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M.net ‘슈퍼스타K 시즌 5’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킨 이가 있었다. 김대성 스테파노(60)다. 당시 20년 전 아내와 사별한 그의 삶과 그가 부른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의 노랫말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며 많은 시청자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아내와 사별하고 어느덧 강산이 두 번이나 변했다. ‘슈퍼스타K 시즌5’ 출연 당시 털어놓지 못했던 그와 아내의 만남과 결혼 그리고 사별의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었다. 당초 무거운 분위기의 인터뷰가 될 것 같다는 예상과는 달리 매우 담담한 어투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Q. 첫만남은 어떻게 이뤄졌나요?
A. 군대 전역 후였어요. 당시 친구들과 조선 호텔 건너편에 있는 술집에서 술을 마셨어요. 아마 술집이름이 4시즌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가 81년이었죠. 친구들과 거나하게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찰나에 빨간 원피스를 입은 아가씨가 유난히 눈에 띄는 거예요. 첫눈에 반한거죠. 무작정 같은 버스에 올라타서 대뜸 말했죠. “만납시다”라고요. 그러더니 아내가 저를 “당신 미쳤어요?”라며 미친놈 취급을 하더라고요.
Q. 그러면 거기에서 만남이 끝난 거예요?
A. 아니요. 끈질기게 집 앞까지 쫒아갔어요. 당시에는 핸드폰이 없으니 저희 집 전화번호를 주었죠. 왠지 전화가 오지 않을 것 같아서 3월 1일 1시에 명동에 있는 서울 다방에서 기다리겠다고 했어요. 나와 달라고 부탁했었어요.
Q. 결국 다방에서 만남이 성사 됐나요?
A. 아니요. 공교롭게도 2월 27일에 급성 맹장수술로 다방에 나가지 못하게 됐어요. 맹장 수술을 하고 나서도 계속 다방 생각만 나더라고요. 그래서 아쉬운 마음에 친구를 보냈어요. 아내가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 확인하라고 말이죠. 조마조마 하면서 기다리고 있는데 2시쯤 전화가 오더라고요. 떨리는 가슴 부여잡고 전화를 받았죠. 안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하하. 그래서 친구에게 왔다 갔다는 쪽지나 남겨놓고 돌아오라고 부탁했어요.
Q. 어떻게 보면 첫눈에 반해 강렬하게 대시했는데, 실패로 돌아간 거네요?
A. 그렇죠. 그런데 이상하게 잠깐 스쳤을 뿐인데 계속 생각이 나더라고요. 첫 만남 당시 ‘망원동에 사는 조씨’라는 정보를 알게 됐는데, 그 정보만 가지고 무작정 망원동으로 갔어요. 당시 망원동에서 모든 버스가 지나다니던 정류장이 ‘홀트아동복지회’였는데 그녀가 그곳에 올 것 같아서 열흘간 무작정 기다렸어요. 근데 보이지 않더라고요.
Q. 대단한 열정이네요. 그렇게 기다렸는데도 보이지 않았다면, 그냥 한번 보고 지나친 인연 아니었을까요?
A. 그렇죠. 그렇게 잊혀져갔죠. 오랜 기간 본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금방 잊혀져갔어요. 그런데 그해 가을 선배가 운영하던 명동 구둣가게에 갔는데 우연히 ‘망원동 조씨’와 비슷한 여자를 마주쳤어요. 구둣방에 아르바이트 학생이었던 거에요. 긴가민가해서 선배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봤죠. 혹시 “‘조씨’냐”고 하니까 맞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 “‘망원동’ 사느냐”고 물어보니까 맞다고 하길래 확신이 들었죠. ‘아! 이게 인연인가보다’라고요. 그 이후 아내에게 많은 것을 물어봤었죠.
Q. 그러면 첫 만남 당시 왜 다방에 안 나왔다고 하던가요?
A. 당시에 불량해 보여서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맹장 수술이후 망원동에서 기다렸던 열흘 있잖아요? 그 때 망원동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갔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아무도 없는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죠. 하하
Q. 그 이후 연인 단계로 발전한 건가요?
A. 그렇게 만난 이후에 제가 엄청나게 대시했어요. 그런데 아내가 저를 믿지 못하더라고요. 저를 집안의 재력만 믿고 ‘놀고먹는 놈’처럼 생각돼서 미래가 불투명해 보였던 거죠. 당시에는 정말 그랬어요. 음악에 미쳤었죠. 음악도 지금과는 달리 메탈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에 불량해 보였을 거예요. 아내는 포크음악을 좋아했거든요. 아내가 나중에 그러더라고요. 놀기만 좋아하는 ‘베짱이 같은 사람’인 줄 알았다고. 그런데 이후 만남이 지속되면서 연인단계로 발전하는데 성공했어요.
Q. 연애를 하면서 데이트는 주로 어디서 했나요?
A. 사실 데이트는 별 것 없었어요. 당시 제가 하던 출판사에 아내가 많이 놀러 와서 출판사에서 데이트를 많이 했어요. 아내의 고향이 경기도 여주인데 여주 남한강에서 데이트를 즐겼던 것도 많이 기억에 남네요.
Q. 그렇군요. 그렇다면 결혼까지 순조롭게 진행된 건가요?
A. 사귀면서까지 아내는 절 많이 믿지 못했어요. 음악이라는 것이 사실 소득이 불안정적이잖아요. 그런 것에 대한 불안감에서부터 제 모습까지 믿기지가 않았나봐요.
Q. 그런데 결혼은 성공했잖아요. 결혼을 설득하는데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었나요?
A. 아내의 친구들을 포섭했어요. 아내의 친구들에게 최대한 괜찮은 남자로 보이려고 노력했죠. 그렇게 하니 아내의 친구들이 도와주더라고요. 아내를 설득도 해주고 말이죠. 괜찮은 남자인 것 같으니 결혼하라고 말이에요. 그렇게 아내의 친구들이 도와준 결과 그 이듬해 결혼에 골인하게 됐어요.
Q. 결혼 생활은 어땠나요?
A. 결혼 후에 지적인 수준 차이를 많이 느꼈어요. 문학소녀였던 아내와 나 사이에 많은 갭(차이)가 존재했죠. 아내는 결혼을 할 때도 혼수대신 제가 생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책 1000권을 가지고 들어왔어요. 문학적으로 많은 공부를 했던 집사람이었기 때문에 제가 작곡이나 작사하는 데에도 많은 영감을 줬어요.
Q. 음악적으로 어떤 영감을 받았나요?
A. 사실 젊은 시절에는 딥퍼플(Deep Purple)과 레드제플린(Led Zeppelin)이 하는 하드락 장르를 좋아했어요. 록커의 길을 걸으려 했던 제 삶을 180도로 바꿔준거죠. 아내가 알려준 레오나르도 코헨(Leonard Cohen)의 ‘버드 온 더 와이어(Bird On The Wire)’를 듣고 충격에 빠졌어요. 정말 새로운 음악에 눈을 뜬 계기였습니다. 이후 포크음악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Q. 그런데 젊은 시절 음악의 길을 포기하고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입사했습니다. 아내가 음악하기를 반대한 것인가요?
A. 아니에요. 아내는 제가 음악 하는 것을 말리지 않았어요. 오히려 응원을 해줬지요. 그런데 아내가 항상 이야기한 것이 음악하는 것도 좋지만 가장으로서 집안은 먹여살려야한다고 말이죠. 당시 수입이 변변치 않았거든요. 그래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입사하게 된 겁니다.
Q. 무난한 결혼생활을 하시다가 아내가 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 때 심정을 말해주실 수 있나요?
A. 아내가 30대 초반이던 그 당시 위암 선고를 받았었죠. 굉장히 두렵고 무서웠어요. 저도 함께 죽고 싶은 심정이었으니까요. 정말 힘들어하고 있을 때 아내가 한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그 말을 듣고 더 담담히 죽음을 준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나는 이곳에서 멋있게 죽을 준비를 하고, 당신은 이곳에서 아이들과 잘 살 준비를 합시다.”
Q. 아내를 떠나보내고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외로움이 엄습할 때 새출발을 생각해 본 적도 있나요?
A. 사실 다른 여자를 만나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일년에 서너번 저를 찾아와요. 꿈속에서 말이죠. 잊혀질만하면 찾아옵니다. 꿈에 한번 나타나면 그 모습이 너무나 생생해서 그 여파가 남아있어요. 서너달에 한번씩 그러니 못 잊는거죠 뭐. 어느 날은 미니쿠퍼를 끌고 와서는 “드라이브 가자”고 하더라고요. 정말 생생했어요. 제 모습은 이제 60대 아저씨가 됐지만, 꿈속에 아내의 모습은 아직도 20년전 그대로에요. 그런데 그렇게 한번 나타나면 힘이 되더라고요. 꼭 어렵거나 힘든 시기에 나타나서 힘을 불어 넣어주고 가요.
Q. 하늘에 있는 아내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어떨까요?
A. 한마디로요? 한마디로는 안되죠. 할 수 있는 모든 미사여구를 다 붙여주고 싶어요. 글도 많이 쓰고 문학적 조예도 깊어 제 삶을 바꿔놓았으니 말이죠. 또 이제는 저에게 빼놓을 수 없는 신앙생활이라는 새로움을 알려주었습니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여자입니다. 한마디로는 힘들어요.
Q.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할 말이 있다면?
A. 결혼기간동안 잘 못해준 것이 너무 후회돼요. 아내의 정신 세계를 못 따라 갔던 것 같아요. 사실 30대, 40대 때보다 요즘이 더 보고싶어요. 살아 생전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못했던 것 같아요. 이제야 말해주고 싶어요. “사랑해 여보!”
제2의 인생 멋지게 꾸며가는 전남 순천의 ‘월암공주’ 이인자씨
50대 중반의 나이에 자영업을 하는 남편의 불확실한 미래가 귀농귀촌을 결정하게 된 계기였다. 하지만 마을 어른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면서 새로운 인생을 배워갔다. 농사와는 담을 쌓고 살려던 생각이 바뀌면서 귀농귀촌인들에게 희망의 꿈을 전하고 싶어졌다.
◇지긋지긋해 떠나려던 농촌으로 돌아오다 = 충청도 공주의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 시골 생활이 지긋지긋해 언제든 시골을 떠나야 한다는 마음으로 유년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서울로 상경해 직장생활을 했다. 농사와 관련된 사람과는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던 계획은 성공했지만, 지금 내 직업은 농업인으로 바뀌었다. 아직 내 인생이 성공인지, 실패인지는 가늠이 잘 안 된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늘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2008년까지 귀농귀촌은 나와 아무 관계없는 일이었다. 그저 평범한 주부로 살면서 남편의 큰 배려로 뒤늦게 대학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친구가 순천시 농업기술센터에서 전원생활대학 과정을 한다며 같이 다니기를 권유했지만 나와는 거리가 먼 생활이라며 거절했다.
그런데 주변에서 한두 명씩 귀농귀촌에 관심을 갖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나도 순천시 전원생활대학 과정을 접수하고 말았다.그것도 혼자가 아닌 남편까지 동행하고 말이다. 우리 부부는 전원생활대학 과정을 무사히 이수했다. 최종적으로 귀촌을 결심한 동기는 자영업을 하는 오십대 중반인 남편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앞으로 아이 둘을 출가시키고 더 나이가 들면 언젠가는 사업을 접어야 할 시점이 올 텐데, 그때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늘 고민이었다.
남편도 흔쾌히 허락해 어렵게 터 넓은 시골집을 구입했다. 손수 인부들과 집수리를 시작하면서 나의 귀촌생활은 시작됐다.한편으로 아이들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아이들은 “우리가 결혼해 나가고, 아빠 엄마가 더 나이 들어 시골에서 아프면 병원이 멀어 어쩌려고 하시냐”며 걱정했지만 지금은 제 아이들에게 추억을 만들어줄 시골 외가집이 생겼다며 좋아 한다.
처음에는 집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일도 많았다. 포클레인이나 큰 차가 다니면 길이 망가지니 자제하라는 것은 그래도 이해가 됐다. 길을 만들 때 자신의 땅을 기부해 만든 길이니 자기의 길이라는 논리로 밀어부칠 때는 마음이 상해 잠시나마 귀촌생활을 후회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마당 작업 과정에서 앞집 경운기 주차 공간을 만들어주고, 새로 지은 저온창고의 한쪽을 같이 사용하는 등 주변 사람들과 함께 사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자 이웃은 그 누구보다 내게 큰 힘을 주는 든든한 지원자가 됐다.
지금도 마을 분들을 만나면 언제나 반갑게 인사한다. 대부분 어른들이 반겨주신다. 그러다가도 내가 뒤돌아서면 등 뒤에서 “이런 시골에 뭐 해먹을게 있다고 왔을꼬. 쯧쯧…” 하시며 흉을 보기도 한다. 이제 뒤통수 가려운 그런 말은 못들은 척 지나쳐 버리는 것이 일상이 됐다. 우리 집은 마을 한가운데여서 수시로 마을 어르신들이 들리시는데, 그럴 때마다 간식을 준비해드렸다. 그러다보니 어느 때부터인가 단감, 고구마, 무, 야콘 등을 가져다주시며 젊은 사람과 함께 살게 되어 너무 좋다고들 말씀하신다.
나 또한 새로운 음식이 있으면 마을 회관 어르신들까지 챙기는 습관이 생겨 이제는 제법 ‘큰 손’이 되어버렸다. 옆집 아주머니는 “집이를 뭐라 불러야 하는지 알려 줘봐” 하신다. “저는 충청도 공주가 친정이고, 공주 이씨이고, 현재도 앞으로도 공부를 해야 할 주부이기 때문에 공주라 불러주세요”라고 말씀드렸더니 “아 그래, 공주 맞다. 이제부터 공주댁으로 부를 테니 그리 아셔” 하며 웃으신다.
◇산야초 장아찌와 건나물로 짭짤한 수익 = 수리한 집은 제조시설로 용도 변경해 준공하고, 아주 많은 고민 끝에 외서면 월암리에 ‘월암마실’이란 이름을 붙여 사업자등록까지 했다. 마을에서 땅을 임대하려 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 집을 소개 해준 분께서 고맙게도 밭 700평을 무상으로 임대해주셨다.
2012년 봄, 처음으로 임대한 밭에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재배할 수 있는 호박, 가지, 토란을 심어 건 나물을 만드는 것으로 나의 농촌 생활이 시작됐다. 작년 봄부터는 시골에서 구할 수 있는 두릅, 가시오가피, 죽순, 엄나무순 등 봄나물을 이용해 산야초 장아찌를 열심히 만들어 나만의 제품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제품을 보관할 저온창고가 없어 고민하던 중 ‘우수창업농 지원사업’으로 저온창고와 조그마한 작업장을 건축할 수 있었다.
작년에는 저온창고가 없어 애써 만든 건 나물이 습기로 인해 망가지기도 하고 이웃집 저온창고 신세를 지면서 한해를 보냈는데 올해는 여러 가지 건나물, 장아찌 등을 저온창고에 맘껏 저장할 수 있어 얼마나 마음 편한지 모른다.
산지에서는 잘 거들떠보지도 않던 하품 농산물을 건조해 시장에 판매하면서 농가소득으로 짭짤한 소득을 올리는 내 귀촌 생활을 눈여겨보시던 이웃 한분은 앞으로 힘든 일 있으면 같이 하시자고 하신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고,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 = 50의 나이에 대학을 졸업하면서 변한 것이 있다면, 뭔가를 배운다는 것에 두려움이 없어지고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스스로 가지게 됐다는 점이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꽃차 3급’ 과정과 자격증을 취득해 귀촌생활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여러 가지 꽃들로 꽃차도 만들고, 다른 방법을 응용해 야생차를 만들어 지인들과 나누고 고객들에게 전하기도 한다.
유난히도 더웠던 올 여름에는 더위를 피해 자투리 시간에 천연비누 제조법을 배워 단호박, 자소엽, 당귀 등 농산물을 이용해 천연비누를 만들기도 했다. 농가에서는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자원이 많고 조금만 신경 쓰면 여러 가지 천연비누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아직은 서툴지만 나의 귀촌생활은 이렇게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어깨 너머로 배운 블로그, SNS를 통해 제품 판매경로도 조금씩 뚫었다. 무엇보다 즐겁고 행복한 것은 이 시대를 사는 한 사람으로써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나를 이야기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소박한 시골 살이 이야기와 힘들었던 일, 즐거웠던 일을 나만의 이야기로 엮어낼 수 있어서 하루하루가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그동안 관심을 가졌던 아동요리 공부를 이번 가을학기에 등록해 일주일에 한번씩 열심히 배우고 있다. 다른 교육생들은 봄 학기에 수강을 시작했고 나만 초보학생이지만 뒤처지지 않으려고 요리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렇게 공부를 계속하는 이유는 앞으로의 귀농생활에서 나 스스로를 지켜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고 그냥 시골생활을 한다면 발전이 아닌 그대로 정체될 것 같다.
남편은 가끔 “공부는 언제까지 해야 끝나느냐” 묻기도 하지만 나는 할 수 있는 동안까지 공부는 계속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열정이 없었다면 난 그저 남편만 바라보는 평범한 주부로서의 인생을 살아가지 않았을까.
어떤 분들은 “시골 생활을 결심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느냐”,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 묻지만 그 누군가가 아닌 내가 시골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다른 귀농귀촌인들에게 희망과 꿈을 주기 위해서라고 말하곤 한다. 세월이 더 흐른 뒤에 나이가 더 들어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 또한 행복이 아니겠는가.
◇마을 어른들과 함께라서 더 행복한 귀촌생활 = 초보 농사꾼이다 보니 마을 어른들이 보기에는 그저 소꿉놀이 정도로 보이는지 텃밭의 작물을 보면서 그때그때 조언을 해 주신다. 혼자 힘들어 하는 일은 직접 농기계로 말끔히 해 주기도 한다. 만약 마을 분들이 아직도 나를 ‘뜨내기’로 생각한다면 이런 도움을 주셨을까?
이런 고마움을 조금이라도 마을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도울 수 있는 일에는 적극 동참하고 있다. 마을에서 생산되는 농산물 홍보는 물론 판매에도 열심이다. 마을 주민이 되었다며 텃밭에 밑 걸음까지 챙겨주는 고마운 이장님도 계시고, 밤늦도록 멸치젓을 담아 주는 어르신도 계신다. 고추장, 된장 간 봐 주신다고 두 팔 걷어 부치고 도와주시는 어르신과 보리 엿기름 기르는 것 알려 주시면서 딸처럼, 며느리처럼 하나하나 챙겨주시는 마을 분들이 너무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순천시 외서면은 주암호 상류 지역이다. 이런 특성에 맞는 작물을 이용한 새로운 상품을 개발할 계획이다. 다른 지역에 비해 지대가 높기 때문에 배추, 무를 생산하는 농가가 많고 나 또한 무를 재배하기에 무를 이용한 맛있는 무장아찌와 한과를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됐다.
농촌에서 젊은이는 찾아보기 힘들고 노인들뿐이라는 이야기는 생소한 게 아니다. 게다가 절반 정도는 독거노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농촌 실정을 늘 걱정하며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던 중, 무장아찌와 한과를 생각해 낸 것이다. 집집마다 무를 재배하고 있고, 한과 역시 농한기인 겨울에 만드는데 작업 환경이 좋지 않다. 그래서 이번에 건축한 작업장에서 좀 더 위생적이고 편리한 환경에서 한과를 만들어 판매해 보기로 했다. 큰 노동력이 아닌 단순 활동을 통해 노인들의 무료함을 해소하고, 노인 소득의 기쁨과 동시에 마을의 발전을 위한 일이 아닐까 싶다.
앞으로 마을 어른들과 함께 이런 일들을 하면서 마을사업으로 이끌어 가고픈 마음이다. 이런 작은 노력으로 마을 분들 모두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개인적으로 한 가지 꼭 욕심내고 싶은 일이 있다. 지금까지 만들어온 장아찌 요리를 담는 나만의 책을 만들고 싶다. 올 추석에 장아찌를 선물로 받으셨던 분들께 서 짜지 않고 맛있다는 메시지를 보내줘 커다란 용기를 얻었다. 언젠가는 꼭 꿈을 이루도록 노력하겠다.
·귀농 전 거주 지역: 순천 시내
·귀농 전 직업: 주부
·귀농 결심동기: 미래에 대한 준비
·귀농 선택작목: 건나물류(고사리, 취나물, 죽순, 호박, 가지), 장아찌
·귀농귀촌 교육이수 실적: 순천시 농업기술센터 귀농귀촌교육
·귀농연도: 2011년
·귀농시 영농기반: 없음
·연간 수익: 2012년 1000만원
◇ 쥐띠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상, 건강운 : 중
바다와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만리가 푸르나 자만심은 금물이다.
84년생 : 오해가 생기니 내가 먼저 풀어야 이야기가 된다.
72년생 : 비정상적인 일로 헤매면 재운이 오다가 물러간다.
60년생 : 정당한 재운은 길하나 과욕을 부리면 오히려 손재가 온다.
48년생 : 투자는 재미없으나 막힌 일은 서서히 풀린다.
◇ 소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상
선의의 경쟁은 나에게는 채찍질이 되니 급해도 마음의 여유를 가져라
85년생 : 진행하고자 하는 일에 방해가 많다.
73년생 :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으니 주위를 살펴보고 진행하자.
61년생 : 지나친 음주는 건강도 마음도 어렵게 만든다.
49년생 : 옛일이 재수를 열어주니 옛날 사람을 찾아라.
◇ 호랑이띠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상, 건강운 : 중
활발한 움직임이 운을 열어주니 모든 일을 게을리 하지 마라.
86년생 : 움직이는 만큼 소득이 돌아오니 열심히 하라.
74년생 : 상대에게 강한 믿음을 줘야 일이 잘된다.
62년생 : 공연한 시비로 손재수가 많으니 가던 길 그대로 가라.
50년생 : 분주하고 일거리는 오가는데 실속이 없다.
◇ 토끼띠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상, 건강운 : 중
하늘의 내림이니 도움을 사양 말고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87년생 : 계획을 세웠다면 기다리지 말고 바로 실천하라.
75년생 : 미루어 오든 일들이 해결될 조짐이 보인다.
63년생 : 변동 변화의 운이니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51년생 : 갑자기 분주해지나 새로운 투자는 보류하라.
◇ 용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생각지도 않은 일이 화를 불러일으키니 간섭은 금물이다.
76년생 : 사촌이 간다고 나도 가면 해가 많다. 조용히 기다림이 길하다.
64년생 : 무슨 일이든 나서면 재수가 막힌다.
52년생 : 갑갑하든 체증은 내려가나 새로운 일은 삼가라.
40년생 : 건강에 무리가 안 가도록 서서히 움직여라.
◇ 뱀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무엇이든 정성을 드리면 안 되는 일이 없는 법인데 마음을 열라.
77년생 : 기다리던 연락은 오나 재수는 불길하다.
65년생 : 여러 가지 생각은 두고 한가지만 뚫으면 열린다.
53년생 : 만나자는 약속이 들어오면 만나보면 좋은 소식이 있다.
41년생 :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막힌 일이 열린다.
◇ 말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작은 일에도 소홀하지 말고 실리를 추구하라.
78년생 : 사랑은 마음먹은 대로 금전은 구하지 마라.
66년생 : 새로운 문서에 함정이 있으니 윗사람에게 상의하라.
54년생 : 번잡한 일들이 많으나 한가지 집중하면 재수는 들어온다.
42년생 : 작은 질병도 소홀히 하면 걱정거리 생긴다.
◇ 양띠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길고 짧은 것은 대어봐야 안다 미리 겁먹지 말고 속내를 보이라.
79년생 : 힘차게 밀면 연락이 온다. 애정문제도 좋은 소식 있다.
67년생 : 두드리면 열린다 말도 안 하면 누가 알아주겠는가 발표가 중요하다
55년생 : 음지가 양지된다고 했으니 지금이 그 시기이니 움직여라.
43년생 : 넓은 강에 큰배는 있으나 사공이 없는 격이라 투자는 안 된다.
◇ 원숭이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본전 생각하면 새로운 밑천이 나간다 잃어버린 것은 잊어라.
80년생 : 애정이 싹트는 때이다 기다리지 말고 내가 움직여라.
68년생 : 조그마한 투자는 이익이 있으나 큰 투자는 불길하다.
56년생 : 잘 풀리든 일이 다시 막히는 운이니 급하게 처리하면 손해다.
44년생 : 지나간 일은 잊고 새로운 일에 힘을 투자할 때.
◇ 닭띠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상, 건강운 : 중
장수가 승전고를 울리니 애틀 태우던 일이 해결된다.
81년생 : 목마른 나무에 단비가 내리니 꼬였든 일이 점차 풀린다.
69년생 : 올바른 마음은 횡재 수를 가져온다.
57년생 : 귀인이 도우니 재수 없든 일이 이제야 풀린다.
45년생 : 귀인은 동방에 있으니 약도 의사도 재수도 동방에서 찾아라.
◇ 개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가을 꽃나무가 서리를 맞는 격이니 모든 일에 신중을 기하라.
82년생 : 명예 체면이 손상되는 일로 마음이 상하나 늦게는 좋다.
70년생 : 큰 횡재가 올 기운이 보이니 투자도 즐겁다.
58년생 : 체통에 흠이 가나 실소득은 좋다. 실리를 구하라.
46년생 : 둥근 달은 나를 기쁘게 하니 한밤에 좋은 손님이 온다.
◇ 돼지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중, 건강운 : 하
관재 구설이 왕래하니 오늘만큼은 먼지를 묻히지마라.
83년생 : 판단력이 흐려져 이상한 일이 생기니 조심하라.
71년생 : 사막에서 우물을 만난 격이나 조심해서 마셔야한다.
59년생 : 구사일생이라 코빠진 일이 어렵게 얻어진다.
47년생 : 앞 뒤 분간 없이 밀어붙임은 화를 자초하는 것이다.
출처| 운세사랑(http://www.unselove.net)
◇ 쥐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강한 주장은 손해를 불러 일으킨다. 자제함이 길하다.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자신의 주장은 잠시 접어둠이 길할 것이니 사태가 불길하니 너무 앞서 진행하다 일을 그르칠 수 있다.
84년생 : 쓸데없는 것에 고집부리다 시간만 지체된다.
72년생 : 애정 갈등은 심하나 재운은 길하니 투자함이 좋다.
60년생 : 수레는 두 바퀴가 구르는 것이니 독단은 금물이다.
48년생 : 주관적 감정을 버리고 객관적인 계획이 통할 때.
◇ 소띠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본심을 버리고 욕심을 내면 이익이 사라지고 구설이 많다. 과욕은 금물이니 모든 해가 만족하지 못하는 것에서 비롯됨이다. 적정선에서 만족하는 중용을 배우라.
85년생 : 놀이에 너무 정신팔리면 시기를 잃게된다.
73년생 : 힘겨운 일이 조금씩 풀려가나 다 풀리지는 않는다.
61년생 : 몸은 고통이나 재수는 길하다.
49년생 : 투자는 작게 신중하게 결정해야 손재가 없다.
◇ 호랑이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밭갈지 않고 김매지 않으면 가을에 무엇을 거두리. 노력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길운이 온다 하여도 받아들일 능력이 없으니 비록 대운이라도 뜬 구름과도 같고 소재를 얻을 것이다.
86년생 : 연인과의 대화는 달콤하나 인연이 아니로다.
74년생 : 가래로 막을 것을 호미뿐이니 힘에 겨운 일은 쳐다보지도 마라.
62년생 : 다른 일의 갈등은 버리고 자기 본연의 일에 전념해햐 한다.
50년생 : 사심없는 정당한 일이라면 합의가 잘 된다.
◇ 토끼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좋은 일로 인연 맺으나 도리어 근심이 생기는 때이다. 인간 근심이 생기니 겉만보고 판단하지말라 속내를 쉽게 보이지 말것이니 겉과 속이 다른이로 인해 화를 입을 까 두렵다.
87년생 : 주변에 나쁜 환경을 물리치고 고통에서 일어나라.
75년생 : 기운은 장사이나 힘을 나눌 곳이 없구나.
63년생 : 갑갑한 일을 합의 쪽으로 이끌면 해결된다.
51년생 : 느긋한 마음으로 밀고 나가면 안되는 일이 없다.
◇ 용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막힘이 많은 하루이나 지혜로 이겨내는 머리가 필요하다.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지체됨이 많아 일신이 곤고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재치로 이겨나갈 것이니 그리 채념하지 말라.
76년생 : 일은 꽉막혀 있으나 안정하면 길하리라.
64년생 : 내가 생각하던 사람은 만나지나 생각대로 일이 안된다.
52년생 : 겉은 화려하고 내면은 침체라 충동적인 일들을 삼가라.
40년생 : 거두어 들일때이니 무리한 투자는 후일이 괴롭다.
◇ 뱀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경쟁 방해는 많으나 바른 마음이 이기게 되니 마음을 바로 열라.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방해의 공작이 도사리고 있으나 중용의 길을 선택하면 길함이 있을 것이다. 흔들리지 말라.
77년생 : 연분은 연분인데 갈등과 싸움이 일어나니 생각을 바로하라.
65년생 : 아랫사람이 애먹이니 집안 단속을 잘해야 한다.
53년생 : 모든 것을 내 손으로 다 해야하니 번거로우나 모두다 내것이로다.
41년생 : 움직임은 화를 자초하니 조용히 기다림이 상책이다.
◇ 말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상,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조력자를 얻으니 마음이 가볍다.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난관에 봉착하여도 귀인의 도움으로 잘 풀려 나가니 운기에 맡기라 길함이 서성이고 있다.
78년생 : 이것도 저것도 내 마음대로이나 가볍게 움직이면 손해본다.
66년생 : 재수는 대길하나 가정에 우환을 조심하라.
54년생 : 부하를 조심히 다루라 좋은일에 하극상 일어난다.
42년생 : 가벼운 마음은 재수를 더하나 무거운 마음은 손재를 더한다.
◇ 양띠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믿은 도끼애 발등 찍힐일만 피하면 모두 열린다. 타인의 감언이설에 넘어가지 말것이니 가까운이의 말에 귀기울이지 말라. 손재를 면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79년생 : 합격의 통지나 윗사람의 조력으로 일이 잘된다.
67년생 : 재수 대통하고도 손재는 어쩔 수 없다.
55년생 : 망설이던 일을 처리하니 마음이 가볍다.
43년생 : 구설이 왕래하니 일들은 다음이 처리하자.
◇ 원숭이띠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힘을 다하여 성사는 시키나 이성으로 인한 근심이 생긴다. 애정사로 인해 손재가 발생하게 되니 넓은 마음으로 감싸 안으라 시련은 잠시일뿐 곧 좋은 사이가 될 것이다.
80년생 : 먹을 것은 많이 생기나 몸이 아플수라 조심해야 한다.
68년생 : 귀인의 도움은 있으나 이성을 조심하라.
56년생 : 재물을 조심하라. 친구가 나타나면 내 돈만 허비된다.
44년생 : 문서 도장을 조심하라.
◇ 닭띠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구설이 많으나 조심하면 모든 것이 잘 이루어진다. 입은 무겁게 귀는 길게 하라. 하지도 않은 일로 인해 공공연히 일신이 곤고해 질 것이니 마음만 아프게 된다. 자중하라.
81년생 : 힘차게 밀고 나가면 안되는 일이 없다.
69년생 : 조력자가 나타나고 재운도 길하다.
57년생 : 마음에 결정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한다.
45년생 : 엉뚱한 구설이 사람 잡으니 건강도 조심해야한다.
◇ 개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협력으로 일은 풀려나가나 집안에 근심이 남는다.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귀인의 도움으로 길할 것이나 가내에 근심이 생기니 잘 보살핌이 길 할 것이다.
82년생 : 애인관계에 신중을 기하라. 좋은일이 있다.
70년생 : 올바르게 행동만하면 오후에 좋은 일이 생긴다.
58년생 : 두 사람의 힘으로 일은 성사되나 건강을 조심하라.
46년생 : 자식들에게서 뛸 듯이 좋은 소식이 온다.
◇ 돼지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춘하추동 변함이 없는 운이니 생각대로 하면 성취한다. 운수가 평온하니 만사가 여의할 것이다. 모든일에 걸림돌이 없으니 경거망동만 하지 않는다면 태평할 것이다.
83년생 : 이성은 다가오고 재수도 좋은데 절제함이 길하다.
71년생 : 애정 갈등도 해소되고 재수도 좋으니 할 것은 잘 챙기자.
59년생 : 귀인의 도움으로 근심은 해소되나 손재수가 강하다.
47년생 : 오래 침체되었던 일들이 해결된다. 그러나 망동은 금물이다.
출처| 운세사랑(http://www.unselove.net)
19세기의 위대한 발견 중 하나인 아스피린. 독일의 화학자인 호프만이 아버지의 고통을 줄이기위해 버드나무 잎과 껍질을 이용하여 해열 진통제인 아스피린을 발견했다. 최근 겨울이면 해년마다 우리나라 축산 농가를 긴장시키고 피해를 주고 있는 조류독감의 치료제인 타미플루는 중국남부에서 자생하는 스타아니스(팔각)라는 식물에서 추출한 성분을 이용해서 만들고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의 종류는 지금까지 175만종이 밝혀졌는데,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생물종의 수는 약 10만종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이중 식물은 4310종정도다.
그러나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약효나 이용방법이 개발된 식물은 5% 정도에 불과하다고 하니니 앞으로 더 많은 연구와 개발이 필요할 것이다.
그 중 우리나라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어 가을이면 노랗게 물든 나뭇잎을 책갈피 속에 끼워두고 책장을 넘길 때마다 추억을 꿈꾸던 나무가 은행나무다. 은행나무에는 플로보노이드가 들어 있어서 유충이나 곰팡이 바이러스들을 살균, 살충해주는 역할을 하므로 책을 오래 보관하게 해준다.
은행나무는 약 2억년전인 중생대부터 지구상에 존재해온 나무로 은행나무과에는 은행나무만이 유일하게 현존하는 종이며 다윈은 은행나무를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말했다. 은행은 익혀서 먹으면 폐를 따뜻하게 하고 기를 늘리며 기침과 천식을 가라앉힌다. 본초강목과 중약대사전에서는 심장의 기능을 돕고 설사를 멎게하며 야뇨증 냉증 주독해소 강장작용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은행잎 추출물은 현기증, 이명, 두통, 기억력상실, 집중력장애 개선에 효과가 있다.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의 은행잎은 다른 나라 은행잎에 비해 효과나 성분이 10배 이상 높다고 한다. 한때는 외국에 수출까지 하던 효자 상품이기도 하다. 은행잎 추출물을 이용해 개발된 징코민은 혈액순환촉진재로 혈소판이 응고되지 않도록 점도를 낮추어주고 혈관을 확장하는 역할로 인해서 심장병을 예방하기도 하고 당뇨병으로 피가 굳어져 괴사가 일어나는 것을 예방한다. 중국의 마오쩌둥도 평소에 은행잎을 달여 먹으면서 건강을 유지했다고 한다.
은행은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잔주름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으며 은행잎에 들어있는 플라보노이드 성분은 세포막을 보호하는 기능을 하기도 해 화장품원료로도 사용되고 있다.
열매는 당질, 지방질, 단백질이 주성분이며 카로틴, 비타민, 칼슘, 칼륨, 인, 철분 등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술안주로 많이 이용되고 최근에는 은행이 첨가된 소면, 칼국수, 과자류로 개발되고 민간요법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나무 중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나무가 용문산 용문사에 있는 은행나무다.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세자인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슬픈 여행길을 가는 중에 심었다 하기도하고 신라의 고승인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고 간 것이 나무로 되었다고도 한다.
이제 완연한 봄이 되어 꽃 봉우리들이 살포시 올라오고 있다. 봄이 되면 우리주변에 약이 되고 우리건강에 유용한 나무 한그루씩 심어 가족과 이웃의 건강을 지키는데 일조했으면 한다.
5년 동안의 병상생활을 굳건히 지켜주던 아내마저 인공심장판막 이식술과 부정맥 확장 수술을 받았다. 몸을 추스르기 위해 찾아온 순창의 월곡마을. 농사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저 지역 주민들과 더불어 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건강도 일도 찾은 당당한 농사꾼이 됐다.
◇공기 좋은 곳에서 요양하려고 온 월곡마을 = 내 고향은 전북 정읍이다. 어렸을 적 도시로 나가 인천에서 살다가 건강이 좋지않아 산 좋고, 물 좋은 청정지역인 이곳 순창으로 7년 전에 이사를 왔다. 그 때 당시에는 몸이 너무 아파 힘든 농사는 생각하지도 못했고 그저 공기 좋은 곳에서 요양이나 하려는 생각이었다. 마침 처갓집이 순창 팔덕면 월곡리이기에 이곳 월곡마을로 오게 됐다.
처음 이곳에 올 때, 땅 640평을 구입해 집을 지으려고 했다. 하지만 처음 집을 지으려 할 때부터 쉽지는 않았다. 마을에서는 이런 저런 말들이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 집의 위치가 마을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마을 상류에 살면서 축산업을 할까봐서 집을 못 짓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절대 축산업은 하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하게 됐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 집 문제로 마을에서는 임시 총회가 열렸고 찬반 투표까지 했다고 한다. 그 결과는 5대 5라고 전해 들었지만 그래도 집은 계속 지을 수밖에 없었다.
마을 사람들과 관계가 매끄럽지 못했던 그때 돌파구가 된 계기가 있었다. 당시에 월곡교회 목사님이 팔덕면 독거노인 70분에게 반찬도시락을 배달하고 계셨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나누어 드리는 일을 맡아서 하게 됐다. 집을 지으면서도 봉사활동 하는 날에는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참여했다. 그런 노력 때문이었는지 집을 짓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집 짓는 일이 거의 마무리 될 무렵은 가을 추수 때가 다 되어서였다. 아스팔트 도로가에다 벼를 말릴 때였다. 오가다보니 다 말린 벼를 자루에 담는 일도 어른들에게는 힘든 일로 여겨졌다. 그래서 그 일이 보일 때마다 가서 도와 드리게 됐다.
아무런 의도도 없이 그냥 기쁜 마음으로 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마을 주민들의 인심이 얼마나 좋은지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추수가 끝나고 나니 그분들이 제일 먼저 쌀가마니를 우리 집으로 가지고 오신 것이었다. 농사를 짓지 않던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은총 같은 선물이었다. 40킬로그램의 쌀을 1포씩 가져다 주셨는데 집안에는 일곱 포대가 쌓였다. 그 쌀은 농사를 짓지 않는 우리 가족이 1년 동안 충분히 먹을 식량이었다. 참으로 고맙고 감사했던 기억들이다.
◇주민들과 함께 살다보니 ‘성공한 귀농’= 이런 일이 있으면서 내가 가진 기술을 통해 보일러도 무상으로 고쳐드리고 차
량봉사도 시작했다. 말이 봉사지 그리 거창한 일도 아니었다. 순창에는 5일마다 장이 서는데 차가 없는 분들을 위해 장터까지 모셔다 드리고 장터에서 점심도 같이 사 먹었다. 그럴 때마다 잔잔한 정담들을 나누며 가까워 질 수 있었다.
또한 마을에 농악단이 있었는데 농악에 취미를 붙이면서 지역 주민들과 더욱 가까워지게 됐다. 행사가 있으면 함께 즐거워하면서 마음이 통하게 된 것이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더욱 더 합심하려고 노력했다.
이듬해 마을 농가에서 수확한 오디와 복분자를 서울과 인천에 사는 지인들에게 직거래로 팔아드렸다. 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나는 대부분의 농산물을 직거래로 판매해 드렸는데 고사리와 잡곡, 고추 등은 직거래 고객이 많이 늘어나 지금은 인기가 아주 좋다.
그러다 보니 이곳에 이사 온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우리는 이미 이곳에서 오랫동안 살던 사람들처럼 너무나 친숙한 마을 주민이 됐다. 이렇게 마을 분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우리 부부의 건강도 좋아졌고, 살림살이도 늘어나면서 이제 당당한 농사꾼이 됐다. 꾸지뽕 묘목을 재배해 많은 소득도 올렸고 3000평이 넘는 부지에 꾸지뽕 농장을 만들었으며 이제는 꾸지뽕나무를 분재와 관상용으로도 만들어 농가 부업으로 활용 할 수 있게 됐다. 앞으로는 꾸지뽕 가공식품 개발에 많은 연구와 노력을 할 계획이다. 더불어 우리 농장을 관광농원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 부부가 건강을 되찾은 것을 꼽을 수 있다. 지금은 이곳에 이사 오길 참 잘 했다고 부부가 얘기한다. 농가소득도 늘어나 지금은 연간 6000만 원 정도 소득을 올릴 수 있어 행복한 귀농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던지 우리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귀농·귀촌을 꿈꾸고 있다. 그 중에 여섯 가정(17명)이 이곳 순창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는데 그 중에는 우리 자녀들의 가정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 집에는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가는데 자연스럽게 홈스테이를 하게 된 이유다. 사람들이 우리 집에서 머무는 동안 귀농 후의 삶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
정말 반가운 일은 또 있다. 귀농인들과 함께 마을에 빈집들을 보러 갔을 때 마을 분들이 얼마나 친절을 베풀어 주시는지 모른다. 진심으로 예비 귀농인들을 환영해 주시는 탓에 감동하여 꼭 이 마을에 오고 싶다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 그들이 살 집들을 현재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순창서 얻은 경험, 귀농인들에게 모두 전할 생각 = 장류의 고장 순창에 이사를 와서 제일 먼저 배우고 싶었던 것은 고추장, 된장, 청국장 만드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마을 할머니들을 집으로 모셔다가 고추장 만드는 방법도 배우고, 장 담그는 방법을 배우면서 어르신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어르신들에게 배운다는 자세로 다가서니 할머니들께서 직접 가르쳐 주시기도 하고, 모르는 부분은 일부러 이웃 사람들에게 물어 가면서까지 적극적으로 알려 주시기도 했다.
그렇게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전북대학교 식품공학과에서 실시하는 장류 만드는 방법에 대한 교육을 수료하게 됐고, 지금은 아주 맛있는 고추장, 된장, 청국장을 만들 수 있다. 이제는 내 나름의 비법을 레시피로 만들 수 있는 수준으로, 도시에 사는 형제들과 교회의 아는 사람들을 통해 상당한 양의 직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도시민들과의 직거래는 여러 가지 농산물을 다 팔수 있으므로 한번 고객은 영원한 고객이 된다. 정성을 들여 정직하게 거래를 하면 신뢰를 쌓게 되고, 그 신뢰가 소개로 이어져 거래처가 계속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 이곳 순창으로 귀농·귀촌 하시는 사람들에게는 고추장, 된장, 청국장 만드는 방법이나 여러 가지 조언을 아끼지 않고 함께 연구하여 순창의 장류사업 발전에 힘을 보태고 지역발전에 적극적으로 노력할 생각이다. 그리고 지역 어르신들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며 살 계획이다.
꾸지뽕 농사는 다른 작물에 비해 농가 소득이 많은 반면에 노동력은 적어서 아주 효율적이고 부가가치도 높다. 꾸지뽕나무를 접목하는 기술이나 재배 방법, 판매 방법 개발에 더욱 경주할 생각이다. 꾸지뽕을 첨가한 식품 개발 연구를 통해 부수적
인 농가 소득은 물론 순창 지역 발전에 힘을 보태고 싶다. 이를 위해 그동안 경험한 모든 기술은 순창이 좋아 귀농 하는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공개할 예정이다.
◇도시에서 살다 왔다고 더 잘 난 것은 없다 = 이런 생각들이 결실을 얻었는지 이번에 또 다른 두 가정이 귀농을 결심하게 되었다. 우리의 경험을 통해 앞으로 귀농이나 귀촌을 하시는 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스스로 마음을 열고 먼저 다가서라는 것이다. 농촌은 지역이 매우 좁아서인지, 아니면 낯설음에서 오는 편견 때문인지 외부사람들에 대한 경계가 매우 심
하기도 하다. 우선 어떤 사람들인가 하고 지켜보는 경우가 많다.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겠지만 타지에서 이사 오는 사람들이 간혹 마을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일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느끼는 것이 지역 주민들과 빠른 시일 내에 가까워져야 좀 더 편하고 안정된 생활을 하며 정착이 빨라진다는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는 지역사회 봉사활동 한두 가지 정도는 같이 해야 할 것 같다. 나 같은 경우에는 자율방재단에 가입해 봉사하면서 보람을 얻기도 한다. 지역을 위해 봉사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 지역 주민들에게 신뢰를 얻고 정착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내가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노력했던 것들이 그들과 소통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마을 사람들과 마음이 통해야 그들과 친해질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소통하려고 노력한 것은 아니다. 그저 진심을 다해
도왔고, 진심으로 배우길 원했고, 진심으로 이 마을주민이 되고자 했기에 마을 사람들도 그 진심을 알아주게 되면서 마을 분들 역시 마음의 문을 열고 받아들여 주신 것 같다.
진심은 이렇게 통한다. 도시에서 살다 왔다고 마을 주민들보다 더 잘 난 것은 없다. 도시에서 알던 지식이나 생활 방식들은 오히려 이곳에서 쓸모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 도시에서 살다 왔기 때문에 마을사람들에게 더 낮은 자세로 배워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남을 먼저 존중해야 나도 존중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이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통하는 가장 기본인 것이다. 이런 기본에만 충실 하다보면 빠른 정착의 지름길이 되리라 생각한다.
·귀농 전 거주 지역: 인천
·귀농 전 직업: 생산직
·귀농 결심동기: 요양
·귀농 선택작목: 꾸지뽕
·귀농귀촌 교육이수: 없음
·귀농 연도: 2006년
·귀농시 나이: 55년생
·귀농지 선택사유: 처가 인근
·귀농시 영농기반: 없음
·귀농 초기자금: 1억
·연간 수익: 6000만원(꾸지뽕 3500만원 이상, 묘목·고사리 등 2500만원)
·향후 계획: 꾸지뽕 가공공장 건축
◇ 쥐띠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상,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바다와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만리가 푸르나 자만심은 금물이다. 순풍에 돛을 단듯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순조롭게 진행되면 이룸 또한 클 것이다. 그러나 자만하는 가운데 우가 있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
84년생 : 오해가 생기니 내가 먼저 풀어야 이야기가 된다.
72년생 : 비정상적인 일로 헤매면 재운이 오다가 물러간다.
60년생 : 정당한 재운은 길하나 과욕을 부리면 오히려 손재가 온다.
48년생 : 투자는 재미없으나 막힌 일은 서서히 풀린다.
◇ 소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선의의 경쟁은 나에게는 채찍질이 되니 급해도 마음의 여유를 가져라.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경쟁자나 해방꾼이 있을 수다. 그러나 조급한 마음을 먹고 일을 진행한다면 그르칠 수 있으니 자중하라.
85년생 : 진행하고자 하는 일에 방해가 많다.
73년생 :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으니 주위를 살펴보고 진행하자.
61년생 : 지나친 음주는 건강도 마음도 어렵게 만든다.
49년생 : 옛일이 재수를 열어주니 옛날 사람을 찾아라.
◇ 호랑이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상
오늘의 일진은 활발한 움직임이 운을 열어주니 모든 일을 게을리 하지 마라. 동분서주하는 가운데 이익이 발행하게 되니 가을을 만난 말처럼 살이 찌게 될 것이다. 길한 운이 들어 올때 열씸히 노력하라.
86년생 : 움직이는 만큼 소득이 돌아오니 열심히 하라.
74년생 : 상대에게 강한 믿음을 줘야 일이 잘된다.
62년생 : 공연한 시비로 손재수가 많으니 가던 길 그대로 가라.
50년생 : 분주하고 일거리는 오가는데 실속이 없다.
◇ 토끼띠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상,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하늘의 내림이니 도움을 사양 말고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일진이 가히 좋으니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탄탄대로에 말을 달리는 것과도 같다 하겠다.그러나 자만으로 인해 우가 있을 수 있으니 경거망동은 주의하라.
87년생 : 계획을 세웠다면 기다리지 말고 바로 실천하라.
75년생 : 미루어 오든 일들이 해결될 조짐이 보인다.
63년생 : 변동 변화의 운이니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51년생 : 갑자기 분주해지나 새로운 투자는 보류하라.
◇ 용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생각지도 않은 일이 화를 불러일으키니 간섭은 금물이다. 돕고자 하는 일에 흉이끼니 경거망동은 삼가하고 자중함이 길한 괘이다. 섵부른 행함은 오히려 나를 흉하게 함을 명심하라.
76년생 : 사촌이 간다고 나도 가면 해가 많다. 조용히 기다림이 길하다.
64년생 : 무슨 일이든지 나서면 재수가 막힌다.
52년생 : 갑갑하던 체증은 내려가나 새로운 일은 삼가라.
40년생 : 건강에 무리가 안 가도록 서서히 움직여라.
◇ 뱀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무엇이든 정성을 들이면 안 되는 일이 없는 법인데 마음을 열라. 지성이면 감천이라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혼신을 다해 노력하라. 그러면 이룸이 클 것이다. 귀인이 도움이 있을 것이니 흉길이 반반이다.
77년생 : 기다리던 연락은 오나 재수는 불길하다.
65년생 : 여러 가지 생각은 두고 한가지만 뚫으면 열린다.
53년생 : 만나자는 약속이 들어오면 만나보면 좋은 소식이 있다.
41년생 :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막힌 일이 열린다.
◇ 말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상
오늘의 일진은 작은 일에도 소홀하지 말고 실리를 추구하라. 티끌모아 태산이라 작은 것에도 소홀이 대하지 말라. 후에 많은 이가 발생할 것이다. 운기가 길하니 도모하는 일마다 이룸이 크다.
78년생 : 사랑은 마음먹은 대로 금전은 구하지 마라.
66년생 : 새로운 문서에 함정이 있으니 윗사람에게 상의하라.
54년생 : 번잡한 일들이 많으나 한가지 집중하면 재수는 들어온다.
42년생 : 작은 질병도 소홀히 하면 걱정거리가 생긴다.
◇ 양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안다. 미리 겁먹지 말고 속내를 보여라.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노력하는 가운데 실리를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론만 바탕으로 탁상공론에 그치게 되면 실행하지도 않고 그만두는 것이다.
79년생 : 힘차게 밀면 연락이 온다. 애정문제도 좋은 소식 있다.
67년생 : 두드리면 열린다. 말도 안 하면 누가 알아주겠는가 발표가 중요하다.
55년생 : 음지가 양지된다고 했으니 지금이 그 시기이니 움직여라.
43년생 : 넓은 강에 큰배는 있으나 사공이 없는 격이라 투자는 안 된다.
◇ 원숭이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본전 생각하면 새로운 밑천이 나간다. 잃어버린 것은 잊어라. 지난것은 지난 것이니 뒤돌아 후회해 본들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과도 같게 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임을 교훈 삼으라.
80년생 : 애정이 싹트는 때이다 기다리지 말고 내가 움직여라.
68년생 : 조그마한 투자는 이익이 있으나 큰 투자는 불길하다.
56년생 : 잘 풀리던 일이 다시 막히는 운이니 급하게 처리하면 손해다.
44년생 : 지나간 일은 잊고 새로운 일에 힘을 투자할 때이다.
◇ 닭띠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상,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장수가 승전고를 울리니 애틀 태우던 일이 해결된다.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처음은 곤고하나 결과적으로는 나에게 득이되니 조급한 마음은 가지지 말라. 노력하는 가운데 복이 있다.
81년생 : 목마른 나무에 단비가 내리니 꼬였든 일이 점차 풀린다.
69년생 : 올바른 마음은 횡재 수를 가져온다.
57년생 : 귀인이 도우니 재수 없든 일이 이제야 풀린다.
45년생 : 귀인은 동방에 있으니 약도 의사도 재수도 동방에서 찾아라.
◇ 개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가을 꽃나무가 서리를 맞는 격이니 모든 일에 신중을 기하라.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생각지도 않은 일에 난처한 일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슬기로운 지혜로 잘 헤쳐 나가길 바란다.
82년생 : 명예 체면이 손상되는 일로 마음이 상하나 늦게는 좋다.
70년생 : 큰 횡재가 올 기운이 보이니 투자도 즐겁다.
58년생 : 체통에 흠이 가나 실소득은 좋다. 실리를 구하라.
46년생 : 둥근 달은 나를 기쁘게 하니 한밤에 좋은 손님이 온다.
◇ 돼지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하
오늘의 일진은 관재 구설이 왕래하니 오늘만큼은 먼지를 묻히지 마라. 관재 구설에 손재까지 발동하니 급하지 않은 일이라면 외출은 금물이다. 가내에서 자중함이 가장 길한 괘이다.
83년생 : 판단력이 흐려져 이상한 일이 생기니 조심하라.
71년생 : 사막에서 우물을 만난 격이나 조심해서 마셔야한다.
59년생 : 구사일생이라 코 빠진 일이 어렵게 얻어진다.
47년생 : 앞 뒤 분간 없이 밀어붙임은 화를 자초하는 것이다.
출처| 운세사랑(http://www.unselove.net)
'브라보마이라이프' 시니어기자단 1기로 선발된 이희영님이 보내온 글을 싣습니다.
이희영님(만 60세)은 인천 만수전화국장, 서울 관악전화국장 등 36년 동안 KT에 몸 담아왔으며 지난 2009년까지 최근 3년동안 KT계열그룹 ㈜KTIS 임원으로 재직한뒤 은퇴하신 분입니다. 재직기간중 KT-IDC 센터 장 등을 역임하는 등 기술기획 , 마케팅 및 영업전략, 특수사업, 조달 정책수립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업무를 담당해왔습니다. 급히 사진을 찍다보니, 화질이 좋지 않은 점 양해해달라는 이희영님의 요청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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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시기를 접하게 된 시니어세대들은 누구도 앞날의 불투명한 삶의 방향에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가 쉽지 않다.
보편적인 삶을 살아온 산업화시대의 직장인들. 이들은 은퇴시기가 다가온다는 사실을 알고 오래전부터 걱정을 해왔지만 막상 직장의 문을 나서야만 그 사실을 뼈져리게 깨닫는다. 특별한 묘안을 갖지 못한 시니어 세대들에겐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여러 가지 여건상, 제2의 삶을 준비 못하고 사회생활에 적응하기란 그 무엇보다 두려움이 앞설 수밖에 없다. 은퇴를 하고 직장 문을 나서면 먼저 잘 갖추어진 국민건강보험, 국민연금제도 등은 물론 고용안정기반의 인프라 시스템구축 덕을 많이 본다.
여기에 정부부처와 지방자치단체를 비롯한 유관부처, 산하 유관기관 단체들이 은퇴자의 전직 후 일정기간 동안 지급되는 실업급여, 창업 준비와 전직을 위한 일자리 알선, 창업 컨설팅, 귀농-귀촌 생활지원, 여가활동 지원,사회봉사활동, 건강관리, 힐링 생활 등 다양한 복지 프로그램이 앞다투어 추진하고 있는 것도 반가워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복지정책 또한 잘되어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현실적인 면을 본다면 관련 정부부처인 고용노동부의 국비무료교육, 실업자 무료교육, 구인구직과 중소기업청의 창업지원 활동 및 유관 단체인 노사발전재단 중장년일자리 희망센타,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와 서울시를 비롯한 각 지방자치단체의 은퇴자 지원프로그램 등이 있으나 실질적인 효과측면에서는 배려 모다 미명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지난해 가을 일산 킨텍스와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최된 취업박람회의 성과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일산 킨텍스의 경우를 본다면 막대한 예산을 들여 취업알선을 하기위한 노력은 극히 칭찬하고 싶지만 그 효과가 어떠했는가. 수십 개의 부스와 인력을 투입하여 거대한 행사를 한다고 했지만,
기업체별로 한 자리 숫자의 공모인원으로 홍보물을 앞세워 이벤트행사에 치우치는 일면이 방문자들을 안타깝게 했다.
그 마저도 방문하고 면접을 보면 중장년 시니어들에겐 현실과 먼 문턱이었음 체감 할 수 있었다.
성과를 확인해 보진 못했지만, 앞서 소개한 유관단체 역시도 정부의 정책에 성과에 치우치기라도 하듯 생색내기에 치중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중장년의 일자리 마련을 위해 노력해 보이는 모습은 엿볼 수 있으나 전직자들의 심리를 면밀히 분석하지 못한 정책 실행이 답답할 따름이다. 실질적인 지원활동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
지, 진정한 바렘이 무엇인지 다시한번 살펴봐야할 것이다.
물론 관계자들의 노력과 정책당국에 누를 끼칠 생각은 없지만 현실적으론 배려의 미명이란 말로 표현되어도 과언이 아닐가 싶다.
아울러 앞서 언급한 관계기관의 노력을 지적하자면 한마디로 자기네들이 이런 노력을 하고 있다는 씩의 성과위주의 정책 프로그램으로 생각이 되기도 한다.
그 정책을 추진함에 따라 필요한 예산을 지원받고 우리부처와 우리기관, 우리단체가 앞 다투어 홍보와 실적을 내세우고 있지만 도움이 필요한 시니어세대들 에겐 현실과 먼 정책이란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차제에 정부 관련부처에서는 이러한 실태를 점검하여 보완해야할 문제점을 면밀히 분석하고 문제점은 개선되어야 것으로 생각된다.
수 십년 동안 직장생활을 벗어난 시니어세대들의 삶의 가치를 추구할수 있는 정책마련으로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진정한 배려의 의미가 아닐까 싶다.
돈나무는 키우면 돈이 들어온다는 속설이 퍼지며 금전수(金錢樹)라고도 불린다. 이 때문에 관상용으로 가정에서 많이 키우며, 개업식 선물로 인기가 좋다. 돈나무는 가을과 겨울에 가지와 잎을 껍질과 함께 채취해 햇볕에 말려 약재로도 사용한다. 혈압을 낮추고 혈액순환을 도와 고혈압, 동맥경화 환자에게 좋고, 종기를 가라앉히는데 효과가 있어 습진과 종기 치료약으로도 쓰인다.
글ㆍ사진| 블로거 백경
바닷가 산기슭에 자생을 한다. 5~6월로 가지 끝에 취산화서로 달리며 꽃은 양성화이고 향기가 있으며 백색에서 황색으로 변한다. 삭과는 원형 또는 넓은 타원형이며 길이 1.2㎝정도로서 짧은 털이 밀생하고 연한 녹색이며 10월에 누렇게 익으면 3개로 갈라져서 적색 종자가 나온다. 붉은 점액에 싸인 종자가 여러 개 들어 있다.
돈나무는 정원수나 가로수로 널리 심고 산이나 들에도 흔하다. 따뜻한 지방의 바닷가에 자라는 늘푸른떨기나무다. 겨울철이나 봄철 꽃이 하얗게 피었을 때 잎과 줄기를 채취하여 잘게 썰어서 말려 약으로 쓴다.
고혈압과 관절염 등에 좋은 약초다. 맛은 쓰고 성질은 약간 따뜻하다. 돈나무는 중풍, 고혈압, 동맥경화, 협심증 등에 좋은 효험이 있다. 오래 복용하면 혈압이 안정되고 중풍을 예방할 수 있다. 관절염이나 신경통에도 좋은 효과가 있다.
독을 풀고 몸 안에 있는 습기를 없애며, 혈액순환을 좋게 하고 부은 것을 내리는 작용이 있다. 잎과 껍질을 짓찧어 뱀에 물린 상처에 붙이면 빨리 아물고 관절통, 종기, 타박상에도 짓찧어 붙이면 효력이 있다. 관절염, 골수염, 신경통 등에 치료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통증을 멎게 하는 효능이 있어서 진통제로도 쓸 수 있다.
출처| 지리산 산야초 교실 (http://blog.naver.com/khsmg)
올해는 설이 예년에 비해 보름 정도 일러 2월 14일이 정월 대보름이다. 우리 선조들은 한 해를 건강하게 보내기 위해 소망이 가득 담긴 대보름 음식으로 오곡밥, 복쌈, 진채식, 귀밝이술, 부럼 등을 먹었다. 보름과 관련해 온 가족이 집안에 등불을 켜놓고 밤을 세운다는 기록이 있다.
오곡밥은 지방·집안에 따라 다르기는 하나 주로 여섯 가지 곡식을 넣어 지어 먹는다는 뜻에서 곡식의 총칭인 오곡이란 말을 사용했다. 복쌈은 밥을 김이나 취나물에 싸서 먹는 것이다. 진채식은 취, 고사리, 고비, 시래기, 가지 등을 가을에 말려 뒀다가 보름에 삶아 먹는 것을 말하며 동국세시기에 청주 한 잔을 데우지 않고 마시면 귀가 밝아진다고 기록돼 있어 이를 귀밝이술이라고 한다.
특히 정월 대보름날 부스럼을 깬다 하여 밤, 호두, 대추, 잣 등을 깨물며 일 년, 열두 달 종기나 부스럼이 나지 않도록 축원했다. 우리 조상들이 과거부터 액운을 물리치고 풍년을 기원하는 각종 전통의식에 우리 임산물을 많이 애용했던 것은 참으로 지혜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중 잣나무는 정월 초하룻날 잣나무 잎으로 만든 술을 마시면 액운을 물리칠 수 있고 문간에 잣나무를 심으면 질병이 얼씬도 못한다고 믿었다. 잣나무는 소나무과 수종으로 소나무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 고유 수종이다. 한자로 오엽송, 백자목, 홍송, 신라송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잣열매는 해송자라 불리며 기를 돋우는 약재로 쓰인다. 그래서 정월 대보름 부럼으로 사용한다. 우수한 지방성분으로 자양강장재, 빈혈, 두통, 현기증, 신경통, 종기, 혈압 강하에 효능이 있으며 최근에는 노인성 질환 예방과 수험생 건강 관리에도 인기가 높다.
또 잣에 포함된 불포화지방산은 피부를 아름답게 하고 혈압을 내리며 스테미너를 강화해준다. 특히 혈액 속 콜레스테롤 양을 줄여 동맥경화 등 성인병 예방 효과가 있다.
잣은 예로부터 기호식품으로 널리 이용돼 왔으며 식혜, 수정과, 잣죽 등 요리와 차에 많이 쓰여 맛과 멋을 내는 재료로 사용됐다. 최근에는 잣막걸리와 잣국수, 잣기름, 잣두부 등 다양한 음식으로 개발돼 이용되고 있다.
잣나무는 예로부터 백단이라고 해서 배를 만드는 데 으뜸으로 쓰였으며 최근에는 건축 내장재, 가구재로 활용되고 있다. 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도 잣나무로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잣나무 잎을 태운 재는 임질이나 매독 등 각종 성병의 비방약으로 쓰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잣나무가 주로 가평, 홍천, 춘천 등 중부 이북에서 자라고 있다. 최근 가평군은 축령산의 잣나무 숲을 이용해 ‘잣 향기 푸른 숲’이란 치유의 숲을 조성해 개장을 앞두고 있다.
잣나무는 목재와 열매로부터 잎사귀까지 광범위하게 이용된다. 최근에는 방향성 물질인 피톤치드를 활용한 숲 유치원, 숲 치유가 큰 인기다. 우수한 자원을 지속적으로 심고 가꿔 산림 자원화에 더욱 힘써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