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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태형의 한문 산책] ‘후목분장(朽木糞牆)’
- 를 보면, 수많은 공자의 제자가 나오지만 그중 재여(宰予)만큼 특이한 인물은 없다. 를 읽어보면 공자가 제자에 대해 험담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나의 예외가 있는데, 그게 바로 ‘후목분장(朽木糞牆)’의 일화에 나오는 예다. 재여가 낮잠을 자자, “썩은 나무는 조각을 할 수 없고, 썩은 담장에는 칠을 할 수 없다”와 같은 심한 말로 나무라는 장면이 나온다. 왜 성인(聖人)인 공자가 이런 심한 말을 했을까? 자세한 내막은 알 길이 없지만, 를 살펴보면 약간의 유추를 할 수 있다. 에는 재여가 공자와 논쟁을 벌이는 장면이 세 번 등장한다. 첫 번째가 바로 ‘삼년상(三年喪)’과 관련한 논쟁이다. 어느 날 재여는 공자에게 삼년상이 너무 길므로 일년상으로 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한다. 그러자 공자가 일년상으로 끝내도 마음이 편하겠느냐고 물었고 재여는 편안하다고 답한다. 공자는 마음이 편안하다면 일년상으로 하라고 하면서, “군자는 부모님의 상중(喪中)에는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맛이 없고, 좋은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다. 그래서 맛있는 음식을 먹지 않고 좋은 음악을 듣지 않는 법”이라고 했다. 재여가 나가자 공자가 말했다. “재여는 참으로 어질지 못한 사람이다. 자식은 태어나서 삼 년이 지나야 부모의 품을 벗어난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삼년상을 치르는 예(禮)를 갖춘 것이다.” 즉 이때 그는 공자에게서 ‘불인(不仁)하다’는 딱지를 받은 것이다. 또 의 ‘옹야(雍也)’ 편을 보면 재여가 다음과 같은 고약한 질문을 하는 대목이 나온다. “어진 사람[仁者]이 있는데 누군가가 알려주며 말하기를 ‘우물에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것을 따라 우물에 빠져야 할까요?” 공자가 말하기를 “어찌 그렇게 하겠는가? 군자에게 가서 보게 할 수는 있지만 그를 속여 빠지게는 할 수 없으며, 속일지언정 우롱하지는 못하니라”라고 했다. 가만히 읽어보면 공자가 화가 난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가? 어진 사람이라면 마땅히 남을 도와야 하는데,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놓고 남을 도와야 하느냐는 발칙한 질문에 마땅한 대답을 내어놓지 못해 화가 나서 내뱉는 스승의 모습이다. 이외에도 의 ‘팔일(八佾)’ 편에 나오는 일화가 있는데, 대략 이상의 세 가지 일화를 종합해보면, 재여는 아주 똑똑하고 재기발랄한 제자이지만, 몹시 골치 아픈 제자였다. 묻는 질문마다 스승을 골탕 먹이려는 듯한 질문을 던지고 삼년상처럼 사실상 논리적으로도 맞고 현실에 부합하는 질문을 들이대면서 “스승님 말씀이 틀렸잖아요?”라고 따지는 어린 제자가 공자는 몹시 못마땅했을 것이다. 그런 제자가 열심히 공부해야 할 낮 시간에 단순히 조는 것도 아니고, 아예 드러누워 잠을 자고 있으니, ‘후목분장’이라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쓴 것으로 이해된다. 이런 스승과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재여는 공자의 제자 중 가장 뛰어난 10명의 제자, 즉 ‘공문십철(孔門十哲)’ 중 한 사람으로 이름을 올려놓는다. 그리고 그는 공자가 천하를 주유(周遊)할 때 공자를 계속 수행했으며, 공자의 명에 따라 제(齊)나라, 초(楚)나라에 사신으로 파견 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그의 공을 후대에서 인정해, 당(唐) 현종(玄宗)은 그를 ‘제후(齊侯)’에 봉했고, 송(宋)대에는 ‘임공(臨公: 후대에는 제공(齊公)으로 개칭)’, 명(明)대에는 ‘선현재자(先賢宰子)’로 봉해지는 영광을 누린다. 하태형(河泰亨)>> 전 현대경제연구원장 아호는 양우(養愚). 1958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와 KAIST 대학원에서 경영학과 경영과학을 전공했다. 미국으로 유학하여 뉴욕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수원대 금융공학대학원에 교수로 복귀하여 강의하고 있다, 오랜 소망이었던 서예와 한학을 다시 공부하게 됐다. 를 접하게 된 이후 국내외 문헌을 찾아가며 난정서 연구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저서로는 가 있다.
- 2017-10-27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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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룩한 분노
- 어느덧 이순(耳順)의 나이를 지났다. 공자는 육십의 나이를 이순이라 불렀다. 어떤 말을 들어도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는 의미다. 인생을 그 나이만큼 살면 어떤 상황이든 대부분 다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이리라. 그런데 이순의 나이에도 아직도 화를 내는 일이 있으니 문제다. 물론 예전보다는 화를 적게 낸다. 지나고 보면 화를 낼 일이 아닌데 화를 내서 후회하는 일이 빈번하게 있다 보니 다시 한 번 상황을 검토하는 습관이 들었기 때문이다. 개인적 차원과 공공적 차원의 분노를 구분해본다. 개인적 차원의 분노는 주로 인간관계에서 발생한다. 인간관계를 할 때 상대가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거나 공중도덕을 지키지 않거나 약속을 위반하면 화가 난다. 자신에 대해 화가 나기도 한다.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수준보다 형편없게 일을 처리하거나 노력한 만큼 일의 성과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다. 그러나 노력하면 개인적 차원에서 발생하는 화는 대부분 피할 수 있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즉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된다. 그러나 자신도 잘 모르는데 다른 사람을 100% 파악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다만 그렇게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생각해보면 화를 줄일 수 있다.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그리고 죽음을 통해 모두들 이별해야 하는 존재들이다. 아웅다웅하며 살다가 그 사람이 죽고 나면 후회를 한다. 이 세상에 여행 온 나그네처럼 좋은 추억만 남기고 가고 싶다. 그렇다고 화를 안 내고 살 수는 없다. 또 마땅히 내야 할 분노도 있다. 공익적 차원에서 내는 분노는 거룩하다. 필자가 애송하는 시 중에 변영로의 시 ‘논개’가 있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로 시작되는 시다. 시인은 우리나라를 짓밟은 왜에 대한 분노를 거룩한 분노라 표현했다. 거룩한 분노는 의분이고 공분이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일에는 당연히 화를 내야 한다. 인간을 노예로 팔거나 인간성을 파괴하는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을 볼 때는 참기 힘들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나 사익을 추구하기 위해 공익을 버린 사람들에 대해서는 화가 난다. 건강하고 거룩한 분노다. 개인적 차원의 분노는 수양과 수련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공공적 차원의 분노는 건강한 사회가 형성되어야 없어질 수 있다.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라도 거룩한 분노는 더욱더 필요하다. 따라서 개인적 차원의 분노는 줄이되 거룩한 분노는 잃지 말고 살자.
- 2017-08-23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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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필화 성균관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교수, 행복한 인생 2막의 비결은 ‘공부력’
- 100세 시대의 행복경영 비결은 무엇일까. 단거리 경주가 아닌 마라톤 인생을 살아낼 새로운 설계와 순서는 어떻게 세워야 할까. 유필화(63) 성균관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마케팅 분야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쌓아온 경영학계의 구루다. 뿐만 아니라 를 비롯해 , 그리고 최근작 에 이르기까지 인문학 고전을 경영학적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작업을 시도해왔다. ‘100세 시대, 고전에서 배우는 인생 경영 지혜’를 듣고 싶은 생각에 인터뷰를 청했다. 대방동에 위치한 유 교수 서재의 섬돌엔 검정고무신 두 켤레가 정겹게 놓여 있었다. 유 교수는 부인(이기향 한성대 의류학과 교수)이 아침에 인터뷰 복장 코디는 물론 간식을 손수 준비해놓고 갔다며 미소를 지었다. 신혼 때부터 지금껏 수십 년간 변함없이 싸준 부인의 도시락 내조력을 들려주는 그의 얼굴에 일순 사랑과 감사가 환하게 번졌다. 인생은 60부터란 말도 있는데요. 교수님께선 예순을 기점으로 달라진 것이 있는지요. “나눔과 베풂의 봉사활동이 내 삶의 비중에서 늘어났습니다. 60이 넘고부터는 경력과 일에 관련되지 않더라도 의미 있는 일에 에너지, 시간을 쏟아 붓고 있습니다. 이게 사실은 두 여인의 영향 덕분입니다. 어머님도 생전에 ‘늘 베풀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아내도 같은 말을 하는 겁니다. 덕분에 전혀 만나볼 수 없는 사람을 알게 되고, 접하지 않았던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기업과 경영 문제에만 쏟던 관심을 기업 바깥의 세계로 돌리게 돼 좀 더 크고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여러 계층의 다양한 사람을 알게 돼 세상을 보는 균형감각이 키워지는 부수효과도 있더군요.” 사회봉사가 행복을 증진시킨다는 것은 개인의 단순한 느낌이나 추정이 아니라 이론적으로 근거가 있다. 코넬대학의 행복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남을 돕는 사람은 자긍심을 고양시키고 자신의 삶을 통제한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자기중심적인 사람과 이타적인 사람 간에는 정신이 노쇠해가는 속도에 큰 차이가 있다’고 한다. 봉사활동은 더욱 건강한 정신자세를 지니게 하고, 이는 다시 건강과 삶의 만족을 증진시키는 ‘행복의 선순환’을 일으킨다는 게 연구의 골자다. 봉사는 이타적 행위일 뿐 아니라 이기적 행동이기도 하다. 인생 2막에선 성공보다는 행복이란 단어가 한결 실감 있게 다가온다고 다들 말씀하시더군요. 교수님께서는 행복을 어떻게 정의하시는지요. “‘행복이란 마음이 편한 것, 마음의 평정과 평온을 찾는 것’이라고 봅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사회에서 부러워하는 기업인을 만나보면 ‘성공하면 뭐해’ 하며 자조하는 경우도 많고요. 어쩌면 남이 부러워하는 정상에 오르는 것은 울 일이 많다는 것과 동의어라고나 할까요. ‘살아 있는 게 축복이고 숨 쉴 수 있는 게 기적’이라는 마음을 갖고, 일상을 감사히 받아들일 줄 아는 삶의 태도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조건의 충족이 아니라 그 수행 과정에 행복이 존재하지요.” 매일 참선과 명상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서재에 명상실까지 두고 있으시지요. “마음의 평화를 위한 제 수행 방법은 참선과 300배입니다. 1997년부터 해왔으니, 20년 가까이 해온 셈이네요. 가끔 40~50분씩 참선하고 300번 절하고 나면 마음과 몸이 깨끗해집니다. 현재에 몰입하고 집중함으로써 잡념을 없애버리는 것이지요. 명상을 하면 집중력, 몰입력이 높아져요. 건강한 긴장력이 생산된다고나 할까요. 삶을 객관적으로 제3자화, 관찰하는 것을 습관으로 하면 자기에 대한 지독한 애착과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줏대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지도 않고요. 참선을 하다 보면 나를 특별한 존재로 보기보다는 수많은 중생 중 하나로 담담히 관찰할 수 있게 됩니다. 대부분의 불행과 불만은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대우받으려고 하는 집착 때문에 생기는 것 아니겠습니까.” 유 교수에게 이순(耳順)(공자가 60을 가리켜 한 말)의 나이에 문자 그대로 이순(생각하는 것이 원만하여 어떤 말을 들어도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는지 물어봤다. 그러자 가볍게 손사래를 치며 “칭찬, 아부의 말에 흔들리지 않을 자신은 있는데 비난, 싫은 말에는 그리 편하지 않고 신경이 쓰인다. 아직 이순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한 것 같다”고 고백한다. 교수님은 위기의 시대를 이기는 단 하나의 질문으로 ‘무엇을 버릴 것인가’를 꼽으신 바 있지요. 인생 경영에서 과감하게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자만심입니다. ‘왕년에’와 ‘내가 누군데’가 자만심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말입니다. 장군은 은퇴 후 모임에도 군복 입고 훈장 달고 나온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를 알아달라는 의미이지요. 그래봤자 남들은 ‘그래서(so what)?’예요. 버려야 채울 수 있고, 낮춰야 올라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지켜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대한 자신감이요. 우리 세대는 산업혁명, 민주화를 달성한 세대 아닙니까. 열심히 살아온 것이지, 결코 헛산 것이 아니지요. 사회를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살아왔다는 자부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봅니다. 젊은이에는 부족한 경륜이나 직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당당하고 늠름하게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자만심과 자부심,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큰 차이가 있다. 유 교수는 “나만 옳고 다른 사람은 시원치 않다고 깔아뭉개는 마음이 자만심이라면, 스스로는 물론이고 상대도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것은 자부심”이라고 구분했다. 자만심은 남을 무시하지만 자부심은 남을 포용하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하버드대학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으시고, 독일 빌레펠트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서양통이신데 동양고전에 심취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지요. “동양이 서양보다 한결 깊고 차원이 높다고 생각해서입니다. 병법서를 예로 들어볼까요. 과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을 비교해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서양에서 전쟁은 정치의 수단이고, 어떻게 이기느냐 거기에만 관심을 둡니다. 반면 동양은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가, 무력으로 싸우지 않고 지략으로 이길 방법을 모색하지요. 서양에선 지략이나 책략보다 전략, 전술에 관심을 두고요. 서양의 병서가 단지 전략서인 데 반해 동양의 병서를 정치사상서의 반열에 올릴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시대를 이끈 리더들의 공통점은 뭘까요. “공부력입니다. 위기의 순간에도 평생 학습의 끈을 놓지 않은 것입니다. 독서이든, 대화를 통해서든 늘 배우려는 자세를 가졌습니다. 살아 있는 한 멈추지 않고 끈질기게 배우려고 하는 학습력이 이들의 공통점입니다. 이는 동서양의 리더가 다르지 않습니다.” 리더들의 경쟁력이 공부력이란 사실은 인생 경영 지혜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린다 그래튼 런던비즈니스스쿨 교수는 저서 에서 공부력을 변형자산이라 명명해 강조한다. 변형자산이란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그래튼 교수는 “돈 등 유형자산 못지않게 필요한 무형자산이 공부력”이라며 “학교 졸업, 취업, 은퇴라는 3단계 벽이 무너진 오늘날, 100년 인생의 풍요로움은 평생공부에 달려 있다”고 단언한다. 요컨대 100세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선 미분의 인생관에서 적분의 인생관으로 발상전환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인생 전반기의 실력과 경력에 얹혀 후반전을 영위하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전반전에 종언을 고하고 유연성과 개방성을 갖고 부단히 노력하라, 그렇게 공부력을 쌓는 것이 100세 시대의 생존비결이라는 진단과 처방이었다. 역사는 리더십의 스승이란 말을 강조하십니다. 역사적 인물 중 평생학습의 롤 모델로 누구를 꼽으시는지요. “중국의 황제 당태종을 꼽고 싶습니다. 평생학습은 자기경영이 바탕인데요. 당태종은 죽는 날까지도 겸허한 태도를 잃지 않았지요. 그의 자기경영원칙은 경청, 자기경계, 자기절제, 긴장감 지속, 겸허한 태도 및 신중한 언어 구사 등 다섯 가지로 정리됩니다. 다만 집권 말년에 고구려 원정 등 쓸데없는 전쟁을 만류하는 신하들의 충언을 듣지 않은 것이 결정적 실수였지요. 아무리 뛰어난 군주라도 최초의 긴장감을 20년 이상 지속시키기는 어려웠다고나 할까요.” 당태종의 자기경영 비결 중 겸허한 태도 및 신중한 언어구사가 눈에 띄는군요. 이는 오늘날 기성세대와 신세대 간의 소통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나서고자 하는 마음, 참견하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본인은 경륜이지만, 상대에겐 편견이고, 본인은 조언이지만 상대에겐 잔소리일 수 있습니다. 저는 어떤 말을 하기 전에 세 가지 기준을 돌아봅니다. 먼저 내 의도입니다. 상대를 위하는 것인가, 내 능력 자랑을 위해서인가 성찰해봅니다. 즉 그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인가 아니면 내 능력을 드러내 잘난 척하려고 하는 것인가를 검토해봅니다. 다른 사람이 다 보는 상황이어서 불편하거나 부끄럽게 느끼지는 않을지를 살핍니다. 끝으로 내가 말하는 방식이 그 사람이 받아들이기 쉬운 것인지를 고려해봅니다.” 그는 “나이는 말 그대로 숫자에 불과할 뿐인데 연장자라고 말을 다짜고짜 낮추며 하대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며 무엇을 말하는가보다 ‘어떻게 말하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같은 겸양의 태도를 평생친구인 헤르만 지몬 교수를 통해 체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헤르만 지몬 교수는 ‘유럽의 피터 드러커’로 불리는 독일의 경영학자다. “일국의 대통령에서부터 차 나르는 직원에 이르기까지 차별 없이 존중하고, 즐겁게 대화를 하는 지몬 교수에게서 학문적 열정뿐 아니라 리더의 소양까지 배울 수 있었다”는 술회다. 행복한 인생 2막을 위한 교수님의 ‘인생 경영 비법’을 듣고 싶습니다. “가족, 친구, 자신과 잘 지내는 것이지요. 가족, 친구와 잘 지내려면 있는 모습 그대로를 수용하고 포용하는 게 필요해요. 또 나이 들수록 중요한 게 자신과 잘 지내는 것인데요. 저는 최고의 방법으로 독서를 꼽고 싶습니다. 인생에 독서만큼 좋은 것이 없습니다. 새로운 것을 접할 때의 호기심, 혼자서 경험할 수 없거나 알 수 없는 내용을 알게 됐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지요. 그러기 위해선 지치지 않는 호기심과 건강이 필수이지요.” 그에게는 독특한 독서 버릇이 있다. 책 앞날개에 독서를 시작한 날짜, 독서를 마친 날짜, 책 구입 장소 등을 메모해놓는 일이다. 나중에 이 메모를 보면 책 내용은 물론 책을 읽게 된 동기, 시공간의 배경에 대한 추억까지 함께 떠올라 즐겁다고 한다. 또 세 종류의 책을 동시다발로 읽어나가는 독서 습관도 있다. 인생의 버킷 리스트가 있으신지요. “없습니다(답변의 속도는 30초도 안 될 정도로 빨랐다). 평소에 열심히 살고 아무 미련 없이 세상을 떠나고 싶은 게 제 신조라고나 할까요. 안 되면 그만이지요. 무엇인가를 바라고, 해야 된다고 마음먹는 순간 괴로워요. 그것을 해야 한다고 마음먹는 순간 족쇄가 되기 때문이죠. 저는 그저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다 간 사람으로 기억되고 그렇게 자부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유 교수와 인터뷰를 하며 ‘인생 경영의 최고 비법은 공부력’이고 “궁극적 공부력은 마음 경영과 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100세 인생 시대, 무한성장 시대인 오늘날이야말로 자기성찰력이 최고의 인생 덕목이자 경쟁력이 아닐까. ‘유필화’란 이름 석 자의 문패가 달린 파란 대문 집을 나와 돌아오는 길에 그의 시집 를 다시 펼쳐보았다. 그는 ‘나의 묘비명’이라는 시에서 ‘인간 유필화’를 이렇게 관조한다. ‘그는 입버릇처럼 자주 수행을 얘기했고 꾸준히 좌선도 하였지만, 생각만큼 행동이 안 따르는 자신의 한계를 늘 절감했다. 그는 물욕과 애욕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했으며 자만심도 결코 떨쳐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장년 이후 눈에 띄게 화를 내는 일이 적어진 것에 대해서는 은근히 흐뭇해했다. (중략) 그는 자신의 숱한 약점, 단점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에 대해서는 자부심을 품고 있었다. 그것은 수시로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태도였다. 그의 이름은 유필화였다.’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 소장 연세대학교 졸업. 경영학 박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겸임교수. 리더십 스토리텔러. 세계일보에서 CEO 인터뷰 전문기자로 활약했다. 세계경영연구원(IGM)과 삼성경제연구소 등에서 강의했다. 저서로는 , , 등이 있다.
- 2017-06-23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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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럿이 함께 가면, 험한 길도 즐거워라
- 그해 봄부터 매주 목요일 아침 10시, 목동 파리공원에서 우리들은 작은 모임을 가졌다. 연령도 20대에서 60대요, 직업도 틀리지만 쇠귀 신영복(牛耳 申榮福, 1941~2016) 선생의 책과 신문 칼럼 이야기를 듣고, 문화 예술 전반에 걸쳐 기탄없는 자유토론의 시간이 즐거웠다. 이야기가 길어지거나 토론이 격해지면 인근의 찻집으로 자리를 옮겨, 차를 마시며 분위기를 진정시키곤 했다. 신 선생은 잘 알려졌다시피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육군사관학교에서 교관으로 경제학을 강의하던 중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 수감되어 무기징역에서 20년형으로 감형되고, 1988년 8월 15일 만기 출소했다. 한동안 몸을 추스르더니 11월 말엽, 서울 중구 정동 성공회 건물 지하 ‘세실레스토랑’에서 40여 점의 서예 작품으로 첫 서예전을 열었다. 옥중에서 20년을 정진한 그 서예 작품들을 보고, 신선한 충격과 큰 감동이 가시지 않았다. 연말에는 이라는 옥중 서신들을 책으로 출간해 많은 독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또 1889년 1월에는 결혼을 해 서울 목동에서 가정을 이루고, 성공회대학교에서 경제학 등을 강의하며 가히 생활인으로서 새 출발을 했다. 1993년에는 옥중에서 가족에게 보냈던 엽서들을 모아 를 출간했고, 1995년 11월부터는 중앙일보에 를 기고했다. 1995년 3월 17일부터 26일까지는 인사동 학고재에서 시화전을 열었다. 당시 학고재 사장의 소개로 처음 선생을 상면하고, 50여 점의 서예에 대한 소회를 직접 들었다. 작품을 소장하고 싶었지만 선생을 돕고자 하는 여러 지성인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마음에 정해둔 작품이 금방 팔려 기회를 잃었다. 그렇게 마음을 졸이다가 이 모임에 참여하면서 은근히 휘호를 받고자 하는 속내도 있었다. 그의 부드럽고 자상한 성품은 누구의 청(請)도 거절 못했다. 필흥(筆興)이 솟아 경오(庚午, 1990)년 황화(黃華, 가을)에 써두었던, 편의 한 구절인 야심성유휘(夜深星逾輝)에서 취한 ‘夜深星輝’와 임신(壬申, 1992)년 성하(盛夏, 한여름)에 시필(試筆)한 맹자 진심상(盡心上) 편에 있는 관어해자난위수(觀於海者難爲水)에서 뽑은 ‘觀海難水’의 예서체(隸書體) 두 작품을 받아 소장하게 되었다. 소위 ‘신영복체’, ‘어깨동무체’라는 한글 휘호도 받고 싶었으나 너무 무례한 것 같아 눈치만 보고 있는데, 그해 섣달그믐께 전화를 받고 나가보니 그토록 소망하던 ‘어깨동무체’의 를 말아서 들고 계셨다. 펼치니 먹 향이 그윽하고 관지(款識)의 인주 빛이 선명했다. 이후 선생은 대학 강의와 신문 기고가 늘어나며 일정이 바빠져, 주 1회 모임에서나 잠깐씩 상면했다. 나도 바쁜 일이 생기면 서너 주 거르기가 일쑤였다. 아내를 비롯해 친구들이 선생의 전력(前歷)을 들어 모임 참여를 말렸으나 개의치 않았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더욱 빛난다’는 의미의 ‘야심성유휘’는 선생이 아주 즐겨 썼는데, 남다른 인고(忍苦)의 세월을 견디어온 원동력이기도 했을 것이다. 맹자(孟子, BC 372~BC 289 추정)가 공자(孔子, BC 551~BC 479)를 언급한, ‘바다를 본 사람은 물을 말하기가 어렵다’는 의미의 ‘관어해자난위수’는 ‘큰 것을 깨달은 사람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깊은 함의(含意)가 있는 들어 있는 글이기도 하다. 는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선생만의 독특한 서체다. 두 줄의 굵고 납작한 글자들은 서로 부딪치고 얼싸안으며 힘찬 기운을 발한다. 옥중에서 받았던 노모의 한글 글씨체에서 골격을 찾아 변용했다고 말하지만, 한글 서체의 미학적 한계를 극복하고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목원대학교 미술대 교수인 김태호(1967~) 조각가가 이탈리아 카라라(Carara) 국립미술학교로 유학 떠나기 전에 부인과 함께 우리 집을 찾아왔다. 1996년 여름쯤으로 기억되는데, 식사를 대접하려고 불고기집으로 안내했으나 한사코 냉면만 먹겠다고 하여 조촐한 송별이 되고 말았다.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젊은 부부의 깊은 속내가 대견했다. 부인이 종교음악을 전공했기에 바흐의 음반을 건네는 게 고작이었다. 김태호의 조각작품과의 인연은 1993년으로 되돌아간다. 인사동 어느 화랑에 놓여 있던, 하얀 대리석으로 깎은 을 눈 깊게 만났다. 까까머리의 동자가 무릎을 두 팔로 감싸고 앉아 먼 하늘을 바라보는 작품이었는데, 기교 없는 순수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 화랑의 큐레이터도 ‘동자상’에 반해 매일 한두 번씩 쓰다듬는다며 화랑의 ‘지킴이’라 했다. 당시 대학을 졸업하고 막 군대를 다녀온 풋풋한 조각가의 작품이었기에, 몇 주 동안 드나들며 “누구에게 팔지 말라”고 이르고 관찰만 했다. 화랑 주인은 ‘중진 조각가의 작품과 견줄 만한 수작(秀作)이라서 값싸게 팔 수 없고, 상당한 가격에 구입할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화랑에서 소장한다’며 애를 태웠다. 아내와 상의해 통장을 비워, 기어이 혼자 들기 버거운 을 택시에 싣고 와 온 식구가 쓰다듬으며 한 가족으로 삼았다. 조각작품 수집의 시작이었다. 그의 작품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주제는 ‘따뜻한 인간애’다. 지치고 고달픈 현대인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려는 예술혼은 얼음처럼 차가운 대리석을 헤집고 인애(仁愛)의 형상을 쪼아낸다. 샐러리맨의 고독과 실직자의 아픔도 용해해 젊은이들에게 힘찬 형상을 선사하기도 한다. 은 2010년 벽두에 서울 서촌의 ‘갤러리 자인제노’ 전시회에서 만난 작품이다. 좌대까지 하나의 대리석으로 깎아낸 수작이다. 어린 남매를 배 위에 얹고 있는 따뜻한 모정이, 작품의 안정감과 리듬감을 균형 있게 전달한다. 세파(世波)에도 흔들림 없는 굳건한 ‘가족사랑’이 위대한 성(城)을 구축하고 있다. 한낱 돌덩이에 맥이 돌고, 바라보고 있으면 저절로 따뜻한 미소가 번지게 된다. 누구나 성(城)에 안주하려 들지만, 그 성을 쌓아가는 고뇌의 노정(路程)을 잊지 말진저. >>이재준(李載俊) 1960년 경기 화성에 태어났고 아호 송유재(松由齋)로 미술품 수집가로 활동중이다. 중학교 3학년 ,을 읽고, 붉은 노을에 젖은 바닷가에서 스케치와 깊은 사색으로 화가의 꿈을 키웠다. 1990년부터 개인 미술관을 세울 꿈으로 미술품 천여 점을 수집해왔다.
- 2017-05-18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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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는 무엇을 배우고자 했나
- 학창 시절 제법 각오하고 공자의 를 뒤적였던 적이 있다. 지금은 거의 생각나는 구절이 없지만, 첫 문장은 기억한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는 문장이다. 당시 해석에는 “배우고 때로 익히니 어찌 기쁘지 아니하랴”로 되어 있었다. 그때 우리는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늘 배우고 익혔으나 재미는 별로 없다고 생각하며 넘어갔다. 선생님들이 이 구절을 인용하며 “봐라! 공자님도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셨는데 너희는 왜 그렇게 공부를 안 하니?”라고 나무라시면 그저 우리가 잘못했으려니 하고 열심히 공부할 각오를 다지곤 했다. 말하자면 공자님도 우리처럼 입시 공부를 하셨을 것으로 생각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요즘 와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당시에는 대학입시가 없었을 텐데 도대체 공자는 무슨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했다는 말인가?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필자가 나이 환갑을 넘기면서부터다. 공자님이 60세의 나이에 ‘이순(耳順)’이라는 의미를 붙이신 이유가 무엇일까를 곰곰이 헤아리다가 나온 위대한(?) 의문이었던 셈이다. 그러니까 공자님이 나이에 붙인 의미들이 논어 첫 구절의 내용과 은밀히 상통하고 있다는 깨달음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공자님은 나이에 따른 학문의 과정을 언급하며 15세에 ‘지우학(志于學)’ 하고, 30세에 ‘이립(而立)’ 했으며, 40세가 되니 ‘불혹(不惑)’ 하게 되고, 50이 되니 ‘지천명(知天命)’ 했으며, 60세에는 ‘이순(耳順)’의 경지에 이르고, 70세가 되니 ‘종심소욕, 불유구(從心所慾, 不踰矩)’라고 일렀다. 어릴 땐 이런 의미들을 학문하는 사람의 십계명인 줄로 이해하고 한번 그대로 해보려고 달려들었다가 30세가 지나면서 대부분의 열정이 ‘이립’도 못하고 시들고 말았던 아픈 기억이 있다. 그러니 ‘불혹’이니 ‘이순’이니 하는 말들이 제대로 다가올 리 없었다. 그저 40세가 되면 바람을 안 피우게 되나보다 하는 정도로 이해하고 기다렸을 뿐이다. 그런데 환갑을 지나면서 이런 의미들이 특별하게 다가왔다. 다시 공자가 한 말뜻을 더듬어보니 사람이 살면서 깨달아가는 삶의 지혜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나이 60을 넘기면서 조금씩 인간을 이해하게 되었다. 옛날 같으면 발끈하게 만들었을 말도 조용히 듣게 되고 요즘 유행어로 “그럴 수 있지” 하며 넘기게 되더란 말이다. 이게 바로 ‘귀가 순해진’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40이 되면 남의 말에 쉽게 흔들리지 않아야 하고, 50세 정도면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 정도는 알아야 할 게 아닌가. 다시 말하면 철이 든다는 뜻이겠지. 70세가 되어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해도 도덕 법칙에 맞는다는 말은 그 나이가 되면 지혜로운 경지에 올라 세상을 통찰하고 남을 좇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창조해가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된다는 말이 아닌가. 그러니까 공자님 시대에 입시가 있었던 것이 아니니 그의 공부 주제는 바로 ‘세상 공부’, ‘사람 공부’였던 셈이다. 인간을 이해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 또 무엇이 있겠는가. 김형석 교수가 70이 넘으니 인생을 알게 되더라는 말이 비로소 이해가 됐다. 지금까지 우리는 평생 인간을 공부해온 것이며 이 공부가 경지에 오를 때 노년이 행복할 수 있으리라는 예감이 든다.
- 2017-04-04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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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에 자랑할 만한 우리 문화
-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세계적 문화유산 2가지를 말하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 우리나라에는 세계적으로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 아주 많이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창덕궁, 불국사, 석굴암, 수원화성, 고인돌 유적, 해인사 대장경판, 종묘, 판소리, 강강술래 등 유형 및 무형 문화유산이 많은 편이다. 특히 제주도는 최근 세계 7대 자연경관으로 선정되었다. 우리는 그런데도 공기나 물처럼 그것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고마운 것인지 모르고 지내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 그중에서도 세계 제일인 것을 말하라면 한국인에게 자랑스러운 유형의 한글과 무형의 선비정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높은 문맹률 퇴치와 자본주의의 폐단인 이기적인 삶의 만연으로 인하여 정신적으로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이 시대의 문제점을 해결해줄 수 있는 이러한 아름다운 문화를 전파하는 일에 우리나라 발전의 새로운 동력인 액티브 시니어들이 나선다면 우리의 인생 2막은 훨씬 더 아름답고 의미 있는 삶이 되리라 생각한다. 1. 훈민정음 한글은 유엔이 인정한 세계 최고의 문자다. 유엔의 산하기관인 유네스코는 매년 지구촌 문명퇴치에 공이 큰 각국의 기관과 단체에게 세종대왕 문해상(King Sejong Literary Prize)을 수여하고 있다. 현재 서울 간송 미술관에 보관 중인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 훈민정음은 국보 제70호(1962.12.20)로 지정되어 있으며 세종 28년 (1446년) 창제 반포된 전권 33장 1책의 목판본이다. 한글이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되는 이유는 표음문자, 음소문자, 자질문자의 3요소를 모두 갖춘 지구상의 유일한 문자일 뿐만 아니라 인류가 발명한 문자 중 창제 목적이 확실하고, 창제 일이 정확하고, 창제자가 분명한 문자는 한글 하나뿐이라는 사실이다. 한글은 과학적이고, 보편적이며 아주 실용적이라 할 수 있다. 세계적인 언어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글은 인류가 발명할 수 있는 최고의 문자라고 격찬하고 있다. 특히 오늘날 IT시대를 맞이하여 한글의 우수성은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한글의 세계화 운동을 더 적극적으로 펼쳐나가야 할 것이다. 통계에 의하면 한국어를 제1외국어 또는 제2외국어로 가르치는 국가가 2012년 현재 23개국 799개 학교로 증가하고 있다고 하며 그 학생 수는 약 7만600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가 세계 10대 무역국가로서 농수산물, 공산품 등 제품의 수출입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이제 세계적으로 자랑스러운 한글이라는 문화도 함께 수출하여 세계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나라가 되어야 하리라 생각한다. 한글이 지구촌 인류의 소통과 평안, 평등, 평화를 이룩할 수 있는 위대한 문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글은 자음과 모음 24자로 모든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체계다. 오늘날 세계를 제패하고 있는 영어는 자음과 모음이 26자이지만 사실상 이를 표현하는 데는 26x4=84자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세계문화를 통일하는 것은 쉽지 않으나 한글로 문자를 통일한다면 그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2. 선비정신 오늘날 선비라는 말은 뭔가 고전적이며 구태의연한 느낌을 주는 단어다. 또 막상 선비에 대해 한마디로 말하라면 머리에서만 맴돌 뿐 쉽게 설명하기가 어렵다. 이는 일제 통치시대 때 일본의 한국 문화 말살 정책 결과에 따른 부정적인 영향일 수도 있다. 선비란 “인·의·예·지의 인간 본성으로 개인 인격을 수양하고, 효·충·경·신의 조직 원리로 사회 인격을 수행하여 만인에게 이로움을 가져다줄 수 있는 홍익인간을 실천하는 리더다”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아주 멋진 말이다. 좀 더 쉽게 표현하면 오늘날 영어의 신사(gentleman)나 군자의 의미이지만 이런 낱말이 주는 뉘앙스보다 훨씬 더 멋있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선비라는 말의 어원은 대략 3가지 설이 있다. 첫째, 선비란 어질고 지식이 있는 사람을 뜻하는 알타이 어족 몽골어 기원설이다. 둘째, 고구려 조의선인(皁衣仙人)의 호칭인 선배(신라의 화랑도와 유사)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셋째, 선비 사(士, 하나를 알면 열 가지를 안다), 선비 유(儒, 세상이 필요로 하는 사람), 선비 언(彥, 문무를 겸하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나온 의미라고 한다. 선비들이 갖춰야 하는 근본정신과 핵심 가치는 무엇일까? 오늘날 한국 선비정신의 대가라고 할 수 있는 한국 선비 아카데미 회장인 화원 선생은 다섯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살신성인, 거의소청, 극기복례, 법고창신, 솔선수범이다. 그러면 선비 정신의 보편적 핵심 가치는 무엇일가? 공자가 강조한 것은 인간은 개인적인 존재이자 사회적인 존재로서 대동사회를 펼치기 위해 유학사상을 창안했고 이는 선비정신의 근본이다. 유학은 인도주의 사상으로 수기치인지학(修己治人之學)이다. 유학은 현실 중심 사상이다. 매순간 인간의 삶에 최선을 다하자는 강령으로 하의상달로 요약된다. 유학은 실천중심 사상이다. 유학은 관계구현 사상이다. 공부와 학습은 개인의 인격 완성을 위해 하는 것이고 나아가 조직의 인격완성을 위해 하는 것이다. 퇴계 이황은 개인 인격의 완성으로 독립할 수 있고 사회 인격의 완성으로 상생할 수 있다. 개인 인격은 인간의 근본인 진실함인데 이를 실천하기 위해 격물, 치지, 성의, 정심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으며 이를 지도자의 셀프 리더십 근본으로 삼았다. 이는 사람의 생각과 말과 태도 및 행동의 뿌리다. 여기서 격물이란 대상에 대한 깊은 궁리로 밑바닥까지 캐내고 철저하게 규명하는 것을 뜻하며 과학적 탐구를 뜻한다. 치지란 정확한 지식의 종착점을 말하며, 성의란 성실한 의지로 열정과 집중을 한곳에 투입함을 뜻한다. 정심은 하늘로부터 받은 본래의 양심으로 옳고 바르며 순수한 편견이 없는 마음이다. 수신이 이루어지면 개인 인격의 독립이 완성되고 스스로 빛을 밝히게 된다. 그다음 단계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빛을 이끌어내는 행위다. 즉 나와 남이 빛을 함께 발할 수 있어야 대동사회를 구축할 수 있다. 따라서 선비 리더십의 8가지 요소는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다. 이황이 성의 정심에 무게를 두고 정신적인 면을 강조했다면 이이는 격물, 치지에 중심을 두고 물질적인 면을 강조하였다. 요컨대 선비란 어짊인 사랑과 섬김인 존중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또한 선비는 자기 자신을 닦아 개인 인격을 완성하고 나아가 공동체를 위한 조직 인격과 사회 인격을 확립시키는 사람이다. 선비가 되기 위해서는 수기안인, 위기지학, 법고창신을 해야 한다. 오늘날 사용하는 언어로 대체하면 인간성 교육, 전문성 교육, 창의성 교육을 의미한다. 이러한 선비정신은 붓의 문화이며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인 칼의 문화와 구분된다. 따라서 한국은 붓의 문화로 칼의 문화를 감싸 안고 이를 극복하여 세계 문화의 창달에 힘을 써야 한다. 또 나아가 선비정신을 전 세계에 수출하여 아름다운 세계문화 창달과 홍익인간의 이념 실현을 위해 다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 2017-03-30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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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어진 대로 ‘살아지면’ 사라집니다” 권대욱 아코르 앰배서더 호텔 매니지먼트 사장
- “노력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이지만 거두는 것은 하늘의 뜻이다.” 권대욱(65) 아코르 앰배서더 호텔 매니지먼트 사장의 말이다. 31년을 최고경영자로 살아온 인물의 첫 멘트로는 의외다. 선입관 없이 듣는다면 달관한 성직자 내지 철학자의 말 같다. 인터뷰 장소인 도심 복판의 강남 특급호텔이 갑자기 호젓한 사찰로 변해 수도승과 선문답을 나누는 느낌이다. 탈속 버전(?)에 맞춰 묘비명 질문으로 그와의 인터뷰를 진행해봤다.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장 △태어나자 마자 1년 만에 아버지를 여읨 △삯바느질하는 홀어머니 슬하에서 외아들로 어렵게 유·청소년기 보냄 △지망 중학교 입시 실패 △IMF 때 47세의 나이로 해직 △창업에 도전했다가 실패, 이후 산막에 칩거해 세상과 격리생활 2년. 반면에 다음의 이력을 보라. △35세에 한보건설 사장이 된 후 3개 건설사 사장 역임 △현직 특급호텔 사장 △교수 △합창단 단장 △쓰기, 말하기, 노래하기 등이 프로 수준 △주말마다 별장에서 전원생활 향유. 두 삶의 이력에서 무엇을 느꼈는가. 위의 삶에서 짙은 불운의 그늘이 느껴진다면 아래의 삶에선 행운, 그것도 보통이란 표현만으로는 부족한, 억세게 좋은 트리플 운이 느껴지지 않는가. 단순히 성공도, 행복만도 아닌 균형적 삶으로 말이다. 알고 보면 동일 인물이다. 바로 권대욱(65) 아코르 앰배서더 호텔 매니지먼트 사장의 이야기다. 아코르 앰배서더 호텔 메니지먼트(주)는 국내의 정상급 호텔인 앰배서더와 세계적인 호텔체인 아코르가 공동 출자한 호텔 운영 전문 기업이다. 권 사장은 인생의 성공과 실패, 행과 불행을 카르마로 풀어 이야기했다. 카르마란 중생이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선악의 소행을 말하며 혹은 전생의 소행으로 말미암아 현세에 받는 응보(應報)를 가리킨다. 그는 “노력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이지만 거두는 것은 하늘의 뜻”이라며 “운이나 불운이나 결국은 업보이기 때문에 늘 현재의 행실을 갈고닦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묘비명에 꼭 한 줄 적히길 바라는 문장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한 단어로 이야기하면 명예입니다. 돈, 명성보다 중요한 것이 명예라고 생각합니다. 명예를 소중히 여긴 사람으로 기록되고 싶습니다. 언제든,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 당당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당당하게 살고 싶어도 세상이 그냥 두지 않는 경우는 없었습니까? “물론 나도 (유혹에) 흔들립니다. 인생의 매순간은 유혹이니까요. 누구나 흔들리지만 깨어 있고자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공자는 ‘일흔이 되고서야 비로소 내 마음대로 해도 세상의 규율에 얽매임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공자도 이럴진대 보통사람이 어떻겠습니까. 흔들릴 때마다 내게 스스로 묻는 세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첫째, 선의를 갖고 있는가. 둘째, 의로움과 정직함이 살아 있는가. 셋째, 내 자식이나 후배에게 떳떳한 역사를 쓰고 있는가입니다. ‘호호·당당·담담(웃음 넘치고 당당한 삶을 살아야만 담담해질 수 있다)을 살펴보는 세 가지 자성 질문이 나를 잡아주는 마음의 기둥입니다.” 중간에 부침이 있었지만 31년째 CEO 생활을 하고 계십니다. 또 65세인 지금까지도 현역이십니다. 그 비결은 무엇입니까? (인생 선배로서 청춘들에게 전하는 조직생활 성공 메시지를 담은 책 를 최근 출간했다.) “예전에 이런 질문을 받으면 버벅거렸습니다. 이제는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직장에 존경심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이는 상사에 아부를 떨고 눈치 9단이 되어 설설 기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회사를 사랑한다는 것은 내 일과 동료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내가 일의 주인이 될 수 있고 당당해집니다. 사람으로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유 아닙니까. 회사를 사랑하고 일을 사랑해야 내가 삶의 주인이 되고 당당해져 자유인이 될 수 있습니다. 당당해야 자존이 살고, 자존이 살아야 자유가 삽니다.” 주인의식을 갖고 당당하게 살고 싶은데, 조직이나 상사가 ‘주인을 의식하게’ 해 고민하는 젊은이가 많습니다. 멘토로서 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신지요. “정 힘들면 최면을 걸어서라도 내 일을 사랑하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하하). 조직에서 80% 이상의 시간을 보내는데 조직생활이 불행하면 인생이 불행해집니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상사가 있다면 ‘내가 왜 너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는가’라는 피해의식을 극복하기 위해 먼저 노력하라고 말합니다. 지금의 고통은 후일의 영광을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신념과 내공이 쌓이고 진정한 자존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권 사장은 지금도 새벽에 출근할 때 회사에 경례를 하곤 한다. 사람, 상사에 대한 경례가 아니라. 회사의 가치와 비전 그리고 이것을 실천하기 위해 새벽바람 맞으며 달려오는 동료들의 열정과 마음을 향해 경의를 표하는 경례다. 그의 말을 들으며 얼마 전 들었던 ‘너가 회사다’란 말이 생각났다. 상사, 동료, 직원, 조직문화를 탓하지만 우리 모두가 누군가에겐 회사가 아니겠는가. 승승가도를 달리다 법정관리에 들어가 47세에 극동건설 사장을 그만두셨습니다. 그리고 창업을 하셨다가 바로 실패하셨는데요. “세상에서 사람들로부터 잊혀진다는 것은 생각 이상의 큰 두려움입니다. 오죽하면 공자도 ‘자기를 몰라줘도 화를 내지 않으면 군자’라고 말씀하셨겠습니까. 세상으로부터의 외면, 망각 그런 게 두려워 창업을 서둘렀지요. ‘건설의 포털, 민간건설사업의 조달청 역할을 하는 아이템이었는데요. 전화 몇 통 걸어 이틀 만에 12억원을 모았다고 기뻐한 것도 잠시였지요.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사업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부족했고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문 경영인과 창업은 완전 다른 차원이더군요. 내 돈도 아니고 지인들의 피 같은 돈이 빠져나가는 것을 하루하루 보는 게 피가 마르는 고문이었습니다.” 그 후 산막에 들어가 2년간 은거생활을 하셨더군요. “중년 백수, 내 인생에 그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지요. 처절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산막에 기거하는 생활, 힘들었지만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새로운 것들, 깨닫지 못한 삶의 중요한 요소를 생각할 숙성의 시간이 됐다고나 할까요. 돌이켜보니 더 올라갔다고 더 소신이 있고, 더 많이 가졌다고 더 여유로워진 게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손에 쥔 것을 잃을까봐, 자리를 뺏길까봐 더 소신이 없어지고 눈치를 더 많이 보게 됩니다. 막상 산에서 살아보니 사람이 하루 동안 먹는 게 별 거 없고 돈도 그리 많이 필요 없더군요. 과일 몇 알 가지고도 버틸 수 있고요. 가진 것을 놓지 않기 위해, 비굴하지 말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주어진 대로 ‘살아지면’ 사라지겠구나, 살아지지 말고, 주도적으로 살아야겠다, 소명의식을 갖고 내 삶을 살아야겠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은 기간이었습니다.” 지금도 주말엔 산막에 가서 생활하신다고요. 중년의 많은 사람이 ‘산막의 전원생활’을 동경합니다. “(웃으며)겉만 봐선 안 됩니다. 사람들은 산막의 여유로움이라는 좋은 면만 바라봅니다. 그 뒤의 땀과 수고를 봐야 진정으로 진정한 전원생활을 즐길 수 있습니다. 가령 원두막에서 한가로운 독서를 하기 위해선 그 뒤에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누가 흙 범벅의 손 되어 씨 뿌리고 잡초 뽑고 거름 줄 것인가. 개 먹이는 누가 주고 진드기 잡고, 청소하고, 닭똥 냄새 맡으며 누가 거름 만들 것인가. 낭만으로만 생각할 거면 차라리 콘도나 펜션으로 놀러가라는 말을 해주곤 합니다. 인생도 그렇지만 산막, 전원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행복 총량의 법칙이 작용합니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습니다. 행해야 복이 옵니다. 행하지 않고 낙(즐거움)은 없습니다.” 권 사장은 “산막은 야인 시절, 권토중래의 재기 의지를 다짐하는 보금자리였지만 지금은 새로운 힘과 아이디어 충전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며 “세상이 나를 속이고 버릴지라도 언제든 돌아갈 보루가 있다는 점에서 든든한 안식처가 되고 마음의 힘이 된다”고 말했다. “산막을 지은 게 내 인생 최고로 잘한 일로 꼽는다”는 말에 자부심이 그대로 실려 있었다. 권 사장님 하면 청춘합창단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당시 오디션 장면, 저도 TV로 봤는데요.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온 삶이 아니었다”라는 말에 공감한 분이 많았습니다. 청춘합창단 이후 삶이 어떻게 달라지셨습니까? “하하, 바람 빠진 풍선에 공기가 빵빵하게 들어갔다고나 할까요. 처음 공개오디션 과정에 응한 것 자체가 큰 도전이고 용기였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참 잘한 결정이었습니다. 더 부지런해지고 더 큰 용기를 얻었습니다. 다람쥐 쳇바퀴 같은 생활, 흐릿한 미래에 활력이 더해지고 꿈이 보다 더 또렷해졌습니다. 유엔 무대에 서겠다는 ‘가당찮은’ 꿈이 실제로 이뤄졌고 올해는 오스트리아 그리츠 음악제에 초대받아 해외 무대에도 진출합니다. 평균 연령 64세의 ‘청춘 또래들의 합창’을 통해 소통과 화합을 이루고 세계 무대에 전파하겠다는 꿈을 이루고 싶습니다. 언제까지 어디에서 어떻게 이룰 것인지는 다음 문제입니다. 꿈이 있는 한 외롭지 않고, 과정이 아름다우면 인생도 아름다운 것 아니겠습니까.” SNS 활동도 활발하신데요. 곡우라 칭하시는 사모님과 부부지간 금슬이 알콩달콩 보기가 좋습니다. “사실은 제가 철든 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오십 넘어 집사람의 고마움을 알았어요. 알고 보면 부부는 일심동체가 아니라 이심이체예요. 당연히 나와 같으리라고 짐작해 내 고집을 피우고 우기지 말고, 나랑 다르다는 것을 알고 물어보고 배려해야 합니다. ‘따로 또 같이’라고나 할까요. 함께할 수 있는 일, 각자 할 일을 구분해 함께 혹은 각자 하고 즐기는 것을 실천하고자 하는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입니다.” 쓰(쓰기)-말(말하기)-노(노래하기)에 능하십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특별한 재능이 없는 평범한 중년, 노년들이 삶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비결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만큼 작은 것에서도 행복을 느끼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다섯 가지로 말씀드릴 수 있는데요. 첫째, 죽을 때까지 명함을 파야 한다. 둘째, 최소한의 경제 독립. 이미 갖고 있다면 죽을 때까지 놓지 말아야 한다. 셋째, 지속적으로 공부해야 한다. 넷째, 독립심을 가져야 한다. 단적으로 반찬 만들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기본적인 일에서부터 은행일, 세금 신고하고 납부하는 일 등 일상과 관련한일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혼자 놀기뿐 아니라 혼자 먹기에도 익숙해져야 합니다. 다섯째, 확실한 취미를 가져야 한다. 하다못해 숨쉬기 운동이라도 취미로 가져야 무료하지 않습니다. 시간 알차게 보내기, 몰입할 수 있는 취미를 가지는 것이 요체라고 봅니다. 앞으로 이삼십 년을 무료하게 살지 않으려면 취미든, 공부든, 일이든 새로 시작하려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꿈은 아름답지만 정작 그것을 이루어가는 길은 늘 험하고도 멀다. 하지만 도전해볼 만한 일이다.” ‘꿈꾸는 청년’ 권대욱 사장의 마지막 멘트였다. 그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한 편의 인생론, 행복론 장편 강의를 들은 것처럼 충만한 기분이 들었다. 인생의 진정한 달관은 포기가 아니라 진격의 용기가 아닐까. 밖으로 나오니 꽃샘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그 바람을 헤치고 봄꽃들이 얼굴을 군데군데 내밀고 있었다. 문득 영국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의 시 ‘율리시즈’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나는 여행을 그만두고 쉴 수가 없다. / 나는 내 삶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들어 마시겠다. 나는 언제나 / 기쁨도 고통도 최대한 누리고 겪었다. (중략) 한결같이 변함없는 영웅적 기개 / 세월과 운명 때문에 약해졌지만, / 분투하고, 추구하고, 발견하고, 굴복하지 않으려는 의지는 강하도다.” 인생의 행복은 남보다 높이, 빨리 목적지에 도달하는 데 있지 않다. 분투하고, 추구하고, 발견하고 굴복하지 않는 의지로 지치지 않고 도전하는 데 있다. 당신은 인생을 진격시키는 힘을 어디서 어떻게 구할 것인가.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 소장 연세대학교 졸업. 경영학 박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겸임교수. 리더십 스토리텔러. 세계일보에서 CEO 인터뷰 전문기자로 활약했다. 세계경영연구원(IGM)과 삼성경제연구소 등에서 강의했다. 저서로는 , , 등이 있다.
- 2017-03-27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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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똑똑한 은퇴] 친도(親道)를 아시나요?
- 해가 어스름해지기 시작하자 연신 동네 어귀를 쳐다보는 노부부. 이제나저제나 읍내에 나간 아들이 오기를 기다리며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늦은 시간인데도 아들이 안 오면 부모는 슬슬 동구 밖으로 마중을 나간다. 멀리서 희끗희끗 보이는 물체가 아들인가 하고 좀 더 높은 곳이나 나무 등걸 위에 올라가 굽어보기도 한다. 수십 년 전 산골 혹은 시골에서 장이 서는 날이면 있음직한 장면으로 부모들의 애틋한 마음이 잘 느껴진다. 이 같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마음을 잘 나타내는 한자가 바로 부모 ‘친(親)’이다. 親이라는 한자를 살펴보면 설 입(立) 밑에 나무 목(木)이 있고 그 옆에 볼 견(見)이 붙어 있다. 위에서 언급한 장면이 그대로 연출되는 듯한 한자다. 요즘엔 설이나 추석 명절에 오는 자녀들을 기다리는 부모들이 그런 마음일 것이다. 명절을 쇠러 가는 차들이 한꺼번에 밀려 도로가 엄청 막히는데다 눈이나 비까지 오기라도 하면 자식들이 무사히 도착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진다. 장에서 돌아오는 아들의 마음도 급하다. 자신을 기다릴 부모님이 생각나 발걸음이 빨라진다. 아니나 다를까 동네 어귀에서 고개를 빼고 기다리는 늙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보인다. 아들은 “아이고, 왜 여기까지 나오셨어요?” 하며 지게를 내려 “다리도 아프실 텐데 이 지게 타고 가시지요” 한다. 지게가 없다면 업고라도 갈 태세다. 이런 장면을 보는 듯한 한자가 바로 ‘효(孝)’다. 아들[子]이 늙은[耂] 어머니(아버지)를 업은 듯한 글자다. 의미도 잘 갖다 붙인다고 하겠지만 필자가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한자 어원 풀이에 나오는 해석이다. 모든 도덕규범의 기초인 ‘효’ 효도(孝道)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부모를 잘 섬기는 도리 또는 부모를 정성껏 잘 섬기는 뜻으로 표현돼 있다. 한마디로 ‘부모에 대한 자식으로서의 도리’라는 의미다. 효도를 대부분 유교적 도리라고 말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규범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가족을 넘어 사회(공동체)와 국가의 근본을 이루는 무언(無言)의 규범이자 사회적 합의라 할 수 있다. 효도를 근간으로 행복한 가족이 이뤄지고 그 가족의 구성원들이 사회에 나가 열심히 소득 및 소비활동을 함으로써 지역 공동체는 물론 국가 경제가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삼국시대 이전부터 효가 모든 도덕규범의 기초를 형성해왔다. 이 대목에서 드는 의문 하나. 효도가 부모에 대한 자식의 도리를 의미하는 한자라면 자식에 대한 부모의 도리를 뜻하는 한자어는 없을까? 필자가 과문(寡聞)한 탓인지는 모르지만 그런 뜻을 가진 한자어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자식을 낳은 부모가 자식에 대해 도리를 지키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어서 한자어는 물론 순우리말에도 없을 거라는 게 주변의 해석이다. 그래서 필자가 한번 만들어봤다. ‘친도(親道)’. 글자 그대로 자식에 대한 부모로서의 도리를 뜻한다. 부모의 도리도 생각해야 할 시대 평균수명 100세 시대가 되면서 집집마다 걱정거리가 늘고 있다. 이렇게 말하면 돌팔매를 맞을지도 모르지만 연세 많은 조부모 또는 부모가 오래 사시기 때문이다. 물론 부모가 건강하게 오래 살면서 경제적으로도 자식들에게 큰 짐이 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뭐랄 게 없다. 하지만 거동이 불편해지기 시작하면서 병도 하나둘 늘어나고 정신도 예전 같지 않은 상황이 수년간 지속되고 있다고 해보자.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남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연세 많은 노인들은 자식에게 부담을 주기 전에 죽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치매라도 걸려 정신마저 없어지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태산이다. 최근 지방 중소도시는 물론 서울 강남의 대로변에 하루가 다르게 들어서는 것이 요양병원이고 요양원이다. 농경사회에서는 집이 일터이자 병원이었다. 가족 중에 누구 하나가 아프면 모두가 돌아가며 돌봤다. 하지만 산업화 사회가 되면서 집과 일터, 병원이 분리되고 조부모와 부모, 자녀들이 따로 살게 되면서 누가 아프면 보통 일이 아니다. 병이 길어지면 가족관계가 파탄나기도 하고 경제적으로도 파산에 이르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누구나 처음엔 내 부모인데 하면서 달려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돈과 정(情)은 떨어지고 갈등이 커진다. 하지만 누굴 탓할 것인가. 불효하고 싶은 자식은 없을 것이다. 기왕이면 남부럽지 않게 효도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내가 먼저 살아야 하고, 내 자식부터 챙기게 된다. 늙은 부모를 소홀히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고 상황인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뭘까. 나이가 들수록 각자 스스로 부모의 도리, 즉 친도(親道)를 생각하면서 살아야 한다.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가, 예상보다 오래 살 경우에 대비해 의료비를 포함한 생활비는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회생 불가능한 병에 걸리거나 그러한 상태에 이르렀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치매 등에 걸렸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남는 재산이 있다면 어떻게 증여 또는 상속할 것인가 등등을 생각해봐야 한다는 말이다. 어떻게 되겠지 하는 어설픈 기대는 자식에게 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많다. 이것이 오늘날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시니어들의 가장 큰 고민이자 어려움이다.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 제나라의 경공이 정치에 관해 물었을 때 공자가 한 대답이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는 의미다. 아울러 각자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때 정치가 잘된다는 뜻이다. 여기서 군군신신(君君臣臣)은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의 핵심이고, 부부자자(父父子子)는 수신제가(修身齊家)의 핵심이다. 평균수명이 70세 정도일 때는 은퇴 후 10여 년 더 살다 가면 되니까 자식이나 다른 가족들한테 큰 짐을 지울 일이 없었다. 이제 평균수명이 80세, 90세를 넘은 100세 시대에는 수신제가로서의 ‘부부자자(父父子子)’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더 곱씹어봐야 할 것이다. 좋든 싫든 친도는 100세 시대에서 생겨난 시대적 요청이다. 부부자자(父父子子)는 곧 ‘친친효효(親親孝孝)’, 즉 부모가 부모로서의 도리를 다하고 자식이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다. 오늘날은 자식에게만 효도를 바랄 것이 아니라 부모의 도리도 함께 생각해야 할 시대다. >>최성환(崔聖煥) 한화생명 은퇴연구소장·고려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 한국은행 과장, 조선일보 경제전문기자, 고려대 국제전문대학원·경영대학원 겸임교수, 한화생명 경제연구원 상무, 은퇴연구소장 등 역임.
- 2017-02-27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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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나가는 사람에게는 이유가 있다 PART1] 사랑이 있는 고생이 행복임을 깨닫는 사람이 최선의 인생을 산다
- 내가 처음 미국을 방문한 것은 1961년이었다. 그 당시 미국의 교수들을 비롯한 지성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말 중의 하나는 ‘인생은 60부터’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 나이가 되면 인생은 끝나는 때라고 흔히 말하던 시기였다. 그런데 100세 시대를 바라보는 지금은 인생의 전성기가 60부터라는 관념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즐기기 위해 산다는 목표를 세운다면, 인생은 40부터라는 생각이 일반적일 것이다. 그러나 인생을 값있고 보람 있게 살기 원한다면 60부터라는 판단이 적절할 것 같다. 그리고 즐기기 위해 사는 사람보다는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 사회적 의미도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60은 100세 시대를 바라볼 때 늦은 나이가 아니라고 여겨진다. 60이 되면 인간적 성장과 성숙의 완숙기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내가 나 자신을 믿을 수 있고 대인관계나 사회생활에 있어서도 자신을 갖추는 연령이라고 생각한다. 공자의 자기평가와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그리고 60부터 75세쯤까지는 노력만 한다면 누구나 정신 및 인간적으로 성장이 가능하다. 지식과 사상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인간성 전반에 걸친 생산적이며 창의적인 노력과 사회 기여가 가능하다고 본다. 가능한 것만이 아니다. 100세 시대 인간은 누구나 그렇게 살아야 한다. 내가 76세 때의 일이다. 한 후배 교수가 회갑이 되었다는 얘기를 들은 내 친구가 “그 친구 철도 안 들었는데 회갑부터 된다”라며 웃었다. 자기도 그랬었다는 뜻이다. 비슷한 때였다. 내 나이를 물은 90대 초반의 선배 교수가 “좋은 나이로구먼…” 하며 부러워하던 얘기를 지금도 기억에 떠올리곤 한다. 60에서 75세쯤까지가 인생의 황금기였다는 사고는 누구나 잠재적으로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75세쯤까지 성장할 수 있다면 그 성장의 위상을 언제까지 연장할 수 있는가이다. 노력하는 사람은 85 내지 87세까지는 연장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의 성장을 포기하는 편이다. 40대라고 해도 공부와 일을 포기한 사람은 녹슨 기계와 같아서 사회적 기여를 못한다. 그러나 70대가 되어서도 사회적 관심을 갖고 노력하는 사람은 젊고 활기찬 생애를 이어갈 수 있다. 언제까지 연장될 수 있는가. 내 주변 친구들은 85세까지는 사회가 요청할 수 있을 정도로 봉사하며 도움을 주고 있었다. 가깝고 존경스러운 친구들 중 김수환 추기경, 김태길 교수, 안병욱 선생 모두가 그랬다. 90 가까이까지 일하기도 했다. 그런 점들을 감안해본다면 100세 시대의 후반기는 50대부터 시작하게 되고 50대가 되면 내가 80대가 되었을 때는 어떤 인생을 살게 되며 동료들과 사회는 나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를 스스로 묻고 대답을 얻어가는 삶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기 나름대로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확실해야 한다. 나 자신이 교육계에 몸담고 있을 때를 회고하면서 스스로 후회스러운 반성을 해보는 때가 있다. 대학생활을 시작하는 20대 젊은이들에게, ‘내가 50쯤 되었을 때는 어떤 모습으로 인생을 살고 있을까?’ 하는 문제의식을 반드시 찾아 지녀야 한다고 권고하지 못한 잘못이다. 20대에 문제의식을 갖고 50세를 맞이하는 사람은 대부분 보람과 성공의 기반을 갖출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문제의식을 갖지 못한 젊은이들은 인생의 낭비가 너무 심하다. 인생의 전반기를 굳건히 다지지 못한 사람은 후반기에 가서도 그 빈자리를 메우기 힘들어지는 법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50대에는 80대 후반기까지의 장래를 계획하고 바르게 정진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갖고 살아야 한다. 인생관의 가장 큰 과제는 삶의 목적을 설정하는 일이다. 가치관의 핵심이 되는 것은 ‘어떻게 사는가?’에 대한 해답을 지니고 사는 것이다. 그런 생각들을 정리하게 되면 80대가 채워질 때까지는 마음 놓고 자신 있게 인생의 마라톤에 뛰어들어도 좋다는 결론이 된다. 나는 80대가 되면서 이제는 쉬고 싶고 쉬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가져보았다. 그 휴식의 1년은 일하고 공부하는 1년보다도 더 지치고 무의미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시작해서 지금까지 17, 18년 동안 공부하고 일하는 것을 계속해보고 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싶거나 객관적 평가를 원해서가 아니다. 나 자신의 삶의 의미와 풍요로움을 상실하고 싶지 않아서다. 그런데 누군가가 90 고개를 넘긴 후에는 어떠했느냐고 물으면 객관적인 권고를 할 자신이 없다. 할 수 있는 대답이 있다면 나는 이렇게 살고 있다는 개인적 소감을 피력할 수 있으면 다행일 것 같다. 내 주변의 90대 사람들을 많이 보고 있기 때문이다. 90대가 되면 자신의 신체적 건강을 뜻하는 대로 지탱할 수가 없다. 자연히 누군가에게 의존하게 된다. 부부 중의 한쪽은 떠나간다. 자녀들에게 의탁하는 것도 옛날과는 다르다. 여성들은 90대가 되어도 모성애의 대가라고 할까, 갈 곳이 있으나 남성들은 홀로 남는 것이 보통이다. 그 나이가 되면 친구들도 떠나간다. 그때 찾아드는 남성적 고독과 인간적 외로움을 극복하는 것조차 힘들어진다. 지금 나에게 하는 가장 적절한 문안인사가 있다면 “사시는 것이 많이 힘드시지요?”라는 말이다. 90대 후반은 더욱 그렇다. 그러한 부담을 극복할 수 있어야 90대에도 보람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지금 누군가가 나에게 “그래도 아직 행복하세요?”라고 물으면 나는 숨기지 않고 “행복합니다”라고 대답하곤 한다. 내가 지니고 있는 짐은 무겁지만, 그래도 일할 수 있고, 주변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나누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버거운 짐이지만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고생이라면 그 이상의 행복은 없겠기 때문이다. 사랑이 있는 고생이 행복임을 깨닫는 사람이 최선의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 아닐까. >> 김형석(金亨錫) 연세대 명예교수 1920년생. 안병욱 교수(숭실대), 김태길 교수(서울대)와 함께 한국의 1세대 철학자로, 아직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영원한 현역’이다. 현재도 활발한 저술 및 강연을 통해 우리 사회에 큰 울림과 귀감이 되는 삶을 살고 있는 석학이다. 특히 100세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인으로서 사랑과 행복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바탕으로 동시대인들에게 깊은 성찰과 깨달음,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전하고 있다.
- 2017-01-23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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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하장을 만들어 보니
- 연말이 되면서 지인들로부터 수많은 안부인사가 날아들었다. 음성은 없고 문자와 그림만 있는 SNS 안부다. 고등학교나 대학교 동창들의 단체 카톡방이나 사회에서 형성된 몇 개의 커뮤니티, 그리고 몇 개의 밴드... 그 방에서 여러 사람들이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연하장을 올리는 소리가 계속 징징 울렸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만들어지는 SNS 그룹 방이 하도 많아서 일일이 답변을 달려면 하루 종일 매달려야 할 지경이다. 그 그룹마다 계속 올라오는 연하장을 보면 비슷한 것도 많고 심지어 같은 것을 그대로 퍼 나르기를 해서 감흥이 없다. 무작위로 무작정 올린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가 엮여있는 그룹에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좋은 글’을 여러 개 올리는 인사는 대학교수와 공무원이다. 어디서 그렇게 ‘좋은 글’과 ‘명심해야 할 말’을 찾아내는지 신기할 정도다. ‘좋은 생각’, ‘좋은 친구’, ‘마음에 담아 둘 좋은 것 10가지’, ‘실천해야 할 ...’ 등등. 내용도 엄청 많을 뿐 아니라 글씨도 깨알 같아서 이제는 아예 읽지도 않는다. 좋은 것을 나누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렇게 거의 병적으로 이런 글을 매일 SNS에 올리는 사람들은 실제 가까이 하기 어려운 성격의 사람들이 더러 있다. 이제는 ‘좋은...’이라는 단어 자체가 거부감을 준다. 아마 공자도 이렇게 많은 것을 실천하지 못했을 것이다. 시간 여유가 많아서 종일 좋은 글이나 올리고 있는 걸 보니 역시 대학교수나 공무원들 중에는 세상 걱정 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은 가 보다. 이렇게 그들이 올리는 수많은 좋은 글 중에 그들이 일부라도 실천 하고 산다면 나라가 좀 더 나아지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연말연시에 이렇게 많은 안부인사가 날아다니는 걸 거부하는 자신을 보면서 어느 날 문득 좋은 것을 좋게 생각하지 못하는 필자의 꼬인 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이 퍼 나르기를 한 연하장이고 무작위로 올린 것이라고 해도 타인에 대한 기원의 마음을 담고 있음은 확실할 텐데 그 본질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연하장 하나를 그렸다. 경복궁 어느 처마에 올라서 멀리 서울을 바라보는 정유년 붉은 닭. ‘높이 올라 멀리보라’는 기원의 글도 써 넣었다. 그리고 SNS에 엮인 여러 지인들에게 날려 보냈다. 폭발적인 반응이 돌아왔다. 손 그림이라는 이유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몇몇 지인들에게는 그이 이름을 넣은 맞춤형 연하장을 그리고 그것을 그림파일로 만들어서 보냈더니 참 좋아했다. 며칠 있으면 설이다. 양력으로 새해가 되었고 음력으로 또 다시 새해가 시작되려 하고 있다. 바빠서 자주 보기 힘들고 안부도 나누기 힘들지만 아직 신년의 기분이 남아있는 요즘 지인들과 서로 안부를 물으면 좋겠다. 올해 경제지표는 더 나빠질 거라는 전망이 많이 나온다. 특히 시니어들은 현실이 불안하고 미래가 불투명하다. 이럴 때 문득 보내는 안부 메시지가 조금의 위안은 되지 않을 까.
- 2017-01-16 1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