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해지는 늦가을 날씨는 지도의 남쪽을 훑게 만들었고, 일행의 눈길을 잡은 곳은 담양이었다. 시니어들은 인터넷의 사진이나 댓글들을 믿지 않는다. 직접 보고 냄새 맡는 현장 답사를 중시한다. 그렇게 메타세쿼이아 길에 근접해 최근 숙박 중심지로 각광받고 있는 메타프로방스 구역에 짐을 풀었다. 그리스 산토리니처럼 하얀 건물들이 군집을 이루고, 같은 색깔의 다양한 카페들이 입점을 서두르고 있는 곳이었다.
중국산에 밀려 죽제품들이 없어지긴 했지만, 긴 세월 담양의 상징으로 자리 잡아온 대나무숲을 보러 죽녹원부터 찾았다. 하루에 1m 이상 자라 총 30m까지 크는 큰 키의 왕대부터 분죽, 맹종죽까지 다양한 종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그래서 여름에는 주변보다 3~4℃가 낮단다. 이곳에 오니 유난히 더위를 타던 남편을 위해 죽부인을 사오셨던 어머니가 생각났다. 아버지가 매일 껴안고 주무시던 그것의 이름에 하필이면 ‘부인’이 들어가, 어린 마음에 질투가 나기도 했었다.
현장에서의 공부를 통해 이름만 대나무일 뿐 대나무는 나무가 아닌 풀의 일종이라는 것과 1년 안에 다 큰 후에는 계속 딱딱해지기만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안내판들을 읽으며 죽림욕을 할 수 있다는 산책로를 돌다 보니 금방 한 시간이 지났다.
죽녹원에서 나와 바로 길을 건너면 관방제림이다. 관방제는 과거에 관비(官費)로 연인원 3만여 명을 동원해 만든 제방이다. 둑 위로 약 2km에 걸쳐 거대한 풍치림들이 늘어서 있는데 이를 ‘관방제림’이라고 부른다. 추정 수령 300~400년에 달하는 천연기념물들이 이 구역 안에만 185그루가 있다. 모두 이름표(00호)를 달고 어린 인간들을 압도하고 있다. 왕복 한 시간 정도를 걸으면서 아름드리나무들을 껴안고 세월의 냄새를 맡다 보면 허기가 느껴진다. 그럴 때는 다리 건너 ‘국수거리’로 이동해 멸치국물국수 한 사발로 속을 데우면 된다.
여행지에서의 늦가을 아침 식사는 뜨끈한 것으로 해야 온몸의 기가 돌기 시작한다. 그래서 TV조선 프로그램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이 추천한 곳을 찾았다. 연로하신 주인장 부부는 점심까지만 식당을 운영한단다. 그렇지만 밥상을 받자마자 오랜만에 탄성들이 튀어나왔다. 전라도 밥상이라 은근히 기대를 했는데 그것을 훨씬 뛰어넘고도 남는, 다양하고도 맛깔 나는 반찬들 때문이었다. 전날 저녁, 석쇠에 구워 먹음직스럽게 나올 떡갈비를 기대하며 인터넷 검색 1위인 큰 식당에 갔다가, 햄버거 패티 같은 맛에 실망했던 우리는 신음에 가까운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다음 날 아침도 그곳에서 먹었다. 법성포의 친정에서 직접 올린다는 조기를 비롯해 손수 마련한 반찬들의 맛을 다시 보고 싶으니 우리를 위해서라도 오래 사셔야 한다는 부탁을 드리며 식당 문을 나섰다. 마침 식당 앞에서는 오일장(2일, 7일)인 담양전통시장이 열렸다. 하지만 죽제품들은 사라졌고 살아 움직이는 토끼와 닭 그리고 검은 고무줄 같은 예전의 일용품들만이 과거의 모습을 가늘게 전하고 있을 뿐이었다.
담양의 관광 명소인 메타세쿼이아 길은 50년 전 가로수 조성 시범사업 당시 8.5km의 국도변에 5000그루의 묘목들을 심어 조성했다. 원산지가 중국인 메타세쿼이아는 30m 이상까지 곧게 뻗으며 자라 시원한 기상이 남다르게 보일뿐더러 이국적인 경관까지 자아낸다. 어제 본 왕대까지 연이틀, 목을 빼 올려다볼 정도로 키가 큰 담양의 키다리들을 만나며 걸었다. 매표소부터 걸어 왕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한 시간 남짓이지만 카메라 렌즈를 유혹하는 황홀한 가을 색깔은 시간 개념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진한 가을의 풍취가 일행들의 가슴속 깊이 박혔는지, 상경하는 내내 큰 가로수만 보이면 “저기도 메타, 여기도 메타”라며 소리칠 정도로 메타세쿼이아의 잔상은 강렬했다.
오후에는 담양호를 걸었다. 일명 가마골은 영산강의 발원지인데 이곳에서 흘러나온 물은 담양호에 모인다. 담양호 국민관광지에서 시작하는 둘레길은 두 시간 정도 걸으면 된다. 호수 둘레에 설치된 목재 덱은 크고 작은 물고기들과 물속에 투영되는 마지막 단풍도 가까이 감상할 수 있게 도왔다.
풍경에 빠져 느리게 걷고 있는데 친구 사이로 보이는 늙은 남자 둘이 뒤따라왔다. “네가 이렇게 나를 잡으니 나도 힘들고 너도 불편하잖아. 서로 요렇게 잡아보자고!” 돌아보니 몸이 불편한 두 사람이 상대방의 손을 꼭 잡고 휘청거리며 걷고 있었다. 순간 가슴이 아려왔지만, 성치 않은 몸에 여기까지 와서 가을 호수를 같이 볼 수 있는 친구가 있는 행운아들이라고 마음을 고쳐먹으니 마음이 좀 편해졌다.
소쇄원 방문 일정까지 끝내고 상경하는 길, 백수 중 하나가 못내 아쉬운 속내를 드러내며 유혹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여기까지 왔는데, 언제 여기를 또다시 오겠느냐!”라는 초식을 펼친다. 여기에 홀라당 넘어간 일행은 내장산 백양사로 차를 돌려 연장 여행에 돌입했다. 고즈넉하면서 깊은 가을의 마지막 담양 풍경은 그렇게 시니어들의 가슴에 담겼다.
‘007‘은 내 삶과 같이해왔다. 첫 작품 '007 살인번호' 이후 단 한 편의 영화도 놓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본부가 있는 런던은 물론이고 스톡홀름, 코펜하겐 같은 전 세계의 모든 유명 도시들을 돌아다니는 007을 보며, 지도 위에서 지명 찾기에 빠졌던 나는 자연스레 지리학을 전공으로 택했다. 그런데 우리 세대의 영원한 007인 숀 코네리가 지난달 31일 91세로 타계했다. 그리고 첫 작품 ‘007 살인번호’에서 실제로 사용했던 ‘발터 PP’가 2억 원이 넘는 가격으로 경매에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원래 007의 주 무기는 소형 권총인 ‘발터 PP’였다. 근사한 영국제 맞춤 양복 속에 품위 있게 총을 소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보도들이 ’숀 코네리 007’에 대한 추억을 상기시켰고 ‘다니엘 크레이그 007(이하, 최근 007)’에 대한 불편한 비교로 이끌었다.
본드와 여인들
영화가 시작되면 007이 임무를 멋지게 완수하는 '맛보기' 액션 신이 끝나고, 관객을 향해 총을 쏜 후 주제가와 함께 여체(반드시 나신의 그림자)를 이용한, 그야말로 예술적인 오프닝이 항상 이어졌다. 현재까지도 가슴이 설레는 장면인데, 그 장면들이 결여된 '최근 007'은 내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삭막한 분위기는 영화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원래 007은 악당의 여자들 마음을 얻어 그녀들의 도움으로 위기를 탈출하는 법이다. 그런데 그런 작업(?)을 할 때 얼굴의 상처는 치명적이다. 아무리 격렬한 격투가 있었을지라도, 늘 말끔한 얼굴의 신사로 카지노에 나타나 여자를 유혹해야 진짜 007이다. ‘007 골드핑거’를 비롯해 그동안 악당의 여인들은 목숨이 위태로워진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007의 치명적 남성미에 모두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 007은 남자들의 또 다른 로망이었다. 그런데 ‘최근 007’은 스파이 세계의 현실을 반영한다는 미명하에 동네 불량배같이 상처 입은 험한 얼굴을 보인다. 그러니 ‘최근 007'에서는 여자가 우리 007을 배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007의 순수한 법칙
그동안 우리는 화면에 얼굴은 안 보인 채 커다란 반지를 끼고 흰 고양이를 쓰다듬던 스펙터를 만나왔다. 007은 핵폭탄이든, 세계전쟁을 일으키든, 전 세계적 조직을 갖춘 조직과 대결해왔다. 그런데 '최근 007'은 겨우 범죄 자금 세탁소 직원이나 개인적 원한을 가진 이들과 대결한다. 그러다 보니 멋진 본드카 같은 비밀병기들도 등장하지 않는다. 영국산 애스턴마틴 자동차에, Q가 개발한 로켓을 장착해 뒤를 따라오는 악당들을 처치하던 자동차 추격 신은 그 시대의 청소년들을 실신시켰다. 임무 부여 시 지급되는 비밀병기들을 007이 언제 어떻게 쓸까 하는 궁금증이 영화 내내 관객들을 이끌었다. 오죽하면 그 시대에 유행했던 가방 이름이 ‘007 가방’이었겠는가!
그런데 '최근 007'은 최첨단 비밀병기 없이 시카고 갱단의 기관단총 켈리 수준으로 품위 없게 기관총까지 메고 나와 영화 ‘친구’ 속 고교생들처럼 뛰어다닌다. 그렇게 바쁘게 뛰어다니니 여인과 사랑할 여유가 없다. 본드걸이 털북숭이의 숀 코네리의 가슴에 안긴 베드 신도 안 나온다. 그렇다고 우리의 007은 절대 플레이보이가 아니다! 영화 한 편마다 반드시 한 여자만을 사랑한다. 다만 우리가 여러 편의 시리즈물을 보면서, 여러 명의 본드걸을 대하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 뿐이다. 007의 능글맞은 농담에 가볍게 응수하는 머니페니도 노련미 넘치는 여비서였을 뿐이다.
‘최근 007’은 여자들을 막 대한다. 악당이 본드걸을 인질로 잡고 007에게 여자를 살리고 싶으면 총을 버리라고 할 때, 모든 007들은 일단 총을 버린 후 후일을 도모해 여자를 구한다. 어린 시절부터 그 수많은 영화의 유사한 장면들을 보며, '남자로서의 답답함'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왜 꼭 영화 속 여자들은 인질로 잡히고 남자 주인공은 항상 목숨을 내놓으며 총을 버려야 하느냐 말이다.
그러나 이게 바로 영화의 법칙 수준을 초월한 '영화의 헌법'이다. 이것이 마음에 안 들면 개헌을 위해 세계인이 투표를 해야 할 정도로 절대적인 것이다. 그런데 '최근 007'은 여인을 죽게 만들면서까지 그냥 쏴댔다. 그것도 무표정하게 말이다. 엄청난 충격이었다. 스파이의 임무보다도 사랑하는 여인의 생명이 우선이라는 '007의 그 순수한 법칙'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저건 우리의 007이 아니다!'라는 마음이 영화를 보는 내내 나를 괴롭혔다. 마치 이 시대가 007을 오염시킨 듯했고, 나도 공범자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당신이 더 007을 보고 싶으면서도 “1등을 해야 007을 보여준다”라고 말씀하셨던, 나보다 더 내 기말시험 점수에 가슴 졸이셨던 돌아가신 아버지를 느끼러 다음 007 영화를 또 보러 갈 것이다.
가을 야구가 성큼 다가왔다. 그래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각 팀들은 일정에 따른 컨디션 조절을 위해 선수들을 세심하게 관리한다. 그중 감독들이 가장 신경 쓰는 것은 투수 운용이다. 야구는 투수 놀음이기 때문이다.
투수가 공격한다
투수는 공을 던지고 타자는 공을 배트로 때린다. 하지만 알고 보면 거꾸로 투수가 타자를 공격한다고 볼 수 있다. 타석에 들어서면 타자는 육체적 위협을 느낀다. 강속구가 날아든다. 쉭~ 하고 공기를 가르는 소리도 나고 중간에 멈췄다가 다시 날아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 꿈틀거리기도 하고 휘어지기도 한다. 그런 공에 맞으면 시퍼렇게 멍이 들고 붓는다. 몇 번 맞으면 공을 치기보다 일단 안 맞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투수는 일부러 타자에게 위협구를 던질 수도 있다. 그러나 화가 난 타자가 날아오는 공을 때려서 투수를 맞춘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게다가 투수 마운드도 평지보다 25cm 정도 높다. 그러니 높은 마운드에서 2m 신장에 가까운 정통파 투수들이 긴 팔을 뻗어 던지게 되면 2층에서 내리 꽂는 느낌이 든다.
다음으로는 승률이다. 보통 3할을 치면 매우 우수한 타자이고 2할 타자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다섯 번 싸우면 타자가 겨우 한 번 이긴다는 얘기다. 만약 타자가 출루를 하더라도 견제구로 아웃시킬 수 있는 기회까지 있다. 그리고 매번 공을 던질 때마다 중계 화면을 채우는 이도 투수다. 그러니 야구에서는 투수가 주인공일 수밖에 없다.
반면 포수는 투수가 던지는 공을 받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단순히 공만 받는 것이 아니라 야구 경기에서 가장 다양한 역할을 한다. 상대 타자를 분석하고 기억해 투수에게 사인을 내고, 수비수들의 위치를 교정해주며, 주자에게 견제구를 날린다. 무거운 보호 장비를 착용하고 땀을 흘리며 경기 내내 쭈그리고 앉아 있어야 한다. 파울볼에 맞아 멍이 들고, 홈에 쇄도하는 주자와 부딪혀 다치고, 강속구를 받느라 성한 손가락이 없다.
투수에 4번 타자
어린 시절 동네 야구에서는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은 이유들로 인해 투수 포지션이 가장 인기가 좋았다. 승패를 결정짓는 주인공이었고 가장 재미있는 자리였다. 반면에 심심한 자리는 외야수들이었다. 여간해서는 공이 외야까지 날아가는 경우가 없어서 우익수의 경우 글러브가 배당되지 않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러니 야구 경기를 계획하고 친구들을 소집하는 역할을 하는 친구는 무조건 투수에 4번 타자 자리를 노렸다.
그런데 포수는 주인공도 아니었고 힘만 들었으며 위험하기까지 했다. 보호 장비도 없던 시절, 달랑 마스크 하나 쓰고 나머지는 운에 맡겼다. 그래서 배려심이 많거나 튼튼한 친구들이 포수 역할을 했다. 기피하는 자리라서 일단 역할이 한 번 주어지면 안경알이 깨지거나 파울볼에 급소를 맞아 쓰러지기 전까지는 좀처럼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붙박이 포수로 전락
어린 시절 나도 투수에 4번 타자였다. 그리고 직장이 학교였으므로 평생 학생들과 야구를 할 때도, 클럽에서 야구를 할 때도, 당연히 투수에 4번 타자였다. 그런데 평생을 지켜온 내 정체성이 갑자기 무너졌다. 바로 손자들이 내 자리를 빼앗았기 때문이다. 이 녀석들은 무조건 자기네들이 투수이고 4번 타자를 해야 한다. 그렇게 나는 단번에 포수로 전락했다. 그것도 타격 기회 한 번 없는 수비 전용 붙박이 포수다. 손자가 던지면 다른 손자가 친다. 공이 멀리 가면 주워오는 것도 당연히 내 몫이다. 그러니 포수에서 외야수 역할까지 하는 동선을 오가야 한다. 한강 공원에서 손자가 친 굴러간 공을 주우러 가려면 뙤약볕에서 왕복 200m를 뛰어야 한다. 게다가 비위도 잘 맞춰야 한다. 잘못을 지적하면 안 되고 무조건 박병호 같은 홈런타자, 류현진 같은 투수라고 응원해줘야 한다. 아무리 학생용 안전 야구공이라 할지라도 파울볼에 맞으면 아프지만 즐거운 분위기를 깨면 안 되니 참아야 한다. 또 계속 쭈그리고 앉아 공을 받아야 하는 것도 고역이다. 어쩌다 내가 한 번 타자로 나선 적이 있다. 큰손자가 던진 공을 때려서 멀리 보냈다. 나는 손자들이 홈런에 열광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들은 공연히 공을 멀리 보내 주워오는 시간 동안 자기네들을 심심하게 만든 나에게 싸늘한 시선을 보냈고 그 후론 타격의 기회가 전혀 주어지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투수다!
공원에서 활발하게 소리 지르며 야구를 하면, 다른 애들이 다가와 손자들에게 내가 누구냐고 묻곤 한다. 그럴 때면 애들이 “우리 할아버지야!”라고 으쓱대며 대답한다. 그러면서 손자들은 다른 애들 앞에서 갑자기 커브와 슬라이더 그립의 차이를 보여 달라고도 하고 타격 자세를 교정해 달라고도 한다. 그렇게 애들이 몰려 시합이 형성되면 큰손자가 어린 시절의 나처럼 투수에 4번 타자로 나선다. 나는 그제야 비로소 조용히 안전망 뒤로 빠져 앉는다.
육십 너머까지 손자들과 야구를 한다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고 마음먹지만, 어깨는 쑤시고 무릎은 천근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3대를 아우르는, 가족이라는 팀을 이끄는 투수라고 다짐하며 오늘도 글러브에 왁스를 먹인다.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19로 인해 느리게 살고 있는데 웬 청산도까지 가냐는 친구를 설득해, ‘서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곳’ 해남으로 달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우리나라의 남쪽 기점을 해남현으로 잡고 있다. 그리고 육당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서는 해남 땅 끝에서 서울까지 천 리, 서울에서 함경북도 온성까지를 이천 리로 잡아 우리나라를 삼천리금수강산이라고 했다.
천 리를 달려왔으니 시장기가 만만치 않았다. 입이 짧아 늘 음식 선택에 불만을 표시하는 친구의 입을 닫게 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뒤에서 갈구어대야 자신의 존재감이 확인된다고 믿는 그의 특징은, 얄밉게도 절대 자신이 식당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래서 해남매일시장의 상인들에게 추천을 받아 찾아간 곳은 낙원식당. 노부부가 의논해가며 당일의 식단을 짜는데, 대표 음식은 간장게장이다. 반찬 하나하나를 설명하면서 손님들과 소통하는 부부의 모습이 정겨웠다. 소박하면서도 어느 것 하나 소홀치 않은 백반의 반찬들에 홀딱 반한 불평쟁이는 일행의 동의도 없이 다음 날의 간장게장까지 미리 예약을 했다. 식사 후, 시간에 따라 색깔이 바뀌는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완도의 야경은 멀리서 점멸하는 어선의 불빛들이 배경을 이루면서 입체감을 더했고, 한낮에 어수선했던 밤 부두에는 희미한 백열전구들이 말라가는 생선들을 지키고 있었다.
주막의 바다 감상
청산도는 해남에서 배로 들어간다. 청산도행 배에 차량을 싣고 승선할 경우 주의해야 할 점은 차량 운전자와 다른 승객들이 분리되어 매표하고 승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줄어든 지금, 은퇴자의 조용한 평일 여행이 오히려 청산도의 잔잔함과 잘 어울릴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배에 올랐다.
청산도는 한국 영화사상 최초로 100만 관객을 동원한 서편제(1993년)의 촬영지다. 푸른 산 푸른 바다 황톳길이 어우러진 곳에서, 소리꾼과 의붓딸 송화가 진도아리랑에 맞춰 어깨춤을 추면서 5분 30초짜리 롱 테이크 장면을 연출했다.
이런 ‘느림의 쉼터’인 청산도에는 차가 별로 없다. 차가 필요하지 않아서다. 차로 다니면 이 풍경과 바람, 소리들을 가슴과 귀에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촬영지에서 신흥리로 내려가 돌담마을을 걷다가 다시 아리랑을 부르며 몽돌해변으로 넘어가려면 목젖을 적시고 가야 한다. 촬영지에 있는 주막에서 바다를 감상하며 청산도 전통막걸리에 꽃파래해물전을 곁들이면 금세 불콰해지지만 오르는 취기는 바닷바람이 부드럽게 달래준다. 약간 신맛이 나는 막걸리도 산뜻하게 깨서 이후 일정에 방해를 주지 않는다.
길옆에 초분이 보였다. 시신을 이엉으로 덮어두었다가 2~3년 후 뼈를 골라 땅에 묻는 일종의 풀무덤이다. 고기잡이 나간 사이 부모가 죽으면 바로 돌아와 장례를 치를 수 없었기에 어촌에서 생긴 일종의 이중 장례 풍습이라니, 고단했을 어촌의 삶이 와 닿는다.
최고의 전망, 범바위
초분을 지나 청산도에서 가장 경치가 좋다는 범바위 전망대를 찾았다. 먼 옛날, 신선에게서 십장생에 들어갈 동물들을 소집하라는 명을 받은 범이 자신이 그 명단에 없다는 사실에 삐쳐서 사슴을 죽였다. 그래서 신선의 노여움을 샀고, 그 범이 바위로 변한 곳이 바로 범바위다. 자연 상태에서 음이온이 가장 많이 방출된다는 이곳의 이름은 범(호랑이)+유(有)+다(多)라고 한다. 그 이름을 붙인 그 노력이 참 가상하다. 이곳 범바위 부근에는 자철석이 많아 자력 작용이 활발해 실제로 나침반들이 엉뚱한 곳을 가리킨다. 그야말로 ‘자기장을 뿜어내는 신비의 섬 청산도’인데 근육의 적절한 이완과 수축을 유도하고 뇌의 특정 회로를 제어해 행복한 마음이 들도록 만든단다.
나이가 들면서 일출보다 일몰을 즐기게 되었다. 일출은 새벽에 움직이는 것 자체가 번거롭고 몇 번 보니 감흥도 덜하다. 그런데 일몰은 아무 때나 친숙하게 볼 수 있지만 찬찬히 느끼면서 본 지는 오래되었다. 그래서 '노을이 아름다운 관광지'로 유명한 청송해변을 찾았다. 해변 옆에 같이 앉았던 젊은이들은 노을이 지기 시작하자마자 사진 몇 장을 찍고 자리를 떴다. 안 보이던 해가 수평선 너머에서 나오는 일출보다 덜 반갑고 그래서 감탄사도 안 나온단다. 역시 젊은이다웠다. 노을은 ‘해가 뜨거나 질 무렵 하늘이 햇볕에 물들어 벌겋게 보이는 현상’이다. 광학적인 원리가 똑같기 때문에 사진만으로는 구별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일출은 빛이 뻗어 나오는 형상인 반면 일몰은 빛이 수렴되는 형상이라 부드러운 느낌이란다. 그래서일까. 일몰은 일출 못지않게 빨갛지만 뜨거워 보이지는 않는다. 그리고 일출은 해가 커다랗게 보이다가 작아지지만 계속 하늘 위에 떠 있다. 그러나 일몰은 그야말로 그냥 '꼴까닥' 넘어간다. 참 빠르게 사라진다. 우리네가 가는 순간도 마찬가지이리라. 꽃도 사람도 해가 질 때처럼만 곱게 가면 좋겠다.
‘느리게 걷기’는 느긋하게 걸으며 상념을 떨치거나 일념에 빠져드는 행위다. 하지만 그 행위조차 개의치 않는 게 걷기의 궁극적 경지라고 한다. 그 경지에는 다다르지 못했지만 청산도 바닷가를 느리게 걸으면서 그렇게 ‘코로나 갑갑 생활’을 잠시 잊었다.
올 초, 전화기 너머로 흥분을 감추지 못한 친구의 음성이 들려왔다.
“나도 드디어 할아버지가 된다! 그러니 손자들이 가장 많은 네가, 할아버지 되는 법 잘 가르쳐주기 바란다~”
그의 외아들이 워낙 늦게, 더구나 연상과 결혼해서 손자 보기를 거의 포기했던 친구다. 그래서 그동안 손자들 사진 보여주기에는 1만 원, 구체적인 자랑 설명에는 2만 원의 범칙금을 수령하며 심술을 부렸었다. 그러나 그렇게 들뜬 목소리로 시작한 전화들이 다음과 같은 사연들로 인해 점차 하소연으로 변해갔다.
태명 대며 갈비 뜯기
일단 ‘임신 축하금’이라는 명목의 지출이 시작되었다. “이거 라떼는 없었는데…”라는 말로 어물쩍 넘어가기에는 이 항목이 워낙 광범위하게 전파된 눈치였다. 그래서 ‘지들도 나이 먹어가지고 애 만드느라고 애 많이 썼으니 보신이라도 시키자’ 하는 마음으로 두둑한 봉투를 마련했다. 그 후 손자를 보려면 출산 전부터의 추억이 중요하다며 카카오스토리를 억지로 깔아준 아들 녀석이, 며느리가 산부인과를 다녀올 때마다 초음파 사진들을 보내왔다. 이런 것은 꿈도 못 꾸었는데 참 좋은 세상이다 싶었다. 옆의 각도에서 보니 코가 높아서 예비 아빠를 닮았단다. 태아의 초음파 사진으로 인물 모양새까지 분석하는 것을 보니 요즘 젊은이들은 참 재주가 좋다고 생각했다.
좀 지나더니 ‘뱃속의 아기’라고 부르지 말고 ‘콩딱’이라는 태명을 부르란다. 심장이 ‘콩콩’ 잘 뛰면서 자궁에 ‘딱’ 붙어 잘 크라는 의미라고 한다. ‘들찬’(들에 가득 찬)과의 경합에서 선택된 태명이란다. 이 태명 부르기가 태교의 시작이라고 하면서 예비 아빠 엄마는 안 불러도 될 상황에서도 연신 태명을 일부러 부르며 부모 연습을 했다.
어느 날 전화가 왔다. 갈비가 드시고 싶단다. 그것도 그 비싼 한우 갈비를. 절대 며느리가 먹고 싶은 게 아니라 ‘콩딱님’께서 드시고 싶단다. 그런 어리광을 또 언제 받아주겠나 싶어 ‘내 돈 내고’ 한우갈비집을 오랜만에 갔다.
예비 할머니는 더 신나고
예비 할머니는 신이 났다. 할머니라는 호칭이 싫다던 그는, 백화점 쇼핑의 대의명분을 확보한 기회를 살려 유아용품점들을 쓸고 다니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아들의 다음과 같은 자극적인 문자가 한몫했다. “그것도 안 해주시며 할머니 되려고 하심? ㅋ”
우선 예비 아빠가 어린 시절 입었던 배냇저고리는 이제 너무 낡았다며 수십만 원짜리 저고리를 골랐다. 그 외에 아기 옷을 세탁하기 위한 아기용 세탁기도 따로 샀다. 어른 옷과 함께 세탁하면 균에 오염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유모차는 친구가 10년째 타고 다니는 승용차 가격과 비슷했다. 그런데도 아들 녀석은 “제 아들의 첫 차잖아요. 요즘은 승차감보다 하차감(내려서 보는 흐뭇함)이 더 중요하다고요”라며 외국산 명품 브랜드를 고집했다. 임부용 영양제도 전달했고 산후조리용 기장 미역을 현지에 주문했으며, 사진관에서 찍은 민망한 며느리의 임신부 사진을 실눈 뜨고 봐야만 했다.
그런데 며느리가 노산이라서 제왕절개를 해야 했다. 예비 할머니는 시를 잘 받아서 태어나야 한다며 사찰에 가서 택일을 받고 축원기도를 부탁했다. 21세기 대명천지에 말이다. 그러나 아들과 예비 손자를 뒤에 업은 예비 할머니에게는 거칠 것이 없었다. 내친김에, 돌림자를 딴 이름은 친가에서 지어줘야 한다며 작명소까지 일찌감치 다녀왔다.
양수가 갑자기 터져 원래 잡은 날보다 이틀 먼저 수술을 하고 콩딱이가 태어났다. 그런데 코로나19 상황이라 면회가 아예 되질 않았다. 1인당 4만 원짜리 백일해 예방주사를 맞아야 아기를 볼 수 있다고 해서, 노부부가 가정의학과까지 다녀왔는데. 퇴원하면 사진관에서 또 출산 기념사진을 찍을 거라는 아들에게, 병원비와 산후조리원 비용에 보태라면서 봉투를 건네주고 돌아섰다.
그는 액수를 차치하고서라도 합리성이 결여된 지출 항목들과 쓸데없는 과정이 많다는 것이 못마땅했다. 정부 지원의 산후도우미 시스템이나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아기용품 대여 서비스는 찾아보지도 않고, 육아휴직을 하면 수당이 적어질 것 같아 유아용 카시트 사는 게 걱정이 된다며 눈치를 보는 아들 녀석이 얄미워지기까지 한다고 했다. 그런데 아기 사진을 보며 친구들이 “어? 손자가 자네랑 판박이네” 했더니 입이 귀에 걸리면서 “그렇지! 식구들도 다 그렇다고 하네~” 하며 밥값을 계산했다.
아기 울음소리의 대가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은 0.92명으로, 2018년 0.98명보다 더 낮아졌다. 1970년 출생통계 작성 이후 최저치이고, 평균이 1.63명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가장 낮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저 아기 울음소리 듣는 것만으로 모든 것들이 너그럽게 수용될 수 있다. 또한 ‘우리 때는 없었던 것’들이 서먹하고 수용하기에 어색하지만, 그것들은 나름대로의 이유와 호응이 있었기에 존재 가능한 것들이라는 관점도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애들을 낳아 다시 아비 노릇을 해야 한다고 상상을 해보자. 할아버지인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기꺼이 통장 잔고 감소를 참아내야 한다. 그래서인지 요즘 그 친구는 늦게 배운 조부(祖父)질에 날 새는지 모르며, 손자 사진 범칙금 납부의 큰손 노릇을 기꺼이 하고 있다.
비대면을 뜻하는 언택트(untact)를 넘어 한발 더 나아간 ‘온택트'(ontact) 시대가 다가왔다. 코로나19 확산이 장기화되면서 등장한 새로운 사회 흐름이다. 온택트란 온라인을 통한 외부와의 연결을 뜻한다. 즉,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진 사람들이 온라인을 통해 외부와 연결, 각종 활동을 전개하는 새로운 경향을 말한다. 이러한 추세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시니어들도 온택트 환경으로 전환되는 일상에 적응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노노(老老) 배우기’가 필요하다.
믿을 건 가족밖에 없어라
컴퓨터 프로그램을 배우느라 학원에 다녔는데 20명의 수강생 중 내 나이가 가장 많았다. 처음에는 아들보다 어린 선생님을 받들어 모시는 재미도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들은 나를 모시느라 불편해했다. 게다가 수강생들이 컴퓨터 다루는 기초 지식들을 이미 갖추고 있어서인지 강의 속도가 매우 빨랐다. “이렇게 꾸며야 스웨그(swag) 가득!”, “그런 배경 구성은 개쩐다” 등등 다양한 그들만의 속어도 난무했다. 강사는 내게 “못 따라가시는 것 같으니 따로 쉬는 시간에 질문을 받겠다”며 자존심을 긁었다. 특별한 꿀팁을 제공한다는 강사의 말에 속아 참석한 뒤풀이는 절대 낄 자리가 아니었다. 자기네들끼리의 네트워크 구성에 여념이 없는 그들에게 강의 내용을 질문할 여지는 없었다. 역시 학원은 이익집단이다. 믿을 건 가족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가족, 너희들마저…
그런데 아니었다. 일단 결혼한 아들과 만나는 게 만만치 않았다. 내가 필요해서 만나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어렵사리 만나 궁금한 걸 물으니, 요점부터 정리해 빨리 질문하란다. 그러고는 “어~ 아직 이것도 모르세요? 허 참” 한다.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다. 아들이 고등학생일 때, 내가 영어를 가르치며 하던 말이다. “또다시 너에게 부탁하지 않도록 노트에 좀 적어야 하니 천천히 가르쳐 달라”고 했더니 한숨을 내쉬며 한마디한다. “적어봐야 소용없어요. 시스템 이해 못하고 그냥 필기만 하면 뭐해요!”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다. 아니꼽고 치사함을 넘어 부자지간의 연까지 끊어지는 거 아닌가 싶어 아들에게 배우기를 포기하고 사위가 좀 나을 것 같아 도움을 청했다. “다 가르쳐드리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요. 그러니까 노트북 두고 가시면 원하시는 것들 다 작동되도록 해드릴게요.” 예의 바른 말처럼 들리는데 더 아프다. 학원이 차라리 나았다. 가족이 더 아프게 한다.
젊은이들의 고충
코로나19 때문에 줌(Zoom)을 통한 화상회의를 주관했다. 구성원은 모두 50대 이상이었다. 나이대를 감안해, 사전에 줌 사용 방법 안내 후 휴대전화로 보내준 링크 주소를 누르기만 하면 가능하도록 조치를 했다. 그런데 회의가 시작돼도 회원들이 안 들어왔다. 전화를 했더니 “꾸욱~ 누르라는 설명은 도대체 몇 초를 누르라는 거냐?”고 묻는다. 젊은이들의 “허걱!”이라는 표현에 백번 공감했다. 또 영상은 뜨는데 음소거 해제 버튼을 못 찾는 회원들에게 전화를 거니 모두들 그렇지 않아도 문의하려고 했단다. 묻기가 쑥스러웠던 게다. 그렇게 회의 시작까지 30분이 더 걸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개인별로 다 살펴줘야 했다. 엄청난 인내가 필요했다. 시니어의 자존심, 부끄러움 등을 이해하는 나도 이렇게 힘든데, 젊은이들은 오죽하랴 싶었다.
‘노노 배우기’로 극복
온택트 시대에는 시니어들이 피교육자가 되어 젊은이들이 얘기를 잘 들어야 하지만 경청은 엄청난 자제력이 필요하다. 앞서의 예처럼, 자녀들조차도 부모에게 인내심을 발휘하기 어렵다. 그러니 처음부터 날로 먹으려면 안 된다. 나도 뭔가 노력했다는 근거를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일단 인터넷을 통해 ‘ㅇㅇ 하는 방법’을 치면 동영상까지 자세하게 나온다. 어느 정도 공부 후 “그중 어느 부분이 이해가 안 된다”고 구체적으로 물어봐야 한다. 그리고 답변을 잘해주면 학원 수강료라 생각하고 자식들에게 좀 써야 한다.
하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노노 배우기’다. 다행히 주변에, 답답해서 물었다가 상처를 받고 극복한 친구들이 꽤 있다. 넷플릭스로 영화 보고 인스타그램으로 영상 올리고 줌으로 화상회의하는 친구들이다. 그래서 친구들이나 시니어들이 수십 명 이상 있는 밴드나 단톡방에 어려움을 올리면 금방 해결된다. 뭔가 가르쳐주고 알려주고 싶어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친구들이 항상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막막함과 뭘 어려워하는지를 잘 안다. 그래서 천천히 친절하게 잘 가르쳐준다. 다만 뭘 물어보면 필요 없는 사항까지 너무 장황하게 설명하는 단점도 있다. 그렇지만 최소한 자존심을 긁거나 상처 주는 일은 없다. 그러니 온택트 시대, ‘노노 배우기’로 극복해보자.
오늘따라 노트북으로 숙제하는 초등학교 6학년 손자가 나이보다 훌쩍 커 보인다. 온택트 시대가 맞는 것 같다.
새치기 싸움
어릴 적, 동회에 가서 급히 등초본 떼는 심부름을 할 때, 어머니께서는 담배 한 갑을 내 손에 쥐어주셨다. 이른바 동회 직원에게 줄 ‘급행료’였다. 그 시절, 서류 한 통 발급받으려면 몇 시간이 걸렸다. 새치기를 해서라도 빨리 처리받고 싶은 마음에 작은 뇌물을 바친 것이다. 은행에서도 대기 줄을 섰다. 여기서도 급한 용무가 있는 사람들은 새치기를 했고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국민들 수준이 갑자기 높아졌다. 새치기는커녕 집에서 안 읽던 잡지까지 읽으며 소파에 우아하게 앉아 순서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더 이상 새치기 시비에 삿대질하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바로 ‘번호표’ 뽑는 기계 덕분이었다.
싸움질해야 어학 실력 는다!
18개월의 외국생활을 하는 동안, 현지에서 어학원을 다닌 적이 있다. 그동안은 문법 위주로만 공부를 해 교재 해석은 되는데 회화 실력은 영 늘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현지인과 연애를 하면 어학 실력이 금방 는다는 솔깃한 얘기를 하는 이도 많았다. 하지만 오십을 넘긴 유부남에게 그런 기회는 그림의 떡이었다. 그런데 기회가 왔다. CCTV가 없는 사거리에서 신호위반으로 경찰관과 시비가 붙은 것이다. 억울하고 당황스러웠던 나는 언성을 높였다. 험한 표정에 큰 몸짓, 그리고 뭐라 내뱉는 한국어 욕설은 경찰관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결국 경찰서까지 갔다. 그 후로 몇 주간 한인회의 도움을 받아가며 경찰서를 들락날락했다. 서류 작성이나 대답을 잘못하면 큰일이 나니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웬일인가. 그 일이 있고 난 뒤 영어가 막 들리기 시작했다! 영어로 시비를 가렸더니 실력이 팍 늘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로 유학 온 외국 학생들은 불리하다. 싸워서 시비를 가릴 기회가 적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전국 어디든 깔려 있는 CCTV라는 기계 덕분이다.
차고 넘치는 증거들
어린 시절, 셜록 홈스와 괴도 뤼팽 시리즈는 우리의 추리력과 상상력을 자극했다. 범인을 잡기 위해 아가사 크리스티는 ‘(쥐)덫’을 놓았고 형사 콜롬보는 ‘안심시켜 질문하기’ 신공을 펼쳤다. 그렇게 그들은 치밀하게 수사 계획을 짜거나 영리하게 피해가며 서로를 시험했다. 그리고 결국 범인이 꼼짝 못하거나 자백할 정도의 증거들을 찾아내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그 과정들이 흥미진진했다. 그런데 지금의 영화나 드라마 속 너무나 많은 증거들은, 휴대전화로 촬영된 동영상이나 녹음파일, 그리고 위치추적 자료로 끝난다. 그러니 요즘의 너무 순한 범인들은 증거를 들이대면 곧바로 인정, 반항하거나 싸우려 들지 않는다. 차라리 휴대전화 안 쓰는 범인이 그리울 정도다!
다툼이 줄어든 사회
불 구경, 홍수 구경보다 더 짜릿한 싸움 구경도 사라지고 있다. 그동안 가장 흔한 길거리 싸움 풍경은 교통사고 현장에서 발생하곤 했다. 서로 상대방이 잘못했다고 우기며 욕설과 삿대질을 하다가 몸싸움으로 발전하는 광경들이, 이번에는 블랙박스라는 기계로 사라졌다. 사고가 나면 보험회사 직원들이 나타나 블랙박스를 회수해 조용히 가버린다. 그러니 당사자들도 조용하다. 서로 멱살잡이를 하며 원수지간으로 발전해야 구경꾼들이 재미있는 법인데, 오히려 서로의 안위까지 묻고 밋밋하게 그냥 헤어진다.
이렇게 작은 기계들이 시스템의 개선을 가져오고, 그것들이 모여 오늘날 우리 국민의 수준을 형성했다. 지금처럼 소소한 일상의 갈등들이 줄고 있는 때야말로, CCTV와 블랙박스로도 안 찍히는 우리 사회의 숨어 있는 큰 갈등을 해결해야 할 시기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 국민의 기대수명과 건강수명 간 차이가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프면서 오래 사는 수명의 증가
지난 6월 18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9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우리나라 국민의 기대수명은 82.7년으로 10년 전(79.6년)보다 3.1년 증가했으며, 전년과는 동일한 수준을 보였다. 남자와 여자의 기대수명 차이는 감소 추세로 그 격차가 1980년 8.5년에서 2017년 6.0년까지 좁혀졌으며, 2018년에는 2017년과 동일한 수준이었지만 여전히 남자의 수명은 여자보다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병 기간을 제외한 건강수명은 기대수명이 증가하는 것과는 다르게 2012년 65.7년에서 2018년 64.4년으로 오히려 점차 감소하고 있으며, 기대수명보다 18.3년 짧게 나타났다. 이러한 ‘아프면서 오래 사는 수명’의 증가는, 건강수명을 늘리는 보건 대책 및 운동 및 여가생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2018년 우리나라 국민의 사망 원인 1위는 암으로, 10만 명당 154.3명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병명별로는 심장질환(62.4명), 폐렴(45.4명), 뇌혈관질환(44.7명) 순이었다.
나이 들수록 스트레스 덜 받아
한편 연령별 스트레스 인지율의 경우는, 나이가 들수록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19세 이상 성인 중 일상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느낀다고 응답한 스트레스 인지율은
2018년 27.3%로 전년보다 1.8%p 감소하였다. 성별 스트레스 인지율은 여자가 29.6%, 남자가 24.9%로 여자가 남자보다 스트레스를 많이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별로는 19∼29세(35.7%) > 30대(34.3%) > 40대(28.1%) > 50대(22.8%) > 60대(21.3%) > 70세 이상(16.8%)으로 나타나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스트레스 인지율은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베이비붐(1955~1963년생) 세대의 맏형격인 1955년생들이 노령인구(만 65세)로 편입되기 시작하는 올해, 주된 일자리 퇴직 후 느끼는 삶의 만족도를 조사한 책이 나왔다. 한국고용정보원(원장 나영돈)은 6월 2일, ‘베이비부머의 주된 일자리 퇴직 후 경력경로 및 경력발달 이해를 위한 질적 종단 연구(6차년도)’ 보고서를 발간했다.
2014년부터 6차에 걸친 그간의 조사들은, 중장년층의 안정적인 노후 설계와 사회 패러다임 변화에 대비할 수 있는 능력 향상을 위한 정책 수립의 기초 자료를 제공한다. 이번 연구는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한 후 생산직 일자리로 재취업한 42명의 베이비부머를 표본으로 선정한 후 지난 2014년부터 2019년까지 6년간의 심층 인터뷰 결과와 변화를 분석했다. 또 사례 분석을 통해 인생 후반기의 삶을 위한 요소들을 밝히고 만족스런 삶의 공통된 특징들을 제시했다.
보고서의 사례들
사례자 A(62세) 씨는 대기업에서 26년 근무하고 임원으로 퇴직한 후, 공사 현장 쇠파이프 운반, 대형마트 상하차를 거쳐 공공기관 시설보안직으로 재취업했다. 그는 “정년퇴임 후, 처음에는 사회적으로 왕따를 당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회사라는 온실을 잊고 근로의 가치를 신성하게 보기 시작했다”며 “생활철학을 바꾼 뒤 일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고 밝혔다.
B(59세) 씨는 반도체 제조업 회사인 대기업에서 30년간 회계 관련 업무를 담당하며 해외법인 CFO로 근무하다 두 차례 임원 승진에서 밀려난 뒤 퇴직했다. 이후 2015년부터 혼자 스몰비어 호프집을 창업해 4년간 운영하고 있다. 그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꼭 돈이 많아야 행복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돈은 기본 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만 벌면 된다고 마음먹으면서 좀 편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상업고등학교 졸업 후 투자신탁회사와 증권사에서 총무·영업직 등을 거쳐 퇴직한 C(62세) 씨는 자격증을 취득해 6년째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갑작스럽게 퇴직했을 때 자녀들은 아직 독립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얼마 동안은 그토록 버틴 회사에서 ‘손에 쥔 것 하나 없이’ 나와 허탈하고 힘들었다. 하지만 이후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 돈 욕심도 내려놓고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하며 가장의 역할을 다 하려고 노력하면서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며 “아들이 ‘아빠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문자도 보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퇴직 후에도 만족하는 사람들의 특성
보고서는,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한 후에도 만족스러운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겪은 공통된 경험 과정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1. 퇴직에 따른 심리‧정서‧관계‧경제적 위기를 겪는다.
2. 변화에 대한 적극적 수용을 통해 과거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다.
3. 현 상황에 맞는 목표를 설정하고 경제적 필요를 충족하면서 자신을 위한 삶을 지향한다.
4. 위의 과정을 통해 가정과 사회에서 존재감을 회복한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외출을 자제하다 보니, 은퇴한 남편들이 아내와 함께 드라마를 시청하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선 아내의 드라마를 잘 받아들이며 몸을 낮춰 조심할 필요가 있다.
아내의 법정
아내가 아침드라마를 보고 있을 때, 은퇴한 남편의 언행에 대한 ‘아내의 법정’ 판결은 단호하다. “저 탤런트는 누구냐?”, “ 왜 저렇게 머리끄덩이 잡고 싸우냐?” 등의 질문은 아내의 몰입을 저해하는 하는 범죄에 해당한다. “그렇게 궁금하면 방송국에 직접 전화하지 그래!”라는 빈정거림을 유발하기 쉽다. 그래도 드라마에 관심을 보이는 행위이기에 조금 봐줘서 유기징역이다. 하지만 몰입 정도가 아니라 시청 자체를 방해하면 중죄에 해당한다. 그래서 “과일 좀 깎아 달라”, “커피 타 달라”고 요구하면 안 된다. 당장 무기징역감이다. 마지막으로 “저걸 드라마라고~ 쯧쯧, 저런 건 나라도 쓰겠다”라고 드라마를 무시하는 언행은 시청자인 아내까지 한꺼번에 모욕하는 발언이므로 법정 최고형에 해당하는 사형!이다
은퇴하기 전 아침드라마를 전혀 볼 수 없었던 남편들은, 설거지도 미뤄둔 채 몰입하고 있는 아내와 드라마가 낯설기만 하다. 그래도 같이 몇 번 봤더니, 이건 너무 뻔한 내용이다. 재벌 집안과 독신인 이모나 고모가 등장하고 불륜과 삼각관계 속에서 교통사고로 인한 기억상실증, 그리고 출생의 비밀은 기본에다가 최근에는 환생까지 첨가되었다. 모든 비밀은 열어놓은 문이나 복도에서의 엿듣기로 전달되고, 각종 증거들은 녹음과 동영상으로 통쾌하게 밝혀지며, 등장인물들의 심리는 배우들의 자세한 독백으로 친절하게 전한다.
아내들의 추리력과 집중력
아내들은 구역질하는 장면을 보면 임신했다고 하고, 부모가 뒷목을 잡으면 이제 자식들이 양보할 거라 하고, 악당이 회개하면 종영이 가까워졌다고 추리력을 발휘한다. 비밀이 밝혀지려는 순간 갑자기 전화가 오거나 다른 인물이 등장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도, 아쉬워하거나 짜증내지 않는다. 출생의 비밀과 관련된 사항은 모성애라는 단어로 다 해결이 된다. 방송작가와 완전히 한통속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여기부터가 중요하다. 그런 드라마를 왜 보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면 은퇴생활이 괴로워진다. 아내와 수십 년을 함께한 드라마들을 절대 무시하지 말라는 얘기다. 여행을 가서도 아침드라마를 본 후에야 펜션을 나서는 아내에게 살빼기 운동이라도 같이하면서 드라마를 보라고 충고하는 건, 드라마에 대한 충성도와 집중력을 얕잡아보는 행위다.
논리적 분석이 아니라 공감
남자들은 드라마를 논리적으로 분석한 후 이해하려 든다. 여자들은 드라마의 상황에 공감할 줄 안다. 그러니 이해하지 못해도 아내의 분위기는 깨지 않는 게 좋다. 아내가 악당을 욕할 때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같이 분개해야 한다. 다음 장면 전개를 맞힐 때는 그저 감탄해야 한다. 작가를 이해하려는 자세도 갖춰야 한다. 설사 주인공을 죽이더라도 깊은 뜻에서 그랬을 거라고 믿어야 한다.
이런 드라마들에 공감하려면 ‘제작비를 많이 투입한’ 주말드라마에서 출발해, 수목드라마→ 일일 저녁드라마→일일 아침드라마로 단계를 높여나가야 한다. 그러다 보면 아내와 같은 공감 능력이 점차 생긴다. 초기단계에선 다음 회차가 궁금해지고, 방송일이 다가오면 설레고, 예고편 장면도 기억하게 된다. 드라마가 종영되면 허탈해지고 살맛도 없어진다. 심해지면 다큐멘터리가 몹쓸 프로그램으로 느껴지고, VOD로 놓친 드라마까지 보게 된다. 차기 드라마 소개가 나와도 지금까지 봐왔던 드라마를 배신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친다. 그러다가 후속 드라마에 또 울고 웃는다. 내가 살아온 인생과 똑같다.
이렇게 아내와 드라마로 공감하고 소통하면, 애완동물이 없어도 부부간 대화 소재가 샘솟는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을 때 드라마 대사를 인용하면 설득력까지 얻을 수 있다. 또 여생은 권선징악과 사필귀정, 인과응보의 세계로 들어가, 단순하고 편안해진다. 아침드라마는 30분이지만 그 영향력은 결코 짧지 않음을 잊지 말자. 그러니 아직도 아내와 맞장구치기보다 논리적 분석으로 맞짱 뜨려는 남편들은 필자도 책임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