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가 동생을 위로하면 이런 노래가 나온다.” ‘개화’라는 앨범을 두고 대중은 그런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그 위로는 동생에게만 닿은 게 아니다. 저마다의 아픔을 견디며 현재를 살아내는 우리 모두의 가슴도 울리고 있으니 말이다. 이 앨범이 도파민 시대에 던지는 진짜 위로가 된 까닭을 살펴본다.

슬픔 뒤의 기쁨 아닌 ‘기쁨 뒤의 슬픔’
“기쁨 뒤에 슬픔이 오는 건 아름다운 마음이야. 쫓아내지 말고 품어주어라. 아주 예쁜 돌이 된단다.” AKMU(악동뮤지션의 약칭, 이하 악뮤)의 신보 ‘개화’에 있는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이라는 곡은 이렇게 시작한다. 슬픔 뒤의 기쁨이 아니라 기쁨 뒤의 슬픔이다. 이건 무슨 뜻일까. 악뮤의 이찬혁은 슬픔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해보니 기쁨의 소중함에서 왔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그러니 그것까지 아름다운 마음이라고 노래한 것이다.
기쁨과 슬픔 같은 감정의 변주는 디즈니‧픽사의 ‘인사이드 아웃’ 같은 애니메이션 영화를 통해 들여다본 경험이 있다. 이 작품은 인간의 감정을 기쁨이, 슬픔이, 버럭이 같은 캐릭터로 풀어낸다. 평소 저 뒤편에 숨어 별 기능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던 슬픔이는 이 감정의 주인공이 극도의 힘겨움에 직면했을 때 비로소 힘을 발휘한다. 감정을 꾹꾹 속으로 숨기며 아파하던 주인공은 결국 가족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리면서 정서적인 안정과 성장을 이룬다. 그제야 우리는 알게 된다. 슬픔이란 감정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이찬혁 역시 슬픔이 그저 나쁜 감정이 아니라, 기쁨을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는 ‘아름다운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토닥인다.

악뮤의 이 노래가 특별한 울림을 주는 건 우리가 ‘기쁨’만이 마땅히 추구해야 할 전부인 것처럼 치닫는, 이른바 ‘도파민의 시대’에 살고 있어서다. 시선을 잡아끄는 자극적인 영상들이 쏟아져 나와 단 몇 초씩 소비되고 버려지는 시대다. 기쁨이나 행복,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 나쁜 건 아니지만, 그것만을 추구하는 과잉은 진정한 기쁨과 행복에 닿기 어렵다. 이 곡에 담긴 가사들처럼, ‘햇빛 뒤에 그늘’이나 ‘흐린 날’과 ‘시린 날’ 그 웃음과 눈물까지 끌어안을 때 비로소 진짜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도파민의 시대가 추구하는 건 이런 깊이가 아니다. 쏟아져 나오는 자극과 정보들을 마치 꼭 봐야 할 것처럼 강박적이고 중독적으로 훑어보며 지나치는 와중에 우리의 마음은 깎이고 지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 것이다. 나타났다 하면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 또 다른 노래가 끊임없이 채워지는 도파민의 시대에, 이 노래는 한 달 내내 차트 정상을 지키고 있다. K팝 하면 떠오르는 화려한 비트의 음악들 속에서 뾰족함 하나 없는 악뮤의 목소리가 대중을 사로잡은 것이다. 여기에는 앨범 발매 전부터 알려진 이 노래의 사연이 한몫했다. 이찬혁의 입대 이후 동생 이수현은 3년이나 긴 슬럼프와 번아웃으로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에 시달리며 세상과의 문을 닫아버렸다고 한다. 가족들도 ‘어쩔 수 없어’ 할 때, 이찬혁은 노래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노래는 기적처럼 동생을 세상 바깥으로 나오게 했다.

화려한 K팝과는 전혀 다른 ‘소문의 낙원’
기쁨 지상주의(?)는 역설적으로 우리가 1970~80년대 개발 시대를 겪으며 부지불식간에 갖게 된 무한 경쟁과 성장주의적 사고와 연결돼 있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 말하며, 지금의 슬픔(혹은 아픔)을 훗날의 기쁨을 위한 시간으로 받아들이고 버티는 걸 당연한 일로 여기지 않았던가. 그러니 미래의 기쁨을 위해 오늘은 힘들어야 마땅하다고 말하는 사회에서 기쁨으로 나가지 못하는 슬픔은 갈 길을 잃을 수밖에 없다. 현대인을 회복시키는 건 미래의 기쁨이 아니다. 이찬혁이 동생에게 해준 것처럼, 현재의 슬픔도 아름다운 마음이라고 보듬어주는 일이다.

같은 앨범에 수록된 ‘소문의 낙원’은 ‘지치고 병든 나그네’에게 자극과 경쟁이라는 도시의 ‘불치병’에서 벗어나 진정한 낙원으로 오라고 손짓한다. 거기에는 대단한 게 있는 것이 아니다. 잠깐 앉아서 수프와 고기를 나누면서 회복하는 시간, 상처의 물집을 터트리고 붕대를 감는 시간, 그 자체가 낙원이다. 이 노래는 뮤직비디오가 특히 독특하면서도 중독성이 있다. 컨트리풍의 느릿느릿한 박자에 맞춰 자기가 입고 싶은 대로 입고 나온 일단의 무리가 누구나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은 춤을 춘다. 그 춤은 너무 단순해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하는 안무처럼 보일 정도다. 딱딱 떨어지는 칼군무도 없고 화려함도 없지만, 그 춤을 추는 이들은 모두 행복한 얼굴이다.
별것도 아닌 듯한 뮤직비디오가 마음을 잡아끄는 건, 우리가 늘 봐왔던 K팝 아이돌의 화려한 칼군무와 정반대 모습 때문이다. 그들의 군무에 깃든 ‘피, 땀, 눈물’은 물론 가치 있는 것이지만, 그것만이 이 치열한 경쟁의 현실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처럼 보일 때 피로감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 강박을 버리자 이제 노래는 저들만의 퍼포먼스가 아니라 우리가 모두 함께 즐기는 시간이 된다. 실제로 KBS 2TV ‘성시경의 고막남친’에서 악뮤가 이 노래를 부를 때 관객들은 모두 일어나 그 느릿느릿한 춤동작을 따라 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가사를 음미하는 노래가 뜬다
글로벌한 인기를 끄는 K팝에서 듣는 것만큼 보는 것이 중요한 지분을 차지한다는 걸 부정하기 어렵다. 초창기 K팝 아이돌의 원형을 만들었던 이수만 대표에게 영감을 준 것은 MTV 시대와 마이클 잭슨의 등장, 그리고 뉴 키즈 온 더 블록 같은 아이돌그룹이었다.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 변화가 일어나던 시기, K팝은 재빨리 그 흐름에 한국적인 시스템을 더해 현재의 성장을 이뤘다. 물론 K팝에도 저마다의 세계관과 메시지가 담겨 있지만, 화려함과 빠른 비트 속에서 가사를 음미하는 일은 갈수록 멀어진 게 사실이다.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가사는 노래의 중심 그 자체였다. 특히 포크의 시대에 양희은이나 김민기, 산울림 같은 아티스트의 노래는 가사가 주는 울림이 남달랐다. 김민기의 ‘아침이슬’이나 ‘작은 연못’, ‘봉우리’, 양희은의 ‘상록수’, 산울림의 ‘회상’ 같은 곡은 가사 하나하나를 음미하는 맛이 노래를 계속 듣게 만드는 힘이었다.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가 수록된 ‘숲’ 같은 앨범은 곡 하나하나가 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아이돌 기획사가 중심이 돼 비주얼과 춤이 강조된 음악이 쏟아지면서 가사를 음미하는 일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물론 서태지와 아이들이나 듀스의 등장과 함께 힙합이 본격화하면서 상대적으로 가사가 주목받는 노래도 있었다. 비주얼 음악의 홍수 속에서 아이유의 ‘밤편지’같이 가사가 돋보이는 곡은 오히려 독특해 보이기도 했다.

갈수록 영어 가사가 늘어만 가는 K팝 아이돌의 노래가 주를 이루는 가운데, 최근에는 인디를 중심으로 저마다의 메시지를 담은 가사로 주목받는 아티스트도 등장하고 있다. 떠오르는 싱어송라이터 한로로나 이무진이 대표적이다. 지난 2월에 열린 제23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음악인으로 선정된 한로로는 ‘비틀비틀 짝짜꿍’, ‘입춘’, ‘사랑하게 될 거야’ 같은 문학적인 가사가 도드라지는 노래들을 발표했다. 노래와 컬래버한 소설 ‘자몽살구클럽’ 또한 베스트셀러에 오를 정도로 그의 음악적 원천에는 가사의 힘이 내재돼 있다. JTBC ‘싱어게인’을 통해 이름을 알린 이무진 역시 ‘신호등’, ‘청춘만화’, ‘청혼하지 않을 이유를 못 찾았어’와 같이 가사의 매력이 담긴 노래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끝없는 자극이 불러온 반가운 역행
K팝이 글로벌 신드롬을 일으키는 현상이 반갑지 않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지나치게 한쪽으로 쏠린 음악들이 한국 음악의 전부인 것처럼 치부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자극과 도파민이 불러온 피로감의 역행으로 등장한 악뮤의 ‘개화’는 반갑기 그지없다. 도파민에 중독된 우리를 디톡스해주는 음악을 들려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신이 가사를 쓰고 곡을 붙이는 싱어송라이터들이 목소리를 내는 건 반가운 일이다. 그 어느 때보다 콘텐츠의 ‘진정성’이 중요해진 시대다. K팝 아이돌 또한 기획사에서 써준 노래를 부르는 데 머물지 않고 직접 자기 생각과 감정을 담은 음악과 가사를 쓰는 것을 성장으로 여긴다. 휘발되지 않고 누군가의 가슴에 담기기를 바란다면, 진정성을 채우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이들의 부상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기쁨만을 지상 과제처럼 보여주는 사회는 진정한 기쁨을 주기 어렵다. 기쁨과 슬픔, 웃음과 눈물, 낮과 밤, 빛과 그림자 등 상반되는 것들의 균형 잡힌 조화가 진정한 기쁨을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화려한 춤과 강렬한 비트만큼 우리의 가슴에 콕 박히는 가사를 담은 노래가 많아지길 기대한다. 그 반가운 역행이 우리를 ‘아름다움’의 세계로 인도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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