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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낀 세대’ X세대 무거운 짐, 홀가분하게 나누는 법
- 중년의 인간관계가 유독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는 ‘낀 세대’이기 때문이다. 직장에서는 부장급 위치인 그들은 베이비붐 세대 상사와 MZ세대 후배들의 눈치를 보며 일하고, 가정 내에서는 부모와 자녀의 부양 부담을 동시에 안고 있다. 직장과 가정에서 발생한 스트레스는 양쪽에 악영향을 끼치며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기도 한다. 이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방법은 과연 없을까.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좋거든요.” 주변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패션·음악 등 취향을 드러내며 ‘나’를 표현하고자 했던 그들. 지금의 ‘낀 세대’는 1990년대 20·30대를 보낸 X세대(1965~1979년)다. 대한민국에 등장한 첫 개인주의 세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화려했던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현재는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사회에 진출하던 시기 IMF 직격탄을 맞은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조직에 순응했고,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기성세대가 되어간 것으로 보인다. 구독자 19만 명의 유튜브 채널 ‘유세미의 직장수업’을 운영하는 유세미 작가는 “낀 세대라는 표현은 애처로운 느낌을 자아낸다. 본전을 찾겠다는 ‘본전의식’이 강한 X세대는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마지막 세대다. 기성세대와 생각이 비슷한 그들은 후배인 MZ세대와의 관계가 더욱 어려울 것이다. MZ세대는 관계에 있어 당연히 개인이 중요하다. 그런 그들에게 충성심을 요구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공정하고 합리적이지 않으면 바로 거부 반응을 보인다”면서 “이러한 괴리감이 X세대를 번번이 당황하게 만든다. ‘나는 안 그랬는데’라며 억울함을 표현해봤자 세대 차이만 확인하고 마음만 공허해질 뿐이다”라고 설명했다. X세대 마음의 짐 1974년생인 김재완 작가는 2021년 X세대 헌정 에세이 ‘나 아직 안 죽었다’를 펴냈다. 어른들의 말에 따라 열심히 공부하고 취직해 일했더니 어느덧 ‘꼰대’ 소리 듣는 나이가 된 그는 지난 인생을 돌아본다. 어느 날 갑자기 팀장에서 좌천되면서 공황장애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위기를 기회로 삼아 다시 일어섰고, 그의 평범하지만 특별한 이야기는 동년배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한다. X세대를 대표하는 김재완 작가와 소통 전문가 유세미 작가와 이야기를 나눠봤다. 2024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중위 연령은 46.1세다. X세대는 사회·경제적으로나 중심부를 차지하는 허리 세대다. 김재완 작가는 X세대 마음의 짐 첫 번째로 ‘부모에게 가진 부채감’을 언급했다. “X세대는 부모 부양에 대한 경제적·심리적 책임감이 크며, 제사를 지내는 마지막 세대가 될 것 같다”라는 그는 부채감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재완 작가의 어머니는 고향인 경북 상주에 홀로 거주한다. 김 작가는 효도하겠다는 생각에 어머니를 자주 찾아뵈려고 노력한 적이 있었는데, 막상 집에 가면 피곤해져서 괜히 어머니에게 짜증을 내는 자신을 발견했단다. 그는 “나도 부채감을 갖고 있었던 것인데, 몇 년 전 내려놓았다. 그랬더니 어머니와의 관계가 오히려 좋아졌다. 자주 못 찾아뵙는 대신 한 번 갔을 때 얘기를 더 나누려고 하고, 전화도 자주 드리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대화가 더 잘 통하더라”라면서 “표면적으로는 불효자 같아 보일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효자가 된 셈"이라고 말했다. 대홍기획 데이터 인사이트 팀의 책 ‘세대 욕망’에서는 “X세대가 우리 사회에 가져온 가장 혁명적인 변화가 있다면 가족이 가장 소중하다는 관념을 형성한 것”이라면서 “X세대는 친구 같은 부모가 되고 싶다는 로망을 대체적으로 실현하고 있다”고 말한다. ‘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자기중심주의가 가족을 소중하게 여기는 방향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자신은 부모에게 경제적이든 정서적이든 충분히 지원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녀에게는 자신이 받지 못한 것을 주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와 관련해 김재완 작가는 “우리는 자녀 교육과 관련해 오만감을 갖지 말아야 한다”고 짚었다. 39세에 결혼해 딩크족이라는 그는 다소 조심스러워하면서, 사회와 주변에서 보고 들은 것을 토대로 “세상의 풍파로부터 애들을 막으려고 할 게 아니라, 세상의 풍파를 헤쳐나가는 지혜를 가르쳐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생각을 전했다. 유세미 작가는 자녀와의 소통법에 대해 “과거가 아닌 미래를 이야기해야 한다. ‘내가 어떻게 너를 키웠는데’가 아니라, 앞으로의 꿈이나 계획에 대해 얘기해야 가족 관계가 좋아진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김재완 작가는 회사에서는 ‘격차감’을 내려놓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봤다. ‘라떼는 말야’(나 때는 말야)라면서 꼰대같이 행동하면 안 된다는 것. 김 작가는 “핵개인화 시대라는 것을 인정하고, MZ세대 후배들과 수직적이 아닌 수평적인 소통을 해야 한다”면서 “책, 야구, 고양이 등 무엇이든 좋다. 그들의 취향과 관심사를 파악하고 얘기를 나누어보는 것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유세미 작가도 조언을 전했다. MZ세대는 과거와 달리 직장 상사를 명령과 통제하는 윗사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신의 코치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유 작가는 “자신의 역할을 코치라고 정립하면, MZ세대를 이해하게 되고 소통이 훨씬 수월해진다. MZ세대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갖고 다가오는 상사에게 마음을 열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나에게 달린 솔루션 낀 세대가 인간관계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궁극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김재완 작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라’라고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을 전했다. 김 작가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세 가지 순간이 있다. 첫 번째는 군대 제대했을 때, 두 번째는 결혼했을 때, 세 번째는 43세에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았을 때다”라고 밝혔다. 당시 ‘글을 써보라’는 아내의 추천에 온라인 커뮤니티에 역사 관련 글을 쓴 그는 딴지일보에 연재하게 됐고, 이후 책도 펴냈다. 그러면서 ‘작가’라는 부캐(부캐릭터)를 갖게 됐고, 아무리 힘든 일이 생겨도 긍정적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한다. “본캐는 남들이 가는 길만 따라가다 선택당했지만, 부캐는 내가 만들 수 있다”고 말하는 김재완 작가는 60대가 되기 전에 부캐를 만들 것을 추천했다. 사실 김 작가는 한 달 전 퇴사했다. 회사 생활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잘했지만, 더 늦기 전에 꿈을 펼쳐보고자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올해까지는 여유롭게 글을 쓰며 부캐가 본캐가 될 수 있을지 알아볼 계획이다. 김 작가는 “앞으로는 70대, 80대까지 일해야 한다고 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면, 이것저것 해보면서 찾아야 한다”면서 “내가 행복해야 가정에도 평화가 찾아오고, 모든 인간관계도 좋아진다”고 덧붙였다. 자신의 취향을 찾아 취미활동 또는 봉사활동 등을 하다 보면 마음 맞는 친구가 자연스럽게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유세미 작가는 무조건적으로 새로운 관계 맺기에 매달리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 작가는 “별 의미 없는 모임, 단톡방, 각종 경조사를 챙기느라 에너지를 낭비하지 마라. 지금 내 곁에 있는 가족, 친구, 동료들을 더 귀하게 챙기고 돌봐야 한다”라면서 “나이 들수록 넓고 얕은 인맥보다는 좁고 깊은 인맥이 중년의 안정감과 만족감에 더 영향을 끼친다”고 인간관계 솔루션을 제시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의 중심이 ‘나’여야 한다는 점이다. 유세미 작가는 “모두에게 좋은 사람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든 관계의 스트레스는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 것인가 신경 쓰면서부터 발생한다. 효도하는 자녀, 자랑스러운 부모, 일 잘하는 부장이 되고 싶은 마음이 낀 세대를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인간관계에서 편안해질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이 마음먹기에 달렸다. “만약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편이라고 스스로 판단된다면 좀 더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작은 목표라도 세워보세요. 목표를 달성하면서 성취감을 느껴보는 거죠. 점점 더 주도적인 사람이 되어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남에게 휘둘리면 재미없습니다. 휘둘리면 그게 인간관계의 스트레스죠. 그것을 피하려면 타인의 평가나 시선이 아닌 나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일상의 방식을 고수하세요.” 유세미 작가의 상황별 꿀팁 회사 스트레스, 집에 가져가지 않기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혼자 삭히다 보니 화병이 생기죠. 그렇지만 스트레스를 집에 가져가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임원한테 매출 때문에 온갖 모욕적인 잔소리를 들은 김 부장이 있다고 가정해보죠. 그는 저녁 먹는 와중에도, 자려고 침대에 누워서도 마음속에 품어온 검은 봉지를 열어 회사 쓰레기를 봅니다. 임원이 그렇게 말한 이유는 나한테 실망해서였을까? 아니면 나가라는 시그널인가? 별생각을 다 하죠. 그러나 그 시간에 임원은 뭘 하고 있을까요? 예능 프로그램을 신나게 웃고 떠들며 보다가 기분 좋게 잠들었을 겁니다. 김 부장에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도 못 한 채 말이죠. 결론은 회사 쓰레기를 가슴에 품고 집에 와서 꺼내보고 또 꺼내본 김 부장만 손해라는 겁니다. 회사 쓰레기는 회사에 두고 오세요. 집에 와서 회사에서 있었던 부정적인 일이 생각나면 ‘아, 내가 또 회사 쓰레기를 가지고 왔구나’ 떠올리고 거기서 멈추는 마음 훈련을 해보세요. 한두 번으로 되지는 않지만 자꾸 연습하면 회사 쓰레기를 버리고 집에 가게 됩니다. 회사와 집을 분리하는 연습이 스트레스를 막는 데 가장 좋습니다. 신뢰받는 ‘일잘러’식 말하기 우리가 매일 부딪히는 직장에서 선배로서, 후배로서 상대의 신뢰를 받을 수 있다면 직장 생활이 훨씬 수월해질 수 있습니다. 첫째,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말하세요. 누가 들어도 오해하지 않게 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세요. 두괄식으로 표현하면 더 효과적입니다. 예를 들어 직장 상사에게 보고할 때 ‘상무님, OO업체 미팅 결과를 보고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시작하는 거죠. 그리고 세부적인 이야기를 할 때도 3가지 정도로 묶어서 명확하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둘째, 애매하게 피드백하지 마세요. 핵심과 근거를 들어 명확하게 이야기하세요. 셋째, 시니컬한 말투는 버리세요. ‘그거 어차피 안 돼’, ‘하기는 하겠는데 되겠어?’ 이렇게 말하는 사람과 누가 일하고 싶을까요? ‘어떻게 하면 더 개선할 수 있을까’, ‘더 잘할 수 있을까’를 이야기하는 사람을 신뢰하기 마련입니다.
- 2024-05-09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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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김지영, “이제 복길이를 사랑하게 되었죠”
- 어쩌면 누군가는 ‘복길이’ 이미지에 가둬 바라봤을지도 모른다. 그 이미지를 벗기 위해 김지영은 부단히 노력했다. 어느덧 데뷔 30년 차 배우가 됐는데, 이제는 자신을 대표하는 이미지를 감사하게 받아들인다. 또한 연기학과 교수로서 후배들을 이끌고 있으며, 삶을 관망하는 여유도 생겼다. 유명인과 일반 대중의 관계는 ‘인기’로 증명되는 터. 그는 “인기란 야속한 것 같다. 뜨겁기도 하고 차갑기도 하다”면서 양면성을 언급했다. 현재는 큰 인기를 바라지 않는다. 아들한테 인기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 희귀병을 앓아 부모님 속을 썩였다고 생각하는 딸이기에 자식을 향한 애정이 더욱 특별하다. ‘전원일기’와 가족의 탄생 MBC ‘전원일기’와 복길이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복길이 이미지 때문에 다른 역할을 못 맡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오디션도 많이 보고, 사이코패스 악역, 유흥업계 인물 등 갖은 역할에 도전해봤던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는 복길이로 인해 지금의 제가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죠. 나이 들고 보니 배우로서 떠오르는 이미지가 하나라도 있으면 성공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매우 고마운 작품이죠. 그리고 좋은 선배님들과 호흡하면서 연기에 대해 많이 배웠어요. ‘전원일기’는 결국 저의 학교였다고 생각해요. SBS ‘토마토’에서 악역 연기를 펼쳐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그때가 전성기였을까요? MBC에서 ‘그대 그리고 나’(1997년)로 신인상을 수상한 후라 자신감이 올라와 있었죠. 악역 제안이 들어왔을 때 고정된 이미지를 탈피할 수 있겠단 생각에 출연했고, 촬영도 재밌게 했죠. 광고도 그때 제일 많이 찍었어요. 그렇다고 그때를 전성기라고 말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매번 진심을 다해 연기해서 작품 할 때가 늘 전성기라고 느껴요. 남성진 씨와는 동료에서 남편이 된 케이스인데, 관계의 변화에 어떻게 적응하셨나요? ‘전원일기’를 8년간 촬영하면서 정말 친한 오빠 동생 사이로 지냈죠. 이후 남편의 고백으로 사귀었는데 연애 기간은 불과 6개월이었어요. 그중 5개월은 제가 중국에서 촬영했죠. 연애다운 연애를 한 적이 없는데 바로 결혼하려니 조금 무섭고 도망가고 싶더라고요. 우정과 사랑을 구분 못 한 것이 아닌가 싶었죠. 그런데 세월이 지날수록 결혼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 사람, 내 가족이 된다는 게 이런 거구나 느끼면서 사이가 깊어졌고, 고마워하고 있어요. 부부간 소통은 어떻게 하세요? 저희 부부는 성격이 극과 극이라서 지금도 종종 싸워요. 남편이 화가 많고, 버럭하는 스타일이에요. 불 같은 성격이죠. 그래서 말다툼으로 번지는데, 다행히도 저희 둘 다 금세 잊어 버리곤 해요. 어느 순간부터는 의견 차가 커도 남편한테 ‘고쳐줬으면 좋겠어’, ‘맞춰줘’ 등의 요구를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남편의 말에는 짜증이 섞여 있지만, 내용은 합리적이고 설득력이 있어요. 그래서 서로 이성적으로 대화가 될 때 의견을 나누고 조율하려고 해요. 특히 아이 문제로 대화할 때는 아이의 생각을 가장 먼저 수렴하고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결정을 내리죠. 얘기를 나눠보니 아드님에 대한 사랑이 크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아이가 자랑스러워하고 존경할 수 있는 엄마가 되는 게 제 꿈인 것 같아요. ‘그렇게 살면 네 삶이 너무 없지 않아?’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그게 제 삶이라고 생각해요. 일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아이 옆에 많이 있어 주려고 노력했어요. 평소에는 편지나 메모를 남겨서 마음을 표현했고, 촬영이 없는 날에는 즉흥적으로 여행을 가기도 했죠. 그런데 아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같이 있는 시간이 줄었어요. 나중에 성인이 되고 여자 친구가 생기면 나와 놀아줄 시간이 있을까 싶어요.(웃음) 과거 방송에서 보니 아드님도 배우가 되고 싶어 하던데요. 3대 배우 가족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어렸을 때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하더니,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부담을 느끼는 것 같아요. 부모님, 조부모님한테 먹칠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하더라고요. 그 부담감은 당연한 것 같아요. 저도 시부모님이 배우이다 보니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는데, 남편은 평생 그 부담을 안고 살았죠. 우리 아이는 그 부담이 배로 커진 거잖아요. ‘너무 부담 갖지 말고, 연기가 정말 하고 싶으면 해라. 너의 색깔을 찾으면 된다’고 조언해주고 있습니다. 시어머니인 배우 김용림 씨와의 고부 관계가 특히 주목받는데요. 굉장히 순탄한 고부 관계라고 생각해요. 같은 분야에 있으니까 잘 이해해주세요. 제가 종갓집 며느리인데 촬영 때문에 제사를 못 지낼 때도 있고, 촬영이 늦어져 새벽 5시에 집에 들어갈 때도 있잖아요. 그럴 때 어머니께서 이해를 넘어 ‘얼마나 힘드니’라고 위로해주시죠. 그런데 여느 관계와 마찬가지로 서로에게 서운한 마음이 생길 때도 있어요. 어머니께서 섭섭했던 부분을 말씀하시면, 저도 속상한 점을 얘기하기도 하죠. 어느덧 어머니와 함께한 세월이 20년 이나 되다 보니, 목소리만 들어도 기분이 어떠신지 알겠더라고요. 전화 목소리에 서운함이 묻어 있는 것 같으면, 바로 달려갑니다.(웃음) 삶과 인연을 소중하게 부모님에게는 어떤 딸이었나요? 어릴 때부터 희귀병으로 몸이 약했으니까 늘 집안의 걱정거리였다고 생각해요. 제가 아이를 낳아 키워보니 부모님의 사랑을 더 느낄 수 있었어요. 배우를 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께서 반대를 많이 하셨어요. 몸도 안 좋은 애가 잘할 수 있을까 걱정하셨겠죠. 그런 마음을 아니까 창피하지 않은 자식이 되고 싶어서 더욱 열심히 노력했던 것 같아요. 사실 어느 순간, 너무 우리 애만 챙기느라 부모님에게 신경을 못 썼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후회가 남지 않게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합니다. 희귀병 투병으로 삶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겠어요. 등에 혈관이 엉겨 붙는 혈종이 있었는데, 태어날 때부터 그랬어요. 가족들이 저를 살려보겠다고 별걸 다 해봤는데,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죠. ‘성인이 되기 전에 사망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유서를 써놓기도 했어요. 말로 전하지 못한 얘기들을 남겨놓기도 했죠. 그러다가 고등학생 때 수술 후 완치돼 지금까지 살 수 있었습니다. 다시 주어진 삶이 감사하고 더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어찌 보면 배우 활동이 체력이 강해진 기반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이제 50대가 되었는데, 중년 배우의 삶은 어떤가요? 20대 때는 작품을 한 번에 2~3개씩 하면서 바쁘게 보냈어요. 결혼 후인 30대, 40대 때 삶도 안정되고, 연기를 진심으로 생각하게 됐죠. 5년 전쯤부터 선배로서 안주하고 싶지 않고, 변화와 발전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 출연하려고 했죠. 선배님 또는 감독님이 부르면 예술 영화도 카메오 출연도 마다하지 않았어요.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제예술대학교 연기예술과 학과장을 맡은 지도 7년이 됐네요. 저는 선생님이라기보다 선배라고 생각해요. 먼저 연기한 사람으로서 습득한 기술을 알려주려고 하죠. 오히려 제가 열정을 수혈받고 있어요. 사실 연기 활동을 하면서, 아이도 돌보면서, 학교 일도 하는 게 체력적으로 힘들기는 하더라고요. 그런데도 놓을 수 없는 이유는 학생들과의 연계성이라고 생각해요. 함께 성장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김지영에게 ‘관계’란 무엇일까요? 저는 소심하기도 하고, 관계에 예민한 편이에요. 지인들에게 마음 표현도 잘 못 했는데, 이제 용기 내서 먼저 다가가려고 해요. 모든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죠. 그런데 중요한 건 관계의 주체가 자신이 되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좋은 관계도 성립되고, 많은 상처를 받지 않을 테니까요. 또 너무 애쓰지 않아야 재밌는 인생이 되지 않을까요? Bravo Question 나에게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은? 감사한 마음 아닐까요. 저부터 시작해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은 변하지 않는 것 같아요. 제가 그 마음을 간과하느냐, 신경 쓰고 있냐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한데, 그 마음을 품고 지금까지 왔다고 생각해요. 제가 그렇게 힘이 큰 사람도 아니고, 능력이 출중한 스타일도 아니에요. 그런 마음이 하나하나 쌓여서 저 자신에 대해서도 이해하게 되고, 제가 하고 싶은 일도 하나하나 이루어온 거죠.
- 2024-05-02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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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도시 영종과 여행의 아이콘 김찬삼
- 지구 서른 바퀴 넘는 길을 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여행가 김찬삼은 ‘동양의 마르코 폴로’라 불릴 만큼 한국 해외여행의 선구자라고 일컫는다. 1958년부터 시작한 세계여행으로 그의 발걸음이 닿은 곳은 160여 개국 1000여 개 도시에 이른다. 당시는 해외에 나가는 것이 어려웠던 때일 뿐 아니라 세계여행이란 말조차 생소하던 시절인 걸 생각하면 가히 혁명적이기까지 하다. 예나 지금이나 두말이 필요 없는 독보적인 여행의 아이콘이다. 하늘도시 영종에 그가 있다. 여신(旅神)이 내게 있어 내게 무슨 특혜를 베풀어준 것은 아니지만 매양 새로운 것을 보는 기쁨이 둘도 없는 힘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런 수난은 인간 수업에 있어서 고귀한 경험들이었습니다. -김찬삼의 ‘끝없는 여로’ 18쪽 세계의 나그네 김찬삼을 기억하다 여행가 김찬삼 교수(1926~2003)는 인천인이며 세계인이다. 황해도에서 태어났지만 본적인 인천시 중구에서 성장하고 생을 마쳤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후 고등학교 지리 교사와 대학에서 지리학과 교수를 지내면서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한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죽은 지식”이라며 세계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자 하는 열망을 키웠다고 한다. 이렇게 시작된 김찬삼 교수의 여행 이야기를 인천의 하늘도시 영종에서 만날 수 있다. 바다와 공원이 어우러진 영종역사관은 봄을 코앞에 둔 계절에 여행가의 기획전시를 보여주는 중이다. 영종역사관 3층에서 열리는 ‘세계의 나그네 김찬삼 특별기획전’은 3부로 나뉘어 전시된다. 1부는 ‘세계를 꿈꾸다’ 편으로 김찬삼 교수가 세계인의 꿈을 키웠던 인천에서의 성장 과정을 담았다. 학자와 저술가로서의 면모와 여행가로서 세계를 향한 도전 정신이 피부로 느껴진다. 2부는 ‘한국 최초의 세계여행가’ 편. 세계여행의 경로와 여정이 담긴 기록들을 귀한 자료들과 함께 소개했다. 세계일주의 첫 여행지 알래스카를 시작으로 40여 년 동안의 여행 이야기가 펼쳐진다. 3부는 ‘만인의 스승 김찬삼’으로 세계의 현장을 바탕으로 교육자로서 직접 보고 느낀 여정을 보여준다. 또한 그가 성장해온 인천과 후반기의 안식처였던 영종과 영종인으로서의 인연을 조명했다. 전시품 중 김 교수와 늘 함께했던 낡은 배낭과 모자와 신발은 특히 보는 이들에게 여행을 향한 강한 전율을 느끼게 한다. 마르코 폴로와 슈바이처를 사랑한 그는 여정 중에 슈바이처 박사도 만났다. 여행 중 굶주리다시피 해도 무한한 힘이 솟구치는 것은 매양 새로운 나라 사람들과 자연을 보는 기쁨이 둘도 없는 영양제가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시 출간되었던 책과 포스터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하다. 카메라와 낡은 지도, 꼼꼼히 기록한 여행일지와 수만 장의 슬라이드 필름. 그중에 세계를 돌아다니며 몰았던 빨간색 딱정벌레차도 인상적이다. 1970년 독일 여행 중 독일인 친구에게 선물받았다는 폭스바겐이다. 또한 지도가방은 지도를 고정하는 형태의 캔버스 가방으로, 아크릴 덮개가 있어 비나 눈이 오는 경우에도 지도를 확인할 수 있다. 여행가에게 지도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1960년대 중남미와 아프리카 여행 전에 친구에게 맡긴 유서는 여행가로서, 가장으로서 진중하다. “내 목적을 위해서는 어떠한 고난도 기쁘게 받으련다. 설령 내가 무슨 사고로 죽더라도 서러워 말고, 운명이라고 체념하고 부모에게 위로하여 줄 것이며 애들의 교육을 잘 부탁한다.” 그는 말한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인간 수업에 있어 여행처럼 좋은 것은 없다고 보인다. 세계 언어는 2000여 종, 이를 다 배우는 것보다는 소박하고 어진 미소가 무엇보다도 고귀한 것이 아닐까.” 전시장의 모든 사진마다 밝은 얼굴로 환하게 웃는 김찬삼 교수는 진정 세계의 나그네였다. (전시 기간 5월 31일까지) 하늘도시 영종과 김찬삼 우리에게 영종도는 듣기만 해도 먼 곳을 향한 그리움으로 짜릿해지는 곳이다. 그곳 어디쯤에서든 머리 위로 비행기가 날고 여행의 열망이 솟구친다. 그 옛날부터 영종도는 공항터가 될 곳이 아니었을까 하는 이야기가 있다. 기록에 따르면 영종도의 옛 이름은 자연도(紫燕島)였다. 섬에 제비가 많이 날아 붙여진, 문자 그대로 자줏빛 제비섬이다. 제비는 그렇다 치고 자줏빛은 해 저무는 영종섬의 붉다 못해 자줏빛이었던 하늘을 말함이라. 일몰에 물든 자줏빛 제비의 모습으로 명명된 자연도라 하니, 옛사람들의 지명 정하기의 기지와 운치는 멋스럽기 그지없다. 영종 또한 긴 마루를 가진 섬이란 뜻으로, 오늘날 활주로가 펼쳐진 공항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아무튼 현재 그곳엔 몇 분 간격으로 비행기가 뜨고 내린다. 영종도는 김찬삼 교수에게 특별한 곳이다. 세계여행가 김찬삼 교수의 여행 책은 당시 손꼽히는 베스트셀러였다. 그 시절 웬만한 집의 책꽂이에는 김찬삼의 세계여행 전집이 있었다. 인천인인 그는 책의 인세로 영종도 구읍나루터 인근 바다 언덕에 공간을 마련했다. 이곳에서 휴식을 하고 여행 원고 집필에 몰두했다. 또한 여행문화원과 여행도서관을 개관하기에 이른다. 더 많은 이들에게 세계여행의 꿈과 희망을 불어넣어 주고픈 마음이었다. 하지만 영종국제도시가 생기면서 터를 잃고 말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부근에 세계로 통하는 첫 관문인 인천국제공항이 자리 잡았고 이곳에 영종역사관이 들어섰다. 영종역사관 밖으로 영종역사관은 영종도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알리기 위한 공간이다. 실내는 물론이고 외부에서 유적과 유물을 만나볼 수 있는 전통정원이 앞마당이다. 정원을 몇 걸음 거닐다 보면 숲을 이룬 메타세쿼이아가 빽빽하다. 영종진공원은 운요호 사건이 일어난 곳이다. 일본의 급습으로 마을이 불바다가 되었던 아픔의 장소이기도 하다. 이곳에 역사적 상징물인 전몰영령추모비와 태평루라는 누각을 설치해서 아픈 역사를 기억하는 메모리얼 정원으로 조성했다. 바다 옆으로 난 영종둘레길을 따라 건강백년길, 치유하늘길, 힐링바닷길의 산책 코스 또한 자연스럽다. 영종역사관을 둘러싼 시사이드파크는 영종하늘도시 인근의 공원으로 8㎞의 해변공원이 일품이다. 해변길을 따라 조성된 왕복 5.6㎞의 레일바이크도 신나고, 캠핑장과 하늘구름광장, 스카이데크 등을 두루 갖추고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저녁 무렵이면 갯벌 풍경과 어우러지는 일몰이 신비롭다. 인천의 작은 올레길 예단포둘레길 영종도의 예단포항 둘레길은 작은 올레길이라 할 만큼 예쁘다. 기왕 영종도에 갔다면 한 번쯤 가볍게 걸어보는 것도 좋다. 선착장에 주차하고 출발하면 입구의 대나무숲과 잠깐 쉴 수 있는 정자를 만난다. 언덕을 오르면 눈앞에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물이 빠졌을 때는 갯벌이 진득하다. 길 옆으로 손톱만 한 야생화가 반짝이고, 오래된 나무가 여름이면 울창한 숲을 이룬다. 바다와 산이 공존하는 시원한 풍경으로 가슴이 탁 트인다. 왕복 30분 정도 길이어서 가뿐히 걸어보기를 추천한다. 영종도의 해변과 공항전망대 서해에 왔으면 바다를 따라 한 바퀴 달려보자. 마시안해변과 선녀바위해수욕장, 을왕리해수욕장과 왕산해변이 멀지 않은 간격으로 이어져 있으니 시원하게 돌아보면 된다. 해변가 주변으로 출렁다리와 숲도 있어서 시간이 여유롭다면 차분히 숲길을 걸어보는 맛도 운치 있다. 영종도 나들이길에 이착륙하는 비행기들을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다면 좋을 듯하다. 공항 서쪽 오성산 자락에 인천공항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의 해발고도는 172m지만 막상 올라보면 높은 느낌은 아니다. 오성산과 공항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고, 활주로에서 이착륙하는 비행기들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 발아래로 공항철도가 지나가는 풍경은 덤이다.
- 2024-04-26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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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 연구자 3인, “어른 필요 없는 유튜브 세대 젊은 꼰대 돼”
- 과거에는 나이가 곧 경험이고 지혜여서 ‘나이 든 사람’이 ‘어른’이었다. 5060세대가 ‘동네 어른’을 추억하는 이유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2024년 우리가 생각하는 어른의 기준은 무엇일까? 어떨 때 어른이 되었다 느낄까? 좋은 어른은 어떤 어른일까? 세 명의 전문가와 함께 이 시대의 어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대담 참여자 강용수 작가·백종화 리더십 코치·최영희 메타연구소 소장 진행 이연지·문혜진 기자 ◇강용수 작가(56세,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교수)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한다. 최근 낸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백종화 리더십 코치(45세, 그로플 대표) 18년 직장생활 후 회사 그로플을 설립, 리더십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대기업 CEO·임원·팀장 등의 리더십 코칭을 한다. ◇최영희 메타연구소 소장(67세,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건강한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돕는 전문가다. 약물 치료를 선호하지 않아 인지행동·스키마·마음챙김 치료 등을 하고 있다. 진행자 본지에서 진행한 ‘세대 간 존경-존중에 대한 인식조사’(2024)에 따르면 ‘어른 하면 떠오르는 단어’로 ‘책임감 있는’이 꼽혔어요. 2014년 조사에서는 ‘윤리’가 중요한 키워드였는데, 2024년에는 ‘책임감’이 중요한 키워드로 떠오른 이유가 뭘까요? 강용수 책임이라는 말이 조금 모호하게 느껴집니다. 니체는 타인을 책임져야 한다는 걸 기대기 위한 수단으로 보기도 해요. 그렇기 때문에 주권적 개인이라는 말을 하는데요. 어떤 공동체를 아우르는 책임이라기보다, 자신을 책임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죠. 백종화 사람마다 책임감에 대한 정의가 다를 것 같아요. 저는 신뢰와 실력 두 가지를 갖춘 사람을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고 보는데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만 하는 일에 집중하고, 점점 어려운 일을 맡게 될 때 잘해내기 위해 전문성을 끊임없이 확보하는 게 책임감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영희 그러니까 책임이란 자신이 어떤 선택을 했을 때 결과를 자기 몫으로 받아들이는 거죠. 과거 결핍의 시대를 살았던 세대가 부모가 되어 내 자식에게 결핍을 물려주려 하지 않다 보니, 젊은 친구들은 의사결정할 일이 별로 없어요. 아침에 일어나는 것부터 부모가 깨워주고 옷 입혀주고 밥 먹여서 정해준 학원에 보내고, 집에 오면 이 닦고 잠자리에 드는 식이죠.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언젠가 스스로 한 일에 책임을 져야 할 때가 좋든 싫든 올 텐데, 해본 적이 없다 보니 굉장히 불안해하죠. 책임져야 한다는 건 알지만, 어렵고 두려울 수밖에요. 백종화 조직에서도 의사결정 경험이 중요해요. 리더들이 결정해왔기 때문에 결정하지 않은 일을 책임져야 한다는 데에 구성원들은 의문을 가지고, 반대로 리더는 구성원 자신의 일인데 왜 책임지지 않느냐며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지게 되거든요. 진행자 일상에서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책임지는 경험을 할 기회가 많지 않다는 의미네요. 그래서인지 설문조사에서도 나 자신을 책임질 수 있을 때, 나 외에 다른 사람을 책임질 수 있을 때 어른이 되었다고 보는 듯한 결과가 나왔어요. ‘스스로 어른이 되었다고 느끼는/느낄 것 같은 순간’을 물었을 때 2030은 ‘경제적으로 자립했을 때’를, 5060은 ‘일과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느낄 때’를 꼽았거든요. 최영희 나 혼자도 벅찬데 누구를 돌보겠어요. 하버드대학교에서 사회적 관계를 70년 넘게 연구한 것이 있는데요.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가 좋더랍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적 관계는 어떤 사람이 고통받는다면 어떻게든 도와주려 하고,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나누는 관계를 의미하는데요. 개인주의와는 반대라고 볼 수 있죠. 시대에 따라 우리가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사회의 기본적인 기준, 뭐랄까 도덕의 의미가 변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백종화 우리라는 개념이 희미해진 것도 있어요. 5060세대는 ‘우리’가 익숙해서 ‘우리 안에서 내가 이 정도는 해야 돼’라는 생각이 있거든요. 그런데 2030세대는 우리 가족, 우리 회사가 아니라 나의 가족, 나의 회사라는 개념이라 충돌이 생기는 것 같아요. 진행자 요즘에는 많은 분들이 책·강연·영상 등으로 정보만 얻는 것이 아니라 고민에 대한 답도 찾고 위로도 받는 것 같아요. 비대면으로 어른을 찾는 셈이랄까요? 강용수 사실 제 나이쯤 되면 주변에서 어른을 찾는 것도, 어른이 되는 것도 어려운 것 같습니다. 듣는 사람이 상대를 존경하는 마음이 없으면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어른이라면 쓴소리도 좀 해야 하죠. 다만 남을 가르치려 하고 “내가 겪어봤는데 말이야”라며 나서는 게 아니라, 타인이 어른으로서 인정해야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백종화 요즘 세대는 유튜브로 모든 걸 배우잖아요. 어른한테 고민을 공유할 필요가 없어져버린 거예요. 지식과 경험이 온라인에 다 있으니까요. 세대 이슈가 아니라 이제는 시대 이슈라고 봐야 해요. 모두가 똑똑해진 시대라 오히려 젊은 꼰대가 훨씬 많아요. “내가 아는 게 많으니까 내가 맞는데 왜 엉뚱한 소리 하세요?”라고 주장하는 거예요. 아는 것과 행동하는 건 다른 건데 말이죠. 그런데 SNS에서 보는 것들은 다 결과거든요. 성공한 모습만 보는 거잖아요. 최영희 옛날에는 사회적으로나 세계적으로 우리가 어른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자세히 보면 뭐 단점도 있고 그래요. 요즘은 인터넷으로 개인의 사생활이 실시간으로 비치잖아요. 그러니 소위 신화적인 존재가 나오기 어렵죠. 이걸 다시 말한다면, 그렇게 완벽한 인간이 어디 있겠느냐는 거예요. 어른을 정의할 때 아주 완벽한 기준을 들이대는 접근 방법은 옳지 않은 것 같아요. 강용수 공감합니다. 완벽한 어른은 없어요. 고통과 실패를 보여주는 게 어른인 것 같아요. 무언가를 성취하려는데 잘 안 되잖아요? 그런 경험이 오히려 성숙해지는 기회 같거든요. 쇼펜하우어 역시 40대에 많은 실패를 경험했는데요. 외부에서 깨져보면서 남들의 시선과 평가를 벗어나 온전한 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실패를 거쳐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과정을 보는 게 중요한데, 요즘은 결과로만 평가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최영희 멀리서 대단한 노력을 하는 사람을 찾아내 따르려고 할 게 아니라, 매일 만나서 부딪히고 이야기하는 사람을 찾는 게 좋죠. 모방할 수 있는 모델이 가까이 있으면 학습이 쉬워요. 누군가를 흉내 내겠다는 게 내가 변화하겠다는 강력한 동기가 되거든요. 거창하진 않아도 나름의 목표를 추구하는 사람, 인간다움이 있는 사람을 어른으로 삼아야 하는 거죠. 삶은 고통이잖아요. 예상치 못한 좌절들이 올 때 넘어졌다가도 잘 일어나는 것, 즉 회복 탄력성이 좋을수록 건강한 어른이라고 봅니다. 진행자 결과 중심적인 사회이다 보니 주변에 있는 어른들을 미처 보지 못하는 것 같네요. 그럼에도 세대를 불문하고 우리는 어른을 필요로 하는 것 같아요. 설문조사에서도 ‘가까이 소통하고 대화할 수 있는 어른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83.8%가 그렇다고 했거든요. 백종화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다만 과정이 중요해요. 어려움도, 고난도, 극복하는 것도 볼 수 있거든요. 어른이라면 그런 걸 보여주는 사람이면서, 다른 사람의 과정을 도와주는 사람이기도 하죠. 그러니까 어른은 나이와 상관없이 그에게 배울 점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해요. 좋은 어른, 나쁜 어른이 아니라 나와 맞는 어른을 찾아야 하는 거죠. 최영희 그리스 신전에도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는 말이 적혀 있다고 해요. 세대 차이는 계속됐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거예요. 요즘에는 20대도 10대를 이해 못 해요. 그러니 내가 옳고 내가 항상 중심이라는 생각을 깨야 합니다. 그냥 다른 거거든요. 백종화 맞아요. 나와 상대가 다르다는 걸 인정하려면 먼저 나를 이해해야 해요. 그래서 나다움이 먼저인 거죠. 리더십의 핵심 역시 ‘자기 인식’(Self Awareness)입니다. 강용수 나를 안다는 것은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차이를 알고 인정하는 과정인데요. 쇼펜하우어는 그것을 개성이라고 봅니다. 부·명예와 같은 외부의 나다움이 있고, 건강·성격 같은 내부의 나다움이 있다고 하는데요. 자기를 책임지기 위해서는 내가 누구인지 인식하는 게 필요하죠. 그걸 알아가는 노력이 어른이 되는 과정 아닐까 싶습니다. 진행자 어른이 되는 건 결국 ‘나 자신을 알아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거네요. 다음으로는 나와 상대가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거고요. 그렇다면 어른이 되는 걸 훈련할 수 있을까요? 백종화 조직에서의 어른을 리더라고 본다면 리더는 태어나는 걸까요, 만들어지는 걸까요? 과거에는 태어났습니다. 영향력 있는 가문에서 태어나 전통적인 교육을 받아 리더로 성장하는 거라, 그 말이 맞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부모, 팀장, 매니저, 선배 어떤 역할이든 리더에 포함됩니다. 태어난 대로 사는 게 아니라 훈련으로 더 다양한 영향력을 키울 필요가 있죠. 강용수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면 남과의 차이도 알게 되죠.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인간은 의식하든 하지 않든 우주에서 가장 개성이 도드라진 존재라고 해요. 내가 개성적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의욕의 차원으로 넘어가면 나와 타인은 다르다는 걸 알게 되는 거예요. 그가 고독을 통해 나 자신을 알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유죠. 쇼펜하우어는 시행착오와 실패를 통한 경험과 학습으로 새롭게 획득되는 성격이 있다고 봐요. 물론 유전적인 성격은 기본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전제가 있기에, 새로운 성격은 아주 어렵게 얻어진다고 합니다.(웃음)그래서 글쓰기, 책읽기 등을 좋은 습관으로 삼아야 한다고 하죠. 최영희 프로이트는 우리 인간의 모든 선택이나 행동의 결정이 무의식 안에 있다고 했어요. 그러니 무의식의 영역을 찾아내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죠. 그런데 깨달았다고 쉽게 변하지는 않아요.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또 다릅니다. 매일 다니는 산책길을 생각해볼까요. 기존에 있는 길을 걸어요. 그런데 지름길을 내려면 풀숲을 헤치며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 하죠. 노력을 해야 한다는 의미인데, 요즘 효율적인 방법이 많이 개발되어 있으니 얼마든지 훈련할 수 있습니다. 백종화 누군가에게 영향을 준다는 건 결국 행동이거든요. 행동의 시작은 성격이라고 봅니다. 태어날 때 가지고 있던 기질과 후천적으로 받은 영향으로 생긴 성격인데요. 이 과정에서 반복되는 행동이 있고, 그것에 익숙해져요. 이를테면 평생 오른손으로 젓가락질하는 것과 같아요. 왼손으로 젓가락질하려면 어색하죠. 그런데 평생 하던 행동과 반대되는 어색한 행동을 훈련할 때부터 영향력이 달라집니다. 최영희 정신과 진단에 ‘성격장애’라는 게 있어요. 20여 년 전에는 치료가 안 된다고 했어요. 오늘날 보면 말이 안 되는 거죠. 지금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방법이 많습니다. 스키마 치료도 그런 맥락인데요. 스키마는 자극과 반응 세트의 총합입니다. 백 코치님이 말한 익숙한 행동이라는 게 스키마 이론으로 보면 자극이 왔을 때 내가 하는 반응이 자동화된 거예요. 그대로 살아도 되는데, 그게 자신에게 고통을 주거나 타인과의 관계에 문제를 일으킨다면 나를 위해서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명상 등으로 내 안에 있는 걸 끌어내는 훈련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고 사랑하는 능력을 훈련할 수 있어요. 내 성격은 나 외엔 절대 바꿀 수 없습니다. 백종화 어른이 된다는 것에 정답은 없는 것 같아요. 정답을 고민하는 사이에 시대도 상황도 바뀔 거예요. 결국 기존에 하던 익숙한 행동을 그대로 하게 됩니다. 이전과 다른 행동을 해야 변화가 있잖아요. 어색하고 불편하고 실패하겠지만, 그조차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끊임없이 훈련하다 보면 어른이 되어가지 않을까요?
- 2024-04-11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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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드뉴스] 위로가 되는 어른의 글
- 김창완 ○○○님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셨는데…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다만 외로움에 빠지지 마시고 외로움이 세상을 보는 창문이라고 생각하세요. 사람은 누구나 외롭습니다. 그걸 어떤 사람은 감옥으로 여기고 어떤 사람은 손을 내밀 문으로 삼는 것입니다. 우선은 님의 외로움을 껴안으세요. - SBS 파워FM,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 사연 답장 중 나태주 다시 중학생에게 사람이 길을 가다 보면 버스를 놓칠 때가 있단다 잘못한 일도 없이 버스를 놓치듯 힘든 일 당할 때가 있단다 그럴 때마다 아이야 잊지 말아라 다음에도 버스는 오고 그다음에 오는 버스가 때로는 더 좋을 수도 있다는 것을! 어떠한 경우라도 아이야 너 자신을 사랑하고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너 자신임을 잊지 말아라. - 《마음이 살짝 기운다》 중 밀라논나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저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시작할까? 말까? 나 또한 내 앞에 놓인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숱한 고민을 했고 그때마다 되도록 단순하게 생각했다. “재밌으면 해보면 되지!” 모든 어른과 아이가 자기 인생에 마땅히 용기를 내면 좋겠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주저 말고 시작해 보라. 그것에 대한 결과와 책임은 전적으로 내가 짊어지면 된다. -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중 김창옥 내게 “괜찮다.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엄마 아빠가 없었다면 그냥 내게 그런 부모가 없었다는 사실을 인정해버리세요. 그리고 상처 난 마음이 낫고 싶으면, 나 자신을 터치해주세요. 사람은 기억을 머리에만 남기는 게 아니라 온몸에 남긴다고 해요. 그래서 내가 나를 안아주는 건 나의 지워지지 않은 기억을 안아주는 것과 유사하대요. 스스로를 두 팔로 안고 토닥토닥해주세요. - 《지금까지 산 것처럼 앞으로도 살 건가요?》 중
- 2024-04-08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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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나태주가 말하는 어른, “잘 마른 잎 태우면 고수운 냄새 나”
- 이견이 없었다. 지금 이 시대를 대표하는 어른은 누구일지 고민했던 편집회의에서 기자들은 나태주 시인을 꼽았다. 만장일치였다. 대중도 마찬가지다. MZ세대를 포함한 모든 세대에게 그는 인기를 넘어 추앙에 가까운 현상의 주인공이 됐다. 하지만 그는 이제 막 낯익어진 마이너한 시인일 뿐이라고 말한다. “흔히 말하는 팬덤 같은 것이죠. 날씨도 팬덤이 되고 계절도 팬덤이 돼요. 눈과 비가 고르지 않게 한꺼번에 내리는 것처럼 사람들이 몰리는 것뿐이죠. 낯익고 익숙한 것을 찾는 거예요.”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얘기다. 최근 출간된 그의 신간 ‘좋아하기 때문에’는 발매 2주 만에 1만 부나 팔렸다. 요즘같이 책을 멀리하는 시대에 꿈같은 이야기다. 사람들이 단지 친숙함에 습관처럼 살 수 있는 숫자가 아니다. 그는 책을 통해 “시인은 세상 사람들의 감정을 돌보는 서비스맨”이라고 말했는데, 아마 그것이 통했던 것 같다. 마치 ‘풀꽃’의 한 구절처럼 나를 자세히 그리고 오래 봐주길 기대했기 때문일까. 책을 내놓을수록 20~30대 사이에서 강한 소구력을 발휘했다. 그 소감의 물결에선 희망과 위로, 치유 같은 단어들이 떠다녔다. 타인 감수성과 꼰대 이런 공감대 속에는 어른다움이 있다. 젊은 세대가 ‘꼰대’에 저항하는 이유를 그는 어른의 이해와 변화가 없어서라고 말했다. 그는 이해의 기준으로 ‘타인인지 감수성’이라는 표현을 썼다. ‘미투 현상’이 사회를 뒤흔들 때 익숙해진 ‘성인지 감수성’에서 온 말이다. 이제 세상은 내 입장만 고집하며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 타인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주변에선 ‘타인 감수성’이란 표현을 쓰기도 한다니까, 시인은 더 좋은 표현이라며 그 말을 되뇌었다. “세상은 나 하나와 나머지의 너로 나뉘어요.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아요. 나를 빼면 모두 ‘너’이기 때문에, 너를 감지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자꾸 나 때만 얘기하려 들고, 네 때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요. 네 때는 그렇구나, 그거 참 힘들겠다 하고 관심 갖고 보살필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한 거죠.” 그는 책 속에서도 꼰대를 상징하는 신조어 ‘라떼’를 지적했다. 어른과 젊은이 쌍방이 조금씩 물러서서 상대를 이해하기를 기대했다. 어른 쪽에서 권위를 내세우며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젊은이도 변화할 것이라고 믿었다. 소위 ‘인기 작가’ 반열에 오른 만큼 다양한 약속으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지만, 가장 즐거운 일정이 있다. 젊은 세대와 만나는 강연회다. 특히 아이들이 있는 곳이라면 거절하는 법이 없다. “아이들을 만나서 어려운 점, 괴로운 점, 그늘진 점을 봐요. 겉으로는 멀쩡하고 좋아 보이는 청춘들도 소통을 해보면 문제가 있어요. 결혼이 싫은 여성, 학교가 힘든 선생님, 취업이 힘든 청년도 있어요. 그런 사람들의 그런 이야기를 듣고, 도움이 될 수 있는 말을 해주려 노력하고 있죠. 아이들이나 젊은 사람들을 나무라지 않고, 기다려주고, 도움 주는 말을 했으면 좋겠어요. 예전에는 낳아주고 길러주는 것만으로 부모 노릇이 끝났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져주고, 참아주고, 기다려주는 것이 필요해요. 어른이 됐다는 건 졌다는 것이니까요.” 젊은 세대가 갖는 아픔에도 주목했다. 학자금 대출 등으로 ‘젊은 빚쟁이’가 되고, 구직난에 직장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지만, 망가진 경력은 쉽게 되돌릴 수 없어 ‘손닿는 직장’을 선택하기도 어려운 고충에 대해서다. 그는 “가서 막일이라도 해라”가 어른 눈에는 맞는 말 같지만, 쉽게 하지 못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심정도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달라진 세상에 대해 어른들이 더 주목해주길, 그리고 스스로도 변화하길 당부했다. “우리 사회는 이제 유교 사회도 농본주의 사회도 아니에요. 편리한 것, 새것을 좇는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이미 젊은 사람들은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데 무조건 어른을 따르라 요구할 수 없어요. 또 같은 자리에 앉아 있어도 떠도는 (디지털) 유목 사회가 됐어요. 내가 만든 우유 한잔도 휴대폰을 뒤져보지 않으면 팔지 못하는 세상입니다. 모두가 노마드처럼 살고 있는데 과거의 잣대를 들이밀 수 없죠.” 바뀐 세상에 맞춰 그 스스로도 변화를 택했다. 그는 “나 역시 생각을 고쳐먹었어요. 한창 일했던 시기보다 정년퇴직 후 내 생활은 더 많이 바뀌었죠”라고 말했다. 모두 비워내야 좋은 어른 최근에는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고민하는 어른이 많아졌다. 인문학 강좌의 주제로도 인기가 많다. 세대 간 갈등이 부각되면서 스스로를 고민하는 기성세대가 늘고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나태주 시인은 이러한 모습을 ‘굉장히 좋은 상태’라고 이야기했다. “젊은 시절은 스스로를 채워야 하는 기간이에요. 이기적인 삶이 되죠. 가지고 싶은 것도 많아요. 돈도 명예도 지위도 얻으려면 채우는 데 집중해야 해요.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달라요. 이타적인 삶의 태도를 취해야 해요. 공부도 마찬가지예요. 젊을 때는 남을 이기기 위한 공부를 하지만, 나이 들어서는 상 타는 것도 돈 버는 것도 아닌 내 내면의 기쁨을 위해서 공부하는 겁니다. 철이 드는 과정이죠. 이것을 위해서는 젊을 때 스스로를 꽉 채워놓을 필요도 있어요.” 그는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심리적 안정을 통정성에 빗대 이야기했다. 살아온 삶 전체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있는 태도를 말한다. “그러면 스스로의 잘못도 인정할 수 있게 돼요. ‘그 대목은 참 미안하게 됐다. 어쩔 수 없었고, 지금 같으면 안 할 텐데 그때는 내가 그랬다’고요. 어른이라면 자신을 속이거나 아니라고 부정하지 않고, 자기 잘못까지 인정할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해요. 우리 사회나 국가 운영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젊을 때 맘껏 채우고 나면 이후에는 비우는 과정이 찾아온다. “나이 먹은 사람들은 생각을 해야 돼요. 어떻게 비우고 갈 것인지. 때려 부숴서 비우고 갈까, 곱게 정리해서 도움이 되게 할까 말이죠. 지금 운영하는 풀꽃문학관도 나를 비우는 작업이에요. 그간 모아놓은 것들을 쓰레기가 아닌 보물이 되도록 정리하고 있어요. 이것들을 욕심내 집에 데려가는 순간 쓰레기가 될 거예요.” 그렇게 잘 비우고 간 인물 중 하나로 나태주 시인은 이어령 선생을 꼽았다. 청년 시절 누구보다 채우기에 열중했고, 말년에는 자기를 완전히 비워놓은 ‘선비’ 같았다고 평가했다. “옛날 교사 시절, 태풍이 휩쓸고 간 운동장에 떨어진 나뭇잎들을 모아다가 태운 적이 있어요. 아직 푸르름이 남아 있는. 그 잎들을 태우면 아주 역겨워요. 아직 살아갈 수 있는 여력이 남아 그런 것 같아요. 그에 반해 가을이 되어 탈색되고 말라 떨어진 낙엽들을 태우면 냄새가 고숩고, 가볍게 훨훨 타요. 모두 비워냈기 때문이고, 사람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해요.” 다가오는 선거로 인해 정치적 성향이나 세대, 지역 사이의 갈등이 점점 커지는 요즘이다. 서로가 상대의 생채기를 기대하며 날선 감정을 말과 글에 담아 던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는 성숙한 어른이라면 그럴 이유가 없다고 단언한다. “산 정상에 올라가면 사방팔방이 열려 동서남북이 다 보여요. 산꼭대기에 올라간 사람이 왜 동쪽 사람, 서쪽 사람, 남쪽 사람, 북쪽 사람에게 욕지거리를 내뱉나요. 다 동지고 친구죠. 인생의 산꼭대기에 올라가면 죽일 사람도 살릴 사람도 없어요. 성인들처럼 훌륭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해요.” BTS와 이생망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도 고민이다. 앞길이 창창한 청년들은 가야 할 길이 멀어 고민이지만, 중년이 넘으면 얼마 남지 않아 마음이 급해진다. 나태주 시인은 청년과 중년 혹은 노년은 접근이 달라야 한다고 조언한다. “청년들은 미래를 위해 10년짜리 계획이 필요하지만, 중년은 5년 계획을 세우고, 그 다음 5년을 준비하는 방식으로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청년은 차근차근 꿈을 이뤄나갈 수 있도록 충분한 기간을 갖고 준비해야 하고, 중년은 꼭 그러지 않아도 되니까요.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방식도 달라져요. 젊은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내가 잘하는 일만 하려다가는 더 잘하는 사람을 만나면 상처를 입어요. 좋아하는 일은 노력하면 잘할 수 있지만 잘하는 일이 좋아지긴 어렵죠. 길게 보면 좋아하는 일을 선택해야 해요. 그래야 중도에 포기하거나 지치지 않고 성공할 수 있어요. 하지만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반대예요. 잘하는 일을 선택해야 남은 인생 동안 성공을 맛볼 수 있을 테니까요.” 늘 말과 글에 대한 탐구를 멈추지 않는 그는 요즘 말에도 관심이 많다. 신조어와 노래 가사 등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BTS의 노랫말을 모티브로 한 노래산문집 ‘작은 것들을 위한 시’를 출간하기도 했다. 이야기 나누는 동안 요즘 말이 툭툭 튀어나왔다. 젊은 엄마들이 쓰는 ‘육퇴’(육아퇴근)가 그랬고, ‘독박육아’나 ‘라떼’(꼰대를 상징하는 말)가 그랬다. 그는 ‘이생망’을 지목했다. ‘이번 생은 망했으니 돌이킬 수 없다’는 뜻으로, 젊은이들이 자조적으로 하는 줄임말이다. “요즘 말 중에 가장 마음 아픈 말이에요. 절망적이죠. 왜 망했다고 생각해요? 이번 인생이 망했으면 다음 인생도 망한 인생이 돼요. 좀 부족해도 모든 사람의 인생은 아름답고, 포기할 수 없어요. 모두 성과에 급급하니 나오는 말이에요. 사회적으로 알려진 사람들은 써서는 안 되는 말입니다. 청년들에게 많은 영향을 줘요.” 그는 젊은 세대에 대한 당부를 이어갔다. 많은 장소에서 만난 힘들고 지친 청년들이 잊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청년들에게는 너무 큰 꿈에 매이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커진 꿈을 원해요. 마치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악마와 계약을 맺듯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바치려고 하죠. 하지만 집채만 한 큰 것을 바라다가 안 되면 부숴버리고 싶고, 포기하고 싶고, 주저앉고 싶어져요. 그래서 이룰 수 있는 꿈을 꾸고, 그것을 성취하는 아름다움을 느껴보길 권하고 싶어요.”
- 2024-04-05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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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60세대 “존경 못받아”ㆍ자녀세대 67% "부모 존경해" 시각차
- [창간 9주년 기념 특집 기획] 우리 시대, 어른을 찾아서 ‘세대 간 존경-존중에 대한 인식조사’(2024) 불확실한 미래에 앞날을 의논하고 갈피를 잡아줄 어른은 점점 사라지는 듯하다. 우왕좌왕하던 청년기를 지나 어느덧 한 사회의 어른 위치에 놓인 5060세대. 나는 어떤 어른인지, 왜 어른이 돼야 하는지,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있을지… 고민이 뒤따르는 시기다. 이에 본지는 월간지 창간 9주년을 맞아 마크로밀 엠브레인에 의뢰, ‘세대 간 존경-존중에 대한 인식조사’(△전국 2030·5060세대 500명 △2024년 2월 29일~3월 4일 △표본 오차 ±4.4% △신뢰수준 95%)를 실시했다. 해당 결과와 2014년 진행된 동명의 조사 데이터를 비교·분석해 현대 사회 어른의 시대상과 세대 간 존경에 대한 인식을 조명해본다. 5060세대는 스스로 2030세대에게 존경받는다고 느낄까? ‘세대 간 존경-존중에 대한 인식조사’의 2014년 결과에서는 5060세대의 41.6%가 ‘존경한다’고 인정했는데, 2024년에는 24.4%만이 동일한 반응을 보였다. 수치로는 17.2%p 하락했다. 더군다나 항목 중 ‘매우 존경한다’를 택한 5060세대는 아무도 없었다(0%). 한편 2024년 세부 조사 결과를 보면(2014년에는 5060세대만 진행) 2030세대 3명 중 1명 이상(37.6%)이 ‘5060세대를 존경한다’고 답했다. 특히 조사 대상 중 가장 젊은 세대인 20대는 절반가량(44.3%)이 같은 의견을 나타냈다. 즉, 요즘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의 생각보다는 스스로 ‘존경받지 못 한다’고 느끼는 셈이다. 이러한 결과를 미루어볼 때 현 시대의 5060세대가 다소 위축되고 의기소침한 상태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 같은 현상은 가정에서도 나타났다. 부모세대는 40.6%가 ‘(자신을)자녀에게 존경받을 만한 어른’이라고 답했다. 자녀세대는 그보다 많은 66.8%가 ‘자신의 부모를 존경받을 만한 어른’으로 생각했다. 특히 ‘매우 그렇다’(매우 존경한다)를 택한 2030세대는 38%로 전체 중 비율이 가장 높았다. 같은 항목을 택한 5060세대는 4.1%로, 수치상 약 10배의 차이를 보였다. 박민선 사회복지학 박사(연령통합고령사회연구소)는 “생애주기로 볼 때 50~60대는 퇴직 등으로 사회적 역할이 전성기에 이르렀다가 내려오는 시점이다. 노화가 시작되고 체력도 떨어지며 건강 문제도 생긴다. 개인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최근 미디어를 통해 지속적으로 고지식하고 고리타분한 ‘꼰대’의 이미지가 부각하며 사회적으로 저평가된 부분이 적지 않다. 반면 청년들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위로하고, 격려하는 분위기다. 물론 젊은 세대가 처한 어려움도 크지만, 계속되는 사회의 냉대 속에서 기성세대는 갈 곳을 잃고 의기소침해진 듯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조심스럽지만, 사회에서 위축된 경험이 가정으로도 이어졌다고 본다. 가령 요즘 유행하는 ‘금수저 흙수저’ 같은 이야기도 젊은 세대는 농담처럼 가볍게 넘기기도 하지만, 부모세대가 느끼는 무게는 다르다. 자신의 과오나 책임으로 여기기도 하며, 그러면서 가정에서도 위축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2024-04-03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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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거리의 미관과 국민 보건 따위를 위해 길을 따라 줄지어 심은 나무. 4.압력으로 좁은 구멍을 통해 물을 위로 세차게 내뿜거나 뿌리도록 만든 설비. 흔히 공원이나 광장 한가운데 설치한다. 6.음식물이 뱃속에서 발효되는 과정에서 생겨 항문으로 나오는 구린내 나는 무색 기체. 10.과거나 미래로 시간 여행을 가능하게 한다는 공상 기계. 11.소나 돼지의 소장을 가리키는 말. 12.우리나라 대중가요의 하나. 정형화된 리듬에 일본 엔카에서 들어온 음계를 사용해 구성지고 애상적인 느낌을 준다. 14.조선 고종의 비. 성은 민(閔). 대원군의 집정을 물리치고 고종의 친정(親政)을 실현했으며 을미사변 때 피살됐다. 16.아는 것 없이 머리가 텅 빈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 17.기분 전환을 위해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일. 19.단단하고 독특한 향이 있으며, 시원한 맛이 있어 열매의 즙액은 뜨거운 물에 덴 데에 효과가 있다. 반찬거리로 쓰며, 김치를 담그기도 한다. 1.음식에 대해 특별한 기호를 가진 사람. 또는 좋은 음식을 찾아 먹는 것을 즐기는 사람. 3.재물이 계속 나오는 보물단지. 그 안에 온갖 물건을 담아두면 끝없이 새끼를 쳐 그 내용물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설화상의 단지를 이른다. 5.귓불에 다는 장식품. 7.물건을 넣어 들거나 메고 다닐 수 있게 만든 용구. 가죽이나 천, 비닐 따위로 만든다. 8.교제를 위해 만나는 일. 또는 그렇게 하기로 한 약속. 9.양복을 입을 때 와이셔츠 깃 밑으로 둘러 매듭을 지어 앞으로 늘어뜨리거나 나비 모양으로 매듭을 만드는 천. 11.고불고불하게 말려 있는 머리털. 13.중세 영국의 전설상 영웅. 포악한 관리나 욕심 많은 귀족, 타락한 성직자들의 재산을 빼앗고 응징해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자로, 당시의 문학 소재로 인기를 끌었다. 15.갑자기 성장하면서 생기는 통증. 양쪽 무릎이나 발목, 허벅지나 정강이, 팔 따위에 생긴다. 4~10세 사이에 많이 나타나고 1~2년 지나면 대부분 통증이 사라진다. 18.방송국에서 일정한 시간 안에 음악·드라마·뉴스·강연 따위의 음성을 전파로 방송해 수신 장치를 갖추고 있는 청취자들에게 듣게 하는 일. 또는 그런 방송 내용. *퍼즐을 완성하고 사진을 찍어 이미지 파일(jpg, jpeg, png)를 첨부하거나, 답안을 작성해 매 월 15일까지 담당자 이메일(hjmoon@etoday.co.kr)로 보내주세요. 전송 시 응모자의 성함, 주소, 우편번호, 연락처를 꼭 기재해야 합니다. 사진이 흐리거나 글씨가 불분명할 경우 선정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3개월 이내 중복 당첨은 어려울 수 있는 점 참고 부탁 드립니다.
- 2024-03-07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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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자리와 함께 치유의 기적 얻어” 산에서 만난 제2의 인생
-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은 서울시 보람일자리 사업을 통해 인생의 재도약을 꿈꾸는 4050 세대를 응원하기 위해, ‘모두 위한 내 꿈, 다시 뛰는 4050’ 캠페인을 펼칩니다. 본지는 서울시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함께한 보람일자리 사업을 통해 사회 곳곳에서 공공에 기여하고 있는 중장년들을 소개합니다. 우연히 찾은 산에서 병마를 씻어냈다. 그렇게 산과 사랑에 빠졌다. 오세옥 씨의 이야기다. 한동안 힐링을 준 산에서 노년의 꿈까지 만났다. 안전산행지원단에게 받은 도움을 돌려주기 위해 4개월 넘게 구애한 오 씨. 그는 이제 산으로 출근한다. 쌀쌀한 기운이 감도는 한 해의 끝자락. 투박한 등산화가 무거워 보일 정도로 가녀린 여성이 씩씩하게 북한산국립공원 수유분소를 향해 걸어 내려왔다. 작은 체구에 속아서는 안 된다. 안전산행지원단 내 ‘끈질긴 집념’으로 유명한 오세옥 씨다. 수혜자로 도움을 받다 참여자가 된 그를 두고 서울시50플러스재단 북부캠퍼스 안전산행지원단 담당자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추가 합격 없냐는 전화를 몇 번이나 받았는지 몰라요. 저를 참 곤란하게 한 분이죠!” 예비 4번의 무한도전 전업주부로 오랜 시간 살림을 도맡아온 오세옥 씨는 한때 2개월가량 병원 신세를 질 정도로 몸이 좋지 않았다. 심신이 피폐해진 그에게 위로가 된 건 다름 아닌 산. 등산만 하면 생기가 돌았고, 자연스럽게 병원을 드나드는 횟수도 줄었다. 그 후로 오 씨는 산에 매료됐다. “아프지 않을 뿐만 아니라 활기가 넘치더라고요. 기분이 좋으니까 가족들한테도 잘하게 되고요. 좋은 이유가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산이 인생을 치유해주는 것 같은 느낌까지 받았어요.” 오세옥 씨는 집에서 가까운 도봉산을 매일같이 다녔다. 신중년 경력형 일자리 사업 참여로 도봉산 환경을 보호하는 봉사활동도 했다. 안전산행지원단을 만난 것도 도봉산에서다. 환경보호 활동, 안전설비 점검 등을 주로 해오던 안전산행지원단은 2023년부터 탐방객에게 더욱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오 씨도 그렇게 도움을 받았다. “여성, 노인, 외국인 등 초보 탐방객에게 하는 탐방로 안내 등 여러 지원이 인상적이었어요. 스틱 사용법, 등산화 매듭법도 배우고 나니까 정말 좋더라고요. 산을 그렇게 많이 다녔어도 다 제 맘대로였거든요. 제대로 알고 나니 필요성을 더 느꼈어요.” 팀으로 움직이며 체계적으로 활동하는 안전산행지원단을 접할 기회가 늘면서 오 씨 마음에는 새로운 꿈이 자리 잡았다. 도움을 받는 수혜자에서 도움을 주는 참여자가 되고 싶다는 바람이다. “안전산행지원단 이미지가 좋았어요. 서울시50플러스재단의 보수교육, 전체회의 등 관리와 활동도 마음에 들어서 지원하게 됐죠. 결과는… 예비 4번이었어요.” 활동하지 못하는 동안 오세옥 씨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틈만 나면 담당자에게 연락해 추가로 들어갈 자리가 있는지 물었다. 장장 4개월여 동안 그렇게 집념을 보였다. 산 애호가에서 산 전도사로 “예비 4번이면 기회가 안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어요. 인기가 높은 편이라서요. 그런데 마침 자리가 난 거예요.” 서울시50플러스재단 안전산행지원단 담당자의 말이다. 오세옥 씨는 활동을 시작한 날짜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9월 15일부터예요. 4개월을 기다린 끝에 추가 합격했어요. 활동한 지 얼마 안 돼 아직 낯설지만 팀원들 모두 좋아서 재밌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안전산행지원단은 북한산국립공원 6개 분소(산성, 구기, 정릉, 수유, 우이, 도봉)에 40명이 배치돼 활동하고 있다. 오 씨는 집 인근 도봉, 우이분소에서 다소 먼 수유분소에 배정됐지만 마냥 즐겁다고 했다. 참여자로 활동하는 사이 재밌는 경험도 했다. “한 탐방객이 산행 도중 빈병을 길에 버리고는 발로 차 숲속에 숨기는 걸 보고 제가 얼른 주웠어요. 그랬더니 ‘왜 주우세요?’하고 묻더라고요. 안전산행지원단 참여자인 걸 알리고 주의를 주니까 그제야 무안해하며 빈 병을 배낭 속에 넣더군요. 이제 그분은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지 않겠죠. 그렇게 생각하니 참 보람 있는 것 같아요.” 오세옥 씨는 산 전도사로 거듭나고 있다. 규칙적인 안전산행지원단 활동으로 힐링을 얻을수록 더욱더 강력하게 산을 권한다고 했다. “봉사하러 왔는데 사실 얻어 가는 게 더 많아요. 돈으로 따질 수 없을 정도로 좋아요.” 오 씨의 안전산행지원단 사랑은 계속될 예정이다. 또 한 번의 지원을 예고하며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이제 예비 번호는 받고 싶지 않아요. 바로 합격하겠습니다!”
- 2024-02-19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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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사대교 건너 신안 가거들랑… 1004개 섬의 다른 이야기
- 겨울에 떠나는 섬 여행이다. 여름 무렵 사람이 몰려드는 섬과 달리 겨울 섬에서는 세상의 소음에서 해방되어 더 많은 자유와 더 넓은 시야를 얻는다. 신안은 섬들의 천국이라 불릴 만큼 무수한 섬과 바다로 둘러싸였다. 도심에서 뚝 떨어진 신안 섬마을은 고즈넉하다. 시간이 정지된 듯하지만 막상 들어서면 자연과 함께 잘 가꾸어진 섬의 다채로운 색채가 생동감으로 다가온다. 무려 1004개의 섬이 존재하는 신안이다. 밀물과 썰물과는 상관없이 흙과 식물이 물 위로 존재하는 것을 기준으로 한다는데, 신안군은 1004라는 이름으로 섬을 알렸다. 실제로는 72개의 유인도와 953개의 무인도가 있다고 전한다. 신안섬 가는 길은 늘씬하게 긴 천사(1004)대교가 아득할 뻔한 시간을 단축시켰다. 이미 도시화된 큰 섬과 달리 넓지 않은 각각의 작은 섬이 가까이 연결되어 있어 유연하게 코스를 이어갈 수 있는 자유로움 또한 좋다. 목포에서 신안 압해도를 잇는 압해대교를 건너면 신안갯벌 세계유산 등재라는 묵직한 석재 안내판이 맞아준다. 길 양옆의 바다는 드넓은 갯벌을 이룬다. 습지보호지역으로 보호받고 있는, 끝없이 펼쳐진 갯벌을 내려다보는 겨울 하늘이 푸르다. 압해읍의 노을해변 쪽으로 가다 보면 애기동백으로 뒤덮인 1004섬 분재정원과 저녁노을미술관이 나타난다. 이곳을 둘러보고 해변으로 잠깐 내려가 보자. 신안갯벌 습지보호지역으로서 신안의 해상 영웅 수달장군상 저편으로 펼쳐진 드넓은 갯벌을 볼 수 있다. 이곳은 갯벌낙지 맨손어업 전통 기술과 문화 계승을 위한 국가 중요어업유산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압해도에서 천사대교가 연결해준 섬은 암태도와 팔금도, 안좌도와 자은도, 그리고 수많은 섬이 바다 위로 봉긋봉긋 평화롭게 떠 있다. 다리를 건너면 가장 먼저 암태도가 나타난다. 곧바로 일제강점기에 일어난 소작인 항쟁 기념탑이 있으니 잠깐 들러보자.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비호를 받던 땅 주인들에게 소작인들이 맞서 승리한 역사를 보여주는 곳이다. 무엇보다 기동삼거리 동백꽃 파마의 노부부 벽화는 지나던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얼핏 볼 때는 파마머리를 한 노부부인데, 다가가 보면 담벼락 안에서 자라는 동백나무가 절묘하게 머리 위에 얹혀 있는 모양이다. 재미있고 정겨운 벽화 덕에 천사대교 개통과 함께 암태도 최고의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평생을 사이좋게 잘 살아온 노부부의 얼굴이다. 인자하고 편안한 모습이 서로 닮아 사람들의 마음을 더 끌었을 것 같다. 자은도, 무한의 다리와 1004뮤지엄파크의 해변 암태도에서 은암대교를 거치면 자은도다. 해수욕장이 많은 자은도에는 백길해변과 분계해변의 노송 군락과 백사장이 눈부시고, 일몰로 이름난 둔장해변도 있다. 섬 북쪽에 위치한 둔장해변의 볼거리는 목교인 ‘무한의 다리’다. 신안섬을 상징하는 의미로 다리 길이도 1004m다. 다리 입구 안내석에 ‘Ponte dell Infinito’라 새겨져 있듯이 섬의 무한한 가치와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다는 이름이다. 스위스 출신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와 박은선 작가의 협업으로 만들어졌다. 다리 위를 걷는 이를 양옆에서 둥글게 감싸주는 듯한 곡선의 난간이 독특하다. 구리도와 할미도까지 천천히 걸어도 20분 남짓이어서 바다 위를 걷는 산책 코스로 적당하다. 물이 제법 빠져나간 다리를 걸으면 암석으로 이루어진 구리도가 눈앞에 있고, 금실 좋은 노부부의 전설이 담긴 할미도로 이어진다. 고기잡이 나간 할아버지가 풍랑을 만나 돌아오지 못하자 섬에 나가 애타게 기다리던 할머니의 그리움은 돌로 변했다는, 어디선가 들어봄 직한 이야기처럼 바다를 향한 할미바위의 뒷모습이 아릿하다. 이번엔 자은도 서쪽 해변에 볼거리 푸짐한 ‘1004뮤지엄파크’가 기다린다. 천사대교에서 시작한다면 자동차로 30분 정도 거리다. 하나의 섬에 하나의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건립하는 ‘1도(島) 1뮤지엄’이라는 신안군의 야심 찬 프로젝트를 여기서 제대로 볼 수 있다. 청정 자연인 이곳에 7000여 점의 조개껍데기와 표본을 전시한 세계조개박물관, 신비롭고 아기자기한 수석미술관과 수석정원, 사계절 각기 다른 꽃을 피우는 새우란전시관, 연구센터 등이 어우러져 있다. 시간이 여유롭다면 바다를 앞에 둔 거대한 신안섬의 예술과 자연을 한 군데서 여유롭게 즐겨볼 만하다. 섬을 느끼고 섬의 질감을 누리는 일은 역시 바다가 아닌가. 해변으로 나가는 길에 높은 모래 언덕이 눈앞을 막는다. 고운 모래에 밀리며 느려지는 발걸음이 오히려 마음을 느긋하게 해준다. 모래섬 언덕 위에 얹은 피아노가 푸른 바다의 파도와 하늘과 어우러져 멋스럽다. 낮은 무음과도 같은 바람과 섬에 흐르는 피아노 선율을 마음속으로 그리며 헝클어진 머릿속을 헹궈내는 일, 해변의 고둥 조형물이 자연스러운 여기가 최적이다. 푸른 바다를 보며 꿈꾼 화가 김환기 고택 암태도에서 팔금도를 지나 안좌도로 들어서면서 보이는 길목의 보라색 다리가 퍼플섬을 예감하게 한다. 하지만 그전에 시원한 푸른색 지붕이 마을 가득하다. 푸른빛의 화가 김환기의 읍동마을 옛집이 이렇게 맞아준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의 화가다. 안좌면 마을 안쪽에 위치한 옛집의 안채와 화실을 돌아보면서 방학이면 내려와 그림을 그렸다는 화가의 옛 모습을 떠올려본다. 화면 가득 푸른빛으로 채운 작가의 감수성은 고향의 푸른 바다와 하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예술가의 정갈한 목조 기와집이 조용히 자리한 작은 섬. 김환기 화백의 옛 시절과 그림을 향한 열정을 인문학적으로 느껴볼 기회다. 화가의 작품 세계와 그의 곁을 지켰던 김향안 여사와의 사랑과 예술혼의 바탕이 여기에 있었다. 현재 김환기 고택은 해체 보수공사 중으로, 1월 중순 마무리 예정이라는 공사 안내가 있었다. 보랏빛 세상, 퍼플섬 안좌도를 가장 핫한 섬으로 이끈 것은 ‘퍼플’이다. 안좌면의 작은 섬 박지도에 도착하니 눈앞이 온통 보랏빛이다. 할머니들이 쉬고 있는 정자의 지붕도, 표지판이나 안내 광고판도, 공중전화 부스도, 동네 길의 바닥도, 물 위에 떠 있는 작은 배와 섬 쓰레기를 버리는 차량까지 모두 보라색이다. 정말 동화 속 같은 퍼플섬이다. 일단 길게 이어지는 목교인 퍼플교를 건너봐야 한다. 안좌도 두리마을에서 박지도까지, 그리고 반월도까지 총 1460m로 이어진 다리다. 다리를 건너면 바가지를 닮았다는 섬 박지도가 있다. 해안 산책로와 퍼플 숲길을 따라 봄과 여름이면 보랏빛 라벤더 정원이 눈부시고, 가을과 겨울 초반에는 키 작은 아스타꽃이 여행자들을 사로잡는다. 퍼플교 끄트머리에서 만나는 바람의 언덕과 다시 이어지는 반월도까지 한 바퀴 빙 돌다 보면 그저 보랏빛 세상이다. 퍼플섬 입장료는 5000원이며, 보라색 옷을 착용했다면 무료 입장이 가능하다. 요트 이야기, 숙소와 맛집 암태도 오도선착장에서 1004섬 세일링 요트 투어가 있으니 이용해볼 만하다. 요트 투어는 오도항을 출발해 천사대교를 지나는 1시간 정도의 코스로, 하얀 요트와 푸른 바다의 환상적인 조화가 멋지다. 기본 투어, 낙조 투어, 야경 투어 중에 선택하면 된다. 살다가 가끔 기분전환이 필요할 때 자신에게 이런 시간을 선물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신안 맛집은 각 섬마을마다 수산물 메뉴가 지천이다. 신안섬을 달리다 암태도 도로변에서 만난 ‘신안맛집’은 가성비 좋은 회덮밥이 푸짐하다. 목포 하당로의 ‘어문당’은 큼직한 화덕에서 구워내는 신선한 생선구이가 일품이며 호불호가 없는 식당이다. 숙소는 섬에서 묵어도 좋고, 목포에 숙소를 두고 목포 도심과 신안섬 여행을 병행해도 좋다. 목포의 ‘누스테이 목포’는 집이나 회사가 아닌 휴가지에서 근무하는 형태의 워케이션이 가능한 숙소다. 평소의 일상을 그대로 누릴 수 있도록 잘 갖추어진 단독 2층의 감성 숙소로, 목포항과 유달산, 목포 도심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보리마당로에 위치한다.
- 2024-02-16 0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