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따, 엄마 솜씨가 보통이 아닌데?”
여든셋의 어느 날. 달력 뒷장에 무심코 사과 한 알을 그렸다가 아들의 칭찬을 들었다. 어쩐지 기뻐 읍내에 나가 스케치북 두 개를 사가지고 돌아왔다. 이것저것 그려서 벽에 붙였더니 사람들이 또 “잘 그렸다”고 했다. 그게 좋아서 그리고 또 그렸다.
나는 1928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학교는커녕 공부라는 게 뭔지도 몰랐다. 꿈? 생각할 여유 없었다. 해방 이듬해 귀국해 결혼하고 아들, 딸을 낳았다. 우린 지독히 가난했다. 그저 굶지 않는 것, 네 가족 평안한 것이 꿈이라면 꿈이었다. 하지만 애정 없는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않았고, 생계를 잇기 위한 노동은 계속됐다. 그렇게 모진 세월을 보낸 나는 추억을 벗 삼아 살아가는 평범한 할머니가 됐다.
터를 잡은 곳은 전라남도 광양시 봉강면. 대개 시골의 삶은 무료하다. 택배 일 나간 아들을 기다리다 심심해서 집에 굴러다니는 연필을 주워들었다. 아들의 작업실에서였다. 화가인 아들은 낮에는 택배 일을 하고 퇴근하면 그림을 그린다.
“오! 이거 누가 그렸어?”
아들은 내 그림을 처음 보고서 이렇게 말했다. 진심으로 놀라는 눈치였다. 그러면서 색연필과 물감을 건넸다. “계속 그렸으면 좋겠다”고…! 그 후 매일 아침 8시 반, 아침 식사를 한 뒤 그림을 그렸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손을 움직였다.
15년여가 흘렀다. 내 나이 아흔을 넘겼고 현재까지 600여 점을 그렸다. 그동안 수십 차례 전시회를 열었다. KBS 교양 프로그램 ‘인간극장’, 토크쇼 ‘황금연못’ 등 다양한 방송에 출연했다. 사람들은 나를 ‘한국의 모지스 할머니(‘미국의 국민 화가’ 애너 메리 로버트슨(1860-1961). 일흔다섯 살에 그림을 시작했다)’라고 부른다.
“15년 차 화가 아흔일곱 살, 김두엽입니다. 느리더라도 천천히 계속 그림을 그리겠습니다. 여러분도 다들 힘냈으면 해요.”
에디터 조형애 취재 문혜진 디자인 이은숙
한국 문단의 어머니라 불리는 박완서 작가가 구리시 아치울에서 투병 끝에 타계한 뒤 13번째 봄날이 찾아왔다. 구리시에서는 올해도 그를 추모하는 낭독 공연을 열었다. 박완서 작가를 기리고 그의 문학을 잊지 않기 위해, 구리아트홀이 생기기 전 시청 한편에서부터 시작한 공연이 어느덧 12회 차를 맞았다.
구리아트홀 코스모스 대극장 앞은 공연 30분 전부터 중장년 관객들로 북적였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포스터 앞에서 다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관객들은 대극장 1층은 물론이고 2층까지 객석을 가득 채웠다. 공연은 영상, 노래, 연주, 연기, 낭독까지 다채롭게 구성됐다. 관객들은 웃기도 울기도 하고, 박수를 보내기도 하며 공연을 즐겼다. 한 관객은 무대가 끝나자 “낭독 공연은 처음 보는데 색다르네”라고 평하기도 했다.
설교하지 않는, 그러나 여운 주는 동화
자전거를 갖고 달리면서 맛본 공포와 함께 까닭 모를 쾌감을 회상한다. 마치 참았던 오줌을 내갈길 때처럼 무거운 억압이 갑자기 풀리면서 전신이 날아갈 듯 가벼워지는 그 상쾌한 해방감. 한번 맛보면 도저히 잊힐 것 같지 않은 그 짙은 쾌감. 아 나는 도둑질을 하면서 죄책감보다 쾌감을 더 짙게 느꼈던 것이다.
-‘자전거 도둑’ 中
한국 문단의 어머니라 불리는 박완서 작가의 동화 ‘자전거 도둑’의 주인공 수남의 독백이다. 토실하니 붉은 볼과 깨끗한 눈을 가진, 청계천 세운상가 뒷길 전기용품 도매상의 열여섯 살 꼬마 점원 수남이. 꼬마의 고백은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변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자전거 도둑’은 1979년 동화집 ‘달걀은 달걀로 갚으렴’에 들어 있던 작품이다. 이 중 아이들이 읽을 만한 것을 모아 1999년 다시 펴낼 때 책의 표제가 됐다.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린 작품이기에 한 번쯤 읽어봤을 내용이다.
박완서 작가는 소설, 수필 등 여러 분야의 글을 썼지만, 동화에 특히 애정을 담았다고 전해진다. 이야기꾼 할머니로 남고 싶었기 때문에 동화를 집필할 때는 특히 최선을 다했다. 그렇기에 어느 한 작품을 꼽을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동화란 아이들에게 교훈을 주고자 쓰기 마련인데, 그는 동화를 통해 설교하려 하지 않았다. 아이들을 위한 동화지만, 어른들도 읽었으면 했다. 박완서 작가의 맏딸인 호원숙 작가는 ‘자전거 도둑’을 오히려 어른을 위한 동화 같다고 했다.
이날 낭독 공연 사회를 맡은 최지애 소설가는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는 걸 16세에 이미 깨달은 수남이가 2024년 우리 곁에 있다면 할아버지가 되어 있을 텐데, 분명 좋은 어른으로 반듯한 삶을 살았으리라 믿는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러면서 책 ‘박완서의 말’을 인용해 “박완서 작가님은 문학을 통해 시대와 사회를 고민하고 갈등했지만, 고정관념이나 잘못된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면서 “그럼에도 설교하려 하지 않았다. 교훈을 주려 하지 않는 동화는 참 드물다. 작품을 읽고 오래도록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힘, 그것이 바로 박완서 문학의 힘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완서 작가의 문장 따라 걷는 길
1년에 한 번 열리는 낭독 공연 외에도 언제든 박완서 작가를 추모할 방법이 있다. ‘박완서 자료실’에서 그의 문장을 음미해보는 것이다. 자료실은 구리시 인창도서관 2층에 있다. 구리시 아치울에서 생을 마감한 박완서 작가의 발자취를 담은 공간이다.
자료실 입구에는 박 작가의 작품을 필사할 수 있도록 자리가 마련돼 있다. ‘박완서 필사’ 코너를 지나 자료실로 가는 길 벽면에는 작가의 삶과 작품 이야기가 사진과 함께 전시돼 있다. 마치 그의 삶을 따라가듯 걸으며 자료실로 들어서면 그의 등단작 ‘나목’부터 소설, 수필, 동화, 문학상 수상 작품 등 분야별로 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자료실 운영 시간 10:00~16:00)
올해는 ‘리멤버, 박완서’라는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매주 토·일요일 하루에 네 번(가족 대상 : 10시·14시, 일반 대상 : 11시·15시) 구리시 문화관광해설사가 박완서 작가의 주요 작품과 일생을 연결 지어 해설한다. 주제는 △소녀, 박완서 :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여자, 박완서 : 나목 △엄마, 박완서 :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노인, 박완서 :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등 네 가지다. 해설 프로그램은 박완서 자료실에서 진행되며, 구리시 문화예술과(031-550-2565)로 전화 예약을 하거나 구리시 홈페이지에서 신청할 수 있다.
호원숙 작가
딱 알맞은 사랑 주신 어머니를 그리며
박완서 작가의 맏딸, 호원숙 작가는 책 ‘박완서의 말’을 엮으면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후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리워지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어머니의 책을 펼치면 살아 계실 때와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와 생생한 목소리로 들릴 때가 있었다”고 말했다. 작품으로 어머니를 그리워하듯, 매년 열리는 박완서 작가 추모 낭독 공연에 참석하며 호 작가는 어머니를 떠올린다. 이번 13주기 추모 낭독 공연에도 참석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간 작품과 인터뷰를 통해 어머니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많이 보여주셨는데요. 13주기 추모 낭독 공연을 맞이하는 작가님의 소감이 궁금합니다.
코로나19로 공연을 올리지 못했던 한 번을 제외하고 1주기부터 매년 공연을 할 수 있게 해주신 구리시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이번 공연은 작품 ‘자전거 도둑’이 동화라는 점에서 조금 특별합니다. 어머니가 첫 손주를 보았을 때 쓴 작품이죠. 그야말로 할머니가 손주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예요.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정말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가, 인간답다는 것이 무엇인가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자전거 도둑’에는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어른들이 등장하는 것 같아요. 작가님은 어머니를 보며 좋은 어른의 역할을 깨닫게 된 경험이 있으신가요?
어머니는 어른으로서 상대에게 알맞은 사랑을 주신 분이에요. 무조건적인 사랑이 아니었죠. 누군가에게는 무관심이 사랑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북돋아주는 것이 사랑일 수도 있거든요. 넘치도록 사랑을 붓는 게 아니라, 상대에게 필요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아셨죠.
2023년 ‘어른의 부재’가 트렌드 키워드로 꼽혔어요. 그래서인지 박완서 작가님이 더 그립습니다. 그만큼 좋은 어른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요즘 쇼츠라는 게 유행이라면서요? 저도 어떤 짧은 메시지를 보면 ‘어머 진짜 옳은 소리다’ 싶은데 순간적으로 날아가 버리더라고요. 휴대폰에 너무 매몰되지 말고 누구든 주변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필요한 걸 배우면 좋겠어요. 가장 가까운 곳에 배울 게 많아요. 사실 70세가 다 된 제 나이에도 선택해야 할 때 무엇이 옳고 그른가 망설이거나 쉽게 판단이 안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저는 젊은이들이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면서 참 많이 배웁니다. 용기 내어 사랑을 주고, 받은 사랑에 책임지며 살면 좋겠습니다. 일상 속에서 그런 것들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그런 면에서는 문학 작품 속에서도 어른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짧은 영상과 달리 작품 속 인물을 보며 생각하고 배울 수도 있으니까요. 어른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누군가에게 작품을 추천해주신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저는 요즘 고전을 봐요. 전에 읽었던 건데도 다시 보면 놀라울 정도로 ‘이런 게 있었구나!’ 싶어요. 그 시절 작가와 책을 통해 공감하고 교감하며 대화하는 거죠. 어머니 작품 중에서는 ‘미망’을 추천하고 싶어요. 구한말부터 이어지는 이야기로, 할아버지는 옛날 사람이지만 미래 주역이 될 손녀에게 꿈을 심어주는 모습이 나오는데 너무 아름다웠어요. 그런데 그냥 꿈을 심어주는 게 아니라 거기에는 사랑이 있어야 해요. 딱 그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의 사랑이요.
조선 가사문학의 대가이자 정치가였던 송강 정철(1536~1593)의 생애는 극적이었다. 삶 전체가 한 편의 파란만장한 인간극장이자, 장면에 따라서는 야유가 쏟아지는 별점 5개짜리 장편영화였다. 생존 당시는 물론 사후까지 부정적이거나 엇갈린 평가가 따라붙는 송강의 캐릭터는 정말이지 독특하다. 그의 문학은 빼어나 찬사가 쏟아졌지만, 정치 측면에선 잔혹해 지탄을 받았던 게 아닌가. 선조의 입에서 “송강이 조선 선비를 다 죽였다”는 한탄이 터져 나올 정도였다.
송강이 태어난 곳은 한양이며, 학문을 닦고 시심을 기른 정신적 고향은 전남 담양이다. 58세 나이로 죽음을 맞이한 곳은 강화도다. 그의 묘소는 충북 진천군 문백면 환희산 기슭에 있다. 원래 경기도 고양에 묻혔으나 1665년 성리학의 거두 우암 송시열의 권유에 따라 현재 자리로 이장하고 사당을 세웠다. 이후 세월 속에서 퇴락한 사당을 현대에 이르러 크게 중건한 게 지금의 정송강사(鄭松江祠)다. 이곳엔 송강의 영정과 위패가 봉안돼 있다. 다시 말하자면 정송강사는 송강의 넋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 분위기는 여느 딱딱한 사당과 달라 포근한 맛을 풍긴다. 산자락을 움켜쥔 입지라 배후 풍치가 밝다.
송강의 묘소는 정송강사 옆으로 난 비탈길 끝자락에 있다. 묏자리는 문외한의 눈에도 명당으로 보일 만큼 아늑하고 훤칠하다. 우암이 잡았다는 터이니 어련하랴. 우암이 송강의 묘지 이장을 주도한 건 송강의 묘소에 물이 차 고민이라는 후손의 하소연을 접하고서였다. 그런데 우암이 하필 진천을 택해 이장 작업을 한 건 어떤 이유에서일까. 여기에는 일련의 정치적 고려가 있었다. 우암은 영남계 서원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충북 지역에 서원 다수를 건립했는데, 서인의 영수 송강의 묘소를 진천으로 이장한 것도 같은 의도에서였다. 정송강사 남쪽엔 ‘송강정철신도비’가 있다. 비의 총 높이는 3m에 달해 웅장하다. 비문을 쓴 이는 우암이다.
송강은 출세가도를 달린 인물이었다. 그러나 파행이 잦은 질주였다. 당쟁의 이전투구를 조성하거나 휘말려 사실상 안심을 가지고 산 날은 그리 많지 않았다. 조선 최고의 정치적 참사로 평가되는 ‘기축옥사’ 때는 송강이 위관(委官, 재판장)을 맡아 동인 세력의 뿌리를 뽑으려는 의도로 참혹한 피바람을 일으켰다. 1000여 명에 달하는 동인 쪽 사람들을 불귀의 객으로 만들었던 것. 송강 자신 역시 당쟁에 치받혀 부침을 거듭했으며, 수차례 유배지로 쫓겨나기도 했다. 말년의 송강은 강화도에서 가난을 끼고 고독하게 살았다. 친구에게 편지를 써 ‘아무리 둘러봐도 입에 풀칠할 계책이 없다’고, ‘부디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이 대목에서 송강이 청빈을 버릇으로 삼았던 인물임이 드러난다고 보는 눈도 있다. 아무려나 송강은 강화의 누옥에서 홀로 숨을 거두었다. 사인은 영양실조였다고.
송강의 성품에 대해 동시대 학자 기대승은 ‘청결한 수석’에 견주었다. 율곡은 ‘강직하지만 속이 좁아 병통’이라 했다. 선조는 송강을 총애했지만 그가 죽자 ‘독기로 사람을 해친 자’라고 깎아내렸다. 무능한 군주답게 달면 삼키고 쓰면 뱉은 셈이었다. 한편 가사문학으로 조선 문학사에 굵은 획을 그은 송강을 두고서는 찬사가 쏟아졌다. 흔히 조선의 최고 시인으로 윤선도, 박인로와 함께 송강을 꼽는데, 서포 김만중은 송강의 ‘사미인곡’을 중국 굴원의 명시 ‘이소’(離騷)에 빗대어 ‘동방의 이소’라 극찬했다. 송강의 남다른 개성은 당시 문인들이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한글로 시를 썼다는 데에서도 두드러진다.
송강의 시적 절창은 주로 유배지에서 나왔다. 신세가 궁색해질 때마다 송강은 복잡한 심정을 시에 묻어 다독였던 거다. 그가 매달린 것이 시만은 아니었다. 술이 또한 송강을 삼매경으로 데려가곤 했다. 그는 음주벽으로도 한가락 했다. 대낮 근무시간에 거나하게 취해 사모를 삐뚜름히 걸치고 임금 앞에 나타나기도 했다지. 이런 송강에게 선조는 작은 은배(銀杯)를 하사했다. “이 잔으로 하루 한 잔만 마시라”고 당부하며. 이에 송강은 은배를 망치로 두들겨 사발만 하게 만들어 술을 마셨다던가? 이럴 때의 송강은 익살스런 꾀보다. 정송강사 경내에 있는 송강기념관엔 송강의 유품들이 전시돼 있다. 선조가 내린 은배 한 점도 보인다. 진품은 종가에서 소장하고 있다.
직접 쳐볼 수 있는 대종도 있다
이제 발길은 진천종박물관에 닿는다. 한국 범종(梵鍾, 절에서 쓰이는 큰 종)의 우수성과 예술성을 알리기 위해 2005년 개관한 국내 유일의 종 전문 박물관이다. 진천엔 고대의 제철 유적인 ‘진천 석장리 유적’이 있다. 따라서 진천에선 일찌감치 금속공예의 싹이 텄을 걸 알 만하다. 이 특유한 역사를 배경 삼아 금속예술의 정수인 범종의 모든 걸 보여주는 종박물관이 건립됐다. 직접적인 설립 계기는 범종 제작의 명인 주철장(鑄鐵匠) 원광식(중요무형문화재 제112호)이 만들거나 모은 종 150여 점을 기증한 것이었다.
진천종박물관은 크기와 세세함이 조합돼 매우 알차고 흥미진진한 박물관이다. “어, 이런 재미있는 박물관이 있었어?” 감탄이 절로 터진다. 범종의 전시는 물론 범종의 역사, 제작 기술과 과정을 보여주는 다양한 섹션에서부터 세계의 종 전시관, 기획전시실, 타종 체험장 등을 갖추어 관람객을 충족시킨다. 나는 ‘충족’ 정도가 아니라 사로잡혔다. 이 박물관의 핵심 공간은 시대에 따라 변전한 한국 범종의 양상과 실체를 보여주는 1층 전시관이다. 여기에선 범종의 걸작인 성덕대왕 신종(일명 에밀레종) 모형을 비롯해 상원사 동종, 낙산사 종 등 다수의 명품 범종을 볼 수 있다. 중국과 일본의 종도 전시해 비교 감상할 수 있게 했다. 이 모든 종이 원광식이라는 한 개인이 실물 그대로 재현한 복제품이라 하니 경이롭다.
이곳의 종들이 다 그렇지만 특히 성덕대왕 신종 앞에서 눈을 뗄 방법이 없다. 예전 이 거대한 보물을 경주박물관으로 옮길 때 경주시민 10만여 명이 몰려들어 운송 광경을 지켜봤다. 그토록 인기 있으며, 그토록 유서 깊으며, 그토록 빼어난 예술이다. 범종은 종소리의 깊음과 신비감으로 아름답다. 중생의 미망을 일깨우는 소리를 내는 신성한 법구다. 이른바 ‘맥놀이’라는 오묘한 과학을 무뚝뚝한 쇳덩어리에 주입해 부처의 음성, 천상의 소리를 뽑아내다니. 종의 피부에 새긴 조각은 또 어떻고? 사람을 압도하는 저 능란한 세공을 보라. 범종의 과학, 미학, 예술을 만끽할 수 있는 진천종박물관은 기분을 돋워주는 명소다. 야외 광장엔 직접 쳐보라고 만들어놓은 대종 2점이 있다. 종을 치자 웅장한 소리가 울려 퍼지다 그윽한 여음을 남기고 꿈처럼 사라진다. 그러자 가슴에 괸 먼지가 가셨나? 쾌감이 엄습한다.
장주식 진천문화원 원장
‘이상설 기념관’은 건축문화 성지
“올해 진천문화원이 해야 할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건 ‘보재 이상설 기념관’을 차질 없이 개관하는 데 있다. 계획대로 올해 상반기에 개관되면 곧바로 전국적인 명소로 부각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상설 선생의 삶과 업적을 기리는 갖가지 자료는 물론이고 건축의 미학까지 겸비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진천문화원 장주식 원장의 얘기다. ‘보재 이상설 기념관’은 2023년 10월에 준공식을 마쳤다. 무려 8년여에 걸친 사업으로 결실을 거두었다. 천신만고로 일을 추진한 장 원장의 실력이 마침내 빛을 본 셈이다. 그는 ‘보재 이상설 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 위원장이다.
“이상설 선생은 독립운동가 중에서도 우뚝한 인물이다. 항일운동의 선구자이며, 인품과 학식도 빼어난 분이다. 그러나 충분히 조명되지는 않았다. 흔히 헤이그 특사의 일원으로 기억할 뿐이지 않은가. 기념관 개관을 계기로 선생의 업적과 뜻이 널리 선양되길 기대한다.”
건축에 구현된 기법이 특별하다지?
“전통적인 목 구조와 현대적인 철근콘크리트 구조를 융합해 지은 대형 건물이다. 고려 중기에 성행한 주심포 양식도 도입했는데, 이모저모 고도의 기술력이 들어간 건물이다. 이는 사례가 드문 것으로 향후 건축문화의 성지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진천 하면 ‘생거진천’(生居鎭川)부터 떠오른다. 진천이 살기 좋은 고장으로 알려진 연유가 있겠지?
“주로 너른 구릉지로 이루어진 진천은 과거부터 농업이 발달했다. 지형 구조상 자연재해도 드물다. 따라서 농사가 순조롭고, 덩달아 인심도 좋을 수밖에. 진천엔 널리 이름난 효자도 많았다. 이 역시 지역에 만연한 후덕한 인정을 웅변한다.”
글로벌 기업들이 입주한 요즘 진천군은 활력이 넘친다. 문화원이 할 일도 많아졌을 것 같다.
“문화 향유 욕구가 강한 청년층이 대거 유입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 문화원은 그들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문화 콘텐츠 개발에 나서고 있다. 기존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한편 현대적인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보완할 참이다.”
진천의 역사 가운데 주목할 만한 장면을 소개한다면?
“신라의 영웅 김유신 장군이 진천에서 탄생했다. 장군은 삼국통일 위업을 완수했는데, 그의 화랑도 정신과 통일 열망이 진천 땅에 이어져 남북통일의 기운이 들끓어오를 경우, 마침내 통일 한국을 이룰 수도 있을 거라고 본다.”
요즘 진천에 떠오른 문화 이슈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
“백원서원 복원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이 서원은 조선 최고의 효자 김덕숭 선생을 비롯한 4인의 선현을 배향한 곳으로 ‘충효의 고장 진천’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현재 재원 마련을 위해 주민들도 성금을 모으고 있다.”
장 원장은 백원서원 복원 이후를 생각하고 있다. 전통 서원을 현대적으로 재생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 중이다.
●Exhibition
◇수구다라니, 아주 오래된 비밀의 부적
일정 1월 28일까지 장소 국립경주박물관
‘다라니’는 부처의 가르침 중 신비로운 힘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 주문을 말한다. 이 가운데 ‘수구즉득다라니’라고도 불린 ‘수구다라니’는 말 그대로 외우는 즉시 바라는 바를 모두 얻을 수 있다고 여겨져 삼국시대부터 널리 유행했다. 당시 사람들은 염송 외에 부적처럼 몸에 지니고 다니거나 불상이나 탑·무덤에 봉인했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특별전 ‘수구다라니, 아주 오래된 비밀의 부적’을 통해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수구다라니와 금동 경합(경전을 넣어두는 상자)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고대 인도어인 범자로 쓰인 것과 한자로 쓰인 것, 총 두 개다. 1919년 조선총독부가 입수한 유물로, 경주 남산에서 출토된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에는 다라니 두 개가 한 종이에 같이 배접된 직사각 형태였다. 이후 보존 처리를 거치면서 각각 분리 복원해 범자(29.7×30.3cm)와 한자(29.5×30.9cm)가 수구다라니의 원래 형태인 정사각 모양을 찾았다. 국립경주박물관 측은 “다라니에 대한 많은 연구자들의 관심과 연구가 이어져 고대 불교 문화의 진면목을 좀 더 살펴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황영성 : 우주 가족 이야기
일정 2월 18일까지 장소 전남도립미술관
황영성 작가의 1950년대 말 초기 구상회화 작품부터 2000년대 입체 작품과 최근 작품까지 총 110여 점을 선보인다. 그의 회화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가족’이다. 소박한 시골집 가족에서 대자연의 뭇 생명들로 확대되고, 세상 만물의 공생을 담은 우주 가족으로 확장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가족에 대한 근원적 그리움에 바탕을 두면서 세상과 화폭을 잇는 그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이지호 전남도립미술관 관장은 “황영성 화백은 한국의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원로 작가로, 국내외 다양한 지역을 오가며 예술에 대한 쉼 없는 도전과 열정을 보였다. 이번 초대전을 통해 만물에 대한 포용과 인류애의 가치를 느끼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Stage
◇노트르담 드 파리
일정 1월 24일 ~ 3월 24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연출 윤금정
출연 정성화, 양준모, 윤형렬, 유리아, 정유지, 솔라, 마이클 리, 이지훈 등
프랑스 3대 뮤지컬로 꼽히는 ‘노트르담 드 파리’는 1998년 프랑스 초연 이후 전 세계 23개국, 9개 언어로 번역되어 1500만 명 이상 관람한 대작이다.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으며, 15세기 파리의 혼란한 사회상과 부당한 형벌 제도, 이방인들의 소외된 삶을 보여준다. 이번에 6년 만에 한국어 버전이 귀환해 관심을 받고 있다. 그에 걸맞은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는데, 주인공인 노트르담 대성당의 종지기 ‘콰지모도’ 역은 정성화, 양준모, 윤형렬이 연기한다. 추악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에스메랄다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을 지닌 인물이다.
◇스쿨 오브 락
일정 1월 12일 ~ 3월 24일
장소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연출 로렌스 코너
출연 코너 글룰리, 사미아 로즈 어피파이, 알라나 에스피널, 마키시그 아키우미, 사무엘 빅모어 등
브로드웨이 뮤지컬 ‘스쿨 오브 락’이 5년 만에 내한 공연을 펼친다.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은 로커답지 않은 외모로 밴드에서 쫓겨나고 집에서도 구박받는 듀이가 친구 대신 명문 사립학교 대리 교사로 위장 취업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듀이 역의 코너 글룰리는 “한국에서 정말 많은 사랑을 줘서 다시 올 수밖에 없었다. 2024년을 함께 즐기자”고 전했다. 평균 연령 11.5세의 아역 배우 17명 또한 뛰어난 실력을 자랑한다. 서울 공연은 3월 24일까지 열리며, 4월부터는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일정 1월 20일 ~ 3월 10일
장소 국립정동극장
연출 민새롬
출연 손상규, 김신록, 김지현, 윤나무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가 네 번째 공연으로 돌아와, 지난 시즌 참여했던 손상규, 김신록, 김지현, 윤나무 네 명의 배우가 다시 한번 관객과 만난다. 1인극 형태로, 불의의 사고로 뇌사 판정을 받은 19세 청년 ‘시몽’의 심장이 51세 여성 ‘끌레르’의 몸에 이식되는 24시간의 과정을 그린다. 한 명의 배우가 시몽, 죽음을 선고하는 의사, 남겨진 가족, 장기이식 수혜자 등 총 16개 캐릭터를 연기한다. 장기기증 24시간의 기록을 다양한 인간들의 시선으로 그려내는 극은 삶과 죽음에 대한 원론적인 질문을 던진다.
본 기사에 소개된 공연을 관람하신 독자분의 생생한 후기를 기다립니다. 채택된 분께는 소정의 상품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 잡지를 보내드립니다. shjlife@etoday.co.kr
●Exhibition
◇생명의 기념비
일정 12월 2일까지 장소 성북구립 최만린미술관
“‘이브’는 나의 생명에 대한 기념비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부서진 생명, 죽음에 임박했던 생명을 다시 한번 쌓아 올리고 싶었어요.” - 최만린
‘생명의 기념비’에서는 조각가 최만린(1935~2020)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자, 그의 대표작인 ‘이브’ 시리즈를 한자리에 모았다. 특히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에서 복원을 마치고 돌아온 ‘이브 58-1’이 3년 만에 공개됐다. ‘이브’라는 표제가 붙은 작품들은 한국전쟁을 겪은 예술가의 생명을 향한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다. 드로잉 작품은 조각 작품과 함께 전시되어, ‘이브’ 시리즈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엿볼 수 있다. 더불어 폐허 속에서도 생명을 찾아내고자 하는 최만린의 의지가 드로잉 작품 곳곳에 묻어난다.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전쟁과 최만린의 작업을 연결하여 만든 한승훈의 영상 작품 ‘선명한 꿈’(2023)을 비롯해 ‘이브’와 관련된 아카이브 전시도 함께 진행된다. 최만린의 작품 외에도 김창렬의 ‘물방울’, 임응식의 ‘나목’ 등 한국전쟁을 겪은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 문학도 소개되어 당시의 상황을 함께 증언해준다.
◇우리 모두는 서로의 운명이다-멸종위기동물 예술로 HUG
일정 12월 3일까지 장소 부산민주공원 민주항쟁기념관
미디어, 입체, 사진 등 다양한 매체의 예술가들이 협력해 인간에 의한 환경재해 심각성을 일깨우는 동시에 인간과 공존해야 하는 동물, 생태환경 문제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전시다. 현대미술가 고상우, 금중기, 김창겸, 플로라 보르시의 작품 21점이 전시됐다. 고상우는 디지털 회화로 야생 동물을 표현했고, 금중기는 동물 조각품을 통해 인간 활동과 기술 문명의 발전이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김창겸은 전통 문양의 꽃과 동물 형상을 활용한 3D 애니메이션 영상, 오브젝트를 결합해 만다라 우주를 창조한다. 사람과 동물의 특징을 하나의 자화상에 결합한 플로라 브로시의 작품은 두 생명체 사이의 유대감을 강조한다.
●Stage
◇몬테크리스토
일정 11월 21일 ~ 2024년 2월 25일
장소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연출 권은아
출연 이규형, 서인국, 고은성, 김성철, 선민, 이지혜, 허혜진 등
여섯 번째 시즌을 맞은 뮤지컬 ‘몬테크리스토’는 특히 알렉상드르 뒤마 원작의 소설을 더욱 충실하게 구현하는 방향으로 스토리를 다듬어 완성도를 높였다. 극의 주인공 에드몬드 단테스/몬테크리스토 백작 역은 이규형, 서인국, 고은성, 김성철이 맡아 연기한다. 촉망받는 젊은 선원
‘에드몬드 단테스’는 그의 지위와 약혼녀를 노린 주변 인물들의 음모로 14년간 옥살이를 한 끝에 탈출한다. 그리고 ‘몬테크리스토 백작’으로 이름을 바꾸고 복수를 꾀하는데, 스스로 빠진 파멸의 길에서 용서와 화해, 사랑의 가치를 알게 된다.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은 삶의 진정한 의미를 느끼게 한다.
◇컴 프롬 어웨이
일정 11월 28일 ~ 2024년 2월 18일
장소 광림아트센터 BBCH홀
연출 박소영
출연 남경주, 서현철, 고창석, 최정원, 최현주, 정영주, 장예원 등
2017년 브로드웨이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컴 프롬 어웨이’가 국내 초연된다. 2001년 9.11 테러 당시 캐나다의 작은 마을 갠더에서 일어난 실화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한 작품이다. 테러로 인해 비행기 수십 대가 갠더에 불시착하고 주민들이 7000명가량의 승객과 협력하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인류애와 공동체의 힘을 통한 치유의 이야기는 감동을 전해줄 전망이다. 경력 40여 년의 1세대 스타부터 젊은 대세까지 총출동하는데, 모든 배우가 1인 2역 이상 소화하는 것은 물론, 각종 음향 효과까지 직접 구두로 해낸다.
◇렌트
일정 11월 11일 ~ 2024년 2월 25일
장소 코엑스 신한카드 아트리움
연출 앤디 세뇨르 주니어
출연 백형훈, 장지후, 정원영, 배두훈, 김환희, 이지연, 김수연, 김호영, 조권 등
브로드웨이 극작가 겸 작곡가 조너선 라슨의 뮤지컬 ‘렌트’가 3년 만에 돌아온다. 뉴욕 이스트 빌리지에 사는 가난한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2000년 한국에서 초연된 이후 수많은 스타를 배출하며 2011년까지 공연됐다. 9년의 시간이 흐른 후 2020년에 공연을 재개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조기 폐막되는 일을 겪었다. 당시 ‘역대 최고 공연’이라는 호평을 받은 터라 아쉬움을 더했다. 이에 지난 시즌 멤버와 더불어 새로운 멤버까지 총 24명의 배우가 다시 감동의 무대를 펼친다.
●Exhibition
◇제10회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일정 11월 7일까지 장소 광주비엔날레전시관
광주광역시가 주최하고 광주디자인진흥원이 주관하는 ‘제10회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11월 7일까지 광주 시내 일원에서 열린다. 2005년 창설된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이하 디자인비엔날레)는 세계 40여 개국이 참여하는 등 세계적인 종합 디자인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디자인비엔날레는 나건 홍익대 교수가 총감독을 맡았으며, ‘Meet Design’(디자인을 만나다)을 주제로 한다. 국내외 작품 2718점을 전시, 역대 최대 작품 수를 기록했다.
광주비엔날레전시관에서 진행되는 본전시는 4개(테크놀로지·라이프스타일·컬처·비즈니스) 주제로 구성됐다. 1관 ‘테크놀로지’에서는 AI, IoT 가전 등 4차 산업 기술과 접목된 새로운 미래 디자인을 소개한다. 2관 ‘라이프스타일’에는 인간이 살아가는 생활 방식을 디자인으로 표현한 작품이 전시됐다. 3관 'K-컬처'에서는 K-조형, K-팝, K-뷰티, K-웹툰 등 다양한 주제와 관점의 디자인을 만날 수 있다. 4관 ‘비즈니스’는 디자인이 경제, 산업, 문화 등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대전엑스포´93 : 과학 신화가 현실로
일정 11월 5일 장소 서울역사박물관 1층 로비 전시실
대전시와 서울역사박물관이 공동 기획했으며, 대덕특구 50주년 및 대전엑스포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됐다. 전시에서는 당시 엑스포 준비 과정과 시대 배경을 소개한다. 대전엑스포 개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한 국내 첫 즉석식 복권, 행사장에서 직접 관람객과 소통했던 인공지능 이동 로봇 케어-투(CAIR-2)와 그 기술을 발전시킨 인간형 로봇 아미(AMI) 등을 만날 수 있다. 지난 30년간 과학 발전을 이루며 달라진 한국의 위상 또한 확인 가능하다. 김용석 서울역사박물관장은 “대전 시민의 염원을 넘어 전 국민의 열렬한 응원이 담겼던 1993년 대전엑스포의 열기와 추억을 공유하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Stage
◇레미제라블
일정 10월 15일 ~ 11월 19일
장소 부산 드림씨어터
연출 크로스토퍼 키
출연 민우혁, 최재림, 김우형, 카이, 조정은, 린아 등
뮤지컬 ‘레미제라블’이 10주년 기념 공연을 펼친다. 2013년 초연, 2015년 재연을 통해 약 60만 명의 누적 관객을 동원했고, 2013년 ‘제7회 더뮤지컬어워즈’ 5개 부문 수상, ‘제19회 한국뮤지컬대상’ 4개 부문을 수상하며 대중과 평단의 극찬을 받은 작품이다. 이번 세 번째 시즌은 무려 8년 만의 공연이다. 더욱이 제작사는 “1년여 동안 까다롭고 철저한 오디션을 거쳐 최고의 캐스팅을 완성했다”고 자신해 기대감을 높였다.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레미제라블’은 19세기 비참한 삶을 사는 소시민들이 프랑스혁명을 일으키는 과정을 그린다. 부산 이후 서울, 대구로 무대를 이어간다.
◇마리 퀴리
일정 11월 24일 ~ 2024년 2월 18일
장소 서울 홍익대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
연출 김태형
출연 김소현, 이정화, 유리아가, 강혜인, 효은, 최지혜 등
2020년 초연과 재연을 거친 뮤지컬 ‘마리 퀴리’가 3년 만에 세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다. 한국뮤지컬어워즈 대상 수상작으로, 최근 일본 라이선스 공연이 호평을 받았다. 10월 부산, 11월 대구(11~12일) 이후 서울에서 공연을 펼친다. 최초로 노벨상을 2회 수상한 여성 과학자 마리 퀴리의 삶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마리 퀴리는 라듐을 발견해 명성을 얻지만 자신의 연구가 초래한 비극적인 진실을 목도한 후 고민에 빠진다. 마리 퀴리 역에 뮤지컬 배우 김소현이 캐스팅됐다. 오랜만에 무대에 복귀하는 그가 보여줄 연기가 기대를 모은다.
◇카페 쥬에네스
일정 11월 26일까지
장소 대학로 TOM(티오엠) 2관
연출 오인하
출연 차용학, 최정헌, 랑연, 조윤영, 이봉준 등
연극 ‘카페 쥬에네스’는 1920년대 말 일제강점기의 경성을 배경으로 한다. 제목의 ‘쥬에네스’는 프랑스어로 ‘청춘’(Jeunesse)이라는 뜻이다. 극에서는 애국과 매국을 강요받고 혹은 선택하며,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 삶을 던질 수밖에 없었던 청춘들의 희생과 그 속에 담긴 사랑을 이야기한다.
극본 및 연출은 배우 출신 오인하 작가가 맡았다. 연극 ‘B클래스’, ‘Memory in dream’(메모리 인 드림), ‘그때도 오늘’ 등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주목받은 오인하 작가는 장르작에 처음 도전한다.
뜻대로 풀려나가지 않는 게 인생이라는 극장이지만, 귀농 드라마만큼 난감한 장면을 복잡다단하게 보유한 장르도 드물다. 폭풍 속의 질주를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귀농은 매우 역동적인 인간사의 전시장이다. 자칫 고난과 고통에 갇힐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모험적인 도전이다. 귀농 10년이 지나서도 두 발로 서지 못한 사례가 드물지 않으니까. 이에 비하면 한철영(65, 태경농산 대표)은 순풍에 돛을 매달고 내달렸다. 출발은 소박했다. 그러나 10여 년이 지난 현재는 기세등등하다. 몇천만 원에 불과했던 초기의 매출은 우상향을 거듭해 지난해엔 12억 원을 기록했다. 올해 매출 목표는 20억 원. 비약이다. 흔치 않은 케이스다.
한철영은 30여 년을 근무한 삼성전자를 퇴사하고 2012년에 귀농했다. 애당초 귀농에 뜻을 둔 건 아니었다. 복잡한 서울을 벗어나 한가하게 인생의 가을을 영위할 수 있는 귀촌을 염두에 두었을 뿐이다. 그는 안성시 대덕면의 한적한 농촌에 땅을 미리 마련해뒀다. 시골에 세컨드 하우스를 짓고 전원생활을 맛볼 작정으로. 그러다 상황이 바뀌었다. 그가 미리 사둔 땅은 10년을 묵혀둔 배 과수원이었다. 면적은 1300평. 이걸 주말농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대략 손질하기 시작했는데, 어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푹 빠져들었단다. 의도하지 않았던 귀농에 덜커덕 뛰어든 셈이었다.
“농사 초심자가 배 농사를 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모든 게 엉성하고 서툴렀지만 다행히 결실이 있어 주변 지인들과 나누어 먹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반응이 좋았다. 맛이 아주 좋다며 판매하라는 요구가 많아 내심 놀랐다. 배 농사에 흥미와 의욕을 느낀 계기였다. 이듬해엔 시설을 보완해 본격적으로 농사에 나섰다. 결국 엉겁결에 귀농을 하게 된 것인데, 이듬해 농사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도시 직장인 연봉 수준의 판매수익이 났으니까.”
초기에 생산한 배 품질로 벌써 남들의 인정을 받았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지? 노련한 농부도 품질 유지에 차질을 빚는 게 과수 농사인데.
“미숙한 기술에도 불구하고 10년을 묵어 오히려 좋아진 토질에 힘입어 괜찮은 배를 거둘 수 있었던 것 같다. 농사 기술과 물정을 익히기 위해 이웃들에게 도움을 청해 지도를 받아 얻은 성과물이기도 하다. 통장님을 찾아가 도와달라 요청, 배 농사에 조예가 깊은 주민을 멘토로 소개받을 수 있었다. 그건 큰 힘이 됐다. 농업이란 혼자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좋은 인간관계, 믿음을 기반으로 한 유대감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경험으로 체득하며 살아왔다.”
아무리 돈독한 사이라도 핵심 기술은 잘 안 알려주는 게 일반적인 경향이지 않나? 며느리에게도 안 알려주는 맛집 레시피처럼.
“다년간의 경험으로 얻은 노하우를 노출하고 싶지 않은 심리는 인지상정이라 본다. 사실 주변 농부들에게 물어도 마땅한 답을 들을 수 없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그렇다면 스스로 공부해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게 상책이겠지. 따라서 나는 아내와 함께 경기농업마이스터대학에 입학해 2년간 공부했다.”
농업 교육기관의 교육이 이론에 치중돼 실제와 괴리가 있다는 얘기가 있던데.
“교육장에서 접할 수 있는 건 강사의 교육만이 아니다. 수강생들과 교류하며 인맥을 쌓을 수 있는 소중한 장이기도 하니까. 농업마이스터대학엔 수십 년간 배 농사를 지어온 지역 농민 다수가 학생으로 참여했다. 나는 그들의 도움으로 많은 걸 배웠다. 그들을 통해 배 농사의 실제를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배나무에게 모차르트 음악을
한철영은 농사에 공을 들이는 일 못지않게 좋은 인간관계 형성에도 각별한 정성을 쏟았다. 그걸 귀농의 리스크를 사전 방비할 수 있는 울타리로 삼았다. 자칫 외로운 섬처럼 고립될 수 있는 무심한 처신 대신, 마음을 열고 사람들 속으로 쑥 들어가 친선을 도모했다. 그건 곧 농사에 활기를 부여하는 동력원이 됐다. 그는 이렇게 귀농으로 바뀐 삶의 환경에 빠르게 적응했다. 능동적으로 관여했다. 농사 기술 확보에도 민첩한 감각을 발휘해 다양한 방식을 시도했다. 신뢰할 만한 기술 정보를 입수하면 바로 농장에 끌어들였다.
“농사의 기본으로 삼은 건 일명 ‘게으름뱅이 농법’으로 알려진 자연농법이다. 이를테면 억세게 올라오는 풀들을 갈아엎지 않고 퇴비를 만들어 활용했다. 유황 퇴비를 투입해 토질을 북돋우기도 했다. 덕분에 한결 풍미 좋은 배를 생산할 수 있었다.”
농작물은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지? 작물을 애지중지하는 농심은 늘 감동을 주더라.
“배나무라는 생명체에게 어떻게 하면 자연 그대로의 생기로운 최적 조건을 만들어줄 수 있을지 생각했다. 배나무가 배를 만든다는 건 후세를 남기는 고귀한 일이니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게 농부의 의무이지 않겠는가. 모차르트 음악을 배나무에게 들려주기도 했다. 듣는 귀가 있으려니 하며.”
사람도 모차르트 음악을 들으면 머리가 잘 돌아간다고 하더라. 그렇다면 배나무와 사람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애기인가?
“사람에게도 농작물에게도 좋을 게 별로 없는 화학비료는 최대한 배제했다. 자연스러운 생태 환경이 유지되도록 농장의 흙과 경관을 가급적 건드리지 않았다. 덕분에 지렁이들과 두더지들의 천국이 됐다.(웃음)”
귀농인들은 흔히 판로 문제로 고심한다.
“실로 중요한 게 판로 확보다. 귀농 초기에 나는 팔 수 있을 만한 타깃을 미리 설정해 집중 공략했다. 예컨대 규모가 큰 기업에 4년 정도 해마다 배를 무상으로 선물해 관심을 유도했다. 그러면 기업은 마침내 대량 구매를 한다. 우리의 배를 직원들에게 줄 명절 선물용으로 채택하는 것이다. 이렇게 맺어진 인연은 오래 이어지게 마련이지.”
한철영은 1300평 배 과수원을 통해 연평균 매출 8000만 원을 올렸다. 남들은 그게 큰 액수라며 곧이듣지 않았다지. 그러나 그는 비좁은 경기장에서 뛰는 게 영 마뜩잖았던 모양이다. 확장 욕구가 그의 내부에서 마그마처럼 들끓었나? 그는 2018년 상당한 규모의 가공공장을 설립해 가공식품 생산에 나섰다. 주도면밀한 연구와 조사가 선행된 뒤의 일이었다. 가공사업의 당찬 개시. 이건 확실하고도 명민한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단순한 생과 판매에서 나아가 사시사철 소비될 가공품을 생산하는 게 승산이 있다고 봤다. 고객의 니즈 역시 고품질 가공식품에 있다고 판단했다. 처음엔 위탁 전문업체에 맡겨 배를 재료로 한 즙과 농축식품을 만들었다. 그러나 품질에 문제가 있더라. 이건 아니다 싶어 직접 가공하기로 하고 가공공장을 설립한 거다.”
어떤 식품들을 생산했나?
“주력 상품은 배와 도라지를 섞어 만든 발효 농축액 4종이다. 생강, 무말랭이, 맥문동, 감초 등을 넣은 발효식품 다종류도 생산해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좋은 판매 성과를 거두었다. 가공품 생산 첫해부터 순항했다.”
차질이 빚어지진 않았나?
“뜻한 대로 일이 진행됐다. 시장의 트렌드와 소비자의 요구를 나름대로 분석해 타기팅을 정확하게 한 덕분이었다. 상품 개발을 할 때면, 이게 과연 시장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부터 숙고했다. 식품의 내용은 물론 포장 디자인을 고급화해 어디에 내놔도 뒤질 게 없는 상품을 만들었다. 현재 백화점 납품은 물론 수출도 하고 있다.”
‘고난의 서사’가 없다
한철영의 실력은 해외까지 알려졌다. 2021년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국제 식음료 품평회’(International Taste in Stitute)에 ‘통째로 갈아 만든 오미자’를 출품해 ‘최우수 미각상’(Superior Taste Award)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둔 것. ‘통째로 갈아 만든 음료’ 시리즈엔 오미자, 청귤, 생강, 매실, 유자 등으로 만든 제품 8종이 있다. 그가 만든 가공식품은 어쩌면 창의의 산물이다. 시장을 유심히 관찰하고 고안한 아이디어의 힘, 풍미를 담은 상품, 게다가 매력적인 디자인까지 가미한 디테일 요소로 차별화를 구현했다. 그는 자못 새로운 유형의 농산물을 개발한 것이다. 새롭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으랴. 혁신하지 않고 멀리 갈 수 있으랴. 그는 삼성전자에서 쌓은 경륜과 재능을 끌어모아 농업에 쏟아부었다. 체질처럼 뇌에 정착한 과학적 사고를 풀가동해 귀농이라는 게임을 흥미진진한 쪽으로 밀어붙인다. 공부는 또 어떻고? ‘열공 모드’를 상시 가동한다.
“가공공장을 설립한 뒤 단국대 죽전캠퍼스에서 식품영양학 석사과정을 공부했다. 지금은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식품공장 경영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심도 있는 식품 공부가 필수라고 생각했다.”
당신의 귀농 장정엔 ‘고난의 서사’가 거의 없다. 매사 잘 풀려나간 것 같다. 어떤 배경이 있다고 보나?
“운이 좋았을 뿐이다. 좋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보내준 선의의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까. 사실 내가 잘 아는 게 얼마나 되겠나? 다만 남들이 하는 방식을 답습하지 않으려는 노력은 했다. 농업의 프로세스를 과학적으로 파악해 손실과 차질을 사전에 차단하기도 했다. 나의 스타일, 나의 틀에 갇혀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고수해왔다. 그래야 새로운 걸 빨리 흡수할 수 있어서.”
누군가 귀농을 하겠다고 할 경우 어떤 얘기를 해주고 싶나?
“사실 귀농으로 뜻을 성취하기란 쉽지 않다.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서기가 매우 어렵다. 도시에서의 직업 활동보다 한결 고달픈 게 귀농 생활이다. 하루치 일을 하루에 마치기가 버거운 게 농사다. 난 예전 직장에서보다 서너 배쯤 더 많은 노동력을 쏟으며 뛰었다. 이처럼 팽팽한 생존 여건을 감내할 자신이 없다면 아예 귀농을 하지 않는 게 현명하다. 그러나 도시보다 더 풍부한 기회가 농촌에 내재해 있다.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는 얘기다.”
그의 음성은 나직하고 태도는 수굿하다. 내놓는 언설엔 옹골찬 차돌이 박혀 있다. 그렇다면 그는 지금 무엇을 향해 그토록 맹렬히 달려가는 걸까? 돈? 아니다. 행복? 이 역시 아직은 아니란다. 그의 얘긴 이렇다.
“지금의 목표를 말하자면 ‘보람’이라고나 할까? 행복은 어느 정도 레벨이 됐을 때 찾아도 늦지 않을 테고.”
한철영이 주는 귀농 Tip
•귀농 목표를 분명하게 설정하고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자. 작목 선택, 판로 문제, 투자자금 규모 등에 관한 연구를 미리 충실히 하라.
•귀농 뒤 농업 소득이 발생하기까지 긴 세월이 걸린다. 최소 4~5년은 버틸 수 있는 여유자금을 마련해 귀농하자.
•소비 시장은 냉정하다. 내가 좋아하는 작물을 생산하기보다 소비자가 좋아할 작물을 선택하자.
•특수작물에 섣불리 뛰어들지 말자. 시장성을 예측하기 힘들어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
•미리 1~2년 정도 농사를 지어보고 귀농을 추진하자. 그래야 정착이 수월해진다.
•귀농교육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해 인맥을 쌓을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하라.
•농토를 서둘러 살 일 아니다. 바가지 쓰기 쉽다. 수도권 외의 지역에 있는 농지 구입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 투자가치가 낮을 수 있기 때문이다.
96세 김두엽 화가와 그의 아들, 정현영 화가의 개인전이 서울시 노원구 소재의 더숲 아트갤러리에서 7월 2일까지 열린다.
김두엽 씨는 여든셋에 그림을 시작해 올해로 14년 차 화가다. 2020년 아트스페이스 이지갤러리 초대 개인전, 미담 갤러리 초대 개인전, 생각하는 정원 갤러리 초대 개인전 등 여러 차례 전시회를 열었고, KBS 교양 프로그램 ‘인간극장’, 토크쇼 ‘황금연못’ 등 다양한 방송에 출연했다.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그림과 동떨어진 삶을 살았지만, 우연히 그린 사과 한 알을 시작으로 한국의 ‘모지스 할머니’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김 화가의 그림은 구김살 하나 없이 화사하고 또렷하다.
그가 창작 활동을 본격적으로 이어나간 데는 아들 정현영 화가의 도움이 컸다. 정현영 화가는 추계예술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대한민국미술대전으로 등단해 여수국제미술제 초대전, 광양미술협회전, 동덕아트 갤러리 100人 초대전 등 다수의 개인전과 초대전에 참여했다.
고령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4월, 김두엽 화가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기력이 없을 때도 있지만 붓을 잡고 있으면 힘이 좀 나는 것 같다”며 “느리더라도 천천히, 계속 그려보겠다”고 포부를 밝힌 바 있다.
한편, 자세한 전시 내용은 더숲 아트갤러리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hibition
◇아시아의 또 다른 바다
일정 7월 16일까지 장소 전남도립미술관
남해를 앞에 둔 지리적·문화적 특성을 가진 전남도립미술관은 ‘아시아’의 예술을 생각하며 ‘아시아의 또 다른 바다’전을 열었다. 과거의 바다가 지역의 경계로서 위치했다면 ‘또 다른 바다’는 시공간을 넘어 각기 다른 아시아의 지역을 공유하는 매체가 될 수 있다고 전시는 말한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와 연계한 전시로, 아시아의 바다를 주제로 16명의 한국과 대만, 일본 작가가 참여했다. 전시는 ‘파(波), 바다의 파동’, ‘몽(夢), 바다와 꿈’, ‘초(超), 바다 너머’, ‘경(境), 바다와 경계’ 총 네 개의 섹션으로 구성된다. 전남 신안 출신인 한국 추상회화의 거장 김환기(1913~1974)의 작품과 미디어아트 선구자 백남준(1932~2006)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전통 수묵을 현대화한 대만 수묵화의 거장 리이훙(1941~)과 일본을 대표하는 표현주의 현대미술 작가 나카무라 가즈미(1956~)의 신작도 공개된다. 이지호 전남도립미술관장은 “남도의 남해와 이어진 아시아의 동서남으로 향해 서양과 동양, 어제와 오늘의 바다를 돌이켜볼 수 있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데이비드 호크니 & 브리티시 팝아트
일정 7월 2일까지 장소 동대문디자인플라자뮤지엄 전시1관
한국과 영국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진행되는 전시다. ‘살아 있는 현대미술의 역사’로 통하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 60여 점을 포함해, 영국의 대표 팝아티스트 14인의 오리지널 작품, 판화, 사진, 포스터, 영상 등 150여 점을 감상할 수 있다. 전시의 부제인 ‘스윙잉 런던’(Swinging London)은 1960년대 사회적·문화적으로 급변하는 시기의 활기차고 에너지 넘치는 영국 런던의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다. 역동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영국의 젊은 아티스트들은 광고, 영화, 사진 같은 대중문화 요소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그들의 대담하고 다채로운 작품들은 오늘날의 대중문화와 예술계에도 영감을 준다.
●Stage
◇리어왕
일정 6월 1 ~ 18일
장소 LG아트센터 서울
연출 김시번
출연 이순재, 권민중, 서송희, 지주연, 최종률, 박용수, 임대일 등
2021년 첫선을 보인 연극 ‘리어왕 : KING LEAR’(이하 ‘리어왕’)이 2년 만에 돌아온다. 이순재는 초연에 이어 이번에도 ‘리어왕’ 역을 단독으로 맡아 무대를 책임진다. 88세인 그는 한국 연극사상 최고령 배우일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리어왕을 연기한 배우 중 최고령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리어왕’ 제작사는 이순재를 최고령 리어왕으로 기네스북에 등재 신청할 예정이다. 이번에 마지막으로 리어왕 연기를 펼치는 이순재는 “나의 필생의 작품”이라며 “일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이기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고 소감을 전했다.
◇베르나르다 알바
일정 6월 16일 ~ 8월 6일
장소 국립정동극장
연출 변유정
출연 정영주, 한지연, 강애심, 김희정, 홍륜희, 장보람 등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는 20세기 스페인을 대표하는 시인 겸 극작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희곡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을 원작으로 한다. 스페인 남부를 배경으로 권위적인 여성 가장 베르나르다 알바에게 억압받는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다. 알바의 다섯 딸이 품은 욕망을 열정적인 플라멩코 춤으로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국내에서는 2018년 초연, 지난해 재연을 거쳐 이번이 세 번째 시즌이다. 초연부터 출연하고 있는 정영주와 함께 오디션을 통해 새로 합류한 한지연이 주인공 알바 역을 연기한다.
◇모차르트!
일정 6월 15일 ~ 8월 22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연출 권은아
출연 이해준, 수호, 유회승, 김희재, 선민, 허혜진, 황우림, 민영기 등
뮤지컬 ‘모차르트!’는 볼프강 모차르트의 천재 음악가로서의 운명과 그저 자유로운 인간이 되고 싶은 그의 고뇌를 그린다. 국내에서 2010년 초연됐으며, 이번에 7번째 시즌을 맞는다. 주인공 모차르트 역에 이해준, 수호, 유회승, 김희재를 캐스팅하며 세대교체를 꾀했다. 뮤지컬 ‘엘리자벳’에서 토드 역으로 주목받은 이해준은 오디션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가장 먼저 캐스팅됐다. 아이돌인 수호와 유회승은 안정적인 가창력을 인정받았으며, TV조선 ‘미스터트롯’ 출신인 김희재는 이번에 처음으로 뮤지컬에 도전한다.
본 기사에 소개된 공연을 관람하신 독자분의 생생한 후기를 기다립니다. 채택된 분께는 소정의 상품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 잡지를 보내드립니다. shjlife@etoday.co.kr
김두엽 할머니의 그림 생활은 여든셋의 어느 날, 달력 뒷장에 무심코 그린 사과 한 알에서 시작됐다. “아따, 엄마 솜씨가 보통이 아닌데!”라는 아들의 칭찬에 춤을 추듯 마음 가는 대로 그렸다. 무심한 남편과의 결혼 생활, 끝없이 이어지는 가난과 싸우며 고생스러운 젊은 시절을 보냈지만 ‘그마저도 추억’이라며 밑천 삼는다. 어느덧 아흔여섯의 화가가 된 그는 오늘도 작은 나무 책상에 앉아 모진 세월을 희망으로 바꾸고 있다.
전라남도 광양시 봉강면. 알록달록 물감 칠해진 시골집에는 늦깎이 예술가, 김두엽 할머니가 살고 있다. 그의 그림은 거실, 부엌, 안방 곳곳을 꿰찼다. 완벽한 직선은 아니지만 꼬불꼬불 섬세하게 이어진 선과 과감한 색 조합은 ‘사람 냄새’를 짙게 풍긴다. 여든셋에 그림을 시작해 올해로 14년 차 화가가 된 그는 현재까지 600여 점을 그려냈다. 그동안 수십 차례 전시회를 열었고, KBS 교양 프로그램 ‘인간극장’, 토크쇼 ‘황금연못’ 등 다양한 방송에 출연했다.
그림 그리기 딱 좋은 나이
김두엽 화가는 매일 아침 8시 반, 아침 식사를 한 뒤 어김없이 그림을 그린다. 한번 앉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영감은 지난날의 기억, 일상에서 본 풍경,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 등에서 다양하게 얻는다. 그저 떠오르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손을 움직인다. 택배 일 나간 아들을 기다리며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끄적인 그림이 이토록 인생의 큰 줄기가 될 줄은 예상치 못했으리라.
“아들도 화가예요. 그림을 팔기 위해 그리지 말자는 신조를 지녔죠. 그래서 낮에는 택배 일을 하고, 퇴근하면 틈날 때마다 작업실에 있더라고요. 나는 혼자 있으니까 심심하지. 집에 굴러다니는 연필을 주워 가지고 달력 뒷장에 사과를 그렸어요. 아들이 집에 와서 ‘엄마, 이거 누가 그렸어?’ 그래요. 잘한다, 잘한다 해주니까 신이 났지요. ‘내가 진짜 잘 그리나?’ 싶었어요. 그러다가 읍내 나가서 스케치북을 두 개 사왔어요. 이것저것 그려서 벽에 붙여뒀는데 손님이 우리 집에 와서 보고는 잘 그렸다고 하셨어. 그때부터 기분이 좋아서 그리고 또 그리고 그랬지요.”
그가 창작 활동을 본격적으로 이어나간 데는 아들 정현영 화가의 도움이 컸다. 정현영 화가는 추계예술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대한민국미술대전으로 등단해 다수의 개인전과 기획전에 참여했다. 중견 화가의 눈에도 처음 그려낸 어머니의 사과 그림은 놀랍도록 꼼꼼했다. 배우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계속 그리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 색연필, 물감 등 다양한 색채 도구를 쥐여드렸다. 원색 위주의 과감한 색을 사용하지만 어색하지 않게 어우러졌다.
세월이라는 재료
김두엽 화가는 1928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학교는커녕 공부라는 게 뭔지도 몰랐다. 여성이라는 사실만으로 모든 상황에 제약이 존재하던 시절이었다. 꿈을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해방 다음 해인 1946년 귀국한 뒤 결혼해 아들, 딸을 낳아 길렀다. 너무 가난했던 탓에 그저 굶지 않고 사는 것, 내 가족이 평안한 것, 남편과 다정하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것이 꿈이라면 꿈이었다. 애정 없는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않았고, 생계를 잇기 위한 노동은 계속됐다.
김 화가의 그림은 구김살 하나 없이 화사하고 또렷하다. 모진 시간이었지만 아팠던 과거를 오히려 사랑하고 마음에 품었기 때문일 테다. 시 ‘풀꽃’으로 유명한 나태주 시인은 김두엽 화가의 그림을 보고 영감을 받아 수십 편의 시를 썼고, ‘지금처럼 그렇게’라는 시화집을 펴내기도 했다. 두근거림이 있는 그림이라 이야기하면서 말이다.
“원하는 삶을 산 건 아니었어요. 꽃피는 봄날에 사랑하는 사람과 예쁜 원피스를 입고 나들이 가고, 어스름한 저녁 산책하다 들꽃 한 아름 받고 싶었네요. 지금이라도 내 바람을 그림으로 그려볼 수 있어 좋아요. 괴로웠던 기억도 저편으로 날아가거든.”
최근에는 함께 노년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시니어 컬러링북 시리즈’를 출간했다. 김 화가가 70대 중반부터 시작된 수전증을 그림으로 극복한 것처럼, 동년배들도 손의 감각을 되찾는 기쁨을 느꼈으면 해서다. “참 오래 살았어요. 앞날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말이 참이더라고. 나이 먹어서 그림을 매일 그릴 줄 누가 알았겠어. 기력이 없을 때도 있지만 붓을 잡고 있으면 힘이 좀 나는 것 같고 그래요. 느리더라도 천천히, 계속 그려봐야지. 여러분도 다들 힘냈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