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입는다. 이때 딱 고민되는 몇 가지! 관리 안 된 ‘발’, 흐르는 ‘땀’ 그리고 냄새, 겨우내 쪄버린 ‘살’까지. 껴입으면 그만이던 시간을 지나고 나니 솔직히 골치, 아프다. 그렇다고 길고 긴 여름을 피할 수 없는 법! 귀찮아 잠시 방심했던 내 몸에 관심을 좀 가져보자. 여름철 고민되는 우리 몸의 한 글자 ‘발’, ‘땀’, ‘살’! 당신은 지금 어떤 게 가장 고민되십니까?
강동성심병원 피부과 김상석 교수 각 브랜드 제공
여름옷이 안 맞는다. 지나온 가을, 겨울, 봄이 야속하기만 하다. 뜨거워진 자외선도 신경 안 쓸 수 없다. 다이어트도 자외선 차단도 시급한 시니어라면 꼭 알아둘 것이 있다. 기온 높은 여름철, 많은 양의 땀을 흘리기 때문에 체내 수분 손실이 커질 수 있다. 야외 운동을 할 경우 강한 자외선으로 인해 기미, 주근깨, 검버섯, 잔주름이 늘어나는 등 다이어트 하려다 오히려 피부 노화가 급속도로 진행될 수 있다. 따라서 기온이 높은 날과 자외선지수가 높은 오전 11시~오후 2시 사이 야외 운동은 가급적 피하고, 체내 수분이 부족해지지 않도록 자주 수분을 섭취해줘야 한다.
STEP 01- ‘살’ 뺄 때 바르자
몇 년 전만 해도 다이어트와 관련한 다양한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올해 발품 팔아 다니며 시장조사하고 TV홈쇼핑 채널을 돌려본 결과 역시나 바르는 제품에 대한 선호가 높지 않았다. 코스노리 ‘올웨이즈 핏 바디톡스’은 유명 로드숍을 뒤지고 뒤져 겨우 찾은 제품. 묽은 로션 제형으로 자극이 강하지 않고 끈적임 없이 살 속에 스며든다. 시원함으로 시작해 꽤 긴 시간 따뜻함이 몸에 남아 있어 땀을 흘려야 하는 운동 전후 바르면 좋다. 주성분인 카페인과 고추추출물, 자몽추출물, 고삼추출물 등이 피부의 수분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STEP 02 -‘살’ 뺄 때 먹자
바르고 붙이는 다이어트 제품은 많이 사라졌지만 먹는 다이어트 제품은 꾸준히 신제품이 출시되고 있다. 운동이나 활동 전후 가볍게 물과 타먹는 CJ제일제당 ‘팻다운톡’ 은 탄수화물이 지방으로 합성되는 것을 억제하는 HCA(가르시니아감보지아추출물)에 비타민B2와 비타민C가 하루 권장 섭취량 기준 100% 함유돼 있다. 다이어트는 물론 건강까지 생각했다. 자몽맛, 깔라만씨맛, 사과맛 3가지가 있다.
STEP 03- ‘살’ 빼기 어렵다면 입자!
다이어트에 자신이 없다면 보정속옷도 있다. 잘 맞는 보정속옷은 젊은 사람 못지않은 멋진 자태를 뽐낼 수 있다. 비비안 보정속옷 ‘BBM’ 상품개발팀 김현주 대리는 시니어 여성에게 맞는 보정속옷을 고르는 방법은 따로 있다고 설명한다. 상체 군살을 보정하고 싶다면, 상·하체가 붙어 있는 형태인 바디슈트보다는 하체 부분이 없는 바디쉐이퍼가 시니어에게 좀 더 편안하다. 어깨끈 부분은 피부에 자극이 덜 되는, 폭이 넓고 원단으로 처리된 런닝 스타일을 선택한다.
STEP 04-태양을 피하다
자외선차단제는 SPF(자외선차단지수)와 PA(자외선A차단등급)를 표시한다. SPF 수치 및 PA 등급이 클수록 자외선 차단 효과가 크지만 피부에는 자극을 줄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는 SPF가 15 이상 되는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야외활동이나 피서지 등을 방문할 경우에는 SPF가 30 이상이면 자외선을 충분히 막을 수 있다. 기존 크림타입은 물론 제형도 다양해 상황에 따라 골라 쓸 수 있다. 야외 운동 시에 백탁 현상 없는 스틱을, 덧바를 때는 쿠션 제품이 편리하다. 외출 15분 전 일광에 노출되는 피부에 충분히 골고루 발라주고, 2시간 간격으로 덧발라주는 것이 좋다. 외출 후에는 깨끗이 씻어준다.
Dr. said 여름철 태닝 좋을까? 나쁠까?
결론부터 말하면, 태닝은 구릿빛의 건강한 외형을 만들어줄 수는 있어도, 피부의 측면에서는 결코 안전한 방법은 아니다. 피부는 햇빛에 노출되면서 체내에 비타민D를 생산하는 기능을 한다. 비타민D는 뼈의 성장을 돕고 체내 대사과정을 원활하게 해준다. 반면 자외선은 세포의 DNA를 파괴시켜 피부노화를 촉진시키고 각종 색소 문제를 일으키며 피부암을 발생시킨다. 태닝은 자외선에 의한 피부 손상을 줄이기 위한 방어적 변화다. 강한 자외선에 노출될 경우 일광화상이 생길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 자외선에 노출되면 피부 손상이 유발된다.
불교에서 우주의 4대 구성요소는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이라고 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엠페도클레스는 우주의 구성 원소를 물, 불, 공기, 흙으로 봤다.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건강하기 위해 필요한 것 역시 이 4가지라 할 수 있다. 이번 달에는 불, 그중에서도 햇볕에 대해 얘기해보겠다.
태양은 밤낮과 사계절을 주관한다. 해가 뜨면 따뜻해지면서 밝아지고, 해가 지면 서늘해지면서 어두워진다. 태양의 고도가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순환이 이루어진다. 하루와 1년의 주재자는 태양이다. 지구상의 생물은 이 리듬에 맞춰 잠을 자고 활동하는데, 이 리듬이 깨지면 병이 생긴다. 한의학의 원전인 에서는 봄, 여름, 가을, 겨울과 밤낮의 리듬에 맞춰 사는 것이 건강과 치료에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하면서 태양의 리듬을 따르는 자는 흥하고, 태양의 흐름을 거스르는 자는 망한다고 했다.
옛날에는 태양의 흐름에 맞춰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 해가 떠야 일어나 활동할 수 있었으며, 해가 지면 잠들어야 했다. 기름을 써서 불을 밝히는 것은 비싸서 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현대 사회는 태양의 흐름에 맞춰 살기 힘든 시대다. 인공조명이 있어 밤새워 활동할 수 있고, 그러기를 강요당하기도 한다. 실내에 있으면 밖이 어두운지 밝은지 비가 오는지 바람이 부는지 지금이 몇 시쯤인지 전혀 알 수 없다. 우리는 반세기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자연에서 완전히 멀어져버렸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다. 모든 자연이 태양의 흐름에 맞춰 살아가도록 설정되어 있듯, 인간도 태양의 흐름에 맞춰야 건강할 수 있다. 교대근무, 야간근무, 태양이 들지 않는 지하근무를 오래하면 몸이 나빠진다. 몇백만 년에 걸쳐 누적된 유전자에는 이런 상황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땅의 물은 햇볕을 받아 수증기로 변해 하늘로 올라갔다가 다시 비가 되어 땅으로 떨어진다. 이러한 물-수증기-비의 순환은 지표면에서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식물은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물을 원료로 하고, 햇볕을 매개체로 해서 광합성을 한다. 동물은 이런 식물을 먹고 산다. 그리고 척추동물들은 햇볕을 받아 털이나 피부에서 비타민D를 합성한다. 비타민D는 뼈를 튼튼하게 하기 때문에 척추동물은 반드시 햇볕을 받아야 한다. 동물인 인간도 일종의 광합성을 해야 한다. 야행성 동물들은 햇볕을 쬐지 못하기 때문에, 비타민D를 합성한 다른 동물들을 잡아먹으며 보충한다.
비타민D가 부족하면 뼈가 약해지고, 불면증, 우울증이 생긴다. 그래서 태양의 고도가 낮은 북유럽에서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일광욕을 한다. 아토피피부염이나 건선 또한 비타민D 부족과 관련이 많다. 땀이 쉽게 많이 나는 것 또한 비타민D 부족과 관련이 있다.
태양광선은 적외선, 가시광선, 자외선으로 나눌 수 있다. 적외선은 사람의 몸을 데우고, 식물은 가시광선으로 광합성을 한다. 땅에서 사람이 받는 자외선은 UVA, UVB로 나눌 수 있는데, UVA는 유리창을 통과함은 물론 피부 깊숙이 침투해 주름과 기미, 주근깨를 만들면서 피부를 노화시킨다. UVB는 유리창을 통과하지 못하며 각종 염증과 피부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바닷가나 높은 산에 갔을 때 피부가 벌겋게 익는 것은 UVB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외선은 안 좋기만 한 것일까? 자연은 지구라는 환경에서 최적화되도록 진화되었기에 자외선을 포함한 햇볕은 인간에게 꼭 필요한 요소다. 물론 지나치면 피부암, 기미, 주근깨가 생기기도 한다. 뭐든 적당해야 한다.
현대인 특히 한국인은 비타민D 결핍이 심하다. 햇볕을 쬘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학생, 노동자가 매일 햇볕을 쬐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그것도 창문을 통하지 않고 직접 쬐는 시간 말이다. 비타민D가 부족하면 뼈가 약해지고 면역력이 떨어지며 수면의 질이 떨어진다. 지금은 자외선 과다를 걱정하면서 자외선 차단제를 바를 때가 아니라, 자외선 부족을 걱정해야 할 때다. 주 3회 오전 10시~오후 3시 사이에 20분 정도 햇볕을 쬐는 것이 좋다. 그런데 도시는 미세먼지, 공해, 스모그 등으로 UVB가 지표면에 잘 도달하지 않는다. 바닷가나 고산, 물가가 UVB를 받기에 더 적합하다. 그리고 겨울철에는 UVB가 약하기 때문에 봄, 여름, 가을에 충분히 햇볕을 쬐는 것이 좋다.
낮에 햇볕을 잘 받으면 밤에 심해지는 병증이 호전된다. 밤에 잠 못 이루는 불면증, 밤에 얼굴로 열이 후끈 올라오는 갱년기 조열증, 밤에 심해지는 천식, 밤에 심해지는 두드러기나 아토피피부염 등이 심한 사람은 낮에 햇볕을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반대로 낮에 기운이 없고 심해지는 증상은 밤에 잠을 잘 자야 한다.
첫째, 햇볕은 아토피피부염, 건선 등 피부병과 과민성장증후군, 대장암 등 대장 병증, 알레르기비염, 천식 등 폐 병증을 잘 치료해준다. 한의학적으로 폐, 피부, 대장은 같은 그룹이다. 척추동물이 햇볕을 받아 털과 피부에서 비타민D를 합성하는 것은 햇볕이 폐, 피부, 대장을 활성화시켜준다는 의미다. UVB만 효과가 있는 게 아니라 햇볕 전체의 효과다. 요즘은 비타민D를 건강기능식품으로 많이 복용하고 있는데, 피부를 통한 합성보다는 효능이 떨어지며 폐, 피부, 대장을 활성화하는 힘도 약하다.
둘째, 뼈가 약해지는 병증, 갱년기, 성기능쇠약, 자궁암, 전립선암, 골다공증, 성장에 좋다. 한의학적으로 뼈와 생식기는 같은 그룹이다. 인체를 깊이에 따라 나누면 뼈가 가장 깊은 부위이고 그다음으로는 살, 피부, 털의 순서다. 건강할 때는 뼈가 단단하고 농축되어 있지만 병들거나 노화되면 뼈의 골수가 몸 밖으로 새어 나온다. 단백뇨, 당뇨, 땀이 쉽게 나는 증상, 탈모 등이 그 사례다. 햇볕은 뼈를 단단하게 해서 몸 밖으로 새어나오는 것을 막아준다. 단전 회복의 의미도 있다.
셋째, 심장에 좋다. 혈압을 낮춰주고 혈전이 생기는 것을 억제해준다. 심장병과 뇌졸중을 예방해주는 효과도 있다. 우리 몸에서 열을 만들어내는 근원은 심장이다. 즉 우리 몸의 태양은 심장이며, 그 근원은 하늘의 태양이다.
넷째, 우울해서 생긴 병증을 잘 치료해준다. 우울증, 유방암, 불면증 등에 좋다. 습기가 적은 화창한 날에는 우울증이 호전되는데 햇볕의 역할 때문이다. 한의학적으로 표현하면 기가 울체된 것을 풀어준다.
다섯째, 몸의 면역력을 높여주고 해독 효능도 있다. 햇볕은 황달 등 간에 무리가 갔을 때 해독해주는 힘이 있다.
최철한(崔哲漢)
- 본디올대치한의원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본초학교실 박사. 생태약초학교 ‘풀과나무’ 교장. 본디올한의원네트워크 약무이사. 저서:
계절은 색깔을 지닙니다. 우리 다 아는 일입니다. 봄은 버드나무의 늘어진 가지가 연한 녹색을 띨 때부터 스미는 것 같습니다. 여름은 아예 온 세상이 진한 녹색입니다. 그러다가 가을이면 서서히 황갈색으로 대지가 물들여지면서 마침내 겨울은 다시 온 세상이 흰색으로 덮입니다. 당연히 이런 색칠은 사람 따라 다릅니다. 하지만 철이 서로 다른 색깔로 채색된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계절은 이에 더해 제각기 자기 소리를 지닙니다. 그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봄은 졸졸거리는 시냇물 소리를 냅니다. 조심스러운 희망이 흐릅니다. 겨울은 아예 침묵입니다. 고요를 잃은 겨울은 겨울답지 않습니다. 가을은 현의 낮은 울림 같은 소리를 냅니다. 고마움이 거기 실립니다. 그리고 여름은 작약(雀躍)하는 환성입니다. 삶의 약동이 그대로 자기를 소리칩니다. “와, 여름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외칩니다.
지나치게 전원적인 정서라고 마땅찮아 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른바 계절을 간과하는 것으로 특징지어질 ‘도시’의 삶은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여름에 김장김치를 먹고(이런 묘사가 얼마나 소통이 될지 불안하지만), 한겨울에 빙수를 사먹는 세상인데 철을 일컫는다는 것은 낡아도 한참 낡은 농경사회의 의식을 드러낸 것일 터이니까요.
그렇지만 계절이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아직은요. 봄은 여전히 추위를 물리칠 만큼 따사롭습니다. 여름은 무덥고요. 가을은 서서히 을씨년스러워지는 계절이고 겨울은 모질게 춥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계절을 보내고 맞습니다. 기다리기도 하고 아쉬워하기도 합니다. 걱정하기도 하고 무사하게 넘겼다고 안도하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철의 바뀜조차 알지 못하는 철딱서니 없는 철부지 아니고야 철을 모를 까닭이 없습니다.
그런데 바야흐로 여름입니다. 온 세상이 싱싱하게 짙푸른 색깔로 뒤덮인 정경이 새삼스럽습니다. 그리고 온갖 곳에서 터져 나오는 “와, 여름이다!” 하는 환성이 합창처럼 들립니다. 소리만이 아니라 모습조차 집 안에서, 길거리에서, 들에서, 산에서, 바다에서 보입니다.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갑자기 서둘러집니다. 나도 어서 배낭을 찾아 메고 어디론지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바다여도 좋고 산이어도 좋습니다. 아니, 벌써 나는 여름의 한복판에 이르러 있습니다.
나는 동무들과 고추를 다 내놓고 내에서 미역을 감고 있습니다. 여름이니까요. 소쿠리를 들고 모래무지나 미꾸라지를 잡으러 동네 형들과 나갔는데 나는 물속 풀숲에서 뱀을 덜컥 손으로 쥡니다. 여름이니까요. 원두막 위에서 주인 할아버지가 주신 참외 세 개 중에서 두 개를 먹고는 나머지 한 개를 배가 불러 마저 먹지 못해 얼마나 아쉬운지요. 가져오기는 했습니다만. 그러다가 외할아버지를 따라 대천 해수욕장에 갔을 때의 그 황홀한 바다와 파도와 황혼, 모래사장과 해파리와 조개껍질들, 그리고 천막 안에서 파도소리를 들으며 설친 잠. 돌아와 검은 살갗이 끊임없이 벗겨지는데 그렇게 온몸이 햇볕에 탔는데도 아프지 않았느냐는 누님의 물음에 “아니!”라고 나는 대답합니다. 마치 영웅이듯이. 여름이니까요.
세월이 가도 여름은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사내 녀석 둘과 네 식구가 배낭을 짊어지고 포항에서 속초까지 해안을 따라 갑니다. 바다가 보이는 민가에 들러 천막을 옆에 치고 물과 반찬을 얻어먹으며 그렇게 열흘을 걷고 타고 쉬고 자곤 합니다. 여름이니까요. 우리는 설악산에 올라 겹겹이 쌓인 능선을 향해 “야호~!”라고 외쳤고, 속초에서는 바다의 끝 수평선을 바라보며 마찬가지로 “야~!” 하고 소리쳤습니다. 삶의 꿈과 열기가 하늘을 찌릅니다. 여름이니까요.
그런데 이제는 미꾸라지 잡던 형들도 없습니다. 누님도 없습니다. 원두막도 없고, 외할아버지도 계시지 않습니다. 산에서 바다에서 목이 터져라 소리치던 사내 녀석들은 이제 나이가 쉰을 넘었습니다. 모든 것이 사라졌습니다. 기억조차 투명하지 않습니다. 연대기조차 흐려져 30년 전인지 40년 전인지 사뭇 헷갈리기만 합니다. 한데 여름이 옵니다. 여름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사라질 까닭이 없습니다. 계절의 바뀜은 우주의 운행인걸요.
여름의 환성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귀를 막아도 들릴 여름의 함성이 다시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면서 몸조차 들썩이게 합니다. 곧 냇가로, 바다로, 산으로 나갈 듯합니다. 그런데 햇볕에 이리 눈이 부실 수 없습니다. 아무래도 색안경을 써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따갑게 더울 수가 없습니다. 토시를 준비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어쩐지 창피해집니다. 배낭에 이것저것 넣고 짐을 꾸려야겠는데 벌써부터 어깨가 아픕니다. 신발을 찾아 신어야겠다고 하는 순간 발이 지레 무겁습니다. 갑자기 함께할 친구가 없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함께 평생을 살아온 내 반쪽도 다르지 않습니다. 생각도 건강도 따로따로인 채 함께 살아온 세월이 여름 나들이를 권할 만큼, 아니면 사양할 만큼, 서로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이윽고 여름이 서서히 낯설어집니다. 여름인데, “와, 여름이다!”라는 환성이 천천히 멀어지면서 나는 마침내 “아, 여름이구나!” 하는 탄성을 조금은 시무룩한 음조로 발언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는 것이 슬픈 정경은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살아간다고 하는 것, 나이 먹으며 인생의 길을 걷는다는 것, 생각하면 계절의 지냄과 다르지 않은데, 이미 우리는 되풀이되는 것은 아니어도 봄도 여름도 우리 삶의 깊은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가을마저 겪으며 그 깊은 끝자락에 이르렀고, 겨울조차 현실인 오늘을 살고 있기도 합니다. 세월은 계절을 내재화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말투가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와, 봄이다!”가 아니라 “오, 봄이구나!” 하면서 내 봄을 회상하고, 그러면서 그 봄이 이어 펼쳤던 내 여름을 다시 회상하면서 “와, 여름이다!” 하기보다 “아, 여름이구나!” 하면서 그것이 빚은 내 가을을 되살피고, 이윽고 그 가을에 이은 겨울의 고요 여부를 헤아려야 하지 않을는지요. 환성의 언어를 탄성의 언어로 조용히 다듬을 필요는 없을까 하는 것입니다.
나무 그늘이 시원한 강가에서 물을 바라보다가 “와, 여름이다!” 하는 환성이 자기도 모르게 저절로 터져 나오는 순간, 자식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는 자식에게 자기가 집을 보아줄 테니 마음껏 여름을 즐기고 오라는 약속을 기어이 받아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열흘 동안 자식 집에서 보낸 그 여름이 이제까지 지낸 여름 중에서 가장 행복했노라고 말했습니다. 짐작이 됩니다.
사는 모습 제각각인데 어떻게 사는 것이, 어떻게 여름을 보내는 것이 좋은 것인지 판단할 절대적인 척도란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깊은 가을이나 초겨울을 사는 사람들이 아직도 “와, 여름이다!” 하고 소리치고 덤벙거린다면 쑥스러워질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그 환성은 크게 외쳐져야 합니다. 여름을 사는 친구들에게요. 여름은 생동하는 삶의 푸르디푸른 절정이니까요.
그해 늦은 여름, 갑자기 달라진 주변 상황에 안절부절못하고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일단 서둘러 떠나보내고 나면 후련할 것만 같았는데 영 그렇지 않았다. 바람이 실컷 들어간 풍선 같은 마음을 다잡고 차를 돌려 근사한 간판이 눈에 띄는 곳으로 향했다. 마음을 가라앉히기에는 커피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분위기 있는 카페가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모처럼 혼자가 된 것을 자축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묘한 기분은 발걸음을 그냥 집으로 향하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날, 새벽부터 일어나 커다란 가방 속에 이것저것 주섬주섬 집어넣었다. 짐이 한 가득이었다. 남편을 겨우 달래 미국으로 보내고 인천공항에서 한 시간 남짓 도망치듯 달려온 탓에 두 다리가 뻐근했다. 오랜만에 남편 대신 운전을 한 탓도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남편 없이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피부로 와 닿지 않았다.
그동안 남편은 어쩌다 짧게 집을 비우는 일이 있었지만 이번 외출은 언제 돌아올지 기약할 수 없었다. 숨 쉴 틈 없이 열심히 살아온 우리 부부는 IMF라는 국가적 경제 위기 속에서 아주 위태로운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어디론가 떠나 휴식이라도 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지쳐 있었다. 있는 것이라곤 밤마다 끙끙대며 해결책을 찾아도 답이 나오지 않는 난제들뿐이었다. 이러다가는 큰일 날 듯싶었다. 남편에게 미국 여행을 권했다. 그렇게 남편을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우선 멋지게 보이는 카페로 들어가 제일 아늑하고 편안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훤하게 보이는 창가 쪽 아주 푹신한 곳에 도도하게 다리를 꼬고 자유분방한 여인처럼 우아하게 앉아 가장 비싸고 맛있게 보이는 메뉴를 주문을 했다. 홀가분함이 넘쳐흘러 주체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갑자기 닥쳐온 풍파 속에 마구 쏟아지던 폭풍우가 그 혈기를 다 풀어놓은 듯 아주 조용하고 쾌청한 마음이었다. 온 세상이 내 것처럼 당당했다. 그 황홀함과 넘치는 행복이 사라질까봐 마구 주워 담고도 싶었다. 그 후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시간이 많았지만 자유로움을 지켜내려고 애를 썼다.
어느새 시간이 흐르고 한 잎 두 잎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이 왔다. 필자에게도 계절은 바람처럼 거침없이 불어왔다. 가뜩이나 무서움을 잘 타는 탓에 자다가 깨어나면 우두커니 걸려 있는 옷걸이가 사람처럼 보였다. 집안 쓰레기를 버리는 등 궂은일까지 혼자 감당해야만 했다. 더구나 남편이 마무리 짓지 못한 일까지 책임을 져야만 했다.
혼자가 되었다는 홀가분함은 사라지고 하루하루가 고단했다. 정신적, 물질적으로 의지할 데가 없어 몸에 이상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면역체계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던 것이다. 병원에서는 당장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결국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혼자만의 행복과 자유로움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남편도 외로워서 도저히 견디기 힘들다며 집으로 돌아오고 싶어 했다. 충분히 이해가 됐다.
끝내는 가족이 있는 울타리 속에서 남편과 함께 고난이든 기쁨이든 함께 나눌 때, 그만한 행복이 따로 없음을 진지하게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잠시라도 남편과 떨어져 있으며 그렇게 원하던 자유를 몸서리치게 체험해봤다. 그리고 가족, 남편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지금까지 필자 곁에서 건강하게 살아준 남편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또한 살아 있는 모든 의미 있는 존재들에게도 감사한 마음이다.
늦은 봄을 노래한 시 중 필자가 좋아하는 시는 두보(杜甫)의 ‘곡강(曲江)’이다. 이 시는 두보가 47세 되던 AD 758년 늦은 봄, 좌습유(左拾遺) 벼슬을 할 때 지은 작품이다. 좌습유라는 벼슬은 간언(諫言)을 담당하던 종8품의 간관(諫官)이다. 당시 그는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재상(宰相) 방관(房琯)이란 사람이 죄목을 뒤집어쓰고 파면되는 일이 발생하자 ‘죄가 가벼우니 대신을 파직함은 옳지 못합니다(罪細,不宜免大臣)’라는 상소를 올린다. 그러자 숙종(肅宗)은 매우 노하여 삼사(三司)를 시켜 두보를 문초하게 한다. 이때 재상 장호(張鎬)가 얘기하길, ‘(간관인 두보가 간언한 것을 가지고) 죄를 묻는다면 그것은 간관의 언로를 막는 것입니다(甫若抵罪,絕言者路)’라고 하여 이 일은 일단락된다. 그러나 황제의 눈 밖에 난 두보는 여름이 되자 결국 화주(華州) 사공참군(司功參軍)으로 좌천된다. 이 시는 당시 황제의 눈 밖에 난 두보가 좌천되기 이전, 자신의 괴로운 심정을 늦봄에 실어 읊은 걸작이다. 2수 중 첫 번째 시의 전련(前聯)을 먼저 살펴보자.
一片花飛減却春(일편화비감각춘)
한 조각 꽃잎이 날려도 봄빛이 줄어드는데
風飄萬點正愁人(풍표만점정수인)
만 점 꽃잎이 바람에 흩날리니 정녕 사람을 시름 잠기게 하네
且看欲盡花經眼(차간욕진화경안)
장차 다 지려는 꽃잎, 눈앞을 스쳐가는 것을 보노니
莫厭傷多酒入脣(막염상다주입순)
몸이 많이 상했다 하여 술 마시는 것을 마다할 수 있으리오…
‘한 조각 꽃잎이 날려도 봄빛이 줄어든다’는 의미의 ‘일편화비감각춘(一片花飛減却春)’은 참으로 뛰어난 명구로서 역대로 수많은 문인들에 의해 애송되어왔다. 이 구절은, 대조를 이루는 ‘하나의 나뭇잎이 떨어지는 걸 보고도 천하에 가을이 왔음을 안다’라는 의미의 ‘일엽낙지천하추(一葉落知天下秋)’ 구절과 더불어 각각 봄이 짐과 가을이 옴을 읊은 천고의 절창으로 꼽힌다. 황제의 신임을 잃은 신세에, 떨어지는 꽃잎을 보니 어찌 심란하지 않았겠는가? 마지막 구절을 보면 ‘몸이 이미 많이 망가졌다(傷多)’는 표현을 통해 심적 고생이 이미 건강을 해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 시를 짓고 난 뒤 두보는 같은 제목의 두 번째 시를 짓는다. 이 시의 전련에는 ‘인생칠십고래희’라는 유명한 시구가 등장한다.
朝回日日典春衣(조회일일전춘의)정에서 돌아오면 날마다 봄옷을 저당 잡혀
每日江頭盡醉歸(매일강두진취귀)매일 강가에서 만취하여 돌아온다
酒債尋常行處有(주채심상행처유)외상 술값이야 으레 가는 곳마다 있기 마련…
人生七十古來稀(인생칠십고래희)사람은 예로부터 70년 살기도 드문 일 아니겠는가
이 시를 보면 그는 더욱 심해진 마음고생을 술로 풀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차피 칠십도 못 사는 인생, 몸을 아낄 필요가 있겠냐고…. 이어지는 후련(後聯)이다.
穿花蛺蝶深深見(천화협접심심견)꽃을 파고드는 호랑나비 깊숙이 보이고
點水蜻蜓款款飛(점수청정관관비)물 위를 스치는 잠자리 사뿐히 날아오르네
傳語風光共流轉(전어풍광공류전)말을 좀 전해다오, (우리 인생과) 함께 흘러가는 경치에게…
暫時相賞莫相違(잠시상상막상위)“잠시나마 함께 즐기면서 서로 거스르지 말자고”
두보는 자신이 존경했던 도연명의 형식을 빌려 아름다운 봄날 경치에 대한 자신의 헌사를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다.
>>하태형(河泰亨) 전 현대경제연구원장
아호는 양우養愚. 1958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와 KAIST 대학원에서 경영학과 경영과학을 전공했다. 미국으로 유학하여 뉴욕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수원대 금융공학대학원에 교수로 복귀하여 강의하고 있다. 오랜 소망이었던 서예와 한학을 다시 공부하게 됐다. ‘난정서’를 접하게 된 이후 국내외 문헌을 찾아가며 난정서 연구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저서로는 가 있다.
“요즘 재미난 일도 없고 밥맛이 자꾸 없어져.”
“남편이 은퇴하고 집에만 있으니 날로 스트레스만 쌓여.”
“이제 자식도 다 크고 할 일 했으니 혼자 사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자주 들어.”
시니어들이 만나면 흔히 하는 말이다. 몇 년 계획을 세우고 노년 준비를 했지만 자꾸 움츠러드는 기분…. 신체적, 정신적 변화 때문에 오는 우울 증상이다. 취미로 운동이라도 하면 극복할 수 있는 것들이 있지만 이미 그 한계를 벗어난 감정도 있다. 서울 서초구 소재 서울청정신건강의학과 정동청 원장에게 우울증과 치료 방법에 대해 자문해봤다.
독거노인 문제 우울증으로 이어져
우울증을 앓는 시니어가 꽤 많은가요? 주요 증상은 어떤 게 있나요?
서울대병원에 있을 때 시니어 조울증 환자와 우울증 환자가 30~40%정도 되었던 것 같아요. 조증은 기분이 갑자기 업(UP)되거나 자신감이 생기고 말수도 많아지고 돈을 많이 쓰는 행동들을 해요. 술을 안 먹었는데도 이런 증상이 나타나고 정도가 심하면 의심해볼 수 있죠. 우울증은 기분이 가라앉고 수면 부족과 식욕의 변화가 일어나는 게 대표적입니다. 자신감이 떨어지고 자책을 하고 걱정이 많아지는 등의 증상을 보입니다. 모든 일에 흥미를 못 느끼는 것도 증상 중 하나입니다.
노인 우울증은 왜 생기는 건가요?
생물학적, 즉 신체적 변화가 큰 요인이에요. 당뇨나 고혈압, 외과 질환 등이 생기면서 치료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거죠. 경제적인 부담, 은퇴 후 환경 변화 등도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남편이 은퇴 후 같이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갈등을 겪는 부부도 많습니다. 독거노인 문제도 우울증과 연관이 깊어요. 당장 혼자가 되면 연세가 있어도 자식들과 같이 지내기 부담스러워 따로 지내는 경우가 많잖아요. 스트레스를 받는 어르신들이 결국 삶의 터전을 떠나 자제분들 집으로 들어가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게 아니에요. 고민이 있다면 상담을 해야 해요. 이성 문제, 성적인 불만족, 갑작스런 신체적 변화도 우울증으로 이어지는데 이런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어야 해요.
우울증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만만치 않다면서요?
직접치료비, 간접치료비, 우울증 때문에 경제활동을 못해서 생기는 비용 등이 사회적 비용입니다. 국내 우울증 환자 수가 60만 명 정도이고 항우울제 시장은 2016년 기준 약 1456억원 규모입니다. 우울증 등의 정신건강 문제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2007~2011년 사이 40% 이상 급증했어요. 국민 4명 중 1명꼴로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지만 전문가와 상담을 하는 사람은 10명 중 1명에 불과하다는 조사결과가 있습니다.
시니어들은 어떤 증상들을 주로 호소하나요? 특별한 유형이 있나요?
‘걱정이 많아졌다’는 말을 지인들에게서 듣고 찾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격이 바뀌었다’는 말을 듣기도 하는데, 스스로 느끼기에도 불안하고 초조한 증상이 계속되면 우울증으로 봐야 합니다. 물론 이런 증상이 일시적일 수도 있어요. 중요한 것은 일상생활에 영향을 줄 만큼인지가 우울증을 판단하는 기준이 됩니다.
그냥 방치하는 경우도 많죠? 우울증을 방치하면 어떻게 되나요?
방치하면 할수록 치료가 더 어려워집니다. 고혈압, 당뇨 등도 초기에는 식이요법이나 운동으로 조절할 수 있잖아요. 우울증도 초기에는 취미생활이나 운동으로 조절할 수 있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약을 써도 치료가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또 증세가 심해지면 ‘자살’이라는 심각한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임의로 약 끊으면 증상 더 심해질 수도
가면우울증은 무엇인가요?
우울한 기분이 느껴지지 않는 우울증을 흔히 가면(假面)우울증이라고 부릅니다. 우울한 감정이 느껴지지 않아도 가슴이 답답하거나 의욕 저하, 수면 저하, 식욕저하 등이 나타납니다. 특히 혼자 살거나 자녀들 눈치를 보며 사는 경우 가면우울증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럴 때일수록 몸을 자주 움직이고 주변 사람들을 만나고 건전한 취미활동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계절성 우울증도 있다면서요?
계절에 따라 기분이 변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봄에는 기분이 업되었다가 일조량이 줄어드는 가을이나 겨울이 되면 가라앉는 사람들이 있어요. 만사가 귀찮고 예민해지는 건 일반 우울증과 같지만, 과다 수면을 취한다는 점에서 조금 다릅니다. 흔히 계절성 우울증은 일시적으로 발생했다가 없어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워낙 재발률이 높아서 자칫 심각한 정신질환으로 깊어질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자가진단법이 있나요?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우울증 자가진단법’이 많아요. 잘못을 저지르면 죄책감이 들면서 자책하게 되고, 만성두통이나 복통, 흉통 등의 증상이 지속되는 것이 대표적이죠. 그런데 이런 증상만으로 우울증이다, 아니다 판단하기는 어려워요. 우울증 의심이 되면 병원에 가서 정확한 진단을 받아야 합니다.
병원에서는 우울증을 어떻게 진단하나요?
우울증에 해당하는지 병력 산출을 통해 뽑아냅니다. 우울증은 다양한 증상을 보이는데, 이러한 증상이 카페인이나 음주 등 외부적 요인 때문인지, 일시적인 스트레스 때문인지를 먼저 구별해내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진단을 할 수 있습니다.
치료 방식은요?
주로 상담치료와 약물치료를 하는데 상담치료가 도움이 안 되는 환자들도 있어요. 그래서 약 처방을 주로 하고 증상이 좋아지면 약 복용을 중단하도록 합니다. 정신과 약은 오래 먹으면 치매에 걸릴 확률이 많다거나 의존성이 높아진다는 등 편견이 많은데 오해입니다. 이런 오해 때문에 먹던 약을 마음대로 끊으면 치료기간이 더 길어지기도 해요. 서울대병원에 있을 때는 전기충격치료를 많이 했습니다. 주로 종합병원에서 하는 이 치료법은 우울증이 심할 때 효과가 좋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치료 환경이 아직 마련돼 있지 않아서 또는 환자가 겁을 내는 경우가 많아 대중화되지 못했습니다.
시니어들이 우울증을 극복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예방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울한 감정을 키우지 않으려면 적당한 취미생활과 운동을 해야 합니다. 활발한 사회적 관계를 해나가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활동이 줄면 위축이 되고 스트레스가 쌓이는 경우가 많거든요. 우울증과 비슷한 증상이 있을 때 가족과 이야기하기 불편하면 병원에 와서라도 이야기해야 합니다. 필요하면 약물치료도 받고요.
새벽 댓바람에 그곳에 닿으려면 밤새도록 달려야 한다. 자정 무렵 서울을 출발한 버스가 그곳에 도착해 우리를 어둠 속에 내려놓았을 때는 새벽 5시가 조금 넘었을 때였다. 버스에서 내려 세량지까지 걸어갈 때 코끝에 스치는 새벽 공기는 마치 박하 향기 같았다.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산길을 걷다 보니 어둠이 서서히 풀렸다. 멀리 저수지가 보이자 일행은 “와~” 하며 탄성을 질렀다. 그 탄성은 산하의 아름다움에서 나온 감탄사가 아니었다. 멀리 보이는 저수지 언덕 위에 수백 명의 사진 애호가들이 이미 진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가히 인파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였다. 좋은 포인트를 선점하기 위해 그들은 텐트를 치고 밤을 새우거나 자동차 안에서 이슬 내리는 새벽을 맞았으리라.
사진 인구가 천만이 넘고 바빠진 카메라 시장 이야기가 필자의 귀에까지 들리고 이렇게 직접 눈으로도 확인된다. 필자도 이전엔 사진을 찍기 위해 먼 곳으로 달려가기도 했지만 지금은 가까운 곳으로 잠깐씩 나가는 정도다. 이번엔 우리 지역 사진가들과 함께 하는 출사여서 한동안 못 보았던 분들도 볼 겸 오랜만에 참여했다.
먼저 와 있는 사람들에 비하면 우린 늦게 도착한 사람들이었다. 삼각대 세울 자리조차 없어 이리저리 틈새를 찾아 잠깐씩 카메라를 들이밀고 셔터를 누른 뒤 얼른 빠져나오곤 했다. 어떤 사람은 이날 모인 인원이 천 명 가까이는 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세량지의 모습은 수천 점의 사진에 담겼을 것이다. 실소가 나왔지만 어차피 필자도 그들 중 한 사람이었다.
필자는 그럼에도 사진의 대중화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현대 사회의 기록물로 사진은 빠질 수 없는 장르다. 예술작품으로 남지 않아도 개개인들의 감성과 여가활용 측면에서 사진은 순기능이 많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는 건강도 좋아지고 감성도 자극된다. 또 이런 열정들이 차츰 프로페셔널한 개성을 만들고 사진 예술의 경지를 이루는 과정으로 이어질 것이다.
아무튼 수많은 군중 속에서 세량지의 새벽을 보았다는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산벚꽃과 복사꽃이 물안개와 함께 이루어내는 반영이 신비로웠던 날이었다.
세량지(細良池)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세량리에 있는 저수지이다.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하여 1969년 준공되었다. 봄이면 연분홍빛으로 피어나는 산벚꽃과 초록의 나무들이 수면 위에 그대로 투영되는데, 햇살이 비칠 무렵 피어오르는 물안개와 어우러져 이국적 풍광을 빚어낸다. 또 가을이면 단풍으로 물든 산과 어울려 경관이 아름답다. 이 때문에 사진 찍기를 즐기는 사람들의 출사지(出寫地)로 알려져 있다. - 네이버 지식 in
마늘, 파, 부추, 달래, 무릇(흥거) 등 우리 사찰에서 금하는 다섯 가지 채소를 ‘오신채(五辛菜)’라고 한다. 재료의 성질이 맵고 향이 강해 수행에 방해가 된다고 해서 먹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오신채를 사용하지 않고 만든 음식을 흔히 ‘사찰음식’이라 부른다. 이러한 사찰음식의 개념을 넘어 ‘한국 전통 채식’의 의미를 더한 무신채(無辛菜) 식단을 지향하는 맛집 ‘마지’를 찾아갔다.
순하게 즐기는 우리 전통 채식
서울 경복궁 인근 서촌마을에 위치한 ‘마지'는 아담한 한옥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2012년 사찰음식 도시락을 선보였던 마지는 이듬해 서울 방배동 매장을 마련했고, 올해 4월 지금의 서촌 분점을 열었다. 그 출발은 ‘사찰음식’이었지만, 오랜 연구와 고민을 거듭하며 현재는 ‘한국 전통 채식’이라는 의미로 확장해나가고 있다. 종교음식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마지의 김현진 대표는 “사찰음식점으로 유명해지긴 했지만,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한국 전통 채식’입니다. 식물은 저마다 독성이 있기 때문에, 짧게라도 열처리를 해서 독성을 제거해야 해요. 그게 한국 전통 채식의 조리법이라 할 수 있죠. 우리는 그 방법을 고수해 음식을 만들고 있습니다”라며 이곳 음식의 의미와 고집을 드러냈다.
목사님도 즐기는 부담 없는 사찰음식
마지를 찾아오는 손님들은 대개 스님이거나 불교 신도들 아닐까? 이에 김 대표는 선입견에 불과하다고 했다. “서촌점 개업 날도 스님보다 목사님이 더 많이 방문했어요. 단골을 봐도 스님, 목사님, 신부님 비율이 거의 비슷하죠.” 또 한 가지 반전은 김 대표는 한때 잘나가던 수학선생님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그녀가 사찰음식으로 전향하게 된 데에는 가족의 영향이 컸다. 암으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부쩍 건강에 신경을 쓰던 그녀의 몸에 이상증세가 나타났다. 병원에 가보니 항생제 알레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근력을 키우기 위해 즐겨 먹었던 (항생제 처리된) 닭고기가 화근이었던 것. 그길로 자신이 먹는 식재료들의 근원을 탐구하기 시작했고, 사찰음식에 눈을 뜨게 됐다. 그리고 마지가 문을 열기까지 그의 어머니인 백련성(본명 이춘필) 백련사찰음식 연구소 소장의 역할이 컸다.
재료 본연의 맛에 집중하다
선재 스님에게 사찰음식을 사사한 백련성 소장 역시 과거 고기를 먹다가 급체한 이후 채식만 먹게 됐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건강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식재료 하나하나에 더욱 신경을 쓰고 정성을 다할 수 있었다. 마지의 대표 메뉴는 연밥올림 한상차림(1만7000원)인데, 여기에 쓰이는 연잎 한 장도 직접 엄선해 사용한다. 5월에서 10월까지, 여름내 촉촉이 비를 맞고 가을에 제대로 영글어진 백련 잎만을 고집한다. 여러 연꽃 중에서도, 백련 잎은 향이 진하고 약용 성분이 풍부해 연밥을 지었을 때 맛이 좋고 건강에 도움이 된다. 이곳에서는 지름이 50cm 정도인 큰 연잎에 흰 찹쌀만 넣고 연밥을 만든다. 특별한 재료가 들어가지 않아도 건강한 자연의 향을 머금은 밥맛이 풍족하게 느껴진다. 밑반찬으로 나오는 깍두기는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기 위해 인공조미료나 액젓 대신 과일소스와 간장으로 양념한다. 흔히 식당에서 즐기는 새콤하게 무른 깍두기와 달리, 아삭아삭하면서도 기분 좋은 알싸함과 단맛이 느껴진다. 다른 반찬들 역시 천연 효소나 최소한의 양념만 넣어 담백하게 요리한다.
마지의 삼일(3·1) 캠페인
사찰음식의 맛에 눈뜬 사람이라도 가격이 부담스러워 자주 즐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이곳에서는 8000원부터 1만원까지, 비교적 부담 없는 가격으로 맛볼 수 있는 메뉴들을 선보이고 있다. 부담 없는 가격으로 부담 없는 한 끼를 즐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김 대표는 ‘삼일 캠페인’을 제안한다. 세끼에 한 번, 3일에 한 번, 또는 외식 세 번 중 한 번은 가벼운 음식을 먹어서 과한 영양 섭취에 지쳐 있는 우리 몸을 편안하게 해주자는 것. 그렇게 서서히 우리 몸과 영양의 균형을 찾는 식단을 마련하는 게 마지의 목표다.
마지에서는 주마다 종교학, 음식학, 철학 등을 아우르는 ‘인문학밥상’ 강의가 열린다. 단순히 밥을 먹는 식당을 넘어서 불교를 흥미롭게 접하고 종교 간 화합을 마련하는 소통의 장으로 발돋움하고 있다(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5길 19).
널리 알려졌다시피 도시는 대체로 각박하다. 매력도 편익도 많지만 경쟁과 계산이 불가피한, 일종의 정글이다. 그렇기에 흔히들 남모를 고독을 안고 도시를 살아가기 십상이다. 내가 아는 서울의 어떤 화가는 작업실에 쥐를 기른다. 외로워서 쥐를 기른다. 그는 아마 쥐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 같다.
“너도 외롭니? 나만큼 외롭니?”
쥐를 바라보며, 슬픈 노래를 부르는 가수처럼 그가 처량하게 늘어놓는 대사는 대강 그렇다. 그는 이미 노년에 접어들었다. 무심한 세월을 관조한 끝에 그가 신중하게 내린 결론은 간명하다. 늙을수록 외롭다!
도시를 예찬하는 사람들에겐 매우 결례이겠지만, 내가 보기에 도시는 그리 성공한 작품이 아니다. 물질은 풍부할망정 인정이 메마른 탓이다. 물론 도시에도 인정스런 사람들이 왜 없으랴. 그러나 인정을 쓰기보다 인상을 쓰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거리의 행인에게 왜 쳐다보냐고 시비를 걸어, 마침내 죄 없는 사람을 먼지 나도록 늘씬하게 두들겨 패는 변괴마저 벌어지는 게 도시이지 않던가. 남의 흉을 볼 것도 없다. 나 자신부터가 그렇다. 나도 때로 거리에서 마주친 애먼 눈길에 까닭 모를 적의(敵意)를 느끼는 경우가 있으니 말이다. 이 타락한 영혼을 무슨 약으로 고쳐야 하나.
내가 나의 몰인정한 치부를 들여다볼 때면 부끄러워진다. 인생의 가을에 접어들었지만 여차하면 옹색한 마음이 도드라진다. 운동장 사이즈의 넉넉한 마음그릇을 가진 사람 앞에서는 항복! 대번에 주눅이 든다. 이럴 땐 헛살았다는 회의가 밀려든다. 쥐를 기르는 화가처럼, 다독이기 난처한, 먹먹한 외로움에 사로잡힌다. 나이 들수록 따뜻한 생각을 위주로 하고 싶고, 너그러운 가슴으로 만고의 불한당마저 살포시 감싸며 살고 싶지만, 웬걸, 심사가 뒤틀리면 간장 종지처럼 비좁아진다.
그러고 보면 이미 엉터리 인생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그렇다고 쥐를 기르거나 쥐약을 마실 수는 없는 일. 궁지에 몰린 기분일 때, 나는 가급적 햇살 쪽으로 마음을 옮겨둔다. 따뜻한 추억을, 따뜻한 사람을, 따뜻한 정경을 떠올려 시린 가슴에 온기를 부여한다. 남도의 어느 산골 마을에서 만난 노부부의 얘기를 해볼까.
전라도의 외진 산촌을 돌아다니던 때였다. 도시의 소음과 아귀다툼이 침범 못할 후미진 산골. 도토리 키 재기를 하는 야산들의 품에 안긴 마을은 하염없이 낙후했으나 포근했다. 돌담을 두르고 옹기종기 들어앉은 농가들은 하나같이 허름했으나 정겨운 풍색이었다.
나뭇가지로 엮은 사립이 곱살한 어느 집 텃밭. 할머니 한 분이 동그랗게 웅크려 앉아 호미질을 하고 있었다. 호미질에 몰입된 그 얌전하고 바지런한 모습은 아무런 결함이 없이 수려했다. 시골 노인들과 나누는 담소는 늘 즐겁다. 그들의 입에서 순후하게 흘러나오는 인생사와 세사란 범상해서 공감이 쉬우며, 혹간 의표를 찌르는 얘기가 튀어나와 슬며시 나를 돌아보게 하는 게 아닌가.
나는 할머니 앞에 앉아 이모저모 소식을 물었다. 언제부터 이 마을에 사셨느냐, 읍내 오일장엔 자주 나가시느냐, 건강은 괜찮으시냐, 면사무소 복지계에서 출장 나온 김 주사처럼 시시콜콜 캐물었다. 별안간 쓱 출현해 눈앞에 앉은 인간이 돌팔이 약장수이거나 남파된 간첩일지도 모른다는 야박한 의심 따위는 눈곱만치도 하질 않는 게 분명해 보이는 할머니는 오직 선선히 응답했다. 마치 무슨 횡재라도 한 사람처럼 상냥한 대꾸로 일관했다. 사람의 입이란 친절을 베푸는 데 오직 그 용도가 있다는 양 자상한 언사들이 흘러나왔다.
얼마 뒤, 부디 건강하시라, 덕담을 건네고 일어서 나오려던 때였다. 할머니가 호미를 놓고 일어서더니 나를 잡아 세우는 게 아닌가?
“워매, 그냥 가실라고라? 쪼께 기다려보쇼잉!”
그냥 보낼 수는 없다는 얘기였다. 밥상을 차려 내올 테니까 잠깐 기다렸다가 먹고 가라는 채근이었다. 읍내 식당에서 점심을 이미 먹었던 나는 사양할 수밖에 없었다. 자못 합리적인 고사(固辭)였다. 그러나 할머니는 막무가내였다. 찬은 변변치 않지만 한술이라도 뜨고 가야 한다며 거듭 성화였다. 나는 사양에 사양을 반복했다.
“아따! 그러지 말고 잡숫고 가시랑게!”
할머니는 포기하지 않고 거듭 식사를 권했다. 그러나 뱃속엔 이미 빈자리가 없으니 어쩌란 말인가. 나는 사정을 재차 주르룩 설명했다. 그때였다. 토방 빈지문이 열리더니 할머니의 서방님이 마루로 걸어 나왔다. 아마도 낮잠을 주무시다가 지상의 한낮에 벌어진 묘한 분쟁에 잠을 깬 모양이었다. 이 영감님은 단숨에 소란한 사태를 평정하겠다는 양 큰 소리로 탕탕 외쳤다.
“하이고, 한술 뜨고 가랑게 시방 어째 그러는 거시여? 엔간하면 자시고 가셔! 객지에 나오면 고생이잖여? 든든히 먹어둬야 한당게!”
이런! 남들이 이 희귀한 경치를 바라보았다면 셋이서 쌈박질을 하는 것으로 비쳤으렷다. 내가 노부부의 호의를 사양한 유일한 이유는 더 이상 밥 들어갈 자리가 없다는 것이었으나 노부부가 나를 붙잡은 이유에 비하면 실상 무가치한 것에 불과했다. 할머니는 다음처럼 나직이 중얼거려 마침내 나를 꺾어버렸다.
“이날 이때까장 때 돼서 내 집에 들어온 사람, 밥 안 멕여 보낸 적이 없었는디 워째 그런당가?”
결국 나는 밥상을 받았다. 산골 노부부의 삶에 감도는 인간애, 육화된 인정에 탄복하며 밥을 먹었다. 내 부모 외에 그 누가 나에게 밥 한술 먹이고자 그토록 안간힘을 다했던가.
그리워라, 할머니가 차려준 조촐한 밥상이여! 정갈한 인정이여! 아무런 계산이나 속셈이 없는 그 도타운 인정을 그들은 어디서 얻어왔을까. 평소 이렇다 할 선행을 한 적이 없는 채, 그저 쌀벌레의 일종으로 살아온 나는 뭔가 켕겨 괴로웠으며, 또 심히 행복했다. 오늘날까지 지구의 인간 생태계가 그나마 무사한 것은 오직 그 노부부 덕분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소는 풀을 뜯어 먹고, 호랑이는 고기를 먹고, 지구는 둥글고 태양과 23.5도 기울어 있고 음속보다 빠르게 자전과 공전을 하고, 공기는 78%의 질소와 21%의 산소 그리고 나머지 다른 기체들로 이루어져 있고, 지구는 5대양 6대주, 인체는 5장 6부, 지구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돌고, 하루는 24시간이고, 인체의 4분의 3은 물이고, 지구 표면의 4분의 3도 물이다.
이와 같이 생명체가 지구 위에서 생명활동을 유지하기 위해 자연 법칙에 따라야 하는 법을 섭리(攝理)라고 한다. 섭리는 자연의 운행 질서, 우주의 움직임, 기운 등 모든 것을 일컫는 말이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살아야 하는 숙명을 지니고 있어 ‘자연과 가까우면 건강하고, 자연과 멀어지면 질병상태가 된다’는 불가피한 인연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이를 섭생(攝生) 또는 양생(養生)이라고 한다. 순천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한다(順天者興 逆天者亡)는 말 또한 자연의 질서와 흐름에 자신을 맡기고 살면 잘살 수 있고 자연을 거슬러 거역하고 살면 안 된다는 교훈을 들려준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자연의 법칙에 따라 살아가는 데 반해, 오직 인간에 의해 사육되는 짐승과 재배되는 식물은 자연과 멀어져 가는 삶을 살아가는 묘한 존재들이다. 인간 역시 18세기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자연의 법칙인 섭리에 따라 살아왔는데 산업혁명 이후 동력이 기계화되면서 ‘자연을 극복할 수 있다’는 만용이 생겨, 인류 역사를 통틀어 섭리대로 살아오던 모든 삶의 습관이 불과 200여 년 만에 송두리째 바뀌고 말았다. 앞으로 도래할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인간의 삶이 어떻게 어느 방향으로 발전할지 예측 불가능한 상태가 됐다.
아프리카 오지에 사는 사람들을 보면 50~60년대의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짐승 수준으로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이라고 강조하려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자연의 영향을 받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임을 상기해야 한다는 의미다.
어릴 때 우리 집 재산목록 1호였던 소를 키우는 것은 필자의 소임이었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소가 일하지 않을 때 들판으로 끌고 가 풀을 뜯게 하고, 그걸로 부족하면 꼴을 베어 외양간에 넣어줬다. 겨울이 되면 짚을 썰어 콩깍지와 섞어 쑨 쇠죽을 아침저녁으로 뜨끈하게 먹였다. 또 추위를 막아주려고 대문 안에 외양간을 만들어 덕석이라는 두터운 가마니로 만든 등덮개로 덮어주고, 햇볕이 좋은 시간에는 양지 바른 곳으로 데려가 볕을 쬐게 했다. 소 한 마리 돌보는 정성이 보통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 요즘 이렇게 소를 키우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소가 일소가 아니라 고기소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나 소의 입장에서 보면 필자가 어릴 때 키우던 방식으로 키워주는 게 좋을 것이다. 그렇게 키우면 구제역 같은 질병으로 페사가 되는 불행한 일도 안 겪게 될 것이다.
아파트를 쳐다보면서 신의 눈으로 보면 사람 사는 모습이나 벌이 사는 모습이나 별반 다름이 없겠다 싶은 생각을 한다. 거의 똑같은 모양의 주거공간에 들락날락하는 모습이 벌이 벌집에 드나드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만약 벌이 스스로 꽃에서 꿀을 따다 식량으로 삼지 않고 사람이 주는 설탕으로만 산다면(인간이 꿀을 빼앗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벌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 육식동물은 이빨이 전부 날카로운 송곳니로 되어 있어 육식을 하기에 적합하다. 초식동물은 풀을 씹기에 편한 구조로 이빨이 나 있다, 인간 같은 잡식동물은 어금니 20개, 앞니 8개, 송곳니 4개의 구조로 되어 있다. 이러한 것이 섭리라면 섭생도 자연스럽게 섭리에 따라야 한다. 먹는 것을 예로 든다면 어떻게 하든 몸 안에서 발효가 제대로 되도록 먹어야 건강해진다. 몸 안에 들어오는 영양분을 발효시키는 데에는 크게 2가지 효소가 작용을 하는데 하나는 먹거리 자체에 들어 있는 싹을 내는 기운으로서의 효소, 다른 하나는 침이나 위액 내지는 췌장에서 분비되는 효소로 구별할 수 있다. 섭리와 섭생으로 보면 원료 자체에 들어 있는 자체 발효 효소가 으뜸이고 그다음이 체내에서 분비되는 효소다. 그러나 오늘날의 음식들이 가공식이거나 육식 중심이다 보니 자체 효소보다는 체내 발효 효소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식문화로 바뀌어 체내 흡수율이 15% 이하로까지 떨어진 식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개는 병이 들면 아무리 좋은 음식을 주어도 먹지 않는다. 몸이 회복될 때까지 금식을 하는 것이다. 몸의 기능이 떨어졌기 때문에 회복될 때까지 굶어서 살아나든지 아니면 죽든가 하는 것이다. 필자가 어릴 때만 해도 가족 중에 누가 아프면 쌀뜨물로 끓인 미음을 먹이곤 했다. 그렇게 겨우 연명을 시키다가 몸의 회복 속도에 맞춰 흰죽, 된죽, 진밥, 된밥을 먹이고 완전히 회복되면 그때 가서 보약을 지어 보양을 시켰다. 그런데 요즘 환자들을 보면 유동식 또는 가벼운 음식을 먹어야 할 사람들이 몸 상태와 상관없이 칼로리 위주로 식단을 꾸려 먹는 경우가 허다하다.
섭생은 섭리에 따라 사는 것을 말한다. 5장 6부의 기능이 몇 %밖에 안 되는데 먹는 것은 100% 기능에 맞추면 어떻게 될까? 몸이 좋아지기는커녕 더 나빠지기 십상이다. 건강이 나쁘다든가 병이 들었다는 것은 아픈 부위뿐만이 아니라 몸 전체의 기능 또한 떨어졌다는 의미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와 같은 섭생을 모르니 섭생을 회복시켜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중국에는 양생관(養生館)이라는 이름을 걸고 건강을 회복시키는 사업이 번창하고 있다. 병원은 병원대로 문전성시를 이루는데 양생관이 왜 필요하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인구의 15% 가까운 약 1억7000만 명이 당뇨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이러한 현상을 만들어냈다. 다시 말하면, 섭생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섭생, 즉 양생을 통해 잃었던 건강을 회복하는 데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인류가 섭리와 섭생을 무시하고 생활한 지가 1세기밖에 안 되었는데, 미국을 중심으로 소위 경제대국의 국민들이 각종 질병으로 신음하고 있고 의료비로 들어가는 비용도 국가 예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의료대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자연의 ‘섭리’에 따르는 섭생의 의미를 한 번 더 되새겨봐야 할 시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