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의재 (四宜齎)
꽃 한 조각 떨어져도 봄빛이 죽거늘
수만 꽃잎 흩날리니 슬픔 어이 견디리...
‘그늘이 되어주시던 주상이 승하하시고 나니 이 한 몸 간수할 곳이 없구나. 주상이야말로 나에겐 꽃이셨네. 꽃 잎인 한 분 형님은 순교하시고, 다른 한 분 형님은 따로 떨어져 다른 곳으로 유배되고...... 견딜 수 없는 것은 더 이상 희망의 창이 보이지 않는 것이구나.’
정조가 세상을 떠나자 정약용은 그의 형들과 함께 신유사옥(1801년) 때 유배를 당한다. 그는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그가 강진에 처음 도착했을 때 그를 둘러싼 세상은 온통 절망이었다. 유배가 그렇듯이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이 고통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모든 게 무의미해 보였다. 그의 나이 40세.
그는 길을 잃었다. 눈에 보이는 길이 아닌 마음의 길, 인생의 길을 잃었다. 길을 잃은 그가 선택한 것은 미친 듯이 걷는 것이었다. 이른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헤매는 것이었다. 그것은 실패라는 상실감이기도 했고, 끝나버린 인연의 아픔을 곱씹는 것이기도 했다. 어쩌면 치밀하게 준비했던 인생 계획표가 없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강진에 온 정약용의 초기 생활을 지켜보던 주막의 나이 든 주모가 어느 날 그에게 한마디 했다.
“어찌 그냥 헛되이 살려고 하는가? 제자라도 가르쳐야 하지 않겠는가?”
그 이야기를 들은 다음 날부터 그는 변했다. 스스로 생활의 태도를 바꾸었다.
그는 사소한 기대를 통해 우선 현실을 극복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작은 의미 부여와 노력을 통해 절망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 태도를 바꾼 순간 다산은 자기가 겪고 있는 시련의 의미를 찾아냈다. 그때부터 4년 동안 그는 그곳에 머물며 후학을 양성했다.
또한, 삶의 의미를 철저하게 현실 속에서 찾은 다산에게 이 시기는 민초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는 묵묵하게 성실히 살아가는 백성들의 모습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 해서 본인이 묵은 방을 ‘생각을 맑게, 용모를 단정히, 말은 적게, 행동을 무겁게’ 하라는 의미로 ‘사의재(四宜齋)’로 지었다.
본래 경세제민을 실천하는 가정환경에서 자라기도 했지만, 이때의 시간이 그의 명저 ‘목민심서’를 구상하는데 토대가 되었을 것이다.
강진군에서는 다산의 뜻을 기리고자 그가 유배를 와서 초기에 머물렀던 사의재를 복원하여 한옥 체험 시설로 운영하고 있다. 단순히 먹고 자는 공간이 아니라 복합 문화공간으로 구성하였다. 다양한 볼거리, 먹거리, 체험거리를 제공한다. 사의재가 있는 위치가 강진읍의 중심지여서 걸어서 ‘영랑 생가’와 ‘세계 모란공원’도 둘러볼 수 있다.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긋함과 함께 마루 턱에 앉아 고즈넉한 가을밤 달구경 하는 시간을 가져 보자. 가슴 깊숙한 곳에서 다산의 삶의 지혜가 울려오는 밤이 된다.
다산초당
다산 정약용의 외가는 해남 윤씨로, 어머니가 문인인 윤선도의 딸이다. 학문을 중시하는 외가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강진으로 유배를 왔지만, 외가인 해남이 가까이에 있는 것이 다산에게는 그나마 다행이었다.
해남의 외가에는 자체적으로 장서를 수집해 보관해 놓는 만권당이라는 장서각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유배기간에 학문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그는 외가에서 마련해준 이곳 다산초당에서 1808년부터 유배가 끝나는 1818년까지 지냈다.
다산은 유배를 온 신분의 한계 때문에 근본적인 개혁을 주장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지내면서 기존 제도의 개정을 논하는 ‘경세유표’, 지방관이 부패하지 않도록 권고하는 ‘목민심서’, 공정한 재판을 논하는 ‘흠흠신서’ 등 실학과 조선 유학, 법의학 등 500여 권의 저서를 썼다. 그의 생애 업적 대부분이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그에게 학문은 살아가는 것 그 자체였다. 기본이 유학자이다 보니 먼저 자기 성찰과 세계 인식의 기준이 성리학에 바탕을 둔 실학이었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세상을 인식하고 공부했다. 그래서 그에게는 변화가 필요한 다양한 분야에 대해 그토록 많은 글을 쓸 수 있는 에너지가 생겼던 것이다.
다산의 유배 생활로 인한 세상과의 단절을 메꿔준 이는 벗이자 스승이며 제자인 ‘혜장선사’였다. 그들은 대화하고 공감하며 화합하기 위해 초당 뒤 만덕산 백련사 가는 오솔길을 무수히 걸었다. 제한된 세상과의 통로였지만 소나무 숲길, 동백꽃 길, 차 밭으로 이어진 이 길을 걸으며 그는 세상을 제대로 보는 법을 터득했다.
가두어진 하루하루는 생의 의미를 사라지게 하는 물리적 장치다. 하지만 다산은 초당 지붕 끝에서 흘러내리는 가을비 소리에 번뇌를 멈추고, 약천(藥泉)에 달인 차로 속기(세속의 기운)를 씻으며 스스로 인생의 격조를 올렸다. 그가 위대한 이유다.
다산초당은 노후화되어 붕괴한 것을 1957년 복원한 것이다. 소나무 뿌리가 뒤엉킨 소나무 숲 ‘뿌리의 길’을 800m 정도 올라가면 고적한 유배 생활의 정취가 서려 있는 초당이 나타난다. 다산이 직접 새겼다는 ‘정석 바위’, 차를 끓이던 약수인 ‘약천’, 차를 끓였던 반석인 ‘다조(茶竈 ㆍ 차 달이는 부뚜막)’ 등을 초당 주변에서 볼 수 있다.
초당으로 가는 숲속 길에서부터 절제되고 제어된 기운이 느껴진다. 다산초당은 단순하다. 그 단순함이 다산 학문의 핵심과 통하는 것이다.
가을이어서 그런지 벌써 겨울이 기다려진다. 아마, 동백꽃 핀 다산초당 숲길을 걷고 싶어서 그런지 모른다.
백운동 원림
10년 동안 시베리아에서의 감옥과 유배 생활을 마친 후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도스토옙스키는 “죽음의 집의 기록(Notes from a dead house)”이라는 장편 소설을 썼다. 그는 감옥과 유배 생활을 ‘살아있지만 죽어있는 집’으로 표현했다. 그만큼 유배의 시간은 고통이고 지옥 같은 생활이다.
‘인간의 내면세계에 대한 탐구’와 ‘구원에 대한 희망’을 본인 문학의 화두로 삼았던 도스토옙스키는 유배 생활을 통해 무엇이 모든 죄의 원인이 된다고 보았을까? 그것은 ‘단절’이었다. 단절은 고립이고 대립이며, 증오와 이기주의의 시작이다.
유배지의 폐쇄적 환경인 단절을 벗어나기 위해 다산이 선택한 길은 ‘사랑’이었다. 사랑은 실천적 사랑과 공상적 사랑으로 나뉜다. 유배지에서 다산의 실천적 사랑은 후학 양성과 학문 탐구다. 공상적 사랑은 초의선사, 이시헌 등과의 교류와 월출산 줄기를 중심으로 한 자연과의 만남이었다.
다산이 제자들과 함께 강진의 자연을 만난 곳이 백운동 원림(園林)이다. 백운동 원림은 담양의 소쇄원, 보길도의 부용동과 함께 ‘호남 3대 정원’으로 불린다.
17세기에 이담로가 조성한 이곳은 자연과 인공이 적재적소에 배치된 균형 잡힌 조화를 보이고 있다. 집 옆으로 흐르는 시냇물을 인공적으로 끌어들여 마당의 상지와 하지를 거쳐 아홉 굽이 휘돌아 나가는 유상구곡(流觴九曲)의 구조를 갖추었다. 화단에는 소나무, 대나무, 국화, 난초 등이 자라고 있다.
다산은 그림을 잘 그리는 초의를 시켜 ‘백운동도’를 그리게 했다. 스스로는 12곳의 아름다운 경치를 칭송하는 시를 읊어 시와 그림을 묶은 ‘백운첩’을 남겼다.
백운첩에 담긴 12곳이 ‘백운동 12 승경’이다. 1경: 옥판봉 (절경의 월출산 산봉우리) 2경: 산다경 (원림입구 동백나무 숲길) 3경: 백매오 (집 주변 언덕의 매화나무) 4경: 홍옥포 (대문 앞 단풍나무와 작은 폭포) 5경: 유상곡수 (마당의 여섯 굽이 물굽이) 6경: 창하벽 (다산이 붉은 먹으로 쓴 푸른빛 석벽) 7경: 정유강 (언덕 위, 용 비늘처럼 생긴 소나무) 8경: 모란체 (본채 아래 3단의 화단) 9경: 취미선방 (고즈넉한 세 칸의 초가 사랑채) 10경: 풍단 (창하벽 위 단풍나무) 11경: 정선대 (창하벽 위 정자) 12경: 운당원 (왕대나무 숲)
강진의 자연을 정원에 담은 이곳에서 다산은 견뎌냈다. 유배지에서의 견뎌냄은 사랑의 힘이었다.
강진 백운동 원림은 역사적,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8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115호로 지정되었다. 백운동 원림에 가기 위해서는 주차장 옆에 있는 소나무와 동백나무 우거진 숲길을 걸어서 내려가야 한다.
늘 그렇듯이 숲길을 걸을 때 느껴지는 신선한 자연의 공기가 온몸을 깨운다.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하얀 가을 햇살이 눈 부시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대문 앞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에 서려 있는 녹색 이끼는 자연의 시간이다. 낮은 담벽을 타고 올라오는 넝쿨은 수줍은 듯 여행자를 훔쳐본다.
곧게 뻗은 대나무 사이로 청정한 가을바람이 살짝 불어왔다.
앞마당이 보이는 툇마루에 앉아 한나절을 보내고 싶다. 다산처럼 건너편 차 밭에서 실려 오는 가을내음을 맡으면서 자연과 통(通)하는 시간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노란빛은 늦가을이고 산국은 향기였다
산을 오를 때면 한 송이 따 맡는 향기
세상은 바뀌어가도 변치 않는 진한 향기
이상범, ‘샛노란 향기 - 산국에게’
뒷동산을 지키는 건 등 굽은 소나무뿐만이 아닙니다. 무더위가 가시기 시작하는 초가을부터, 무서리가 내리는 늦가을에도, 그리고 눈이 부시게 하얀 첫눈이 오는 초겨울까지도 노란 꽃잎을 잔뜩 매달고 선 산국은 아마도 소나무 못지않게 고향 뒷산을 소리 없이 지키는, 또 하나의 파수꾼이 아닐까 싶습니다. 갈수록 아기 울음소리가 줄어들고 인적이 끊겨가는, 그리하여 사람의 온기가 사라져가는 삭막한 뒷동산을 넉넉하고 사랑 가득한 어머니의 품처럼 가꿔주는 게 바로 산국이 아닐까 싶습니다.
산에 피는 국화과 식물의 하나라는 정도의 뜻을 담은 산국(山菊). 가을에 피는 국화과의 야생화들을 통칭해 부르는 보통명사인 들국화와 달리, 산국은 키 1~1.5m의 숙근성(宿根性) 여러해살이풀을 일컫는 고유명사입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 중국, 시베리아에도 분포합니다. 봄에 피는 개나리, 진달래처럼 우리 산하 방방곡곡에서 노랗게 피건만, 놀랍게도 그 이름을 아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꽤 긴 기간 개체 수도 풍부하게 피지만, 많은 이가 눈앞에 펼쳐진 꽃밭을 보고도 그 이름을 부르지 못합니다. 식물학자나 야생화 동호인들이 기회 있을 때마다 들국화란 이름의 식물이 실제로는 없다고 설명하고 있음에도, 산국이니 감국, 구절초, 쑥부쟁이 등을 구분해 낱낱이 불러주는 것이 무에 그리 대수냐는 고루한 주장을 떨치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인이 주목했듯, 산국의 진짜 매력은 우리의 눈을 선뜻 사로잡는 황금색 꽃잎보다는, 그 어떤 허브 향보다도 진한 향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온몸을 감싸는 자연의 향, 폐부를 찌를 듯 파고드는 알싸한 산국 향이 한 줄기 바람에 실려와 코끝을 스치기라도 할라치면, 편안한 마음이 들곤 합니다.
이처럼 꽃의 향이 매우 진해 꽃잎은 국화차 원료로 쓰입니다. 물론 독성을 빼는 과정을 거치지요. ‘국화 베개’에 쓰이는 베갯속도 바로 산국의 꽃잎을 말린 것입니다.
같은 시기에 피는 감국(甘菊)은 바로 산국과 쌍둥이 같은 야생화입니다. 노란색 꽃색도 같고 꽃 모양도, 전초도 비슷해 전문가들도 헷갈리곤 합니다. 손쉽게 꽃 크기가 500원짜리 동전 크기만 하면 감국, 그보다 작은 100원·50원짜리이면 산국으로 구분합니다. 감국은 주로 바닷가 인근 산과 들에 피고, 전체적인 꽃 형태가 성글고 꽃잎이 깁니다. 물론 성질도 다릅니다. 쓴맛이 강한 산국보다 단맛 나는 감국이 차의 원료로 더 적합하다고 합니다.
Where is it?
제주도에서부터 서해 5도, 강원도 철원과 설악산 등지에 이르기까지 전국에 자생한다. 그중 한강과 임진강, 강화도를 거쳐 서해로 이어지는 거대한 물줄기를 굽어보며 한가득 핀 김포 문수산 정상의 산국이 사진 동호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경주시 건천읍 오봉산 정상 주사암 주변에 뿌리 내린 산국도 오래된 절집의 분위기와 어울려 운치 있다. 내륙 북쪽 지장산 석대암, 남쪽 경남 합천군의 오도산 정상, 그리고 서쪽 안면도의 꽃지 해변, 철원 한탄강가 등 이름난 산과 바닷가, 강변 모두가 초가을에서 겨울까지 산국꽃 더미로 노랗게 물든다. 이름은 산에서 피는 국화[山菊]이지만, 실제로는 높은 산은 물론 야트막한 언덕이나 들녘 어디에서나 흔히 만날 수 있다.
언제 가을이 왔을까? 계절이 소리 소문 없이 변하며 찾아왔다.
세월과 함께 서서히 잊혀가던 추억을 찾아 월출산으로 떠났다. 넓디넓은 평야에 불쑥 솟아오른 해발 809m 화강암의 국립공원이 아니라 어느 천국 같은 가을날의 기억으로 남아있는 곳이다. 경포대 탐방지원 센터에서 시작하는 탐방로를 따라 산을 올랐다.
숲속 산길을 걷기 시작하니 달아나는 시간이나 그 시간을 제어하지 못한다는 막연한 불안감은 사라졌다. 진정한 여행자는 풀잎을 보고도 우주를 상상할 수 있다고 한다. 사물 그 너머의 것을 보는 눈을 가진 여행자는 모래알 하나로도 무한한 행복을 느낀다고 했다. 오르는 산길 곳곳에서 나는 작은 우주들을 보았다. 행복했다. 하지만 추억 속 가을의 길은 만나지를 못했다. 산행 내내 가을을 찾았으나 가을을 보지 못했다. 천황봉 구름 덮인 곳까지 눈길로 찾아보았다.
‘너무 이른 가을인가?’
바람재 삼거리에 도착하니 그곳에 가을의 내음이 있었다. 추억 속 가을의 단편 하나가 튀어나왔다. 삼거리의 무성한 갈대는 바람보다 먼저 누워있었다. 은빛 갈대밭은 잘 익은 성숙한 생명의 벌판이다. 누워있는 갈대는 머리가 무거워 숙인 것이 아니다. 지나온 시간의 길이가 고개를 숙이게 한 것이다.
삼거리에서 왼편으로 돌아 구정봉에 올랐다. 누렇게 변해가는 나주평야와 굽이져 흐르는 영산강 줄기가 한눈에 보였다. 뜨거운 가을 햇살이 벼 이삭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남도 가락의 노랫소리가 실려 왔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 이 욕심을 어찌할까!’
구정봉에서 500여m 떨어진 곳에 한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마애석불이 있다. 벼랑 아래 큰 바위에 총 길이 8.6m 크기로 새겨진 마애여래좌상이다. 벽면에 새겨진 불상은 눈이 옆으로 길고 끝이 올라가 있어 미소를 짓는 것 같기도 하고, 안 짓는 것 같기도 하다. 벼랑길을 힘들게 내려와 불상과 마주친 순간 그렇게 찾던 가을도, 추억의 가을도 모두 내려놓게 되었다. 알 듯 모를 듯한 불상의 얼굴 표정이 번뇌를 멈추게 했다.
가을날 오후의 햇살이 석불의 얼굴을 비추었다. 그 가을 햇살을 쫓아 석불이 바라보고 있는 쪽을 보니 삼층석탑이 우두커니 서서 하염없이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삼층석탑의 투박하고 단순한 선이 온 감각을 깨웠다. 그렇게 찾았던 가을이 그곳에 있었다.
이번 떠남의 목적은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었다. 나와 만나고 싶었다. 이른 가을의 월출산에서 나는 나와 세계를 대면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그곳에서 나와 세계를 함께 깨달을 수 있었다.
강진으로의 가을여행은 울림이 있는 여행이 되었다. 또 하나의 기억이 쌓였다. 무엇보다 내 삶이 풍요로워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길을 거닐다가 하늘 위를 올려다보니 참 높기도 높다. 가로수의 색깔도 점점 연두로 노란 잎으로 갈아입는 것을 보니 완연한 가을의 길목이다. 9월 말을 시작으로 단풍이 남하하고 있으니 자연 속으로 녹아들기 딱. 단풍도 시원한 바람도 좋은데 등산보다는 여유롭게 캠핑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속속 늘고 있다. 그런데 막상 캠핑을 하고 싶어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캠핑 초보자들이라면 네이버 대표 카페인 ‘캠핑퍼스트’를 검색해보자.
올해로 12주년을 맞이했다는 네이버 카페의 캠핑 동호회 ‘캠핑퍼스트’. 이곳에는 캠핑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다양한 캠핑 후기가 올라와 있다. 캠핑퍼스트는 캠핑을 좀 한다고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입문을 위해 클릭해보는 대표급 동호회에 속한다. 캠핑퍼스트는 현재 네이버 카페에서 동호회가 운영되고 있다. 봄가을에 대규모 캠핑 대회를 열고, 캠핑 초보자를 위한 캠프도 종종 진행한다. 캠핑퍼스트 초창기 멤버인 이동환 대표와 김한수 이사는 2011년 동호회와 같은 이름으로 아웃도어 전문기업을 설립했다. 취미와 업을 함께하며 캠핑 초보자들과 함께 성장하는 동호회이며 기업이다. 김한수 이사는 자신들이 캠핑 초보자였기 때문에 이 동호회를 열었다고 한다.
3대가 함께 캠핑하는 꿀벌 대장 김현수(43) 씨
2009년부터 캠핑 활동을 시작했다는 김현수 씨는 두 딸아이의 아빠다. 아파트에서 아이들에게 “뛰지 마라, 조용히 해라”라는 말밖에 할 수 없는 게 미안해서 캠핑을 시작했단다. 6년 전부터는 부모님도 함께 캠핑을 즐기고 있다.
“제 고향이 경기도 포천인데 옛날에 한탄강으로 프로스펙스 텐트 가지고 많이 다녔어요. 닭도 삶아 먹었던 추억도 있고요. 부모님도 캠핑을 즐기셨던 거예요. 6년 전 파주 평화누리공원에서 함께 캠핑을 했는데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6년쯤 되니 부모님도 의자며 텐트는 챙겨온다고. 겨울 캠핑 시에는 캠핑장에 먼저 도착한 사람이 좋은 자리를 선점할 수 있기 때문에 부모님이 먼저 가서 자리를 잡는단다.
“가족여행은 꽤 자주 가는 편입니다. 다음에 캠핑퍼스트에서 캠핑을 열면 부모님 모시고 가볼 생각입니다.”
캠핑(camping)이란 집과 도시를 벗어나 텐트와 침낭 등 야영생활에 필요한 장비를 갖추고 자연 속에서 숙영하는 행위를 말하며, 캠핑 스타일에 따라 크게 백패킹과 오토캠핑으로 분류할 수 있다. 등산 중심의 백패킹이 최소한의 짐을 배낭 안에 가볍게 패킹해 자연 속에서 이동 중에 먹고 자는 행위라면, 오토캠핑은 캠핑카나 트레일러를 이용해 지정된 캠프 사이트에서 야영하는 행위로 그 개념을 이해하면 될 것이다.
늘어나는 등산 인구와 그로 인한 무분별한 취사로 야기되는 자연 오염이 심각하게 문제가 되면서 국립공원을 포함한 일부 산에서의 취사와 야영이 상당수 금지됐고, 국내 캠핑은 이제 정해진 사이트에서 한정돼 누릴 수밖에 없게 됐다. 백패킹이든 오토캠핑이든, 캠핑의 가장 기본이 ‘머문 흔적 없이 자연을 있는 그 자체로 온전하게 즐기는 일’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이 점을 기억한다면 어디에서 어떤 조건으로 숙영하든 훌륭한 캠핑이 되지 않을까? 이에 캠핑을 처음 시작하는 이들이 반드시 숙지하면 좋을 장비 준비를 비롯해 백패킹과 오토캠핑을 아울러 캠핑 입문 전반에 필요한 유용한 주요 팁을 공유하고자 한다.
캠핑 입문에 필요한 주요 장비 10
자신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춰져 있는 집과 달리, 야외에서의 캠핑에는 약간의 불편함이 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눈앞에서 지는 석양과,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과, 텐트 밖 일출의 순간을 마주할 수 있다면 이 모든 수고로움은 조금쯤 너끈한 마음으로 감당해도 좋지 않을까? 보다 안락한 캠핑을 위해 꼭 필요한 장비를 소개한다.
① 텐트 가벼우면서 견고해야 한다. 또 설치와 철거가 빠르고 쉬워야 좋다. 종류는 1인용에서 2~4인용, 그 이상까지 다양하지만 4인용 이상은 부피도 크고 무거울뿐더러 만약 백패킹 중에 사용한다면 산에서는 칠 만한 공간이 마땅치 않음을 알아두자.
② 침낭 화학섬유 침낭과 우모 침낭이 있으며 계절에 맞는 제품을 준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크게 하계용, 춘추용, 동계용으로 나뉘며 봄~가을철 두루 사용하는 3계절용이 있다. 최근에는 하계용을 제외하고 대개 우모를 사용한다.
③ 매트리스 텐트와 침낭 못지않게 중요한 숙영 장비다. 땅에서 올라오는 냉기와 습기를 전면 차단해주기 때문이다. 매트리스는 크게 발포스펀지형과 공기주입형으로 나뉜다. 단열성이나 부피와 무게 등을 고려할 때 공기주입형이 우수한 성능을 보이지만 가격이 비싸고 튜브가 갑작스레 터지는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④ 타프 방수처리한 천인 타포린(tarpaulin)의 줄임말이 타프다. 햇빛을 가리고 비와 바람을 막아줘 텐트 없이 비박할 때 요긴한 장비다. 당일치기 캠핑에도 유용하다. 매우 작고 가벼워 휴대하기에 좋으며, 침낭 커버가 있더라도 그 위에 타프를 설치하면 한결 쾌적한 야영을 즐길 수 있다. 한편 고어텍스 소재의 침낭 커버는 침낭의 보온효과를 높여주고 숙영지에서 비바람과 눈으로부터 침낭을 보호해준다. 무엇보다 장소에 큰 제약 없이 야영할 수 있다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⑤ 스토브 요리를 하기 위해 불을 켜는 캠핑용 도구 혹은 난로를 말한다. 스토브는 연료와 용도에 따라 다양하므로 캠핑 스타일을 꼼꼼히 따져서 구입하는 것이 좋다.
⑥ 코펠 냄비, 프라이팬, 접시, 밥그릇을 겹겹이 포개어 한 번에 수납하는 휴대용 식기다. 야영 중에 밥도 짓고 국도 끓이고 커피 마실 물도 끓일 수 있다.
⑦ 수저 및 다용도 나이프 수저는 캠핑 필수품. 다용도 나이프는 음식을 손질하거나 로프를 자르거나 나무를 깎을 때 쓴다.
⑧ 랜턴과 이동용 랜턴(+보조배터리) 자연에서의 낭만적인 밤을 위해, 그리고 어둠 속 원활한 활동을 위해 필요한 장비다. 비상시를 대비해 여분의 보조배터리도 반드시 준비한다.
⑨ 기능성 의류 캠핑 중에 착용하는 의류도 중요하다. 방풍·방수 재킷은 갑작스럽게 눈과 비와 바람을 맞아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신체를 보호해주며, 우모 재킷은 체온이 떨어지지 않도록 도와준다. 기능성 의류는 캠핑 시 4계절 내내 휴대하고 다니는 게 좋다. 우모 재킷 대용으로 담요도 무방하다.
⑩ 구급약품 만약의 비상사태에 대비해 상비약 및 소독약 등을 반드시 겸비해 안전한 캠핑에 만전을 기한다.
있으면 좋은 오토캠핑 서브 장비 5
캠핑을 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만의 캠핑 스타일에 따라 구비하면 더욱 안락하고 편안한 컨디션을 제공하는 캠핑 서브 장비도 함께 소개한다. 집에서 쓰던 물건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캠핑 중 활용도가 높을 경우 캠핑에 최적화된 장비를 구매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래 소개하는 서브 장비는 등산 중심의 간소함을 추구하는 백패킹 때보다 주로 오토캠핑 중에 사용된다.
① 테이블 테이블을 이용해 여유롭고 낭만적인 야영생활을 영위하도록 돕는다.
② 의자 캠핑장에서는 잠잘 때와 움직일 때를 제외하고 대부분 의자에 앉아 보낸다. 의자에 앉아 책을 읽거나, 영상을 보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자연을 감상한다.
③ 그릴 캠핑장에서의 맛있는 바비큐 파티를 기대한다면? 그릴은 숯이나 가스 등의 연료로 불을 피워 석쇠나 불판에서 고기를 구울 수 있도록 돕는다.
④ 키친 테이블 재료를 다듬고 손질하는 조리대와 캠핑 스토브를 설치해 조리를 돕는 장비다. 조리도구나 양념 등도 보관할 수 있으며 음식물과 식기를 보관할 수 있는 수납공간과 설거지통 등의 보조장비까지 곁들이면 집에 있는 주방 부럽지 않은 캠핑용 키친이 완성된다.
⑤ 해먹 나무 혹은 지지대를 이용해 걸터앉거나 누울 수 있게 해주는 그물 침대를 말한다. 설치가 간편하면서도 활용도가 뛰어나 캠퍼들에게 인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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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락바스락 낙엽이 뒹구는 10월, 가을의 중턱에 읽을 만한 신간을 소개한다.
◇ 취미로 직업을 삼다 (김욱 저ㆍ책읽는고양이)
일흔의 나이에 안락한 노후를 뒤로하고 취미였던 독서를 밑천 삼아 밥벌이를 시작한 늦깎이 번역가의 생존분투기를 그렸다. 저자는 젊은 시절 문학인이 되고 싶었지만 생계를 위해 신문기자의 길을 택한다. 퇴직 후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쫄딱 망해 남의 집 묘막살이 신세로 전락했지만, 그는 잠시 잊고 지냈던 꿈을 다시 펼쳐보기로 한다. 그렇게 일흔이 넘어 시작한 제2직업을 통해, 15년 동안 무려 200권이 넘는 책을 번역했고 ‘폭주 노년’, ‘삶의 끝이 오니 보이는 것들’ 등의 저서를 펴내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저자는 이번 책을 통해 “우리는 모두 미지의 존재”라며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재능은 나이 들어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더욱 풍성해진다”고 용기를 갖고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길 조언한다. 더불어 사회적 운명에 휘둘리며 보낸 과거를 벗어나 이제라도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해나가길 강조한다.
◇ 죽음의 에티켓 (롤란트 슐츠 저ㆍ스노우폭스북스)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게 될 죽음의 전 과정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인식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어린아이, 청년, 노인, 그리고 저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각기 다른 죽음의 방식을 보여주고, 현재 삶의 의미를 고찰하게 만든다.
◇ 잠깐 다녀오겠습니다 (임운석 저ㆍ시공사)
돈, 시간, 마음의 여유가 부족한 현대인들을 위한 짧은 걷기 여행 팁을 담았다. 피톤치드 가득한 숲길부터 빈티지 감성 골목길, 수도권 인근 바닷길 등 다양한 콘셉트에 따라 사시사철 걷기 좋은 40가지 코스를 소개한다.
◇ 품위 있는 삶 (정소현 저ㆍ창비)
2019 이효석 문학상 최종심에 오른 ‘품위 있는 삶, 110세 보험’을 비롯한 여섯 편의 단편이 실렸다. 예기치 못한 죽음, 또는 준비된 죽음 앞에 선 인간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외면할 수 없는 비참한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 대한민국 요즘 여행 (옥미혜, 서준규 공저ㆍ알에이치코리아)
각종 빅데이터를 활용해 약 3년간 공들여 찾아낸 국내 여행지 32개 도시, 738개 장소를 명소, 맛집, 카페, 숙소 등으로 나눠 정리했다. 22가지 테마 여행 콘텐츠를 비롯해 휴대용 ‘베스트 150 지도’까지 담겨 있어 실용적이다.
나무를 좋아해 나무와 더불어 한평생을 살았다. 늘 나무를 심었다. 애지중지 가꾸고 돌보고 어루만졌다. 몸뿐인가. 마음까지 나무에게 바쳤다. 그 결과 들판 가운데에 있던 황무지가 장엄한 숲으로 변했다. 거대한 정원이 태어났다. 들어보셨는가. 나주시 금천면에 있는 죽설헌(竹雪軒)이다. 사건의 주인공은 한국화가 박태후(64).
사건? 그렇다, 가히 ‘사건’이라 할 만하다. 개성적인, 너무도 개성적인 초대형 개인정원을 만든 게 아닌가. 정원 면적은 자그마치 14만㎡(약 1만2000평). 대략 축구장 6개를 합친 크기의 정원이다. ‘이 사람은 금수저를 물고 나와 팔자 좋게도 평생토록 정원을 즐기나보다.’ 그렇게 지레짐작을 하는 이도 있을 테지. 돈이면 무엇이건 다 해낼 수 있다는 미신이 만연한 세상이니 말이다. 그러나 박태후는 가난한 농가의 자제로 태어났다. 간신히 밥 먹고 자랐다. 줄곧 손에 거머쥔 것 없이 살았다. 맨땅에 헤딩하듯, 무모하게도 거대한 정원 조성에 인생을 던졌다.
‘개성적인, 너무도 개성적인!’ 죽설헌을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 그 무엇으로 개성적인가? 일단 줏대 넘치는 정원이다. 전국 곳곳엔 개인이 조성한 화려한 정원이나 수목원이 많다. 대체로 서양식 아니면 일본식 정원, 또는 이도저도 아닌 짬뽕이다. 박태후의 정원은 다르다. 한국 정원의 전통과 양식을 추구해왔다는 게 아닌가. 외제와 외풍과 외래종을 얕잡거나 싫어해서가 아니다. 본때 있는 토종 정원을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한국적인 정원의 정신과 고유성을 탐구해 나름대로 구현하는 실험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자신에게 스스로 과제를 부여한 셈이며, 하나하나 풀어나가며 스스로 배웠고, 배운 대로 밀어붙였다. 줏대 아니면 푹 쓰러질 인물이다.
“한국적인 정원의 특징엔 어떤 게 있죠?”
“자연을 존중하는 정신이 여실히 드러난 게 한국식 정원입니다. 서양식 정원은 달라요.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게 서구의 사고 전통이지요. 정원의 구조에도 정복의 정신이 고스란히 서려 있어요. 성(城)을 건축하듯이 과감한 기하학적 기법으로 정원을 만들어요. 일본 정원은 자연의 최대 축소치를 추구합니다. 자연을 넘어 우주까지를 축소시켜 집 안에 끌어들이고자 해요. 그 축소 노력을 통해 발달한 게 전지(剪枝) 기술이죠. 고도의 인위를 구사하는 겁니다. 반면 전래의 한국 정원은 나무를 가급적 있는 그대로 놔뒀어요. 자연스럽게 자라 어우러지도록 존중, 인위적 변형이나 관리를 자제하는 거죠.”
“지친 마음을 나무 그늘 아래에 내려놓고 편히 쉴 수 있다면 그게 좋은 정원이지 않을까? 굳이 한국적 정원을 한사코 추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가장 한국적인 게 가장 세계적인 것이지 않겠어요? 조경이건 미술이건 뭐건, 세계 속에서 최고를 구가하려면 전통의 독창성과 차별성을 부각시켜야 합니다. 일테면, 대통령 부부가 외국 순방을 할 때 한복을 입지 않는 건 이해하기 어려워요. 마찬가지로 고유의 한국적 정원이 아닌 일본풍과 서양풍 일색으로 변한 조경 관습에 개탄을 금할 길이 없어요. 오늘날의 정원 99%가 남의 나라 방식을 따르고 있다니, 이게 정상일까?”
“말하자면 죽설헌이 한국적 정원의 본보기라는?”
“아, 그렇진 않아요. 큰 틀에서 보자면 한국식 정원이지만, 온전히 규범적인 한국식이라고는 할 수 없어요. 지향한다, 한국적 자연 정원을 지향한다! 이렇게 보면 됩니다. 만약 죽설헌을 전형적인 한국 정원이라고 내세운다면 학계로부터 쏟아지는 신랄한 비난을 면하기 어렵겠지요. 조경 학자들의 이론(異論)이 난무할걸요. 아마도 게거품을 물고 덤비지 않을까.(웃음)”
정원 조경의 실제 경험에 관한 한 박태후를 능가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재야 조경가다. 고독한 고수다. 일쑤 삐딱한 눈총을 느끼는 모양이다. 그는 언젠가 때가 오면 ‘대한민국을 통째 디자인하겠다’는 야심을 품고 사는 인물이다. 그런 박태후가 제도권 전문가들을 바라보는 태세에도 날카로운 게 들어 있다.
“이론들끼리 기탄없이 다투어야 답이 나오는 거 아니겠어요?”
“우리 원탁회의라도 열어 토론을 해봅시다! 제가 자주 그런 얘길 합니다. 그러나 아직 반향이 없다는 거. 오늘 저는 또다시 토론을 제안하고 싶은 충동을 느껴요. 요점이 뭐냐면, 대다수의 학자나 이론가들은 비원 같은 궁중정원이나 사대부들의 별서정원(자연에 귀의, 유유자적하기 위해 지은 별장에 딸린 정원)을 한국 정원의 원류로 간주합니다. 그러나 저는 서민들이 누린 토속적 정원에서 원형을 봐요. 장독대와 텃밭까지를 포괄한 자연 정원에 더 흥미와 애정을 느껴요. 정원을 일부 상층부의 전유물쯤으로 국한하는 견해에 동감할 수 없는 겁니다.”
모네의 정원 답사하고 감명받아
남도에 태풍이 스쳐지나가는 날이다. 휘몰아치는 강풍에 죽설헌 숲이 출렁인다. 둥근 야산 하나가 통째로 몸을 떠는 것 같다. 개인 정원이 어이 이토록 동산처럼 방대한가? 한국적인 걸 지향하는 데에 규모화가 기본일 리는 없을 것이다. 방대할 뿐 아니라 어느 한구석 허술한 게 없으니 놀랍다. 나무에 최대한 손을 대지 않은 걸 원칙으로 삼았다지만, 정원다운 운치와 구성과 미학이 생동하니 손길과 숨결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어 보인다.
“처음부터 번듯한 정원을 만들 생각을 하지는 않았어요. 꽃과 나무를 가꾸는 게 좋아 그냥 심었던 겁니다. 그러면서, 심으면 자라고, 가꾸면 꽃피어나는 식물들의 질서정연한 생리와 생태에 점점 빠져들었어요. 본격적으로 한국적 자연 정원이라는 것에 착안하고 올인하기 시작한 건 중년에 접어들어서였지요. 프랑스 지베르니에 있는 클로드 모네의 정원을 답사하고 깊은 감명을 받고서였어요. 같은 화가로서 강렬한 매혹을 느꼈어요. 비록 일본식 정원이었지만.”
“처음 나무를 심기 시작한 건 언제였죠?”
“제가 가정형편상 원예고등학교에 진학해 과수, 채소, 화훼 재배기술을 배웠어요. 재학 중에 이미 나무를 심는 재미를 알았지요. 저희 집 소유의 황무지에 틈만 나면 달려가 나무를 심었으니까. 그게 죽설헌의 시발입니다. 졸업 뒤엔 관공서 정원사를 거쳐 농촌지도소에서 근무했지요.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부지런히 나무를 가꿨고요. 40대 초반엔 사표를 던졌습니다. 이후론 정원 가꾸기에 더욱 전념할 수 있었죠. 낮에는 정원 일을, 밤에는 그림을. 이건 지금까지 사오십 년째 반복되어온 일상이에요.”
박태후는 제대 뒤 의재 허백련의 조카 허의득 선생에게 사군자를 배우면서 한국화에 입문했다. 늦깎이로 미술 관련 석사학위도 받았다. 끔찍한 노력파다. 조경과 그림, 그 둘에 쏟은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자기 자신에게 입증해 보인 열혈한이다.
정원을 산책해볼까. 폭염이 살갗을 굽는 여름 한낮이지만 정원의 공기는 서늘하다. 저녁 으스름처럼 어둑한 건 나무들이 허공을 가려서다. 박태후의 몸은 대나무처럼 늘씬해 나무숲에 어울린다. 잔인한 세월이 내려앉은 머리칼은 허옇지만, 자신의 평생 동행인 나무들을 바라보는 표정엔 온정이 가득하다.
백련이 벙그러지는 연못가. 못을 빙 에두른 노랑꽃창포 군락이 싱그럽다. 또 다른 연못가엔 왕버들이 줄줄이 늘어서서 수면에 어린 제 그림자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둘 다 박태후가 각별히 아끼는 초목이다.
“5월이면 한 달 내내 노랑꽃창포들이 꽃피어 연못물마저 노랗게 물들입니다. 장관이죠. 저는 이 꽃을 ‘습지의 여왕’이라 불러요. 왕버들과 마찬가지로 물가에서 잘 자라고 병충해에도 아주 강합니다. 뿌리의 수질정화 능력도 탁월해요. 생태조경에 적격이죠. 이 좋은 노랑꽃창포가 예전엔 너무도 흔해 사람들에게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했어요. 그 바람에 요즘은 흔히 보기조차 힘들어졌어요.”
“정원을 만들려는 이들에게 이상적인 수종을 권한다면?”
“최상의 정원수는 유실수예요. 감나무, 사과나무, 앵두나무, 살구 등등 꽃도 즐기고 과실까지 얻을 수 있으니까. 게다가 열매를 쪼아 먹으려고 새들이 날아듭니다. 새들의 노래마저 즐길 수 있으니 일석삼조라 해야겠네.”
‘시행착오’가 가장 유능한 교사
죽설헌의 풍치엔 허전한 게 없다. 있을 게 다 있으니까. 200여 가지의 수종들, 수백 종류의 야생초들, 여섯 개의 인공 연못, 고와(古瓦)로 야트막이 쌓은 울, 숲의 사방으로 뻗어나간 산책로…. 가지를 잘라내거나 솎아주기를 극도로 삼갔으니 나무들은 자유롭게 자랐다. 저마다 길길이 가지를 뻗어 허공을 움켜쥔다. 나무 아래에선 꽃들이 병아리처럼 종종대며 형형색색의 물감을 짜낸다. 백련과 홍련이 맑고 고운 얼굴을 수줍게 드러내는 연못들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세련된 인공 정원이다. 그러나 인위가 세월에 발효되어 자연과 동화해서일까. 일부러 애써 꾸민 티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니 그저 야생의 숲이라 해두자. 간섭받지 않고 성장한 나무들이 내쉬는 거친 숨소리, 자잘한 꽃들과 키 작은 음지식물들이 도란거리는 속삭임까지 귓가에 고이는 기분이다. 이토록 천연스런 숲 정원을 만든 건 여기가 피안이라는 뜻인가.
“나무를 가꾼 지 반세기가 지났군요. 어떤 일이든 하나에 평생을 바쳐 열정을 쏟아 붓는다는 건 영혼이 움직이고서야 가능하겠죠. 죽설헌을 만든 당신의 가장 큰 비결은 무엇이라 보나요?”
“시행착오. 바로 그거예요. 저는 전문적인 조경 교육을 받은 게 없이 일체를 혼자 해결해왔어요. 당연하게도 갖가지 오류가 빈발했죠. 쉬운 예로, 초기엔 외래종 화초와 토종 화초의 구분조차 하질 못했어요. 그걸 깨닫고 공부하며 초목의 세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어요. 수시로 그런 식의 과정을 거쳤지요. 인생에서 시행착오보다 더 유능한 교사는 없다고 봅니다.”
“이 너른 정원을 조성하기까지 막대한 자금이 소요됐겠죠? 자금 조달엔 문제가 없었을까?”
“가장 난감했던 게 바로 그 대목이었어요. 수입이라곤 얼마 안 되는 연금뿐, 부부가 허리띠 졸라매고 살아왔습니다. 감자나 참깨를 농사지어 시장에 내다 팔기도 했어요. 그러나 빚을 얻어 쓸 수밖에 없더라고요. 나무를 계속 심자면 주변 땅을 사들여야만 했으니까.”
어렵사리 터를 매입해 나무들을 심는다 해도 그게 끝이 아니었단다. 나무들의 키가 커지고 둥치가 불어나면 적절히 이식을 해줘야만 했다. 그러자면 다시 땅을 확보해야 했으니 주기적으로 자금난에 봉착했던 것 같다. 간벌(間伐)로 쉽게 처리할 수도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박태후는 나무를 베어내거나 파내는 행위를 금기로 삼고 있다. 나무와 혈맹조약을 맺은 것처럼.
“저것들도 엄연한 생명인데, 저것들도 한번 살아보겠다고 나왔는데 그걸 어떻게 베어낼 수 있단 말인가. 결국은 옮겨 심을 터 마련에 나서게 되는 겁니다. 어떤 이들은 당신, 욕심을 너무 부리는 거 아니야? 라는 투로 바라보지만 터무니없는 오해예요. 나무와 함께 살다 보면 나무에게 많은 이치를 배우게 됩니다. 세상을 진정 잘 사는 길을 숲의 자연 생태에서 깨닫게 되는 거죠. 이게 자연 정원을 가꾸는 최상의 목적이자 낙이에요.”
자연에의 외경을 지닐 경우, 교만과 허영의 늪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삶의 과욕과 과속은 마음속에 자연을 들여놓지 못해 생기는 폐단일 수 있다. 그러나 자연처럼 살기는 사실 어렵다. 사람이 나무처럼 살 수 있겠나. 가을마다 잎을 모조리 털어내는 나무의 허심을 흉내낼 수 있겠는가. 옷 한 벌 걸치지 않은 채 혹한을 묵묵히 견뎌내는 겨울나무를 시늉할 수 있겠는가. 박태후는 나무들의 생태에 인간사의 고통과 한계를 대입하고 그 치유책을 찾아 나선 사람이진 않을까.
“피고 지는 자연의 순환을 바라보며 과욕이란 헛된 거라는 걸 자주 느껴요. 제아무리 소중한 것이라도 저승까지 가져갈 길이 있던가요? 결국엔 모든 걸 버리고 떠나야 한다는 명백한 진실을 우리는 너무 자주 잊고 사는 게 아닌가요?”
산들산들 가을바람이 부는 9월 이달의 추천 문화행사를 소개한다.
◇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일정 9월 3~15일 장소 샤롯데씨어터
인간의 선과 악을 분리하려 생체 실험을 하다가 자신의 숨은 자아에 영혼을 잠식당해버리는 지킬박사의 이야기를 그렸다. 대중에게 익숙한 ‘지금 이 순간’, ‘한때는 꿈에’ 등 서정적인 넘버와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앙상블을 이룬다.
◇ 영화 '집으로...'
개봉 9월 5일 출연 김을분, 유승호 등
한때 관객들을 웃기고 울렸던 영화 ‘집으로...’가 추석을 맞아 18년 만에 재개봉한다. 일곱 살 개구쟁이 서울 소년 상우와 그런 손자를 무한한 사랑으로 돌보는 시골 외할머니의 이야기가 다시 한번 가슴 뭉클한 감동을 선사한다.
◇ 제19회 불갑산 상사화 축제
일정 9월 18~24일 장소 전남 영광군 불갑사 관광지 일원
사시사철 야생화가 아름다운 불갑사 인근에서 매년 가을 상사화를 테마로 여는 축제다. 올해는 ‘상사화, 천년 사랑을 품다’를 주제로 상사화 꽃길 걷기, 국악공연, 앙상블오케스트라 등 다양한 공연, 전시 및 체험 프로그램이 펼쳐질 예정이다.
◇ 음악극 '극장 앞 독립군'
일정 9월 20~21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최근 영화로도 개봉한 ‘봉오동 전투’를 배경으로, 세종문화회관 산하 7개 예술단이 모두 참여하는 대규모 음악극이다. 대한독립군의 영웅이지만 인생의 말년에는 쓸쓸한 삶을 살아야 했던 홍범도 장군의 인간적인 면모를 재조명한다.
◇ 제48회 안동 국제 탈춤페스티벌
일정 9월 27일~10월 6일 장소 경북 안동시 탈춤공원, 시내 일원
‘여성의 탈, 탈 속의 여성’을 주제로 펼쳐지는 이번 축제는 전통사회 속에 억눌려 있던 여성들의 삶과 꿈을 그려낼 계획이다. 행사 동안 할미탈, 부네탈, 왕비탈 등 다양한 여성 탈을 테마로 한 공연과 이벤트를 즐길 수 있다.
◇ 서울숲 재즈페스티벌
일정 9월 28~29일 장소 서울 성동구 서울숲 일대
도심 속 자연을 벗 삼아 재즈의 선율에 흠뻑 빠져볼 기회다. 국내 정상급 재즈 뮤지션의 무대는 물론 대중음악과의 협업 무대까지 고루 경험할 수 있다. 재사용 가능한 용기에 도시락을 가져오는 캠페인도 함께 진행되니 가을 소풍 떠나듯 축제를 즐겨보자.
Best in New Zealand
영화 속 자연 ‘커시드럴 코브’의 ‘코로만델 반도’
판타지 소설 ‘나니아 연대기’를 영화로 만들 때 촬영 장소 중 한 곳이 북섬의 ‘코로만델 반도(Coromandel Peninsula)’에 있는 ‘커시드럴 코브(Cathedral Cove)’다. ‘오클랜드’에서 출발하면 삼림공원과 바다를 끼고 가는 멋진 드라이브 코스를 즐기면서 초록색 자연에 풍덩 빠지게 된다. 다만, 반도의 북쪽은 도로가 좁고 굴곡이 심해 캠퍼밴 운행을 제한하고 있다. ‘커시드럴 코브’로 가는 여정은 푸른색 바다를 옆에 끼고 사암으로 형성된 절벽 위 숲길을 걷는 산책이다.
유리 호수 ‘타우포’와 북섬의 제왕 ‘통가리로 국립공원’
뉴질랜드에는 총 3800개의 호수가 있다. 이 중 가장 큰 호수는 북섬에서 제일 아름다운 ‘타우포(Taupo)’ 호수다. 도시로 들어가는 입구 언덕에 올라서면 파란 호수가 보인다. 호수가 한눈에 들어오는 동시에 여행자들 입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온다. 유리보다 맑은 호수 건너편으로는 설산이 점잖은 선비처럼 앉아 있다. 초록빛 언덕에는 키 작은 야생화들이 바다 같은 호수를 넘어온 바람에 몸을 맡기고 춤을 춘다. 호수를 옆에 끼고 1번 도로를 타고 가면 ‘통가리로 국립공원’을 만난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마운트 둠으로 나오는 나우루호에(Ngauruhoe) 산과 북섬의 최고봉 루아페후(Ruapehu)와 통가리로(Tongariro) 산이 포함된 지역이다. 마오리족의 영산으로 아직도 5~6년에 한 번씩 폭발하는 활화산이다. 호수, 초원, 용암대 등 화산지역에 나타나는 자연의 특징을 공부하면서 여행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고래와 물개의 서식지 ‘카이코우라’
뉴질랜드는 사람이 살기 전까지 토종 포유동물이 박쥐, 고래, 물개 세 종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 중 고래와 물개를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 남섬의 ‘카이코우라(Kaikoura)’다.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곳으로 동물의 먹잇감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마을 앞바다로 나가면 고래를 비롯해 돌고래와 바닷새를 볼 수 있다. 매년 1월은 물개 산란기여서 해변으로 어미 물개와 새끼들이 모여든다. 이 마을 인구는 약 2000명인 데 물개는 5만~6만 마리나 된다고 한다.
빙하의 눈물 ‘데카포’
빙하가 녹으면서 생긴 물이 흘러와 만들어진 옥색의 호수가 ‘데카포(Tekapo)’다. 호수 뒤편으로는 ‘마운트 쿡’과 ‘서던 알프스 산맥’의 흰 봉우리들이 보인다. 이 풍경에 취해 호숫가에 앉아 한참 동안 멍때리기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작고 아름다운 교회의 좁은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은 잠깐 동안 숨을 멈추게 한다. 호숫가 돌 사이 루핀의 보라색은 호수의 푸른빛과 어우러지면서 고고하고 이국적인 매력을 뿜어낸다. 옆의 산꼭대기에 있는 ‘마운트 존 천문대’로 가는 길 곳곳에서는 루핀의 군락지가 색과 향기로 여행자를 유혹한다. ‘아스트로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파란 하늘과 호수와 흰 산봉우리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지나온 시간의 상념들이 씻겨 내린다. 그래서 이곳을 ‘영혼의 세탁소’라 부르나보다.
별 헤는 밤, 대자연의 ‘마운트 쿡’
남섬에서 가장 높은 산이 ‘마운트 쿡(Mt. Cook)’이다. 본래 이름인 ‘아오라키(Aoraki)’는 마오리족 언어로 ‘구름을 뚫는 산’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마운트 쿡으로 가는 길목에서 서울시 크기만 한 빙하호 푸카키(Pukaki) 호수를 만난다. 여기서부터 가는 길 곳곳에 전망대가 있다. 절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화이트 호스 힐 캠프 사이트’에 도착하면 두 개의 빙하 호수를 감상할 수 있는 ‘후커밸리 트랙(Hooker Valley Track)’이 반겨준다. 만년설에 덮인 산들과 빙하, 호수를 떠도는 유빙들을 볼 수 있는 가벼운 트레킹 코스다.
이곳은 밤이 되면 수많은 별이 쏟아진다. 어린 왕자의 고향 별인 생텍쥐페리의 별, 별이 되어버린 시인 윤동주의 별, 창문을 통해 본 기억 속 고흐의 별, 순수한 감성을 지닌 양치기 목동의 별인 알퐁스 도데의 별들이 말을 건다.
태고의 신비 피오르드 랜드 국립공원 밀퍼드 사운드
피오르드(Fiord) 지형을 대표하는 남섬의 밀퍼드 사운드(Milford sound)는 전 세계 관광객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여행지다. 빙하에 의해 수직으로 깎인, 1200m가 넘는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뉴질랜드 최대 국립공원이다. 빙하와 온대우림이 만나 비경이 탄생했다. 우림의 3분의 2는 ‘너도밤나무’와 ‘포도 카프 상록수’의 울창한 원시림으로 이루어져 있다.
‘테 아나우’에서 ‘밀퍼드 사운드’로 가는 94번 도로 곳곳에서는 기가 막힐 만큼 웅장한 지형과 폭포 등 대자연을 만난다. 크루즈 관광으로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가슴에 담는다. 수직으로 솟아오른 단애와 폭포를 바라보며 자연의 경이로움을 만끽한다. 뉴질랜드가 자랑하는 3대 걷기 명소인 ‘케플러 트랙’·‘루트번 트랙’·‘밀퍼드 사운드 트랙’은 모두 피오르드랜드 국립공원 안에 있다.
‘아서스 패스’에서 찍는 로드 무비
남섬 서부에서 최대 도시인 크라이스트 처치(Christchurch)로 가는 73번 도로는 ‘아서스 패스 국립공원’을 통과한다. 캠퍼밴을 비롯한 자동차 여행을 한다면 꼭 가봐야 할 곳이다. 가끔 지나가는 화물차에게 길을 양보하면서 천천히 이동한다. ‘아서스 패스(Arthur′s Pass)’에서 만나는 하나하나의 풍광을 음미하다 보면 뉴질랜드 여행의 백미를 맛보게 된다. 잭슨스(Jacksons)에서 다필드(Darfiels)까지의 거리는 140km. 길 위에서 나만의 로드 무비를 찍는다. 이곳에서 만나는 ‘오티라 밸리(Otira Valley)’의 멋진 풍경들과 폭포, 와이마카리리(Waimakariri) 강 주변의 황량함, ‘피어슨 호수(Lake Pearson)’, ‘케이브 스트림 시닉 리저브(Cave Stream Scenic Reserve)’, ‘캐슬 힐(Castle hill)’ 등이 내 로드 무비에 기록된다. 이 길을 여행하는 것만으로도 인생의 큰 선물을 받은 느낌이다.
비용과 효율 등 여러 가지 점을 고려할 때 뉴질랜드 캠퍼밴 여행의 가장 적합한 시기는 봄과 가을이다. 힐링과 자유로움, 행복을 누리고 싶다면 뉴질랜드 캠퍼밴 여행을 해보자. 최고의 선택임을 알게 될 것이다.
알면 도움이 되는 정보
•뉴질랜드로 여행할 때 이용하는 항공편이 경유할 경우 가능한 한 상하이 푸둥 공항은 피하는 게 좋다. ‘수화물 자동 연결’이 되지 않아 짐을 찾은 후 다시 부쳐야 할 뿐만 아니라 입국, 출국 신고와 검사를 또 받아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뉴질랜드는 농업 국가라서 입국할 때 식품에 대한 검사가 매우 엄격하다. 통관할 수 없는 식품류는 아예 가져가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통과되는 식품들은 겉면에 라벨을 일일이 붙이고 리스트를 준비해 세관 검사를 받을 때 제출하면 좀 더 편리하다.
•여행 중 뉴질랜드 내 북섬과 남섬을 오가는 ‘인터아일랜더(Interislander) 페리 크루즈선’을 이용할 때 ‘톱10 홀리데이 파크’ 회원은 15% 할인받을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인터아일랜더 크루즈선 홈페이지: www.interislander.co.nz
㈜INL 메일주소: inltours@campervan.co.kr
톱10 홀리데이 파크 홈페이지: top10.co.nz
키위 홀리데이 파크 홈페이지: www.kiwiholidayparks.com
톨로드 비용 납부 사이트: www.tollroad.govt.nz
여름 더위를 이기는 방법 하나, 초록빛 생기를 머금은 자연과 만난다. 둘, 싱그러운 채소를 활용한 음식과 음료를 맛본다. 셋, 건강을 위해 적당한 육체 활동을 즐긴다. 이 모두를 누리려 애써 특별한 곳을 찾을 필요는 없다. 가장 가까운 ‘우리 집 텃밭’이 최적의 피서지가 되어줄 테니까.
사진 제공 및 도움말 야미가든 ‘참 쉬운 베란다 텃밭 가꾸기’ 저자
도심에서 한두 뙈기 땅을 가꾸며 도시농부의 일상을 즐기는 이가 늘었다. 그러나 무더위에 바깥에서 농사와 씨름하다 보면 비지땀을 흘리고 체력은 바닥나기 일쑤다. 그보다는 조금 더 손쉽게 농사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최근에는 농사 경험이 없는 초보자도 쉽게 작물을 재배하게끔 실내 텃밭 키트나 상자 텃밭 세트 등을 판매한다. 또 일반 화분이 아니더라도 비닐 화분, 봉투 화분 등을 이용하거나 물꽂이 재배 등 다양한 도구와 방법을 통해 집 안에 텃밭을 들일 수 있다.
우리 집 텃밭이 좋은 이유
❶ 관리가 수월하다 주말농장이나 노지 텃밭에서 식물을 키우면 벌레뿐만 아니라 태풍, 폭우 등 자연재해를 입을 수 있다. 또 텃밭이 멀면 자주 나가 작물을 돌보기가 어렵다. 우리 집 텃밭은 날씨에 상관없이 매일 식물을 돌보고 키울 수 있다.
❷ 건강한 채소를 키워 맛보다 다양한 채소를 무농약, 무화학비료로 싱싱하게 키워 바로바로 수확해 먹을 수 있다. 익지 않은 작물을 미리 따 후숙하는 마트표 채소와 달리 직접 키운 작물들은 크기는 작지만 훨씬 맛과 풍미가 좋다.
❸ 감성 가득, 마음을 힐링하다 초록빛 가득한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 자연의 신비를 느끼면서 활기찬 하루를 보낼 수 있다. 더운 여름에도 싱그러운 이파리를 보면 마음이 산뜻해진다. 향긋한 허브를 키우면 아로마 테라피까지 가능하다.
여름 실내 텃밭 이모저모
❶ 6월에 심으면 좋은 야채 6월에 파종할 수 있는 채소는 강낭콩, 쑥갓, 여름상추, 근대, 아욱, 열무 등이다. 다른 채소나 허브도 충분히 키울 수 있다. 방울토마토, 파프리카, 고추, 가지 등은 6월에 씨앗을 뿌려 가을에 수확한다.
❷ 여름철 텃밭 가꾸기 주의할 점 여름에는 온도가 높아 너무 건조하거나 장마철 때문에 습해져(고온건조, 고온다습) 병충해가 잘 생기는 편이다. 실내 재배의 경우 항상 바람이 잘 통하도록 창문을 활짝 열어준다. 벌레가 생기지 않도록 제충국(벌레 잡는 국화)이나 목초액 등 친환경 해충약을 5~7일에 한 번씩 오전 중에 샤워시키듯 뿌린다.
❸ 텃밭 초보 시니어가 키우기 좋은 식물 새싹채소나 밀싹의 경우, 자라는 속도가 빠르고 금방 수확할 수 있어 키우기 편하고 좋다. 특히 새싹채소는 수경 재배도 가능하다.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기 때문에 집 안 어느 곳에 재배 화분을 두어도 괜찮다.
텃밭 레시피 #1 심기만 해도 쑥쑥 ‘밀싹’
재배 Tip 파종시기 1년 내내 재배온도 20~28℃ 발아온도 25℃ 발아기간 2~3일 수확시기 파종 후 7~15일
노화방지, 해독작용, 면역력 증강 등의 효과로 인기가 높은 슈퍼푸드 밀싹은 집 안 어디서든 1년 내내 재배가 가능하다. 재배기간도 짧고 금방 수확할 수 있어 초보자에게 적극 추천한다.
밀싹은 단기간 재배하기 때문에 얕은 화분도 괜찮다. 물에 5~6시간 정도 불린 밀 씨앗을 촉촉한 흙 위에 골고루 뿌린 뒤 분무기로 물을 충분히 적신다. 수시로 물을 뿌려 마르지 않게 하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서 키운다. 파종 후 2~3일이 지나면 흰 뿌리가 생기고, 그 뒤에 초록 싹이 올라온다. 밀싹이 15cm 정도 자라면 밑동을 4~5cm 정도 남기고 가위로 자른다. 남은 밑동에서 밀싹이 자라 한 번 더 수확할 수 있다.
밀싹주스 레시피
수확한 밀싹은 바로 즙을 낸다. 하루 섭취량은 30㎖ 정도가 적당한데, 밀싹즙이 써서 그대로 마시기 어렵다면 채소나 과일을 넣어 주스로 즐기면 좋다.
클렌징 디톡스 밀싹주스 밀싹즙 40㎖+레몬 1개+사과 1개+키위 2개+오이 1/2개+케일 잎 3장
에너지밤 밀싹주스 밀싹즙 40㎖+오렌지 2개+바나나 1개+파인애플슬라이스 4조각+생강슬라이스 2개
텃밭 레시피 #2 골라 키우는 재미가 쏙쏙 ‘상추’
재배 Tip 파종시기 1년 내내 (한여름 제외) 재배온도 15~25℃ 발아온도 15~20℃ 발아기간 3~7일 수확시기 파종 후 50~60일
상추는 흔히 쌈으로 즐기는 꽃상추, 청상추 외에도 로메인상추, 버터상추, 흑치마상추, 라피드상추, 롤로상추 등 종류마다 맛과 식감이 달라 골라 키우는 재미가 있다. 상추 씨앗은 껍질이 두꺼워 1~2일 정도 물에 담갔다 심는다. 화분 1개에 씨앗 30개 이하가 적당하며, 햇빛을 받아야 하므로 너무 깊게 심지 않는다. 싹이 나기 전까지는 수시로 분무기로 물을 뿌려 흙이 마르지 않도록 한다. 빠르면 3~4일 만에 싹이 나는데, 본잎이 4~6장 나온 후에는 어린 상추를 중간중간 뿌리째 뽑아 간격을 넓혀준다. 1차 수확 시엔 바깥 잎부터 따고, 4~6장 정도 잎을 남긴다. 다음 수확을 위해 웃거름을 1~2주에 1회 정도 주고, 꽃대가 올라오기 전까지 수시로 잎을 따 먹는다. 팩 화분을 이용해 재배해도 편리하다.
상추 샐러드 & 마요 덮밥 레시피
상추는 종류마다 맛과 모양은 달라도 키우는 방법은 동일하다. 다양한 상추를 키워 쌈이나 샐러드로 즐겨보자. 간단한 한 끼 식사로 좋은 ‘상추 마요 덮밥’도 쉽게 만들 수 있다.
상추 마요 덮밥 밥 위에 잘게 썬 로메인상추(4~5장), 스크램블(달걀 1개), 통조림 참치(3큰술)를 올린다. 기호에 맞게 야키소바 소스와 마요네즈를 뿌린 뒤 비벼 먹는다.
병아리콩 상추 샐러드 병아리콩(100g)은 반나절 물에 불려 끓는 물에 넣어 20분 정도 삶아 찬물에 헹군다. 상추(8~10장)와 방울토마토(5~7개)는 먹기 좋게 썰어 병아리콩과 볼에 담는다. 드레싱(올리브오일 2큰술, 레몬즙 1큰술, 꿀 1작은술, 후추·소금 약간)을 뿌려 완성한다.
텃밭 레시피 #3 보기만 해도 시원 상큼한 ‘애플민트’
재배 Tip 파종시기 3~6월, 9~10월 재배온도 15~25℃ 발아온도 15~20℃ 발아기간 10~15일 수확시기 꽃피기 전 수시로
향긋한 사과 향이 나는 애플민트는 자라는 속도도 빠르고, 꺾꽂이(삽목), 물꽂이도 쉬워 화분으로 많이 늘릴 수 있다. 수확한 애플민트는 다양한 여름 음료에도 잘 어울려 활용만점이다.
씨앗 크기가 작아 작은 모종 포트를 이용해 파종하는 것이 좋다. 초반에는 새싹도 작고 느리게 자라지만 점점 성장이 빨라진다. 한여름 장마 전 가지치기를 반드시 하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화분을 둔다. 애플민트는 금세 가지가 풍성해져 수시로 가지치기를 해줘야 하는데, 이때 물꽂이를 하면 여름철 실내 인테리어 효과도 낼 수 있다. 튼튼한 가지를 잘라 물에 들어가는 부분의 잎은 뗀다. 유리병에 물을 붓고 가지를 넣어 해가 잘 드는 곳에 두고 물을 매일 갈아준다.
애플민트 모히토 레시피
초여름 무성해지는 애플민트로 시원한 모히토 음료를 만들어보자. 일반 모히토는 라임즙만 들어가지만 자몽즙을 더하면 쌉쌀한 맛과 애플민트의 향이 더해져 색다르게 즐길 수 있다.
무알콜 자몽 모히토 유리잔에 얼음을 채우고 라임(3조각)을 넣어준다. 라임즙(30㎖)과 자몽즙(200㎖), 시럽을 약간 넣은 뒤 애플민트(2~3줄기)를 넣고 수저 등으로 살짝 으깬다. 칵테일처럼 즐기고 싶다면 화이트 럼주를 30~40㎖ 추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