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집을 찾을 때 보통 분위기가 좋은 곳을 우선시한다. 그런데 차 맛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닐까? 기분 좋은 맛과 향기 가득한 곳으로 찾아가 봤다. 정성스레 준비한 차는 기본. 고즈넉함에 취하고, 이야기에 물들고, 사람 냄새에 저절로 미소가 피어나는 곳. 각양각색의 찻집 다섯 곳을 소개한다. 차에 대한 깊은 철학이 있었고, 그 아름다운 향취에 반하고 말았다.
우리 차의 내음을 맡다 ‘차 마시는 뜰’
차 한 잔 시켜놓고 닿을 듯이 가까이 보이는 인왕산을 바라보고 앉았다. 웅성이던 사람들의 소리가 잦아들고 온전히 차와 나, 산이 가을 숨과 연결되어 자연스레 하나 됨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뜰에 핀 꽃과 장독대의 유유자적한 모습은 오래전에 멈춘 듯한 모습이다.
‘차 마시는 뜰’에서 제공하는 차는 전통차의 비중이 높다. 집에서 직접 담근 대추탕과 쌍화탕, 오미자차 등이 인기가 좋고, 깊은 맛이 우러나는 우전차도 많이 찾는다. 특히 녹차류나 꽃차 등 우려내서 마시는 따뜻한 차의 경우 다기 세트와 함께 손님상에 오른다. 중국 차와 커피도 찾는 이들이 있어 판매한다. 단, 커피는 찻집 고유의 향을 위해 더치커피로 내린다. 커피 머신을 사용하면 커피 향이 곳곳에 배일 수 있기 때문이다.
15년 전, 다도를 배우던 조영희 대표는 집 근처 고택을 장만해 찻집을 열었다. 그저 차가 좋아서 벌인 일이었다. 차를 좋아하고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이들의 공간이나 하나 마련하자는 의미가 컸다. 요즘 이곳은 세계인이 찾는 한국의 관광 명소가 되어버렸다. 손님 대부분이 외국 관광객일 정도. 일본은 물론 프랑스 등 유럽 언론에까지 소개되다 보니 외국인들로 늘 북적인다. 마치 외국에 있는 한옥 카페 같은 분위기다. 특히 공휴일과 주말에는 줄이 길게 늘어설 만큼 손님이 붐빈다. 평소에는 일본 관광객 비중이 높으나 기자가 찾았던 날은 중국의 국경일과 겹쳐서인지 중국인 관광객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차 마시는 뜰’은 단아하고 깊은 차 맛과 함께 잠시 잊고 있었던 우리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특히 해질 무렵의 노을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 그 자체. 찻집 입구로 들어가는 유리문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다. “하여간 당신에게 고맙기만 합니다.” 높은 곳까지 걸어 올라오는 것이 쉽지 않기에 이곳까지 와 앉아 차 마시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안다는 말이다. 차와 함께 한국적인 문화를 흠뻑 느끼고 싶다면 꼭 한 번 가보시길. 단, 편안한 신발을 신고 가기를 권한다. (서울 종로구 북촌로11나길 26)
대만 차와 만나다 ‘포담 티하우스’
대만에서 건너온 양질의 차를 마시고 또 이야기를 통해 알아갈 수 있는 곳이 바로 ‘포담 티하우스’(이하 포담)다. 젊은이들이 오가는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을 지나 한적한 골목에 있다. ‘포담’은 ‘아름답다’는 뜻의 포르투갈어 ‘포모사(formosa)’와 ‘이야기하다’라는 뜻의 ‘담(談)’을 붙이고 줄여 만든 합성어다. 16세기 중국을 향해가던 포르투갈인들이 오른쪽으로 보이는 대만 섬을 보고 ‘아름다운 섬(Ilha Formosa)’이라고 말했다고. 이 ‘아름답다’라는 뜻의 ‘포모사’는 20세기에 들어와 ‘대만’의 별칭이 됐다.
차를 좀 안다는 사람이라면 여러 차례 방문하는 대만 차의 성지 같은 곳. “포담” 하면 “아~”라고 답할 정도. 2017년 10월에 문을 열었고, 대만 차 전문가로 통하는 권남석 씨가 공동대표로 있다. 매주 수요일(오후 7시 30분)과 토요일(오후 4시 30분)에는 권남석 씨 진행으로 다양한 대만 차를 맛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차 모임이 진행된다. 세대의 경계 없이 차에 대해 알고 싶은 모든 이에게 열려 있는 시간으로 회비는 1만 원이다. 대만 차에 관해 더 많이 공부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유료 강의도 있다.
EBS 프로듀서였던 권남석 씨는 IMF 때 회사를 그만둔 뒤 2000년부터 안동에 있는 한 전문대 교수로 재직했다. 차에 깊이 빠지기 시작한 건 그 무렵. 특히 보이차의 잎을 따고 제다까지 해서 전부 완성하는 시기인 4월이 되면 중국 운남성 차밭을 12년 동안 들락거렸다. 그 사이 대만인들과도 교류하면서 대만 차의 매력을 알게 됐다. 현재는 그 지역 다원과 직접 거래를 하면서 차를 수입해 우리나라에 소개하고 있다. 적어도 우롱차 다법은 대만이 확고한 지위를 가지고 있는데, 앞으로는 차뿐만 아니라 문화를 교류하는 공간으로 ‘포담’을 이용할 계획이다. 대만 차 탐방 프로그램도 꾸준히 운영하고 있다. 포담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대만 차를 구입할 수 있다. 비싼 차의 경우 한 번에 우려먹을 수 있는 양으로 적당히 덜어놓은 미니어처 형식으로도 판매한다. (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1길 26-13)
샤로수 옆길에서 우아하게 차 한 잔 ‘반조’
‘반조’라면 어떤 차든 믿고 마실 수 있다. 차를 알고 마시는 사람들에게 더더욱 사랑받는 공간이다. ‘홍차의 거의 모든 것’과 ‘커피의 거의 모든 것’(열린 세상)의 공동저자인 하보숙 대표가 2015년 문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한국 차와 중국 차, 꽃차, 커피 등이 손님 찻상에 올라간다. 차로 시작해 차로 끝나는 곳. 모든 디저트도 차를 위해 준비된다. 이곳에서는 특히 가향하지 않은 다양한 차를 간편하게 마실 수 있게 제공한다. 테이블로 나가는 모든 차는 손님들이 직접 우려 마시는 것이 기본. 차는 누군가 시중을 들어줘야만 마실 수 있는 게 절대 아니다.
차를 마시기 전 30초에서 1분 속성으로 차 우리는 방법을 배우면 누구든 차를 즐길 수 있다. ‘차는 어렵지 않다’가 ‘반조’의 콘셉트. 서울대학교에 다니는 젊은 학생들과 물어물어 찾아오는 이들, 차를 마실 줄 알거나 혹은 모르는 이들까지 다양한 손님들이 이곳을 찾는다. 개업 초창기에는 다양한 차 수업과 문화 강좌, 인문학 강좌, 음악회 등 차가 중심이 되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는데 현재는 카페를 찾는 손님이 많아 맞춤형 수업 정도만 진행한단다. 하보숙 대표는 “반조를 통해 사람들이 차를 가까이 대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하 대표는 차 중심의 카페를 열기 전까지는 어떤 고정관념이나 틀에 갖혀 있었는데, 서서히 그 틀을 깨나가는 과정을 밟고 있다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도 차를 온전히 즐길 줄 알자는 쪽으로 말이다. 좋은 차가 있기에 지역에 상관없이 사람들이 찾아와 즐길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 요즘은 반조가 대세다.(서울 관악구 관악로12길 11, 2층)
홍차 키즈가 일군 홍차 나라 ‘티에리스’
‘티에리스’는 홍차를 좀 마실 줄 안다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다니다가 최종적으로 찾아가는 곳이다. 홍차를 좀 안다며 좀 읊어대던 사람들도 티에리스 앞에 서면 주눅이 든다고. 메뉴판도 책 한 권을 읽는 마음으로 봐야 할 정도로 종류가 다양하다. 홍차를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는 진입장벽이 꽤 높은 편이나 편하게 접근하면 좋겠다는 게 정다형 대표의 바람이다. 이곳에는 가향되기 전 단계의 홍차를 주로 판매한다. 산지 농장 단위를 다니면서 수입하는데 지난봄에도 인도 다르질링 지역에서 생산한 홍차 7종류를 들여왔다. 현재 이곳에서는 10종류 이상의 다르질링 홍차를 선뵈고 있다.
티에리스는 마포구 합정동에 사무실 겸 티 룸이 있고 방배동에도 두 개의 티 룸이 있다. 조만간 하나는 정리할 계획이다. 그것도 한창 잘되는 카페의 문을 닫을 예정. 정다형 대표는 “왜 잘되는 카페를 닫느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사업 확장보다는 작고 좁아도 깊이 있게 이 길을 걷겠다는 의미”라고 답한다.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조용하고 한적한 곳을 찾는다. 지난 3월에 오픈한 매장은 좀 더 작고 빈티지한 느낌. 이곳에서는 홍차와 디저트인 스콘에 집중할 생각이다.
대학에 입학할 무렵 홍차에 마음을 빼앗긴 정다형 대표는 차와 함께 성장한 홍차 키즈다. 대학교 1학년 때 학교 앞 홍차 전문점에서 파트 타이머로 시작해 일본의 홍차 브랜드 루피시아를 거쳐 미국의 유기농 홍차 리시티코리아에서 4년가량 브랜드 매니저로 일했다. 인도에서는 티 테이스터 과정을 밟았고, 영국에서는 티 소믈리에 공부를 하고 돌아왔다. 영국인들이 처음으로 만든 다원이 인도에 있기 때문에 차에 대한 기본을 배우려면 영국보다는 인도로 가야 한다고. 홍차는 보이차를 비롯한 기존 차와는 달리 새로 수확한 차를 마시는 것이 훨씬 신선하고 맛이 좋다. 정 대표는 단 한 번만 우려먹는 것을 추천한다. ‘티에리스’의 홍차 수업은 합정동 티 룸에서 진행한다. (서울 서초구 방배천로4안길 84,1층/ 서울 마포구 성지1길 39, 2층)
예약제로 여는 꽃차 티 룸 ‘화려한수다’
‘화려한수다’의 티 룸은 언제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예약을 해야만 열리는 곳. 올해 1월에 강남의 스터디카페 작은 공간에서 예약제로 운영하던 티 룸을 능동의 주택가로 8월에 옮겼다. 한국꽃차아카데미의 송주연 원장이 운영하는 이곳은 꽃차를 순수하게 즐기고 싶어 하는 이들은 물론 카페 업주 등 다양한 사람들이 방문한다. 동백꽃 차이, 꽃차를 이용한 아포카토 등 다양한 레시피를 접할 수 있다. 꽃차를 적당하게 잘 우리는 방법도 배우고 코스별로 4가지의 꽃차와 디저트를 함께 맛볼 수 있다.
제일 먼저 마시는 차는 꽃차만을 우려 손님에게 대접한다. 장미차, 목련꽃차, 노란 코스모스차 등을 주로 낸다. 그다음으로 동백꽃차를 걸쭉하게 우린 뒤에 크림을 얹어 동백꽃 차이티를 낸다. 동백꽃은 꽃차 중에서도 가장 진하게 우릴 수 있는데 얹은 크림 위에 장미나 목련 꽃잎을 잘게 부숴 올리기도 한다.
좀 더 배우고 싶은 사람들은 하루 코스 꽃차 수업을 받으면 된다. 꽃차를 이용한 아이스티를 만들거나, 다양한 차 칵테일을 배울 수 있다. 정기적으로 수업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꽃차를 이용한 알코올 칵테일 코스도 운영하고 있다. 벚꽃 혹은 매화꽃을 보드카에 넣어 칵테일을 해먹는다. 차 코스에 나오는 디저트 대신 술과 함께 곁들여 먹을 수 있는 디저트도 준비된다.(서울 광진구 능동로 24길 100, 1층)
‘따듯한 남쪽 나라’라고 하지만 겨울은 그 어느 곳에서나 역시 겨울입니다.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들고 몸은 자연스레 움츠러듭니다. 거센 바닷바람이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불더니, 어느 순간 다시 앞에서 뒤로, 뒤에서 앞으로 종잡을 수 없게 춤을 춥니다. 돌과 바람과 여자가 많아 삼다도(三多島)라 불렸다던 말이 생각납니다. 검푸른 바다와 거무튀튀한 현무암 갯바위, 모래밭 뒤로 펼쳐진 풀밭이 깡마른 갈색으로 바뀐 지 오래. 모래밭에 촘촘히 뿌리를 내린 채 가늘고 긴 이파리를 무성하게 올렸던 통보리사초 더미도, 좌로 우로 비스듬히 줄기를 뻗은 순비기나무도 푸른빛을 잃었습니다. 푸르던 하늘에도 어느새 시커먼 구름이 들어와 반쯤 자리를 차지하니, 겨울 제주의 바닷가 풍경이 일순 을씨년스럽습니다.
황량한 바닷가 풍경에 모처럼 제주를 찾은 길손이 여수(旅愁)에 빠져들려는 순간 달덩이처럼 둥근 꽃송이가 방긋 웃으며 인사를 합니다. 미국에 ‘상하(常夏)의 낙원’ 하와이가 있듯 한국에는 사시사철 꽃이 피는 제주도가 있으니 힘을 내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제주도 바닷가에는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한겨울에도 많지는 않지만 찾아보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여전히 꽃잎을 활짝 열고 있는 야생화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황금색 국화인 갯국을 비롯해 철 지난 해국과 감국, 수선화, 그리고 오늘 소개하는 갯쑥부쟁이 등등. 물론 각종 도감은 갯국 등의 개화 시기를 11월까지로 소개하고 있어, 실제와 차이가 있습니다.
누군가 말했듯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 버리기엔 차마 아까운” 12월. 산방산이 한눈에 바라다보이는 탁 트인 바닷가에서 갯쑥부쟁이의 환한 꽃 무더기를 만난 것은 각별했습니다. 모든 것이 사위어가는 한겨울 세찬 바닷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꽃 피운 모습이 ‘이 땅의 장한 여인’들을 똑 닮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모진 시집살이와 가난, 굴곡진 근현대사의 풍파를 이겨낸 며느리와 아내, 어머니의 모습이 갯쑥부쟁이 둥근 꽃다발에 투영된 걸 보았습니다. 그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꽃을 피우고 훗날을 기약하는 모습이 정말 비슷합니다. 흔히 들국화라 부르는 가을꽃 가운데 하나인 갯쑥부쟁이. 쑥부쟁이와 개쑥부쟁이, 단양쑥부쟁이, 까실쑥부쟁이, 눈개쑥부쟁이, 가는쑥부쟁이 등과 마찬가지로 국화과 식물의 하나인데, 주로 바닷가에서 자라는 쑥부쟁이라는 뜻에서 갯쑥부쟁이란 이름을 얻었습니다. 높이는 30~100㎝로 자라며, 8월부터 11월 사이 원줄기와 가지 끝에 지름 3~5㎝의 동그란 꽃이 하나씩 달립니다. 꽃은 가운데 노란색의 대롱꽃과 대롱꽃을 둘러싼 혀 모양의 자주색 꽃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Where is it?
제주도는 물론 남해안과 동해안 등 전국 바닷가에서 자란다. 일본·대만·만주·중국 등에도 널리 분포한다. 제주도에서는 동서남북 가릴 것 없이 빙 둘러 바닷가에 자생하는데, 일부 도감은 키가 다소 작고 바닥에 기듯이 자라는 것을 섬갯쑥부쟁이로 구분한다. 또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은 제주도 남부에서 자라며 붉은색을 띤, 줄기가 가지를 많이 치고 억세고 나무처럼 딱딱해지는 것을 왕갯쑥부쟁이로 분류한다. 여러해살이풀로 꽃도 지름 5~7㎝로 다소 크다. 제주도 바닷가에 자생하는 쑥부쟁이의 경우 갯쑥부쟁이로 부르고 있다. 야생화 동호인들이 제주도에서 많이 찾는 갯쑥부쟁이 자생지는 성산일출봉이 바라다보이는 섭지코지와 광치기 해변, 산방산 앞 사계포구 해변, 그리고 마라도 등지다.
파도와 바람을 벗하여 가을을 걷는다. 영덕블루로드B코스
770km를 따라 부산에서 고성까지 동해안을 따라 해파랑길이 나있다. 속이 꽉 찬 가을 대게처럼 볼거리와 먹거리가 풍성한 해파랑길 중 영덕블루로드 B코스를 걸으며 가을바다를 만난다.
영덕블루로드 B코스는 '푸른 대게의 길'이라 불린다. 영덕해맞이공원에서 시작해서 경정리, 죽도산전망대, 축산항까지 12.5km의 구간, 3시간 정도 걷는 코스다. 보통은 해맞이공원에서 고성방향으로 위쪽으로 올라가지만 축산항에서 부산방향으로 해안을 왼편에 끼고 걸으려고 한다. 영덕 도착 시간을 고려하여 점심은 축산항의 물가자미 요리로, 저녁은 강구항의 대게로 먹는 즐거움까지 챙기기 위해서다.
영덕 축산항은 물가자미로 유명하다. 매년 5월이면 축산항에서 물가자미축제가 열린다. 물가자미는 흔히들 ‘미주구리, 미주가리’라고 부른다. 일본명이 Mushigarei니 거기서 이름이 왔으리라 짐작하겠지만 순수우리말이다. 경상북도 방언에서 6을 뜻하는 물과 가자미를 뜻하는 ‘가리’ 또는 ‘구리’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물가자미는 광어와 비슷한 생선으로 크기만 더 작다고 생각하면 된다. 주로 뼈채 회를 뜨는 세꼬시나 살짝 말린 것을 구워서 먹는다. 물가자미로 다양한 요리를 내놓는 전문식당을 추천한다. 물가자미축제가 열리는 축산항에 위치한 김가네식당이다. 조림, 회, 회무침, 매운탕, 식해까지 다양한 물가자미요리가 나온다. 식당 앞에서는 동해의 해풍에 꾸들꾸들 물가자미를 말리고 있다.
축산항 대표 맛을 즐긴 후 블루로드B코스 하행 시작점에 서면 계단 바로 위에서 죽도산전망대와 해안데크길 두 갈래로 나뉘는 것을 볼 수 있다. 해안가를 따라 이어지는 아기자기한 풍경과 함께하고 싶다면 해안길을, 시원한 전망을 원한다면 전망대 길을 택하면 된다. 2억년의 시간을 뛰어 넘어 눈앞에 드러난 시간의 흔적들이 짧은 인간의 역사를 하나의 점으로 인식하게 한다. 파도와 바위에 침식된 바위 사이 늦둥이 해국이 소담스럽게 피어있다. 걷다가 잠시 멈추어 파도에 생겨난 포말이 부서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쉼의 시간을 갖는다. 블루로드 다리를 건너고 바람이 잦아든 짙푸른 솔숲 길을 걷는다. 해안절벽과 솔숲의 조화에 걷는 묘미를 한껏 즐기게 해주는 코스다.
걷느라 수고하였으니 저녁식사는 영덕하면 떠오르는 대게다. 강구항 수산물직판장에서 대게를 사는 것이 좋다. 크기가 무조건 큰 것보다는 들어봐서 묵직해야 속이 꽉 찬 대게다. 몇 번의 흥정 끝에 구입한 대게를 쪄주는 곳에서 쪄달라고 하여 숙소에 가져가서 먹거나 자릿세를 내면 상차림을 해주는 식당에서 먹는 것을 추천한다. 가장 저렴하게 푸짐하게 대게를 먹는 방법이다.
겨울이 오기 전에 만난 여행지, 영덕블루로드는 걷는 묘미와 푸짐한 맛이 있는 길이다. 나지막한 산과 지질공원, 파도치는 바다와 바람을 벗하여 걸은 길을 걸으며 동해의 거친 풍경과 바닷가 마을의 정취를 듬뿍 즐긴다. 시간 앞에, 바다 앞에 세상사 시름이 작아졌다가 수평선 너머로 자취를 감춰버린다. 일상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이 가벼워졌다.
가을 억새꽃 군락과 습지의 이색적 경관을 즐기기 좋은 호반 둘레길이다. 대전시 동구 추동에 위치한 대청호자연생태관에 주차, 대청호자연수변습지와 억새꽃 군락이 있는 추동습지를 탐방한다. 호수 수위가 높을 때엔 둘레길 일부가 물에 잠긴다. 도보만이 아니라 차로 대충 둘러보기에도 적당한 곳이 대청호 오백리길이다.
해 기울어 노을빛 어릴 때, 호수는 비로소 생기를 띤다. 불그레한 잔광을 받은 수면에, 직격탄처럼 쏟아지는 한낮 햇살 아래에선 보이지 않던 색감과 물무늬가 아롱진다. 현(絃)의 진동처럼 섬세하게. 수묵화처럼 농담(濃淡)마저 입은 채. 호수 사진을 찍는 취미가 있는 사람들이, 호수의 내향성에 감흥을 느끼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도 대개 이 시각쯤이다. 거기에 더 순수하고 더 고혹적인 풍경이 있다고 믿어서다.
물은 인간의 재주에 놀랄 것이다. 필요와 이용을 위해서라면 밀반죽 주무르듯 물길을 맘껏 가공하기를 서슴지 않으니. 대청호는 금강을 댐으로 막아 조성한 인공호수다. 물의 감옥이라 할 수밖에. 그러나 신생 호수는 불화하는 법 없이 순리를 좇았다. 인위의 사슬을 풀고 호수의 호수다운 본연을 생성했다. 타율에서 벗어나 어느덧 자율로 풍경과 생태를 펼쳐놓는 저 장엄한 물의 도가니. 이 호수 앞에서 사람의 삶은 옹색하다. 옷 하나 입는 일조차 남의 눈과 유행을 고려하는, 우리는 타율의 노예이지 않던가.
‘호반낭만길’은 25개 구간으로 이루어진 ‘대청호 오백리길’ 4구간으로 호수와 습지와 억새밭, 숲과 오솔길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둘레길이다. 추동습지의 가을 억새꽃이 특히나 유명하다. 물가에 자라기에 물억새라고 한다. 꽃향 한 오라기 뿜을 줄 모르고, 그 무슨 곱디고운 형용을 지니지 않았으면서도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모은다. 군락의 장관, 그 은빛 억새꽃 물결에 사람들은 찬탄하는 것이다. 저만치 저 홀로 사는 억새를 본 적이 있는가. 서로 뺨을 비비고 서로 껴안아 촌락을 이루는 게 억새의 생리다. 무릇 모든 공생은 미덥다.
소나무꽃, 벼꽃, 오이꽃, 그리고 억새꽃의 공통점을 아시는가. 모두 ‘안갖춘꽃’으로 분류되는 꽃들이다. 대부분의 꽃은 암술, 수술, 꽃잎, 꽃받침, 이렇게 네 가지 요소를 구비한 ‘갖춘꽃’이다. 억새꽃은 꽃잎을 갖추지 않아 ‘안갖춘꽃’이다. 그렇다면 억새꽃의 섬약한 아름다움을 결핍의 미학이라 읽어도 무방하겠지. 꽃잎을 두르지 않고 피어난, 제정신 아닌 저 억새꽃들의 아우성을 일탈의 합창이라 봐도 좋겠지. 허공에선 자주 바람이 몰려와 가녀린 억새를 흔들어대지만, 끄떡없다, 억새꽃은 겨울을 지나서까지 시들망정 꺾이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몇 가닥 남은 백발로 퍼석퍼석 말라가면서 세상을 천천히 지나간다.
호숫가 오솔길에도 놀빛이 들이친다. 야트막한 야산을 에돌아 펼쳐지는 숲길이다. 나무를 만나면 구면처럼 늘 반갑다. 다정한 눈짓을 해오는 나무들의 품에 안겨 천천히 걸어드는 적막한 산길. 산길 밖으로는 연달아 호수가 보이고, 물 위에 뜬 수생식물과 물속에 반쯤 잠긴 버드나무들, 그리고 터무니없이 환상적인 작은 섬 두세 개가 보인다. 때 묻지 않은 순수와 단조롭지 않은 겹겹의 풍색으로 미묘하다. 여기에선 그 무엇도 모독할 수 없다.
그렇기에, 당신의 아름다운 연인을 이곳으로 초대하는 게 좋겠다. 방금 치른 부부싸움의 화해를 바라는 당신이라면, 짝과 함께 이곳의 순정한 풍경에 취함으로써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 오오.” 가곡 ‘내마음’은 호수를 닮은 마음이면 얻지 못할 사랑이 없다고 노래하는 것 같다. 사랑이 괴로워지는 건 애욕에 휘둘린 마음 사이즈가 간장종지로 쪼그라들 때다. 호수는 크넓은 그릇이다. 수평으로 평등한 호수의 얼굴은 관용의 표정으로 빛난다. 물 깊어 좀체 방정맞게 요동칠 줄 모르는 수면은 엉뚱한 파란을 야기하지 않는다. 사랑이건 인생이건 노를 저어 도달하기 힘겨운 운항이지만, 호수처럼 안전한 행로라면 선혈을 흘릴 일이 없으리라.
다시 억새를 만난 건 호숫가에 숱한 게 억새여서다. 호수로 달려가는 세찬 바람을 따라 억새꽃들도 덩달아 일제히 고개를 튼다. 이 순간 억새는 따귀를 올려붙이는 힘을 느낄지도 모른다. 나를 부수고 깨뜨리려는 것들과 조우하지 않아도 되는 운명이란 세상에 없다. 서럽게 떨지 않고 존재하는 생명도 없다. 온몸으로 슬픔을 녹이는 춤은, 그래서 대안이다. 바람 많은 가을날, 호숫가 억새들의 출렁거림. 그마저 나의 망막엔 춤으로 각인된다.
꿈이 유예되는 날들을 더 이상 수수방관할 수 없었던 부부는 서울을 떠나기로 했다. 아파트를 팔아 한적한 시골마을로 들어가 난생처음 지은 집은 2층짜리 컨테이너 하우스. 1만여 장의 LP 음반이 놓인 공간은 자연스럽게 ‘음악 카페’가 됐다. 어느 볕 좋은 날, 정성 들여 쓴 ‘프럼나드’ 간판을 걸고 김기호(金基鎬·74) 씨는 스피커 볼륨을 한껏 높인 뒤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을 들었다. 아내 양정필(楊汀畢·64) 씨는 커피를 내리고 달콤한 과자를 구워냈다. 해가 지면 파주 탄현면 만우리의 노을이 부부의 마음을 자주 물들인다는 소식도 심심찮게 들려왔다.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에서 차로 10여 분간 더 달리니 시골마을이 눈앞에 펼쳐졌다. 너른 논밭의 곡식들이 땀 흘리며 받아내는 가을볕은 꽤나 뜨거웠다. 고운 마을길에 끌려 차바퀴는 무턱대고 앞으로 나아가기만 했고 하마터면 목적지를 지나칠 뻔했다. 김기호, 양정필 부부가 사는 컨테이너 하우스는 마을 안쪽 언덕배기에 위치해 있었다. 뒤쪽으로는 야트막한 산이 이어져 있고, 아래쪽으로는 옹기종기 민가가 모여 있는 조용한 동네였다.
부부의 철학이 담긴 집
부부가 이 마을로 들어와 살기 시작한 건 2016년. 무역업을 하던 남편이 도시에서의 삶은 그만 정리하고 시골에 가서 살자는 제의를 했다. 고등학교 교장이었던 아내는 정년이 아직 몇 년 더 남아 있었지만 그 뜻을 따랐다. 두 사람이 오랫동안 소망해온 삶이었기에 도시에 대한 미련은 없었다. 땅을 사고 집 짓는 일은 속전속결로 이루어졌다.
“장고 끝에 악수 둔다는 말이 있잖아요. 오래 고민한다고 반드시 좋은 결정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물론 저희도 맘에 드는 땅을 구하기 위해 김포, 강화, 양평, 가평, 춘천 등지로 많이 돌아다녔지요. 그러다가 문득, 너무 먼 곳에 살면 자식들이나 친구들이 만나러 올 때 사방 막히는 길에서 시간을 다 허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몸이 아플 때를 대비해 병원과의 접근성도 고려해야 했고요. 파주가 그런 기준들에 가장 적합했어요.”
땅을 매입한 뒤에는 컨테이너 하우스 견적 상담을 받았다. 서울을 떠나면 절대로 집을 마련하는 데 큰돈을 쓰지 않겠다는 철칙을 세웠기 때문이다. 지인들은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울 텐데 시골에서 어떻게 살려고 그러느냐”며 신중하게 결정하라고 조언을 했지만 계획은 흔들리지 않았다. 주변에서 내 집 짓다가 10년은 폭삭 늙어버렸다는 얘기도 많이 들려왔고, 무엇보다 20여 년 전 외국에서 본 컨테이너 하우스에서 꼭 살아보고 싶었다.
“사업 차 덴마크에 갔을 때 바이어가 자기네 집에서 자라며 데리고 갔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이동이 가능한 컨테이너 집이더라고요. 일반 주택과 견줘도 전혀 손색이 없는 훌륭한 건물이었어요. 감탄했지요.”
대지 137평에 지은 부부의 컨테이너 하우스는 토목공사비 7000여 만 원, 총 55평의 건축비 1억5000여 만 원이 들었다. 땅값까지 다 합쳐봐야 4억 원도 안 되는 비용에 2층짜리 집을 번듯하게 세운 것이다. 공사기간도 단축했다. 주방 설치 등의 내부 공사와 함께 상하수도 연결, 마무리 페인트칠까지 2개월여 만에 끝냈다. 아파트 살림에 비하면 관리비도 절반밖에 안 됐다.
“비용이 많이 절약됐어요. 나이 들어 큰 집에 살면 관리하기만 힘들지 무슨 쓸모가 있겠어요. 우리가 죽은 뒤에는 자식들이 들어와 살 거 아니면 이 집은 고철로 팔아버리면 돼요. 일반 주택은 철거비용도 만만치 않아요. 컨테이너 하우스는 그런 면에서 친환경 건축이라 할 수 있지요. 폐기비용도 거의 안 들고 재활용도 가능하니까요.”
LP 음악 들으며 떠나는 시간 여행
그렇게 부부의 철학이 녹아든 집은 독특한 외관으로 방송과 신문에 종종 소개되면서 입소문을 탔다. LP 음반 위에서 바늘이 치직거리며 불러오는 노래가 좋아 음악 카페에 찾아오는 단골도 생겼다. 대부분 지긋한 나이에 아날로그 감성을 그리워하는 이들이다. 만나면 자기 사연 하나씩은 있는 음악 감상도 하고 레코드 너머로 먼지 쌓인 추억담도 나눈다. 김기호 씨가 가장 아끼는 물건은 1만여 장의 LP 음반. 다양한 장르의 명작 DVD도 4000여 장이나 된다. 이 보물들을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어 방법을 찾는 중이다.
“얼마 전에는 서울에 사시는 할머니가 방송을 보고 가족과 함께 여길 찾아왔어요. 나이 드신 분이 오셨으니 이미자 노래를 선곡해 들려드리려 했더니 ‘노’ 하시면서 레이 찰스의 아이 캔트 스톱 러빙 유(I Can't Stop Loving You)를 틀어달라는 거예요. 깜짝 놀랐어요. 젊은 시절 팝송깨나 들으신 분 같았어요. 어느 날은 한 분이 조안 바에즈 앨범을 보며 눈시울을 붉히길래 그 이유를 물었더니 첫 월급 타서 그 판을 샀다가 엄마한테 제정신이냐며 등짝을 맞았대요. 노래를 듣다 보니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난 거죠.”
프럼나드에 오는 사람들은 그렇게 울다가 웃다가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난다.
아파트에 살 때 볼륨을 크게 틀어놓고 음악을 실컷 들어보는 게 소원이었던 김기호 씨는 요즘 그 바람을 제대로 성취하며 지낸다. 그러나 “시골에 가면,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겠다”고 스스로에게 한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아내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자신을 일개미로 표현할 정도로 남편은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그래도 1년 정도는 게으름을 좀 피우며 지낼 줄 알았는데 3개월 만에 손들고 말았다.
“매일 하는 일 없이 노니까 죽을 날 받아놓고 기다리는 것 같더래요. 어느 날 학교에 김치배달해주는 일을 구하더니 새벽 4시에 일어나 나가더군요. 조금 하다가 그만두겠지 했는데 그 힘든 일을 1년 넘게 하더라고요.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어서, 나이 먹어도 뭐든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그랬대요. 요즘은 남편이 사업할 때 하청을 주던 회사에 일자리 하나 만들어 달래서 거길 다녀요. 최근에 연봉을 더 올려줬다는 걸 보니 일을 잘하긴 하나봐요.(웃음) 무리하면 걱정이 되지만 적당히 일하니까 건강해 보이고 좋아요.”
김기호 씨는 은퇴 후에도 체력 유지를 위해서 일은 하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그 시간이 또 다른 기회로 이어질 수 있고, 경제적 활동을 하면 집 안의 평화에도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퇴직한 지 6개월 된 지인이 얼마 전에 저희 집엘 왔어요. 퇴직금 등 가진 돈이 좀 있기는 하지만 일자리를 찾고 싶어 하는 눈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찾아보면 일거리 많다. 공장이라도 다녀라. 그동안 해온 일이 뭐가 그리 대단하냐, 노동은 다 똑같다’라고요.”
기호 씨와 정필 씨가 사랑하는 법
아내 양정필 씨는 남편이 출근하면 그제야 느긋하게 카페 문 열 준비를 한다. 이윤을 남기려고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손님이 많아도 반갑지 않다. 매일 한두 팀 정도만 와서 즐겁게 잘 놀다가 가면 좋겠다고 말한다. 가끔 들르는 손님들도 전직 교장선생님이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면서 이곳이 조금은 특별한 공간이라며 편안해한다.
“문은 오전 10시쯤 여는데, 일찍 오는 손님들은 없어서 상황 되는 대로 올라와요. 저는 이 시간이 제일 좋아요. 커피 한 잔 내려서 혼자 음악을 들으며 신문을 읽고 있거나 자연과 눈 맞추고 있으면 이게 행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학교에서 제가 만났던 사람들은 학생, 선생, 학부모밖에 없었잖아요. 여기 와서 다양한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났어요. 사회 경험을 새로 하는 느낌이에요. 전혀 몰랐던 세계도 알게 되고요. 우리 사회를 그동안 이끌어온 사람들이 이분들이구나 하면서 감사한 마음이 들곤 합니다.”
김기호 씨는 배우자와 뜻을 같이하면서 해로하면 그게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부부가 하루 종일 같이 시간을 보내면 다툴 일이 많을 거라고 했지만 아내가 커피도 내려주고 쿠키도 구워주고 또 음식을 이렇게 잘할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면서 “마치 새 여자하고 사는 것 같다”고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한다.
“아내는 제가 외출할 때면 ‘지갑 좀 검사하겠습니다’ 하고 10만 원씩 넣어줍니다. 옛날부터 그랬어요. 이렇게 존중해주니까 저도 아내를 받들어 모시게 됩니다. 맛있는 반찬이 있으면 아내 입에 먼저 넣어줍니다. 그러면 얼마나 사랑받는 느낌이 들겠어요. 학교에서 근무할 때도 한 달씩 혹은 보름씩 여행을 간다 하면 ‘당신은 선생이니까 많이 알아야 해, 잘 다녀와’ 하고 응원해줬어요. 황혼 이전에는 그렇게 살다가 여기 와서 또 아내를 겪어보니 제가 알던 마누라가 아니더라고요. 음식도 너무 잘하는 거예요. 그 모습이 새롭고 예뻐요. 다시 신혼을 사는 기분입니다.”
양정필 씨는 그동안 나이 드는 걸 완숙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환갑이 넘으면서부터는 주변 사람에게 부담스러운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가끔은 서글픈 마음도 들 때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건강은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건강을 잃으면 모든 걸 다 잃는 거니까요. 저는 ‘남편 바보’이기도 하지만 나이 드니까 배우자가 더 소중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나이에는 그래서 사랑보다는 존경을 하며 살아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인터뷰하기 전에 남편에게 ‘당신 삶은 브라보 마이 라이프예요?’ 하고 물었더니 ‘지금까지 당신이 날 존중해줬으니 당연히 브라보 마이 라이프지’ 하더라고요.(웃음)”
인생 후반전. 더 반짝이는 사랑을 시작한 부부는 요즘 마음의 표현도 자주 한다. 상대에게 받기만 하고 돌려주지 않는 것은 도둑 심보라는 것. 그래서 매일 아침 일어나면 고백하듯 아낌없이 말한다. “사랑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사실을 찾아 나서는 여행은 구경이 목적인 여행에 비해 훨씬 더 생기를 준다. 생기 있는 ‘삶을 고양하기 위한’ 여행으로 니체는 두 종류의 여행을 말했다. 하나는 과거의 위대함을 숙고함으로써 인간의 삶이 영광스러운 것임을 느낄 수 있는 여행이다. 다른 하나는 현재의 정체성이 과거에 의해서 형성되어왔다는 사실을 깨달아 그 과정에서 연속성과 소속감을 확인하는 여행이다.
정읍으로의 여행이 내게는 니체가 말한 영감을 얻게 되고, 자아를 확인하게 되는 여행이었다. 그곳은 오래된 시간의 흔적이 있는 유서 깊은 도시였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재생시키는 자연을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2019년 7월 ‘한국의 서원 9곳’이 한국에서는 14번째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한국의 서원은 조선시대에 설립한 사립교육 시설이다. 서원의 역할, 지역을 중심으로 학파를 만들어가는 기능 등이 세계적 문화유산으로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이번에 등재된 서원은 소수서원(경북 영주), 도산서원(경북 안동), 병산서원(경북 안동), 옥산서원(경북 영주), 도동서원(대구 달성), 남계서원(경남 함양), 필암서원(전남 장성), 돈암서원(충남 논산)과 전북 정읍에 있는 '무성서원'이다.
전북 정읍에 있는 무성서원은 신라 말 고운 최치원이 태산군(정읍의 옛 지명) 태수로 부임했다 떠난 후 그의 선정을 기려 주민들이 세운 생사당에서 유래되었다. 무성서원은 앞에 칠보천이라는 개울이 흐르며 뒤에는 성황산을 등지고 자리한 배산임수형 위치이면서 마을의 중심에 있다. 신분의 차별 없이 모두에게 열린 학문의 공간이자 소통의 장이었다. 더욱이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손되지 않고, 을사늑약 체결 이듬해 최익현 등을 중심으로 호남의병을 창의한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서원의 입구 출입문으로 외삼문이 있다. 무성서원의 경우에는 1891년에 건립한 2층 누각의 현가루가 외삼문 대신에 출입구의 역할을 한다. 현가루는 논어의 현가불철(絃歌不輟)에서 따온 이름으로 ‘어렵고 힘든 상황에도 학문을 계속한다’라는 의미이다. 서원은 제례를 지내는 사당인 사우와 강학공간인 강당, 기숙사인 강수재, 서원 관리인이 거주하는 고직사 등의 건축물로 구성되어있다. 주변에는 각종 비석과 비각이 놓여있다.
오래된 시간의 흔적들을 돌아보니 과거의 파편들이 조각조각 떠올랐다. 시간 속을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순례자가 된 기분이었다.
무성서원에서 30km 거리에 한국 최고의 단풍을 자랑하는 내장산 국립공원이 있다. 올해는 따뜻하고 건조해서 단풍의 절정기가 예년에 비해 늦어졌다고 한다. 11월 중순을 넘겨야 명성에 맞는 내장산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계절의 변화는 어찌할 수 없다는 듯 많은 녹색은 조금씩 미세하게 변하고 있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햇빛에 비친 나뭇잎들도 색의 변화에서 제각각 차이를 드러냈다. 녹색을 띤 황금빛, 붉은색을 띤 황금빛, 온통 시뻘건 붉은색, 레몬 빛 노란색, 녹색과 합쳐진 붉은빛, 체리색 주황빛...
내 영혼을 위해서 오래도록 풍경 속에 있고 싶었다. 노란색, 붉은색 나뭇잎이 떠다니는 호수의 우화정에 자리를 잡았다. 화려하게 변신 중인 숲길을 바라보는데 불현듯 고흐가 생각났다. 바람에 따라 움직이는 사이프러스 나무의 선과 비례의 아름다움을 그렸던 것처럼 그가 내장산 단풍을 그렸다면 어떻게 그렸을까? 색의 대비로 내장산의 가을을 표현한다면 그는 어떤 색의 대조를 선택했을까? 눈을 감고 잠시 고흐가 되어 상상의 화폭에 가을 내장산을 그려보았다.
▪ 무성서원: 전북 정읍시 칠보면 원촌1길 44-12
서산은 서울에서 두 시간 남짓한 거리다. 바다가 있고 나지막한 산이 있고 역사의 숨결이 머문다. 서해 바다로 떨어지는 낙조는 흐릿할 때도 있고 더할 수 없이 화려해지기도 한다. 서산에서 어떤 해넘이를 만날 수 있을까?
아침에 눈을 떴는데 불현듯 가을의 개심사가 궁금하다. 세상사 번잡함을 내려놓고 느리게 걷기 좋은 곳, 서산에 간다.
개인 취향으로 서산 제1경은 개심사다. 왕벚나무 꽃이 피는 봄철에는 상춘객으로 들썩이는데 가을은 어떤 색일까? 여전히 소담스럽다. 단풍이 은은하게 든 나무에 둘러싸인 개심사는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개심사 입구임을 알리는 표지판에서 시작되는 돌계단이 실개천을 지나고 나서는 급격히 휘어진다. 직선이 아닌 곡선의 길을 걸을 때면 휘어진 길 끝에서 만나게 될 풍경에 대한 기대가 크다.
돌계단이 끝나자 개심사가 나타난다. 봄의 분주함과는 확연히 다른 가을의 고요함이 흐른다. ‘마음을 여는 절’, 개심사의 가을은 번잡하지 않아서 좋다. 마음을 열기 좋은 계절은 가을이다.
연못가에 서 있는 우람한 둥치의 서어나무 잎이 노랗게 물들었고 주렴처럼 열매를 늘어뜨리고 있다. 경내 계단을 올라 만난 건물의 기둥이 독특하다. 나무를 그대로 사용한 도랑주의 자연스러운 곡선미 위에 부화한지 얼마 되지 않은 유리산누에나방이 날개를 펴고 쉬고 있다. 명부전으로 오르는 돌계단을 오르며 가을햇살이 내리쬐는 숲으로 들어간다. 가을날 거닐기 좋은 절, 개심사는 시간이 느려지는 여행지다.
해미읍성 또한 산책하기 좋은 서산 여행지다. 읍성 안의 너른 잔디밭은 시민들의 휴식처다. 초가를 새로 얹는 분주한 손길이 겨울 채비에 한창이다. 1,000여 명의 천주교 신자가 이곳에서 순교하였다. 아름드리 회화나무는 그때의 시간을 기억하는 듯 상처 입은 채 서 있다. 읍성 성곽을 따라 걸으며 바람을 느낀다.
서산은 바다가 지척이어서 가볼 만 한 곳이 많다. 간월암, 삼길포항에서 서해 바다로 떨어지는 낙조를 만날 수 있다. 간월암(看月庵)은 만조에는 섬이 되었다가 간조가 되면 육지와 연결되는 길이 나타나는 신비의 섬, 간월도에 있는 암자다.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달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 일몰 시간까지 기다려 간월암 앞의 바위 위에 걸터앉아 붉게 변하는 하늘을 바라본다. 우측으로는 빨간 등대가 보이고 갈매기들이 하늘로 날아든다. 서산은 느려도 좋다고 말하는 여행지다. 개심사의 단풍과 해미읍성의 바람, 간월암의 낙조까지 천천히 쉬며 놀며 서산을 만나보자.
애석한 사실 하나 귀띔하고 그의 귀농 이야기를 시작해야겠다. 귀농 7년 차. 농사도 살림도 어언 자리 잡힐 만한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문기운(60) 씨는 아직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자나 깨나 진땀을 흘리는 것 같다. 화살을 쏘았으나 여태 과녁에 도달하지 못했으니. 속사정을 모르는 남들은 일쑤 ‘귀농우수사례’로 치지만, 사실은 실패 사례에 가깝다는 게 아닌가.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사이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세월이 줄레줄레 길어진다면? 안간힘을 다했으나 자꾸 스텝이 꼬인다면? 기세가 꺾일 수 있다. 심장을 쿵쾅거리게 했던 초심의 열정이 얼어붙을 수 있다. 그러나 문기운 씨는 고난을 차라리 디딤돌 삼아 맥락을 잡아간다. 심술궂은 운명아, 넌 그래라, 난 내 길 간다! 그런 태세로. 고난과 정면으로 독대해 희망의 불씨를 지속하는 일. 인생의 요점을, 그는 그리 생각하는 것 같다.
시골에서 누리는 ‘인생 2막’. 도시생활의 중압과 불쾌로부터 벗어나 경치 좋은 산골에서 한가하게 노니는 일은 얼마나 평화로운가. 오전엔 운동 삼아 약간의 노동을 하고, 오후엔 책을 읽는다. 밤이면 두릿두릿 돋아나는 별들과 교신하며 영속하는 가치를 생각한다. 이런 삶, 그 무엇보다 이상적이지 않을까. 그러나 문기운 씨는 그런 식의 삶에 들뜬 적이 없다. 그는 사업에서 명퇴를 했다. 그러나 사업적 욕망까지 명퇴하진 않았다. 그는 산촌을, 농촌을 매력적인 사업장으로 판단했다. 농업 경영인으로 도약해 생의 후반을 흥미진진하게 돋우겠다는 야심. 그게 귀농을 선동했다.
“흔히 은퇴 이후엔 격렬한 삶과 멀어집니다. 편안하고 여유로운 휴식을 추구하는 것이죠. 저는 생각이 달랐어요. 은퇴를 계기로 또 하나의 격렬한 삶 속으로 뛰어드는 게 인생을 낭비하지 않는 길이라 봤지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직업을 잡아 나를 새롭게 확장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어요. 그 방편으로 귀농을 택한 건, 농사가 지닌 사업적 가망성을 높게 평가했기 때문입니다.”
직격탄 맞은 조경수 사업
그는 KT 출신이다. 줄곧 KT에 근속하다 자회사를 창업, 6년간 대표이사로 일한 뒤 퇴직했다. 마음은 일찌감치 산골로 먼저 이주해 그를 열렬히 호명했던 모양이다. 퇴직을 한 바로 그날, 잽싸게 짐을 싸 귀농을 했다는 게 아닌가. 이전에 미리 사두었던 이곳 홍천의 산골짝 터전으로 부리나케 달려왔던 것. 매봉산 자락 해발 780m 고지에 있는 터전의 규모는 조경수 농장 2만 평을 포함, 총 4만 평. 광활한 터이니 광폭의 행보를 예감하며 기꺼웠을 게다. 새 삶의 기획자인 자기 자신에게 진정 새로운 삶을 선사할 기회가 도래했다는 확신으로 설레었을 테고.
“사실 귀농은 오래된 계획이었어요. 도시보다 시골이 좋았고, 농사가 제 적성에 부합한다고 봤으니까. 일테면, 제가 흙냄새 좋아하고, 몸 쓰기를 좋아해요. 게다가 땅이 지닌 생산성에 호감을 느껴 나름대로 농업 연구도 해왔죠. 그러하니 지당한 귀농이었다는 거.”
“부인께선 찬동했고?”
“찬동까지는 아니었지만 반대하지도 않았어요. 부부이니까 당연히 따라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도시생활에 지친 남편을 조용히 응원하는 마음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녹록지 않은 시골생활에 닻을 내리기까진 시간이 걸렸어요. 이모저모 버거운 경험을 하며 아내가 한동안 마음고생 좀 했습니다.”
“농사의 사업적 가망성에 착안한 건 어떤 근거에 의해서였죠?”
“조경수 농업이 매우 유망하다 봤던 겁니다. 제가 농장을 사들인 10여 년 전엔 나무시장이 생동했어요. 남북경협이 기폭제였죠. 산림 황폐화가 심각한 북한으로 막대한 물량의 나무들이 보내졌으니까. 당시 국내 과실수 묘목의 40%가 북한으로 넘어갈 정도였지요. 그 매우 긍정적인 상황에 착안하고 나무 농장을 사들였던 겁니다.”
“천안함 사건의 여파로 2010년, 남북경협이 중단됐어요. 상황이 돌변했겠군요. 호재가 사라지고 악재가 덮쳤으니.”
“예상하지 못한 일이 순간에 벌어진 거죠. 직격탄을 맞았다 할까, 국내 조경사업 자체가 냉각되면서 사양길로 접어들더라고요. 게다가 이 사업이 원래 건축 경기하고도 맞물려 있는데 건축 바람마저 가라앉아 불황을 면치 못하고 있어요.”
시퍼런 꿈과 야심이 실린 그의 ‘무네미농장’엔 주목과 소나무를 주종으로 한 조경수들 1만5000그루가 자라고 있다. 농장 사위엔 초목들이 비밀 회합을 하는 숲의 연쇄. 가을이 붓을 들어 서서히 주황을 칠할 테지. 그러나 10월 초의 숲은 여전히 초록을 토하는 재미에 심취해 있다. 저 기고만장한 풍경의 기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삶이 환하게 밝아질 것만 같은 낙토(樂土)라 말 못할 게 없는 가경이다. 그러나 문기운 씨는 풍경에 별 관심 없다. 오나가나 경치를 즐겨 일상에 흥을 부여하는 취향의 소유자가 아니거니와, 한가하게 자연에 눈 돌릴 때가 아니라 보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사업상의 활로를 찾아야만 하는 현실이지 아니한가.
“자연도 일상이 되면 무료해집니다. 제가 좋아하는 건 자연보다는 노동이지요. 기질이나 체질이 그래요. 물론 노동 자체가 목적일 리는 없죠. 수단일 뿐이니까. 사실 귀농 준비부터 소홀했던 것 같아요. 따라서 뜻대로 사업이 진척되지 않았지만 이게 다 성과가 발생하기 직전의 과정이거니, 그런 생각으로 최선을 다합니다.”
새로 태어난 ‘무네미농장’
그는 어쩌다 귀농한 사람이 아니다. 과거를 답습하지 않는 새로운 삶을 농사로 구현하겠다는 또렷한 목적을 가지고 이 후미진 산속에 들어왔다. 모든 기량과 경험과 뚝심을 쏟아 농업 경영인으로 부상하겠다는 신념을 스스로 훼손하지 않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다 쏟아 붓고 있다. 조경수로 쓴맛을 봤지만 쓴맛 안엔 보약이 들어 있는 법. 그는 혼선의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콘셉트를 고안했다. 다목적 관광농원으로 사업을 확장해나간 것. 현재 그의 농원에선 다양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갖가지 나물을 재배해 가공 판매를 하며, 수영장이 있는 2층짜리 게스트하우스를 지어 휴양객들을 불러들인다. 농사 체험, 별보기 체험, 계곡 트레킹, 잔디밭 웨딩, 동아리 워크숍 등등 각종 프로그램과 시설물들을 구비해뒀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난항을 겪고 있다는 것! 그간의 총 투자비용이 30억 원 이상이란다.
“투자금은 자체 조달했어요. 가지고 있던 부동산과 동산을 정리해 확보한 자산이었죠. 만약에 자산이 부족했다면, 부채를 얻어 썼다면, 이미 망가졌겠죠.”
“귀농지의 특산 작물을 재배하는 게 귀농 성공의 한 가지 비결이라고들 합니다. 이 지역은 고랭지 배추의 주산지로 고소득을 올리는 농가가 많다고 알려졌고요. 배추 농사엔 관심 없었을까?”
“고랭지 채소 농사로 고소득이 가능한 건 분명합니다. 이 마을 배추 농가들이 보통 연평균 1억 원쯤의 매출에 순소득 5000만 원 정도를 기록하더군요. 홍천군 전체 농가 평균 매출 500만 원에 비하면 압도적인 금액이죠. 저는 조경수 외엔 아예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설령 배추 농사에 뛰어들었다 해도 실패했을 수 있죠.”
“왜죠? 불굴의 투지. 당신에게선 그런 게 엿보이는데.”
“직장생활만 했던 사람이잖아요. 내 안엔 뛰어난 적응력이 있다, 그런 착각 속에 귀농을 했어요. 알고 보면 등신이라는 거.(웃음) 고랭지 채소 농부들, 이분들 참 대단합니다. 고도의 집중력, 냉철한 상인정신, 생활상의 모든 움직임이 이윤과 관련돼 돌아가더라고요.”
그도 한동안 농사에 주력했다. 조경수 사업의 부진을 보완하기 위해 엄나무, 마가목, 오미자 등 가장 일손이 적게 드는 작물들을 재배했다. 그러나 이 역시 헛수고. 소득이 되질 않더라는 거다. 무엇보다 유통 루트를 발굴하기가 어려웠다지. 그렇게 농사에서 다시 빙벽을 만났던 그는 이후 관광농원 조성에 전력투구, 근래에 근사한 복합 농원 구축을 완료했다. 그러나 수익구조는 여전히 불안하다. 해서, 지금도 몇몇 나물류를 재배해 가공 판매한다. 이런 그가 농업을 바라보는 눈은 지극히 신중하다. 농사란 냉혈의 세계라는 인식에서겠지.
“귀농하려는 분에게, 부디 충분한 준비를 통해 농사 물정과 실력을 비축한 뒤 본격 농사에 뛰어들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거주 지역 특산물을 작목으로 선택하는 건 그나마 현명한 선택이라 말하고 싶고요. 유통망 개척의 수고를 덜 수 있고, 재배 기법을 공유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가장 좋은 건 농사를 아예 짓지 않는 겁니다. 어려운 점이 한둘이 아니니까. 특히 자연주의 농법은 100% 망합니다. 그 위험한 모험을 하겠다는 사람을 보면 저는 뜯어말려야겠죠.”
“이 농원은 아름다운 자연에 둘러싸인 데다 멋진 시설물들이 즐비해 호감을 자아내요. 그러나 시련은 여전한 거예요? 문제가 어디에 있죠?”
“홍보도 아직 미흡하지만, 상당히 외진 산기슭이라 가볍게 접근하기 어렵다고들 느끼는 것 같아요. 강원도 오지 특유의 구불구불한 언덕길이 길게 이어지니까. 그러나 낙관합니다. 특유의 농업 비즈니스 모델로 부상할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어요.”
그래도 시퍼런 꿈 안고 달려가겠다
출구를 찾지 못해 헤매는 갈망과 갈증. 사람은 다들 그런 걸 속에 두고 산다. 하지만 선한 믿음이 있는 한, 게임은 차라리 스릴 있게 계속된다.
“사업 성취를 위해 몰두하다 보면 마음의 여유를 놓치기 쉽죠. 스트레스 해소는 어떻게 하죠?”
“오락 삼아 기타를 치지만 사실 정서적 만족감을 가질 수 없다는 게 불만이에요. 자연 속에 살지만 자연과 가까워지진 않더라고요. 바람이 나무숲을 흔들 때나 계절이 바뀔 때 잠시 잠깐 자연의 존재를 느끼는 정도에 불과해요.”
“귀농했으나 도시를 향한 심한 향수에 젖어 사는 이들도 있더군요. 도시의 휘황한 야경이나 파도 같은 인파 속에 있을 때 오히려 안정감을 가질 수 있는 게 사람이라는 사회적 동물이죠.”
“도시의 흥청거림, 텁텁한 공기, 생맥주집에서의 대화, 익명성이 주는 편안함, 이런 것들이 그리워질 때가 있습니다. 도대체 사람이 살 만한 곳은 도시일까, 자연일까? 이는 단정 짓기 어려운 문제예요.”
적막한 자연에 때로 외로운 심사를 느끼는 모양이다. 오랜 로망이었던 귀농을 위해 가차없는 질주로 산골에 들어왔지만, 만사가 술술 풀리기는커녕 착오와 장애로 점철된 시간들. 쓸쓸한 감회를 피할 수 있으랴. 인간관계의 헐거움과 얕음에서도 그는 시골생활의 애환을 느낀다.
“깊은 산골에 살다 보니 도시와 접촉하기 어렵고 읍 소재지조차 멀어 불편이 많더라고요. 무엇보다 교류할 만한 사람이 없다는 게 폐단이죠. 그저 마을 농부들과 농사 얘기를 나누는 정도니까. 의미 있는 소통에 관한 허기, 고립감, 공허감, 이런 게 달라붙는 겁니다.”
“다정한 벗 하나, 따뜻한 커피와 음악, 잘 익은 술 한 잔, 이런 게 곁에 있다면 안도할 만한 생활이겠죠. 특별한 이유 없는 행복감이 그런 것에서도 나오니까. 이건 너무 소박한가?”
“동호인들과 음악회도 열고, 저 나름대로 친선을 즐기는 면이 있긴 해요. 그러나 사실 여유시간이라는 게 없어요. 일이 워낙 많기도 하지만, 체질상 일을 안 하면 우울해지고 몸도 아프더라고요. 일종의 강박증도 있어요. 보람 있게 세상을 살아야 한다, 조금치의 시간 낭비도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야 한다, 그런 거. 그렇게 살지 않으면 사업을 성공시킬 수 없다는 생각 하나에 집중하며 사는 겁니다. 너무 속물적인가요?(웃음)”
속물 플러스 미물. 인간 안에 그런 성분을 집어넣어 디자인한 조물주의 계략에 누가 삿대질할 수 있으랴.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사. 그러나 기어이 뜻을 이루려 발버둥치는 게 또한 인생사. 예외 없이 누구나 그렇듯, 그도 트랙 위에 선 경주마다. 앞으로 내달릴 수밖에 없는.
◇ 문기운 씨가 주는 귀농 Tip ◇
•경관만을 추구해 터를 구하지 마라. 나만의 왕국을 세울 듯이 외진 골짜기로 들어가 살다보면 외롭고 불편해진다. 그런 터는 농사에도 금물이다. 생산성이 낮은 비탈이기 십상이어서다. 약간 비싸더라도 반듯한 농지를 매입하자.
•강원도 고원지구로 귀농할 경우엔 고랭지 채소 농사가 유망하다. 제반 조건에 최적화된 작물이라 다른 농사보다 경제성이 높다. 그러나 투기성 다분한 재배 풍토를 유념해야 한다.
•허영과 허세에 찬 농사를 짓다가 파산하는 사례가 많다. 자신의 능력을 냉정하게 점검, 과욕 없는 규모를 설정하라. 천재지변이나 기상이변으로 흉작을 볼 수 있는 게 농사라는 인식도 철저해야 한다.
박원식 소설가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와 동대학원 졸업. 광주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오랫동안 자연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대상을 좋아할수록 아득해지는 미스터리가 늘 그를 궁리하게 만든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안목을 얻는 일의 요원함을 실감한다. 그가 즐기는 것은 산촌의 적막, 암자의 풍경소리, 낯선 여행지의 선술집, 우연한 만남 등이다. ‘천년 산행’, ‘암자에서 듣다’, ‘산골로 간 예술가’ 등의 저서가 있다.
사람들은 제각각 피로를 벗어나는 자신만의 방법을 가지고 있다. 내 경우에는 ‘나‘를 벗어나 조금이나마 ’다른 존재‘로 살아보기 위해 아무 연고가 없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곤 한다. 이번 가을에도 그런 이유로 가방 하나 달랑 들고 찾은 곳이 동해시다. 오래전부터 두타산과 청옥산의 무릉계곡이 있는 동해시에 가고 싶었다.
동해시의 무릉계곡은 백두대간의 줄기로 동서 간 분수령을 이루는 깊고 험준한 두타산과 서쪽의 청옥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곳이다. 내가 동해시의 무릉계곡에 갔을 때 두타산과 청옥산의 능선에 내려온 가을은 노랑, 빨강의 색들이 서로 합쳐지며 있었다. 그들은 서로 뒤엉키고 섞이면서 하나의 층을 이루었다. 가을 햇빛은 차가운 공기와 잘 어우러졌다. 언제 이렇게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는지. 갈색 나뭇잎들은 가지를 길게 빼고 툭툭 떨어졌다. 숲속 길에, 골짜기 흐르는 물 위에.
아프리카 격언- ‘너무 빨리 걷지 말아라. 영혼이 따라올 시간을 주어라.’
그렇게 걸을 수 있는 길이 무릉계곡의 길이다. 가파르지 않은 산길을 ‘남’이 되어 걸으면서 ‘나’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길이다.
입구의 관리사무소를 지나 조금 걸어가면 계곡 바로 옆에 있는 1,500평 정도의 넓은 반석을 만나게 된다. 이 반석 위에는 이곳에 왔던 명필가와 묵객들이 새겨놓은 수 많은 크고 작은 석각들이 있다. 그 글 중 이 계곡을 무릉선원(武陵仙源)으로 표현한 글귀가 있다.
무릉반석 위쪽에는 유서 깊은 사찰인 삼화사가 있다. 신라 시대 선덕여왕 11년(642년)에 창건한 사찰로 고려 태조 때 ‘삼화사’로 개칭되었다. 이곳에는 보물로 지정된 삼층석탑과 ‘철조 노사나불 좌상’이 있다. 길을 따라 서 있는 사찰의 담에는 배고픈 담쟁이덩굴이 벽을 타고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계곡을 따라가는 길에서 만나게 되는 절경들로 학소대, 관음폭포, 선녀탕, 쌍폭포, 용추폭포 등이 있다. 화강암 암반 위에서 떨어지는 이 폭포와 소(沼)들에는 저마다의 사연과 풍경이 있다. 각각의 이야기와 풍경을 함께 하다 보면 유체 이탈된 나를 만나게 된다.
무릉계곡 입구 맞은편에 맑은 공기와 물소리, 새소리로 신선한 기운을 찾을 수 있는 ‘동해무릉 건강숲’이 있다. 이곳은 심각해지는 환경성 질환을 예방하고 교육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설이다. 하루 100여 명이 이용할 수 있는 친환경 숙박동과 테마체험실, 자연식 건강 식당 등을 갖추고 있다. 친환경 숙박 시설은 황토와 편백나무 등 친환경 자재를 이용해 만든 숙박 시설로 38개의 객실이 있다. 테마체험실에는 건강에 좋은 소금 동굴 등 각종 찜질방과 산소힐링방 등을 갖추고 있다.
‘동해 무릉 건강 숲’에서 힐링의 밤을 보낸 다음 날 ‘한국인이 가봐야 할 국내 관광지 100선’에 선정되었던 ‘추암촛대바위’가 있는 해안으로 갔다. 미묘한 해안 절벽을 따라 만들어진 길에서부터 이어진 추암근린공원까지 잘 조성된 하나의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그중에서도 동해의 맑은 바닷물과 크고 작은 바위에 잘게 부서지는 파도, 그리움이 배인 촛대바위는 해안의 주인공이었다. 촛대바위의 하늘을 찌를 듯 솟은 그리움이 가슴 깊이 새겨졌다. 그 그리움은 단지 힘이 세다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움의 힘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나에게 물었다. 움츠러든 가을 여행자의 마음을 토닥거려주었다.
동해시는 너무 볼 것이 많아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자연체험 학습장인 ‘천곡천연동굴’도 도심에서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VR 체험 시설과 함께 석회암 동굴의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한국에서 가장 긴 걷는 길인 ‘해파랑길’에 속하는 바닷가 길도 동해시에 있다. 해파랑길은 총 길이 770km로 부산의 오륙도에서부터 고성군의 통일전망대까지 동해안을 따라 걷는 ‘태양과 걷는 사색의 길’이다. 이중 ‘해파랑길 33코스’와 ‘34코스’가 동해시에 속하는 길이다. 한섬에서 출발해 천곡항을 향해 걸었다. 동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았다. 바다를 낀 소나무 숲길도 좋았고, 잘 닦여진 데크의 계단에 앉아 바라보는 바다도 좋았다.
‘우리는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도록 강요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해파랑길을 걸을 때 들었다. 누구라도 무엇엔가 사로잡혀 있지 않은 인생을 살고 싶어 하는데... 아직도 현실에 존재하는 나와 내가 꿈꾸는 나가 내 안에서 두 개의 심연으로 존재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래, 언제까지고 가슴 아픈 방황을 계속해보자. 내 마음 깊은 곳의 온갖 울림과 떨림, 미세한 균열과 변화의 틈새를 지켜보자. 조금씩 전과 다른 나를 향해 아주 느리게 변해가는 나를 발견해보자.’
가을의 어느 날에 간 동해시 여행을 통해 1㎜(밀리미터) 변한 내가 보였다.
▪ 무릉계곡: 강원도 동해시 삼화로 538.
▪ 동해 무릉 건강 숲: 관련내용 홈페이지 참조 (http://forest.dh.go.kr)
▪ 천곡천연동굴: 강원도 동해시 동굴로 50.
▪ 추암촛대바위: 강원도 동해시 촛대바위길 6.
▪ 해파랑길: 동해시청 관광과
대부분의 여행지는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으로 사람을 유혹한다. 혹은 맛있는 음식으로 후각과 미각을 자극해 매혹적인 제안을 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최근에는 문화와 각종 체험으로 여행자를 행복하게 해주는 곳도 있다. 그렇게 대부분의 여행지는 오감의 쾌락으로 여행자를 기쁘게 해준다.
가을이 한창일 즈음 찾아간 곳은 특별한 곳이었다. 일반적인 여행지처럼 감각의 만족만을 주는 여행지가 아니었다. ‘나에게 말을 걸고, 기억을 상기시키며, 감정을 풍부하게 해주고, 영감을 불러일으켜 주는 도시’였다. 마치 이탈리아의 친퀘테레와 프랑스의 투르빌을 합쳐놓은 것 같았다. 그곳은 한반도에서 해돋이로 유명한 해오름의 도시 ‘동해시’다.
동해시 묵호진동의 ‘묵호등대 담화마을’은 동해가 시원스럽게 한눈에 들어오는 언덕 위 묵호 등대를 중심으로 묵호항의 역사와 삶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다.
등대오름길을 따라 올라가 바람의 언덕에 서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인 이탈리아 북서부 라스페리아 지방에 있는 다섯 개의 해안마을 ‘친퀘테레(Cinque Terre)가 떠올랐다. 해안 절벽의 가파른 지형에 테라스를 갖춘 화려하고 다양한 색으로 칠해진 집들의 마을 풍경과 지중해를 따라 마을이 이어진 산책로로 유명한 곳이다.
묵호 등대 담화마을은 오랜 세월의 담에 지나온 시간의 소박한 이야기들을 그림으로 그려 여행자들에게 노스탤지어(nostalgia)를 불러일으켰다. 겹겹이 쌓인 골목의 담벼락들은 저마다의 굵직한 사연을 여행자들과 함께 한다. 한적한 골목에도 자기만의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이곳에서의 노스탤지어는 잃어버렸던 시간을 다른 모습으로 만나고 느끼면서, 지나온 시간을 존중하고 곱씹을 수 있게 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노스탤지어가 아픔이 아니라 창조적 에너지를 끌어내는 원천이 된다. 화려한 구경거리는 아니지만, 오랜 세월이 빚어낸 삶과 추억의 기억들이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1941년 개항된 묵호항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이 마을에는 4개의 길이 아름다운 모자이크를 만들어내고 있다. 묵호의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골목이 주제인 ’논골 1길‘, 떠난 사람과 남아있는 사람, 찾아올 사람들 모두가 기억하고 희망하는 묵호와 논골담길에 대한 사랑이 주제인 ’논골 2길‘, 묵호의 옛 이야기와 추억이 담겨있는 ’논골 3길‘, 새로운 희망과 바람에 관한 이야기로 지역사람들이 참여한 ’등대오름길‘.
시간의 흔적들이 있는 골목길을 걷다 보니 내가 버텨온 흔적이 있는 슬픔이 지나간 자리가 생각났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카페의 정원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했다. 발아래로 보이는 동해를 바라보니 마치 어두운 배경 속에 밝게 처리된 여인의 나신을 그린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처럼 바다의 한정된 일정 부분만이 가을 햇살에 눈부시게 찰랑거렸다. 슬쩍 내 옆에 누군가 앉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를 덮어주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커피 한 모금을 마시니 과거에 대한 후회가, 또 한 모금을 마시니 미래에 대한 불안이 사라졌다. 결국,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는 동안 현재를 위협하는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마을 앞 해안을 따라 2km의 거리에는 도시풍 카페와 횟집들이 즐비한 풍경이다. 모네가 끝없이 변하는 바다의 눈부신 아름다움을 배운 프랑스의 투르빌 해변이 떠올랐다. 그곳의 싱싱한 해산물처럼 이곳 역시 동해 어업기지로 갓 잡은 싱싱한 활어를 즉석에서 맛볼 수 있다.
언젠가 이곳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데려와 밤새도록 수다를 떨고 싶어졌다.
한편 동해시에는 우리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생존과 일상 공간이면서, 오래된 역사를 지닌 의미 있는 곳으로 “북평 민속시장”도 있다.
전국에 있는 다른 장터와 달리 나날이 번창하고 있는 영동지방 최대의 전통 오일장이다. 매월 3일, 8일, 13일, 18일, 23일, 28일에 열리는 장으로 200년 전통의 장터다. 1796년부터 시작된 이 장터에 가면 짙은 향토색과 서민들의 삶의 체취를 느낄 수 있다.
동해시는 이렇게 오래된 흔적들을 고택의 기왓장처럼 가지런히 쌓아놓은 느낌을 주는 도시다. 영원히 이어질 것 같은 사람들과 담과 골목의 이야기들이 넓디넓은 동해 옆에 살포시 앉아있다. 그래서 동해시는 여행이 끝나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설렘이 지속하는 특별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