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복예술공장은 폐허를 딛고 일어선 복합문화공간이다. 쓸모를 잃고 버려진 폐공장을 도시재생사업으로 일으켜 세운 이색 예술 공간이다. 폐공장 시절은 길었다. 25년간이나 방치되었으니까. 그러니 형상이 오죽했겠는가? 무너지거나 으스러지거나 널브러진 것들이 태반이었다. 용케 남은 건물들도 금이 가거나 비가 샜다. 뒤숭숭하기가 흉가와 맞먹었다. 이렇게 공장의 한 생애가 종을 쳤다. 갈 길을 잃은 유령들의 비밀 집회소쯤으로 전락했다. 그런 와중에 전주시와 전주문화재단이 앰뷸런스를 타고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달려와 수혈을 하고 수술을 해 꺼진 숨을 되살렸다. 전주시 팔복동 제1일반산업단지 안에 있다.
팔복예술공장은 2년에 걸친 사전 작업과 공사, 파일럿 프로그램을 통한 시범운영을 거친 뒤 2018년에 개관했다. 이제 겨우 네 살배기에 불과하다. 그러나 알아주거나 알아보는 눈이 많다. 개관 첫해에만 6만여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이젠 재생 문화 공간의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헌것을 헌신짝 버리듯 버리는 대신, 헌것을 싹 갈아엎고 새뜻한 새것을 건설하는 대신, 헌것에 잔존하는 쓸모를 재료로 삼은 재생사업의 성과가 이렇게 대단하다. 폐허를 폐허로만 볼 일 아니다. 폐허 속에 역사와 인간사의 숨결이 서려 있다. 헌것을 헌것으로만 볼 일 아니다. 헌것 안에 새것 뺨치는 예술과 미감이 박혀 있다.
폐공장의 재생 설계를 주도한 총괄기획자는 건축가 황순우. 인천시의 근대건축물을 본때 있게 재생한 인천아트플랫폼으로 실력을 과시한 인물이다. 그는 팔복예술공장 설계에 나서기 전 한동안 뜸을 들였다. 폐공장이 지닌 역사성과 사회성, 의미와 가치를 충분히 숙고했던 셈이다. 그는 이런 요지의 얘기를 했다. “재생은 기억에서부터 온다고 봤다. 따라서 1년 동안 설계를 하지 않고 기억을 재생시키기 위한 작업부터 했다. 지역주민, 지역 예술가들과 수시로 만나 폐공장을 새롭게 읽어내는 작업부터 했다. 물리적인 작업은 맨 마지막에 했다.” 그는 단순한 형식적 구조 변경을 구사해 후루룩 단숨에 예술 공간을 설계하고 싶진 않았던 모양이다. 폐허에 남은 옛이야기를, 스러져가는 건물들이 간직한 기억을, 퇴락한 풍경의 이면에 감추어진 은유를 옹골차게 발굴해 공간 구축의 질료로 활용하고 싶었던 것이다.
팔복예술공장은 크게 보자면 본관에 해당하는 A동, 아동과 청소년의 예술 놀이터인 B동, 그리고 야외 공간으로 구성됐다. A동은 외벽에 붉은 칠을 해 도드라진다. 벽면 일부엔 통유리창을 냈고, 옥상 난간의 프레임도 산뜻하다. 낡을 대로 낡은 원래 건물의 취약한 구조를 부분적으로 보강해 기능성을 살린 공간이다. 로비엔 폐공장을 남기고 사라진 카세트테이프 생산업체 ‘썬전자’의 히스토리를 알려주는 아카이브 섹션이 있다. ‘썬전자’는 이곳에서 1979년에 공장 가동을 시작했으나 CD(Compact Disk)라는 신종 기록 매체에 밀려 1991년에 문을 닫았다. 공장의 이런 굴곡진 역사와 애환의 기억들을 예술로 재생함으로써 존재 증명을 하는 게 팔복예술공장이다.
공간 곳곳에 음미할 만한 서사 있어
A동 로비부터 시작되는 관람 동선을 따라가면 재래식 변기가 하나씩 놓인 화장실 4칸이 나온다. 많게는 500여 명에 이르렀던 ‘썬전자’ 여성 노동자들을 위한 변기가 달랑 4개뿐이었다니. 과거 노동 환경이 얼마나 거칠었나를 변기들이 구슬픈 톤으로 비가를 읊어 웅변한다.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게 예술이고 예술인이다. 화장실 구역이 통째 전시 작품인 건 배설 욕구조차 참아가며 일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 노동자들의 비애와, 그럼에도 버릴 수 없는 희망을 표현한 작가들의 글과 벽화가 이곳에 난무하기 때문이다.
미술관들은 저마다 특유의 전시회를 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한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기획전을 펼침으로써 미술관의 독자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한다. 팔복예술공장도 마찬가지다.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작품 전시를 추구해왔다. 탄소중립 등 환경문제를 환기하는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대중의 관심을 산 전시회로는 ‘구스타프 클림트 레플리카전’을 꼽는다. 현재 2층 전시장에서는 ‘공존 : 호모 심비우스의 지혜’전이 진행되고 있다.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란 생물학자 최재천이 제기한 용어로 ‘공생하는 인간’을 의미한다. 불편을 조금만 감수하면 얼마든지 생태적 전환을 할 수 있다는 게 최재천의 생각이다. 이번 기획전은 결국 환경문제를 화두로 던지는 셈이다. 24개국 8팀 77명의 환경예술 작가들이 참여해 다양한 시각언어를 선보이고 있다.
몇몇 작품을 볼까? 손정은의 ‘강요’는 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생명의 사체를 먹어치우는 인간의 탐욕을 힐난하는 설치 작품이다. 유리병에 닭의 실제 사체를 욱여넣은 작품도 있다. 엽기적이지만 통렬하다. 김순임은 대형마트에서 사온 식자재에서 채집한 씨앗이나 뿌리를 포장 용기에 심어 발아시킨 식물들의 정원을 보여주는 설치 작품 ‘홈플러스 농장 2002’를 전시했다. 김유정의 ‘소리 없는 산’도 식물 설치 작품. 뿌리가 없는 채로 공기 중의 수분과 양분만으로 생존하는 식물 수염틸란드시아에 뒤덮인 폐가전제품들을 산의 형상으로 조형했다. 문명 이전 혹은 이후의 공존과 상생의 이미지를 표현한 작품이다. 강현덕의 ‘아름다운 소멸’ 역시 인간과 자연의 상생을 이야기한다. 작가마다 선명한 환경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다. 자연을 거침없이 해치우는 소비사회의 광기에 사려 깊은 거부권을 행사한다. 자연의 생존권을 침탈하는 일상의 풍속에 예리하거나 유려한 반론을 제기한다.
A동에서 컨테이너를 엮어 공중에 설치한 통로를 따르자 B동 2층에 닿는다. 이곳엔 아동들을 위한 ‘이팝나무 그림책도서관’과 청소년들이 예술을 주제로 맘껏 이벤트를 펼칠 수 있는 ‘꿈터 마루방’이 있다. 1층의 내부와 외부 역시 예술 놀이터다. 흥미로운 건 B동 구역에서 비로소 손질과 땜질을 거의 하지 않은 폐공장의 원형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낡고 삭아 추레한 폐건물을 그대로 놔둔 채 디자인 요소로 살려냈다. 따라서 이곳에선 과거로 잠시 회귀한 듯 감정적 동요를 느낄 수밖에 없다. 반짝이는 사물들로 채워진 세상의 이방과 이면이 여기에 있으니 말이다. 폐허란, 그 미련 없는 분위기란 차라리 하나의 유적이다. 새것과 날것으로는 좇아갈 수 없는 우수와 정취가 깊어 감정이입이 쉽다. 세월의 풍상에 누추하게 구겨진 저 오래된 사물이 뿜는 아련한 빛에 문득 직관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나여! 인간이여! 너의 몸을 스친 풍상은 한 조각 빛이라도 남겼더냐?
공간 전체를 한 바퀴 돌고 나자 커피 생각이 난다. 마침 A동에 카페가 있다. 여공(女工) 이미지를 조형한 대형 인형 ‘써니’를 심벌로 조성한 찻집이다. 조명구도 탁자 일부도 공장 시절의 용구를 활용해 만들었다. 이곳은 ‘썬전자’ 노동자들이 407일 동안 전개한 노조사수투쟁의 센터이기도 하다. 이렇듯 팔복예술공장 곳곳에 반추할 만한 기억이, 음미할 만한 서사가 담겨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유튜브를 운영하는 1인 미디어 시대다. 최근 유명 유튜브 채널에는 대선 후보가 나란히 출연하는 등 기존 레거시 미디어 못지않은 영향력을 자랑하고 있다. 여러 유튜버 사이에는 중장년들도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오랜 기간 한 분야에서 쌓아온 전문성을 무기로, 젊은 창작자 사이에서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최재천 교수 '최재천의 아마존'
교과서에서 나오는 '황소개구리와 우리말'을 쓴 최재천 교수. 그는 세계적인 생물학자이자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다. 최재천 교수는 1년 전부터 유튜브 채널 '최재천의 아마존'을 운영 중인데, 최근 젊은 층 사이에서 채널의 인기가 급상승했다. 며칠 전 구독자 10만 명을 돌파했고, 현재는 11만 명을 넘어섰다.
최재천 교수의 채널이 갑자기 떠오른 이유는 지난 달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낳는 사람은 이상한 겁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리면서다. 해당 영상은 조회수 61만 명을 돌파했다.
최 교수는 한국 사회의 저출산 현상에 대해 "진화생물학자인 제가 보기에는 아주 지극히 당연한 진화적 적응 현상"이라며 "주변에 먹을 것이 없고 숨을 곳이 없는데, 번식을 하는 동물은 진화 과정에서 살아남기 힘들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지금 애를 낳는 사람은 바보다"라며 "머리가 얼마나 나쁘면, IQ가 두 자리가 안 되니 애를 낳는 것이냐. 애를 낳아서 기른다는 것은 아무리 계산해봐도 결코 현명한 일이 아니다"라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이와 같은 최 교수의 의견에 대해 네티즌들은 "세지만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젊은 사람들보다 더 젊은 생각이 멋지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최재천 교수는 10만 구독자 돌파 소감에 대해 "1년이 훌쩍 넘도록 이게 언제 구독자 수가 늘어나냐면서 열심히 달려왔는데 정말 감사하다"면서 "제가 최근에 팀원들에게 '뭔일이냐'라는 말을 많이 했다. 저도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를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일환 변호사 '차산선생법률상식'
대법관을 지낸 박일환(70) 변호사는 지난 2018년 12월부터 '차산선생법률상식'을 운영 중이다. 30년 이상 판사로 일하며 얻은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법률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사람들이 알기 어려운 법률 상식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현재 구독자는 13만 명을 넘어섰다. 초반에는 법에 문외한 딸이 영상 편집을 맡았고, 손주도 종종 출연해 친근한 느낌이 강했다. 현재는 법률 방송과 함께해 영상 퀄리티가 좋아졌고 좀 더 전문적인 느낌이다. 박일환 변호사는 일을 그만둔 이후에는 유튜브 운영에 더욱 힘쓸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김양수 농부 '귀농TIME'
전남 귀농 산어촌 서울 센터가 개설한 유튜브 채널 '귀농TIME'. 여기에서 '농부의 정석' 시리즈를 맡고 있는 김양수 씨(54) 씨는 가장 인기 스타이다.
그가 지난 4월에 올린 '진딧물의 정복자, 숨겨둔 비법 대공개' 영상은 27일 현재 조회수 43만 명을 돌파했다. '귀농TIME' 콘텐츠 중 누적 조회수 1위다. 매우 간단하면서도 경험에서 우러나온 비법은 많은 귀농·귀촌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또한 '귀농TIME'에서 '뚝심으로 70대에 토종 다래 명인이 되다'는 누적 조회수 13만회, '직접 만든 강력한 천연 기피제로 해충들을 몰아내는 비법 대공개'는 10만회, '꿀고구마 1년 순수익 1억 달성, 3가지 핵심 키워드'는 7.4만회를 각각 기록하며 그 뒤를 이었다.
고수·도사·달인의 '고도달TV'
'고도달TV'의 운영자는 '고수' 최종찬 씨(71), '도사' 유시탁 씨(72), '달인' 정상곤 씨(72)다. 이들은 경복고, 서울대를 졸업한 동문으로 오랜 우정을 이어가고 있다. '주변에 도움이 되는 노년'이라는 목표로 의기투합한 세 친구는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전하겠다는 각오다.
'고도달TV'에서는 키오스크 사용법, 건강검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하기, 추억의 먹거리, 자녀·손주들과 잘 지내기 등 같은 생활 밀착형 소재들을 다뤘다. 시니어들에게 많은 정보와 도움을 주고 있다.
지난 7월 첫 영상을 올렸고, 현재 구독자 수는 2천 명이 채 안 된다. 지난달 '2021 제1회 시니어유튜버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으며 더욱 주목 받고 있다.
처음엔 진지하고 무게 잡아 딱딱하던 종편 채널 정치 평론가들이 많이 달라졌다. 아마 방송국의 요구도 있었겠지만, 요즘은 마치 ‘준 연예인’이라도 된 듯하다. 어느새 인기 패널도 생겼단다. 그래서인지 시종 소란스러운 정치판을 다루는데도 여성 팬이 많아졌다는 소식이다. 필자도 어느새 시간에 맞추어 고정적으로 그들의 입담을 즐기는 버릇이 생겼다.
오늘도 어김없이 즐기는 채널을 틀었다. 그런데 오늘의 주제는 참담했다. 5개월여를 숨 가쁘게 달려오던 정치 미니시리즈가 드디어 대단원의 막을 내리려는 극적인 장면이다. 바로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이었다. 화면은 구속되는 대통령을 반복해 내보내고 있었다. 우아하던 올림머리는 풀이 죽고 얼굴도 초췌했다. 비록 한심한 잘못을 저질렀지만, 이 장면에서만큼은 연민의 정을 금할 수 없었다.
사실 박 전 대통령의 당선은 매우 역사적인 일이었다. 민주주의 종주국인 미국에서도 이루지 못한 대한민국 최초 여성 대통령의 탄생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박근혜가 아직도 여성으로 보이냐?” 라는 괴담도 있기는 하지만, 그의 등장이 여성들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것임에는 틀림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제는 두 번 다시 여성 대통령이 나오지 못하게 대못을 박아 버렸다.
그동안 유행하던 페미니즘이 정치 바람에 오염되어 퇴색하기는 했어도 그런 유행 덕분에 여성의 지위가 향상된 것은 사실이다. 물론 아직도 공직이나 대기업에서 여성의 지위가 미약하기는 하지만, 남녀평등의 대세는 이미 돌이킬 수 없다. 아니 오히려 남성들이 역차별을 우려하는 지경까지 되었다. 박근혜만 잘했어도 하는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여성에게 우호적인 최재천 교수에 따르면 “인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남성의 시대는 오래되지 않았다. 인류가 등장하고 25만 년 동안, 남성이 여성보다 우위에 있었던 시대를 계산해 보면 1만 년 정도에 불과하다.”며 위로한다. 곧 여성의 시대가 다시 온다는 말이다. 사실 지금이 근육의 힘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시대도 아니지 않은가.
어린 세대에서는 이미 전세가 역전된 것인지 모른다. 어느 남녀공학 고등학교 교장의 토로가 흥미롭다. 체육복을 갈아입을 때면 예전에는 여학생들이 화장실로 달려갔는데 요즘엔 거꾸로 남학생이 옷을 싸 들고 화장실로 간다며 웃었다. 여학생들이 교실에서 거침없이 옷을 갈아입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세대 빼고는 이미 변화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얘기다.
가정에서도 그런 세상의 변화는 감지된다. 변화에 적응하는 남성들은 살아남는 반면 아직도 환상 속에 사는 남성들은 버림받기 십상이다. 우리 세대에나 아직 세상물정 모르고 버티는 남자들이 천연기념물로 존재하지만, 젊은 층에서는 가사 노동하고 화장하는 남자들이 사랑받는 실정이다. 요즘 여자들에게 인기 있는 아이돌들은 한결같이 어여쁘지 않은가.
그동안 20세기 산업사회에서 남성들이 만든 경쟁 중심 사회 구도를 벗어나 21세기 지식산업 시대에는 여성들이 주도하는 조화와 공존의 시대가 펼쳐질 것으로 기대한다. 비록 박근혜는 실패했지만, 이미 우리 사회는 공감과 소통이라는 여성성이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자산임이 확인되었다. 어느새 화면에 여성 정치 패널이 심심치 않게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때부터인가 시니어를 지칭하는 단어가 ‘50플러스’가 되었다. 외국에서 건너온 단어이기도 하지만, 50세에 직장을 퇴직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실감이 난다. 50대에 활발히 인생 이모작 활동을 시작하고 60대 중반에 피크를 이루는 것이 대세인 것 같다.
이란 책은 50+인생학교 학장 정광필씨가 최재천 교수, 박원순 서울시장 등 11명의 이야기를 모아 낸 책이다. 전체적으로 경어체로 통일 시킨 것이 좀 거슬렸다. 경어체는 겸손의 자세는 있어 보이지만 가르치는 것 같아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인생 이모작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가지 책이 나온 바 있다. 그 나이가 어떤 의미이며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 갈 것인가에 대한 토론이었다. 추상적인 설계부터 각자의 전공에 따라 여러 가지 주장을 해왔다. 이런 책들 덕분인지 시니어에 대한 인식은 어느 정도 되어 있는 것 같다.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 갈 것인가에 대해 각자 택할 방식은 각자의 몫이다.
여러 사람의 글 중에 ‘개저씨는 왜 혼자가 되었나?’를 쓴 이승욱 씨의 글이 마음을 당겨 이 책을 사게 되었다. ‘개저씨’는 아저씨를 낮춰 부르는 경멸의 단어이다. 시니어들이 범람하는 사회에서 필자 나이 또래들도 눈에 거슬리게 느끼는 일들을 지적했다. 매너는 당연하지만, 특히 말을 적게 하고 경청하라는 것이다. 시니어가 되면 말이 더 많아 지는 사람도 있고 말수가 적어지는 사람도 있다. 특히 말이 많은 사람은 상대를 피곤하게 하고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실수가 불가피하다. 자녀들에게 문제가 발생하면 아빠와 상의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60%라고 한다. 그러나 자녀들에게 물어 보면 1% 이하가 그런 생각이 있다는 것이다. 시니어들은 자신이 신식 아빠라는 환상에 젖어 있지만, 그래봤자 구세대라는 것이다. 그러니 소통이 될 리가 없다.
행복한 성문화대표 배정원씨의 글은 늘 재미있다. 아직도 남자들도 입에 담기 꺼려하는 성생활 이야기를 여자가 하고 있어서 눈길을 끈다. 미인이면서 늘 웃는 인상에 긴 머리를 하고 있어 젊어 보인다. 여자의 입장에서 성에 대한 얘기를 풀어 놓아 남자들에게 여성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사랑과 섹스, 로맨스에는 은퇴가 없다’며 지속적인 성생활을 주장하고 있다. 섹스를 하면 좋은 점은 면역력 강화를 비롯해서 상당히 많은데 시니어들은 오히려 성생활 중단 및 기피로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섹스를 하고 나면 상대방의 성 에너지가 내 몸 속에 7년이나 머문다는 주장도 눈길을 끈다. 성생활은 시니어들의 고민 중 큰 요소이긴 하다. 몸이 예전 같지 않은데다 배우자마저 등을 돌리고 있어 고민을 풀 수 있는 환경이 점점 나빠지고 있는 것도 큰 문제이다.
최광철- 안춘희 부부는 90일 동안 유럽 5개국 3,500km을 자전거로 횡단했다. 원주시 부시장까지 역임한 사람이다. 스마트폰과 구글지도 덕분에 초행길을 무사히 완주한 것이다. 시니어들의 버킷리스트에 여행은 빠짐없이 들어간다. 그래봤자 여행단 따라 3박 4일 정도 쉬고 오는 정도의 여행일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한꺼번에 화끈하게
단독 주택에 조그만 텃밭을 운영하고 있다. 얼마 전 길고양이가 텃밭에 와 새끼를 낳더니 아예 눌러 앉았다. 도시에 먹을 것이 없어 갓 태어난 새끼들이 힘들어 하는 것을 보다 못해 생선가게에 가서 생선머리를 얻어 주고 우유를 타 주었지만 전혀 먹지를 못했다. 죽어가는 모습을 보니 안타까웠다. 그러다 지인들에게 자문을 구해보니 애완견 가게에 파는 사료가 있다고 해서 사서 주니 잘 먹는다. 비실비실하던 새끼 고양이 5마리와 어미가 활기를 되찾는 것을 보고 기쁜 마음이 들었다. 주위에서는 먹이를 주며 돌보다 보면 집이 온통 고양이로 찬다고 주의를 준다. 그런데 어이하랴. 생명은 아름답고 귀중한 것을. 이 지구에서 공생하는 생명체이니 힘이 미치는 데까지 돌보기로 가족들과 합의했다.
얼마 전 아내와 해외여행을 떠나는 일이 생겼다. 고양이가 걱정되었다. 여름에 며칠 먹이를 못 먹으면 탈이 나지 않을까. 새끼 고양이의 애처러운 모습이 눈에 밟혀 집에 있는 막내 아들에게 고양이를 단단히 부탁하고 떠났다. 여행 가서 문자로 먹이를 잘 주고 있는지도 수시로 점검하였다. 소식을 주고받는 중에 고양이가 쥐를 잡았다는 것을 들었다. 밥값을 한 셈인가. 대견함이 느껴졌다. 사람과 동물이 소통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행위로 인해 생명다양성이 감소되어 생태계가 위협을 받는다는 뉴스를 들으면서도 당장 뚜렷한 피해를 못 느껴 무시하고 있다. 생물들이 사라지게 되면 인간도 지구에서 생존이 어렵다는 것은 분명하다. 지속가능성이 화두로 등장한다. 생태계를 보존하면서 개발을 해가야 지속가능하다. 인간은 벌써 멸망을 향해 간다는 보는 비관적인 예측도 나왔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지구상에 존재한 지는 곤충이나 식물보다 짧다. 고작 백만년도 안 된 인간에 비해 수억 년을 생존한 생물도 있다. 다른 생물에게 없는 문화적인 힘으로 아주 짧은 기간에 지구를 지배하고 있다. 권한에는 책임이 따른다. 지구를 잘 보존할 의무는 없을까. 선한 관리자의 역할이 있다고 보인다. 한 때 채식주의 논쟁으로 갑론을박한 적이 있었다. 필자는 100%는 아니지만 채식주의에 찬성하는 편이다. 동물도 인간과 같이 사고하고 느끼는 능력이 주어져 있다고 한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동물을 무자비하게 대하는 것에 찬성할 수 없다.
지구에서 인간보다 오래 생존한 생물에게 배울 점이 있다. 생물학자인 최재천 교수의 책 『개미제국의 발견』에 보면 이익을 극대화하는 분업, 저축, 유동식 기업조직, 규모의 경제, 합리적 경영, 개방경제, 의사소통, 전쟁과 노예, 경쟁, 협조, 조직형태 등 경영학에서 발견한 것과 유사하거나 같은 것이 나온다. 개미연구를 통해 인간이 배울 수 있는 지식이 많다. 개미뿐만 아니라 벌에서도 배울 점이 있다. 생명다양성을 유지하면서 생물들과 공존하는 것을 배울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인간의 지속가능성을 증가시킬 수 있을 것이다. 생명을 존중하는 것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필자는 도시에서 살기 어려운 길고양이 6마리를 돌보는 것에서 시작한 셈이다. 잘 되어 좋은 결과 있기를 기대한다.
파릇파릇 잎사귀가 싱그러운 신록의 계절 5월.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의 존재를 만끽해보고 싶다면 국립생태원이 제격이다. 손주와 함께 생태원 구경도 하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자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까지 심어주면 어떨까? 그런 이들에게 국립생태원 최재천(崔在天·61) 원장은 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글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
온 가족이 함께 생각을 마주하는 어른동화
최 원장이 추천하는 은 프랑스 동화작가 프랑수아플라스의 어른용 동화다. 어른, 아이 모두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최 원장은 은 거의 완벽에 가깝다고 이야기했다.
“여느 책처럼 추천사를 부탁받아서 처음 접하게 됐는데, 이 책은 굉장히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해줬어요.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이 읽기 어려운 책도 아니죠. 또, 어른이 읽어도 마치 자기가 어린 시절에 읽었던 동화를 읽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어요. 아이가 놓치는 부분이 있더라도 책을 다 읽고 나면 나름의 해석을 할 수 있고, 생각을 이야기하기에 충분하죠. 저는 아이들에게 책 읽기를 강요하지만, 절대로 줄거리를 말해보라고 하거나 독후감을 써내라고 하지 않아요. 그런 부담을 가지고 읽으면 책 읽는 재미가 없거든요.”
평소 최 원장네 부자(父子)는 책을 읽고 그에 대한 생각을 서로 허물없이 이야기하곤 한다. 그렇게 책은 그와 아들 사이의 소통의 매개체이자 대화의 소재가 된다.
“이제 이십대 후반인 아들이 가끔은 제가 읽는 책을 뺏어서 읽기도 하고, 서로 빌려 읽기도 해요. 읽고 나면 다짜고짜 앉아 토론하듯 말하는 게 아니라 얼마가 지난 후 자연스럽게 식사를 하면서 책에 대해 이런저런 대화를 하죠. 그러고 있으면 아내도 ‘무슨 책인데?’라며 궁금해서 책을 읽게 되고, 그렇게 온 가족이 독서를 하고 대화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요. 도 세대마다 느끼는 바가 조금씩 다를지라도 온 가족이 쉽게 읽고 저녁을 먹으면서 자기 생각을 이야기해볼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해요. 대화를 하다 보면 때론 아이의 말에서 깨달음을 얻기도 하죠.”
소중한 자연, 알아가고 보듬어야 할 세대
책의 주인공은 한 노인에게서 산 ‘거인의 이’의 지도 속 ‘거인족의 나라’를 찾아간다. 순수하고 다정한 거인들과 2년 7개월여 동안 겪은 일을 책으로 펴냈는데, 책을 통해 거인의 존재를 알게 된 인간이 거인을 해치고, 그들의 세계를 파괴한다는 내용이다.
“마지막에 목이 잘린 거인이 주인공에게 애절한 목소리로 말하죠. ‘침묵을 지킬 수는 없었니?’라고. 그 말이 굉장히 큰 감동으로 다가오더라고요. 예전에 학생들과 지리산 자락에서 자연 탐사를 하다가 반딧불이를 발견한 적이 있어요. 요즘에 어디 반딧불이를 발견했다고 하면 먼저 신문에 났겠죠? 그러면 사람들이 몰리고, 축제를 하고 야단법석을 떨어 자연이 훼손될 거예요. 그래서 그냥 우리만 알고 세상엔 알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학문적인 기록에는 작은 구멍이 날지라도, 가끔은 이렇게 자연을 숨겨줘야 할 것 같았거든요. 거인의 마지막 말처럼요.”
그는 전 세대가 다 읽어볼 만한 책이지만, 특별히 중·장년에게 을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 중·장년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자연에 대한 공감, 감성이 제일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우리는 그렇게 살아보지도 못하고 배워보지도 못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자연, 환경이 중요하다고 하니, 그걸 공감하기 어려운 세대가 되어버렸어요. 이 나이에 자연공부를 다시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나 몰라라 하는 것은 더욱 아니죠. 세대를 불문하고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이슈는 우리가 사는 지구, 자연을 어떻게 더 망가지지 않게 하느냐이거든요. 배우지 않았다 해서 떠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까지 보듬어야 할 세대인 거죠. 다짜고짜 학술적인 책 등을 읽고 덤비는 것보다는 일단은 을 통해 그런 것들을 감성적으로 공감하고 접했으면 좋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자연에 대한 생각을 키우는 시작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노는 법도 10년은 배워야
2005년 는 도서로 인생 이모작이라는 단어를 탄생시킨 최 원장. 10년이 지난 지금, 그의 인생 이모작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가 준비돼 있건 없건 다가오는 은퇴라는 상황에서, 내가 먼저 나에게 다가올 인생을 기획하자. 그래서 인생을 딱 두 번 나눠서 살아보자. 일하면서 사는 인생, 그리고 일을 멈추고 사는 인생으로 이모작하자고 해서 지어낸 말이죠. 근데 인생 이모작하라 해놓고 정작 나는 뭘 하고 있나. 그런 것으로 치면 나는 낙제점이에요. 사실 제 경우엔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놀 준비를 못 하고 있어요. 다들 일 걱정은 많이 하지만 놀 걱정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죠. 한 교장 선생님 말씀이 노는 것도 10년은 준비해야 한다더라고요. 운동이든 뭐든 노는 방법도 10년은 준비해야 은퇴해서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다는 거죠. 은퇴하고 재산을 많이 모은 사람이라도 노는 준비가 안 되어 있으면 어디 끼지도 못할 거 아녜요. 그럼 노후가 얼마나 쓸쓸하겠어요. 저도 노력해야겠지만, 다들 어서 놀 준비하시라고 말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