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한국문화원연합회(이하 연합회) 제32대 회장으로 취임한 김대진 신임회장을 만났다. 김대진 회장은 선대부터 성남지역에서 살아온 원주민으로 판교 낙생농협 조합장과 판교신도시개발추진위원장, 성남시의원, 성남시의회 의장 등을 역임했다. 김대진 회장은 취임 일성으로 “연합회가 우리 문화발전에 보다 기여할 수 있도록 ‘문화를 만드는 그릇’으로 만들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전국 232개 지방문화원이 강력한 네트워크를 형성해 영향력을 확대하고, 정부와의 유대관계를 더욱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그가 정부와의 관계를 지목한 것은 연합회 예산 삭감의 여파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국회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는 110억 원이 넘는 연합회 예산이 0원으로 전액 삭감된 것에 대한 지적이 있었고, 지역 소멸을 앞당길 것이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이후 올해 연합회 예산은 대폭 삭감된 54억 원 수준으로 확정됐다.
정치적 경험 연합회 발전에 활용하고파
그는 당면 과제 중 하나로 지역문화재단과의 역할 중첩 등으로 인한 갈등을 해소하겠다고 했다. 각 지자체에서 지역문화재단을 앞다투어 설립하면서 지방문화원과의 사업영역 중복, 예산 배분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어, 연합회 내부에서는 간과할 수 없는 현안으로 지목하는 부분이다.
특히 지역문화재단의 경우 선출직인 지자체장이 재단 이사장을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예산 확보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 그에 반해 지방문화원은 별도의 ‘지방문화원 진흥법’까지 제정돼 근거가 분명함에도 되레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김 회장은 평가했다.
김 회장은 “지방문화원이 왕성한 활동을 하기 위해 지역 정치인들이나 단체와 관계를 형성하면 지방선거 과정에서 색깔론에 휘말리기도 하고, 당락 결과가 예산 확보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고 말하고, “이러한 환경에 의한 결과는 지역문화재단에 비해 영세한 지방문화원 종사자들의 근무조건에서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불합리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제도적 지원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진 회장은 또 “정부 포상 등 여러 부분에서 타 유사 단체와 비교했을 때 형평성을 갖추고, 위상이 뒤쳐지지 않도록 안팎으로 나설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이런 자신감은 과거 이력에서 나온다. 1976년 일명 ‘5.4 조치’로 성남시의 남단녹지가 그린벨트 준용지역으로 묶여 지역주민들이 재산권 행사를 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김 회장은 판교신도시개발추진위원회를 대표해서 지금의 판교 테크노벨리를 건립하는 물꼬를 텄다. 지역에서 아직까지 회자되는 ‘화형식’을 주도하기도 했고, 시의원 자격으로 정치적 협상까지 이끌었다. 강경책과 온건책을 두루 활용하며 정부를 상대로 협상을 이끌었던 경험을 연합회의 위상 재고에 적극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방문화원 창의적 사업 활성화 할 것
김 회장은 그간 연합회가 진행해온 다양한 사업 중 지역 문화유산의 디지털 자료화 등을 중대한 성과로 꼽았다. 그는 “지역의 자료를 수집하고 보존하는 일은 지방문화원의 주요한 역할 중 하나며 디지털화를 통해 학자나 동호인 뿐만 아니라 K컬처를 즐기는 외국인들과도 쉽게 공유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 것은 연합회만이 할 수 있었던 일”이라고 평가하고, “앞으로는 각 지방문화원이 창의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 다양한 세대가 동참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지방문화원의 위상과 활동 강화를 위한 동기부여를 위해 “지역 행사에 전면에 나서는 일은 가급적 없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주목은 지역에서 받도록 하고 김 회장은 살림에 주력하겠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김 회장은 “고령화 시대를 맞아 노인 여가문화 향상을 위한 다양한 사업들을 고민하고, 지방문화원이 지역 간 문화 격차를 해소하는 중심이 되어 지역 소멸 위기의 대안으로 떠오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청룡의 해다. 김대환(60)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은 육십갑자를 한 바퀴 돌아 생애 또 한 번 청룡의 해를 맞았다. 서예가 취미인 그는 매년 초 휘호를 쓴다. 올해의 휘호는 세심자신(洗心自新). ‘마음을 닦아 새로워지다’라는 의미다. 잘 닦아낸 개인의 삶을 사회와 나누고 싶다는 소망도 담겼다. 그리고 그 소망을 노사발전재단을 통해 이뤄보고자 한다.
지난해 봄 김대환 사무총장은 노사발전재단과 인연을 맺었다. 2022년 9월 중앙노동위원회 상임위원 퇴직 후 반년 만에 제7대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으로 일터에 복귀한 것이다. 고용노동부 행정관리담당관•국제협력관•근로기준정책관 등을 지내며 회갑 생의 절반은 ‘고용노동부’의 명함을 지니고 살았다. 덕분에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인 노사발전재단의 업무가 낯설지는 않았다. 익숙함은 장기로 발휘하되, 늘 새로움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던 나날 속 어느덧 한 해가 저물었다.
“작년 봄 취임식 때 직원들과 인사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새해가 밝았네요. 취임 후 5개 지사, 13개 중장년내일센터, 6개 차별없는일터지원단을 방문해 직원 간담회를 열어 업무 현황을 들어봤어요. 재단의 운영 방향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가 됐습니다. 그러면서 재단 고객들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해봤죠. 결국 ‘소통과 협업’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마침 2011년 고용노동부 행정관리담당관 시절 만들었던 ‘한 권으로 통하는 고용노동 정책’이 떠올랐어요. 지금까지 발행되는 책인데, 한 권으로 고용노동부의 정책과 제도를 살펴볼 수 있죠. 재단에도 그런 매개체가 필요하다고 여겼고, ‘한 권으로 보는 노사발전재단 사업’을 만들어 배포했습니다.”
김 사무총장이 강조하는 소통과 협업의 대상은 본부 내 부서들을 비롯해 지사 및 유관기관, 고객까지 아우른다. 가령 사내에서 부서 단위로 함께 일할 때 다른 부서의 업무도 알아야만 효과적인 협업이 가능하다. ‘한 권으로 보는 노사발전재단 사업’은 전반적인 사내 업무를 한눈에 조망하는 일종의 참고서 역할을 해내고 있다.
“재단 직원들뿐만 아니라 유관기관이나 고객인 기업과 노동자들에게도 유용한 자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재단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하는 일을 더 손쉽게 알리고, 찾는 발걸음도 늘릴 수 있다고 봐요. 지원책이 있어도 알아보기 힘들면 유명무실하잖아요. 또 직원 간 공감의 장 형성을 위해 직원 소식지 ‘공감레터 : 우리는…’도 매주 발간하고 있습니다. 나름 지난해에는 소통 면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냈다고 보고, 올해는 협업 시스템을 더 강화하는 노력을 기울일 계획입니다.”
평생현역 사회를 위한 일터 혁신 필요해
지난해 6월, 김 사무총장은 2022년 지역 단위 총괄 조직으로 신설된 5개 지사에 1~3급 직원 4명을 지사장으로 발령하며 기능 정상화를 꾀하기도 했다. 그밖에도 중앙노동위원회, 한국어촌어항공단,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한국해운조합 등과 업무 협약을 맺으며 사업 연계 및 확장에 총력을 기울였다. 기관 간 협업 사업 중에는 ‘청춘문화공간’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고용노동부와 문화체육관광부의 협업으로 노사발전재단과 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뜻을 모아 전국 13개 중장년내일센터(구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2023년 명칭 변경)에 청춘문화공간을 조성한 것이다. 청춘문화공간은 재취업을 희망하는 중장년이 한 공간에서 고용과 문화 서비스를 동시에 누리게끔 지원하고 있다.
“일자리뿐만 아니라 여가·문화생활이 겸비돼야 활기찬 노후가 가능하다고 봐요. 때론 그런 여유 시간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직업에 대한 영감을 얻기도 하죠. 과거보다는 일자리가 더 다양해졌고, 취미를 살려 소득을 얻을 기회도 많아졌잖아요. 퇴직 후 뭘 할지 고민이라면, 이런 강의를 통해 평생 일자리를 구상하는 계기를 마련해보셔도 좋겠어요.”
2025년 초고령사회를 앞둔 현재. 은퇴 이후에도 평생 일자리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대다. 이는 개인의 영역에서 그칠 일이 아니다. 기업과 정부 차원에서도, 사회적으로도 고령 인력 활용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30년 가까이 공직에 몸담으며 고용과 노동에 관련한 현안을 다뤄온 김 사무총장 역시 같은 고민을 하던 터였다.
“OECD는 2018년 고령층 미취업 인구 중 25%가 취업하면 2050년에 1인당 GDP가 11%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는데요. 2023년 국내 고령층 미취업자 636만 명 중 3분의 1이 장래 일하기를 원했습니다. 고령층 취업자의 93%는 계속 일하기를 희망했고요. 고령화가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할 수 없는 상황인 거죠. 퇴직한 중장년을 취업으로 연결하기 위한 노사정 모두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봅니다. ‘평생직장’보다는 ‘평생현역’이라는 맥락에서 중장년에 대한 지속적인 직업 능력 개발과 취업지원 시스템을 마련해나가야 해요. 기업에서도 고령층이 일하기 쉬운 작업환경을 조성하고 유연근무 등 다양한 근무 방식의 도입을 고려해야 합니다. 일터에도 고령화에 따른 혁신이 필요한 셈이죠.”
고령 인력이 지닌 가치, 허비하지 않아야
상당수 기업이 코로나19를 겪으며 근무 방식에 변화를 감행했다. 그러나 체계를 구축하지 못해 난항을 겪는 사업장이 적지 않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사발전재단에서는 작업환경 및 고용문화 개선, 장년 고용안정 체계 및 평생학습 구축 등에 대한 일터혁신 컨설팅을 무료로 시행중이다. ‘재취업지원 서비스 운영 가이드라인’도 제작해 기업 상황에 맞게 사용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결국 고령 인력 활용의 실마리는 기업에서 찾아야 한다는 게 김 사무총장의 고견이다.
“고령 인력 활용에서 중요한 것은 경영진의 의지라고 생각합니다. OECD에 따르면 고령자는 경험과 지식 활용뿐만 아니라 청년과의 기술 보완을 통해 팀 성과 및 기업 전체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기업은 고령자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일할 의지와 능력을 갖춘 숙련된 인재’라고 인식하고, 다양한 연령의 노동력을 통합적으로 사용함으로써 기업의 성과를 제고해야 합니다.”
기업에서 채용 시 연령차별을 철폐하고 다양한 연령과 경험 및 전문성에 기반한 고용문화를 장려해야 한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50세 이상 고령자에 대한 연령차별은 2018년 한 해에만 미국 경제에 8500억 달러의 손실을 발생시켰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또한 그는 일본 고용정책 사례도 주목했다.
“일본에서는 ‘생애현역사회’를 기본 뱡향으로 한 고령자 고용정책이 이뤄지고 있어요. 정책의 성공 요인 중 하나는 기업이 고령자 고용연장을 위한 고용확보조치 노력의무 및 다양한 조성금 제도를 통해 아주 오랜 기간 단계적으로 의무화했다는 겁니다. 그런 토대를 만든 덕분에 법정의무를 만들었을 때도 기업이나 노동자에게 부담 없이 작용할 수 있었던 거죠.”
아울러 김 사무총장은 일터혁신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사업주 입장에서는 어렵게 느끼실 수도 있겠는데요. 일터혁신은 결코 거창한 일이 아닙니다. 중소기업에서도 노사가 함께 각 기업의 상황에 맞게 공동의 목표를 수립하고, 근로자들이 중심이 되는 참여적 활동을 통해 조직과 제도, 문화와 관행을 바꾸려 노력한다면 충분히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어려움이 있다면 우리 재단의 서비스도 이용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개인의 인생이 사회의 쓸모가 되도록
김 사무총장 역시 재단에 몸담으며 우리 사회 고령 인력 활성화와 일터혁신을 위한 지원책 마련에 지속적으로 힘쓸 계획이다. 아울러 임기를 다한 이후에도 ‘평생현역’으로의 삶을 위해 개인적인 노력을 펼쳐가고자 한다.
“중앙노동위원회 상임위원을 퇴임하고, 평소 찾던 속리산 법주사에 딸린 한 암자의 주지스님을 뵈러 갔어요. 당시 스님께서 말씀하시길 ‘이제까지 공직에 있으면서 사회를 위해 일했는데, 앞으로는 보너스 인생을 산다고 여기고 더욱더 본격적으로 사회를 위해 봉사하라’ 하시더군요. 일단 재단에 머물면서 그 소임에 최선을 다할 테고요. 그 경험까지 아울러서 제가 지닌 것들을 사회에 잘 전수하고 나누고 싶습니다.”
그는 자신뿐 아니라 우리 사회 수많은 중장년이 스스로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나누는 기쁨을 누리길 바랐다. 과거에만 의존하기보다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의 자신을 잘 돌보고 닦아나가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에 이런 구절이 나와요.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결국 죽음에 이르면 생애 전체가 사라지는 거잖아요. 그러니 살아 있는 동안 자기가 쌓아온 것들을 사회에 쓸모 있게 나누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봐요. 현재의 저로 예를 들면 지나온 60년의 삶과 더불어 앞으로의 여생도 녹아 있는 셈이죠. 그 삶은 나라는 개인뿐 아니라 가깝게는 가족, 친구, 동료들에게 영향을 끼쳐요. 멀게는 지면을 통해 이 인터뷰를 보는 독자들에게도 자그마한 생각을 던져줄 수 있고요. 그런 의미를 되새기며 나의 과거, 미래, 현재를 아우르는 완연한 삶을 잘 닦아나가야겠습니다.”
△노사발전재단은?
고용노동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전국에 13개 중장년내일센터를 운영한다. 중장년층의 생애경력설계, 재취업 및 창업 등 일자리 관련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기초역량 증진 교육 ‘내일부스터’, 일대일 심층상담 방식으로 개인의 특성을 반영하여 경력설계 컨설팅을 제공하는 ‘개인별 경력개발서비스’ 등 중장년 대상 체계적인 경력 관리를 지원한다. 만 40세 이상 중장년이라면 평생현역 활동을 위한 전직·재취업 지원, 산업별 특화서비스, 사업주지원 패키지, 청춘문화공간 등 다양한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
2010년 삼성은 갤럭시 S1을 선보이며 스마트폰 시장을 흔들었다. 이때 삼성전자에서 일하던 서영철 스프링소프트 대표는 복지관에서 오려낸 신문지로 학습하고, 콩자반을 젓가락으로 일일이 옮기던 노인을 보며 생각했다. ‘디지털 시장의 발전에 어르신도 동행해야 하지 않을까.’ 서 대표의 따뜻한 시선이 해피테이블을 탄생시켰다.
스프링소프트에서 개발한 해피테이블은 인지 능력 향상과 시니어 여가활동 증진을 위한 기능성 게임 스마트 테이블이다. ‘노인용 디지털 콘텐츠가 없고 어르신이 즐길 제대로 된 여가 프로그램이 없다’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고민한 결과물이다.
게임으로 즐기는 인지 향상 선순환
스프링소프트는 어르신에게 해피테이블을 소개할 때 인지 향상의 기능을 알리기보다 “그냥 게임 한번 해보시라”고 말한다. 이재현 스프링소프트 대리는 “어르신들이 교육을 받거나 숙제를 하는 형태의 일에 ‘난 환자가 아니’라고 거부감을 나타내는 편”이라며 “숙제나 교육이 아니라 해피테이블을 여가 생활처럼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인지 능력이 향상되기를 바랐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해피테이블에는 크게 게임, 건강 체조, 인지 평가 게임, 레크레이션, 영상 자료실 콘텐츠가 있다. 인지 향상 기능성 게임은 50개가 있으며 경쟁, 협동, 힐링, 학습 4가지로 나뉜다. 어르신의 인지 능력과 취향에 따라 맞춤형 게임 진행이 가능하다. 테이블은 32인치와 43인치 두 가지로 최대 4명이 동시에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앉으면 끝에서 끝까지 손이 닿지 않는 크기이다 보니 협동 게임의 경우에는 “거기, 거기 눌러요!”라며 자연스럽게 대화하게 된다.
인지 평가 게임은 중앙치매센터에서 제공하는 인지선별검사(CIST)를 바탕으로 내레이션과 캐릭터를 이용해 이야기 형식으로 진행하도록 개발했다. 기존 지면 검사가 아니라 게임 형태로 진행하면 결과가 나오는 것으로, 인지 8대 요소와 치매 위험도를 평가할 수 있다. 결과 데이터는 스프링소프트가 제공하는 관리자 페이지로 전달되며, 평가를 토대로 부족한 인지 요소를 강화할 수 있는 해피테이블 게임을 추천한다. 이 대리는 “게임과 평가를 반복하면서 인지 능력을 향상하는 것이 우리가 제시하는 ‘해피테이블 솔루션’이며, 스프링소프트가 지향하는 선순환 구조”라고 말했다.
해피테이블은 전국의 치매안심센터, 복지관, 주야간보호센터, 요양원, 경로당 등 320여 개 기관에 520대가 설치돼 있다. 서울시의 경우는 모든 치매안심센터와 시립노인종합복지관에 도입됐다. 기관에서 관리자가 맞춤형 인지 관리를 하기 위해 회원가입을 진행한 회원은 약 6000명이며, 비회원까지 포함하면 약 1만 명의 어르신이 해피테이블을 사용하고 있다. 이재현 대리는 “이용자 게임 플레이 시간이 약 1만 6700시간에 이른다”면서 “어르신을 위한 인지 향상 콘텐츠는 ‘지속성’이 중요한데, 게임 형태로 즐기다 보니 인지 훈련을 지속할 수 있고 인지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어르신들의 호응을 얻어 지난해 9월에는 장충체육관에서 서울시노인종합복지관협회 주최로 해피테이블을 이용한 ‘스마트 경진대회’가 열렸다. 48개 회원 기관의 2500여 명의 어르신이 참가해 ‘두더지 혼내주기’, ‘풍선 터트리기’, ‘생선을 잡아라’ 세 가지 게임을 진행하고 심사 후 서울시장상과 협회장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어르신들의 열띤 반응으로 현장이 뜨거웠다는 후문이다.
현재 나온 해피테이블 3.0버전 다음으로 출시 예정인 3.5버전에는 ‘같이 하기’와 ‘영상 자료실’ 기능이 추가된다. ‘같이 하기’는 멀티 게임(장기・오목・고스톱)으로 기관끼리 혹은 기관 내에서 기기와 기기를 온라인으로 연결, 상호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영상 자료실’에서는 유튜브를 볼 수 있다. 기관에서 교육을 위해 영상을 사용할 때 장소를 옮기거나 TV•컴퓨터와 같은 다른 기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영상 활용이 가능하고, 어르신이 보고 싶은 영상을 찾아보며 여가를 즐기는 것도 가능하다. 또한 향후에는 기관을 방문하기 어려운 어르신들도 집에서 해피테이블 콘텐츠를 즐길 수 있도록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향후 선보일 예정이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은 서울시 보람일자리 사업을 통해 인생의 재도약을 꿈꾸는 4050 세대를 응원하기 위해, ‘모두 위한 내 꿈, 다시 뛰는 4050’ 캠페인을 펼칩니다. 본지는 서울시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함께한 보람일자리 사업을 통해 사회 곳곳에서 공공에 기여하고 있는 중장년들을 소개합니다.
“A 학생이 지난 학기보다 조금 더 산만해졌어요. 아이의 관심 영역이 확대됐네요.” 보람일자리 참여자는 ‘산만하다’는 말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다. 특수교사라는 일이 한 아이의 중요한 발달 과정을 함께하는 여정이라는 걸 다시 곱씹게 됐단다. 성내중학교 특수학급 권오성 교사의 이야기다.
특수체육교육을 전공하던 당시 장애 학생들과 체육 프로그램을 하면서 특수교사가 되어야겠다 마음먹은 권오성 교사. 2022년 성내중학교에 첫 발령을 받아 신규 교사로 한 걸음을 뗐다. 막막했던 학교 생활이지만 보람일자리 참여자를 만나 아이들을 바라보는 관점이 더 넓어지는 경험을 했다.
특수학급 아이들의 자신감을 높이다
날씨는 쌀쌀하지만 햇살은 따사로웠던 날, 성내중학교 특수학급을 방문했다. 리모델링을 한 지 얼마 안 돼 넓고 쾌적한 공간이었다. 한쪽에는 다양한 스포츠 기구들이 놓여 있었다. 권오성 교사는 이곳에서 7명의 아이들과 생활하고 있다. 교내에 특수교사는 한 명이기 때문에 2022년 첫 발령을 받고 학교에 왔을 때 막막함을 느꼈다. 학교의 행정 업무는 학교 선생님들께 도움을 많이 받았고, 학급 운영에 대해서는 동료 특수교사 선후배들에게 하나하나 물어가며 해결했다.
“현장에서 하나씩 배워나가는 게 중요했어요. 사례를 공유하는 연수에 최대한 참여하고, 특수교사를 하는 학교 후배들과 한 달에 한 번 사례를 나누는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는 보람일자리로 오신 참여자 선생님께도 많이 배웠어요.”
성내중학교는 특수학교가 아니기 때문에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이 관계를 맺으며 생활한다. 특수학급에 오는 학생들은 평소 다른 아이들과 함께 학급에서 수업을 받다가 국어쪾영어쪾수학 시간에는 특수학급으로 이동해서 권 교사와 수업을 한다. 권 교사는 특수체육을 전공한 점을 살려 다양한 운동발달 수업을 하고 있다.
“신체를 활용한 스포츠를 하면 아이들 정서에 좋고, 자신감을 높여줘요. 자신감 있게 생활하다 보면 학업에도 좋은 영향을 줍니다. 저희 학생들이 실질적인 학급 구성원으로 인식하고 소속감과 책임감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보람일자리 참여자 선생님도 아이들과 가벼운 활동을 하며 함께 놀아주세요.”
지난해 ‘학습도움반’이라는 특수학급 이름을 ‘개별학습실’로 바꿨다. ‘도움’을 받는다는 인상이 특수학급 아이들을 수동적으로 만든다는 판단에서다. 아이들의 학교 적응과 성장을 위해 고려해야 할 점도 많고, 실천해야 할 것들이 많은 상황이었다. 신규 교사로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보람일자리 참여자를 만나 함께 아이들을 지도할 수 있었던 건 그에게 ‘큰 행운’이었단다.
아이들의 성장을 바라보는 관점
권오성 교사는 보람일자리 참여자와 함께 일하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는 관점’을 꼽았다. 장애 아이들이 자라는 과정에서 보이는 행동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성장하고 있구나’라고 표현하는 법을 배웠다.
“참여자 선생님이 영국에서 테솔 석사 과정을 마치고 국내에서 교육용 교재 제작 등 다양한 교육 관련 경력을 갖고 계셨어요. 경험으로 다져진 혜안을 바탕으로 단순히 수업 보조만 해주신 게 아니라 아이들 개별 특성까지 엑셀 파일에 꼼꼼히 기록하고 저에게 공유해주셨어요. 어느 날은 한 학생이 1학기보다 산만한 모습을 보였는데, 그냥 문제라고 인식하는 게 아니라 ‘이 아이의 관심 영역이 확대됐다’고 표현하시더라고요. 어떤 아이의 변화가 있을 때 관찰하고 각 아이의 성향에 맞는 수업 아이디어도 제안해주셨죠.”
특수학급 교실 칠판 앞자리에는 참여자의 업무 공간이 있다. 일주일에 두 번, 화요일과 수요일 수업을 마치면 참여자는 자리에서 아이마다 관찰한 일지를 꼼꼼하게 적는다. 그리고 출근한 날 아침 30분씩 해당 내용을 권 교사에게 공유했다.
“아이의 성향을 관찰한 내용에 따라서 제가 어떻게 지도하면 좋을지 조언도 많이 해주셨어요. 예를 들어 한 아이는 동화책으로 배우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겠다면서 동화책을 가져오시기도 했어요. 굉장히 조심스럽게 여러 아이디어를 공유해주셨죠. 참여자 선생님이 일주일에 두 번 나오시는 덕에 저도 수업 시간표를 좀 더 리듬 있게 구성할 수 있었고요.”
교육 과정이 정해진 다른 학급과 달리 특수학급은 개별 맞춤형 수업이 필요하다. 혼자 고민하다 보면 아무래도 한계에 부딪힐 때가 많았는데, 참여자의 꼼꼼한 피드백 덕에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반영하고 수업을 더 풍부하게 할 수 있었단다. 또 혼자였다면 채우지 못했을 영역을 참여자가 연륜으로 보완해주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도 참여자에게 친근감을 가지고 편안함을 느낀다고 했다.
“꼭 교육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따뜻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진심으로 돌봐주신다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아주 작은 변화라도 교사로서 알아차리는 게 굉장히 중요한데, 섬세한 관찰과 기록이 아이들 성장에도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앞으로도 보람일자리 참여자 선생님과 함께 아이들의 학교 생활을 돕고 싶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밝힌 2024년 달라지는 주요 정책은 청년과 취약계층, 기업, 지역을 중점적으로 지원한다. 그 가운데 중장년층과 관련된 문체부의 정책으로는 고령자의 문화 활동 확대와 지역발전을 꼽을 수 있다.
고령자 문화 활동 지원 확대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은 ‘문화예술패스’ 시범 운영, 청년 창업 지원 등이 있다. 고령자를 대상으로 달라지는 점은 여행 편의를 높이는 정책을 확대·시행한다는 점이다.
고령자는 거동이 불편하므로 장애인과 함께 관광취약계층으로 분류된다. 문체부는 “관광취약계층을 위한 무장애 관광 연계성 강화 사업 신규 권역 1곳을 선정하고 법주사(보은군)와 삼악산 케이블카(춘천시) 등 ‘열린관광지’ 30개소를 추가 조성(현재 162개소)한다”고 밝혔다.
열린관광지 사업은 관광지의 보행로, 경사로 정비 등 이동 불편을 해소하고 장애 유형별로 즐길 수 있는 체험 콘텐츠 등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누구나 편리하고 즐거운 여행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목표다.
대표적으로 장애인 특화 여행 코스로 유명한 곳으로 연곡 해변 캠핑장 유니버설디자인 카라반,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춘천 의암호 킹카누, 산 정상까지 휠체어로 오를 수 있는 대구 비슬산 군립공원, 타포니 지형을 촉각과 해설로 경험할 수 있는 진안 마이산 도립공원(마이산 탑사) 등이 거론된다. 이와 같은 곳이 추가 조성되는 것으로 고령자의 관광이 훨씬 편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가 하면, 문체부는 ‘이야기할머니’ 사업도 확대한다. 이야기할머니는 여성 어르신들이 유아교육 기관을 직접 방문해 삶의 지혜가 담긴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사업이다. K-전통문화 콘텐츠 육성을 목표로 2009년 시작했다. 2023년 기준, 전국에 3000여 명의 이야기할머니가 8700여 개 유아교육 기관에서 약 52만 명의 유아들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줬다.
문체부는 교육부와 협의를 통해 올해 ‘이야기할머니’ 사업을 초등학교 방과 후 학습 과정인 ‘늘봄학교’에서도 시행한다. 2023년 하반기에 32개교에서 시범 운영했으며, 2024년에는 100개교로 대폭 확대한다. 어르신에게는 문화예술인으로서의 활동 기회, 초등학생에게는 인성 함양의 기회를 각각 제공한다. 일거양득인 셈이다.
여행 지원으로 지역 발전 꾀해
우리나라의 지방 지역은 지속되는 저출산 추세에 고령화 문제까지 더해지며 인구 감소와 소멸 위기에 직면해 있다. 문체부는 정부의 ‘지방시대’ 선포에 발맞춰 지역 관광을 활성화하고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제공해 위기에 적극 대응한다.
먼저 매년 6월, 1회 진행했던 ‘여행가는 달’을 2회로 확대해 지역으로 여행하는 국민에게 각종 할인 혜택과 콘텐츠를 제공한다. 걷기 여행과 자전거 관광 등 관광과 웰빙을 융합한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도록 자전거 관광 코스를 개발하고, 코리아 둘레길 안내 체계를 완비한다. 걷기 여행 온라인 플랫폼인 ‘두루누비’를 통해 국·영문 안내 서비스도 국민에게 제공할 계획이다.
지난해 호응이 높았던 ‘디지털 관광주민증’ 발급지역도 추가해 대표적인 지역 관광 프로그램으로 운영한다. 지난해 15개 지역에서 올해 강원 평창, 충북 옥천 등 최대 40개 지역으로 확대한다. 국내 관광을 활성화하고 인구 감소 지역의 생활인구가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신규 사업을 통해 지역 주민들의 문화 향유 기회도 확대한다. 농어촌·혁신도시·문화지구 등 지역에 ‘구석구석 문화 배달’ 사업(61억 5천만 원)을 신설해 지역 수요·특성을 반영한 문화예술 프로그램 기획과 지역 대표 브랜드 공연·축제 활성화 등을 지원한다. ‘문화가 있는 날(매달 마지막 수요일)’과 연계해 문화 취약 지역 등에서도 연중 문화예술 향유 기회를 보장할 계획이다.
유인촌 문체부 장관은 “문화를 누리는 국민의 부담은 낮추고, 문화를 통해 경제를 활성화하며, 문화로 지역에 머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2024년 문체부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라며 “올해 달라지는 정책을 차질없이 추진해 온 국민이 문화로 풍성한 한 해를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
‘뮤지컬계 여왕’이 오랜만에 귀환했다. 세계 최초의 여성 노벨상 수상자 마리 퀴리의 삶을 다룬 뮤지컬 ‘마리 퀴리’로. ‘엘리자벳’, ‘명성황후’, ‘마리 앙투아네트’ 등을 통해 공주ㆍ황후 역할 전문 배우로 장기 집권하고 있는 김소현(49). 마리 퀴리는 그동안 맡아온 캐릭터와 결이 조금 달라 보인다. 전문적인 직업을 가졌고, 피ㆍ땀ㆍ눈물 어린 노력으로 성공을 이룬 주체적인 캐릭터다. “마리 퀴리는 평생 라듐(방사성 원소)을 찾고자 노력했어요. 모두에게 그 라듐이라는 존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한테는 그게 ‘뮤지컬’일 테고요.”
“공주 역할 전문 배우요? 하하. 다른 역할도 많이 했는데, 아무래도 주목받은 작품이 그랬던 것 같아요. ‘마리 퀴리’도 새롭죠. 사실 스케줄 때문에 출연을 몇 번 거절했어요. 캐릭터를 잘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도 많았고요. 그런데 연출진이 배우들 상견례 전날 밤 또 연락을 주신 거죠. 완전 변신할 수 있는 작품을 시도도 안 해보면 후회할 것 같더라고요. 김준수(가수ㆍ뮤지컬 배우) 소속사 대표님에게도 의견을 물어봤죠. 그랬더니 고민하지 말고 바로 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가까스로 ‘마리 퀴리’를 하게 됐습니다.”
김소현은 2021년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이후 작품 활동이 없었다. 임신과 출산 때보다 더 길었던 2년의 작품 공백기. 배우 생활이 끝날까 봐 불안했고, 복귀작에 대한 고민도 컸다. 그렇게 고심을 거듭한 끝에 결정된 복귀작이 바로 ‘마리 퀴리’다. 더 늦기 전에 새로운 도전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리 퀴리’는 왜 새로운 도전이었을까. 먼저 김소현은 과학 용어가 생소하고 어렵게 느껴져 걱정이 많았다고 했다. 그는 유튜브에서 과학 관련 정보를 샅샅이 찾아보면서 대사가 입에 붙도록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또한 ‘명성황후’같이 강단 있는 캐릭터를 연기하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그동안 써보지 않았던 목소리와 연기 톤을 써야 했다. 이에 따른 어려움과 부담감이 있었던 것. 그런데 연기를 할수록 마리의 인간적인 지점을 찾게 되었고, 그 매력에 매료된 상태다.
“‘마리 퀴리’는 단순히 과학자 얘기가 아니라 인간의 삶에 대한 얘기예요. 나의 목표, 우정, 사랑 등 많은 것들이 뮤지컬 안에 녹아 있어요. 공연을 보면서 눈물 흘리는 관객들이 많은데, 저도 매번 울어요. 특히 친구 안느가 마리에게 마지막으로 ‘애썼어 마리, 참 충분한 삶이었어’라는 대사를 할 때 눈물 콧물 다 뺀답니다.(웃음) 연기를 할수록 라듐을 향한 마리의 집념과 포기를 모르는 모습이 대단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냉철하면서도 열정적인 면모를 닮고 싶어요.”
서울대 집안 엄친딸
“돌이켜보면 운명이었던 것 같아요.”
2001년 봄 김소현의 인생은 단 하루 만에 180도 바뀌었다. 당시 오페라 가수를 꿈꾸던 서울대 대학원생이었던 그는 친한 선배의 추천으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주인공 크리스틴 다에 역으로 오디션을 봤다. 사실 뮤지컬에 대해 잘 모르기도 했고, 며칠 뒤에는 이탈리아 유학을 위한 출국이 예정되어 있었던 터라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소현의 생각과 달리 ‘오페라의 유령’ 연출진은 그를 보자마자 반해버렸다. 당시 소프라노 발성을 할 줄 아는 배우가 필요했는데, 거짓말처럼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렇게 김소현은 ‘오페라의 유령’에 출연했고 이후 2009년 재연, 그리고 ‘팬텀’까지 무려 20년간 크리스틴 역을 연기하게 된다. ‘김크리’(김소현+크리스틴), ‘한국의 크리스틴’ 등의 수식어가 그의 존재감을 입증해준다.
“‘오페라의 유령’은 저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작품이죠. 인생을 바꿔준 작품이기도 하고, 남편 손준호 씨를 만나기도 했으니까요. 만약 그날 오디션을 안 봤다면, 아마도 오페라 가수가 되지 않았을까요? 사실 그때도 가족들은 물론 주변에서는 제가 ‘오페라의 유령’만 하고 본업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지금까지 하고 있네요. 무대에 오를 때마다 늘 행복합니다. 한 역할을 계속 연기해도 지겹지가 않아요. 매번 그 역할을 사랑하면서 연기하기 때문이죠.”
혜성처럼 등장한 김소현은 뮤지컬 업계의 판도를 바꾸었다. 정통 성악으로 노래를 불러 뮤지컬의 품격을 높였다는 평을 자아냈다. 여기에 가족 모두 서울대학교 출신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엘리트’ 꼬리표가 더욱 선명하게 따라붙었다. 김소현은 “좋게 봐주시니 감사하지만, 방송이나 인터뷰에서 꼭 얘기가 나오니까 마치 내가 자랑하고 다니는 것같이 보일까봐 민망하기도 하다”고 털어놓았다.
김소현의 어머니와 여동생은 서울대 성악과 출신이고, 아버지와 남동생은 서울대 의대 출신 의사다. 특히 아버지 김성권 씨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신장내과 명예교수다. ‘싱겁게 먹기 실천 연구회’ 설립자이기도 하다. 김소현은 종종 아버지와 TV 프로그램에 동반 출연하며 서로의 행보를 응원하고 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건강하게 먹는 게 습관이 된 것 같아요. 집에 라면이 없었고, 과자도 잘 안 사주셨어요. 과장을 좀 보태서 말하자면, 결혼하고 먹은 라면이 평생 먹은 것보다 많았어요. 저는 세상에서 어머니 아버지를 제일 존경합니다. 결혼해서 아이를 키워보니 부모님이 어떤 마음으로 삼남매를 키우셨는지 알게 됐고, 감사한 마음이 더 커졌어요. 제가 부모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하면, 남편이 섭섭하다고 할 정도예요.(웃음)”
같이 활동하는 유일무이 뮤지컬 부부
김소현은 남편 손준호를 ‘오페라의 유령’ 재연 때 만났다. 라울 역을 맡은 손준호는 극에서 크리스틴을 사랑하듯이 실제로 김소현에게 푹 빠져버렸다. 그러나 김소현은 여덟 살 연하 후배의 구애가 조금은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당시 준호 씨는 데뷔작이었고, 제가 첫 상대역이었어요. 극중 캐릭터를 사랑하는 건데, 저를 사랑한다고 착각하는 것일 수 있잖아요. 나중에 후회할 거라고 다시 잘 생각해보라면서 마음을 거절했죠. 그런데도 계속 아니라고 하면서 다가오더라고요.”
두 사람은 결국 2011년 부부의 연을 맺었다. 그 뒤로도 ‘팬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명성황후’ 등의 작품에서 함께 연기하며 유일무이 뮤지컬 부부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김소현은 “‘명성황후’의 고종과 명성황후처럼 작품에서 부부 연기를 할 때가 있다. 공감도 잘되고, 실제로 도움이 되는 부분도 많다”고 전했다.
“배우로서 준호 씨를 높이 사는 부분은 흔들림 없는 단단한 사람이라는 점이에요. 그러니까 늘 노래나 연기를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거죠. 준호 씨가 처음 데뷔하던 날 모습이 지금도 기억나요. 제가 첫 공연 첫 상대역이었는데 하나도 떨지 않고 잘하는 거예요. 또 그 단단함에서 오는 여유가 있고 긍정적인 사람이라 친구도 많답니다.”
부부가 같은 직업을 가진 것의 최대 장점은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다는 부분이 아닐까. 김소현은 아들 주안 군을 임신했을 때 남편에게 특히 고마움을 느꼈다. 배우로서 느끼는 불안함을 십분 이해한 손준호는 아내가 빨리 복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결혼을 하면 아내가 되고 며느리가 되고 엄마가 되고…. 역할이 되게 많아지잖아요. 진짜 나로서 살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죠. 나의 시간과 일의 소중함이 느껴지더라고요. 임신했을 때 경력 단절이 되어 다시는 일을 할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정말 힘들었어요. 그때 준호 씨가 ‘내가 아이를 잘 키울 테니까 먼저 복귀해라’면서 배려해줘서 정말 고마웠어요. 덕분에 주안이를 낳고 1년도 안 돼서 무대로 돌아올 수 있었죠.”
그때 태어난 아이, 주안 군은 SBS ‘오! 마이 베이비’에서 사랑스럽고 똑 부러지는 모습을 보여줘 많은 사랑을 받았다. 벌써 열한 살로 폭풍 성장했는데 혹시 부모를 따라 뮤지컬 배우를 꿈꾸지는 않을까. 김소현은 “주안이가 ‘절대 싫다’고 한다. 그리고 비행기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더불어 “공부 잘하고 좋은 직업을 가지면 물론 좋겠지만, 예의 바르고 현명한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엄마의 마음을 전했다.
22년 넘은 커튼콜의 감동
김소현은 매년 12월 4일 팬들과 함께 데뷔일을 기념한다. 크리스틴으로 무대에 오르던 첫날, 그 역사적인 날이다. 최근에 22주년을 맞았다. 시간이 쌓이면서 호평도 늘어갔고 명성도 높아졌다. 그는 2008년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로 한국뮤지컬대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2016년에는 ‘명성황후’로 예그린뮤지컬어워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2020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이렇게 특별했던 날도 있지만, 김소현은 무대에 선 모든 순간이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저는 무대에서 특히 관객에게 인사하는 ‘커튼콜’ 때가 그렇게 좋더라고요. 사실 뮤지컬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던 것도, 지금까지 계속 하고 있는 것도 커튼콜 덕분이 아닐까 싶어요. ‘오페라의 유령’ 첫 공연 때 커튼콜을 처음 경험해봤는데, 너무 벅찬 감동을 느낀 거죠. 매번 커튼콜 때마다 감동이 새롭게 오는 것 같아요. 커튼콜은 관객분들의 답을 얻는 시간이잖아요. 꼭 환호성과 기립박수가 터지지 않더라도 관객분들과 눈을 마주치기만 해도 마음이 전달된다고 느껴요.”
새해를 맞아 계획을 묻자 김소현은 “계획이나 목표를 세우지 않으려고 한다”고 답했다. 목표를 두면 너무 힘이 들어가고, 계획대로 잘 안 되면 과정이 너무 고통스럽다는 생각에서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소현은 ‘내일이 없을 정도로’ 작품을 위해 노력하고 연습하기로 유명하다. 그렇게 변치 않는 노력을 기울이기에 커튼콜의 감동이 20년 넘게 지속됐다는 생각이 든다.
“제가 연기를 전공하지도 않았고, 연기에 스킬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부족한 게 되게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관객분들의 공감을 얻고 마음을 얻으려면 최선을 다하는 방법밖에 없어요. 특히 진심이 중요하죠. 진정성이 없으면 나는 그냥 없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진심으로 노래하고 연기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면, 그때는 스스로 그만둬야 하지 않을까요? 언제까지 일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앞으로도 오랫동안 무대에서 연기하고 싶습니다.”
마음은 있는데 잘 안 되는 것이 있다. 사회공헌도 그렇다. 시간과 돈에 여유가 있을 때 하자고 마음먹지만 그런 여건은 쉬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대단한 결심 없이도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작지만 큰 방법을 소개한다.
생활 속 지구 살리기
지난 열두 달, 정말 더웠다. 과장이 아니다.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10월까지 인류는 12만 5000년 역사상 가장 더운 한 해를 보냈다. 기후 변화를 연구하는 비영리단체 ‘클라이밋 센트럴’에 따르면 산업화 이전 평균보다 1.32℃나 높았다. 파리협정에서 각국이 넘지 않기로 합의한 기온 상승 한계치 1.5℃에 근접한 수치다.
기후 위기는 사회ㆍ경제적 약자에게 더욱 가혹한 얼굴을 한다. 영화 ‘기생충’에서 폭우가 쏟아진 이튿날, 부잣집 안주인은 말한다. “비가 와서 그런지 미세먼지가 없네요.” 갑작스러운 비에 반지하는 죄다 잠겼는데 말이다.
‘기후 동행’을 위하는 길은 멀리 있지 않다. 전문가들은 우리 모두가 공동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응 방법은 주방에서, 거리에서, 또 주변 카페에서 찾을 수 있다. 다회용기 사용, 자동차 대신 녹색 교통수단(대중교통, 자전거, 걷기) 이용부터 시작해보자. 있는 물건을 재활용하고, 새활용(업사이클링)하는 것도 방법이다. 운동하며 지구도 살리는 플로깅(조깅하며 쓰레기 줍는 운동)도 좋다.
지구를 식히기 위한 습관 들이기가 어렵다면 포인트라는 보상을 활용할 수도 있다. 여러 지자체와 공공기관이 인센티브를 지원하는 중이다. 대표적인 제도는 ‘탄소중립포인트 녹색생활실천’이다.
‘탄소중립포인트 녹색생활실천’은 한국환경공단이 일상 속에서 탄소중립 실천 행동을 할 경우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제도다. 전자영수증 발급, 텀블러·다회용 컵 이용, 일회용 컵 반환, 리필 스테이션 이용, 무공해차 대여, 친환경 제품 구매, 고품질 재활용품 배출, 폐휴대폰 반납 등에 참여하면 회당 100원에서 최대 2000원까지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 연 상한액은 7만 원이다. 전기·상수도·도시가스 사용량을 절감하면 감축률에 따라 탄소포인트를 주는 ‘탄소중립포인트에너지’ 제도도 있다.
봉사와 보람을 한 번에
도움의 손길을 구하는 이들도 멀리서 찾을 것 없다. 본지 사무실이 있는 강남구의 자원봉사센터 관계자는 “선생님, 어디 계세요?”부터 묻고는 이렇게 말했다. “봉사는 거주 지역 인근에서 하는 것이 가장 좋아서요.”
누가 도움을 청하는지는 ‘1365자원봉사포털’에서 알 수 있다. 봉사 지역, 봉사 분야, 활동 구분(온라인, 오프라인, 온오프라인), 봉사 대상을 검색하면 전국 각지의 봉사처 조회와 신청까지 가능하다. 포털에 부가정보를 입력해두면 ‘맞춤형 자원봉사’도 추천받을 수 있다. 봉사를 마치면 자원봉사 확인서가 발급된다.
봉사학교에 입학할 수도 있다. 바로 ‘노노스쿨’이다. 행복에프엔씨재단이 운영하는 ‘노노스쿨’은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가치 있는 삶을 설계하는 신중년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학교처럼 운영되고 있다. 입학하면 9개월여 무상 교육이 이뤄진다. 연간 일정에 따라 식문화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를 배운 학생들은 졸업 후 졸업생 봉사단 ‘노노프렌즈’ 소속으로 사회공헌 활동에 나선다.
봉사와 일자리 고민을 한 번에 해결하는 방법도 있다. 사회공헌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는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중장년의 경험과 역량을 활용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사회공헌형 일자리 사업을 진행 중이다. 사업 참여자는 봉사를 통해 보람은 물론 새로운 커리어 탐색 기회까지 얻을 수 있다. 대표적인 사회공헌 일자리 사업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의 ‘보람일자리’와 이음길HR의 ‘기업 퇴직자 사회공헌 뉴스타트 일자리’가 있다.
각자 특기를 살린 재능기부형 일자리 사업도 있다. 시니어에게 주목받는 사업 중 하나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국학진흥원이 2009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다. 여성 어르신을 선발·교육한 뒤 전국 유아 교육기관에 파견해 유아 대상으로 옛이야기와 선현들의 미담을 들려주는 프로그램이다. 1년여간의 교육과정이 결코 쉽지 않지만 보람 있고 활동 수당도 높은 편이라 지원자가 끊이지 않고 있다.
아파트 공화국으로 불리는 대한민국. 2022년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전체 가구의 52.4%인 1227만 가구가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이렇게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늘어나는 반면, 정작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층간 소음으로 범죄까지 일어나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아파트 ‘위스테이 별내’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국내 첫 ‘아파트형 마을공동체’로서, 입주민 약 1500명은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의 이웃이다. 뿐만 아니라 입주민이 직접 아파트 시설을 설계·운영한다는데, 그 모든 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알아보고자 위스테이 별내를 찾아가 봤다.
입주민이 직접 만든 커뮤니티 시설
2020년부터 사람들이 거주하는 위스테이 별내는 지하 2층부터 지상 22층의 7개 동, 총 491세대(60㎡, 74㎡, 84㎡ 3가지 주택형) 규모다. 약 1500명의 입주민은 모두 ‘위스테이 별내 사회적협동조합’의 조합원이다.
아파트는 크게 전유부(거주하는 집), 공유부, 부대·복리 시설(커뮤니티 시설)로 나뉜다. 이 가운데 위스테이는 부대·복리 시설을 입주민이 직접 설계했다. 위스테이에서는 이를 ‘커뮤니티 디자인’이라고 명칭 했으며, 입주 전부터 거의 1년간 논의의 시간을 거쳤다. 그 결과로 법정 기준의 2.5배에 달하는 2777㎡ 규모의 커뮤니티 시설이 내실을 갖춰 조성됐다.
위스테이 단지 중앙에는 잔디 광장이 있고, 그 주변으로 커뮤니티 시설이 존재한다. 교류의 장인 동네카페를 비롯해 동네책방, 동네체육관이 있다. 작게는 빨래방, 공유주방도 형성됐다. 취미를 공유하는 공간인 동네창작소와 통네텃밭도 만날 수 있다. 아파트 외곽에는 협동상회도 존재한다. 시설을 이용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 모두 입주민이다. 공동체 시설에 잘 어울리는 ‘동네’라는 이름 또한 투표로 결정됐다.
위스테이 별내 입주민들은 월세 10만 원을 내는데, 그중 5만 원은 커뮤니티 시설 이용료다. 입주 초기에는 ‘나는 잘 이용하지 않을 것인데 왜 5만원이나 내야 하냐’면서 볼 멘 소리를 내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입주민의 3분의 1 이상이 동아리 활동을 하고, 각자의 사연으로 커뮤니티 시설을 이용하기 때문에 다들 만족을 표한다. 위스테이에서 커뮤니티 시설은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아주 중요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위스테이에 사는 사람들
위스테이 별내는 남양주 일대에서 ‘아이를 키우기 좋은 아파트’로 소문이 났다. 전 세대가 어우러져 살아가며 교류할 수 있고, 관련 시설도 마련돼 있어서다. 단지 내에는 산새꽃어린이집을 비롯해 미취학 아동 및 방과 후 학생을 위한 돌봄 센터가 있다. 외출 시 이웃에게 자녀를 맡기거나, 학부모끼리 고민과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현재, 어르신을 위한 공간은 없을까. 위스테이의 60세 이상 어르신은 30·40대 입주민의 부모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단지 내에 있는 ‘60+센터’가 그들을 위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경로당이라고 하는 곳이다. 단순히 소통과 취미·여가를 위한 공간일 뿐만 아니라 일자리 창출도 힘쓴다.
“이웃은 나의 친구…여행보다 집이 좋아”
수요일 정오 무렵 ‘60+센터’에서는 맛있게 밥 익어가는 냄새가 났다. 오후 요가 수업을 앞두고 어르신들이 함께 밥 먹는 날이라고 했다. 가족을 표현하는 ‘식구’란 ‘끼니를 같이 먹는 사람’을 뜻하는데, 가족 같은 끈끈함이 느껴진다.
‘60+센터’ 어르신 가운데 김연진(76), 김석순(70) 씨와 얘기를 나눠봤다. 김연진 씨는 ‘비공식 요가 강사’이다. 시니어들의 요가 수업은 온라인 영상을 보고 따라 하는 것으로 진행되는데, 40년 넘게 요가 운동을 해온 그는 선배이자 지도자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김석순 씨는 시니어 동아리 부회장을 맡고 있다.
두 사람은 이전에는 공동체 활동을 해본 적이 없었던 터로 걱정이 많았지만, 현재는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 김연진 씨는 “최근 가족들과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그런데 힘들기만 하고, 집에 가고 싶었다. 우리 아파트가, 사람들이 많이 그리웠다”면서 “집이 제일 좋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할 정도다.
공동체 삶의 장점을 묻자 김연진 씨는 “여기에서 요가도 하고, 라인댄스도 배우면서 사람들하고 정답게 살다 보니 건강이 좋아졌다”고 답했다. 이웃들과 산책을 하며 쓰레기를 줍는 플러깅 활동을 한다는 김석순 씨 역시 건강이 좋아졌다고 맞장구를 쳤다. 또한 그는 “꽁날(공동체의 날)에 우리 시니어들이 공유주방에서 반찬을 만들어서 팔았다. 다들 너무 맛있다고 계속 먹고 싶다고 해서 뿌듯했다. 또 요즘은 어떤 활동을 할 때 앞장서고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두 사람은 외롭지 않은 노년을 보내게 된 점을 최고의 장점으로 꼽았다. 위스테이에는 홀로 사는 80대 할머니가 있다. 김연진 씨는 언니인 그분이 마음에 쓰여 일부러 종종 찾아가 말도 걸고 같이 산책도 하고 그랬다고 한다. 이제는 언니가 동생을 먼저 찾는가 하면, ‘60+센터’에도 자주 나오면서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단다.
‘60+센터’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시니어는 30명 정도다. 이제 그들은 돈독한 친구 같은 사이가 됐다. 김연진 씨와 김석순 씨는 “친구가 많을 필요는 없지만, 같이 늙어가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인 것 같다”고 입을 모아 말하며 웃음 지었다. “이제 우리는 서로가 없으면 안 돼. 오죽하면 나중에 우리끼리 같이 살까라는 말도 했다니깐.”
부동산 문제 해결하는 주거 모델
대규모 아파트형 마을공동체 위스테이는 주거 안정을 꾀하는 대안적 주거 모델로 꼽힌다. 1호 별내는 경기도 남양주시에, 2호 지축은 경기도 고양시에 각각 있다. 위스테이 사업을 주관하는 사회혁신기업 더함의 김종빈 부대표는 “위스테이 사업을 시작한 지 7년째 되어간다. 초반에 정부부터 주변 사람들까지 ‘과연 가능할까’라면서 의구심을 표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그동안의 시간을 돌아보니 입주민의 만족도도 높고, 관리도 잘 되고 있어 ‘제법 괜찮았다’고 생각 된다”라고 말했다.
흥미롭게도 더함의 창립 멤버들은 부동산 전문가가 아니었다. 김종빈 부대표는 아름다운가게․한솔교육희망재단 등 비영리 단체 출신이다. 양동수 대표는 공익 활동에 치중해 온 변호사였다. 그럼에도 그들이 뭉친 이유는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서였고, 자연스럽게 주요 대상층은 30․40세대가 됐다.
“소득을 기준으로 국민을 10분위로 나눠봤을 때, 우리는 중위 계층에 해당하는 사람들에 집중했습니다. 그중 8, 9, 10분위는 집이 있고, 1, 2분위는 공공이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이죠. 저희는 3분위부터 7분위 정도가 저희들의 타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들이 결국 30․40세대인 거죠. ‘전세 난민’, ‘하우스 푸어’, ‘영끌족’ 등 모두 30․40세대에서 시작되거든요. 그래서 입주민을 모집할 때 ‘서울 수도권에 거주하는 30·40세대 중에서 공동체 생활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자’로 아예 표적을 설정했어요.”
더함은 2016년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의 시범사업인 ‘협동조합형 뉴스테이’의 사업자로 선정됐다. 기업형 민간임대주택 ‘뉴스테이’ 사업은 부동산 시장을 안정화하기 위한 정책으로 2015년부터 시행됐다. 그러나 애초 취지와 달리 모든 이익을 건설사가 가져가는 구조가 되어버렸다. 이에 국토부는 공공성을 보완하고자 협동조합형 뉴스테이 공모 사업을 진행했고, 더함이 선정되면서 위스테이라는 모델이 만들어진 것이다.
기존의 뉴스테이 사업은 건설사가 자금을 대지만, 위스테이는 입주민이 ‘사회적협동조합’을 꾸려 출자하는 방식을 취했다. 건설사는 단순 도급 형태로만 참여했다. 이를 통해 임대료를 주변 시세 대비 20% 저렴하게 제공하게 됐다. 별내는 보증금이 2억 5000만 원, 지축은 2억 9000만 원이다. 그중 4000만 원은 협동조합원으로 내는 출자금(임대차 계약 해지 시 환급)이다.
“위스테이는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의무 임대 기간을 8년으로 정했고, 2년마다 재계약을 진행합니다. 별내는 이미 한 차례 재계약을 했는데, 보증금은 동결이었으며 임대료는 단 1% 상승했어요. 법의 기준은 1년에 5%씩 상승 가능해서 최대 10%까지 올릴 수 있죠. 그러니까 위스테이는 비용적인 측면만 봐도 좋은 부동산 주택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8년 이후에는 어떻게 할지는 아직 정해진 게 없어요. 우리 사업 구조가 조합원들에게 이익이 되는 구조이긴 하지만, 법 개정 요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답을 찾아가야죠.”
김종빈 부대표는 위스테이는 ‘어포더블 하우징’(Affordable Housing)을 추구한다고 밝혔다. ‘중·저 소득자를 위한 저렴 주택’으로 번역되는 경우가 많은데, ‘합리적 주택’이 맞는 표현으로 보인다. 그는 “어포더블 하우징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첫 번째, 장기간 거주가 가능해야 한다. 두 번째, 합리적 주택 비용을 지불하는 정도 수준이어야 한다. 세 번째, 그 안에 좋은 커뮤니티가 존재해야 한다. 위스테이는 그 세 가지의 기본 개념을 충족했다”고 강조했다.
공동체 생활 주거 늘어나야
위스테이는 아파트에 거주하면서도 공동체가 살아있는 마을을 만들고, 나아가 지역사회에도 기여하는 모델을 그렸다. 무엇보다 공동체가 잘 유지되기 위해서는 ‘지속가능성이 담보’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평생학습 모델인 ‘100개 마을 학교’와 ‘100개 마을 일자리’를 목표로 세웠다.
“100개 마을 학교는 이미 다 채웠어요. 악기 연주, 스포츠, 목공 등의 만들기 등, 현재 동아리를 보면 마을 학교에서 이어진 경우가 많죠. 그러나 일자리 제공은 50여 개밖에 되지 않았어요. 세입이 창출돼야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에, 마을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마을 일자리는 양질의 일자리는 아니에요. 바리스타, 경비, 청소 등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는데, 가정주부나 시니어가 하기 적합한 파트 타임 일자리가 많은 편이죠. 좀 더 양질의 일자리로 목표를 이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함의 직원 10여 명은 실제로 위스테이에 거주하는 입주민인데, 김종빈 부대표는 지축에 산다. 적극적으로 공동체 활동 참여도 하고 있다. 목공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는가 하면, 한 달에 한 번은 아들과 영화를 보고 감상평을 나누는 모임에 참석한다. 직접 거주하며 느낀 공동체 생활의장점을 묻자 그는 객관적인 시선을 위해 아내의 얘기를 전했다.
“사실 제 아내가 좀 내향적인 성격이어서 위스테이로 이사 올 때 썩 내켜 하지 않았어요. 남편이 위스테이 사업을 하는 사람이니까 동네에서 좀 알려지게 될 것 같고, 민원도 받을 것 같고 조금 부담스러웠나 봐요. 그런데 이 공간이 주는 힘이 긍정적인 영향으로 작용해서 지금은 굉장히 만족하면서 살고 있어요. 둘째 딸이 초등학교 2학년인데 학부모들끼리 엄청 친해졌더라고요. 여행도 다녀올 정도로요. 또 단지 내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면서 사람들하고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공동체로 산다는 것은 분명 좋은 점이 많다. 그러나 가족끼리도 싸우는데 ‘갈등’이 존재하지 않을 수 없을 터. 더함은 이를 예상했고, 조합원들이 입주 전 갈등 조정 교육을 60 시간 이상 이수하도록 했다. 또한 위스테이는 갈등 조정 위원회도 두고 갈등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한다. 공동 주택인 아파트에서 발생하는 3대 분쟁은 주차·층간 소음·반려동물 문제를 들 수 있다. 특히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생각하는 ‘펫팸(Pet+Family)족’이 늘고 있는데, 위스테이에서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별내에서는 입주 초기에 반려동물 훈련을 전문적으로 하는 분과 함께 ‘별나개(별내에 나쁜 개는 없다)’ 워크숍을 했었어요.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족을 상대로는 에티켓에 대해 얘기했고,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가족에게는 예상되는 불편함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죠. 그리고 세 번째로 같이 모여서 약속했어요. ‘목줄 잘 채워줘’, ‘배변 잘 치워줘’ 등의 약속이 오갔죠. 별내에서는 2년 전 조사 결과지만, 30~40% 정도 가구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어요. 1인 가구 거주율이 높은 지축은 50% 가까운 사람이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지축에서는 목공 동아리에서 반려동물의 배변을 치울 수 있는 간이 부스를 만들었고, 운영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의 동아리가 하고 있기도 합니다.”
김종빈 부대표는 물론 입주민은 위스테이와 같은 좋은 주거 모델이 지속해서 나오지 못하는 상황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꼭 위스테이 3호가 아니더라도 ‘공동체 생활이 가능한 합리적인 가격의 주거 모델’이 늘어나길 바라는 마음이다.
“박근혜, 문재인, 현재의 윤석열 정부까지. 대통령이 세 번이나 바뀌는 기간이었는데, 정부의 협동조합형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공모는 딱 한 번 이뤄졌어요. 위스테이와 같은 주거 유형은 대한민국의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적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는 2100만 가구가 사는데, 딱 1000세대만 독특한 모델인 위스테이에 살고 있는 거죠. 앞으로 정부의 노력도 이뤄져서 그 숫자가 늘어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최근 해외의 실버타운은 노후에 삶을 더욱 활기차고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다양한 세대와 어울리고 단지 내에서도 커뮤니티를 활발하게 운영하면서, 사회에서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하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추세를 반영해 새로운 실버타운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고령화를 경험한 나라들의 실버타운은 다양한 형태로 변모하고 있다. 해외 실버타운의 특징을 꼽자면 △민간과 공공 주도 △세대와의 교류다. 미국은 민간 참여가 활발하고, 일본은 공공이 민간참여를 유도한다. 유럽은 복지 측면이 강조된 실버주택 사업이 많다. 세대와의 교류는 전 세계 실버타운이 따라가는 추세다.
유럽에서는 실버타운을 복지의 관점으로 바라본다. 독일의 경우 연금이나 보험금으로 실버타운 비용을 충당할 수 있는 구조이며, 부족한 부분은 국가가 보조해준다. 사회복지법인만 운영 주체가 될 수 있어, 민간 주도 실버타운보다 안정적으로 운영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일본은 부동산, 버스회사, 보험사 등 다양한 주체가 실버타운을 운영한다. 50세대의 작은 규모부터 대형 실버타운까지 다양한 형태의 유료 노인홈(실버타운 공식 명칭)이 운영된다. 일본 실버타운 1위로 꼽히는 베네세 스타일 케어는 자체 브랜드 내에서 고급형・중급형을 나누어 운영해 다양한 이용자가 입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최근에는 ‘서비스 제공 고령자 주택’이라는 새로운 실버타운도 등장했다. 도심의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해 노인이 살기 좋은 배리어프리 주택을 만들고, 간호・청소・돌봄 등 본인이 필요한 서비스만 계약해 거주하는 형태다.
미국은 민간이 주도해 말 그대로 마을 형태의 실버타운이 자리 잡고 있다. 1960년대부터 건설된 CCRC(Continuing Care Retirement Community)가 대표적이다. 약 3000개의 CCRC가 조성되어 있다. 과거에는 날씨가 온화하고 전원생활이 가능한 곳에서 대규모 주택단지로 이른바 ‘은퇴촌’을 이뤘다면, 최근에는 자신이 살던 지역에서 노후를 보내고 싶어 하는 노인이 많아 여러 지역에 실버타운이 지어지고 있다.
다양한 주거 형태, 세대가 어우러지는 곳
해외의 실버타운은 다양한 세대가 함께 교류할 수 있도록 한다. 일본 도쿄 에도가와구에 위치한 고토엔은 노인주거시설과 유치원을 함께 운영한다. 매일 등교하는 아이들과 고령자가 아침 인사를 나누고 운동을 함께 한다. 점심에는 고령자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선생님과 함께 아이들을 돌본다. 미국의 에덴 얼터너티브는 강아지・고양이・새 등 반려동물을 들일 수 있도록 한다. 다양한 연령층과 쉽게 만나 활동할 수 있도록 요양원 내 어린이집과 놀이 공간 등도 설치했다. 지역사회에 고령자가 잘 녹아들도록 가정 돌봄기관 ‘에덴 홈’, 인지 돌봄기관 ‘에덴 라이프 롱 리빙’ 등도 운영한다. 에덴 얼터너티브는 미국에서 시작해 영국, 호주, 독일 등 19개국으로 확장됐다.
해외 추세에 따라 우리나라에도 새로운 형태의 실버타운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오는 12월 개소하는 KB골든라이프케어의 첫 실버타운 ‘평창카운티’는 평수에 상관없이 보증금을 3000만 원으로 통일해 입주 문턱을 낮췄다. 서울시에서 계획하고 있는 공공실버타운 ‘골드빌리지’도 중산층을 위한 실버타운이다. 고덕양로원 부지, 서울혁신파크 부지에 시범사업으로 진행된다.
서울시의 공공실버타운은 세대 통합도 표방한다. 실버타운 주변에는 지역 수요를 고려한 체육시설, 종합복지관, 아동 돌봄시설, 북카페 등을 두어 세대 통합형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해 여가, 돌봄, 의료 서비스를 복합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 경기도 의왕시에 지어진 ‘백운호수 푸르지오 숲속의 아침’도 여러 세대가 함께 살도록 단지를 설계했다. 오피스텔은 젊은 세대에게 공급하고 노인복지주택은 고령자에게 공급해 커뮤니티 시설을 함께 이용하도록 하겠다는 것. 마곡에 지어진 롯데 VL르웨스트는 국내 실버타운으로는 처음으로 반려동물 동반 입주 시스템을 도입했다. 반려동물 건강 케어,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클래스 등 함께 일상을 보낼 수 있는 서비스도 만든다고 한다.
최근 롯데, KB 등 대기업이 실버타운 시장에 뛰어들고 유튜브나 매체를 통해 실버타운이 소개되면서 60대의 입주 문의 전화가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이용자는 여전히 70~80대가 대부분이어서 실버타운도 고령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 우리나라 실버타운은 대부분 고급화를 지향해 아직은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입주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법적으로 실버타운의 정의가 애매하고, 공공의 지원이 없어 민간 기업 진입이 어렵다고 지적한다. 대형화・고급화 추세는 여전하지만, 최근 반려동물 동반 서비스, 중산층을 위한 실버타운, 세대 교류 서비스 등이 접목되는 것은 긍정적이다. 앞으로 더 많은 고령자가 실버타운에서 활기차고 안락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실버타운 시장 활성화를 위한 공공의 법 개정과 지원, 민간의 적극적인 참여가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도움말 이지희 전국노인주거복지시설협회 사무국장(수원여대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
참고 보험연구원 ‘실버산업 해외사례와 활성화 전략’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활발한 활동을 펼친 최정윤(46). 청순한 미모와 출중한 연기력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는 “지금 생각해보면 과거의 나는 예뻤던 것 같다. 외모를 말하는 게 아니라 젊음이 예뻤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당시가 전성기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때의 인기를 좋게 말해주는 분들도 많지만, 정작 나는 연기가 뭔지 하나도 몰랐다. 내가 인정할 수 있는, 나만의 전성기는 아직 보지 못했다”는 최정윤의 행보가 주목된다.
SBS 시트콤 ‘똑바로 살아라’, MBC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 등의 캐릭터 때문인지 최정윤은 새침데기 이미지가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세상 털털한 사람이다. 과거 뜨거운 관심을 받은 것에 대해 “시기를 잘 타고났다”라면서 “일찍 데뷔해서 천만다행이다. 요즘 같은 시기였다면, 어디 가서 배우라고 명함도 못 내밀었을 것 같다”고 말할 정도다.
배우로 데뷔한 것도 우연한 계기였다. 고등학생 시절 친구들과 재미 삼아 찍은 프로필 사진 덕에 공익 광고에 출연하게 된 그는 당시로서 큰돈인 50만 원을 벌었다. 재밌는 경험이었지만 배우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광고와 사진을 본 소속사 관계자로부터 제의를 받아 배우의 삶을 살게 됐다.
“저도 모르게 배우의 길로 가고 있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신인 시절 저는 겁이 좀 없었어요. 연기 욕심은커녕 연기가 뭔지도 몰랐으니까 카메라 앞에서도 무서운 게 없었던 거죠.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래서 지금까지 배우를 할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들어요. 처음부터 너무 연기 욕심을 부리고, 배우로서의 인정이나 성공이 간절했다면 일을 즐기면서 하지 못했을 것 같거든요. 저는 모든 촬영 현장이 늘 재밌었고, 힘들어서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큰 욕심 없이 살았던 것이 제가 이 세계에서 오래 버틸 수 있었던 이유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청춘스타에서 ‘아침드라마 퀸’으로
데뷔 작품은 1996년 SBS 드라마 ‘아름다운 그녀’로 기록된다. 27년 차 배우인 최정윤은 대표작을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잠시 고민에 빠졌던 그는 이내 “대표작은 아니고 사람들이 많이 얘기해주시는 작품”이라면서 MBC 드라마 ‘태릉선수촌’(2005), 영화 ‘라디오스타’(2006), SBS 드라마 ‘청담동 스캔들’(2014~2015)을 꼽았다.
최정윤은 “대중들이 ‘라디오스타’는 PD 역할로 잘 기억해준다. ‘청담동 스캔들’은 인지도가 높아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태릉선수촌’에 대해서는 연기의 매력을 깨닫게 해준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태릉선수촌’은 엘리트 체육인들의 운동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다룬 8부작 드라마로, 최정윤은 양궁 선수 역을 소화했다.
“연기를 하면서 처음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을 가진 작품이에요. 그 전까지는 쫓기듯이 연기를 했다면, 그때는 본연의 나로서 진심을 다해 드라마를 찍었죠. 감독님부터 배우들, 현장 분위기까지 모든 것이 좋았어요. 만약 당일 예정된 분량대로 촬영이 진행되지 않으면, ‘술이나 한잔 하자’라면서 서로 위로하고 같이 고민하고 그랬죠. 배우들끼리 워낙 끈끈해서 이윤정 감독님의 차기작 ‘커피 프린스 1호점’ 촬영 때, 다 같이 현장에 놀러 가기도 했어요.”
최정윤은 ‘청담동 스캔들’에 이어 2021년 ‘아모르 파티-사랑하라, 지금’(이하 ‘아모르 파티’)에 출연하면서 ‘아침드라마 퀸’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그러나 이제 그 수식어를 이어갈 수 없는 상황이다. ‘아모르 파티’를 끝으로 방송 3사 KBS·SBS·MBC의 아침드라마가 폐지됐기 때문. 최정윤은 대한민국의 마지막 아침드라마에 출연한 여주인공으로 남았고, 책임감을 통감했다.
더욱이 ‘아모르 파티’는 ‘청담동 스캔들’ 이후 오랜만의 드라마 작품으로 아쉬움을 더했다. 긴 공백 사이, 드라마 제작 현장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촬영 환경이 정말 좋아졌더라고요. 일정이 빠듯하지도 않고, 밤샐 일도 없어졌죠. 과거에는 밤새고 첫 신을 찍을 때도 많았어요. 지금은 상상도 안 되는 일이죠.”
중년 배우 과도기 잘 넘겨야
호전된 제작 환경은 배우로 오랜 시간 연기하고 있다는 점을 느끼게 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배우로서 역할이 달라질 때도 세월이 체감된다. 청춘스타로 이름을 알린 최정윤은 2013년 방송된 MBC 단막극 ‘소년, 소녀를 다시 만나다’를 시작으로 엄마 연기를 하게 됐다.
“그때 당시는 제가 실제로도 엄마가 아니었어요. 처음 제안이 들어왔을 때 걱정을 많이 했고, 그래서 출연을 거절했어요. 엄마 연기를 할 나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게 아니에요. 스스로 엄마 역할을 잘 소화할 수 있을지 걱정됐던 거죠.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연기 연습도 할 수 있고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의사를 번복해 출연했는데, 엄마 연기가 생각보다 재밌었던 거죠. 이제는 엄마 역할에 대한 부담은 전혀 없어요. 아역 배우들이 성인이 된 모습을 보면 신기할 뿐이에요.”
40대 중반의 최정윤은 현재 배우로서 과도기에 있다고 본다. 연기를 하고 싶은 열정으로 가득찬 그는 “지금 이 시기가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연기로 스스로를 테스트해야 할 것 같다. 그동안 주로 착한 역할을 연기했는데, 해본 적 없는 제대로 된 악역을 통해 연기 변신을 하고 싶다. 연기가 재밌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연기든 소화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뿐이다.
무엇보다 현재 중년 배우로서 시간을 잘 보내야 노년까지 연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최정윤은 “할머니가 되어서도 글을 읽고 말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연기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때가 되면 선배 배우들에게서 보았던 연륜과 삶의 태도를 갖출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청담동 스캔들’에 출연한 배우들과 지금까지 연락하고 주기적으로 자주 만나요. 반효정 선생님도 만나는데, 제가 선생님을 참 좋아합니다. 지금도 안주하지 않고 배우로서 고민을 계속하시는 모습이 정말 멋져 보여요. 반효정 선생님을 포함해 좋은 선배님들과 함께 연기할 수 있다는 것은 배우로서 정말 큰 복이라고 느낍니다.”
딸 지우, 그리고 또 다른 가족
책임져야 하는 가족이 있기 때문에 최정윤은 더욱 열심히 일하려고 한다. 그의 슬하에는 2016년 태어난 딸 지우가 있다. 엄마를 꼭 빼닮은 지우는 벌써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요즘 훈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다는 최정윤은 자신을 ‘적당한 엄마’라고 표현했다.
“좋거나 나쁜 엄마의 기준을 잘 모르겠지만, 엄마로서 저는 적당한 편이라고 생각해요. 공부하라고 잔소리하지 않고, 아이가 스트레스받지 않게 하죠. 그런데 예의, 사회성 교육은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성이 없으면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거든요. 또 잘못한 게 있으면 혼나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 아이가 섭섭함을 느껴 투정 부릴 때도 있지만, 저는 안 받아줘요. 나중에 엄마가 왜 그랬는지 알아줄 거라고 생각해요.”
작품 활동으로 바쁠 때는 어머니와 피아노 선생님이 지우를 돌봐줬다. 피아노 선생님과 최정윤의 관계는 참 특별하다. 여섯 살 때 피아노 선생님과 제자로 만난 두 사람은 40년간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우리는 친구라고 생각한다. 나이 많은 친구, 조금 어린 친구. 선생님이 항상 곁에 있었기 때문에 저한테는 너무나 당연한 관계였다. 사람들이 신기하게 생각할 줄은 몰랐다”라고 말했다.
40년 우정의 피아노 선생님과 함께 연예계 절친으로 유명한 배우 박진희에 대해 최정윤은 ‘나의 또 다른 가족’이라고 표현했다. 일하면서 만나는 사람과는 진짜 친구가 되기 어렵다고 하는데, 최정윤과 박진희는 벌써 20년 넘게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최정윤은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한번 인연을 맺으면 오래가고, 의리가 넘쳤다.
“만약 내가 죽으면 지우는 어떻게 하지 걱정이 된 적이 있었어요. 그랬더니 (박)진희가 자기가 무조건 데려가서 키우겠다고 한 거예요. 진희는 정말 일하면서 얻은 보물이에요. 주변에 친구가 많아도, 이렇게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만나기는 힘들거든요. 진희, 피아노 선생님처럼 가족 이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감사해요. 가족이라는 게 꼭 혈연으로만 이뤄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최정윤에게는 평온함과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크든 작든 어떤 일에도 스트레스받지 않는 성격 덕분일 것.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가는 그의 앞날에는 당연히 꽃길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누군가 ‘스무 살 시절로 돌아가면 어떨 것 같아?’라고 물어볼 때가 있잖아요. 그러면 저는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답해요. 지금 삶도 좋은 점이 많은데 왜 과거로 돌아가서 힘들었던 순간을 반복하나요? 과거를 후회해봤자 시간만 아깝고 아무런 발전도 없어요. 우리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면서 재밌게 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