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봄바람 타고 들려오는 유쾌한 노랫소리, 덕포진교육박물관
- 3학년 2반 수업은 현재진행형 덕포진교육박물관 1층의 난로 옆에 앉아서 이인숙 선생님을 기다리며 남편이신 김동선 관장님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적함이 적당히 어울리는 박물관 외부와는 달리 전시관 내부는 아주 오래전 아이들의 이야깃거리가 와글거리는 듯하다. “박물관이 조용하지요. 코로나19 이전엔 동창회 모임이나 학생들이 단체로 많이 왔는데 요즘은 모든 게 뜸해요.” 덕포진교육박물관은 이인숙 선생님의 교직 생활 마지막 담임 반이었던 3학년 2반 교실이 있는 1층 인성교육관, 일제강점기부터의 교육과정 관련 사료가 전시된 2층, 3층의 농경문화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래전의 방대한 교육 자료들이 새록새록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감성 문화공간이다. “우린 부부 교사였지요. 어느 날부터인지 아내가 자꾸 눈이 침침하다고 해요. 그래서 병원을 갔다가 시력이 아주 많이 나빠진 걸 알았어요. 한 6년 정도 병원을 계속 다니다가 더 이상 회복 불능… 의사가 그만 와도 된다고 해요. 그래서 빨리 사표를 내게 했어요. 시력을 잃고 평생 천직이었던 일을 그만두는데 그 좌절감에 난리가 났지. 그 기분을 이해하죠. 그래서 살고 있던 대치동 아파트를 팔고 이 박물관을 시작했습니다. 아내의 마지막 담임 반이었던 3학년 2반 교실도 재현해서 지금도 아내의 수업은 진행 중인 듯 그렇게 살고 있어요.” 그녀의 풍금 소리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전시관 입구를 향해 이인숙 선생님이 들어오고 있었다. 슬로 모션처럼 한 걸음 한 걸음, 동시에 들려오는 콧노래가 봄바람처럼 부드럽다. “반가워요. 여긴 처음인가?” 하이톤 목소리가 힘차다. 오래전에 놀러 온 적이 있는데 선생님께서 풍금 치며 ‘오빠 생각’을 들려주었다고 했더니 “그럼 노래 먼저 불러줄까?” 하면서 풍금 앞에 앉아 “나리 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를 시작으로 “솔솔 부는 봄바람 쌓인 눈 녹이고 잔디밭에 새싹이 파릇파릇 나고요 시냇물은 졸졸졸 노래하며 흐른다~”를 불러주신다. 3학년 2반 교실에 퍼지는 풍금 소리가 마법처럼 금방 추억 속으로 데려간다. 그러고는 “전에 들었다던 ‘오빠 생각’도 불러줄게요” 하면서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늪에서 울 때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실 제~♪” 순식간에 기분이 경쾌해졌다. 그리고 따뜻하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함께 있을 때 새로움이 보인다 마주 앉은 이인숙 선생님의 가꾸지 않은 머리에 희끗희끗 흰머리가 보인다. 어느덧 70대 중반을 넘겼다. 박물관을 둘러보니 이전과 다름없이 여전한 듯, 그런데 잘 살펴보면 좀 바뀐 듯도 합니다. “바뀌어야지. 추억은 미래보다 새롭다고 생각해요. 그대로인 것만 좋은 것은 아니잖아. 그대로이면 고리타분해져요. 디지털과 섞어놔야 추억의 새로운 면도 보이거든.” 요즘은 영국에서 박물관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아들이 덕포진교육박물관 일을 함께 한다. 젊은 세대인 아들 덕분에 새롭게 바뀌는 부분이 있다고 덧붙였다. “동심이라는 추억이 늘 기억을 자극합니다. 그래서 기억력도 더 좋아져요. 살다 보면 오래된 것들을 소홀하게 생각하는데 이것들을 디딤돌로 삼아 가꾸어진 것에 나는 자부심을 갖습니다. 요즘은 감각적이고 즉흥적인 것을 좋아하지만 현재의 디지털 밑거름이 아날로그입니다. 고생 없는 성공을 사상누각이라고 하듯 어르신들의 역사는 오늘의 든든한 밑거름입니다. 뿌리를 단단하게 해야 튼튼한 나무로 키울 수 있어요. 이 박물관에 저장된 모든 것이 지금까지의 내 삶이고 행복한 추억입니다.” 인정하기와 경청 그렇다면 시니어들과 젊은 세대의 간격을 잘 유지하기 위해 경계해야 할 일이나 어떤 해법이 있을까요. “난 어르신이나 실버란 말보다는 선배라는 말이 좋아요. 노인대학보다는 선배대학이 어떨지 생각합니다. 인생에서 선배와 후배잖아요. ‘라테는…’으로 시작하는 것보다는 젊은 그들을 인정해야 해요. 도움을 주고 싶다면 짧고 임팩트 있게 전해야겠지요. 특히 시니어들에겐 경청이 중요해요. 독불장군처럼 남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이들에겐 치매나 우울증도 빨리 온다는군요. 성경에도 있잖아요. 귀 있는 자 들을지어다.” 긍정의 힘은 아주 세다 어려움이 많은 요즘입니다. 흔들림 없이 현재를 잘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에게 조언한다면. “이런 말이 있어요. ‘행운은 지각은 하되 결석은 하지 않는다.’ 언제든 온다는 말이죠. 무엇을 이루려면 연습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연습, 연습, 죽도록 연습입니다. 죽도록 연습해도 죽지는 않아요. 하하. 그리하여 자신감을 갖는 것입니다. 김연아 선수가 저절로 된 것이 아니듯이 말입니다. ‘현실 탓, 환경 탓 하기 전에 너 자신을 바꾸어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일상에서 염두에 두는 가치나 마음가짐이 있을까요. “간단하죠. 내겐 긍정의 힘입니다. 쉬운 예를 들어볼까요? 우리 살림집에 화장실이 없고 문 밖에 있어요. 밤중에 화장실에 가려면 다시 양말을 신고 주섬주섬 옷을 잔뜩 입고 머플러로 얼굴을 감싸고 걸어 나와야 해요. 귀찮다고 생각 않고 운동하러 일어난다고 생각해요. 앞을 못 보니까 캄캄한 밤이어도 ‘둥근 해가 떴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이렇게 노래하면서 나옵니다. 하하하. 내 불편을 배우자나 자식이 대신할 수 없어요. 모든 것은 나 자신의 일입니다.” 앞을 볼 수 없는 어려움을 넘어선 힘이 있을 것 같습니다. “눈이 안 보이니까 한탄스러웠지만 빠르게 긍정적으로 바뀌려고 노력했습니다. 말로만으로는 될 리 없어요. 방법을 찾았죠. 좋은 말 외우기입니다. 가장 최고는 노래죠. 내가 생각할 때 대부분의 노랫말은 가장 맞는 말입니다. 노래가 암흑기의 내 마음을 긍정적으로 바뀌게 했지요.” 그러면서 갑자기 “노래 한번 해볼까” 하더니 벌떡 일어나서 “사랑의 노래 들려온다, 옛날을 말하는가 기쁜 우리 젊은 날~” 토셀리의 세레나데를 부르고 이어서 패티김의 “사랑이란 두 글자는 외롭고 흐뭇하고~”, 가곡 그네 “세모시 옥색치마 금박 물린 저 댕기가 창공을 차고 나가 구름 속에 나부낀다~”까지 부르신다. 타고난 출중한 노래 실력이었다. 당당하고 거침이 없다. 그뿐 아니라 이야기하는 도중에 틈틈이 들려준 노래가 10곡이 넘었다. 여전히 목소리에 힘이 있고 맑은 소프라노여서 들으면서 즐거운 기운을 얻는다. 매사 자신감 넘치고 씩씩하다. 노래와 함께 즐기는 것이 시 외우기라고 말한다. ‘나만의 두뇌 스포츠’라면서 150편의 시를 외우고 있다니 놀랍다. 그러면서 윤동주의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을 줄줄이 읊는다. 나 자신을 가르치면서 산다 이처럼 시종일관 긍정적이고 기운찬 시간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남도 사랑할 수 있어요. 나 자신을 위해 시도 외우고 노래도 하고, 운동 삼아 박물관 3층을 오르내려요. 그러다 보면 주변도 보입니다. 내 앞가림만 하려고 하지 말고 소외된 사람을 찾아보고 마음을 나누다 보면 이게 내 행복이다 생각되고 마음이 열리죠. 시니어라면 그러다가 하고 싶은 일자리가 생길 수도 있고요. 무심히 시간을 보내는 셀프 킬링이 아닌 셀프 힐링이 된다는 거죠.” 이화여대 초등교육과를 졸업하고 교직 22년, 시력을 잃고 교직을 떠났다. 많은 제자들을 가르쳤고, 지금도 찾아오는 관람객들이 있어서 감사하다. 그렇지만 외부에 기대할 만한 세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운명은 내가 책임진다는 마음으로 산다. 그래서 자신만의 멘털 스포츠라는 생각으로 하루에 한 번씩 좋은 일 하고, 10번 웃고, 100자 쓰고, 1000자 읽고, 10000보 걷기를 지키려 노력하지만, 앞이 안 보이는 여건상 쉽지 않다. “하루 100자 쓰기는 어느 노래든 1절 가사를 꼭꼭 눌러 쓰면 얼추 100자 됩니다. ‘비 내리는 호남선’ 몇 줄 가사 쓰기 쉽잖아요. 나 그게 하고 싶어요. 또 요즘엔 없으면 불편한 스마트폰과 운전면허… 이 두 가지, 내가 그게 없어요.” 유쾌하다가 간간이 쓸쓸할 때도 있다. 선생님께 박물관은 시간 여행이나 마음 나누기 말고도 또 어떤 의미일까요. “내 마음의 보물입니다. 질 바이든 여사가 백악관에 들어가서도 교직을 유지하잖아요. ‘남을 가르치는 것은 나 자신을 가르치는 것이다’라면서요. 덕포진교육박물관의 3학년 2반 교실이 있어서 지금도 나 자신을 가르치고 깨우치며 살게 합니다.”
- 2021-03-31 10:03
-
- 삼척 바닷가 마을 다이어리
- 예고도 없이 찾아든 바이러스 때문에 온 세상이 멈춘 듯 움츠러들었다. 촉촉하고 부드러운 감성을 찾아 떠나고 싶을 때다. 여전히 여행은 자유롭지 않다. 그럼에도 갑갑한 일상에 갇혀 있는 자신을 가끔씩 끄집어내 주어야 하지 않을까. 물결이 비단처럼 고운 바닷가 삼척을 대표하는 항구 정라진(汀羅津)은 말 그대로 비단처럼 잔잔하다. 그 수면 위로 비치는 바닷가 마을이 고요하다. 한때는 동해안 최대 항구이기도 했던 삼척항이다. 지금은 그 시절의 모습은 사라지고 소박한 어촌 마을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강원도 지도에서 가장 아랫녘에 위치한 삼척, 한때는 동해를 대표하는 무역항이었다. 최고의 호황기였던 1970~80년대 수많은 어선이 항구로 몰려들었고, 노가리와 대구, 정어리, 오징어가 풍년이었다. 그 무렵의 삼척항은 몰려든 사람들로 늘 북적였다. 우리네 어머니와 할머니는 밤새 잡아온 오징어 손질에 바빴고, 햇볕 좋은 나릿골 마을은 온통 오징어 건조장이었다. 그뿐 아니라 태백산지의 지하자원 덕에 시멘트 공장과 석탄을 원료로 하는 화력발전소까지 들어서서 돈이 넘쳐나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도 있었다. 시멘트 공장은 아직 남아 있지만 지금은 옛 영화가 사라진 소박한 풍경이다. 그럼에도 향수 어린 친근한 이름 정라항(汀羅港)은 여전히 어민들에게 소중한 삶의 터전이다. 정라항은 삼척시에서 2km 정도 거리에 있다. 마을과 가까이 맞닿아 있어 바다를 바라보면서 비릿한 갯내음과 더불어 곰치국이나 싱싱한 활어회를 즐길 수 있다. 그런데 막상 그 거리에 들어서니 조용하다. 가끔씩 통통배의 시동 거는 소리가 들리고, 어선의 깃발이 바람에 살랑대는 모습이 보일 뿐이다. 활기찬 항구의 소란함이 다시 찾아오길 고대한다. 조용한 항구를 뒤로하고 입구의 말랑이슈퍼를 지나 나릿골 마을에 들어서면 시간이 멈춘 듯 한적하다. 그 길로 좁다랗게 비탈진 골목이 미로처럼 쭉 이어진다. 경사가 어찌나 가파른지 눈비 내릴 때는 어떻게 다닐까 걱정될 정도다. 언덕을 따라 올라가는 나릿골은 예전엔 층층이 골은 낮지만 물이 풍부해서 습기를 받은 나리꽃이 지천으로 피어났다고 한다. 지금은 나릿골에서 볼 수 없는 꽃이지만,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나리꽃처럼 정감 어린 감성 마을로 변모하는 중이다. 지나가는 담벼락에 듬성듬성 벽화가 그려져 있어 심심치 않다. 몇 년 전부터 정라항 주변 나릿골을 ‘오감이 피어나고 웃음이 번지며 걷고 싶은’ 감성 마을로 조성해 언덕 마을에 표정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동해안 여행자들의 한 달 살기 등을 지원하기 위해 빈집 6채를 사들여 게스트 하우스로 리모델링했다고 한다. 그 골목길을 따라 가파른 언덕을 숨차게 오르면 그 끝에 무엇이 있을까. 나릿골의 작은 집 4채 나릿골의 작은 집 4채를 삼척시로부터 지원받아 교육관 1동, 전시관 및 체험관 2동, 외부 작가가 거주할 작가의 집 1동으로 리모델링한 미술관이 언덕 끝에 기다리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유휴시설 활용사업 일환으로 탄생한 문화 공간이다. 나릿골의 좁다란 골목길 걷기도 여행의 색다른 재미지만, 미술관을 편히 가려면 산등성이까지 자동차로 갈 수도 있다. 차량 통행이 어려울 만큼 비좁았던 길이 도시재생사업으로 조금 넓어졌다. 걷기가 용이하지 않을 경우엔 택시나 자동차를 이용할 수 있으니 누구나 가파른 그 언덕 끝까지 오를 수 있다. 골목을 돌고 돌아 오르는 길에는 잘 가꾸어진 작은 카페와 아기자기한 시설들이 소소하게 자리한다. 하지만 정상에 올라오면 작은 공원이 있을 뿐 주변 공터는 한산하고 깔끔하다. 요즘 많이 알려진 다른 벽화 마을처럼 예쁘거나 특이한 카페, 또는 포토존 같은 시설은 보이지 않는다. 원하건대 더 이상 부대시설을 늘리지 말고 지금의 단순함을 유지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전망대에 서서 바라보는 바다, 가슴이 뻥 뚫린다. 하늘과 바다와 바람 속에서 머릿속이 청량해진다. 저 멀리로 정라항의 잔잔한 물결이 비단처럼 살랑거린다. 소박한 도시 삼척과 시멘트 공장을 감싸 안은 봉황산의 능선이 부드럽다. 마을 전체가 미술관처럼 보인다. 산언덕 드문드문 알록달록한 색감의 지붕들 사이로 그들의 애잔한 삶이 엿보이고, 텃밭에는 보송보송 파꽃이 피어났다. 미술관은 조붓한 골목길을 따라 몇 걸음 더 내려가야 한다. 길 옆으로 다닥다닥 붙어서 뉘 집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바닷가 산동네, 그 올망졸망함이 문득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군데군데 빈집들이 보인다. 마실을 간 것일까. 나릿골을 두고 먼 곳으로 떠났을까. 바닷가 마을 사람들의 문화예술 활동을 위한 ‘정라항 그리go 작은 미술관’. 나릿골의 감성과 바닷가 마을이 만들어낸 멋진 소통의 공간. 1전시관과 2전시관은 하얀 담장을 두고 몇 걸음 떨어져 있으며, 앞면이 모두 투명한 창으로 되어 있어 바다와 마주한다. 그리고 전시 작가가 머물 수 있는 작가의 집이 전시장 아래쪽에 위치한다. 신선한 물빛 감성을 가득 채우는 시간이다. 어둠이 내려앉으면 더 멋질 것 같은 곳. 바이러스를 피해 방구석만 지키기에는 몸과 마음이 지쳐가는 겨울이었다. 정라진 항구 마을의 정취를 느끼며 향수 어린 그 시절의 그리움에 잠깐 젖어보는 것도 괜찮다. 해풍에 오징어가 말라가는 자연 속의 건강한 풍경으로 수분을 채우고 위로받는 하루, 기꺼이 만들어볼 일이다. 바닷길과 감성 마을 골목을 천천히 올라 다다른 작은 미술관에서 버석하던 일상에 감성을 채우고 에너지를 얻는다. 어디쯤엔가 와 있을 봄, 삼척항 호젓한 산등성이에 올라 바라보는 비단 물결 반짝이는 바다, 더할 나위 없이 충만한 하루다. 주변 볼거리 여행 중에 잠시 휴식을 주는 곳, 죽서루 동해가 아우르는 지역에서 유일하게 강을 끼고 있는 죽서루(竹西樓). 시간 여행하듯 삼척 읍성 성곽로를 따라가다 보면 나타난다. 누각으로 가까이 다가가면 삼척시 서편으로 오십천(五十川)이 절벽 아래 흐른다. 관동팔경 중에서도 제1경으로 꼽히는 죽서루는 삼척 시내에 있어서 삼척 주변을 여행 중이라면 잠시 들러 쉬어가기 딱 좋다. 죽서루는 송강 정철의 가사에 나오는 터이기도 하다. 평온한 마음의 휴식, 성내동 성당 삼척의 성내동 성당은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 천주교 발전사에 의미 있는 곳이다. 고딕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 건축물을 감상할 수 있으며, 초대 주임 신부로 부임한 진 야고보 신부의 순교 기념비와 기념 건물을 볼 수 있다. 종교적 신념을 지키다 공산군에게 피살된 진 야고보 신부의 족적을 천천히 따라가 보자. 성전을 한 바퀴 돌면서 조용히 묵상의 시간을 가지고 성당 주변 풍경에 잠겨보는 것도 특별하다. 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 도경리역 삼척에서 자동차로 10여 분 거리에 도경리역이 있다. 거리상으로는 가깝지만 그곳에 가려면 꼬불꼬불한 산길을 달려야 한다. 예전엔 아주 깊은 산골이었을 듯싶다. 삼척시와 동해시의 경계에 위치하는데 두 도시는 이웃 마을처럼 아주 가깝다. 1939년에 지어진 도경리역은 현재 영동선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랜 역사(驛舍)로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298호다. 일제강점기에 자원수탈의 도구로 역사나 터널을 만들었는데 이 역도 그중 하나다.
- 2021-03-10 09:12
-
- 메마른 감성을 적셔줄 2월의 문화 소식
- ● Exhibition ◇신의 예술가, 미켈란젤로 특별전 일정 5월 2일까지 장소 M컨템포러리 16세기 르네상스 거장 미켈란젤로의 걸작을 미디어 아트를 통해 한자리에서 조망한다. 드로잉, 유화, 프레스코, 조각, 시 등 5가지 장르를 통해 그림을 시작했을 때부터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미켈란젤로의 전 생애 작품을 살펴보고, 그의 예술세계를 탐구한다. 전시는 미켈란젤로의 작품 연대기와 작업 방식을 살펴보는 공간으로 시작한다. 이어 그가 남긴 드로잉으로 작품을 위해 수없이 그어야 했던 선을 확인한다. 회화 부문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유화 작품과 시스티나 예배당 프레스코 등을 조명한다. 이곳에서는 ‘아담의 창조’를 비롯한 유명 프레스코화를 미디어로 재해석해 환상적인 볼거리를 선사한다. 이 외에도 3D 영상, 홀로그램 등 다양한 미디어 기술과 접목한 조각품으로 몰입도를 높이며, 미켈란젤로의 시를 함께 전시해 그의 생각을 엿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미켈란제로의 작품을 색칠하는 컬러링 존을 통해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환기가 필요한 일상에 영감을 제공하는 이번 전시는 실제 작품을 감상하기 어려워진 관객들에게 색다른 방식으로 위로를 전하고, 지성을 불어넣는다. ◇마티스 특별전 : 재즈와 연극 일정 4월 4일까지 장소 마이아트뮤지엄 앙리 마티스 탄생 150주년을 기념해 진행하는 국내 최초 마티스 단독 전시회가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진행되고 있다. 앙리 마티스는 강렬한 색채가 특징인 프랑스 야수파 화가로,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최고의 예술가로 손꼽힌다. 50년간 유화, 드로잉, 조각, 판화, 컷아웃, 책 삽화 등 방대한 작품을 제작했으며, 주요 작품은 ‘모자를 쓴 여인’, ‘춤’, ‘붉은 화실’, ‘폴리네시아 하늘’ 등이 있다. 그중 마티스의 컷아웃(종이 오리기) 기법은 20~21세기 추상미술, 미니멀리즘 디자인 영역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번 전시는 컷아웃 기법으로 제작된 ‘재즈’ 시리즈와 드로잉, 석판화, 발레 공연을 위해 디자인한 무대 의상, 로사리오 성당 건축 등 작품 120여 점을 다채롭게 소개한다. 특히 대표작 ‘재즈’를 통해 마티스 특유의 생생한 색채와 선을 조명하고 작품과 어울리는 재즈 음악을 큐레이션해 그림과 음악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 도슨트의 풍부한 해설로 작품의 이해를 높일 수 있는 시간도 마련한다. 전시를 통해 만나볼 수 있는 마티스의 예술적 순수함과 열정은 코로나19로 메마른 감성에 단비가 되어준다. ● Book ◇노인을 위한 치료백과 (분당서울대병원 노인의료센터 저·알에이치코리아) 시니어에게 자주 나타나는 여러 질환을 한 권에 모아 소개한다. 질환뿐 아니라 간병, 요양병원 등 복지서비스까지 총망라했다. 시니어라면 집에 한 권 두고 틈날 때마다 찾아볼 만하다. ◇억척의 기원 (최현숙 저·글항아리) 중장년 여성의 구술 생애 작업을 이어온 최현숙 작가가 이번엔 60대 나주 농민의 이야기를 실었다. 두 여자의 굴곡진 삶을 통해 그들이 억척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풀어낸다. ◇어른의 말공부 (사이토 다카시 저·비즈니스북스) 나이가 들수록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해 품격 있는 언어 습관을 소개한다. 필요한 말만 하는 분별력, 진심을 담는 전달력 등 말의 내공을 갖추는 방법을 차근차근 설명한다. ● Stage ◇얼음 일정 3월 21일까지 장소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연출 장진 출연 정웅인, 이철민, 박호산, 이창용, 신성민, 김선호 등 ‘충무로의 이야기꾼’ 장진 감독의 화제작 연극 ‘얼음’이 초연 후 5년 만에 돌아왔다. ‘얼음’은 독특한 구성의 2인극으로, 2016년 초연 당시 장진 감독 특유의 작가적 상상력과 뛰어난 이야기 구성, 긴장감 넘치는 연출로 화제를 모았다. 작품은 잔인한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18세 소년과 그 소년을 범인으로 만들어야 하는 두 형사의 이야기를 다룬다. 무대에 등장하진 않지만 강렬한 존재감을 나타내는 소년과 살인 사건이 일어난 날의 정황을 짚어가는 두 형사 사이 팽팽하게 펼쳐지는 심리전이 극에 긴장감을 더한다. 이번 공연에는 내로라하는 실력파 배우들이 대거 캐스팅되었다. 배우 이철민과 박호산이 작품에 대한 애정으로 초연에 이어 이번 무대에 다시 오르고, 배우 정웅인, 이창용, 신성민, 김선호가 새롭게 합류해 작품에 힘과 활력을 불어넣으며 짜릿한 연기 앙상블을 펼칠 예정이다. ◇위키드 일정 2월 16일~5월 1일 장소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 연출 조 만텔로 출연 옥주현, 손승연, 정선아, 나하나, 서경수, 진태화 등 초록 마녀 열풍을 일으켰던 뮤지컬 ‘위키드’가 다시 무대에 오른다. 위키드는 ‘오즈의 마법사’를 유쾌하게 뒤집은 그레고리 맥과이어의 소설을 뮤지컬화한 작품으로, 두 마녀 ‘엘파바’와 ‘글린다’의 우정과 사랑, 용기 등을 다룬다. 거대한 타임 드래곤, 날아다니는 원숭이, 350여 벌의 의상 등 화려한 무대와 마녀들의 매혹적인 노래가 마법에 걸린 듯 시선을 사로잡는다. ◇붉은 정원 일정 2월 5일~3월 28일 장소 유니플렉스 2관 연출 성재준 출연 박은석, 이정화, 조현우 등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러시아 3대 문호로 꼽히는 작가 이반 투르게네프의 소설 ‘첫사랑’을 각색한 창작 뮤지컬이다. 감수성이 풍부한 18세 소년 ‘이반’과 치명적인 매력의 ‘지나’, 이반의 아버지이자 유명 작가인 ‘빅토르’의 위험한 삼각관계를 그린다. 섬세한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대사들과 클래식하면서도 세련된 음악들로 원작의 감동을 구현했다.
- 2021-02-01 15:13
-
- 멀티 공간으로 변한 우리 집
-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되면서 주거 문화도 바뀌고 있다. 이제 집은 휴식을 넘어 다양한 기능을 하는 공간으로 변하는 중이다. 운동, 업무, 취미활동을 집에서도 해결할 수 있다. 마치 옷을 껴입듯 다양한 기능이 추가된 집이라 해서 ‘레이어드 홈’(layered home)이라 부른다. 인테리어 브랜드 ‘한샘’이 최근 발표한 ‘2020 가을 인테리어 트렌드’를 통해 레이어드 홈을 살펴보자. 도움 인테리어 브랜드 ‘한샘’ 낮에는 업무, 밤에는 취미 거실 뒤편의 홈오피스는 재택근무자를 위한 공간이다. 화상회의와 업무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도록 듀얼 모니터를 설치했다. 내부에 설치된 알레 선반 시스템은 원하는 대로 모듈 구성이 가능해서 사용이 편리하다. 거실과 오피스 사이에 있는 스마트 글라스는 투명도를 조절할 수 있다. 업무에 집중하고 싶거나,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혼자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불투명하게 설정하면 된다. 저녁에는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다. IoT 기기에 ‘서재 모드’, ‘파티 모드’ 등을 설정하면 음성 명령으로 스마트 글라스, 조명, 블라인드 등이 자동으로 조절된다. 파티 모드로 설정한 공간에서 취미를 즐기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자. 집 안의 작은 영화관 큰 스크린 화면과 빵빵한 음량, 적막 속에서 마시던 콜라와 달짝지근한 팝콘. 이전처럼 영화관에 가는 것이 어려워지면서, 그 안에서 즐기던 소박한 것들이 그리워졌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어찌나 간사한지 유튜브와 넷플릭스에 빠져 저 그리움들을 잊어버릴 정도다. 다만 영화관 특유의 분위기와 몰입도가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이 둘을 적절히 섞을 수는 없을까? 대안을 하나 제시한다면 바로 거실에 홈시어터를 설치하는 것이다. 음성인식 스피커에다 대고 “영화 보여줘!” 한마디만 하면 스크린, 프로젝터, 조명, 커튼 등을 한꺼번에 통제할 수 있다. 스크린과 프로젝터, 조명을 천장에 매입한 덕분에 인테리어도 깔끔하다. 스마트 현관 간혹 도어 록 비밀번호를 까먹어서 난감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런 일도 추억으로 남을지 모른다.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한 스마트 홈 기술 때문이다. 얼굴, 손 정맥 등 생체인식이 추가된 현관 도어 록과 전동 중문은 손을 대지 않고도 열 수 있다. 현관장 내부에는 살균 조명을 설치해 물품을 위생적으로 보관할 수 있다. 혹시 밖에서 묻혀왔을지도 모를 바이러스와 세균도 차단해준다. 한샘 관계자는 “생체 인식과 같은 스마트 홈 기술은 코로나19 이전부터 준비해왔고, 최근 비대면과 위생관리가 화두가 되면서 살균 시스템 같은 위생적 기능을 한층 더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안에서는 홈파티, 밖은 홈가드닝 테라스와 연결된 알파룸이 있다면 어떻게 활용할까? 일단 방 한가운데 커다란 테이블을 두고 평소에는 서재로 쓰다가 주말엔 친구들을 불러 근사한 홈파티를 열어보자. 자주 사용하는 와인 잔과 식기류를 수납하는 카페장, 그리고 잡지를 비치할 수 있는 매거진 랙으로 감성적인 연출을 시도해보자. 또 나들이를 자주 못 나가 심신이 지칠 때 위안이 되는 홈가드닝으로 꾸며보는 건 어떨까? 폴딩도어로 이어진 테라스는 홈가드닝 최적의 장소다. 외출이 쉽지 않을 때 이곳에서 햇빛도 쐬고, 계절마다 다양한 화초를 가꿔보자. 파릇파릇한 초록색을 보면 눈도 마음도 정화된다. 한샘 관계자는 “신혼부부를 타깃으로 한 방으로, 향후에 아이가 생긴다면 아이 방으로 쓸 수 있다”고 조언하며 멀티 공간으로서의 확장성을 시사했다. 반려동물도 가족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국내 ‘펫팸족’이 1000만 명을 넘어서면서, 사람과 반려동물이 공존할 수 있는 가구나 인테리어에 관심이 높아졌다. 이른바 ‘펫테리어’ 시장이 점점 커지는 추세다.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면 다용도실에 반려동물 욕실을 마련하거나,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펫도어 설치를 추천한다. 여기에 반려동물 용품을 정리할 수 있는 펫하우스 수납장을 추가하면 용품 관리가 한결 더 수월해질 것이다. 한샘 관계자는 “작년부터 리모델링 및 인테리어 시장에서 주목받는 것 중 하나가 ‘펫테리어’다. 섣불리 실수요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펫팸족의 증가를 봤을 때 미래에 고려할 수 있는 인테리어 중 하나가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집에서 즐기는 브런치 먹다 남은 김치찌개 앞에 자주 앉아 있지만, 가끔은 근사한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거나, 바에서 와인을 한잔하는 여유도 필요한 법. 하지만 코로나19로 쉽지 않다. 그렇다면 주방을 홈카페처럼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일단 주방과 다이닝 공간을 구분하자. 다이닝 공간에는 은은한 불빛이 매력인 펜던트 조명을 설치하고 그 아래 원형 식탁을 놓자. 이곳에 카페 수납장과 커피머신, 그리고 편집숍에서 산 빈티지 잔까지 더하면 카페 부럽지 않다. 늦은 아침 가볍게 브런치를 즐기고, 저녁에는 와인을 마시는 홈바로 쓸 수도 있다. 주방 한편에 마련된 팬트리는 대용량 식료품이나 청소용품을 수납하거나 분리수거 존으로 쓰면 된다. 주방이 훨씬 더 깔끔해진다. 내 집에서 언택트 호캉스 호캉스를 즐기기 어려운 요즘, 집 안 침실에 호캉스 분위기를 내보는 건 어떨까? 호텔은 심미적인 분위기와 더불어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기능적 요소가 장점이다. 그렇다면 침실도 호텔처럼 이러한 기능성을 갖추면 어떨까? 우선 발코니로 이어지는 입구는 아치형으로 만들어 공간을 부드럽게 꾸미고, 침실 벽면에는 입체감이 가미된 템바보드로 포인트를 준 뒤 무드 조명을 설치해 근사한 호텔형 침실을 만들어보자. 간단한 업무를 할 수 있는 서재와 드레스룸 혹은 가벼운 운동을 즐길 수 있는 홈짐이 있다면 기능적으로 완벽하다. 이 정도면 호캉스도 부럽지 않다.
- 2020-12-18 09:34
-
- 정원에서 삶과 예술을 보려거든
- 파주 헤이리는 문화예술인들이 만든 공동체 마을이다. 볼 것 많고, 거닐 곳 많아 찾아와 노니는 이가 많다. 저마다 개성에 찬 건축으로 돋보이는 미술관, 박물관, 공방, 카페, 그리고 살림집이 즐비하다. 자연 환경을 존중해 지은 건축들의 좋은 매너와 세련미, 그리고 거주자들의 재능과 활동력으로 생동하는 신흥 예술타운이다. 파주시의 이채로운 문화 브랜드이기도. 블루메미술관이 여기 헤이리에 있다. 블루메? 푸른 산? 아니다. 굴참나무(Quercusvariabilis Blume)의 학명 끝 단어를 따온 이름이다. 블루메미술관의 상징물이 굴참나무이기 때문이다. 미술관 입구에 신장(神將)처럼 떠억 버티어 선 우람한 굴참나무 한 그루. 수령 100년이 넘은 거목이다. 아파트 5층 높이에 맞먹는 장신 노목이다. 세상 이치에 한소식 이미 했을 굴참나무. 이걸 본디 자리에 그대로 두고 건축을 한 건 오래 살아남은 생명에 관한 예우에서다. 나무 한 그루 살려둔 게 무슨 대수냐 싶지만, 이 미술관의 설립자는 시원하게 싹 베어내 공간을 확보하자는 주변의 의견을 거슬러 건축을 했다. 그는 자연을 정중하게 대접하지 않고선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성향의 소유자? 낮아지자, 모든 살아 있는 식물 앞에서 고개 숙이자, 그는 그쯤의 자세를 견지해 자신이 영혼 없이 사는 속물이 아님을 스스로 입증하기를 관습으로 삼은 인물이려나? 그런데, 굴참나무를 살려두고 건축을 하는 데엔 지난한 과정이 따랐다. 나무를 건축으로 품기 위해 쏟아 부은 비용만 해도 1억 원 이상이었다고. 면밀한 설계도 기본이었다. 블루메미술관은 노출 콘크리트 공법을 주조로 건축한 미술관이다. 설계자는 중견 건축가 우경국(예공아트스페이스 대표)이다. 우경국은 어마어마한 덩치를 가진 굴참나무를 건축의 내부로 끌어들이기 위해 최대한 개방적인 공간 구성을 하고, 콘크리트 벽에 사각형 구멍들을 숭숭 뚫어냈다. 나무를 감옥살이시키지 않기 위해서. 덕분에 나뭇가지들은 구멍을 통해 벽을 탈출, 구차한 속박 없이 생장할 수 있게 되었다. 우경국의 얘기는 이렇다. “그 자리에 존재하는 나무는 건축이며, 동시에 관습적 공간의 내·외부 개념을 해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됐다.” 설계자는 굴참나무를 건축의 하나로 읽었던 거다. 나무가 집의 외부에서만 자란다는 통념을 깼다는 얘길 하는 거고. 그는 설립자의 의도를 충실히 구현한 셈이다. 나무와 건물,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공존을 근간으로 미술관을 만들고 싶다는 설립자의 취지는 이 미술관 안팎에 조성된 정원 공간들의 수려함과 다양성을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2층 중정(中庭)은 통째 야생초 꽃밭으로 인위와 자연이 만나 형성한 매력적인 생태 경관을 펼쳐 보인다. 건물이 등을 기댄 뒷산 자락의 수목들은 또 어떻고? 손댄 바 없이도 찬연한 미감으로 빼어난 자연정원이다. 이러하니 ‘정원이 있는 미술관’이라기보다 ‘미술관이 있는 정원’이라 할까보다. 이 미술관에 그림을 보러 온 사람들은, 벽 구멍을 다소 수고스럽게 관입하고서도 은성한 우듬지를 이룬 굴참나무의 곡예와, 가을꽃들 하늘거리는 정원의 미모를 뜻밖의 보너스로 관람하게 된다. 그렇다면 자연을 잘 북돋아 만든 블루메미술관의 설립자는 대체 뉘신가. 서양화가 백순실(70) 선생이다. 미술관 관장이기도 한 그는 15년 전부터 헤이리에 살며 정원을 가꾸었다. 그림을 그리는 일, 관장 직무를 수행하는 일이 본분이지만 정원가꾸기도 천분인 양 공을 들였다. 과수원집 딸로 자란 덕에 유년 때부터 풍부하게 경험한 초목의 아름다움에 대한 선망과 호감이 노년까지 이어져서다. 게다가 나무와 꽃에 담긴 자연의 뜻과 숨결을 대변하는 게 예술이지 않은가. 화가인 그에게 정원은 자연이 축약된 소우주이자 사색의 오솔길이리라. 그는 굴참나무가 거침없이 죽죽 뻗어나가기를 염원할 게다. 삼라만상을 살게 하는 태양을 향한 찬배처럼 한 뼘이라도 더 높고 멀리 나아가기를. 마치 자신의 미술작업이 상상과 조형의 가지를 뻗어 마침내 자유로운 세계에 가 닿기를 바라듯이. 희로애락을 녹여 참자유를 찾고 싶었다 백순실은 ‘동다송’(東茶頌) 연작으로 유명한 작가다. 백순실이라는 이름을 몰라도 ‘동다송’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다. 그만치 널리 회자된 역작이다. ‘동다송’은 조선 후기의 고승이자 다도의 명인 초의선사가 쓴 불후의 명작이다. 시정과 영감에 넘치는 문장으로 차의 모든 걸 이야기했다. 백순실은 일찍부터 다도에 입문해 조예를 키웠으며, 30여 년 전부터 차의 정신을 테마로 한 회화 창작에 주력했으며, 그가 전적으로 공감하고 지지하는 초의의 ‘동다송’을 연작 제목으로 차용했던 것이다. 초의가 ‘동다송’에서 갈파한 다론(茶論)의 요체는 간명하다. 좋은 물을 얻어 좋은 차를 마시면 도통할 수 있다는 거였다. 제법(諸法)이 불이(不二)하니 차와 선(禪)이 둘이 아니라 했다. ‘동다송’에 꽂힌 백순실의 창작 지론도 비슷하다. 차 그림을 통해 ‘내 안의 희로애락을 다 녹여 참자유를 찾고 싶었다’는 게 아닌가. 해서 날마다 차를 마시듯, 날마다 차를 그렸다. 차의 향기, 빛깔, 감성은 물론 다도의 정신성을 캔버스에 담았다. 흙 마당을 닮은 갈색 톤을 바탕색으로 깔고, 고도의 은유와 상징으로 걸러진 묘사로 다도를 그렸다. 차를 즐기는 이라면 누구나 하나쯤 거실에 걸어두고 싶은 작품인지라 잘 팔리기도 했다. 이래저래 백순실은 오나가나 ‘동다송 작가’라는 소리를 듣는다. 블루메미술관의 건축적 지향 역시 그의 ‘동다송’을 형상화하자는 데에 두었다. 지난 2013년의 개관 이래 블루메미술관은 다수의 기획전을 펼쳤다. 특기할 만한 건 정원, 또는 자연을 테마로 한 전람회가 잦았다는 점이다. 굴참나무와 꽃밭이 단순히 시각적 심벌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미술관의 정체성까지를 표방하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즉, 이 미술관은 정원이라는 인위적 자연의 가치가 미술 행위를 통해 어떻게 조형화되는지 알게 하는 전시회 기획을 역점으로 삼아왔다. 마른 멸치대가리처럼 수척한 우리네 일상이 정원의 생기발랄로 보완되는 양상을, 삶과 자연이 결합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긍정적인 에너지의 실상을 미술작품으로 느낄 수 있는 기획전을 거듭해왔던 거다. ‘나무와 만나다’, ‘정원사의 시간’, ‘정원놀이’ 같은 타이틀로 펼쳐졌던 전시회가 그것들이다. 현재 진행되는 기획전 이름은 ‘재료의 의지-정원에서의 대화’전(展)이다. 최병석, 제닌기, 김지수, 이 세 작가가 참여했다. 간소한 재단으로 합판의 형용을 심드렁히 조형하고서 ‘피곤한 사각형’이라 제목을 붙인 최병석의 작품은 이상하고 재미있다. 인조머리카락과 인조손톱까지 재료로 끌어들인 제닌기의 설치작품은 섬뜩하고 기발하다. 이끼를 담은 그릇 여러 개를 허공에 매달아 공중에 뜬 이끼의 열도(列島)를 연상시키는 김지수의 작품 ‘공중정원’은 신비해 상상력을 펼치게 한다. 그런데 ‘재료의 의지’라는 전시 타이틀은 아무래도 아리송하다. 좀 쉽고 선명한 타이틀이라면 한결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을 텐데. 미술 기획전과 연계한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아동들을 위한 ‘미술관 속 미생물’은 미생물 눈에 바라보이는 세상을 상상하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청년 가드너 김석원(보타니컬스튜디오삼 대표)이 주도하는 성인 대상의 워크숍 ‘서로 재료 읽기 연습’은 미술관 정원을 산책하며 진행한다. 이번 기획전과 프로그램들은 12월 27일까지 계속된다. 미술관 정원에 내려앉은 가을로 시나브로 풀들이 저물기 시작한다. 가을을 반색하는 가을꽃들은 희거나 연푸른 꽃떨기를 살랑거린다. 피거나 시들거나, 그저 그렇게 순환할 따름인 초목들은 저마다 순리를 두런거리는 철학자들이다. 가을날의 우수를 사람에게 안겨준다는 점에서는 감정을 촉발하는 예술 활동가들이다. 누구였더라, ‘모든 것이 예술’이라 말한 이. 블루메미술관에 머문 한나절, 예술과 노닐어 남은 허기가 없다. 말라가는 가을 풀들의 눈짓과 몸짓은 기억해둘 만한 그림이고. < 2편에 계속 >
- 2020-11-06 09:30
-
- 평창, 무이예술관과 이효석 문학의 숲
- 강원도라 하면 누구라도 산과 바다가 고루 펼쳐진 대자연이라는 걸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동해로 떠나고 바다를 둘러싼 수려한 강원도의 산으로 향한다. 그런데 그것뿐만이 아니다. 그 자연 속에 문화 예술의 멋이 자리 잡고 있다. 폐교에 펼쳐진 예술의 풍성함과 메밀꽃 이야기의 정취 속에서 조용하게 보낼 수 있는 공간이 기다린다. 언제부터인가 시골 학교의 폐교가 늘면서 비어 있는 공간 이용의 다양한 모습을 감상하게 되었다. 농촌 인구가 도시로 유출되면서 아이들도 부모와 함께 떠나버려 폐교가 되고 있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 잇따르며 생긴 공간이다. 이제는 아이들이 떠난 학교가 미술관이나 창작실, 도서관 캠핑장, 또는 카페와 같은 휴식 공간으로 탈바꿈하여 지역 주민은 물론이고 세상 사람들과의 소통을 이끌어내고 있다. 강원도 평창의 무이예술관은 시골마을의 자그마한 무이초등학교였다. 폐교된 이후 서양화가 정연서, 이천섭, 조각가 오상욱, 도예가 권순범 등의 예술인들이 뜻을 모아 예술관으로 변신시켰다. 폐교를 이용한 공간을 여러 군데 가본 적이 있는데 무이예술관은 실내와 실외로 나누어 예술작품이 넘쳐나는 게 특별하다. 교실마다 장르별 작품들이 꽉꽉 채워져 있다. 가끔은 조각 작품을 앞에 두고 버스킹도 한다. 무이예술관, 이곳이라면 꽉 채운 가을날 하루를 보낼 만하다. 이곳을 서성이다 보면 어느덧 어릴 적 추억이 소환되고 감성은 더없이 말랑해져서 비로소 숨통이 트여 있는 자신을 느끼게 된다. 무이예술관은 입구부터 눈길을 사로잡는 거대한 조형물이 시골 학교를 그저 조촐하게 꾸민 예술관이 아니라는 걸 대번에 전한다. 복도에 발을 들이면 창가의 새하얀 커튼이 바람에 살랑이고 흰색 천의 직조 틈 사이로 복도 가득 빛이 쏟아진다. 창가에 줄지어 전시된 조각 작품들은 가을볕에 멋스럽게 빛난다. 둘러보니 원래도 작은 학교였던 것 같다. 몇 개의 교실이 있는 건물 한 동이 전부인데 교실(전시실)마다 회화, 조각 작품, 도예 작품들이 가득하다. 빽빽하게 전시된 서예 작품도 고요히 묵향을 풍긴다. 또 한쪽 전시실에는 역시 봉평의 예술 공간답게 새하얀 메밀꽃 그림으로만 가득 채워져 있다. 복도에서는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삽화와 함께 스토리텔링을 감상할 수 있어 문학적 분위기에도 잠겨보게 된다. 볼거리는 끝이 없다. 스튜디오 겸 작업실이 열려 있어 예술가의 공간을 훔쳐보는 맛도 쏠쏠하다. 체험 공간과 아트 숍이 함께 꾸며져 있어 참여 활동도 가능하다. 복도 창가나 틈새 공간도 그냥 놔두지 않고 예술가들의 손길이 닿아 있다. 계단참의 소품들을 구경하면서 위층에 오르면 모임이나 파티를 열 수 있는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문 열고 옥상으로 나가면 무이예술관의 바깥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가슴이 탁 트이는 공간이다. 예전엔 운동장이었을 조각공원은 자연이 주는 넉넉함이 있어 천천히 둘러볼 수 있는 여유를 준다. 잔디 마당은 발걸음마다 부드럽다. 아이들은 조각품들 사이에서 뛰어놀고 엄마 아빠는 예술작품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 모습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가을이 깊어가는 운동장엔 노랗게 빨갛게 물든 단풍잎이 날리고 발아래는 낙엽이 바스락거린다. 이곳을 오가는 누구라도 갬성 충만이다. 커피 향 따라 가본 전시관 끄트머리의 갤러리 카페. 사방으로 널찍한 덱에 앉아 운치 있게 차 한 잔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카페 안은 운동장을 향해 문을 활짝 열어놓아 테이블에 앉아 편안히 풍경을 감상하며 휴식시간을 누릴 수 있다. 예술적 상상력과 소통이 공존하는 무이예술관에 가면 가슴 가득 예술의 기운을 얻어 나오게 된다. 살다가 잠시 멈추고 천지의 가을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깊게 숨을 쉬어볼 만한 곳. 폐교에 담긴 예술 작품과 따스한 휴식 공간에서 충분한 감성 충전을 했던 참으로 괜찮았던 가을날 하루, 자연스럽게 힐링이 되었던 시간이다. ▲주변에 가볼 만한 곳 -이효석 문학의 숲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 이 소설의 배경지인 봉평엔 메밀밭뿐 아니라 소설 속 내용을 모형으로 재현해놓은 ‘이효석 문학의 숲’이 있다. 발걸음에 따라 30분에서 1시간 정도 걸리는 산책로가 마련돼 있다. 덱 주변에는 자작나무가 하늘 높이 솟아 있다. 산책길을 따라 소설 속 장터와 등장인물들이 막걸리를 마시던 충주집과 물레방아 등 소설 속 내용이 길목마다 새겨져 있어 하나씩 읽다 보면 어느새 전편을 다 읽게 된다. 가을이 깊어지는 계절에 이효석 문학의 숲에서 단편문학 한 편 읽으며 산책하는 시간, 좋지 아니한가.
- 2020-11-04 10:44
-
- 북유럽 감성을 우리 집으로
- [리빙+] 깊은 풍미와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는 북유럽 라이프스타일 인테리어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 요즘. 사회적 거리두기와 집콕 라이프 등 올겨울에는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예년보다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집 안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은 시니어들도 정리 정돈과 청소, 인테리어 등 다방면으로 ‘집 꾸미기’ 대한 관심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덴마크는 겨울이 유난히 길고 일조 시간도 짧아 가족들이 오랜 시간 편안하고 아늑하게 보낼 수 있는 심미적이고 기능적인 실내 공간 인테리어를 중시한다. 주로 소재, 실용성, 편안함을 추구하는데 금속 또는 가죽보다는 원목, 패브릭으로 만들어진 가구를 선호하고 다양한 소품들을 활용해 인테리어의 변화를 꾀한다. 반짝반짝 고급스러운 퍼니싱은 일상에 재미와 활력을 불어넣는다. 이에 다가올 겨울, 덴마크 홈퍼니싱 브랜드 일바(ILVA)가 가족들과 따뜻한 시간을 보내도록 트렌디한 북유럽 라이프스타일 인테리어 팁을 제안한다. 수납공간 확보 필요 인테리어의 기본은 바로 정리. 인테리어를 위해 새로운 소품이나 가구를 구매하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공간을 말끔하게 정리 정돈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수납, 정리, 미니멀 라이프’의 키워드가 주목받으면서 최근 수납장과 사이드보드 같은 정리 정돈 제품에 대한 관심도 늘어나고 있어 일바에서도 이에 맞춰 새로운 제품을 출시했다. 두 제품 모두 오크 재질 또는 옻칠한 참나무 재질을 활용해 친환경적인 디자인을 보유하고 있으며, 단단하고 실용적으로 구성되어 제품의 활용도와 심미성 두 가지 장점이 있는 제품이다. 정리가 잘된 공간에서 원하는 인테리어를 완성하는 것이 수월하므로 거실이나 방 한쪽에 수납장을 두어 깔끔한 실내 공간을 만들어보자. 따뜻하고 친환경적인 인테리어 구성의 필수, 패브릭 소파 거실의 중심 가구인 ‘소파’를 바꿔보는 방법도 있다. 북유럽 문화에서 ‘패브릭’은 친환경 소재로 주목받고 있으며 어느 인테리어와도 잘 어울리고 내추럴, 클래식한 디자인으로 유행을 타지 않는 장점이 있다. 패브릭 소파는 다양한 무늬의 쿠션과 패턴이 화려한 패브릭들을 추가로 배치해 실내 분위기를 전환할 수 있다. 일바의 소파는 유럽 현지에서 제작된 맞춤형 패브릭 제품이 대다수다. 대표적으로 ‘뉴욕’과 ‘리암’ 소파가 있다. 가성비와 실용성 모두를 잡은 제품으로 일바의 스테디셀러다. 나만의 휴식공간을 위한 인테리어 제안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이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고 있다. 이에 따라 편안한 휴식시간을 갖고자 하는 소비자들이 리클라이너 같은, 휴식을 목적으로 하는 가구를 찾는 경향도 높아지고 있다. 일바의 스틸로(Stilo)는 인체공학적 설계로 다양한 체형과 신체 구조의 고객들도 스툴을 활용해 앉거나 눕기가 편해 더욱 편안한 휴식시간을 갖도록 해준다. 일바의 김승호 실장은 “사람과 집에 충실한 가구, 디자인뿐 아니라 친환경이라는 원칙에 충실한 가구, 편하게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가구가 일바라고 생각한다. FW 시즌과 집콕 라이프라는 최근 트렌드 수요에 만족할 수 있는 제품을 계속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
- 2020-11-04 08:41
-
- 브라보 독자를 위한 10월의 문화 소식
- ● Exhibition ◇남겨진, 미술, 쓰여질, 포스터 일정 10월 24일까지 장소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광고나 홍보를 위해 사용된 미술 포스터를 한데 모아 선보인다. 전시기간이 지나고 나면 본연의 목적은 사라지지만, 포스터가 지닌 예술·기록적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해 기획했다. 전시작은 박물관이 자체적으로 입수해 소장하거나 기증받은 것으로, 총 1000여 점의 포스터 중 미술사적 의의가 큰 작품 60여 장을 선별했다. 1960년부터 2010년까지 시대별로 다양하게 만들어진 포스터의 발전 과정과 이에 담긴 사회적 의미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호랑이는 살아있다 일정 12월 19일까지 장소 스페이스 씨 한국을 대표하는 동물이자 한민족 정서 깊은 곳에 자리하는 존재, 호랑이의 상징성을 유물과 회화, 설치 작품 등으로 살펴본다. 액운을 물리친다고 알려진 호랑이 발톱 노리개부터 조선시대 무관의 의복을 장식한 호랑이 문양 흉배 등 특유의 용맹성과 강인함을 엿볼 수 있는 작품 위주로 전시한다. 더불어 도상의 전통적 해석에 머무르지 않고, ‘잃어버린 호랑이를 찾아서’ 등 현대적 관점이 담긴 동시대 작가의 작품도 함께 소개한다. 모두가 어려운 시기, 호랑이 기운을 얻어 힘을 내길 바란다는 관장의 소망이 담겼다. ◇장 미쉘 바스키아 · 거리, 영웅, 예술 일정 10월 8일~2021년 2월 7일 장소 롯데뮤지엄 ‘그라피티의 제왕’이라 불린 흑인 낙서 화가 장 미쉘 바스키아 기획전으로 바스키아가 남긴 예술세계 전반을 조망한다. 대표작 150여 점과 팝아트계의 거장 앤디 워홀과 협업한 작품도 선보인다. 바스키아는 1980년대 초 미국 뉴욕 화단에 작품을 공개하며 이름을 알렸고, 2년 뒤 첫 개인전을 열며 인기 작가 반열에 올랐다. 28세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작품은 현재까지도 미술뿐 아니라 음악, 패션 등 여러 영역에서 해석되고 있다. ◇1978, 우리 가족의 라디오 일정 11월 15일까지 장소 서울생활사박물관 1978년 서울에 사는 가상 캐릭터 영희의 집을 재현해 당시 유행하던 라디오 문화를 되짚어본다. 택시 운전사인 영희 아버지의 카 라디오부터 오빠의 휴대용 라디오, 영희의 카세트 라디오까지 다양한 추억의 라디오와 그 속에서 흘러나오는 프로그램을 조명한다. 영희의 방에서는 1970년대 라디오 프로그램 ‘밤을 잊은 그대에게’를 진행했던 황인용 전 아나운서의 목소리도 들어볼 수 있다. 최초의 국산 라디오인 금성 A-501과 1960년대 라디오 편성표 등 라디오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됐다. ● Movie ◇돌멩이 개봉 9월 30일 장르 드라마 감독 김정식 출연 김대명, 송윤아, 김의성 등 지적 장애를 앓고 있는 30대 청년 ‘석구’가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인해 범죄자로 몰리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작품이다. 드라마 ‘미생’의 김 대리,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양석형 등 다양한 작품에서 입체감 있는 캐릭터로 존재감을 드러낸 배우 김대명의 섬세한 연기력이 돋보인다. 실제로 김대명은 8세 지능을 가진 어른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연기를 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빌런’으로 종종 등장했던 배우 김의성은 석구의 보호자인 노신부 역을 맡아 인자한 매력을 선보인다. 2017년 한 배우 오디션에서 4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만장일치로 합격한 신예 배우 전채은의 활약 또한 주목된다. ◇테슬라 개봉 10월 21일 장르 드라마 감독 마이클 알메레이다 출연 에단 호크, 이브 휴슨 등 교류 전류 전송 장치를 비롯해 라디오, 무선 원격 조종 기술, 리모컨 등 유용한 발명품을 만들어 오늘날 천재 과학자로 평가받는 니콜라 테슬라의 삶을 조명한다. 테슬라의 라이벌이자 상사였던 토머스 에디슨과 결별한 뒤 자본가 J.P. 모건을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 ‘커런트 워’가 테슬라와 에디슨의 대결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영화는 오로지 테슬라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감독은 선댄스영화제에서 네 차례나 상을 거머쥔 마이클 알메레이다가 맡아 과학 영화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감각적 비주얼을 연출했다. ◇언힌지드 개봉 10월 예정 장르 스릴러, 범죄 감독 데릭 보트 출연 러셀 크로우, 카렌 피스토리우스, 가브리엘 베이트먼, 지미 심슨 등 도로 위에서 크게 울린 경적 때문에 분노가 폭발한 한 남자가 복수를 하기 위해 운전자를 뒤쫓는 내용으로, 현실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는 보복운전을 소재로 한 영화다. 영화 ‘레미제라블’, ‘노아’ 등에서 활약한 배우 러셀 크로우가 필모그래피 사상 최악의 악역으로 변신해 눈길을 끈다. 러셀 크로우의 살기 가득한 눈빛 연기와 도로 위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액션이 극한의 공포를 선사한다. 북미 개봉 당시 셧다운 이후 극장가에 처음 선보인 영화로, 북미 및 해외 7개국에서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코로나19를 날려버릴 최고의 스릴”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 Book ◇오지게 재밌게 나이듦 (김재환 저·북하우스) 김재환 영화감독이 다큐멘터리 영화 ‘칠곡 가시나들’을 촬영하며 3년간 느낀 점을 섬세한 시선으로 풀어낸 책이다. 문해학교에 다니며 한글 공부를 하고 아들에게 처음으로 편지를 써보는 등 배움과 설렘으로 가득한 칠곡 할머니들의 노년을 유쾌하고 따뜻하게 그려냈다. 칠곡 할머니들이 직접 쓴 순수하고 담백한 시도 함께 실었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0 (최윤 외 공저·생각정거장) 올해 한국문학을 빛낸 단편소설을 엄선한 작품집이다. 총 여섯 작품이 수록됐으며 대상작은 최윤의 ‘소유의 문법’. 소유할 수 없는 것을 소유의 대상으로 삼는 인간의 탐욕에 대한 내용을 다뤘다. 수상작 외 최윤의 자선작 ‘손수건’과 지난해 대상 수상작가 장은진의 자선작 ‘가벼운 점심’도 함께 수록됐다. ◇척추·관절 되살리는 자생력 스트레칭 (이진호 저·비타북스) 자생한방병원이 집필한 척추·관절 종합 건강서다. 척추·관절에 통증이 생기는 원인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결리고 뻐근한 목, 묵직한 허리 등 통증을 관리할 수 있는 부위별 스트레칭 55가지와 질환별 스트레칭 45가지를 담았다. 스트레칭 전후 지압하면 효과를 높여주는 혈자리도 소개한다. ◇우리 술 한주 기행 (백웅재 저·창비) 코로나19로 ‘혼술’, ‘홈술’을 즐기는 이들이라면 주목해볼 만한 도서. 한주 전문가 백웅재가 양조장의 메카 홍천, 충주, 문경 등 전국 각지의 특색 있는 양조장 20여 곳을 소개한다. 한주 관련 산업에 종사한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전통주에 얽힌 이야기를 구수하고 맛깔스럽게 풀어낸다. ◇길 (박노해 저 ·느린걸음) ‘하루’,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에 이은 박노해 시인의 세 번째 사진 에세이. 20여 년간 지도에도 없는 길을 걸으며 직접 담은 37점의 흑백 사진을 실었다. 인류 최초의 문명길 차마고도, 눈 덮인 만년설산과 끝없는 사막길 등 길 위의 다양한 풍경을 소개하며 ‘나만의 길’을 찾아나갈 것을 제안한다. ● Stage ◇오만과 편견 일정 9월 19일~11월 29일 장소 예스24스테이지 3관 연출 박소영 출연 김지현, 정운선, 홍우진 등 영국이 사랑하는 작가 제인 오스틴의 동명 연애소설을 2인극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18세기 영국, 명망 있는 가문의 신사 ‘빙리’와 ‘다아시’가 조용한 시골 마을로 와 베넷 부부의 다섯 딸을 만나며 벌어지는 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고전 명작으로 꼽히는 작품인 만큼 다양한 방식의 각색본이 존재하지만, 그중에서도 연극 ‘오만과 편견’은 단 두 명의 배우가 21개 캐릭터를 연기하는 독특한 연출이 돋보인다. 배우들의 퇴장과 무대의 이동 없이 의상과 소품만으로 캐릭터를 전환하는 것도 작품의 관람 포인트다. 제인 오스틴의 섬세한 감성에 극적인 매력이 더해져 고전 특유의 클래식한 아름다움과 로맨틱한 서사를 한층 더 입체적이고 매력적으로 풀어낸다. ◇머더발라드 일정 8월 11일~10월 25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연출 김은영 출연 김재범, 김소향, 이건명 등 욕망을 향해 가는 세 남녀의 비틀린 사랑을 대담하게 표현한 작품으로, 뮤지컬판 ‘부부의 세계’다. 결혼 후, 무료한 일상에 지친 ‘세라’와 그녀의 곁을 지키는 남편 ‘마이클’, 한때 불같이 사랑했던 옛 연인 ‘탐’과의 엇갈린 관계를 그려낸다. 귀를 사로잡는 강렬한 록 음악과 배우들의 폭발적인 가창력이 시너지를 이뤄 대사 없이 노래로만 극을 이어가는 송스루 뮤지컬의 진면모를 엿볼 수 있다. ◇아들 일정 9월 15일~11월 22일 장소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 연출 민새롬 출연 이석준, 이주승, 정수영 등 프랑스 유명 극작가 플로리앙 젤레르의 ‘가족 시리즈’ 중 마지막 작품이자 최신작으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관객을 찾아간다. 이혼한 부모와 그 사이에 놓인 아들의 갈등을 통해 가족의 해체와 그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마음의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다. 가족 간 발생하는 불편한 상황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준다.
- 2020-10-12 10:46
-
- LP 한 장 들고 떠나는 감성여행
-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음악에서만큼은 ‘백견이 불여일문’이다. LP 음반 속 옛 노래를 두 귀로 직접 들어볼 수 있는 음악 감상실을 소개한다. 명동 ‘세시봉’, 충무로 ‘카네기’, 종로2가 화신백화점 3층의 ‘메트로’. 이름만 들어도 그때 그 시절이 떠오르는 이곳은 과거 청년문화의 상징이었던 음악감상실이다. 음악을 향유할 방법이 많지 않았던 당시 청년들에게 음악감상실은 흥과 한을 표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었다. 어느덧 클릭 한 번만 하면 원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대가 왔지만, 0과 1로 가득한 오늘날에도 옛 감성을 재현한 공간들이 있다. LP 음반이 돌아가고 최신 가요 대신 올드 재즈가 흘러나오는 곳.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음악감상실은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아날로그를 고집한 이들 덕분에 어딘가에, 여전히 존재해 있다. 백숙집 건물에 숨은 반전 매력 ‘리홀뮤직갤러리’ 서울 성북동 누룽지 백숙집 건물. 벽에 붙은 LP 음반 표지를 따라가다 보면 희미하게 들려오는 재즈 선율이 이어서 길 안내를 한다. 소리의 근원지로 가 보니 양 벽을 빼곡하게 채운 LP 음반과 한가운데 놓인 1930~40년대 빈티지 스피커들이 그 위엄을 자랑한다. 위압감에 당황하기도 잠시, 고막을 가득 채우는 진공관 사운드에 홀려 착석한다. 리홀뮤직갤러리는 인쇄업체 경림코퍼레이션 리우식 대표가 2014년부터 운영해온 음악감상실로, 뮤지션을 꿈꿨던 어린 시절의 소망이 깃든 공간이다. 7만여 장이 넘는 LP 음반에, 진공관 스피커 등 음향 시스템 규모도 10억 원이 넘는다. 다루는 장르는 팝·재즈·클래식 세 가지다. 말만 들어도 어마어마한 이곳의 입장료는 음료 포함 1만 원. 방문한 이들이 ‘만 원의 행복’으로 음악을 즐기다 갔으면 좋겠다는 리 대표의 바람이 담긴 값이다. 이곳의 매력은 신청곡을 받으면 그 음악을 잘 표현해주는 스피커로 들려준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머라이어 캐리처럼 성량이 풍부한 가수의 노래는 ‘웨스턴 일렉트릭 15A혼’으로, 비트가 생명인 밴드 음악은 ‘알텍’으로 내보낸다. 재질이나 모양에 따라 표현할 수 있는 소리가 다르기 때문에 한 곡을 듣더라도 그에 걸맞은 스피커로 감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는 알텍으로 들어야 해요. 마치 귀청소를 하는 기분이 들 거예요.” 음악 애호가들이 알음알음 모이는 곳인 만큼, 매달 첫째·셋째 주 화요일에는 올드팝 칼럼니스트 박길호 씨의 팝 강의가 진행된다. 주로 팝 가수의 일생과 철학을 돌아본다. 참여를 원할 경우 전화로 예약하면 된다. 수강료는 1회 2만 원이다.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로31길 9 영업시간 매일 12:00~21:30 월요일 휴무 빛바랜 기억 되살리는 ‘수리수리협동조합’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2층의 한 사무실. 투명한 외벽에 A4 용지 한 장당 한 글자씩 큼지막하게 ‘수리수리협동조합’이라 적어 붙여놓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아래의 ‘추억을 고쳐드립니다’라는 팻말 속 글귀. 안으로 들어가자 수리수리협동조합 이승근 이사장이 직사각형 모양의 기계를 바쁘게 손보고 있었다. 1960년대에 만들어진 진공관 오디오라 했다. 2017년에 설립된 수리수리협동조합은 ‘수리수리 수리실’과 ‘수리수리 청음실’로 구성돼 있다. 수리실은 ‘수리수리 얍’이 연상되는 이름에 걸맞게 고장 난 옛 음향기기를 마법처럼 고친다. 온라인 홈페이지나 전화로 상담을 한 뒤 기기를 가져오면 이 이사장이 직접 수리한다. 연식이 오래된 기기일수록 잔병치레를 자주 하는지 매달 100여 건의 문의가 이어진다. “빈티지 오디오를 가진 사람들은 나랑 연배가 비슷해요. 60~70대가 많이 찾죠.” 청음실은 수리실 바로 위층에 있다. 젊은 시절 음악감상실을 자주 다녔던 이 이사장이 자신의 옛 추억을 떠올리며 직접 제안한 공간이다. 그래서인지 인테리어에서부터 아날로그 감성이 진하게 풍긴다. 조용필과 강수지 앨범이 진열돼 있는 이곳에서는 국내 가요를 비롯해 추억의 음악을 무료로 들려준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소장한 LP 음반을 가져와 턴테이블에 직접 올려보는 1일 DJ 체험(?)이 청음실만의 쏠쏠한 재미. 집에 턴테이블이 없어 LP 음반을 관상용으로 묵혀두고 있다면, 먼지만 가볍게 털어내고 세운상가로 데려가보자.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계천로 159 세운상가 영업시간 평일 10:00~18:00 주말 및 공휴일 휴무 DJ가 들려주는 클래식 퍼레이드 ‘황인용뮤직스페이스 카메라타’ 지도 앱에 현 위치를 알려주는 파란색 동그라미 표시가 목적지와 가까워진다. 곧 대형 창고나 컨테이너를 연상케 하는 회색빛 콘크리트 건물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단단한 철문을 열자 바그너의 ‘교향곡 C장조’ 1악장이 내부를 가득 울린다. 벽 쪽 통유리 천장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은 바그너의 선율에 맞춰 춤을 춘다. ‘황인용뮤직스페이스 카메라타’는 16년간 자리를 지킨 파주 헤이리마을의 터줏대감이다. 이곳의 주인은 ‘밤을 잊은 그대에게’ 등 1970~80년대에 라디오 DJ로 활약했던 황인용 전 아나운서다. 오랜 세월 청취자와 소통하며 음악의 매력에 푹 빠져 살았던 그는 2004년 자신만의 음악감상실을 차렸다. 카메라타를 라디오에 비유하면 클래식 채널이라 할 수 있다. 오직 클래식만 취급하기 때문이다. 황 전 아나운서가 직접 모은 2만여 장의 LP 음반도 대부분 클래식 앨범이다. 피아노의 부드러운 소리와 첼로의 웅장한 저음은 ‘웨스턴 일렉트릭’, ‘클랑필름’ 등 1920년대 미국과 유럽 극장에서 사용하던 스피커들과 만나 한층 더 풍성해진다. 공간은 3층 규모로 높고 널찍하며 2인석부터 6인석까지 완비돼 있어 가족 단위의 손님이 많이 찾는다. 두 명이 방문한 경우에는 대부분 스피커를 바라보고 나란히 앉아 조용히 감상을 한다.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는 일반 카페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다. 매주 토요일 저녁에는 연주회가 열린다. 연주가 끝나면 전문가의 곡 해석이 이어져 클래식 음악을 잘 모르는 이들도 부담 없이 공연을 즐길 수 있다. 카메라타는 이탈리아어로 ‘동호인 모임’을 뜻한다. 이름의 의미처럼 클래식 입문자 혹은 마니아들이 아지트로 삼기에 좋은 곳이다. 입장료는 1만 원. 차 한 잔과 머핀이 제공된다. 주소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83 영업시간 평일 11:00~21:00 주말 및 공휴일 11:00~22:00 요즘 애들처럼 놀아볼까? ‘만평 바이닐 뮤직’ ‘뉴트로’(New+Retro)가 유행하면서 젊은 세대들에서도 복고 콘셉트의 음악감상실이 인기다. 그중 ‘만평 바이닐 뮤직’은 2030세대의 집합소다. 이곳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찾기 힘들다. 간판이 작거나 없는 ‘요즘 감성’에 특화된 곳이기 때문.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목적지 근처에 가면 조용한 골목 에 음악소리가 새어나오는 건물이 보인다. 만평은 시티 팝을 틀어주는 몇 안 되는 바이닐 바다. 이곳을 다녀온 이는 “1980년대 버블경제 한가운데서 술 마시는 느낌이 난다”고 평한다. 이외에도 펑크, 디스코 등 비트 있는 음악을 주로 선보인다.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DJ의 공연이 열린다. 손님이 DJ에게 맥주를 건네고 선 채로 음악을 즐기는 등 동적인 분위기가 낯설 수 있지만, 리듬에 몸을 맡기다 보면 절로 흥이 오를 것이다. 입장료는 3000원이다. 주소 서울특별시 마포구 토정로 27 2층 영업시간 매일 19:00~02:00
- 2020-09-23 09:33
-
- 슬기로운 시간 여행, 강화도를 달리다!
- 코로나19의 여파로 세상이 바뀌고 있다. 당연히 여행 풍속도도 달라졌다. 여럿이 다니는 여행은 점차 사라지고 혼자 혹은 둘이 떠나기 좋은 한적한 드라이브 코스가 인기를 얻고 있다. 인적이 드문 곳, 적당한 거리두기를 할 수 있는 곳을 선호하는 추세다. 그렇게 훌쩍 떠나 갑갑했던 마음을 풀어놓고 당일치기로 놀기 딱 좋은 곳이 있다. 바로 강화도다! 강화도령이 살았던 터전, 용흥궁 조선 25대 왕 철종(哲宗)이 강화도령이었던 시절에 지냈던 곳이다. 임금으로 추대된 사람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을 잠저(潛邸)라고 하는데, 당시 강화도령은 가족이 모반사건에 연루되는 바람에 14세 때 이곳 강화로 유배되었다. 원래는 보잘것없는 초가였으나 훗날 강화도령이 왕위에 오르자 강화 유수 정기세(鄭基世)가 집을 보수 단장해 용흥궁이라 불렀다. 사람이 살지 않아 좀 휑한 모습이지만 관리는 잘되어 있었다. 150년 된 고택의 안채와 사랑채, 별채, 마루, 작은 정원, 우물, 반질반질한 문고리를 보며 강화도령 이원범으로 살던 철종의 모습이 느껴져 짠했다. 14세부터 19세까지 동네 아이들과 어울리기도 하고 산으로 땔감을 구하러 가기도 하며 평민으로 살았던 터전이다. 강화도령 이원범, 철종의 이야기가 깃든 용흥궁 담장에는 능소화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용흥궁은 강화 나들길 1코스다. 강화읍 관청리 441-0 한옥의 멋,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용흥궁 담 넘어 건너편 언덕에 전통 한옥으로 지어진 성당의 외양이 독특하다. 얼핏 보면 성당 같지 않고 마치 절처럼 보인다. 바실리카 양식과 동양 불교 사찰 양식을 융합한 건축물로 알려져 있다. 마당 한쪽에는 불교를 상징하는 나무 보리수가 100년 넘도록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찰의 범종처럼 생긴 종도 보인다. 분명 성당인데 절의 분위기가 더 느껴지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건물이다. 서로 다른 전통문화를 존중하고 함께하는 남다름을 본다. 성당 입구의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며 마음을 가다듬어본다. 상사화가 바람에 흔들리는 마당엔 초대 주교 고요한 신부의 비석과 성당 축성 100주년 기념비가 있다. 강화 시내가 한꺼번에 눈에 들어오는 높은 언덕이다. 댓돌 위에 신발을 벗고 들어서면 목재로 이루어진 깔끔한 실내가 성스러움을 더한다. 동서양의 오묘한 분위기가 잘 조합된 실내다. 열린 창으로 자연의 풍경이 한가득 들어온다. 양 벽면에는 강화성당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진들이 진열돼 있다. 밖으로 나가면 뒤편으로 낮은 담장의 사제관이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약탈당한 계단 난간 등 건축물의 일부가 복원된 모습도 볼 수 있다. 주변의 풍경과 자연스럽게 잘 어울리는 성당이다. 강화읍 관청길 27번길 10 소창길’을 아시나요 용흥궁과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을 나와 내려오다 보면 길가에 서 있는 커다란 굴뚝이 보인다. 1960~70년대에 강화도 산업의 전성기를 주도했던 심도직물의 흔적이다. 직물 공장은 강화도 경제의 대표적 징표다. 강화도서관 옆으로 이화직물 터가 있고, 아기들 기저귓감으로 많이 쓰였던 친환경 직물 ‘소창’을 만들어내던 유명 직물 업체들이 터를 잡고 있다. 그래서 이 골목에 ‘소창길’ 코스가 새롭게 더해졌다. 강화 중앙시장 B동 3층에 위치한 ‘관광플랫폼’이 스토리워크 길 출발지다. 1960년대의 직물공장 전경과 소창 만드는 과정을 구경하고 체험할 수 있는데 현재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한산하다. 가는 길에는 100년의 세월을 품은 낡은 건물에 자리 잡은 ‘낙원 떡집’이 있다. 순수한 떡 맛을 자랑한다. 질 좋은 강화 쌀에 첨가물은 소금 한 가지밖에 안 넣는다고 자부심이 대단하다. 소박한 식사를 하고 싶으면 읍내 중심에 있는 50년 전통의 ‘강화국수’ 집으로 가면 된다. 강화도에 가면 알싸한 순무김치 맛도 봐야 한다. ※소창길 코스 중앙시장 관광플랫폼에서 출발해 심도직물 굴뚝 - 천주교 인천교구 강화성당 - 이화직물 터 - 금융상사 - 조양방직 - 동광직물 - 남화직물 - 상호직물 - 경도직물 - 소창체험관으로 이어진다. 2시간 정도 소요. 빈티지 감성 카페, 조양방직 과거의 방직 공장을 그대로 살려서 빈티지한 매력을 보여주는 레트로 감성 카페다. 조양방직은 1933년 홍 씨 형제가 민족자본으로 설립한 방직공장으로 한때 엄청난 전성기를 누렸다고 한다. 그 시절의 흔적들이 빈티지한 멋으로 탈바꿈해 핫한 카페가 됐다. 그 옛날 우리의 언니와 누나들이 가족들을 먹여 살리느라 기계를 돌리던 시절을 상상하도록 자극한다. 강화읍 향나무길 5번길 12 평화로운 궁궐터, 고려궁지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에 저항해온 우리 민족의 역사가 있는 곳. 고려 왕조가 몽골에 대항하기 위해 고종 19년(1232)부터 원종 11년(1270)까지 38년간 머물렀던 궁궐의 터다(사적 제133호). 당시의 궁궐은 1270년 송도로 환도할 때 몽골의 압력으로 모두 허물어졌고 행궁과 장녕전, 만녕전, 외규장각 등은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의해 불타 없어졌다. 지금은 강화 유수가 업무를 보던 동헌과 유수부의 경력이 업무를 봤던 이방청만 남아 있다. 푸른 잔디가 시원하게 깔린 자연 풍경이 평화롭기만 하다. 강화읍 강화대로 394 조용한 마음의 울림, 교동마을과 향교 느릿느릿 옛 시간을 즐기고 싶다면 시간이 멈춘 듯한 교동마을로 가볼 일이다. 예스럽고 정감 있는 마을을 둘러보다 보면 지치고 복잡했던 마음이 어느새 가라앉는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완화되면 강화읍에 위치한 강화 향교(고려 전기에 창건)와 우리나라 최초 향교인 교동 향교 방문도 빠뜨릴 수 없다. 강화나들길 1-18코스다. 강화군 교동남로 229-49 해안도로 따라 의미 있는 드라이브 코스, 덕진진 강화도에는 월곶진, 제물진, 용진진, 덕진진, 초지진의 5진(鎭)과 광성보, 선두보, 장곶보, 정포보, 인화보, 철곶보, 승천보의 7보(堡)를 합친 강화 12진보(鎭堡)가 있다. 그중 덕진진은 김포 덕포진과 더불어 해협의 관문을 지키는 강화도 제1포대였다. 적당한 거리 두기를 하며 해안도로를 따라 볼 수 있는 ‘강화나들길 2코스 호국돈대길’ 전적 시설 풍경은 산책과 드라이브 코스로 의미 있다.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846 섬에서 즐기는 슬기로운 문화생활 ‘도솔미술관’, ‘해든뮤지엄’, ‘전원미술관’ 최근 서울과 같은 대도시를 떠나 작품 전시를 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고즈넉한 강화 땅에서 감상하는 개성 있고 멋진 미술관. 언택트 여행으로 유유자적 멋진 시간을 누려보자. 도솔미술관은 초지진과 가깝고 고즈넉해서 좋은 사람과 조용히 산책할 겸 가보면 좋은 장소다. 강화 들판을 달려 소나무가 예스러움을 더해주는 작은 마을에 다다르면 단정한 한옥 갤러리가 눈에 들어온다. 총 4개의 전시관이 있는 도솔미술관은 야외전시관, 2개 층의 실내 전시장, 별관으로 나뉘어 있다. 뜰안채 야외전시장에서는 사진작가의 아프리카 바오밥나무 작품이 전시돼 있다. 실내로 들어가면 별관을 비롯해 2개 층으로 이루어진 전시장에서 매달 바뀌는 전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전시장 창가에 걸터앉아 강화 들녘을 유유자적 내다보며 함께 온 사람과 조용조용 대화를 나누는 다정한 풍경이 아름답다. 강화군 길상면 길상로 210번길 52-71 해든뮤지엄은 갤러리로 걸어 들어가는 입구의 긴 경사면에서부터 설레게 된다. 자연과 잘 어우러지는 건축물로 2013년 한국건축가협회에서 선정하는 ‘올해의 건축 베스트7’에 뽑히기도 했다. 실내 사진 촬영이 안 돼 아쉽지만 야외의 조각작품과 설치미술, 그리고 대형 미러가 볼 만하다. 정원의 휴식공간과 잘 어울리는 자연이 아름다운 곳. 강화군 길상면 장흥로 101번길 44 전원미술관은 강화도에서 출생한 한국화가 유광상 씨가 운영하는 갤러리다. 작가의 예술세계를 보여주는 작품과 일본 유학 시절에 그린 그림 등을 다양하게 감상할 수 있다. 강화군 송해면 솔정리 561 이색적이고 따뜻한 ‘동네 책방’ 강화군청 부근엔 볼거리가 많다. 강화성당과 용흥궁, 중앙시장, 궁터, 중앙시장 청년몰, 소창길…. 이곳들을 다 돌아본 뒤 한숨 돌리며 조용히 서점을 들러보는 건 어떨까. 소금빛 서점, 국자와 주걱, 책방 시점 등은 강화도 간 김에 누리는‘소확행’이다. ‘소금빛 서점’ 이 있는 고택 계단을 올라서면 대문 바로 앞 양옆으로 ‘그 여자 그릇 유림상회’와 ‘그 남자 책방 소금빛 서점’이 있다. 그 남자의 안목으로 고른 책들이 진열된 소금빛 서점은, 얼마 전 방영 종료된 SBS 드라마 ‘더킹: 영원의 군주’에서 배우 이민호가 책 읽는 장면을 찍은 장소로 더 알려졌다. 그 여자의 그릇 유림상회는 채색이 독특한 그릇 한 점쯤 갖고 싶게 하는 곳이다. 그 남자, 그 여자의 책과 그릇이 있는 감성 공간이다(서점과 그릇가게 앞의 대문을 열면 100년 고택 대명헌을 만난다. 김구 선생이 한동안 머물렀다는 운치 있는 한옥 숙박업소로 예약제로 운영된다). 강화읍 남문안길 7 ‘국자와 주걱’은 한적한 마을의 한옥을 책방으로 꾸민 시골 책방 겸 북 스테이다. “작은 책방. 작고 불편함. 그러나 좋은 책. 따뜻한 밥상. 깨끗한 잠자리. 그리고 많은 정”이라는 책방 소개글이 다정하다. 책만 보러 갔다가 주인장의 푸근한 인심에 다시 찾는 곳이다. 큰 도로에서 마을길로 접어들어 꼬불거리는 좁은 길로 주춤주춤 운전해 들어가면 이 특별한 책방과 만난다. 강화군 양도면 강화남로 428번길 46-27 아름다운 일몰에 반하다, 장화리 강화도의 마지막 코스는 누가 뭐래도 일몰 풍광이 장관인 장화리다. 강화도 남부 해안도로를 따라 펼쳐지는 강화 갯벌과 서해의 해넘이는 여행자들의 관심사다. 이곳에서의 일몰 시간은 아주 짧다. 찰나의 장화리 노을 앞에서 두근두근하면서도 경건한 시간을 맛보며 강화 여행을 마무리할 수 있다. 강화군 화도면 장화리
- 2020-08-27 0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