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의 신 히포크라테스는 “음식으로 못 고치는 병은 약으로도 고칠 수 없다”고 말했다. 음식은 몸이요, 마음이다(食卽身心). 음식을 잘 먹으면 몸이 가벼워지고 마음도 편안하며 각종 질병에서 해방된다. 좋은 음식은 에너지원 제공뿐만 아니라 영양소도 골고루, 충분히 함유해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면역력을 키워준다.
평소에 식습관을 제대로 들인 사람은 몸이 곧고 눈에선 광채가 나며 활력이 넘친다. 마음도 넉넉해 다른 이들에게도 친절한 눈길을 주는 편안한 사람이 된다. 좋은 음식은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마음을 여유롭게 만들어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과 평화를 준다. 또한 에너지원과 영양소들이 골고루 들어 있어 매일 섭취하면 신진대사가 활발해 활력이 충만하고 면역력이 높아져 대부분의 질병으로부터 몸을 지킬 수 있다.
이러한 자연음식 중에서도 으뜸이 바로 자연의 미생물들을 이용해 만든 발효 음식이다. 특히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이 없고 식이섬유가 풍부한 식물성 재료를 오랫동안 자연 발효시켜 만든 장류나 김치를 비롯한 한국의 발효 음식은 건강의 대명사로 음식 한류를 주도하고 있다.
이제는 이윤 추구를 위해 단기간에 값싼 재료로 만들어 영양소가 결여된 가공식품과 패스트푸드(fast food)를 멀리하고 슬로푸드(slow food)인 우리 고유의 전통발효 식품들을 가까이해야 한다.
각종 질환, 음식이 문제다
그런데 요즘 건강한 발효 한식의 계승자인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반대다. 활력이 없고 피곤에 지친 눈들이 많다. 사람에 대한 불신도 팽배해 안타깝다. 심지어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도 서로 외면하며 사는 게 보통이다. 외국인들 눈에 비친 한국 사회는 너무 경쟁적이다. 돈만 좇고 사는 머니좀비(money zombi) 사회라 표현되기도 한다. 누구든 이런 환경에서는 스트레스가 쌓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스트레스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바로 음식이다. 우리가 자주 먹는 가공식품은 미네랄 같은 필수 영양소가 부족한 텅 빈 음식이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밀물처럼 들어오기 시작한 패스트푸드점과 패밀리레스토랑 때문에 아이들은 김치나 된장국을 외면하고 동그랑땡 같은 가공식품이 밥상 위에 올라와야 숟가락을 들었다.
아이들이 패스트푸드를 먹기 시작하면서 인체 면역 시스템이 고장 나 아토피 피부염이 만연했다. 아토피 피부염은 100명 중 한두 명이 걸리고 돌이 되면 저절로 낳아 태열이라 불렸는데 요즘은 30~50%의 아이들이 아토피 피부염으로 고생하고 그중 3분의 1은 평생 짊어지고 다닌다. 더구나 사철 미세먼지에 포위되면서 어른들까지 비염, 천식에 노출되고 암으로 사망하는 사람들도 크게 증가했다.
최근엔 원룸에서 살면서 대학을 다니거나 사회 진출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이 불규칙적인 식생활을 해서 문제가 되고 있다. 또 즉석조리 음식과 항생제 남용으로 장기가 염증질환에 노출돼 죽어가는 크론병도 이제는 희귀병이 아니라 흔한 병이 되었다. 이러한 질병은 면역력을 키워주는 파이토케미컬, 즉 식물성 미량 영양소들이 결여된 음식들 때문에 발생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한국 사회는 잘못된 음식 섭취로 질병 공화국이 되어버린 것이다.
건강에 좋은 우리 음식
그렇다면 어떤 음식이 좋은 걸까? 당연히 세포를 건강하게 만드는 음식이다. 세포는 신진대사가 원활하고 면역력이 높아져야 활발해진다. 신진대사가 원활하려면 미네랄, 비타민, 효소, 식이섬유, 항산화제 등이 풍부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 이런 영양소가 많이 들어 있는 음식이 바로 김치, 된장, 청국장 등 우리의 발효 음식이다. 영양이 풍부한 배추나 콩을 원료로 사용해 가공 과정에서도 미네랄, 식이섬유 등 영양가의 손실이 거의 없다.
또한 필수아미노산이나 각종 생리활성 펩타이드, 비타민 등이 미생물 작용으로 생성돼 영양가도 높다. 다양한 맛과 향기도 생성되어 풍미가 깊어지고 먹으면 속이 편해진다. 물론 김치나 청국장처럼 처음엔 냄새가 고약한 음식도 있지만 익숙해지면 오히려 더 찾게 된다.
발효식품은 자연의 미생물들이 난소화성 물질들을 분해시켜 소화를 도울 뿐만 아니라 항산화제나 항암제 등 생리활성 물질들을 생성한다. 유익한 미생물들은 장을 건강하게 만들어 각종 질병을 예방하게 해준다.
인체 내 미생물들은 제2의 장기라 불릴 만큼 건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세계 여러 나라의 발효 식품들 중에서도 김치는 물론 콩을 발효시켜 만든 장류 위주의 우리나라 음식은 미네랄과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콜레스테롤이나 중성지방이 없어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 할 만하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중국으로부터 ‘발효식품의 나라’로 불리었다. 발효 음식은 현대인들을 살찌게 만드는 초고열량·저영양 가공식품의 폐해로부터 건강을 지켜줄 미래의 음식이다.
이기영(李起榮) 교수
고려대 식품공학과 학·석사 졸업. 현재 호서대학교 자연과학대 보건생명과학부 식품공학과 교수.
‘그리움’의 다른 말 ‘復古’ 이경숙 동년기자
조국을 떠난 지 한참 된 사람도 정말 바꾸기 힘든 것이 있다. 울적할 때, 특히 몸이 좋지 않을 때면 그 증세가 더 심해진다고 한다. 어려서 함께 먹었던 소박한 음식에 대한 그리움이다. 식구는 많고 양식은 빈약하던 시절, 밥상에서는 밥만 먹었던 것이 아니었나보다. 둥근 상에 올망졸망 모여 앉아 모자란 음식을 나눌 때 느꼈던 진한 가족애와 혈육의 뿌듯함이 DNA에 녹아들기라도 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가마솥 누룽지, 지겹던 보리밥,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던 시래기죽도 각자의 추억과 함께 잊히지 않는 음식이 되어 ‘그것만 먹으면 내 병이 다 나을 것’처럼 그리워지는 것 같다.
골목에 있는 만화방 주인은 청년이었다. 가끔 내게 만화방을 맡기고 외출을 하기도 했는데, 대신 보고 싶은 신간 만화를 실컷 볼 수 있어 좋았다. 만화방 앞에는 약간의 학용품이 놓여 있어 그것도 팔아야 했다. 그날도 만화방을 봐준다는 명목으로 독서(?)에 빠져 있었다. 누군가 나를 ‘툭툭’ 쳐서 보니 군인 아저씨가 물건을 들고 얼마냐고 묻고 있었다.
그렇게 몰두할 만큼 만화책은 너무 재미있었다. 그 만화방엔 안데르센 동화책도 많았다. 울적할 때면, 나는 동물들과 숲속 방앗간 짚 덤불에서 자던 소녀를 떠올리곤 했다. 샘물을 마시고 동물들과 대화하던 맑고 밝은 소녀가 아직도 가슴속에 있다. 지칠 때면 그 소녀가 가만히 내 창을 두드린다.
나팔바지를 입고 집을 나설 때마다 듣던 말이 있다. “동네 다 쓸고 다닐 거니?” 어깨는 각이 지고 허리는 잘록하고 엉덩이는 딱 맞고 바지통은 아주 넓은 디자인이었다. 그 시절엔 사실 유행이 일률적이었다. 지금처럼 다양한 취향을 주장할 만큼 당당하지도, 식견이 풍부하지도 못했다. 개성을 개인적 취향으로 인정해주기보다는 모자란 사람 취급을 하던 그런 시대였다. 그래서 좀 멋쟁이다 싶으면 일제히 미니스커트, 일제히 맥시스커트를 입는 그런 분위기였다. 어찌 보면 마치 유니폼을 입은 것 같았다.
테이블마다 달랑대는 조명등이 달려 있거나, 촛불을 켜는 낭만적인 카페도 많았다. 종종 작은 무대에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흥얼거리고, 술이 아니더라도 20대는 늘 무엇인가에 취해 있었다. 쉽게 흥분하고 자주 슬펐던 우리들의 20대. 끝도 없는 논쟁으로 밤을 새우고, 모든 게 다 진지하기만 했던 시절. 사랑하고 싶었던 사람들은 사랑 얘기를 쉼 없이 되풀이했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모두 정의의 순교자라도 되고 싶어 했다.
미팅 땐 생맥줏집, 볼링장, 극장엘 갔다. 애프터 미팅은 카페에서 만나 주로 비원이나 경복궁, 덕수궁을 걸었다. 가난한 젊은 커플들은 버스를 타고 종점을 오가며 대화를 나눴다.
이런 추억들에 젖어보기 위해 옛 시절을 떠올리는 것은 아닐까. 그것이 복고의 매력이라 할 수 있겠다. 그냥 먹고 마시기만 하자니 심심하고 무미건조해 그리움이라도 불러와 옛 필름들을 다시 돌려보고, 식어버린 가슴을 조금이라도 데워보려는 것이다.
벼룩시장에서 보물찾기 윤종국 동년기자
“내가 나를 생각하는 만큼 남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
나는 이 말을 엄청 좋아한다. 난 늘 나를 생각한다. 나는 키도 작고 몸집도 작다. 그러나 머리는 크다. 표준 사이즈로 옷을 고르면 거의 맞는 게 없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 드나들기 시작한 곳이 있다. 30여 년은 족히 된 듯하다.
독자들이 궁금해할 것 같아 먼저 알려준다. 바로 ‘벼룩시장’이다. 수백, 수천 가지의 물건이 있는 곳이다. 옛날에는 청계6·7가에 있었고, 지금은 동묘(동대문구) 일대에 시장이 형성돼 있다. 벼룩시장에서 레트로를 본다. 내게는 수만 가지 물건이 레트로 대상이다. 한 달에 두세 번 보물을 찾는 기분으로 간다. 내 작은 체구를 잘 알기에 어울리는 옷도 찾아본다. 손에 주로 들리는 옷은 복고풍의 외투다. 벼룩시장에서 입수한 옷은 꼭 수선 집을 거친다. 그래야 진짜 내 것이 된다.
누구나 알고 있듯 없는 게 없는 곳이 벼룩시장이다. 그렇다고 아무나 덤빌 곳은 또 아니다. 내게는 오랜 세월의 경험이 있다. 레트로를 사랑하려면 요령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레트로인이 된다. 예를 들면 맘에 드는 복고풍 옷을 하나 발견했다 치자. 구매의사가 있을 경우 먼저 입어보고 가격을 흥정하면 초보자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구매자 몸에 어울린다 싶으면 가격이 달라진다. 가격 매기기는 벼룩시장 주인들만의 특권이다. 그러므로 먼저 가격을 물어본 다음에 흥정을 해야 하는 게 원칙이다. 설사 맘에 들더라도 그 맘을 들키면 절대 안 된다. 그래야 원하는 가격에 살 수 있다.
또 하나의 팁. 다른 물건에 관심이 있는 척하다가 진짜 맘에 드는 물건을 들고 슬쩍 “이건 얼마죠?” 하고 물으면 점포 주인은 대부분 낮은 가격을 부른다. 이것이 지혜롭게 레트로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수년 전 딸아이가 벼룩시장이 궁금하다며 따라나섰다. 그날 지나다 발견한 물건은 흙이 묻어 다소 지저분해 보이는 신발이었다. 신을 만해서 단돈 5000원에 손에 넣었다. 집에 와서 닦고 손질해보니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고가 브랜드 신발이었다. 딸아이가 좋아라 했다. 내가 벼룩시장 마니아로 인정을 받은 건 사실 그날이었다.
한 달 전 큰손주의 생일이 있었다. 그날을 위해 몇 번이나 벼룩시장을 찾아 헤맸다. 인라인스케이트를 찾기 위해서다. 신제품도 생각했지만 하루가 다르게 키가 크는 녀석의 발 사이즈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라인스케이트를 선물로 선택한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전국, 특히 서울에서 인라인스케이트 붐이 일었다. 그러다가 아파트 내에서 어린이 안전사고가 일어났고 그 충격으로 슬쩍 사라져버렸다.
벼룩시장을 갔던 날, 다행히 손주에게 맞을 것 같은 인라인스케이트를 발견하고 흥정을 시작했다. 일단 가격부터 묻고 사이즈를 확인한 뒤 며느리에게 전화를 걸어 손주 발 사이즈를 물어봤다. 그러면서 주인의 눈치도 살폈다. 발 사이즈가 잘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듯 대화를 나눈 뒤 주인과 흥정을 했다. 결국 내가 원하는 가격으로 물건을 손에 넣었다. 이런 요령을 터득해야 비로소 벼룩시장의 프로가 된다. 집으로 돌아와 깨끗하게 정비하니 새 물건보다 더 정감이 갔다.
손주 생일에 인라인스케이트를 건네주며 “지금은 키가 부쩍부쩍 크는 나이니까 일단 이것으로 먼저 타는 연습을 하자”라고 말했다. 갖고 싶어 했던 거라 그런지 손주도 아주 만족스러워했다. 그날 나는 손주바보 할아버지에서 멋진 할아버지로 거듭났다.
옛것들에서 한 수 배우며 사는 삶 육미승 동년기자
“넌 조금만 더 나중에 태어났더라면 뭔가 해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심심찮게 이런 말을 해주는 친구들이 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민망하지 않은 표정으로 다정하게 미소를 짓는다. 친구들 말은, 내 패션이나 생각 그리고 사는 방법이 자기들과는 전연 다르다는 의미다. 그도 그럴 것이 레트로가 내 생활이니….
특히 패션에 대한 생각이 그렇다. 옷을 살 때 겉옷은 지금 당장 유행을 타는 것들 중 나중에도 입을 수 있고 멋지게 소화해낼 수 있는 디자인을 고른다. 그리고 다른 옷들은 옷장 문을 열어 예전에 신나게 입고 즐겼던 옷들에서 선택한다. 그날의 모임 콘셉트에 맞고 남의 눈에 거슬리지 않으면서도 유행에 뒤떨어짐이 없는 은은한 멋을 지닌 그런 의상을 즐기는 거다. 나는 옛것을 너무 좋아한다. 옛것들 버리지 않고 여전히 아끼고 사랑하는 나를 보고 “어머 얘, 너무 잘 어울린다아~’ 하고 해주는 말들을 좋아하는 것도 같다.
회상하고 추억에 빠지는 시간은 천천히 꼼꼼하게 내 생각들을 정리하는 데 꼭 필요하다. 그러고 보니 인연이 끝나 지금은 만나지 않는 사람들과의 대화도 마음 한구석에 감춰두고 있다. 어느 날 그들과의 추억을 꺼내 감상하는 게 내 취미다. 나는 옛것들은 대부분 귀하게 여기고 좋아한다. 가끔은 그동안 읽었던 책 속에서 또는 영화 속에서, 예를 들면 사마의 같은 중국의 책사들에게 한 수 배우길 희망한다. 그 놀라운 생각의 회로를 닮아보려고 혼자 부단히도 노력한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젊은이들. 그 두뇌를 못 따라가는 나는 느린 사고방식이 편하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단 한 번도 싸워보질 못했다. 갈등이 일어날 것 같으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거나 가만히 듣고만 있는 게 내 모습이다. 져주는 게 상책이라 생각하며 지내왔기 때문이다. 일처리를 할 때도 나를 뺀 모든 관계자들이 편한 쪽으로 해답을 구한다. 어느 면으로 보면 답답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나를 길들이며 살아왔기에 불편하지 않다. 그러나 지인들은 불똥이 내 발 바로 앞에 떨어져도 “이게 뭐지?” 하며 그제야 슬쩍 뒤로 물러날 사람이라며 핀잔 섞인 말을 한다.
그렇다. 나는 오래 생각하며 말없이 기다린다. 특히 답이 여러 가지로 나올 수 있는 문제는 더더욱 끝까지 기다린다. 엉망으로 뒤섞여버린 물을 가만히 두면 침전물들이 여러 층으로 가라앉고, 맑은 물이 맨 위로 올라온다. 내 앞의 문제도 그렇게 될 때까지 기다린다. 그러면 마치 무위이화(無爲而化)하듯 저절로 아주 유효하고 명쾌한 답이 나온다. 그 신기함을 몇 번이나 경험했다. 이것이 바로 레트로의 진가라고 믿는다. 새로운 기술과 기교도 좋지만 옛 성현들의 말씀에서 더 많은 답을 찾는다. 레트로는 내 단짝이다. 한 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다. 앞으로도 복고 속에서 빛나는 다이아몬드를 찾아내는 마음으로 패션, 음악, 미술, 영화, 텔레비전 프로그램 등을 즐기며 여유작작한 삶을 살아가려 한다.
레트로는 ‘마음의 휴식’이다 손웅익 동년기자
1980년. 그 해 나는 대학교 4학년이었다. 건축과 학생들 중 건축설계에 특히 관심이 많은 학생이 모인 동아리에서 활동을 했다. 회원들은 매년 몇 달씩 동아리방에서 합숙을 하며 건축 작품전을 준비했다. 식사는 2학년생들이 돌아가면서 전체 회원이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전통이었다. 그러나 집에서 설거지 한 번 안 해본 학생들이 만든 밥은 그야말로 배가 고파서 억지로 먹을 수밖에 없는 정도의 상태였다. 그런 식사로 몇 달 합숙을 하다 보니 대부분 건강이 나빠졌다. 1980년의 교정은 봄부터 최루탄으로 뒤덮였다. 수업도 대부분 휴강이었다. 그렇게 혼란한 상황에서도 건축과 동아리 회원들은 밤낮으로 모여 작품전을 준비했다. 대체로 밤에 설계를 하고 낮에는 잠을 잤는데, 그 와중에도 매일 데모하러 나가는 회원도 있었다. 졸업을 앞둔 4학년 학생들은 최고참이라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저녁에 가끔 학교 앞으로 나가 막걸리도 한잔씩 했다.
그날도 4학년 동기들은 동아리방에서 저녁을 먹지 않고 학교 앞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4학년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막걸리를 마시고 난 뒤에는 학교 교문 근처 문방구점에서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중계를 봤다. 당시 텔레비전은 다 흑백이었다. 그런데 선발대회 중에 화면 아래쪽으로 대학교를 폐쇄하겠다는 자막 뉴스가 떴다. 합숙 중이었던 우리는 얼른 짐을 챙겨 집으로 가야 할 것 같아서 학교로 들어가려는데 어느새 장갑차가 교문을 지키고 있었다. 1980년 5월 15일이었다. 17일에는 전국으로 계엄이 확대되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이 5월 18일.
그 해 우리가 준비했던 5월 전시회는 무산되었다. 전국으로 계엄이 확대되면서 집회는 일절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회원들 집에서 만나 작품전 준비를 했고 가을에 전시회를 열었다. 당시 동아리 회장이었던 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잘 준비해서 내 임기 중에 전시회를 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겨울이 또 왔고 어느 날 술친구들이 중국집에 모였다. 텔레비전을 보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고량주를 마시면서 방송 시작 시간을 기다렸다. 그날은 우리나라 텔레비전 역사상 처음으로 컬러 방송을 하는 날이었다. 당시의 자료를 찾아보니 1980년 12월 22일 이었다. 우리는 컬러로 텔레비전을 보면 중국 영화처럼 피가 난무하는 장면은 너무 살벌할 것 같다는 둥, 연예인들이 옷을 더 화려하게 입을 것 같다는 둥 이런저런 추측성 대화를 나눴다. 그날 그렇게 흑백텔레비전 시대가 종료되었고 내 학창 시절도 저물어갔다.
얼마 전에 영화 ‘로마의 휴일’을 텔레비전에서 다시 봤다. 오래전에 갔던 로마 여행의 기억을 떠올리며 영화가 끝날 때까지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옛날 영화를 보다 보면 흑백 화면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흑백이라서 불편하거나 아쉬운 점도 없다. 오히려 로마의 유적이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오고 상상을 자극하는 것 같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컬러 사진이 보편화하기 전의 흑백 사진들은 그 분위기로 시간을 되돌리는 신비로움이 있다. 흑백 사진을 손에 들면 사진을 찍던 순간으로 순식간에 되돌아가는 듯하다. 흑백이라는 무채색의 아름다움은 그래서 복잡하고 바쁘고 혼란스러운 현대인들에게 향수를 자극하고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마음의 휴식을 주는 것 같다. 현대인들은 현란한 색과 형태 그리고 자극적인 소리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정보의 홍수와 자극의 파도를 견디려니 모든 감각기능이 극도로 예민해져 있다. 이런 현실에서 흑백은 잠시나마 여백의 세계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눈이 편안해지면 마음도 편안해진다.
나는 새벽안개를 좋아한다. 특히 두물머리의 새벽안개는 한 폭의 수묵화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새벽에는 온 세상이 흑백으로 변한다. 안개의 농담(濃淡)으로 그려놓은 수묵화는 화려한 가을날의 유화 같은 풍경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신비로움이 있다. 그 여백은 흑백 사진처럼 아련한 시간의 심연으로 빠져들게 한다.
요즘 펜화 스케치를 하면서 비슷한 느낌을 받곤 한다. 검은색으로만 그림을 그려놓고 원본의 컬러와 비교하면 흑백이 가진 깊이를 분명히 느낄 수 있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가끔 의식적으로라도 흑백의 세계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고 본다. 흑백은 레트로다. 나는 레트로에서 마음의 휴식을 찾는다.
귀농·귀촌을 결심하기 전, 원하는 마을을 미리 둘러보게 될 것이다. 이왕 방문을 계획했다면 휴가를 겸해 마을의 명소와 맛집도 두루 즐기고, 다양한 농촌 체험도 맛보기로 해보자. 마을의 자연과 전통문화를 활용해 체험과 휴양 공간을 제공하는 ‘농촌체험휴양마을’에서라면 가능하다. 지 단편적인 사례를 통해 귀촌·귀농의 성패 요인을 살펴보고자 한다.
사진 제공 및 도움말 웰촌
◇ 전북 고창군
‘구시포 해수욕장’은 해변이 넓고 완만해 아이부터 노인까지 안전하게 즐기기 좋은 피서지다. 이곳에서 차로 5분 남짓 거리의 ‘상하농원’은 이국적인 풍광과 더불어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어 인기가 높다. 최근 tvN 드라마 ‘도깨비’의 촬영지로 알려지며 주목받고 있는 ‘고창 학원농장’은 한여름이면 해바라기가 만개해 절경을 이룬다. ‘미당시문학관’, ‘선운사’, ‘고창 고인돌유적지’ 역시 역사와 문화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고창 여행 필수 코스 중 하나다.
체험 포인트>> 상하농원 상하농원에는 우유 제조공장 견학을 비롯해 머핀 만들기, 아이스크림 만들기 등 다양한 먹거리 체험 프로그램이 있다. 또 올해 7월부터 ‘파머스빌리지’를 열어 운영 중이다. 농원 식당과 테라스 룸, 패밀리 룸 등 숙박 공간도 마련돼 있으니 여행 일정에 참고하자.
◇ 경북 예천군
‘삼강주막마을’에서는 두부, 묵, 배추전 등과 곁들여 먹는 막걸리 한 상을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다. 내성천이 휘감아 돌아나가는 ‘회룡포마을’은 육지 속 섬처럼 독특한 모습이다. 인근 ‘예천진호국제양궁장’은 예약을 통해 무료로 양궁체험 기회를 제공한다. ‘출렁다리마을’은 시골 인심 가득한 밥도 먹고, 다양한 농산물 수확 체험까지 즐기기 제격이다. 여행을 끝내기 아쉽다면, 마을에서 차로 15~20분 거리에 있는 ‘문경주조’에서 오미자막걸리 한잔 어떨까?
체험 포인트>> 삼강주막마을 500년 수령의 회화나무가 지키고 있는 삼강주막마을에서는 떡메치기, 팥죽 끓이기, 양반 자전거 타기, 양반 과거길 체험 등을 경험할 수 있다. 하루 묵어갈 계획이라면 황토찜질을 겸하는 황토방과 한옥 스타일의 민박, 체험관에서 숙박도 가능하다.
◇ 경남 하동군
화개천 계곡을 따라 4.2km 이어지는 ‘서산대사길’은 실제 서산대사가 걸었던 길이다. 걷다 보면 그 끝자락에 ‘지리산역사관’이 보인다. 지리산 반달가슴곰이 사는 마을로 유명해진 ‘의신마을’에서는 계절마다 다양한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난다. 이곳에서 하루 묵은 뒤 다음 날에는 ‘화개장터’로 향하자. 끝으로 ‘박경리문학관’과 소설 ‘토지’의 배경인 ‘최참판댁’에 들러 수시로 열리는 문화행사에도 참여해보자.
체험 포인트>> 의신마을(베어빌리지) 멸종위기종인 반달가슴곰을 만나는 탐방 해설과 야생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지리산 청정 지역에서 나는 산약초, 산나물 등을 직접 채취해볼 수 있다. 베어빌리지와 도서관, 놀이터, 캠핑장 등도 이용 가능해 손주와 함께라면 더욱 유익하다.
◇ 경기도 파주시
임진강과 감악산이 둘러싼 ‘산머루마을’은 계절에 따라 산나물 캐기, 요리체험, 문화답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곳에서 1979년부터 머루 재배를 시작한 ‘산머루농원’에서는 머루 관련 체험뿐만 아니라 와인숙성터널 관람 및 머루와인 시음까지 즐길 수 있다. 파주 일대에서 가장 높은 감악산(675m)에는 국내에서 최장 길이의 출렁다리가 있다. 높이 45m, 길이 150m에 이르는 출렁다리를 건너다 보면 운계폭포가 보이고, 그 끝자락에 법륜사가 나온다.
체험 포인트>> 산머루농원 ‘산머루 와이너리 투어’, ‘머루 수확 체험’, ‘나만의 와인’을 비롯해 ‘패키지체험’(머루 초콜릿, 머루 잼, 머루 비누 만들기, 와이너리 투어 및 시음)을 예약제로 운영한다. 와인을 즐기는 어른부터 달콤한 초콜릿을 좋아하는 아이까지 두루두루 유익하다.
◇ 충남 금산군
‘대둔산 자연휴양림’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러시아 대통령이 다녀가며 잘 알려졌다. 편백 숙소, 피톤치드 치유의 방을 비롯해 집라인과 글램핑장 등 레저 시설도 마련돼 있다. 휴양림 산책을 마친 뒤에는 ‘금산인삼약령시장’에 들러보자. 전국 인삼 생산량의 80%가 거래되는 곳으로, 각종 인삼류와 약초를 20~50% 할인한다. ‘조팝꽃피는마을’은 그 이름처럼 조팝꽃 자생 군락지가 유명하다. 대표 특산물 인삼과 각종 농산물 체험 프로그램이 있다.
체험 포인트>> 조팝꽃피는마을 희망센터캠핑장, 농촌인성학교 등을 운영하고, 여름에는 들깨 모종, 깻잎 따기, 매현천 물고기 잡이 등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다. 볏짚 공예, 풍등 날리기 등 전통문화체험과 인삼 수확체험, 인삼콩 두부 만들기 등 인삼을 활용한 프로그램도 인기다.
◇ 강원도 횡성군
‘풍수원성당’은 빨간 벽돌과 뾰족한 종탑이 어우러진 클래식한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풍수원성당을 둘러본 후에는 ‘오마이갤러리’에 방문해 명화를 감상해보자. 트릭아트, 3D 입체 명화 등을 즐길 수 있다. 맛집과 체험을 모두 겸비한 오음산캠프는 산골 부녀회가 직접 나선 농가 맛집 ‘오음산 산야초밥상’과 농촌체험학교 ‘꿈꾸는풍뎅이’를 운영한다. 농촌의 계절 음식과 문화를 경험한다는 점에서 귀농·귀촌을 염두에 둔 중장년층이 즐겨 찾는다.
체험 포인트>> 오음산캠프 오음산 산야초밥상은 계절에 따라 각기 다른 밥상을 즐길 수 있다. 해바라기 씨가 들어간 도토리묵과 매일 아침 만드는 손두부를 등 시골건강밥상을 내놓는다. 꿈꾸는풍뎅이 학교에서는 향토절기문화교육, 친환경 제품 만들기, 숲속교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365일 즐기는 농촌체험관광 포털 ‘웰촌’
'웰촌' 웹사이트에서는 전국 농촌체험휴양마을이 등록돼 각종 정보 및 서비스를 살펴볼 수 있다. 특정마을 소개 및 체험 프로그램, 숙박·캠핑, 음식·특산물 등은 물론 인근 관광지와 맛집까지 소개한다. 사이트 내 추천 여행코스와 네티즌 여행코스를 참고하면 일정을 잡는 데 수월할 것이다. 나만의 색다른 여행코스를 만드는 서비스와 농촌여행 스탬프 투어 등 이벤트 소식도 제공한다.
처음에는 귀촌 목적이 아니었다. 꽃향기, 흙냄새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텃밭 하나 장만할 생각이었다. 부부는 사랑에 빠지듯 덜컥 첫눈에 반해버린 땅과 마주했다. 부부는 신이 나서 매일 밤낮없이 찾아가 땅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응답이라도 하듯 땅은 씨앗을 감싸 안았고, 뿌리 깊은 나무는 온몸으로 품었다. 텃밭은 꽤 큰 대지가 됐고, 이후 정자와 살 만한 집도 마련됐다. 나무와 숲을 가꾸는 것이 평생 직업이던 조연환 前 산림청장의 귀촌 인생은 그렇게 준비됐다.
13년 차 귀촌인 조연환 전 산림청장 이야기
충남 금산군 조연환 전 산림청장의 귀촌 하우스에는 점심시간이 다 되어 도착했다. 집 안으로 들어가니 보글보글 끓고 있는 된장찌개와 압력밥솥으로 갓 지은 밥 냄새가 진동했다. 이른 아침 서울을 출발해 살짝 출출했던 탓에 당장 밥상 앞에 앉아 한 숟가락 뜨고 싶었다. 밥상 위는 말 그대로 시골밥상. 비름나물 무침, 엄나무 장아찌. 깻잎볶음, 호박 무침, 김치, 전날에 담갔다는 오이소박이, 굴비 구이가 상 한가득이었다. 완두콩을 넣어 지은 밥과 반찬으로 식사를 뚝딱 끝내고 숭늉을 마신 뒤, 조 전 청장이 손수 탄 봉지커피까지 들이키면 점심코스가 마무리된다. 녹우정(조 전 청장 집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정자 이름. 나무와 숲을 가꾸는 사람들의 우정이 깃든 정자라는 뜻이다) 정식이라 불러도 될 만했다. 식사를 마치고 날씨가 좋을 때 사진 찍기를 부부에게 권했다. 귀촌생활에 있어 텃밭은 기본 아닌가. 텃밭이라기에 따라 내려간 곳은 그냥 큰 밭이었다. 고구마, 팥, 깻잎 없는 거 없이 다 있었다. 이 큰 밭의 고랑을 만들고 구획을 나눠 정리 정돈하는 일은 이 집 머슴인 조 전 청장의 몫이다. 총 관리감독은 마님인 정점순 여사가 한다. 텃밭이 아니라 농번기 농사꾼 부부를 제대로 만난 느낌이었다.
귀촌 13년 차란 말에는 조연환 전 산림청장이 자리에서 물러난 지 13년 됐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지금 살고 있는 금산에 땅을 장만하고 귀촌을 준비한 것은 18년 전이다. 산림청이 발족된 1967년,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최말단 9급 산림공무원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한 조 전 청장. 2004년 제25대 산림청장으로 취임해 파란만장한 1년 6개월을 보내고 2006년 자리에서 물러나 귀촌했다. 산림청장직에서 내려온 이후에도 농협경제연구소장과 생명의숲국민운동 상임공동대표, 천리포수목원장 등을 잇달아 역임하며 산림 전문가로서 끊임없이 일해왔다. 2011년부터는 한국산림아카데미 이사장을 맡아 귀·산촌 희망자에게 실직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모색하며 적극적으로 앞장서고 있다. 퇴임을 언제 했나 싶을 정도로 늘 바쁜 현역 산림 운동가가 바로 조 전 청장이다.
“처음에 이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과연 사람들이 관심이나 있을까 싶었는데 90명 정원에 120명이 몰렸습니다. 프로그램을 10기까지 진행했는데 졸업생을 980명이나 배출했습니다. 500명은 임업인이고 나머지는 아카데미에 와서 산을 알게 된 사람들이죠. 정확하게 통계를 낸 건 아니지만 제가 알기로 50명 가까운 사람들이 귀촌했습니다. 굉장히 성공한 것이죠.”
올해 6월 출간한 ‘산림청장의 귀촌일기’도 조 전 청장의 강의를 들었던 사람들의 요구에 부합해 서두르게 됐다. 책에는 조 전 청장이 SNS에 꼼꼼하게 적어 올렸던 개인 경험과 함께 똑똑한 귀촌 설계, 귀·산촌 사례자 이야기 등을 실었다. 책을 내야겠다고 결심한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바로 아내의 건강 때문이었다.
“아내 나이가 칠십이 넘으면서 무릎이 점점 안 좋아졌어요. 더 이상 농사 못 짓고 서울로 가면 책을 못 낼 것 같더라고요.(웃음) 우리가 이곳에서 행복하게 사는 동안 책이 나오면 좋잖아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19세 산림청 공무원이었던 조 전 정창은 어리다고 무시당할까봐 나이를 두 살 높여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때 하숙집 아주머니가 괜찮은 동갑내기(?) 처자가 있다면서 소개시켜준 이가 바로 정점순 여사다. 첫눈에 반해 연애하다 1년 반 만에 결혼한 당시에는 보기 드문 연상 연하 커플이다.
“지금도 병원에 가면 일하지 말라고 의사가 말합니다. 이 사람을 살살 꾀어 2년 전인가 여길 팔자고 했어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니까 이 사람한테 우울증 올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안 되겠다, 밭일 못한다고 포기할 때까지 그냥 살려고 합니다.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밖에서는 조 전 청장이 산림 전문가로 알려졌지만 알고 보면 정점순 여사도 고수 중에 고수다. 조 전 청장이 천리포수목원장을 할 때 숲해설가로 활약할 만큼 식물 생태에 관심이 많다. 남들 못 키워내는 나무며 화초며 정 여사 손에 들어오면 죽어가던 것들도 되살아났다. 너른 텃밭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하다 보니 고왔던 손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지 오래다. 시간만 나면 밭에 앉아 풀 뽑고, 복숭아 봉지를 싸고 식물을 바라보고 보살피는 게 하루 일과의 대부분이다. 조 전 청장이 말단 공무원에서 산림청장이 되기까지 정 여사의 눈에 보이지 않는 내조가 한몫했다는 것을 주위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농촌에 은퇴자 네트워크를 만들어주십시오
“제가 강조하는 것은 귀농이 아닙니다. 귀산이나 귀농은 아카데미 교육만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돈이 조금 생기면 좋고, 그게 아니더라도 시골이 좋다고 하시는 분은 대환영입니다.”
현재 운영 중인 한국산림아카데미 최고경영자과정을 듣기 위해 모이는 대부분이 도시에서 성공한 시니어 혹은 은퇴를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조 전 청장은 산에 관심을 갖고 터를 잡고 들어가 길을 내고 가꾸기에 관심을 갖는 인구가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산을 가꾸면서 소소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야 합니다. 상추 심어봤더니 또 싹이 나고 그거 뜯어서 친구들과 주위 사람들 나눠도 줘보고 말이죠. 골프장 가는 거보다 훨씬 재밌다며 골프 끊은 분도 주위에 있습니다. 산을 알아가는 삶이 생긴 것이죠.”
조 전 청장이 정말 퇴임한 산림청장이 맞나 싶을 정도다. 여전히 사회 전반에서 이뤄지는 일에 관여를 하며 쉬지 않고 귀·산촌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실제로 포털 사이트에 ‘산림청장’이라는 문구를 치면 유독 조 전 청장의 행보가 눈에 띈다. 1년 6개월 짧고 굵었던 임기와 퇴임 후 여섯 번 바뀐 산림청장 자리이지만 여전히 조 전 청장이 회자된다. 그는 끝까지 힘을 다해 뛰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
“대통령이 나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퇴직한 사람들이 시골에 내려가서 농촌의 인적 네트워크가 되어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2005년 8월 21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시 유홍준 문화재청장 부부와 조연환 전 산림청장 부부를 청와대로 초청했다. 청와대 입성 이후 딱히 산책할 곳이 없었던 노 전 대통령이 산길 정비가 되지 않은 북악산을 자주 오르내렸다. 이후 산림청에 기별이 와서 청와대 뒤 숲을 가꾸고 꽃을 심었다고. 그것이 고마워 노 전 대통령이 청와대로 부른 것이다.
“‘청장님이 이렇게 잘해주셔서 제가 뒷산을 잘 다니고 있습니다’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말씀하시길, ‘다음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도, 그다음에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도 농촌에 관심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손자들에게 내가 멱 감고 고기 잡고 놀던 시냇물을 복원해주고 싶다, 나는 퇴임하면 시골로 내려가겠다’며 계속 그 말씀을 하셨어요.”
도시에는 사람이 넘쳐나는데 농촌에 사람이 없으니 도시에서 성공한 은퇴자들이 자리를 잡고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만 있다면 꽤 괜찮은 미래 그림이 될 것이라고 노무현 대통령은 말했다. 그리고 퇴임 후 시골로 내려가겠다던 노무현 대통령은 고향인 봉하마을로 내려갔다. 조 전 청장에게 길고 긴 시간을 들여 했던 말들을 이행하고자 대통령 스스로 부단한 노력을 했다.
“책에도 썼지만 대통령이 나한테 지시를 한 거잖아요. 내가 시골에 내려와 살아야 하는 이유, 가장 큰 명분, 내가 해야 한다는 사명이 있어 귀촌을 택했던 것입니다. 노 전 대통령께서는 ‘대통령’을 역임하시고도 봉하마을에 내려가 주민들과 밤새 토론하고 행정 관계자를 설득해가며 마을을 가꾸셨는데, 저는 산림청장을 했다고 해서 귀촌해 편하게 살고 있는 거 같아 죄송스럽습니다.”
노 전 대통령을 함께 만나러 갔던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도 퇴임 후 부여로 내려가 휴휴정이라 이름 붙인 집을 지었다. 조 전 청장이 금산에 갈 때 같이 입주했을지도 모를 좋은 친구 중 하나가 유홍준 전 청장이다. 하지만 각자 맡은 바 소임이 달라 한 명은 산이 가까운 금산에, 한 명은 역사가 가까운 부여에 둥지를 틀었다.
“유 전 청장도 부여에 땅을 잘 마련했습니다. 저도 한 번 가봤는데 잘 꾸며놓았더라고요.”
이 두 사람은 재임 당시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제안해 울진 소광리 금강소나무를 150년 후 문화재용으로 쓰자고 협약했다. 살면서 봤던 아름다운 협약으로 두고두고 기억돼 뜬금없지만 적어본다. 나무건 문화재건 한 세기는 지나봐야 알 수 있으니 미래 세대를 위한 든든한 보험(?)을 어른들이 들어준 것 아닌가.
공직자 퇴임 이후 정계에 입문해 지금까지 쌓아온 명망을 순식간에 까먹는 이도 있고, 좋지 않은 일에 휘말려 아름답지 않은 뒷모습을 보이는 이도 종종 보곤 했다. 푸른 산새에서 만난 조연환 전 산림청장의 의미 있는 사명과 서슴없이 들려준 많은 이야기가 귀감이 됐다. 미래를 걱정하는 한 사람의 마음에 더 많은 사람의 마음을 모아 점점 더 푸르러지는 세상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김수미 씨와는 각종 행사장에서 몇 차례 마주친 적이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말을 트고 지낸 건 ‘문화예술 최고위과정’에서다. 당시 내가 사회를 봤는데 귀빈소개를 할 때 “국민가수 하면 조용필이 있고, 국민여배우 하면 이분이다”라고 분위기를 띄우면서 그녀를 소개했다. 그날 식사시간에 같은 테이블에 앉아 도란도란 얘기하면서 친해졌다.
그녀와 만나 직접 대화를 하기 전에는 “배우 김수미의 연기는 최고지만 여자로서는 내 타입이 아니다”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생김새를 떠나 우선 드세 보이는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 후 또 다른 식사 자리에서 깊은 얘기를 나눈 후 내 선입견이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음을 자성했다.
천생 여자이면서 천사같이 착한 마음씨를 지녔고 삶의 철학도 깊었다. 호불호(好不好)가 강한 것도 이봉규와 코드가 맞았다. 나는 김수미 씨가 좋지만 두세 번 만나 식사를 한 나를 그녀가 좋아할지는 알 수 없었다. 어찌되었건 나는 그녀의 성격이 마음에 든다.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간도 쓸개도 다 줄 만큼 천사같이 헌신적이다. 반대로 마음에 안 들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싫다는 표현을 확실하게 하고 만다. 그래서 마음을 주고받는 친구도 많지만, 그녀의 화끈한 호불호 성격 때문에 가끔 불화의 구설수에 오르내리기도 한다. 김수미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그녀가 직접 만든 정성스런 음식 선물을 안 받아본 사람이 없다.
서두에 설명한 ‘문화예술 최고위과정’에서 강원도 홍천으로 워크숍을 갔을 때, 김수미는 일정상 참석하지 못했다. 그 대신 그녀가 직접 담근 열무김치, 묵은지, 간장게장, 보리굴비 등 100인분이 봉고차로 배달되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며칠간 잠도 제대로 못 자고 100명이나 되는 원우들을 위해 준비했던 것. 그런데 그 맛이 일품이어서 또 한 번 기절초풍했다. 여러 방송을 통해 김수미의 요리 솜씨는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직접 맛을 보고는 무르팍을 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그 많은 양의 김치와 간장게장을 만들었는데 이토록 맛있을 수가? 공장도 아닌 보통 가정에서 음식의 양이 많아지면 맛을 내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열무김치는 날짜에 맞춰 적당히 익힌 것이라서 그 정성도 대단했다. 거기 모인 요리깨나 한다는 여인네들이 이구동성으로 혀를 찼다. 배우로서 방송인으로서 엄청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힘든 그녀가 어떻게 100인분의 양을 준비했고 이렇게 맛까지 있을까? 그녀는 그 이유에 대해 “내가 이 평생에 제일 그립고 행복했던 시절이 어렸을 때 우리 집 평상에서 쭉 식구들이 둘러앉아 밥 먹을 때였다. 그 추억이 너무 좋고 엄마가 보고 싶으면 나도 모르게 부엌으로 들어가서 엄마가 해줬던 음식을 해본다. 자주 부엌에 들어가 요리를 해왔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음식을 만들어도 힘들지 않고 즐겁다”고 말했다.
밥 잘해주고 사람 잘 챙기는 누나
최근 방송국에서도 그녀의 요리를 높이 사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바로 tvN의 ‘수미네 반찬’이다. 이 방송에서 김수미가 다양한 요리를 선보였는데 그중 단연 눈에 돋보인 요리는 묵은지볶음. 그녀는 자신만의 독특한 노하우를 설명할 때 강한 카리스마를 선보이며 요리 솜씨와 산전수전 다 겪은 인생 대가의 면모를 뽐냈다. 방송 후 각종 매체에서 분석한 전문가들의 평가에 따르면, “세련되거나 자극적인 맛은 없지만 묵직하게 전해지는 정성, ‘수미네 반찬’이 매일 먹는 우리 밥상을 더욱 따스하게 만들어줬고 밥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웠다. 정확한 계량 대신 정성으로 이뤄진 김수미의 레시피는 브라운관을 넘어 안방까지 훈훈함을 전했다”고 극찬했다.
특히 ‘눈대중’이 주목을 끌었는데. 끓는 물에 묵은지와 무청, 올리브유를 넣어주는 과정에서 물은 ‘자박자박하게’ 올리브유는 ‘니글거리지 않도록 알아서’ 조절하라며 그녀 특유의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설명해 스튜디오에 있던 방송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그녀는 계량컵이나 온도계 그리고 시간계측기 등을 사용하지 않고 대충대충 눈대중으로 요리를 한다. 그 모습은 마치 요리 전문가가 아닌 보통 우리네 엄마가 부엌에서 음식을 만드는 모습과 오버랩이 되어 더 큰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본다.
이를 반영하듯 시청률은 1회 3.6%(닐슨코리아 전국 유료가구 기준)에서 2회 4.5%로 껑충 뛰었다. 특히 오후 8시라는 시간대의 한계와 지방선거 개표 등의 이슈에도 불구하고 케이블 및 종편 동시간대 1위를 기록했기에 그 의미가 더 컸다. 방송에 같이 참여한 셰프들이 김수미의 호통에 꼼짝 못하는 것도 그녀의 캐릭터에 눌려서라기보다 김수미식 눈대중의 절묘함에 기가 죽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녀만의 독설유머에 반한 대중
외국의 요리학교나 학원에서 유명한 강사로부터 다년간 가르침을 받았거나 수련을 통해 완성해낸 레시피를 가지고 각종 방송 등에서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셰프들이 이날은 김수미 앞에서 꼼짝 못하고 오그라들 수밖에 없었다. 배우 김혜자와는 매우 절친한 사이이고 둘 다 한국인의 대표적인 어머니를 연상케 하지만, 이미지는 많이 다르다.
김혜자가 전형적인 현모양처의 이미지라면, 김수미는 억척스럽고 성격 괄괄한 욕쟁이 어머니 이미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김수미가 오히려 요리의 달인이고 정작 현모양처 이미지인 김혜자는 찌개도 제대로 못 끓인다고 소문이 나 있다. 요리 말고 김수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몇 개 있지만 그중 하나가 독설유머다. 한량 이봉규도 나름대로 독설유머를 한다고는 하지만 김수미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이다. 그녀의 그런 점을 내가 존경하기에 김수미의 팬인지도 모른다. 또한 나의 그런 면을 좋아하는 내 아내도 김수미의 광팬이다. 어느 행사장에서 한 강연자가 강연 도중 다소 흥분이 되기도 했고 청중의 주목을 끌기 위해 일본인을 비하하는 약간 과한 발언을 했다. “일본 놈들이~”를 연발하며 강연을 이어가던 중 청중 속 중앙 테이블에 앉아 있던 김수미가 “나 일본 사람인데!” 하고 크게 외쳤다. 청중들 사이에선 웃음이 터져 나왔고 강연자는 웃으면서 “그런 줄도 모르고 놈~놈~이라고 자꾸 말해서 죄송합니다”라고 받아치며 그 장면을 모두가 재미있게 넘겼다. 김수미의 독설유머 한 방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킨 것이다. 김수미의 독설유머 일화는 차고 넘친다.
최근 방송된 SBS 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에서도 김수미가 이상민, 탁재훈에게 독설을 날렸다. 이날 방송에 출연한 김수미를 사이에 두고 이상민과 탁재훈이 폭로전을 벌였는데 그 치열한 설전은 지켜보던 ‘母벤저스’들이 “두 아들이 서로 엄마한테 고발하는 것 같아”라고 말할 정도였다. 탁재훈이 먼저 자신의 농담을 잘 받아주지 않는 이상민을 향해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자 이를 들은 김수미가 “빚에 쪼들리다 보니 유머감각이 없어진 거 아니야?”라고 말해 이상민을 당황하게 했다. 이에 질세라 이상민도 탁재훈의 암흑기 시절을 폭로하며 반격하자, 김수미는 탁재훈에게도 “뜨거운 밥, 찬밥 가릴 때가 아니다”, “너 어렸을 때 엄마 말 안 들었지?”라며 독설유머를 날렸다. 또 계속되는 두 사람의 유치한 폭로전을 김수미가 듣고 있다가 “너희들 중2니?”라며 일갈해 녹화장을 초토화시켜버렸다. 그녀는 자신이 유머를 좋아해서 그런지 “나는 재미있는 사람을 좋아해!”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닌다.
종잡을 수 없는 마력의 배우
마지막으로 김수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로 하나만 더 말하라면, 아무래도 ‘전원일기’의 ‘일용 엄니’를 빼놓을 수 없다. 그녀는 21년간이나 일용 엄니 배역으로 열연했는데, 처음 촬영할 당시 32세의 나이에서 노인 연기까지 역대급 연기로 칭송받고 있다. 게다가 아들인 일용이 역의 박은수보다 그녀는 나이가 어렸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 사실을 털어놓은 적이 있는데, 녹화 때 “일용이 너 이눔 시키” 하고 혼내다가 촬영이 끝나고 나면 시치미 뚝 떼고 “선배님, 수고하셨습니다”라고 공손히 인사했다고 한다. 나와 아내는 최근 KTV에서 ‘전원일기’를 매일 방영하는 탓에 푹 빠져 산다. 2002년 겨울에 끝났으니까 오래전 드라마인데도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훌륭한 작품이다. 김수미의 맛깔스런 일용 엄니 연기는 가희 일품이다. 20년 전에 지금 김수미 나이의 연기를 했으니 그만큼 인생을 더 살았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그녀의 내공이 깊은 건지도 모른다. 드라마 배역에 열중하면 그 인물이 된다고들 흔히 말한다. 김수미의 실제 나이는 70이지만 경험한 나이는 100세쯤 되어 보인다. 그런데 외모와 패션의 나이는 거꾸로 50쯤 되어 보인다. 종잡을 수 없는 김수미의 모든 면이 매력으로 발산되어 국민여배우의 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는 것 같다.
30년쯤 연기생활을 더 보태 국민여배우를 넘어 국보가 되는 날을 같이 맞이하고 싶다. 그러려면 나부터 건강을 야무지게 챙겨야겠다.
우렁이는 우리에게 친근하다. 어릴 때 읽었던 우렁이 각시의 밥상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 있다. 논이나 작은 연못에 사는데, 모내기한 벼포기가 진초록으로 바뀌는 5, 6월이면 짝짓기하는 우렁이를 발견할 수 있다.
짝짓기 시기가 지나면 논두렁의 풀이나 벼의 줄기에 선명한 분홍빛 알을 무더기로 낳는다. 농약살포를 비롯한 환경오염으로 그 수가 줄어들고 있어 간혹 우렁이 알 무더기는 볼 수 있어도 직접 알을 낳는 장면을 관찰하기란 쉽지 않다. 그나마 집 주변 들판에는 띄엄띄엄 친환경 벼농사를 짓는 곳이 있어 우렁이를 보곤 한다.
우렁이의 모습을 담기 위해 아침마다 카메라를 들고 마을 들길을 걷던 중 드디어 알을 낳는 광경을 목격하게 됐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현상을 마주하며 2시간 동안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댔다.
우렁이 몸 안쪽에서 양수에 덮여 불그스레해진 알이 바깥으로 쏙 밀려 나와 알 무더기에 달라붙는다. 4, 5초 간격으로 수수 알갱이 크기의 알을 하나씩 낳아 무더기를 만드는 광경은 신비로웠다. 우렁이는 체내 수정 후 알을 외부 풀줄기나 벼줄기에 1년 동안 40~80개씩 무더기로 낳는다. 생후 1년이면 생식능력을 가지며 수명은 7~8년이다.
동의보감에는 전라(田螺)를 ‘우롱이’라 하고 “논에 살며 모양은 원형이고 복숭아나 오얏(자두)과 같다”라고 기록한다. 한의학에서 우렁이는 찬 기운을 가진 것으로 분류하며 독성은 없다. 고둥 맛과 비슷하며 목마른 증세를 멈추게 하는 효능을 갖는다. 대소변을 잘 통하게 하고 술을 깨게 한다. 여름이나 가을에 잡아서 쌀뜨물에 담가 진흙을 제거한 후 달여서 먹으면 된다. 술을 깨게 하는 성분이 들어 있으니 제약회사에서 우렁이 각시가 건네는 숙취해소제 광고가 뜨지는 않을까?
‘우렁이도 두렁 넘을 꾀가 있다’는 속담도 있다. 미련하고 못난 사람도 제 요량은 있고 한 가지 재주는 다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세상을 사는 나름의 역할이 있음을 이른다. 우렁이를 보며 느끼는 삶의 지혜다. 건강한 삶이 우리의 바람이다. 좋은 환경이 그 바탕이 된다. 내년에는 다른 논에서도 우렁이가 시집 장가를 가고 고운 알을 낳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때도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으리라.
나는 매일 쌀밥을 먹으며 조상의 은덕과 농부의 수고에 고마움을 느낀다. 쌀에 영혼이 있다는 도령(稻靈)께 무언의 기도를 올리며, 쌀밥을 맛있게 먹고 소중한 쌀 한 톨도 버리지 않고 귀중하게 여기려 한다.
이렇듯 소중한 쌀과 인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우리는 매일 쌀밥을 먹고 성장하였으며 일상을 살아간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은 ‘쌀’에 대한 고마움이나 그 의미에 대해 잘 인식하지 못하게 마련이다.
쌀은 벼의 열매껍질을 벗긴 알맹이다. 쌀겨는 쌀을 씻을 때 나오는 고운 속겨이며, 쌀을 씻은 뜨물이 쌀뜨물인 것을 누가 모르랴? 그러나 도시 학생들에게 벼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답을 잘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쌀을 얻는 농작물로 익은 열매를 '벼'라 하고 그것을 찧은 것을 '쌀'이라고 해야 알게 된다. 쌀나무(?)라고 일러줘야 할까? 벼를 재배하여 거두는 일을 벼농사라 하는데, 도심에서는 쉽게 볼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곡식을 익힌 음식을 끼니때마다 먹는다. 하루에도 세끼씩 꼬박꼬박 먹으며 생활하지 아니하는가? 아침밥을 시작으로 음식을 차려 놓은 소반인 밥상은 참으로 고마운 존재다. 그렇다면, 세계 3대 곡물은 무엇일까? 바로 쌀, 밀, 옥수수다. 세계 5대 주에서 쌀을 재배하여 식용으로 쓴다. 쌀이 서양에 전해진 것은 실크로드의 아랍인에 의해서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쌀은 의식주 중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나는 쌀의 기원에 대한 문헌을 찾아보았다.
학명은 '오리자(oryza)'로 라틴어이고 'riso'는 이탈리아에서 쓴다. 영국에서는 'rys'에서 'rice'로 됐다. 고대 인도어 'sari'가 곧 우리말의 '쌀'의 어원이다. 즉 살[肉]에서 왔으며, 식물의 살(쌀)과 동물의 살(고기)을 먹고 사는 게 '살암'(사람)이란 속설도 있다. 이러한 뜻을 알면 참 흥미롭다.
쌀미(米)자는 농부가 팔십팔(八十八)번 손이 닿아야 할 만큼 수고해야만 수확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매일 밥을 먹으며 건강을 지키고 행복한 마음으로 인생을 즐기며, 쌀처럼 가치 있는 인간으로서 미수(米壽)인 88세까지 잘 살아야겠다.
온통 먹을 것 천지다. 들과 밭은 언제 겨울을 겪었냐는 듯 갖가지 식재료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식재료는 제철에 맞춰 먹는 게 좋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이 됐다. 5월 밥상을 장식할 식재료 중 챙겨서 먹을 만한 것과 그 음식이 갖는 효능에 대해 알아봤다.
미나리
미나리는 무침과 볶음, 탕 등 대부분의 한국 음식에서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활약하는 대표적인 나물이다. 한의학에서는 수근(水芹)이라고도 하는데 머리를 맑게 해주고, 대장과 소장을 잘 소통시키며, 갈증을 멎게 하는 효과가 있는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여성이 먹으면 대하(帶下)증 같은 부인병에 좋다. 또 황달, 혈뇨 등을 치료해주며 어린아이의 토사곽란(吐瀉霍亂; 구토와 설사가 함께 오는 증상)도 멈추게 한다. 미나리를 갈아서 만든 즙은 몸속에 잠복해 있는 열을 없애준다.
그러나 미나리를 식초랑 같이 먹으면 치아를 상하게 할 수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가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인류에게 사랑받는 채소 중 하나. 가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보라색 색소에는 ‘안토시아닌’이라는 강력한 항산화제가 포함되어 있어 암 예방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의학에서는 가지를 가자(茄子)라 부른다. 찬 성질을 지닌 식물로 몸의 열을 낮추는 작용을 한다. 그래서 몸에 열이 많거나 더위를 많이 타는 사람에게는 나쁘지 않으나, 지나치게 많이 먹거나 몸이 찬 사람이 먹으면 체할 수도 있다. 또 많이 먹을 경우 여성의 자궁을 상하게 할 수도 있으니 섭취량을 조절해야 한다.
가지 뿌리는 동상에 효과가 있어 약재로 쓰인다.
참소라
바다에서 나는 참소라는 지방이나 탄수화물이 적고 단백질이 풍부한 먹거리다. 특히 비타민A가 풍부해 건강에도 좋다. 참소라에 들어 있는 독특한 성분 중 하나는 이노시톨이다. 이노시톨은 비타민B 복합체 중 하나인데, 특히 간 건강과 빈혈에 좋은 비타민 B12가 가득 들어 있다. 또 타우린 성분이 많아 혈관 질환이나 당뇨병에도 도움이 된다. 노인이나 병후 회복기에 있는 사람이 소화에 부담이 될 때는 참소라로 국물을 내 마시는 것도 좋다. 지방이 적어 다이어트 음식으로도 사랑받는다. 참소라를 먹을 땐 부족한 식이섬유소를 보충해주면 좋은데 양배추, 양상추와 함께 먹으면 궁합이 맞는다.
#제철음식 #가지 #참소라 #미나리
봄기운 가득 머금은 제철음식으로 입맛도 돋우고 건강까지 챙겨보는 것 어떨까? 반찬 배달 앱을 이용한다면 더욱 손쉽게 한상차림이 완성된다. 대표적인 모바일 반찬가게 배민찬을 통해 근사한 밥상을 주문해봤다.
상품 제공 배민찬 식기 협찬 덴비 코리아
◇ 메뉴 정보
참소라 해파리냉채 쫄깃한 참소라를 더한 톡 쏘는 맛이 매력적인 해파리냉채. 1인분 300g. 8000원
생취나물 말리지 않아 촉촉하고 신선한 생취나물 무침. 2~3인분 100g. 3500원
스윗칠리 가지튀김 겉은 바삭 속은 촉촉한 가지튀김에 곁들이는 매콤달콤 칠리소스. 1~2인분 400g. 8000원
미나리와 매콤삼겹구이 매콤한 삼겹살과 아삭하게 씹히는 향긋한 미나리의 만남. 1~2인분 500g. 1만1000원
양배추쌈 + 땅콩쌈장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 양배추와 각종 너트로 맛을 낸 쌈장. 1~2인분 320g. 4800원
◇ 앱으로 톡톡, 맛있는 반찬이 집 앞에 짠!
한때 우스갯소리로 아내가 멀리 여행을 가면 커다란 솥에 사골을 한가득 끓여놓는다 했다. 홀로 식사하는 남편이 요리 솜씨가 없으니 사골로 끼니를 때우라는 것. 떠나는 아내도, 매번 같은 음식을 먹어야 하는 남편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반찬도 배달이 가능한 시대. 스마트폰 앱만 잘 활용하면 매일 신선하고 맛좋은 반찬을 쉽고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글 이지혜 기자 사진 제공 배민찬
STEP1. 배민찬 앱으로 반찬 주문하기
➊ ‘배민찬’ 앱 무료 다운로드
➋ 회원가입 및 로그인 가입 시 휴대 전화 번호 인증. 추후 카카오톡 아이디로 로그인 가능.
➌ 반찬 고르기 카테고리별 리스트 중에서 반찬을 고르거나 메인 페이지 상단 돋보기 아이콘을 눌러 재료나 반찬 이름 등을 검색해 원하는 메뉴를 찾는다.
➍ 상세정보 살펴보기 직접 눈으로 보고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궁금한 점이 많을 것이다. 상세정보 페이지에는 음식 가격, 상태(반조리, 완조리), 용량, 에디터 별점, 맛내기 포인트 등이 담겨 있다.
➎ 배송 정보 입력하기 배달할 제품을 장바구니에 넣고 나서 대략적인 배송 정보(수량, 금액 등)를 확인 후 ‘배송받는 날’을 입력한다. 일회성 구매도 가능하고, 주 단위로 원하는 요일에 정기배송 서비스로도 받아볼 수 있다(일부 제품 제외).
➏ 결제하기 배송지 주소 입력 후 결제를 진행한다. 신용카드 또는 무통장입금이 가능하다. 정기배송의 경우 각각 배송될 때마다 신용카드에서 금액이 자동결제되도록 설정할 수 있다.
STEP2. 맛있게 먹기
완조리 상태로 배송되는 반찬의 경우 별도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포장을 뜯은 뒤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된다. 몇몇 반조리 제품은 배송 포장에 적힌 매뉴얼(또는 앱 상세페이지에서 확인)에 따라 조리해 먹는다. 요리라기보다는 데우고, 익히는 정도의 수준이니 손맛이 없어도 괜찮다. 깨나 파, 고추 등 고명을 올리거나 예쁜 접시에 담아내면 손님맞이용 반찬으로도 손색없는 비주얼이 완성된다.
◇ 5월의 제철 식재료, 어디에 좋을까?
온통 먹을 것 천지다. 들과 밭은 언제 겨울을 겪었냐는 듯 갖가지 식재료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식재료는 제철에 맞춰 먹는 게 좋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이 됐다. 5월 밥상을 장식할 식재료 중 챙겨서 먹을 만한 것과 그 음식이 갖는 효능에 대해 알아봤다.
글 이준호 기자 도움말 강남동약한의원 이기훈 원장
➊미나리
미나리는 무침과 볶음, 탕 등 대부분의 한국 음식에서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활약하는 대표적인 나물이다. 한의학에서는 수근(水芹)이라고도 하는데 머리를 맑게 해주고, 대장과 소장을 잘 소통시키며, 갈증을 멎게 하는 효과가 있는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여성이 먹으면 대하(帶下)증 같은 부인병에 좋다. 또 황달, 혈뇨 등을 치료해주며 어린아이의 토사곽란(吐瀉霍亂; 구토와 설사가 함께 오는 증상)도 멈추게 한다. 미나리를 갈아서 만든 즙은 몸속에 잠복해 있는 열을 없애준다. 그러나 미나리를 식초랑 같이 먹으면 치아를 상하게 할 수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➋참소라
바다에서 나는 참소라는 지방이나 탄수화물이 적고 단백질이 풍부한 먹거리다. 특히 비타민A가 풍부해 건강에도 좋다. 참소라에 들어 있는 독특한 성분 중 하나는 이노시톨이다. 이노시톨은 비타민B 복합체 중 하나인데, 특히 간 건강과 빈혈에 좋은 비타민 B12가 가득 들어 있다. 또 타우린 성분이 많아 혈관 질환이나 당뇨병에도 도움이 된다. 노인이나 병후 회복기에 있는 사람이 소화에 부담이 될 때는 참소라로 국물을 내 마시는 것도 좋다. 지방이 적어 다이어트 음식으로도 사랑받는다. 참소라를 먹을 땐 부족한 식이섬유소를 보충해주면 좋은데 양배추, 양상추와 함께 먹으면 궁합이 맞는다.
➌가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인류에게 사랑받는 채소 중 하나. 가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보라색 색소에는 ‘안토시아닌’이라는 강력한 항산화제가 포함되어 있어 암 예방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의학에서는 가지를 가자(茄子)라 부른다. 찬 성질을 지닌 식물로 몸의 열을 낮추는 작용을 한다. 그래서 몸에 열이 많거나 더위를 많이 타는 사람에게는 나쁘지 않으나, 지나치게 많이 먹거나 몸이 찬 사람이 먹으면 체할 수도 있다. 또 많이 먹을 경우 여성의 자궁을 상하게 할 수도 있으니 섭취량을 조절해야 한다. 가지 뿌리는 동상에 효과가 있어 약재로 쓰인다.
남녘의 바다는 분주했다. 그도 그럴 것이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1월 말부터 2월 경까지가 매생이의 수확철이기 때문이다. 매생이는 가난했던 시절 김 양식장에 버려진 것을 뜯어와 끓여먹은 추운 겨울의 아침 국이었다. 이제는 웰빙 음식으로 거듭난 건강한 겨울 밥상의 메뉴가 되었다.
매생이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전남 장흥의 내저마을에 갔을 때는 겨울바람이 매섭던 날이었다. 시린 바람 속의 바다 입구에는 매생이를 채취하는 어민들의 움직임으로 활기가 넘쳤다. 이미 새벽에 채취해온 매생이를 선착장에 설치된 세척장에서 바삐 손질되고 있었다. 그리고 선별장으로 옮겨져 깐깐한 이물질 제거작업이 이어진다. 마을 실내 공동작업장에는 숙련된 마을 부녀자들이 재빠른 손놀림으로 400g 내외의 어른 주먹만 한 매생이 '재기'를 만들어 담고 있었다.
매생이는 생생한 이끼를 바로 뜯는다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추워지기 시작하는 11월 말쯤이 되면 채취를 시작한다. 작은 배를 타고 나가 갑판에 엎드린 채 발에 붙은 매생이를 뜯어내느라 어민들의 허리가 뻐근하지만 매생이는 추운 겨울 내저마을 어민들의 삶에 중요한 몫을 한다.
이런 작업 과정으로 우리의 밥상 위에 오르는데 양식이 매우 까탈스러운 해조류다. 깊은 심연이 아닌 가까운 물 위에 매생이를 붙게 하는 대나무발을 설치해 놓아야 한다. 특히 환경오염에 민감해서 오염된 바다에서는 생육이 불가능하다. 다행히도 장흥 대저마을의 앞바다는 최적의 조건을 가진 곳이다. 청정한 갯벌의 내해에서 자라기 때문에 맑고 푸른 남해의 건강한 안심 먹거리로는 최고의 무공해 식품이다.
이렇게 바다향기 가득한 매생이를 먹을 수 있는 시기는 그동안 겨울 한 철뿐이었다. 이제는 수산물 가공법이 발달해서 취급과 보관이 용이한 급속냉동 건조한 블럭스타일이 나와서 영양소 파괴없이 건강하게 사계절 먹을 수 있다. 칼로리가 적고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맛이 뛰어나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좋다. 특히 여행용으로도 요긴할 것 같다.
요리법이 간편해서 매생이굴국밥, 매생이전, 매생이죽, 매생이 파스타, 매생이 달걀말이... 등 다양하게 요리해서 먹을 수가 있다. 무엇보다도 그 부드러운 목넘김이 환상이다. 김도 미역도 파래도 아닌 것이 매생이는 펄펄 끓여도 부글거리거나 김이 나지 않아 방심하고 냉큼 후루룩 먹었다가는 입천장이 요절날 수 있다. 그래서 예전엔 미운 사위 매생이국이라는 재미있는 해학이 깃든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다.
겨울바람이 세차던 전남 장흥의 내저마을에서 먹었던 매생이는 겨울이 깊어질수록 맛이 더해진다고 한다. 역시 제철에 먹는 것이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인 듯하다. 수확이 한창이던 장흥 내저마을의 겨울바다는 활기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