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성수 문화평론가
연극은 배우들의 연기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예술이다. 하지만 현대 연극은 배우들의 몸짓 이외에도 다양한 볼거리들을 이용해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래서 탁월한 희곡은 이미 그 안에 배우들의 대사와 감정뿐 아니라 그를 둘러싼 모든 볼 것들이 무대 위에서 어떻게 배우들의 연기와 어우러질 것인지를 잘 담고 있다.
연극 ‘3월의 눈’이 바로 그런 작품이다. 배우들의 대사와 몸짓은 절제되어 있다. 아니, 일흔이 넘은 노부부들이기 때문에 몸도 입술도 절제를 강요당한다. 그 빈 구석을 메꾸고 있는 것은 그들과 평생을 함께 한 한옥 고택이다. 연극에서 고택 전체를 다 보여주고 있지는 않고, 그럴 필요도 없다. 하지만 무대장치에 불과한 이 세트의 기둥이 빠지고 마루가 뜯겨져 나가는 장면을 볼 때 자식을 둔 부모들의 마음은, 혹은 아버지의 주름살을 더하며 오늘의 자리에 서 있는 자식들은 가슴이 그저 먹먹해진다. 그것은 대사로는 도저히 표현하지 못하는, 그 장면 앞에서는 그 누구도 말문이 막히고 몸에 기운이 풀려 대사와 행위가 붙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지 않은, 지극히 성공한 연극적 압축이다. 연극이 클라이맥스로 치달아 갈수록 무대는 비워지고, 노부부의 말과 행동도 작아진다. 자기 손때가 묻고 서로의 숨결이 배인 집이 사라진 곳에 남겨진 노부부의 뒷모습은, 어쩌면 베어지고 남은 그루터기 같아 보인다. 하지만 3월에 내리는 눈처럼, 우리 모두는 다음 세대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고 사라지는 존재가 아닌가. 관객들은 극장을 나서며 움켜잡기보다 비워주는 것이 왜 이 사회에 더 필요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신구, 손숙 두 노배우가 서 있는 것만으로 극장은 이미 일상이 된다. 3월 13일부터 29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 극장은 죄지은 자식들에게는 참회의 자리이며, 부모들에게, 특히 아버지들에게는 배움의 자리가 될 것이다.
일정: 2015.03.13.~ 03.29.
장소: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출연: 신구, 손숙, 김정호, 김정은, 이종무 등
제작: 국립극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