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불구불 거듭 휘어지는 길, 조붓한 찻길을 따라 닻미술관을 찾아간다. 누굴까? 외진 야산 자락에 미술관을 만든 이. 자연에 심취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 대도시 근교도 아니고, 접근도 쉽지 않은 산중에 사립미술관을 열다니. 이는 모험일 수 있다. 사람들이 찾아오기 쉬우랴. 속된 말로 파리 날릴 수 있다. 하지만 외져서 오히려 호감을 살 수도 있겠다. 도시엔 없는 정적과 고독이, 새소리와 바람 소리가 이곳에 흔하게 있는 게 아닌가. 이윽고 길의 끝에 닿자 닻미술관 푯말이 보인다. 경기도 광주시 초월면에 있다.
넓고 훤칠한 정원 안에 미술관이 있다. 정원 안이라 했지만 숲속에 있는 미술관이라 해도 무방할 것 같다. 백마산이라 부르는 야산이 늘어뜨린 치맛자락에 폭신하게 안긴 미술관이다. 미술관의 너른 부지 자체가 산과 정원의 융합으로 이루어져 통째 아늑하다. 청신해서 생동한다. 게다가 계절은 봄. 부지깽이도 꽂아두면 싹이 튼다는 4월의 봄이다. 물오른 나무들의 몸엔 이미 튼 싹눈들. 설레어 곱살스레 하느작거리는 연둣빛 잎사귀들. 희거나 붉거나 노란 꽃들은 작렬하듯 일제히 피어나 날 좀 보소, 아우성친다. 햇볕은 궁금한가? 그것은 유난히 풀꽃들 소담하게 핀 둔덕에 모여 앉아 있다. 풀꽃이 전하는 소식에 귀 기울이는 것 같다. 벌써 후루룩 떨어져 땅바닥에 누운 벚꽃들의 모습은 또 어떻고? 휘황한 장제(葬祭)를 닮아 애절하게 아름답다.
미술관에 왔으나 눈길과 발길은 이렇게 서정적인 정원 풍경에 오래 머문다. 이런 미술관, 아마도 드물지 싶다. 수려한 정원으로 일단 유혹하고 매혹한다. 수목과 화초들이 연출하는 예술과, 숲을 흔들며 지나가는 바람이 내는 선율에 씻긴 마음은 샘물 한 바가지 퍼마신 양 개운하다.
나무들에 가려 감춰진 듯 살짝 보이는 입구를 찾아 미술관 본관으로 들어간다. 건물의 양식도 분위기도 이채롭다. 지중해 휴양지에서 볼 수 있는 스타일의 집이다. 전체적인 형태는 디귿(ㄷ)자를 닮았다. 건물 복판에 조성한 중정 좌우로 전시관과 카페 공간이 있다. 눈길을 붙잡는 건 역시 중정이다. 중정을 이룬 사물들마다 고풍스런 미감을 돋우고 있다. 고재와 고철로 만든 출입문, 빈티지 타일이 깔린 바닥, 처마를 떠받친 하얀 기둥들, 획일적이지 않은 의자와 탁자들의 낡음과 아름다움…. 한층 독특한 건 중심부에 팔각형 형태로 설치한 연못이다. 아주 작은 연못이라 연못다운 기능성에 착안하기보다 뭔가 상징적인 물웅덩이를 표상하는 것 같다. 이를테면 여성성이라거나, 궁극의 자연성을.
중정 뜰에 앉아 만날 수 있는 풍경 중 빼어난 건 하늘의 동향이다. 지붕 없이 확 열린 상부의 사각 프레임으로 파란 하늘과 구름과 햇살이 들이친다. 닻미술관 건물은 이렇게 자연을 향해 열려 있다. 자연을 끌어들인다.
닻미술관은 사진 전문 미술관으로 2010년에 개관했다. 설립자는 사진작가이자 미술관 관장인 주상연. 그는 건축과 정원 조성에 따르는 모든 과정을 주도했다. 그가 미술관 설립에 나선 계기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아트 인스튜어트’(Art Institute)에서 공부하면서였다고 한다. 유학을 통한 개안? 그는 국내에 있을 땐 착안하지 못했던 구상을 했다. 예술이 일부 계층의 전유물일 수 없다는 것.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것. 삶과 예술과 자연, 이 셋의 소통과 유대를 구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공간과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 이러한 생각을 가슴에 담고 귀국한 그는 마침내 닻미술관을 개관하기에 이르렀다. 사진 중심의 예술서적을 작가와 협업해 출간하는 닻프레스도 설립했다. 닻미술관과 닻프레스는 서로 손잡고 동행한다. 닻프레스의 출간 콘텐츠가 곧장 미술관 전시로 이어지면서 확장되는 게 아닌가. 닻프레스의 존재감은 해외에 더 또렷하게 부각됐다고 한다.
억지 꾸밈이 없는 야생정원
주상연 관장에게는 유학 중에 인연을 맺은 예술적 어머니가 있다. 미국의 사진가 린다 코너(Linda Coner)다. 코너는 하늘과 땅, 성과 속, 우주와 인간의 본질에 관한 탐구와 질문을 사진 작업으로 하는 작가로, 주 관장의 삶과 사진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미술관 설립의 배경을 이루는 정신적 에너지 역시 코너에게서 얻은 것 같다. 한편 주 관장은 자연에 사로잡힌 사람이다. 고요한 숲속에 미술관을 지은 걸 보면 이미 알 만한 일이지만, 그는 인생에 자연이 결부돼 있을 때 삶의 더 나은 지평이 열린다고 믿는다. 따라서 사진작가로서, 미술관 운영자로서 자연이 발신하는 언어를 포착한 작품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자연과 예술이 주는 ‘무작위적 친절’이 공기처럼 세상에 미만하길, 그래 저마다의 삶에 창조성과 영성이 깃들길 바라서다.
전시실에선 국내 1세대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꼽히는 주명덕의 작품전 ‘풍경, 저 너머’가 펼쳐지고 있다.(6월 18일까지) 80대 고령에 접어든 주명덕은 아직도 암실에 들어박혀 사진 작업을 하는 열정의 화신.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과속 질주하는 세태에 여전히 아날로그적 사진 작업을 고수하는 것에서도 뚝심과 지향이 드러난다. 평생 한국의 자연과 풍속과 문화유산을 흑백 기록사진에 담은 이유를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문명, 풍요, 공해 같은 개념과 상관없는 한국의 고유한 전통과 특색을 보존하고 싶었다.”
이번 전시회는 2021년 닻미술관의 기획전 ‘집’과 이어지는 주명덕의 두 번째 사진전이다. 기록사진으로 시작해 예술사진으로 확장된 후반기 작업에 속하는 세 가지 시리즈, 즉 ‘잃어버린 풍경’과 ‘장미’, 그리고 ‘사진 속의 추상’을 함께 엮어 보여주는 기획전이다. 피사체의 사실성을 포착하는 데 능란한 작가가 추상 이미지의 구축에도 유능함을 알려주는 전시회다. 다만 한 획을 쓱 그은 듯 간결한 이미지를 담은 주명덕의 추상사진엔 허무와 초탈이 실려 있다. 리얼리즘으로 도달할 수 없는 깊이와 높이를 보여주고 있으니, 마침내 그의 눈은 세상과 인간의 이면을 그윽하게 관조하나? 대가의 사진은 그렇다면 한 줄의 경전에 맞먹나?
본관 저 뒤편 프레임실에서는 ‘구름의 노래’전이 진행된다. 닻미술관이 소장한 사진작품 가운데 구름을 소재로 한 것들을 골라 걸었다. 구름이라는 이름의 자유로운 나그네를 저마다의 작풍으로 은유한 사진가 12인의 흑백사진이다.
전시실을 나와 다시 정원 숲길을 헐렁헐렁 산책한다. 억지 꾸밈이라곤 없는 야생정원이다. 가꾸는 건 가두는 것이다. 가만히 방목해둔 나무와 풀들은 저리도 무성하다. 스스로 조화를 이룬다. 정원 길 한편에 오두막 한 채 있다. 은자처럼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 작은 집은 데이비드 소로가 살았던 월든 호숫가 오두막의 실제 도면에 따라 지었다. 월든을 주제로 한 기획전을 치를 때 만들어 실내에 전시했던 걸 정원으로 옮겨놓았다. 소로는 말했다. ‘나의 직업은 산책가’라고. 산책이 직업? 이보다 좋은 직업이 있나? 대봐라, 더 나은 게 있거들랑.
주상연 닻미술관 관장
“자연과 소통하는 미술관 추구”
닻미술관의 정원은 아름답다. 인위와 자연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정원의 외곽은 야산 그대로를 다듬지 않고 원형 그대로 두어 야생의 숨결을 느낄 수 있게 했다. 미술관의 밑그림을 그릴 때부터 주상연 관장은 정원 공간을 전체 콘셉트의 중심에 두고 숙고했던 것 같다. 유학차 미국에 살 때 만들었던 개인 정원에 관한 경험도 되살려 활용했다.
사람 드문 지방의 외진 산자락에 있는 미술관이다. 운영 문제를 고려한다면 아무나 쉽게 나설 여건은 아닌데?
“처음엔 낯설어하는 이들이 많았다. 산기슭에 이상한 지중해식 건물을 짓고 들어선 미술관이라니, 이게 왜 여기에 있을까? 그런 의아심을 표시했다. 초기 수년간은 관람 인원도 극히 드물었다. 내가 산속에서 지금 뭐하고 있지? 이런 회의를 느끼기도 했다. 운영에 관한 어떤 전략적 대안을 가지고 개관한 게 아니라 힘든 점이 많았다. 다만 꾸준히 열심히 하면 될 거라는 확신은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자리가 잡혔다. 서서히 팬이 생기고 조력자들이 늘더라.”
닻미술관의 어떤 매력이 사람들을 불러들인다고 보나?
“예술과 정원과 숲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미술관이라는 점이 포인트라 생각한다. 보통 미술관은 화이트 큐브를 구성하지만 우리는 빛과 공기가 드나드는 건물을 지었다. 이 역시 장점이다. 자연과 소통하는 미술관이라는 게 관람객들의 호감을 사고 있다고 본다.”
코로나19 팬데믹 때 미술관들은 대부분 악전고투를 했다. 닻미술관은 여기에서 예외였단다. 팬데믹 국면에 오히려 방문자들이 크게 늘었다는 것. 바이러스조차 침투할 수 없는 숲속 미술관이라는 안전성이 거둔 뜻밖의 성과였다.
사진 전성시대랄까, 요즘은 남녀노소 누구나, 어디서나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사진에 진지한 관심을 가진 이들도 많아졌다. 사진 전문 미술관으로서는 환영할 만한 풍속이지 않을까?
“사진을 쉽고 친숙한 매체로 대하는 현상은 긍정적이다. 반면 사진에 관한 인식이 얕아지고 있다는 점은 아쉽다. 정말 좋은 사진을 만날 기회가 오히려 적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나 대중이나 디지털 사진에 편중된 점도 문제다. 해외에선 다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하니까.”
현재 진행 중인 주명덕 사진전에 나온 추상 사진이 인상적이었다. 작가의 재능과 내공이 느껴져서.
“주명덕 선생이 그저 전통가옥이나 풍경을 찍는 이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는 한결 다층적인 작품 세계를 구현해왔다. 기록사진에서 더 깊이 들어간 관념적 사진 세계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그는 동양철학적 지향을 가진 걸로 보인다. 나에게는 큰 스승이기도 하다. 언젠가 그가 말했다. ‘뜻을 얻으면 말을 버린다!’ 선가의 법어 같지 않나?”
당신 역시 사진작가다. 어떤 작품 세계를 추구하지?
“자연에 대한 경외감, 영성에 관한 생각, 시간과 공간에 관한 성찰 등을 테마로 삼는다. 늘 잊지 않는 건, 예술의 치유력이 삶과 정신을 아름답게 만든다는 것이고.”
100세 시대, 치매 예방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얻고자 강남대학교 미래복지융복합연구소는 오는 27일 서울시청 태평홀에서 ‘100세 시대 치매 예방을 위한 Wel-Tech 기반 사회서비스 생태계 구축 방안’을 주제로 ‘2023년도 WT 산학협력포럼’을 개최한다.
이번 WT 산학협력포럼은 강남대 사회복지학과 70주년을 맞이해 미래복지융복합연구소가 사회서비스 혁신 생태계 조성에 앞장서는 중앙사회서비스원과 치매 예방 산업 생태계 구축을 선도하는 ㈜한국에자이와 공동주관으로 진행한다. 본 행사는 (사)한국노인과학학술단체연합회, (사)글로벌중소기업지원협회, 실버산업전문가포럼, Wel-Tech Institute 및 국제제론테크놀로지학회(ISG) 한국지부가 본 후원한다.
이번 포럼은 강남대 미래복지융복합연구소 김수완 교수(소장)의 개회사로 시작되며 윤신일 강남대학교 총장의 환영사, 조상미 중앙사회서비스원 원장, 이수연 서울시 복지정책실 복지기획관, 고홍병 ㈜한국에자이 대표이사, 이상용 실버산업전문가포럼 회장의 축하로 이어진다.
윤신일 총장은 환영사를 통해서 “강남대학교는 올해 개교 77주년을 맞이했으며, 사회복지학부는 설립 70주년을 기념하는 뜻깊은 해입니다. 우리나라 사회복지 교육을 최초로 시작한 강남대학교는 디지털 전환 시대를 맞이하여 복지와 기술을 접목한 Wel-Tech 융합 교육의 시초가 되었고, 이제 곧 다가올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100세 시대 치매 예방을 위한 디지털 복지 기술과 사회서비스 생태계 구축 방안을 논의하는 이번 산학협력포럼은 매우 시의적절하고 중요한 행사입니다”라고 전했다.
본 포럼에서는 조상미 중앙사회서비스원 원장이 기조강연을 통해 ‘100세 시대 사회서비스 혁신 생태계 구축 방향’을 제시한다. 조상미 원장은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대한민국은 ‘100세 시대 일자리·건강·돌봄 체계 강화’ 및 ‘사회서비스 혁신을 통한 복지・돌봄 서비스 고도화’가 매우 시급한 과제이며 치매 예방을 위한 혁신서비스 개발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박영란 강남대 실버산업학과 교수는 ‘수요자 중심 치매 예방 생태계 구축 방안’을 주제로 치매 환자와 가족 당사자 입장에서의 생태계 구축 방안을 제시한다. 노영희 강남대 미래복지융복합연구소 교수는 ‘Wel-Tech 리빙랩 기반 산관학연 협력 프로세스’를 통해 ‘사회서비스적’ 및 ‘산업적 관점’에서의 생태계 접점에 있는 이해 관계자들과의 지속 가능한 편익 교환 방안을 발제한다. 산업계에서는 ㈜한국에자이의 헬스케어 에코시스템 디자인 부서를 관장하는 김은호 이사가 한국에자이의 사례를 중심으로 ‘치매 예방 에코시스템’을, ㈜이모코그는 디지털헬스케어를 통한 환자주도형 치매 예방 사회 서비스에 관한 발표를 한다.
2023 WT 산학협력포럼은 생태계 전반에서 활동하는 대표 전문가들과 위 발제에 대한 토론회(좌장 김수완 소장)를 위해 한국노인과학학술단체연합회 김신겸 총무이사인 순천향대 부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서종녀 서울시복지재단 선임연구위원, 고덕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과장, 김현미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 센터장, 조준배 강남구사회복지기관협의회 강남종합사회복지관 관장, 김정훈 세븐포인트 본부장, 그리고 이준호 이투데이피엔씨 브라보마이라이프 편집장이 참석한다.
강남대 미래복지융복합연구소는 6년째 산관학연 협력사업으로 학생 참여의 WT 리빙랩을 운영하면서, 사회서비스 및 산업적 생태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주체들과 직접 대면하며 더 나은 협력 방안을 모색해왔다.
여럿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일이 즐거운 사람들이 있다. 그런 편이 못 되다 보니 가능하면 이럴 땐 피하고 싶기도 하다. 혼자 혹은 동행 한 명쯤과 다니기 좋은 미술관이나 박물관 관람은 어수선함이나 소음으로 피곤한 상황을 피하기 좋다. 혼자서 자기 속도대로 구경하고 한참씩 멈춰 있어도 뭐라 할 이 없으니 말이다. 동행이 있어도 각자 생각의 방향으로 돌아보고 나서 만나면 된다.
이번에 가본 안성의 한국조리박물관도 그렇게 돌아보기 좋은 곳이다. 조리박물관의 메인 전시관과 요리아트스쿨 교육장을 중심으로 주변의 너른 공원과 잘 정돈된 조경, 예쁜 카페와 식당까지 고루 잘 조성된 테마파크형 박물관이다. 서양요리 100년의 역사를 갖춘 한국조리박물관은 국내 최초이면서 세계에서는 프랑스와 미국에 이어 세 번째라고 한다.
전시관은 국내 서양요리 역사, 조리인, 메뉴 레시피, 식문화 조리단체, 조리기구와 도구, 소스와 향신료, 커피·바리스타·와인·베이커리 등 8개 테마로 구성되었다. 공간 구획에 따라 준비된 각종 자료들이 생생한 역사를 전달한다. 찬찬히 돌아보며 만난 도구 하나하나, 맛과 연관된 역사적 사실이나 작은 소스 하나까지 신기하고 흥미로워서 한참씩 들여다보게 된다. 과거와 미래를 잇는 뜻깊은 관람이다. 이를 이루고자 한 걸음씩 심혈을 기울이며 나아간 이들의 진심이 느껴진다. 총 부지 1만 평 정도의 테마파크형 박물관으로, 자연 속에서 관람과 휴식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일석이조다.
이번엔 조용히 혼자 전시장을 돌아보려던 생각을 바꿨다. 키오스크로 입장권을 사서 입장하려는데 안내석에 계시던 분이 말을 건넨다. “해설이 필요하면 말씀하십시오.” 사실 해설을 들으며 볼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괜찮다며 그냥 들어섰다. 그러다가 문득 이곳은 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면서 제대로 관람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해설사로 교육받으신 분답게 자신의 소개를 시작으로 친절한 안내와 꼼꼼한 설명으로 전시관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어찌나 성심성의껏 안내를 하시는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연륜이 돋보이는 분이었다. 안내를 마치고 잠깐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안성시청 소속 문화관광해설사로서 현재 이곳 한국조리박물관에서 파견근무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 일하는 문화해설사는 20명 정도인데 우리가 사는 지역을 위한 일이어서 다들 자부심을 가지고 즐겁게 일합니다. 이곳의 문화해설은 팀마다 다르지만 한 번에 한 시간 정도, 경우에 따라 세 시간 한 적도 있어요. 내가 즐거우면 관람객들도 즐겁고, 잘 따르도록 리드하는 능력도 생깁니다. 그런 즐거움이 날마다 여기로 나오게 합니다.”
맡은 일에 자부심이 넘치신다. 청산유수로 설명하는 내용도 귀에 잘 들어오고 구수하기까지 하다. 주어진 일이 즐겁다고 연신 말한다. 유용한 시간으로 하루를 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값진 일인지 전해진다.
“내가 7학년입니다, 하하하. 건강관리만 잘하면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이죠. 지금 하는 일이 대가 여부를 떠나서 보람이 큽니다. 문화 관련 일을 접하는 것도, 또 전시관 주변의 자연도 아름다워서 하루하루가 즐겁습니다. 무엇보다 이곳에 오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고, 내 시간을 가치 있게 만들어나가는 것 또한 행복한 일 아니겠어요?”
은퇴 후의 시간을 이렇게 보람찬 나날 속에 보내는 심혁주 문화관광해설사님의 진심 어린 말이다. 시니어들의 일자리 문제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초고령화 시대를 사는 시니어에겐 안정된 노후나 취미 생활만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노후의 경제활동이나 적극적인 사회활동이 필요하다. 심혁주 문화관광해설사님의 말처럼 일이란 건강한 삶을 위해서도 필요하고, 진취적인 삶이 행복을 유지해준다.
마침 한국조리박물관 초대 관장을 맡은 최수근 관장을 만나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근 경희대 교수를 은퇴한 최 관장은 여러 호텔 근무 경력도 지닌 식품학 박사로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분이다. 특히 ‘소스의 대가’로 불리기도 한다.
“대학 졸업 후 요리 일을 열심히 하다가 더 공부하기 위해 파리 르코르동블루로 유학을 갔지요. 그때 처음으로 이런 박물관을 세우고 싶다는 꿈을 가졌습니다. 남프랑스 니스에 있는 개인박물관이었어요. 프랑스 요리의 거장 에스코피에 셰프의 기념박물관에서 받은 감동을 오랜 꿈으로 간직해왔는데 이렇게 현실이 되었습니다. 주방 관련 사업을 하는 이향천 대표를 만난 겁니다. 문화와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인데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셔서 한국 최초의 조리박물관 건립이 이루어졌습니다. 요리 분야 원로들이 귀한 자료들을 많이 주셨고 저 또한 모든 것을 쏟아부었죠. 지금도 콘텐츠 발굴이나 행사 진행을 하고, 자문을 얻으며 공부합니다. 요리에 관해서라면 누구든 언제든 이곳에 찾아오시면 도움이 되어드릴 수 있습니다.”
넓은 공원의 자연과 전시관을 돌아보는 그의 시선에 애정이 듬뿍 묻어난다. 바쁜 와중에도 조리박물관을 향한 뜨거운 마음으로 성의껏 이야기해주셨다. 일정 때문에 급히 이동하면서도 끝까지 예의를 다해 조리박물관의 의미를 전해주시는 마음이 와 닿았다.
한국조리박물관에 가면 근현대 요리와 조리의 방대한 자료를 통한 스토리텔링을 마주하게 된다. 조리계 원로들과 한국 조리명장들이 분야별 자문위원단으로 동참한 귀하고 소중한 것들을 가득 만날 수 있다. 그동안 국내는 물론이고 외국의 유명한 박물관이나 요리학교, 셰프들을 방문하고 벤치마킹하며 진행해온 일이다. 이 모든 것이 주방 제조업계의 이향천 대표와 한국 조리업계의 역사를 보존하고 재조명하려는 최수근 관장의 열정이 힘을 합친 결과로 지금에 이른 것이다.
현재 한국조리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는 ‘대통령의 밥상’이라는 전시를 하고 있다. 청와대 요리사가 들려주는 대통령의 밥상 이야기와 청와대 요리사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전시장에는 대통령의 식기가 역사 순으로 전시되었는데 이 또한 전해지는 일화가 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국빈 만찬에 일본 도자회사의 그릇을 사용해왔다. 이를 본 육영수 여사가 한국 도자기를 주문 생산했고, 그 뒤로 국빈들에게 당당히 우리 그릇을 내놓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요즘은 가히 요리와 먹방의 시대다. 맛있는 요리를 나누고 누군가에게 알리는 것이 근래의 일만은 아니다. 답답한 도심에서 벗어나 자연 속의 전시장을 둘러보고 맛의 역사에 다가가 보는 시간이 알차다. 조리인들의 철학과 발자취를 돌아보며 흥미로운 요리 세계로 빠져볼 만하다. 안성 일죽면에 가면 봄이 오는 길목에서 맛의 원천을 되새기는 시간을 만날 것이다.
주변에 가볼 만한 곳
서일농원 한국조리박물관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서일농원이 있다. 볕 잘 드는 곳에 자리 잡은 2000여 개의 장독대에서 우리의 장맛이 익어가는 옛 정서를 만끽해볼 만하다. 연못가를 지나 산책로를 걸으며 차분히 사색에 빠져보아도 좋을 듯하다. 코로나19 이후 닫혔던 문이 비로소 올해는 열린다고 한다.
죽주산성 죽산면 쪽으로 조금만 더 달려보자. 시원하게 죽주산성에 올라 봄바람을 맞아볼 일이다. 삼국시대 신라의 북진 과정에서 축조한 성곽이다. 성벽을 따라 걸으며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확실한 기분전환을 할 수 있다.
생뚱스레 허허벌판에 홀로 있는 음식점이라거나, 거기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을 것 같은 곳에서 뜻밖의 공간을 만난 경험이 있는가? CICA(시카)미술관은 의외의 장소성으로 오히려 도드라진다. 거대한 산업단지 안에 외톨박이 이방인처럼 고독하게 박혀 있으니까. 김포시 양촌읍 학운산업단지 한구석에 있다. 하필 왜 여기에 미술관을? 이런 궁금증, 쉽게 터져 나올 입지다. 그러나 실은 어엿하다. 황무지에 솟은 꽃나무 한 그루에 견주면 과할까? 풍습과 관행을 흔들어 깨우는 게 예술이다. 장소 불문, 제 갈 길 야무지게 가면 된다. 그런데 이 미술관은 겉으로 소탈하지만 안으로 짱짱하다. 건성으로 풀이거니 해도, 알고 보면 꽃이다.
CICA미술관에서 맨 처음 만나는 건물 외벽엔 철판을 잘라 만든 조각 작품이 부착돼 있다. 산발한 머리칼이 불꽃처럼 너울거리는 앤디 워홀의 자화상을 그대로 조형한 철 조각이다. 미술관 설립자이자 조각가인 김종호의 작품이다. 앤디 워홀은 현대미술의 아이콘. 도발적인 주제와 발칙한 기법으로 미술의 새 물꼬를 텄다. 이 미술관은 현대미술의 동향과 경향을 보여주는 전시회를 집중적으로 펼친다. 지향이 그렇다. 앤디 워홀의 자화상을 조각한 작품을 초입에 배치한 이유를 알 만하다.
김종호가 이곳에 자리 잡은 건 30여 년 전이다. 조각 작업의 특성상 너른 공간이 필요해 서울을 벗어나 한적한 김포에 작업실을 마련했던 거다. 당시 이 지역의 풍광은 산업단지로 바뀐 지금과 사뭇 달랐다. 논밭이 지천이었고, 하늘과 맞닿은 지평선이 펼쳐져 감흥을 자아냈다. 화가의 작업실로 적격인 장소였다. 지평선 너머로 뜨고 지는 해와 달을 벗 삼아 작업에 매달렸을 테다. 이후 작업실을 개방하는 한편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다, 2015년에 미술관 등록을 하면서 CICA미술관을 출항시켰다.
건물을 볼까. 5개 동이 있다. 이채롭게도 모든 건축물이 나지막한 음성을 내는 버릇이 있는 사람처럼 소박하고 수굿하다. 티 내거나 뽐낸 기색이 없다. 치레와 꾸밈을 능사로 하는 여느 미술관 건축과 다른 형상이다. 전시실들이 있는 주 건물은 특히 눈길을 끈다. 김종호의 작업실을 증축한 건물인데 적당히 낡아 오히려 정겹다. 연푸른색을 입혔으나 시간의 횡포로 퇴색한 외벽이 야기하는 서정이라니. 처음엔 말짱했으리라. 말쑥했으리라. 그러나 비와 햇볕, 바람이 세월에 묻어 흐름에 따라 빈티지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저 낡아가는 빛깔과 내향적인 질감은 시간의 지문이다.
이 건물은 김종호가 디자인해 지었다. 손수 연장을 들고 짓거나 고치거나 다듬었다. 그러니 단순한 건축이 아니라 통째 그의 예술이라 할 만하다. 철 조각을 하는 작가라서 건축 오브제를 떡 주무르듯 다루는 솜씨는 이미 몸에 푹 익어 거침이 없었던 모양이다. 2년이라는 긴 시간을 두고 생각을 모으거나 일을 즐기며 천천히 건물을 증축했다. 덕분에 어쩌면 건축적 악곡의 주조음에 해당할 수굿함과 낡음의 미학을 잘 빚어냈다. 수굿함이란 모난 세상과 격하게 접촉할망정 안으로 문을 열어 선선히 수용하는 긍정의 기운이다. 낡음이란 흉한 추락이 아니다. 밀고 당겨온 세월과의 갈등과 투쟁과 서사를 웅변하는 아름다운 훈장이다. 설핏 보자면 허름한 건물이지만 사실은 뜯어보고 눈여겨볼 게 많다. 허심과 무심으로 사람을 데려간다.
전시실 구조에 서린 날것과 즉흥의 이미지
이 미술관은 알아주거나 알아보는 눈이 많은 뮤지엄은 아니다. 내로라하는 공립미술관이나 일부 대형 사립미술관의 당찬 행진에 비하면 그저 소탈한 행보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떻게 된 영문인지 전시회를 우후죽순 격으로 빈번하게 펼친다. 홈페이지를 보니 2022년에 연 전시회가 자그마치 120여 개에 이르는 게 아닌가? 2023년 1월 현재에도 4개의 전시회가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그림을 보러 갔으나 전시회 내용이 빈약해 허탈하게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는 사립미술관이 흔하다. 전시회 하나 기획해서 막을 올리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러나 이 미술관의 기동성과 기획력은 민첩하고 강렬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김명숙 관장의 얘기는 이렇다.
“언제든 작품과 만날 수 있는 미술관을 추구하고 있다. 전시 작가들의 작품은 실험적이고 감각적이다. 현대미술의 새로운 경향을 보여주기 위해 작가 선정에 공을 들이는 것이다. 해외 작가들의 작품전도 매우 활발하다. 사실 우리 미술관은 국내보다 해외에 더 많이 알려져 있다.”
CICA미술관은 잦은 전시회로 외연을 확장해왔다. 한편 공모전을 통한 전시 작가 선정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야말로 이 미술관이 지닌 대찬 자존감의 근거다. 인맥이나 섭외의 기술을 가동해 전람회를 가질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고 한다. 적성과 철학에 맞지 않아서. 그런데 해외에 더 많이 알려졌다? 그럴 만한 근거가 있다. 이 미술관은 초기부터 국내 작가보다 해외 작가 전시회에 치중했다. 지구 위에 범람하는 현대미술의 현상과 사조를 관객에게 여실히 보여주기 위해서다. 회화, 영상, 사진, 설치작업, 디지털아트는 물론, 첨단과학과 접목된 인터랙티브 아트까지 선보였다. 매년 국제행사도 세 차례 펼친다. 뉴욕과 워싱턴DC, 그리고 CICA미술관에서. ‘CICA 뉴미디어아트 국제 컨퍼런스’라는 타이틀을 걸고 국내외 작가와 교수 등이 참여하는 이 행사에선 미술전도 동시에 열린다. 한글과 영문으로 된 현대미술 관련 도서도 줄기차게 출간한다. 한마디로 콘텐츠의 작렬? 크지 않은 미술관의 작은 밥상 다리가 휘어지게 성찬을 차려내는 형국이다. 이 풍성하고 왕성한 활동력으로 해외에 이름을 알린 셈이다. 현재 이 미술관이 작동하는 네트워크엔 세계 각국의 아티스트 5000여 명이 들어와 있다. 이래저래 심상찮다. 한 발짝 앞서간다.
전시실로 들어선다. 4개의 전시실에서 4개의 전시회가 진행 중이다. ‘Portrait 2023’전은 초상(肖像)을 테마로 삼은 전시회다. 매년 동일한 테마로 펼쳐지는 기획전의 2023년분 행사다. ‘Youth #9’전은 17세부터 27세까지 국내외 청년 작가들의 작품을 모은 전시회로, 이 역시 매년 거듭된다. 미술관의 촉수가 신진 작가 발굴에도 뻗쳐 있음을 알 수 있다.
미술관이라 하면 화이트 큐브를 연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곳 전시 공간의 구색은 썩 다르다. 외관이 낡음과 수굿함으로 정취를 자아낸다면, 내부의 분위기는 날것과 즉흥의 이미지가 물씬해 흥미롭다. 구조물들의 모습은 투박해서 오히려 편안하다. 천장과 벽과 자투리 틈새에 설치한 채광창에선 위트가 느껴지며, 전시실 상부를 강인한 한 획처럼 가로지른 철골은 자칫 허술해 보일 수 있는 구조물들에게 힘과 생동감을 공급한다. 모든 것은 김종호가 수공업 공정으로 만들었다. 세련미를 추구하는 추세에 맞추려 애쓰지 않았다. 뭐랄까, 마음 가는 대로 디자인했다. 제 장단대로 한바탕 놀았다. 그러니 보는 이도 흥이 날 수밖에.
김명숙 CICA미술관 관장
“왜들 유명 작가만을 좋아하지?”
CICA미술관의 규모는 크지 않고 건축물들은 낡아 보인다. 그러나 이 미술관은 해외 작가들을 끌어들인 전시회를 수시로 펼쳐 현대미술의 세계적 동향을 알게 한다. 유명한 작가보다 젊은 작가 위주의 전시회를 추구하는 것도 이 미술관의 지향이자 개성이다. 김명숙 관장의 얘기는 이렇다.
“우리는 사립미술관으로서는 비교 사례가 드물 정도로 많은 전시회를 펼쳤다. 이를 두고 조언하는 이들도 있다. 다수의 전시회보다 소수의 비중 높은 작가의 전시회를 하는 게 미술관의 인지도를 높일 수 있을 거라는 얘기였다. 그런데 과연 비중이란 무엇을 말하는 걸까? 비중을 누가 어떻게 측량하나? 그건 우리의 철학과 맞지 않는 얘기였다.”
이미 역량 있는 작가들의 전시회를 지속해왔다는 얘기로 들린다.
“모든 전시회를 100% 공모전을 통해 선정한 작가들로 치렀다. 능력이 충분한 작가들의 전시회를 도모해왔다.”
CICA미술관 보유 네트워크에 5000여 명의 해외 작가가 속해 있다지? 이 방대한 인적 구축이 어떻게 가능했나?
“미술관의 아트디렉터 김리진이 개척한 인적 자산이다. 그는 미국에서 뉴미디어를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교수, 조소 작가로도 활동했다. 유능하고 진취적인 인재로 우리 미술관의 거의 모든 프로젝트를 전담해왔다. 관장인 나는 사실 공식 잡부에 불과하다.(웃음)”
김리진 아트디렉터는 김명숙 관장의 딸. 그리고 김명숙 관장은 CICA미술관 설립자 김종호 조각가의 부인으로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미술에 인생을 실은 가족 3인이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는 셈이다.
유럽의 어느 보고서를 보면, 미술관에 온 관람객들이 작품 한 점을 감상하는 데 쓰는 시간이 평균 17초에 불과하더라. 한국의 경우는 어떻다고 보나?
“아마 10초도 걸리지 않을 것 같다. 그냥 쓰윽 스쳐가듯 대충 본다. 흔히 미술작품을 어려워한다. 그럴 거 없다. 너무 이해하려 애쓸 일이 아니다. 가령 옷을 살 때 그저 자기가 좋아하는 디자인과 색감을 골라 사듯이, 본인 취향에 맞는 미술품에 관심을 가지다 보면 서서히 안목이 생기게 마련이다. 안목이 생긴 뒤엔 인문학이나 미술사 공부를 하는 게 좋겠다. 그렇게 하면 비로소 미술을 즐길 수 있을 테니까.”
미술품 투자가 대중화되고 있다. 미술 향유 풍토의 확산과 유관하다고 보나?
“미술을 즐기기 위한 투자라면 무방하겠지만 완전한 투자 목적은 곤란한 거 아닐까. 투자를 하더라도 우선 안목부터 길러야 한다. 남들이 유명 작가라 하는 걸 그냥 따라가는 행태는 안타깝다.”
과학과 융합된 작품까지 등장하는 게 현대미술이다. 여간한 안목이 아니고선 즐기기가 사실 쉽지 않다.
“미술에서 굳이 아름다움만을 찾을 일이 아니다. 현대미술이 보여주는 충격, 공포, 지루함까지를 새로운 감정 경험으로 수용하다 보면 즐길 수 있다. 영상작품 같은 건 좀 오래 봐야 감흥이 올 테고. 흔히 후기인상파의 그림을 애호하지만, 난 현대미술에서 훨씬 더한 재미를 느낀다. 거기엔 뭔가 한 방이 있다. 자극 요소로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다.”
최근 재벌가의 이혼이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부부의 이혼 사건 1심 판결이 선고됐다. 노 관장은 약 5조 원대로 알려진 최 회장의 재산 중 1조 3600억 원대에 달하는 SK 주식 50%를 재산분할 대상으로 요구했다. 세기의 이혼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왔지만 1심 법원은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665억 원의 현금을 지급하도록 했다. 일반인이 보기엔 어마어마한 금액이겠으나, 노 관장이 청구한 금액과는 큰 차이가 있다.
2020년 대법원에서 확정된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 간 이혼 소송에서도 임 전 고문은 이 사장 소유 재산 약 2조 5000억 원의 절반에 해당하는 1조 2000억 원대를 재산분할로 청구했지만, 대법원은 이 사장이 임 전 고문에게 141억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이혼 소송 재산분할 규모는 13억 3000만 원으로 기대(?)보다는 적은 금액이었다.
통상적으로 부부의 동거 기간이 길수록 재산분할의 비율은 높아진다. 재산분할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다양한 요소가 고려되므로, 위와 같은 통념이 반드시 옳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위 판결들에 나온 재산분할 비율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재벌가의 이혼 소송은 어떤 점이 다른 것일까?
재산분할의 비율
본래 재산분할은 부부가 결혼 생활 중 함께 모은 재산을 분배하고 청산하는 데 목적이 있다. 분할 비율은 공동재산의 형성, 유지에 대한 기여도를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 결정한다. 경제적 약자에 해당하는 배우자에 대한 배려, 미성년 자녀의 양육 등 부양적 요소도 포함된다. 대부분의 판결에서는 ‘재산의 형성 유지에 대한 기여 정도, 혼인 생활의 과정 및 기간, 당사자의 나이·직업·경력·경제력·소득, 혼인 파탄의 경위 등’을 분할 비율 산정의 일반적인 요소로 설명하고 있다.
이 밖에 △일방 배우자(어느 한쪽)의 부모나 형제자매 등이 재산적 도움을 준 점 △일방 배우자가 혼인 전 재산을 취득한 점 △일방 배우자가 재산을 낭비하거나 손실을 입힌 점 △상대방 배우자의 전혼 자녀를 양육하거나 부모를 봉양한 점 △일방 배우자가 재산을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보이나 입증 부족 등으로 분할 대상 재산에 포함되지 못한 점 △분할 대상 재산의 규모 등이 있다. 한쪽의 사업 영위, 부동산 투자, 전문직 종사 등으로 형성된 재산이 많다면 동거 기간이 길어도 상대방의 재산분할 비율이 대폭 낮아질 수 있다. 공동재산을 형성하는 데 한 사람의 기여가 월등하다고 볼 수 있어서다.
액수를 가르는 결정적 요인, 특유재산
일방 배우자의 재산 규모가 너무나 큰 재벌가는 이혼 소송 때 ‘특유재산’에 주목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재벌가의 이혼 사건들은 공통적으로 특유재산을 나눌 수 있는 대상으로 인정할지가 관건이었다. 특유재산은 부부 중 한쪽이 혼인 전부터 가진 고유재산과 혼인 생활 중 자기 명의로 취득한 재산을 말한다. 특유재산은 결혼 생활 중 쌍방의 협력에 의해 취득한 공동재산과 달리 분할 대상에 속하지 않는다.
다만 부부의 일방이 혼인 생활 중 단독 명의로 취득하였으나 재산 형성에 배우자의 협력이 있다면 형식적으로는 특유재산이지만 실질적 공유재산으로 여겨 분할 대상이 된다. 결혼 생활을 하며 취득한 주거용 아파트는 누구의 명의라 하더라도 이혼 시 재산분할 대상이 되는 식이다. 법정 다툼의 대상이 되는 것은, 혼인 전부터 가진 고유재산과 혼인 중 혼인 생활과 관련 없이 외부적 요인(상속, 증여 등)으로 취득한 재산의 경우다. 재벌가 재산의 대부분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주식 혹은 물려받은 재산에 기초하여 취득한 주식인 경우가 많아 특유재산에 속할 때가 많다. 즉 아래 그림에서 3, 4번 재산은 당연히 분할 대상이 된다. 파탄 이후 순수하게 일방 당사자의 노력으로 취득한 5번은 분할 대상이 될 수 없다. 쟁점이 되는 것은 1번과 2번, 특유재산이다.
최태원 회장 역시 SK 주식은 선친인 故 최종현 선대 회장에게서 증여•상속받아 형성한 재산이므로 재산분할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반면 노소영 관장은 SK 주식이 최태원 회장의 경제활동과 그에 대한 본인의 내조를 통해 가치를 형성한 재산이기 때문에 특유재산 유지에 협력하였다고 보아야 한다고 반박했다.
기여도는 획일적으로 적용할 수 없고 재산의 취득 시기, 부부의 동거 기간, 다른 부부 공동재산이 충분한지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부양적 요소가 더욱 적극적으로 고려되는 경우에는 혼인 전에 취득한 재산이나 혼인 중 상속이나 증여로 취득한 재산에 대해서도 상대방 배우자의 기여도를 인정해 특유재산이더라도 분할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오래 살면 반반이다’라는 말도 틀렸다고만은 볼 수 없겠다.
재산분할의 방법
재산분할은 분할 대상 재산을 구분하고 그 가액을 확정한 후 분할 비율, 액수, 방법을 정하게 된다. 이때 법원은 청구 취지에 구속받지 않고 가정의 평화와 사회정의를 위해 가장 합리적인 방법으로 심판하도록 한다.(가사소송규칙 제93조 제2항)
노소영 관장은 SK 주식 현물(약 548만 주)의 지급을 재산분할로 요구했지만, 재판부는 주식 자체를 재산분할 대상에서 배제하고 현금으로 줄 것을 명하였다.
최태원 회장의 SK 주식이 만약 재산분할 대상이 된다면, 경영권의 중대한 변동이 수반될 수밖에 없었던 만큼 재판부의 고심이 깊었을 것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의 이혼 사건 1심 판결은 ‘가사노동 등에 의한 간접적 기여만을 이유로 사업용 재산을 재산분할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경영자 내지 소유자와 별개의 인격체로 독립하여 존재하는 회사나 기타 사업체의 존립과 운영이 부부간의 내밀하고 사적인 분쟁에 좌우되게 하는 위험이 있다. 또한 기타 이해관계인들에게 과도한 경제적 영향을 미치게 될 염려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밝혀졌다. (원칙적으로 이혼 사건에 대한 판결은 비공개이므로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 구체적인 내용은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접근했다.)
대법원은 분할 대상 재산들을 개별적으로 구분하여 분할 비율을 달리 정할 수 없다. 설사 SK 주식이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된다 해도 판결에서 재산별 기여도를 나누어 SK 주식은 1:9, 나머지 재산은 5:5로 비율을 정할 수 없는 노릇이다.
경영권 변동 문제와 관련해서는 2019년 1월 아마존 창립자 제프 베이조스의 이혼 사건을 참고할 만하다. 제프 베이조스는 결혼 25년 만에 이혼을 선언했고, 그해 4월 아내 매켄지가 제시한 조건에 합의하며 두 사람은 정식 이혼했다. 베이조스는 이혼 이후 보유하고 있던 아마존 지분 16.1% 중 4%(356억 달러, 당시 약 40조 7000억 원)를 매켄지에게 넘겼다. 다만 해당 지분의 의결권은 베이조스에게 그대로 귀속되고, 추후 매켄지가 이를 양도하더라도 의결권이 계속 베이조스에게 귀속된다(포괄적 의결권 위임계약)는 조건에 양수인이 동의해야 한다는 조건이 달렸다. 베이조스가 거주하는 워싱턴주의 법에 따르면 12년 이상 결혼을 지속하면 이혼 때 무조건 5:5로 재산을 나눠야 한다. 이 경우 베이조스가 가진 아마존 주식이 반토막 나 경영권 보호에 위기가 올 수 있기에, 막대한 조건의 합의가 이루어졌던 것이라 생각된다.
포괄적 의결권 위임계약이 우리 상법상 가능한지는 불분명하다. 이러한 내용을 판결에서 정하기도 어려운 탓에(베이조스도 이 때문에 합의 이혼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재벌가의 이혼 판결에 이러한 내용이 반영되기는 어렵다.
현재의 재산분할 실무에 따르면 재벌가의 이혼 사건은 재산 규모가 막대하다는 점, 재산 형성 기반이 선대로부터 상속 또는 증여받은 것에 기인한다는 점, 재산의 대부분이 주식 형태를 띤다는 점 등으로 해당 주식이 특유재산인지 아닌지에 따라 ‘모 아니면 도’ 식의 재산분할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가 급격히 변화해온 만큼 여성의 지위, 가사노동의 가치, 맞벌이 가정의 증가, 고령화, 재혼과 사실혼 증가 등 이혼 사건에서 고려해야 할 점도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사회 현실에 맞는 공평하고 합리적인 재산분할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부부별산제(각각 혼인 전부터 가진 고유재산과 혼인 중 자기명의로 취득한 재산을 특유재산으로 인정하고, 특유재산은 부부가 각자 관리하는 제도)와 재산분할제도의 조화로운 해석 문제, 재산분할제도에서의 부양적 요소에 대한 비중, 재산분할에 관련한 일반 국민의 법의식 변화에 따라 꾸준한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피규어, 프라모델, 인형 등 수집을 취미로 가진 키덜트들이 많다. 하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철없어 보이고, 쓸데없이 돈만 많이 쓴다고 생각하는 것. 그러나 키덜트의 수집 활동은 단순히 모으기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수집을 통해 누군가는 과거를 향수하고, 누군가는 삶의 활력을 얻는다. 천안에 사는 허지연 씨는 수집한 인형을 전시하는 ‘엄마놀이터’를 운영하고 있다. 허 씨에게 엄마놀이터는 힐링 공간이다.
천안에 있는 엄마놀이터. 외관은 평범해 보이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인형이 사는 세상이 펼쳐진다. 1960년대 빈티지 인형부터 바비, 한국 인형 연지까지 2500개 이상의 인형이 빼곡히 진열돼 있다. 미국, 캐나다, 일본 등 인형의 국적도 다양하다.
엄마놀이터는 하루에 두 팀만 입장할 수 있다. 입장료는 1만 원이다. 보통 네이버 블로그(ID : 우유둘맘)를 통해 손님을 받는다. 인형은 수집·전시용이며 판매되지 않는다. 허지연 씨는 전시관장이자 큐레이터로서 손님에게 두 시간 넘게 인형에 대해 설명해준다.
인형 수집가 넘어 큐레이터로
허지연 씨는 인형 전문가는 아니지만 예쁜 인형을 하나둘 모으다 보니 현재에 이르렀다. 8년 전 바비 플라워 클래스를 들은 것이 계기였다. 바비 플라워란 조화를 이용해 바비 인형의 드레스와 액세서리 등을 장식하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손길을 거쳐 더욱 예뻐지는 바비 인형을 보면서 행복을 느꼈다.
허지연 씨의 플라워 작업이 이어지면서 바비 인형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허 씨의 남편은 인형을 모을 공간을 따로 마련해줬다. 그러자 그는 인형을 본격적으로 모으고 싶어 빈티지 인형으로 수집 영역을 넓혔다.
“저는 원래 수집을 좋아했어요. 인형 전에는 크리스 베어를 모았죠. 돈이 많아서 수집하는 것은 아니에요. 워낙 예쁜 것을 좋아하고, 남한테 피해 안 주는 선에서 느끼는 즐거움을 좋아해요. 예를 들면 전 운동화도 짝짝이로 신어요. 인형 수집도 그 일환이죠.”
허지연 씨가 인형을 모으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인형을 출시된 상태 그대로 복원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그는 인형의 역사와 스토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정보를 찾아본 뒤 인형에게 옷을 되돌려주기도 하고, 가족이나 친구를 찾아주기도 한다. 인형 진열도 콘셉트에 맞춰 되어 있는데, 작은 소품에도 손길이 묻어난다. 그 모든 과정이 허지연 씨에게 즐거움과 뿌듯함을 안겨준다.
“어떤 인형을 구하면 특징, 원래 있던 액세서리 등을 다 알아봐요. 1960년대 빈티지 인형은 관련 정보가 담긴 책이 있어요. 그 책을 사서 공부하죠. 제가 또 기억력이 좋거든요. 손님들에게 인형의 이름, 출시 국가와 연도 등 정보를 줄줄이 설명해드립니다.”
허지연 씨는 자신에 대해 “키덜트보다는 인형 큐레이터에 가까운 것 같다. 넓은 개념으로 보면 키덜트라고 생각한다”고 평했다. 그는 “인형은 너무 예쁘고 소중하다. 그렇지만 인형 놀이를 하거나 인형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인형과 함께하는 1억 기부 목표
엄마놀이터는 허 씨에게 혼자 소소하게 노는 공간이었다. ‘엄마놀이터’라는 이름은 아이들이 지어줬다. 처음에 작은 공간이 생겼을 때, 아이들이 “엄마도 놀이터가 생겼네. 엄마가 좋아하는 인형이랑 재밌게 놀아”라고 말했다고.
“엄마놀이터 자체가 저에게는 힐링이에요. 아무 구애 받지 않고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죠. 집과 가까워서 매일 오는 편이에요. 우리 인형 애들 잘 있나 얼굴만 보고 가기도 하고요. 한 시간 동안 멍만 때리다 집에 갈 때도 있어요. 제 공간이 생기니까 밖에 덜 나가게 되고 찻값도 절약하게 됐죠.”
허지연 씨가 엄마놀이터 방문객을 하루에 딱 두 팀만 받는 이유도 그 연장선이다. 수입을 목적으로 엄마놀이터를 운영하는 것도 아니고, 세 아들의 엄마이자 주부로서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받은 입장료를 임대료로 쓴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사실 어림도 없죠. 임대료는 남편이 내줍니다. 제가 임대료를 내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했어요. 저는 아이들한테 사교육을 안 시키고 제가 다 가르쳐요. 임대료는 저의 휴식 값이죠.”
허지연 씨는 어린 시절부터 하던 기부와 봉사활동을 인형과 결합했다. 입장료 기부는 물론 기부금이 필요할 때는 인형을 팔아서 돈을 모은다. 아동시설에 인형을 기부하기도 한다. 최종 목표는 죽기 전까지 1억 원을 기부하는 것이다. 그는 “남한테 뭔가를 줄 수 있을 때 제일 부자라고 느낀다”고 말했다.
허지연 씨는 앞으로 10년 뒤까지 엄마놀이터를 운영할 계획이다. 그때가 되면 비로소 인형을 보내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4050대에 예상치 못하게 인형에 푹 빠졌던 것처럼 60대에는 글이라는 새로운 일에 빠져보고 싶다.
“제가 알기로 엄마놀이터는 국내에서 유일무이하게 인형 종류가 많은 전시관이에요. 앞으로는 인형이 한눈에 들어올 수 있게끔 진열하고 싶어요. 10년 뒤에는 애들을 보내줄 생각이 있어요. 그때가 되면 애들의 가치가 더 오를 게 분명하지만 구입한 가격 그대로 보내줄 거예요. 인형을 팔아서 더 좋은 일을 할 수도 있겠죠. 그리고 저는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습니다.”
서울시 동대문구의 노인 인권 의식 고취 및 인권 감수성 향상을 위한 ‘노인 인권 보장 문화 만들기! 노인의 목소리 들려주기 활동 동대문 노인 인권 이음소리’(이하 동대문 노인 인권 이음소리)가 제작됐다. 동대문노인종합복지관 한국노인인권센터에서 제작한 동대문 노인 인권 이음소리는 서울시노인종합복지관협회 회원기관 45개소 및 동대문구 내 사회복지시설 214개소, 총 259개소에 배포될 예정이다.
동대문 노인 인권 이음소리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간한 노인 인권 종합 보고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보고서에 정리된 노인 인권의 6가지 영역(건강 및 돌봄 영역, 기본생활(의식주) 영역, 소득 영역, 고용 및 노동 영역, 사회참여 및 통합 영역, 존엄 및 안전 영역)을 기반으로 △노인을 위한 디지털 교육의 실효성 향상 △치매의 인권적 치유 방법 △노인 일자리 축소에 따른 노인의 소득보장 대책 강구 △기후 위기는 인권의 문제 등의 다양한 주제로 노인 인권에 대한 어르신들의 목소리가 담겼다.
김윤태 동대문노인종합복지관 한국노인인권센터 관장은 “노인 인권 활동의 특징 중의 하나는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을 꺼린다는 것”이라며 “이에 한국노인인권센터에서는 노인 인권의 현황과 문제점 등을 공론화하고, 노인 인권 당사자의 목소리를 지역사회에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동대문노인종합복지관 한국노인인권센터에서는 인권침해, 학대, 차별, 사기 피해 등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어르신들에게 전문적인 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상담은 전화, 내방, 방문 등의 방식으로 진행된다. 노인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지역 연계 사업, 교육, 홍보사업을 함께 실시하고 있다.
종로구에 있는 서울노인복지센터(관장 희유스님)는 오는 13일 화요일 오후 3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자원봉사자·후원자 송년모임 ‘좋은인연’을 개최한다.
‘좋은인연’은 서울노인복지센터 정례 행사로 자원봉사자·후원자를 위해 한 해 활동과 노고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동기를 강화하는 취지에서 진행되는 송년 모임이다. 올해는 1부, 2부로 나누어 2022년 사업 경과 보고와 함께 우수 자원봉사자·후원자 시상식, 자현스님의 초청 강연을 진행할 예정이다.
1부에서는 축하 인사를 시작으로 후원자·자원봉사자의 활동과 감사 인사를 담은 영상을 통해 올해 사업을 공유하는 자리를 가진다. 이후 내빈 축사와 관장 스님의 인사 말씀을 끝으로 시상식이 진행된다.
힘든 시기임에도 따뜻한 마음을 나누고자 노력했던 이들이 많았던 만큼 수상 부문도 다양하다. 대한불교조계종사회복지재단 대표이사상, 조계사 주지스님상, 종로구 국회의원상, 좋은인연상, 노인복지공헌상,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장상 등 올해를 빛낸 자원봉사·후원 개인과 단체에 시상된다.
2부에서는 행사 참여자들을 위한 특별 강연이 마련된다. 자현스님의 ‘소통과 화합’이라는 주제로 강연이 진행된다. 이는 자원봉사·후원에 대한 동기 부여와 함께 단합을 도모하기 위함이다. 자현스님은 월정사 교무국장이자 중앙승가대학교 불교학부 교수로서 불교 역사와 문화를 다양한 책으로 전하며 불교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유튜브를 통해서 대중과도 활발히 소통하고 있다.
관장 희유스님은 “올해는 계속되는 힘든 시기 속에서도 자원봉사자·후원자분들 덕분에 든든하고 즐거운 한 해였다”며 “그 따뜻한 마음에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이번 송년 행사를 계기로 앞으로도 서울노인복지센터와의 좋은 인연을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전했다.
행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서울노인복지센터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서울시립동대문노인종합복지관은 오는 16일(금)까지 ‘2023년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지원사업’ 신규 참여자를 모집한다.
모집 분야는 공익활동형으로 전년도와 달리 사회서비스형 사업은 운영하지 않는다. 세부 모집 인원은 복지시설도우미 120명, 연중노노케어 95명으로 총 215명의 어르신을 선발할 예정이다.
신청 조건은 동대문구에 거주하는 만 65세 이상 어르신 대상이며, 기초연금을 받아야 신청할 수 있다. 참여 희망자는 서울시립동대문노인종합복지관으로 방문해 신청할 수 있다. 필요한 서류는 주민등록등본 및 백신 접종증명서 각 1부와 신분증이다.
김윤태 관장은 “어르신에게 적합한 사회 활동을 제공해 일을 통한 건강 증진과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도모하기 위해 앞으로도 지속 노력할 수 있도록 하겠다”라며 “2023년 노인 일자리에 많은 어르신이 참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박현정 북촌탁구 관장
‘뛰기 젊은 나이, 50+’ 캠페인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은 중장년 세대의 창업을 통한 도약을 지원하기 위해, ‘뛰기 젊은 나이, 50+’ 캠페인을 펼칩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함께 한 점프업5060 프로젝트를 통해 창업에 성공해 새 인생을 펼치고 있는 중장년들을 지면을 통해 소개합니다.
북촌에는 숨 가쁘게 돌아가던 일상을 내려놓고 한숨 돌리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그런 점에 매료돼 차린 탁구장에 ‘도시재생’이라는 어렴풋한 꿈이 더해졌을 때, 그는 ‘점프업5060’ 프로젝트에 지원했다. ‘문화예술을 탐구하는 스포츠 공간’ ,북촌탁구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아담한 탁구장을 마을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켜보자는 마음은 차근차근 현실이 됐다. 북촌 사람들은 거리낌 없이 북촌탁구를 찾는다. 박현정 관장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길거리 간식을 두고 가기도 한다. 영락없는 마을 사랑방의 모습이다.
“북촌에는 지역 특성상 재능 있는 분들이 많아요. 그분들과 협력해서 전시나 공연을 기획하고, 지도를 만들고, 영상을 제작했죠. 기획할수록 하고 싶은 일들이 점점 많아지더라고요. 3년 전에는 아예 이사를 와서 북촌 홍반장을 자처하며 많은 일을 거들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이 ‘자꾸 일을 벌이면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어 즐겁기만 합니다.”
북촌 홍반장이 꾸린 사랑방
북촌탁구는 여느 탁구장과 달리 탁구대 두 대가 전부인 곳이지만, 쓰임새는 훨씬 다양하다. 글쓰기 교육이나 기타 레슨을 위해서라면 흔쾌히 탁구대를 접어 넣고, 탁구장 벽면에 전시를 열기도 한다. 지난해 말에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과 예술로 협업사업을 통해 동네 어르신 9분의 사진을 모아 ‘당신의 빛나는 라떼’전을 열었다. 사업에 참여한 예술가들과 함께 먼지 쌓인 앨범에 들어 있던 종이 사진을 디지털 사진으로 변환해 어르신께 드리는 작업을 거쳤다. 그 후 사진들을 탁구장에 내어 전시를 열었는데 반응이 좋았다고. 전시 덕분에 북촌탁구가 북촌 외부에도 알려지면서 탁구 관련 tvN 예능 프로그램 ‘올 탁구나!’ 1회 촬영지로 선정되기도 됐다.
북촌 사람들 사이에 호평이 자자한 주민 참여 프로그램 ‘아무연주대잔치’도 그와 북촌탁구의 작품이다. 그간 코로나19 대유행으로 탁구장 내에서 진행했는데, 올해는 종로구 원서공원에서 첫 야외무대를 가졌다. 종로구청과 진행하는 민간협치사업 프로그램으로 선정된 덕분이다. 날씨까지 도와줘 이번 대잔치는 연주단원 모두에게 특별한 추억으로 남았단다.
요즘은 온라인 사랑방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점프업5060 프로젝트의 기존 수료생을 대상으로 하는 점프업5060 재도약 프로젝트에 선정돼 북촌탁구 온라인 홈페이지를 만들기 위한 과정을 밟는 중이다. 북촌탁구만의 로고송과 뮤직비디오는 이미 제작이 완료돼 세상에 공개됐다. 점프업5060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는 공간 자체를 꾸리는 데 집중했다면, 재도약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지금은 북촌탁구의 활동 영역을 확장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는 설명이다.
“마을 이장님이 확성기에 대고 공지사항을 안내하듯, 외부 사람들에게도 북촌 소식을 안내할 수 있는 온라인 확성기를 만들기 위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좋은 행사들이 마을 안에서만 공유되고 끝나는 게 아쉬웠거든요. 또 북촌을 찾는 관광객들도 쉽게 볼 수 있도록 관광할 때 지켜야 할 주의사항을 온라인에 올려두려고 해요. 북촌에도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고, 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있어요. 하지만 북촌이 관광지로 워낙 주목받다 보니, 놀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 북촌 주민들의 피로도가 높아지고 있죠.”
주민·관광객 모두 즐길 수 있도록
이는 최근 여행 트렌드인 공정여행의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여행지의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고 현지 문화를 존중하는 관광객은 지역을 즐김과 동시에 가꾼다. 그렇게 지속 가능한 여행이 만들어진다. 박현정 관장은 관광객이 더 잘 즐기고 가꿀 수 있도록 거들고 있다. 최근에는 마을 주민들만 알기 아까운 명소들을 소개하는 계동 지도를 만들어 크라우드 펀딩을 열었다. 자주 걷는 북촌 산책길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뽐내기 위해 마을 뮤직비디오를 제작하기도 했다.
그가 하는 일은 곧 북촌 주민들을 위한 일이 된다. 북촌 주민들이 만든 수공예품을 상품화해 판매하는 것, 필요로 하는 이가 있다면 기꺼이 공간을 내어주는 것. ‘마을 경제를 활성화’하는 거창한 도움이 아니더라도 주민들을 위한 일이라면 두 팔 걷고 나선다. 비가 올 때 무료로 우산을 빌려주거나, 코로나19에 확진된 이웃을 위해 대신 약을 타오는 소소한 일쯤은 숨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다.
북촌탁구는 꿈이 많다. 우선 올해가 가기 전 동네 잡지를 내려고 준비 중이다. 서울시시청자미디어센터의 ‘방방곡곡 마을미디어 교육지원사업’에 선정돼 무료 글쓰기 교육을 받은 주민들이 기자가 될 예정이다. 취재한 북촌의 시시콜콜한 소식들은 한데 모여 새로운 소식지로 탄생할 것이다. 송년회를 겸하는 ‘뒹굴뒹굴 어린이 영화제’도 개최를 앞두고 있다. 아이들에게 영화 관람의 즐거움을, 엄마에게는 자유 시간을 선사할 예정이란다.
박현정 관장이 정한 목표는 ‘3년 안에 북촌생활문화센터로 인정받기’다. 하고 싶은 것이 많고 벌이는 일도 많은 사람이라, 시기를 정해두지 않으면 지키지 못할 것 같아서 3년이라는 기한을 스스로 세워뒀다. 그러나 하교하는 아이들의 발걸음이 자연스레 북촌탁구로 향하는 것을 보면, 그 목표는 이미 이룬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