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적인 병원 터는 어디일까. 아랍 의학의 아버지 라제스는 도시 곳곳에 신선한 고깃덩이를 걸어두고 장소를 물색했다. 가장 부패가 덜 된 고기가 걸린 곳에 병원을 세웠던 것. 한의사 김두섭 원장(62, 세종한방힐링센터)은 조용한 자연 속에 병원을 꾸리는 게 옳다고 봤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라는 생각으로. 해서, 자못 후미진 산속으로 귀촌했다. 굳이 외진 산골까지 찾아들 환자가 몇이나 될까마는, 그는 즐겁다. 자신의 지향과 실천에 만족하기에.
준비기간은 길었다. 귀촌을 내심에 담고 이미 십수 년 전에 터를 장만해뒀다. 젊으나 늙으나 사람의 대망(大望)은 주로 서울로 쏠린다. 하지만 일찌감치 산골살이를 숙원으로 삼은 김두섭 원장에겐 오직 귀촌이 소망스런 답이었던 거다. 공들여 낫을 갈고 나서야 땔나무를 벨 수 있다. 오랫동안 공들여 귀촌 준비를 해왔기에 본격적인 시동은 한결 가뿐했다. 드디어 산골에 들어가 시작한 건 4년여 전 군의관으로 근무했던 군생활을 마치고서였다.
육사 37기 출신으로 군에 들어가 대령으로 예편하기까지 흐른 세월은 37년. 군에서 인생의 절반쯤을 살았구나. 애당초 군에도 의업(醫業)에도 청운의 꿈을 묻은 바가 없었다지. 우연이 그의 길잡이였던 모양이다. 소싯적에 부풀린 청운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부자로 살고 싶다는 것, 그 하나였더란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성장기의 시골생활에 넌더리가 났기에.
“가난이라는 게 너무도 싫었어요.
9남매를 건사하느라 부모님은 모진 수고를 하셨지만 다들 늘 배를 곯았어요. 아, 나는 이다음에 농고를 나와 새마을지도자가 돼 돈을 벌 거야! 꿈이랬자 겨우 그쯤이었죠. 머리가 굵어지면서는, 그러니까 고3 땐 그 가당찮은 꿈을 버리고 해양대학을 가기로 맘먹었어요. 외항선을 1년만 타면 1억을 번다는 얘기를 듣고서였죠.”
“해양대학에서 육사로 목표를 바꾸었군요.”
“해양대학 입시 준비 중에 연습 삼아, 실력 테스트 삼아 육사 시험을 봤는데 묘하게도 덜커덕 붙었어요. 뜻을 두지 않았음에도 우연히 엉겁결에 육사 생도가 돼버린 겁니다. 그러나 곧 방향을 잃었어요. 육사 나와서 뭐하나? 농사 기술을 배울 곳도 아니고, 돈을 맘껏 벌 일도 못되고, 내가 지금 뭐하는 짓인가?
1학년 말에 그런 심각한 회의에 빠졌어요. 그러던 차 과외활동으로 참여한 동양철학반에서 침술을 만나게 됐습니다.”
“그게 한의사로 변신한 우연한 계기?”
“바늘 하나로 환자를 다루는 침술에 강렬한 흥미를 느꼈어요. 침을 잘만 배우면 돈을 모을 수도 있을 것 같았고, 그래서 열심히 침술을 익혔어요. 그러자 점차 한의학 전반으로 관심이 확장됩디다. 한의사가 되고 싶다는 포부가 생기더라고요. 결국 장교 임관 뒤 우여곡절을 거쳐 경희대학교 한의대에 들어가게 됐어요. 육본에서 운영하는 위탁교육생 자격으로 5년간 공부하고 졸업했죠.”
육사 생도와 운명처럼 만난 한의학
한의사 자격증을 받은 김 원장은 이후 줄곧 한방 군의관으로 복무했다. 전역 시의 직책은 국군수도병원 건강증진센터장. 건강증진! 그게 김 원장의 평생 소임이자 방향이다. 즐겁게 살지 않고서 건강할 수 없다. 건강하지 않고서 즐거울 수 없다. 생의 모든 명암은 어쩌면 몸 건강 문제에서 파생하거나 귀결된다. 불가의 통신에 따르면, 이 세계의 근본은 고(苦). 죽음 앞에 서 있는 게 생이지 않던가. 불친절한 죽음이 우리를 방문하는 날까지 가급적 건강을 지속하고자 용을 쓸 수밖에 없는 게 모든 살아 있는 존재의 숙명이다. 늘그막에도 삶은 때로 슬프도록 아름답다. 눈부신 노을빛처럼. 하나 몸은 부질없이 낡고 닳고 시들어간다.
머잖아 조락할 수밖에 없는 건강에 관한 쓸쓸한 사념은 낯선 게 아니다. 그러나 김두섭 원장의 생각은 영 다르다. 어허! 그게 아니오! 늙어서도 청년의 몸으로 살 수 있는 이치가 여기에 있는 것을! 그는 그리 탕탕 외치고 싶은 것 같다. 들어볼까. 경청해 모실 만한 대책이 흘러나올 수도 있으니.
“제가 내심 장담하는 게 뭐냐면, 난 얼마든지 장수할 자신이 있다, 칠팔십 살이 되더라도 청년처럼 건강한 몸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 겁니다. 지난 수십 년간 수많은 환자를 진료하고 치료하고 관찰했는데요, 늘 궁금했던 건, 일단 병 치료를 잘 마쳤더라도 일상생활로 복귀하면 다시금 병증이 도지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었어요. 이게 왜 이러지? 무엇이 원인이지? 궁리 끝에 내린 결론은 나쁜 생활습관이 근본 병인이라는 거였어요. 타성에서 벗어나 좋은 습관을 길들이는 게 무병장수의 첩경이라는 얘기.”
“매사 습관의 노예로 살다 스스로 궁지에 몰리는 게 사람이죠. 그걸 알면서도 쉬 고치지 못하는 게 인생이라는 희비극일 테고.”
“무엇보다 식습관부터 바꿔야 해요. 저의 식생활을 들어보실래요? 부디 따라 해보시길. 아침엔 잡곡밥을 지어 말린 뒤 프라이팬에 볶은 튀밥 형태의 밥 한 공기를 아주 천천히 먹습니다. 아주 천천히! 이게 핵심이에요. 천천히 먹기 위해 오래 씹어야만 목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좀 딱딱한 밥을 일부러 만드는 겁니다. 천천히 오래 씹을 경우 밥알에 침이 충분히 섞여 위장으로 내려갑니다. 입안의 침! 이거 놀라운 보약이에요. 침에 함유된 효소(酵素)와 프티알린(ptyalin). 이게 음식물이 위로 내려가기도 전에 입안에서부터 벌써 소화 작용을 해내는 겁니다.”
“침이 입안에서 소화 작업을 왕성히 하도록 음식물에 침을 충분히 섞어줘라? 그게 결국 위장기능을 극대화한다?”
“위장은 내장기관이라는 공장 시스템에서 중추 역할을 합니다. 위라는 장비가 부드럽게 가동할 경우, 위장이 튼튼할 경우, 오장육부가 평화로워져 온갖 병을 예방하거나 물리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겁니다.”
“점심도 저녁도 딱딱한 밥을 먹는 거예요?”
“지나친 음식 금욕은 오히려 스트레스를 가져오는 법. 점심은 몸이 원하는 대로, 먹고 싶은 대로, 최대한 잘 먹습니다. 밥상 가득 다양한 찬을 차려 식구들과 둘러앉아 천천히 즐겨요. 저녁엔 금식을 합니다. 밤엔 콩팥과 간이 하루치 독소를 거르기 위한 맹활약을 하거든요. 이럴 때 음식을 집어넣어 훼방을 하면 안 되는 겁니다. 정 출출하면 과일즙 한 잔을 마시면 되고.”
좋은 습관이 무병장수의 첩경
인생은 육십부터라지? 이젠 백세 시대라지? 성난 수말처럼 부지런히 뛰어 세상의 정글을 괴롭게 통과한 뒤의 노후란 실로 진정한 낙원의 삶을 누릴 찬스일 수 있다. 그러자면 건강해야 한다. 그래서 누구나 무병장수를 선망한다. 어떤 신들은 인간이라는 별난 종족이 오래 사는 걸 싫어할 수도 있다. 인간의 세력이 커지면 지상의 소음과 잡음도 그만큼 커지니까. 인간들 때문에 도대체 시끄러워 편히 낮잠을 잘 수가 없다니까! 그렇게 툴툴거리는 신도 있을 게 아닌가. 그렇다면 거북이보다 목숨이 짧고 플라스틱 바가지보다도 빨리 썩는 게 인간 몸뚱이임을 명석하게 알아 저승사자가 호명하는 대로 겸손히 응하는 게 순리일 성싶다. 하지만 욕망의 공식이라는 게 그렇게 간단하던가. 내남없이 한사코 병 없이 오래 살기를 숙원사업으로 여기지 않는가. 그 숙원사업을 성취하고 싶걸랑 아침밥만이라도 침을 담뿍 섞어 드소서! 김 원장의 훈수가 그렇다.
엄동설한에도 맨발로 돌아다니는 건각이 있다. 굳이 양말을 꿰신지 않아도 발이 이미 따뜻해서다. 이 사람은 벌목장에서 얻어온, 절집 대웅전 기둥만 한 통나무를 둘러메고 사뿐사뿐 행진한다. 절구통처럼 굵다랗게 토막 낸 통나무를 퍽퍽 도끼로 패 순식간에 장작을 만든다. 힘 좋기로 인근에 소문났다지? 이 중뿔난 장정이 바로 김두섭 원장이다. 난 아직 청년이오! 늘 그리 외치는 모양이다.
건강상태가 유난하니 귀촌의 나날이 영일(寧日)이다. 자연 속에 살고자 자원한 산골살이에 별다른 시름이 없다. 이게 거저 주어진 게 아니란다. 지난날 오랫동안 시난고난 지병에 시달렸단다. 의사라도 병을 달고 살 수 있는 일이지만, 여하튼 스타일 심히 구겼겠다. 그러나 그는 병을 털어냈다. 지병에서 해방되고서야 안심과 자족이 있는 일상을 누릴 수 있었다는 것이고.
“일찌감치 위장에 이상이 왔어요. 소위 시절부터 근 30년, 그 긴 세월을 위장병에 부대끼며 지냈어요. 그 덕분에 술이라는 걸 거의 마시질 못하고 군생활을 했어요. 위장이 비정상적으로 축 처져서 오는 소화 장애, 즉 심한 위하수증이었어요. 만성피로에 늘 시달렸죠. 원인은 과식에 있었는데 침, 뜸, 부황, 보약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도 소용이 없더라고요.”
“30년 된 병증을 결국 무엇으로, 어떻게 다스렸죠?”
“침이나 보약 같은 치료 수단은 결국 보조제에 불과하다는 걸 뒤늦게 알았어요. 즉, 나쁜 생활습관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건강을 회복하기 어렵다는 걸 깨달은 거죠. 간소하고 절제 있는 생활, 지나친 이기심에 사로잡히지 않는 정신, 자연을 마음에 담는 태도, 그런 게 좋은 건강과 좋은 삶을 가져온다는 겁니다. 식습관의 개선은 물론, 규칙적인 운동도 그 무엇에 앞서 중요해요. 귀촌 초기에 철저하게 식습관을 변화시키고 좀 격한 스트레칭을 하자 몸이 대번에 달라집디다. 현재 저의 몸 상태나 체력은 20대 시절보다 한결 낫습니다.”
고통이 엄습해도 얻어 채울 게 있다
이미 속세에 물든 범인으로선 모범적인 생활을 고수하며 살기가 쉽지 않다. 자기 억압적인 절제는 자칫 인생을 따분하게 만들 수도 있겠고. 조선의 거목 추사 선생은 사람이 마땅히 즐겨야 할 세 가지 일을 꼽았다. 첫째는 독서, 둘째는 음주, 셋째는 호색. 독서를 첫째로 친 걸 보면, 야야 놀더라도 공부는 하고 놀아라, 뭐 그런 뉴스가 아닐까 싶지만, 일테면 하늘과 땅의 결합을 지상의 인간들이 재연하는 신성한 의식이 성(性)이지 않겠는가. 김 원장의 생각을 들어볼까.
“노년에 이르러서도 주색을 참답게 사용하는 게 현명하겠죠. 그게 무질서에서 벗어난 것이라면 사랑의 범주에 들 테니까. 그러기 위해서도 건강하게 살자는 겁니다. 비아그라 없이도 행복하게 살자는 겁니다. 몸 건강이라는 기초공사를 충실하게 하자는 거, 가급적 자연 가까이로 귀촌해 온유한 품성을 기르자는 거, 저 숲속에서 상생하는 생명들처럼 나 혼자만이 아니라 남들과 함께 잘 사는 노후를 즐기자는 거, 이런 것들을 생각의 중심에 놓고 삽니다.”
생활습관을 바꾸라! 산속에서 맨발로 돌아다니는 남자의 입에 붙은 소리가 그렇다. 귀촌으로 모호한 낭만을 구가할 게 아니라, 몸을 남김없이 쓰는 노동으로 심신의 건강부터 복구하라는 얘기에도 뼈가 들어 있다. 편리 대신 불편을 추구해 기른 야성으로 자연을 닮으라는 권장 역시 대안이겠지.
“이런 생각 곧잘 합니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부족하기에 태어났겠지. 완벽했다면 이미 전생에 해탈했겠지. 그런 생각으로 불편과 고통마저 긍정하며 살고 있어요. 불편과 고통이 엄습했을 때, 내가 깨졌을 때, 그때 오히려 얻어 채울 걸 발견하게 되니까. 생활을 바꿀 수 있는 기회이니까.”
김두섭 원장이 주는 귀농준비 Tip
•검소한 생활을 작정하고 귀촌하자. 그게 자연에 가까워지는 길이다.
•가급적 모든 일들을 손수 처리하자. 인건비를 들여가며 남의 손 빌릴 것 없이 몸 단련 삼아 직접 노동을 하자. 젊게 사는 방법이다.
•감상적인 생각을 앞세운 귀촌은 실패의 첩경이다.
•처음부터 큰돈 들여 집 살 필요 없다. 일단은 세를 얻어 살며 차근차근 적응하는 게 옳다.
박원식 소설가
중앙대 문예창작과에서 배운 작가. 오랫동안 자연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대상을 좋아할수록 아득해지는 미스터리가 늘 그를 궁리하게 만든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안목을 얻는 일의 요원함을 실감한다. 그가 즐기는 것은 산촌의 적막, 암자의 풍경소리, 낯선 여행지의 선술집, 우연한 만남 등이다. ‘천년 산행’, ‘암자에서 듣다’, ‘산골로 간 예술가’ 등의 저서가 있다.
자고 나면 줄줄이 올라오는 다른 동년기자들의 글이 쌓여 가도록 생각의 언저리에서만 서성이고 있었다. 동년기자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글쓰기’에 대한 기본기를 다지고 싶었다. 무조건 해보자는 결단으로 글쓰기 강좌를 신청했다. 물론 기사를 쓰는 형식과는 다르겠지만, 기본 글쓰기가 능수능란해지면 기사에서도 ‘요것 봐라?’하는 재치를 가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인생2막 글쓰기’라는 강의 부제에 걸맞게 50대부터 80대까지의 학생이 모였다. 일주일에 한 번씩 총 8주 과정으로, 장르나 주제에 관계없이 글을 메일로 전송하면 선생님의 첨삭 출력물을 수업 전에 받아볼 수 있다. 30여 명 수강생 중에 보통 10명 정도의 작품은 선생님이 직접 읽고 학생들은 경청한다. 그러고 나서 토론을 하는데, 이때 나오는 이야깃거리가 아주 풍성하다.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자란 유년기를 풀어낸 글, 울음 끝에 웃음을 주는 글, 자신의 일터가 고스란히 담긴 글 등 각양각색이다. 그중에서도 수십 년 전 첫사랑 얘기는 단골 메뉴다. 조각보 같은 학생들의 재주에 감탄이 이어진다. 그 틈에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맛에 다음 시간이 더 궁금해지기도 한다.
하필 폭염기와 수강 기간이 겹쳐 힘들기도 했다. 그런 중에도 대전에서 KTX를 타고 다닌다는 유치원 원장님은 술떡을 한 상자 해 오셨다. 그다음 주는 다른 수강생이 달걀을 삶아 왔고, 누군가는 찰떡을 가져오는 등 수업 내내 간식이 끊이질 않았다. 그런 학생들의 인정과 열정 덕에 지치지 않고 공부할 수 있었다. 마지막 수업을 남겨두고는 가는 더위마저 퍽 아쉬웠다.
글쓰기를 배우려면 책으로 독학할 수도 있고, 강연을 찾아갈 수도 있다. 또, 이런 수업을 통해 자신의 글을 여러 사람에게 보여주고 느낌을 나누며 전문가에게 조언을 얻는 방법도 있다. 내 글의 민낯을 보이는 과정이 어쩌면 부끄러울 수도 있지만 토론과 개별 첨삭은 우등생이 되기 위한 오답노트 같기도 하다. 달고 쓰게 공부한 노트가 켜켜이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글 좀 쓴다는 속 빈 격려라도 받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수업 내내 기록이 꼼꼼해지고 귀가 쫑긋해졌다.
우선 펜을 잡아 보자는 생각으로 나선 글쓰기 수업이었다. 하루 한 시간 무조건 써보는 작은 습관이 중요함을 인정하게 됐다. 처음엔 잡지 기사를 잘 써볼 요량으로 시작했지만, 어쩌면 그 이상의 더 큰 무언가가 뭉게뭉게 피어오를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바라고 원해서 한 일인 만큼, 글쓰기가 나에게 인색함 없는 행복을 한없이 안겨 주리라 생각한다.
결혼 30년 차 부부가 황혼이혼을 할 지경이 되어 저를 찾아왔습니다. 아내는 그동안 남편의 고약한 성격으로 인한 막말과 냉대를 참고 살아온 게 억울하다면서 남은 인생을 좀 더 자신을 위해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그동안 가족을 위해 회사에서 온갖 눈치 보며 열심히 살아왔는데 은퇴 후 힘 빠지고 경제력이 없어지니까 아내의 잔소리와 구박이 서럽고 헛살아온 것 같아 서글프다고 했습니다.
이들의 불행은 과연 아내가 주장하는 대로 성격차이일까요? 아니면 남편이 주장하는 대로 ‘남편을 돈벌어오는 기계로 여겨온’ 아내의 이기심 때문일까요? 답은 둘 다 아닙니다. 결혼에 대해 47년간 3000쌍을 연구해온 부부 관계의 세계 최고 전문가인 존 가트맨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이혼은 성격 차이나 부부 싸움의 내용과 무관하다고 합니다. 불행과 이혼의 가장 큰 원인은 서로 소통하는 방식, 즉 대화하는 방식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세 치 혀가 사람 잡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트맨 박사의 연구 결과와 상당히 일치하는 말입니다.
대화의 기본 3유형
가트맨 박사는 행복한 부부와 이혼하는 부부의 가장 큰 차이는 평소에 얼마나 서로 정서적 소통을 잘하는가, 갈등이 있을 때 얼마나 문제를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다루는가에 달렸다고 합니다. 기본적으로 부부의 대화는 다음 3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서로 원수 되는 대화’, ‘멀어지는 대화’, 그리고 ‘다가가는 대화’입니다.
‘원수 되는 대화’란 상대의 말에 즉각 반박하거나 비웃는 말투입니다. 예를 들어, 아내가 “여보, 오늘 미세먼지가 심하다는데 마스크 하고 나가세요”라고 말했을 때, 남편이 “잔소리 좀 그만해! 내가 알아서 할 테니”라고 말하는 것은 아내의 배려를 일축하고 반박하는 원수 되는 대화의 말투입니다. 이런 원수 되는 대화는 상대에게 분노와 적개심을 일으키게 하며 서로의 스트레스를 높임으로써 점점 언성이 높아지거나 대화를 중단하게 만듭니다.
‘멀어지는 대화’란 상대의 말과 상관없는 화제로 바꾸거나 무시하는 말투입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아내에게 “어, 배고프다. 먹을 것 좀 없나?”라고 말하는데 아내가 “이번 주 조카 결혼식 가는 것 잊지 마세요”라며 전혀 상관없는 말을 하는 것이지요. 이런 멀어지는 대화는 말을 꺼낸 사람의 기분을 머쓱하게 만들며 정서적 거리감을 만듭니다. 놀랍게도 외도의 첫걸음은 멀어지는 대화에서 비롯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을 만큼 이런 사소한 대화 방식과 말투가 반복되고 누적될 때 그 영향은 참으로 고통스럽고 불행한 관계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다가가는 대화’란 어떤 것일까요? 상대의 말에 관심을 보이며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말투입니다. 예를 들어, 아내가 “여보, 운동하러 나갈까?” 할 때, “좋지. 나도 운동하고 싶었는데”라며 호응하는 것입니다. 연구 결과 ‘다가가는 대화’는 스트레스를 낮추며 서로 한편이 된 것 같은 정서적 유대감을 키우는 효과가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이혼을 초래하는 4가지 ‘독’
갈등하는 부부들은 상대의 입장과 의견, 감정 등을 충분히 듣기보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압도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대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말허리를 끊거나 자신의 입장을 밝히거나 조언을 하는 따위는 서로 말해봤자 상처만 받고 피곤함만 가중할 뿐입니다. 특히 다음과 같이 비난이 담기거나 방어적이거나 경멸적인 말은 이혼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당신은 도대체 어떻게 된 사람이~ (비난)
•당신은 지금까지 항상, 한 번도, 결코, 절대로, 늘… (비난)
•난 아무 잘못 없는데 왜 만날 나보고 뭐라고 해? (방어)
•우리 집은 너만 고치면 돼. (방어)
•어쭈?! (경멸)
•주제 파악이나 하시오! (경멸)
•복에 겨운 줄 알아! (경멸)
•눈을 흘기거나 피식 비웃음. (경멸)
•침묵 (속으로는 ‘또 시작이군.’) (담쌓기)
•침묵 (속으로는 ‘제발 그만 좀 해.’) (담쌓기)
•침묵 (속으로는 ‘차라리 나가는 게 낫겠어.’) (담쌓기)
이렇게 비난, 방어, 경멸, 담쌓기의 방식을 사용하는 부부들은 결국 94% 이혼으로 끝난다고 합니다. 한 가지씩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비난은 상대의 성격과 인격에 문제가 있다는 투로 말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도대체 어떻게 된 사람이 왜 만날….” 이렇게 말하는 것은 비난입니다. 방어는 책임 전가와 반격으로 “그러는 당신은 뭘 잘했는데?”, “당신도 그러면서 왜 나한테만 뭐라고 하는 거야?”라고 반박하는 태도입니다. 싸움의 불씨를 점점 확산시키지요. 경멸은 상대를 나보다 못나거나 어리거나 하인 취급하는 것입니다. “못생겼다”, “아는 게 없다”, “어쭈, 주제 파악 좀 하시지” 같은 조롱과 비웃음을 섞기도 하는데 이런 행동은 상대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끝으로 차라리 말 안 하는 게 상책이라 여길지 모르지만 담쌓기 또한 이혼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서로 눈 마주치지 않기, 말 안 하기, 전화기 꺼놓기, 늦게 들어오기, 각방 쓰기, 별거 등은 부부 사이에 감정적 거리감과 단절감을 증폭해 결국 이혼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독이 되는 말들은 부부 사이에 부정적 감정이 쌓이게 만들고 부정성을 키웁니다. 그러면 부부 사이에 감정적 조율이 되지 않고 서로 원망, 탓, 미움, 분노 등으로 더욱더 걷잡을 수 없이 관계가 나빠지고 감정적 거리감과 단절감에 휩싸여 절망과 불행감이 증폭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됩니다. 결국 부부 사이에 공유하는 부정적 감정의 총량이 이혼을 결정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부부가 그동안 열심히 일하고 돈을 모아 재정 통장을 불리려고 애써온 만큼 서로에게 감사·배려·관심·호감·존중 등 관계의 ‘정서 통장’을 채우는 데도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관계가 윤택하고 풍요로워집니다. 연구에 의하면, 행복한 관계를 유지하는 부부들은 다툴 때도 긍정성이 부정성보다 다섯 배 더 많이 보이며, 평소에는 이보다 더 높은 긍정성을 쌓아둔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실제로 관계의 긍정성을 쌓기 위해 소요되는 시간은 하루에 5~7분 정도로 충분하다니 해볼 만하지 않습니까?
행복한 부부의 소통 방식
그렇다면 행복한 부부들은 어떻게 소통을 할까요? 아니, 불행한 부부라도 어떻게 하면 관계를 다시 신혼 때처럼 다정하게 돌이킬 수 있을까요? 다음은 부부 사이에 긍정성을 높이는 대화 방식입니다.
먼저 말을 부드럽고 조용히, 천천히 하십시오. ‘너’ 또는 ‘당신’으로 시작하지 말고 ‘나’로 시작하는 ‘나-전달법’으로 느낌을 전하고, 욕구 표현을 긍정적으로 하십시오.
•당신을 비난하려는 뜻이 아니고 내가 힘들어서 말하는 거예요.
•나는 ~이 두렵고 걱정이 돼요.
•내가 당신에게 가장 바라는 것은….
•그렇게 말하니까 야단맞는 기분이 들어. 좀 부드럽게 말해주면 좋겠어.
•부드럽게 말하려 해도 잘 안되네. 다시 해볼게.
신뢰감과 친밀감 증진을 위한 처방
가트맨 박사는 오래도록 행복하고 안정적인 결혼을 하는 부부들은 열정이 아닌 우정지수가 높은 사람들이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부부 사이에 우정지수를 높이려면 1)사랑의 지도, 2)호감과 존중, 3)다가가는 대화 등 3가지를 실천해보세요.
‘사랑의 지도’를 넓혀나간다
사랑의 지도란 서로의 내면세계를 잘 안다는 것입니다. 서로 무엇을 누구를 좋아하고 싫어하거나, 어떤 꿈을 지니고 있고, 어떤 상처와 프라이드를 지녔는지 관심을 갖고 물어봐주며 기억하는 것입니다. 배우자의 내면세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알고자 하는 것이 긍정성(우호감)을 쌓는 기초입니다. 예를 들어 배우자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친구를 가장 신뢰하는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경험은 무엇인지, 꼭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인지, 요즘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일이 무엇인지 등 관심을 갖고 모르면 묻는 것입니다. 물론 따지듯 묻는 것이 아니라 애정 어린 관심과 호기심을 갖는다는 것이지요.
남녀의 차이를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남자와 여자의 뇌는 쉬는 방식이 다릅니다. 할 일이 산더미 같은데 일부러 못 본 척, 모른 척하는 것은 남성의 뇌가 쉴 때는 전깃불이 나간 것처럼 거의 작동을 안 하기 때문이지요. 반면 여성의 뇌는 가장 편안한 상태에서도 계속 활동을 합니다. 남자가 바쁘게 일할 때의 뇌 활동량과 맞먹을 정도로요. 따라서 남편에게 일을 시킬 땐 한 번에 한 가지씩 간단명료하게, 그러나 부드럽게 요청해야 합니다. 핵심은 비난이나 불평이 아니라 부탁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당신은 도대체 어떻게 된 사람이 한 번도 설거지를 해주지 않냐?!”라고 말하는 것은 비난입니다. 부드럽게 ‘나-전달법’으로 요청해보십시오. “저녁 설거지만이라도 당신이 좀 해주면 내가 덜 피곤할 것 같아요”라고 말입니다. 같은 내용이지만 반응은 매우 다를 것입니다. 그리고 작은 실천에도 진심으로 고마워하면 서로에게 긍정성이 쌓여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오게 됩니다.
서로의 장점을 찾아라
부부 사이가 나빠지면 서로를 ‘쓰레기’ 취급한다고 합니다. 함부로 대하고 막말을 하고 ‘다른 사람과 결혼할 걸~’ 하면서 후회하기도 하면서 남과 하향비교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 우선 자신의 장점을 50가지 찾은 후 배우자의 장점을 50가지만 찾아보십시오. 장점을 적다 보면 어느새 ‘소중한 보물’들을 간직한 배우자가 귀하고 고맙게 여겨지고 애틋한 마음이 생깁니다. 외도로 파탄이 나서 별거 중이던 부부에게 장점찾기를 과제로 줘 극적으로 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저는 무수히 보았습니다(물론 이후의 상처 치유에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지요).
고마움을 자주 느끼고 표현하고, 배우자의 단점보다 긍정적인 면을 포착하는 습관을 지니세요. 다가가는 대화를 매일 조금씩 자주 하세요. 또 서로 예민한 부분을 감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다가가는 대화(경청과 수용)를 하라
다가가는 대화의 한 예를 들면, 배우자가 스트레스를 엄청 받아서 말할 때 일단 불평과 불만을 잘 들어주는 것입니다. 배우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에 골몰하지 말고 먼저 상대의 말을 충분히 듣고 상대의 관점과 욕구를 이해합니다. 상대의 말을 듣고 감정을 확인한 뒤에는 다음과 같이 응답합니다.
•“정말 힘들었겠네.” (화났겠네, 슬펐겠네, 억울했겠네 등의 감정 수용)
•“당신 입장으로 보면 그럴 수 있겠네….” (관심을 표현하고 입장 수용)
•“나 같아도 그런 상황이었다면 화가 났을 거야.” (공감)
•“당신은 그 일에 대해 어떻게 하고 싶은데?” (의견 존중)
•(배우자의 제안에 동의한다면) “정말 좋은 생각이네.”
•(상대의 제안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런 방법도 있겠네. 또 다른 방법은 없을까?”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지지와 협조)
대화 중 질문을 할 때는 따지거나 반박하기 위함이 아니라 정말 알고 싶어서 묻는 것이어야 합니다. 위협하지 말고 안전감을 증진하는 분위기가 중요합니다. 상대의 적이 아닌 동지가 되는 말이 좋습니다. ‘우리’라는 단어의 위력은 아주 큽니다!
사랑, 열정, 로맨스를 증진하는 방법
구애는 결혼 전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혼 후에도, 결혼한 지 오래되어도 구애를 계속해야 됩니다. 마치 씨앗을 뿌린 후에 계속 지켜보고 물을 주면서 가꾸듯 관심과 돌봄이 이어져야 관계도 성장하고 꽃이 핍니다. 배우자가 아직도 사랑스럽고 매력적이라는 말을 때때로 상기해줍니다.
•“당신이 나한테 가장 사랑스럽고 매력적으로 보일 때는…”이라는 말을 해보세요.
•상대가 나한테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시, 노래, 선물, 카드, 문자 등으로 표현하세요.
•신체적, 언어적 사랑의 표현을 자주 하세요(어깨 주물러주기, 발 마사지, 간지럼 태우기 등).
•사랑을 나눌 때 (특히 시작과 끝에) 둘만의 리추얼(ritual)을 만들어보세요(촛불, 와인, 아로마 등).
•다양한 사랑 표현 방법을 찾고 시도해봅니다. 놀이, 선행, 여행, 추억 만들기, 상대의 부모형제에게 잘하기 등도 긍정적 감정을 쌓는 방법에 포함됩니다.
집도 애정을 갖고 가꾸고 돌봐야 망가지지 않듯 부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 부부는 아침에 눈뜨면 먼저 깬 사람이 상대의 손이나 발을 약 20초 주물러줍니다. 아침에 서로 헤어지기 전에 6초간 포옹을 합니다. 왜 6초냐구요? 그래야 여자에게는 옥시토신, 남자에서는 바소프레신이라는 ‘연결 호르몬’이 나오기 때문이지요. 낮에 한두 번 간단한 문자로 고마움을 표현하고 저녁 때 만났을 때 “오늘 하루 어떻게 지냈어?”라고 물어주고 서로 위로해주고 공감해줍니다. 그리고 저녁에 뉴스를 보거나 잠들기 전에 아침에 늦게 일어난 사람이 30초 정도 어깨를 주물러줍니다. 하루 몇 분 정도만 노력을 들여도 ‘정서 통장’은 불어납니다. 이런 정서적 자산이야말로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이 아닐까요?
여러분 가정의 평화와 행복을 기원드립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 우리 속담의 하나로 새겨 볼 만하다. 선무당은 '서툴고 미숙하여 굿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무당'을 뜻한다. 의술에 서투른 사람이 치료해 준다고 하다가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게 되니 함부로 나서지 말라는 의미를 지닌다. 스스로 생각하기엔 다 잘 아는 것 같아도 실제 능력이 모자라 제구실을 할 수 없음을 모른다. 함부로 나서다가 오히려 큰일을 저지르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어설픈 선무당이 작두를 타다가 발을 베었다’, ‘경제에 대해 아는 것도 없는 그가 경제에 대해 아는 척을 하니 선무당이 따로 없다’ 등으로 쓰인다. 실제 우리 생활 주변에서 선무당을 종종 만나게 된다.
나이가 들면 대체로 나서기를 좋아하고 때로는 노파심이란 변명을 전제로 깔기도 한다. 그런 탓에 젊은이에게 잔소리 많은 ‘꼰대’라는 비칭을 듣는다. 장기판에 둘러서서 구경하는 사람 중에 뺨을 맞으면서도 훈수꾼이 나서는 이유다. 골프연습장에 가면 그런 경우를 많이 본다. 신입 회원이 나타나면 엊그제 배우기 시작한 사람도 한 수를 거들고 싶어 안달한다. 넓게 생각하면 관심일 수 있으나 훈수를 듣는 초보자에게는 간단하지만 않다. 배움의 시작점에서 제대로 익혀야 기술을 빨리 연마할 수 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듯 최초에 잘못 배우거나 알게 되면 이를 다시 고치기가 쉽지 않다. 선무당이 사람을 잡는 큰일은 아니어도 상대가 어려움에 빠지게 된다. 남을 가르치거나 조언해줄 땐 신중히 해야 한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아는 척해도 초보자는 진실을 알 수 없고 가르치는 사람의 고마운 마음을 받아들이려 하기에 이야기를 경청한다.
최근에 필자는 어느 취미활동 연극단이 공연 준비하는 창극단에 배우로 캐스팅되어 연습하고 있다. 한 배역을 맡은 여인이 나름의 지식으로 다른 배우들에게 훈수를 자주 한다. 예를 들면 극 중에 대사를 할 때 함께 무대에 오른 대화 상대인 배우보다 관객을 보고 말을 하라고 수차례 조언한다. 순수 아마추어인 다른 배우들은 그 말에 따라 연습을 해왔다. 한 달 정도의 연습 기간이 지났으니 그런 태도가 몸에 뱄다. 필자는 연극을 한 경험이 몇 번 있어 관객을 보기도 하야야 하나 대화 내용에 따라 달라져야 함을 잘 안다. 무대에 나와 대화를 하는 상대를 보기보다 관객 쪽으로 고개를 돌려 대사를 하니 어색할 수밖에 없다.
더 좋은 공연을 위하여 연극 전문 교수를 초빙하여 연습을 지켜보게 하고 조언을 듣는 기회를 얻었다. 교수의 첫 번째 지적은 관객을 주로 향하여 대화하는 배우들의 시선 처리였다. 극 중 대화의 가장 바람직한 시선 처리는 앙상블이라 했다. 평소 대화하듯 하면 된다는 점이었다. 선무당이 사람 잡듯 서투른 지식으로 다른 사람을 지도함으로써 다시 고쳐야 하는 번거로움을 준 사례다. 남을 가르치는 일은 좋은 재능기부다. 섣부른 지식을 바탕으로 하게 되면 이중 삼중의 시간 낭비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다시 고쳐야 하는 번거로움을 준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남을 가르칠 땐 신중함을 잃지 말아야 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이 올바른지, 맞는 기법인지를 정확히 한 후에 알려주어야 한다. 제2 인생을 살아가는 시니어에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라는 속담은 다시 되뇌어 볼 필요가 있지 싶다.
커뮤니케이션 학자 앨버트 메라비언(Albert Mehrabian)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이 말을 잘한다고 느끼는 데 영향을 주는 요소는 목소리(38%), 표정(35%), 태도(20%), 논리(7%) 순이다. 즉 말주변이 없어 고민하는 이들도 목소리와 표정, 제스처 등을 신경 쓴다면 충분히 말 잘하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것. 임유정 라온제나 스피치 대표에게 자가 목소리 진단과 개선 방법 등에 대한 조언을 들어봤다.
도움말 임유정 라온제나 스피치 대표
일러스트 원앤원북스 제공 참고 도서 ‘성공을 부르는 목소리 코칭’(임유정 저)
STEP 1 내 목소리도 문제가 있을까?
임유정 대표는 “중장년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그동안의 삶이 녹아 있다”며 “목소리가 따뜻하고 여유 있는 이가 있는 반면, 톤이 높고 빠르며 독단적인 말투를 지닌 이도 있다”고 설명했다. 나이가 들수록 오랜 세월 자기 목소리와 표정에 익숙해져 문제점이 있더라도 잘 모르거나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임 대표가 코치한 한 기업의 대표 A 씨는 평소 사람들에게 무섭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A 씨 자신은 왜 그런 인상을 주는지 몰랐다는 것. 이에 임 대표는 몰래 그가 대화하는 모습을 찍어 보여주었는데, 그제야 사람들의 반응에 수긍했다고. 이렇듯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와 표정, 제스처가 다른 이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줄 수도 있다. 이 점을 인식하고 개선 의지를 갖는 것이 좋은 목소리를 향한 첫걸음이다.
STEP 2 ‘자기 경청’을 통한 목소리 자가진단
A 씨처럼 우연히 녹음된 자기 목소리를 들으면 “내 목소리가 원래 이런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신의 목소리나 표정, 제스처를 점검해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자기가 말하는 모습을 직접 동영상으로 찍거나 대화를 녹음해 살펴 듣는 것이다.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자기 경청을 통해 스스로 문제점을 인식하고 노력하다 보면 발음과 발성이 좋아지고, 대화의 호흡을 맞추는 방법도 자연스레 익히게 된다.
✽자기 경청 SLRF 법칙: S-말하기(speaking), L-듣기(listening), R-인정하기(recognition), F-강화하기(finding)
STEP 3 몸의 언어를 향상하는 방법들
나에게 맞는 키톤 찾기 내게 맞는 자연스러운 키톤으로 말했을 때, 듣는 사람도 편하게 들을 수 있다. 먼저 편안하게 선 자세를 취한다. 어깨를 내려 몸의 긴장을 풀자. 몸이 너무 긴장되어 있으면 내 몸을 울려 소리를 낼 수 없다. 팔을 아래로 툭툭 털고, 명치라고 불리는 공명점(맨 아래 갈비뼈 중간 지점)을 누른다. 이 상태로 “아~” 하고 소리를 낼 때 나오는 편안하고 안정된 음이 자기 몸에 맞는 키톤이다.
1) 말투와 제스처는 동그랗게
발성학자들이 꼽는 가장 좋은 목소리는 ‘동그란 목소리’라고 한다. 주변 사람들 중 말을 할 때 자신감 있으면서도 겸손하게 들리는 목소리가 있다면, ‘동그란 목소리’일 가능성이 높다. 말과 제스처는 짝꿍이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말투가 아닌 부드럽고 교양 있는 동그란 목소리와 제스처에 익숙해지자.
2) ‘고현정 표정 100종 세트’ 따라 하기
표정이 좋아지는 방법은 딱 하나다. 말하는 내용에 맞게 표정이 잘 따라가주면 그만. 희로애락에 따라 다양한 표정을 짓는 훈련이 중요하다. 평소 얼굴 근육을 스트레칭을 해둬야 다채로운 표정을 자연스럽게 지을 수 있다. 인터넷 포털 검색창에 ‘고현정 표정 100종 세트’를 쳐보자. 검색한 이미지를 보고 따라 하면 도움이 된다.
STEP 4 눈에 보이지 않는 말의 기술
1) 어휘보다는 에피소드를 늘리자
한 분야에만 종사해온 이의 경우 자기 일에 관한 이야기는 술술 털어놓는 반면, 그 외의 대화에는 자신 없어 하곤 한다. 말은 소재, 즉 에피소드가 많아야 한다. 여러 사람을 만나고 대화할수록 에피소드는 더욱 다양해지기 마련. 특별한 소재가 없다면 공감과 질문 기법을 활용하자. 상대 이야기를 들으며 “그래요? 대단한데요”라고 공감하거나 “참 힘들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라고 질문하다 보면 한결 여유롭게 대화를 이끌어갈 수 있다.
2)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뉘앙스도 중요
자기 경청을 통해 단순히 목소리나 발음만 듣는 것이 아닌 말의 뉘앙스를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 임 대표는 “스피치란 내용과 표현으로 이루어져 있다”며 “가령 배우자에게 ‘당신 참 대단해’라는 말도 진정성 있게 하는 것과 비아냥거리듯 표현하는 것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고 조언한다. 아무리 발성, 발음, 톤이 완벽했더라도 이러한 뉘앙스로 인해 상대가 불쾌해하거나 말뜻을 오해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상황별 목소리&제스처 코칭
#1 취임식 스피치를 할 때
취임식에서는 “이런 중책을 맡게 되어 정말 감사하다”, “앞으로 정말 열심히 하겠다”라는 감사함과 열정의 목소리를 가득 표현해야 한다. 첫인사를 할 때는 부드러운 목소리, 중·후반부에는 강력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가 필요하다. 원고를 미리 준비했다면, 보고 읽는다고 해서 리듬이 너무 빠르면 안 된다. 오히려 천천히 하나하나 또렷이 읽어야 책임감이 강한 목소리로 들린다. 또 중간중간 쉼을 줘야 한다. 특히 문장 끝머리에는 고개를 들어 청중을 바라본다.
#2 건배사를 할 때
신년회, 송년회, 동창회 등 각종 모임에 가면 으레 건배사를 한다. 자신감 없는 건배사로 흥을 깨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열정 가득한 건배사로 흥을 돋운다. 알다시피 건배사를 할 때는 목소리가 일반 말하기 볼륨보다 커야 한다. 그러나 천천히 말하는 것이 관건이다. 빠르게 말하면 너무 준비한 티가 나기 때문이다. 여유롭게 말하되, 끝에 건배 제의를 할 때는 더 큰 목소리로 카리스마 있게 외쳐야 한다.
#3 결혼식 주례사를 할 때
주례사를 할 때는 어떻게 주례를 맡게 됐는지 그 사연을 오프닝에 넣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신랑·신부에 대한 애정, 양가 부모를 향한 존경심을 가득 담아 말하되, 자기 자랑이나 ‘이렇게 살라’는 훈계는 절대 사절이다. 내용은 “첫째, 서로 대화를 많이 하자. 둘째 ~ 셋째~” 이런 식으로 크게 3가지로 압축해서 말하는 것이 좋다. 하객과 함께할 수 있는 퍼포먼스도 넣어보자. 박수를 유도하거나 말을 따라 하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4 모임에서 자기소개를 할 때
자기소개가 너무 길면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사람들의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방이 자기소개를 할 때 ‘난 뭐라고 이야기하나?’ 하고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축축 처지는 일정한 톤이 아니라 생기 넘치는 리듬감을 넣어서 말한다. 자기소개 목소리는 무조건 ‘반갑다’는 친근감이 들어 있어야 함을 잊지 말자.
>>임유정 라온제나스피치 대표
CEO스피치코칭(삼성, LG, 현대, SK외 대기업 다수 코칭), 스피치 스타일, 보이스 스타일, 소통 대화법, 프레젠테이션, 미디어 트레이닝 등 다방면에서 강의를 펼치는 스피치코칭 전문가. 저서로는 '스피치 트레이닝 60일의 기적', '트겹ㄹ한 순간, 리더의 한 말씀', '성공을 부르는 스피치 코칭', '성공을 부르는 목소리 코칭' 등이 있다.
SNS를 통해 솔깃한 소식이 들려왔다. 젊은 시절, 사회에서 한몫 제대로 하던 시니어들이 뭉쳐 모종의 계획(?)을 꾸민다고 했다. 앉아서 말로만 걱정할 게 아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밖으로 나가 세상 이야기를 들어보자. 세대와 이념, 종교를 떠나서 터놓고 우리 얘기 좀 해봅시다!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음 세대에게 불안하지 않은 미래를 물려주고 싶다는 이들이 모였다. 열정만큼은 청춘인 60대 이상 시니어가 주축인, 이름하여 ‘한반도평화만들기 1000인 은빛순례단(이하 은빛순례단)’이다.
갈등을 넘어서 마주 보다
“걸으면서 세상과 나누고 귀를 기울이는 행동을 하자.”
이런 의견이 모인 것은 작년 9월 지리산 실상사에서 있었던 연찬 모임에서였다. 남북에 불어온 훈풍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던 시기였다. 한반도 전쟁 위기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흘러나왔고 이 땅을 물려받을 미래 세대를 위해 뭔가해보자며 의견을 모은 것이 ‘은빛순례단’을 탄생시켰다. 지난 3월 1일 서울 승동교회에서 성대하게 출발 행사를 치르고 난 뒤 은빛순례단의 첫 번째 행보는 국립 현충원 참배였다. 호국영령을 모신 현충원은 엄숙한 장소이면서도 정치 대립이 극명한 곳이다. 소위 내 편의 영령만 찾아가 고개를 숙이고 참배한다.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이부영 이사장은 은빛순례단으로 발을 떼면서 난생처음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를 찾았다.
1974년 동아일보에서 해직된 뒤 민주화운동에 투신하다 민주당 국회위원을 지낸 인물. 그가 박정희 묘역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고 말하면 놀랄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한 이부영 이사장은 “마음이 복잡했지만 이것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우리 역사가 또 다른 질곡 속에서 갈등과 대결을 되풀이할 뿐이라 생각했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 참배로 인해 마음속 무엇인가가 씻겨나간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단순히 분노와 적개심이 아니라 이해와 성찰, 현재의 과제를 생각하게 해준 계기였다고. 이를 옆에서 지켜본 도법 스님(조계종 화쟁위원회 위원장)은 감동적이었다고 했다. 일생 지켜왔던 자기 원칙을 깨기란 쉽지 않은 나이이기 때문이다.
은빛순례단의 운영단장을 맡고 있는 수지행 실상사 기획실장도 현충원 방문이 꽤나 충격적이고 놀라웠다고 말했다. “애국지사 임정요인(臨政要人) 묘역에서 돌아가신 대통령의 묘역 말고도 신돌석 의병장, 홍범도, 김규식 등의 묘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며 “우리나라를 지킨 분들 또한 잠들어 있는 곳인데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새해 어떤 정당인이 누구의 묘소에 참배했는지 그 사실에만 가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박정희 대통령을 두고 부정적 시각으로 적대시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 또한 인정하고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은빛순례단의 생각이다. 이후 은빛순례단은 몽양 여운형 선생 묘소와 4·19 기념탑을 참배하고 종교계 인사를 만나는 등 비교적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4월에는 충주, 충북 음성, 옥천, 영동 등지에서 걷기 순례와 연찬, 방문 순례를 했다. 5월에는 전남 일대를 돌며 평화의 소중함을 알렸다.
도법 스님과 느리게 함께 걷는다
인천 지역에서 은빛순례단 걷기 모임이 있던 날, 도법 스님과 수지행이 지하철을 타고 이동한다기에 함께 가기로 했다. 이날은 문화해설사와 함께 인천 차이나타운 일대를 걸으며 개항의 역사를 비롯해 한국전쟁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 역사 탐방으로 꾸며졌다. 60세 이상을 은빛, 이하를 금빛이라 칭하는 은빛순례단. 은빛과 금빛이 어울려 신구 세대가 함께 조화롭게 어울려 걷는 아름다운 동행이었다. 은빛순례단은 3·1운동 100주년인 내년까지 연찬 모임, 방문 순례, 걷기 모임 등을 통해 세상과 경계 없이 나누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행동을 이어나간다. 이날 모임에는 도법 스님 외에도 이삼열(대화문화아카데미 이사장)·손이덕수(디자인 아티스트) 부부, 정세일(생명평화기독연대 공동대표) 씨 등 은빛순례를 함께하고자 하는 50여 명이 동참해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도법 스님이 세상을 향해 얼굴을 든 것은 20여 년 전. 지리산 댐 건설 반대운동을 펼치던, 지리산 실상사 주지 시절이었다. 2004년에는 주지 자리를 내려놓고 탁발순례길에 나서기도 했다. 깨달음과 가르침을 찾아 전국을 누비고 세상과 마주했다. 수지행은 도법 스님을 도와 일정을 짜고 다양한 이벤트를 기획한다. 수지행이 일정을 짜주면 도법 스님은 따져 묻지 않고 순례길에 응했다. 매일같이 10km를 걷는 강행군을 계속해온 순례의 달인들이다.
인천으로 향하던 지하철 안에서 문득 궁금해 도법 스님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길에서만 사시냐?”고 말이다. 도법 스님은 “나는 할 줄 아는 게 걷는 것밖에 없다”며 미소를 짓는다. 잠시 생각을 하다 “순례, 즉 걸으면서 얻은 것이 많았다”고 했다. 순례는 꼭 걷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주제가 있는 활동도 하는데 그중 첫 번째가 ‘경청 순례’라고 했다.
“우선 각 종교계를 먼저 만나고 있어요. 천주교 주교회의장 김희중 대주교를 만났습니다. 은빛순례단의 취지에 대해 말씀드리고, 종교계가 우리 사회 통합에 역할을 해주시기를 바란다는 얘기를 전했습니다. 천도교, 기독교, 진보 성향과 보수 성향의 단체들도 만나볼 생각이에요. 한국 사회에서 갈가리 찢어져 있는 마음을 잇고 벽을 허물어 넘어설 것인가가 화두이자 과제입니다.”
두 번째는 연찬 순례다. 대중을 상대로 평화의 한반도로 만들려면 과연 뭘 어떻게 해야 할까 서로 이야기하는 마당이다. 그리고 주말에는 현장을 찾아가는 걷기 순례를 한다. 걷게 되더라도 많이 걷지는 않는다. 시니어가 주축이다 보니 걷기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은 있다고. 매일 8km 정도는 걸을 생각이었으나 좀 더 시니어 세대의 상황에 맞게 계획을 바꿨다.
도대체 왜 걸으십니까?
단도직입적인 질문을 하고 말았다. 걷지 않고 편히 쉬면 그만 아니냐? 걷는 행위를 거스를 수 없는 순례길. 다리도 성하지 않을 텐데 왜 굳이 길 위를 선택했는지 궁금했다. 장수시대인 만큼 환갑을 넘겼다고 해서 뒤로 물러나 안주하는 시대는 아니라고 도법 스님은 말했다.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배우지 못하고 나이가 들어버린 것입니다. 옛날과 비교해 뭔가 할 일이 없는 세대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할 게 많은 시대인데 그것을 못 찾고 있는 것이죠.”
은빛순례단 중심에서 도법 스님과 함께하는 이부영 이사장에게서 들은 가족 이야기를 꺼냈다. 전쟁 불안이 고조되니 자녀들 입에서 이민을 가고 싶다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이부영 이사장이 이렇게 생각했답니다. 내가 젊었을 때 뭘 한다고 설치고는 다녔는데 결국 내 손자, 손녀들한테 전쟁 불안을 대물림해야 하는 상황이구나. 자신이 뭔가 잘못했나? 헛살았나? 하는 자괴심이 컸다더군요.”
이부영 이사장은 남은 세월이라도 이 땅의 미래 세대들이 평화롭게 꿈꾸며 살아갈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면 스스로와 아이들에게 떳떳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또 사람들과 만나고 함께 걷고 이야기하는 순례가 시니어에게 더욱 적합한 사회운동이자 시민운동이라 생각했기에 선택했다고 했다.
세대가 극단적으로 충돌하다
도법 스님 눈에도 우리 사회의 씁쓸한 단면이 포착됐다. 은빛순례단이 출범식을 하던 날, 태극기와 함께 한쪽에서는 성조기를, 한쪽에서는 한반도기를 흔들며 서로에 대해 극단적으로 불신과 적개심을 표출하던 모습. 99년 전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태극기를 드높이던 우리 조상들이 원하던 미래는 아니었을 거란 생각을 했다.
“독립이라는 대의를 위해서 모든 종교와 이 편과 저 편이 벽을 넘어서 함께 독립선언을 했습니다. 그날을 기리는 날 후손은 서로를 불신하고 적개심을 표출했죠. 독립선언을 했던 선조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서로 반목하는 모습, 이것을 풀어내지 않고서는 우리 아이들에게 편안하고 평화롭게 꿈꾸며 살아갈 수 있는 한반도를 넘겨주는 것은 불가능하죠. 그러려면 누군가가 벽을 허무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바로 어른들이 나서서 해야 하지 않을까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누구든 다 만날 겁니다. 찾아가서 만나는 것과 만나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다르니까요.”
도법 스님은 사회를 좀 더 종합적으로 균형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며 새의 날개 이야기를 했다. “흔히 새는 두 날개로 난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온몸으로 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온몸으로 날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않아요. 대한민국이라는 새도 온몸으로 날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좌우 갈등만 있었는데 지금은 세대 갈등도 있습니다. 어른과 젊은이들 사이가 대단히 불편하고 부담스럽고 불만스러운 것이죠. 모든 관계가 소중하고 고마워야 하는데 그런 마음들이 깨진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보여야 한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해지려면 삶의 모든 과정을 평화롭게 다뤄갈 수 있는 실력과 방법, 정화의 체질화, 문화 풍토가 만들어져야 한다. 기본이 돼야 한다. 평화운동은 통일이 돼도 지속돼야 한다. 일상의 평화. 결국 은빛순례단이 미래 세대를 위해 다지고 싶어 하는 기본이란 일상 속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상생하는 평화가 아닐까.
거리의 인문학자라 불리는 김찬호(金贊鎬·57) 성공회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그는 인간의 영혼이란 매우 여리고 취약한 것이라 말한다. 누구든 작은 말 한마디와 눈빛만으로도 타인의 영혼을 파괴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자기 영혼을 다스릴 수 있는 감수성을 키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아울러, 이러한 감수성은 인간의 언어를 ‘경청’하는 경험에서 나온다고 덧붙인다. 그는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서해문집)를 통해 인생 선배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본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구술생애사를 통해 본 희망의 노년 길 찾기’라는 부제의 도서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공동저자인 김찬호 교수와 문학평론가 고영직, 여성학자 조주은은 각자 베이비부머를 한 사람씩 인터뷰하며 그들의 생애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반평생 은행원으로 일하다 늦깎이 시인이 된 최영식 씨, 전업주부로 살며 포기했던 꿈에 다시 도전하는 김춘화 씨, 이우학교를 만들고 현재는 ‘50+인생학교’ 학장이 된 정광필 씨. 그중에서 김 교수가 만난 이는 정광필 학장이다. 일전에도 대안 교육과 관련한 공식 모임에서 만난 적은 있지만, 단둘이 이야기를 주고받은 것은 처음이다.
“아는 사이지만 사적인 대화를 한 적이 없어 호기심이 생겼어요. 정광필 학장은 고등학생 때부터 정치에 대한 비판의식을 갖고 용기 있는 실천을 해왔습니다. 우여곡절이 많았을 텐데, 모든 일을 게임 감각으로 풀어나가는 경쾌한 분이었어요. 그런 점에서 인생 선배에게 배운다는 게 이거구나, 말보다는 어떤 기운으로 그가 살아온 인생이 묵직하게 느껴졌죠.”
그는 10시간 가까이 정 학장을 인터뷰 했지만, 한 가지 묻지 못한 것이 있었다. “오랜 시간 누군가에게 내 삶을 말 해보니 어떤가요?”라는 것. 질문을 바꿔 김 교수에게 물어봤다. “오랜 시간 누군가의 삶을 들어보니 어떤가요?”
“나의 스토리가 누군가에게 전해질 때, 즉 스토리가 텔링이 되면 또 다른 힘이 생깁니다. 수박 겉핥기이지만, 한 사람의 60년 인생을 따라간 거 아녜요. 일종의 시간 여행이죠. 그분의 삶을 통해 나를 잠깐 떠나볼 수 있는, 나를 객관화하고 낯설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인터뷰할 땐 그 사람의 삶에 온전히 들어가 있으면서 동시에 나와 있어야 하거든요. 살아있는 사람의 목소리가 그의 표정과 함께 다가올 때, 그 삶을 내가 잠깐 살아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래서 인터뷰라는 게 참 재미있죠.”
삶의 공백을 채우는 자기 언어
김 교수는 생애 전환기의 중장년 세대가 ‘내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 그 발걸음이 품고 있는 내재율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자기 삶을 되짚어보길 바랐다.
“베이비부머가 압축 성장한 산업화 시대를 살았다고 하는데, 당시엔 민주화도 아주 급진적으로 이뤄졌어요. 그 시기 산업화와 민주화의 공통점은 자기 삶이 없다는 거예요. 그냥 내던진 거죠. 돈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그 과정에서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친구들이 끌려가고, 가족이 죽고, 자기도 당하고, 그런 아픔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채 살아왔죠. 그런데 세월이 흘러 외적으로는 뭔가 생겼어요. 돈, 지위, 명예… 내적으로는 굉장히 공허한데 말이죠.”
그는 현재 시점에서 자신의 지난날을 음미해볼 것을 권했다. 이를 위해서는 삶의 여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상대적으로 시간이 여유로운 중장년의 경우 삶의 여백이 많다고 할 수 있을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여백과 공백은 다르죠. 디자인도 잘못한 걸 보면 여백이 아니라 공백처럼 느껴지잖아요. 마찬가지로 시간이 비었다고 무조건 여백은 아닙니다. 노후에 할 일이 없고,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의 경우엔 공백이라고 봐야죠. 그러니 공허한 거고요. 빈 시간이 여백이 되려면, 그만큼 자기 마음에 그릇이 생겨야 해요.”
마음의 그릇은 어떻게 만드느냐고 묻자, 김 교수는 ‘자기 언어’가 있어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가 강조하는 ‘자기 언어’는 무엇일까?
“언어는 단순한 정보 전달의 도구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의 한마디가 사람들을 울릴 때가 있잖아요. 또 극한의 고통에 빠진 사람이 세상을 향해 외치는 호소, 그때의 언어는 신호가 아니거든요. 그 존재가 다가오는 거지. 이때 느끼는 자기 언어의 생명력은 대단한 학식이 없더라도 누구나 경험하고, 감동할 수 있죠. 자기 언어는 내면에서 생성되는 겁니다. 그런데 대부분 바깥에서 지식으로 언어를 흡수하기 때문에 일상의 언어가 도구화되어 버렸죠.”
그는 특히 중장년 세대가 자기 언어를 갖지 못하고 살아왔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명령의 언어, 힘겨루기의 언어, 과시의 언어 등에 익숙해져버린 것. 이에 대한 해답 역시 ‘경청’이라 제안한다.
“우리는 누군가의 말에 경청할 여유가 없었고, 반대로 온전히 나를 경청해주는 사람 앞에서 말해본 적도 없어요. 늘 대화하면서 내가 이렇게 말하면 저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일까를 생각하죠. 그건 상대에 대한 배려가 아닌 견제거든요. 서로 위협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정서적 신뢰를 쌓는 안전한 관계가 필요한 거죠.”
내 남은 생애가 쓰이길 바라며
경청이 중요한 것은 알지만, 실천하기는 어렵다. 마음먹고 잘 들으려 하다가도 어느새 잔소리를 늘어놓기 일쑤다. 이에 김 교수는 ‘감수성’ 차이에서 오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내가 잘해주고 싶은 것보다 상대가 필요로 하는 걸 헤아려야죠. 그게 감수성이고, 센스인데, 의지만으로 생기지 않는 것들이에요. 먼저 자기 삶을 들여다보는 훈련이 돼 있어야 해요. 관찰, 통찰, 성찰은 함께 이뤄져요. 상대에 대한 이해는 나에 대한 이해와 같습니다. 남에게 친절한 사람은 그만큼 자신을 사랑하는 거고, 늘 화내는 사람은 자신과도 불화 관계에 있다고 생각해요.”
나와 잘 지내기가 곧 남과도 잘 지내는 방법이라는 것. 그렇다고 자신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게 꼭 자기만 생각하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삶을 좋게 만들고자 할 때 자연히 나의 삶과 관계도 편안해질 수 있다고.
“꼰대질이라는 걸 왜 하게 될까요? 에고(ego)에 갇혀 있기 때문이에요. 에고에서 벗어나려면 자기를 넘어선 세계를 지향해야 합니다. 공적인 영역, 시민으로서의 정체성, 역사의식 등이죠. 내 남은 생이 인생 후배들의 삶을 위해 쓰이도록 초점을 맞춰야 해요. 그러면 꼰대질을 덜 하게 되죠. 꼭 내가 인정받지 않아도 되니까요. 여생의 능력이 쓰여 누군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여기면 내가 대접받고 아니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져요.”
책 말미에서 정 학장은 “나이 들어 더 좋은 게 있다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세월이 갈수록 이해가 많이 된다. 스스로 내려놓으면 오히려 많은 걸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김 교수에게 같은 질문을 하자, 비슷한 대답이 나왔다.
“포기할 게 많아진다는 것?(웃음) 선택지가 줄어들거든요. 이미 많은 게 굳어진 상태니까요. 좋은 의미의 체념이랄까? 고민할 게 줄어드니 마음이 한결 편안합니다.”
백년 안짝에 이 세상을 지나가는 덧없는 나그네. 그게 인생길. 이제 남은 생을 들판에서 일하며 만족을 구가하리라, 하득용(52) 씨는 그런 생각으로 산골에 입문했다. 산촌 노장들이 보기엔 짠했던 모양이다. “멀쩡하게 서울에서 그냥 살지 어쩌자고 내려와 생고생이오?” 오나가나 듣는 소리가 늘 그 소리였단다. 그러나 하 씨의 귀엔 맺히는 게 없는 관전평에 불과했다. 귀농에 아무런 회의가 없기에. 자연스러운 귀결이기에.
어릴 적부터 하득용 씨에겐 우렁찬 꿈 하나가 있었다. 바로 농사였다. 농대에 진학한 것도 농사 실력을 쌓기 위해서였다. 쉰 줄에 접어든 그는 현재 오미자 농원의 쥔장. 말하자면 드디어 꿈을 이루었다. 그는 번쩍거리는 서울의 요지 강남에 살며 근사한 직장을 다녔었다. 그랬던 그의 귀농 뉴스를 접한 초등학교 동창들은 이구동성으로 합창했다지. “야야, 놀랍지 않다. 너는 일찍부터 늘 시골에 살겠다 하지 않았냐.” 그의 오래 숙성된 꿈을 훼방할 의사가 전혀 없었던 아내 역시 순순히 부응했다. 뱀이 바람처럼 스며들어 소파 위에서 똬리를 틀고 혀를 날름거리는 식의 불상사만 벌어지지 않는다면 기꺼이 동행하겠다고 장단을 맞췄다. 그는 내심 쾌재를 부르며 귀농을 실행했다.
농경은 인류를 만물의 영장으로 만들어준 혁명적 사건이었다. 대략 1만 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장수 산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날 이 나라에서 농업이란 가장 못 믿을 직업으로 밀려나 있다. 무엇보다 허리 휠 신역이 자심한 반면 타산을 맞추기가 영 힘들다. 사정이 이러했지만 하 씨는 밀어붙였다. 자신의 삶의 방향에 관한 확신과 긍지에 찬 귀농임을 이미 알 만하지만, 나는 바보처럼 물었다. 농사의 그 무엇에 매력을 느꼈는가?
“제가 시골 태생입니다. 어린 눈에도 농사란 힘겨운 일로 보였어요. 그러나 꽃과 나무들 속에서 산다는 게 참 좋았어요. 시골의 목가적인 정경이랄까, 그런 게 천성에 잘 맞았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어렴풋하게나마 농부의 꿈이 발아했던 거죠. 중학생 때 치른 적성검사에선 농학 적성 비율이 98%로 나왔어요. 아, 농부가 나의 길이구나, 일찌감치 확신을 품기 시작했죠. 시골의 자연 풍경과 더불어 살 수 있는 농업이 내겐 가장 잘 어울린다는, 가장 좋은 삶일 거라는 끌림이 있었던 겁니다.”
“농부의 꿈을 품고 살았지만 정작 사회생활은 서울에서 했어요.”
“고등학교 졸업 뒤 의심의 여지없이 농대를 선택했고 일본 유학까지 계획했습니다. 그러나 일단 꿈을 접고 서울의 화학 회사에 취직하는 걸로 사회생활에 뛰어들었어요. 처자를 건사하고, 기반을 다져야 했으니까. 10년만 직장생활을 하고 시골로 내려갈 작정이었지만, 20년이 지나고서야 사직을 하고 귀농할 수 있었어요. 여건이 비로소 무르익었다는 판단으로.”
“처음엔 혼자 산골로 들어갔죠? 선발대로 뛰어들어 일단 물정을 익힌 거예요?”
“귀농교육도 받았고, 귀농박람회도 찾아다녔고, 사전에 서울에서 충분히 준비를 해뒀죠. 휴가를 얻어 전국을 돌며 마땅한 귀농지를 물색하기도 했어요. 지리산 자락 하동군 악양이 맘에 들었으나 땅값이 너무 비싸더라고요. ‘귀농의 압구정동’이라 하더군요. 포기했죠. 이후 문경 산북면의 시골 농토와 빈집을 임대해 농사를 짓는 걸로 귀농생활에 돌입했어요. 식구들은 서울에 두고 혼자서 말이죠.”
“차근차근 신중한 수련 과정을 밟으셨구나.”
“단신으로, 초심자로 농사를 한다는 게 예상보다 버거웠어요. 정말 고생했죠. 1식 1찬으로 끼니를 채우며 부지런히 배웠습니다. 살이 쭉쭉 빠지더라고요.(웃음) 그러나 꽤나 시골 물정을 터득할 수 있었죠. 1년쯤의 견습기를 지날 즈음, 마침 이화령 산중에 괜찮은 부지가 나와 매입을 하고 이주, 본격적인 귀농생활로 접어들었어요. 서울의 아파트를 팔고, 식구를 불러들이고, 집을 짓고, 묵정밭을 갈아 농장을 만들고, 그렇게 나름의 공을 들여 꾸려온 게 현재의 모습입니다.”
그의 ‘오래된 미래’는 시골
하 씨 부부가 이화령 기슭에 자리 잡은 건 2013년의 일. 터는 널따랗다. 5000평의 부지를 사들여 3000평을 오미자 농장으로 개발했다.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할 수 있는 첨단 단열공법으로 지은 북유럽식 2층 페시브하우스도 큼직하고 준수하다. 자금력이 수반되지 않고선 엄두를 낼 수 없는 행보렷다.
늘그막까지 우리를 일쑤 끙끙거리게 만드는 것 중의 하나는 돈 문제다. 헐거운 소유로 오히려 진정한 만족을 누리는 도류(道流)도 없지 않지만, 일테면 시골살이에도 단골로 등장하는 난적이 물적 토대의 여하라는 문제이기 십상이다. 하 씨는 이 난적의 농간을 면제받은 것으로 보인다. 숙원의 해결 또는 삶의 질적 지향이라는 문제를 풀기 위해 그의 머리는 민첩하게 움직였으며, 준비는 충실했고, 실천은 적시에 행했다. 광란처럼 기똥차게 치솟은 강남의 아파트를 미련 없이 처분, 그의 ‘오래된 미래’인 시골에 무난한 터전을 장만한 행장은 슬기의 소산일지도. 이제 농사 얘기를 들어볼까. 오미자를 주 작목으로 선택한 이유는 뭘까?
“‘해당 지역의 특산물을 재배하라!’ 귀농교육을 받을 때 자주 들었던 얘기였어요. 합리적인 권장이죠. 이곳 문경의 특산물은 사과와 오미자입니다. 기술 숙달이 필요한 사과 재배는 초보 농부에겐 너무 힘들다 판단해 오미자를 택했어요.”
“약재를 전문으로 하는 어떤 노인께서 제게 권합디다. 구기자와 오미자를 장복하시오! 그 둘의 약성이 탁월하다는 얘기였죠.”
“이왕 농사를 할 바엔 가족들의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작물을 하자, 그렇다면 오미자가 적격이다, 그런 판단도 했습니다. 저나 아내나 서울에선 천식과 알레르기에 시달렸는데 그게 싹 사라졌어요. 맑은 공기, 깨끗한 지하수, 그리고 오미자 덕분이라 봅니다.”
“문경은 오미자 주산지로 널리 알려졌어요. 농가들의 경쟁이 치열하겠죠? 하 선생의 생산물은 어떤 특장이 있죠?”
“무농약 고품질 오미자를 생산하기 위해 나름 노력했습니다. 제대로 된 청정 농산물을 생산하는 게 농사꾼이 할 일이라는 생각을 고수해왔어요. 무엇보다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덜 쓰는 게 요체라 봤고요. 과거의 농사엔 화학비료라는 게 쓰이질 않았어요. 자연과 절기에 순응하는 지혜를 필요로 했을 뿐이죠. 어떤 학자는, 철없는 사람들이 철없는 농산물을 먹어 오히려 심신의 건강을 해친다는 투의 말을 했는데, 경청할 만한 얘기이지 않겠어요?”
“요즘의 농작물은 파종 단계에서부터 농약을 투여하죠. 농약이 아니고서는 생육 자체가 어렵도록 농약 의존도가 심화됐어요. 무농약 농사를 실행할 경우엔 생산량도 매우 낮다죠? 결국은 채산성 악화로 이어지고 말이죠.”
“제가 오미자 농원 3000평을 운영하며 목표치로 잡은 게 연매출 5000만 원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턱없이 미달이에요. 농업 소득에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면 생계조차 위태로웠겠죠. 다행히 모아둔 게 좀 있어서 헤쳐 나가고 있어요. 향후 4년쯤 지나면 목표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봅니다만, 무농약 농사란 어떻게 보자면 무모하기 짝이 없는 짓이에요. 생산량은 관행농에 비해 3분의 1에 불과하지만 가격은 20% 정도를 더 받을 수 있을 뿐이니 사실상 암담한 상황이라는 거.(웃음)”
적막도 즐길 만한 대상
세상에 유쾌하기만 한 직업은 없다. 설사 안정적인 소득이 보장돼도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직업에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진정으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에 나를 쏟아 부을 경우엔 문제가 달라진다. 꿈이 실린 직업은 고독한 인생을 보완해준다. 이상으로 삼은 일에의 몰두가 깊을수록 만족감이 커진다. 하 씨의 경우는? 그는 양양하다. 속사정까지야 깊숙이 들여다볼 길이 없지만 그늘이 없다. 말쑥한 언사로 귀농의 만족감을 표한다. 비록 아직은 형편이 열악하지만 성취감을 느낀다는 게 아닌가.
“아내와 함께 농장의 풀을 손수 뽑아야 하는 일부터 농사의 전 과정은 고됩니다. 일머리가 서툴러 고생도 많았고, 극심한 가뭄으로 한 해 농사에 완전히 실패하기도 했고, 애환이 많은 게 농사예요. 하지만 매번 성취감을 느끼게 하는 것도 농사더라고요. 풀을 뽑고 난 뒤 깨끗해진 농장을 바라볼 때, 하루하루가 다르게 잘 자라 오르는 오미자 덩굴을 바라볼 때, 붉게 물들어가는 열매를 바라볼 때, 그럴 때마다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해낸 것처럼 성취감을 톡톡히 맛봐요.”
“예전엔 느끼지 못했던?”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는 주로 머리를 썼어요. 귀농 이후엔 달라졌어요. 몸을 덩달아 최대치로 쓰고 있어요. 그러자 머릿속에 가득했던 욕망이나 욕심이 줄어드는 반면, 몸으로 오감으로 느껴지는 성취감이 자주 찾아오더라고요. 좋다, 참 좋다! 속으로 그렇게 탄성을 내지르는 순간들이 많습니다. 다채로운 자연의 변화와 생동감이 주는 즐거움과 활력은 도시에서는 누릴 수 없는 최상의 가치예요.”
“이곳의 산세는 통쾌하고 수려해요. 하지만 적막강산이에요. 아무리 일에 바쁘다지만, 때로 권태롭진 않을까?”
“삶이란 즐기라고 부여된 것. 일의 노예로 산다면 인생이 지루하겠죠. 낮에는 일하고 해 저무는 하오엔 읍에 나가 테니스를 즐깁니다. 한국화도 배우고, 난타와 색소폰도 교습받아요. 적막? 그 역시 즐길 만한 대상이죠. 언젠가 아내와 둘이 ‘위대한 침묵’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참 좋았어요. 고요한 산중 생활에 깃드는 내적인 평화, 이 역시 귀농을 통해 받은 큰 선물이구나, 아내와 둘이 그런 얘길 나눈 적이 있습니다.”
하 씨의 농사 실적은 아직 시원치 않다. 애당초 귀농 목적을 돈벌이에 두지도 않았다. 가급적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개인적인 용무를 보고 싶었을 뿐이며, 용무란 농사 그 자체였으며, 마침내 농부로 변신, 결국은 해묵은 꿈을 이룬 셈이다. 그러자 또 하나의 세계가 조용하게 열렸다. 자연과 동행하는 삶의 길이 가지런히 펼쳐지고 있는 것. 이미 유년기에 시골에서 싹 텄을 자연에 관한 감수성이 귀농으로 되살아나 생태계를 존중하고 교감하는 버릇이 몸에 배기 시작한 것.
상쾌한 예화 하나를 볼까? 하 씨 부부는 어느 날 숲에서 꿩 둥지를 발견했다. 둥지 안에는 조르르 알들이 놓여 있었다. 알들의 일부는 깨져 있었다지. 뭔가가 둥지를 건드렸다는 증거였다. 일단 둥지가 노출되면 어미 새는 알들을 더 이상 돌보질 않는다. 그걸 알았던 부부는 읍내로 달려가 사온 부화기에 알들을 고이 길러 날려 보냈다.
“어느 날은 새 한 마리가 유리창에 부딪쳐 나동그라졌어요. 죽었는지 기절했는지 숨을 쉬지 않더라고요. 우리는 서둘러 인공호흡에 나섰어요. 저는 놈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줬고, 아내는 부리를 벌려 빨대를 꽂아 숨을 불어넣었어요. 앗, 그러자 살아나 후루룩 날아가는 게 아니겠어요?”
소소하면서도 짜릿한 감흥을 주는, 동화를 닮은 일화다. 보는 눈이 없더라도 그물에 걸린 어린 고기나 금지 어종을 풀어주는 어부라면, 그는 이미 자유로운 영혼이다. 새 한 마리의 목숨을 남의 일로 여기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는 이미 희귀하게도 잘 사는 사람이다. 나이 들어서도 우리의 이기심이 종종 놓치는 건 공생의 가치이지 않던가.
박원식 소설가 >>
중앙대 문예창작과에서 배운 작가. 오랫동안 자연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대상을 좋아할수록 아득해지는 미스터리가 늘 그를 궁리하게 만든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안목을 얻는 일의 요원함을 실감한다. 그가 즐기는 것은 산촌의 적막, 암자의 풍경소리, 낯선 여행지의 선술집, 우연한 만남 등이다. ‘천년 산행’, ‘암자에서 듣다’, ‘산골로 간 예술가’ 등의 저서가 있다.
인류학강의 시간. 교수님은 키가 훤칠하고 얼굴이 맑았다. 깊은 표정, 차분하고 박식했다. 무채색의 옷차림으로 여대생들의 감성을 자극할 만큼 충분히 멋졌다. 미팅을 즐기느라 책을 잘 읽지 않는 우리에게 말했다.
“하버드에 적응하느라 긴장을 풀지 못했어. 읽으라는 책이 얼마나 많은지 체력과의 싸움이었지. 다 읽지 못하고 가는 날은 수업을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어. 본토인들은 그냥 읽기만 하면 되지만 단어까지 찾아가며 읽느라 시간이 더 걸렸거든. 또 강의 중 말을 놓치기라도 하면 다른 학생의 노트까지 빌려야 했어.”
“시험기간에는 수염을 못 깎아 원시인처럼 털이 덥수룩했지. 열심히 한 보람이 있어 시험 성적이 좋았는데 그런데 학기 말에 나온 성적표는 예상과 달리 B학점이었어. 교수면담을 신청하고 항의하자 교수님이 말했어.”
“자네는 시험성적은 좋지만, 강의 시간에 다른 학생이 질문하고 답하는 동안 한 마디도 안 하고 듣기만 하였네. 그래서 자네에게는 A 학점을 줄 수가 없었네.
언젠가 히브리대학 도서관 풍경을 TV로 보았다. 시장처럼 떠들썩했다. 두세 명씩 함께 앉아 손짓까지 섞어가며 질문하고 답하는 모습이 일반적인 도서관 풍경과는 달랐다. 그것은 유대인 전통학습방식인 ‘하브루타’였다.
우정 또는 동료를 뜻하는 하비루타는 학습파트너를 의미한다. 주제에 대해 자기 생각을 정리하여 상대방에게 설명한다. 그리고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질문한다. 그 과정에서 기존지식을 새롭게 정리하는 단계를 거친다.
어려서부터 경전 토라를 외우고 자기 해석을 표현하고 질문하는 교육을 통하여 정확한 답을 이끌어내는 훈련을 한다. 강의 중에도 교수에게 질문하고 답이 미흡하면 만족할 만한 답이 나올 때까지 끈질기게 질문을 되풀이한다.
질문이나 토론에 금기는 없다. 때로는 큰 목소리로 의사를 표현하지만, 생각의 차이로 받아들일 뿐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누구든 자기 생각을 당당하게 말할 권리를 갖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떤 발언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에둘러 설명하지 않으며 상대방의 지위고하에 상관없이 자기 생각을 직선적으로 밝히는 유대인의 독특한 습속이다.
아이가 말을 배울 때 끊임없이 질문했다.
“저게 뭐야?”
“음, 새야.”
“새가 뭐야?”
“하늘을 나는 짐승이야.”
“짐승이 뭐야?”
대답하기 난감한 경우. 참을성 있게 설명을 다 하기보다 화제를 돌린 적도 있었다. 세상 모든 것이 흥미롭고 또 마술처럼 느꼈을 천진한 아이에게는 아쉬운 교육 방법이었다.
우리는 예의를 우선순위에 두어 질문을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에서 자랐다. 그래서 좀 미진해도 그냥 넘어가는 것을 오히려 미덕으로 생각하기까지 한다.
이제 아이를 다시 키울 기회가 있다면 ‘하비루타’식으로 가르쳐보고 싶다. 다양한 의견, 나와 다른 목소리들, 불편하더라도 경청한 후 자기 의견을 피력하는 공동체가 유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경직성과 획일성은 허약하다. 다양성과 유연성에 힘이 있다. 그것은 금기 없는 사유, 거침없는 질문과 치열한 토론에서 시작된다.
머리로 아는 것과 그것을 말로 표현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말할 수 있는 것, 그것을 글로 나타내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이다. 마음에 담긴 생각을 자유로운 토론을 통하여 가장 적합한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최선의 가치에 접근할 수 있다.
그래서 토론을 통하여 어떤 경우에도 감정 상하지 않고 답을 이끌어내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면 멋진 체험이 될 것 같다. 지금의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교육인 것 같다. 듣기보다는 자기말만 하는 신문 정치면을 보다가 문득 생각나서 적어 본다. 정치뿐이랴 모든 분야에 필요하다. 토론을 통해 서로 균형을 잡아가는 합리적인 접근방식. 그것이 우리 사회에 절실한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 필자의 부모는 할머니 집에 필자와 남동생만 남겨둔 채 동생들을 데리고 직장 근처로 이사 가 살았다. 필자는 7형제의 맏딸이다. 우리까지 데려가면 박봉에 굶어 죽을 것 같아서 떼어놓고 간 것이다. 부모와 어린 동생들이 떠난 후 마음 붙일 곳이 없었다.
다행히 친구 명희가 있어 학교 공부가 끝나면 그 집에 가서 놀았다. 서로 시간이 어긋날 때는 혼자 마루 끝에 앉아 책을 읽곤 했다.
명희 아버지는 우리 학교 선생님이었는데 집에 동화책이 가득했다. 명희네 집은 필자에게 유일한 안식처였으며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펴는 장소였다. 그러나 명희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좀 무서웠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책장 넘기는 소리조차 조심했다.
명희는 책에는 관심이 없었고 활짝 웃는 얼굴로 고무줄놀이를 아주 잘했다. 필자는 마루 끝에서 친구가 노는 모습을 힐끗거리면서 책에 빠졌다. 그러다 해가 서산에 기울면 명희 어머니가 “영희야 이제 집에 갈 시간이다” 하셨다. 그 소리를 듣고 뭉그적거리며 일어나 꼬르륵거리는 배를 움켜잡고 미루나무가 즐비한 신작로를 따라 걸었다. ‘알프스의 소녀’를 읽으며 어른이 되면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꾸기도 했다.
5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초등학교 동창들을 만났다. 필자가 자서전을 냈다는 말에 명희가 “너는 우리 집 이야기를 빼놓으면 자서전 완성이 안 될걸”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어린 시절이 떠올라 코끝이 찡해졌다. 또 그 시절의 추억을 공유하며 마음을 읽어주는 친구가 있어 뿌듯했다. 명희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필자를 만나고 싶어 했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뵙지 못했다. 아쉬움이 많다. 그 시절 외롭게 앉아 책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필자를 보며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그걸 물어보고 싶었는데 말이다.
중년이 되었을 때 필자의 골동품 가게로 자주 놀러오는 남자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상대의 말을 경청해주는 재주가 있었다. 오늘 마음이 좀 언짢다고 말하면 왜 그런지 꼭 물었다. 그냥 그렇다고 얼버무리면 그런 게 어디 있냐며 이유가 있을 것 아니냐며 마음을 챙겨줬다. 코미디를 보고도 웃지 않는 필자를 보고 개그맨 김형곤 테이프를 사다 주며 들어보라고 했다. 재미없다고 하니까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어보라고 했다. 그 후 조금씩 웃기 시작했다.
노년이 된 요즘은 필자를 지지해주고 격려해주는 친구가 있다. 그래서 수호천사라 부른다. 취미도 같아서 금상첨화다. 페이스북으로 서로의 마음을 솔직하게 주고받는다. 그림을 좋아해서 전시장도 같이 다니고 서로의 느낌을 공유한다. 설명하지 않아도 죽이 척척 맞는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그 친구는 ‘두 개의 의자’라는 수필집도 냈다. 반응이 좋아서 덩달아 기쁘다. 오랜만에 소식을 전해도 늘 만났던 친구처럼 다정다감하다. 사귄 지 20년이 훌쩍 넘었는데 단 한 번도 얼굴 붉힌 적 없다. 나이가 들면서 훈계하듯 말하는 사람이 싫어졌다. 정이 가지 않는다.
오늘날의 필자가 있기까지 많은 친구가 곁을 지켜주었다. 필자 마음을 잘 읽어주는 친구가 옆에 있을 때 가장 성장하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필자도 요즘 만나는 친구들 이야기를 경청하려고 노력한다. 나이가 들면 지지해주고 격려해주는 친구가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