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능률협회가 진행하고 있는 인문학 강연 ‘수지향(수요일에 만나는 지혜의 향연)’ 의 리딩멘토로 활동 중인 연세대학교 철학과 김형철(金亨哲·60) 교수를 현장에서 만났다.
그가 이 인문학 프로그램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주최측의 2기 리딩멘토 활동에 대한 요청이 있었기 때문인데, 1기의 리딩멘토가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이었던 만큼 부담도 적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평소 소신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주저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응용인문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소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문학, 특히 철학은 인간에 대한 근본적 탐구를 하기 때문에 융합에 가장 적합한 학문분야입니다. 어떤 활동 뒤에 철학을 붙여 놓아도 그 의미가 통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술철학, 경영철학, 정치철학 등 가장 근본적 신념과 가치에 대한 명쾌한 분석이 융합적 접근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250명의 최고경영자와 인문학의 다양한 명강사들의 강연을 매개하는 역할을 맡겨준 것에 책임을 느낍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인문학과 경영의 융합이 이어지라고 봅니다.”
최근 인간의 기대수명이 늘어나는 것에 비해 사회적 수명(정년)이 짧아지면서, 나타나고 있는 시니어의 학습에 대한 욕구상승 현상에 대해서는 이렇게 풀이했다.
“사람들은 계속 배우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자아실현 욕구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다 부러워하는 권력, 명예, 부를 한 손에 거머쥔 사람이 있었습니다. 막상 이 모든 것을 손에 넣고 나니까 그는 세상사는 것이 허무해집니다. 도사를 찾아가서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한평생 배우러 왔다가 갑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그래서 옛 어른들께서 죽을 때까지 배워도 다 못 배운다라고 하셨던 거 아닐까요? 시니어의 교육 열기를 뜨거운 것은 배우기를 계속하는 한 노화가 멈춘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시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 아침에 일어나서 다 같이 오늘 나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일일 목표로 삼는 시니어가 늘어나길 기대합 니다.”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지금, 경영과의 접목을 어떻게 하는 것이 효과적일까. 이에 대해 그는 경영현장에서 도움되는 지혜로 효과적으로 변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인문학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이해를 바탕으로 경영지혜를 가질 수 있도록 도울 생각입니다. 순수 인문학적 강의가 어떻게 하면 경영현장에서 도움이 될 수 있는 지혜로 변환될 수 있는지를 고민 합니다. 저는 경영자는 시인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수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철학의 눈으로 바라본 인간은 합리적이고, 비판적 창의성을 제공합니다. 이런 철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가치관이 달라집니다. 심리학, 사회학과 같은 광의의 인문학도 조명할 계획입니다.”
인문학 강의 특히 ‘수지향’과 같은 강의는 어떤 이들에게 적합하냐는 질문에, 스스로에 대한 성찰에 목마른 시니어를 지목했다.
“인간에 대한 관심은 인문학 고전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합니다. 인간을 희생시키고 몰인간적으로 살아가는 것은 지속가능한 태도가 아닙니다. 평생교육은 경제적 효율성과 소득을 올리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성찰하는 삶만이 살 가치가 있다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기억하세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에 대한 물음과 자신의 좋은 답을 가진 사람만이 삶을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책은 혼자 읽는 겁니다. 그러나 공부는 같이 하는 겁니다. 그래서 동문수학하는 것이지요. 삶의 품격을 생각하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시내 주요 호텔의 아침을 밝히는 것은 여행에 들뜬 투숙객도, 약속을 위해 찾은 방문객도 아니다. 바로 조찬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들른 경영인들이다. 이른 새벽, 이름난 호텔 정문에 서 가만히 기다려보면 검은색 고급 승용차들의 행렬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누구보다 시간을 쪼개 쓰는 이들이 회사가 아닌 호텔에서 아침을 시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글·사진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현재 공식적으로 집계되고 있지 않지만, 국내에서 진행 중인 조찬 모임을 업계 관계자들은 200~300개 가량 될 것이라고 추정한다.
주최나 주제에 따라 그 성격도 다양하다. 일반적인 경영자나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강연 이외에도 특정 직군이나 지역을 위한 모임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한국정보산업협회의 CIO포럼은 업계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운영되고 있고, 또 대전경제포럼과 같이 지역별로 진행되는 행사도 있다. 교육기관이 아닌 은행이나 보험사에서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시중에서 진행되는 포럼의 주요 대상은 경영인이나 임원, 업계 관계자들이 많다. 참가 비용이 적지 않고 연간 회원제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기본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모임이 조찬으로 진행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는 ‘시간’이다. 아무래도 오전 일찍 시작되다 보니 하루를 길게 나눠 쓸 수 있고, 직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는 것. 조찬 현장에서 만난 한 참석자는 부지런히 자신을 몰아붙이는 알람 같은 장점도 있고, 맛있는 아침식사 역시 매력적인 ‘덤’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조찬 모임에 열광하는 경영인들의 모습을 어떻게 평가할까? 강연 참석차 포럼을 찾은 윤석철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는 “경영자들의 이런 적극적인 교육활동은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 학보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미국이나 가까운 일본에도 이런 모임은 거의 없으니까요. 이런 모임을 통해 생각의 방향을 조정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과정은 기업인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분석했다.
이런 평가는 외국인의 눈에도 비슷하다. 중국인인 aSSIST 중국 비즈니스 MBA 과정의 황비 교수는 한국의 조찬모임 참석자들의 열의를 높게 평가했다. 그는 “참석자들의 열망이 매우 높고, 특히 중국 비즈니스에 대한 관심도는 대단합니다”라면서,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는 것처럼, 경영인들에게 조찬 모임은 아침 일찍 마음을 수련하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진행하는 단체가 많다 보니, 포럼 간 경쟁도 치열한 편이다. 때문에 담당자들이 가장 신경쓰는 부분은 콘텐츠와 포럼의 중심을 잡는 주요 인사의 확보다. 콘텐츠가 경쟁력이다 보니 연사 섭외 역시 치열하다. 대표적 조찬 모임 중 하나인 aSSIST 포럼 마케팅팀의 김민지씨는 포럼의 운영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포럼의 주제와 연사는 참석자 분들의 추천과 내·외부 강의 평가자료를 바탕으로 내부 강사 선정위원회에서 논의해 정해지는데, 크게 인문학(40%), 경영통찰(40%), 경제전망(20%) 분야로 나뉩니다. 프로그램 구성과정에서 가장 고려하고 있는 부분은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교육의 장을 만드는 데 있습니다. 경영자들이 다양한 주제의 강연을 듣고 이를 통해 각 기업의 창조적 혁신을 이끌어 낼 수 있게 지원하고자 노력 중입니다.”
이들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포럼 참석자의 95% 정도가 기업의 최고경영자나 임원이고, 일반인은 5% 정도다. 연령별 분포를 보면 60대 이상이 40%정도이고, 40~50대는 55%를 차지하고 있다. 30대 이하의 낮은 연령대는 많지 않다. 참석효과에 대해 포럼에서 만난 경영인들의 평가는 긍정적이다. 외부에서는 교육효과보다는 인맥 형성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더 클 것이라는 시선도 있지만, 내부의 평가는 다르다.
인문학 조찬모임을 1년 넘게 참석중인 박주초 알터 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인문학을 통해 중국 진출에 도움을 얻었다고 했다.
“사업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졌습니다. 특히 제가 취해야 할 자세에 대한 철학적 지침을 얻을 수 있어, 시야가 넓어진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동양 철학이나 고전에 대한 공부는 중국에서 비즈니스를 진행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작년에 진행했던 공연 역시 단편적이거나 표면적인 과거와 달리 담백하지만 깊은 감동을 준다는 평가를 받았구요. 지혜를 얻는다는 마음가짐으로 참여한다면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인맥 형성을 통한 비즈니스 진행을 원한다면 조찬 모임보다는 소규모 인원으로 진행되는 최고경영자 과정이 더 적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한 상장사 최고경영자 역시 “우리 정도 나이가 되면 인맥에 대한 갈증은 크게 없습니다. 사람 만나러 간다는 외부에서 보는 시각과는 차이가 있죠”라고 밝히고, “원래 철학에 대한 관심이 많아 나오게 됐고, 다들 비슷한 이유에서 이 자리에 참석했을 것으로 봅니다”라고 설명했다.
경영학을 통해 병원 운영에 도움을 받았다는 의료인도 있다. 채규창 구로이즈치과의원 원장은 “치대에서 경영에 대한 별도의 교육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 개원하는 치과의사들은 개업 후 당황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라고 말하고, “리더십 강좌, 경영 코칭 강좌 등을 통해 병원 운영에 대한 철학과 원칙을 배운 후에 괴롭혔던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고 밝혔다.
조찬 모임의 또 다른 트렌드 중 하나는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다. 5년 전까지만 해도 경영전략이나 경제동향에 대한 강의가 주로 이뤄졌지만, 최근에는 역사나 철학 강의에서부터 음악 공연까지 구성이 다양해지고 있다. 한국능률협회의 인문학 조찬 모임 ‘수지향(수요일에 만나는 지혜의 향연)’을 담당하고 있는 김혜인 연구원은 동향을 이렇게 분석한다.
“경영의 복잡성이 증대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위기가 빈번히 발생하면서, 인문학에 대한 기업의 관심이 증가하며 경영의 새로운 돌파구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이 통계적 분석 기법으로는 예측이 곤란한 위기에 대한 대처 방법으로 인문학적 통찰력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때문에 저희도 소위 문사철이라 불리던 문학과 사학, 철학뿐만 아니라 뇌과학, 사회학, 음악, 여행, 미술 등 다양한 분야의 대가들로부터의 새로운 인문학을 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강연을 위해 ‘수지향’을 찾은 유홍준 명지대학교 석좌교수는 “많은 강의 중에 기업인들 앞에서 강의할 때가 가장 편합니다. 강연내용에 의구심을 갖기보다는 얻어가려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죠”라고 설명하고, “인문학에 대한 경영자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소비자들의 산업적 요구가 다양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