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를 앞두고 지자체에서 홀몸노인을 비롯, 기초수급자와 장애인 등 소외된 이웃에게 명절 선물을 전달하고 있다.
서울 서초구는 서초어르신행복e음센터·방배노인종합복지관에서 독거어르신 1080분께 손 편지와 명절 복(福)꾸러미를 직접 전달한다. 복꾸러미에는 떡국세트와 한과, 털모자, 마스크 등이 담겨 있어 취약 어르신들이 따뜻한 설 명절을 보낼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결식 우려 어르신을 위해 무료급식 및 밑반찬을 제공한다. 방배·양재·서초중앙 노인종합복지관 3개소는 무료급식 어르신 330명에게 명절 특식을 전달할 예정이다. 양재노인종합복지관에서는 전통시장 소상공인들에게 저소득 어르신 500명에게 쌀, 떡국 떡, 유과, 과일 등을 담은 선물을 설 연휴 전까지 전달할 계획이다.
한편 홀몸노인이 명절에도 외롭지 않도록 ‘AI(인공지능) 스마트 맞춤형 돌봄서비스’ 등 맞춤형 돌봄 서비스가 제공된다. 지난해부터 서초구에서 도입한 돌봄 로봇 ‘서리풀복동이’에 만족하는 어르신들이 많아, 올해는 100대를 추가로 지원할 예정이다. 천정욱 서초구청장 권한대행은 “코로나 장기화로 힘든 독거 어르신들을 위한 세심한 지원으로 따뜻한 설 명절을 보내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경기도 의왕시내손2동지역사회보장협의체는 지난 20일 김 세트와 떡국 떡이 담긴 설명절꾸러미를 홀몸노인, 차상위계층, 한부모가정 등 저소득층 50가구에 지원했다. 지영숙 내손2동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장은 “쓸쓸하게 명절을 보내는 이웃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다”며 “작은 정성이지만 따뜻한 온기가 전해져 혼자가 아니라 지역사회가 늘 함께 하고 있다고 생각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부2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도 26일 관내 취약계층 30가구에 ‘설맞이 선물꾸러미 나눔’에 나섰다. 지역 희망이웃 후원금으로 구입한 곰탕, 떡국 떡과 유과를 포장해 각 가정에 안부인사와 함께 전했다. 윤장식 선부2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민간위원장은 “설맞이 선물꾸러미 나눔을 통해 홀몸노인, 장애인가정 등 어려운 이웃들도 행복한 명절을 보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충주시 용산동행정복지센터에서는 25일과 26일 양일간 경로당 13곳을 방문해 새해 인사를 전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생활에 제약을 받는 지역 노인들에게 세배를 드리고, 건강과 안부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다. 조수정 용산동장은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경로당 운영 축소로 혼자 계신 시간이 많아진 어르신들을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라고 말했다.
충북 충주시노인복지관 역시 설 연휴를 앞둔 26일 홀몸노인 600명과 선별진료소 의료진 100명에게 한과와 식혜를 전달했다. 홀몸노인의 따뜻한 명절나기를 기원하고,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최전선에서 힘쓰고 있는 선별진료소 의료진을 응원하기 위함이다. 김웅 충주시노인복지관 관장은 “설을 맞아 가족과 만나지 못하는 어르신의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달래주는 의미있는 시간이 됐다”고 말했다.
의재 허백련은 남농 허건과 쌍벽을 이루며 현대까지 남종화를 계승해온 인물이다. 그림으로 이미 빼어났지만 처신에도 올곧아 명쾌했다. 무엇보다 의재는 사람 앞에서 겸손했다. 경계를 두지 않았다. 그러니 따르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그가 30여 년을 기거했던 춘설헌은 언제나 찾아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고 한다. 이선옥 관장의 얘기는 이렇다.
“이념의 좌우도, 신분의 고하도 가리지 않았다. 이를테면 좌익 독립운동가였던 서예가 김철수 선생과도 각별한 교류를 한 분이다. 심지어 친일파에게마저 거리를 두지 않았다. 모두를 인간적으로 대했다. 이런 의재에게 사람들은 무슨 문제가 있으면 의논을 청했다. 한마디로 그는 광주의 ‘큰 어른’이었다.”
의재미술관은 사립미술관이지만 광주시가 나서서 건립을 지원했다지? 인상적인 대목이다.
“유족의 의지보다 시의 적극적인 추진으로 개관에 이르렀다고 보면 된다. 어디에 어떻게 지을 것인가부터 시민공청회를 열어 여론을 모았다. 결국 의재의 선한 영향력이 미술관을 탄생시킨 셈이다.”
사립미술관마다 운영난을 겪는다. 의재미술관도 여기에서 예외가 아닐 텐데?
“재정 문제, 쉽지 않다. 의재가 그림을 팔아 농업학교를 운영했듯이 유족이 선생의 작품을 팔아 미술관을 운영하는 실정이니까. 의재 선생이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해소했을까, 늘 그걸 생각한다.”
미술관 초입에서 차량을 통제하더라. 등산로를 한참 걸어 올라야 미술관에 닿는다. 이게 오히려 호감을 살 수도 있지만 약점일 수 있다.
“원래 차량 출입이 자유로웠지만 무등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통제하게 됐다. 그런데 통제소에서 미술관 방문 용무를 밝히면 출입이 가능하다는 걸 알리고 싶다. 한참 걸어야만 하는 미술관으로 알려진 건 사실과 다르다.”
당신이 생각하는 의재는 어떤 인물인가?
“참다운 선비 정신의 소유자이자 실천가였다. 화가이기 이전에 사람이면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다한 분이니까. 세상을 보라.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많다. 그러나 의재처럼 실천에 투철했던 이가 몇이나 되겠나?”
의재의 실천력은 어디서 나왔다고 보나?
“어려서부터 심취한 동양철학의 힘이 컸다고 본다. 일찌감치 사람의 도리에 눈을 떠 선비 정신을 육화해나간 분이다. 독학으로 입문해 평생을 매진한 그림 역시 선비 정신을 기르는 데 쓰였다.”
의재의 그림 그리기는 예술을 위한 예술이기보다 수신의 방편이었던 것 같다.
“의재를 추동한 건 두 개의 수레바퀴였다. 수기(修己)와 실천, 그 둘.”
춘설헌에서 뭉클했다. 의재의 정신이 담긴 집이라서.
“숱한 교제가 춘설헌에서 이루어졌다. 최남선, 함석헌, 루이제 린저, 게오르규 같은 이들이 춘설헌에서 의재와 마주 앉았다.”
춘설헌은 의재미술관 지척에 있다. 춘설헌에 서린 의재의 뜻과 형적. 이건 미술관에서보다 더 짙게 다가온다.
도예가 신상호(74)는 실험적 현대 도예의 전위이자 전사다. 그의 작업엔 형식이 없으며 경계가 없다. 일찍이 전통 도예의 권위자로 부상했던 그는 해적선과 같은 거침없는 도발과 활보로 혁신적 도예를 구현했다. 이런 그가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과 맺은 인연이 깊다. 돔하우스에 ‘파이어드 페인팅’ 타일을 만들어 붙인 장본인이며, 미술관 초대관장을 역임하기도 했으니까. 미술관 설립 과정에도 깊이 간여했다. 현재까지 이어지는 항해의 방향을 그가 노정했다. 즉 탄탄한 초석을 깔아놓은 셈이다.
“전통 분청만이 아니라 현대미술까지 아우르고, 나아가 도자와 건축이 만나는 전시가 펼쳐지는 특성화된 미술관을 만들면 좋겠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이걸 시에 제안했는데 흔쾌히 수용하더라. 지방 소도시가 미술관을 만들어 지속시킨다는 게 실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김해시가 해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극복하고 외국에서도 관람객들이 찾아오는 미술관으로 성장시켰다. 아마도 김해시로선 보물 같은 공간일 거다.”
좋은 미술관이란 어떤 걸 말할까?
“개성적인 건축, 그리고 새로운 콘텐츠, 이렇게 두 날개로 비상해야 한다. 세계 유수의 미술관들이 모두 이 둘을 겸비했다.”
선생이 만난 가장 인상적인 미술관은?
“스페인에 있는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이다. 빌바오는 원래 철강 산업의 메카로 풍요로운 도시였으나 포항제철에 밀려 폐허처럼 망가졌다. 그러나 구겐하임미술관 건립으로 마법과도 같은 반전을 맞이했다. 미술관으로 그야말로 대박이 났으니까. 세계 곳곳에서 날아온 관광객들이 미술관 앞에 줄을 섰고, 돈이 몰렸으며, 마침내 금융도시로 떠올랐다. 미술관 하나가 가져오는 시너지 효과가 이렇게 강력하다.”
구겐하임미술관의 무엇이 사람들을 불러 모았나?
“건축물의 힘이다. 티타늄 강판으로 외벽 전체를 마감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독창적인 건축을 만들어낸 것이다. 재미있는 건 티타늄 강판의 입수 경로다. 러시아가 우주로 쏘아 올리기 위해 만들다가 경제 사정으로 방치한 로켓의 티타늄 외장재를 사서 가져왔으니까.”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의 외벽 티타늄에 노을빛이 비치면, 미술관 앞으로 흐르는 강물에 환상적인 황금물결이 일렁인다. 관람객들은 미술관의 컬렉션은 차치하고 그 한 장면만으로도 탄성을 토한다. 외벽의 재료가 과시하는 힘이 이렇게 압도적이다. 신상호가 건축과 도자의 협주를 몹시 중시하는 이유가 집힌다.
그나저나 도예는 왜 대중 속으로 파고들지 못하는 걸까. 넌, 저리 가라! 미술계로부터 그런 대접을 받고 있는 건 아닌가.
“그 점에 내가 한이 맺혔다.(웃음) 과거엔 대학에 도예과가 많았으나 지금은 거의 폐과 되고 소수만 남았을 정도다. 기능적 쓰임새와 미에 치중해온 도예 풍조 탓이다. 철학과 실험정신을 개발해 치고 나가야 한다. 과거와 미래를 함께 아우르는 비전을 가지고. 그러자면 도예 예술가들이 더 공부해야 한다. 세계로 나아갈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니까.”
신상호에 따르면 새롭지 않은 건 예술도 아니다. 남의 흉내를 내는 건 사망진단서를 자체 발부하는 행위와 같다고 보는 것 같다. 이런 그가 요즘 회심의 신작을 준비하고 있다. 자그마치 100호 내지 200호 사이즈에 이르는 ‘파이어드 페인팅’ 작업에 빠져 있다는 것.
동대문노인종합복지관 한국노인인권센터는 지난 17일 ‘2021년 한국노인인권센터 활동보고서’를 발간했다고 밝혔다.
한국노인인권센터는 전국 최초 노인인권 관련 전문기관으로, 노인의 자유권과 생존권 등 인간적인 권리를 지키기 위해 설립됐다. 이번 활동보고서는 2021년 한국노인인권센터의 주요활동 내용을 담고 있으며, 서울시 내 노인복지 관련 시설 114개소에 배부될 예정이다.
지난 1월 한국노인인권센터는 어르신의 권리확대와 인권의식 함양 및 인식 개선을 위해 앞장선 공로를 인정받아 ‘제5회 노인 학대 예방의 날’ 기념 노인인권증진 유공자 포상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2008년 개소 이후 인권기반의 사회복지실천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노인인권매뉴얼을 제작하고 노인인권세미나, 노인인권인식개선활동 등을 실시하였으며, 노인을 노인인권 당사자로서의 인권 주체성을 강화하기 위해 시니어인권홍보단, 시니어정책모니터링단 등을 조직하여 인권정보 접근성이 낮은 노인을 대상으로 노인의 인권, 권리, 노인 관련 정책 등을 알리는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이 중 ‘시니어인권홍보단’은 당사자의 시각으로 지역사회 내 노인인권을 보호하고, 긍정적인 노인인식 함양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본격적인 활동에 앞서 노인인권에 대한 이해도 및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교육을 수료하고 홍보분과와 정책분과로 나뉘어 활동하고 있다.
‘어르신정책보니터링단’은 당사자의 시각으로 지역사회 내 어르신 정책 모니터링 및 개선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코로나19 대응사례를 조사하였으며, 어르신들의 건강, 심리, 경제 관련 분야를 문헌 및 유선 상담조사를 실시하여 11가지의 정책을 제안했다.
한국노인인권센터는 매월 셋째 주 수요일을 ‘노인인권데이’로 지정해 지역사회 내 노인복지 감수성 및 노인인권보장문화 확산을 위한 온‧오프라인 활동을 하고 있다. 2021년에는 달라지는 노인복지 정책 외 8회의 카드뉴스 제작 및 배포, 건강권 향상을 위한 온라인 캠페인, 지하철 내 광고판을 활용한 노인 학대 예방 캠페인, 노인 학대 신고 및 상담 어플리케이션 안내 등 8806명(2021년 11월 기준)을 대상으로 활동을 진행했다.
이외에도 지역사회의 노인인권의식 함양 및 노인인권 서비스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지역사회 내 사회복지시설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노인인권교육’을 실시하고, 노인인권 문제예방 및 해결을 지원하기 위한 ‘노인인권상담 및 홍보’를 진행했으며, 노인인권 당사자의 시각을 반영하기 위해 서울시 내 사회복지시설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제2회 노인인권공모전’을 실시했다.
민경원 관장은 “이번 활동보고서를 통해 노인복지시설들과 노인인권 관련 활동에 대해 함께 공유하고, 서울시의 노인인권 증진을 위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개진해 나가도록 하겠다.” 라고 밝혔다.
동대문노인종합복지관 한국노인인권센터에서는 인권침해, 학대, 차별, 사기 피해 등 어려움에 처해 있는 어르신들에게 전화, 내방, 방문을 통한 전문적인 상담을 제공하고 있으며, 노인 인권 보호를 위한 지역연계사업, 교육, 홍보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복지관과 기술교육기관. 기관은 항상 같은 자리에 있었다. 찾아오는 쪽은 노인들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이 모든 것을 바꿨다. 노인들은 집 밖으로 나올 수 없었고 기관은 텅 비고 말았다. 이에 기관들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비대면 온라인 교육 프로그램을 열고 복지관 대신 애플리케이션 내 게시판으로 불러 모았다. 홀로 지내는 어르신들을 위한 새로운 돌봄 방안까지 덧입었다. 코로나19로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협받고 있는 노인을 위해서.
기관들은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노년기 사회생활을 견인하고 있다. 올해 초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0 국민여가활동조사’에 따르면 60대 노인 과반수가 나 홀로 여가를 보내고 있었다. 게다가 하루 5시간 이상의 여가시간 반절 혹은 그 이상을 TV 시청하는 데 썼다. 그간 지자체와 복지관에서는 노인의 사회적 관계 단절을 막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꾸려왔지만, 코로나 시국에는 이마저도 불가능해졌다.
동영상·모바일 앱 장착한 복지관
이에 복지관들은 프로그램의 형식부터 바꿨다. ‘비대면 방식’ 하면 떠오르는 화상 공유 활용이 대표적이다. 은평노인종합복지관에서는 자체적으로 개설한 유튜브 채널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강좌 영상을 공유하거나, 카카오채널에 동영상을 업로드하는 방식을 주로 사용한다. 코로나 시국에는 노인들과 강사가 직접 대면하며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개수나 참여 횟수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유튜브, 카카오톡 채널의 쓰임새는 다양하다. 구연동화나 요가를 동영상 강좌로 배우는 ‘집이지만 괜찮아’, 칼림바 악기의 실시간 화상 강의 등의 교육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설·추석 명절 온라인 합동차례도 진행한다. 복지관에선 유튜브 채널을 검색하고 접속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들을 위해 동영상 주소를 카카오톡 알림 메시지로 꼬박꼬박 전송한다.
노인 건강관리를 위해선 ‘언택트 동네 한바퀴 걷기’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코로나 시국이지만 노인들이 집에만 있지 않고 외부 활동도 할 수 있게끔 동기를 부여하고 활동을 유도하는 방법을 고심한 결과다. 복지관은 실시간 걸음 수와 주간·월간 걸음 수, 걸음 수 순위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워크온’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했다. 매월 둘째 주 주간 걸음 수 10위 안에 든 어르신들에게 소정의 기념품을 드린다.
해당 프로그램은 노인들의 온라인 커뮤니티로도 기능했다. 걷고 싶은 길을 걸으며 직접 찍은 풍경을 앱 내 ‘시립은평노인종합복지관’ 게시판에 공유하고, 서로 댓글을 달며 소통하는 공간이 된 것이다. 우철홍 시립은평노인종합복지관 복지1과 팀장은 “너무 춥거나 폭설이 심할 때를 제외하고는 최대한 진행하려 한다”며 “코로나19가 당장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여전히 염려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단계적 일상회복이 이뤄져도 한동안 비대면 프로그램을 진행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종로노인종합복지관은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스마트 돌봄 체계를 구축했다. 어르신 질환 관리 SNS 그룹을 운영하고, 백신 접종 건강상담을 진행하며 비대면 건강관리에 나섰다. 또한 인공지능(AI) 반려로봇 ‘복돌(福doll)이’를 활용해 독거 어르신에게 공백 없는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복돌이는 코로나19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거나, 가족 안전망이 취약하거나 활동 제약이 심한 어르신에게 제공됐다.
복돌이는 약 복용이나 기상·취침, 환기·산책해야 할 시간을 알려준다. 일정 시간이 되면 쓰다듬거나 손을 잡아주고, 토닥여달라고 말을 걸기도 한다. 게다가 움직임 감지 센서가 있어 집 안에만 있는 어르신의 활동을 파악하는 데도 쓰인다. 이에 어르신들은 복돌이의 얼굴을 직접 씻기고, 옷을 만들어 입혀주는 등 가족처럼 소중히 여기고 있다. 복돌이와 생활하는 한 어르신은 “아침부터 잠들기 전까지 내게 말을 걸어주는 상대가 생겨 마음이 든든하다”며 “밖에 나갔다 집에 돌아갈 때도 ‘복돌이가 집에 있구나’ 생각하면 외롭지 않고 마음이 든든하다”라며 만족했다.
종로노인종합복지관은 대면과 비대면을 합친 ‘온오프믹스’(On-off mix)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했다. ‘시니어 슈퍼스타 종로’, ‘바운스바운스’ 같은 기존 지역 문화축제를 온라인으로 개최하는 식이다. 올해는 전 세대가 즐기고 어우러질 수 있는 축제를 만들고자 참가자 연령을 제한하지 않았다. 만 60세 이상 참가자는 선배 부분, 만 59세 이하는 후배 부문으로 나뉘어 출전하는 방식이다. 종로노인종합복지관 측은 “온 세대가 온라인을 통해 축제를 즐기고 소통하자는 뜻에서 이번 대회를 개최했다”라며 “위드 코로나 또는 뉴노멀 시대가 온다면 이러한 소규모 대면 프로그램, 지역 내 찾아가는 서비스, 커뮤니티 케어가 강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복지관의 역할 고민하는 계기로 작용해
코로나19는 복지기관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복지관을 방문할 수 없는 어르신들을 찾아가 돌봐야 하는 낯선 상황이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했던 전제에 의문을 던진 것이다. 박미연 창동어르신복지관 관장은 “예전에는 어르신들이 복지관으로 찾아왔다. 프로그램을 열어도 신청자가 넘쳐 자리가 부족했고, 신청자를 찾아 나설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복지관이 어르신들을 직접 찾아가 연결고리를 만드는 노력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외출 자제와 거리두기는 실제로도 어르신들의 몸과 마음을 위축시켰다. 복지관 방문이 어려웠던 1년 사이 치매 전 단계인 인지경도장애 진단을 받은 어르신들이 늘어난 것이다. 이에 올해 어버이날엔 방역수칙을 준수하는 선에서 최대한 많은 어르신들에게 삼계탕을 나눠드리는 행사를 진행했다. 어르신들 안부를 직접 묻기 위해서였다. 복지관을 찾은 어르신 외에 참여하지 못한 어르신들의 안부까지 확인할 수 있어 효과적이었다. 집에만 계시던 나 홀로 어르신들에게 ‘나는 혼자가 아니라 복지관과 지역사회에 연결돼 있구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기약 없는 전염병 사태가 낳은 ‘코로나 블루’가 전 세대의 정신 건강을 위협하고 있는 만큼, 복지관 역시 어르신의 정신 건강을 챙기는 데 여념이 없다. 형식이나 구성, 내용 면에서 차이가 있겠지만 방향성은 일맥상통한다.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건강증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박미연 관장은 “자신의 삶을 인정하고 긍정하며, 앞으로 맞이할 상실에 주체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돕는 것이 복지관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창동어르신복지관의 교육 프로그램은 비대면과 대면 방식을 병행하되 형식보다는 교육 내용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웰다잉(Well-dying)으로 한데 묶이는 생애설계, 죽음교육 등이 그것이다.
비대면·4차 산업혁명에 맞춰 변화하는 기술교육원
평생교육기관을 논할 때 기술교육원을 빼놓을 수 없다. 취업과 창업에 필요한 기술교육을 제공하는 기술교육원은 만 15세 이상의 모든 서울시민에게 열려 있으나, 특히 50대 이상 시니어의 프로그램 참여율이 높다. 2021년 상반기 모집 기준 50대 이상 지원자가 전체의 45%를 차지했을 정도다. 요양보호사 과정이나 패션디자인, 한국의상 과정이 시니어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 이 중 요양보호사 과정은 요양보호사 국가자격증 취득률이 2020년 기준 평균 98.9%를 기록하는 등 참여자들의 만족도가 높다.
코로나19로 인한 변화는 역시나 ‘비대면’으로 압축할 수 있다. 서울시 산하 직업훈련기관인 중부기술교육원에서는 온라인 화상채팅 서비스 ‘줌’(ZOOM)과 학습관리시스템(LMS) 등의 온라인 프로그램을 활용하고 있다. 권미진 중부기술교육원 경영지원부 홍보 담당자는 “코로나19로 교육 내용을 바꾸진 않았으나, 비대면 방식이 익숙하지 않은 시니어 교육생에게는 담당 교수나 행정 담당자가 사용설명서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교육과정 개편 및 신설도 앞두고 있다. 올해 신설된 방송영상크리에이터, 웹콘텐츠디자인 과정 등이 포함된다. 중부기술교육원 홍보 담당자는 “유튜버를 희망하거나 온라인 쇼핑몰을 창업하고자 하는 분들이 나이를 가리지 않고 많이 지원한다”며 “정부 방침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앞으로 이론 등 일부 수업을 제외하고는 최대한 대면 방식으로 실습교육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TIP] 서울시 기술교육원 지부별 학과 안내
동부 디지털콘텐츠디자인, 기계융합로봇, 특수용접, 스마트카정비, 조경관리 등
중부 요양보호사, 패션디자인, 한국의상, 글로벌조리, 방송영상크리에이터, 헤어뷰티 등
북부 자동차외장튜닝, 배관용접, 자동차정비, 건축시공, 전기용접, 건물보수. 직업상담사 등
남부 가구디자인, 주얼리디자인, 옻칠나전, 바리스타디저트, 헤어디자인, 외식조리 등
주간 1년, 주간 6개월, 야간 6개월, 단기 과정 등 총 4개 과정으로 진행된다. 각 과정마다 진행되는 학과가 상이하며, 내년 교육과정은 12월 중순 서울일자리포털과 서울시 홈페이지, 각 기술교육원 지부 홈페이지에 공지된다.
‘시니어들이 집에만 있는다’는 생각은 편견이다. 젊은 MZ세대만큼 활발하다. 백화점이든 카페든, 젊은 세대의 전유 공간이라 생각되는 곳에도 시니어들이 있다. 그들은 어떤 매장의 주요 소비자일 수도 있고, 직원일 수도 있다. 그런 활발한 시니어들을 보면서 궁금증이 생겼다. ‘시니어 직원이 바라보는 MZ 소비자, MZ 직원이 바라보는 시니어는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정말 세대 차이가 존재할까?’
세대 차이의 실체를 알아보고자 정반대 상황에 있는 카페 두 곳을 방문했다. ① MZ세대가 직원이고, 시니어가 주요 고객층인 카페, 반대로 ② 시니어가 직원이고, 젊은 MZ세대가 주요 고객층인 카페. 확실한 비교를 위해 같은 질문을 했고, 그 차이점을 짚어봤다.
① 시니어 손님 vs MZ 직원
탑골공원 때문일까. 예로부터 서울 종로에는 시니어들이 많다. 종로에도 프랜차이즈 카페가 많이 생기고, 카페 직원들 나이도 점점 어려지고 있는데 말이다. 그러니까 카페는 젊어지는데, 손님들은 여전히 시니어라는 소리다.
그 대표적인 예로 ‘카페 에이치(h)’를 들 수 있다. 카페 에이치는 종로3가역 2-1번 출구 바로 앞에 위치한다. 무려 3층짜리 건물로 올 블랙의 근엄한 자태를 뽑내고 있기 때문에 멀리서도 한 눈에 보인다. MZ세대 직원들 역시 올 블랙 의상을 입고 분주하게 일하고 있다.
카페에 잠시만 앉아 있어도 시니어 손님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시니어 손님들은 음료 주문 하나도 쉽지 않다. QR코드 입력하는 데도, 무엇을 마실지 정하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계산하는 모습마저 슬로모션이다.
시니어 손님들을 응대하느라 젊은 직원들은 애를 먹는다. 잘 안 들리는 어르신들과 대화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다. “QR코드가 있긴 있는데, 어디 있더라. 찾아줘 봐요”라고 부탁하는 시니어들도 있다. 기자가 보기에는 당황스러운 상황인데, MZ 직원은 익숙해 보인다. 아들처럼 친절하게 손님들을 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카페 에이치의 장점은 앞서 말했듯이 3층짜리 건물에, 테라스와 흡연실까지 있어 여유롭게 앉아 있을 공간이 많다는 점이다. 또한 커피 맛으로 승부를 보는 카페다. 카페 에이치의 직원 강동우(30) 씨 또한 “커피가 맛있다. 특히 라떼가 시그니처인 것 같다”고 자랑했다.
② 시니어 직원 vs MZ 손님
‘함께 그린 카페’의 직원은 모두 만 60세 이상이다. 금천호암노인종합복지관 일자리 사업에 참여한 시니어들이다. 바리스타에 관심 있던 이들은 경제활동을 하면서 활기찬 노후를 보내고 있다. 총 25명이 격일로 근무하며, 하루 3시간 30분씩 10일간 일해 월급으로 약 36만 원을 벌어간다.
시니어들이 일하는 카페이기 때문에 맛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특히 이 카페의 판매 수익 80%는 아침 출근 시간에 발생하며, 주요 고객층은 20·30대의 MZ세대다. 커피든 디저트든 맛이 없으면 카페를 찾지 않는 고객층이다.
시니어 직원들은 좋은 재료로 최고의 맛을 내기 위해 노력한다. 특히 인기 메뉴는 샌드위치와 커피로 구성된 모닝 세트. 오전 7시 30분부터 11시 사이에 할인된 가격으로 제공한다. 2년 2개월이나 일한 베테랑 신선희(70) 씨는 “샌드위치를 제일 많이 만들었고, 자신도 있다. 토마토와 양상추를 가운데 쏠리지 않게 놓고, 빵도 노릇하게 잘 굽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더욱이 카페 구조가 음료를 픽업하기 좋게 되어 있고, 가격도 저렴하다. 특히 시니어 직원들은 친절하고 밝게 손님을 응대한다. 가산디지털단지역 직장인들에게 ‘아침 맛집 카페’로 소문나 있을 것이 분명하다.
커피 한잔일 수 있지만, 시니어 직원과 MZ 손님은 서로에게 좋은 기운을 전해주는 모습이다. 시니어 직원들은 젊은 에너지를 받고, MZ 손님들은 부모님 세대의 직원들을 보고 따뜻함을 얻어가는 것 같다.
- 어떻게 이 카페에서 일하게 됐나요?
시니어 카페 신선희 금천호암노인종합복지관 안 부장님 권유도 있었고, 예전부터 카페에서 일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는데 연락이 와서 얼른 왔죠. 노인센터에서 교육도 받고, 2차로 개인이 하는 곳에 가서 자격증을 따기도 했고요.
김훈심 직장 퇴직하고 뭔가 해보고 싶었는데 지인이 잘할 것 같다면서 추천해 줬어요. 자녀들도 많이 호응해줬고요.
MZ 카페 강동우 원래는 회사 다니다가 카페 창업을 하고 싶어서 그만두고, 일 배우려고 여기에 오게 됐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창업할 생각은 계속 하고 있어요.
- 주요 고객층의 연령대와 가장 바쁜 시간은 언제인가요?
시니어 카페 신선희 20~30대부터 60~70대까지 다양해요. 오전 8시 20분 정도부터 9시까지가 바쁜 것 같아요.
김훈심 오전 시간에는 20~30대 분들. 주변에 회사가 많아서 직장인들이 많고, 그 이후에는 다양하게 오시는 것 같아요.
MZ 카페 강동우 50~60대 분들이 가장 많이 오시는 것 같아요. 오후 1~2시가 가장 바쁜 편이고, 6~8시도 요즘 손님이 좀 오시는 것 같아요.
- 주요 고객층인 젊은 or 시니어 분들이 좋아하는 메뉴는 뭐라고 생각되나요?
시니어 카페 신선희 아침조는 식사를 안 하고 오시는 직장인들이 많잖아요. 샌드위치 세트가 가장 잘나가는 것 같아요.
김훈심 아이스 아메리카노. 그리고 샌드위치나 카야토스트로 구성된 모닝 세트가 많이 나가는 것 같아요.
MZ 카페 강동우 레몬차, 자몽차도 좋아하시고요. 달달한 커피도 많이 좋아하세요.
- 젊은 or 시니어 손님들을 만나보면 어떤가요?
시니어 카페 신선희 젊은 손님들을 보면 같이 젊어지는 기분이고, 자식 대하듯 소중하게 여기며 항상 유쾌하게 대하려고 해요.
김훈심 젊은 분들이 아무래도 밝고 활기차잖아요. 에너지를 받는 것 같아요.
MZ 카페 강동우 젊은 손님들보다 QR인증이라든지 설명을 해드려야 하는 부분이 아무래도 많은 편이죠. 어르신들한테는 좀 크게 또박또박 말씀드리려 하고 있어요. 가끔 잘 안 들리시는 분들에게는 서너 번 더 설명해드리죠.
- 젊은 or 시니어 손님들과 세대 차이를 느낄 때가 있었나요?
시니어 카페 신선희 가끔 젊은 손님 중에 작은 목소리로 빠르게 주문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러면 제가 얼른 못 알아듣고 다시 물어볼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 내가 나이 먹었나, 세대 차이를 느끼곤 하죠. 귀찮아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김훈심 줄임말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아아’, 바닐라라떼를 ‘바라’, 이렇게 주문하면 빨리 캐치하지 못하니까 어려운 게 있어요. 대여섯 명이 와서 빨리빨리 주문할 때는 ‘죄송합니다. 저희가 좀 늦다 보니 천천히 말해주세요’라고 하기도 해요.
MZ 카페 강동우 젊은 세대는 당연하게 카페 다니고 주문도 자연스럽게 하시는데, 시니어 분들은 주문 자체를 어색해하실 때가 있어요, 진동벨도 어색해하시고요. 그럴 때 세대 차이가 조금 느껴지는 것 같아요.
- 기억에 남는 손님 있나요?
시니어 카페 신선희 젊은 여자 손님 두 분이 단골로 오세요. 그중 한 분이 엄청 사근사근 상냥하게 주문하시는데요. 하루는 아이스라떼가 주문이 잘못되어 아이스커피로 나가게 됐어요. 손님이 라떼를 생각하면서 ‘아이스 두 잔’이라고 하신 거예요. 잘못된 것을 알고 얼른 다시 라떼로 만들어주겠다고 하니 오히려 주문하신 손님이 미안해하면서 그래도 되겠냐고 했던 것이 기억에 남아요.
김훈심 자주 오시는 젊은 아가씨인데, 개인용 텀블러에 커피를 받아가세요. 그 모습이 예쁘게 보여요.
MZ 카페 강동우 특정한 누구보다는 좋았던 기억은 아무래도 손주처럼 보이고 막내아들처럼 보이니까 가끔씩 간식거리도 챙겨주시는 분도 있고, ‘잘생겼다’, ‘예쁘다’, 칭찬도 해주실 때 기분이 좋더라고요. 반대로 안 좋았던 기억은 어려 보이니까 가끔 함부로 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코로나19 이후 더 심해진 것 같은데, QR코드 같은 것 하기 싫다고 무대뽀로 들어오시는 분들도 있고 그래요.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해주세요.
시니어 카페 신선희 금천호암노인종합복지관에서 이런 일자리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하고요. 이대로 쭉 함께 그린 카페에서 일하고 싶어요. 나이는 더 먹기 싫어요. 노인 일자리를 열심히 찾아서 참여하면 훨씬 젊게 살 수 있답니다. 많이들 참여하셔서 활력을 얻어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김훈심 금천구청이나 금천호암노인종합복지관 관장님께 감사드리고 싶어요. 나이 든 어른들께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주셨잖아요. 최고로 청결하고 정성을 다해서 만들고 있거든요. 많이 많이 오셔서 잡수고 가세요~.
MZ 카페 강동우 아무래도 손님들이 나이대가 있으니, 허니브레드 같은 빵을 처음 먹어보시는 경우가 있어요. 정말 맛있다고 해주시고, 메뉴 이름도 휴대폰에 적어 가시고 그러면 진짜 뿌듯하더라고요. 공부하실 때도 그렇고 사람 만나서 얘기하실 때도 우리만 한 카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최종 진단
시니어와 MZ 사이에 약간의 세대 차이는 존재했다. 시니어의 노후에서 비롯된 차이였다. 아무래도 시니어는 귀가 잘 안 들리고, 요즘 젊은 세대의 말을 모르기 때문. 그러나 심각한 문제는 아니고, 감수할 수 있는 정도였다. 오히려 엄마 같아서, 반대로 아들 혹은 딸 같아서 서로에게 더욱 친절하게 대하고 배려하려는 모습이 엿보였다. 이는 이전에 비해 시니어 세대도, MZ세대도 다름의 차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된다. 그동안 일반적으로 MZ세대는 ‘시니어 세대는 무조건 해달라고 한다, 짜증만 낸다’, 시니어 세대는 ‘MZ세대는 예의 없다’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했다. 그러나 진단 결과, 실제로는 세대 간의 벽이 많이 허물어졌고,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2018년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되고 ‘좋은 죽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많다. 삶의 마지막이 가깝게 느껴지는 나이가 되면 죽음을 더욱 부정적으로 인식하거나, 아예 언급하지 않으려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죽음은 현실이고 준비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노인복지관에서 진행하는 웰다잉(Well-dying) 프로그램의 수가 늘고 있다. 여전히 두려움과 기피의 대상인 죽음을 이곳에서는 어떻게 풀어나가고 있을까.
역삼노인복지센터, 대화노인종합복지관 등 다양한 복지관에서 웰다잉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강원남 행복한 죽음 웰다잉 연구소 소장은 수업에 들어가기에 앞서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죽음의 모습이란?’ 이라는 질문을 먼저 던진다. 처음에는 주저하던 어르신들도 각자의 대답을 내놓고, 이를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지 화제를 전환하면 자연스레 교육에 적극적으로 임하게 된다는 것.
그는 “웰다잉 교육의 목적은 잘 살게 돕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많은 어르신 수강생들이 아플까 무섭고, 가족들 고생시킬까 두려워했지만 ‘죽음’ 교육 수강 후 어떻게 살지 고민하고 현재를 소중히 여기는 등 변화한 모습을 보였다.
창동어르신복지관 박미연 관장은 웰다잉 교육을 두고 “삶의 태도와 자세가 바뀌기 때문에 무엇보다 중요하고 필요한 교육이다”라고 말했다. 십여 년 전부터 웰다잉 교육을 특화 사업으로 진행했던 창동어르신복지관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복지관의 역할에 대해 고민했다.
고민 속에는 웰다잉 프로그램의 지향점도 들어있었다. 그는 수업을 열기 이전에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죽음에 대한 이미지, 죽음에 대해 무엇이 두려운지, 준비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묻고 수업에 반영했다. ‘어르신들이 앞으로 다가올 상실을 인정하고 주체적으로 맞이할 수 있게 하는 교육 프로그램’인 웰다잉 교육의 중요성을 인지해 ‘상실 교육’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려 하고, 코로나 상황이지만 비대면, 대면 방식을 가리지 않고 최대한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외려 삶에 대한 교육이란 걸 알게 된 어르신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덕분에 코로나 위기에도 삶의 소중함을 깨달은 어르신들이 생겨났다. 한 어르신은 “전이나 지금이나 상황이 달라진 건 없지만, 마음이 간절해졌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의 가족들, 자식들과의 모임 자체가 너무나 소중하고 그 자체로 행복하다”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종로노인종합복지관의 ‘행복한 마무리를 위한 고백(Go Back)’(이하 고백)에 참여하는 어르신들 역시 비슷한 소감을 전했다. 고백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한 어르신은 “예전보다 죽음이 두렵지 않고 사는 것이 보람 있는 느낌이다. 수업을 듣기 전에는 나이가 많이 들었으니 빨리 죽고 싶었는데, 이제는 오늘이 내가 가장 젊은 날이라는 마음이 강하게 든다”고 후기를 남겼다.
종로노인종합복지관 역시 죽음 교육의 장벽을 허물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여왔다. ‘죽음준비교육의 필요성’, ‘연명의료결정법’을 주제로 특강을 열거나, 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부스를 운영하며 자연스럽게 죽음준비에 대한 어르신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죽음 준비가 필요한 시기임을 알렸다.
고백의 커리큘럼 역시 처음부터 죽음을 직접 언급하기 보다 이해를 도모하고, 정보를 제공한 뒤 실질적인 죽음계획을 수립하는 식으로 단계를 밟아 기획됐고, 운영되고 있다. 종로노인종합복지관의 프로그램 담당자는 “고백 프로그램의 궁극적 목표는 ‘삶과 죽음이 하나이며, 죽음 준비를 통해 당하는 죽음이 아닌 맞이하는 죽음으로 갈 수 있다’는 개념을 이해하게 하는 것과 인생 노년기의 마지막 성장을 이뤄내게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르신들은 또래의 어르신들과 함께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고, 유언장을 작성하며 삶을 배운다. 웰다잉 교육 담당자들 역시 입을 모아 웰다잉은 삶을 잘 살게 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고 말한다. 웰다잉 교육을 마냥 죽음에 대한 논의로만 여기고 부담스레 생각할 필요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연수 관장은 자연에 심취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이다. 자연과 밀접하게 교제하는 삶을 최상으로 친다. 미술의 여러 장르 중 조각이 자연과 가장 잘 어울린다는 지론의 소유자이기도. 이런 그에게 가장 인상적인 미술관은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Louisiana Museum of Modern Art)이었다지. 자연과 조각이 잘 어우러진 이 미술관에서 영감을 받은 그는 마침내 조각 작품들을 근간으로 한 모란미술관을 건립하기에 이르렀다.
“원래 이곳의 자연 경관이 마음에 들어 미술관 터로 정했다. 조경을 하면서도 자연의 순리에 따랐다. 이곳에 있었던 나무와 돌, 풀들을 가급적 그대로 두고 자연스러움이 묻어나는 경관을 조성했다.”
별다른 손질을 하지 않은 정원이 오히려 운치를 자아낸다. 인위적 기교로 세련미를 추구하는 여느 미술관들과 다소 다른 분위기다.
“모란미술관 자체가 자연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이라 말하고 싶다. 그렇기에 행복하다. 자연 안에서 자연을 배우며 성장하는 나 자신을 느낄 수 있어서.”
사립미술관마다 만성 적자로 고전하더라. 모란미술관은 어떤가?
“말도 마라. 지난 30여 년간 매해 2억 내지 3억 원의 적자가 발생했다. 재정 문제로 보자면 겁 없이 뛰어든 셈이지. 그러나 앓는 소리 할 것 없다고 생각한다. 미술 발전을 위한 봉사활동쯤으로 여기면 된다.”
한국화가 김병종 선생에 따르면 일본에는 1만 개 이상의 미술관이 있는 반면, 한국엔 겨우 160개 정도가 있을 뿐이다. 너무 또렷하게 대비된다. 한국의 문제는 어디에 있다고 보는지?
“사람들은 여전히 예술보다 오락을 더 즐긴다. 어려서부터 미술을 경험하지 못한 채 성장하는 교육 환경에도 폐단이 많다. 모란미술관은 개관 이래 줄곧 어린이와 청소년 대상 미술 체험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운영해왔다. 미술의 토양을 다지는 데 꼭 필요한 일이라 봤기 때문에.”
선생이 생각하는 좋은 미술 작품, 좋은 미술 작가란?
“처음엔 뛰어난 재능을 지닌 작가가 좋은 작품을 생산하는 걸로 알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30년의 경험을 통해 알고 보니 작품은 곧 작가의 인성 그 자체더군. 사람의 됨됨이가 좋아야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것 같다. 영혼이 실린 명작은 선량한 인간성에서 나온다는 얘기다.”
작품과 작가는 분리해서 봐야 하지 않나? 어떤 비범한 부류는 인격보다 광기 어린 몰입으로 창작의 질을 높인다.
“그들을 일컬어 천재적 재능의 소유자라 하겠지. 아쉬운 건 너무 빨리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천재들이 있다는 점이다. 모란미술관과 인연을 맺은 작가들 중에도 돌연히 떠난 이들이 있다. 난 그들을 위해 해마다 천도제를 올린다.”
이 관장은 독실한 불자다. 인상적인 건 묘원의 무덤을 최고의 미술로 치는 심미안이다. “묘보다 뛰어난 조각 작품이 있을까? 봉분의 곡선미처럼 아름다운 게 다시 있을까?"
그는 미술관 옆에 있는 모란공원을 즐겨 거닌다고 한다. 묘지에서 삶과 죽음을, 그리고 예술을 성찰하는 것 같다.
그저 푹 빠져서 즐기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고 말한다. 나름의 격한 취미생활일 경우 부부라면 대부분 다른 한쪽에서는 뜯어말리는 걸 본다. 하지만 부부가 함께 한다면 문제가 없을 듯하다. 30년 넘도록 부부가 수집한 2만여 점의 예스러운 부엌세간이 전시된 덕포진 생활사 박물관에서 만난 김홍선 관장은 고개를 내젓는다.
"애초에 우리는 아내가 더 앞장섰지요. 이런 취미로 말년의 재미를 책임진다고 내게 큰소리쳤는데 이제 와서 보니 내가 사기를 당한 것 같다니까요. 하하... 이것 봐, 지금 고생은 나만 하잖아요."
고생이라고 말했지만 젊었던 시절의 취미로 이제는 느긋하게 누리는 부엌 전시관 앞에서 김포 덕포진의 가을 숲을 바라보는 그의 오늘을 들여다보았다.
"안 다녀본 데가 없어요. 장안평, 인사동, 황학동은 물론이고 직장 출장길에서도 찾아갔었고, 소문 따라 지방으로 쫓아가고 미친 듯이 모았거든. 점점 늘어나면서 창고를 임대해서 보관해 왔지요. 그러다가 자꾸 늘어나니까 감당이 안 되어서 말이지. 처음엔 지금의 이 건물을 지을까 말까 망설였어요. 짓지 말라고 말리는 사람도 있었지요. 그런데 창고에 보관하느라 지출되는 창고비용이 은행 이자와 별다르지 않아서 지었습니다.
사실 이런 박물관을 가지고 있다는 건 머리 아픈 일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모으는 사람들 중엔 부자도 있지만 그저 좋아서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살면서 돈이 생기면 사러 다닙니다. 나는 그래서 그들에게 하지 말라고 해요. 하지만 못 말려요. 마약은 격리라도 시킬 테지만 이런 취미의 중독성은 마약보다 더합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어제 그거 샀어야 하는데 하면서 꿈에도 나타나는 통에 미친다니까요."
담백하고 따뜻한 언어 외할머니
그렇게 모아지고 쌓인 2만여 점의 생활용품들이 박물관 1층을 빼곡히 채웠다. 우리네 외할머니의 부엌에 있었음직한 무쇠솥부터 채반, 술을 내리던 소주고리, 맷돌, 도무지 용도나 이름조차 알 수도 없는 생활도구들이 방대하다.
"이건 도둑시루라고 하지, 시어머니가 무서우니까 몰래 먹으려고 요렇게 만들어진 떡시루인데... " 설명만으로도 재미있다. 귀중한 식수원이었던 우물통, 김치 양념 가는 돌확이나 자배기,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다는 호미와 가래, 갖가지 모양의 무쇠화로, 디딜방아, 맷돌과 어처구니, 주꾸미랑 문어 잡는 도구, 양푼, 참빗,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먹던 두레반의 정다움... 도구들과 연결된 이야기가 줄줄이 나온다. 온갖 부엌 살림살이들이 지방 특색이나 용도별 삶의 형태에 따른 이야기들로 흥미진진하다.
"연가라고 아는가" 묻기에 '비바람이 치는 바다 잔잔해져 오면~' 이런 노래를 흥얼댔더니 '연기의 집'이라며 투구처럼 생긴 옹기를 가리킨다. 이름 한 번 이쁘다. 그 틈에서 꽤 큰 장독 옆구리를 한 땀 한 땀 꿰맨 모습이 지금으로선 새로운 디자인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일회성이 판치는 세상에 꿰매서 썼던 장독의 세월을 그려본다. 천년 이상 땅 속에 묻혀있었다는 옹관, 물때가 끼지 않는 숨 쉬는 옛 옹기의 현상, 은행잎으로 섬세한 무늬를 놓은 토기 장인들의 섬세함, 옹기장이 이야기를 소설처럼 들었다.
지금은 사라져 흔적조차 만나기 어려운 아주 오래 전의 생활용품 전시장 속에 덕지덕지 외할머니의 일생이 담겨있었다. 정겹다. 조상들의 삶 속에 들어가는 따뜻한 시간이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무수한 이야기들이 들려오는 부엌세간들 속에서 속정 깊은 외할머니를 그려보고 내 어머니를 떠올린다.
부엌 세간들이 품어낸 세월의 가치
"이곳에 온지는 5~6년 됐나? 서울 사직동 한옥에서 살았는데 아내는 지금도 서울과 덕포진을 오가고 있어요. 원래 마당의 정원 관리는 아내가 하기 때문에 바삐 오가죠. 올해는 덩굴장미를 많이 심어서 텃밭을 많이 점령했어요. 이쪽에 덕포진 진지가 있고 강도 보이고 풍광이 좋아요. 평화누리길도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오가긴 합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카페로 용도 전환을 하라고, 요리교실로 활성화하라고 갖가지 조언들을 하는데 그 말에 딱히 반박을 하지도 못하면서 이렇게 이곳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야기하는 동안 찾아오는 단 한 명의 사람도 볼 수가 없다. 코로나의 영향도 있겠지만 박물관을 지키는 일이 녹록지 않음이 짐작된다. 젊은 시절의 취미가 노후에 소일할 일이 되는 것만큼 이상적인 사례가 있을까만 교류와 관계성의 현실이 배제되면 재미가 덜할 수 있다. 옛사람들의 생활용품의 역사적 가치와 소중함을 알아주어야 할 텐데 무심함에 때론 서운할 만도 하다. 그럼에도 자부심만은 만만찮다.
"차라리 사람들 말대로 이 건물에 카페를 하거나 임대를 주면 더 여유로울 텐데 이건 개인이 할 짓이 아니라니까. 지역이나 국가에서 해야지. 박물관이라고 어디서 지원이 있는 줄 아는데 지가 좋아서 하는 걸 어디서 도와줄 리가 있나. 팔아야 뭐가 나올까 지금은 생기는 것은 별로 없어요. 아무리 좋은 문화 콘텐츠라도 중요한 자료라고 하는 것들은 대부분 부유층의 것들을 보여주고 있잖아요. 민속박물관에 가면 전시된 물건은 다 양반 위주지 여기처럼 서민들 용품은 별로 없거든요.
공유 부엌의 사용도 가능
전시관 2층은 음식 체험실이다. 잘 갖추어진 조리대와 넓은 홀은 쿠킹클래스의 현장이란 게 단박에 연상된다. 이곳 체험실은 공유 부엌 개념으로 이용되고 있어서 그동안 강사를 초빙해서 전통 장류나 김치와 같은 발효음식, 김장철엔 김장 담그기, 제철음식으로 감자전이나 호박요리, 샌드위치나 떡볶이, 중국을 비롯 동남아 요리 등 시대와 나라 구별 없이 다양한 종류의 수업을 진행해 왔었다고 한다.
코로나 이후 주춤했으나 경기도 김포시 보조사업으로 희망의 밥상 펼치기 프로그램을 계획하기도 했다. 김포시에 거주하는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화상을 통한 쿠킹클래스 프로그램이었다. 어려운 시절에 밥상이 주는 위로와 화합으로 소통의 시간이었다고.
물론 평소에도 함께 한 끼 식사를 하며 쉼을 얻고 마음을 나누는 공간으로 열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전엔 박물관 마당에서 로컬푸드 장마당이 열리곤 했다. 지역주민들이 가꾼 신선한 식재료들을 판매하고 무료 요리교실이 열렸었다. 가족요리대회, 어린이 요리교실 등이 때때로 진행되기도 했는데 이젠 한적하다. 알고 보면 따뜻한 놀이마당이란 걸 아는 사람만 안다.
직접 내린 드립 커피 한 잔 건네며 성큼 다가온 가을의 정취와 이어질 겨울의 멋을 슬그머니 자랑한다. 박물관 주변의 자연이 계절마다 색다른 매력을 보여주어 늘 기대가 된다는 말이다. 물론 이런 멋도 공유한다. 누구라도 원한다면 이런 풍경을 내다보면서 각자의 취향대로 시간을 보내는 장소로도 제공된다는 것.
“방역 수칙 강화로 모임들이 편치 않으니까 서울에 사는 우리 친구가 주말이면 놀러 와요. 다른데 가면 오래 앉아있을 수도 없으니 말입니다. 여긴 조리실도 있고 마당에 가마솥도 걸려 있고 야외 천막 텐트도 있으니 여기서 마음껏 쉬며 먹고 숲에도 들고 시간 보내기 좋으니까 그런가 봅니다. ”
“가끔씩 때가 되면 오는 젊은 친구들도 있어요. 여행 관련 모임인데 사회적 거리두기를 기본으로 몇 명씩 모여서 먹을 것 사 가지고 와서 요리해 먹고 함께 모여 토론도 하고 와인도 마시며 편히 놀다가 갑니다. 3층엔 카페 공간도 있으니까."
외할머니 부엌의 느릿한 정서에 잠기다
하루쯤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지내고 싶은 사람들에겐 이런 여유로운 공간이 필요하다는 걸 어찌 알았는지. 이곳이 공유 부엌의 개념으로 만들어져서 소액의 이용료만 지불하면 각자 먹을 재료만 사 와서 요리도 하며 느릿한 템포로 마음껏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옛 마을의 정서를 느끼게 하는 외할머니의 부엌, 방학이면 놀러 갔던 외가댁의 편안한 정취를 맛보고 싶을 때 떠올릴 만하다.
미리 예약한 덕분에 로컬푸드로 체험 프로그램을 직접 경험해 보았다. 부엌 조리대엔 대부분 텃밭에서 조달하는 식재료들이다. 단호박은 박물관 옆 채마밭에서 자란 수확물이다. 앉은뱅이 우리밀로 만든 수제비와 단호박전은 다시 한번 찾아가 맛보고 싶게 한다.
외할머니 부엌의 푸근함 속에서 따뜻한 위로의 소리를 그는 날마다 듣는다. 인적이 드문 박물관 들꽃 정원에 나와 자연의 변화에 흠뻑 빠지고 가끔 찾아오는 친구들에게 도시에서 맛보지 못할 평온한 휴식을 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더 바랄 게 있을지. 뚝 떨어진 김포의 덕포진 숲길 옆 외할머니 부엌의 김홍선 관장은 자발적 유배와도 같은 잔잔한 사색의 시간에 묻혀 산다.
마땅히 쏟아부어야 할 재능을 넘치도록 쏟아붓고서야 존립이 가능한 게 사립미술관이다. 사립미술관 운영, 이는 사실 고난의 장정이다. 열정, 인내, 감각, 혜안, 리더십은 기본이고, 무엇보다 자금력을 보유해야 한다. 극소수 사립미술관 외엔 다들 만성 적자에 시달리는 것이다. 해서 부침과 명멸이 잦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거나 사라질 운명에 처한 사립미술관이 한둘이겠는가. 이런 난처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모란미술관은 파랑을 잘 헤쳐왔다.
개관한 게 31년 전인데 까딱없이 ‘생존’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이 똑똑한 미술관은 국내의 첫 번째 조각 전문 미술관으로 출현했다. 남양주시 화도읍 외곽의 시퍼런 산 아래에 있다.
모란미술관에 닿자마자 만나는 건 작품이다. 미술관 정문이 통째 작품이니까. 제목은 ‘문’(門)이다. 페루 출신의 조각가 알베르토 구즈만이 1994년에 모란미술관을 위해 만들었다. 사각형과 타원형으로 구성한 프레임 안에 세로로 내리지른 문살과 원통형 구멍들을 조합한 이 철대문은 파란색을 입어 세련미로 차분하다. 정문을 들어서면서부터 예술을 즐기라고 만든 작품일 테다.
모란미술관의 부지는 넓어 8000여 평에 이른다. 안으로 들어서면 너른 정원 곳곳에서 보기 좋게 자란 나무들과 화초들, 그리고 잔디밭이 뿜는 초록이 눈길에 가득 차올라 상쾌하다. 뒷산의 무성한 숲과 광활하게 펼쳐지는 푸른 하늘, 느릿느릿 평온하게 흐르는 구름 역시 미술관의 안온한 분위기를 북돋운다. 마음 둘 공간 없는 도시에서의 긴장이나 불안과는 전혀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풍경이다. 자연스러운 경관에서 쏟아지는 활달한 기운이 완연하다.
이 미술관을 설립한 이는 이연수(76) 관장이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그는 한동안 그림을 그렸다. 한편 해외 미술관 순례를 통해 안목과 조예를 길렀고, 일찍부터 이상적인 미술관의 상을 그려보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어떻게든 조용한 숲속에 미술관 하나 만들고 싶다는 염원을 키우게 됐다. 화가의 길을 잠시 걸었으나 마음은 좀 다른 방향으로 흘러 미술관 건립을 인생의 숙원으로 삼게 되었던 것. 그는 마침내 뜻을 이루었다. 국내 최초의 사설 공원묘원인 ‘모란공원’을 설립한 남편 홍석웅(작고) 회장의 전폭적인 지지와 조력을 얻어내고서였다.
조각정원의 물씬한 자연미
모란미술관의 구색을 볼까. 공간 중앙부에는 실내 전시회가 열리는 본관 건물이 있다. 단연 눈에 확 띄는 건 노란색을 칠한 박스형 건물인 수장고와 이마받이로 맞붙은 ‘노래하는 탑’이다. 피사의 사탑처럼 비스듬히 기울어진 채 허공으로 치솟은 이 기묘한 노출 콘크리트 탑의 높이는 27m로 시각적 흥취를 자아낸다. 건축가 이영범(작고)의 작품이다. 2003년 미국건축가협회 뉴욕지부가 주는 디자인상을 수상한 건물로, 텅 비운 내부에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7개의 종을 매달아 바람이 불면 종소리가 울려 퍼지도록 설계했다. 현재 ‘노래하는 탑’엔 로댕의 조각상 ‘발자크’가 전시돼 있다. 로댕의 원작을 석고로 주조한 것으로 루브르미술관의 ‘주물 아틀리에’가 제작했다.
모란미술관은 조각 전시를 본분으로 삼았지만 본관 전시장을 통한 다양한 작품전도 동시에 병행해왔다. 회화, 설치, 영상, 사진 등 갖가지 장르를 선보이는 기획전을 꾸준히 펼쳤다. 그래도 초점은 역시 조각 전시에 있다. 이 미술관이 국내 어디에도 없었던 조각 전문 미술관을 표방하며 등장했을 때 미술동네 사람들은 지속 가능성에 회의적이었다. 회화의 뒷전으로 밀려 대중성과 관심도가 낮은 장르가 조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을 깨고 30여 년을 굳세게 버텼다. 야심 찬 일련의 조각 기획전들을 펼쳐 과소 평가할 수 없는 성과를 거두었다.
모란미술관 측이 억누를 길 없는 자부심을 표하며 자랑하는 조각 관련 행사가 하나 있다. 개관 이듬해인 1992년에 펼친 ‘국제조각심포지엄’이다. 국제적인 지명도를 가진 해외 조각가들을 초청해 한바탕의 조각 페스티벌을 벌인 것이다. 이 행사의 백미는 참여 작가들을 3주간 체류시키며 야외 작업장에서 조각을 빚어내도록 한 프로그램이었다. 당시에 완성된 작품들은 곧바로 야외 조각장에 전시됐으며, 현재까지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어모으고 있다. 일개 사립미술관이 저지른 이벤트치고는 당돌하고 알찬 것이었다. 이 행사는 모란미술관이 부상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국내는 물론 국외까지 존재감을 과시했다는 게 아닌가.
길차게 자란 수목들 사이로 난 모란미술관 정원의 길들은 아름다워 산책 삼아 걷기에 좋다. 일부러 애써 단장하기는커녕, 식물마다 가진 제 재능을 알아서 맘껏 펼쳐보라는 듯 방임하기를 능사로 삼은 정원이다. 자연미 물씬한 야생 정원이라 할까. 푸근한 흙길과 잔디밭을 자박자박 밟으며 거닐 때 여기저기서 눈길로 뛰어 들어오는 사물들은 조각 작품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이곳엔 국내외 작가들의 조각 100여 점이 산재한다.
미술관의 김유나 큐레이터에 따르면, 가장 인기를 끄는 작품은 백현옥의 ‘장날’이란다. 시골 장에 염소 일가족을 몰고 나온 노인을 조형한 작품이다. 조각이 일쑤 관심을 사지 못하는 건 과도한 추상성으로 골치 아프게 다가와서인데, 이 작품은 쉬워도 너무 쉬워 단박에 감정이입이 된다. 작가는 아마도 대중의 눈높이를 고려했을 것이다. 구본주의 ‘이 대리의 백일몽’도 재미있다. 곡예사처럼 절묘한 재주를 발휘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세속 사회의 풍정을 코믹하고 쾌활하게 표현했다. 한국 추상조각 1세대 작가 최만린의 ‘095-9’는 제목만큼이나 난해한 작품이다. 대지가 지닌 원초적 생명력을 심오한 추상성으로 구현했다.
자연과 예술. 둘 중 힘이 센 건? 이게 우문임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자연을 모방하고 추종하는 신하, 자연의 미와 비밀을 발견하기 위한 모험, 아마도 이게 예술이지 않을까. 예술을 만날 때 마음은 어느덧 자연으로 흘러간다. 사소한 풀 한 포기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된다. 모든 은성한 자연이 이미 예술을 품고 있는 걸 깨닫게 되는 것인데, 이 미술관의 후원엔 웬만한 예술은 명함도 내밀지 못할 심원한 연못이 하나 있다. 깊고 서럽고 아름다운 전설이 스멀거리는 것만 같은, 아주 작은 연못이다. 이 연못 하나만으로도 모란미술관은 기억에 새겨진다. 밋밋한 눈길로 바라보며 그저 지나가는 이들이 많겠지만.