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미쳤구나!” 귀촌 선언에 친구들은 그렇게 말했지만…

기사입력 2025-05-23 08:43 기사수정 2025-05-23 08:43

[박원식이 만난 귀촌 사람들] 전남 영암군 서호면 시골에 사는 배재희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이곳은 한갓진 시골이다. 새소리와 바람 소리 말고는 더 들려오는 게 없다. 대숲이나 돌담을 두른 농가들이 옹기종기 모여 도란거리는 한촌이다. 올해로 귀농 14년 차에 이른 배재희(61, ‘산골정’ 대표)의 집이 여기에 있다. 그는 간장과 된장을 비롯해 갖가지 발효식품을 만든다. 상품은 내놓는 족족 잘 나간단다. 장류에 관한 우거진 솜씨 덕분이다. 큼직한 품평회에 출품해 최고상도 받았다. 출발은 미미하다 못해 희미했다. 아니 아예 캄캄했다. 이건 은유가 아니다. 삶의 정체와 실제가 숫제 그랬다. 운명의 괴팍한 횡포랄까,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극히 암울한 상황과 졸지에 딱 맞닥뜨리는 일. 배재희가 경험한 게 그랬다. 그건 시골로 내려온 연유가 됐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서울에서 살 때의 어느 날, 배재희에게 난감한 일이 벌어졌다. 이모저모 순탄치 않게 가정을 꾸려가던 아들 부부가 마침내 이혼에 이르렀던 거다. 이혼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문제는 부부 어느 쪽도 자기들이 만든 자식 둘을 맡아 키울 의욕과 의사가 전혀 없는 상태로 흩어졌다는 데 있었다. 이 희한하고도 매정한 사태에 배재희는 경악했다. “어라! 이게 실화냐?” 곧이곧대로 믿기지 않아 머리를 싸매고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똑 부러지는 성격을 가진 사람이다. 어디에 던져놔도 기죽는 일 없이 발딱 일어설 타입이다. 씩씩하고 의기양양하다. 그러나 자식이 일으킨 변고 앞에선 허둥댈 수밖에. 애통하고 분통해 눈물만 빗물처럼 흐르더란다. 별안간 고아 비슷한 처지로 몰린 손주들이 가여워서 말이다. 결국 그는 어린 남매를 거두기로 했다.

“속된 말로 환장할 일이었다. ‘아이고, 내 신세가 실로 기구하구나!’ 한탄이 절로 터져 나오더라.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심정이었다. 그러다가 아들로부터 손주들에 관한 모든 권한을 넘겨받기로 하고 애들을 데려왔다. 할머니 이상의 엄마 역할을 할 결심을 하고서였다. 그러곤 아이들과 함께 곧장 이곳으로 내려왔다.”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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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외진 시골을 택한 이유가 있겠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살고 싶었다. 남세스러운 상황을 감추고 싶어 집도 후미진 곳에 있는 걸 구했다. 더 큰 이유는 둘째 손자의 건강 상태가 매우 나쁘다는 데 있었다. 이 아이는 제 엄마 임신 6개월째에 미숙아로 태어났다. 의사의 말에 따르면 어느 날 갑자기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아이였다. 요행히 살게 되더라도 심각한 장애가 올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자명했다. 어떻게 해서든 아이를 살려야 한다는 거, 그 하나를 생각하며 잡념 없이 살 수 있는 시골에 들어왔다. 죽을 각오로 손자를 살리자! 목표를 그렇게 정했다. 병원 치료엔 한계가 있지만, 약보다 더 약효가 좋은 음식을 찾아 먹일 경우 정상적인 건강체로 바뀔 수 있다는 확신과 희망을 가졌다.”


아이에게 좋은 음식을 찾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

“나름대로 민간요법과 약초 공부를 했다. 그 결과 도라지에 꽂혔다. 아이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건 금방 숨이 넘어갈 듯 지독하게 터져 나오는 기침이었다. 번번이 응급실에 실려가야 했다. 그걸 도라지로 해결해나갔다. 도라지에 엿당을 넣어 만든 도라지청, 또는 홍도라지청이 증세를 완화해주었다. 병원에서 주사한 약물들의 독성을 정화하는 효능도 확인할 수 있어 안도했다. 하지만 생계가 어려워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가진 거라곤 시골집 하나뿐, 끼니를 잇기도 어려운 형편이었다.”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미리 생활 대책을 세우고 들어온 게 아니었나?

“자급자족을 할 생각이었다. 아이를 살리는 일이 급할 뿐, 먹고사는 거야 뭐든 하면 된다는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쌀을 살 돈조차 떨어지자 식은땀이 나더라. 돈이 필요하지만 이 적막한 산골에서 뭘 해 벌어야 할지 막막했다. 그즈음 손자가 다니던 유치원 어린이들이 모두 감기에 걸렸는데, 내가 보내준 도라지청을 먹고 전원 완쾌되는 일이 있었다. 그러자 학부모들이 고맙다며 도라지청을 사주는 게 아닌가. 그 뜻밖의 상황에 놀라 속으로 외쳤다. ‘야, 도라지가 돈이 되는구나, 나도 돈을 벌 수 있겠구나!’(웃음)”


이후 도라지청을 직업적으로 만들어 팔기 시작했나?

“사업도 밑천이 있어야 가능한 게 아닌가. 그저 밥을 굶지 않고 살아갈 한 가닥 방도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됐다. 더구나 손자의 건강이 날로 좋아져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이 정도만 해도 신의 은총이라고 생각했다. 한편 생계를 위한 방안을 보강하기도 했다. 간장과 된장을 식구들이 먹고도 남을 만큼 넉넉히 만들어 일부를 이웃들에게 팔았다. 그렇게 해서 얻은 돈으로 생필품을 샀다. 초기 수년간 그런 식으로 간신히 살았다.”


엄마의 씨간장을 재현했더니

배재희의 과거 서사는 한바탕의 모험극에 가깝다. 병약한 어린 것을 끌어안고 눈보라 몰아치는 허허벌판을 걸어가는 자의 얼어 터진 맨발과 뜨거운 맨정신이 비치는 게 아닌가. 자나 깨나 손자를 생각하고, 앉으나 서나 생계를 연구할 수밖에 없는 사람의 몰입과 고통이 선명하다는 점에선 일종의 고행 장정이다. 다행히 그 결과는 훈훈했다. 손자는 완연한 회생의 길로 접어들었다. 푼돈을 벌던 장류 만들기는 일취월장해 번듯한 사업으로 발전했다. 2024년 연 매출액이 약 1억 원이다.

비결이 뭘까? 특유의 강단, 끈기, 오기, 집중력 등을 총동원한 데에 있는 것 같다. 게다가 머리는 민첩해 한 가지 일을 하면서도 두세 개 일을 미리 구상한다. 몸은 닳도록 써도 끄떡없다. 그는 천천히 걷는 법이 없다. 늘 뛰어다닌다. 부지런히 사는 데 인생의 묘미가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니 맘먹은 일에 차질이 빚어질 리 없다.

“내가 손맛 하나는 타고난 사람이다. 덕분에 소소하게 만들어 팔던 장류에 대한 평이 좋았다. 구매자가 서서히 늘어나는 추세에 의욕이 솟구쳤다. 그렇다면 심혈을 기울여 더 좋은 장을 만들어야 할 텐데, 과연 그게 무엇일지 곰곰이 궁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 어느 순간 퍼뜩 떠오른 게 어릴 적 먹었던 엄마의 씨간장이었다. 엄마는 돌아가셨지만 씨간장의 깊고 감미로운 맛은 내게 너무도 그리운 엄마의 상징물이자 생생한 추억으로 살아 있었다. ‘그래, 바로 그거야! 엄마의 씨간장을 재현하자!’ 마침내 방안을 찾은 것이다.”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재현이 가능하던가? 방법을 가르쳐줄 엄마가 안 계시는데.

“내 고향은 저 아래 진도군에 딸린 조도라는 섬이다. 전기도 안 들어오는 그곳에서 난 자주 툴툴거리며 살았다. 언젠가 서울로 달아날 생각을 다지며.(웃음) 고향엔 지금도 혈육들이 살고 있다. 엄마의 씨간장도 고이 간직돼 있었다. 그걸 항아리에서 일부 덜어 몰래 훔쳐왔다. 어느 집안에서나 씨간장은 함부로 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재현은 크게 까다롭진 않았다. 씨간장을 만들던 엄마의 방법을 어깨너머로 배운 게 있었으니까. 그 기억을 되살려 레시피를 정립할 수 있었다.”


씨간장 맛이 좋은 데엔 어떤 요인이 있나?

“제조 기법은 집집마다 다르다. 우리 엄마는 간장에 생선, 닭고기, 소고기, 약초 등을 집어넣은 뒤 5년간 숙성시켜 씨간장을 만들었다. 이렇게 잘 묵힌 씨간장 소량을 햇간장에 섞어 만드는 게 이른바 어육간장이다. 이걸로 만든 된장을 어육된장이라 한다. 그 맛은 뛰어날 수밖에 없다. 일반적인 장과 달라 독특한 풍미를 지닌다. 어떤 전문가는 ‘뭐라 이루 말할 수 없는 맛’이라고 평가하더라.”


어육장으로 드디어 사업의 기반을 잡은 셈인가?

“그렇다. 소비자들은 장의 품질에 민감하다. 차별화된 어육장을 내놓자 즉각 좋은 반응이 돌아왔다. 제품 가격의 고하보다 품질을 따지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깨닫기도 했다. 상품의 다양화도 하나의 전략이다. 청국장가루와 환, 청국장 양갱, 메주와 메주가루, 홍도라지청, 꽃차, 천연식초 같은 각종 발효식품을 함께 생산하고 있다. 체험교육도 활성화돼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돈을 벌 차례라고 봐도 되겠다.(웃음) 미국에 진출해 교민들에게 한국의 전통 장맛을 보여주고 싶은 꿈도 가지고 있다.”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아직 부족한 만족의 샘물

배재희가 손주들을 데리고 시골로 내려올 때 친구들에게 들은 얘기가 있다. “너 미쳤구나!” 인생을 아예 망치기로 작정한 사람으로 여긴 것이다. 그러나 그는 보란 듯이 탕탕 질주하고 있다. 낡은 뗏목을 끌고 거친 바다로 나아갔으나 그물을 던져 거둔 게 많다. 타고난 병증으로 위태했던 손자는 건장한 고2 소년으로 성장했다. 사업도 안정 궤도에 진입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만족감을 느낄 법하다. 하지만 배재희가 온 힘을 다해 길어 올린 만족의 샘물은 아직 충분하지 않다. 그게 표정에 살짝 쓰여 있다. 뭔가 한줄기 허무의 기색이 감돈다. 이따금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지만 한숨을 몰아쉬기도 한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는 남편과 오랫동안 토닥토닥 두꺼비씨름을 하고 살았는데 아직도 마찬가지라는 게 아닌가.

“도대체 남편이 내 말을 듣지 않는다. 시골에 함께 내려가자 했을 때도 거부했다. 시골은 자기에게 지옥이라나 뭐라나…. 이후 2, 3년 간격으로 한 번씩 ‘내려오소서!’ 권유했으나 ‘노!’ 그 한마디 내뱉곤 그만이었다. 이혼장을 들이미는 극약처방을 쓰고서야 남편을 불러들일 수 있었다.(웃음)”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몹쓸 짓을 하지 않는다면 부부가 좀 자유롭게 사는 것도 괜찮지 않나? 아마도 남편은 매우 주체적인 스타일인 것 같다.(웃음)

“아이고, 뭘 몰라서 하는 얘기다. 경제관념은 제로이고, 입은 꾹 닫고 살고, 일머리가 없어 내가 동동거리며 장을 만들 때도 아무런 쓸모가 없다. 게다가 툭하면 오토바이를 타고 멀리 관광을 다닌다. 햐, 그는 철없는 남자다. 왜 변하지 않을까? 왜 나만 악착같이 뛰어야 하는 걸까? 그런 걸 생각하면 억울해서 숨이 막히는 거다.”


뭐든 아내가 알아서 잘하는데 참견할 게 뭐람. 남편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건 아닐까?

“사실 내 성미가 괄괄하다. 반면 남편의 성품은 참으로 순박하고 착하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다. 도시에서 오토바이 센터를 운영했던 실력으로 이 동네 고장 난 농기구는 모두 무상으로 수리해준다. 밖에선 그렇게 좋은 사람으로 살면서 왜 아내에겐 무심한지, 그게 내겐 미스터리다. 그래도 어떡하나? 보듬고 간다. 살다 보면 좋아지겠지, 그런 기대를 하면서.(웃음)”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설 때 출타했던 남편이 집 안으로 들어선다. 지극히 평온한 인상이다. 유순한 눈빛이 봄날의 새순을 연상시킨다. 그러니 부부의 내공 겨루기가 각박한 것일 리 있으랴. 그건 차라리 소극(笑劇)처럼 흥미로운 것임을 알 만하다. 한결 유쾌한 쪽으로 바뀔 가능성이 많은 게임으로 읽힌다. 둘 다 유능한 개성이니까.


배재희가 주는 귀농 Tip

•귀농 전에 시골에서 할 일을 먼저 뚜렷하게 정해두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또는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게 좋다. 남들의 얘기와 정보에만 의존하지 말라는 뜻이다.

•농업이 어렵기만 한 건 아니다. 아이템을 잘 잡으면 얼마든지 성취할 수 있다. 내 경우엔 더 빨리 귀농하지 못한 게 아쉽다. 10년 정도 빨리 왔다면 훨씬 큰 성과를 거두었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농업 지원 정책이 다양하다는 걸 유념하자. 혜택을 받을 수 있음에도 놓치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괜한 손실이다.

•시골에 귀농인이 등장했을 때 원주민들은 예민한 눈으로 주시한다. 만약 도시에서 잘나갔던 걸 믿고 잘난 척, 아는 척을 하다가는 미운털이 박힌다. 그저 묵묵히 자기 일을 하면 된다. 민원을 야기하지 말자. 손해를 보더라도 주민을 배려하는 게 현명한 처신이다. 그게 나중엔 이득으로 돌아온다.

•농사일만 열심히 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시간과 여가 활동을 가져라. 일만 하다 병을 얻는 것보다 미련한 게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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