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노화시계가 천천히 가면 좋겠습니다 안중호 외·클라우드나인
나이가 드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노화는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 서울아산병원 교수들을 중심으로 17명의 전문가가 노화 지식과 관리법을 담은 책을 펴냈다.
시니어 트렌드 2024 최학희·시대인
37명의 전문가가 은퇴 후 삶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돈, 건강, 시간’을 중점으로 시니어의 삶을 조망하며, 전 세계적인 동향을 알아본다.
죽음이 물었다, 어떻게 살 거냐고 한스 할터․포레스트북스
쇼펜하우어, 오스카 와일드, 반 고흐 등 세계적 현자들이 남긴 삶의 마지막 문장인 유언을 엮었다. 책을 통해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다.
나를 돌보는 묵상독서 임성미·북하우스
30년 경력의 독서교육 전문가인 저자는 인생 후반기에 도움을 주는 70여 권의 책을 소개한다. 인문학,․철학부터 소설과 동화까지, 전 분야를 망라한다.
미국은퇴자협회(AARP)는 영화 ‘기생충’,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BTS) 등을 일컬으며 세계 시장 속 한국 문화의 인기와 성공에 대해 언급했다. 아울러 ‘어른들을 위한 TV’(TV for Grownups) 코너에 아래의 한국 작품 10선을 소개했다. 해당 작품들은 넥플리스 또는 애플TV 스트리밍 서비스로 시청 가능하다.
[1] 오징어 게임(Squid Game)
전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에 참가한 이들이 목숨을 걸고 게임에 도전하는 이야기다. 한국 시니어들이 어린 시절 했을 법한 구슬치기, 설탕뽑기, 줄다리기 등을 게임의 소재로 삼아 해외에서도 패러디를 하는 등 화제를 모았다.
[2] 응답하라 1988(Reply 1988)
1988년 서울 쌍문동을 배경으로 다섯 명의 친구와 가족들의 일화를 그린 가슴 따뜻한 코미디 물로, 한국 중장년들의 추억을 회상케 한다. 미국 드라마 ‘원더 이어스’, ‘골드버그’처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선호한다면 추천한다.
[3] 스카이 캐슬(Sky Castle)
공개 당시 한국 케이블 TV 역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작품으로, 한국 상류층의 교육열과 물질주의 세계를 묘사한다. 자녀를 최고의 명문대학에 입학시키기 위해 부당한 전략을 이용하는 등 물불 가리지 않는 부모들의 행태를 풍자한다.
[4] 파친코(Pachinko)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꼽힌 동명 소설을 기반으로 한 거대한 가족 서사를 그린다. 영화 ‘미나리’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윤여정이 출연해 기대를 모았다. 고국을 떠나 생존과 번영을 꿈꾸는 한인 이민 가족 4대의 삶을 비춘다.
[5] 사랑의 불시착(Crash Landing on You)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하는 중장년에게 추천하는 드라마다. 패러글라이딩 사고로 북한에 불시착한 재벌2세 사업가 윤세리(손예진 분)와,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북한의 특급 장교 리정혁(현빈 분)의 로맨스를 다룬다.
[6] 킹덤(Kingdom)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한국 드라마로, 시즌 3까지 이어오며 양질의 한국산 좀비물로 손꼽히고 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불가사의한 역병과 싸워야하는 세자 이창(주지훈 분)과 그를 왕좌에서 끌어내리려는 잠재적 음모 등을 다룬 정치 좀비 스릴러다.
[7] 사이코지만 괜찮아(It’s Okay to Not Be Okay)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처럼 어두운 주제를 다룬 기발한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한다면 볼 만하다. 정신병원에서 일하는 간병인 문강태(김수현 분)와 반사회적 성격 장애를 가진 인기 동화 작가 고문영(서예지 분) 등 각자의 트라우마를 지닌 이들이 정서적 치유를 해나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8] 빈센조(Vincenzo)
드라마 ‘베터 콜 사울’과 같은 법률 장르를 좋아한다면 추천한다. 조직에서 배신당한 뒤 한국으로 오게 된 이탈리아 마피아 변호사(송중기 분)가 또 한국의 베테랑 변호사(전여빈 분)와 함께 악당들을 일망타진하는 이야기다.
[9] 슬기로운 의사생활(Hospital Playlist)
‘그레이 아나토미’나 ‘댓 씽 유 두’ 같은 장르를 좋아하는 이라면 재미있게 볼 만한 의학, 밴드 소재 결합 드라마다. 병원에서 일어나는 가슴 뭉클한 감동 스토리와 더불어 1999년 의대 입학 동기인 주인공들이 직접 연주하는 밴드 음악까지 감상할 수 있다.
[10] 푸른 바다의 전설(The Legend of the Blue Sea)
한국 최초의 야담집인 ‘어우야담’에 나오는 인어 전설을 바탕으로 한 판타지 로맨스 드라마. 수백 년에 걸쳐 평행하게 일어나는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멸종직전인 지구상 마지막 인어 심청(전지현 분)과 멘사 출신 천재 사기꾼 허준재(이민호 분)의 시공간을 초월한 사랑을 그린다.
늦깎이 소설가로 데뷔한 오세영(68) 작가는 첫 작품 ‘베니스의 개성상인’으로 단숨에 밀리언셀러 작가로 발돋움한다.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그의 섬세한 관찰력과 풍부한 상상력이 가미된 소설은 많은 이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최근 정약전의 삶을 다룬 소설 ‘자산어보’로 돌아왔다. 그가 매료된 정약전의 삶과 더불어 역사소설의 가치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그의 데뷔작 ‘베니스의 개성상인’은 한복 입은 남자의 사진이 모티프였고, ‘대왕의 보검’은 칼이 소설의 첫 단추였다. 그렇다면 ‘자산어보’는 어디서부터 출발한 얘기일까?
“유배지에서 자연과학 서적을 쓴 정약전의 삶이 흥미로웠어요. 악조건 속에서도 해양생물에 관한 서적을 집필했다는 건 놀라운 일이에요. 다양한 이론과 현장 실무를 다룬 실용서는 당시 학문적으로 신선한 시도였죠. 열린 사고를 통해 새로운 학문의 지평을 연 사람. 주자학에 발을 딛고 손으로 실학을 매만지는 학자. 그게 참 강렬했어요. 그를 보고 역사적 시간과 공간이란 씨줄과 날줄을 엮어서 만들어낸 것이 이 소설이에요.”
이 소설은 추리소설과 같이 사건이 전개된다. 해녀의 죽음, 재벌 행세를 했던 사상도고와 마을 사람들 간의 공방 등 다양한 사건이 추리소설처럼 긴박하게 흘러가고, 정약전은 마지막 순간에 신스틸러처럼 등장해 이를 모두 해결한다.
“모든 사건의 해결은 정약전이 도맡죠. 다만 사건의 중심은 민중이에요. 약전의 삶을 빌려왔지만, 중요한 건 그에게 어부로서 물고기 지식을 알려줬던 창대와 같은 민중이에요. 약전의 ‘자산어보’도 결국 민중의 삶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나온 것이죠. 소설을 쓸 때 역사를 위인의 관점이 아니라 민중의 관점을 통해 새로운 각도로 접근하는 편이에요. 이를 재밌게 전달하기 위해서 추리소설처럼 썼어요. 역사란 도착지를 목표로 하지만 재미란 내비게이션을 소설 속에서 작동시키는 것이죠. 고증은 철저히 해야 하지만 재미를 놓칠 수는 없어요.”
도서관은 영감의 서랍
1993년 조금 늦은 나이에 소설가로 데뷔했는데, 이 데뷔의 출발점은 한 권의 책이었다.
“역사의 재미에 눈을 뜬 건 중학교 때 박종화의 ‘자고 가는 저 구름아’를 읽고 나서였어요. 학부도 역사를 전공했는데, 생각한 것과 달랐어요. 소설 속 역사는 살아 있는 역사였지만, 제도권 교육에서 배우는 역사는 죽은 역사처럼 느껴졌어요. 이후 직장생활을 10년 정도 했는데, 번아웃이 왔어요. 문득 저 책이 생각나는 거예요. 시간이 오래 지났는데 그때의 전율과 감동이 제 맘 한구석에 남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 꺼진 삶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선택한 것이 역사소설가였어요.”
그렇다면 시간이 지난 지금, 첫 소설을 쓸 때와 어떤 점이 달라졌을까?
“처음 쓸 때는 서술에 집중했어요. 사실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생생함이 많이 떨어졌어요. 그때부터 최대한 간결하게, 독자들이 잘 읽을 수 있게 글을 쓰려고 노력했어요. 짧은 설명은 괄호로 덧붙이고, 길면 주석을 달았어요. 군더더기를 최대한 덜어낸 거죠. 대신 본문은 장면이 그려지고 생생한 현장감을 줄 수 있게 묘사와 현재형 시제를 많이 쓰려고 노력했고요.”
역사소설은 사료를 기반으로 해야 하기에 방대한 자료를 읽고 분류하고 정리해야 한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사료를 정리하면서 힘든 점도 있을 터.
“원하는 사료를 찾는 게 정말 쉽지 않죠. 사료가 없는 것도 많고요. 최악의 경우엔 소설을 엎어야죠. 다행히 아직까진 그런 경우는 없어요. 이를 방지하려고 도서관에 자주 가요. 정치, 철학, 역사 등 모든 분야가 있잖아요. 가서 보고 끌리는 아무 책이나 읽어요. 조선 시대 표류기부터 시작해서 철학의 역사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읽어요. 하나를 알면 둘을 깨우치는 사람은 아닌데, 도서관에서 읽었던 건 서랍에 넣어둔 것처럼 잘 기억해요.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고요. 일종의 박람강기(博覽强記)라고 할까요? 이 축적된 데이터와 함께 확신이 서면 그때부터 집필 작업에 들어가요. 제게 도서관은 영감의 서랍 같은 곳이에요.”
무명의 역사를 복원
그가 영감의 서랍 속 사실을 토대로 만든 역사소설의 가치는 무엇인지 물었다.
“삶의 외연을 넓히는 지름길은 새로운 가능성을 꿈꾸는 거예요. 배우 윤여정이 오스카상을 받듯이 우리나라 작가가 노벨상을 못 받으리라는 법도 없잖아요. 법대 나왔다고 무조건 변호사를 할 필요도 없고요. 역사도 마찬가지예요. 역사를 교과서 외우듯이 틀에 박혀서 바라볼 필요가 없어요. 역사를 맘대로 바꿀 수는 없죠. 다만 새로운 각도를 통해 바라보면서 역사를 보는 시야를 넓힐 수 있죠. 그게 역사소설의 역할이라고 봐요.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도전이라고 할까요?”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과 더불어 역사소설에 관한 그만의 소신을 밝혔다.
“제가 하는 일은 무명의 역사를 복원하는 일이에요. 역사는 승자의 관점에서 기록되고 해석될 때가 많아요. 또한 위대한 리더나 위인은 소수일 뿐, 그 시대를 온몸으로 부딪히고 살아가는 건 민중들이에요. 그 시대를 치열하게 살다 간 무명의 역사를 조명하는 건 그 시대를 새롭게 보는 돋보기와 같아요. 앞으로 쓸 책도 그런 책이 될 거예요. 간단히 얘기하면 누구나 한 번쯤 이름은 들어봤지만 잘 모르는 고려 시대 승려 ‘묘청’에 대한 얘기를 써보려고요.”
한 줌의 먼지처럼 사라져간 역사적 사실을 발견하고 취합하는 일. 그것은 매우 고되지만 재밌는 일이었다. 그는 역사란 퍼즐의 이음새를 자신만의 결로 깎고 다듬어 모나지 않은 그림으로 완성할 때 보람을 느꼈다. 역사적 사실에 발을 디딘 채 무명의 역사를 복원하며 소설로서의 재미를 놓치지 않는 일. 독자들을 위해 더 좋은 소설을 쓰고자 노력하는 일. 아마도 그것은 새로운 학문적 성취에 힘쓰고 이를 통해 민중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자 애썼던 실학자 정약전의 정신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역사의 퍼즐을 다듬는 실학자로서의 다음 행보를 기대하며 마친다.
할머니 배우 윤여정이 한국 배우로는 처음으로 오스카 트로피를 품으며, 한국 영화사를 새롭게 썼다. 윤여정은 영화 ‘미나리’에서 외손주를 돌보기 위해 미국으로 간 외할머니를 전형적인 할머니에서 벗어나 유쾌하면서도 여운이 남는 연기로 호평받았다.
25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윤여정은 영화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다른 4명의 여우조연상 후보를 제치고 얻은 영예다. '보랏 서브시퀀트 무비필름'의 마리야 바칼로바, '힐빌리의 노래'의 글렌 클로스, '더 파더'의 올리비아 콜먼, '맹크'의 어맨다 사이프리드가 경쟁자였다.
특히 한국 배우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연기상을 받은 건 한국 영화 102년 역사에서 처음이다. 아시아계 배우로는 두 번째다. 1958년 제1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일본 우메키 미요시가 영화 '사요나라'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뒤로 63년 만이다.
윤여정은 1947년에 태어나, 한양대 재학시절인 1966년 연극배우와 T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중학교 때까지는 공부를 잘 해 어머니에게 의사가 되기를 기대받았다. 하지만 이화여고 재학시절 위염으로 인해 결석이 잦아지면서 성적이 떨어지자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일흔이 넘어 처음으로 재미교포 2세가 찍는 미국 독립영화에 도움을 주겠다는 마음으로 출연해 뜻하지 않은 성과를 낸 셈이다.
이날 시상식에서 윤여정은 재치 있는 수상소감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그는 무대 오른쪽에 서 있던 시상자 브래드 피트를 향해 “드디어 만났군요. 우리가 오클라호마 털사에서 영화 찍을 때 어디 계셨나요?”라는 농담으로 관객을 웃겼다. 브래드 피트는 영화 ‘미나리’의 공동제작사인 플랜B 대표다. 영화 관계자이지만 촬영 현장에서 만날 수 없다는 얘기다.
이어 자신을 낯설어할 영미권 관객과 시청자들에게 “한국에서 온 윤여정”이라고 말하며 “유럽 사람들은 제 이름을 ‘여여’라고 하거나 그냥 ‘유정’이라고 부르는데 오늘 밤만은 모두 용서해드리겠다”고 말했다. 또 “아시아에서 자라면서 TV로만 보던 오스카 시상식에 온 게 믿기지 않는다”며 “이제 정신을 좀 가다듬어야겠다”고 덧붙였다. 예상치 못한 윤여정의 농담에 객석에서는 계속 웃음이 터져 나왔다.
또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다른 배우들에게도 예우를 표했다. 그는 “내가 어떻게 글렌 클로스 같은 대배우와 경쟁을 하겠느냐. 그의 훌륭한 연기를 너무 많이 봤다”며 ‘힐빌리의 노래’로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글렌 클로스에게 찬사를 보냈다. 이어 “다섯 명의 배우들은 다른 작품에서 모두 승자다”며 “내가 운이 더 있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아카데미 관객들을 빵터트린 수상소감 하이라이트는 미국에 살고 있는 두 아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는 “두 아들이 자꾸 일하러 나가라고 했다”며 “덕분에 엄마가 정말 열심히 일했다. 그랬더니 이런 상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자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윤여정은 미국으로 이민을 간 딸 모니카(한예리) 부부를 돕고, 손주들을 돌보기 위해 한국에서 건너간 외할머니 순자를 연기했다. 자식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는 전형적인 한국 할머니의 틀에서 벗어났다. 영화에서 외손자 데이빗이 "할머니는 진짜 할머니 같지 않아요"라고 외칠 정도다.
손주를 사랑하지만 손주가 부리는 응석에 끌려다니지도 않는다. 또 손주들에게 화투를 가르치고, 고약한 말도 서슴없이 던진다. 많은 매체들은 윤여정이 "독특한 할머니 순자를 연기했다"고 평가했다.
윤여정의 아카데미 수상에 대해 한 시니어 독자는 “세계에서 한국 할머니의 좋은 모습을 보여준 게 아닌가 싶다”며 “시니어들은 그들에게 맞는 역할이 있다면 잘 수행할 수 있다.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야말로 ‘브라보’한 소식이다. 액티브 시니어를 대표하는 배우 윤여정이 최근 영화 ‘미나리’로 제93회 미국 아카데미(오스카)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한국 배우로는 사상 최초다.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녀가 걸어온 연기 인생과 필모그래피도 재조명되고 있다. 그녀는 여배우들이 나이 들면 반강제로 얻게 되는 ‘국민 엄마’ 타이틀을 떼고, 55년간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며 수식이 필요 없는 배우로 거듭났다.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아카데미라는 신대륙으로 새 ‘여정’을 떠나게 된 윤여정을 응원하며, 그녀의 출연작 세 편을 소개한다. 소개하는 작품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1. 돈의 맛 (The Taste Of Money, 2012)
1970년대, 고(故)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화녀’와 ‘충녀’로 연예계에 한바탕 센세이션을 일으킨 윤여정은 ‘한국의 팜므파탈’이라는 별명으로 관객들의 머릿속에 각인된다. 그로부터 40여 년 뒤, 그녀는 수십 년 연기 내공을 쌓아 다시 한번 팜므파탈로 변신한다. 영화 ‘돈의 맛’을 통해서다. ‘돈의 맛’은 대한민국을 돈으로 지배하는 재벌가 백씨 가문의 권력을 향한 집착과 욕망을 제목처럼 적나라하게 그린 작품이다. 권력을 손에 쥔 윤회장(김윤식)과 안주인 금옥(윤여정), 비서 영작(김강우), 장녀 나미(김효진)까지 네 사람의 얽히고설킨 관계가 관객들의 혼을 쏙 빼놓는다. 설정만으로 이미 충분히 파격적인 내용이지만, 영화는 윤여정의 무르익은 연기로 한층 더 농밀해진다. 붉은색 립스틱과 무언가를 관통하는 눈빛, 시니컬한 중저음 목소리. 존재만으로 압도하는 금옥을 보고 있으면, ‘윤스테이’ ‘윤식당’ 등 TV에서 접한 윤여정의 정겨운 사장님 이미지가 자동 삭제된다. 31살 연하 배우 김강우와의 수위 높은 베드신도 마다하지 않으며, 원조 팜므파탈의 위력을 입증한다.
2. 고령화 가족 (Boomerang Family, 2013)
사연 없는 집안은 없다고 하지만, 이 집은 많아도 너무 많다. 전과 5범 백수 한모(윤제문), 흥행에 참패한 영화감독 인모(박해일), 이혼이 취미인 미연(공효진)까지 이들은 모두 한솥밥을 먹는 식구다. 영화 ‘고령화 가족’은 나잇값 못 하는 자식들이 어느 날 평화롭던 엄마(윤여정)의 집에 모여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일반적인 가족과는 달리 콩가루 집안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서로를 향한 비난은 기본, 치고박고 싸우는 것은 일상이다. 하지만 그렇게 으르렁대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얼굴을 맞대고 함께 밥을 먹는다. 영화는 사고뭉치 세 남매를 사랑으로 품는 엄마의 모습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상기시키지만, 동시에 그간 미디어에서 다뤄온 ‘희생하는 엄마’ 역을 답습한다는 점에서 진부한 면도 없지 않아 있다. 그러나 그간 윤여정이 도회적인 이미지로 스크린에 비춰진 것을 떠올리면, ‘고령화 가족’에서의 수더분하고 모성애 가득한 모습은 그 자체로 색다르게 다가온다. 윤여정이라서, 한층 더 신선해지는 영화다.
3. 죽여주는 여자 (The Bacchus Lady, 2016)
‘죽인다’는 말은 중의적인 뜻이 있다. 무언가를 향해 감탄하는 속된 표현으로 쓰이기도 하고, 문자 그대로 살인 행위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영화 ‘죽여주는 여자’의 주인공 소영(윤여정)은 전자일까, 후자일까. 놀랍게도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한다. ‘죽여주는 여자’는 종로 일대에서 나이 든 이들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는 소영이 뇌졸중을 앓고 있는 송노인으로부터 죽여 달라는 부탁을 받으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성적으로 죽이게 잘한다고 소문 난 소영이 실제로 살인을 저지르게 된 것이다. 영화는 단돈 4만원을 위해 ‘박카스 할머니’가 될 수밖에 없었던 소영의 일생을 돌아보며 노년기 빈곤, 여성에 대한 성 착취 구조 등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직면한 담론을 깊이 있게 던진다. 또 소영의 주변 인물을 통해 트랜스젠더, 장애인, 코피노 등 현실 속에서 소외된 이들에 주목하고, 그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윤여정은 이 작품으로 시니어 배우로서 소화할 수 있는 캐릭터의 한계를 벗어던지고,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혔다는 평을 받는다. 그녀의 ‘죽여주는’ 연기가 감탄을 자아낸다.
은은한 파스텔톤 색채에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화풍, 일상적이고 정다운 소재. 고등학교 교사 출신 이찬재(78) 씨가 그린 그림이다. 아내인 안경자(78) 씨는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손주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써 내려간다. 두 사람의 글과 그림은 함께 운영하는 인스타그램(@drawings_for_my_grandchildren) 계정에 공개된다. 계정의 의미처럼 브라질에서 함께 살던 손주가 한국으로 떠나면서 보고픈 마음을 달래기 위해 시작한 일이다.
작은 취미생활이 일상을 송두리째 뒤바꾼 건 3년만이다. 부부만의 감성이 돋보이는 인스타그램은 영국 BBC와 가디언지, 미국 NBC 등에 소개되며 입소문을 탔고, 어느덧 40만 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인기 계정으로 거듭났다. 지난해 5월에는 ‘인터넷의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웨비 어워드에서 상까지 탔다. 두 사람에게 SNS는 어떤 의미일까? SNS를 시작하고 삶이 풍요로워졌다는 이찬재·안경자 부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인스타그램을 시작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안경자(이하 안) 브라질에 있을 때 딸네랑 이웃에 살면서 손주와 줄곧 가까이 지냈어요. 남편이 5년 동안 매일 학교를 데려다줬죠. 그러다 딸네가 갑자기 한국으로 돌아가게 됐어요. 늘 같이 생활하던 손주가 떠났으니 일상의 한 부분이 잘려 나간 거잖아요. 그러니까 뉴욕에 사는 아들이 아버지가 건강을 잃지는 않을지, 멍하니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진 않을지 걱정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버지한테 취미로 그림을 권한 거예요.
이찬재(이하 이) 원래는 그림과 연관된 삶을 살지 않았어요. 이민 가기 전까진 아내와 저 모두 고등학교 교사였죠. 그런데 아들이 6살 때 제가 준 그림엽서를 기억하면서 아빠가 그림을 잘 그리니까 취미로 한 번 그려보라 하더라고요. 그 당시 가르치는 학생들 데리고 대성리에 갔다가 주변 건물이나 풍경 같은 걸 그려서 준 적이 있거든요. 그러면서 인스타그램이라는 걸 알려주는 거예요. 그곳에 그림을 올려보라면서요.
Q. 주로 어떤 그림을 그리시나요?
이 처음에는 아무거나 그렸어요. 아들에게 뭘 그려야 하냐 물었더니, 어떤 것도 상관없다고, 뭐든지 그리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무작정 스케치북을 가지고 나가 공원에 있는 조각이라든지, 공연하는 광대, 경찰관이 타고 가는 말 이런 것들을 그렸어요. 그러다 둘째 손자가 태어났죠. 몇 달 뒤 손자를 보러 뉴욕에 갔어요. 거기서 아기를 품에 안고 아들과 대화를 하다 보니 손자들에게 줄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죠. 그때 지금의 계정 이름이 탄생한 거예요.
그때부터 손주들이 좋아할 만한 유익한 소재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애들은 자라면서 좋아하는 게 달라지잖아요. 공룡을 좋아하면 공룡을, 파워레인저를 좋아하면 파워레인저를 그리는 식이죠. 때로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옛날이야기를 해주듯 저희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그리기도 하고, 한글날, 3.1절과 같은 중요한 날엔 어떤 날인지 그림으로 알려주기도 해요. 요즘은 모든 사람이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환경에 대한 얘기도 많이 하죠.
Q. 3개 국어로 글을 써야겠단 생각은 어떻게 하신 건가요?
안 저는 전문직은 아니어도 글과 늘 관계 깊은 생활을 했어요. 고등학교 시절부터 문예반에서 활동했죠. 이민 가서는 한인회보도 만들고, 이민 생활을 하며 느낀 감정을 수필 형식으로 써서 간간히 발표도 했어요. 또 국제학교 한국 문학 교사였으니까 소설이나 수필, 시 등을 자주 접했죠.
그러다 남편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기왕이면 그림에 대한 설명을 붙여주면 좋잖아요. 그림이 탄생한 사연을 쓰면 좋겠다 싶었죠. 또 저희가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는 대부분의 팔로워가 미국인이나 유럽인들이었거든요. 그래서 전 세계 모든 팔로워가 그림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제가 쓴 글을 아들이 영어로, 브라질에서 대학을 나온 딸이 포르투갈어로 번역하게 역할을 나눴어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이들이 그림을 보고 보다 더 잘 이해하고 감동을 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죠.
Q. 지금은 SNS를 활발하게 이용하고 계시지만 처음에는 꽤 생소하셨을 것 같은데요.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이 그땐 인스타그램이 뭔지도 몰랐어요. 무엇보다 휴대폰으로 뭘 한다는 게 익숙하지도 않고 싫었죠. 나이 든 사람들은 누가 알려줘도 한 시간이 지나거나 하루가 지나면 잊어버리고 버벅대거든요. 그런 거에 대한 두려움이 좀 있었어요. 그런데 하도 아들이 간곡하게 권하고, 옆에 앉혀놓고 반복하면서 가르치니까 그 정성에 감복을 했죠.(웃음)
안 처음엔 실수도 많이 했어요. 해본 적이 없으니 사진이 어둡게 나오거나 이상하게 찍혀서 제대로 된 게시물을 못 올렸죠. 그런데 아들이 탓하지를 않더라고요. 오히려 꾸준히 해보라고 했지, 이건 왜 이렇게 시커멓냐 타박하질 않았어요. 그러니까 좀 쉬워지더라고요. 나이 든 사람들은 문명의 이기를 잘 못 받아들이는데,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을 젊은 세대들이 두렵지 않다고 가르쳐줘야 하는 것 같아요.
Q. 최근에는 젊은 세대들 사이 인기인 ‘틱톡’도 활용 하신다고 들었어요. 인스타그램과 다른 점이 있던가요?
안 인스타그램은 아들이 알려줬는데, 틱톡은 우리 딸이랑 손주가 권했어요. 팬데믹 시대에 답답한 생활이 이어지다 보니 활력을 주고 싶었나봐요. 인스타그램은 사진 위주다 보니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분위기라면 틱톡은 동영상 플랫폼이라 보다 활동적이고 위트 넘치고 재치 있는 분위기거든요. 젊은이들의 마당이랄까? 손자들하고 춤추는 영상도 올릴 수 있죠. 틱톡도 손자들과 소통하는 여러 방법 중 하나에요.
Q. SNS를 시작하신 뒤 삶에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
이 원래 성격이 무심한 편이에요. 그래서 매사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 일상 속 남겨두고 싶은 부분을 사진 찍고, 그림으로 그리고, 사람들과 공유하다 보니 정서적으로 많이 풍요로워졌어요. 저희가 공원 근처에 사는데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에 자주 소풍을 와요. 그런 아이들을 보며 그림을 그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죠.
안 시각이 넓어지고 깊어졌어요. 그동안은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살았는데 인스타그램을 한 뒤부터는 글을 쓰기 위해 싹이 나고, 꽃이 피고, 낙엽이 지고, 눈 내리는 모습을 깊이 관찰하고 보게 되니까 자연스레 자연과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이 생겼어요. 다큐멘터리 같은 것도 열심히 보게 됐고요. SNS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하릴없이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만 봤겠죠. 고마운 존재예요.
Q. 마지막으로 이루고 싶은 또 다른 꿈이 있다면요?
안 그냥 좋은 글을 쓰는 게 꿈이랄까요. 저는 지금 동화를 쓰고 있는데, 동화처럼 손주 또래가 읽을 만한 글을 앞으로도 계속 써나가고 싶어요.
이 젊었을 때 가수가 되려고 한 적이 있어요. 지금은 귀가 잘 안 들리다 보니 음을 잘 못 잡지만요. 손주들을 위해 글이나 그림 말고 노래를 녹음해서 남겨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잘 부르진 못해도 듣기에 괜찮은 곡을 녹음해 들려주는 거죠. 그 외에는 특별한 꿈 없이 지금 하고 있는 이 작업을 오랫동안 즐겁게 해나가고 싶어요.
오스트리아 빈에 간다면 아무리 바쁜 일정이라도 꼭 봐야 하는 그림이 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의 작품 ‘키스’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명화이자 회화에 문외한 일지라도 알고 있는 그림. 빈에서 클림트의 다른 작품과 달리 ‘키스’는 해외 임대와 반출이 절대 금지하고 있어서 실제 작품은 오직 벨베데레 궁전에 가야만 볼 수 있다.
숙소를 벨베데레 궁전 근처로 잡았다. 새벽에 눈을 떠 궁전을 산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첫날 아침은 궁전 정원에 들어가는 데 실패다. 눈을 뜨자마자 부리나케 정문에 도착한 시간이 5시가 조금 넘었는데 문이 잠겨있다. 정원을 6시부터 개방하는 줄 몰랐던 나의 불찰이다. 둘째 날에야 새벽녘의 정원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떠오르는 아침 빛을 뒤로 하고 조깅하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적막을 깬다. 스프링클러에서 물방울이 반짝거리며 쏟아져 내린다. 잠에서 깨어나 나른한 듯 기지개를 켜고 단장을 시작하는 귀부인의 자태가 이렇지 않을까. 8시 이후부터는 하나둘 관광객들이 들어오고 상궁 입장이 시작되는 9시 즈음에는 시끌벅적해진다.
‘아름다운 전망을 보이는’ 뜻의 이탈리아어인 벨베데레. 그 의미처럼 구름이 조각조각 흩어지는 하늘과 조형미 넘치는 정원 아래로 벨베데레 하궁과 빈 시내가 내려다보인다. 궁전은 사보이 왕가의 프린츠 오이겐(Prinz Eugen Von Savoy en 1663~1736)의 여름 궁전이었다. 정원과 건축물은 화려하고 장식적인 바로크식의 진수를 보여준다. 오이겐 공자는 자식을 남기지 않았기에 그의 사후 궁전은 이탈리아에 살던 조카딸에게 상속되었다가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에게 팔렸다. 이후 합스부르크가 황제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명성을 날리게 되었다.
아침의 청명함이 가득한 궁전의 정원을 걷는다. 곧 만나게 될 것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복제품이라도 애장하려는‘키스’. 기대가 뭉근히 피어오른다. 클림트는 시대를 거스르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금세공사 에른스트 클림트의 7형제 중 둘째로 태어난 그의 작품 속 찬란한 금색은 아버지를 보고 자란 어린 시절을 투영한다. 학교에 다닐 수 없을 만큼 가난했던 집안, 후원을 받아 비엔나 장식 미술 학교를 어렵사리 졸업한 후 동생과 함께 미술계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키려고 힘썼다. 동생이자 개혁의 동반자였던 에른스트가 죽고 얼마 뒤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났다. 3년 동안 붓을 잡지 않을 정도로 심적 타격이 컸다. 기존 미술세력을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를 느낀 그에게는 탈출구가 필요했다. 그때 피난하다시피 빠져든 세계가 강렬한 에로티시즘이다.
클림트는 자신의 사생활을 철저하게 감추었다. “나에 대해 알려면 내 작품을 보라”고 할 뿐이었다. 그 말을 증명하듯 클림트 사후에 14명의 여인이 그의 아이를 낳았다며 나타났다. 빈의 카사노바였던 셈이다. 그가 탐닉한 여인들은 그림 작업 앞에서 자신의 매력을 한껏 뽐내었다. 자신의 육체를 한껏 드러내며 나만이 그대의 여인이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의 작품 속 여인들은 성녀 아니면 요부였다.
클림트가 마지막까지 플라토닉한 사랑을 한 이는 죽은 동생, 에른스트의 부인의 여동생인 에밀리 플뢰게다. ‘키스’의 모델이라고 여겨지는 인물이다.
네모와 원의 대비, 꽃이 가득 핀 절벽 끝에 짙은 색 피부 남자의 힘 아래 무릎을 꿇고 있는 여인이 볼을 내 맡긴 체 눈을 감고 있다. 사방이 180cm인 그림 안에 담겨있는 몽환적인 분위기, 화려한 색채 앞에 시간이 멈춘다. 클림트의 곁을 떠났던 에밀리가 이 그림을 보고 난 후 다시 그의 곁으로 돌아왔을 마음이 그려진다.
키스가 전시된 상궁에는 클림트의 ‘프리차 리들러 부인의 초상화’, ‘유디트’ 등 그의 최대 컬렉션과 28세에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한 에곤 쉴레(Egon Schiele 1890~1918), 오스카 코코슈카(Oskar Kokoschka 1886~1980) 등 세기말을 대표하는 작품들이 즐비하다. 빈에서 반드시 가봐야 할 곳으로 꼽힐 만하다.
너무나 많이 봐서 익숙하다 못해 찻잔, 액자, 우산 등 생활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그림 ‘키스’에 대한 감흥은 생각보다 짙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세계 각국의 사람들은 키스를 보기 위해 벨베데레 궁전에 간다. 벨베데레=키스라고 여겨질 정도로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정원의 기하학적 조경미와 키스의 몽환미 사이에 빈의 파란 하늘이 떠 있다. 벨베데레의 키스는 절대 유혹이다.
오스카 와일드가 쓴 장편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보면 영원한 젊음을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판 주인공이 등장한다.
“내가 언제나 젊고 이 그림이 대신 나이를 먹을 수 있다면! 그것을 위해서라면 세상에 내가 바치지 못할 게 뭐가 있을까. 내 영혼이라도 기꺼이 내어줄 것이야.”
도리언 그레이는 악마에게 영혼을 판 대가로 영원한 젊음을 갖게 되지만 헨리 워튼 경을 통해 환락과 타락에 빠져 결국 파멸에 이르고 만다.
비단 도리언 그레이 뿐 아니라 인간은 누구나 젊음이 영원하길 원한다.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애를 쓴다. 주름살을 제거하기 위해 비싼 돈을 지불하고 조금 더 젊어 보이는 화장, 젊어 보이는 스타일에 신경을 쓴다. 나이보다 어리게 봐주면 기분이 좋다. 어쨌거나 나이 드는 건 유쾌한 일이 아니므로 세월이 야속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인생은 달라진다. 우리에게 ‘데미안’으로 잘 알려진 작가 헤르만 헤세는 ‘늙음은 젊음만큼 좋은 인생의 숙제’라 했다. 이 숙제를 어떻게 해내느냐에 따라 인생은 달라진다. 헤세는 이 인생의 숙제를 아주 훌륭하게 해냄으로써 나이를 먹어가는 것에도 아름다움과 기쁨이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신학교에서 두 번의 퇴학, 자살 기도 등 질풍노도의 청년기를 보냈고, 이혼과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심리치료를 받기도 했다. 마흔 살이 될 때까지 불안하고 평탄치 못한,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
그러나 나머지 생의 절반은 달랐다. 스위스 시골 마을에서 독서와 정원 가꾸기로 보낸 노년의 삶은 평화로웠다. 인세와 유명세를 가져다주는 글보다는 그리고 싶은 그림, 쓰고 싶은 글을 썼다. 자연을 사랑했고 뛰어난 자연 관찰자였던 헤세는 그림을 정식으로 배우지 않았지만 아름다운 자연과 풍경을 그렸다. 엽서에 작은 그림을 그려 넣어 받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물했다. 그러면서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고, 글도 깊어졌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지 않을 때는 정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잡초를 뽑고 낙엽을 모으고 채소밭을 늘리며 땀 흘려 일했다.
‘나는 유감스럽게도 쉽고 편안하게 사는 법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한가지만은 늘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는데, 그건 아름답게 사는 것이다. 내 거주지를 마음대로 고를 수 있게 된 시기부터 늘 특별하게도 아름답게 살아왔다’
아름답게 사는 것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었음을 잊고 살았다. 이건 젊을 때보다 나이 들어 더 수월한 일일 것이니 이제부터, 특별하게, 아름답게.
어딜 가든 화제가 되는 슈퍼리치는 부지불식간에 일상마저 들키곤 한다. 이때 대중의 시선은 그들의 패션을 단번에 스캔한다. 어떤 옷을 입었는지, 또 어떤 신발을 신고 액세서리는 뭘 착용했는지. 최근 매스컴에 모습을 드러낸 슈퍼리치들의 모습에서 그들이 애용하는 패션 아이템이 무엇인지 살펴봤다.
◇꼼데가르송
지난 2월 9일 미국 LA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이 작품상을 포함해 4개 부문을 석권했다. 이날 대중은 투자·배급사인 CJ그룹의 이미경 부회장이 입은 의상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바로 ‘꼼데가르송 빈티지 재킷’이었다.
이 의상에 부착된 밴드 위에는 ‘PARASITE is Cool’(기생충은 쿨하다), ‘I’m Deadly Serious’(나 정말 진지해요), ‘RESPECT’(존경해요) 등 영화 속 명대사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새겨져 있었다. 이 부회장이 직접 넣은 문구들로 세간의 화제가 됐다.
꼼데가르송은 1969년 출시된 일본의 아방가르드 고급 패션 브랜드다. 이 브랜드에 전 세계가 주목한 것은 1981년 파리 컬렉션에서다. 블랙을 기초로 한 비대칭 재단과 미완성인 듯 보이는 바느질, 풀어헤쳐진 원단을 사용한 의상들은 당시 충격을 안겨줬다.
이 부회장이 시상식에서 입은 재킷의 정확한 가격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200만 원대로 추정된다. 꼼데가르송의 재킷과 코트는 100만~300만 원대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한국에 잘 알려진 하트 로고의 플레이 라인 티셔츠는 10만 원대, 카디건은 30만 원대다.
◇에르메스
이만희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교회) 총회장이 명품 넥타이로 주목받았다. 지난 3월 2일 코로나19 확산 사태와 관련, 국민에게 사죄하기 위해 마련한 기자회견장에 ‘에르메스’의 노란색 실크 넥타이를 매고 나온 것. 해당 제품은 약 20만 원에 판매되고 있다. 에르메스는 프랑스의 하이엔드 명품 패션 브랜드다. 루이비통, 샤넬과 함께 3대 명품 브랜드로 통하는데, 그중에서도 최고로 꼽힌다.
하지만 가격대가 상당한 프리미엄 라인은 따로 있다. 대표적으로 ‘버킨백’과 ‘켈리백’이 초고가 제품이다. 버킨백 가격은 2011년 기준으로 1240만 원 정도다. 그레이스 켈리가 들고 다녀서 유명해진 켈리백은 35㎝급 제품이 930만 원 선이다.
이 제품들을 구하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예약을 한 뒤 오랜 대기기간을 거쳐야 살 수 있어서다. 버킨백은 현재 2000여 명의 대기자가 있어 3년 후에나 구매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켈리백은 현재 국내 VIP의 예약을 받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롤렉스
지난해 연말,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를 찾은 세계적인 축구 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착용한 시계가 화제였다. 영국 언론 데일리미러의 보도에 따르면, 호날두가 착용한 시계는 스위스 명품 브랜드 ‘롤렉스’의 ‘GMT-마스터 아이스 워치’다.
이 시계의 가격은 38만 파운드(약 5억7400만 원)에 달하는 고가의 한정판 제품이다. 데일리미러는 이날 호날두가 차고 나온 시계도 희귀하지만, 그의 소장품 중 가장 비싼 제품은 아니라고 전했다.
롤렉스는 시대와 분야를 막론하고 성공한 사람들과 유명인의 총애를 받는 대표적인 명품 시계 브랜드로 정확성과 내구성을 최우선 가치로 꼽는다. 엄격한 자체 검증과정을 통해 하루 오차 2초 내외로 정밀 조정된 시계만 출고한다.
롤렉스는 매우 일관적이고 확실한 콘셉트를 갖고 있어 용도와 라이프스타일에 따른 모델 분류가 철저하다. 다른 브랜드들도 용도에 따른 분류를 하지만 롤렉스에 미치지 못한다. 롤렉스 시계가 필드 쓰임새를 극대화한 ‘고급 툴워치’라는 개념으로 설명되는 건 이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술을 뽑아야 한다면 ‘압생트(absinthe)’가 아닐까. 고흐가 마시고 귀를 자른 술, 마시면 환각 증세를 일으키는 술 등의 누명 속에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한 압생트를 소개한다.
영화 ‘물랑 루즈’는 ‘로미오와 줄리엣’, ‘위대한 개츠비’ 등을 제작한 바즈 루어만(Baz Luhrmann) 감독의 2001년 작품으로 뮤지컬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영화로 평가받는다. 19세기 말 프랑스의 환락가 물랭 루주를 배경으로, 시인인 크리스티앙이 뮤지컬 가수인 샤틴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이 영화는 화려한 의상과 무대 등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는데 그 속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소품이 있다. 바로 작은 잔에 든 초록색 술, 압생트다. 이 영롱한 에메랄드빛을 내는 압생트는 영화 곳곳에서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크리스티앙이 압생트를 마시자 눈앞에 ‘녹색 요정’이 나타나 춤을 추는 모습은 ‘녹색 요정’이라고도 불리는 압생트의 특징을 잘 표현해낸 장면이다. 이뿐만 아니라 건물 외벽에 붙어 있는 압생트 포스터와 압생트 이름을 내건 술집 간판은 압생트가 19세기 말 프랑스의 문화와 낭만을 상징하는 아이콘이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수많은 예술가가 예찬한 술
실제로 19세기의 프랑스에선 압생트가 큰 인기를 끌었다. 흔하지 않은 초록빛 술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당시 유럽의 포도나무를 강타했던 필록세라 해충 사태가 큰 몫을 했다. 이 재앙으로 와인의 종주국인 프랑스의 와인 산업이 휘청거렸고 이 틈을 타 값싼 압생트가 대량 생산되면서 프랑스의 주류 산업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이러한 저렴한 압생트의 주 소비계층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파리로 몰려든 가난한 화가, 작가 등의 예술가들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빈센트 반 고흐, 아르튀르 랭보, 에드가 드가, 오스카 와일드 등이 있는데 이들은 그림과 글을 통해 압생트를 예찬하기도 했다.
“압생트를 마시면 튤립이 내 다리를 부드럽게 감싸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오스카 와일드
그러나 영원할 줄만 알았던 압생트의 시대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9세기 말 한 정신과 의사가 압생트를 만들 때 사용되는 쓴쑥(wormwood)에 환각과 발작을 일으키는 투우존(thujone)이란 성분이 들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한 차례 타격을 입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05년 스위스에서 발생한 한 살인사건은 ‘압생트는 사람을 미치게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석연치 않은 점은 살인자였던 사람이 하루에도 수십 잔의 와인을 먹는 알코올 중독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원인을 그날 두 잔밖에 먹지 않은 압생트에서 찾았다는 점이다. 이후 압생트는 1906년 벨기에를 시작으로 1907년 스위스, 1909년 네덜란드, 1912년 미국, 1915년 프랑스 순으로 판매가 금지됐다.
억울한 누명 ‘악마의 술’
제물이 된 압생트가 누명을 벗기까지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세기 중반에 들어와 시작된 압생트에 대한 연구는 투우존이라는 성분이 신경에 영향을 주는 물질은 맞지만, 압생트에 포함된 투우존의 양은 아주 극소량이기 때문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물론 70kg의 성인을 기준으로 했을 때 앉은자리에서 압생트를 420ℓ 마시면 위험할 수 있다는 결과도 나왔다. 다시 말하면, 압생트 420ℓ를 마시고 환각 증세를 보일 확률보다 그전에 알코올 쇼크로 세상과 작별하게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의미다. 이러한 연구 덕분에 압생트는 비로소 누명을 벗고 2000년 이후부터 프랑스, 스위스,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에서 다시 판매되기 시작했다. 이젠 우리나라 바에서도 쉽게 마실 수 있다. 비록 녹색 요정은 나타나지 않겠지만 19세기의 예술가로 빙의해 압생트의 매력에 취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