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습니다.” 이 말을 한 사람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다. 대중은 이 말을 이 전 대통령의 육성이 아닌 한 성우를 통해 더 많이 들었다. 1964년 방송된 라디오 드라마 · 등에서 이 전 대통령 역을 맡은 성우 구민(92)이다. 아직도 구민하면 이승만 대통령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아저씨, 나 추워요.” 1964년 개봉된 영화 의 여자 주연, 엄앵란의 대사다. 이 대사의 목소리 주인공은 배우 엄앵란이 아니다. 성우 고은정(80)의 목소리다. 1950~1970년대는 화면을 먼저 촬영하고 그 화면에 따라 대사, 음악을 녹음하는 후시녹음 시스템으로 영화를 제작했다. 이때 화면 연기는 배우가, 대사 연기는 성우가 담당했다. 1960년대 최고의 여자 스타, 문희 남정임 엄앵란 김지미의 대사 연기는 모두 고은정이 도맡았다.
무명 신인이던 최진실을 최고의 스타로 만들어준 것은 1989년 삼성전자 CF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라고 말하는 최진실에 대중은 환호했다. 그런데 이 광고 목소리 연기를 한 사람은 최진실이 아닌 성우 권희덕이었다. 권희덕(60)은 유지인 임예진 등 1970~1990년대 스타들이 모델로 나선 CF의 목소리 연기를 한 유명 성우다.
라디오 시대이자 후시녹음 영화 시대였던 1950~1970년대 최고의 대중문화 스타는 성우였다. ‘얼굴 없는 배우’라 불리던 성우들은 ‘영화와 방송의 꽃’으로 평가받으며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한국 성우의 역사는 라디오의 역사와 궤를 함께한다. 1927년 경성방송국 개국으로 라디오 시대가 열렸다. 일본어로 방송하던 경성방송국에서 1933년부터 한국어 방송을 시작하며 등 라디오 드라마를 본격적으로 제작해 청취자의 큰 인기를 끌었다. ‘한국 성우의 어머니’로 불리 우는 복혜숙 등 성우들이 라디오 연속극에 출연해 청취자의 사랑을 받았다.
1945년 광복과 함께 서울중앙방송국(현 KBS), 1954년 기독교방송, 1959년 문화방송, 1963년 동아방송, 1964년 동양방송이 잇따라 개국하면서 라디오 방송 전성시대를 열었다. 서울중앙방송국이 1953년 성우를 최초로 채용하면서 성우라는 직종이 하나의 전문직으로 자리 잡았다.
‘청실홍실 엮어서 무늬도 곱게 티 없는 마음속에 나만이 아는 수를 놓겠소’로 시작되는 주제가를 아직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은 (1956년 10월~1957년 4월 방송)을 비롯해 등 라디오 드라마들이 쏟아졌다. 1960년대 각 방송사들이 한 해 평균 150여 편의 라디오 드라마를 내보냈을 정도다. 청취자들은 성우들의 목소리 연기로 펼쳐지는 다양한 라디오 연속극에 빠져들었고 성우들은 대중의 사랑을 받는 대중 스타로 우뚝 섰다.
1963년 동아방송 공채 1기로 성우가 된 박웅(76)은 “30여 명 뽑는 성우 시험에 3500여 명이 몰렸다. 1960년대 성우의 인기는 엄청났다. 성우의 수입이 탤런트 등 다른 연예인의 수입을 압도했다”고 말했다.
또한, 1950~1970년대 동시녹음이 아닌 후시녹음으로 영화가 제작되던 시기에 성우들의 활약은 영화배우 못지않았다. 신성일 엄앵란 주연의 을 비롯한 수많은 한국영화가 성우들의 대사 연기로 완성됐다. 의 신성일이 연기한 남자 주인공의 대사 연기는 성우 이창환이 한 것이다. 여자 주연 엄앵란의 대사 연기는 고은정이, 트위스트 김이 연기한 건달 역의 목소리 연기는 오승룡(81)이 각각 했다.
고은정은 “1950~1970년대 한국영화는 동시녹음 기술이 없어 배우들이 연기한 뒤 성우들이 화면을 보고 대사를 녹음하는 후시녹음 시스템이었다. 이 당시 신성일 씨가 연기하는 모든 영화의 배역은 성우 이창환 씨가 맡아 대사 연기를 한 것처럼 특정 배우와 특정 성우 관계가 형성됐다. 나는 문희 엄앵란 김지미 남정임 안인숙 등 여자 주연 목소리 연기를 전담했다”고 말했다. 지금도 가끔 패러디되는 영화 의 안인숙이 맡은 여자 주인공, 경아의 “꼭 안아주세요”라는 대사 연기는 바로 고은정이 한 것이다.
성우들은 라디오 연속극과 영화뿐만 아니라 시사교양 프로그램 진행자로도 맹활약했다. 1962년부터 1972년까지 방송된 MBC 시사고발 라디오 프로그램 은 서민들의 마음을 속 시원하게 풀어줬는데 이 프로그램을 이끈 주역이 성우 오승룡이다.
오승룡은 “은 서민들이 하고 싶은 말을 속 시원하게 대신해 준 프로그램으로 청취자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생방송으로 진행된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아플 수도 없었고 휴가도 갈 수 없었다. 방송사고 없이 오랫동안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청취자의 열띤 반응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1950~1970년대 최고의 수입과 인기를 누리며 성우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성우는 구민 고은정 장민호 신원균 정은숙 김소원 윤미림 이혜경 남성우 심영식 주상현 오승룡 오정한 천선녀 이춘사 김영옥 사미자 김용림 나문희 전원주 등이었다.
청취자들은 실제 모습을 보지 못한 채 목소리만 듣고 성우의 외모와 성격을 상상하는 경향이 많았다. 라디오 연속극에서 주인공을 연기하거나 멋진 혹은 예쁜 목소리를 가진 성우들에게 팬레터가 쏟아졌고 심지어 연인이 돼 달라며 방송사를 찾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사미자는 “청취자들은 목소리만으로 성우의 외모와 성격을 파악했다. 목소리가 예쁘면 외모도 성격도 예쁠 것이라고 단정했다. 목소리와 다른 외모를 가진 일부 성우들을 보고 실망하고 돌아가는 청취자들도 적지 않았다”며 웃었다.
1980년대 들어 TV 수상기 보급이 확대되면서 라디오는 대중의 사랑을 잃기 시작했다. 또한, 한국 영화가 동시녹음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에 따라 대중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던 성우들의 인기가 급락하며 존재감도 급감했다.
1980년대 이후 성우들은 명맥을 유지하던 라디오 연속극에 출연하면서 TV에서 방송하는 외국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더빙, 다큐멘터리 내레이션을 병행했다. 이 시기 김기현, 송도순, 박일, 배한성, 양지운 등이 외화 더빙이나 라디오 연속극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인기 성우로 눈길을 끌었다.
배한성은 “라디오 전성시대가 가고 텔레비전 시대가 열리면서 성우의 존재감은 축소됐지만 정확한 발음과 뛰어난 목소리 연기 등으로 외화 더빙과 내레이션 부분에선 성우들의 역할은 커졌다”고 말했다. 또한, 권희덕을 비롯한 일부 성우들은 각종 CF에서 목소리 연기를 펼쳤다. 권희덕은 “목소리 출연 CF는 3000여 편에 달하고 더빙한 외화 작품은 1000여 편에 이른다”고 말했다.
1990년대 이후 의 강희선, 의 이규화와 서혜정, 의 최덕희를 비롯해 김영선, 김승준, 정미숙, 구자형, 김서영 등이 외화와 애니메이션 더빙 등을 통해 인기 성우 명맥을 잇고 있다.
한편 성우로 활동하다 라디오의 입지가 좁아지면서 영화와 텔레비전 연기자로 전업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7월 끝난 tvN 드라마 에 주연으로 나선 것을 비롯해 드라마와 영화, 연극에서 최고의 연기력을 보이며 왕성한 활동을 하는 나문희, 드라마와 영화에서 개성적인 캐릭터를 잘 소화하는 변희봉을 비롯해 정혜선, 김영옥, 남일우, 한인수, 김용림, 사미자, 전원주 등이 성우 출신 연기자들이다. 이들 성우 출신 연기자들은 빼어난 연기력으로 시청자와 관객의 사랑을 받고 있다
1961년 MBC라디오 공채 1기로 성우 생활을 시작한 나문희는 “성우로 일할 때 외화 더빙을 많이 했는데 이것이 연기자로 전업하면서 큰 도움이 됐어요. 외국 여배우의 캐릭터가 제각각이잖아요. 다양한 캐릭터의 목소리를 연기하며 캐릭터를 분석할 기회를 얻었지요. 이것이 드라마와 영화 연기할 때 큰 힘이 됐지요”라고 말했다.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탄탄한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는 배우 한석규 역시 성우 출신 연기자다. 한석규를 드라마 에 처음 발탁해 연기자로 데뷔시킨 장수봉 전 MBC PD는 “한석규를 비롯한 성우 출신 연기자들은 대사 연기가 뛰어나다. 오랫동안 발성 훈련을 받아 감정의 결을 살리는 대사 연기를 잘한다”고 말했다.
방송사가 성우 공채 제도를 폐지한 2000년대 들어서도 성우들은 게임과 외화, 애니메이션 더빙과 CF, 라디오 연속극의 목소리 연기, 다큐멘터리 내레이션 등에서 활약하며 여전히 대중화의 주역으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번 달부터 새롭게 진행하는 ‘이봉규의 心冶데이트’는 시사평론가 이봉규가 공인들을 만나 술 한 잔 기울이며 편하게 만나 은밀한 속내를 풀어내는 코너입니다. 꾸밈없고 날카로운 ‘돌직구’를 던져 차마 예상치 못했던 야들야들한 답변을 끌어내는 사심이 묻어나는 ‘술술토크’를 열었습니다. 글 이봉규 시사평론가
윤영미(57) 아나운서와는 방송을 같이 한 적도 여러 번 있고 방송국 대기실에서 자주 마주치고 대화도 많이 나눴기에 편한 상대임에도 가 마련한 ‘이봉규의 심야데이트’의 인터뷰를 위한 만남은 설랬다. 그녀는 1962년생으로 여자로서 밝히고 싶지 않을 정도로 꽤 나이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필자와 몇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며 너스레를 떨 정도로 당당하다. 오죽하면 ‘여자 김구라’로 불린다고 스스로 털어 놓는다. 요즘 아무리 김구라가 인기가 좋다고는 하지만 ‘여자 김구라’로 불리고 싶을까? 일반적인 여성 방송인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변태거나 ‘또라이’는 절대 아니고 지나치게 발랄하고 순수하고 다소 엉뚱스러운 여인이다.
윤영미 아나운서와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닭갈비집에서 만났다. 그녀는 강원도 홍천 출신으로 춘천에서 1년간 기숙사 생활(성심여자대학교 국문과)을 했고 춘천 MBC에서 다년간 공채 아나운서로 활동했었기 때문에 닭갈비를 좋아할 것으로 믿고 필자가 그리로 정했다. “닭갈비집으로 인터뷰 장소를 잡는 이봉규의 센스에 깜짝 놀랐다”고 말하면서 “역시 이봉규는 한량!”이라고 평가한다.
한량인 내가 타이밍을 놓칠 리가 없다. 바로 분위기를 업~ 시키려 둘은 막걸리 잔을 단번에 비워 버렸다. 그녀의 주량은 상당히 센 편이다. 맥주는 싱거워서 한도 끝도 없이 들어가서 소맥을 즐긴다고 허풍쟁이 남자들처럼 주량 자랑이다. 술 먹다가 취해서 화장실 갔다가 자리를 못 찾아 한참을 헤매거나 필름이 끊긴 적도 여러 번 있다고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대학 시절 명동의 유명한 나이트클럽인 ‘마이하우스’를 휩쓸었단다. 낮 2시부터 디스코텍을 다닐 정도로 세칭 ‘날라리’였다고 허풍을 떤다. “맥주는 5000cc까지는 아무 반응도 없다”는 말이 끝나자마자 필자는 맥주를 따로 더 시켰다.
그녀가 막걸리보다는 맥주를 더 좋아하는 것으로 판단했고 혹시 막걸리를 먹어서 매우 취하면 인터뷰에 지장이 있을 것 같다는 불안감도 살짝 작용했기에 필자는 막걸리를 마시고 그녀에게는 맥주를 권했다. 술병이 한 병 두 병 비워 지고 취기가 서서히 올랐기에 과감한 질문을 던졌다.
“가끔 바람피우고 싶은 생각이 들곤 합니까?”라는 돌발 질문에 “멋진 뇌색남(뇌가 섹시한 남자)을 보면 연애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라고 솔직하게 말하면서 “그러나 남편 아닌 다른 사람과 섹스는 못할 것 같아요”라고 대답한다. 정신적인 바람을 피우고는 싶지만 몸을 섞는 육체적 바람은 찜찜하다는 것인가? 알쏭달쏭하다.
그녀는 “지난 10년간 이혼 생각도 여러 번 했었지만 막상 이혼할 용기가 나질 않았다”고 한다. “막상 이혼을 하고 나면 다른 남자와 잘 살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서…” 다시 말해 대안이 없어서 그냥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가 취기에 솔직하게 털어놓아서 그렇지 결혼 20년차 이상 대부분의 중년 여성들은 이런 생각을 수없이 하면서도 어쩔 수 없어서 그냥 사는지도 모를 일이다. 결혼하고 몇십 년이 지났고 아이들도 다 컸고 갱년기에 심리적인 흔들림도 생기기 마련이기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오히려 남에게는 남편밖에 모르는 현모양처로 이혼 생각은 전혀 해 본 적도 없다고 내숭을 떠는 여성들이 속으로는 곪아 터질 대로 터져서 남모르게 골프코치나 수영코치하고 바람피우거나 산악회에 가입해서 헌팅을 위해 이산저산 떠돌고 다닐지도 모른다.
“한번쯤 일탈은 설렐 것 같아요, 삶의 동기 부여도 될 것 같기도 하구요!”라고 말하는 그녀의 볼은 어느새 빨갛게 달아올랐다. 상상만으로도 짜릿함을 느끼는 그녀의 표정은 실제로는 제대로 일탈을 해 본 적이 없다는 고백처럼 들렸다. 일탈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 아쉬움을 그녀는 시인 문정희의 어록으로 대신한다. “죽으면 썩을 몸을 칭칭 감고 다녔다.” 이 말을 듣고 금방 이해가 갔다.
남편이라는 존재는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라고 그녀는 문정희 시인의 구절을 인용한다. 그러면서 문정희의 ‘남편’이라는 시에서 제일 좋아하는 구절을 낭독한다.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 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 되지 하고 돌아누워 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구절이 그녀의 마음과 똑같아서 미치도록 좋아하는 것은 아닐까? 일탈을 꿈꾸다가도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도 먼 남자인 남편의 존재 때문에 삭이고 사는 것이 우리네 중년 여인들의 삶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새삼 배운다.
35세에 만난 남편 황능준씨는 지난 20년의 결혼생활 동안 사업 실패, 전업주부 생활, 목회자로의 전향 등 때문에 아내 윤영미에게 생활비를 제대로 주지 못했다고 한 방송에서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는 과거 남의 말만 듣고 주식에 투자했다가 실패하며 본의 아니게 아내를 ‘생계형 방송인’으로 만들었다고 고백했다.
그런 남편하고 살면서 속도 하도 많이 썩어서 지긋지긋할 법도 하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또 다른 방송에서는 “저는 속아서 결혼한 것 같다. 울분이 항상 쌓여 있어서 돌덩이(가슴에)가 있는 기분이다”라고 토로하면서 “결혼 전 남편이 돈을 많이 벌어서 사회사업을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적어도 내가 호강하면서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며 “그런데 남편이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3년 정도 살았다. 당시 얼마 되지 않던 내 아나운서 월급으로만 먹고 살았다”고 하니 요즘의 그녀가 얼마나 씩씩해 보이고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웬수’ 같은 남편이지만 시인 문정희의 ‘남편’에 나오는 구절처럼 여기고 새기면서 살고 있을 것 같다. 놀랍게도 그녀의 첫 섹스 파트너는 35세 때 지금의 ‘웬수’ 같은 남편이었다. 그러니 그럴 법도 하다. 퍼즐이 맞춰지는 듯한 느낌이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2차로 장소를 옮기자는 필자의 제안에 그녀는 흔쾌히 따라 나섰다. 바로 옆에 필자가 자주 가는 라이브 바 ‘그루브’에선 스스럼없이 대화가 더 깊숙하게 진행되었다.
그녀의 첫 키스는 마치 황순원의 ‘소나기’에 나오는 주인공 소녀 같이 초등학교 때 홍천 계곡에서 환상처럼 이루어졌다고 한다. 상대는 당시 홍천초등학교 전교회장. 40여 년이 훌쩍 지나갔어도 그때의 기억은 아직도 멍하다고 말한다. “첫 키스 상대인 그때 그 사람이 그립습니까?”라고 묻자 “지나간 사랑은 기억일 뿐”이고 “여자는 한 남자를 두 번 사랑하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윤영미 어록이 쏟아진다. 풋고추 같은 사랑이었고 가슴 아픈 첫 사랑은 따로 있었다고 그녀는 고백한다.
그녀의 대학 시절 강원대학교 건축과에 다니던 테리우스 같은 꽃미남을 ‘꼬시기’ 위해 그녀는 적극적으로 행동했었다. 성심여대에 다니던 윤영미는 강원대 앞 카페에서 우연히 본 테리우스를 만나기 위해 강원대 도서관으로 매일 출근했다. 혹시나 도서관에 그가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교회 친구가 테리우스와 강원대 같은 과(건축학)의 선후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친구에게 부탁해서 극적으로 상봉하였다. 영화 의 ‘윤영미편’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드디어 그와 사귀게 되었는데 으레 첫사랑이 그렇듯 오래가지 못하고 헤어지게 된 스토리는 마치 영화와도 같았다. 그 후 세월이 한참 흘러 중년이 된 나이에 그를 우연히 마주쳤는데 딱 봐도 행색이 안 좋아 보일 정도로 예전의 꽃미남 테리우스는 온데간데없어서 슬펐다고 한다. 아련히 애틋했던 첫사랑은 그렇게 완전히 그녀의 맘속에서 비로소 지워지고 말았다.
그 후 웬수 같은 남편은 그녀에게는 중년의 테리우스같이 멋져 보였을 것 같다. 실제 그녀의 남편 황능준씨는 훈남의 외모를 자랑한다. 그녀는 남편의 첫인상이 ‘푸른 초장’ 같았다고 회고한다. 속을 전혀 썩일 것 같지 않고 순수한 남자일 것 같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살아 보니 속도 많이 썩었고 산전수전 겪다 보니 지금은 전우애로 똘똘 뭉쳐 그런대로 봐 줄 만하다고 은근 자랑이다.
그녀는 “남편이란 존재는 처음에는 연인이고 그 다음은 웬수처럼 느껴지다가 세월이 가면서 친구가 되어간다. 앞으로 다가올 노년에는 아마 인생의 간호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예감이 든다”고 정의한다. 남편에 대한 평가와 감정이 인터뷰를 시작할 때와 인터뷰가 끝나 갈 무렵과는 사뭇 다르다. 솔직하고 쿨~한 윤영미의 복잡한 마음일까? 아니면 우리네 중년 여인들이 그렇게 복잡하게 느끼는 것이 남편이란 존재일까?
한량인 이봉규는 아직 더 여인들의 심리를 배워야 할 것 같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윤영미는 멋들어지게 노래를 뽑았다. “삶의 후회는 없고, 최선을 다하고 안 되면 금방 포기한다”는 그녀의 가치관이 노래에 묻어 나온다.
얼마 전 MBC TV의 에서 독특한 장면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MC 전현무가 본인의 수면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전깃줄을 주렁주렁 달고 수면실에 들어가 잠을 청하거나, 방독면처럼 생긴 장비를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이었다. 이를 본 시청자들은 놀라움을 표시했다. 검사 방법도 독특했고, 질환 이름도 생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방송을 통해 소개된 수면질환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만큼 잠과 연관된 질환은 다양하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상당수의 질환은 ‘노화’와 관련이 있다.
글·사진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흔히 수면질환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불면을 생각한다. 잠자는 데 문제가 있다면 불면증과 수면제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이렇게 잠을 못 자는 것이 바로 수면질환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잠으로 인한 질환은 이보다 훨씬 다양하고 분야도 넓다.
수면과 관련해서 환자들이 가장 많이 병원을 찾는 질환은 불면증이 아니라 앞서 전현무가 앓았던 수면 무호흡증이다. 코골이가 심각해지면서 잠자는 동안 일시적으로 호흡이 중단되는 증상이다. 주변에서 자다가 코 고는 소리가 멈추면서 “컥컥” 소리를 내는 경우를 본 적이 있다면 수면 무호흡 환자를 만난 것이다.
이 수면 무호흡증은 보통 자는 도중 무호흡증상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에 따라 그 심한 정도를 나눈다. 1시간에 5회 이하로 무호흡증상이 나타난다면 정상이지만, 15회까지는 경증, 30회까지는 중등도로 구분한다. 30회가 넘어가면 심각한 중증이라고 진단된다. 이를 의료인들은 RDI(수면호흡장애지수)라고 부른다. 제대로 검사하려면 뇌파와 호흡, 안구의 움직임 등을 살피는 수면다원검사가 필수다. 대학병원이나 전문클리닉이 환자가 밤새 잠자며 검사받을 수 있는 수면검사실을 운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수면 무호흡 산소공급에 문제 일으켜
수면 무호흡이 문제가 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가장 큰 문제는 수면 중 뇌가 충분한 산소를 공급받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수면이 중단될 때마다 사망을 막기 위해 뇌가 잠에서 깨면서 호흡을 강요하기 때문에 건강의 필수요소라 꼽히는 렘수면, 즉 질 높은 수면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전현무의 치료를 담당했던 지앤지수면클리닉의 이비인후과 전문의 현도진 원장은 수면 무호흡의 원인 중 하나로 노화를 지목했다.
“대부분의 환자가 수면 무호흡을 코골이와 연관해서 코가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 질환은 목과 기도가 문제예요. 입천장과 혀 뒤의 인두 부위가 잘 때 좁아지면서 호흡을 방해하기 때문인데, 나이가 많아질수록 점막이나 근육의 탄력이 떨어지면서 호흡할 때 음압이 걸리면 기도가 쪼그라들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죠. 뜻밖에도 여성분들이 많이 문제가 돼요. 중년 여성이 갱년기를 맞으면서 탄력을 잃는 현상이 급작스럽게 일어나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발병 소지가 급격하게 높아지는 것이죠. 이에 반해 남성은 완만한 모습을 나타냅니다.”
이렇게 수면 무호흡증이 나타나면 증상은 다양하다. 깊이 잠들 수 없으므로 낮에 졸리기 시작하고, 머리가 무겁고 심한 경우 두통도 동반한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산소 부족이다. 산소가 부족해지면 뇌가 교감신경을 자극해서 심장박동을 높이도록 명령을 내린다. 피가 많이 돌도록 해 산소를 확보하려는 반응이다. 이 과정에서 혈압이 높아지면서 뇌졸중 발병의 원인이 된다. 또 심장에 무리를 줘 심근경색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수면 무호흡의 치료는 보통 수술과 양압기의 사용 두 가지가 있다. 현 원장은 환자의 상태에 따라 치료방법을 결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과거에 잘못된 이론이 알려지면서 흔히 코골이 수술이라고 불리는 목젖 제거 수술이 남용됐어요. 결국, 이 수술은 재발이 가장 심한 수술로 낙인찍혔죠. 실제로 병이 재발해 저를 찾는 목젖 없는 환자들을 적지 않게 봅니다. 하지만 문제는 목젖이 아니에요. 또 무조건 수술로 혹은 양압기로 해결하려는 풍토도 바뀔 필요가 있습니다. 환자에 따라, 생활 환경에 따라 적합한 치료방법은 분명히 있으니까요.”
하지불안증후군 환자도 늘어
최근 수면장애 중 새롭게 주목받는 질환 중 하나는 하지불안증후군이다. 잘 때 다리에 벌레가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다리가 저리거나 움직이려는 현상이 일어나는 증상이다. 사실 이 증상은 꽤 많은 환자를 고통받게 했는데, 외과적 질환으로 오해 받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불안증후군이 문제가 되는 것은 환자의 수면을 방해해 깊은 잠에 들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
학계에서는 하지불안증후군의 원인을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의 부족으로 보고 있다. 도파민 부족은 철분 결핍이 원인이 될 수 있으므로 고용량 철분제를 투약하면서 치료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외에도 극히 드물지만, 기면증(嗜眠症)도 수면질환에 속한다. 느닷없이 잠에 빠지는 것은 심한 기면증에 속하고, 충분히 잠을 잤는데도 심한 졸음을 느낀다면 기면증 초기증세로 볼 수 있다. 심하면 가위눌림이나 잠꼬대, 발작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와 함께 수면 중 이상행동이 많아지는 것도 수면질환의 하나다. 예를 들어 잠꼬대를 심하게 한다든가 몸을 뒤척이고, 심한 경우 몽유병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몽유병은 수면 중 ‘수면 간질’의 가능성도 있다. 꿈이 많아지거나 반복적으로 안 좋은 꿈을 꾼다면 우울증 증상의 하나일 수 있으므로 정확한 진단을 받아야 한다.
시니어를 괴롭히는 대표적인 수면질환을 꼽자면 역시 불면증이라 할 수 있다. 불면증의 원인은 너무나 다양하다.
최근 불면의 새로운 원인으로 등장한 것은 스마트폰이다. 밤에 불을 끄고 스마트폰을 보면 뇌가 활성화돼 쉽게 잠들 수 없게 만든다. 특히 동영상은 뇌를 가장 활성화하는 콘텐츠로 꼽힌다. 그래서 전문의들은 잠자기 전 스마트폰으로 영화나 방송 등을 시청하는 것은 반드시 피해야 할 행동으로 꼽는다.
대표적 수면질환 불면증
스트레스는 불면의 대표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가족관계나 일, 사회활동 등에서 쌓인 스트레스는 계속 교감신경을 자극해 쉽게 잠들지 못하게 만든다. 걱정거리가 많을 때 불면에 시달리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이 불면증의 해결책으로 일반적으로 수면제 처방이 이뤄지지만 수면제의 약효가 듣지 않아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 만약 수면제를 먹어도 계속해서 잠을 제대로 청하기 어렵다면 대학병원이나 전문 수면클리닉에서 전문적인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불면증 역시 노화와 관계가 있다. 정형외과 전문의인 분당바른세상병원의 박성준 원장은 노화와 함께 다양한 통증이 찾아오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노화와 함께 여러 관절질환으로 인한 통증이 불면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오십견으로 불리는 동결건이 대표적 증상이죠. 뒤척일 때마다 어깨 통증으로 잠을 깨게 합니다. 때문에 불면으로 다른 합병증까지 발생하기 전에 통증을 유발하는 관절질환을 빨리 치료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수면자세 역시 매우 중요합니다. 목 아래에 받치는 베개는 높이가 10cm를 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옆으로 누워 자는 자세도 척추 건강에 나쁘지 않은데 이때는 적당한 높이의 베개를 받쳐 목이 꺾이지 않도록 하고 무릎과 무릎 사이에 베개를 하나 더 끼워 골반 높이와 맞추는 것이 좋습니다.”
불면을 이기기 위해서는 잠드는 시간과 기상 시간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침에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저녁에도 비교적 같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어야 망가진 신체 리듬을 회복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전문의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는 햇볕이다. 햇볕을 충분히 쬐는 것만으로도 뇌의 송과선에서 숙면을 유도하는 멜라토닌 호르몬 분비를 자극한다. 이렇게 낮에 햇볕을 쬐며 1시간만 걷는 습관을 지녀도 2~3주 후 뚜렷한 불면증 개선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특히 새벽에 일찍 잠에서 깨 다시 잠들지 못하는 시니어들에게 효과적이다.
수면은 7~8시간이 적당
그렇다면 잠자는 시간은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2014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유근영 교수팀이 발표한 연구결과를 살펴보면 가장 권장할 만한 수면시간은 7시간에서 8시간이다. 조사에 따르면 수면시간이 5시간 이하일 때는 사망률이 21% 증가했고, 9시간 이상일 때에는 사망률이 36%나 증가했다. 너무 많이 자는 것도 건강을 해치는 셈이다.
잠을 부르는 음식, 잠을 쫓는 음식도 따로 있다. 강남 자생한방병원의 유한길 원장은 음식에 따라 숙면을 위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우유, 치즈, 상추, 쑥갓, 양파, 둥굴레, 두충 등 몇몇 음식들은 잠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됩니다. 특히 호두는 불면증에 시달리던 서태후가 애용했다 할 만큼 불면증에 효과가 있어요. 반대로 수박처럼 수분이 많은 음식, 자극적인 음식은 잠을 내쫓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종류의 음식이든 과식하지 않는 것입니다. 과식하면 음식을 소화하기 위해 위장이 활발하게 운동을 하게 돼, 당연히 잠을 이루기가 힘듭니다. 술도 마찬가지죠. 한두 잔의 와인은 좋지만, 그 이상은 오히려 잠을 못 이루게 합니다. 그렇다고 술에 곯아떨어져 자 버릇하면 알코올 중독이 되는 지름길입니다.”
글 배국남 대중문화 평론가 knbae24@hanmail.net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을 통해 10대 여고생은 박태준 작가의 를, 20대 여성은 조석 작가의 를 보고 있다. 30~40대 남성 직장인들은 윤태호 작가의 에 몰두하고 있다.
최고 인기 예능 프로그램 MBC 은 가스파드, 기안 84, 무적핑크, 윤태호, 이말년, 주호민 등 6명의 작가가 유재석 박명수 등 멤버들과 함께 만든 작품을 6월 18일부터 한 달 넘게 내보냈다.
900만 관객을 넘기며 흥행 대박을 터트린 이병헌 주연의 영화 이 눈길을 끈 데 이어 하정우, 차태현, 이정재, 김하늘, 김해숙, 오달수 등 초호화 멤버가 출연할 영화 에 대한 기대가 높다. 17.3%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 방송 내내 숱한 화제를 낳았던 드라마 이 시청자의 좋은 반응을 얻었고 뮤지컬 는 관객들의 박수를 받았다. RPG(롤플레잉게임) 은 인기가 높다.
하일권 작가의 은 영국 영화제작사 페브러리 필름에 영화 판권이 판매됐고 캐러멜, 네온비 작가의 는 중국, 대만과 출판 계약을 체결했고 호랑 작가의 , 윌로우 작가의 등 수많은 작품이 미국 네티즌의 높은 관심을 끌고 있다.
이 같은 모습을 관통하는 하나가 있다. 바로 웹툰이다. 하루 수십만 명이 보는 등 스마트폰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콘텐츠가 웹툰이다. 윤태호, 주호민, 기안84 등 인기 웹툰 작가들은 연예인을 능가하는 인기를 누리고 월 1억원에 육박하는 엄청난 수입을 올린다. 영화 부터 게임 까지 수많은 영화, 드라마, 뮤지컬, 연극, 게임의 원작이 웹툰이다. 을 비롯한 인기 웹툰 작품들이 속속 해외에 진출해 한류 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의 발달,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이용이 급증하고 있는 스낵 컬처(Snack Culture)의 대표주자, 웹툰은 이제 마니아의 문화를 넘어 가장 강력한 대중문화로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영화, 드라마, 게임의 원천이자 한류 상승의 기폭제 역할까지 하고 있다. 웹툰이 대중문화의 강력한 먹거리인 동시에 젖줄 역할을 하고 있다. 웹툰을 알지 못하고서는 대중문화의 주요한 흐름을 알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웹툰은 기존 만화가 인터넷으로 플랫폼을 이동한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매우 새로운 인터넷 문화 형식으로, 새로움을 찾는 한국의 인터넷 사용자들에 의해 이미 그 효율성이 검증됐고 외국 이용자들에게도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다.” 홍석경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가 1월호에 게재한 ‘모바일 TV와 웹콘텐츠, 새로운 시너지의 시대’라는 글을 통해 대중문화의 한 분야로 급부상하고 있는 웹툰의 성격을 설명했다.
10~20대 젊은 마니아의 문화로 치부되던 웹툰은 이제 30~40대 중년층 등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즐기는 대중문화로 자리 잡았다. 네이버 웹툰 하루 이용자만 620만 명에 달하는 것을 비롯해 웹툰 사이트 상위 5개사 누적 회원이 9590만 명에 이른다. KT경제경영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국민 3명 중 1명이 웹툰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2013년 1500억원에 달하던 웹툰 시장(2차 부가가치 시장과 해외수출 포함)은 2015년 4200억 원을 돌파했다. 2016년 올해 웹툰 시장 규모는 5845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2018년에는 8805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용자 급증과 영화, 드라마 등 부가 시장의 성장, 수출 증가 등으로 웹툰 시장은 급성장하고 있다.
웹(web)과 카툰(cartoon)의 합성어인 웹툰은 이미지 파일 만화의 총칭으로 텍스트, 이미지, 사운드 등의 멀티미디어 효과를 동원해 제작한 인터넷 만화를 의미한다. 웹툰은 1990년대 후반 IMF로 출판 만화 시장이 침체하고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출판 만화를 스캔해 올리는 형태로 출발했다. 이 시기에 개인 컴퓨터가 일반가정에 보급되면서 개인 홈페이지 제작이 인기를 끌었는데 개인 홈페이지에 짧은 에세이 형태의 만화를 연재하는 작가들이 속속 등장하고 이 만화들이 각종 커뮤니티에 공유되면서 새로운 만화의 형태인 웹툰이 눈길을 끌기 시작했다.
2003년 포털 다음의 ‘만화 속 세상’ 서비스가 시작되고 강풀의 가 연재되면서 이용자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긴 서사를 가진 작품을 비롯한 다양한 작품이 쏟아지고 포털과 언론사, 전문 웹툰 사이트가 앞다퉈 웹툰 시장에 가세하면서 웹툰은 질적, 양적으로 비약적 발전을 거듭했다. 2009년 스마트폰의 도입으로 웹툰은 또 한 번 도약을 하며 시장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네이버 등 포털에서부터 카카오페이지 등 모바일, 통신사 사이트, 언론사 사이트, 레진코믹스를 비롯한 웹툰 전문사이트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수많은 웹툰을 게재하고 있다. 2015년 한해 기준 네이버 웹툰은 연재작품 159편, 완결작품 318편, 다음은 연재작품 99편, 완결작품 403편, KT(올레마켓)는 연재작품 52편, 완결작품 20편, 카카오 페이지는 연재작품 70편, 완결작품 1편, 레진코믹스는 연재작품 170편, 완결작품 80편에 달한다. 2015년 한 해 동안 윤태호 작가 등 전문작가 4661명이 5300여 편의 웹툰 작품을 포털, 전문사이트를 통해 쏟아냈다. 수만 명의 웹툰 아마추어 작가들도 개인 홈페이지나 포털 사이트에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웹툰은 독창적인 스토리와 형식, 장르로 눈길을 끌고 있을 뿐만 아니라 PC,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다양한 플랫폼을 이용해 짧은 시간 안에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이점 때문에 이용자가 급증하며 가파른 상승세를 보인다.
무엇보다 웹툰은 드라마, 영화, 웹드라마, 뮤지컬 등 다양한 대중문화 분야의 원작으로 활용되는 원소스 멀티유스(OSMU) 콘텐츠로 각광을 받으며 대중문화 산업과 한류의 강력한 먹거리로 부상했다.
올해 들어 시청자와 만난 을 비롯한 수많은 드라마와 등 적지 않은 영화들이 웹툰을 원작으로 활용했다. 그뿐만 아니라 등 웹툰 작품들이 뮤지컬로, 연극으로, 게임으로, 웹드라마로 재탄생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15년 발표한 보고서 ‘웹툰 산업 현황 및 실태조사’에 따르면 레진 코믹스 등 웹툰 전문사이트에서 연재된 작품 중 판권이 팔린 작품은 73개 작품으로 이 중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지고 무대에 올랐던 작품은 50개에 달했다. 또한, 다음 카카오에서 영상화하거나 예정된 작품은 40개에 달하고, 네이버 웹툰 중 영상화한 것은 17개, 영상화 예정 작품은 9개, 60개 작품이 영상화 판권 계약을 마친 상태다.
웹툰이 드라마, 영화, 게임 등 다양한 대중문화의 원작으로 활용이 급증한 것은 참신하고 독창적인 소재나 내용, 장르가 많은 데다 영상화하기 쉬운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백석예술대학교 영상디자인학부 김재호 교수는 “웹툰은 사건을 빠르고 단순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돼 디지털에 맞춤화된 현대인의 눈길을 쉽게 사로잡을 뿐만 아니라 영상화 작업도 쉽게 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웹툰은 최근 한류 콘텐츠로도 급부상하고 있다. 네이버, 레진코믹스 등 다양한 플랫폼에 소개된 웹툰 작품이 일본, 중국, 미국 등 해외에 진출해 현지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고 하일권 작가의 이 영국 영화사에 판권이 판매되는 등 수출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웹툰은 최근 들어 한류 킬러콘텐츠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웹툰은 이처럼 새로운 트렌드를 이끄는 대중문화의 한 분야로서 진화를 거듭할 뿐만 아니라 막대한 이윤을 창출하는 문화산업 시장으로서의 잠재력도 날로 커지고 있다.
글 배국남 대중문화 평론가 knbae24@hanmail.net
“제가 어린데 (노래가)좋네요. 저도 나이 곧 들겠지요.”(박혜인) “올해 29세인데 이 노래가 심금을 울려요.”(lemon77) “나이 들어 들으니 정말 와 닿는 가사네요.”(강경숙) “중학교 때 눈물 흘리며 듣던 곡인데 50 가까운 지금 들어도 눈물이 나요.”(원석정)…
한 노래에 대한 네티즌의 반응이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달 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내 젊은 연가가 구슬퍼…’ 올해 초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에 OST로 삽입된 출신 가수 김필과 김창완의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을 통해 재탄생한 ‘청춘’이다. 신세대 가수 김필과 중견 가수 김창완의 콜라보레이션곡 ‘청춘’은 원곡이 발표된 지 3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중·장년층에게는 추억을 되살리는 음악으로, 신세대에게 요즘 대중음악에서 접할 수 없는 정서와 의미가 담보된 노래로 다가간다.
최백호와 후배 가수 린이 5월 14일 방송된 KBS 에서 1982년 발표해 대중의 폭발적 사랑을 받은 김수희의 ‘멍에’를 새로운 감각으로 편곡해 신선한 콜라보 무대를 선보여 관객과 시청자의 큰 박수를 받았다.
요즘 대중음악의 가장 큰 트렌드이자 키워드는 콜라보다. 콜라보레이션은 마케팅에서 각기 다른 분야에서 지명도가 높은 둘 이상의 브랜드가 손잡고 새로운 브랜드나 소비자를 공략하는 기법으로, 주로 패션계에서 디자이너 간의 공동 작업을 일컫는 용어로 사용됐다. 최근 들어 콜라보는 대중음악에서 가수와 가수 등 음악가끼리, 혹은 다른 분야의 아티스트 등과 일시적으로 팀을 이뤄 작업하는 것을 의미하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2014년 남자 가수 정기고와 걸그룹 씨스타 멤버 소유의 콜라보곡 ‘썸’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가수들의 콜라보가 하나의 인기 트렌드로 강력하게 부상했다. JYP엔터테인먼트 소속의 미쓰에이 수지와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엑소 백현을 비롯한 소속사가 다른 가수들, 록그룹 국카스텐의 하현우와 트로트 가수 주현미 등 장르가 다른 가수 등 다양한 형태의 가수들의 콜라보를 통해 탄생한 노래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특히 김창환-아이유의 ‘너의 의미’, 비와 태진아의 ‘라송’등 세대가 다른 가수들의 콜라보는 큰 관심을 끌고 있다. 1980~1990년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낸 독특한 음색의 이광조와 인디 가수 요조의 ‘케이팝 클래식(K-POP CLASSIC)’을 비롯해 아이유와 양희은, 이문세와 슈퍼주니어의 규현 등 40~60대 가수와 10~20대 가수 및 아이돌 그룹의 콜라보 음반에서부터 공연까지 신구 세대 가수의 콜라보 작업이 왕성하게 전개되고 있다.
음반 기획자들은 “대중음악계에서 요즘 전개되는 가수들의 콜라보는 다양한 형태로 진행돼 앞으로 더 영향력이 커질 것이다. 아이돌 가수의 경우 한 시대를 풍미했던 레전드 가수와 호흡을 맞출 수 있고, 중견 가수의 경우 젊고 역량 있는 후배와 신선한 조합으로 색다른 감성을 전달할 수 있다”며 대중음악계에서의 가수들의 콜라보 전망을 긍정적으로 진단했다.
이처럼 신구 세대 가수의 콜라보를 비롯한 가수들의 콜라보가 성행하는 이유는 뭘까. 성격이 다른 가수들의 콜라보는 기존 활동했던 모습이나 음악에서 벗어나 대중에게 새로운 음악 스타일을 전달할 수 있고, 음악의 스펙트럼을 확장할 수 있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양희은, 김창완, 이문세 등 선배 가수들과 콜라보를 자주한 아이유는 “선배들과의 콜라보는 또래 뮤지션들에게서 느낄 수 없는 음악적 정서와 감성, 스타일을 배울 소중한 기회다. 선배 가수들과의 콜라보를 통해 내 음악의 스펙트럼도 확장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음원과 디지털 싱글 등 대중음악 시장이 디지털 온라인 중심으로 전환한 것도 가수들의 콜라보가 급증한 이유의 하나로 꼽힌다. 디지털 중심의 대중음악 환경에서는 적은 제작비로 쉽게 디지털 싱글을 제작할 수 있어 다양한 콜라보 작업을 진행할 수 있다.
KBS , SBS , MBC , JTBC 등 음악 예능 프로그램이 많이 늘어난 것도 다양한 가수들의 콜라보 등장을 낳게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음악과 게임, 경연 등 다양한 예능 장치를 음악과 혼합한 음악 예능이 늘어나면서 가수들의 콜라보 무대 수요가 급증했다.
여기에 드라마와 영화, 예능 프로그램에서 1970~1990년대 복고 바람이 강타한 것도 가수들의 콜라보를 대중음악의 인기 트렌드로 부상시킨 원동력이다. 최근 드라마 , 예능 프로그램 등 대중문화 전반에 복고 바람이 불며 1970~1990년대를 소환하는 경우가 부쩍 많아졌다.
드라마, 영화, 예능 프로그램의 복고 신드롬은 자연스럽게 1970~1990년대의 노래와 가수들의 소환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과거 전성기를 누린 가수들의 원곡 그대로가 아닌 원곡 가수와 신세대 가수들의 콜라보를 통해 새롭게 재탄생한 노래들이 큰 사랑을 받았다. 이 때문에 대중문화 전반에 복고 코드 득세와 함께 가수들의 콜라보 특히 신구 세대 가수의 콜라보가 성행하게 됐다.
대중음악에 강력한 트렌드이자 키워드로 떠오른 콜라보는 긍정적인 부분이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다른 장르 간, 신구 세대 간, 다른 소속사 간 가수들의 콜라보를 통해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하면서 대중음악의 지평을 확장할 수 있고 가수들 역시 자신들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확대할 수 있다.
록밴드 국카스텐과 콜라보 무대를 가졌던 트로트 가수 주현미는 “국카스텐과 콜라보하면서 내 노래가 색다르게 다가왔다. 국카스텐과의 콜라보를 통해 내가 하는 트로트도 얼마든지 젊은 감각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또한, 콜라보를 통해 대중음악 수용자를 확장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대중음악 평론가들은 가수들의 다양한 형태의 콜라보가 진행되면서 작업에 참여한 가수들의 팬덤이 합쳐지며 시너지를 내고 이것이 팬층의 확장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특히 신구 세대 가수의 콜라보의 경우, 선배 가수들이 인기가 높은 신세대 가수와의 콜라보를 통해 신선한 감각과 신곡에 민감한 젊은 층을 공략할 수 있고 신세대 가수들은 전설적인 선배 가수들과의 콜라보를 통해 음악 완성도를 높이고 기성세대에게도 존재감을 알리는 효과가 크다. 신구 세대 가수의 콜라보는 음악 시장의 주요 소비층인 10∼20대에게 부모 세대의 음악을 이해하게 하고, 기성세대에게는 젊은 스타의 최신 음악에 관심을 끌게 해 10~20대 젊은 층 위주의 국내 음악 시장 한계를 극복하는 돌파구 역할도 한다.
회사원 장동수(48) 씨는 “의 OST ‘청춘’을 통해 김창완과 콜라보한 김필이라는 가수를 처음으로 알게 됐고 그의 음악에 관심을 두게 됐다. 고교생 딸은 반대로 ‘청춘’을 통해 김창완의 노래를 좋아하게 되고 음반까지 구입했다”고 말했다. 가수들의 다양한 형태의 콜라보는 무엇보다 취향 간, 세대 간, 스타 팬덤 간의 벽과 단절을 허물고 이해와 교류, 소통의 접점을 확장하는 의미 있는 결과도 낳고 있다. 아이돌과 7080 가수와의 콜라보는 신세대는 부모 세대의 문화를, 부모 세대는 젊은이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아이유, 장기하와 얼굴들, 김필 등 젊은 가수들과의 왕성한 콜라보를 진행하고 있는 김창완은 “가수들의 콜라보는 상이한 연령, 취미 등을 가진 사람들 상호 간의 이해의 장을 마련해줘 대중음악 소비층의 확장뿐만 아니라 세대 갈등 등 사회적 문제 해소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측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1, 지리산 청학동서 세상을 만나다
필자는 촌놈이다. 지리산 삼신봉 아래 청학동 계곡에서 세상을 만나서다. 청학동은 경남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일원을 이른다. 삼신봉에서 발원한 맑은 물이 기암괴석으로 둘러쳐진 계곡을 돌고 돌아 섬진강으로 이어진다. 하동읍까지 40리(약 15.7㎞), 진주시까지 100리(약 39.3㎞)다. 지금은 관광지로 많은 사람이 찾지만, 앞산 토끼와 뒷산 토끼가 서로 발맞출 수 있는 두메산골이었다. ‘정감록’을 비롯한 몇몇 옛 문헌에 신선들이 사는 이상향으로 등장한다. 청학이 노닐고 흉년, 질병, 난리가 없는 지상 낙원으로 신라 말기부터 전해오는 마을이다. 할아버지도 거창군 가조면 율리에서 그 이상향을 찾아 이곳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였다. “유불선합일경정유도교"의 신자들도 1960년대 초반부터 이곳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한복을 입고 결혼 전에는 댕기 머리를 땋고 결혼 후에는 남자는 상투를 틀고 여성은 쪽 지은 머리에 비녀를 꽂는 풍습의 도인촌이다.
이곳으로 이주한 조부모와 부모는 화전을 일구어 밭농사를 지었다. 계곡 주위의 다소 반반한 터를 잡아 다랑논을 만들었다. 어느 가을날 그 밭에서 일하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빨치산에게 붙잡혔다. 부역을 시키거나 총살을 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소나무 둥치에 포박하여 둔 채로 그들은 떠나갔다. 어둠이 깔리자 두 분은 묶인 손의 밧줄을 간신히 풀고 일궈놓았던 논밭과 익어가던 곡식을 팽개친 채 빈 몸으로 10리(약 3.9㎞) 떨어진 대밭 몰이라는 아랫마을로 소개하여 삶의 터전을 새로 마련했다.
필자는 청학동서 배태하여 이곳에서 삼 형제 중 늦둥이 막내로 태어났다. 음력으로 1950년 2월 초나흘 새벽닭이 울 무렵이었다. 배냇저고리에 쌓여 한국전쟁을 겪었고 그곳에서 유소년시절을 보냈다. 끼니를 챙기는 어머니 곁에서 딸처럼 아궁이에 불을 지피어 드리기도 하고 들녘에서 나물을 캐기도 하였다. 닳고 닳은 놋쇠 숟갈로 감자 껍질을 벗겨드리기도 하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하동읍에 있는 하동중앙중학교에 입학했을 때도 등잔불을 켜고 살았다. 밤에 공부하고 나면 콧구멍이 까맣게 그을렸다. 등잔불에 넣을 기름도 40~ 50분 걸어가야 하는 면사무소 근처의 가게에서 기름때 진득하게 낀 됫병에 짚으로 꼰 새끼줄을 묶어 조심스레 들고 와야 했다.
어머니 나이 33세에 필자를 낳았다. 큰 형님과는 10세, 둘째 형님과도 6세 터울이다. 할아버지의 만류로 9세에 초등학교에 입학(1958)했다. 징검다리가 있는 개울을 건너 신작로 고갯길을 돌고 도는 1시간 거리에 있는 청암초등학교였다. 공부 잘하고 달리기, 웅변, 그림 그리기 등 모든 부분에서 두각을 보였고 전교 학생회장도 했다. 중학교 역시 수석으로 입학하였고 3년 동안 1등을 놓친 적이 없는 수재로 지역주민의 기대를 받고 자랐다. 중학교 때는 같은 학년의 친구 집에 입주하여 공부를 도와주고 숙식을 해결한 적도 있다. 중학생이 가정교사로 일한 것이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초등학교 모교 졸업식에서 축사한 특별한 경험이 있다. 동네 결혼식의 축사도 도맡아 했다.
2. “당신은 중책을 맡게 될 거야!”
거창대성고등학교를 졸업(71)한 후 72년 곧바로 국민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하여 1학년을 마치고 공군에 자원입대하여 관제병으로 3년 만기 전역했다. 이후 77년 10월, 대학 졸업 직전에 쌍용그룹 고려화재해상보험㈜에 공채로 입사했다. 특종보험 언더라이팅 업무를 하다 기획조사부로 발령되어 신상품 개발 업무를 하여 국내 최초 골프보험, 낚시보험 등의 레저보험을 개발하였다. 79년 4월 15일, 다섯 살 아래인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하였다.
보험감독원 등 외부기관 연수에서 늘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재무부 장관 표창도 받았다. 83에는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스위스보험연수소(SITC)를 수료(사진)했다. 중견 사원이 되었을 때는 운영상 문제가 있었던 제주지점, 대전지점, 동대문지점장으로 부임하여 업적을 크게 올렸다. 그런 덕으로 96년 초 직장의 별인 임원으로 승진해 부산, 경남, 제주를 관장하는 본부장(부산 주재)을 지냈다.
3, 47세에 용도폐기
호사다마라 했던가? 임원으로 승진한 지 2년이 채 되지 않았던 1997년 12월 말 갑작스럽게 해임되었다. 충격이었다. 나이 47세 때다. 유능한 직원으로 인정받으며 회사 일에 매달려온 지난 날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한창 일할 나이였고 두 아들도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아버지로서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이 필자에게 거는 기대를 생각하면 더 얼굴을 들 수 없었다. 넥타이를 매고 정상 출근하듯 집을 나서 공원에서 배회하다가 퇴근 시간에 맞춰 귀가하는 사람들의 얘기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필자가 바로 그 처지가 되었다.
4. “당신 제 명에 살게 하려고”
해임된 그 날 집으로 돌아가면서 어떻게 아내에게 알려야 하나를 고민했다. 믿고 있는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망설여지기도 하였으나 그날로 아내에게 사실을 알렸다. 가족의 의미가 무엇인가? 서로를 알고 서로를 도울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지만, 용기를 내어 알렸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던 일이어서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잠시 시간을 보낸 아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참 잘 됐어요. 당신 제 명에 가게 하려고 하늘이 도왔나 봐요! 그동안 애 많이 쓰셨어요. 어디 산 입에 거미줄 치겠어요.” 우리 세대들이 다 그러했듯 나 역시 목표달성을 위하여 몸을 사리지 않고 밤낮으로 일했다. 거래처 접대와 직원 격려를 위한 회식 자리로 자정 무렵에야 겨우 혼자 살던 사택으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이렇게 살다가는 필자가 제 명에 갈 수 없겠다 싶은 생각을 수차례 하였을 것이다.
5. “설상가상”, 이런 때 쓰는 말이구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퇴직한 다음 해 IMF 위기가 닥쳤다. 먹고 사는 일이 걱정거리로 등장했다. 재취업하려 발버둥 쳐봤지만, 필자가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다단계 모집 광고에 빠져들기도 하였다. 그런 현실은 분노를 부추겼고 속이 더 상했다. 분노를 일간신문 독자 투고란에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은 필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음을 깨닫고 마음을 비워가기 시작했다. 체면이나 자존심을 조금씩 버렸다. 그런 과정에서 마음을 가장 잘 가라앉혔던 생각은 “나의 직장 운이 거기까진 데 어이하겠어”라고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마음이 한결 안정되었다. 주어진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찾기 시작했다.
6, 마당쇠가 되다
생계유지를 위한 일을 찾아야 했다. 퇴직 6개월이 지나서야 고용노동부 고양시고용센터에 들러 실업급여를 청구했다. 처음엔 쑥스럽고 창피하여 신청을 미루고 있었다. 국민연금을 해지하여 생활비로 사용했다. 다른 보험도 모두 해지하였다. 그 후 별별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아는 사람의 도움으로 만화방을 창업했다. 누워서도, 엎드려서도 만화책을 볼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 도입으로 좋은 호응을 얻어 사업이 잘됐다. 수입을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하여 라면을 직접 끓여 팔기도 하였다. 하지만 시대조류였던 PC방이 성업하면서 이 업종도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그래서 이 사업을 접고 경기 부천시 상동에서 부대찌개 음식점을 창업해 운영했다. 90% 이상이 성공하지 못한다는 통계를 누누이 들으면서도 많은 퇴직자가 덤벼드는 것이 요식업이다. 필자도 그런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엔 고전을 면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회사 다닐 때 몸에 익힌 고객서비스 정신이 도움되어 친절한 음식점으로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수익이 괜찮아졌다. ‘이런 맛에 음식점을 하나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몸이었다. 계속 아팠다. 특히 나이도 환갑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진정한 삶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계기를 맞았다. 때마침 가게를 욕심내는 사람이 나타나 적정한 가격 협상 끝에 가게를 넘겼다. 그 후에도 먹고 살기 위해서 다양한 일을 이어갔다. 월 40만 원을 받으며 작은 회사의 조경관리사로 취업하여 매일 아침 긴 대나무 빗자루로 마당을 쓸고 쓰레기봉투를 치우는 일도 하였다. 마당쇠가 된 셈이다. 대형 고깃집 일산한우마을 점장도 하였고 일당을 받기 위하여 MBC 드라마 ‘주몽’ 엑스트라 출연도 해보았다. 마음을 내려놓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좋은 경험이 되었다. 강의 콘텐츠가 생산되었기 때문이다.
7, 친구의 비명횡사, 인생의 전환점 되다
57세 때 가까운 친구를 비명횡사로 잃었다. 두 살 아래의 직장 친구였다. 평소 술은 하지 않았고 담배도 수년 전에 끊어 건강한 사람이었다. 그는 추석 전날 다른 친구들과 남한산성에 올랐다. 산행 중 가슴에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구급 차량을 불렀으나 고향 가는 차량 행렬에 막혀 늦게 도착한 119차량에 실려 가까운 성남시의 한 병원으로 가는 도중에 숨을 거두었다. 정말 황당했다. 친구의 죽음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퇴직 후 보낸 10년의 세월을 되돌아보았다. 열심히 산다고는 했지만, 내로라할만한 일은 이루지 못하였다. 이렇게 살다가는 필자도 친구와 같이 무의미한 생을 마감하겠구나 싶었다. ‘100세 장수시대를 맞아 보람 있고 즐거운 생활을 하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까’하는 고민을 시작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이제부터는 필자를 위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것이었다.
8, 60살에 사진 배우다
직장생활과 생업으로 잊고 있었지만, 은퇴하면 햇살 좋은 언덕에 캔버스를 세우고 수채화를 그리는 꿈을 꾸곤 했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필자가 사는 고양시에서 무료로 하는 사진강좌를 알게 되었다. 당시에 필자는 블로그 ‘촌놈의 세상보기’를 운영하면서 사진을 곁들인 글을 쓰고 있었다. 좀 더 좋은 사진을 생각하고 있던 때여서 강좌에 참여했다. 화필 대신에 카메라를 잡은 셈이다. 2010년 7월부터 한 달에 3회 6개월 강좌를 들었다. 필자 나이 60대 중반이었다. 사진에 특별한 재능이나 솜씨를 갖고 있지 않은 초보자였다. 카메라도 소형 디지털카메라 한 대가 전부였다. 하지만 지리산 청학동 계곡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감성과 초등학교 때 수채화를 그렸던 경험, 전 직장에서 맡았던 홍보 관련 일과 사보편찬 업무가 도움돼 일취월장했다.
사진 취미활동은 여가를 무료하지 않게 보내면서 건강도 챙기고 여러 사람이나 자연과 함께함으로써 외롭지 않게 보낼 수 있게 했다. 때로는 작품으로 부가적 소득과 재능기부도 하면서 평생을 현역처럼 살 수 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 했다. 사진을 배우기 시작한 3개월 뒤인 2010년 10월부터 공인 사진작가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일반인이 사진작가가 되는 길은 한국사진작가협회가 인정하는 전국사진공모전에서 입선 이상을 하여 획득한 점수가 50점을 넘겨야 했다. 입선하면 2점을 받는다. 일 년 동안에 28회 출품해 절반 이상 낙선하였으나 어쨌든 15회의 수상으로 사진작가 명함을 달았다. 첫 번째로 출품했던 제1회 너브내전국감성사진공모전에 ‘형상II’이 동상의 영예를 안겨주어 출발이 순조로웠으나 다른 공모전에선 잘 뽑히지 않아 포기할 생각도 수차례 하였다. 그러나 사진 자체가 재미있었다. 꾸준하게 찍으며 관련 서적을 사서 공부하고 기회가 되면 망설이지 않고 재능기부도 마다하지 않았다. 사진을 배우기 시작한 3년 만인 2013년 7월 국전인 대한민국사진대전에 ‘무한 질주’라는 작품이 입선했다. 2013년 10월에는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에서 주관한 ‘8만 시간 디자인공모전’의 사진 부문에 ‘몰입’이라는 작품이 우수상을 받았다. 11월에는 부산일보 주최 제21회 ‘부일 전국사진대전’에 출품한 ‘닭장’이 1,166점 중에서 좋은 심사평으로 2위인 우수상 영예를 안았다. 부산일보는 2013년 12월 26일 자 기사에서 이렇게 전했다. "변용도 씨의 우수상 '닭장'은 울타리 안에서 바깥세상을 바라보는 닭의 붉은 머리 부분을 어두운 배경에서 강렬하게 보여 주어, 닭의 모습에서 감옥에 갇힌 사회의 한 단면을 풍자하는 듯한 표현이 출중했다는 평을 받으며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9. 사진취미, 인생이막의 텃밭이 되다
필자는 사진을 ‘카메라로 쓰는 이야기’로 정의하고 ‘포토스토리텔러’라 자칭한다. 사진은 찍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하여 끊임없는 노력을 한다. 지금까지 찍은 사진의 숫자가 37만 장이다. 카메라는 가장 아끼는 친구다. 늘 함께한다. 사진은 취미가 아닌 일상이 됐다.
사진 활동이 바탕이 되어 다양한 분야로 활동영역이 확대되어 다용도(多用途)로 후반생을 바쁘고도 보람 있게 산다. 사진이 인생이막의 텃밭이 되었다. 필자는 그 텃밭에 글솜씨, 강의 솜씨를 추가로 뿌렸다. 그런 씨앗에서 싹이 돋고, 잎이 무성해지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2008년에는 ‘미역국’ 외 다수의 작품으로 ‘순수문학지’ 신인상에 당선되어 수필가 명함을 달았다. 2012년에는 필자의 블로그 ‘촌놈의 세상보기’가 대한민국 100대 우수블로그로 선정됐다. 사진작가, 사진 칼럼니스트, 수필가, 저자, 강사(은퇴준비, 생애 재설계, 변화관리, 사진), 방송인(KBS 1TV ‘아침마당’, SBS라디오 ‘유영미 마음은 언제나 청춘’ 시니어리포터, 머니투데이 행복특강, 토마토TV 강연, 아리랑TV, CBS라디오, 한국직업방송), 기자(시니어조선 사진명예기자, 사회연대은행 KDB시니어브리지센터 두드림기자), 유어스테이지 시니어리더 겸 시니어리포터, ‘디카와 놀자’와 세화포토클럽 운영자다. 최근엔 경제신문 이투데이 자매지 브라보 마이라이프의 동년기자로 활동을 시작했다.
2013년 11월 ‘아름답게 보니 아름다워’, 2016년 1월 ‘카메라로 쓴 아름다운 이야기’를 출간하여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판매 중이다. 대우조선해양㈜와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 고려대 평생교육원 액티브시니어전문가과정 전임강사다. 서울시 서초구 우면동에 있는 우면청춘대학의 사진강좌를 2년째 맡아오고 있다. 사진이 근간이 되어 활동 영역이 확대되었다.
10. 도랑 치고 가재 잡다
대학을 입학하면서 서울 생활이 시작되었고 지금은 경기 고양시 외곽의 한적한 전원 마을에서 자그마한 주택을 지어서 살고 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아니하여도 현실을 인정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하고 싶은 일 하며 일상을 즐긴다. 즐겁지 않으면 인생이 아니라고 한 어느 노부부 여행가의 생활 철학을 닮아가려 한다. 젊은 시절에 느끼지 못하였던 보람을 느끼며 산다. 전반생보다 후반생을 더 바쁘고 활기차게 보낸다. 그 바탕에 사진이 있다. 많지는 않아도 용돈도 번다. 그야말로 도랑 치고 가재 잡는 형국의 삶을 산다. 2차 성장을 한 셈이다. 하버드대 성인발달연구소 윌리엄 새들러 교수가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을 재창조하는 것이 인생의 2차 성장이라고 말하고 있듯이 제2의 절정기를 만들기 위해 성장을 멈추지 않는다. 변함없는 도전이다. 필자의 이름을 ‘변함없는 용기로 도전하는 남자’로 풀이해본다. 그런 덕분에 누구나 한 번쯤 출연해보고 싶은 KBS 1TV의 ‘아침마당’(2014, 11, 24)에 섭외를 받아 출연했다. ‘다시 시작하는 인생- 나의 두 번째 직업을 소개합니다’란 주제였다. 사진작가로, 은퇴준비강사로 안사람과 함께 출연해 삶의 정점을 새로 찍었다.
11, 생애 최고의 순간을 찾아
세계적 사진작가 프랑스의 마크 리부가 있다. ‘에펠탑의 페인트공’, ‘꽃을 든 여인’ 등 유명한 작품을 만든 현존하는 사진작가다. 기자가 물었다. “선생님의 작품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어느 것입니까?” 리부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일 찍을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를 감동하게 한다. 세계 최고의 경지에 이른 작가이지만, 더 나은 작품을 얻기 위하여 계속 노력하겠다는 꿈을 꾼다. 희망으로 산다. 진정한 대 작가의 마음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 마음과 자세가 새로운 경지로의 작품세계를 창조한다고 볼 수 있다. 오늘에 머무르지 않고 발전을 거듭하려는 삶의 철학이, 남이 넘볼 수 없고 흉낼 수 없는 작품 세계를 만드는 것이라 여겨진다. 미래를 향해 또 다른 꿈을 꾼다. 필자 또한 늘 이제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아직 오지 않은 생애 최고의 순간을 찾아 도전의 발길을 멈추지 않으련다. 또한 하늘이 인생의 구석구석에 베풀어주신 은혜에 보답하고 경험과 지혜를 이웃과 사회를 위하여 아낌없이 다 쓰고 가리라.
38.8%라는 근래 보기 힘든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한 KBS 드라마 흥행 일등공신은 수많은 여성 시청자의 가슴을 설레게 한 남자 주연 송중기다. 올해 들어 한국영화 중 970만 관객을 동원하며 2016년 상반기 최고 흥행작으로 기록된 주연은 강동원 황정민, 두 남자 배우였다. 10년 넘게 방송되면서 예능 최강자로 군림하는 MBC 은 유재석 박명수 등 6명의 남자 멤버들이 이끌고 있다. 의 조승우와 의 김준수는 출연 작품마다 매회 티켓매진 기록을 수립하는 뮤지컬계의 최고 흥행 파워 스타다.
최근 들어 드라마, 영화, 예능, 뮤지컬에서 남자 스타 주도의 흥행이 대중문화의 강력한 트렌드로 떠올랐다. 최근 원톱 남자 주연 혹은 남-남 투톱 주연의 영화나 드라마가 흥행에 성공했지만, 여성 스타들이 주연으로 전면에 나선 작품들은 시청자와 관객의 외면을 받아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은 남자 스타 전유물로 전락한 지 오래돼 여성 멤버들이 주축이 된 여성 예능 프로그램은 보기조차 힘들어졌다. 남자 스타의 티켓파워가 강력해 조승우나 김준수의 뮤지컬의 회당 출연료는 2000만~3000만원 선으로 여자 스타의 출연료를 압도한다.
영화계에선 근래 들어 남자 원톱 혹은 투톱 주연의 영화들이 흥행을 주도하고 있다. 최근 1~3년 사이에 송강호가 주연으로 나선 을 비롯해 황정민의 , 최민식의 , 류승룡의 , 황정민 유아인의 등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가 남자 원톱 혹은 투톱 주연의 영화였다. 그리고 600만~9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 역시 마찬가지다. 황정민의 , 이병헌의 , 황정민 강동원의 , 송강호 이정재의 , 유아인 송강호의 , 하정우 한석규의 , 김수현의 등 모두 남자 스타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들이다.
반면 여자 스타들이 전면에 나선 영화들은 흥행 참패를 면치 못했다. 2014년 상영돼 866만 명이 관람한 손예진 주연의 , 86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심은경 주연의 등 극소수의 작품을 빼놓고는 최근 여자 주연을 내세운 영화들은 관객들의 외면을 받았다. 올해 들어서도 여자 주연으로 눈길을 끈 영화들이 연이어 흥행에 실패하고 있다. 마지막 기생들의 이야기를 다룬, 100억원대의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 는 한효주와 천우희, 두 명의 여자 스타가 주연으로 전면에 나서 개봉 전 기대를 모았지만 50만 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흥행 참패를 맛봤다.
CGV가 지난 1월 열린 ‘2016 CGV 영화산업 미디어포럼’에서 발표한 관객 101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도 남자 스타 영화 흥행 파워 판도를 잘 보여준다. 흥행 파워를 의미하는 ‘믿고 보는 배우’를 묻는 조사에서 40.1%의 지지를 얻은 황정민이 1위를, 28.2%의 강동원이 2위를 차지했다. 다음은 송강호, 하정우, 최민식 유아인 이병헌 순이었고 10위 안에 포함된 여자 스타는 10위를 차지한 전지현이 유일했다.
전통적으로 여자 스타들의 흥행 파워가 강력하게 나타나는 드라마에서도 최근 들어 남자 스타들의 시청률 상승 주도력이 크게 상승했다. 시청률은 높지만 화제성에서 떨어지는 홈드라마를 주로 방송하는 일일드라마나 주말극의 경우, 여자 스타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지만, 화제성과 신드롬 진원지 역할을 하는 주중 드라마나 미니시리즈, 사극에선 남자 스타들의 흥행 파워가 여자 스타들을 압도하고 있다.
지난해 20%대의 시청률을 돌파하며 화제가 됐던 SBS 는 남자 주연으로 나서 연기대상까지 거머쥔 주원의 활약이 두드러졌고 올해 들어 주중 드라마로 첫 20%를 기록한 SBS 미니시리즈 역시 남자 주연을 맡은 유승호가 흥행 일등공신이었다. 시청률 40%에 육박한 는 남자 주연 송중기가 인기 견인차였다. 시청자의 좋은 평가 속에 12~17%로 월화 드라마 시청률 1위로 지난 3월 22일 막을 내린 도 유아인 김명민 등 남자 주연의 활약이 두드러졌고 대하사극 역시 정통 드라마로 11~14%의 안정적인 시청률을 기록한 데에는 타이틀롤을 맡은 송일국의 힘이 컸다.
3월 28일 시작된 KBS , MBC , SBS 등 세 방송사의 새 월화 드라마들도 각각 박신양, 강지환, 장근석 등 남자 스타를 전면에 내세워 시청자 눈길 잡기 경쟁을 펼치고 있다. 또한, 4월 20일부터 방송된 SBS 는 지성의 원맨쇼라고 할 만큼 원톱 주연 지성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4월 27일부터 시청자와 만나고 있는 KBS 드라마 역시 천정명 조재현 두 남자 주연의 활약이 눈에 띈다.
물론 주말극이나 일일극에선 여자 주연들의 활약이 여전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여성 주연의 전유물이라는 주말극과 일일극에서도 남자 주연의 흥행 파워가 발휘되기 시작했다.
예능 프로그램 역시 남자 스타 천하다. MBC , KBS , tvN , jTBC 등 근래 들어 남자 멤버들이 활약하는 리얼 버라이어티, 육아를 비롯한 관찰 예능, 쿡방과 먹방 프로그램들이 홍수를 이루면서 여자 예능 프로그램은 완전히 설 자리를 잃었다. 남자 예능 프로그램의 득세 속에 4월 8일부터 여성 예능을 표방하며 시청자와 만나는 KBS 는 시청률이 3~5%로 기대 이하 성적을 내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 MC도 남자 스타들이 독식하고 있다. KBS SBS jTBC 의 유재석, MBC SBS jTBC 의 김구라, KBS SBS jTBC 의 강호동을 비롯해 이경규 이휘재 전현무 김성주 등 남자 예능 스타들이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의 MC 자리를 독차지하고 있다. 반면 메인 MC로 나선 여자 예능 스타들은 만나기가 어렵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는 음악 예능 프로그램에도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MBC 의 김성주, 의 성시경 유세윤 백지영, KBS 의 신동엽, SBS 의 이휘재 성시경, 의 전현무 등 백지영을 제외한 방송 3사 음악 예능의 MC들이 모두 남자 스타들이다.
KBS 등 방송 3사 연예대상 수상자 판도는 남녀 예능 스타의 흥행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2002년 1회 신동엽 부터 2015년 14회 이휘재까지 KBS 연예대상에서 여자 대상 수상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MBC는 2000년 1회 박경림 이후 2015년 15회까지 여자 대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았다. SBS는 2009년 3회 연예대상에서 유재석 이효리가 공동 수상한 이후 남자 스타들이 대상을 독차지했다.
최근 들어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며 2000억원대(2015년 기준) 시장규모를 보이는 뮤지컬 분야에서도 남자 스타의 흥행 견인 트렌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3월 1일부터 6월 5일까지 공연한 은 조승우 조정석 윤도현 변요한 등이 인기를 견인했고 이중 조승우는 전석 매진 기록을 세우며 한국 최고 뮤지컬 흥행 스타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등 출연작마다 흥행 대박을 터트린 김준수를 비롯해 홍광호, 한지상, 유준상, 정성화 등 남자 스타들이 강력한 팬덤을 구축하며 뮤지컬 흥행을 이끌고 있다. 이처럼 영화와 예능, 드라마, 뮤지컬 등 대중문화에서 남자 스타들이 대중문화 흥행을 이끄는 트렌드를 구축한 것은 대중문화의 주도적 소비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영화,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뮤지컬의 강력한 수용자인 젊은 여성 관객과 시청자가 주로 남자 스타의 작품들을 왕성하게 소비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영화나 예능프로그램, 드라마, 뮤지컬에 출연한 남자 스타들을 왕성하게 소비하고 강력한 팬덤을 보이는 젊은 여성들은 문화상품을 소비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인터넷과 SNS 등을 통해 화제와 관심을 촉발하는 ‘홍보전령사’ 역할까지 해 남자 스타의 흥행 파워를 상승시키고 있다”고 분석한다.
또한, 투자자나 제작자, 방송사들이 여자 스타의 작품이나 프로그램은 외면하는 대신 경쟁적으로 남자 스타 위주의 작품을 쏟아내는 것도 대중문화의 남자 스타 흥행 독식을 부채질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중문화 평론가 정덕현씨는 “남자 스타들의 흥행 주도력이 높아지면서 남자 주연을 내세운 작품들은 장르, 내용, 소재면에서 새로운 것들이 많이 나오고 진화를 거듭해 시청자나 관객들이 선택의 폭이 많다. 이에 비해 여자 스타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들은 매우 적어 대중의 선택을 받을 기회가 별로 없을 뿐더러 작품의 스펙트럼도 좁아 대중의 외면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터넷은커녕 음식에 관한 제대로 된 책이라곤 백파(伯坡) 홍성유(洪性裕,1928~2002) 작가의 한 권뿐이었던 시절이었다. 차도 없이 정보도 없이 시작한 맛집 기행은 전국을 9번 돌면서 3500개의 맛집 자료로 만들어졌다. 기자 출신 음식평론가 황광해(黃光海·59)의 이야기다. 지난 30여 년 동안 잃어버린 옛 맛의 순수성을 찾아 전국을 직접 돌아다니며 타협 없이 자신만의 기준을 세운 그가 말하는 시니어들이 찾는 맛의 유혹과 맛의 가치.
아무것도 없었던 시절, 황광해 작가가 맛집을 찾던 방법은 직접 발로 뛰는 것이었다.
“우선 지역 신문을 뒤져서 음식점 기사가 나오면 그걸 백파의 책과 크로스 체크를 했어요. 내용이 일치한다 싶으면 가는 거였죠. 그때는 내비게이션도 없던 시절이었죠. 다리 지나서 초가집이 있고 그 앞에 전봇대 두 개가 있는데 거기서 우회전해서 초록색 지붕을 찾아서… 뭐 이런 설명을 듣고 찾아가곤 했어요.”
황 작가는 외식업 중앙회에 4년째 칼럼을 쓰고 있는 중이다. 중앙회에 등록되어 있는 사람이 총 40만 명, 음식점은 전국에 72만 개가 되는 걸로 알려져 있다. 은퇴 후 일어나고 있는 창업 붐의 한 단면이다.
“과거에는 한 번 음식점을 경영하면 몇십 년을 하니까, 살아남았다면 맛집일 가능성이 컸죠. 요즘은 옛날보다 길은 잘 찾아지지만 맛집은 찾기 더 어려워졌어요.”
가슴으로 만든 음식만 감동으로 남는다
황 작가는 채널A , MBC , KBS 등에서 보여준 깐깐한 맛 평가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의 맛집 선정 기준 역시 까다롭다.
“음식은 손으로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조리사들이 시간이 없어서 못하는 건 남의 걸 보고 벤치마킹하고 싶다고 말하죠. 벤치마킹은 다른 말로 하면 ‘난 아이디어가 없으니 남의 걸 빼오겠다는 거예요.’ 그건 음식이 머리로 생각하는 부분도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가 원하는 맛집은 손과 머리를 넘어서 가슴으로 만드는 음식이 나오는 뎁니다.”
피카소의 추상적인 그림들은 사전에 충분히 데생이 되야 그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황 작가는 처음부터 가슴으로 만든다고 하면 가짜라고 말한다.
“손과 머리로 생각해서 만들고 충분히 익혀야죠. 그 다음이 음식에 대한 헌신, 손님에게 좋은 음식을 주겠다는 정성입니다. 이걸 가슴으로 만든다고 하는 거죠.”
황 작가는 최근 대부분의 맛집은 스킬과 레시피 위주라고 비판했다. 그래서 가슴으로 만드는 부분이 작게나마 있으면 대단한 맛집이라고 보고 있었다. 가슴으로 만드는 건 누가 가르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터득해야 한다는 것이 황 작가의 지론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주방에서 불만은 레시피대로 하면 힘들고 귀찮고 짜증이 난다는 거예요. 그래서 개선을 한다는 게 대부분은 개악입니다. 좋은 음식을 만들기 위해 좋은 방법을 쓰는 게 아니라 비슷한 음식을 만들고 내 품을 줄이는 것이죠. 그래서 제가 인정하는 맛집은 만드는 과정을 보면 굉장히 힘들게, 원칙적으로 만드는 곳입니다. 그런 맛집에게 제일 많이 해주는 말이 ‘그러다 병원 간다’는 말이에요. 대부분의 주인들이 수면 부족에 파스를 붙이고 살죠. 맛집들은 그런 집들이죠.”
요즘 음식의 맛은 ‘변질된 맛’
“1970년대를 넘어서면서 조미료와 단맛이 굉장히 보편화됐습니다. 그리고 분유가 널리 퍼지면서 사람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단맛에 길들여지게 됐죠. 1980년대에는 ‘마이카 붐’이 일어나면서 삽겹살을 중심으로 한 돼지고기 문화가 보편화됐어요. 그것들을 경험하면서 자란 이들이 단맛, 감칠맛, 고기 맛에 익숙해서 그게 요즘 맛집의 기준이 됐죠. 신맛 쓴맛은 다 잊혀졌어요.”
과거 사람들은 봄철이 되면 쓴 냉이와 고들빼기를 먹곤 했다. 그 흔했던 고들빼기가 이젠 음식점에서 찾기 힘들다고 황 작가는 개탄했다. 그는 쓴맛을 즐기기 위해 때가 되면 고들빼기 김치를 찾아 식당을 헤맨다. 그런 점에서 그가 보는 시니어들은 맛의 이해 범주가 높은 이들이다.
“현재 60대는 대개 1950년대 초중반생들이에요. 이들은 가난해서 분유도 라면도 못 접했죠. 대신 이들은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되는 좋은 메주를 먹고 그 맛을 기억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그런 음식들을 찾는 건 그냥 옛 맛을 찾는 게 아니고 머릿속에 있는 거예요. 젊은 시절에는 일해야 하니 여러 가지 관심사가 많죠. 그런데 은퇴하면 그 관심사들의 대부분이 사라지고 굉장히 허전해져요. 그때 잊어버리고 있던 그 맛이 생각나고 그 맛을 찾아 몸이 움직이게 됩니다.”
해외에 나간 우리나라 사람들은 첫 번째가 고추장, 두 번째로 된장찌개를 미친 듯이 찾는다. 그걸 보면서 “그 나라를 갔으면 그 나라 음식을 먹어야지 왜 한국 음식을 찾느냐”고 훈계조로 하는 말은 무식하다고 비판했다.
“뜨거운 걸 먹어서 시원하다는 건 차갑다는 게 아니라 혈관이 뚫린다는 의미죠. 예를 들어 동남아를 가면 대부분이 습지예요. 거기서 몸이 시원하게 뚫렸으면 좋겠는데 음식에 효소, 효모가 없으니까 소화도 잘 안 되고 안 뚫려서 갑갑해져요. 몸은 뚫리지 않는데 주변에서 뭘 먹어봐도 비싸고 맛있는 거지 효모가 많은 게 아니죠.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음식을 찾게 되는 거예요.”
나이가 들수록 몸에 효모를 채워야
황 작가는 나이가 들었다는 건 제대로 된 맛에 대한 그리움을 찾고자 하는 것이라고 요약했다.
“물리적으로 나이 든 사람의 장을 해부하면 안에 효모가 없다고 해요. 노화가 된다는 건 장 속에 있었던 효모가 없어진다는 의미도 되겠죠.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효모를 채워야 합니다. 특히 한국 사람은 효모를 안 먹으면 안 돼요.”
그는 문명국가에는 세 가지 발효 음식이 있다고 밝혔다. 콩을 발효시킨 ‘두장’, 생선을 발효시킨 ‘어장’, 버터와 치즈를 발효시킨 ‘유장’이 그것이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만 한 밥상에 어장과 두장을 섞어 먹습니다. 젓갈에 김치를 담그기도 하고, 된장과 유산균, 어장이 섞인 찌개를 끓여 먹기도 해요.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그런 음식을 좋아하게 됩니다.”
그는 시니어들에게 추천하는 음식점으로 역시 장맛이 있는 집을 가장 우선순위로 꼽았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밥집을 원하게 됩니다. 그런 밥집 외에 추천할 만한 곳은 국수집입니다. 특히 안동 지방의 국수가 최고예요. 과거에는 이 지방이 아니면 국수 만들기가 어려웠기에 ‘안동국시’라는 말이 생겨났죠. 면에 콩가루가 섞여 들어간 별미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사라진 음식들, 제대로 만들어진 도토리, 메밀, 청포, 묵 등을 하는 음식점들이 있습니다. 요즘 제주도 음식점들을 많이 찾는 이유가 있는데 제주도 해산물이 괜찮아요.”
타협하지 않는 맛이 철학이 된다
평범하지만 지금은 손이 많이 가서 만들면 비싼 음식들. 지금에 와서 옛 맛을 추구한다는 건 그런 애로사항이 있다. 그러나 그런 맛에 있어서 황 작가는 타협하지 않는다.
“‘당신 입맛도 입맛이고 내 입맛도 입맛이다’라고 말하는 건 미적분을 아는 것과 더하기빼기를 아는 것을 같이 여기는 겁니다. 붕어를 입에 넣으면 뱉는 아이와 내가 어떻게 같을 수 있겠어요. 젊은 사람들이 얼마나 맛을 많이 접할 수 있었겠어요. 요즘 된장, 고추장 먹으면 달죠? 그게 왜 달아요, 매워야지.”
음식은 먹거리에서 문화가 되고, 문화를 넘어서 철학이 된다는 게 그의 이론이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음식이 자신의 몸에 미치는 영향력이 더 강해지기 때문이다.
“단순히 플레이팅 좋고 데코레이션이 좋은 음식은 60대가 되면 관심도 없어요. 음식에서 의미를 찾는 나이가 되는 거죠. 그 의미가 아젠다가 되면 철학이 됩니다. 그래서 맑은 음식, 예전에 어릴 때 먹어봤던 음식, 제대로 된 장으로 만든 음식, 이 모든 걸 아울러서 의미가 있는 음식이 중요해집니다.”
곳곳에 널린 게 맛집이다. 맛집이라니 너도나도 한 번쯤 찾아가 본다. 그런데 그 ‘맛’이라는 것을 도통 모르겠다. 맛있다 하니 그냥 맛집이구나 하기 일쑤다. 단맛과 감칠맛만 맛있다고 한다.
VVIP를 대상으로 ‘맛 투어’를 가는 황 작가는 시니어 열이면 열 손꼽히는 된장찌개 맛집을 찾아 미식의 즐거움을 누린다고 한다. 쓰고 신 장(醬)맛은 혀에 착착 감긴다. 이제 쓴맛과 신맛을 찾아 떠나보자.
“이제 배우로서의 삶과 더불어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를 만났습니다. 예쁘게 잘 살겠습니다.” 스타 배우 김하늘(38)이 3월 19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한 살 연하의 사업가와 백년가약을 맺으면서 한 말이다. “평생 존중하며 사랑하고 ‘나’를 위한 인생이 아닌 ‘우리’를 위한 인생을 위해 살겠습니다.” 가수 가희(36)도 3월 26일 세 살 연상의 사업가 양준무씨와 미국 하와이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처럼 올해 들어 여자 스타들이 속속 결혼하고 있다. 탤런트 김유미(37)는 두 살 연하 배우 정우와 1월 16일 서울의 한 교회에서 결혼했다. 걸그룹 핑클 출신 연기자 이진(36)은 2월 20일 미국 하와이에서 금융업에 종사하는 여섯 살 연상의 미국 교포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
탤런트 황정음(31)은 2월 26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세 살 연상 프로골퍼 출신의 사업가 이영돈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또한, 스타 연기자 김정은(40)은 4월 29일 금융업에 종사하는 동갑내기 재미교포와 결혼했다. 걸그룹 쥬얼리 출신 연기자 박정아(35)는 5월 15일 두 살 연하의 프로골퍼 전상우와 부부의 연을 맺을 계획이다.
연예인의 일거수일투족은 대중의 시선을 모은다. 그중에서도 여자 스타의 웨딩드레스, 결혼사진, 신혼여행지, 결혼식 장소와 형태 등 결혼과 관련된 많은 것들이 높은 관심을 끈다. 오죽했으면 ‘여자 스타 결혼식은 스타 마케팅의 종합전시장’이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여자 연예인의 배우자는 대중의 관심을 넘어 사회적인 화제가 된다. 한류가 거세지면서 우리 스타의 결혼은 외국 언론의 주요한 기사 아이템이 됐다. 대중의 관심을 받는 여자 연예인의 결혼식은 일반인의 소비와 라이프 트렌드를 이끌고 배우자관에 큰 영향을 준다.
그렇다면 그동안 여자 스타의 배우자는 어떻게 변화했을까. 연예인 역시 일반인처럼 결혼 배우자가 매우 다양하지만, 연예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위상의 변화와 함께 여자 연예인의 결혼 상대자도 크게 달라졌다.
대중문화 초창기였던 1900~1950년대에는 유교적 인식이 엄존해 연예인들의 사회적 위상이 낮았고 연예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많았다. 1900~1950년대 대중문화 초창기에는 여자 연예인과 일반인 결혼이 많았다. 또한, 백설희-황해, 전옥-강홍식, 황금심-고복수 커플처럼 상당히 많은 여자 연예인들이 동료 남자 연예인과 결혼했다.
연예인에 대한 사회적 위상은 높아졌지만, 여전히 부정적 인식이 존재하고 TV 등 매스미디어가 본격 등장한 1960~1970년대에는 여자 스타의 배우자는 이전과 다른 양상을 보였다. 스타들의 우상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이 시기에는 여자 연예인의 결혼 상대는 매우 다양해졌다. 특히, 이 시기 눈길을 끈 것은 여자 스타와 재벌 혹은 중견기업 오너와의 결혼이었다.
영화배우 문희는 1971년 당시 한국일보 부사장이었던 故 장강재 한국일보 회장과 결혼했고 영화배우 안인숙은 1975년 미도파백화점 사장이었던 대농그룹 박영일 전 회장과 백년가약을 맺었다. 또한, 펄시스터즈의 배인순은 1976년 최원석 동아그룹 전 회장과 결혼식을 올렸다. 이후 중앙산업 조규영 회장과 결혼한 스타 정윤희를 비롯해 황신혜, 고현정, 김희애, 김성령, 이요원, 최정윤, 박주미 등 여자 스타들이 재벌 혹은 중견기업 대표와 결혼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 결혼했다 이혼한 고현정은 “결혼 당시 많은 사람이 재벌과의 만남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우연히 만나 사귀게 됐고 사랑해 결혼했다. 내가 사랑한 사람이 재벌이었을 뿐이다”고 말했다.
또한, 이 시기에는 일부 여자 연예인들이 재미교포 등 외국 교포와 결혼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물론 엄앵란-신성일, 윤복희-남진, 김지미-나훈아 커플처럼 동료 연예인끼리의 결혼 역시 성행했다.
대중문화 시장이 급성장하고 대학생이나 대학 졸업자의 연예계 진출이 두드러진 1980년대에는 연예인의 위상이 크게 올라갔다. 이 시기 관심을 끈 여자 연예인의 배우자는 연예인의 특성을 이해하고 결혼 후에도 연예활동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방송사 PD, 영화감독 등 대중문화 분야 종사자였다. 원미경은 1987년 MBC 이창순 PD와, 양미경은 1988년 KBS 허성룡 PD와 결혼했다. 임예진 역시 드라마PD 최창욱과 백년가약을 맺었다. 근래 들어서도 박성미-강제규 영화감독, 문소리-장준환 영화감독, 김민-이지호 영화감독처럼 여자 연기자와 영화감독의 결혼이 이어졌다.
원미경은 “결혼 후에도 연기를 계속하고 싶었어요. 연예계가 일반 직장과 성격이 크게 달라 배우자는 연예분야를 알았으면 했어요. (남편이) 드라마 PD라 연애할 때도 결혼 후에도 저를 많이 이해해주고 격려해줘요”라고 말했다.
대중매체가 급증하고 연예산업이 산업적 기틀을 갖추어 스타가 엄청난 이윤을 창출하는 주체로 떠오른 1990년대부터는 연예인을 발굴하고 육성, 관리하는 연예 기획사가 스타 시스템의 핵심 역할을 하게 됐다. 이에 따라 연예 기획사 대표와 연예인의 결혼이 흔치 않은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1998년 가수 양수경과 예당컴퍼니 변두섭 회장과의 결혼을 시작으로 배우 신은경-김정수 커플처럼 1990년대부터는 연예기획사 대표, 연예인 매니저와 결혼하는 여자 연예인들이 많아졌다.
또한, 1980년대 최미나-허정무, 최란-이충희 커플처럼 스포츠 스타와 결혼하는 여자 연예인이 등장하기 시작해 1990년대부터는 스포츠 스타와 결혼하는 여자 연예인이 급증했다. 톱스타 최진실이 프로야구 선수 조성민과 결혼한 것을 비롯해 이혜원-안정환, 김성은-정조국, 슈-임효성, 한혜진-기성용, 유하나-이용규 등이 여자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 커플의 대표적인 사례다.
1990년대에는 여자 스타의 배우자 중 가장 많은 것이 연예인이다. 하희라는 1993년 최수종과 결혼했고, 신애라는 1995년 연기자 차인표를 배우자로 맞았다. 이후 유호정-이재룡, 채시라-김태욱, 고소영-장동건, 유진-기태영, 이효리-이상순, 원빈-이나영 커플처럼 수많은 여자 스타들이 동료 연예인과 결혼했다.
신애라는 “같은 드라마 에 출연하면서 자연스럽게 교제를 시작했다. 대중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고 사람 만나기가 쉽지 않은 연예계에서는 작품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동료 연예인과 사귀고 결혼한다”고 말했다.
1990년대 시선을 모은 스타 결혼식 중 하나가 최명길의 경우이다. 1995년 정치인 김한길과 결혼했기 때문이다. 이후 흔치 않지만, 여자 연예인과 정치인의 결혼이 간간이 이어졌다. 심은하-지상욱, 황혜영-김경록 커플이 여자 연예인과 정치인의 만남으로 관심이 쏠렸다.
연예인이 청소년들의 직업 1순위로 부상하고 대중문화 산업이 만개한 2000년대 들어서는 여자 스타들의 배우자는 전문직 종사자에서부터 사업가, 스포츠 스타, 동료 연예인, 일반 직장인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해졌다
염정아-정형외과 의사 허일, 한지혜-서울지검 검사 정혁준, 전도연-사업가 강시규, 이영애-사업가 정호영, 소유진-요식업 사업가 백종원, 차수연-연예기획사 판타지오 대표 나병준, 전지현-금융업 종사자 최준혁, 한혜진-프로축구선수 기성용, 김지우-셰프 레이먼 킴 커플에서 보듯 최근 들어서는 여자 연예인의 결혼 배우자의 스펙트럼은 사업가에서부터 전문직 종사자에 이르기까지 매우 넓어졌다.
2000년대 들어 한류가 거세지면서 외국 스타와 결혼하는 여자 스타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중국에 진출해 등 중국 드라마에 출연한 채림은 2014년 중국 배우 가오쯔치(高梓淇)와 결혼해 눈길을 끌었다. 중국에서 드라마 회당 출연료로 1억원을 받는 스타로 부상한 추자현도 최근 올해 중국 배우 위쇼우광과 결혼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추자현은 예비신랑 위쇼우광(于曉光)에 대해 “힘들고 지칠 때 힘이 되어주고 연기자로서 발전을 도와주는 동료이자 연인이다. 중국인이라는 점이 결혼을 결정할 때 장애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처럼 대중의 사랑을 받는 여자 스타들의 결혼 배우자는 시대 상황과 연예인에 대한 인식과 위상 변화에 따라 달라졌다. 또한, 과거에는 여자 스타들이 결혼과 함께 활동을 중단하거나 인기가 하락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최근 들어서는 대부분의 여자 스타들이 결혼 이후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제 결혼은 여배우의 인기의 무덤이 아니라 인기 상승 기폭제 역할까지 하고 있다.
우리 시니어에겐 조금 생소할 수도 있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제목이 ‘쇼 미 더 머니’인데 직역하면 돈을 보여 달라는 것이지만, 요즘 이 말은 우리 시니어에게는 잘 알지 못 할 수도 있는 ‘랩’ 배틀 프로그램이다.
이제 우리에겐 지상파인 KBS, MBC, SBS 방송 외에도 아직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한 채널이 있을 정도로 선택해 볼 수 있는 방송이 많아졌다. 공중파 채널을 이리저리 탐색해 보다가 이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는데 인기가 매우 커서 벌써 쇼 미 더 머니 시즌5 가 되었다. 필자는 지난번 쇼 미 더 머니 4시즌 때 처음 접해보고 정말 문화적 충격과 그 매력에 흠뻑 빠져 한 회도 거르지 않고 금요일 11시를 기다렸다가 시청하곤 했다. 많은 경쟁자 중에서 마지막까지 경연을 벌였던 시즌4의 베이식과 송민호는 유명인이 되었고 나도 그들의 팬이 되었다.
오디션이 시작되면 수많은 젊은이가 모여 심사를 받는데 이번 쇼 미 더 머니 시즌5에는 1차에 8.000명가량이 와서 80여 명 정도 통과했다. 1차 진행방식으로는 프로듀서라고 불리는 기존 힙합음악인들이 오디션에 온 참가자의 랩을 잠시 듣고 합격 불합격을 매긴다. 그때부터 치열한 경쟁이 시작된다. 짧은 시간 안에 프로듀서의 눈에 들어야 합격 목걸이를 얻을 수 있으니 그들의 사활을 건 오디션 모습이 젊은이들의 지친 단상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도 힘들었다. 랩이란 내게 생소한 분야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꾸 듣다 보니 힙합 랩만이 보여주는 매력이 있었다. 16마디가 주를 이루며 가락에 맞추어 말하듯 내뱉는데 주로 시사풍자나 사회고발이야기가 많다. 게다가 욕설도 간간이 섞으니 어른들이 보면 상스럽다거나 이상해서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아들에게 쇼 미 더 머니 라는 프로그램이 참 재미있더라고 했더니 우리 엄마가 좀 이상하다는 듯 “그 막 욕하는 거?”하며 놀란다. 그만큼 어른들에겐 받아들이기 힘든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방송 중에는 욕설하는 부분은 삐~하며 묵음으로 처리하고 입에는 모자이크되어 직접 들리진 않으니 큰 거부감은 없다. 그래도 많은 시니어께서는 저게 뭐냐며 싫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경쟁해서 이긴 마지막 일등의 참가자는 억대의 상금과 고급승용차도 받고 명성도 얻게 되니 많은 젊은이가 꿈을 이루려고 구름처럼 몰려든다.
필자는 음악이라면 장르 불문하고 다 좋아했다. 젊었을 때는 무슨 치기였는지 팝송이나 샹송 칸초네를 좋아해서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채 한국발음으로 가사를 써서 외우고 다녔고 가요, 특히 뽕짝이라고 불리던 노래는 듣지 않았다. TV를 보다가도 뽕짝 가수가 나오면 채널을 돌렸다. 그런 노래는 들으면 창피한 것으로 인식했다. 그중 남진 나훈아 씨도 있었다. 옛말 그른 것 없다더니 나이가 들면서 가요가 좋아지고 남진 나훈아 씨가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한때 경멸했던 그들의 오빠 부대 여자들을 이해하게도 되었다. 그렇게 장르 불문 좋아했던 음악에 힙합 랩이라는 생소한 음악이 더해졌다.
이들이 겨루는 배틀 장소도 영화에서나 보았음 직한 격투기장을 연상시켜 흥미롭다. 그 무대에서 벌어지는 배틀을 보며 많은 젊은이가 환호하고 즐기는데 보는 동안은 나도 젊은 그들과 똑같이 즐겁고 신난다.
경연자 중 어느 팀이 우승할 것인지 무척 기대되며 다음 주를 기다린다. 이번 시즌5에서는 또 어떤 새로운 히어로가 탄생할지 자못 궁금하다.
우리 시니어들도 그저 생소한 분야라 외면하거나 욕설이 있는 저속한 청년문화라 치부해 버리지 말고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면서 관심을 가져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젊은이들과의 생각 차이를 줄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고 새로운 문화를 알게 되는 것도 즐거운 배움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