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5월 한 달간 덕수궁 돌담길, 청계광장, 반포한강공원 등 서울의 야외 명소 12곳에서 ‘국악버스킹’을 진행한다.
국악버스킹은 코로나19로 인해 지난 2년간 비대면·온라인 공연으로 진행됐으나, 이달부터는 방역 지침 완화에 따라 전면 대면 공연으로 열린다. 지난 4일 덕수궁 돌담길에서 펼쳐진 여완밴드의 공연을 시작으로 총 12개 장소에서 국악 아티스트의 버스킹 공연이 30회 진행된다.
이번 국악버스킹에는 박자희(청계광장), 서일도와아이들(별빛내린천), 전영랑&보울(덕수궁돌담), 정초롱(효자동), 윤예원(이태원), 윤대만(덕수궁돌담), 김란이(효자동), 월드뮤직밴드 도시(세운상가), 김하은(효자동), 소리맵시(신촌), B.O.B.(오징어게임 체험관), 잔향(DDP어울림마당), 퀸(반포한강공원), 조주한(인사동) 등이 참여한다.
공연은 많은 시민이 일상에서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점심시간과 저녁 퇴근 시간을 활용해 열린다. 서울시 문화본부 유튜브 채널 ‘문화로 토닥토닥’에서도 회차별 현장 공연 영상을 볼 수 있다. 국악버스킹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운영단체(정아트앤컴퍼니) 인스타그램에서 확인하면 된다.
주용태 서울시 문화본부장은 “거리두기가 해제되어 다시 서울 곳곳에서 많은 시민 여러분께 우리의 소중한 국악 공연을 선보일 수 있게 되어 기쁘다”며 “다시 시작된 ‘국악버스킹’ 무대로 국악 예술인들과 시민 모두 활기를 되찾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금천구치매안심센터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치매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고, 치매를 겪고 있어도 사회 구성원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돕는다. 치매안심센터 풍경과 관련 활동을 통해 치매에 맞서는 노인들을 중심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보자.
#1 금천구치매안심센터에서는 노인들을 ‘정상군’, ‘고위험군’, ‘치매군’으로 단계를 구분하고 맞춤형 수업을 제공한다. 작업치료사, 운동처방사와 함께 기억력 훈련, 작업치료, 운동치료, 미술치료 등 인지 기능 향상과 우울감 감소를 위한 활동을 유도한다. 운동치료 시간, 노인들이 가수 장윤정의 ‘꽃’ 노래를 들으며 박자에 맞게 전신 재활 운동기구(보디 스파이더)를 움직인다. 인지 기능 및 신경자극 동작으로 뇌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함이다. “오른쪽 줄을 당기면서 왼쪽 다리를 함께 들어보세요”라는 작업치료사의 목소리에 수업에 참여한 노인들은 우왕좌왕이다. 여러 동작이 복합적으로 섞이면 정확하게 해내기가 더 어렵다. 동작이 맞는지 옆에 앉은 서로를 살피거나, “선생님, 이거 맞지요?”라며 적극적으로 질문한다. 작업치료사는 “아버지! 오른쪽!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 근육이 놀랄 수 있으니 천천히 호흡하면서 해보세요”라며 조언한다. 운동의 마지막에는 스트레칭이 빠질 수 없다. 온몸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던 근육을 달래준다. 몸이 피로해졌을 수 있으니 귀가 후 쌍화탕이나 따뜻한 차를 드시라는 말을 끝으로 수업이 마무리됐다.
#2 “어르신들, 이제 공부하러 가요!” 작업치료사의 안내에 따라 노인들이 일제히 책상이 마련된 교실로 들어간다. 오늘 수업은 주어진 한 페이지짜리 글에서 시옷이 몇 개인지 15분 동안 찾는 게 목표다. 쌍시옷은 시옷 두 개로 간주한다. 쌍시옷과 시옷, 시옷과 지읒을 구별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예컨대 ‘오늘 날씨가 맑아서 온 가족이 나들이를 나왔어요. 다들 기분이 좋아 보이네요. 따스한 바람이 불고, 벚꽃이 흩날리는 날 다 함께 다시 봄 내음을 맡을 날을 기다립니다’라는 글에는 총 7개의 시옷이 포함돼 있다. 어르신들은 연필을 꼭 쥐고 차분히 동그라미를 그리며 사뭇 진지한 태도로 수업에 임한다. 작업치료사는 “어머니, 더 찾아보세요. 우리가 지금 뭘 찾고 있는 거였죠? 시옷이죠? 규칙은 뭐였을까요?”라며 끊임없이 문제를 상기시킨다. “선생님, 혹시 네 개인가요? 제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게 맞나요?”라는 질문에 부드럽고 상냥한 말투로 응원한다. “조금만 더 힘내볼까요?”
#3 ‘주문한 것과 다른 것이 나올 수도 있고, 조금 늦게 나올 수도 있지만 자연스럽게 이해해주세요’라는 문구를 내세우는 조금은 낯선 카페가 있다.금천구치매안심센터 안에 있는 기억다방이다. 이곳은 경증치매 또는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은 어르신들이 바리스타로 참여하고 있다. 주문 내용을 재차 확인하거나 실수를 해도 손님들은 짜증을 내거나 직원을 탓하지 않는다. 주 고객은 치매 검진 및 상담자, 기억키움학교 학생 등 센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이 모 씨는 메뉴 주문에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들의 눈과 귀가 되어주기도 하고, 음료를 챙겨 나가는 길까지 직접 배웅한다. “언니 오늘은 조금 늦게 오셨네! 지난번에 목이 칼칼하다더니, 몸은 좀 어떠셔?”라며 치매안심센터를 찾은 사람들을 어루만져주는 따뜻한 ‘상담소’ 역할도 자처한다. 그는 주문이 한꺼번에 들어오면 뭘 주문했는지 잊거나, 이미 만들어둔 음료의 종류를 헷갈리기도 한다. 커피 머신이 갑자기 말썽을 부리면 당황해서 전에 배워뒀던 조작법이 떠오르지 않을 때도 있다. 대신 모양이나 생김새, 위치를 중심으로 기억하려 하고, 힘들 때는 종이에 바로바로 적는다. “우엉차랑 오미자차를 탔다가도 분명 왼쪽이 오미자인 걸 알았는데 돌아서는 순간 잊어버려요. 그래서 나름 공부를 해요. 오미자는 알맹이가 있고, 모과는 나무를 부숴놓은 것처럼 입자가 굵어요. 국화는 말린 꽃잎을 빻아놓은 모양새죠. 어떻게 하면 안 잊어버릴 수 있을지 고민해요.”
과거에는 당신이 치매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혹은 걸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늙어서 망령이 들었다’고 부르는 치매에 걸리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기도 했을 정도다. 치매를 지난 세상의 악업으로 인한 ‘업병’으로 여기는 오랜 편견과 치매 노인 부양의 어려움을 고려하면 오히려 더 무서운 것은 ‘치매 공포증’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치매가 왔든 오지 않았든, 맞설 용기만 있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치매와 싸우는 사람들이 당신과 함께할 테니 말이다.
연말은 기부나 모금이 활발하다. 거리에서는 구세군의 자선냄비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전염병으로 뒤숭숭한 날들을 보내고 있는 지금, 다들 어떻게 기부를 하고 있을까? 실제 사례와 코로나19 이후 달라진 기부문화를 살펴보자
코로나19 이전에도 기부는 늘고 있는 추세였다. 지난 2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나눔문화연구소가 발표한 ‘2020 기부 트렌드’에 따르면, 국내 기부자 수는 2013년까지 증가하다가, 2014년 잠깐 530만 명 수준에서 정체를 보였다. 하지만 그 뒤로는 꾸준히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2017년 기준으로 보면 30대(26.5%)와 40대(31.8%)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50대(25.6%)는 2013년과 비교했을 때 3% 정도 늘었다.
기부 동기는 세대별로 달랐다. 나눔문화연구소가 국내 기부자 세대별 특성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는 기부를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생각했고, X세대는 포용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 중 하나로 봤다. 두 세대는 SNS로 모금활동에 참여하거나, 자신이 속해 있는 팬클럽을 통해 기부를 했다.
베이비붐 세대는 여유로운 경제력을 갖추고 있고 사회와 집단에 관심이 많아 은퇴 이후에도 꾸준히 기부활동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되었다. 세대별로 동기는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기부에 대한 관심은 높아진 상황이다.
높은 관심은 악재에도 여전했다. 코로나19 이후에도 기부가 늘고 있다. 실제로 지난 7월 기준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코로나19 성금으로 모인 금액은 2505억 원이다. 이는 재난 관련 국내 모금액 중 가장 많은 액수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관계자는 “다른 재난과 달리 파급 효과가 크고, 장기화하면서 모금액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국가적으로 어려워진 상황 속에서 모두 이웃을 위하여 조금씩 힘을 보태고 있었다.
그렇다면 일반 시민들은 어떤 방식으로 기부활동을 하고 있을까? 코로나19 이후 기부문화는 달라졌을까? 다음 사례를 통해 살펴보기로 하자.
코로나19로 바뀐 기부 문화
경조사도 기부로 한다
축의금과 조의금을 받는 경조사의 모습이 달라지고 있다. 지난 4월 방송인 최희 씨는 기부 웨딩을 진행했다. 기부 웨딩이란 결혼식 비용으로 기부를 하는 것이다. 최 씨는 피로연, 신혼여행 등을 생략하고 국제 어린이 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에 3000만 원을 기부했다. 축의금 기부처럼 조의금을 기부하는 경우도 있다. 부산에 사는 전직 경찰공무원 A 씨는 지난 4월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써달라며 모친 장례 시 받은 조의금 중 1000만 원을 사회복지법인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했다. A 씨는 평소에도 정기적인 기부와 무료급식 봉사활동에 참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기부 수혜자가 기부자가 된다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이들이 도움을 주는 경우도 있다. 지난 3월 굿네이버스 방화2종합사회복지관에서 관리를 받는 중증 장애인 어르신이 고생하는 복지관 직원들을 위해 일회용 마스크 20장을 전달했다. 한 어르신은 “늘 고마운 마음을 보답하고 싶었다”면서 마스크 전달 소회를 밝혔다. 해당 복지관 관계자는 “건강이 좋지 않아 거동이 불편하신데도 직접 사무실을 방문하셨다. 마스크에 담긴 온기만큼 따뜻한 힘을 얻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토닥토닥 캠페인
코로나 블루로 인한 무력감을 해소하기 위해서 ‘토닥토닥 캠페인’이 유행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장기화로 지친 마음을 ‘나비포옹법’ 동작을 통해 위로하는 자기 돌봄 캠페인이다. 나비포옹법은 양팔을 X자로 교차해 가슴 위에 올리고 왼손과 오른손을 번갈아가며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주는 심리안정화 기법이다. 배우 류수영, 가수 김태우 등 연예인들도 동참했다. 최근에는 이용섭 광주시장과 구제길 광주 아너 소사이어티 회장도 참여했다. 구 회장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하루빨리 종식돼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불교 성지 순례단의 한 사람으로 미얀마를 여행했다. 맨발로 다녀야 하는 사찰 경내에서 여행객이 벗어놓은 신발을 정리해준 후 “원 달러! 원 달러!” 하며 졸졸 따라다니던 아이들. 그 아이들은 얼굴 군데군데에 진흙 같은 것을 바르고 있었다. 강렬한 햇빛으로부터 피부 보호를 위해 바르는 미얀마 전통 화장품 ‘타나카(Thanaka)’였다. 곱게 보이기 위한 화장이라기 보다는 피부 보호제였다. 처음엔 우스꽝스러웠으나 타나카를 아무렇지 않게 덕지덕지 바른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웃을 때의 모습은 더할 수 없이 예뻐 보였다. 타나카와 함께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이 최상의 화장품 역할을 하고있었다.
출근 시간대 3호선 전철 안. 경로석은 만원이어서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일반석 앞에 서 있고 그 앞 좌석엔 20대로 보이는 아가씨 한 사람이 앉아 손거울을 보며 눈 화장을 하고 볼연지도 토닥토닥 열심히 바른다. 세 정거장이 지나서야 마무리 한다. 정성을 다해 화장한 얼굴이 곱게 느껴져야 할텐데 전혀 그렇지 않음은 왜일까? 미소라곤 찾을 수 없고 게다가 앞에 힘들게 선 할머니를 아무렇지 않게 보고 있으니 아무리 화장품을 덕지 덕지 발라도 곱게 보일 리가 없다.
좋은 화장품이나 기능성 제품으로 얼굴을 곱게 다듬는 일도 중요하긴 하다. 자존심을 높일 수 있고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아름다운 화장품은 얼굴에 자연스럽게 ‘바르는’ 미소다.
“가장 좋은 화장품, 미소를 씁시다.”
노래하는 시인 김광석! 마침내 그를 만났다. 지난 해 11월 25일 대구 김광석 거리에서였다. 그는 시인이다. 노랫말이 아름다우면서도 곡은 애잔하다.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
5년 전이었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듣던 필자가 우니까 아들이 필자를 안고서 등을 토닥토닥 다독여줬다. 아직도 감성적인 60대 엄마가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라는 대목에서 울음이 터지니 30대 아들이 달래줬던 것이다.
그의 노래를 알게 된 것은 20여 년 전 동료 국어선생님들 덕분이었다. 평택여고 국어선생님들은 '일어나',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등 그의 노래를 즐겨 불렀다. 필자는 잠자고 있던 감성을 마구 휘저어놓는 그들이 참 좋았다.
그의 노래는 한 편의 아름다운 시였고 가슴을 저미게 하는 슬픔이 있었다. 이슬처럼 맑은 그의 영혼은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자신의 노래로 위로가 되기를 바랐다. 소탈한 모습의 그는 노래 부를 때는 열정적인 사나이가 되어서 떠나간 여인이 다시 돌아오기를 간절히 호소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힘없이 체념해버리는 모습이 무척이나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
그는 왜 그렇게 세상을 일찍 떠난 것일까? 여린 그의 영혼이 견디기에 지구의 삶이 너무 버거웠던 것일까? 아쉽고 또 아쉽다 우리 곁에 오래 머물러서 더 많은, 주옥같은 노래들을 만들어서 불러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청라 언덕에서’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 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
(…)
청명한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한 고색창연한 고딕양식의 교회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청라언덕에 갔을 때의 일이다. 청라언덕은 담쟁이가 무성했던 언덕이기에 붙여진 이름이라 했다. '청라'에서 '청'은 '푸를 청' 자이고 '라'는 '담쟁이 라' 자라고 문화해설사가 설명해주었다. 새로운 지식은 늘 흥미롭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가을날이었는데 감성적인 해설사의 해설 또한 아주 맛깔스러웠다. 그녀의 지도로 우리들은 청라언덕에선 '동무생각'을 노래하고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곳에서는 '대한독립 만세' 삼창을 했다. 우리들은 '날씨와 사람' 두 가지 행운을 다 누렸다.
가곡 '동무생각'에 얽힌 스토리에 눈물이 났다. 3년 전에도 이 노래비에 얽힌 스토리에 눈물이 났었는데 또 눈물이 났다. 작곡가 박태준 선생님의 러브 스토리 때문이다. 대구 계성고등학교를 다니던 그는 경북여고 여학생을 연모했단다. 하지만 내성적인 성격에 끝내 말 한 마디 못하고 가슴에 그 사랑을 묻어버렸다. 몇 년 후 그는 같은 학교에 근무하던 이은상 시인께 자신의 애달픈 사연을 들려줬다.
"잊지 못할 그 소녀를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켜 곡 안에 담아두면 박 선생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냐.”
"가사를 써줄 테니 곡을 붙여보겠나?”
이은상 시인은 즉석에서 시를 써서 건넸다고 한다. 박태준 선생님의 첫사랑은 '동무생각'에서 영원히 숨 쉬고 있는 것이다.
나는 왜 그리도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 마음이 쓰이고 가슴이 아픈 걸까? 사랑! 여느 사람들에게는 일반적인 아름다움이겠지만 나는 아니다. 아프고도 슬프다.
올해 들어 4~5개월 동안 지난날 잃어버렸던 병마와의 싸움 속에 갇혀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초등학교 친한 친구가 연말에 건강검진결과 암 진단을 받으며 긴 시간을 아파해야 했고, 죽마고우로 필자의 아픔을 걱정하며 위로해주던 친구마저 갑상선암수술로 생활의 리듬이 깨져버려 병마와 동반자가 되어 가고 있었다.
우리나라 여성암 발병률 1위인 갑상선암과 유방암이 50대 중반의 친구들에게 건강의 적신호를 전해 주고 있었다.
세 사람 중 한사람이 암 환자라는 말을 실감하며 현실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까마득한 옛일이라 생각했는데 10년 전 건강검진결과 유방암과 갑상선암의 진단과 함께 몸 전체에 이상이 있음을 발견하고 난 암센터에 입원을 했다.
생존과의 싸움, 그리고 나와의 전쟁에서 싸우고 있었던 사람들 사이로 스며들며 나는 모든 삶을 포기한 채 인생을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항암하면 언제부터 머리가 빠지나요?” “수술하면 많이 아프나요?”하며 난 마지막이 될 거란 생각으로 아줌마파마를 하고 딸내미와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어 놓았다.
병실에 들어 간 순간 ‘암과의 사투 끝이 이 모습이란 말인가?’ 힘들어 하는 환자들의 모습을 보며 ‘몇 달 뒤 나의 모습이구나’라고 생각하며 세브란스병원의 뒷동산을 배회하면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한 가닥의 희망을 주십사하고 절실히 기도했던 순간이 기억된다.
전신 곳곳의 이상발견으로 ‘너무 고생만 해서 나를 미리 데려 가시려나?’하며 스스로 위로를 하기도 했던 순간, 검사결과마다 승전보가 전해졌다. 걱정이 반으로 줄어든 순간 수술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항암치료를 할 수 있음을 감사할 즈음 간호사가 본관으로 이사를 가란다. ‘여기서 나의 끝을 봐야하는구나’하고 생각했는데 본관으로 이사하라며 모든 간호사님들이 축하의 박수를 살짝 쳐 주셨다.
이제는 암수술 날이 다가오고 항암치료를 받아도 모두 이겨낼 수 있으리란 각오아래 난 거뜬히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하고 나와 보니 친정엄마보다도 더 다정다감하셨던 연세가 많으신 큰형님께서 위로를 해 주셨다. “빨리 나으라고.”
대학병원에 한 달여를 입원해 있어도 점점 기분의 상쾌해짐은 무거웠던 나의 마음을 멀리 날려 보냈기 때문일까? ‘훗훗 가발은 어떤 걸로 맞출까? 단발머리? 커트머리?’ ‘수술과 항암이여 나에게로 오라. 너와 함께 가리라.’ 그 시간이후로 암이란 친구를 사귀기로 다짐하고 이제 어찌하면 친하게 지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항암의 울렁거림은 나를 얼큰하면서도 맛난 음식을 찾게 만들었고 수술의 아픔은 성숙이란 성을 나에게 쌓아 주었다.
항암이 끝나고 상처가 아물고 나니 별천지를 다녀 온양 난 힘이 솟았다.
힘들다고 누워 있고 싶지가 않았다. 새로운 생명을 주신 그분께 열심히 성실하게 살겠노라고 약속을 하며 그 동안 한이 맺혔던 공부에 정진하기 시작했다.
나를 위해 요양보호사자격증,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미술심리치료사, 웃음을 전파하기 위해 실버웃음치료사와 행복웃음전도사 등의 여러 자격증을 섭렵한 다음 컴퓨터 자격증을 넘어 이젠 사회복지사 자격증에 도전하여 정복하노라니 암이란 친구는 옆에서 나를 대견하다고 토닥토닥 다독여 준다.
건강정보를 공유하고자 암과의 사랑교실에 갔다가 좀 더 배우고자하는 맘을 떠나 내가 할 수 있다면 하고 봉사를 하고자 시작한 것이 5년이 지나가고 있다.
봉사를 하면서 점점 내가 힐링 받고 있음에 감사하며 바쁜 시간이지만 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힐링 받고 싶다.
10여년 전만해도 상상도 못할 일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어르신들께서 “친절하게 알려주어서 너무 고마워요” 하시는 요즘 어르신말씀이 나의 생에 이슬이 되어 암과의 사투가 아니라 동반자로서 어느 곳에서든 진정한 빛을 발하면서 스마트하게 그리고 멋지게 100세시대로 진입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