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건, 현빈, 장근석, 송승헌, 이영애, 송혜교, 고현정, 전지현, 손예진, 이병헌 등은 드라마 회당 출연료로 5000만~2억 원을 받는 스타들이다. 김태희, 수지, 유재석, 이승기 등은 광고 한 편 출연하는 데 모델료로 10억 원 안팎을 받는 톱스타들이다. 김수현, 이민호는 중국 CF 한 편 출연료로 20억 원 정도를 받는 한류스타다. 송강호, 하정우 등은 영화 한 편 출연료로 6억~7억 원을 받는 스크린 스타다. 엑소는 지난해 10월 11일 서울 고척돔 하루 공연으로 티켓 수입 등 22억 원의 매출을 기록한 스타 아이돌그룹이다.
이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몸값을 자랑하는 스타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스타화의 경로나 연예인으로 발탁되는 유형이 모두 다르다. 이병헌은 KBS 탤런트 공채를 통해 발굴된 스타이고 이영애는 연예기획사 백기획에 의해 발탁돼 스타가 됐다. 고현정은 미스코리아 대회 출전이 계기가 돼 방송사 연기자가 되면서 스타가 됐고 전지현은 정훈탁 싸이더스 대표가 잡지에 실린 사진을 보고 발굴해 스타로 부상했다. 이처럼 이들은 연예인 지망생에서 스타로 부상하기까지 과정은 각각 다르다. 이들이 스타가 되는 과정에 개입한 스타 시스템도 차이가 있다.
이병헌은 “나는 KBS 탤런트 공채가 없었으면 연예인이 될 수 없었을 것”이라며 “KBS 공채로 연기를 처음 시작했고 이름이 알려져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게 됐다”고 말했고, 이영애를 발굴해 스타로 키운 백기획의 백남수 대표는 “잡지에 실린 이영애의 모습을 보자마자 스타 재목감임을 직감하고 영입했다. 연기 훈련부터 드라마 데뷔까지, 그리고 스타가 된 뒤로도 기획사가 관리했다”고 밝혔다.
이제 재능과 끼, 외모, 노력, 그리고 운이라는 변수에 의존해 우연히 스타가 되는 시대는 지났다. 정교하게 체계화한 체제로 움직이는 스타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으면 스타는 탄생할 수 없는, 스타는 만들어지는 시대다. 수많은 스타 뒤에는 엄청난 투자와 장기간의 교육, 치밀한 데뷔 전략, 주도면밀한 이미지 조형, 막대한 홍보 마케팅이 자리한다.
스타 시스템은 스타와 시스템의 합성어로 신인이나 연예인 지망생 중 일부를 발탁해 연기자나 가수로 키워 스타로 부상시키는 시스템이다. 즉 스타의 생산, 거래, 활용, 관리, 소비의 전체적인 순환 메커니즘을 주관하는 체계를 스타 시스템이라고 한다. 저자 김호석 박사는 “스타 시스템은 신인이나 연예인 지망생을 최단 시간에 최대한 인기를 얻는 스타로 부상시켜 가장 높은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체계”라고 설명한다.
문화산업 시장의 규모, 대중매체의 판도, 팬 층의 규모와 구성 분포 등에 따라 스타 시스템의 구조와 주체가 변해왔다.
KBS, MBC 등 방송사가 연기자와 개그맨 등 연예인을 선발해 전속제를 실시하던 1960~1980년대까지는 방송사가 연기자를 발굴, 유통, 관리하며 스타 시스템의 주도적 역할을 했다. 당시 스타의 신변이나 스케줄 관리 등 부차적 업무를 수행했던 연예기획사와 매니저는 1990년대 방송사 연기자 공채가 사라지면서 신인을 발굴해 스타로 부상시키고 스타의 이윤창출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스타 시스템의 핵심적인 주체로 자리 잡았다.
특히 1995년 가수 출신인 이수만 대표가 설립한 SM엔터테인먼트가 CAA(Creative Artist Agency) 등 미국 유명 스타 에이전시와 쟈니스(ジャニ-ズ )프로덕션을 비롯한 일본 프로덕션 등 스타를 양성하고 매니지먼트를 하는 선진 스타 시스템을 일부 도입하면서 연예기획사 주도의 스타 시스템이 안착하게 됐다.
이수만 SM 대표는 “미국에 유학하면서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살펴볼 기회가 있었고 스타를 키우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절감했다”며 “한국에 돌아와서 체계화하고 전문화된 스타 시스템을 도입해 만든 것이 바로 SM엔터테인먼트”라고 SM 설립 배경을 말했다.
SM 설립 이후 DSP미디어, JYP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 등 가수와 아이돌그룹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연예기획사가 속속 등장했다. 한편으로 영화배우, 탤런트 등 연기자를 전문적으로 키우는 싸이더스, 에이스타스 등 연기자 전문 연예기획사도 지속해서 생겨났다.
2000년대 들어 한 연예인이 연기, 음악, 예능 등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활동하는 것이 일반화하면서 스타 시스템의 중추적 역할을 하던 연예기획사들도 가수와 연기자, 예능인 등 다양한 연예인을 양성하는 종합 연예기획사로 변모했다. 연예기획사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드라마, 영화, 음반 등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업까지 영역을 확장하면서 명실상부한 스타 시스템의 핵심으로 완전하게 자리를 잡았다.
SM, YG, FNC, JYP, 싸이더스, 키이스트, 나무엑터스, 웰메이드 예당, DSP미디어, BH엔터테인먼트, 스타하우스엔터테인먼트 등 중대형 연예기획사들이 한국 대중문화 판도를 주도하는 스타 시스템의 주역들이다.
나무엑터스 김종도 대표는 “과거에는 영화사나 방송사가 신인을 발굴해 스타를 만드는 역할을 했지만, 최근에는 연예기획사를 거치지 않고서는 스타가 될 수 없을 정도로 연예기획사가 전문적인 스타 양성기관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며 “우리 대중문화계에서 톱스타로 활동하는 전지현, 김태희, 비, 이민호, 김수현, 수지, 엑소, 빅뱅, 소녀시대 등이 모두 연예기획사에서 만들어진 스타들인 것만 봐도 연예기획사의 위력을 단적으로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연예기획사들이 연예인 지망생을 발굴해 스타로 만드는 스타화 경로 역시 근래 들어 전문화하고 체계적으로 변모했다. 오디션, 길거리 캐스팅, 미인대회, 오디션 프로그램, 인터넷 등 매스미디어를 통해 연예인 지망생을 연습생으로 뽑은 뒤 2~6년 동안 연기, 댄스, 노래, 예능 개인기 등을 교육한다. 연습생 생활을 마친 뒤 TV, 광고, 영화, 콘서트, 뮤지컬 등을 통해 신인으로 데뷔시켜 연예인으로 대중에게 존재감을 알리고 인기를 얻는 사람을 스타로 키운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비용과 노력, 시간이 투여된다. 연습생 생활을 마치고 방송무대를 통한 데뷔까지 비용은 엄청나다. 지난해 10월 보고서 ‘스타가 되기까지’를 발표한 흥국증권 최용재 연구원은 “5인 멤버의 아이돌 그룹을 데뷔시키는 데 약 10억 원의 비용이 소요된다. 5인이 2~3년간의 연습생 생활을 보내는 데 5억 원 정도 들어가고, 사전 마케팅부터 KBS, MBC 등 지상파 3사 음악방송 활동까지 6주간의 데뷔 활동 기간에 소요되는 비용이 5억 원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연예기획사들은 신인을 스타로 키우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스타들의 위기 관리도 담당한다. 대중의 비난을 불러왔던 스캔들로 추락할 위기에 몰렸던 이병헌 등 수많은 스타가 연예기획사의 뛰어난 관리로 스타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최근 들어서는 연예기획사 주도의 스타 시스템이 중국, 태국, 대만, 인도네시아 등에 수출되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수많은 외국인이 한국 연예기획사를 통해 연예인으로 데뷔하기 위해 한국을 찾고 있다. 2PM의 닉쿤, 미쓰에이의 지아·페이, 에프엑스의 빅토리아, 엠버, 트와이스의 쯔위 등이 연예기획사 중심의 스타 시스템을 통해 교육받고 국내 연예계에서 활동하는 외국인들이다. 최고 인기 아이돌그룹 엑소 멤버로 활동하다 탈퇴를 선언하고 중국에서 활동하는 크리스, 루한, 타오도 SM엔터테이먼트에서 육성됐다.
JYP엔터테인먼트 정욱 대표는 “스타를 육성하는 체계화된 한국 스타 시스템은 세계 제일이라고 생각한다. 미국도 이 정도는 아니다. 연예기획사 주도의 스타 시스템은 외국으로까지 수출되고 있는 한류 상품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물론 국내외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는 한국 스타 시스템에도 문제는 적지 않다. ‘노예계약’으로 명명되는 연예기획사와 소속 연예인의 불공정한 계약 관행, 소속 연예인의 사생활과 인권침해, 미성년자 연예인의 학습권 미보장, 소속 연예인과 연습생에 대한 성폭행 등 일부 소속사 관계자의 범죄 등이 연예기획사 주도의 스타 시스템이 명실상부한 선진 스타 시스템으로 도약하기 위해 선결돼야 할 과제들이다.
올해는 원숭이해인 병신년(丙申年)이다. 영리한 동물의 상징인 원숭이의 해를 맞아 포부와 각오가 남다른 스타들이 있다.
“드라마뿐만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도 하니 젊은 친구들이 좋아해 기분이 좋아요. 드라마든 예능 프로그램이든 행복하게 작업을 할 생각입니다. 나이 들수록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백일섭), “올해는 더 열심히 활동해야지요. 후배나 선배 연기자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유동근), “늘 그런 것처럼 영화나 연극을 즐겁게 작업하려고 합니다. 관객의 과분한 사랑에 정말 감사해요.”(오달수), “올해는 영화를 열심히 하고 싶어요. 지난해 드라마 로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대중의 사랑에 보답하는 길은 정말 진정성 있는 연기를 보여주는 것밖에 없는 것 같아요. 올해도 진정성 있는 연기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김태희), “수많은 팬의 사랑이 있어 정말 행복해요. 올해도 팬들의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좋은 노래와 함께 행복 바이러스를 전해주고 싶어요.”(하니)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원숭이띠 스타라는 점이다. 백일섭(72), 유동근(60), 오달수(48), 김태희(36), 하니(24)는 태어난 해는 다르지만, 원숭이띠 연예인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해를 맞아 더 열심히 활동하겠다는 남다른 각오를 밝혔다.
72세의 나이에도 여전한 현역으로 활동하는 1944년생 스타로는 늘 연극무대를 통해 관객과 소통하는 손숙을 비롯해 원로 스크린 스타 윤정희, 연극과 드라마를 오가며 맹활약하는 윤소정, 영원한 청춘스타 이정길, 구수한 연기를 선보이는 백일섭, 선 굵은 남성적 연기로 눈길을 끄는 임동진, 코믹한 연기로 늘 웃음을 주는 남포동 등이 있다.
72세의 물리적 나이도 이들의 연기 열정을 막지 못한다. 1970년에 만들어진 극단 산울림의 창단 멤버인 손숙은 지난해 임영웅 연출의 1인극 를 통해 관객들과 만나는 등 꾸준하게 연극무대에 서고 있다. tvN 를 통해 예능 프로그램까지 활동영역을 넓힌 백일섭은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1963년 연극 으로 데뷔한 이정길은 등 수많은 멜로 드라마에서 주연을 독식한 청춘스타로, 특히 여성 시청자에게 사랑을 받았다. 이정길은 요즘 방송되는 MBC 주말극 등 드라마에서 맹활약 중이다. 이정길은 “나이가 들면서 연기의 참맛을 알게 되고 연기자로서 책임감도 느낀다. 연기자는 작품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기에 올해는 많은 드라마에 출연하겠다”고 새해 각오를 밝혔다.
올해 환갑인 신중년 연예인의 활동도 왕성하다. 유동근, 혜은이, 이경진, 유지인, 김지숙, 김영란, 이주호 등이 1956년생 원숭이띠 연예인들이다. 유동근은 묵직하면서도 감동을 주는 연기로 2014년 KBS 연기대상 트로피를 거머쥐었을 뿐만 아니라 영화와 드라마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당신은 모르실 거야 ’ ‘제3 한강교’ ‘감수광’ 등 1980년대 수많은 히트곡을 불렀던 혜은이는 여전히 전국을 누비며 노래로 대중과 만나고 있다. 1970~1990년대 멜로 드라마의 여자 주연 자리를 독식하며 수많은 남성 시청자의 이상형으로 꼽혔던 이경진은 KBS 일일극 등을 통해 시청자와 만나고 있다. 여전히 드라마에서 주·조연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민가요로 자리 잡은 ‘사랑으로’부터 ‘내 마음의 보석상자’ ‘어서 말을 해’ 까지 1980년대 주옥같은 노래를 작사, 작곡한 싱어송라이터 이주호는 방송과 콘서트 무대에서 신중년 관객들에게 음악을 통해 추억을 선물하고 있다. 장미희, 정윤희와 함께 1970~1980년대 트로이카 영화배우로 명성을 날렸던 유지인 역시 토크쇼 프로그램과 드라마를 통해 시청자와 소통하고 있다.
이경진은 “과거 같으면 60세는 연예인 은퇴 나이다. 하지만 100세 시대인 요즘은 한창 활동할 나이다. 여전히 멜로 주인공을 맡고 싶다. 올해는 기회가 된다면 중년의 사랑을 다룬 멜로 드라마에서 열정적인 사랑을 하는 주인공 역할을 연기하고 싶다”고 새해의 바람을 피력했다
영화, 방송, 음악 등 대중문화 각 분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면서도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는 스타들이 바로 48세 원숭이띠 연예인들이다. 김윤석, 신승훈, 김승진, 오달수, 채시라, 이승연, 최수지, 김건모, 정찬우, 박신양, 이성민, 박상면, 성지루 등이 바로 1968년생 원숭이띠 스타들이다.
충무로에서 가장 흥행 파워가 센 스타는 오달수다. 오달수는 2015년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에 비중 있는 조연으로 출연한 것을 비롯해 1000만 영화 7편에 출연하는 전인미답의 흥행기록을 세웠다. 2002년 로 영화에 데뷔한 이후 2015년까지 오달수의 출연 영화 관객은 1억500만 명에 육박한다.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독보적인 관객 기록 1위다. 영화 편당 가장 최고액의 출연료를 받는 스타도 원숭이띠 영화배우다. 바로 김윤석이다. 김윤석은 등 흥행에 성공한 영화에서 주연을 맡아 개성 강한 연기를 선보였다. 김윤석은 송강호 등과 함께 영화 편당 6억~7억 원의 출연료를 받는 영화 최고 스타로 군림하고 있다.
가요계의 40대 톱스타 신승훈과 김건모 역시 대표적인 원숭이띠 스타다. 발라드 황제 신승훈은 2006년 10집 를 발표한 이후 9년 만에 지난해 정규앨범 11집을 발표하는 등 최근 들어 왕성한 활동을 펼친다.
신승훈은 1990년 1집 데뷔 앨범 판매량이 158만 장을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5집 이 247만 장 팔리는 등 7장 연속 밀리언셀러를 기록할 정도로 강력한 팬덤과 문화상품 소비창출력을 갖고 있는 스타다.
독특한 음색과 풍부한 성량, 모든 음악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빼어난 가창력으로 스타덤에 오른 가수 김건모 역시 1992년 1집 앨범 를 발표한 이후 2011년 13집 앨범 까지 13장의 정규앨범을 냈고, 1995년 발표한 3집 판매량은 280만 장에 달했다. 김건모는 지난해 에 출연해 1990년대 복고바람을 일으키는 등 20~30대 가수들보다 더 왕성하게 무대와 방송 활동을 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기막힌 연기 변신으로 찬사를 받았던 드라마 의 주연 채시라, 개그 공연의 미다스로 평가받는 정찬우, 감초 연기의 대가 박상면, 성지루 등이 대중문화계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활동하는 48세 원숭이띠 스타들이다.
채시라는 “지난 1984년 CF로 데뷔했으니 병신년인 올해로 33년째 연기자로 일하고 있다. 언제 이렇게 세월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작품을 할 때마다 어렵지만, 보람은 크다. 올해도 좋은 작품으로 시청자들을 만나고 싶다”고 새해 각오를 드러냈다.
1980년생 36세 스타들의 면면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대한민국 최고 미인이라고 찬사를 받는 김태희부터 김소연, 이정현, 김준현, 조승우, 공효진, 장윤정, 조정석, 이동건, 이요원, 류승범, 박시은, 손태영, 손호영, 신봉선, 이진, 옥주현, 유상무, 유세윤, 윤민수, 전진, 장윤주에 이르기까지 영화, 드라마, 예능, 뮤지컬, 모델 등 대중문화 각 분야에서 스타로 군림하는 연예인들이 36세 원숭이띠다. CF와 드라마에서 최고의 스타로 대접받는 김태희, 영화와 드라마에서 빼어난 연기력으로 찬사를 받는 공효진, 뮤지컬에서 최고의 흥행파워를 자랑하는 조승우와 옥주현, 예능계를 주름잡고 있는 김준현, 유세윤, 신봉선, 트로트의 신세대 여제 장윤정 등이 원숭이띠로 올해 활약이 기대되는 연예인들이다.
2015년 영화 로 36회 청룡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이정현은 “올해가 원숭이해인 만큼 더 노력해 대중에게 더 인정받는 가수로, 연기자로 한 단계 도약하고 싶다. 관심 있게 지켜봐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1992년 원숭이띠 연예인으로는 드라마 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고아성, 인기 걸그룹 걸스데이의 유라, EXID의 하니, 원더걸스 멤버로 활동하다 연기자로 전업한 소희 등이 있다.
2015년 을미년(乙未年)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올해에도 적지 않은 대중문화 스타들이 대중의 곁을 영원히 떠났다. 특히 신중년들의 젊은 시절을 수놓았고 수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던 중견 스타들이 활동 무대를 하늘나라로 옮겼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의 김광한입니다!”매력적인 저음으로 팝음악 프로그램의 오프닝 멘트를 한 뒤 다양한 팝 음악과 정보를 제공해 1980~1990년대 많은 청취자의 사랑을 받았던 스타 DJ 김광한이 지난 7월 9일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향년 69세. 1980~1990년대 중고생 시절을 보내고 청춘을 꽃피웠던 40~60대 신중년들은 자신들의 가슴을 적신 스타 DJ 김광한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죽는 순간까지 DJ로 살았던 김광한은 1966년 20세의 어린 나이에 라디오 DJ로 데뷔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1979년 박원웅이 진행한 MBC 라디오 에 게스트로 나서며 주목을 받기 시작한 그는 1980년 TBC 라디오 의 DJ로 전격 발탁돼 본격적인 DJ 활동을 펼쳤다.
그는 1982년부터 1994년까지 KBS 2FM 을 12년간 진행하며 명쾌하고 풍부한 해설과 다양한 정보와 함께 팝 음악을 전달해 많은 팬을 확보했다. 2013년 5월부터 2014년 5월까지 CBS 표준FM 를 진행하며 DJ로서 활동을 이어갔다. KBS 라디오 을 이끈 김광한은 MBC 라디오 로 유명한 김기덕과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며 1980~1990년대 팝 음악 팬들을 양분했다.
김기덕은 “김광한씨는 라디오 DJ의 신화이자 전설이다. 다양한 자료와 정보를 수집해 청취자들에게 심도 있는 팝 음악 해설을 해줘 청취자들의 음악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고 평가했다.
생전에 몇 차례 가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김광한은 “방송에서 팝 음악 프로그램이 많이 사라져 아쉽다. 대중음악의 발전은 다양한 음악을 수용해야 발전하는데 너무 획일적으로 가요 위주의 음악 프로그램이 집중적으로 편성된다”는 말을 자주 했다.
의 영원한 김 형사, 김상순도 우리 곁을 떠났다. 김상순은 지난 8월 25일 폐암으로 78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며 52년간의 연기자 생활을 마감했다.
김상순은 지난 1963년 KBS 공채 탤런트 3기로 본격적인 연기자 생활에 접어들었고 1971년 시작해 1989년 끝난 드라마 에 최불암, 조경환 등과 함께 형사로 출연해 시청자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또한, 농촌 드라마 (1990)를 비롯해 (1992), (1995), (2001), (2003), (2004), (2005), (2007) 등 수많은 드라마에 출연하며 개성적이고 선 굵은 연기를 선보여 시청자들에게 높은 인기를 끌었다.
에서 연기를 함께했던 최불암은 “김상순씨는 동료 연기자들을 편하게 해줬다. 수더분하고 권위를 내세우지 않았다. 연기와 생활이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사실적인 연기에 뛰어났다. 시절, ‘김상순은 현장에 지나가는 강아지들까지 다 알아보고, 챙겨주는 꼼꼼한 사람’이라는 말까지 나돌 정도로 세심한 편이었다. 밥 한번 먹자고 했는데 결국 못하고 세상을 떠나 너무 안타깝다”라고 애도했다.
김상순이 주연을 맡은 를 통해 연기자로 데뷔한 고현정은 “제가 연기를 시작한 에서 김상순 선생님이 제 아버지 역으로 출연했는데 자상하게 연기를 알려줘 매우 고마웠다”라고 회고했다.
, 등 드라마 촬영장에서, 그리고 사석에서 몇 번 만났던 김상순은 “배 기자, 연륜 있고 연기력이 뛰어난 장·노년 연기자에 대한 기사를 많이 써줘요. 드라마와 영화가 대중의 사랑을 받기까지 장·노년 연기자들의 헌신과 노력이 큰 역할을 했어요”라고 당부하곤 했다.
에 출연했던 중견 연기자 또 한 사람이 교통사고로 숨졌다. 김화란이다. 2년 전부터 전남 신안군 자은도에서 귀촌 생활을 하던 김화란은 지난 9월 18일 남편과 함께 차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가 발생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을 거뒀다. 향년 53세.
김화란은 1980년 MBC 공채 탤런트 12기로 데뷔한 뒤 에 여순경으로 출연해 인기를 끌었다. 전성기 때는 동시에 드라마 4개에 출연할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했다. 2009년 영화 에 출연했다. 2년 전부터 전남 신안군 자은도에서 귀촌 생활을 하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었다. 지난 5월 방송된 MBC 휴먼다큐 에 출연해 행복한 귀촌 생활을 보여줬다. 남편 박상원씨가 거액의 사기를 당하고 위암까지 걸리자 김화란은 35년간의 연기자 생활을 접고 귀촌 생활을 시작했다. 김화란은 “제가 남편에게 그랬어요. 인생 공부 참 비싸게 했다고 생각하자. 다시 일어서면 되니까 건강하게만 살자. 그러고 여기 왔는데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즐거운 거예요. 신랑한테 ‘우리 2년만 빨리 내려올 걸 그랬어요’라고 했어요. 정말 왜 이런 생활을 몰랐을까 생각했죠”라고 말을 할 정도로 귀촌 생활에 만족했다. 그러던 김화란이 뜻하지 않은 사고로 숨을 거두자 그를 아끼던 팬들은 더욱 안타까워했다.
중견 배우 진도희 역시 올해 숨을 거둔 대중 스타 중 한 사람이다. 진도희는 지난 6월 26일 췌장암으로 66세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등의 작품에 출연한 에로배우 진도희(본명 김은경)와 예명이 같아 오해를 많이 산 중견 배우 진도희(본명 김태야)는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드라마와 영화에서 활약한 배우다. 1949년 부산에서 태어난 진도희는 동국대 재학시절 연극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1971년 MBC 공채 4기로 박영지 등과 함께 TV 드라마에 모습을 드러냈다. 진도희의 1년 후배 MBC 공채 5기 탤런트로는 고두심, 이계인, 박정수 등이 있다.
진도희는 TV를 떠나 1972년 영화 에 주연으로 캐스팅되면서 대중에게 영화배우로서 존재를 알린 뒤 이후 (1972), (1972), (1972), (1973), (1973), (1973), (1974) 등의 주연을 맡으며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이 당시 진도희와 함께 활약했던 여자 배우로는 나오미, 우연정, 최정민, 윤세희, 윤미라, 박지영, 오유경 등이 있었다. 특히 진도희는 1970년대 미남 스타인 신성일, 신영일, 신일룡 등과 연기 호흡을 맞춰 눈길을 끌었다. 서구적인 외모와 육체파 여배우로 남자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결혼과 함께 연기를 그만둔 진도희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사업을 하는 사업가로 변신했다.
10월 29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2015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에서는 은관 문화훈장을 받는 원로 코미디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부인 이영숙씨가 시상대에 올라 “감사하다. 지금은 고인이 된 남편을 대신해 감사 인사를 전한다. 남편이 훈장 수상 소식을 저승에서도 반가워할 것이다”며 눈물을 흘렸다. 바로 지난 8월 31일 84세를 일기로 숨을 거둔 원로 코미디언 남성남(본명 이백천)이다. 남성남은 악극무대에서 활동하다 1960년대 후반부터 TV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맹활약했다. 특히 MBC 에서 남철과 콤비를 이뤄 콤비 코미디언 시대를 활짝 열었다. 두 사람이 춤 동작 하나하나를 똑같이 하며 추는 ‘왔다 갔다’춤은 어린이들에게까지 유행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부조화 속에서 기막힌 웃음을 엮어내는 이기동과 권귀옥 콤비, 속사포 만담 달인 장소팔-고춘자 콤비와 차별화해 남성남-남철 콤비는 싱크로율이 높은 행동과 퍼포먼스로 큰 웃음을 줬다. 아픈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코미디언 행사와 무대에 올라 수많은 사람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수십 년 동안 라디오 프로그램과 드라마, 영화, 코미디 프로그램 등을 통해 대중에게 웃음과 감동을 선사한 김광한, 김상순, 김화란, 진도희, 남성남이 2015년 이 세상을 떠났다. 하늘나라에서 지상에서 못다 한 연기와 활동을 원 없이 펼치기를 기원해본다. 다시 한 번 명복을 빈다.
기부나 봉사활동을 하는 연예인의 모습을 달갑지 않게 보는 이들이 있다.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하는 행동이라는 게 그 이유다. 그러나 아무리 이미지를 좋게 하려는 목적이라 해도 수억 원의 금액을 기부하고, 장기를 기증하고, 머나먼 아프리카에 봉사활동을 가는 것은 일반인에게도 쉽지 않은 선택이다. 최근에는 팬클럽 회원들과 봉사활동을 하거나, 목소리 재능기부, 온라인 도네이션을 통해 네티즌과 함께 기부금액을 모으는 등 대중과 함께하는 형태의 선행도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처음에는 재단이나 기관의 홍보대사, 친선대사 등으로 나눔을 시작했지만 세월이 지나 더욱 성숙한 자세로 선행을 이어오고 있는 연예인들의 모습도 보인다. 1980년대부터 유니세프에서 봉사활동을 해온 배우 안성기(63), 1986년부터 초록우산 어린이 재단과 인연을 맺고 있는 개그맨 이홍렬(61), 그리고 1991년 월드비전 친선대사로 임명된 후 전 세계 아이들을 돕고 있는 배우 김혜자(74) 등. 그들은 이미지 차원을 넘어서 삶의 철학이 담긴 진중한 나눔 활동으로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대중에게 받은 사랑을 어려운 이웃과 사회에 보답하며 훈훈한 에너지를 선순환하고 있는 스타들을 살펴봤다.
이문세X프렌즈 아트 컬래버레이션
가수 이문세(56)는 젊은 일러스트레이터, 캘리그래퍼들과 함께 ‘이문세X프렌즈 아트 컬래버레이션’ 재능기부 프로젝트에 참여해 크리스마스카드를 직접 제작했다. 수익금은 위안부 할머니 후원시설인 ‘나눔의 집’으로 전달돼 할머니들의 생활, 복지, 증언 활동을 위해 사용될 예정이다. 카드는 10월 30일 ‘네이버 해피빈’과 ‘2015 씨어터 이문세’ 수원 공연장에서 시작해, 강남 교보타워 내 하임, 서울역 디트랙스 등에서 판매하고 있다. 네이버 해피빈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300만 원을 목표로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11월 11일 기준) 685만여 원을 넘기며 목표액의 2배가 넘는 수익을 냈다.
이문세는 2009년 MBC FM 라디오 의 청취자 461명의 사연을 담아 만든 노래 ‘이 겨울 날 지나간다’의 저작권 기부를 통해 나눔을 실천하기도 했다. 크리스마스캐럴 느낌이 나는 발라드 곡으로, 청취자의 참여로 만들어진 곡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저작권법에 따라 이문세 사후 50년까지 노래에 대한 저작권과 음원수익금은 서울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갖게 되며, 모두 불우한 이웃을 위해 쓰일 예정이다.
‘해밀학교’의 이사장 인순이
‘거위의 꿈’이라는 노래로 많은 이에게 꿈과 희망을 선사한 가수 인순이(59).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 사회복지공동모금회 1억 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의 명단에도 이름을 올린 인순이는 각종 봉사활동은 물론 대학생 오케스트라 팀과 재능기부 형태의 ‘지하철 게릴라 콘서트’를 하는 등 다양한 자선 공연도 꾸준히 하고 있다. 대중에게 받은 사랑에 보답하고자 선행을 한다는 그녀는 오랜 고민 끝에 2013년 4월 강원도 홍천의 작은 마을 명동리에 다문화 대안학교 ‘해밀학교’를 설립했다. 2011년부터 3년여간의 준비과정을 통해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위한 배움터를 완성했다. 내년부터는 그동안 시행해온 수업료 면제에 이어 입학금, 급식비, 기숙사비까지 학교에서 부담하는 무상교육을 실시한다. 해밀학교의 이사장 인순이는 “학교를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고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찾아 할 수 있는 꿈의 터전을 만들고 싶다. 내가 대한민국에서 겪었던 어려움, 외로움, 고통뿐만 아니라 사랑, 격려, 위로를 나와 같은 다문화 아이들이 알아갔으면 좋겠다”며 많은 아이들이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힘쓸 것이라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재능기부, 해외봉사, 장기기증까지… 국민엄마 고두심의 선행 릴레이
1983년부터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후원자로 나선 고두심(64)은 2006년 이후부터는 재단 내의 스타서포터즈에서 나눔대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배우 채시라와 함께 재단이 진행한 ‘어른이날(성년의 날)’ 캠페인 CF에 목소리 재능기부에 참여했다. 그녀는 “어린이를 돕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옵션이 아닌 필수”라며 “어른들이 나라의 미래인 어린이들의 든든한 지원자가 되자”고 말한 바 있다.
자신의 모교인 제주여자고등학교에 2억 원의 장학금을 기부하고, 2008년 에티오피아 우간다에 봉사활동을 다녀오는 등 다양한 선행을 펼쳐온 그녀는 1999년 장기기증 캠페인에 참여하며 장기기증 서약을 하기도 했다. 고두심은 한 인터뷰를 통해 “장기기증 서약 이후 건강을 더 생각하며 좋은 마음을 갖고 좋은 생각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며 “나이가 드니까 세월이 인생을 가르쳐 주더라. 어차피 흙으로 돌아가 썩을 육신인데 다른 사람에게 주고 가면 얼마나 좋겠는가. 주위 동료 연예인들에게 기증하라고 자주 권하는데 아직은 무서워서 못하겠다는 사람이 많다”며 장기기증 문화를 알리고 동참하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한다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1호 공익신탁자 유동근
올해 7월 배우 유동근(59)은 이철희 분당서울대병원장, 김현웅 법무부 장관, 한비야 국제구호전문가와 함께 국내 첫 공익신탁자가 됐다. 공익신탁은 기부자가 은행이나 단체에 재산을 맡기고 이를 운용해 나온 수익금을 장학, 구호 등 자신이 지정한 공익사업에 사용하도록 하는 제도다. 법무부와 외부 감시인 감독 아래 기부자가 원하는 곳에 정확하게 쓰이고, 적은 금액이라도 사용처가 투명하게 공개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간단한 절차로 ‘나만의 재단’을 만드는 셈이다(법무부 상사법무과에 문의 후 참여).
유동근은 광복 70주년을 맞아 독립유공자 후손의 생계 및 교육 지원을 위해 ‘나라사랑 공익신탁’을 만들었다. (이철희 원장은 ‘난치성 질환 어린이 치료를 위한 공익신탁’, 김현웅 장관은 아동학대 피해자를 지원하는 ‘파랑새 공익신탁’, 한비야씨는 인류애를 키우는 사업에 쓰일 ‘세계시민학교 공익신탁’에 참여) 그는 2008년 숭례문 화재 당시 복원 성금으로 1억 원을 기부한 바 있다.
연예계 선행 바이러스 정애리의 ‘하래의 집’
연예계 기부천사 정애리(55)는 아프리카 구호활동, 몽골 기아체험, 동남아 쓰나미 피해 지역 방문, 도시락 캠페인, 생명의 전화, 연탄은행 홍보대사, 월드비전 친선대사 활동 등 다양하고 끊임없는 선행을 펼치고 있다.
그녀는 2004년부터 SBS 사회공헌 프로젝트 프로그램 에 참여하며 매년 후배 연기자들과 아프리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2009년에 함께 아프리카에 다녀온 배우 장서희는 “연탄 나르기 봉사활동을 끝내고 드라마 촬영장에 온 정애리 선배의 모습을 보고 나도 아름다운 일을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정애리의 선행이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2005년에는 17년간의 봉사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쓴 에세이 를 펴내며 인세 수익금 1억 원 전액을 정읍의 ‘사랑의 나눔의 집’에 기부했다. 책에는 그녀가 직접 운영하고 있는 고아시설 ‘하래의 집’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지상에서 굶는 아이들이 없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해 봉사할 것”이라며 책을 펴낸 소감을 전한 그녀는 책을 통해 ‘하래의 집’에 대한 이야기와 나눔의 의미를 설명했다.
김자옥 재단 ‘공주는 즐거워’ 프로젝트
지난해 11월 안타깝게 우리 곁을 떠난 배우 김자옥을 추모하고 평소 어려운 이웃을 돕고자 했던 그녀의 뜻을 기리는 ‘김자옥 재단’이 내년 1월 설립된다. 기아대책 홍보대사활동, 사랑 나눔 한복 패션쇼 참여 등을 비롯해 2007년에는 배우 주현, 전무송, 나문희 등과 함께 출연료 전액을 어려운 이웃에게 기부하는 도네이션 드라마 (KBS 2TV)에 출연하는 등 다양한 나눔을 실천했던 그녀다.
고 김자옥의 남편인 가수 오승근은 “생전 어려운 이들을 위해 선행을 많이 한 아내의 뜻을 이어가고 싶다”고 재단 설립 배경을 설명했다. ‘김자옥 재단’은 배우 강부자를 비롯한 동료 연기자들이 동참해 장애인 시설 등을 찾아 봉사활동과 재능기부 등을 할 계획이다. 김자옥 재단은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원하는 40~60대 여성들이 불우한 청소년들의 멘토로 활동할 수 있는 ‘공주는 즐거워’ 프로젝트를 첫 공식 활동으로 기획하고 있다.
#1.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 비 오는데 전화도 안 받네. 워런 도사님 거기는 어디야?” BJ(Broadcasting Jockey) 오작교가 노래를 부르다 말고 혼잣말을 하다가 채팅창을 보며 대화를 한다. 아프리카TV 최고령 BJ 진영수(74)씨의 최근 인터넷 1인 방송이다.
#2. BJ 슈기(최슬기·21)가 떡볶이 네 개를 한꺼번에 입에 넣는다. “맛있다”를 연발하며 쩝쩝 소리를 낸다. 이어 치즈 스틱을 먹는다. 끊임없이 “후루룩 쩝쩝”소리를 내며 게걸스럽게 먹는다. 인터넷 1인 방송 ‘슈기 잘 먹는 먹방’이다.
#3. 유튜브나 아프리카TV 등을 통해 온라인 게임 마인크래프트를 중계방송하는 양띵(양지영·25)은 1인 방송 구독자 및 애청자가 201만 명에 달하는 것을 비롯해 온라인 게임에 관심 있는 10~20대에게는 최고의 스타로 군림하고 있다.
진영수씨는 인터넷 1인 방송을 통해 인생 상담도 하고 자신의 힘든 상황을 전달하며 네티즌으로부터 위로를 받는다. 1인 방송을 하면서 우울증도 극복하고 삶이 활기차다고 말한다. 최슬기씨는 먹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만으로 대기업 임원 월급 수준인 월 1500만 원 정도의 수입을 올린다. 양지영씨는 게임방송으로 연예인 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얻으며 KBS 진행자로 진출했다.
인터넷 1인 방송 열풍이 상상을 초월한다. 아프리카TV에서 1인 방송을 하는 사람만 22만 명에 달하는 것을 비롯해 1인 방송을 하는 사람이 수십만 명에 달하고 1인 방송 시청 인구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 1인 방송자(BJ), 시니어층까지 다양
인터넷 1인 방송은 특별한 기술 없이 카메라와 마이크 등 간단한 장비로 PC와 스마트폰 혹은 태블릿PC 등을 이용해 언제 어디서나 실시간 방송을 할 수 있는 대표적인 1인 미디어다. 웹이나 모바일을 통해 실시간 스트리밍 혹은 주문형(VOD) 방식으로 동영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1인 방송자(BJ)들은 아프리카TV나 유튜브, 다음-카카오, 네이버, SNS(Social Network Service) 등을 통해 자신들이 제작한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있다. 1인 방송은 대화창이 떠 실시간으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쌍방향 방송을 할 수 있다. 먹방, 쿡방, 게임방송, 증권방송, 인생상담, 스포츠 중계, 공부방송, 뷰티방송 등 방송 콘텐츠는 제한이 없다. 방송하는 사람 역시 일반인부터 연예인 등 유명인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물론 젊은 10대나 20대가 1인 방송을 많이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진영수씨처럼 중·장년과 시니어에서도 1인 방송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시장조사 전문 업체 마크로밀엠브레인이 지난 10월 14일 발표한 19~50세 성인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인터넷 개인방송 관련 인식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4.4%가 1인 가구 증가와 함께 1인 방송이 더욱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64.3%는 1인 방송을 시청자의 다양한 욕망을 표출해주는 창구로 인식하고 있다. 1인 방송을 시청하는 이유(중복응답)로는 50.2%가 ‘콘텐츠가 재미있어서’라고 답해 1위를 차지했고 다음은 단순히 시간을 때우기 위해(37.2%), 실시간 참여가 가능해서(24.8%), 전문가들의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21.3%), 누군가와 소통하는 느낌이라서(18.3), 함께 댓글을 달면서 참여하는 재미가 있어서(14.5%) 누군가와 대화하는 느낌이 들어서(11.7%), 대리만족하려고(1.7%) 순이었다. 서울대 김난도 교수와 생활과학연구소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진이 2016년 내년 트렌드를 전망한 ‘트렌드 코리아 2016’에서 꼽은 소비 트렌드 10가지 중 하나가 바로 1인 방송을 비롯한 1인 미디어 전성시대다.
1인 방송을 하는 BJ 중 양띵, 악어, 대도서관, 허팝, 최군, 슈기, 김이브, 영국 남자, 소프, 쿠쿠크루 등 유명 BJ들은 연간 2억~4억 원의 엄청난 수입을 올린다. 독창적이고 경쟁력 있는 콘텐츠로 네티즌의 눈길을 끌면 누구나 고액의 수입을 올리는 BJ가 될 수 있다.
◇ MCN 사업자들 국내의 콘텐츠 내보내
1인 방송 BJ의 수입 창출원은 크게 두 가지다. 아프리카TV의 1인 방송처럼 방송을 본 네티즌이 100원짜리 별 풍선을 구입해 마음에 드는 1인 방송자에게 주면 이것이 수입으로 직결된다. 또 하나의 이윤 창구는 유튜브 등 1인 방송에 붙는 광고를 통한 수입이다.
외국의 경우는 1인 방송으로 연간 135억 원의 수입을 올리는 사람도 등장했다. 미국 경제잡지 10월 14일자에 게재된 ‘세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번 유튜브 스타’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유튜브 1인 방송 스타 중 게임방송을 하는 퓨디파이(방송자 펠릭스 셀버그) 채널은 구독자가 4000만 명에 이르고 수입이 1200만 달러(135억원)에 달한다. 코미디 패러디를 전문으로 하는 스모시(방송자 이언 해콕스, 앤서니 파딜라) 채널은 구독자 2136만 명, 수입 858만 달러이다.
1인 방송의 잠재적 사업성과 문화적 파급력에 주목한 기업과 방송사들이 앞다퉈 1인 방송자를 양성하고 관리해 이윤을 창출하는 MCN(Multi Channel Networks)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선두주자는 CJ E&M에서 운영하는 ‘다이아TV’다. 다이아TV는 현재 417개 1인 개인 방송을 운영, 관리하고 있으며 구독자 수가 2701만 명에 달한다. CJ E&M의 다이아TV 다음 규모의 MCN 사업자는 ‘트레저 헌터’다. 양띵, 악어, 김이브 등 유명 BJ가 속한 트레저 헌터는 채널 수 38개에 구독자 수가 850만 명에 이른다.
이밖에 최근 아프리카TV와 연예기획사 미스틱 엔터테인먼트가 설립한 조인트 벤처 ‘프릭’역시 인터넷 1인 방송을 관리하는 MCN 사업을 펼치고 있다. 다이아TV 등 국내 MCN 사업자들은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 MCN사업자와 제휴해 1인 방송 콘텐츠를 해외에도 내보내기 시작했다.
◇ 1인 방송이 대중문화 판도를 바꾸다
급부상하고 있는 1인 방송은 미디어 산업 지형도를 바꿀 뿐만 아니라 대중문화 판도를 바꿔놓고 있다.
독창적이면서도 무궁무진한 콘텐츠로 무장했을 뿐만 아니라 네티즌의 참여로 방송이 이뤄지는 특성 때문에 이용과 인기가 급증하면서 1인 방송은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다양한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우선 MBC, KBS 등 지상파 TV와 1인 방송의 결합이 눈에 띄는 변화다. 요즘 인기가 높은 MBC 프로그램 은 바로 1인 방송과 TV 방송을 결합한 포맷이다. KBS도 최근 1인 방송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KBS가 8월부터 방송하고 있는 는 1인 방송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다양한 1인 방송 콘텐츠는 방송을 비롯한 영화, 음악, 드라마 등 문화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장 김영주 박사는 “MBC, KBS 등 지상파 TV에 유입되기 시작한 1인 인터넷 방송이 언젠가는 전통적인 방송 프로그램과 방송 사업자들을 능가하는 빅파워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고 1인 방송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 구글은 2020년이면 전통적 방송사 스튜디오들은 25%에 그치고 75%를 1000여 개의 1인 채널과 MCN 사업자들이 차지할 것으로 관측했다. 미디어와 IT 전문가들은 “1인 방송은 수익 창출뿐만 아니라 인터넷과 방송, 대중문화의 흐름도 선도하고 있어 발전 가능성이 엄청나다”고 진단한다.
최근 들어 정부도 1인 방송 지원에 나섰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최근 한국전파진흥협회와 함께 1인 방송 제작자 양성에 나섰다. 신중년도 이제 주류 미디어로 부상하며 수입과 보람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1인 방송과 함께 인생 2막을 시작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진영수씨를 비롯한 신중년 1인 방송자들은 “신중년이 1인 방송을 하면 생활에 활력이 생길 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를 포함한 다양한 세대와의 교류와 새로운 트렌드와 문화의 접촉 기회가 많아져 삶의 스펙트럼도 확장되는 긍정적인 효과도 높다”고 입을 모은다.
흔히 나이 50을 ‘지천명(知天命)’이라 한다. 논어(論語) 에 나온다. 공자(孔子)가 나이 50에 천명(天命), 즉 하늘의 명령을 알았다고 한 데서 연유한 것이다. 천명은 우주 만물을 지배하는 하늘의 명령이나 원리, 혹은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가치를 의미한다. 50은 하늘의 뜻을 알고 그에 순응하거나 객관적이고 보편적 가치를 깨우치는 나이라는 상징성을 가진 물리적 시간이다. 그렇다면 한 직업을 50년 넘게 했고 그 일을 여전히 하는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직업에 임할까.
우리 시대 최고 연기자로 꼽히는 이순재(79), 최불암(75), 나문희(74), 김혜자(72). 이들은 50~59년 동안 연기자로 살아왔다. 지금도 여전히 무대와 TV, 그리고 영화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연기자라는 직업을 지천명의 세월 동안 행해온 이들은 어떤 마음과 태도로 연기라는 작업을 계속하는 것일까.
서울대학교 재학 시절부터 연극반 활동을 한 이순재는 1956년 연극 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연기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61년 KBS 개국 드라마 를 통해 TV드라마로 활동영역을 넓힌 뒤, 1965년 영화 로 영화계까지 진출했다. 이후 연극, 드라마, 영화를 오가며 왕성한 연기 활동을 하는 이순재는 요즘에도 SBS 사극 , 연극 에 출연하고 있다. 이순재는 근래 들어 등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해 또 다른 면모를 보이며 젊은 시청자로부터도 사랑받고 있다.
대학 졸업 후 59년 동안을 연기자로 살아온 이순재는 “미국 아카데미영화제에선 신인상 부문이 없어요. 왜냐하면, 관객은 배우가 스크린에 나서는 순간 신인인지 아닌지 구분해서 연기를 평가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연기자는 신인이든, 경력이 오래된 사람이든 출연한 작품의 연기로만 평가받아요. 연기력은 연차 순이 아니기에 연기 경력이 오래된 사람도 출연한 작품마다 늘 공부하고 연습하지 않으면 안 돼요. 연기자는 새로운 작품에 임할 때 연기 경력과 상관없이 백지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한다.
이순재는 59년이라는 오랜 세월 연기를 해 기교는 늘었을지 모르지만, 매번 임하는 작품마다 캐릭터와 출연 연기자들이 다르므로 공부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경력이 오래된 연기자라고 하더라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고 단언한다.
이순재는 “단 한 번도 촬영장에서 특별대우를 요구한 적이 없고 촬영에 늦은 적이 없어요. 드라마나 영화는 수많은 사람의 공동 작업이고 그중 한 사람이라도 잘못하면 작품이 실패할 수 있으니까요. 대사 암기력에 문제가 생겨 NG를 반복적으로 내 다른 연기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그때가 은퇴할 시기예요”라고 말한다.
1961년 MBC 문화방송 1기 공채 성우로 방송계에 진출한 나문희는 1975년 TV드라마 등을 통해 드라마 연기자로 전업한 뒤 드라마에 전념하다 영화와 연극 활동을 병행하며 연기 영역을 확장했다.
지난 7~8월 서울 대학로에서 연극 에 출연한 뒤 10월 30일부터 11월 15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하고 있는 뮤지컬 으로 관객과 만난다.
연예계에 데뷔한 이후 단 한 해도 쉬어본 적이 없다는 나문희는 “연극이나 드라마, 영화의 연기는 장르는 다르지만 작품마다 오랜 시간 연습을 통해 캐릭터를 체현하고 연기와 동선을 온몸으로 익혀야 하고 호흡도 조절해야 해요. 상대 배우와의 조화도 이뤄야 비로소 무대와 카메라 앞에 설 수 있지요. 관객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연기에는 왕도도 없고 경력도 필요 없습니다. 오직 필요한 것은 오랜 시간 연습하며 흘린 땀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런 때문인지 나문희는 54년 연기경력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나 관객, 시청자가 “연기가 좋아졌다”고 하는 말을 가장 큰 찬사로 받아들인다.
나문희는 “사람들이 물어요. 연기하는 것이 힘들지 않으냐고요. 힘들지요. 무대나 카메라 앞에 서기 위해 오랜 시간 캐릭터 분석, 대사암기부터 출연 연기자와의 연기호흡 조율까지 육체적으로 고된 작업이에요. 그런데 막상 무대와 카메라 앞에 서면 힘이 나고 관객이나 시청자들이 제 연기 때문에 즐겁고 행복한 모습을 보이면 저 역시 정말 행복하지요. 제가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설레며 연기를 하는 이유이기도 해요”라며 웃는다.
1965년 국립극단 단원으로 본격적인 연기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최불암은 1967년 KBS 탤런트로 특채됐다가 1969년 MBC 개국과 함께 자리를 옮겨 , 등 수많은 인기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활약했다. 또한, 영화 , 등에 출연하며 스크린을 통해 관객과도 만나고 있다. 최불암은 ‘국민 아버지’라는 타이틀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요즘 시청자와 만나고 있는 교양 프로그램 의 진행자로 나서 연기자 이외의 모습도 보여주고 있는 최불암은 “좋은 연기자란 자신의 감성과 이성을 잘 조화시키는 사람입니다. 끝없는 수련과 날카롭고 냉정한 분석을 통해 자신의 때를 씻고 내가 아닌 그의 인물을 구현, 창조해서 그 인물의 특성과 영혼을 표출해야 하므로 배우에게는 혹독한 훈련과 집중이 필요합니다. 하는 작품마다 스토리와 캐릭터가 다르므로 경력에 상관없이 출연할 때마다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1961년 KBS 1기 탤런트로 연기자의 길에 들어선 김혜자는 그동안 드라마 , , , , 영화 , , , 연극 , , 등 수많은 작품으로 관객과 시청자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연극 로 11월 4일부터 12월 20일까지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 화암 홀에서 관객과 만나는 김혜자는 “‘연기의 달인’, ‘연기력의 대가’라는 수식어는 잘못된 표현입니다. 연기자는 지금 이 순간 관객이나 시청자와 만나는 작품으로만 평가받는 거니까요. 과거의 작품에서 뛰어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고 해서 지금 하는 작품에서 똑같은 연기력을 유지할 수 없어요. 지난 50여 년 연기를 했지만 제일 무서운 것은 관객의 눈이에요. 연극의 경우는 매회 연기에 대한 평가가 다르잖아요. 새로운 작품에 임할 때는 50년 경력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작품에서 후배가 더 뛰어난 연기력을 보이면 전 그 후배에게 많은 것을 배워요”라고 말한다.
김혜자는 “연기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이와 경력이 아닌 연기에 대한 열정과 작품에 대한 애정이라고 생각해요. 연기에 대한 열정과 작품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그때가 은퇴할 시점이라고 봐요”라고 말했다.
최고의 연기자로 평가받는 이순재, 최불암, 나문희, 김혜자 등 네 명의 배우는 연기자로서 50여 년의 한길을 걷는 것이 연기의 기교나 작품 분석에는 도움이 되지만 작품마다 캐릭터와 연기, 출연자가 다르므로 항상 공부하고 연습하지 않으면 관객과 시청자에게 외면 받는다고 공통으로 강조한다.
연기 경력과 나이, 그리고 명성에 안주해 공부나 연습을 게을리하거나 후배 연기자들과의 연기 조화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연기력에 금세 문제가 나타난다고 했다. 네 명의 배우는“연기력은 연차 순이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한다.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현명한 어른이 되는 방법에 대한 질문을 받고 “늘 책을 읽고 다른 사람 말을 듣는 연습을 해라. 결국은 삶의 태도가 민주적이어야 한다. 나이라는 권력으로 쇠한 것을 메우려고 하면 안 된다. 나이가 들수록 듣는 연습을 해야 하고, 토론을 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그게 바로 노망든 것이다. 좀 다르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배우기를 그치지 말고 참신하게 생각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바로 하늘의 명령이나 원리를 깨닫는다는 50여 년 긴 시간을 연기자라는 한길을 걸었으면서도 이순재, 최불암, 나문희, 김혜자 등 네 명의 연기자는 황현산 교수의 말을 드라마, 영화, 연극무대에서 실천하고 있다.
연기할 때 나이와 경력, 명성을 권력화 하는 대신 새로운 작품을 할 때마다 첫 작품을 하는 신인처럼 노력하고 공부하는 연기자가 바로 이순재, 최불암, 나문희, 김혜자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우리 시대 최고의 연기자라고 평가하는 것이다.
2015년 벽두부터 올 한 해 문화 콘텐츠 흐름을 주도할 키워드는 무엇이냐는 전망이 쏟아졌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보고서 에선 올 한 해 유행할 문화 키워드로 ‘스마트 핑거 콘텐츠’를 첫손에 꼽았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스낵처럼, 출퇴근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10∼15분 내외로 간편하게 소비하거나 즐길 수 있는 문화 콘텐츠를 지칭한다.
스낵 컬처는 시장 잠재력과 이용자 급증, 무엇보다 남녀노소 누구나 제작할 수 있는 특성 때문에 크게 성장하고 있다. 스낵 컬처의 대표 콘텐츠는 웹소설, 웹툰, 웹드라마, 웹예능 등이다.
‘엽기적인 그녀’ 등 1990년대 온라인 게시판에 연재됐던 로맨스, 판타지 소설, 팬픽 등 인터넷 소설이 진화와 변모를 거듭하다 ‘웹소설’로 자리 잡았다. 2013년 1월, 네이버에서 ‘웹소설’ 서비스를 출시하면서 ‘웹소설’이라는 용어가 보편화했다.
◇웹툰·웹소설 시장 급성장, 스낵컬처 ‘돈 되네’
네이버, 다음카카오, 문피아 등 웹소설 콘텐츠를 제공하는 업체들이 증가하고 이들 업체의 성장세도 두드러지고 있다. 네이버가 지난 1월 웹소설 출시 2주년을 맞아 공개한 ‘네이버 웹소설 콘텐츠 현황’에 따르면, 2014년 한 해 동안 글을 올린 작가는 전업 작가에서부터 학생, 주부, 직장인에 이르기까지 6만7000여 명에 달하고 작품 수는 전년 대비 115% 증가한 12만3000여 편이었다. 하루에 183명의 작가가 약 340편의 작품을 올린 셈이다.
네이버는 “원고료와 미리 보기 수익만으로 한 해 2억8000만 원을 번 작가를 비롯해 1억 원 이상 수익을 올린 작가가 7명이다. 이들의 직업은 평범한 주부부터 20대 대학생, 교사 등으로 다양하다. ‘로맨스 소설계 스타’로 불리는 이지환 작가는 현직 중학교 교사다”고 밝혔다.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신중년이라면 누구라도 도전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웹소설이다.
다음카카오의 카카오페이지는 최근 인기 웹소설 작가들을 영입하는 등 서비스를 개선해 인기 앱으로 부상했다. 또한 조아라, 북팔, 문피아 등 웹소설 업체들이 급성장하고 있다. 북팔은 2014년 35억 원의 매출액을 기록했으며, 2000년 온라인 소설 사이트로 창업한 조아라는 매출액이 최근 3년간 313% 성장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출판 소설과 달리 웹소설은 매해 큰 폭의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하며 2013년까지 100억 원 규모도 되지 않던 국내 웹소설 시장이 2015년 올해는 200억 원 이상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20%대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한 tvN드라마 과 출간돼 220만 부가 판매된 만화책 의 원작은 바로 윤태호 작가의 웹툰 ‘미생’이었다. 이처럼 웹툰은 최근 들어 대중문화의 강력한 먹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웹툰은 웹사이트 만화를 의미한다. 이미지 파일 만화를 총칭하며 웹(web)과 카툰(cartoon)의 합성어다. 웹툰은 1990년대 후반 IMF 사태로 출판만화 시장이 침체하고 인터넷이 발달함에 따라 다양한 만화들이 개인 블로그나 홈페이지에 연재되면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다음이 2003년 ‘만화 속 세상’이라는 웹툰 코너를 신설해 강풀 작가의 ‘순정만화’를 소개하면서 포털들이 앞다퉈 웹툰을 게재했다. 2009년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웹툰은 또 한 번 도약하면서 시장을 확장하고 있다.
웹툰 시장 규모는 2013년 기준 1500억 원에 달했다. KT 경제경영연구소는 2015년 올 한 해 웹툰 시장 규모는 3000억 원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네이버, 다음 등 포털에서부터 카카오페이지 등 모바일, 통신사 사이트, 신문사 포털, 레진코믹스를 비롯한 웹툰 전문사이트 등 다양한 플랫폼이 수많은 웹툰을 게재하고 있다. 2014년 한 해 네이버의 웹툰은 연재작품 159편, 완결작 318편에 달한 것을 비롯해 다음은 연재작품 99편과 완결작 403편, Kt(올레마켓)는 연재작품 52편과 완결작 20편, 카카오 페이지는 연재작품 70편과 완결작 1편, 레진코믹스는 연재작품 170편과 완결작 80편이다.
◇시청 100만건은 기본, TV없이 잘 나가는 웹드라마
KT 경제경영연구소가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국민 3명 중 1명이 웹툰을 이용한 경험이 있다고 답할 정도로 큰 관심을 끌고 있으며 윤태호 작가의 ‘미생’등 적지 않은 웹툰 작품들은 조회 건수가 10억 건을 넘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인기를 얻고 있다.
요즘 젊은 층뿐만 아니라 중·장년층도 스마트폰 등을 통해 시청을 많이 하는 것이 웹드라마다. 많은 업체들이 최근 들어 본격적으로 제작하고 있는 웹드라마는 대중문화의 킬러 콘텐츠로 부상하고 있다. KBS, MBC, CJ E&M 등 방송사와 드라마 제작사, SM엔터테인먼트 등 연예기획사, 네이버 다음 등 포털, 오아시스픽처스 같은 영상콘텐츠 제작사, 교보와 삼성 같은 대기업들이 웹드라마를 제작하고 있다.
‘손안의 극장’, ‘모바일 무비’, ‘SNS 드라마’, ‘인터넷 드라마’로도 불리는 웹드라마는 스낵 컬처의 가장 대표적인 콘텐츠다. 웹이나 모바일을 통해 볼 수 있는 웹드라마는 정해진 포맷이 없다. 지상파 드라마 제작비 10~20분의 1선인 회당 제작비 2000만 원 정도로 만들어진다. 대체로 6~20회로 회당 3분짜리 짧은 것도 있지만, 회당 10~20분 작품이 주류를 이룬다. 웹드라마는 포털과 페이스북, 블로그, 유튜브 등 동영상 사이트, 모바일 등을 통해 이용자와 만나고 있다. 웹드라마 시대의 서막을 연 작품은 2013년 2월 조윤희, 정겨운 주연의 ‘러브 인 메모리’다. 이후 웹드라마 제작이 본격화하면서 2014년 한 해에 ‘아직 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미생’, ‘무한동력’, ‘스무살’, ‘후유증’, ‘방과후 복불복’, ‘어떤 안녕’, ‘연애세포’ 등 30여 편의 웹드라마가 쏟아졌다.
지난 4월 SM과 라인이 공동제작한 웹드라마 ‘우리 옆집에 엑소가 산다’는 재생 건수가 1000만 건을 돌파하는 등 웹드라마의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다. 짧은 시간에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데다 TV드라마가 다루기 힘든 소재나 형식을 과감하게 도입한 것이 웹드라마의 인기요인이다.
김태옥 네이버 TV캐스트 부장은 지난 7월 열린 ‘2015 넷트렌드 콘퍼런스’에서 “지난해까지만 해도 출시하는 웹드라마 중에서 3분의 1 정도만 100만 재생 건수를 넘었는데, 최근에는 대부분이 기본 100만 건은 넘는다. 웹드라마 저변이 빠르게 확대됐다”고 말했다.
◇예능까지도 웹으로...대중문화산업 판도변화 진행중
웹소설, 웹툰, 웹드라마에 이어 웹예능도 최근 들어 본격적으로 제작되고 있다. 강호동, 이승기, 이수근, 은지원 등 스타들이 출연하고 나영석 PD가 연출한 ‘신서유기’가 웹예능의 신호탄 역할을 했다. 지난 9월 4일 네이버 TV캐스트와 모바일을 통해 공개되자마자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9월 4일부터 10월 2일까지 조회 건수가 무려 5000만 건에 달했을 정도다.
‘신서유기’를 연출한 나영석 PD는 “웹예능이라는 분야가 워낙 생소하지만, 웹과 모바일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특성을 파악해 웹예능을 만들었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웹예능을 많이 제작하고 싶다”고 말했다. ‘신서유기’에 출연한 강호동은 “웹예능이라는 말을 ‘신서유기’를 하면서 처음 들었다. 웹예능은 TV예능 프로그램보다 제약이 덜해 정말 편하게 촬영을 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웹과 모바일기기를 통해 유통되는 스낵 컬처의 대표주자인 웹소설, 웹툰, 웹드라마, 웹예능은 콘텐츠 자체로도 막대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콘텐츠일 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미국 등 외국에 수출돼 한류 콘텐츠로도 주목받고 있다. 네이버 웹툰&웹소설은 영어·중국어·태국어 등 다양한 언어권 독자들도 웹툰과 웹 소설을 즐길 수 있도록 했고 다음카카오도 중국의 최대 포털 사이트인 텐센트의 QQ닷컴 등에 다음 웹툰 콘텐츠를 선보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방과 후 복불복’ 등 적지 않은 웹드라마가 중국, 베트남 등 해외에 수출돼 인기를 얻고 있으며 웹예능 ‘신서유기’도 중국 QQ닷컴을 통해 방송되고 있다.
무엇보다 ‘뱀파이어의 꽃’, ‘올드맨’을 비롯한 웹소설과 ‘미생’, ‘이끼’, ‘지킬 박사는 하이드씨’ 등 웹툰이 영화와 드라마, 출판물로 만들어지는 등 원소스-멀티유즈(One Source-Multi Use)의 콘텐츠로 자리 잡으면서 스낵 컬처의 대표적 콘텐츠인 웹소설, 웹툰, 웹드라마, 웹예능은 대중문화 산업의 총아로 떠오르고 있다.
>> 글 배국남 논설위원 겸 대중문화 전문기자 knbae@etoday.co.kr
개그맨 유재석이 연일 화제다. 한동안 주춤하다 싶더니 종편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호사가들을 분주하게 만든 데 이어 가요제라는 형식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공중파 방송사들이 자료 영상을 종편 채널에 제공 또는 판매하지 않는 것은 유재석을 빼앗긴 데 대한 복수’라는 다소 선정적인 내용의 기사가 눈에 띈다. 유재석이 대단한 능력자임은 익히 알았지만 거대 방송사들이 치졸한 복수극을 마다하지 않을 만큼 영향력이 큰 줄은 미처 몰랐다. 글 김유준 프리랜서 dongbackproject@gmail.com
일본에서는 아리요시 히로이키(有吉弘行)라는 코미디언이 득세하고 있다. 어떤 이는 연수입이 5억 엔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10억 엔이 넘는다고 할 만큼 채널을 가리지 않고 맹활약 중이다. 개그 스타일은 유재석과 정반대다. 독설이 거침없다. 우리나라에서라면 수갑을 찰 만한 성희롱도 서슴지 않는다.
미국의 코미디언이며 방송 진행자인 코넌 오브라이언은 우리나라에서도 인기 높다. 코미디 프로그램의 작가 출신으로 현상을 비트는 지적 유머가 장기로 알려져 있다.
유재석과 아리요시 히로이키, 그리고 코넌 오브라이언. 코미디 스타일은 제각각이지만 세 명에게는 공통점이 많다.
첫 번째는, 세 명 모두 한때 코미디언으로서 몹시 힘겨운 시기를 보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그 역경을 너끈히 뛰어넘었다.
유재석은 10년 넘게 무명이었다. 이따금씩 정보 프로그램에 출연할 기회를 잡았을 때는 선천적 방송 ‘울렁증’ 때문에 더듬거리기만 하다가 속절없이 마이크를 내려놓아야 했다. 라는 옛날 프로그램에서 에피소드들을 과장을 섞어가며 재미나게 풀어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우리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아리요시 히로이키는 데뷔와 거의 동시에 스타덤에 올랐다. 여느 일본 코미디언들이 으레 그렇듯 데뷔 초창기에는 고생이 심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루간세키(猿岩石)’라는 이름으로 코믹 듀오를 이루고는 1996년부터 히치하이크로 세계 여행하는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해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그때의 이야기를 쓴 책이 250만 부, 음반이 120만 매 판매됐다. 나중에 아리요시는 방송에 출연해 “믿거나 말거나 경제 효과 1조 엔”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 후로는 지독한 내리막길이었다. 인기가 한 번 추락한 이후 7년 가깝게 섭외가 없었다. 아리요시는 “사루간세키 시절에 번 돈을 모두 까먹은 시점이 되고서야 슬슬 출연 섭외가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털어놓았다. 다시 찾아온 기회를 아리요시라는 똑똑한 코미디언은 두 번 다시 놓치지 않았다.
나라별 다른 코미디 스타일
코넌 오브라이언은 뒤늦게 위기를 맞이했다. 출발은 거짓말처럼 순조로웠다. 유명 코미디 프로그램 과 인기 애니메이션 등에서 방송작가로 활약하다가 소질을 인정받고 방송 진행자로 데뷔한 이후, 미국 코미디 프로그램 하면 으레 떠오르는 늦은 밤의 토크 프로그램( )을 잇따라 맡으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다가 자신을 키워준 방송사 NBC로부터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았다. 또 다른 코미디언인 제이 레노의 프로그램을 신설하며 의 방송 시간대를 맡기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NBC가 의 방송시각을 60년 만에 변경한 까닭은 단 하나, 시청률 때문이었다. 쇼를 맡은 지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그와 같은 모욕을 당하고 오브라이언은 방송 하차를 결심했다. 계약 조건 때문에 한동안 방송 활동을 할 수 없었음에도 자존심을 꺾지 않았다.
오브라이언은 쇼를 그만두고 방송 대신 전국 투어를 선택했다. 성공적일 것 같지 않던 코미디 여행은 결국 대성공을 거뒀다. 트위터 같은 SNS가 홍보에 큰 몫을 담당해준 덕분이었다. 현재 오브라이언은 케이블 방송사 TBS에서 를 진행하며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두 번째 공통점은 그들이 현재 한미일 세 나라를 각각 대표하는 코미디언이라는 점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다.
세 번째는 그들이 현재 한미일 세 나라의 코미디 스타일을 대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글의 진짜 주제는 바로 이 세 번째 공통점에 관한 짧은 생각이다.
유재석은 점잖다. 코미디언이라면 한 번쯤 겪을 법한 스캔들을 단 한 번도 거치지 않았다. 오히려 주위에 미담만 가득하다. 최근에만 해도, MBC의 에 방영돼 화제가 된 일본의 우토로 마을에 10년 전부터 몰래 기부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또 한 번 우리를 놀라게 했다. 방송 진행 스타일도 마찬가지다. 동료 선·후배 코미디언들은 그가 “게스트들을 놀랍도록 배려한다”고 입을 모은다. 오랫 세월 동안 ‘질 안 좋은 친구’처럼 코미디 뒤꽁무니를 쫓아다녔던 주먹질이나 성적 비하 발언은, 그의 프로그램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다.
여타 코미디언과 다르게 유재석은 우격다짐이나 욕설 한마디 없이 우리들을 웃긴다. 유재석은 보기 좋은 일만 하고 듣기 좋은 말만 하면서도 얼마든지 방송을 재미있게 이끌어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희귀한 모범답안이다.
남자들에 관한 은밀한 주제를 거침없이 드러낸 같은 프로그램이 실패한 것은, 유재석의 그런 이미지와 동떨어졌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스튜디오 안에서의 얌전한 방송이 강호동에게 맞지 않는 것처럼, 음담패설을 늘어놓으며 패널이나 방청객의 치부를 드러내는 방송은 유재석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그가 오랫 동안 인기 정상에서 내려오지 않는 것을 보면 우리는 아마도 그가 만들어내는 ‘지저분하지 않은 웃음’이야말로 제대로 된 웃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거침없는 입담, 그러나 점잖다
일본인들은 딴판이다. 아리요시 히로이키가 그의 표현대로 ‘지옥에 떨어졌다가’ 다시금 인기를 얻게 된 계기는 ‘별명’이다. 동료 선·후배들에게 별명을 붙여주면서 인기가 급상승한 것이다.
코미디언이 지어낸 별명이 얌전해서야 인기를 끌기 어려울 터. 그의 입에서 작렬하는 별명은 상대의 얼굴이 벌게질 만큼 공격적이었고, 그래서 웃겼다. 심지어 아리요시는 일본 방송계의 원로 여성 진행자 구로야나기 데쓰코(黑柳徹子)에게 ‘똥할매’라는 놀라운 별명을 선사하기까지 했다. 이라는 토크 프로그램을 40년 가까이 진행해온 전설적 진행자의 면전에서 원초적인 욕지거리를 퍼부은 것이다. 모든 사람이 배꼽을 잡는 가운데 80세가 넘는 할머니만 웃지 못했다. 그렇다고 방송에서 대놓고 화낼 수도 없는 노릇. 할머니는 다만 “별명이 아니라 그냥 욕일 뿐”이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다시 스타덤에 오른 뒤 아리요시의 거침없는 입담은 더욱 불을 뿜었다. 함께 진행하는 여성 아나운서에게 통통하다는 이유로 “돼지새끼”라고 욕을 퍼부었으며, 미모가 좀 떨어지는 아나운서에게 “얼굴은 못생겼는데 가슴은 크다”고 놀려댔다. 남자 연예들에게는 더 매서웠다. ‘쓰레기’ ‘똥’ ‘바보’ 같은 욕지거리가 입에서 떨어질 날이 없었다. 그럼에도 일본 시청자들은 그를 사랑한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그의 코미디를 유심히 살폈다. 아닌 게 아니라 아리요시는 무척 재미있다. 눈살이 절로 찌푸려질 만큼 폭언을 일삼지만 웃음을 선사하는 코미디언으로서의 임무도 잊지 않는다. 폭언을 들은 상대는 그냥 웃고 만다. 스스로의 설명처럼 아리요시는 영리하게도 “한계를 아슬아슬하게 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 사람들이 생각하는 한계와 우리의 그것은 판이하다. 아리요시가 일본에서의 잣대를 그대로 유지했다가는 우리나라 프로그램에서 입도 벙끗하지 못할 것이다. ‘구구이 비점이고 자자이 관주’라는 의 표현을 빌려 쓰면, 아리요시의 멘트는 ‘구구이 폭언이고 자자이 성희롱’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쨌든 웃긴다. 그래서 일본에서 인기가 많다.
우리나라 시청자들이 ‘웃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달리, 일본 시청자들은 ‘어쨌든 웃기면 된다’고, ‘웃기지 못하는 얌전한 코미디보다는 웃기는 욕지거리 코미디가 더 낫다’고 여기는 듯하다. 이를테면 웃음의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이랄까.
코미디는 언제나 사회현상이 주제
코넌 오브라이언이 선사하는 웃음은 한국과 일본의 코미디와 성격이 좀 다르다. 그의 코미디는 언제나 사회 현상이 주제다. 그것도 남녀 사이의 자잘한 연애나 동료 연예인들의 잡다한 경험담 따위가 아니라 제법 굵직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화제가 코미디의 소재가 된다.
그러므로 그의 코미디가 유재석이나 아리요시의 코미디보다 수준 높다고 판단하는 것은 섣부르지 않을까 싶다. 일상의 사소한 웃음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코미디의 핵심인 풍자가 부족하다고 단정 짓기도 어렵고, 신문 앞면에 날 법한 사회현상을 다룬다고 해서 풍자가 넘치리라 지레짐작하는 것도 성급하다.
분명한 것은 정치적, 사회적인 이유와 관습으로 우리와 일본 사람들에게 풍자가 제법 부족하다는 것, 그에 비해 미국인들은 ‘지적인 피해의식이 있는지’ 의심될 만큼 풍자에 집착한다는 것, 그리고 코넌 오브라이언이 사회현상을 꼬집고 비트는 풍자에 재능이 넘친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던 다트머스 대학 졸업식 연설은 그 진수라 할 만하다. 하버드 대학 출신인 오브라이언은 그 연설에서 자신의 지적 유머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현실을 비판함과 동시에 사회로 진출하는 젊은이들을 격려하고 고무했다. 그러면서 웃음을 선사했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미국인들이 추구하는 유머의 최고봉이었다.
우리에게는 웃음이 필요하다. 그 웃음을 선물하는 작업은 대우받아 마땅하다. 유재석과 아리요시와 오브라이언은 각자의 스타일대로 그 작업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우리에게 웃음을 주고 있다. 한미일의 웃음 코드는 세 코미디언의 차이점만큼 크게 벌어져 있지만, 모두가 웃음을 원한다는 사실에서는 크게 차이가 없다. 어떤 코미디가 더 수준 높은지 따지는 것은 나중 일이다.
여자는 등 뒤에서 두 손을 나의 양 어깨에 얹었다. 뭉친 어깨를 풀어주는 안마 포즈. 어깨를 몇 번 주무르더니… 어럽쇼, 흐느끼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게 우는 소리인 줄 몰랐다. 어떤 여자가 안마를 하려다 말고 흐느끼겠는가. 그것도 처음 만난 여자가 등 뒤에서 말이다. 기분이 좀 ‘야시꾸리’해지는 사이에 흐느낌은 굵은 눈물방울이 되어 (뒤늦게 동석했던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긴데) 그녀는 눈물범벅이 되었다고 한다. 나는 (언제나처럼) 이미 꽐라(술에 만취한 상태를 이르는 말) 상태였으므로 사태를 파악할 힘이 없었지만 기분은 한껏 ‘야시꾸리’해졌다.
글·사진 윤동혁 PD
인사동 골목 중에서도 가장 으슥한 곳에 자리 잡은 한정식 술집에서 그 여자는 우리 방에 들어왔다. 마담 언니의 친구라고 했다. 그녀의 안마로 지병을 고친 사람도 있다고 마담이 말했다. 혈관에 피를 잘 통하게 해주고 있노라면 안마 받고 있는 사람의 전 생애가 보인다고 했다.
지금도 길 가다가 빨간 깃발, 흰 깃발이 기다란 대나무에 매달려 있는 걸 보면 똥개나 참새처럼 조급해지는 내가 아닌가. 아니 나의 추억이 엑스레이에 비친 내장처럼 훤히 보인다는데, 그냥 고맙고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그녀에게 어깨를 맡겼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매우 서럽게, 격렬하게 울었다는 이야기다.
“이런 불쌍한 인간이 다 있느냐. 어떻게 이런 슬픔의 덩어리들을 가슴 가득 품고 살아가느냐.” 그녀는 대충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불쌍하다고? 슬픔의 덩어리? 다른 사람의 엑스레이하고 바뀌었나. 혹시 슬픈 일들이 많았는데 워낙 인생의 깊이에 관해서는 멍청한지라 슬렁슬렁 흘리며 살아왔던 것일까.
나는 애써서 나의 지난날들 중에 정말 슬픈 요소들이 있었는지 치약 짜듯 과거를 저 밑에서부터 짜내기 시작했다. 음... 그러고 보니 그 여자가 울 만큼은 아니더라도 가슴 아린 일들이 줄줄이 엮이는 것이었다.
목포 유달산 기슭에서 나는 정자, 난자의 도킹에 성공했으나 엄마 뱃속에 들어 있는 상태로 주거지가 이동되었다. 절반은 목포에서, 나머지 절반은 제주에서 기다리다가 세상에 나왔다. 이른바 나의 사주에 낙인으로 찍혀 있는 ‘천고역마(天孤驛馬)’의 시작이다. 형을 형이라,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그 누구처럼 나는 제주도를 나의 고향이라고 말하지 못 한다. 다섯 살 때 제주도를 떠났다. 아무것도 모르고 (산 게 아니라) 살아졌지만 나의 몸에는 제주 4·3사건의 피비린내와 언제 징집될지 모르는 아버지의 불안, 그리고 고부(시어머니-며느리) 전쟁의 파편들이 무수히 박혀 버린 모양이다.
단지 다섯 해를 살고 태어난 곳을 떠났는데 당시에는 대양이나 다름없는 두 바다를 건넜다. 제주에서 부산까지 하루 종일 흔들리고 가서 하루인가 이틀 쉬고 또 배를 탔다. 포항까지 가서 바다가 잔잔하기를 기다려 세 번째 배를 타고 총 닷새 만에 도착한 곳이 울릉도.
그때도, 그 후로도 한참 동안 울릉도엔 ‘바퀴’가 없었다. 자동차는 물론이고 리어카나 자전거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징어는 많았다. 그러나 모두 팔 물건이어서 감시가 심했다. 집집마다 오징어를 쌓아둔 채 군대 천막 같은 것으로 덮어놓고 육지에서 값이 오르기를 기다렸다. 학교 앞 구멍가게에는 커다란 유리병 속에 ‘눈깔사탕’이 가득 들어 있었지만 우리들이 먹을 수 있는 간식은 오직 오징어, 그중에서도 다리밖에 없었다. 스무 마리를 한 축으로 정확히 묶어놓았기 때문에 간이 배 밖으로 나오지 않는 한 한 마리를 통째로 훔친다는 것은 거의 자살행위였다.
다리를 한 개씩 뽑아 먹었는데 영민한 부모들은 산만큼 쌓아놓은 오징어 다발들 속에서 단 한 개의 다리가 사라진 오징어를 귀신처럼 찾아냈다. 그 아이는 그날 죽는 날이었다. “육지에 나가서 제값 못 받는다”고, “이 오징어 잘 팔려야 느이 형 포항으로 학교 보낼 수 있다”고 욕을 바가지로 먹거나 매를 맞거나 했다.
그런데 오징어 다리는 우리 몸에 흔적을 남겼다. 그러면 부모들은 오징어 다발을 낱낱이 조사하지 않고도 ‘흠, 이 녀석이 또 훔쳐 먹었구나’ 하고 금방 알아차렸다. 바로 부스럼인데 오징어만 먹으면 팔뚝에 둥근 원이 몇 개씩 그려지는 부스럼병을 우리 모두 갖고 있었다. 울릉도에 살면서 오징어를 다리 말고 몸통까지 먹는 게 우리들의 꿈이었다.
우산국민학교에 들어가 2학년에 올라갔을 때, 무선전신국에서 근무하던 아버지는 강릉으로 발령 받았다. 두 번째로 포항 땅을 밟았는데 이때부터 컬처 쇼크(문화충격)가 생기기 시작했다. 수많은 ‘바퀴’들을 만났고 바퀴 수만큼 나는 어지러웠다. 게다가 합승이라고 쓴 차를 ‘합승’이라고 읽어야 할지 ‘승합’이라고 읽어야 할지 난감했다. 그러나 ‘바퀴’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강릉국민학교 2학년 몇 반에 전입한 나는 첫날부터 스스로 맴을 돌아야 하는 바퀴가 되어야 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들이 그때 이미 있었다. 전쟁고아들이 반마다 몇 명씩 있었고 그들은 나로 인하여 색다른 기쁨을 얻었다.
“야, 너 일어나서 책 읽어!”
쉬는 시간에 그들은 나에게 책을 읽으라고 했다. 잘 아시다시피 제주도에서나 울릉도에서나 일어나서 책을 읽을 때는 표준어를 사용한다. 그런데 표준어로 읽으면 나를 괴롭혔다. 머리를 쥐어박고 발로 정강이를 걷어찼다.
“울릉도 말로 읽으란 말이다. 갱상도 말로.”
나는 맞는 것이 무섭고 싫었지만 그 보다는 억울했다. 그러나 억울함은 가슴 깊은 곳으로 쑤셔 넣고서 이 불합리하고도 불편한 상황을 어떻게 타개하면 좋을까 궁리했다.
당시 강릉은 전 지역에서 사람들이 공을 찬다고 할 만큼 축구 붐이었다. 어린아이들도 골목에서 공을 찼고 학생들은 학교에서 쉬는 시간, 점심시간 할 것 없이 열정적으로 축구를 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들도 점심을 굶어가면서 (고아원에서 도시락을 안 싸주니까) 공놀이를 했는데 밥도 굶는 녀석들이 변변한 축구공을 가졌을 리 만무했다.
아버지 주머니에서 돈을 꽤 훔쳤다. ‘정식’ 축구공을 사서 영웅들에게 주었다. 그날 그리고 며칠간은 내가 감히 센터포워드를 맡아서 영웅들과 함께 그라운드를 누볐다. 단 며칠에 불과했지만 나는 이런 행복을 위해서라면 또 돈을 훔쳐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부 전쟁은 이제 파편이 튀는 단계를 지나 집이 불타는 수준에 이르렀다. 할머니와 어머니 사이에 낀 아버지는 어느 편도 들지 않고서 매일 술을 마시고 통금 사이렌과 함께 집에 들어오셨다. 그러던 와중에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여자(나는 그 여자가 우리 엄마보다 더 좋았다)까지 나타나자 어머니는 짐을 싸서 친정 식구들이 많이 사는 전라남도 송정리로 이사해 버렸고, 그 짐 보따리 속에는 나도 끼어 있었다.
바다가 보이지 않는 첫 번째 땅 송정리. 그곳에서 나는 토끼를 키웠다. 열심히 전라도 말을 익혀서 금방 네이티브 발음이 되었기 때문에 매를 맞거나 하지는 않았다. 토끼는 새끼를 자주, 많이 나아서 금방 시장에 내다팔았다. 그 돈으로 필통이며 연필을 샀다. 여름엔 토끼풀을 뜯다가 괜스레 지나가는 뱀을 낫으로 찍어 죽이고, 보리가 한창 영글 땐 보리밭 속을 파고들어가 보리피리도 불었다. 가장 좋았던, 평화로웠던 그 세월은 단 1년 만에 끝나고 인천 송도로 이사 갔다. 아버지가 그리로 발령받았기 때문이었는데 어머니는 아버지가 ‘바보천치’여서 ‘와이로(뇌물)’를 먹이면 될 것을 이리저리 떠다니며 돈을 모으기는커녕 생고생을 시킨다고 눈에 날을 세웠다.
1962년께 송도는 그냥 황무지 갯벌뿐이었다. 국민교육헌장인가 뭔가를 열심히 외우며 갯벌에 나가 조개를 주웠다. 뒷동산엔 야생 부추(그땐 전부 야생이었지 뭐)가 풀처럼 자라고 있어서 부추조갯국을 끓여먹을 수 있었다. 우리 마을엔 낡은 권투 장갑이 두 짝 있었고 어른들이 심심하면 우리들을 풀밭 링에 올려서 ‘싸움질’을 시켰는데 그때 눈에서 불이 번쩍 튀는 경험을 많이 했다.
6학년은 인천 시내 학교(인천에서는 변두리)로 옮겨 공부를 좀 하다가 일류 중학교라고 하는 데에 들어갔고, 그때부터 학교와 학교를 떠돌아다니는 긴 여정은 끝이 났다. 같은 운동장을 사용하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6년이나 다녔으니 인천이 내 고향이 되고 말았다. 그 중학교를 졸업하고 역시 명문이라고 하는 고등학교에 합격했다. 나는 외갓집에 가서 놀고 오겠다고 말하고 호남선 완행열차를 탔다. 느린 뱀처럼 밤새 꿈틀꿈틀 기어간 기차가 송정리역에다 나를 내려놓았다. 역에서 외삼촌 집까지 걸어갈 때 여명이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사단은 이때 났다. 어른들에게 인사하고 앉아 있는데 둘째 외사촌 누나가 감은 머리를 수건으로 닦아내며 방으로 들어섰다. 나는 화살을 이마에 맞았다. 그 화살은 나를 사랑의 지옥으로 떨어뜨렸다. 이제껏 방황하던 나의 영혼이 전심전력하여 한 여인(?)을 사랑하게 만들었으니 슬프도다, 어찌하여 외사촌 누나를… 누가 듣기만 해도 해괴하고 망측스러운 일이 아닌가.
그냥 마셨다. 막걸리, 소주 안 가리고 마셨다. “이런 미친놈이 있나.” 엄마가 도마 위에 내 손을 올려놓고 식칼로 내리치려 할 때도 얼른 손을 빼서 달아났고 또 마셨다. 예비고사 1기생인 나는 시험 보기 1주일 전에 ‘생누룩’ 막걸리 석 되를 마시고 한겨울 논바닥에서 잤다. 그리고 (오로지 막걸리 원 없이 마시려는 욕망 하나로) 고려대에 들어가서 마시고 또 마셨다.
‘마셔도 사내답게 막걸리만 마신다’라고 막걸리 찬가를 불렀지만 나는 마셔도 빚을 내서 마셨고, 전날 실수로 얼굴이 화끈거리면 그 창피를 덮기 위해 또 마셨다.
대충 여기까지 추억의 치약을 짜고 나니까 또 술발이 당기는구나. 그런데 그 여자는 나의 이런 생의 이력을 보고서도 눈물이 솟구쳤다는 말인가. 나는 단 한 번도 이념을 위해서 또는 노동자, 빈민을 위해서 나의 시간을 내거나 술잔을 든 적이 없다. 그냥 소소한 개인사, 남자들의 자잘한 일상사에 온몸 바쳐 술을 마셨을 뿐이다.
그러니 나의 어깨를 만지며 등 뒤에서 흐느꼈던 여인이여. 그대가 맥을 잘못 짚었던 게 틀림없소. 아니면 내가 꽐라 상태에서 헛것을 보았거나.
△ 윤동혁(尹東赫) PD
다큐멘터리 프로듀서로 한국일보 MBC, SBS 등을 거쳐 강원도와 경기도 땅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집도 절도 없으므로) 프리랜서PD로 일하고 있다. 로 방송대상 최우수 작품상을 받는 등 한국방송대상을 3회 수상했다. 라는 책을 펴내는 등 집필 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경로우대증’을 받는 내년 1월을 계기로 ‘나홀로 방송국’을 열 계획이다.
#1. 김국진, 진미령, 양금석, 김완선 등 이혼을 한 뒤 혼자 살거나 아직 결혼하지 않은 중년 남녀 연예인들이 전남 해남을 찾아 낙지를 잡기도 하고, 시골 장터에서 장을 보며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2. 요즘 인기 상승 중인 힙합 가수 치타 등이 혼자 살아가는 모습과 생활을 보면서 김광규 등 혼자 사는 연예인들이 자신들의 생활 모습과 비교해본다.
글 배국남 논설위원 겸 대중문화 전문기자 knbae@etoday.co.kr
6월 5일 오후 11시 TV 화면에서 펼쳐진 두 모습이다. 김국진(50), 강수지(48) 등 혼자 사는 중년의 남녀 연예인들이 여행을 하면서 마음에 맞는 친구를 찾는 과정을 보여주는 SBS ‘불타는 청춘’과 김용건(69), 김광규(47) 등 혼자 사는 연예인들의 생활, 쇼핑, 취미, 패션, 친구 등 여러 가지 모습을 담아내는 MBC ‘나 혼자 산다’다.
요즘 TV 방송의 주요한 트렌드 중 하나가 급증하는 혼자 사는 사람의 삶과 생활을 담아내는 것이다.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요리와 식사에서부터 취미, 쇼핑, 패션, 연애나 친구 관계, 쇼핑까지 1인 가구의 생활이 예능 프로그램, 드라마 등 다양한 프로그램의 소재나 주제가 되고 있다.
산업구조와 사회상황의 변모, 의학 발달 등으로 인한 수명연장, 결혼과 이혼, 가족에 대한 인식변화 등 경제, 사회, 문화적 요인으로 혼자 사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 5월 발표한 ‘2014년 서울 서베이 도시정책 지표조사’에 따르면 혼자 사는 1인 가구가 24.3%로 가장 많았고 다음은 2인 가구(23.7%), 3인 가구(22.9%), 4인 가구(21.8 %), 5인 가구(7.3%) 순이었다. 부부끼리 혹은 부부와 친, 인척 등 같은 세대로 구성된 1세대 가구 비중은 38%였고, 부모와 자식이 함께 사는 2세대 가구 35.3%, 1인 가구 24.3%, 3세대 가구 2.4%였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1인 가구가 급증하는 추세는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이 비슷한 상황이다.
최근 들어 방송사들이 앞다퉈 혼자 사는 사람들의 현상이나 1인 가구의 생활을 담아내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혼자 사는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가 주요한 TV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트렌드는 점차 영화, 음악 등 대중문화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요즘 시청자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으며 많이 늘어난 것이 요리하는 것을 보여주는 ‘쿡방(Cook+방송)’과 식사하는 장면이나 음식 먹는 것을 보여주는 ‘먹방’이다. 쿡방과 먹방 상당수가 급증하는 1인 가구를 겨냥한 것이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 tvN ‘삼시 세끼’, ‘집밥 백 선생’, 올리브TV ‘한食대첩’등 수많은 요리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다. 이들 프로그램에선 혼자 집에서 간단하게 해먹을 수 있는 요리에서부터 건강을 챙길 수 있는 요리까지 다양한 요리법을 예능으로 재밌게 포장해 전달해주고 있다.
또한 아프리카TV 인터넷 방송을 통한 네티즌의 다양한 먹방에서부터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SBS ‘아빠를 부탁해’등 예능 프로그램 먹방까지 다양한 먹방 역시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많다. tvN 드라마‘식샤를 합시다’처럼 일부 드라마에서도 1인 가구의 요리와 식사를 통한 혼자 사는 사람들의 건강한 삶과 사랑을 담아내고 있다.
1인 세대 급증과 이혼, 사별 등 가족 해체로 인해 부모와 자식이 함께 사는 전통적인 가족 형태가 줄어들면서 함께 요리하고 식사하며 정담을 나누는 식구가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급증하는 1인 세대와 해체된 가족이 TV의 먹방과 쿡방을 통해 식구 부재에서 초래되는 결핍을 채우고 대리만족을 얻는다고 분석한다.
SBS ‘불타는 청춘’처럼 혼자 사는 중년 남녀들이 행복한 생활을 하기 위해 이성 친구를 사귀고 연애 상대를 구하는 방법을 보여주는 프로그램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동안 남녀 간의 만남을 다룬 TV 프로그램의 출연자는 20대 젊은 연예인이나 일반인이 주류를 이뤘다. 하지만 최근 들어 혼자 사는 중·장년의 사람들이 출연해 친구나 연인 등 짝을 찾는 프로그램이 증가하고 있다.
‘불타는 청춘’의 연출자 박상혁 PD는 “혼자 사는 중년의 남녀들이 전국 곳곳으로 여행을 떠나 새로운 친구들을 만들고, 열정과 젊음을 되찾고, 힐링을 하는 프로그램이 ‘불타는 청춘’이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정보나 방법을 프로그램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다”고 프로그램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이밖에 KBS ‘비타민’등 건강 프로그램에서는 이전과 달리 혼자 사는 사람들의 건강을 챙기는 요령 등 1인 가구를 위한 내용을 대폭 강화하는가 하면 경제 관련 케이블TV에선 혼자 사는 사람들의 재테크 정보 등을 소개하는 프로그램도 속속 신설되고 있다.
MBC ‘나 혼자 산다’는 혼자 사는 사람들의 생활 전반을 다룬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혼자 사는 사람들의 의식주부터 취미, 동호회 활동, 문화생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며 여러 가지 정보와 트렌드를 제공해 혼자 사는 사람들의 높은 사랑을 받고 있다.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하고 있는 중견 연기자 김용건은 “나 역시 이 프로그램을 통해 혼자 살면서 더 즐겁고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많이 배우게 된다”고 말한다.
방송사들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혼자 사는 사람과 1인 가구의 생활과 문화를 다양한 형태로 프로그램에 수용할 것으로 보인다. 혼자 사는 사람들과 1인 가구의 생활을 다루는 것은 이제 TV와 대중문화의 강력한 트렌드이자 흥행을 담보하는 장르로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