고 단언했다.


노년층의 새로운 소통 환경

기회와 위험

AI 말벗 서비스는 노년층의 외로움을 완화하는 데 실질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 반복 질문에 지치지 않고, 사용자가 원하는 시간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감정적 부담을 덜어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편리함이 ‘언어적 풍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정 교수는 이를 ‘개인화된 파라소셜(Parasocial) 관계’라고 했다. 파라소셜이란 실제로 알지 못하는 유명인이나 인플루언서, AI 등과 일방적으로 느끼는 친밀감의 관계를 뜻하는 말로, 케임브리지 사전에서 ‘2025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사회관계망이 좁아지는 고령층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 있다. 자녀와의 대화가 줄어들고 감정적 오해가 쌓이기 쉬운 노년기에는 ‘항상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짜증 내지 않고, 끊임없이 반응해주는 존재’를 강력한 정서적 지지자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 인간관계의 약화 가능성, AI가 감정적 흐름이나 관계의 이력을 실제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구조적 한계, 알고리즘 기반 대화가 특정 감정 프레임을 강화할 수 있는 위험 등도 배제할 수 없다.

권 교수는 “AI가 의도적으로 감정적 프레이밍을 강화하거나 왜곡된 정보를 생성해 빠르게 확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출판부에서 ‘2025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한 ‘레이지 베이트(Rage Bate)’처럼 온라인에서 분노를 자극해 클릭을 유도하는 콘텐츠에 AI를 악용할 경우, 사회적 갈등을 폭발적으로 키울 수 있다.

따라서 권 교수는 이러한 위험을 최소화하고 신뢰할 수 있는 언어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AI가 생성한 언어의 출처와 작동 원리를 명시하는 제도적 투명성 확보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이는 AI를 편리한 도구로만 볼 것이 아니라, 사회적 에너지이자 잠재적 위험 요소로 인식하고 신뢰 가능한 언어 환경을 만들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AI 시대의 ‘말의 힘’ 교육

세대별 접근

AI는 세대 간 언어 격차를 좁힐 수도 있지만, 반대로 더 벌릴 수도 있다. 중장년층은 익숙한 말의 리듬과 표현 습관을 유지하는 반면, 젊은 세대는 빠르고 압축된 디지털 언어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이러한 차이를 고려해 “AI 시대의 언어 교육은 세대별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기술을 사용해도 언어 감각이 다르면 소통 방식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그는 이어 “AI가 아무리 매끄러운 문장을 만들어도, 결국 관계를 유지하고 조정하는 능력은 사람이 말로 해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기술 발전이 인간 언어의 가치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관계·감정·의미를 다루는 인간 고유의 능력을 더 분명하게 드러낸다는 이야기다.

권 교수 역시 AI 시대일수록 인간 언어의 본질적 기능인 관계 형성, 감정 표현, 책임 있는 발화, 정서적 깊이를 재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부분이며, 각 세대가 회복해야 할 핵심 역량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두 교수의 의견을 종합하면, 세대별 언어 교육의 방향도 자연스럽게 구분된다.


결국 AI 시대의 언어 교육은 기술 사용법을 넘어, 세대별로 다른 언어 감각을 이해하고 인간 언어의 본질을 지키는 과정이다. 기술이 말의 형태를 정교하게 바꿀수록, 인간이 사용하는 ‘살아 있는 말’의 가치는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AI가 말의 형태를 정교하게 흉내낼수록 인간은 오히려 언어의 본질을 더 선명하게 마주하게 된다. 관계를 만들고, 감정을 나누고, 기억을 공유하는 힘은 여전히 인간의 말에 있다. 기술이 대화를 대신하는 시대일수록 인간의 언어는 더 섬세하게, 더 품격 있게 다듬어져야 한다. ‘말은 인간다움을 증명하는 마지막 영역’이라는 말처럼, AI 시대 ‘말의 힘’은 기술이 아니라 인간에게 달려 있다.




도움말 권상희 성균관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성균관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소속으로, 사이버 커뮤니케이션과 디지털 미디어, 인공지능 기반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하고 있다.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네트워크 환경에서의 인간–기술 상호작용과 담론 구조 분석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

정우일 성균관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소속으로, 대중문화와 대중음악의 텍스트와 컨텍스트에 대한 연구와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아울러 방송 및 뉴미디어 콘텐츠의 사회적 역할과 정책적 의미를 중심으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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