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백로다. 아침·저녁이면 제법 시원한 가을바람에 생기가 돈다. 제일 무더웠던 여름날도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100세 인생’도 번개처럼 지나갈 터이다. 은퇴자가 매순간 아름답게 살아야 하는 이유다.
감별은 ‘병아리의 암수를 가려내거나 골동품, 보석 따위의 가치를 가려내는 것’이다. 아름다운 은퇴자가 많지만 그렇지 않는 사람도 흔하다. 아름답게 사는 은퇴자 감별법을 살펴본다.
◇남의 말에 귀 기울이고 배려하는 사람
사회에서 은퇴한 지 수년이 지났다. 만나는 친구도 많이 달라졌다. 옛날에 사귀는 친구는 주로 죽마고우 또래였다. 사회에서 만난 지금의 친구들은 40대부터 70대까지 나이가 다양해지고 취미와 관심도 달랐다. 하지만 공통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나이 들면 말이 많아졌다.
“나는 말이야----”로 시작하면 끝이 없다. 면전에서 고개라도 끄덕여주면 ‘뻥’까지 더해진다. 자기자랑에 손자자랑, 심지어 강아지 자랑까지 한다. “중앙방송 중이니 지방방송 꺼주세요.” 억지를 부린 경우도 나온다. 스스로 ‘물 위의 기름’이 된다.
“한 번 말하고, 두 번 경청하라. 그리고 세 번 감명하라.” 사회은퇴 후 첫 사회인문학 강의에서 들었던 가슴에 깊이 새긴 경구다. 말이 많으면 실수가 많기 마련이다. 자기 말을 줄이는 것이 아름답게 사는 첫째 덕목이다.
◇갑옷을 내려놓고 술잔을 따를 줄 아는 사람
일부 몰지각한 자들의 ‘갑질’ 때문에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갑옷’을 벗고도 갑질을 계속하는 자가 많다는 것이다. 자신이 하는 짓거리가 얼마나 큰 잘못인지 전혀 생각하지 않는 파렴치한 행동이다. 속 시원한 해법을 고대하면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하자.
사회은퇴 후에도 매 주마다 두세 차례 친구들과 산행을 한다. 사회은퇴 전에는 부부동반이 많아 도시락으로 산상 파티를 즐겼다. 이제는 동행이 거의 사라지고 간식으로 도시락을 대신하고 하산하여 ‘만원의 행복’ 뒤풀이를 한다.
무더운 날은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이 모든 갈증을 풀어 주었다.
지난날의 자식경사는 거의 마무리되고 이제는 손자경사가 그 자리를 대신하였다. “며칠 전 귀여운 손자를 봤다. 재미있게 한 잔 마시자!” 한 친구가 술잔을 돌리고 한턱 쏘았다. 분위기가 훈훈해졌다. 좋은 명분을 붙여 술잔을 따르는 친구가 많다. 진정 아름다운 모습이다.
◇사회에 공헌하는 사람
은퇴자가 과거에 많이 집착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지난날의 성과를 자신의 ‘성공’으로 착각하여 빛의 속도로 변하는 ‘내일’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 기업만이 문제되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주위에 조력자도 없다. 은퇴자는 스스로 더 많은 노력을 하여야 한다.
성취에 대한 강박감, 자식에 대한 집념을 버리려야 한다. ‘먹는 것보다 잡는 훈련을 시키라’ 흔히 말한다. 자식들에게는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무조건 재산을 물려주는 것보다 교훈도 함께 전수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난날은 앞만 보고 달리는 기관차처럼 열심히 살았다. 인생은 어차피 빈손으로 돌아간다. 이제는 사회에서 받았던 은혜를 후세대에 물려주어야 할 때가 되었다. 재능기부 자원봉사에 적극 참여하는 은퇴자가 많다.
시원한 새벽이다. 소나기 한방에 제일 무더웠던 여름도 막을 내리고 있다. 눈 깜작할 사이에 사회은퇴생활 너덧 해가 되었다. 사회활동을 시작하면서 프로필을 제출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직업기재하기가 제일 곤혹스러웠다. ‘무직’으로 통용되던 직업란에 몇 년 전부터 ‘은퇴자’가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은퇴자는 현역시절 직업을 바꿨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 은퇴자에게도 ‘수습단계’가 필요한 대목이다.
◇‘자기명함’이 필요할 때
서랍 속에 빼곡히 쌓여있던 남의 명함을 정리하고, 남아있는 자기명함까지 다 버리면서 사회은퇴는 시작되었다. 방학을 맞은 학생처럼 홀가분하였고 영원히 자유로운 날개를 다는 것 같았다. 남처럼 가족여행을 하거나 친구들과 산을 찾았으면서 한두 해가 꿈같이 지나갔다. 하지만 마음의 여유는 오래 가지 않았다.
사회평생교육과 재능기부 자원봉사에 참여하면서 새 길을 찾기 시작하였다. 새로운 또래 친구들을 사귀면서 매일 즐겁게 생활하였다. 하지만 첫 인사 나눌 때 쉽게 전했던 명함이 없어서 매우 당혹스러웠다. 서로 상대방 연락처를 휴대폰에 두드리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러던 중 어느 자원봉사현장에서 자기소개 기회가 있었다. 중년여성 회원이 “저는 가정주부 000입니다.”라고 당당히 말하면서 명함을 건넸다. 가정주부 000, 전화번호와 이메일, 블로그, 아름다운 캐릭터도 새겨졌었다. 이른바 ‘자기 명함’이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당시 별다른 사회활동이 없었지만, 장래 하고 싶은 일을 계획하여 예비명함을 만들었다. 그후 사회활동을 꾸준히 하면서 ‘자기 명함’이 많이 생겼다. 자기명함이 필요함을 느낄 때가 진정한 은퇴자가 되는 첫 관문이다.
◇주위에 현혹되지 않을 때
은퇴자는 명함 한 장 남아있지도 않는 과거자랑을 좋아한다. 듣는 사람이 추임새라도 넣어주면 옛 이야기가 산더미처럼 부풀어 오르게 마련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러한 행동이 허망하고 앞으로 삶과 전혀 상관이 없음을 알아차린다. 입을 다물고 남의 말을 경청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한 계단을 오른다.
남의 말에 귀가 얇아진다. 몇 년 전부터 사회평생교육에서도 시니어를 자극한다. 창조경제,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하여 일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경제 불황과 저금리에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에 쉽게 빠져든다. 세상에 공짜 없다는 만고의 진리를 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극복하는 것이 두 번째 관문이다.
◇새로운 것 찾아 사회공헌을 실천할 때
사회평생교육에 참여하여 빛의 속도로 변하는 시대에 맞춰서 새로운 공부를 열심히 한다. 재능기부 자원봉사에 적극 참여하여 사회에서 받았던 은혜를 후대에 전수하려고 노력한다. ‘100세 장수시대’라고 하지만 건강하게 살면서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날은 그리 많지 않다. 백 마디 말보다 조그만 실천이 필요한 이유다. 은퇴자가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진정한 관문이다.
필자는 모자 쓰기를 좋아한다. 아주 간단히 멋쟁이로 만들어주는 기막힌 물건이기 때문이다. 특히 오래전 모자 때문에 덕을 보기도 했으니 이 코디를 더더욱 버릴 수 없다.
◇용감한 외출
20여 년 전 남편이 이미 미국에 이민 가서 필자가 혼자서 모든 고난을 감당할 때 일이다. 아파트와 모든 것들이 경제 위기 속에 날리고, 손에는 한 푼도 남지 않았다. 당시 유일한 탈출구는 신용대출이었다. 그래서 단골 은행을 찾아갔는데 코웃음만 쳤다. 할 수 없이 다른 은행을 찾아갔다. 오랜 대기 끝에 상담했지만 이번에도 대답은 영 시원치가 않았다. 확실한 대답을 얻지 못한 채 무거운 발걸음으로 다시 돌아 나와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다음날 오후 전화가 왔다. 전화 속의 목소리는 전혀 않은 모르는 사람이었다. 상대는 대뜸, 필자에게 대출에 관심 있으니 만나자는 것이었다. 그 남자는 전날 두 번째로 찾아갔던 은행 대부계의 과장이라고 했다. 수상한 마음이 들었지만 일단은 서둘러 은행으로 나갔다. 은행에 갔더니 안쪽에 선비 같은 모습의 대출 과장이 앉아 있었다.
필자를 반갑게 맞이한 그 사람은 차까지 대접하며 친절하고 차분한 모습으로 상담해주었다. 필자는 솔직하게 모든 상황을 털어놓았고 상대는 아주 자상하게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해주었다. 필자는 그 순간에 눈물이 쏟아져 내렸고, 속이 후련해졌다. 설사 대출받지 못한다 해도 후회스럽지 않을 만큼 그 남자는 자상했기 때문이다.
◇진솔한 친구, 은인 사이
그 사람은 “윗분과 상의한 후 결정해야 한다”며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말라“ 격려해줬다. 그 직원의 말을 듣고 희망 반, 걱정 반 속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저녁 시간이 될 즘, 핸드폰으로 또 연락이 왔다. 시원스럽게 한마디로 원하는 대출을 해주겠다는 것이다. 무조건 필자라는 인간 하나를 믿고 해주는 대출이니 꼭 갚아 달라고 했다.
필요했던 어려운 대출이 이루어지고, 하루아침에 걱정이 사라졌으니 그 사람은 은인이나 다름이 없었다. 필자는 그 사람에게 먼저 전화를 해 만나자고 했다. 이번에는 필자가 음식을 대접하겠다고 했다. 그 사람은 쾌히 승낙했고, 필자는 정성껏 준비한 작은 선물과 함께 약속 장소로 나갔다. 두 번째 만남이었지만 전혀 어색하지가 않았다.
필자는 궁금증에 질문했다. 어떻게 그리 쉽게 “아무 조건 없이 해줄 수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 사람은 “고객님을 모자를 쓴 모습을 처음 본 순간 너무 멋지다는 생각이 들어 한참을 바라보았다”고 했다. 필자는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태연한 모습으로 커피까지 마셨다. 하지만 그 사람과 대화하다 보니 흑심을 품은 남자는 아니었다. 그래서 이후엔 속마음도 털어놓고 이야기하는 친한 남자 친구가 되었다. 그야말로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한 순수한 관계였으나 그 후로부터 모든 은행 일은 아주 쉽게 해결되었다.
◇ 아픈 추억
이 일이 있고 얼마후 필자도 미국으로 이민 갔다. 당연히 연락도 못 했다. 그리고 정말 오랜 시간이 지나고, 미국에서 잠시 다니러 나왔다. 설레는 마음에 만나기로 한 어느 날, 그 친구는 뼈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항암치료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그리고 미국으로 들어가 연락을 취한 어느 날에는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되어있었다. 똑똑하고 인간다운 진실했던 친구를 보내고 필자는 한동안 가슴에 큰 구멍인 듯 가슴앓이했다.
나이가 들수록 주변 사람들과 멋진 관계를 맺고 포용할 줄 알아야 한다. 젊었을 때보다 말과 행동이 적을지라도 더 깊은 사랑과 지혜를 전하고, 그 속에서 관계를 맺을 줄 알면 참된 시니어 세대가 됐다는 증거다. 로마의 훌륭한 정치가였던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는 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친구의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라고 하였다. 어떤 말과 마음가짐이 시니어 세대에게 필요한 좋은 친구 되기의 조건일까?
글 박대령 이아당 심리상담센터 소장
시니어의 우정,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라!
시니어가 되면 누군가에게 우월하려고 하거나 이해득실을 따지는 마음이 줄어들어 비로소 마음 열린 대화를 할 수 있게 된다. 젊었을 때는 쉽게 내가 너보다 낫고, 내 말이 옳고 네 말은 틀렸다고 하는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제대로 나이를 먹어가는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거나 믿고 있던 것이 편협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독선과 편견이 가득했던 마음이 사라진 자리에 비로소 남이 들어서게 된다. 다른 사람이 어려운 줄 알게 되고, 나보다 더 지혜로울 수 있음을 깨닫는다. 내 이야기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데 시간을 더 보낼 수 있게 된다.
눈치 덜 보는 친구가 되자
살아가다 보면 편안하고 즐거운 날들도 있지만 때로는 힘들고 우울한 날들도 있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친구에게 연락하고 싶지만, 못나 보이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혹은 매일 같은 얘기만 하는 것 같아서 전화기만 바라보다 고개를 돌리기 일쑤다.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숨기고, 친구가 하고 싶을지도 모르는 얘기를 외면하다 보면 관계는 멀어지기 마련이다.
그럼 누구를 붙잡고 답답하고 힘든 얘기를 해야 할까? 이때 그저 가까운 사이와 친구를 구별해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바로 눈치를 덜 보고 힘든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관계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것이다. 내 허물, 친구의 흉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친구를 찾아보자. 분명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시니어의 필수 감각은 유머, 마법 같은 말 “괜찮아”
지혜로운 시니어가 관계를 잘 맺는 또 다른 비결은 유머 감각이다. 시니어의 유머는 잔재주를 부리지 않는다. 과장하지 않고, 자신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그저 상대방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언행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긴장을 풀게 하고 웃음 짓게 한다. 그리고 그 비결에는 “괜찮아”라는 말이 크게 작용한다. 사별한 부인을 이야기하며 자책하는 친구에게, “왜 그랬어. 있을 때 잘하지”라고 말하는 대신 “그럴 수 있지.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야”라고 얘기하자. “괜찮아”는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의 마음에 구원이 된다.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이들의 마음을 녹여, 결국 울고 웃게 한다. 그렇게 마음을 홀가분하게 만드는 “괜찮아”란 말로, 사람을 넓게 보고, 깊이 이해할 수 있다면 좋은 관계를 만들고 유지할 수 있다.
경청의 힘, 젊은이와도 친구가 된다!
남의 말을 들을 줄 아는 시니어는 젊은이와도 친구가 된다. 말을 아끼는 대신 남의 말을 듣는 데 시간을 더 보내며 섣부른 조언 대신, 지혜롭게 질문을 해야 한다. 예컨대 회사 다니기 힘들다고 말하는 손녀딸에게 “요즘 다들 힘든데 참아봐라”라고 하면 “에이, 내가 얼마나 힘든데. 말 안 해!”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대신, “요즘 많이 힘들구나? 어떤 게 힘드니?”하고 물어보라. 그러면 손녀딸은 자신이 뭐가 힘든지 이야기하다가 “그래도 참고 다녀야겠지?”라고 말할 것이다.
또한, 배우자에게 “뭘 그렇게 화를 내?”라는 말 대신에 “여보 많이 화났어요? 내 무엇이 마음을 상하게 했어요?”라고 물어 보라. “잔소리 좀 그만 하시구려”라는 말 대신 “기분이 많이 나빴어요?”라고 질문하자. 그리고 상대방의 답변을 들어 보라. 전자는 타박을 부르지만, 후자는 대접이 달라진다.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라
마음이 여유로운 시니어는 친구 관계에서도 너그럽다. 상대방의 부족함과 실수에도 넉넉하게 웃으니, 친구들은 그 앞에서 마음이 편하고, 긴장이 풀어져서 더 자연스럽고 유쾌해진다. 같이 더 많이 웃게 된다. 이렇게 만남이 즐거운데 어찌 노년의 우정에 흔들림이 있을까. 세상이 점점 더 삭막해지고, 서로 증오하고 싸우는 일이 늘어가는 세태에 시니어의 열린 마음과 따뜻함은 희망이다.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아름다운 점을 알아주고, 사랑스럽게 바라봐 주고, 넉넉하게 웃어 주는 것, 이것이 시니어 세대에게 있어 관계를 잘 맺는 가장 큰 비결이다.
배려하고, 서로에게 일리가 있다는 긍정의 마음
오만과 독선이 어린이와 젊은이의 서툰 모습이라면, 시니어는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고, 포용할 줄 안다. 미국 대선 민주당 경선 토론회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 시절 개인 이메일을 사용해 공격받았을 때 경쟁자였던 버니 샌더스는 “미국 국민은 ‘그놈의 이메일’에 질렸다. 실질적 이슈에 집중하자”며 그녀를 옹호했다. 이 발언을 통해 샌더스는 ‘대인’ 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지지율이 급상승했었다. “그거 아니야”라고 말하는 대신에 “일리가 있구나”, “당신 말이 맞아”라고 말하는 이는 귀한 대접을 받는다. “내가 존중받으려면 남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알고, 실천할 줄 아는 시니어는 참으로 넉넉하고 슬기롭다. 당신은 남 귀한 줄 알고, 마음을 진정으로 품어주는 시니어인가?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좋은 친구가 될 자격을 갖춘 것이다.
>> 박대령(朴大領)
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임상심리학을 전공했다. 현재 사회불안 자조모임인 이아당(이미 아름다운 당신) 심리상담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 이 있다.
변종경(卞鍾敬·68) 국일제지(주) 사장에겐 ‘촉’이 있다. 신규 사업을 하면 길이 열린다. 만년 적자에 허덕이던 기업도 그가 손을 대면 황금알을 낳는다. 사람들은 그의 촉을 부러워하고 타고난 기획전략가라고 인정한다. 그런데 그의 촉이 이번엔 제조업에 뻗쳤다. 60대 후반의 나이에 특수지 제지업체 국일제지(주)를 드라이빙하는 중책을 맡았다. ‘아직 제지업계 초보’라고 자신을 겸손하게 소개하는 그는 삼성맨으로서, 그리고 전문 경영인으로서의 경험을 살려 국일제지가 나아가야 할 길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안주하는 삶은 재미없다”고 말하는 그의 인생과 재미있는 일, 그리고 추구하고 있는 미래에 대해 들어본다.
변종경 사장의 이력은 화려하다. 서울대와 UCLA 대학원을 졸업하고 삼성물산 경영기획부장, 삼성그룹 비서실 임원, 사회공헌위원회 부사장 등 삼성맨 시절을 거쳐 삼부토건그룹 계열 (주)신라밀레니엄 대표이사 등을 역임한 그는 올해 초 국일제지(주) 사장으로 선임됐다.
‘고희록’ 써 경험과 지혜 전수하고파
사장으로 취임할 때 마침 그의 나이는 60대 후반에 들어섰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은퇴해도 여러 번 은퇴했을 나이, 그는 김형석 교수의 말을 빌려 이제야 자신이 전성기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원로 철학자 김형석 교수는 96세의 나이에도 강의 등 아직도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 65~75세의 나이가 쓴맛 단맛 다 보고 인생의 소중함을 음미할 수 있는 인생의 황금기라고 말씀합니다. 저는 지금 김형석 교수가 말씀한 인생 황금기에 3모작을 하고 있어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는 종전에는 매주 수요일 등산, 주 1회 골프 등으로 건강관리를 했으나 요즘에는 매일 아침 20~30분 시트업 등 스트레칭을 하고 주말에 등산이나 골프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건강관리는 킬리만자로,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했을 정도로 여행을 좋아하는 그에게 필수적인 것이다.
“여행 마니아는 못 되고요, 등산이나 트레킹은 자주 했지요. 여행은 새로운 풍광과 문물을 통해 색다른 경험을 하는 것이 좋고요. 등산이나 트레킹의 경우 목표에 도전하고 정상에 이르렀을 때 희열은 말로 표현할 수 없지요. 그리고 등정 과정에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성찰할 시간을 갖는 것도 보람이지요. 지난번 킬리만자로 등정 시에는 그동안 내 자신을 되돌아보며 70세가 되면 그동안의 삶을 담아 을 써보기로 한 것이 수확이지요.”
살면서 지켜야 하는 3가지
은 제목 그대로 70세에 이른 자신을 돌아보며 쓰고자 하는 책이다. 베스트셀러가 되겠다는 욕심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후손에게 자신이 평생 배운 지식과 지혜를 전수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70 가까이 살면서 꼭 지켜야 할 3가지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첫째는 자신을 책임지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올바른 가치관과 도덕성을 가지고 신뢰를 지키는 삶의 자세를 견지하는 것입니다. 영국 속담 ‘인생의 평판을 쌓는 데는 30년이 걸리지만 평판을 잃는 데는 30분이면 충분하다’가 이를 잘 대변해준다 할 수 있겠지요.
둘째는 경제적으로 생활력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돈이 수단이 될지언정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자신과 가족을 건사할 최소한의 경제적 여유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베푸는 것도 마음만이 아니라 금전적으로 베풀어야 효과가 높습니다. 우리 속담에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도 있습니다.
셋째는 주변과 사회성을 잘 유지하는 것입니다. 저희 세대는 대체로 앞만 보고 달려와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게 후회됩니다. 가족에게도 미안하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그랬고요. 요즈음은 가족, 친구들과 어울리려 노력해 많이 좋아졌지요. 평소부터 가족, 친구들에게 잘해야 노년에도 관계가 좋지 않을까요.”
기업은 복합적 가치를 지닌 조직
그는 최근 새롭게 회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각종 회의를 주재할 때 오프닝 멘트를 통해 자신이 경험했던 노하우 등을 간단한 사례 등과 연결시켜 전수해 주고 있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
“물론 사전 준비 등으로 힘들기도 하지만 임직원이 경청하고 활용할 때 보람을 느낍니다. 에 나오는 ‘가르치면서 절반은 본인이 배운다’는 글귀대로 저도 준비하며 또한 배웁니다. 최근의 예는 ‘역발상 아이디어’를 강조하며 2006년 독일 월드컵 축구대회 당시 한국과 프랑스가 1:1 무승부일 때 프랑스의 지네딘 지단 선수가 후반 46분 경고 누적으로 퇴장 당한 뒤 홧김에 라커룸 사물함을 발로 차 찌그러졌는데 라이프씨티 축구경기장 측에서 배상 청구을 검토하다 오히려 찌그러진 사물함에 금테를 두르고 11유로 입장료를 받고 관광객을 유치해 성황이라고 얘기해준 게 생각나네요.”
그가 현역 경영자임을 다시금 느끼게 만드는 부분이다. 그는 경영에 있어 기업 자체적으로 보면 수익 가치가 중요하겠지만 국가 및 사회와의 관계적 측면에서 볼 때 고용 및 인적 자본 형성, 기술 축적, 양질의 제품 및 서비스 제공, 사회공헌 등 사회적 가치 기여 등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경영해야 한다고 보고 있었다. 기업이야말로 복합적 가치를 지닌 조직이라는 생각이 이유였다.
“경영자의 길을 가지 않았더라면요? 글쎄요. 고위 관료나 정치인의 길을 갔을지도 모르지요. 저는 고등학교 때 이과반이었는데 대학은 문과를 택했지요. 당시 주변에서 저에 대해 나름 논리적이고 언변이 좋다고 부추겨 대입 때는 문과를 지원했습니다. 사실 정치에도 관심이 있었고요. 사주에도 정치를 했으면 ‘한 인물’ 했을 거라고 하네요. 그러나 요즈음 세태를 보면 정치 지망 안 하기를 잘한 것 같고요.”
회사의 미래를 위한 길 닦는다
그는 자신을 ‘제지업계 초딩’이라고 겸손하게 낮춰 표현했다. 그러나 그는 삼성그룹의 구조조정본부의 임원이었다. 기업과 경영의 엔진 구조를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는 경험과 지식이 그의 커리어에서부터 보여지고 있었다.
1994년 삼성물산에서 삼성그룹 회장비서실로 옮겨 삼성자동차 사업을 성공적으로 진입시켰던 때를 떠올렸다. 그는 당시 삼성이 상공부로부터 자동차 기술도입 신고서를 1차 반려받은 후 비서실에 차출되어 전략지원팀을 만들었고 6개월 뒤 삼성자동차 사업을 성공적으로 진입시켰다. 10여년간 삼성그룹 회장비서실에서 열정과 집념을 갖고 그룹과 회장을 보좌하던 때를 회상하며 새로운 도전에 최선을 다해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간 업무 파악을 통해 회사의 비전을 ‘첨단 정밀 종이로 100년 가는 강한 기업’으로 정하고 선순환적 구조조정, 즉 사업구조를 수익력 있는 기존 품목 이외 부가가치 높은 지종 확충, 영업 인력 확대 등 미래지향적 인력 운용, 쥐어짜기식 경비 절감이 아니라 필요한 것은 과감히 투자하고, 절약할 수 있는 경영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간 본사는 물론 2개 공장 200여 명 전 직원에게 7~8회 경영방침을 설명하고 회식을 통해 공감대를 갖는 기회를 가져 직원들이 ‘한번 해보자’는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어 저 자신도 보람을 느끼고 있고 이와 관련하여, 회사의 미래 토대 마련을 위한 청사진인 중기 계획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노년에 가장 중요한 건 품위를 잃지 않는 것
기업의 체질을 바꾸는 쉽지 않은 미션을 수행 중인 그는 은퇴를 잊고 경영에 매진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그가 나이 먹어도 절대로 잃고 싶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품위를 잃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품위를 유지하려면 조급하지 않고 마음의 여유를 갖는 자세도 중요하고 독서 등을 통해 인격 도야에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며 경제적으로도 여유를 갖고 베푸는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이 들어 품위가 있어야 멋도 있고 존경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에게는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위해 준비 중인 것들도 있었다.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많기 때문이다.
“취업하지 않았으면 지금쯤 트레킹 등 여행을 많이 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그리스, 이집트, 터키, 러시아 등을 비롯해 중남미 지역을 여행하지 못해 시간이 나면 몇 년 내에 꼭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2인승 컨버터블 스포츠카를 타고 전국을 일주하는 것이 버킷리스트입니다.”
국민연금 수급대상인 65세가 되면 ‘기초연금신청’ 안내를 받는다. 기초연금 업무는 국민연금공단과 동 주민자치센터에서 홍보와 신청서접수를 하고, 구체적인 지급심사는 구에서 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국민은 기초연금에 해당되지 않을 것이라는 지레 짐작과 귀찮다는 이유로 이에 관심조차 두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국민연금공단 관악지사(이상은 지사장)와 수급자 모임 ‘이수회’(권순도 회장)는 기초연금에 관한 소양교육과 가두 홍보활동을 하였다.
2014년도 4월에 발족한 이수회는 국민연금 관악지사 국민연금수급자로 구성된 매달 두 번째 수요일 모임을 갖는 친목단체이다. 이수회원은 나이차이가 별로 없어서 의사소통을 잘하면서 매우 친하게 지낸다.
매월 둘째 수요일에 모임을 가지기로 하고 명칭을 ‘이수회’라고 정하였다. 자원봉사와 소양강의, 문화탐방, 영화관람, 둘레길 산책과 당구를 통하여 긴밀하게 지낸다. 회원의 친목을 도모하고 사회공익에 기여하는 활동을 한다.
13일 수요일 오전 이수회는 월례모임을 열었다. 고궁, 문화유적지 탐방과 영화관람 등 지난 활동을 분석하고 차후 새로운 계획을 확정하였다. 오늘은 기초연금 소양강좌를 듣고, 가두 홍보활동과 단체 영화를 관람하기로 하였다.
공단 관악지사 부장의 소양강좌를 경청하였다. “기초연금은 신청하여야만 지급한다. 지금은 해당되지 않을지라도 5년의 이력관리에 따라 장차 해당될 수 있다. 선정기준액도 상향조정되는 등 매년 조건이 변하고 있다. 안내내용대로 신분증 등 서류를 가지고 공단이나 동 주민자치 센터를 찾아서 꼭 신청부터 하기 바란다.” 강사가 힘주어 당부하였다.
기초연금은 65세가 되는 생일 월부터 매월 25일에 지급한다.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교직원연금 수급자는 기초연금 제외자다. 몇 년 전 복잡하다는 이유로 신청을 포기하였던 한 회원이 무릎을 쳤다. “월 소득 평가액, 재산의 월 소득 환산액 등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구청에서 계산해준다고 하니 다시 신청하여야겠다.”고 하였다.
공단 관악지사장을 비롯한 직원과 이수회원은 최고기온을 연일 경신하고 있는 푹푹 찌는 한여름과 씨름에 돌입하였다. 사람의 왕래가 많기로 유명한 신림역으로 이동하여 가두홍보활동을 하였다. 안내 팜플렛을 나누어 주지만 많은 시민이 기초연금에 별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기초연금은 국민의 70%에 지급한다. 같은 조에서 함께 활동한 회원이 "자신이 상위 30%에 해당된다고 생각하는가? 액수가 크지 않아서 관심을 두지 않는가? 아무튼 홍보가 매우 필요한 것 같다."고 말하였다.
이수회는 작년부터 공단과 함께 이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 정도의 가두 홍보활동으로는 많은 노력에 비하여 그 효과가 아직 부족한 실정이다. 전문가도 지급규정을 이해하기 매우 어렵다. 차제에 공익방송 등이 참여하는 대대적인 홍보가 필요한 대목이다.
기초연금 홍보에 땀 흘리는 국민연금공단 관악지사 직원과 수급자 모임 이수회원의 노고에 감사하며 무궁한 발전을 바랐다.
‘취업절벽, 창업절벽’으로 표현되는 오늘의 경제상황은 심각한 ‘국가적 문제’가 되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창업지원을 확충하고 있으며, 그중 대표적인 것이 ‘정책자금’으로 통칭하는 정부자금 지원제도이다. 그러나 이를 이해하고 제대로 활용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SBA 서울산업진흥원은 교육과 홍보를 하면서 이를 적극 활용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연초부터 서울창업카페 숭실대역지점에서 손문규(59) 정책자금 전문가가 ‘정책자금과 창업’을 주제로 강좌를 열었다. 현장에서 경청한 강의내용을 요약하고 궁금한 점을 물어서 보충하였다.
손문규 강사는 “정책자금이란 뛰어난 아이디어와 사업이 준비되어 있어서, 자본금만 있으면 될 것 같은데 아직 자금이나 신용이 부족해서 비용 마련이 어려운 사업자나 초기기업을 위한 자금”이라고 설명하였다.
강의시작 전부터 청장년 창업희망자들이 강의실을 꽉 채웠다. “창업에는 아이템 선정을 잘 하여야 하고, 시장성, 안전성 점검에 유의하라.”고 강조하였다. 한마디로 돈 버는 장사를 해야 한다. 계산으로는 남는 것 같지만 손에 남는 것이 없는 불황형 흑자, 흑자도산으로 지칭되는 껍데기 창업은 말짱 헛것이라는 지적이었다.
정책자금에는 시설, 운영자금을 비롯하여 상환이 필요 없는 지원자금과 상환해야 하는 대출자금으로 나뉜다. 집행기관도 국가, 지자체, 금융회사 등 여러 곳이다. 중소기업청, 미래창조과학부, 고용노동부 등 구가기관과 지방자치잔체가 있다. 중소기업진흥공단, 근로복지공단, 한국여성경제인협회,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등 공공기관도 많다.
손문규 강사는 “정책자금은 공모 경연대회를 거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류심사와 심층면접을 한다. 정확한 정보를 입수하여 철저하게 준비하여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자료를 배부하였다.
수강자의 절반을 넘는 청년 창업자들은 정책자금 신청부터 선정되는 방법까지 경험자만이 알 수 있는 날카로운 질문도 쏟아냈다. 강사는 시원시원하게 답변을 하였다.
사회은퇴 후 창업을 구상 중이라는 한 수강자에게 소감을 물었다. “창업에 따른 정책자금이 이렇게 다양하고 활용할 여지가 많은지 처음 알았다. 현장에서의 풍부한 성공사례 강의 대목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손문규 강사는 왜 정책자금 전문가가 되었을까? “사회은퇴 후 사회공헌을 실현하는 방법을 찾아서 재능기부 활동을 하고 있다. 강의에서 지적한 것처럼 창업자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 자금이라는 점을 알았다. 창업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방법을 찾아서 창업자금을 집중해서 연구하였다.”
그는 대기업에서 기획과 영업에서 뛰어난 임원으로 활동하다가 회사은퇴 후, 서울산업진흥원에서 창업닥터 겸 담임교수로 사회공헌에 기여하고 있다. 현재 창업정책자금 전문가로 청장년 창업을 이끌면서 지도하는 실전경험이 풍부한 창업닥터이다.
“행운이란 준비가 기회를 만나는 것”이란 클로징 멘트로 강의를 마무리하였다. 강의가 끝난 후에도 젊은 창업가들의 질문이 계속 되었다. 창업 준비생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귀중한 시간을 쪼개서 열정적으로 강의를 하고 취재에 협조해 주신 손문규 강사께 감사드리며 무궁한 발전이 있기를 바랐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배려와 성의'는 어쩌면 기본이다. 가깝게 오래 사귄 친구 관계에서는 더욱 그 기본을 지켜야 한다. 어느 날인가 오래도록 간직된 깊은 우정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참아왔던 앙금의 감정이 더 이상 인내할 수 없어 폭발을 한 것이다. 조금도 더 참을 수 없는 너그럽지 품성을 뒤늦게 후회도 했지만 차라리 잘 된 일이었다.
필자는 10여 년 만에 고국에 돌아왔다. 수소문 끝에 연락이 끊겼던 옛 친구를 찾았고, 그 친구는 당장이라도 만나자고 보챘다. 지난날의 추억과 못 보고 살아온 날의 궁금함으로 마냥 들떠 있었다. 호텔 커피숍에서 만난 친구는 흘러간 수많은 시간 속에서 모습이 전혀 달라져 알아볼 수가 없었다. 아주 오랜만에 만나 조금은 서먹했으나 그래도 옛 때묻은 추억들과 각기 다른 삶의 진한 이야기들로, 삶의 풍파를 넘어선 중후한 아줌마들로서 수다를 이어갔다.
이런저런 삶의 안타까운 사연과 함께 가끔씩은 눈물도 글썽거렸고, 잘 나가는 아이들 얘기까지 끝이 없었다. 친구는 어느덧, 긴 시간 속에 많은 재산을 축적하였고 이제는 제주 땅부자까지 되었다며 자랑을 쏟아냈다. 커다란 얼굴에는 어딘가 힘들어 보이는 그늘이 서려 있기는 했지만, 필자는 있는 그대로를 기쁨으로 다 경청해주었다. 대단하다며 축하와 격려도 해주었다.
시간이 점점 흘러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는데도 친구는 밥 먹자는 소리가 없었다. 안 되겠다 싶어 필자가 먼저 식사하러 가자고 하니 친구는 대뜸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황당한 대답에 말문이 막히고 무슨 일인가 싶었다. 필자는 배가 많이 고팠지만 하는 수 없이 참아야 했다.
어쩔 수 없이 조금 더 지나간 옛이야기들을 해야 했고, 시간이 많이 지난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운터로 가서 커피값을 내야 하는데 어디로 갔는지 친구가 보이지를 않았다. 필자가 먼저 계산을 했지만 조금 기분이 그랬다. 그럴 수도 있다며 일단 이해를 하기로 했다. 얼마 지난 후 또 만나자고 그 친구가 연락했다. 어쩐 일인지 이번에는 자기 집으로 오라고 했다.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가 되기도 해서 선뜻 가겠다고 대답을 했다.
친구는 잘 사는 동네, 50평이 넘는 고급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점심으로는 달랑 자장면을 시켰다. 그때부터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친구를 먼 곳까지 자기 편한 곳으로 불러놓고 소박한 된장찌개는 고사하고 도대체 성의가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가 되어 친구는 함께 쇼핑을 가자고 했다. 근처에 있는 백화점에서 세일을 한다며 그리로 필자의 차를 타고 나갔다. 백화점에 도착하자 갑자기 지갑을 놓고 왔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가방 속에 아무것도 없다며 돈을 빌려 줄 수 있느냐고 했다. 할 말도 없고 어이가 없었지만 순진하게 카드로 빌려주겠다고 했다. 무조건 안 된다고 하기가 좀 그랬다.
우선 지하 마켓으로 갔다. 싱싱하게 잘 말려진 꼬들꼬들한 굴비가 값이 싸고 맛이 있어 보였다. 필자는 손가락질을하며 어떠냐고 했더니 친구는 너무 좋아하며 아무 생각 없이 엉뚱스럽게도 남아 있는 것들을 자기가 몽땅 다 사겠다는 것이다. 기가 막힐 일이었다. 말문이 딱 막혀 입이 벌어졌고 양심이 없는 인간으로 너무 뻔뻔해 보였다.
친구가 어떻게 그 모양으로 변해 버렸는지 앞서가는 뒷모습만을 바라보며 얄밉기도 하고 도통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머릿속은 혼란으로 가득 차 있는데, 또 팥빙수가 먹고 싶다며 태연하게 함께 먹자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참을 수가 있었다. 차라리 필자가 사주겠다고 먼저 제의했다. 기분이 안 좋기는 했지만 돈이 없다니 도리가 없었다. 마음을 상하게 한 친구와 함께 마주 보며 먹으려니 영 불편해서 옆자리로 옮겨 앉아 횡설수설 이상한 얘기만 늘어놓은 것 같았다.
문제는 결정적으로 빵집에서 일어났다. 백화점은 문을 닫을 시간이 되어 반값 세일을 하기 시작했다. 베이커리에서 빵을 사려고 하는데, 마지막으로 남은 것 중에 필자가 골라 놓은 것을 자기가 사고 싶다며 얼른 자기 쟁반으로 가져가는 것이었다. 그때,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가 참을 수가 없었다. 소리를 질렀다. 아주 큰소리로 “뭐 하는 거야! 네가 친구냐? 네가 사람이야?” 있는 대로 화를 내고 얼굴이 빨개져서 씩씩대며 그 자리를 거침없이 떠나왔다.
흥분해서 창피함도 무릅쓰고 핏발을 세워가며 소리를 질러대긴 했으나 주차장으로 내려와 운전대에 올라앉았을 때는 약간 후회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친구는 그때까지도 따라 내려 오지 않았다. 정상의 사람이라면 잠시 만나 스치는 사이에도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은 있어야 했다. 하물며 가까운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는데 배려는 고사하고 나이를 먹은 중년의 성품에는 고얀 욕심만 가득 남아 있었다. 어디까지 참아 줘야 할까 싶었다.
그후로는 그 친구로부터 연락이 와도 받지 않았다. 어떤 사연이 있었기에 그렇게 사람이 변해버렸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젊었을 때는 착하기만 하고 순수했던 친구가 나이를 먹으면서 어떻게 그리도 당돌하고 얌체처럼 달라질 수가 있는지 필자의 머리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를 않았다.
시간이 가면서 가끔씩 그 친구 생각에 마음이 아련하게 슬퍼왔다. 오래된 우정이었기에 미련도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미 흔들려버린 우정을 더 이상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나이가 든 탓 일수도 있겠지만 필자를 힘들게 하는 것은 이제 단순하고 명료하게 싫었다.
좋은 사람만 만나고 살아도 남은 시간이 짧기만 한 것 같다.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 해도 상대를 위한 배려와 최소한의 성의는 있어야 한다. 이제는 고민하고 이해하며, 애써서 만나야 하는 관계의 삶은 심신을 피곤하고 지치게 한다. 어느덧 자신도 모르게, 삶의 가치관이 다른 이상한 친구들은 멀리하고 싶었다.
필자에게도 전혀 상상치 못 했던 일, 아주 오래된 우정이 마음이 상해 흔들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말 잘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시니어가 되면 반대 상황이 도래한다. “한 번 말하고, 두 번 경청하며, 세 번 감명하라!” 한마디로 말 씀씀이를 확 줄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런 격언을 무시하고 말만 해대는 친구와 의가 상할 뻔한 적이 있다.
또래 친구로 구성된 산악회는 매달 가족동반 산행을 20년 넘게 하고 있다. 맛난 도시락과 간식, ‘정상주’가 어우러져 1급 호텔 뷔페가 부럽지 않은 산상 오찬이 포인트다. 산상 오찬엔 오순도순 이야기까지 있으니 금상첨화.
그런데 은퇴자가 늘어난 몇 년 전부터 모임에 변화가 시작되었다. 동반하였던 부인들은 늙은 남자 냄새가 싫어 거의 빠지고 시간 여유가 많은 남자만 남아 산에 갔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산행을 힘들어하는 친구가 증가하면서 걷기 쉬운 둘레길을 찾는 횟수가 많아졌다. 도시락 싸기 귀찮아지고 남는 게 시간이니 산상 오찬은 사라지고 하산 후 뒤풀이가 풍성해졌다. 대신 만찬에선 고삐 풀린 망아지들이 ‘무림의 자유’를 차지하여 말 많은 친구가 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술을 즐기는 A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계속 읊어대 모두의 원성을 샀다.
대다수 친구가 고개를 내저었고 분위기는 썰렁해졌다. 알아듣도록 설명하면 고개를 끄덕였다가도 말을 시작하면 제 버릇 남 못 주고 ‘말 폭탄’으로 변하였다. 그렇다고 이를 계속 말리기도 곤란하였다. 사람 숫자가 줄어들면 모임 유지가 안 되기 때문이다. 친구들의 고민이 깊어졌다.
‘말 폭탄’ A에게 시달리던 중 외국생활을 마치고 역이민을 한 B가 나타났다. 외국 이야기를 몇 번 들어줬더니 녹음기가 되었다. 말쟁이가 하나 늘어난 것이다. 그는 조용한 다수가 자기 이야기에 열광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할 수 없이 대책을 찾아 나섰다. 뒤풀이 때면 A·B와 주사파 몇 명을 한자리로 모아서 실컷 떠들도록 멍석을 깔아줬다. 좌석분리 작전은 효과가 있었다. 자리가 떨어져 있는 다른 친구들은 조금이나마 소음 공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더구나 몇 번의 모임에서 ‘말 많이 하기’에 승부가 났다. A가 “저 친구에게는 안 되겠다”고 꼬리를 내린 것이다. 소재가 부족한 자기 이야기는 잘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때부터 B가 이야기를 주도하고 A는 묵묵히 들으면서 별로 대꾸도 하지 않았다.
A의 변하는 모습에 친구들은 “세상 많이 달라졌다”고 감탄하였다. 그러나 밀림의 왕좌만 바뀌었을 뿐 시끄러움은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몇 달 전 이른바 자칭 예술가 C가 모임에 나오기 시작하였다. 고리타분한 이야기보다 노래방에서 1차 승부를 벌였다. 노래 실력에 밀리던 B는 슬그머니 뒤로 빠지기 시작하였다. 부질없는 논쟁보다 C처럼 노는 것을 친구들이 훨씬 좋아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때부터 B도 말 씀씀이가 확 줄었다.
결국 느긋하게 기다려주는 방법이 주효했다. 말 많은 친구를 책망할 필요가 없어졌고, 멀리할 이유도 사라졌다. ‘동물의 세계’처럼 질서가 잡혔다.
그래서 좀 발전적인 대안을 만들었다. 각자의 장기를 살려 ‘대장’을 삼은 것이다. 발바리처럼 잘 걷고 지리를 잘 아는 친구는 산행대장이, 카리스마투성이인 친구는 군기반장이 되었다. 그랬더니 최근 서울대 수목원 산행에서도 도토리 키 재기 말다툼은 없었다.
얼마 전 홍콩에서 10여 년간 거주하며 우리나라와 일본을 사업차 자주 방문한다는 ‘동양 전문가’인 캐나다인과 우연히 한·중·일 문화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 동양 전문가는 삼국의 문화에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듯 의아해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필자가 현대식 대형 건물이 아닌, 동양식 전통 건물에 한·중·일 삼국의 각기 다른 문화 코드가 녹아 있다고 하니 무척 놀라워하는 모습이었다.
삼국의 전통 건물이 서양 건축에 비해 목조라는 점 외에 다른 공통점은 건축물에서 지붕이 차지하는 면적이 크다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한·중·일 삼국이 지붕 선(roof line)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중국은 지붕 끝이 하늘을 향해 찌르듯이 올라가는 데[사진 1] 비해, 한국 지붕은 가운데 부위에서 지붕 양 끝이 조금 높아지는 느낌만 주는 정도[사진 2]이고, 일본의 지붕 선은 일직선으로 마무리되는 게 특징이다[사진 3]. 이런 차이점을 말하자, 그 동양 전문가는 무릎을 탁 치며 “그래, 정말 그러네” 하며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걸 기뻐하며, 왜 그 쉬운 차이를 여태껏 자기는 못 봤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필자가 각기 다른 지붕 선에 스며든 문화 코드를 설명해 나가자 그는 더욱 경청하는 자세를 취했다. 중국 건축물에는 권위적 정서가 스며 있는데, 특히 지붕 선은 그런 느낌이 더욱 강해 보는 이로 하여금 중압감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일본은 건축의 핵심이 간결한 직선인데, 지붕 선 역시 단순한 일직선으로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반면 한국의 건축물은 권위감이나 긴장감보다는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특히 지붕 선(線)은 약간 휘어져 있는데, 양쪽에서 실(絲) 끝을 잡고 일직선으로 팽팽하게 당기지 않고 살짝 긴장을 푼 듯 느슨한 인상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 선조들은 자연 친화적 정서를 으뜸으로 꼽은 것이 문화의 코드라면, 일본은 ‘긴장감 속의 아름다움(beautiful charm in tension)’과 인위성이 문화의 한 코드인 셈이다.
그 동양 전문가는 우주라는 자연에는 직선이 존재하지 않기에 “직선은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든 조형물이다”라고 주장한 오스트리아의 건축가이자 미술가인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바서(Friedensreich Hundertwasser, 1928~2000)의 말이 떠오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독일의 대문호 괴테(Goethe, 1749~1832)가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일까?/ 바로 네 눈앞에 있어 눈으로 볼 수 있어/ 네가 가장 쉽다고 생각하는 것이다(“Was ist das Schwerste von allem?/Was dir das Leichteste dünket,/Mit den Augen zu sehen, was vor den Augen dir liegt.”)라고 했다면서, 지금껏 동양 삼국의 문화는 중국 것이라 생각해왔기에 자신이 서로의 차이점을 못 본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한·중·일 건축물의 지붕 선이 지닌 미술사적 의미를 짚어보면서 ‘그 하나’에 얼마나 큰 차이가 존재하는지를 다시금 깨닫는다. 그리고 삼국의 문화적 차이가 새삼 흥미롭게 다가온다.
>>>글 이성낙 현대미술관회 회장
독일 뮌헨의대 졸업(1966),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피부과 교수, 아주대학교 의무부총장, 가천의과대학교 총장, 가천의과학대학교 명예총장(現), 한국의약평론가회 회장(現), 간송미술재단 이사(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