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릇파릇 잎사귀가 싱그러운 신록의 계절 5월.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의 존재를 만끽해보고 싶다면 국립생태원이 제격이다. 손주와 함께 생태원 구경도 하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자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까지 심어주면 어떨까? 그런 이들에게 국립생태원 최재천(崔在天·61) 원장은 <마지막 거인>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글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
온 가족이 함께 생각을 마주하는 어른동화
최 원장이 추천하는 <마지막 거인>은 프랑스 동화작가 프랑수아플라스의 어른용 동화다. 어른, 아이 모두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최 원장은 <마지막 거인>은 거의 완벽에 가깝다고 이야기했다.
“여느 책처럼 추천사를 부탁받아서 처음 접하게 됐는데, 이 책은 굉장히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해줬어요.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이 읽기 어려운 책도 아니죠. 또, 어른이 읽어도 마치 자기가 어린 시절에 읽었던 동화를 읽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어요. 아이가 놓치는 부분이 있더라도 책을 다 읽고 나면 나름의 해석을 할 수 있고, 생각을 이야기하기에 충분하죠. 저는 아이들에게 책 읽기를 강요하지만, 절대로 줄거리를 말해보라고 하거나 독후감을 써내라고 하지 않아요. 그런 부담을 가지고 읽으면 책 읽는 재미가 없거든요.”
평소 최 원장네 부자(父子)는 책을 읽고 그에 대한 생각을 서로 허물없이 이야기하곤 한다. 그렇게 책은 그와 아들 사이의 소통의 매개체이자 대화의 소재가 된다.
“이제 이십대 후반인 아들이 가끔은 제가 읽는 책을 뺏어서 읽기도 하고, 서로 빌려 읽기도 해요. 읽고 나면 다짜고짜 앉아 토론하듯 말하는 게 아니라 얼마가 지난 후 자연스럽게 식사를 하면서 책에 대해 이런저런 대화를 하죠. 그러고 있으면 아내도 ‘무슨 책인데?’라며 궁금해서 책을 읽게 되고, 그렇게 온 가족이 독서를 하고 대화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요. <마지막 거인>도 세대마다 느끼는 바가 조금씩 다를지라도 온 가족이 쉽게 읽고 저녁을 먹으면서 자기 생각을 이야기해볼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해요. 대화를 하다 보면 때론 아이의 말에서 깨달음을 얻기도 하죠.”
소중한 자연, 알아가고 보듬어야 할 세대
책의 주인공은 한 노인에게서 산 ‘거인의 이’의 지도 속 ‘거인족의 나라’를 찾아간다. 순수하고 다정한 거인들과 2년 7개월여 동안 겪은 일을 책으로 펴냈는데, 책을 통해 거인의 존재를 알게 된 인간이 거인을 해치고, 그들의 세계를 파괴한다는 내용이다.
“마지막에 목이 잘린 거인이 주인공에게 애절한 목소리로 말하죠. ‘침묵을 지킬 수는 없었니?’라고. 그 말이 굉장히 큰 감동으로 다가오더라고요. 예전에 학생들과 지리산 자락에서 자연 탐사를 하다가 반딧불이를 발견한 적이 있어요. 요즘에 어디 반딧불이를 발견했다고 하면 먼저 신문에 났겠죠? 그러면 사람들이 몰리고, 축제를 하고 야단법석을 떨어 자연이 훼손될 거예요. 그래서 그냥 우리만 알고 세상엔 알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학문적인 기록에는 작은 구멍이 날지라도, 가끔은 이렇게 자연을 숨겨줘야 할 것 같았거든요. 거인의 마지막 말처럼요.”
그는 전 세대가 다 읽어볼 만한 책이지만, 특별히 중·장년에게 <마지막 거인>을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 중·장년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자연에 대한 공감, 감성이 제일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우리는 그렇게 살아보지도 못하고 배워보지도 못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자연, 환경이 중요하다고 하니, 그걸 공감하기 어려운 세대가 되어버렸어요. 이 나이에 자연공부를 다시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나 몰라라 하는 것은 더욱 아니죠. 세대를 불문하고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이슈는 우리가 사는 지구, 자연을 어떻게 더 망가지지 않게 하느냐이거든요. 배우지 않았다 해서 떠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까지 보듬어야 할 세대인 거죠. 다짜고짜 학술적인 책 등을 읽고 덤비는 것보다는 일단은 <마지막 거인>을 통해 그런 것들을 감성적으로 공감하고 접했으면 좋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자연에 대한 생각을 키우는 시작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노는 법도 10년은 배워야
2005년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는 도서로 인생 이모작이라는 단어를 탄생시킨 최 원장. 10년이 지난 지금, 그의 인생 이모작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가 준비돼 있건 없건 다가오는 은퇴라는 상황에서, 내가 먼저 나에게 다가올 인생을 기획하자. 그래서 인생을 딱 두 번 나눠서 살아보자. 일하면서 사는 인생, 그리고 일을 멈추고 사는 인생으로 이모작하자고 해서 지어낸 말이죠. 근데 인생 이모작하라 해놓고 정작 나는 뭘 하고 있나. 그런 것으로 치면 나는 낙제점이에요. 사실 제 경우엔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놀 준비를 못 하고 있어요. 다들 일 걱정은 많이 하지만 놀 걱정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죠. 한 교장 선생님 말씀이 노는 것도 10년은 준비해야 한다더라고요. 운동이든 뭐든 노는 방법도 10년은 준비해야 은퇴해서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다는 거죠. 은퇴하고 재산을 많이 모은 사람이라도 노는 준비가 안 되어 있으면 어디 끼지도 못할 거 아녜요. 그럼 노후가 얼마나 쓸쓸하겠어요. 저도 노력해야겠지만, 다들 어서 놀 준비하시라고 말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