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키우죠”
베이비부머 귀농의 정석 전북 고창의 송인보씨
목에 힘주고 자신감 넘치던 삶은 세월에 밀려 점점 작아져만 갔다. 도시생활을 툭툭 털어버리고 선택한 고창행. 우리 부부는 따뜻하게 맞아준 이곳에서 허리 꼿꼿이 펴고 농사짓는 포도와 복숭아를 선택했다. 몸은 힘들지만 강소농을 꿈꾸는 새 인생이 즐겁다.
◇귀농 3년차, 몸은 축나고 수입은 없지만…= 지금은 여름, 할 일이 무지하게 많다. 과수묘목을 키우는 농부는 2년차에 나무를 얼마만큼 키우는가 하는 게 향후 농사의 갈림길이다. 풀과 전쟁하고, 벌레와의 싸움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특히 친환경을 고집할 경우에는 더더욱 힘든 싸움이 된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포도밭에서 일하다보면, 복숭아밭 주변 개암나무는 어느새 풀로 덮혀 있다. 회양목 잡초라도 뽑으려 하면, 포도넝쿨은 엄청 자라있기 일쑤다. 솔직히 너무 힘들다. 한낮에 잠깐 쉴라치면, 무슨 일이 또 생기는지 컴퓨터를 켜고 글을 올리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최근 들어 고창에 귀농 또는 귀촌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담바우농장에도 귀농하려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찾아온다. 아직 초보인 우리에게 귀농에 대한 자문을 듣겠다고 할 때면 아직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어진다. 귀농해서 2년차에 바로 수입을 짭짤하게 올리는 사람도 무지 많은데, 햇수로 3년차에 접어들었지만 몸만 축내고 수입 한 푼 없는 놈에게 자문이라니….
하지만, 담바우의 내 자신이 귀농을 했고, 고창의 많은 귀농인들과 인연도 쌓으면서 느낀 점도 있다. 무엇보다 사회적으로 귀농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다 보니 귀농에 관한 내 개인적 소견을 한번 써보고 싶었다. 우리 부부는 둘 다 서울출신이고, 서울과 그 변두리지역(좋은 말로 수도권)을 벗어나지 못했던 사람들이었다. 소위 ‘기역자를 보고 낫을 연상’ 한다는 건 상상도 못하는 그런 수준이었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그렇듯 우리도 그 길을 따라 열심히 살아왔다.
젊어선 종합상사 입사를 목표로 공부했고, 결혼해서는 출근시간은 알아도 퇴근 개념이 없는 것을 당연시 했다. 내가 없으면 회사가 문 닫을 거란 자만에 빠져 살기도 했다. 그러다가 40대에는 성질난다고 회사 때려치우고, 사업한다고 은행에서 대출받고, 한번 실수는 ‘병가지상사’라며 스스로에게 위로하며 다시 일을 벌이기도 했다. 50대 초반을 넘기면서는 사업을 다시 하자니 겁이 나고, 취직을 하려해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 버티다보니 자연스럽게 벼룩시장 구직란도 기웃거리게 됐다. 이런 생활의 반복을 옆에서 지켜보다 우울증에 걸린 아내에게 겨우 한다는 말이 “여보, 우리 시골 내려가서 살래? 당신 생각은 어때”라면서 인터넷 검색어에 ‘귀농/귀촌’을 치고는 엔터키를 팍 눌렀다.
어디서 무슨 귀농박람회를 한다거나 또 어디서 도시민유치 설명회를 한다고 하면 찾아가고 귀농책자와 조그만 찹쌀떡봉지 하나 받고는 터덜터덜 나오곤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아주 우연히 이곳 고창으로 오게 됐다.
◇따뜻하게 맞아 준 고창에서 발품 팔아가며 정착 = 남들에겐 “지도를 펴놓고 손바닥에 침을 탁 쳤더니, 침이 고창에 떨어져서 왔노라”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하지만 사실은 우연히 들른 고창에서 귀농귀촌협의회와 기술센터의 도움이 없었으면 우리의 귀농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지나가다 들린 부부에게 빈집을 소개해 준다는 게 결코 쉽지 않은데(그분들은 마침 빈집이 있어서 소개해 주었겠지만), 처음 보는 분들의 따뜻한 애정이 우리에게는 감동이었다. 대부분의 베이비부머들이 그렇듯 떠밀리듯, 흘러들듯 귀농(?)을 했다. 처음엔 귀농이라고 하자니 농사기술도 없고, 몸도 부실하고, 경작할 토지도 없었다. 그렇다고 귀촌이라 하자니 돈도 없는 주제에 염치도 없었다. 그래서 귀농을 했다고 할지, 귀촌을 했다고 할지 정체성의 혼란이 오기도 했다.
귀농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거의 6개월을 우리 부부가 정착할 수 있을만한 지역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고창에 온지 6개월 후인 2011년 11월에 선운사 뒤편 담바우라는 산속마을에 3000평의 밭을 매입했다. 또 어떤 작물을 택할지를 결정하기위해 고창의 선진농업인들을 찾아 자문을 구했다.
많은 우여곡절과 고민 끝에 포도 한그루에 2000송이를 맺는 유기농포도의 장인이며, 대한민국 신지식인인 도덕현 선생님을 멘토로 친환경시설포도와 노지 복숭아를 재배하게 됐다.
◇‘왕년’은 중요하지 않다, ‘내일’을 보라 = 우리가 귀농 한 경험을 바탕으로 귀농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몇 가지 조언을 하려고 한다. 특히 도시에서 얼마 남지 않은 돈으로 왕년의 자기스펙에 자만하고 사업을 벌이려는 사람들이나 프랜차이즈의 유혹에 솔깃한 사람들이라면 꼭 한번 경청하기를 바란다.
첫째, 귀농하고자 하는 지역을 먼저 확실히 정해야한다. 먼저 발품을 팔고, 그 지역의 기술센터나 귀농상담소를 찾아봐야한다. 정착지를 선택하는 것도, 향후 어떤 작물로 먹고사느냐 만큼 중요하다. 지원이 많은 지자체라면 많은 사람들이 귀농하지 않는 뭔가(?)가 있을 수 있고, 지원이 적은 지자체는 귀농해 봐야 찬밥일 뿐 먹고살기 힘들 수도 있다.
수도권 주변 땅은 거의가 서울의 있는 사람들의 소유이고, 기획부동산이 훑고 간 경우가 대부분이다. 만일 자신이 하고자 하는 목표가 정해져 있다면, 거기에 맞춰 지역을 찾아야 한다. 무화과를 심으려면, 장류를 제조하려면, 소를 키우려면 어디가 좋을까? 복분자를 짓고 싶다면 고창을 우선순위로 두듯이 말이다.
둘째, 집이나 땅을 먼저 사지 않는 게 좋다. 100여 평이 넘는 대지위에 그럴듯한 기와지붕의 농가주택이 3000만~4000만원이라면 도시인 개념에선 “우~와, 싸다”이겠지만 그 집을 중심으로 활동범위의 제약을 받게 된다. 집주변에서 땅이 없다면 다른 지역으로 출퇴근하며 농사를 짓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먼저 전세든 월세든 아님 공짜든 거주할 집을 구하는 게 첫 번째지만 사는 건 심각하게 고려해보고 결정해야 한다. 개인적인 생각은 귀농 후 발품을 팔며, 매입이든 임대든 땅을 먼저 알아보는 게 집을 매입하는 것보다는 우선일 것 같다.
셋째, 작물은 그 지역의 특산물이 가장 안전하다. 고창이라면 수박, 복분자, 고추 등 일단은 수매가 확실한 작물이 좋다. 남들이 안하는 것을 했다가 만약 수매가 안 되면 낭패를 당할 수 있다. 수익성이 아무리 좋아도 10개를 생산해서 3개만 판
다면 문제다. 때문에 농사지을 땅의 날씨, 바람의 방향, 주변 환경, 땅의 성질, 멘토의 확보 등을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
용인에서 목회활동을 하면서 고창에서 땀 흘려 가족농사를 짓는 성은주 목사님은 “농사에는 하층농사, 중층농사, 상층농사가 있다”고 우스개를 하곤 한다. 하층농사는 고추, 수박, 고구마, 양파 등 온갖 과채류를 지칭하는데 이 작물들은 바닥을 박박 기며 농사를 지어야한다는 것이다. 중층농사는 블루베리, 복분자, 버섯, 아로니아 등으로 이건 서서 허리를 약간 숙이고 농사를 짓는다. 상층농사는사과, 배, 복숭아, 감, 포도 등 온갖 과수류를 말하는데 허리를 꼿꼿이 펴고 농사를 짓는 것을 빗댄 얘기다. 우리의 경우는 상층농사를 선택했다.
그런데 귀농 3년차인데 아직도 수입이 없고, 돈만 나간다. 거품은 많이 줄었지만 농촌 살림도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생활비가 있다. 남들이 복분자를 몇 킬로그램 팔아 얼마를 벌었다고 말하면 괜스레 힘이 빠지고 주눅이 든다. 또 예측 못 할 기후조건에 한순간에 성목이 죽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당장의 소득을 바라고 하층농사를 택하면, 30~40년은 기본인 기존 원주민의 발끝만 따라가야 한다. 몸 고생은 장난 아니게 힘들고, 항상 몸으로 때울 뿐 향후 미래소득이 지금보다 나아지진 못한다. 이렇게 힘들다 보면 집에 계신 사모님께서 보따리를 쌀 수도 있다. 그렇다고 여기는 고추, 저기는 오디, 나머진 감나무 하는 식으로 접근하면 더 힘들 수도 있다. 작물의 선택은 신중해야한다.
◇작지만 강한‘강소농’이 해답이다 = 넷째, 강소농을 꿈꿔야 한다. 땅의 크기는 상관없다. 재배 면적이 크면 수입이 배로 생기겠지만, 인건비도 배로 나가고 만약 잘 안될 때는 손해도 곱절로 볼 수 있다. 작지만 강한, 작지만 알찬, 작기에 덜 힘든 강소농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착 후 교육을 잘 받고 인적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한다. 귀농과 귀촌을 같이 생각하는 베이비부머 세대라면 더욱 그렇다. 기술센터를 활용한 각종교육과 멘토 확보에 공을 들이고, 진정한 강소농의 꿈을 실현하기 바란다. 누가 뭘 심어 얼마를 벌었더라는 풍문들은 무시해야 한다.
다섯째, 지원에 민감할 필요가 없다. 귀농하는 사람들 중에 “고창에 오면 뭘 주나요?” “돈은 얼마나 줘요?”라고 묻는 이들이 있다. 도시에서 시골 오는 게 다 자기 개인사정 때문이지, 시골에서 오라고 애걸하는 건 아니다.
지원을 목표로 사업을 하게 되면, 그래서 자신입장과 상관없이 지원 사업을 받게 되면 결국엔 자부담금액은 날아가고 융자부분은 빚으로 남게 된다. 열심히 하다보면 지원받을 기회도 온다. 지원이 목표가 되면 안 될 것이다.
·귀농 전 거주 지역: 경기도 수지
·귀농 전 직업: 기업 퇴직 후 자영업
·귀농 결심동기: 노후준비
·귀농 선택작목: 복숭아, 포도
·귀농귀촌 교육이수 실적: 없음
·귀농연도: 2011년
·귀농시 나이: 만 55세
·귀농지 선택사유: 농업특화도시
·귀농시 영농기반: 없음
·귀농 초기자금: 땅 3000여평(1억원), 집 건축비용 1억원
·현재 영농규모: 포도하우스 800평, 복숭아 1000평
·연간 수익: 아직 없음(내년 3000만원 예상)
“소통은 원래 안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리더들의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HRM 코리아'의 조병린(68)대표다. 전 삼양사 부회장, HRM 코리아 대표, 행정학 박사, (사)한국 HRM 협회 부회장 등 그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는 다양하다.
이 시대 최고의 화두는 ‘소통’이다. 정치권에서도 ‘불통’ 논란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고, 세대 간 소통의 벽도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조 대표가 조직 내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소통이다. 조직 목표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소통 방법이 절실하다는 판단에서다. 조 대표는 생일을 맞은 직원 부모님께 화환보내기, 인디언스틱 소통법 등으로 직원들과 대표의 거리를 좁히고자 했다. 또 항상 새로운 소통 방법을 모색하고 있기도 하다. 미래 꿈나무를 위한 소통 프로그램 개발에도 앞장서고 있다.
# 경청하세요. 칭찬하세요 ‘인디언스틱’
인디언스틱 소통법은 막대기를 가진 사람만이 발언권을 가지는 인디언들의 소통 방식에서 착안한 것이다. 막대기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은 말하는 이의 이야기를 경청해야한다. 조 대표는 이 방식을 매주 월요일에 열리는 회의 시간에 적용했다. 평소 회사 직원들만 다운로드 할 수 있는 공유폴더에 좋은 책이나 씨디(CD)를 업로드 해 보거나 듣도록 했다. 이 후 회의 시간에 그것에 대해 느낀 점을 인디언 스틱 방식으로 3분 스피치를 시켰다. 듣는 이들은 이야기를 한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해 요약하고, 이에 대한 구체적인 칭찬을 해야 한다. 이렇게 인디언스틱 방식의 3분 스피치를 도입한 후 직원들 간의 관계는 크게 달라졌다.
“처음에는 바쁜 일상 중에서도 1주일에 한번은 자신의 삶의 목표나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라는 의미에서 시작한 것이었어요. 지금은 이러한 인디언스틱 소통법을 통해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칭찬을 하게 되니 칭찬을 한 직원과 들은 직원간의 관계가 좋아지더라고요.”
# 소통을 위한 리더의 조건
‘정체성, 공감, 경청’
조 대표가 조직 내 원활한 소통을 위해 리더가 갖춰야 할 덕목 세 가지를 설명했다. 조 대표 자신뿐만 아니라 직원들에게도 세가지 덕목을 강조한다. 그는 조직의 정체성이 소통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모든 조직원들과 공감하고 공유돼야 한다는 믿음이 강하다.
“남이 생각하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내가 일치해야 돼요. 소통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허심탄회한 소통이 가능하니까요. 이러한 소통이 이뤄질 때 조직의 정체성과 존재의 이유를 서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습니다.”
경청하는 습관의 중요성도 거듭 강조했다. 조 대표가 실시한 인디언스틱 소통법도 경청하는 습관 배양을 유도하기 위한 것의 일환이었다. 관계의 기본은 소통이고 소통의 기본은 경청이라고 생각하는 그다.
“누가 내 말을 들어준다는 느낌. 정말 기분 좋은 그 느낌이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죠.”
# 미래를 위한 씨앗을 뿌리다
환갑을 넘겨 황혼이 되니 알았다. 돈보다 중요한 것이 훨씬 많다는 것을. 조 대표는 돈보다 가치 있는 것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작했다. ‘사회의 소금과 같은 사람이 되라’는 의미에서 만든 초등학생을 위한 솔트(Salt) 프로그램이다. 그가 부회장으로 활약하고 있는 (사)한국HRM협회에서 ‘M하모니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의 행복한 성공을 위한 씨앗을 뿌린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아이들에게 정체성 확립을 도와주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해 함께 조화를 이루는 방법을 가르친다. 어린이들에게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알고 다양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조 대표는 가족의 단위가 작아지는 현실에서 어린이들이 겪고 있는 소통에 대한 어려움이 해소되기를 바라고 있다. 더 나아가 이들이 다양한 삶에 조화하는 방법을 익혀 사회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원한다.
“점차 소통하기 어려워하는 어린이들이 많아져서 안타깝습니다. 성격은 타고나서 변화시키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인성은 교육과 반복학습을 통해 바꿀 수 있어요. M 하모니 프로그램은 그것을 하는 것입니다.”
“나 같은 사람도 도와주니 아주 고맙지. 이 늙은이를 찾아보는 사람도 없는데….”
5일 오전 10시 서울 용산구 청파동의 한 낡은 벽돌주택.
최민경(26·여) 사회복지사가 문을 열고 들어서니 어두컴컴한 방에서 박진순(77) 할머니가 반갑게 맞는다.
방에는 각종 약봉지가 흐트러져 있고 낡은 벽지에는 곰팡이가 슬었다. 난방비가 벅차 전기장판에 의지하는데, 이마저도 남편인 김윤상(82) 할아버지가 없을 때는 꺼두는 바람에 방에는 한기만 가득하다.박 할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최씨에게 이런 저런 얘기를 털어놓는다.
“할아버지가 위암 통증으로 밤잠을 못 이룰 정도여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몇 번이나 시도했어. 무작정 지하철을 타고 오이도로 가려 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명동역에서 쓰러져 있었다더라고.”
친딸처럼 할머니의 말을 경청한 최씨는 할아버지를 위한 상담 치료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는 주민센터로 돌아와 상담 내용을 전산망에 빼곡히 입력했다. 그의 근무지인 용산구 청파동에 2만2400여명의 인구 중 국민기초생활보장 대상자 517명, 기초노령연금 수급자 1509명, 등록 장애인 911명 등을 포함해 5531명의 복지대상자가 거주하고 있다.
최씨를 포함해 4명의 복지담당 공무원이 주민센터에 근무하고 있으니 1명당 1400명 가까운 인원을 책임지는 셈이다.최씨는 이날 오전 8시50분에 주민센터에 출근했다. 새 학기를 맞아 무상보육비·임대아파트·문화누리카드 신청 등이 몰리면서 업무 시작 전임에도 주민센터에는 10여 명의 민원인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계가 오전 9시를 가리키자 최씨의 컴퓨터 모니터에 10개 가까운 창이 띄워지고 전화기는 불이 났다. 마음 같아선 맡은 어르신들을 일일이 찾아뵙고 싶지만, 각종 민원을 처리하다 보면 사무실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날도 허다하다.최씨는 “민원인이 몰려 가정방문은 오전 늦게, 혹은 오후에야 잠깐 할 수 있는 정도”라며 “중점적으로 관리하는 소외계층 어르신 100여명을 다 찾아뵙고 싶지만, 시간이 나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다.
오전 9시20분께 초등학생 자녀의 교육비를 신청하러 이모(48·여)씨가 왔다.최씨는 부동산 임대차 계약서, 금융정보제공동의서 등 구비 서류를 꼼꼼히 살펴보고 아직은 낯선 도로명 주소까지 친절하게 안내했다.“문화누리카드 신청 첫날에는 100명 가까운 민원인이 몰리기도 했어요. 일이 많은 날은 밤 10시가 넘어서 퇴근하는 날도 잦죠. 사회복지사들의 업무가 효율적으로 분배됐으면 좋겠어요.”
최근 문화누리카드 사업은 관리 사이트가 자주 먹통이 되는 바람에 접속자가 적은 새벽 시간에 주민센터로 출근해 입력하는 일도 있었다.주민센터는 각종 복지 서비스를 구석구석까지 제공하는 '모세혈관' 같은 역할을 한다. 일손은 모자란 데 주무부처에서 넘어온 일이 집중돼 업무 강도가 높다.
한국사회복지행정연구회가 작년 4월 발표한 '공공복지전달체계 현황과 개편방안'에 따르면 지난 2012년 6월 기준 우리나라의 3474개 읍·면·동 가운데 사회복지직이 단 1명만 배치된 곳이 1417곳에 달했다. 단 한 명도 배치되지 않은 곳이 31곳이나 됐으며, 5인 이상 배치된 곳은 94곳에 불과했다.최근 ‘송파 세 모녀 자살사건’ 등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례가 늘어나 ‘찾아가는 복지’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복지 행정 현장은 여전히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청파 주민센터의 사회복지를 총괄하는 김종복 팀장은 “이웃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요즘 상황에서 통장이 예전처럼 집집이 다니며 상황을 체크하는 게 불가능해졌다”며 “‘찾아가는 복지’ 중요하지만,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지 주민센터 등에 연락하도록 홍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다짜고짜 욕을 퍼붓거나 불만을 품고 ‘밤길 조심하라’며 협박까지 하는 악성 민원인도 이들을 움츠리게 한다.
대검찰청이 작년 6월 “복지 및 민원담당 공무원이 심각한 육체적·정신적 피해에 시달리고 있다”며 이 같은 행위를 엄중 처벌하기로 발표했을 정도다. 이에 따르면 복지 담당 공무원은 우울증 유병률이 일반인의 3배, 일반 행정공무원의 2배 이상이었고 복지 담당 공무원의 51.9%가 소방·경찰관보다 훨씬 높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작 사회 소외계층을 책임지는 사회복지사들이 돌봄의 손길 바깥에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실제로 작년 2∼3월 경기도 성남·용인과 울산에서 사회복지공무원 3명이 업무 과다와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최씨는 “사회복지사는 감정의 소비와 스트레스가 심하다”며 “사회복지사를 위한 상담 프로그램 등이 마련됐으면 한다”고 말했다.양성근 한국사회복지행정연구회장은 “현재 인력 시스템에서는 ‘찾아가는 복지’에 한계가 있다”며 “극단적인 경우 한 읍·면·동에서 1500건 이상 관련 민원을 처리하는 경우까지 있다. 최소 6000∼7000명은 충원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야 대접 받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이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함축돼 있다. 일단, 나이가 들어 갈수록 다른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이 어려워짐을 나타낸다. 나이가 들고 성공할수록 자신도 모르는 사이 뻣뻣해지고 권위적이 되기 때문이다. 자신은 소통을 위해 애쓰더라도 받아들이는 쪽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이 말에는 그만큼 어른대접 받기 어려워진 시대가 됐다는 자조적 의미도 숨어 있다. 예로부터 유교적 사상에 따라 연장자가 어른 대접을 받는 것이 우리나라의 전통이었지만, 어느새 그런 전통은 사라져버렸다. 단순히 나이가 많다고 어른 대접을 해주는 곳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각종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나이가 들수록 경험을 통해 현명해진다는 명제마저 희미해지고 있다. 체험을 통해 얻는 지혜보다는 돈이 우대받는 세상이기도 하다.
어른 대접만 받기 어려워진 것이 아니다. 사회 어느 분야에서라도 적극적인 소통 없이 리더 자리에 오르기 힘들어진 사회가 됐다. 물론 소통 없이 자리를 유지하기는 더욱 어렵다. 이제 소통은 ‘베풂’의 한 종류가 아니라 ‘생존법’ 그 자체다. 때문에 중장년층에게 소통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소통은 남을 위해서도 해야 하지만 자신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사회적 지위에 관계없이 행복은 주변 사람과의 원활한 관계 속에서 존중받는 소통을 통해서야 느낄 수 있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소통을 통해 서로의 오해를 풀고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세계 15위권에 속하는 경제력에도 불구하고 각종 조사에서 한국인의 행복도가 낮게 나타나는 것도 소통의 부족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경제활동 역시 인간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만큼 소통 없이 부자가 되기는 힘들다. 그러니 소통만 잘해도 인생의 반은 성공했다고 말할만한 시대다. 최근 고령화, 늘어난 인생에서 소통은 가장 굵직한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다. 입장과 상황에 따른 건강한 소통법과 소통의 노하우를 살펴보고 소통의 담대한 사례를 5회에 걸쳐 시리즈로 짚어본다.
[소통기획 취재팀=이지혜-김지호-김영순 기자]
글 싣는 차례
①진짜 소통은 삶에 아름다운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 ‘나만의 생존법’
② 가족을 움직이게 하는 메머드급 에너지… 가족간의 소통
③ SNS소통으로 노후 삶의 질 높아져
④ 자기만의 소통법 노하우…시니어CEO의 인디언스틱 소통방식
⑤ 자기만의 소통법 노하우…기초단체장의 봄바람 소통
◆시니어를 위한 소통 코드는 ‘NO 3노’
2014년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단연 ‘소통’으로 떠올랐다.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른 세대 간 갈등, 사회적 갈등을 초래할 우려가 크기에 ‘소통’이 화두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소통을 위해서는 듣는 것이 전제가 돼야한다. 귀는 둘이고 입은 하나인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소통을 영어 철자로 풀어 보면 남의 말을 듣고 공감하는 것(sympathy)인데 요즘은 sympathy로는 부족하고 empathy가 필요하다고 한다. sympathy가 이성적 측면에서의 소통을 강조한 단어라면 empathy는 감성적 측면에서의 배려를 중시하는 것이다. 이 개념은 수동적인 ‘같이(sym=together)’의 개념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남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것(em=enter)’을 의미한다. 이는 상대와의 관계를 통해서 그 관계 속으로 들어가서 자신을 잊어버리는 것보다 더 좋은 소통이 없다는 걸 의미한다.
이와 관련하여 나이가 들수록 조심해야 하는 ‘3노’가 있다고 어르신들은 자주 강조한다. 바로 자신이 중심이 되는 노욕, 노여움, 노파심이 그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본인과 주변 모두를 위해서 말을 조심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말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말이야말로 소통의 가장 일반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을 할 수 없는 이들에게 소통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 걸까? 예를 들어 수화를 할 줄 아는 의료진이 없다면 청각장애인은 병원에서 어떻게 진찰을 받을까.
이런 난감한 상황을 해결해 주는 의료 전문 수화 통역사 오은정 씨. 의료진에게 말 한마디 하기 쉽지 않은 청각장애인들에게 그녀의 수화 통역은 한줄기 빛과도 같다. 청각장애인의 손짓도 하나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의료진에게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녀는 의료진과 청각장애인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그들의 입과 귀가 되어준다. 육체의 고통보다 소통의 고통이 더욱 심하다고 말하는 청각장애인들, 그들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이해하는 그녀는 의료진과 청각장애인 사이 소통의 다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처럼 소통은 감성이 오가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통해 아름다운 변화가 생겨 궁극적으로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소통 부재, 소통이 어려운 이유
소통은 두 사람 또는 두 개의 집단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한쪽의 주장을 상대편에서 귀 기울여 듣는 소통도 있고, 듣고 나서 자기 의견을 내놓는 소통도 있고, 반반씩 주장과 경청을 곁들일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소통은 상대방의 의견을 진심으로 경청해준 다음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만 하면서 상대방이 그 주장을 모두 들어주지 않으면 싸움이고, 공격이 돼 버린다.
예전에 본 일본 드라마 중 ‘숙년이혼(熟年離婚)’. 우리말로 ‘황혼이혼’을 뜻하는 드라마가 있었다. 드라마는 한 가장이 정년퇴직 당일 저녁, 온 가족이 함께하는 만찬 자리에서 아내로부터 보기 좋게 이혼을 당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드라마가 인기를 끈 결정적 원인은 누가 봐도 번듯한 남자주인공 캐릭터에 있다. 폭력적이거나 무능력하지 않고 이혼당해 마땅한 구석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이 노년의 신사는 누구보다 가족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헌신하는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다. 중견기업 중역으로 후배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아온 그의 정년퇴직은 분명 자신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더없이 자랑스러운 일일 터였다.
◆소통의 정공법은 진심과 배려
하지만 그는 가족과 ‘소통’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좋으면 가족 모두가 좋고, 자신이 싫으면 가족도 다 싫어할 거라는 오만, 가족 구성원이 자기의 생각과 통제 속에서만 행복할 것이라는 그의 착각이자 ‘실수’였다. 소통 부재가 불러온 가족 해체, 그것은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이웃, 내 가족의 뼈아픈 자화상이 되고 있다.
이처럼 부부 간의 진심어린 소통 뿐 아니라 부모와 자식 사이의 자연스런 소통, 친구끼리의 믿음에 바탕을 둔 소통, 이웃과 이웃 간의 배려 있는 소통 등이 없는 이유 또한 소통에 대한 사회의식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